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국가론의 건축 미학/변상출.대구大
< 목 차 >
1. 들어가는 말: 톺아보기
2. 유럽 근대의 ‘국가’에 대한 꿈과 현실
3. ‘폴리스’에 대한 플라톤의 꿈: 아름다운 나라(kallipolis)
4. ‘아름다운 폴리스’의 기초: 협업
5. ‘아름다운 폴리스’의 골조: 균형과 조화
6. ‘아름다운 폴리스’의 목적: ‘행복’을 위하여
7. 플라톤의 국가를 나서며: ‘행복’을 찾아서
1. 들어가는 말: 톺아보기
플라톤의 사상적 스펙트럼은 넓고 깊다. 그의 대표작 국가(Politeia) 하나만 해도 행복론⋅정의론⋅국가론⋅교육론⋅인식론⋅체제론⋅예술론 등속을 아우 를 정도로 다채롭다. 다채로운 만큼 접근하기가 까다롭다. 그러나 매력적이다. 매력적이지 않다면 지난 2,400여 년 동안 유럽의 철학적 전통이 “플라톤에 대한 일련의 각주”1)로 채워졌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무릇 매력에는 칭송이나 질투와 반감이 따르게 마련이다.
근대 국가의 발생 근거로 삼는 사회계약론의 대표주자의 한 사람인 장 자크 루소(J.-J. Rousseau) 같은 이는 그의 유명한 책 에밀에서 플라톤의 국가를 두고 여태껏 인류가 쓴 최고의 교육학이라고 찬사를 보낸 바 있다.2)
반면, 플라톤의 ‘국가론’을 염 두에 두고 무용하다고 할뿐더러 사회계약의 주권자(군주정치)를 복안에 둔 근대 사회계약론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토머스 홉스(Th. Hobbes)는 정치와 관련된 고대 그리스의 서적들을 두고 “교사들의 지도”가 필요한 대단히 위험한 책들로 꼽기도 한다.3)
홉스의 전통을 이어 플라톤의 국가를 아주 위험한 책으로 평가한 20세기 대표 적인 지성을 꼽는다면 칼 포퍼(K. R. Popper)일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그의 유명 한 책 열린사회와 그 적들은 이데올로기적 비판의 접근성이 강해 보인다. 1, 2권으로 구성된 이 책의 1권 전체가 플라톤의 국가론을 전체주의(totalitarianism) 로 암흑화하고 있다는 인상이 짙기 때문이다.
이 책이 유일한 대안의 길로써 “열 린사회로의 길”4)을 주창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내용은 가파른 ‘닫힌 길’로 비 친다.
이런 농후한 이데올로기적 성격은 2차 세계대전의 험한 경험과 동서 냉전의 서막을 알리는 1946년 3월 풀턴(Fulton) 연설에서 했던 처칠(W. Churchill)의 이 른바 철의 장막(Iron Curtain)과 그 뒤에 불어닥친 매카시선풍(McCarthyism) 등을 감안하면 이해 못 할 바가 없지만,5) 프린스턴 대학의 카우프만(W. A. Kaufmann) 교수가 했던 비판, 즉 전체주의에 대한 포퍼의 적개심이 열린사회 와 그 적들을 쓰게 만든 핵심 동기였지만 그 방법은 불행히도 “전체주의적인 학자들”의 그것을 닮았다는 식의 따가운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6)
1) 화이트헤드(A. Whitehead), 오영환 역, 과정과 실재: 유기체적 세계관의 구성, 1991, 110쪽.
2) J.-J. 루소, 김중현 역, 에밀, 2003, 64쪽 참조.
3) Th. 홉스, 최공웅/ 최진원 역, 리바이어던, 2014, 319쪽, 356쪽 참조.
4) K. R. 포퍼, 이한구 역, 열린사회와 그 적들 I, 1983, 271쪽.
5)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은 먼저 영국에서 1945년 1, 2권으로 출간되었고, 미국에서는 1950 년 프린스턴 대학에서 한 권으로 묶여 출간되었다. 책의 목차를 보면 포퍼의 “적들”이 대개 어떤 부류인지 명확하다. 플라톤과 마르크스, 아리스토텔레스와 헤겔이 그 주범들로 취급된다.
상당히 즉물적이다.
6) W. A. 카우프만, 신재성 역, 「헤겔 신화와 그 방법」, 헤겔의 신화와 전설(Jon Stewart ed.), 2018, 142쪽.
철의 장막이 쳐진 1950년대 이후의 세계가 그렇듯,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 들을 필두로 해서 플라톤의 국가론을 보는 시선들이 대개 이분법적이다.
“열린 사회”와 “닫힌 사회”, 자율과 통제, 개방과 폐쇄, 민주와 반민주, 개인주의와 전 체주의, 자유와 지배, 민주주의와 “수호자주의(guardianship)” 등속이 플라톤의 국가를 다루는 논객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대립항이다.7)
미국 정치학계 권 위자의 한 사람인 예일 대학교 교수였던 로버트 달(Robert A. Dahl)은 다소 열 린 듯한 다원 민주주의(pluralist democracy)의 자세를 취하지만, 민주주의와 그 비판자들에서 플라톤 국가의 수호자 개념을 “위계제적 지배를 정당화하는 표준적 주장”으로 확정하고는 “수호자”를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전위대”에까지 연결하기도 한다.8)
7) 2,000년 이후에도 플라톤 연구의 외국 동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논제가 민주주의(혹은 반민주주 의)와 관련된 것들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몇몇 사례만 봐도 금세 확인된다. Monoson, S. S., Plato’s Democratic Entanglement, 2000. Samaras, T., Plato on Democracy, 2002. Schofield, M., Plato: Political Philosophy, 2006. Sanatas, G., Plato’s criticism of democracy in Republic, 2007.
8) R. A. 달, 민주주의와 그 비판자들, 조기제 역, 문학과지성사 2004, 113쪽 이하 참조. 플라톤 국가론에 대한 과도한 이데올로기적 접근의 국내 사례의 경우 북한의 주체사상과 연결하는 이도 있다. 권지민, 「플라톤의 국가론과 북한의 주체사상 비교·분석: 북한을 통해 바라본 현실정치에 서의 플라톤의 이상국가」, 사회과학 담론과 정책 11권 1호, 2018 참조.
이 글의 첫머리에서 말했듯이 플라톤 국가의 건축물을 구성하고 있는 내용 은 무지갯빛 이상으로 다양하지만, 간판(제목) 폴리테이아(Politeia)의 빛이 너 무 강해서인지 대개의 논객이 정치적 색안경을 끼고 입장하는 추세였다.
그것은 국내 연구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멀리는 김우성⋅조상태(1987)의 「포퍼의 플라톤 정치철학 비판에 대한 응답: 플라톤 정의론과 관련하여」, 가까이는 조찬 래(2006)의 「플라톤의 혼합정치에 관한 고찰」, 손병석(2015)의 플라톤과 민주 주의, 소병철(2016)의 「플라톤의 이상국가론과 민주주의 비판의 현대적 함의」, 권지민(2018)의 「플라톤의 국가론과 북한의 주체사상 비교⋅분석」, 임정아 (2020)의 「플라톤 국가의 여성수호자의 민주주의적 함의」 등이 그렇다.
이런 정치적 색안경의 민주적 프리즘을 통해 당대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를 이론적 으로 좀 더 튼실하고 아름답게 보강할 수 있다면 정치적 색안경을 통해 플라톤 국가론을 이해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수의 논문이 플라톤 국가 론에는 반민주적, 혹은 전체주의적 요소가 강하다고 하면서도 대개 ‘그럼에도 불 구하고’라는 제한을 통해 여성주의 혹은 교육론적 입장 혹은 민주주의 비판의 현 대적 함의 등을 애써 읽어내려 한다.
말하자면 플라톤 국가 구조물의 부분을 통해 전체를 판단하는 경향이 강한 셈이다.
코끼리의 부분만을 갖고서는 코끼리 전체를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헤겔은 “진리는 전체다”9)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명제는 플라톤 국가의 사상적 구조물에도 여전히 유효하게 적용된다.
초점을 이항대립에 맞추지 않기 위해 우선 정치적 색안경을 벗을 필요가 있다.
루소의 경우 플라톤의 국가는 “정치에 관한 책”이 아니라고 아예 예단하기까지 한다.10)
물론 교육론에 방점이 가 있는 루소의 말도 과장된 면이 없지 않다.
왜냐하면 교육론도 정치론과 마찬 가지로 플라톤 국가 전체 구조물의 일부일 뿐이기 때문이다.
플라톤 국가론의 진면목을 짐작하게 할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는, 현대 정치 선거에서 결과를 예견 할 때 출구조사를 활용하듯, 국가의 입구와 출구에서 얻을 수 있을 법하다.
플라톤 국가(Politeia) 담론의 시작과 끝이 행복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플 라톤의 국가 혹은 정체(政體)는 “제목만으로 책을 판단하는 사람들이 생각 하듯 정치에 관한 저작이 전혀 아니다”11)는 루소의 지적도 일부 타당한 면이 없 지 않다.
9) Hegel, G. W. F., Phänomenologie des Geistes, 1970, p.24.
