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이윤택 <햄릿>의 처녀 선망과 여성 혐오/유연주.극동大

jn209 2025. 5. 6. 13:47

< 목 차 >

1. 서론

2. 전쟁과 정쟁의 축소와 처녀성에 대한 집착

3. 출생의 비밀과 복수의 성격 변화

4. 순결에 대한 의심과 집착이 낳은 죽음

5. 결론

 

 

1. 서론

 

2018년 2월 연극계 내 성폭력 고발(미투 운동)이 시작된 후로 연극계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많은 연극인들은 안전한 창작환경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소수자 를 위한 기회를 더 마련하고, 불합리한 상황에 목소리 내기를 주저하지 않는 등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1)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이전으로 다시 되돌려 놓겠 다는 듯 백래시는 이어지고 가해자는 돌아오고 있으며 피해자에 대한 걱정은 잊 혀 가고 있다.

어떤 이들은 작품의 예술성과 창작자의 윤리성은 거리가 있다며 가해자를 여전히 옹호하고 그들을 다시 무대에 돌아오게 하려고 분투하기도 한다.2)

 

    1) 이 연구를 진행하면서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았다. 선행 연구자뿐만 아니라 부족한 논문을 읽고 조언 해준 심사위원과 대화와 토론을 나누어준 동료 연구자, 연극인에게 감사를 드린다.

    2) 2024년 ‘<두 메데아> 사태’로 불린 사건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연희단거리패의 대표였던 김 소희가 주연 배우로, 부산 한 ‘교육 극단’ 대표이자 단원들을 대상으로 다수의 성범죄를 벌여 피의 자 조사를 받고 있는 안OO이 그래픽디자이너로 <두 메데아> 공연에 참여하는 문제를 두고 벌어진 일련의 사건으로, 연극인과 관객들은 ‘보이콧운동’을 벌였고 이는 공연 취소로 이어졌다.2024년 3월 연극인과 관객들은 이런 움직임을 ‘백래시’로 규정하고 ‘대학로X포럼’을 기획하여 논의를 진 행하기도 했다. 김소희는 그 전에도 극단 피악의 공연 무대에 섰는데, 이에 항의하는 움직임을 두고 연출 나진환은 한 인터뷰에서 “페미니즘보다 인권이 앞선다고 생각한다”며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마녀사냥을 당해 안타까웠다”고 말한 바 있다. 박돈규, 「김소희, 4년 침묵 깨고 대학로 무대에」, 뺷조선일보뺸, 2022.08.31.

 

과연 작품과 창작자는 개별적으로 봐야 하는지, 피해자들의 상처는 치유되었 는지, 안전한 교육, 창작 환경이란 어떻게 실천이 가능한지, 법적 책임과 사과나 반성이 같은 의미인지, 개별 프로덕션뿐만 아니라 공공 극장에서는 어떤 대책을 내놓아야 하는지, 우리 내부에 오히려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 연구자는 우리가 ‘예술적’이라며 연극사에 기입해 놓은 작품을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다시 들여다보려 한다.

이를 통해 그동안 문제가 있 다는 것을 알면서도 묵과해 온, 비판하면서도 그 나름의 의미와 작품성을 찾아주 려 노력했던, 혹은 그저 찬사를 해온 작품들을 비판적으로 다시 보려 한다.

미투 운동 이후 한국 연극사 및 희곡사를 연구하거나 강의할 때, 성폭력 및 위계 폭력 가해자들의 작품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창작자 및 교육자들과 논 의한 적이 있다.

특정 인물과 특정 시기를 아예 건너뛰는 경우, 간단한 언급 정 도로만 넘어가는 경우, 언급 없이 작품으로만 다루는 경우, 상세한 설명과 함께 토론의 기회로 삼는 경우 등 다양한 케이스가 있었다.

그 어떤 경우라도 모두 난처함을 토로했다.

이런 곤경뿐만 아니라 이대로 침묵을 하다가 시간만 지나가 고 오히려 반성 없는 가해자 복귀라는 나쁜 선례를 남길 수도 있기에 지금이 그 들의 행적과 활동을 다시 논하고 평가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재평가 는 교육에 있어서는 물론이고 창작 현장에도 꼭 필요한 작업이다.

더 나아가 그 들의 작품을 좋아했던 창작자, 비평가, 연구자, 나아가 관객들도 반성적으로 성 찰할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그런 실천적 작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먼저 무용, 문학, 영화, TV 등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뺷여성신문뺸의 연재 칼럼 ‘기울어진 극장’, 연극비평집 단 시선의 기획 ‘삐딱한 시선’, 윤단우와 ‘허사이트’의 비평 작업 등이 있다.3)

이들은 문화·예술 작품을 비판적으로 다시 들여다보며 페미니즘적 독해를 시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편 창작자들의 비판적 작품도 무대에 오르고 있는데 윤 상은 안무·출연의 <죽는 장면>(2018∼2020), 이오진 작·연출의 <콜타임>(2022) 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죽는 장면>은 18∼19세기 낭만주의와 고전주의 발레 작품 중에서도 현재 지속적으로 공연되는 작품에서 사랑 때문에 미치고 결 국 죽어버리는 여성 주인공들을 탐색한다.

<콜타임>은 오태석의 작품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 패러디를 통해 기존 남성 중심적, 위계적인 연극계의 관행을 비판한다. 이런 활동이 계속 이어져야 하며 이 연구도 그 연장 선에 있다.

이 연구의 대상은 이윤택 연출의 <햄릿>이다.

<햄릿>은 1996년 초연 이후 꾸 준히 반복 공연되면서 이윤택의 대표작이자 연희단거리패의 대표 레퍼토리로 자 리매김했다. 그만큼 이윤택의 애착이 있는 작품으로 “연출적 관점으로 고쳐 쓴 대본”4)임을 이윤택도 자인한 만큼 그의 예술관 및 세계관을 들여다보기 적당한 텍스트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윤택의 <햄릿>에서 중요한 장면으로 꼽히는 것이 이윤택의 창작이 아님을 밝힌 이영미의 평론이 있다.

이 평론에서는 오필리어의 장례식 장면, 클로디어스 와 오필리어의 간통 설정은 <마로위츠 햄릿>에서, 오필리어와 레어티즈의 근친 관계로 설정한 것은 조광화 작 <오필리어>에서 이미 제시된 부분이라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5)

 

    3) 윤단우 외, 뺷여성신문뺸, 2017.08.30.∼2018.12.13.; 연극비평집단 시선, 뺷월간 시선뺸 19∼39 호, 연극비평집단 시선, 2019.02.21.∼2020.12.31.; 연극비평집단 시선, 뺷우리가 선택한 좌석입 니다뺸, 1도씨, 2020.; 윤단우, 뺷기울어진 무대 위 여성들뺸, 허사이트, 2021.; 윤단우, 뺷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죽은 여자다뺸, 허사이트, 2024.

