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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스크랩] 천부경 한울소리 48 ( 공무원 연수원 강의 내용 4. 원시한글이 외국으로 간 예)

천부경 한울소리 48 ( 공무원 연수원 강의 내용 4. 원시한글이 외국으로 간 예)

 

 한글을 쓰는 사람이 한글의 원류에 대해 모른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이 가림토는 위에 초기 가림토 보다 발전되고 우리 조상들에 의해 일본으로 건너가 훈민정음보다 700 년이 앞선 신대문자가 되었으나 일본인들은 그 사실을 모르니 인정하지 않는다.

 

 

 

* 키타규슈 미야자키현은 동해에서 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으로 신화의 발상지이며 엔노 신사가 있는데 서기 708년에 세워져 있고 신대문자가 새겨져 있는 돌탑이 있다.

 

 

 

 

 

 

 

 * 샤지요시히코 신대문자 연구학자. - 일본 신사에 있는 신대문자(神代文字)는 한글과 비슷 한데가 너무 많은데 훈민정음은 1443년에 만들어졌고 일본 신대문자 라는 아히루 문자는 708년 부터 있었다. 그러므로 신대문자는 훈민정음보다 700년이나 앞섰음으로 세종은 일본의 신대문자를 모방해 훈민정음을 만든 것이다.

 신대문자로 쓰인 기록 중에는 소금으로 1년분의 세금을 낸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나라시대 이전인 5-6세기경 일이라 한다.

그는 또 한때 일본 역사가들은 신대문자는 없는 문자이고 따라서 신대문자로 쓰인 것들은 모두가 가짜이기 때문에 조사할 가치고 없는 것이라고 하고 신대문자 감추기 작업이 있었는데 만약 그런 물건을 가진 사람들이 이를 공개하면 명치정부로 부터 추궁을 당하게 되니 스스로 페기한 사람도 많은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이세신궁(伊勢神宮)은 나라현에 자리잡고 있는데 신대문자가 소장 되 있다 일본인이라면 죽기 전에 꼭 찾아가 보아야 한다는 십만 신사의 본산으로 일본천황이 해마다 직접 참배를 하다. 이 이세신궁 외궁에는 신대문자와 관련된 보물이 수 백점이나 된다. 그리고 그중에 가장 소중한 보물은 신에게 바치는 세 개의 보물인데 이는 거울 칼 구슬이며 1) 이 보물들에는 신대문자가 새겨져 있다고 하는데 아무한테나 절대로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실물을 본 사람은 극히 드물고 사진도 공개하지 않는다. 이 신궁에 있는 거울을 ‘아티노’ 거울이라 하는데 이는 신대문자 때부터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채 지금껏 전해지고 있으며 그것은 누구도 볼 수 없다. 다만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는 이세의 신관인 나이쿠에 남아있다. 그 외에 나머지 신보는 20년마다 지금 있는 물건과 똑같이 만든다. 그리고 오래된 것은 20년이 지난 후 극비의 장소에 묻어버린다.

1) 신대문자가 가림다가 전래된 것이라면 이 세 가지 보물은 천부인의 복제품일 가능성이 높다.

 

* 황조황태신궁에 신대문자가 새겨진 청동거울과 동검이 있다는데 실물을 확인해 볼 수가 없다.

 

* 신대문자를 한국인에게 감추는 이유는 무엇인가?

 

* 대문자가 나타나는 곳은 주로 규슈섬으로 한반도와 가장 가깝고 한반도와 관련된 신사가 가장 많은 곳.

 

* 일본을 세운 신도 최초의 천황도 모두 한반도에서 건너갔다. 이는 일본학자들도 싫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드리는 정설이다. 그러므로 그때 가림토가 있었다면 같이 들어가 신대문자가 되었을 것이다.

