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절 한단고기
가. 한검세기
1. 조선23세 구물 왕검 원년(BC.425) 7월에 해성(요동반도 해성)을 개축하도록 하여 평양(平壤)이라 부르도록 하고 이궁(離宮)을 짓도록 하였다.
2. 구물 왕검 23년(BC.403) 연나라에서 사신을 보내와 새해 인사를 하였다.
3. 조선24세 여루 왕검 17년(BC.380) 연나라 사람 배도(倍道)가 쳐들어와서 요서(하북성 발해변)를 함락시키고 운장(雲障)에 육박했다. 이에 번조선(籓, 番朝亙: 밝조선)이 대장군 우문언에게 명하여 이를 막게 하고 진조선(眞朝亙: 辰朝亙: 신조선), 막조선(莫朝亙: 맑조선)도 역시 군대를 보내어 이를 구원하더니 복병을 숨겨두고 공격하여 연나라 제나라의 군사를 오도하(五道河)에서 쳐부수고 요서(遼西)의 여러 성을 남김없이 되찾았다.
4. 여루 왕검 33년(BC.364) 연나라 사람이 싸움에 지고는 연운도(連雲島)에 주둔하며 배를 만들고 장차 쳐들어올 기세였으므로 우문언이 추격하여 크게 쳐부수고 그 장수를 쏘아 죽였다.
5. 여루 왕검 47년(BC.350) 북막(北漠: 흉노)의 추장 액니거길이 조정에 와서 말 200필을 바치고 함께 연나라를 칠 것을 청했다. 번조선(밝조선)의 젊은 장수 신불사(申不私)로 하여금 1만병력을 이끌고 합세하여 연나라의 상곡(上谷: 북경서북)을 공격하고 성읍을 쌓게 하였다.
6. 여루 왕검 54년(BC.343) 상곡의 싸움이후 연나라가 해마다 침범해 오더니 이때에 이르러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하므로 허락하고 조양(造陽: 열하성 凌源縣의 동쪽)의 서쪽으로 경계(백하지역)를 삼았다.
7. 조선25세 보을 왕검 원년(BC.341) 12월 번조선왕 해인이 연나라가 보낸 자객에게 시해 당하니 오가(五加)가 다투어 일어났다.
8. 보을 왕검 19년(BC.323) 정월 읍차 기후(箕詡)가 병력을 이끌고 입궁하여 자칭하여 번조선(밝조선) 왕이라고 하고 사람을 보내 윤허를 구하매 허락하고 굳게 연나라에 대비하도록 하였다.
9. 보을 왕검 44년(BC.298) 북막의 추장 이사가 음악을 바치니 이를 받고 후하게 상을 내렸다.
10. 조선26세 고열가 왕검 44년(BC.252) 연나라가 사신을 보내어 새해 인사를 했다
11. 고열가 왕검 48년(BC.248) 겨울 북막의 추장 아리당부가 군사를 내어 연나라를 정벌할 것을 청했으나 허락하지 않으니 이때부터 원망하여 공물을 바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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