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메이지..그는 닭이었다..
- 1889년 2월 11일, 일본 최초, 아니, 아시아 최초의 근대적 헌법이라 불리는 메이지 헌법(明治憲法)이 공표되었다.
- 지네끼린 근대적 헌법이라 하지만 그 사상은 캐캐묵은 왕권신수설에 기반을 둔 이 헌법은, 비록 왕이라는 한 사람에 의한, 내 맘대로 식의 절대주의적 권력 행사방식은 약간 변했지만, 그 뿌리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얼떨결에 몽키킹이 된 메이지...
- 이 헌법 하에서 구성된 정부의 꼬라지는 영국의 의원 내각제 방식을 모방하고 있었지만, 그 실체는 전혀 딴 판이었고, 따라서 구성된 의회는 영국이나 현대의 의원내각제 국가들처럼 내각을 조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 일반적으로 내각제에서 총리는 정부의 공식적인 수장이자 내각을 책임지는 위치이므로 그에 따르는 권한과 책임을 실질적, 공식적으로 가진다.
- 하지만 메이지 헌법 하에서 일본의 내각은 의회를 통해 선출된 다수당의 수장이 총리가 되고 자신의 정책에 부합하는 의원들로 하여금 내각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몽키킹이 임명하는 일종의 신하(臣下) 조직일 뿐이었다.
의회가 있었지만 내각 조직이나 총리 선출 따윈 없다..
- 이는 헌법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는데, 각부 대신은 오로지 몽키킹에게만 책임을 지는 것으로 되어있으므로 내각의 대신과 그 수반인 총리 사이에는 직접적인 통제권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총리가 대장이고 각 장관이 부하가 아니라 전부 똑같은..)
- 즉, 행정부는 내각이라는 조직을 두고 그 중 한 명이 총리가 되었지만, 총리는 각료 임명권 (육, 해군 장관은 특히..)도 없고 군과는 완전 별개의 조직이었으며, 더 골 때리는 것은 내각과 거의 대등한 조직으로, 몽키킹을 보좌하는 자문기관인 추밀원(樞密院)이라는 조직이 따로 존재했다.
- 말이 자문기관이지 추밀원이란 기구는 오늘날 우리로 따지면 청와대 비서조직와 같은 곳으로, 아무 생각 없는 몽키킹을 둘러싼, 늙었지만 그 야심만은 목구멍까지 꽉 찬 침팬지들이 몽키킹을 쥐고 흔드는 실세 조직이었다고 보면 가장 적절한 비유라 할 것이다.
몽키킹을 쥐고 흔드는 실세 조직 추밀원...
- 이 조직이 가진 권한도 막강해서 헌법 조항에 대한 초안과 의의를 시작으로 긴급 칙령, 긴급 재정의 처분, 국제 조약의 체결, 계엄 선포, 교육에 관한 중요 칙령, 행정 각부의 조직에 관한 칙령 등등을 “자문”이란 미명 하에 쥐락펴락 할 수 있었으므로 어떻게 보면 행정부도 둘로 나뉘어져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 더 황당한 것은 1888년 4월 30일, 제 1대 추밀원 원장 자리에 오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시작으로 1922년 2월, 메이지가 죽고 다이쇼(大正)가 몽키킹 자리에 오르고도 무려 11년이나 지날 때까지 33년 동안, 이토 히로부미와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이 둘이 돌아가며 21년이란 시간을 추밀원 원장을 해 먹었다(중간 중간 다른 놈도 있었지만 전부 그 놈이 그 놈..문고리 2인방?)
- 이토 히로부미와 야마가타 아리토모, 이 둘은 이 긴긴 세월 동안 총리 아니면 추밀원 원장을 서로 번갈아 가며 해 처먹었고, 따라서 골방에서 끌려나온 메이지는 막강 실세의 이 둘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입만 벙긋거리고 하라면 하라는 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에 가까웠다.
실세 중에 실세이자 문고리 2인방 중 하나였던 야마가타 아리토모..
- 다시 메이지 헌법 하에서 일본의 정부 조직으로 돌아가 보면, 이 시스템 하에서 행정부의 수반이라는 총리는 그럼 뭐하는 인간인가? 하는 점이 의문시되는데, 쉽게 말하자면 그냥 몽키킹 아래에 있는 신하 중 하나일 뿐이고 그저 그 신하들을 대표하는 것뿐이었으며 특히, 군(軍)과 관련해선 전혀 지배력이나 권한이 없었다.
- 아니 군과 관련해서 전혀 지배력이나 권한이 없었던 것을 넘어 군에 의해 휘둘리는 구조였다고 보는 것이 맞다.
- 메이지 헌법 하에서 일본군을 알아보자면, 일단 군을 통수하는 권한 자체가 몽키킹에게 있었고, 행정부나 추밀원 또한 이들을 전혀 건드리지 못하는 몽키킹의 직속 조직이었다.