   4) 이윤택, 「작가 서문」, 서연호·김남석 편, 뺷이윤택 공연대본전집 5뺸, 연극과인간, 2006, 3쪽

  5) 이영미, 「<마로위츠 햄릿>을 보면서 이윤택 <햄릿>을 생각한다」, 뺷뉴미디어저널뺸, 1997년 2월 호.;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편, 뺷’90년대 연극평론 자료집(V)뺸, 평민사, 1999 참조

 

확실히 이 작품은 이윤택의 순수 창작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이영미의 논의에 충분히 동의하면서도 이 논문은 부분적인 장면 차용을 거 쳐 완성된 이윤택의 작품이 만들어 내는 독특한 여성 혐오의 의미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렇기에 이 연구에서는 작가이자 연출가인 이윤택이 거듭 수정을 가해온 공연의 마지막 버전인 2009년의 공연을 분석 텍스트로 선택하고 2010년에 출간 된 희곡 판본을 참조한다.6)7)

공연이 거듭되면서 확고해진 연출 방향과 연출관 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햄릿>은 이윤택 개인에 국한된 텍스트가 아니라 여성 인식에 대한 사회 의 지표를 판단할 수 있는 텍스트로 적당하다.

‘진정한’ 오필리어는 없으며 시대 에 따라 다양한 재현이 있을 뿐이라는 일레인 쇼월터의 주장을 참조하면8) <햄 릿>의 번역과 번안을 살펴봄으로써 창작자뿐 아니라 창작된 사회의 분위기를 읽 어내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가령 <햄릿> 초연이 있었던 1996년 당시의 맥락에 서 보자면 페미니즘 연극, 여성 연극이 잠시 붐을 일으킨 후 본격적인 백래시가 시작되는 시기로 볼 수 있다.

평론에서 “여성연극”에 치인 “남성연극”의 부활에 찬사를 보내는가하면9) 언론에서도 “남성연극” 소식과 “남성 배우”의 활약을 전 하며 “고개숙인 남성”을 위로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이윤택의 <햄릿>에 대한 평가도 이루어지는데, 햄릿을 압박하는 역할에 여자 배우를 캐스팅한 데 대 하여 한 연구자는 “성 역할 도치 기법들은 신장된 현대 여성성의 상징적인 표출 이자 여성들에 둘러싸여 더욱 왜소해 지는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효과적으로 드러 내 주는 순기능을 담당한다.”10)라고 서술한 바 있다.

 

    6) <햄릿>의 공연은 ‘Asian Shakespeare Intercultural Archive(A|S|I|A)’ 웹사이트(http://a-s-ia-web.org)에 올려진 것을 참조하였고, 대본은 뺷햄릿과 마주보다뺸(도요, 2010)에 실린 것을 참조 하였다. 대사 및 장면 인용은 모두 공연 영상에서 가져왔음을 밝혀둔다.

   7) 1996년부터 2005년까지 이윤택의 <햄릿> 대본 판본 및 공연사는 김동욱, 「글로컬화로 완성된 <햄 릿>」, 뺷Shakespeare Review뺸 44(4), 한국셰익스피어학회, 2008 참조.

   8) Showalter, Elaine, “Representing Ophelia: Women, Madness, and the Responsibilities of Feminist Criticism”, Parker, Patricia and Hartman, Geoffrey ed., Shakespeare and the Question of Theory, New York: Metheun/Routledge, 1985 참조.     9) 김윤철, 「남성연극이 고개 들기 시작하는 사회」, 문화예술, 1997.06.;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편, 뺷’90년대 연극평론 자료집(V)뺸, 평민사, 1999, 34-37쪽 참조. 

  10) 김동욱, 앞의 글, 722쪽. 

 

이윤택은 이러한 평가에 화답하듯 1997년 카프카의 <변신>을 <사랑의 힘으로>라는 제목으로 “가치가 무 너진 부권상실의 시대속에서 직장, 가족, 그리고 사랑의 끈으로 묶여 점점 소시 민화되어가는 현대 샐러리맨의 존재를 규명하는 일종의 남성연극”11)으로 올리기 도 한다.

<햄릿>의 성공이 결국 현대 사회에서 소외된 한 인간의 표상을 남성으 로 국한시키며 남성 대 여성의 성별 이분법으로 사회를 그려내는 것의 시작였다 고 할 수 있다.

이처럼 1990년대 중반 <햄릿> 공연의 의미는 1980∼90년대 여성 연극의 부상 이후 찾아온 1990년대 후반 연극계의 백래시적 흐름과 함께 살펴볼 수 있다.12)

그동안 이 공연에 대해 비판적인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유 연하지 못한 여성관”13)을 지적하며 오필리어에 대한 해석을 문제 삼은 김명화의 글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이 글은 그럼에도 이윤택이 “해석적 연출자”14)의 반열 에 든 것을 극찬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다른 평론들도 마찬가지다.

작품에 여 성 혐오적인 부분은 있지만 그럼에도 작품은 훌륭하다는 식의 평론이 대부분이 다.15)

 

  11) 윤정호, 「카프카 <변신> 재구성 <사랑의 힘으로> 공연」, 뺷조선일보뺸, 1997.01.17.

  12) 이 논문은 이윤택의 <햄릿>에 주목하고 1990년대 연극계의 백래시에 대해서는 다른 지면을 통해 본격적으로 분석해보고자 한다.

   13) 김명화, 「연희단거리패의 <햄릿>: 시간은 때로 성숙을 잉태한다」, 뺷한국연극뺸, 2001년 5월호.; 김명화, 뺷저녁 일곱 시 반, 막이 오른다뺸, 연극과인간, 2006, 74쪽.

   14) 위의 글, 75쪽.

   15) 이윤택 구속 이후 나온 저서에서도 여전히 그런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저자가 어떤 창작자의 공연 인지 언급하지 않았지만, “천마총”을 상징하는 무대, 공연의 내용과 형태 등을 미루어봤을 때 그가 상찬하는 연극이 이윤택과 연희단거리패의 작업임을 짐작할 수 있다. 강태경, 뺷행간의 햄릿뺸, 이화 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2023, 854-856쪽 참조. 

 

페미니즘 리부트와 미투 운동 이후, 세계는 변화했고 그렇다면 그 ‘이후’ 의 비평 및 연구는 ‘그럼에도’라며 눙치고 넘어간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 한다.

페미니즘은 하나의 비평 이론이거나 분석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세상을 보는 시각이고 실천이기 때문이다.

이강임의 「이윤택의 ‘민족극’의 남근중심적 신화 해체하기」는 유물론적 페미 니즘 시각에 기초하여 이윤택의 작품을 분석한 사례로서 참조할만한 연구다.

이 연구는 이윤택의 민족극이 내포하고 있는 남근중심적 신화를 분석하고, 민족극 이 가부장적 구조와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재생산하고 있는지 비판적으로 고찰한 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이윤택의 작품이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방식  및 여성을 주변화하는 문제점을 비판하며 연극과 남성 중심적, 이성애 중심적 이 데올로기가 어떻게 공모하고 있는지 그 관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한다.16)

본 연구는 이윤택의 <햄릿>에 드러나는 여성 혐오에 집중하려 한다.

셰익스피 어의 원작도 이미 여성 혐오적으로 독해할 여지가 충분히 있으며 이에 대한 논의 도 이미 많이 되어 있다.

여성 혐오의 역사를 고찰하며 특히 문학 속 여성 혐오를 분석한 잭 홀런드는 <햄릿>의 내용에서 가장 강력한 감정이 “어머니인 거트루드 가 삼촌 클로디어스와 결혼했다는 이유로 햄릿이 느끼는 분노와 혐오감”17)이라 고 정리하기도 한다.

