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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스크랩] 제1장 상고사의 쟁점 - (3) 사마천의 사기 - 바. 효무본기

바. 효무본기(한무제 BC141-87 재위) 

1. 8년(BC.133년) 상산왕이 죄를 짓자 추방시키고 그의 동생을 진정(眞定: 하북성 正定縣남쪽)의 왕으로 봉하여 선왕의 종묘에 제사지내게 하였고 상산국을 군(郡)으로 귀속시켰다. 

2. (태산에서 봉선을 마치고) 해변에 이르러 봉래선도를 볼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데 봉거도위 곽자후가 갑자기 병이  나서 죽었으므로 천자는 해변을 따라서 북상하여 갈석(碣石)에 도착하였다. 다시 요서(遼西)에서 순수를 시작하여 북방 변경을 거쳐서 구원(九原: 내몽고 포두시 서쪽)까지 이르렀고 5월에는 감천궁으로 돌아왔다.


※중국인들에게 전설적으로 알려진 선인들이 산다는 백두산 즉 봉래산의 위치를 한무제 때까지 몰랐다. 여기의 갈석은 지금의 갈석이 아니고, 요서는 지금의 요하가 아니다. 지금의 요하란 이름은 요나라 때(AD.987년) 처음 지어진 이름이다.  당시의 요동요서의 경계인 요(遼)는 북경남쪽의 영정하였다. 후세의 지도에는 신요(新遼)라고 기록되어 있다.


3. ----그 이듬해 원봉3년(BC.108) 조선을 토벌하였다.


위만조선 그림

출처 : 한밝회 : 한국상고사연구회
글쓴이 : 유완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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