10) J.-J. 루소, 앞의 책, 64쪽. 물론 루소도 국가를 교육론의 틀에서 읽는 단면이 없지 않다. 그런 데 그의 중요 작품인 에밀의 주인공 에밀을 교육하는 화자 ‘나’의 교육 방법은 플라톤의 국가 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마치 수호자를 양육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플라톤의 국가에서 수호자 교육은 정신과 신체의 조화를 목표로 한다. 루소가 귀족 출신의 어린 고아 에밀의 교육 장소 로 시골을 선택한 것도 신체단련과 무관하지 않으며, “당당하지만 거만하지 않고”, “자유롭지만 건방지지 않은” 자립적인 주체를 목표로 한 교육 목표는 수호자의 그것과 낯설지 않다. 에밀의 교육 (소설) 끝자락에서 지혜를 뜻하는 이름의 소피(Sophie) 소녀를 배치한 것은 “지혜를 사랑하는 사 람”을 통치자가 되게 한다는 플라톤 국가론의 소망을 충족시키기에 부족해 보이지 않는다. 결혼의 상대를 선택할 때 얼굴은 “가장 먼저 눈에 띄지만 가장 나중에 고려해야 하는 것”(루소, 같은 책, 390쪽)이라는 에밀 선생의 조언은 아름다움의 순서를 진(지혜)·선(품행)·미(외모) 순위에 둔 플라 톤의 미학 관점이 반영된 셈이기 때문이다.
11) J.-J. 루소, 앞의 책, 같은 곳.
이 글의 목표는 플라톤 국가의 특정 부분에서 의미를 찾기보다 그의 국가론을 떠받치고 있는 기초와 골격은 무엇이고, 그 “궁극적 목표(telos)”는 어디에 있으며, 그는 어떤 나라(Polis)를 설계하려고 꿈꿨던가, 즉 플라톤의 국가건축 미학을 재구성해 보자는 것에 있다.
그러면 여태 만리장성이 놓인 듯 이항대립의 논객 구도를 일정 정도 허물고12), 플라톤의 국가를 제대로 조망할 수 있는 토 대를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견해 본다.
12) “플라톤에 대한 평가는 한없는 찬사와 줄기찬 비난이 현재까지 공존하고 있다”면서 플라톤에 대한 평가의 역사를 찬사와 비난의 대립 구도로 본 김우성·조경태의 논문(「포퍼의 플라톤 정치철학 비판 에 대한 응답: 플라톤의 정의론과 관련하여」, 1988, 128쪽 이하 참조)이 나온 뒤 한 세대를 훌쩍 뛰어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달라진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2. 유럽 근대의 ‘국가’에 대한 꿈과 현실
국가에 대한 꿈은 아득한 2,400여 년 전 고대 그리스 사람만 꾼 것이 아니다.
서구 근대의 길목에서도 국가에 대한 꿈을 꾼 이들이 목격된다.
어떤 이는 “튼튼 한 국가”의 건설을 목표에 두고 꿈을 꿨던가 하면, 또 어떤 이는 그보다 약 2세 기 뒤 국가의 해체를 염두에 두고 “자유로운 세계”를 꿈꿨다.
전자는 홉스이고, 후자는 마르크스(K. Marx)이다.
홉스는 그의 유명한 책, 리바이어던에서 아래와 같은 국가를 건축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홉스가 구상하는 국가(commonwealth)의 건축 미학의 기초는 플 라톤과 같은 ‘아름다운 나라’가 아니라 마키아벨리(N. Machiavelli)도 아연실색 했을 법한
“모든 높은 자를 내려다보며 모든 교만한 자들에게 군림하는”13) 절대 강자가 통치하는 강인한 군주정의 튼튼하고 영속적인 국가이다.
13) Th. 홉스, 앞의 책, 311쪽.
코먼웰스의 해체는 그 불완전한 설립에서 발생한다. (……) 그러나 인간이 스 스로 소유하고 있다고 말하는 그 이성(理性)을 사용한다면 그들의 코먼웰스는 적어도 내적인 질병에 의한 멸망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 그러므로 코먼웰스가 외부의 폭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부의 무질서에 의해 해체되기에 이를 때는 그 결함은 소재로서의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코먼웰 스의 제작자 및 질서 부여자로서의 인간에게 있다. 인간들은 무질서하게 서로 약 탈하고 살인하는 데 지쳐, 하나의 튼튼하고 영속적인 건축물을 지어 함께 살 것 을 간절히 원해도, 그와 동시에 그들의 행위를 규제할 적당한 법을 만드는 기술이 부족하고, 또한 지금 그들에게 솟아 있는 옹이들을 깎아내는 고통을 참아낼 겸손과 인내가 부족하여, 매우 유능한 건축가가 도와주지 않고서는 부실한 건물 밖엔 짓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건물은 그들 자신의 시대를 넘어서지 못하고, 그들 후손의 머리 위로 틀림없이 붕괴할 것이다.14)
여기서 말하는 “매우 유능한 건축가”가 홉스 자신임을 이 긴 인용문 다음에 이어지는 문장들을 계속 읽어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이 건축가는 “튼튼하고 영속 적인 건축물”, 곧 ‘자신의 시대를 넘어서’ 항구적으로 지속할 나라를 꿈꿨다.
이 꿈의 실현 가능성의 첫 번째 우선적 조건이 주권자(통치자) 왕에게 절대권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때 인간의 이성이 플라톤의 경우 ‘아름다운 나라’의 건설을 위한 욕망과 의지의 조절자로서15) 인간에게 “행복한 삶을 영위하게”16) 하는 필 요조건인 것에 비해, 홉스에게 이성은 국가의 “불완전한 설립”의 1차 요건인 “절 대권력의 결여”를 막을 수 있는 “도구적 이성”을 의미하며 그것은 통치와 지배의 수단이다.
여기서는 통치/ 복종 식의 이분법적 도식만 작동한다.
즉, 권력의 안 정이 우선적 문제이고 플라톤 국가론의 궁극목표인 행복 개념은 안중에 없다.
게 다가 플라톤이 국가에서 아름다운 나라를 만드는 데 필수 교양으로 이해했던 “시가(musikē)와 체육(gymnastikē)”17)은 홉스에게 불필요할뿐더러 무용하기 까지 하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에게 통치하는 법과 복종하게 하는 법”18)만 배 우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리바이어던의 2권에 해당하는 「코먼웰스 에 대하여」 마지막 끝에서 이렇게 자신의 희망을 품는다.
“나의 이 저술이 언젠 가 어느 주권자의 손에 들어가, (……) 그가 전권을 행사하여 이것이 공적으로 교육될 수 있도록 보호한다면, 이 사색의 진리는 실제적으로 쓸모가 있는 것으로 바뀌리라.”19)
14) 같은 책, 313쪽. 이탤릭체 강조는 필자에 의한 것임.
15) 플라톤, 천병희 역, 파이드로스·메논, 2013, 58쪽(246a) 이하 참조.
16) M. 호르크하이머(Horkheimer), 박구용 역, 도구적 이성 비판, 2006, 18쪽.
17) 플라톤, 박종현 역주, 국가·정체(Politeia), 2011, 242쪽(411e). 이하에서 본 텍스트를 인용할 때는 본문 속 괄호에 쪽과 스테파누스 표기를 병행함(ex. 242, 411e). 18) Th. 홉스, 같은 책, 356쪽.
19) 같은 곳. 칼 포퍼는 플라톤의 교육 방식이 국가 통제의 “문교부”의 기구라고 비판하는데(K 포퍼, 앞의 책, 185쪽 참조), 리바이어던을 두고 어느 주권자가 “전권을 행사하여 (…) 공적으로 교육 될 수 있도록 보호”해야 한다는 홉스의 희망에 대해선 한 마디도 없다. 멀고 먼 2,400여 년 전의 소위 -포퍼 자신의 판단에서- 플라톤의 ‘교육검열’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을 대면서 상 대적으로 상당히 가까운 300여 년 전의 독서 ‘지침’에 대해서는 눈을 슬쩍 감는 것은 디케(Dike)의 눈앞에선 아무래도 불공정한 태도로 보인다.홉스는 고대 그리스의 정치 및 역사 관련 서적이 군주 정치를 위태롭게 하므로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어투를 리바이어던 곳곳(이를테면, 217, 218, 318, 319, 356, 632쪽 등)에서 이렇듯 자주 내비친다.
그러나 홉스의 꿈과는 달리 그의 희망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게다가 그간의 역사 발전의 과정(군주정에서 시민 정부로의 진행)을 볼 때 그 꿈은 더 요원하거 나 영원히 불가능할 듯싶다.
역사는 강력한 군주제를 전제로 한 16세기 마키아벨 리의 군주론과 17세기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비웃기나 하듯 그간 정치적으로 는 명예혁명과 프랑스혁명을 통해, 경제적으로는 산업혁명을 통해, 지식 분야에 서는 과학혁명을 통해 군주정을 까마득한 과거의 유물로 만들어놓았다.
익히 알다시피, 정치혁명과 과학혁명은 산업 질서를 귀족정과 군주정 시대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꾸었다.
자본주의 질서가 인간의 물질과 정신 세계를 온통 지배하는 예전에 경험하지 못한 세계가 출현한 것이다.
그 세계는 국가의 해체를 꿈꿨던 19세기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리면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모든 털구멍에서 피와 오물을”20) 쏟아내는 욕망덩어리처럼 비친다.
이 시대는 홉스가 희망했던 강력한 군주들(예컨대 영국의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 여왕, 그 리고 ‘짐이 국가’라는 말로 유명한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 등)이 등장해 개인의 몸조차 자유롭게 처분할 수 없도록 “거지면허증(Beggar’s Licence)”21) 까지 발급했던 때를 한참 지난 때다.
홉스의 꿈을 실었던 리바이어던호는 서너 번에 걸친 역사의 거센 혁명의 푸른 파도에 묻히고 말았다.
대신 출현한 것은 산업혁명의 원동력, 증기기관차였고 그 기관사는 부르주아 였다.
그 힘과 속도는 전대미문의 현상이었다.
검은 석탄 연기를 내뿜으며 대지 를 가르는 이 기관차는 땅의 기반을 잃어버린 농민들을 도시로 실어날라 도시 빈 민노동자들(마르크스의 표현대로 하면 룸펜프롤레타리아트)로 탈바꿈시켰다.22)
20) Marx, K., Capital: A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1967, p.760.