이 연구에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원작이 아니라 각색과 무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여성 혐오다.

특히 이윤택이 집요할 정도로 천착한 처녀 성의 문제를 다룬다.

이와 관련해서 살펴볼 용어는 ‘처녀 선망(virgin envy)’이다.

이는 프로이트 의 ‘남근 선망(penis envy)’와 관련해서 살펴보아야 하는 용어로 간단하게 ‘처 녀성에 대한 환상’으로 정의할 수 있다.18)

 

    16) 이강임, 「이윤택의 ‘민족극’의 남근중심적(phallocentric) 신화 해체하기」, 뺷한국연극학뺸 31, 한국 연극학회, 2007.01 참조.

    17) 잭 홀런드, 김하늘 옮김, 뺷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뺸, ㅁ, 2021.[전자책]

    18) 조너선 앨런·크리스티나 산토스·아드리아나 슈파르 저, 이혜경 옮김, 「처녀선망: “우리를 애태우 는 처녀의 이중성”」, 뺷우리는 처녀성이 불편합니다뺸, 책세상, 2019, 10-13쪽 참조. 

 

사회에 따라 정도가 다르지만 순결한 처녀에 대한 환상이 있으며 성에 보수적이며 가부장적인 사회일수록 순결한 처녀 에 대한 선망은 더 높게 나타난다.

여성 순결에 집착하는 경향은 부계 중심의 혈통주의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내 아이가 다른 남성의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불안 감과 내 지위와 재산을 그 아이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두려움 등이 여성 순결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사회는 남성이나 여성 모두에게 순결함과 처녀성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것은 여성에게만 강요된다.

특히 여성의 가치는 혼전 순결 여부에 따라 나뉜다. 남성들은 혼전 성 경험이 없는 여성을 결혼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여성도 자기가 순결한 여성이길 바란다.

여기에서 여성의 몸에 가치를 부여하는 태도가 나타나는데 순결한 여성일수록 (교환) 가치가 높아지며 결혼 시장에서 높은 값어 치를 갖게 된다.

처녀성을 보유하고, 상실하고, 교환하고, 판매할 수 있는 것처 럼 일종의 물건이나 상품처럼 다루는데, “여성 혐오는 가부장제 사회질서 내에서 여성의 순종을 단속하고 강요하는 한편, 남성의 지배성을 지탱하기 위한 체 제”19)라고 할 때, 처녀성이 부권에 의해 통제되고 여성의 역할은 제한된다는 점 에서 여성 혐오적이라고 할 수 있다.

본고는 이윤택의 <햄릿>에서 처녀성을 둘러싼 다양한 액션과 리액션이 중요하 다고 생각한다.

가령, 어머니 거트루드의 처녀성과 햄릿의 출생의 비밀, 출생의 비밀에 따라 달라지는 복수의 성격, 오필리어의 처녀성을 단속하는 아버지 폴로 니우스와 오빠 레어티즈, 딸 혹은 여동생의 처녀성이 집안에 가져다줄 부와 영 예, 오필리어의 처녀성을 탐한 클로디어스, 오필리어가 클로디어스에게 순결을 잃고 햄릿에게 버림받고 미치고 죽음에 이르게 되는 과정, 이 모든 맥락에 처녀 선망이라는 개념이 적절하게 배치된다.

 

2. 전쟁과 정쟁의 축소와 처녀성에 대한 집착

 

이번 장에서는 대본 각색과 무대화의 과정에서 원작과 달라진 점, 즉 이윤택의 <햄릿> 해석을 살펴본다.

이윤택은 “원작의 순수성”20)을 운운하며 번역과 번안 에 자신감을 드러낸 바 있다. 원작과 비교해서 과연 그 자신감이 타당한지, 그의 해석이 정당한지 분석해 보려 한다.

이윤택의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정수를 꿰 뚫은 작품인가?

이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무엇인가?

실제 전달되는 의미는 무엇인가?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국외의 전쟁과 국내의 정쟁을 축소한 것이다.

 

“<햄릿> 은 흔히 주인공 햄릿의 성격에 초점이 맞춰져 해석되지만 사실은 정치적 상황이 극을 시작하게 하며 긴장감으로 극 전체의 밀도를 높이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다.”21)

 

       19) 케이트 맨, 서정아 옮김, 뺷다운 걸: 여성혐오의 논리뺸, 글항아리, 2023. [전자책]

       20) 이윤택, 「연출가의 입장에서 본 셰익스피어 극의 번역 문제」, 뺷연극뺸 7, 2014, 68쪽.

       21) 김미혜, 뺷대본분석뺸, 연극과인간, 2008, 121쪽. 

 

셰익스피어 원작의 1막 1장은 엘시노어 성 보초대의 대화로 시작한다.

그들의 대화에서 햄릿 선왕의 유령이 나타나고 있으며 생전에 그가 전쟁을 승리 로 이끌었고 노르웨이의 왕 포틴브라스를 죽였으며 노르웨이로부터 영토를 귀속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관객은 이 전쟁에 대한 복수로 노르웨 이의 왕자 포틴브라스가 진군하고 있다는 소식까지 알게 된다.

이렇게 과거의 전쟁과 미래의 전쟁이 국외 정세로 깔리면서 선왕의 죽음 이후 불안해지는 덴마크 의 분위기와 유령 출몰의 으스스함이 도입부의 극적 긴장감을 형성한다. 이런 덴마크의 상황이 중요하다는 것은 이윤택도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1996년에는 직접적으로 포틴브라스가 진군하는 장면(4막)을 끌어와 전쟁 직전 의 위기감을 주고 있다.22) 그런데 초연 이후 이 장면은 거의 사라지며23)

 

      22) 이윤택, 「햄릿」, 앞의 책, 155-158쪽.

      23) 2001년 공연 대본에 다시 들어 있긴 하지만 그 이후로 생략하는 편이다.

 

이야기 범위가 햄릿 왕가와 그 안팎으로 줄어든다.

이 글에서 대상 텍스트로 삼은 2009 년의 공연은 선왕 햄릿의 장례 행렬로 시작한다.

장송곡과 거트루드의 통곡 소리 가 무대를 가득 메우다가 분위기는 바로 전환되며 결혼식이 진행된다. 이윤택은 이런 순식간에 전환되는 장면을 연출하여 장례식의 눈물이 미처 마르기도 전에 결혼식의 기쁨으로 넘치는 거트루드의 비도덕적인 면모를 강조한다.

거기에 클로디어스가 햄릿을 아들로 자인하면서 내정의 문제도 단순화된다.

원작의 경우에는 선왕의 죽음과 삼촌의 권력 승계, 장자 햄릿의 승계 실패가 원 인이 되어 내정의 갈등이 생긴다.

그렇게 할 때 삼촌이 선왕을 죽인 이유나 햄릿 을 영국으로까지 보내서 죽이려고 하는 이유, 햄릿이 삼촌에게 복수하려는 이유 가 설명된다.

이윤택의 극에서는 클로디어스가 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한 사 건이라는 맥락이 제거되면서 클로디어스와 햄릿의 경쟁 구도가 비틀어지고 클로 디어스가 친아들인 햄릿을 왜 죽이려 하는지 관객들을 의아하게 만든다.

