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늙은 여우, 멧돼지를 후계자로 삼다
- 앞서도 말했다시피 일생의 동료이자 라이벌이던 이토가 죽자 야마가타는 몽키킹따위는 그저 병풍으로 여길 만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고 당연히 그의 사병 집단 정도로 여겨지던 일본 육군만큼은 확실히 장악하고 있었다.
- 즉, 이토가 살아있을 무렵엔 사츠마(薩摩)번 출신과 조슈(長州)번 출신들이 번갈아 가며 정부와 군부를 어느 정도 균형 있게 장악했지만, 이토가 죽자 야마가타는 최소 육군만큼은 자신과 자신의 파벌인 조슈번 출신들이 확실히 손아귀 안에 넣을 수 있게 된 것이다.
- 예를 들어 러일 전쟁 당시까지만 해도 만주군 총사령관은 사츠마 출신 오야마 이와오(大山巌)가 맡았지만 총참모장은 조슈 출신 고다마 겐타로(児玉源太郎)가 배치되었고, 1군 사령관은 조슈 출신 쿠로키 타메모토(黒木為楨), 4군 사령관은 사츠마 출신 노즈 미치쓰라(野津道貫), 3군 사령관은 사츠마 출신 노기 마레스케(乃木希典)가 임명되는 등 어느 정도 파벌 간의 균형을 고려하고 있었다(뭐 어차피 달랑 2개 파벌이 돌아가며 지랄하는 거였지만..)
- 하지만 이토 사후 육군에 대한 조슈 번의 독점 구조가 급속도로 이루어졌고, 그 중심에 바로 야마가타 아리토모가 있었으며, 그를 중심으로 노기 마레스케, 고다마 겐타로, 가쓰라 다로(桂太郎) 등이 육군 내부의 높으신 자리들을 골고루 찜하며 확실히 육군을 주무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비단 군대뿐만 아니라 대부분이 조슈 파벌..그러니 대부분이 현대 머시기의 아부지들이 된다..
- 이렇게 야마가타에 의해 육군에서 팽당한 사츠마 출신들은 이후 반발작용으로 해군에 터를 잡게 되고 대대손손 육군과 반목하며 지랄병을 하게 되는데, 사츠마 출신으로 일본 해군 내에 뿌리박은 대표적 인물들로 야마모토 곤노효에(山本権兵衛), 도고 헤이하치로(東郷平八郎), 사이고 쓰구미치(西郷従道) 등등이 있었다.
육군은 글러먹었으니 우린 해군을 잡자~~!!!
- 사족으로 그런 육군의 아버지 야마가타가 1883년 내무대신(내무부 장관)이 된 적이 있었는데 역시나 군바리의 아부지답게 그는 일본 경찰 조직을 근대화한다는 명목으로 완전히 군 조직화시켰다.
- 그 덕분에 일본 경찰은 지방 경찰제를 벗어나 전국을 직접 통괄하게 되었으며 이후 일본 경찰은 완전히 국가의 개가 되었고, 이때 야마가타가 만든 것이 바로 치안경찰법(治安警察法)인데 이후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으로 발전되어 국민들이 어떤 식으로든 정부나 몽키킹을 거론하는 순간 합법적으로 바로 강제해산이 가능하게 되었다(이 법은 일제 시스템의 열렬한 모범생 박장군에 의해 이 땅에서 국가보안법이란 이름으로 재탄생..)
- 하지만 그로 인해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된 일본 경찰 조직은 아이러니하게도 육군을 조슈파가 장악하자 튕겨난 사츠마 출신들의 아성이 되었고 1874년 초대 경시총감(警視総監) 카레자 토시요시(川路利良)를 시작으로 1914년 안라쿠 카레미치(安楽兼道)에 이르기까지 대대로 사츠마 출신들이 경시총감을 해먹자, 지네 아부지가 만든 경찰 조직이 사츠마 파벌에 의해 장악된 것에 대해 화딱질이 난 육군이 이에 대항해 만든 것이 바로 악명높은 헌병이었다(憲兵..우는 애도 뚝 그친다는 바로 그..)