21) ibid. p.734. 헨리 8세 때 시행된 “거지면허증” 발급의 정치적 목적은 자유(혹은 방종)를 좋아하는 도시의 부랑자들을 공장으로 강제동원하는 것에 있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K. 마르크스의 같은 책 p.735 이하를 참조.
22) 15세기와 19세기, 두 번에 걸친 영국의 대대적인 ‘토지 울타리 치기’ 프로젝트, 즉 엔클로저 (Enclosure) 운동은 농촌 농민을 도시노동자로 만드는 통로가 되기도 했다.
상품의 생산 욕망에 불이 붙어 숨 가쁘게 달리는 자본주의의 전차는 전통적 공동 체를 해체함과 동시에 물신숭배(fetishism)와 소외된 노동, 국가 권력 등과 같은 새로운 문제들을 야기했다.
자본주의 증기기관차는 유럽의 창공을 검게 물들여놓았다.
근대 국가와 자본주의의 출현 이후 유럽에 드리워진 암울한 분위기를 다음 인 용문이 함축적으로 잘 요약해놓은 듯하다.
무한히 깊은 우주 공간에는 신의 반짝이는 사유이자 축복받은 도구이기도 한 수많은 별이 운행하고 있다. 창조주가 그 별들을 작동시키고 있는 것이다.이 모든 별은 행복하다. 신이 세계를 행복하게 하려 하기 때문이다.이 별들 가운데 이 운명을 공유하지 않는 별이 딱 하나 있다. 이 별에는 인간만이 서 있을 따름 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 신이 이 별을 망각했던가? 아니면 신은 이 별에 본래의 힘을 벗어나 스스로 축복을 쟁취할 자유를 주었던가? 그것을 우리는 알 수 없다.23)
유럽 근대 국가의 발전 양상이 에곤 프리델과 같은 문화 보수주의 사학자의 눈에도 심히 우려되었던 모양이다.
그 우려의 깊이는 답을 찾는 그의 태도에서 이미 읽힌다.
심오한 존재론적 철학적 물음을 제기하는 듯하다가는 결론은 불가 지론(Agnosticism)으로 끝을 맺었다: “알 수 없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문제의 원인을 국가 자체에서 찾는다.
고대 그리스인, 특 히 플라톤의 수제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국가 자체는 본성상 존재할 수밖에 없고 좋음(agathon)을 구현하는 선의의 공동체인 반면에24), 마르크스에게 국가 자체 는 아예 선(善)이 아니라 악(惡)의 터전이다.
말하자면 국가는 그 기반을 사적 소유에 두고 있어 그 밑돌에 이미 억압과 지배를 감춰 놨다는 것이다.
마르크스 와 공동작업을 한 엥겔스(F. Engels)에 따르면 국가란 사적(私的) 소유를 강화 하기 위해 원시공동체를 해체하고, 사적 소유의 지배관계를 영속화하기 위한 지 배계급의 도구일 뿐이다.25)
플라톤의 국가에서 아름다운 폴리스의 기초가 협 업인 데 비해 마르크스나 엥겔스에게 국가는 갈등의 원천이다.
여기서 국가는 “계급 간 대립을 억제할 필요로부터 발생하였기 때문에, 동시에 그것은 이 계급 들의 충돌 그 자체 가운데서 발생하였기 때문에, 그것은 보통 가장 유력한(경제 적으로 지배하는) 계급의 국가이다.”26)
23) Friedell, E., Kulturgeschichte der Neuzeit, 1960, p.3.
24) 아리스토텔레스, 천병희 역, 정치학, 2014, 15-20쪽 참조.
25) F. 엥겔스, 김대웅 역, 가족의 기원, 1985, 121쪽 이하 참조.
그런데 마르크스가 보기에 지배계급의 국가는 물질만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까지 지배한다.
여기서 국가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좋음과 선의의 구 현체이기는커녕 고대 그리스의 문화가 그렇듯 플라톤도 국가에서 대단히 소중 히 여겼던 몸과 혼을 통제하는 지배의 구현체로서 자유와는 정반대 편에 서 있는 모양을 취한다.
어떤 시대에서나 지배계급의 사상이 지배적인 사상이다.다시 말해서 사회의 지배적인 물질적 세력인 지배계급이 동시에 그 사회의 지배적인 정신적 세력이라 는 말이다.물질적인 생산의 수단을 통제하는 계급은 그 결과 정신적인 생산의 수단도 통제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정신적인 생산수단을 가지지 못한 계급의 사 상은 대체로 그것에 종속된다.27)
위 인용문의 세계는 몸과 혼을 지배하는 플라톤의 동굴 장면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해방의 해법은 서로 다르다.
플라톤은 “혼의 전환(psychēs periagōgē)” 을 말하는데, 마르크스는 국가와 계급의 소멸을 꿈꾼다.
그 목표는 ‘자유로운 세 상’의 개국이다.
익히 알 듯, 이 세계는 공산주의 사회를 의미할 텐데, 그것은 플라톤의 이데아와 같은 관념 속 세계가 아니라 험준한 현실의 운동에서 찾는다.
“우리에게 공산주의는 조성되어야 할 하나의 상태(Zustand), 혹은 현실이 따라야 할 하나의 이상(Ideal)이 아니다. 우리는 오늘의 상태를 지양하는 현실적인 운동을 공산주의라고 일컫는다.”28)
앞서 보았듯 홉스는 튼튼한 국가를 꿈꿨지만, 마르크스는 자유로운 세상을 꿈 꾼다.
그것은
“내가 마음먹은 대로 오늘은 이것을, 내일은 저것을, 곧 아침에는 사냥을, 오후에는 낚시를, 저녁에는 목축을, 밤에는 비판을 할 수 있는”29)
26) 같은 책, 193쪽.
27) K. 마르크스/ F. 엥겔스, 김대웅 역, 독일 이데올로기 I, 1989, 91-92쪽. 이탤릭체 강조는 원 저자에 의한 것임.
28) 같은 책, 78쪽. 이탤릭체 강조는 원저자.
29) K. 마르크스/ F. 엥겔스, 앞의 책, 75쪽.
세상 이다.
신자유주의 물결을 경험한 오늘 우리의 시선으로 보면, 마르크스의 이 자 유로운 세상은 황당한 유토피아로 비친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자유로운 세상에 대한 그 꿈은 1917년 붉게 타오른 러시아 혁명의 찬란한 불꽃 속에서 현실로 승화하는 듯했다. 철옹성을 방불케 하던 차르 체제의 튼튼한 절대왕정에서 사회계약론의 또 다른 형제 존 로크(J. Locke)의 ‘시민 정부’, 즉 부르주아 정부를 경유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성(性)의 완전한 평등과 계급해방 및 인간해방에 무상교육과 무상 의료 등속이 실현 가능한 세상 이 곧 도래할 것 같았다.
그래서 마르크스가 꿈꾼 ‘자유로운 세상’의 담지자 (Träger) 같은 러시아 10월 혁명의 불꽃은 폭력의 시원인 “원시축적(primitive accumulation)”에서 비롯된 자본 권력과 지배 욕망의 “낡은 사회의 모반”30)을 일거에 불태우고, 서구 문명에서 우리를 구해줄 “미래의 전망”31) 같이 보였다.
30) K. 마르크스, 이수혼 역, 「독일 노동자당 강령에 대한 평주」, 2007, 375쪽.
31) Lukács, G., Die Theorie des Romans. Ein geschichtsphilosophischer Versuch über die Formen der großen Epik, 1971, p.13.
물론 이 전망은 널리 알고 있듯, 유토피아(Utopia)의 말뜻 그대로 ‘어디에도 없 는 곳(Nowhere)’이 아니라 러시아 ‘현실사회주의’로 꽃피웠다.
하지만 그 생명력은 짧았다.
1989년 베를린장벽의 붕괴와 함께 현실사회주의 의 꽃도 고희(古稀)의 나이를 겨우 넘기고는 역사의 잔해 속에 묻혔던 것이다.
이로써 한때 동구를 깨우고 서구를 깜짝 놀라게 했던 국가의 소멸과 자유로운 세상에 대한 마르크스의 사상(마르크스주의)도 이제는 꿈같은 소리로만 들린 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이 국가에서 꿈꿨던 그 ‘아름다운 나라’는 어떤가?
3. ‘폴리스’에 대한 플라톤의 꿈: 아름다운 나라(kallipolis)
근대의 홉스는 튼튼한 군주국가를, 마르크스는 국가의 소멸과 자유로운 세상 을 꿈꿨다.
고대의 플라톤은 아름다운 나라를 상상하고 설계했다.
앞의 두 몽상가 는 튼튼한 논문 형식의 논리로 자신의 꿈들을 펼쳤다.
그러나 그 꿈의 실현을 역사 는 허용하지 않았다.
반면 플라톤은 무거운 논문의 형식보다 가벼운 좌담 형식32) 으로 아름다운 나라, 즉 “시민 전체가 최대한으로 행복해지도록 하는”(258, 420a) 나라에 대한 꿈을 소크라테스 선생의 목소리를 빌려 드러냈다.
32)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집에 사람들을 초대해서 좌담 나누길 좋아했다. 우리말 향연(饗宴), 혹은 심포지엄으로 번역되며, 함께(sym-) (포도주를) 마시다(poison)는 뜻을 지닌 심포지온(symposion) 문화도 이 좌담 형식과 무관해 보이지는 않는다. 플라톤이나 크세노폰(Xenophon)의 향연도 집주 인(크세노폰에서는 칼리아스, 플라톤에서는 아가톤)이 제공하는 주연(酒宴)을 받으면서 특정 주제 를 놓고 초대받은 논객들(6∼9명 정도)이 얘기를 나누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플라톤의 국가도 유사한 형식이다. 한 부유한 상인이 소크라테스 선생을 포함하여 6명 정도를 초대해서 집안에서 대화를 나누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주연이 제공되지 않은 점에서 심포지온과는 약간 다른 형식인 셈이다.