거트루드의 재혼 결심도 원작의 경우에는 다양하게 이해할 수 있는데, 클로디 어스와 원래 불륜관계였거나 사랑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삼촌에게 견제당할 아들 을 재혼으로써 보호하려는 어머니의 면모도 드러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럼에도 거트루드가 누군가의 애인이나 부인이 아니면 어머니의 역할로만 그려지는 것에 대한 비판이 따라올 수 있다.

하물며 이윤택의 공연에서 거트루드는 클로디어스 에 빠져 있고 성적으로 타락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붉은 옷과 조명, 흐트러진 옷 매무새, 늘 취한 것 같이 흐느적거리는 배우의 연기가 거트루드의 그러한 면모를 강조되게 한다.

또한 거트루드는 극중극에서도 클로디어스의 선왕 살해 사건을 미리 알고 있던 것처럼 연기한다.

그렇기에 거트루드와 클로디어스는 이미 부적 절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선왕 살해 계획도 공유하고 있던 사이처럼 처리되며 그 과정에서 거트루드의 성적 방종과 음탕함이 강조된다. 

부자 관계가 뒤틀리면서 작품의 전체적 틀이 바뀌고 햄릿의 질투와 분노의 원 인도 원작과 달라진다.

권력을 놓고 경쟁하던 것에서 어머니를 사이에 둔 경쟁으 로 탈바꿈되는 것이다.

클로디어스가 오필리어를 취하는 데에 이르러서는 햄릿 의 분노가 일정 부분 그쪽에 실리면서 부자가 거트루드와 오필리어 두 여성을 두 고 경쟁하는 양상이 된다.

거기에 폴로니우스가 거의 광대와 같은 역할을 맡으면 서 폴로니우스와의 정쟁도 줄어든다.

폴로니우스는 오필리어의 아빠일 뿐 아니 라 클로디어스의 충신이자 간신으로 해석되기도 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이윤택 은 클로디어스와 폴로니우스를 극중극의 일원으로 참여시키고, 우스꽝스러운 존 재들, 광대들로 그려낸다.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서사가 정치적 인 측면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24)

포틴브라스, 폴로니우스, 햄릿 세 부자를 통해 셰익스피어는 시대의 변화, 세대 교체, 구세대 청산과 같은 의미를 전달하는데 이윤택의 작품에서는 이런 의미가 거의 상실되어 버린다.

그뿐만 아 니라 권력의 꼭두각시 포틴브라스,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이 연극 무대를 주도 하고 배우들과 어울려 춤을 추는 등 적극적으로 극중극에 참여하면서 정치적인 맥락이 사라지고 이윤택이 주장하는 “연극 만세!”로 귀결된다.

이윤택은 이에 “정치적 상황에 대한 연극적 응전”25)이라는 해석을 덧붙이지만, 극중극을 위해 정치적 입장과 관계 없이 모든 등장인물들이 화합하는 상황이 연출되면서 정치적 맥락이 무화되어 버리기 때문에 연출적 의도가 반은 실패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24) “<햄릿>에서는 특히 세 부자지간의 이야기가 정치와도 얽혀 있어 매우 중요하다. 햄릿과 선왕의 유령 사이의 관계에다 현 왕 클로디어스에게 복수를 해야 하는 조카 햄릿의 이야기는 외형적으로 드러나 있으며 극의 짜임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뼈대이지만 여기에 덧붙여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 는 두 아들이 또 있다. 작품이 시작되면 이내 언급되는 젊은 포틴브라스와 폴로니어스의 원수를 갚으려는 레어티즈가 그들이다. 젊은 포틴브라스가 자신의 아버지가 잃은 땅을 덴마크에서 찾아가 려 하고 그것을 덴마크 측에서는 저지하려는 정치적 역학 관계가 클로디어스가 차지한 왕의 자리를 확고히 하는 커다란 빌미가 되기 때문에 연출 콘셉트에 따라 젊은 포틴브라스는 무대 위에 등장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중요하게 언급되어야 하는 인물이다. 특히 노르웨이에서도 왕위를 계승한 사람이 젊은 포틴브라스가 아니라 숙부라는 사실은 덴마크의 엘시노어 궁에서 일어난 왕위찬탈의 선례로서 작용하는 중요한 점이라 할 수 있다.” 김미혜, 앞의 책, 117쪽.

    25) 이윤택, 「연출노트: 햄릿 주해(註解)-연극 만세!」 뺷햄릿과 마주보다뺸, 도요, 2010, 201쪽. 

 

그리고 원작에서는 선왕의 유령을 많은 이들의 목격하고 유령에 대한 소문이 성 안팎을 휩쓴다.

햄릿 유령의 등장까지 목격자와 소문의 풍경을 만들어 놓은 셰익스피어의 치밀함을 엿볼 수 있다.

그에 비해 이윤택 작품에서는 햄릿이 유령 을 바로 만난다.

그렇기에 유령을 목격하는 것은 햄릿뿐이다.

게다가 유령의 첫등장(1막 2장) 때 무언의 연기를 하기 때문에 관객이 대사를 알지 못한다.

<햄 릿>의 원 대사를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연기이기는 하지만 이 작품 단독 으로 본다면 햄릿이 유령과 어떤 대화를 이어 나가며 왜 저런 행동을 하게 되는 지 의아하기만 하다.

관객이 어느 정도 예측을 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대사 를 통해서이다.

 

햄릿 아! 이런… 견뎌, 견뎌라! 내 심장아! 뒤틀린 근육아! 날 꼿꼿하게 지 탱해 다오! 불쌍한 유령이여! 이 혼란스런 골통 속에 당신이 앉을 자리 를 마련하겠소. 그래! 내 머릿속에서 시시껄렁한 기억들은 다 지워버 릴 테다. 그리고 당신의 명령만은 내 머릿속에 기억될 것이다. 그 어 떤 기억도 당신의 명령과 섞이지 않을 것이다. 하늘에 맹세코! / 아! 이 세상 가장 치명적인 여인 같으니… 악하다, 악해, 인간이 이렇게 악할 수가! 아! 혼란의 시대, 저주받은 영혼이여! 이것이 내가 짐 질 운명이라니!26)

 

잘 알려진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지만 다음 대사만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유령이 햄릿에게 어떤 명령을 했다는 사실과 이를 따르겠다는 햄릿의 맹세뿐이 다.

만약 이윤택의 해석처럼 클로디어스와 햄릿이 부자 관계라면 선왕의 유령 역 시 극에서 중요성을 잃게 된다.

선왕 유령 역할을 클로디어스와 같은 배우가 연 기하는데다가 대사도 없기 때문에 더더욱 유령은 허수아비처럼 느껴진다.

극중 극에서 유령과의 대화를 재현하지만 관객은 이를 햄릿이 쓴 원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햄릿은 왜 그런 연기를 하는가?

햄릿도 어렴풋이 자기 출생의 비밀을 의심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자기 어머니의 순결에 집착하기 때문 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한편 이윤택은 원작과 다르게 클로디어스와 오필리어의 정사 장면을 삽입하여 햄릿과 클로디어스를 경쟁 구도로 만들고 오필리어가 처녀성을 잃은 충격으로 죽 음에 이르는 것처럼 보이게 연출했다.

이는 <햄릿>의 원 텍스트나 서브 텍스트에 서 이런 요소를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지만27) 그렇기에 이윤택의 해석이 가장 많이 반영된 부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26) 이 논문에서 인용하는 대사는 모두 2009년 공연 영상에서 따온 것이다.