사츠마가 경찰마저 장악했다!(위) 그렇다면 우리는 켄페이타이~~~~ -_-;;;
- 한편, 육군과 정부를 장악한 야마가타는 이제 또 다른 고민에 빠지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그가 살아생전 그렇게 애지중지 키워왔던 군부가 자신이 죽고 나서도 계속 현재의 위세를 누리기를 바랬던 그였기에 자신의 사후 누구를 자신을 대신해 군부를 이끌도록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야마가타는 여성 편력도 대단했지만 결정적으로 아들이 없었다..켕,,)
- 마침내 그는 그가 만들어낸 군부의 수장을 넘어, 군을 그 어떤 방해세력들로부터도 보호할 수 있는 지위 자체를 물려주고 싶었던 한 인물을 찾아냈고 그가 점찍은 인간은 바로, 우리에게도 너무나 유명한 인물,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였다.
그가 간택된다..두둥~~ 생긴 것도 고릴라 비스무리...
- 일본의 근대화 과정과 군부 체제를 확립하기까지 숱한 난관과 경험을 두루 거친 야마가타가 왜 데라우치를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은 것인지에 대해선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나 가장 신빙성이 있는 것은 바로 데라우치의 단순함, 좋게 말하면 오로지 한 가지밖에 모르는 의리파 돌쇠였다는 것이다(원래 독재자들은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기 마련..박장군의 차지철..제네럴 전의 장모씨 등등..)
- 1852년 조슈 번의 하급 무사 가문에서 태어난 데라우치는 막부군과의 보신 전쟁(戊辰戦争)에 참전한 이후, 같은 조슈 출신의 거물, 야마다 아키요시(山田顕義) 추천으로 일본 육군 내에서 고속 출세하기 시작한다.
데라우치 고속 출세의 시작, 보신 전쟁..
- 1877년, 중앙정계에서 밀려난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가 고향인 사쓰마에서 반란을 일으켜 벌어진 세이난 전쟁(西南戦争)에 참전, 다바루자카(田原坂) 전투에서 오른팔이 칼에 베여 부상을 입고 결국 평생 오른팔을 쓰지 못하는 불구가 되었다.
- 부상에도 불구하고 군(軍) 내에서 조슈 파벌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여러 주요 보직을 거친 데라우치는 1887년엔 일본 육군사관학교 교장, 1894년, 청일 전쟁 시기엔 일본 육군 병참의 총책임자, 운수통신 사령관을 역임하였으며 1898년이 되면 육군 교육총감이 되었는데, 이는 육군대신, 참모총장과 함께 일본 육군의 3대 보직 중 하나였다.
- 이런 데라우치 초고속 승진의 배경에는 당연히 야마가타가 있었고, 데라우치는 야마가타가 운영하는 육군 내 조슈 파벌 사조직의 서열 2위인데다 철저히 야마가타에게만 충실한, 궁극의 딱가리였다.
보스와 딱가리...나란이 앉은 대머리 영감 셋 중 좌측이 야마가타, 우측이 데라우치..
- 당시 일본 육군 내 야마가타의 파벌 서열을 보면, 야마가타를 정점으로 가쓰라 다로(桂太郎), 데라우치 마사타케,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 우가키 가즈시게(宇垣一成) 등의 순위였고 애초 야마가타라는 인간 자체가 군 조직과 같은 권위주의적 방식, 즉, 철저한 위계서열주의자였으므로 당연히 서열에 의한 권력의 세습을 기도했다.
- 따라서 그가 물러나면 당연히 차기 대권 주자는 가쓰라 다로(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가스라-태프트 조약의 그 가스라다..)가 될 터였지만, 그 옛날 춥고 배고프던 시절부터 철저히 야마가타의 후원에 의해 커왔던 가스라는 2번에 걸친 총리기간을 거치며 슬슬 간이 배밖에 나오기 시작했고, 마침내 야마가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대립하는 낌새를 보이기 시작했다.