그런데 겨 우 “인류 역사의 유아기”33)에 해당하는 고대 그리스에서 꿨던 그 꿈의 몇몇은 고색창연한 세파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실현됐다.
이를테면 여성의 참정권(여 성 수호자: 322, 451d)과 노동의 분업(“자질에 따라”34):149, 370c) 그리고 지 혜로운 자의 통치(“지혜를 사랑하는 이ho philosophos”: 365, 473c) 등의 꿈은 미국에서의 여성 참정권 인정(20세기 초반),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국 부론(1776년)의 중요 키워드 노동 분업, 왕권세습제의 폐지(19세기)와 집단지성의 발현(선거)에 의한 지도자 선출(20세기) 등속으로 구현된 것을 보면 그것 은 한갓 유토피아가 아니라 이미 ‘오래된 미래’였음을 확인하게 된다.
아름다운 나라에 대한 고대 플라톤의 꿈을 굳이 고대라는 시간과 아테네라는 공간에 국한하지 않는다면, 그의 꿈은 20세기 이후 글로벌 차원에서 실현된 혹은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
유물론자로서 사물(사회)에 대한 통찰력이 탁월했던 마 르크스가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만 해왔으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35)이라는 꿈을 꾸고 글로벌 차원에서의 그 실현을 위해 “만 국의 프롤레타리아트여 단결하라!”36)를 세계에 호소했으나 그 좌절의 현장을 21세기 현재 우리는 이렇게 목도한다.
“마르크스주의가 몇몇 학술기관들의 복도 를 초췌한 모습으로 배회하고 있다.”37)
마르크스처럼 세계에 거창하게 호소하지 도 않았고, 형식도 ‘사랑방 이야기’처럼 거실에서 나누는 좌담으로, 그것도 세상 사람들이 “가능한 것이라고 믿지도 않을”(319, 450c), 그래서 “무모하다 싶을 정도의 이상주의자”38)라는 식으로 빈축을 사 오기도 한 관념론자 플라톤의 꿈은 그러나 소리 소문도 없이 역사 속에서 현실이 된 점을 고려하면 관념론의 힘이 유물론 그 못지않게 강함을 확인하게 된다.
사실 “의식이 삶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의식을 규정한다”39)고 피력했던 유물론자 마르크스도 관념의 힘을 믿은 면이 없지 않다.
33) Marx, K., Einleitung zu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1985, p.642.
34) “자질에 따라”는 번역본에서는 “성향에 따라”로 번역되어 있지만, 그리스 원어 “kata physin”은 어 느 쪽이든 가능하므로 특정 일에 대한 적합도 문제에서는 “성향”보다 “자질”이 어울릴 듯해 변경함.
35) K. 마르크스/ F. 엥겔스, 독일 이데올로기 I, 앞의 책, 41쪽.
36) K. 마르크스/ F. 엥겔스, 이진우 역, 공산당 선언, 2015, 60쪽.
37) L. Kołakowski, Main Currents of Marxism, 2005, v-vi쪽.
38) S. 블랙번, 윤희기 역, 국가론 이펙트, 2014, 36쪽.
39) K. 마르크스/ F. 엥겔스, 독일 이데올로기 I, 같은 책, 66쪽.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아무리 서툰 인간 건축가라 도 가장 훌륭한 꿀벌보다 나은 것은 “인간은 실제로 집을 짓기 전에 먼저 자신의 머릿속에서 그것을 짓기”40)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좌담 형식으로 가볍게 시작된 플라톤의 국가가 우리 시대 사람들 에게 왜 그토록 무겁게 받아들여졌고, 또 국가에 내포된 다양한 담론 가운데 특정 담론(이를테면 정체론과 교육론)에 무게를 뒀을까.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 서는 플라톤 국가론의 구성 방식에 대한 선이해가 필요해 보인다.
앞서 언뜻 살폈듯이, 플라톤 국가에 대한 21세기 연구의 경향도 이전과 다 름없이 대개 정치적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특히 논박의 표적은 국가 8권 에서 플라톤이 폴리스의 정치체제를 위계화하면서 민주주의를 아주 낮은 단계로 둔 점을 향해 있다.41)
이와 관련해서 비판의 화살은 엘리트주의, 열린 사회의 적, 전체주의, 급기야는 파시즘, 혹은 공산당의 전위대 등속의 흔적을 플라톤의 국가론에 새겨 놓았다.42)
그런데 비판의 흔적을 보면 다소 과장되어 있거나 21세기의 눈높이로 고대 플 라톤의 국가를 계측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게다가 플라톤 국가론이 겨냥한 과녁의 핵심(흑점)을 제대로 조준하지 못했다는 느낌마저 든다.
칸트(I. Kant)가 말했던 전제가 잘못되면 결과도 우스꽝스러울 수 있다는 교훈이 플라톤 국가론에도 적용될 법하다.43)
40) Marx, K., Capital: A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ibid. p.178. 강조는 필자에 의한 것임.
41) 플라톤의 정체(政體) 위계화는 5단계로 되어 있다. 1) 최선자 정체(aristokratia), 2) 명예 지상 정체(lakōnikē), 3) 과두 정체(oligarchia), 4) 민주 정체(dēmokratia), 5) 참주 정체(tyrannis).
42) 이의 대표적인 인물에는 오늘의 플라톤(Plato To-day)의 저자 R. 크로스만을 위시하여 칼 R. 포퍼와 로버트 달, 그리고 사이먼 블랙번(S. Blackburn) 등이 포함된다. 특히 크로스만은 플라톤 의 철학을 두고 “역사가 보여줄 수 있는 자유 이념들에 대해 가장 야만적인 공격”(Crossman, R. H. S., Plato To-day, 1937, p.132)이라면서 “‘진보적’ 사상의 모든 공리를 부정하고 이 공리에 가장 친숙한 평등·자유·자치 정부와 같은 모든 가치에 대해 도전한다”(p.132)고 포문을 열고는, 플라톤이 “스탈린과 무솔리니를 승인하고 싶어 의회민주주의를 비난한다”(p.134)는 식의 비난도 서슴지 않는다.
43) 칸트는 옛 사람의 관습을 빌려 전제와 오류의 상관관계에 대해 쉽게 설명한 적이 있다. “한 사람이 숫양의 젖을 짜면, 다른 사람은 그 밑에 체를 받치는 우스꽝스러운 광경을 연출”한다는 것이다.(I. 칸트, 백종현 역, 순수이성비판 1, 2016, 279쪽)
플라톤의 국가에서 내비치는 민주주의에 대한 과소평가를 확대해서 보기 전에 먼저 플라톤 국가론의 핵심이 무엇인지 간파하는 전제가 필요하다.
왜냐면 이 전제에서 출발할 때 올바른 결과를 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플라톤 국가의 핵심 전제가 무엇인지 간파하기는 간단치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전체 10권으로 구성된 이 텍스트는 권마다 중요한 담론들이 연출되기 때문이다.44)
어느 담론이 메인 플롯인지 구분이 쉽지 않다.
그런데 플라톤 국 가에 한발 깊이 들여놓고 약간만 세밀히 관찰하면 그 형식이 연극적 구조를 띤 다는 사실도 간파하게 된다.
우선 이야기의 화법이 대화체로 되어 있다.
게다가 전체 구조가 아리스토텔레스가 정리한 비극(悲劇) 구조의 법칙45)을 따르고 있 는 듯하다.
장소⋅시간⋅플롯의 통일 법칙을 국가에 적용해보면, 장소는 부유 한 상인 케팔로스(Kephalos)의 집 거실이며,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국가 의 담론이 진행된 실제 시간은 어느 오후 한 시점에서 “저녁 무렵”(55, 328a) 이전까지 좌담이 끝나 (하루 내라는) ‘시간의 통일’도 준수하게 지켜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메인 플롯은 행복이다.46)
44) 권별로 이어지는 담론을 요약해보면 이렇게 정리된다. 1권: 행복론 -> 정의론, 2권: 정의론 -> 국 가론, 3권: 교육론, 4권: 교육론, 5권: 수호자 자격, 6권: 인식론, 7권: 인식론, 8권: 정체론(국 가), 9권: 정체론(개인), 10권: 예술론 -> 행복론. 1권의 시작 담론(행복)에서 10권의 종결 담론 (행복)을 이으면 순환구조를 갖는 셈이다. 국가의 알파와 오메가가 행복임이 확인되는 것이다.
45)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이 설명하는 비극의 구성 법칙을 요약하면, ‘3통일 법칙’(시간·장소·플롯의 통일)으로 정리할 수 있는데, 그것은 연극이 하루(24시간) 내에 한 공간에서 메인 플롯을 중심으로 연출되는 규칙을 말한다.(아리스토텔레스, 천병희 역, 시학, 1985, 65쪽 이하 참조.)