   27) 김미혜는 <햄릿>에 대한 재구성 작품을 예로 들면서 원 텍스트에서건 서브 텍스트에서건 찾을 수 없는 요소로 극을 해체, 재구성하면 원작을 훼손할 뿐 아니라 설득력을 떨어뜨린다며 비판한다. 김미혜, 앞의 책, 32쪽 참조. 

 

오필리어의 광기 및 죽음에는 다른 복합적인 이유보다 처녀성 상실이 더 큰 작용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햄릿 도 이 사실을 알고 오필리어를 팔아 넘긴 아버지 폴로니우스를 죽이고 오필리어 의 성을 착취한 클로디어스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됨으로 써 햄릿의 폭주 동기가 모두 여성의 순결에 대한 집착이 된다.

안팎으로 밀려 들어오는 긴장감이 줄어들고 클로디어스와 햄릿이 정치나 권력 이 아닌 거트루드와 오필리어 여성들을 사이에 둔 경쟁자로 관계가 뒤바뀌면서 점차 치정극이 된다.

각색을 반대한다거나 치정극이 더 저열하다는 의미가 아니 다. 작가이자 연출자가 스스로 자기 의도에 반하는 작품으로 만들고 그것이 작품 의 내적 유기성을 흔들리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부자 관계가 달라지면서 주인공 햄릿이 살인과 자살까지 가는 데 충분한 동력이 제공되지 않 는 것, 그래서 창작 의도 및 드라마투르기와 다른 작품이 나오고, 비극의 인물로 서 부족하게 되어버린다는 데 문제가 있다.

 

3. 출생의 비밀과 복수의 성격 변화

 

이 장에서는 햄릿의 어머니인 거트루드의 처녀성을 둘러싼 맥락을 살펴본다.

여성들이 처녀성에 어떤 개인적인 의미를 부여하든, 여성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처녀성의 의미를 궁극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을 가 진 사람들이고, 결국 순결을 정의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주체는 항상 남성 또는 남성이 주도하는 기관이다.28)

 

     28) Valenti, Jessica, The Purity Myth: How America’s Obsession with Virginity Is Hurting Young Women, Berkeley, California: Seal Press, 2009, p.26 참조.

 

거트루드가 자기를 도덕적 주체로서 어떻게 생각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거트루드의 행실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은 극 중 남성 들과 그들이 만든 세상이다.

이윤택의 극에서 거트루드와 클로디어스는 장례가 끝나자마자 결혼식을 치른 다.

통곡소리가 웃음소리로 바뀌는 게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인데, 장례식과 결혼 식, 어두운 조명 아래 그림자와 밝은 조명, 장송곡과 경쾌한 결혼 축하 음악, 검은 상복과 하얀 웨딩드레스, 울음과 웃음의 대비를 통해 이윤택이 드러내려는 것은 명확하다.

손바닥 뒤집듯 쉽게 변하는 거트루드의 마음과 그의 부정한 행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거트루드는 성적 표현에 자유롭다.

남편이고 아들이고 스킨십이 자연스럽고 굉장히 과감하다.

클로디어스와 함께 있을 때에 는 흐느적거리며 그에게 안겨 있고 똑바로 서 있지 않는다.

공적인 자리든 사적 인 자리든 늘 클로디어스의 품에 안겨 애무하는 것이 그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거트루드는 이렇게 오필리어에 비해 성적으로 방종한 캐릭터로 나온다.

그렇기에 오필리어는 늘 흰 옷을 입고 거트루드는 거의 붉은 옷을 입는다.

또한 오필리어에게는 밝은 조명을, 거트루드에게는 어두운 조명을 비춘다.

클로디어스는 “난 네 아비다, 햄릿. 널 사랑하는 네 아비.”라며 자기가 햄릿의 친부임을 알린다.

그뿐만 아니라 1막 2장 무덤이 열리고 선왕의 유령이 등장하는 데 이 유령 역할은 아예 클로디어스 배역을 맡은 배우가 1인 2역을 함으로써 햄 릿의 아버지는 결국 클로디어스일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29)

햄릿은 이 와 같은 출생의 비밀에 혼란스러워하며 어머니의 성적 부도덕함을 책망한다.

처 녀성에 대한 오랜 역사적 관심은 친자 관계 확인 욕망에서 발현되었다.30)

 

     29) “햄릿은 심지어는 클로디어스의 아들처럼 생겼어요. 클로디어스 왕의 친자식이라고 내 해석은 엄마 하고 죽은 왕하고의 사이에서 난 아들이 아니고 이미 엄마는 죽은 왕하고 결혼했지만, 이미 클로디 어스하고 간통 관계에 있었다…… 내 생각은…… 그런 뉘앙스를 줬죠.”이 아비에게 인사하고 가거 라, 이 호로자식아… “이렇게 하잖아요. 암시가 많아요. 심지어는 햄릿은 클로디어스하고 거트루스 사이에 난 아들이고 결국 아들이 그런 지랄을 하는 것도 엄마에 대한 마더 콤플렉스가 작용해서…… 그것도 아버지하고 얘기가 다른 것이고…… 그것이 햄릿 가계의 근친상간성이고……” 김남석, 뺷난 세를 가로질러 가다뺸, 연극과인간, 2006, 358쪽.           30) Blank, Hanne, Virgin: the Untouched History, New York: Bloombury, 2007 참조.

 

햄릿 에게 어머니의 처녀성이 누구에 의해 훼손되었는가가 자기 아버지를 확인하고 자 기 존재를 확인하는 데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햄릿은 자기 존재 확인을 위해 어머니의 처녀성에 집착한다.

만약 자기 아버지가 클로디어스라면 햄릿의 존재 는 부정의 증거가 되어버린다.

그렇기에 그는 점차 폭주한다.

이쯤되면 선왕의 복수에 과연 뜻이 있는지, 정숙하지 못한 어머니에 대한 비난과 처벌이 목적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한편 햄릿은 영국으로 행하는 배 안에서 원작과 다르게 직접 길덴스턴과 로젠크란츠를 죽이는데 살인을 정당화하는 모습에서 이미 비극 의 주인공의 모습은 사라지고 살인자 형상만 남아 버렸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도 어머니의 정절 훼손을 비난하는 햄릿의 모습이 그려진 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한 분석도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윤택 의 작품에서는 그 정도가 지나치다.

어머니와 틀어진 이후로 햄릿은 난폭하게 돌변하면서 무대에서 강간을 시도하는 모습을 몇 차례에 걸쳐 보여 준다.

 

햄릿 앉아, 꼼짝 하지마! 당신의 검붉은 마음속을 거울에 환히 비추어 보이게 할 테다. 그전에는 한 발짝도 떼지 못해! 거트루드 햄릿, 어쩌자는 거니? 햄릿 더러운 여자! 이제 이 죄악으로 얼룩진 껍질을 벗어라! 거트루드 이러지 마라, 나는 네 에미다. 제발! 햄릿 찢어! 발겨! 쑤셔!

 

폴로니우스를 죽인 직후의 상황인데, 살인 이후 분풀이를 거트루드에게 하며 그를 침대에 눕히고 가랑이를 벌려 삽입 행위까지 무대에서 재현한다.

