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일본 군부, 안팎으로 죄이다.
- 시베리아 침공을 추진했다가 쌀 폭동이란 된서리를 맞은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1918년 9월 21일 퇴임한 직후 급사하고, 야마가타 아리토모마저 가뜩이나 힘 떨어진데 더해, 몽키킹 패밀리의 결혼 문제에 제 딴에는 애국지심으로 간섭했다가 역풍을 맞고 나가떨어진 직후, 저승길에 올랐다.
- 또한, 1차 대전 종결 직후 터진 급격한 인플레이션과 시베리아 침공에 따른 전국적인 쌩 난리법석의 도가니, 쌀 폭동, 그리고 노동자의 처우 개선, 소작농의 소작료 인하 운동까지, 이런 대대적인 민중 운동의 힘을 직접 목격한 당시까지의 실세, 늙다리 원로들은 더 이상 시대의 흐름에 역행했다가는 자리보전도 힘들겠다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 마침내 기존 기득권 세력들은 대대적인 민중의 힘에 굴복, 결국 정당 내각을 인정하며 입헌 정우회의 하라 타카시(原敬)를 총리로 지명, 드디어 귀족 출신도, 조슈 파벌 출신도 아닌, 평민 출신 총리가 일본 역사상 최초로 1918년 9월 29일에 탄생했다.
군부 독재가 짜부러지고 평민 출신 총리가 탄생한다..
- 바로 이 시기부터 온통 군국주의와 전체주의로 칠갑된 일본 근현대사에서 가장 희한한 시기가 도래하게 되는데, 이후 약 15년간에 걸쳐 일본은 국내적으론 소위 다이쇼 데모크라시(大正デモクラシー)라는, 우리의 서울의 봄 비스무리한 민주화 시대를 맞이하고, 대외적으로는 독단적 팽창주의를 자제하며 국가적 협조체제를 구축, 나름 세계화에 발맞춰가는 모습을 보인다(영화에 자주 묘사되는 모던 걸, 모던 뽀이들이 주로 이 시대에 대거 등장한다..)
- 다이쇼 데모크라시와 당시 일본 국내의 훈훈한 정치적 봄바람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따져볼 내용들이 많지만, 이 블로그가 무슨 정치 블로그도 아니고 해서, 이 부분은 과감히 넘어가고 각자가 알아보기를 권장 드리며, 여기서는 이 시기에 일본 군부가 부닥친 암담한 실상과 전개 과정에 대해서만 서술하겠다(너무 무책임한가?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넘 늘어지면 지겨우니깐..캬캬캬..쿨럭~ -_-;;;)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기에 소위 모던(Morden)의 바람이 불어닥치기 시작했다..
- 1918년 11월 11일, 프랑스 북부 콩피에뉴(Compiègne)의 열차 객차에서 독일군과 연합군 사이의 휴전 협정이 체결되고(나중에 2차 대전 때 히틀러가 보관되어 있던 이 객차에서 프랑스의 항복을 받아낸다..) 이듬해인 1919년 1월 28일, 파리 강화 회의(Paris Peace Conference)가 개최되며 제 1 차 세계 대전의 막이 그렇게 내려졌다.
콩피에뉴의 열차와 히틀러의 쪼잔한 복수...
- 4년 3개월에 걸친 세계 대전은 이렇게 독일의 항복으로 끝났지만, 독일과 헝가리-오스트리아 등의 동맹국과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의 연합국 진영으로 나뉘어, 참전국만 32개국에 이르렀고, 동원 병력은 약 6,000만 명, 이중에 사상자가 무려 1,900만 명이 발생한 전 세계적 규모의 헬 게이트였다.
- 이런 피와 살이 난무하는 뻘구덩이 속에서 항공기, 전차, 독가스 등의 신병기가 나타나고, 도시에 대한 폭격 및 장거리 포의 포격으로 민간인까지도 전쟁에 휘말렸으며, 전방도 후방도 없는 총력전 더하기 장기전의 와중에서 전쟁의 비참함을 몸소 겪은 시민들 사이에서는 다시는 이런 전쟁을 겪고 싶지 않다는, 평화에 대한 염원이 폭발했다.