46)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입문하기 스무 살 이전 청소년기에는 꿈이 비극작가였다. 스무 살 되던 해 비극 경연대회에 나가기 위해 연극 대본을 갖고 가다가 디오니소스 극장 앞에서 소크라테스 의 연설을 듣고 작가의 길을 접고 소크라테스의 문하생이 되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디오게네 스 라에르티오스(Diogenes Läertios), 전양범 역, 그리스철학열전, 2008, 179쪽 참조. 플라톤 의 초기, 중기의 글들이 대개 대화체로 이루어진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는 케팔로스 집에 들어서서 제일 먼 저 나눈 첫 화두가 –이를테면 노령의 케팔로스가 행복과 불행의 조건은 생물학적 “나이”에 있지 않고 “생활 방식(tropos)”에 있다는 주장처럼(57, 329b)- 행복 에 관한 것이고, 국가의 마지막 부분에서도 올바르게 산 사람은 “이승에서도 그리고 우리가 앞서 말한 그 천 년 동안의 여정에서도 우리는 잘 지내게 될”(667, 621d) 것이라는 행복론으로 마무리되는 점에서 확인된다.
플라톤 국 가론의 핵심이 행복론임을 확실히 증언해주는 대목은 다양한 담론들(행복⋅정 의⋅국가⋅교육⋅인식 등)을 거쳐 그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체제(정체)론이 본격 거론되는 8권에서 소크라테스와 글라우콘 사이에서 이뤄지는 대화 장면이 다.
유비추리를 통해 개인과 국가의 닮음에 대한 소크라테스 선생의 앞선 설명에 대해 동의하면서 글라우콘은 이렇게 말한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나머지 정체들로서 언급할 가치가 있고 그 결함들을 살펴 볼 가치가 있는 것들에 네 종류가 있고, 그것들을 닮은 사람들로 그렇게 있다고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은 이들 모두를 살펴보고서 가장 훌륭한 사람과 가장 나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합의를 봄으로써, 가장 훌륭한 사람은 가장 행복하지만 가장 나쁜 사람은 가장 비참한지, 아니면 그와는 다른지를 우리가 고찰하기 위해서라고 하셨습니다.(508, 544a: 강조는 필자)
말하자면 유비추리의 목표는 행복이라는 것이다.
이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국 가 담론의 전환 과정을 잠시 살펴보자.
인생 경험이 많고 방패 장사로 재물도 많이 모은 노령의 케팔로스 “어르신께서”(59, 329e) 국가 1권 첫머리에서 행 복을 주제로 좌담의 문을 열지만, 1권 후반부와 2권 전반부에서 논의는 정의론 (올바름)으로 넘어간다.
전환의 출발점은 올바른 사람이 행복한가, 아니면 올바 르지 못한 사람이 행복한가의 문제의식이다.
그리고 2권 뒤편에서 정의론에서 국가론으로 전환된 것은 개인의 단위는 너무 작아 개개인에게서는 올바름이 잘 보이지 않으므로 국가라는 확대경에 ‘올바름’을 올려놓고 보면 잘 보일 것이고, 이를 마지막에 축소하면 개인의 올바름이 잘 보일 것이라는 유비추리의 논리에 따른 것이다.
이로부터 자연스럽게 국가론으로 담론이 전환되고, 국가의 발생과 함께 국가를 지킬 수호자 선발과 그에 적합한 맞춤형 교육의 필요성에서 교육론 이 제기되는 것도 국가 담론의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보인다.
이 교육의 정점은 인식론(변증론)이다.
그것은 “잡다하고 변화무쌍한” 목전의 현상에 속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똑같은 방식으로 한결같은 상태로”(385, 484b) 있 으면서 목전의 현상을 현상되게 하는 것, 즉 진짜를 보는 인식의 단계이다.
좌담 의 좌장 소크라테스의 표현에 의하면 그것은 “눈 아닌 ‘지성에 의한 이해 (앎)’”(479, 529b)의 단계이다.
7권의 그 유명한 ‘동굴의 비유’는 가상과 이미 지에 속아서는,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목전의 이익에 매달려서는 아름다 운 나라의 건축이 어렵다는 점을 환기하는 것이고, 꿈의 ‘아름다운 나라’의 건축 을 위해서는 각별한 식별의 인식력이 요구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47)
47) 소크라테스가 용기와 절제, 실천력과 창의력 그리고 분별력과 연설 등을 중요한 생활의 미덕으로 삼지만 그중 첫 번째로 꼽는 것은 분별력이다. 그 까닭은 “분별력 없이 그런 능력들을 갖는다면 더 거리낌 없이 불의를 저지를 능력만 커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크세노폰, 천병희 역, 소크라 테스 회상록, 2018, 212쪽.)
복잡해 보이는 플라톤 국가론의 건축 미학을 약간만 주의해서 살피면, 인식과 참여의 변증법적 결합이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임을 알 수 있다.
이 결합의 프리즘 을 통할 때 1권 행복론에서 제기된 최선자(最善者)의 정치 참여 문제에서 문제의 핵심이 어디에 있고, 그리고 왜 인식론(epistēmē) 부분을 국가 8, 9권의 정체 론 직전에 배치한 것인지 짐작이 가능해진다.
1권에서 정말 올바르고 훌륭한 사 람은 진리 탐구에만 관심이 있고, “좀스러움”과 “인간적인(세속적인) 삶”(389, 486a)과 연관된 현실정치를 외면하고 싶어 하지만, “스스로 통치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을 경우, 그에 대한 최대의 벌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한테 통치를 당하는 것”(101, 347c)이어서 정치 참여는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아름다운 나라의 건축을 위해 정치 참여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면 이제 중요한 것은 참여 자체가 아니라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인식 능력의 함양이다.
올바른 인식 없는 정치 참여는 민주주의를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549, 563e)로 착각할 수도 있고, 사람이 “늑대로 바뀔 수”(553, 566a) 있는 참주 정치를 낳을 수 있 는 위험천만의 일로 비친다.48)
48) 이 위험천만의 일을 인류는 20세기 파시즘의 출현에서 경험했다는 점에서 플라톤의 인식론과 정치 론의 변증법적 결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요컨대 올바른 인식 없는 참여 위에 세워진 폴리 스는 사상누각에 불과하고, 여기서는 행복이 공중분해 될 여지가 높다.
이상의 관점에서 보면 플라톤 국가론의 건축 미학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목표 로 하며, 어디에 그 기초를 두고 있고 그 뼈대가 무엇인지 손에 잡힘 직하다.
명목론(Nominalism)의 각도에서는 국가라는 제목처럼 국가와 체제에 관한 이 야기로 들리겠지만, 실재론(Realism)의 입지에서 보면 행복론이 국가의 중앙 실내등으로 반짝이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4. ‘아름다운 폴리스’의 기초: 협업
플라톤 국가론의 건축 미학의 기초는 협업이다.
근대 사회계약론(홉스와 로크 및 루소)의 원본을 보는 듯한 정의의 기원과 법의 발생에 대한 논지가 국가 2권 첫머리에 나온다. 아래 인용문은 홉스의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을 바로 연상 시킨다.
결국 사람들이 서로들 올바르지 못한 짓을 저지르기도 하고 당하기도 하며, 그 양쪽 다를 겪어 보게 되었을 때, 한쪽은 피하되 다른 한쪽을 취하기가 불가능 한 사람들로서는 서로 간에 올바르지 못한 짓을 저지르거나 당하지 않도록 약정 을 하는 것이 이익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 바로 이것이 연유가 되어, 사람들은 자신들의 법률과 약정(계약)을 제정하기 시작했으며, 이 법에 의 한 지시를 합법적이며 올바르다고 한다는 겁니다.(126∼7, 358d∼359a)
물론 위 인용문은 근대 사회계약론에서처럼 자연 상태든 문명 상태든 생존의 경쟁에 따른 불가피성에서 국가의 발생을 드러내는 논의는 아니다.
정의(定義) 와 부정의(不定義)가 개인에게 이익이 되는가 손해가 되는가의 미세한 문제를 풀기 위해 거시적 폴리스 단위로 확장해서 살필 목적에서 국가를 거론하게 되는 점에 대해선 앞장에서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어쨌든 국가를 구성하는 인자와 그 하는 역할에서 근대 사회계약론자 들과는 플라톤의 관점이 처음부터 전혀 다르다.
근대 사회계약론의 출발선은 경 쟁이다.
이는 다윈의 적자생존론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측면이 있다.
경쟁은 홉 스식으로 인간이 선천적으로 악해서든, 로크식으로 시민 정부로의 진입에서든, 루소식으로 자연을 벗어난 문명 상태에서든 핵으로 작동한다.
반면에 플라톤의 국가론은 이들과 정반대로 경쟁이 아닌 협업에 기초한다.49)
“내가 생각하기로는 나라가 생기는 것은 우리 각자가 자족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것이 필요하게 되기 때문일세.”(146, 369b)
즉, 각자의 필요를 서로 나누는 협업의 정신이 기본인 셈이다.50)
49) 정의론의 관점에서 플라톤의 “국가 전체의 기획”을 “상호 채무 관계”의 이행으로 이해하는 이종환 교수의 논문(「폴리스 안에서의 상호 채무 관계에 기반을 둔 정의: 플라톤 국가 1, 2권의 논의 를 근거로」, 2018, 9쪽 이하 참조)은 국가를 둘러싼 기존의 정의론과는 구별되는 섬세함이 돋보 인다. 다만 플라톤 국가의 이상이 과연 법리적인 의무라는 인상을 떨쳐내기 어려운 채권‐채무의 상호 이행 관계로 볼 것인가, 아니면 마틴(Thomas R. Martin)이 말하는 “시민들 사이의 자발적인 협동”(토머스 R 마틴, 이종인 역, 고대 그리스의 역사, 2004, 90쪽)에 기초한 것인가의 문제에 천착해 보는 것은 중요해 보이지만 추후의 과제로 남긴다.