- 정상적인 근대적 국가라면 어떤 식으로든 군대는 행정부의 통제를 받게 되어있지만, 일본에서 군은 행정부와 별개로 독립되어 있었고, 군은 행정부와 대등한 지위를 누리도록 되어있었다.
- 이는 메이지 헌법 제 11 조에 규정하고 있는 몽키킹이 육군과 해군를 직접 통수한다는 것에서 비롯되는 삽질로, 그 내용은 육해군의 조직 편제, 임무의 설정, 인적 자원과 직무의 결정, 출병 철군 명령과 전략의 결정, 군사 작전의 입안 및 지휘 등 이 모든 것을 지 혼자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린 오로지 몽키킹 말만 들엇! ..근데 걔가 멍청하면?? -_-ㅋ
- 이런 생각이 잉태된 원인으로는 메이지 유신 직후, 정권을 잡은 촌동네 작당들이(주로 이토와 야마가타로 대표되는 초슈 번(長州藩) 출신들..) 가만 생각해보니 정치인이 군대 통수권마저 가지면 또 다시 막부 정치가 부활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과 정당 정치에서 군이 이리저리 이용될 가능성을 우려해서 그리 했다고 나름 쉴드를 치고있다.
- 하지만, 조금만 그 실체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 음흉한 속셈을 금방 알 수 있는데, 몽키킹만 꽉 잡고 있으면 군대도 자연스럽게 꽉 잡을 수 있고, 그리되면 반대파의 반발 따윈 걱정거리도 아니게 됨은 물론, 국가의 가장 강력한 무력이 자신들 손에 있으니 추후 지네들이 마음대로 해 처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고삐리만 꽉 잡고 있으면 돼....
- 어쨌든 이처럼 2차 대전 종결 시까지 계속 이어진 메이지 헌법 하의 일본은 내각, 중의원, 귀족원, 추밀원, 육군과 해군 등 여러 국가기관들이 서로 횡적인 연결체계가 없이 오로지 막강 권한을 가진 몽키킹을 통한 종적인 연결체계 만을 가지고 있었다.
- 따라서 이 체제 하에서는 가장 중요한 한 사람의 인물이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 일본이라는 국가가 어떤 방향으로 굴러가느냐 하는 것이 결정되어지게 되는 것인데, 몽키킹이라는 이 단 1명의 인간은 과연 어떤 인간이었을까?
- 메이지 헌법 하에서 몽키킹은 당연히 헌법 위의 존재였고, 헌법이라는 것 자체가 자신이 만들어서 우매한 국민들에게 내려준 것으로 포장되어 있었으므로, 헌법은 그 내용만으로 보면 그저 그를 위한 도구이자 수단에 불과하였다(오죽하면 지네 몽키 식구끼리의 규범인 황실전범이 헌법보다 상위법이었다..)
현인신이라는 너라는 인간은 도대체 어떤 인간인가?
- 하지만 문제는 수백 년을 뒷방에 짱박혀 있다가 끌려나온 고삐리 메이지에게 유신을 단행하여 세상을 발칵 뒤집어 버린 막강한 권력 실세들은 너무나 어마무시한 존재들이었다.
- 이는 조선시대 반정으로 졸지에 왕위에 오른 왕들이 재위 내내 반정 공신들의 눈치를 살핀 것이나 세도 정치 하에서 꼼짝 못하던 왕들을 생각해 보면 간단히 설명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된다.
- 따라서 메이지는 자신에게 주어진 엄청난 법적 권한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주위에 포진한 막강 실권자들의 눈치만을 살피는 수밖에 없었고, 결국 한다는 짓이 어떻게 하든지 직접적인 통치권 행사에는 나서지 않으려는데 주력했다.
갑자기 찾아와서 대장 해! 그러면 어쩌란 거냐...
- 거기에 더해, 그는 직접적으로 통치행위를 하는 순간부터, 그 결과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무서웠고, 갑자기 온 국민들로부터 살아있는 현인신(現人神)이라 불리워지게 되자, 스스로 책임을 져야 되는 실패란 곧, 신의 추락으로 이어지고 결국 천황제의 몰락을 불러오는 것이었으므로 이는 가뜩이나 쫄보였던 그에게 더 큰 문제이기도 하였다.
- 그럼 어떡해야 하느냐?
- 해답은 간단했는데 국가의 거의 모든 권한이 자신에게 있지만 자신은 신이므로 직접적으로 통치는 하지 않겠다는 전통을 스리슬쩍 만들었다(하찮은 인간계는 니네끼리 해라..뭐 그런 거여?)
- 그렇다면 문제는 지가 통치하지 않으면 그를 대행하여 누가 통치하느냐가 남게 되는데, 그거야 당연히 메이지 헌법체제를 만들고 각 기관과 조직들을 장악하였으며 막강한 힘을 행사하던 유신 세력들이었다.
촌동네 양아치들이 졸지에 국가의 최고 대가리가 되었다..