- 이런 낌새를 알아차린 야마가타는 그것을 가만 두고 볼 인간이 아니어서 온갖 압력을 가하고 모략을 꾸몄지만 결론적으로 가스라는 용케 살아남았다.
키워놨더니 게긴 가스라...밀려나긴 했지만 죽진 않았다..
- 어쨌든 가스라의 돌출 행동으로 졸지에 야마가타 그룹의 서열 2위가 된 데라우치는 1900년, 일본 육군 참모차장, 1901년, 육군대신, 1904년 3월 17일에는 다시 육군 교육총감에 임명되어 육군대신과 교육총감을 겸임하였으며 1910년 7월에는 3대 조선통감으로 우리 땅에 발을 내딛었다.
- 데라우치에 대한 평가를 보면 우리에게 있어서도 1910년 7월부터 3대 조선통감으로 부임, 같은 해 8월 29일, 이완용(요새 국정조사도 보니 이름 비슷한 인간이 비슷한 짓을..)같은 국산 쓰레기들과 함께 한일병합(경술국치)을 단행하였다.
- 이후 헌병 통치, 혹은 무단 통치로 일컬어지며 온갖 지랄과 양아치스런 짓을 할 수 있는 건 다 했지만, 웃기는 건 일본 자국 내에서의 평가도 별 다를 바 없다는 게 특이한 점이다(우리와 관련된 일을 다 쓰려면 한도 없으므로 각자 검색을 권합니다..뭐, 이 놈이 남긴 조선총독 취임사 한 구절로도 다 설명될 듯도 하지만.. “조선인은 일본의 통치에 복종하든지 죽든지 하나를 택해야 한다.”..개노무 쉑기..)
- 사견으로, 한일 병합이후 완전히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버린 조선의 초대 총독으로 데라우치가 임명된 것도 철저히 야마가타에 의해 의도된 것이라 보여지는데, 소위 주권선(본토)과 이익선(한반도) 주장에 핏대를 올리던 야마가타가 자신이 방파제로 생각했던 한반도가 마침내 손아귀에 들어오자 처음부터 말뚝을 박자는 심산으로 최측근 심복을 보낸 것도 있었지만, 동시에 비록 식민지지만 데라우치에게 한 국가를 경영해보는 경험을 쌓아 자신의 뒤를 이으라는 의도도 있었던 것이라 생각된다(물론, 그 양아치스런 지랄로 완전 개판을 치지만..)
1910년 7월, 조선 통감으로 부임하는 데라우치...
- 이리하야 데라우치는 야마가타로부터 배운 모든 이론들을 한반도에서 직접 실행해 보는 것이 가능해졌고, 이 양아치는 자신의 통치를 반기지 않거나 반항하는 한국인들을 억압하러 부임 초기부터 무단 통치 및 헌병의 경찰 직무통치를 실시하였음은 물론, 집회취체령(集會取締令..이것도 훗날 박장군이 배워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소위 집시법을 만든다..)을 공포, 집회나 시위, 모든 사회단체를 해산시켰다.
- 1911년에는 민족해방운동 탄압을 목적으로 신민회 회원 105명을 집단으로 대거 체포한 105인 사건을 벌였고, 황국신민화를 위해 친일(親日) 성향의 학교 설립, 토지 조사 사업을 통해 농민들의 토지 상당수를 총독부 사유지로 지정하여 침탈하여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친일파, 매국노들에게 이를 매각하는 등등 그 악행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일본 경찰에 의해 연행되는 105인 사건 관계자..
- 마침내 데라우치는 이런 화려한(?) 이력과 야마가타의 전폭적인 후원에 힘입어 1916년 6월, 일본 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 흔히 현대 일본에서의 데라우치에 대한 평가는 이 한 마디 말로 축약할 수 있는데 바로 “철저히 야마가타와 군대식 규율에 길들여진 과격하고 단순무식한 막가파”라는 것이다.