50) 인간을 애초 협업하는 사회적 집단으로 이해한 근대의 계몽사상가로는 프랑스의 볼테르(Voltaire) 가 눈에 띈다. 그는 인간을 선천적으로 악한 집단으로 보지 않는 점에서 홉스와 근본적으로 다르며, 인간이 문명사회로 진입함으로써 타락하게 되었다는 루소와는 정반대로 서로의 필요와 도움을 위해 사회를 조직했다고 생각하는 점에서(볼테르, 사이에 역, 불온한 철학사전, 2015, 356쪽 이하 참조.) 플라톤의 사상을 닮았다.
이 필요를 채우는 최소한의 폴리스 구성 인자는 3인이다.
먹거리를 제공하는 농부, 잠자고 쉴 수 있는 집을 짓는 건축가, 의복을 생산하는 직조공이 다.
즉 농부가 식량을, 건축가가 집을, 직조공이 의복을 제공하는 협업의 공동체가 플라톤이 구상하는 아름다운 나라의 모양이다.
근대 국민국가 이후 경쟁을 제 2의 자연으로 받아들여 온 세계로서는 이해가 쉽지 않은 구상이지만 경쟁의 피로를 느끼는 시대에서는 반성의 차원에서 돌아볼 일이기는 하다.
어쨌든 플라톤은 3인자 (因子) 형태로 구성된 폴리스를 “최소한도의 나라(hē anankaiotatē polis)”(147, 369d)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최소한의 나라로서는 위생적으로 “건강한 나라 (hygiēs polis)”가 되긴 어려워 “호사스런 나라(tryphōsa polis)”(155, 372e)를 지향할 수밖에 없다.
이로써 폴리스와 폴리스가 만나는 접경이 생기고 폴리스를 지킬 수호자가 필요하게 된다.
수호자는 사나운 부분을 잘 다스릴 수 있게 하는 ‘시가’ 교육을 통해 최선의 수호자로 성장한다.
이렇듯 아름다운 폴리스는 각자 “자질에 따라” 재능을 내놓고 “각각의 부분에 알맞은 색”(259, 420d)을 칠할 때 훌륭하게 건축된다고 본다.
협업이 기본 틀이다.
그러나 “성향에 따른” 것이 아니라 경쟁이나 탐욕을 좇아 다른 일을 할 때, 이를테면 “법률과 나라의 수호자 들이 실제로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면서도 그런 듯이 여겨지기만 하는 사람들일 때, 이들이 온 나라를 송두리째 파멸시킬”(260, 421a)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 래서 아름다운 나라의 설계자는
“각각의 집단으로 하여 각각의 자질이 제공하는 대로 행복에 관여하도록 (……) 검토해야만”(260, 421c) 한다고 한다.
주지하 다시피, 플라톤의 직능별 질서에 따르면 생산자⋅수호자⋅통치자로 분류된다.
플라톤의 국가론에서 서구 자유주의 비평가들에게 가장 많은 비판의 화살을 맞는 부분이 바로 이 직능에 의한 역할 분담론이다.
리처드 크로스만은 “최선자 의 독재(dictatorship of the best)”51), 로버트 달은 “위계제적 지배의 정당 화”52), 블랙번은 “반자유주의, 전체주의”53) 등으로 재단한다.
이들의 내용 모 두를 요약하듯 포퍼는 플라톤의 국가론을 두고 이렇게 단정한다.
“그것은 엄격한 계급구분과 계급지배의 유지에 의해 모든 변화를 억제하는 것이다.”54)
51) Crossman, R. H. S., ibid. p.131.
52) R. 달, 앞의 책, 113쪽.
53) S. 블랙번, 앞의 책, 36쪽.
54) K. 포퍼, 앞의 책, 132쪽.
그러나 직능에 의한 역할 분담이 비록 형식주의적 위계 구조를 지니긴 하지만 그렇다고 플라톤의 역할 분담론 구상을 일거에 청산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근대 국민국가에서 삼권분립이라는 권력분점을 통해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려 했던 몽 테스키외(Ch.‐L. Montesquieu)가 법의 정신(De l’esprit des lois)에서
“또 한 자신이 속한 나라나 정부, 각자가 맡고 있는 직위 속에서 행복을 보다 잘 느끼 게 할 수 있다면, 나는 스스로를 (……)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 다”55)
는 말의 힘을 빌리면 굳이 청산주의적 자유주의 비평가들을 비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들의 청산주의적 태도는 플라톤 국가론의 위계 구조를 대개 신 분 질서 내지는 지배/피지배, 통치/억압 등속의 이분법적 구도로 바라보는 오해 에서 비롯된 면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국가론에서 수호자와 통치자는 흔히 오해하듯, 군림하거나 지배하는 토포스를 갖지 않는다.
명목은 통치자, 수호자이지만 실재는
“정작 나라는 이들의 것이면서도, 이들이 나라에서 좋은 일로 혜택을 입는 게 아무것도 없 고”(257, 419a)
“파수꾼 노릇만 하는 사람들에 불과해”(420a)
피하고 싶은 자 리로 여겨진다.
그도 그럴 것이 수호자(혹은 통치자)
“누구든 어떤 사유 자산도 가져서는 아니”(252, 416d)
되고, 공동 식사에 공동생활을 해야 하며,
“오직 이 들에게 있어서만이 금은을 다루거나 만지는 것이 허용되지 않으며 (……) 황금이 나 은으로 만든 잔으로 술을 마셔도 아니”(417a)
될 만큼 무소유, 무권력을 지향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오해를 가장 많이 받는 플라톤의 직능별 신분 질서도 플라톤의 ‘아름다운 나 라’의 설계에서는 오히려 혁명적이라고까지 부를 만하다.
국가 좌담의 좌장 소크라테스 선생이
“많은 논쟁거리를 불러일으킬”(318, 450b)까 염려에서 입 밖에 내길 심히 꺼리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직능별 위계질서는 고착된 것이 아니 고 유동적이라는 것이 그것이다.56)
55) Ch,-L. 몽테스키외, 고봉만 역, 법의 정신, 2006, 17쪽.
56) 플라톤의 국가에서 가장 많이 오해받는 부분이 민주 정체에 관한 부분인데, ‘무소유’나 ‘무권력’ 의 관점에서 보면 플라톤의 민주 정체 비판은 반민주주의보다 오히려 이상적 민주주의를 목표로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인다. “이상적인 폴리스”에서는 “역할의 차이는 있지만 서열의 차이 는 없다”(이종환, 앞의 논문, 29쪽)는 이종환 교수의 지적은 정당해 보인다.
통치자들에게 신은 무엇보다도 첫째로 지시하기를, (……) 만약에 그들의 자 손이 청동 성분이나 쇠 성분이 혼합된 상태로 태어나면, 어떤 식으로든 결코 동 정하지 말고, 그 성향에 적합한 지위를 주어서 장인들이나 농부들 사이로 밀어 넣을 것이로되, 반대로 이들 중에서 누군가가 황금이나 은의 성분이 혼합된 상태 로 태어난다면, 그런 사람을 예우하여 수호의 지위나 보조의 지위로 상승시킬 것 입니다.(249, 415b∼c)
왕후장상(王侯將相)의 피가 따로 없다는 선언과 같다.
혈통과 가문을 중시하 는 2,400년 전의 시대에 나온 선언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다.
500여 년 전 조선 시대라도 3족을 멸하고도 가히 남을 반역인 ‘미래 진보선언’이라고 부를 만하지 않은가.
이런데도 플라톤의 국가론을 두고 “모든 정치적 변화를 억제”하 는 자연주의자로 처분하는 것은57) 역사적 파시즘의 트라우마에 의한 균형감각의 상실 때문이 아닐까.
57) K. 포퍼, 같은 책, 128쪽 참조.
5. ‘아름다운 폴리스’의 골조: 균형과 조화
고대 그리스의 미감은 균형과 조화에 있다.58) 균형과 조화를 맞추지 못하면 붕괴나 파멸의 운명을 겪게 되는 고대 그리스의 모범적 사례가 이카로스(Icarus) 의 추락과 아킬레우스(Achilles)의 죽음 신화일 것이다.59)
균형과 조화를 떠받치는 기둥이 플라톤 국가론의 건축 미학에서는 절제로 표 현된다.
대화편 파이드로스에서 그렇듯 균형과 조화는 욕망과 의지의 조절자 이성에 의해 구성된다.
소크라테스는 국가를 말(馬)에 비유하고 자신은 그 등에 붙어 말을 각성시키는 “등에”에 비유한 바 있는데60), 등에가 제 역할을 못 하면 국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듯이, 이성이 잠들면
“짐승 같고 사나운 부분은 잔뜩 마시고서는 발딱 일어나 잠을 물리치고 나가서는 제 기질을 충족시키려”(565, 571c)
꾀한다는 것이다.
58) U. 에코, 이현경 역, 미의 역사, 2014, 45쪽 참조.
59) 아킬레우스의 죽음은 몸과 혼의 조화, 육체와 정신의 부조화가 빚어낸 운명이다. 스틱스강에 몸을 담가 몸의 상처로는 거의 죽지 않을 운명을 가졌지만 몸은 소중한 혼을 보호하는 집이므로 혼이 떠난 주검도 소중히 예우해야 한다는 전통 교양을 -플라톤 국가론에서 수호자라면 응당 받아야 할 교양필수 과목인- 시가(詩歌: musikē) 교육을 통해 받지 않아 트로이 전쟁에서 맞은 아킬레우스 의 죽음은 ‘몸짱’과 ‘혼짱’의 조화를 이루지 못한 예고된 운명이다. 플라톤은 “죽은 자의 몸뚱이” 를 함부로 하는 것은 “개들과 차이가”(357, 469e) 없다고 지적한다. 시대의 담지자인 작가 호메로 스도 고대 그리스의 전통문화를 어지럽히는 무법자 아킬레우스의 행태에 대해 모른 체하긴 어려웠 을 것이다.
60) 플라톤, 박종현 역주, 에우티프론·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파이돈, 2005, 152쪽 참조.