- 당시 메이지가 얼마나 쫄보였는지를 잘 알려주는 일화가 하나 있는데, 바로 1894년 8월에 벌어지는 청일전쟁 개전 직전의 상황이었다.
- 10년 전, 청의 간섭으로 갑신정변의 실패라는 치욕을 당했던 일본은 10년 만에 설욕을 갚는 것과 동시에 호시탐탐 노리던 한반도를 실질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에 결국 조선에 주둔 중인 청나라 군과 교전을 벌여 전쟁에 돌입한다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 특히, 일본 육군의 최대 실력자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끊임없는 군비 증강을 주장했고 이 군비 확장의 전환점은 바로 1882년, 조선에서 발생한 임오군란(壬午軍亂)이었다.
- 당시 조선의 구식군대 병사들은 신식군대인 별기군(別技軍) 병영으로 몰려가 일본인 교관 호리모토 레이조(掘本禮造)를 살해하고, 민중과 합세, 일본 공사관을 포위, 불을 지르고 일본인 순사 등 13명의 일본인을 살해했다.
1882년 임오군란 당시의 훈련원 군대..
- 이 직후 야마가타는 이 사건을 빌미로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고 청에 대항하려면 일단 담배세를 인상하여 군비 증강에 보태고(어디랑 비슷..담배세 올려 순시리가..흑~~) 이후 청나라을 가상 적국으로 하는 해군 증강과 이를 위한 대규모 증세를 적극 주장했고, 이를 받아들인(강요당한?) 일본 정부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군비 증강 계획을 결정, 육군은 3년 뒤엔 전체 병력을 2배로 확장하고 해군은 48척의 신규 함정을 건조하는 계획에 착수했다.
- 군비 확장의 결과, 일본 육군의 병력은 1876년, 39,315명에서 청일 전쟁 발발 직전인 1893년에는 73,963명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고, 해군은 병력 13,234명, 함정은 1876년, 14,300톤에서 1893년에는 50,861톤으로 급증하였으며,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군사비는 1876년의 17.4%(육군 11.6%, 해군 5.8%)에서 1893년에 이르면 27.0%(육군 17.4%, 해군 9.6%)로 증가했다.
- 이윽고 급속하게 증강된 군사력을 바탕으로 청과 한판 떠볼만하다는 강경파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마침내 이토 히로부미 내각은 개전을 결정하기에 이른다.
청일 전쟁 직전 일본은 군사력을 대폭 확장했다..사진은 이 시기 건조된 방호순양함 마츠시마..
- 당시 비록 그 권위는 억지로 떠받들여진 것에 불과하였지만 어쨌든 헌법상 유일한 군의 통수권자이자 개전 승인자였던 메이지는 청일 전쟁의 개전에 대해 반대의 의견을 가지고 있었고, 이토 히로부미를 몇 번이나 불러 전쟁하지 말자고 투덜거렸다.
- 왜 메이지는 청일 전쟁에 반대했을까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몇 가지 설들이 있지만, 역시 가장 유력한 설은 “승산이 없다.”라는 쫄보적인 설이고(세계 평화를 위해서..라는 어처구니 없는 일본 우익의 주장도 있다..세계 평화..푸헐~~) 이는 당시 열강들에게 숱하게 털리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그 저력을 알 수 없는 청에게 아무리 일본이 메이지 유신으로 노력했다고는 해도 이길 수 없다고 그는 생각했었다(거기다 패전한다면 이후 자신에게 따르는 책임은 열라 겁난다...)
- 하지만 군 통수권자인 메이지가 반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벌어졌고, 그 이유야 당연히 이토와 야마가타 등 유신 세력들이 실권을 꽉 잡고 있었으므로 현실적으로 메이지에게는 전혀 결정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 이런 일은 이후 벌어지는 러일전쟁의 개전 시기에도 거의 비슷하게 벌어지는데, 이때도 개전에 반대하던 메이지는 이토를 불러 “이 전쟁에서 만약에 지면 나는 어떻게 되는가?”라고 물었고 당시 이토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설마 죽이기야 하겠습니까.. 프랑스 나폴레옹 3세의 예도 있으니...(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작살나 영국으로 망명..)”
기세당당했던 나폴레옹 3세는 전쟁에 깨져 비스마르크의 포로가 된다..
- 어쨌든 이 쫄보는 정치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관심이 없는 건지 찌그러진 건지..) 여자와 유흥은 열라 좋아라 했으며 이를 철저히 이용한 이토 히로부미는 사적인 자리에서 메이지를 장난감에 비유한 적도 있을 정도였다.
- 이런 머구리 체제 하에서도 메이지 시절에는 유신을 단행한 계층들이 각 기관과 조직들을 확실하게 장악, 강한 힘을 행사하였고 서로간의 조정으로 인해 일본이 굴러가는 데에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으나, 시간이 흘러 이들이 사라져가면서 이전과 같은 강력한 정치력을 발휘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어려워지고, 결국 중간 조정자가 없어지자 서서히 일본의 국가 조직사이에는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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