근친상간 의 표현이 정도를 넘었다고 할 수 있다.

 

햄릿 그렇게 쥐어뜯지 마시오. 내가 그 가슴을 쥐어짜 줄 테니. 당신의 가슴은 목석같이 단단한 젖망울은 아니지만, 새 발때가 끼어서 욕 정의 전류가 흐르지 않는 무감각한 살도 아닐 테지. 거트루드 네가 내게 왜 이러는 거냐? 햄릿 당신은 평화로운 목장을 버리고 죄악의 황무지에서 안식을 찾았소. 기가 막히오. 당신은 눈이 있소? 설마 죄악을 사랑이라 부르진 않 겠지. 당신 나이가 되면 불길 같은 욕정은 수그러지고 세상의 분별 식에 눈뜨는 시기가 아닐까? 그래, 분별식이 있다. 당신의 욕정이 어느 정도인지 보고 싶어. 미친년도 자기 남편을 살해하진 않을 거 야. 수치심아! 넌 어디로 갔느냐? 저주할 욕정아...

 

이런 장면은 모자 관계가 상당히 비틀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근친상간은 “가부장적 권력의 남용”이며 “자신을 도덕적 질서의 수호자로 내세우는 남성들 에 의해 자행된다.”31)라고 할 때, 햄릿은 아버지가 죽고 없는 이때 자기가 어머 니의 남편인 양, 자기가 어머니의 정숙하지 않음을 단속할 수 있는 존재인 것처 럼, 즉 ‘가부장적 권력’이자 ‘도덕적 질서의 수호자’로 행동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31) Warner, Judith, ‘Pure Tyranny’, New York Times, 2008.06.13. https://www.nytimes. com/2008/06/13/opinion/13iht-edwarner.1.13693546.html?smid=url-share; Valenti, Jessica, 앞의 책, 76쪽에서 재인용.

 

이때 햄릿 선왕의 유령이 나타난다는 것이 절묘하다.

햄릿의 행위를 멈추게 하는 것은 자기 내면의 목소리도 아니고 거트루드의 거부도 아니다.

바로 어머니 의 이전(/현) 소유권자인 선왕(/의 모습을 한 클로디어스)인 것이다.

어머니를 범하는 순간 유령이 나타나 햄릿은 새파랗게 질리고 거트루드 품에 아기처럼 안 기며 다시 아들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복수, 그리고 정적 제거와 같은 의미 가 담겨 있는 것이 바로 클로디어스 살해다.

그런데 만약 클로디어스가 햄릿의 아버지라면 복수의 의미가 상실되어 버린다.

그렇다면 복수의 계기를 찾아야 하 는데 그게 바로 뒤에서 언급할 오필리어의 처녀성 상실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4. 순결에 대한 의심과 집착이 낳은 죽음

 

이번 장에서는 햄릿의 애인인 오필리어의 처녀성과 그의 죽음 사이의 관계를 분석한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도 오필리어가 처녀라는 것은 도덕적, 정신 적 순결을 보증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오필리어의 성은 모두가 단속하기 바쁘다.

아버지인 폴로니우스의 경우 아들 레어티즈에게는 교우관계나 자금관리 방법에 대한 조언을 한다면 오필리어에게는 오직 순결할 것, 처녀성을 지킬 것만을 강조 한다.

육체적 순결과 도덕적 순결을 연결된 것으로 보면 결국 여성의 성은 상품 화되고 물신화되기 마련이다.

오필리어의 성도 결국 그렇게 되는데.

폴로니우스 가 포주처럼 딸을 어디에 파는 게 유리한지 저울질하는 부분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윤택의 텍스트에서는 이 관점이 더 노골화된다.

클로디어스와 오필리어가 동침하는 그 옆에 폴로니우스가 수발을 들고 있다.

아버지가 자기 딸을 상납하는 장면이다.

게일 루빈은

“거래되고 있는 것이 여성이라면, 여성을 주고 받는 남성 은 동맹 관계를 맺게 된다. 따라서 여성은 관계의 일원이라기보다 관계의 통로이 다.”32)

 

    32) 게일 루빈 저, 신혜수·임옥희·조혜영·허윤 옮김, 뺷일탈뺸, 현실문화, 2015, 110쪽. 

 

라고 정리한 바 있다.

이 작품에서 오필리어는 그야말로 폴로니우스와 클 로디어스 사이에서 두 사람의 동맹 관계를 돈독하게 해주는 도구일 뿐, 생각과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윤택의 극에서 햄릿은 자기 출생에 의문을 갖고 있고 자기 확신이 없는 인물이다.

그래서 자기 존재마저 부정하는데, “To be, or not to be”는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윤택은 다음 인용과 같이 2막 5장 햄릿의 비장한 복수 다짐에 이어 3막 1장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 로다.”라는 대사와 클로디어스와 오필리어의 (강간으로 보이는) 육체적 관계를 오버랩시킨다.

무대 뒤편 클로디어스와 오필리어가 벌거 벗은 채 누워 있다.

이를 괴롭게 보고 있는 폴로니우스.

클로디어스와 오필리어가 일어선다.

클 로디어스는 오필리어에게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혀 준다.

클로디어스 여기서 우연히 햄릿과 만나도록 하자는 것이다.

 

나와 네 아비는 숨어서 너희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을 지켜보고 난 뒤, 병의 원인 이 사랑에서 온 것인지 판단할 것이다. 햄릿의 광증이 네 아름다 움 때문이었으면 좋겠구나.

오필리어 저도 그러길 바랍니다, 폐하.

폴로니우스 오필리어, 여기 앉아 있거라. 얘, 이 성경책을 읽고 있어라. 그 래야 혼자 있는 게 자연스럽게 보일 게다. 사람들은 항상 불순한 의도를 가리기 위해 신앙심이 깊은 척 연기를 하지.

클로디어스 저 말이 내 숨은 죄를 들추어 내는 구나.

이 숨은 죄의식은 무엇 인가?

 

두 사람 기둥 뒤에 숨는다.

햄릿, 침통한 표정을 하고 등장.

 

햄릿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이여! 환 난의 파도를 이 손으로 막아낼 수 있을까? 죽는다, 잠이 든다. 다만 그뿐, 잠들면 끝이 아닌가? 마음과 육체가 받는 고통도 사 라지고 고요한 죽음, 끝없는 잠 속으로. 이것이야 말로 내가 열 렬히 원한 삶의 끝이 아니겠는가? 잔다. 잠 속에서 꿈을 꾼다. 어떤 꿈을 꿀 것인가? 어떤 꿈? 이것 때문에 평생 고민하고 스스 로 불행을 짐 지기 마련이다. 내게 꿈꿀 권리가 없다면 어떻게 세상의 비난과 조소를 참아낼 수 있을 것인가?

 

햄릿과 오필리어를 감시하는 클로디어스와 폴로니우스, 성급히 옷을 챙겨입고 햄릿 만나러 가는 오필리어, 마치 그들의 관계를 알고 있는 듯 연기하는 햄릿, 그런 햄릿을 바라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 거트루드가 한 무대에 있다.

이 장 면들의 오버랩은 햄릿의 독백에서 읽어낼 수 있는 존재에 대한 고민, 자기 혐오, 자살 고민 및 복수 결심 등이 마치 클로디어스와 오필리어의 부적절한 성적 관계 때문인 것 같은 효과를 자아낸다.