“최소한도의 나라”가 확장되어 “호사스러운 나라 (tryphōsa polis)”가 될 때 이성의 중추신경 같은 절제가 압박을 받게 되면 “돼 지들의 나라”(155, 372d)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고, 최선자의 정체가 명예 지 상 정체나 과두 정체로 무너지는 것도 명예와 재물 욕망의 조절에 실패한 결과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래서 아름다운 나라의 설계자 플라톤은 절제를 우주로까 지 확장한다.
즉, 절제가 무너지면 우주가 무너진다는 것이다. “절제란 어쩌면 일종의 코스모스요, 어떤 쾌락과 욕망의 억제일 걸세.”(280, 430e) 물론 쾌락과 욕망이 억제의 대상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올바름의 자장 안에 서 허용되는 대상이긴 하다.
파이드로스 대화편에 따르면, 욕망은 의지의 쌍 두마차의 한쪽 말이다.
국가라는 마차를 끌고 갈 때 욕망이 잠들고 의지의 말만 움직이면, 원점의 순환 반복으로 제자리걸음일 수가 있다.
욕망과 의지가 균형을 맞출 때 국가라는 마차는 진보할 수 있음을 알리는 교훈이다.
욕망의 가용 적정 도는 절제된 삶의 필요 이상을 넘지 않는 범위로 그 모범을 소크라테스의 목소리 를 빌려 표현한다.
친애하는 판 신과 이곳의 모든 신들이시여, 내 내면이 아름다워지게 해주시 고, 내 외적인 재산은 내 내면의 상태와 일치하게 하소서. 나는 지혜로운 사람이 부자라고 믿고 싶으며, 황금은 절도 있는 사람이 지니거나 가져갈 수 있을 만큼 만 갖고 싶나이다.61)
61) 플라톤, 파이드로스·메논, 앞의 책, 132쪽(279b∼c).
플라톤은 ‘아름다운 나라’, 즉 “최선자의 정체”를 일차적으로 무너뜨리게 하 는 것은 부(富)의 불균형이라고 본다.
이 불균형은 하나의 폴리스에 강남/강북 식의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하게 하는 분열을 촉발한다는 것이다.
분열을 조장하는 양극화는 미적이지 않다고 보는 것이 플라톤의 국가론 건축 미학의 기본골격에 해당하기도 한다.
이런 나라는 필연적으로 하나 아닌 두 나라, 즉 가난한 사람들의 나라와 부유 한 사람들의 나라일 것이니, 같은 곳에 거주하면서 언제나 서로에 대해서 음모를 꾸미는 사람들의 나라일 걸세.(525, 551d)
이런 나라에서는 플라톤 국가론 건축 미학의 궁극목적인
“시민 전체가 최대한 으로 행복해지는”(258, 420b)
아름다운 폴리스가 아니라
“언제나 서로에 대해 음모를 꾸미는”
불편부당한 폴리스가 출현해서
“욕구적인 부분”(욕망)이
“헤아 리는 부분”(이성)과
“격정적인 부분”(용기)
을 거꾸로 깔고 앉는(529, 553d) 물구나무선 나라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플라톤의 조국 아테네가 내분에 휩싸여 과두정과 민주정이 아귀다툼하는 꼴을 연상시킨다.
이쯤이면 플라톤이 왜 절제를 코스모스 차원으로 격상시켰는지 알 법하다.
플라톤은 이런 물구나무선 꼴의 폴리스를 방지하기 위해 두 가지 방식을 구상 한다.
하나는 개인 차원이고 다른 하나는 폴리스 규모 차원이다.
직능인 개개인 은 각각의 성향에 따른 생산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지나친 결핍도 과도한 충족도 피해야 한다고 본다.
역시 균형과 조화의 원리가 작동한다.
요컨대 물질 이 과도하면 자신의 직능(ergon)을 게을리할 것이고, 결핍되면 부가적인 일을 해야 하므로 자신의 자질을 집중적으로 발휘할 수 없는 불균형의 상태가 온다는 것이다.(261, 421d 이하)
이 불균형을 방지할 폴리스는 작은 나라다.
“나라가 커지더라도 하나로 머물러 있게 되는 한도까지, 즉 그 정도까지 키우되, 그 이상 은 키우지 않는 걸세.”62)(264, 423b)
이런 욕심 없는 폴리스에 대한 꿈이 텔레 파시를 타고 18세기 계몽사상가 볼테르에게도 전달되었을까, 볼테르조차 이렇게 꿈을 꾼다.
“자기 조국이 지금보다 더 커지지도 작아지지도 않기를, 더 부유해지 지도 가난해지지도 않기를 바라는 사람이 진정 우주의 시민이라 하겠다.”63)
62) 아리스토텔레스의 분석에 따르면, 플라톤이 이상적인 규모의 폴리스로 생각한 것은 국가에서는 수호자가 1,000명 정도 되는 규모이고 플라톤의 후기 저작에 해당하는 법률에서는 5,000명 정 도의 규모다.(아리스토텔레스, 천병희 역, 정치학, 2014, 83쪽 참조.)
63) 볼테르, 불온한 철학사전, 앞의 책, 452쪽.
6. ‘아름다운 폴리스’의 목적: ‘행복’을 위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정보다 진리가 먼저라는 논리를 앞세워64) 스승 플라톤의 절제 개념을 두고 추상적이고 포괄적이라고 냉혹하게 비판한다.65)
64) 아리스토텔레스, 천병희 역, 니코마코스 윤리학, 2017, 31쪽 참조.
65)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앞의 책, 84쪽 이하 참조.
한마디로 이 상주의적이라는 것이다.
이때 이후로 플라톤 국가론에는 유토피아라는 그림자가 따라붙기도 했다.
영국 켄트대학교의 숀 세이어즈(Sean Sayers) 교수는 이런 유 토피아적 성격을 인정하면서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플라톤의 이상주의적 국 가론과 관련해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플라톤의 주요 목적은 현실 세계와 그 문 제점들을 기술하는 일이 아니라 길잡이가 되는 ‘범형’을 제시하는 일, 즉 어떤 이상에 관한 구상을 제시하는 일이다.”66)
그런데 플라톤 자신도 후세 사람들이 찍을 유토피아 낙인을 이미 눈치챈 것인 지 예술가의 꿈같은 그림, 요컨대 이상향처럼 그려진 모델을 예로 들면서 꿈을 꾸는 것은 자유이고 무죄라는 식으로 말한다.
이는 소설가가 세상에는 도저히 있 을 수 없는 이상향의 아름다운 세계를 그렸다고 해서 그에게 실현 가능성을 놓고 왈가왈부할 일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한데, ‘가장 아름다운 인간’(ho kallistos anthrōpos)이 어떤 것인지 그 본을 그리고서, 그 그림에 모든 걸 다 충분히 표현해 넣은 화가가 그와 같은 인물이 생길 수 있음을 실증해 보여 줄 수 없다고 해서, 자네는 그를 덜 훌륭한 화가로 생각하는가?(363, 472d)
이 질문을 받은 글라우콘 역시 우리 시대 예술 감상자가 응당 반응할 답을 한 다.
“단연코 그렇지 않습니다.”(363, 472e)
물론 실현 가능성에 대한 믿음은 후 반부에 가서 달라진다.
5권 첫머리에서는 시민 전체가 행복한 나라의 구체적인 실현 방법에 대해 사람들이
“가능한 것이라고 믿지도 않을 것이고”(319, 450c)
한갓 “소원일 뿐인”(450d) 모양으로 비쳤다.
그러나 7권 끝에서 “어렵기는 하지 만, 어떤 면에서는 실현 가능한 것들”(502, 540d)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이 자신감은 앞서 난감하게 여겼던 거센 세 개의 파도67)를 이미 넘어섰고, 가짜를 진짜로 오판하며 살게 하는 태양이 없는 암흑의 동굴을 빠져나와 지혜와 정치, 이론과 실습의 오랜(대략 50년) 융합 교육을 통해
“마치 조각가처럼, 지극히 훌 륭한 통치자들을 완성해”(502, 540c) 낼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66) S. 세이어즈, 김요한 역, 플라톤 「국가」 해설, 2008, 238쪽.
67) 첫 번째 파도는 여성에게 수호자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좀 더 높고 거센 파도로 처자(妻子)와 남편의 공유 문제였으며, 마지막 세 번째 파도가 가장 높은 파도인데, 지혜를 사랑하 는 자, 즉 철인이 통치자가 되는 문제였다. 어느 파도 하나도 쉬운 것이 없다. 플라톤 당대는 말할 것도 없고 18세기 서구 근대까지도 상상하기 힘들었을 파도임이 분명하다. 44살 어린 애제자 아리 스토텔레스조차 이미 당대에 스승의 성 평등주의와 가족 해체를 유발할 처자와 남편 공유에 대해 확고한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같은 책, 71쪽 이하 참조). 아리스토텔 레스의 여성 비하와 남성 우월주의는 마치 ‘폐쇄적인 동물농장’에 들어서 있는 느낌이 들 정도다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29쪽 참조). 이런 점에서 보면 플라톤은 그 시대(혹은 오늘날)가 감 당하기 대단히 벅찬 몽상가였을 법하다.
플라톤이 구상한 “시민 전체가 최대한 행복하도록” 하는 아름다운 나라는 두 개의 기둥이 떠받치고 있다.
하나는 시스템(정치체제)의 기둥이고, 다른 하나는 교육의 기둥이다.
여기서도 균형과 조화의 건축물을 연상시킨다.