사람 좀 살자...마이 죽었다 아이가...
- 전 세계적인 평화의 갈구와 긴장의 이완 과정 속에 일본도 야마가타와 조슈 파벌이 쇠락의 길을 걸으며 국민들은 시민 의식의 발현이 시작되었고 군부 독재로부터의 탈출과 민주 체제, 그리고 자유주의에 갈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 하지만 그래도 정신 못차린 일본의 대가리들은 메이지 유신 이후 1차 대전의 종결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국가의 자존과 외세의 침략 따위를 주구장창 강조하며 계속해서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고조시켰고, 이런 공포 조장은 곧 자신들의 권력 강화와 군대의 확장으로 이어졌다.
- 모두가 이 순간만 허리띠를 졸라매면 곧 희망의 시대가 도래 할 것이란 꿀 발린 대가리들의 사탕발림을 믿고 모든 것을 감내하던 일본 국민들의 인내는 이 시기가 되면 마침내 한계에 다다르고 만다.
이거 왜이래? 국민 총력전이야~~!!
-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러일전쟁(Russo-Japanese Wars 1904년 2월 8일~1905년 9월 5일)으로, 일본 측의 전몰자(戦没者)만 88,429명(전사 55,655명, 병사(病死) 27,192명)에다가 부상자는 153,584명이 발생하였으며, 인명 손실을 접어두더라도 국민들을 닦달해 18억 2,629만 엔의 대규모 전비(일본 정부 발표 일반/특별 회계 기준.. 당시 일본의 1년 세입이 약 2억 엔..)를 투입한 이 전쟁에서, 국력이 훨씬 거대한 유럽 강대국을 상대로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다고 일본 정부는 대대적인 나팔을 불었지만, 배상금을 단 한 푼도 받지 못한 것과 실속이라고는 전혀 없는 결과물에 대해 국가적 위기이라며 그동안 달달 볶인 국민들은 전혀 납득할 수 없었다.
- 당시 일본 국민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사실상 러시아와의 대리전쟁 수행을 위해 일본 정부는 전쟁을 부추긴 배경이자 동맹국 영국이나 미국으로부터 거액의 국채를 발행했고, 그마저도 전쟁이 지속되며 지원국들이 더 이상의 국채 매입은 곤란하다며 난색을 표하자(돈 빌려주며 부추길 땐 언제고 더 이상 신용 대출은 노~~ 니네는 마땅한 담보도 없쟈냐? -_-;;) 골 때리는 상황이 되어 만약 1~2개월만 더 전쟁이 지속되거나 러시아가 일본과의 협상을 거부하고 강경론으로 나간다면 일본은 파산 선언을 해야 할 판이었다.
전쟁하라고 등 밀어놓고 도와달라니 배 째란다..-_-;;;
- 이런 속사정을 알고 있던 일본 정부와 군부는 당연히 일단 전쟁부터 매듭지어야 할 상황이었지만, 승리라는 화려한 껍데기만 있고 실속은 전혀 없는 결과를 놓고 국민들은 “우리가 이러려고 허리를 개미허리로 만들었나? 자괴감이 든다.”라며 그러려면 차라리 전쟁을 계속하자고 요구하는 어이없고 황당한 일까지 발생하게 된다.
- 러일 전쟁의 종전 협정인 포츠머스 협정(Treaty of Portsmouth)에 따르면 일본이 얻은 것이라고는 이미 거의 장악하고 있던 조선에 대한 권리부분을 제외하고는 사할린 섬 전체도 아니고 별 쓰잘데기도 없는 북위 50도 이남의 땅(그나마 북 사할린은 석유나 석탄 같은 지하자원이라도 있었다는..)과 동해, 오호츠크 해, 베링 해의 어업권을 얻은 것이 전부였으니 일본 국민들이 빡쳐서 돌아버리는 것이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모른다(지네 나라 속사정을 국민들이 몰랐으니..)