우에노 치즈코는 남성에게 자기 혐오가 있으며 남성의 자기 혐오는 “자신이 남성이라는 사실에 대한 것”과 “자신이 충분히 남성이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것”33)에서 발현된다고 설명한다.

 

     33) 우에노 치즈코 저, 나일등 옮김, 뺷여성 혐오를 혐오한다뺸, 은행나무, 2012, 300쪽 참조. 

 

‘충분히 남성이지 않’은 경우로 성적 약자, 비 인기남, 프리터, 히키코모리 등을 예시로 들고 있는데 햄릿 역시 스스로 성적 경 쟁에서 패배했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이때 그의 상태를 클로디어스와의 남성성 대결에서 패배한 성적 약자의 자기 혐오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원 작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며 다양한 해석을 낳은 이 독백은 마치 엄마인 거트 루드에 이어 연인인 오필리어마저 클로디어스에게 빼앗긴 데에 대한 울분처럼 느 껴진다.

처녀성에 대한 남성들의 소유와 집착, 남성성에 대한 경쟁, 이것이 이 작품에서 “죽느냐, 사느냐”와 같이 존재론적으로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이는 <햄릿> 원작 및 이윤택의 의도에서도 벗어나는 해석으로 이 작품의 일종의 무의 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오필리어의 처녀성은 모두에게 중요한 문 제이며 그만큼 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오필리어의 처녀성 상실은 무엇보다도 오필리어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 치는데, 오필리어가 정신을 놓은 이후의 대사에 순결을 잃은 상황에 대한 비참한 심정이 담겨 있다.

미친 사람의 말을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지 판단은 다를 수 있지만 무대화 과정에서 오필리어가 클로디어스의 팔짱을 끼며 “당신은 견우, 나는 직녀. 당신을 기다릴게요.”라며 대사를 한다든가, “당신이 내 방에 들어오 면서 나는 순결을 잃었어.” “왜 날 건드렸죠? 정말 나와 결혼할 생각이었나요?” 라는 비난을 클로디어스를 노려보면서 던지고, 그런 오필리어의 시선을 불편해 하는 클로디어스의 태도에서 두 사람의 잠자리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이런 연출 로 인해 관객으로 하여금 오필리어가 미친 이유는 클로디어스에게 순결을 빼앗겼기 때문이고 그렇기에 햄릿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오필리어가 처녀였는지 아닌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이윤택은 처 녀가 아니며, 오필리어가 오빠와 있을 때라든가 햄릿과 있을 때 되바라진 행동을 볼 때, 처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해석을 드러낸 바 있다.34)

그런데 마치 오필 리어가 자기 처녀성을 상실하여 실성하고 죽음에 이르게 된 것처럼 보이는 실마 리가 있다.

우선 클로디어스와의 관계 이후 햄릿을 만나는 상황에서 당황하여 책 을 거꾸로 들고 읽는 척하는 장면이라든가 계속 옷매무시를 가다듬는 행동, 목소 리가 떨리고 고개를 들지 못하는 태도, “당신은 정숙한 여자요?”라는 햄릿의 질 문에 반문하며 대답하지 못하는 상황 등이 그렇하다.

결국 이윤택의 <햄릿>에서 오필리어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것은 남성들의 섹슈얼리티 억압과 자기 자신의 처녀성 상실에 대한 절망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35)

 

    34) “오필리어 같은 경우에는 백치미를 가진 애이기 때문에 자기 오빠하고도 자고 햄릿하고도 자고 클 로디어스 왕하고도 자고…… 그런 애다. 이런 식으로 이미 해석이, 아주 심도 있게 심리적으로 이 미 정교하게 되어있었죠.” 이윤택, 뺷연극작업-햄릿읽기뺸, 우리극연구소, 2001, 83쪽.

    35) 이윤택도 이 작품을 분석하면서 성과 권력의 관계에 대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다만 오필리어가 남성들에 대한 소유욕과 권력욕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을 “오필리어의 광증”의 원인으로 파악한다 는 점에서 문제가 있는 해석이라고 본다. “오필리어의 사랑은 햄릿에게도 향하고 왕에게도 향한다. 오필리아는 이미 레어티즈와 근친상간적 관계 속에 있었고 아버지의 사주에 의해서 햄릿을 시험하는 제물로 바쳐져 있다. 이젠 더 갈 곳이 없다. 그녀는 거리를 미친 여자처럼 돌아다니고, 세인들의 연민이 분분하다. 이제 그녀의 광증은 한 개인의 실성 이상의 사회적 문제가 되는 것이다. 민심의 동요는 곧 체제의 불안정이다. 민중들 에게 억측의 씨를 뿌릴 수도 있다. 단순히 미친 것이 아니라 권력의 제물이 된 것이고, 따라서 미친 광증은 사회적 의미를 지닌다. 남성들의 성과 권력의 희생양 오필리어. 권력을 쫓던 그녀의 성은 오히려 권력에 의해 이용당하게 되었다. 거기서 황음(荒淫)의 상태로 떨어졌다.” 이윤택, 위의 책, 130-131쪽.

 

그리고 원작에서 레어티즈의 부친 사망 경위에 대해 진상 규명을 하겠다는 다 짐이 이윤택의 공연에서는 이렇게 바뀐다.

 

“아, 누가 붉은 아편꽃이 있느냐? 그 꽃물로 내 비통한 뇌수를 발라 다오. 누가 송곳이 있느냐? 내 눈을 찔러 피눈물 로 내 동생의 미친 바람을 씻어 다오. 햄릿! 햄릿! 나와라, 이 더러운 탕아! 네 해골을 부수어 내 동생의 발 아래 뿌리리라.”

 

레어티즈는 오필리어가 햄릿에게 순결을 빼앗겼기 때문에 미쳤다고 생각하는 듯한 대사를 내뱉는다.

오필리어가 미친 데에는 아버지의 죽음, 오빠의 부재 등도 일정 부분 영향을 주었겠지만 이 윤택의 공연에선는 처녀성 상실로 인한 것에 가장 큰 비중을 둔다.

그런데 여기에서 특이한 점이 있다.

이윤택의 <햄릿>에서 오필리어는 방탕한  순수와 같은 형용모순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윤택에게 성녀와 창녀, 순결함과 방탕함은 반의어가 아니라 동의어이다.36)

 

오필리어 달콤한 사랑의 말을 즐기던 이 세상 모든 여인들 중에 내가 가장 비참하구나. 거트루드 사랑의 노래를 부르던 마음은 제 목소리를 잃어 버렸구나! 음정을 놓치고 쉰 소리를 내고 있어. 오필리어, 거트루드 내 사랑은 미친 바람으로 무너졌구나. 하나님 저는 이 제 어떻게 해야 하죠?

 

무대 구성도 그렇다.

“수녀원으로 가!”라며 사라진 햄릿을 바라보며 흰옷을 입 은 오필리어는 무대 상수에, 붉은 옷을 입은 거트루드는 무대 후면에 마치 오필 리어의 그림자인 양 나와 있다.

결국 둘은 다른 존재가 아니라 빛과 그림자 같은 한몸이며 같은 존재의 양면인 것이다.