아름다운 나라 의 행복의 집이 아무리 훌륭하게 건축되었다 해도 그 행복은 시스템과 같은 제도 가 없다면 지속성이 없게 되고, 그리고 또 시스템이 아무리 잘 갖추어져 있더라 도 그것을 운용할 사람이 지혜와 용기와 절제의 좋은 교육을 받지 않으면 무가치 해질 수밖에 없다.
‘아름다운 나라’의 건축주가 “자신도 구하며 나라도 구원할 (…) 법제화”(252∼3, 417a∼417b: 강조는 필자)를 제안하고, 청소년기에 정 신과 신체의 균형 발달을 위해 시가 및 체육 교육을 병행해서 서른 살이 될 때까 지 수학과 기하학을 비롯해 천문학과 화성학 등까지 학습하고, 마지막 교육의 왕 관으로 5년 동안 변증술(dialektikē)을 터득한 뒤, 마치 니체의 자라투스트라처 럼 세상 속으로 들어가 15년 동안의 실습 과정을 밟으면서 35년간의 학식의 효능 성을 검증하는 그런 본(paradeigma)을 제시하려 했던 것도 까닭 없는 일이 아니 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국가가 훌륭하게 되려면 국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훌 륭해야 한다”68)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가 플라톤의 국가론 관점과 다른 것은 그의 방점은 시민의 “지혜와 윤리적 결단”에 가 있는 반면에 플라톤의 강조 점은 바로 법제화라는 제도와 교육에 있다는 점이다.
플라톤이 국가 후편에 해당하는 법령을 나중에 쓴 것도 우연이 아니다.
시민의 양심만으로는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위대한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 하나도 막을 수 없다 는 사실을 생생한 현장 경험을 통해 이미 익혔던 바이다.
정치(제도)가 지혜(교육)와 손잡는 것, 이것을 플라톤은 “지혜를 사랑하는 자”가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그 본을 국가에 세우고 싶었던 것이다.
플라톤이 단순히 역량과 재능 중심의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가 아니 라 덕(德)⋅선(善)⋅멋을 아우르는 아레테(aretē)와 재능(talent)을 동시에 담은 아리스토크라티아(aristokratia)를 최선자 정책으로 제시했던 것도 까닭 없는 것 이 아니었다.
행복은 법제화된 제도(체제)를 가장 훌륭한(ariston) 사람, 플라톤 의 표현대로 하면 “지혜69)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운용할 때 지속성을 가질 수 있다는 꿈이 바로 플라톤 국가론의 건축 미학이 주는 교훈일 듯하다.
68)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같은 책, 403쪽.
69) 플라톤에게 지혜(sophia)는 분별력이고 앎이며 전체를 아우르는 슬기로 통한다.(274, 428a 이하 참조)
현재 우리를 포함한 대다수 이른바 선진 국가들이 운영하는 민주주의(demokratia)도 사실 자유 자체와 거의 등가성을 갖는 훌륭한 제도이지만 전체를 아우르는 슬기를 함축 하는 지혜가 결여할 때는 공포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현대 민주주의는 아리스토데모크라티아(aristodemokratia)로 승화될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지 않 을까 꿈꾸며 플라톤 국가론의 문을 나선다.
7. 플라톤의 국가를 나서며: ‘행복’을 찾아서
고대 그리스로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서구 철학의 역사가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했다고 하지만 국가에 대한 평가는 때론 강한 긍정과 때론 강한 부정으로 나눠 있었다.
그 사이엔 마치 서로 건너서는 안 될 루비콘강이라도 흐르는 듯하다.
물론 이런 양극화 현상은 플라톤 스스로 만들어낸 면이 없지 않다.
국가 안 에만 해도 문화적 보수성과 정치적 진보성이 표출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문화적 보수성은 이렇게 표현되기도 한다.
“장차 신들을 숭배하고 어버이를 공경하며 서 로 간의 우정을 하찮게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 어릴 적부터 이야기로서 들어야 할 것들과 듣지 말아야 할 것들은 이와 같은 것들일 것 같으이”(184, 386a)
로부터 시작해서
“연소자들이 연장자들 앞에서 행하는 적절한 침묵과 자리 양보, 자리에서 일어섬, 그리고 부모의 봉양, 그리고 또 머리 손질과 의복, 신발 및 전반적인 몸가짐과 그런 유의 모든 것.”(268, 425b)
마치 공자의 나라에 와 있는 듯 우리에겐 그렇게 낯설지 않다.
그런가 하면, 다음은 혁명가라도 되라는 소리 같이 들리기도 한다.
“혹시 자네가 보기엔, 나라들 가운데서도 나쁘게 다스 려지면서도, 시민들에게는 나라의 확립된 정치 질서를 바꾸려는 짓을 하지 못하 도록, 이 행위를 하는 자는 사형에 처해진다는 포고령을 발표하는, 그런 많은 나 라가 그런 사람들과 똑같은 짓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가?”(270, 426b∼c)
이렇듯 국가는 보수성과 진보성을 동시에 품고 있다.
그래서 때로는 폐쇄된 사회, 혹은 전체주의, 혹은 파시즘으로 비난의 화살을 맞는가 하면, 때로는 지향 해야 할 이상적 국가의 범례, 또는 최고의 교육학, 오래된 진보의 미래로 읽히기 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찬반의 양극이 갖는 정치성의 안경을 벗고 플라톤 국가론의 시작과 끝, 그리고 그 목표가 무엇을 정향하고 있는지 조심스럽게 살피면서 그의 건축의 미 학을 더듬어 나가다 보면 뜻밖에 행복을 만나게 된다.
그러면 국가론은 명목론일 뿐이고 실재론은 행복론으로 읽힌다.
행복론의 망루에서 플라톤 국가론의 건축 미학을 읽다 보면 어쩌면 지금껏 플라톤 평가에서 찬반이 엇갈려 루비콘강을 사 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서 있었던 비평 진영에 가교 가능한 지평이 열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신자유주의 파도가 덮친 이후 서로 경쟁으로 더 높은 곳을 오르기 위해 긴장의 끈을 놓칠 수가 없어 한순간도 온전한 행복을 찾기 힘든 우리 시대가 “시민 전체 가 최대한 행복해지도록 하는” 플라톤 국가론의 건축 미학을 새롭게 읽게 하는 역설적인 힘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경쟁보다는 협업이, 전쟁보다는 평화가, 질 투보다는 에로스가, 무절제보다는 절제가, 재물보다는 지혜가 더 아름답고 더 행 복에 다가가는 길이라고 플라톤 국가론의 건축 미학은 유혹한다.
그 유혹에 한 번쯤 넘어가 행복을 찾아가는 길도 나쁘진 않을 듯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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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문】
플라톤 사상의 스펙트럼은 넓고 깊다. 그가 설계한 국가 담론의 구조물도 아주 현란하다. 그 빛은 행복, 정의, 국가, 교육, 인식, 정체, 예술 등의 담론을 관통한다. 대단히 현란하다. 그러나 현란한 만큼 매력적이다. 지난 2,400여 년 동안 서구 철학의 역사는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는 과학 철학자 화이트헤드의 주장은 우연한 것이 아니다. 플라톤이 구축하고 있는 ‘국가론’의 건축 미학이 그만큼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그런 찬사가 나왔던 것이다. 매력적이지만 그의 국가론 건축 미학에는 접근이 쉽지 않을 만큼 복잡하다. 그래서 플라톤 국가론에 대한 평가도 복잡하게 찬반으로 나뉜다. 한편에서는 전체주의, 파시즘, 폐쇄사회, 반민주주의로 혹평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인류가 쓴 최고의 교육학, 이상적 사회의 범례로 긍정적 평가를 내린다. 이런 상반된 평가의 원인은 플라톤의 국가를 지나치게 정치적 관점에 초점을 맞춘 탓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다른 초점을 선택했다. 행복론에 초점을 맞췄다. 국가는 명목론상에서는 정치나 국가에 관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재론의 관점에서 보면 국가론의 알파와 오메가가 행복에 관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의 목표는 플라톤 국가론의 핵심이 행복론에 있음을 확인하는 것에 있다. 이로써 찬성과 반대 진영에 화해의 가능성을 찾는 효과를 거두고자 한다.
【주제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포퍼, 정체, 교육, 행복
Abstract
An Architectural Aesthetics of Plato’s Politeia Byeun, Sang Chul(Daegu Uni. Professor)
The spectrum of Plato’s thought is wide and deep. The structure of the discourse on Politeia designed by him is also very dazzling. That light penetrates discourses such as happiness, justice, polis, education, recognition, identity, art and so on. Very dazzling. However, it is as attractive as it is flashy. It is not accidental that Whitehead claims that the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over the past 2,400 years is nothing more than a footnote to Plato. Such praise came because the architectural aesthetics of Plato’s Politeia were so attractive. Although attractive, the architectural aesthetics of his Politeia are complex enough to be difficult to approach. Therefore, the evaluation of Plato’s Politeia is complicatedly divided into pros and cons. On the one hand, it is criticized as totalitarianism, fascism, a closed society, and anti‐democracy, while on the other hand, it is evaluated positively as the best pedagogy ever written by mankind and a ‘paradigm’ of an ideal society. I think the cause for these conflicting evaluations is that they focus too much on the political discourse. But I chose a different focus. Politeia appears to be about politics or state from a nominalistic perspective, but from a realist perspective, it can be confirmed that the alpha and omega of Politeia about happiness. The goal of this article is to confirm that the core of Plato’s Politeia lies in the theory of happiness. By doing this, we hope to achieve the effect of finding a possibility of reconciliation between the pros and cons surrounding Politeia.
【Key words】 Plato, Aristotle, Karl Popper, Politeia, Education, Happiness
논문접수일: 2023.12.20. 논문심사기간: 2023.12.29.~2024.01.15. 게재확정일: 2024.01.16
철학·사상·문화 제4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