우리가 중재해주께...옛다~ 이거 먹고 떨어져~(지도 갈색 부분..)
- 따라서 정부의 발표(선전?)에 따르면 막강 일본군이 연전연승하고 있다고 하니 전쟁을 계속해서 러시아에게 막대한 배상금을 물리는 것은 물론이고 연해주랑 캄차카 반도도 뺏어오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며 히비야 공원 방화사건(日比谷 燒討事件)같은 반정부 폭동까지도 일어났다.
- 이후 시간이 지나며 이런 난리판은 점차 가라앉았지만, 그 수면 아래에서는 러일전쟁에서 이겨 국가는 세계적 강대국의 반열에 올랐다는데 국민의 생활수준은 별 나아지는 것도 없다는 괴리감이 남아있었고 “언제까지 우리에겐 별 실속도 없는 국가의 영광을 위해 쪼들려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계속해서 존재했다(현대 일본에서도 이런 의문은 여전히 존재..경제 대국이라는데 국민은 왜 졸라게 일하고도 5평짜리 다다미방에 찌그러져 있는가? 뭐, 그런..우리도 마찬가지지 않나? OECD같은 소리하네..)
- 하지만 이후로도 국가적 위기라는 대 국민 호소 내지 강요는 계속되어 조슈 군벌로 대표되는 일본 육군의 2개 사단 증설, 해군의 88함대 계획 등 대규모 군비 강화는 계속되었다(국민들에게선 곡소리 나는데 돈 깨지는 소리만 들려온다..)
좀만 참으라더니 어찌된게 자꾸 늘어난다...
- 물론 1차 대전 기간 동안 실제 참전은 안하면서 연합국에 대한 군수품 납품 등으로 일시적인 호황기가 있었지만 대전 종결과 동시에 들이닥친 불황과 인플레이션은 마침내 국민들의 분노가 터지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 도대체 언제 국가적 위기가 사라지고 위협을 받지 않는 강대국이 되는가? 세계 제 5 위의 국력을 가진 강대국이라 떠들 땐 언제고 돈 내놓으라 할 땐 갑자기 강력한 외세의 침략과 간섭이 목전에 닥쳤다며 약소국 고스프레를 떠는 건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 지금까지 그토록 국가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맸으니 이제는 국가의 외향이 아니라 국민의 개인적 삶이 좀 나아져도 되지 않나?(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보유했다면서 북쪽 양아치들을 얘기할 땐 핵을 빼더라도 그노마들이 우리보다 전력이 몇 배 더 강하단다..그럼 북괴와 북괴군은 도대체 세계 몇 위인가? 매스컴엔 허구헌날 피골이 상접한 북괴군 병사의 몰골과 연료가 없어서 훈련도 제대로 못한다는 얘기만 나오더만..거참 미스터리일세..)
거참, 이상하네...-_-ㅋ
- 이러한 이해할 수 없는 국민적 의문의 해소와 야마가타의 죽음에 따른 조슈 군벌의 약화, 지멘스 사건 등에 의한 해군의 도덕성 결여 문제, 지식인 계층의 등장과 사회 진출, 언론의 발전, 조직화되는 국민의 여론 형성 등이 정치와 조직 운영의 경험을 쌓아온 정당들의 이해와 맞물리며 마침내 하라 타카시 내각이라는 최초의 대중 내각을 탄생시키게 된다.
- 우리 현대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군부 독재 체제 직후 탄생한 소위 문민정부(文民政府)가 제일 먼저 추진하는 것은 바로 기존의 기득권층, 즉, 군부 세력에 대한 견제와 세력 약화를 추진하는 것이다(우리에게도 군대 내에 두화니 똘마니들, 하나회라고..뭐 그런 잡종들이 있었다...)
그런 꼴통들이 있었다..소문 들어보니 비스무리한 것들이 지금도 있다던데?
