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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스크랩] 제1장 상고사의 쟁점 - (3) 사마천의 사기 - 마. 효경본기

마. 효경본기(BC.157-141)

1. 2년(BC.156) 봄 광천왕(廣川王: 하북성 남부 南宮縣북쪽 武邑이남과 산동성 德州市일대)과 장사왕이 자신의 봉국으로 돌아갔다.

2. 6년(BC.151) 봄 농서태수 혼야(渾邪:신라의 시조 混邪王?)를 평곡후(平曲候: 하북성 覇縣 동쪽: 영정하 남쪽, 천진에서 서쪽방향)로 삼았다.


※신라의 조상 : 혼야왕 , 혼사왕,  곤사왕은 서로 발음이 같고 글자도 서로 바꿔 쓸 수 있다. 중국서부의 흉노족 소왕(小王)으로서 한나라에 항복한 후 농서태수란 벼슬을 받았는데 이번에 동쪽인 하북성 지역으로 부임하게 된 것이다. 하북성지역에서 번성한 그의 자손들 중 김일제라는 사람이 왕망(AD8-23)을 도와 신나라를 건국했는데 왕망이 망하자 피의 숙청을 피하여 김씨일족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중에서 일부는 선조들의 옛고향인 중국 서쪽 란주지역으로 갔고 일부는 동쪽 한반도의 경상도지역으로 왔다.

경상도지역에 오면서 그들은 금빛궤짝에 많은 보물들을 가지고 왔는데 신라의 탈해왕에게 협조하여 귀족신분을 얻게되고 김씨성을 쓰게 되었믄데 후에 대보벼슬까지 하게된다. 귀족으로서 신라왕실과 혼인관계를 맺게되어 마침내 김씨는 처음으로 제13대 미추이사금으로 왕위에 오르게 된다. 이로서 신라는 박씨, 석씨, 김씨가 서로 왕이 된다.

경주왕릉에서  중국서쪽인종이나 아랍계인종의 유골이 나온다던가 신라의 금장식문화가 흉노와 비슷한점이 많다던가 하는 것은 다 이런 이유때문이다. 신라가 중국본토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다 이런 이유때문이다.

 


3. 중원3년 황자 유방승(皇子 劉方乘)을 청하왕(淸河王: 하북성 남부의 南宮- 淸河의 작은지역)으로 삼았다.

출처 : 한밝회 : 한국상고사연구회
글쓴이 : 유완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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