이렇게 이 작품에서 여성은 성적 존재로만 그려진다.37)

 

     36) “오필리어는 절대 말에 의존하는 성격(Charater)이 아니다. 충동적이고 낙차 큰 당돌함이 보여져 야 한다. 오필리어는 보통 여자가 아니다. 도덕적인 여자하고도 관계가 없다. 반(反)도덕적인 여자 일 수도 있고, 굉장히 섹시한 백치였을 수도 있다.” 이윤택, 위의 책, 83쪽.

     37) 무대부터 여성의 성기를 상징하는데, 햄릿은 그 자체로 남근의 상징이 되어버리고 햄릿이 무덤 을 들고 나는 행위는 성행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독해할 수 있다. “자궁이다. 글로벌이기도 하지만 무대가 이렇게 덮여 있다가 열리잖아요. 여자의 그…… 음부로 봤어요. 이래 열면서 딱, 왕비가 서 있거든요.”(김남석, 앞의 책, 358쪽.) 이윤택은 자궁과 음부를 혼동해서 사용하고 있다. 이는 여성을 그저 성기 하나로 대체해서 보는 이윤택의 사고를 엿볼 수 있는 인터뷰다. 

 

여성이 가진 개성과 고유함은 무시되고 오직 성적인 존재로만 치환 되는 이러한 관점과 태도는 여성 혐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5. 결론

 

이 연구는 이윤택의 <햄릿>에 드러나는 처녀 선망과 이에 따른 여성 혐오 문제 를 분석하였다.

그 결과 이윤택의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재창작하는 과 정에서 여성 인물들의 처녀성에 과도한 집착을 보임으로써 원작의 서사에서 벗어 나고 여성 인물의 역할을 축소시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재창작은 단순한 해석의 차이를 넘어서 여성 인물의 독립성과 개성을 약화시키고 성적 순결을 중심으로 한 남성 중심적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에 서 문제가 있다고 하겠다.

이윤택의 <햄릿>뿐만 아니라 <햄릿>과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되는 <문제적 인 간 연산>, 이윤택의 대표 여성 혐오적인 작품인 <바보 각시>, 그리고 “남성연극” 으로 일컬어진 1990년대 다른 작품도 함께 비판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 히 1990년대 후반의 일부 작품은 페미니즘 연극이 강세를 보인 후 등장한 반페미 니즘적 경향의 작품들로 ‘백래시’ 현상을 통해 분석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에 대한 분석을 통해 당대의 사회적 편견과 연극을 통해 성차별을 재생산하는 것 에 대한 문제를 드러낼 수 있다.

이 연구는 앞으로 동시대 다른 작품도 비판적으로 재검토할 필요성을 제기하 며, 새로운 시각에서 연극사를 써나가야 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현재 연극계는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보다 평등하고 안전한 창작 환경을 조성하기 위하여 노 력하고 있다.

앞으로 본 연구자는 동시대 연극에 대한 비평적 작업과 페미니즘 연극과 백래시적인 현상을 살펴보는 작업을 통해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안전한 창작 환경을 갖추기 위한 노력에 보템이 되고 현재의 백래시에 대처할 단초를 찾 아보고자 한다.

 

 

참고문헌

1.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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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사, 평론 및 논문

김동욱, 「글로컬화로 완성된 <햄릿>」, 뺷Shakespeare Review뺸 44(4), 한국셰익스피어학회, 2008. 박돈규, 「김소희, 4년 침묵 깨고 대학로 무대에」, 뺷조선일보뺸, 2022.08.31. 연극비평집단 시선, 뺷월간 시선뺸 19∼39호, 연극비평집단 시선, 2019.02.21.∼2020.12.31. 윤단우 외, 뺷여성신문뺸, 2017.08.30.∼2018.12.13. 윤정호, 「카프카 <변신> 재구성 <사랑의 힘으로> 공연」, 뺷조선일보뺸, 1997.01.17. 이강임, 「이윤택의 ‘민족극’의 남근중심적(phallocentric) 신화 해체하기」, 뺷한국연극학뺸 31, 한국연극학회, 2007.01. 이윤택, 「연출가의 입장에서 본 셰익스피어 극의 번역 문제」, 뺷연극뺸 7, 2014.

3. 인터넷 웹사이트 ,

Asian Shakespeare Intercultural Archive(A|S|I|A) http://a-s-i-a-web.org

 

 

【요약문】

이 연구는 연극사에서 주목 받았던 작품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보려는 시도이며, 그 첫 대상은 성폭력 가해자이자 한때 ‘거장’으로 대접받았던 이윤택 각색·연출의 <햄릿>이다. 이윤택의 대본 각색과 무대 해석을 재검토하여 작가이자 연출로서의 관점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기존 평가의 정당성을 확인하고자 한다. 우선 이윤택의 <햄릿>은 셰익스피어 원작의 전쟁과 정쟁의 맥락이 축소되면서, 거트루드와 오필리어의 처녀성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윤택의 작업에서 거트루드의 처녀성은 햄릿의 출생 및 혈통과 관련있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이윤택은 햄릿의 친부가 선왕 햄릿이 아닌 클로디어스였다는 것을 암시하는데, 햄릿의 복수와 살인의 근본적인 동기를 바꾸어 논란의 여지가 있는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이윤택은 클로디어스와 오필리어의 정사 장면을 삽입하여 햄릿과 클로디어스를 오필리어의 처녀성을 둘러싼 경쟁자로 만들고 오필리어가 처녀성을 잃은 충격으로 죽음에 이르는 것처럼 보이게 연출함으로써 원작의 서사에서 벗어나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여성 캐릭터의 독립성과 개성을 무시하고 성적 순결을 중심으로 한 남성 중심적 관점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하겠다. 이처럼 이윤택의 <햄릿>은 여성의 처녀성을 둘러싼 남성의 경쟁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며, 그 갈등 속에서 여성 캐릭터가 소모되고 희생된다. 이렇게 여성 인물의 역할을 축소시키고 남성 중심 서사로 이끌어가는 방식은 현대 연극에서 지양해야 할 것이다.

【주제어】 이윤택, 햄릿, 처녀 선망, 순결 이데올로기, 여성 혐오

 

 

 

Abstract

Virgin Envy and Misogyny in Hamlet by Lee Youn-taek

Yu Yeonju( Lecturer, Department of Theater and Acting, Far East University)

This study takes a critical look at notable works in the theater history, with a particular emphasis on Hamlet, rewritten and directed by Lee Youn-taek. Lee diminishes the themes of war and political conflict in the original, leading to an exaggerated focus on the virginity of Gertrude and Ophelia. This obsession is linked to Hamlet’s lineage, as Lee suggests that Claudius is his real father. This twist alters the foundational motives for Hamlet’s vengeance and murder, presenting a controversial reinterpretation. Lee also diverges from Shakespeare’s narrative by incorporating a sexual encounter between Claudius and Ophelia, framing it as a rivalry with Hamlet that culminates in Ophelia’s death due to the loss of her virginity. Lee’s rendition of Hamlet centers around a male-dominated competition concerning the ownership of virginity, leading to the sacrifice of female characters in their conflicts. 【Key words】 Lee Youn-taek, Hamlet, virgin envy, purity myth, misogyny 

 

 

 논문접수일: 2024.05.25. 논문심사기간: 2024.06.04.~06.24. 게재확정일: 2024.06.24.

철학·사상·문화 제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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