- 게다가 이렇게 골 때리게 꼬여가는 국내적인 문제에 더해, 국외적으로도 당시 일본 군부를 쪼그라들게 하는 상황들이 발생했는데 그것은 바로 이 시기가 세계적으로도 파멸적 전쟁에서 발생한 상처들을 치유하고 평화를 갈구하며 군비를 축소하자는 분위기가 팽배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 이에 따라 국제적인 군비 축소와 관련된 협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이는 “더 이상 전쟁은 싫어!”라는 민심은 둘째치고라도 당장 전쟁으로 피폐해진 경제를 재건하고 향후 군사비 지출을 통제하기 위해 군비 축소와 관련한 합의체제의 필요성이 각국에서 대두되기 시작했다.
전쟁 좀 고만하자..1차 대전 종결 후 파기된 독일군 항공기들..
- 특히 가장 곤란한 상황에 놓인 국가가 바로 영국이었는데 영국은 비록 대전에 승리했다고는 하여도, 전쟁에 따른 대규모 국력 소모로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고 있었고 당장 국가적인 빈곤의 수렁에 빠져 허덕이는 상황이었다.
- 여기에 더해 예전에는 5대양을 지배하던 영국 해군이 이제 전쟁에서 전혀 타격을 받지 않았던 미 해군에 세계 1위의 자리를 빼앗기는 판국에까지 내몰리는 상황이었음에도 해군력의 증강은커녕 오히려 유지가 힘들다는 이유로, 1919년에 던컨급 전함 3척(HMS Duncan, HMS Albemarle, HMS Exmouth 1903년 취역), 1920년에는 전함 넬슨(HMS Lord Nelson 1908년 취역) 등 전함 3척, 1921년에는 벨러로펀 급(Bellerophon-class 1909년 취역) 전함 3척을 포함, 5척의 전함을 계속해서 폐기 처분하는 지경에까지 몰리게 되었다(3년 만에 멀쩡한 전함 13척을 갖다버렸다..)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영국 해군이 유지비가 없어 갖다버린 전함 넬슨(위)와 벨러로펀..
- 하지만 당시 세계 1위의 해양강국 영국이 대부분 함령이 채 15년도 되지 않는 멀쩡한 전함마저 유지비가 없어 스크랩 처리하는 급박한 상황에 내몰리고 있는 순간에도 대서양 건너 신흥 강국 미국은 여전히 해군력 확충 계획을 진행 중에 있었고, 이런 상황은 영국의 자존심에 엄청난 스크래치를 주는 것과 동시에 해양력 유지 차원에도 위기의식을 불러오고 있었다.
- 미 해군 장관 죠세프스 다니엘스(Josephus Daniels)의 강력한 주장으로 추진되어 다니엘스 계획(Daniels plan)이라 불리는 이 계획은 1914년,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중립국이던 미국은 독일이 실시한 통상 파괴전을 통해 자국의 무역 통상로가 심각한 위협에 노출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출발했다.
죠세프스 다니엘스와 미국의 대대적 건함 계획..대서양에 전함으로 다리를 놓아주마!
- 1915년, 내각 회의에서는 기존의 해군력 확충 계획을 대폭 발전시켜 세계 1 위 영국 해군에 필적하는 강력한 해군을 보유한다는 방침을 확정, 1924년까지 미 해군은 전함 52척, 장갑 순양함 10척, 정찰 순양함 13척, 1등 순양함 5척, 2등 순양함 3척, 3등 순양함 10척, 구축함 108척, 대형 잠수함 18척, 중형 잠수함 157척을 확보한다는 거대한 건함 계획을 마련했다.