- 데라우치가 우리 땅에서 저지른 온갖 지랄들은 우리에겐 엄청난 고통이었지만 당시 일본 국민들에게는 강 건너 불구경임은 물론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일이었는데, 이제 막상 그 주범이 자신들의 대가리가 되어 그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자리에 오르자 그에 따른 희생과 고통은 당장 자신들의 몫이 되었다(등신들..)
- 이때 일본의 총리가 된 데라우치는 군대 내 계급은 원수까지 승진하였고 대장대신과 외무대신을 겸임했으니 말 그대로 권력의 정점에 올랐고 특히나 그의 내각은 1차 세계대전의 전시내각 성격이 강했다(일반 내각보다 전시 내각이 국민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더 끼칠 것임은 자명하다..)
- 물론 1차 대전 당시 일본은 영일동맹에 근거한 연합국의 요구에 따른 참전이라는 핑계를 대고는 있었지만, 실제적으로는 철저하게 자신들만의 실익만을 추구했고, 이에 따른 얌생이 짓거리로 영국을 포함한 연합국들로부터 온갖 비난을 받았는데 사실 그들의 입장으로 봐서는 철저히 성공한 처신이라 볼 수 있었다.
- 하지만 데라우치는 자신들만의 쬐끄만 밥그릇 닦기에 만족할 인물이 아니었으니, 그는 1차 대전의 막바지인 1918년 8월 2일, 마침내 시베리아 출병이라는 대뻘짓을 단행하기에 이른다.
러시아 땅을 갉아먹자!! 1918년 8월 2일에 단행된 시베리아 출병..
- 연해주 지역을 점령해 일본의 괴뢰 정부를 세우거나 백군을 지원, 자치 정부 수립 후 괴뢰국으로 만들어 장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73,000명의 대병력을 동원한 이 지랄에서 일본은 결국 게릴라전의 늪에 빠져 거액의 전비는 물론 약 5,000명의 사망자를 내며 완전히 자빠라지고 만다.
- 거기에 더해 쌀값이 폭등하며 전국 각지에서 소요사태가 발생하는데 이에 대해 데라우치는 지극히 그에게 익숙한 방식이자 한국 땅에서 써먹었던 무식한 방식으로 이의 해결을 시도한다.
- 그것은 바로 식민지에서 써먹었던 경찰력의 투입에 의한 무력 진압이었고 당연히 격분한 민중들의 소요는 더욱 격화되기만 하였는데 여기에 데라우치는 한 술 더 떠 군 병력을 동원, 사실상 군중에 대한 발포명령까지 하달하였다.
쌀 폭동과 경찰력에 의한 무력 진압...
- 또한 각종 소요를 조장하거나 부추겼다는 이유로 언론을 통제, 정부에 의한 보도지침을 하달하고, 이것을 거부하는 신문과 잡지들은 닥치고 폐간시켜 마침내 데라우치는 우리 땅에서 벌인 지랄들을 고맙게도 지네 땅에서도 벌인, 일관성 있고 줏대 있는 싸나이(?)가 되었다.
<다음 편에 계속>
'전쟁군사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일본은 어떻게 군국주의 국가가 되었나?<2>(http://blog.daum.net/mybrokenwing) (0) | 2017.12.23 |
|---|---|
| 일본은 어떻게 군국주의 국가가 되었나?<3>(http://blog.daum.net/mybrokenwing) (0) | 2017.12.23 |
| 일본은 어떻게 군국주의 국가가 되었나?<5>(http://blog.daum.net/mybrokenwing) (0) | 2017.12.23 |
| 일본은 어떻게 군국주의 국가가 되었나?<6>(http://blog.daum.net/mybrokenwing) (0) | 2017.12.23 |
| 일본은 어떻게 군국주의 국가가 되었나?<7>(http://blog.daum.net/mybrokenwing) (0) | 2017.1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