 

* 서정범교수 - 927년 그러니까 약 천 년 전 엔끼시끼 신사에 대한 기록이 있다 거기에 보면 국내성에 신사가 세 개가 있는데 한국 신사가 두 개가 있고 소노진자라고 하는 지신(地神)을 모시는 신사가 하나있다. 그렇다면 천황의 궁성에 신사가 세 개가 있는데 한국 신사가 두 개이고 하나는 지신을 모시는 신사이니 천황의 조상이 누구라는 것은 말하나 마나이다.

 

** 인도의 부라미 문자

브라미 알파벳이 인도에서 건너간 것은 불교 수도승이 전파한 것이며 중국의 신천에서 다른 모든 글자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 MS대학의 언어학자 PG파델 교수는 한국글자와 인도글자가 달았다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라고 한다 왜냐하면 한국뿐만 아니라 인도주변의 실론, 버마, 네팔, 캄보디아, 라오스 등의 글자가 모두 ‘브라미’ 문자에서 왔기 때문인데 순례자로 인도에온 중국의 학자가 음성학 체계가 잘 발달된 브라미 문서들을 통해 그것을 수용한 후에 이것을 한국으로, 다시 일본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본의 음절인 히라가나 가다가나도 브라미로 부터 기초한다고 주장한다.

 

 

 

구자라트 문자

* 델리에서 인도 북서부의 ‘구자라트’ 주의 ‘바도다라’ 시내까지는 기차로 열 두 시간쯤 거리인데 자동차 광고판이나 간판의 글씨가 한글과 매우 흡사해서 그 글씨를 우리말로 읽어도 보고 그들보고 우리 한글 글자를 읽어보라고 했는데 발음이 같은 것이 많았다.

간판에 쓰여 있는 구자라트 문자.

 

 

 

 

 

 

 

* 학계의 의문

그렇다면 10세기경에 들어온 브라미 문자가 15세기 훈민정음이 창제될 때까지 어디에 숨어 있어 어떤 자취를 남겼을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아무 것도 없다’ 이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 한글은 몽고 글자는 모방했다는 설의 시비.

* 유희의 언문지에 의하면 훈민정음은 몽고문자를 본받아 명나라 학사인 황찬에게 질문해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든 후 한자의 정확한 음을 훈민정음으로 표시하기 위하여 당시 요동에 와있던 한문 음의 권위자 황찬에게 신숙주 성삼문 이 자주 방문한 것을 오해 한 것이다.

 

 

 

* 고 경상대 국어교육학과 여증동 교수 - 세종실록에서 말하는 자방고전(字倣古篆)은 훈민정음이 우리의 옛 글자를 모방했다는 뜻이지 만약 몽고의 글자를 모방했다면 자방몽전(字倣蒙篆)이라고 했을 것이다. 옛고(古)자를 쓰는 것은 반드시 자기 나라의 것을 말할 때 쓴다.

또 그는 전에 젊었을 때 만주 벌판에서 옛 한글로 보이는 글자 비석을 발견, 보관해 오다가 나이가 들자 이해연 교수에게 준 일이 있다 하는데 한글과 매우 흡사한 부분이 많다고 하는데 혹 가림토가 아닐까?

 

** 만주글자

 

따라서 훈민정음 이전 일본이나 인도등에 보이는 한글 같은 글자는 원시힌글 가림토가 외국으로 간 예로 본다.

 

우리 민족은 [진본천부경] 하나 둘 셋 ...열  이나 ㄱ ㄴ ㄷ ...ㅎ 속의 뜻을 밝히는 [천부인 ㅇ ㅁ ㅿ]을 떠나서는 한시도 살 수 없음으로 이 글은 자주 보내질 것인데 하느님 소리만 나와도 싫어하는 카페가 있을 것이니 계속 읽거나,누구에게 말 하고 싶은 분은 천부경.net 치고 들어와 준회원만 되어도 전체 메일을 받아보게 되고 글쓴이 카페 [천부경 한울소리]에는 전에 써진글들이 모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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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사단법인 한배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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