- 하지만 이 계획은 1차 대전이 종결되는 1918년에도 다니엘스 장관에 의해 거의 그대로 유지되어 전함 12척, 항공모함 6척, 순양전함 16척, 경순양함 30척, 구축함 108척, 잠수함 167척을 향후 6년 안에 신규로 보유한다는 것을 골자로 의회에 제출되었고, 예산 규모가 너무 엄청난 지라 정부 내에서도 약간의 수정이 있었지만, 일제히 군비를 축소하던 다른 열강에 비해 규모 자체를 비교하기 힘든 대규모 계획이었던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 이 계획에 의해 일제히 건조에 들어간 주요 함정으로 콜로라도 급(Colorado class) 전함 4척, 사우스 다코타 급(South Dakota class) 전함 6척, 렉싱턴 급(Lexington class) 순양전함 6척 등등이 있었고, 멀쩡히 있는 것도 갖다 버려야했던 영국 해군의 입장에서 이 꼬라지를 손가락 빨며 보고 있자니 복장이 터져 환장할 노릇이었던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건조에 들어간 콜로라도급 전함 웨스트 버지니아(위)와 항모로 개조된 순양전함 렉싱턴..
- 여기에 더해 아시아에서는 러일 전쟁 이후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일본 해군이 이제는 미 해군을 가상 적국으로 규정하고는 소위 88함대라는 과대 망상적 계획까지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영국은 영원한 똘마니라 여기던 이것들까지 법석을 떨자 서서히 위기감마저 느낀다..)
- 당시 일본 해군은 지네 꼴리는 대로 수립한 국방 지침과 1차 세계 대전 중의 호황기에 따른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함령(艦齢) 8년 미만의 신형 전함 8척 및 순양전함 8척을 주력으로 삼고(전함 8 + 순양전함 8..그래서 88함대다..) 보조 전력으로 후루타카(古鷹)급 중순양함과 쿠마(球磨)급, 나가라(長良)급 등 5,500톤급 경순양함, 미네카제(峯風)급 구축함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함대 정비 계획을 마련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이 시기 계획된 88함대 보조 전력의 핵심, 중순양함 후루타카...
- 배수량 33,800톤에 세계 최초로 16인치(41cm) 함포 8문을 장착한 것으로 유명한 나가토(長門)급 전함 2척, 나가토급 전함의 확대 개량형인 카가(加賀..나중에 항모로 변경..)급 전함 2척, 아마기(天城)급 순양전함 4척(2번함 아카기(赤城)는 항모로 변경..)의 확보로 유명한 이 계획은 1920년에 예산안이 의회를 통과하였다.
- 하지만, 당시 일본이라는 국가 전체의 예산이 달랑 15억 엔이었는데 반해 이 계획이 완성될 경우, 함정 건조비는 둘째치고 함대의 연간 유지비용만 6억 엔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어(일본 전체 국가예산의 40%..) 실제 일본 해군이 이 함대를 유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대 함대라는 겉멋을 유지하려면 육군은 새총을, 국민은 시래기를, 국가는 움막에서..-_-;;)
88함대의 근간..카가급 전함 토사(위)와 순양전함 아마기...
- 하지만 미국의 대규모 함대 확장에 더해 자타공인 똘마니 일본까지 파닥거리자 이제 영국은 이들과 맞서 대규모 건함 경쟁이라는 맞짱을 뜬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진 이상, 자신들의 권익을 어떡하든 유지하려면 또 다른 꼼수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다음 편에 계속>
<사진출처>
http://www.efoza.com/post_old-historical-newspapers_890681/
http://trendcutter.xyz/asaikayo/
http://www.bbc.com/news/magazine-29612707
http://fuckyeahwwiipropaganda.tumblr.com/post/24844807354/source
https://historyimages.blogspot.kr/2012/06/russian-japanese-war-1904-5-in-pictures.html
http://libertyherald.co.kr/article/view.php?&ss%5Bfc%5D=1&bbs_id=libertyherald_media&page=11&doc_num=160&PHPSESSID=a2bdc2951fcb3056f9f31359033a0359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3/1755154_19418.html
http://www.shipsnostalgia.com/guides/Bellerophon_Class_Battleship_-_HMS_Bellerophon
http://www.quotationof.com/gallery/josephus-daniels-6.jpg.html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USS_Lexington_(CV-2)_at_anchor_1938.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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