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나드 로너간의‘지평-분석(horizon-analysis)’을 통한 데이비드 트레이시의 신학적 토대 연구/구균하.서강大
I. 들어가는 말
신학은 근대 이전까지 존재론에 근거한 하나님에 대한 진술을 통해 진 리주장의 정당성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근대가 촉발한 주체로의 전환 은 존재론적 당위에 근거한 진술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했고, 인식 주체에게 포착되는 지식(앎)만이 참되다는 주장에 이르게 했다.
이러한 전환은 근대 이후의 신학으로 하여금 새로운 신학적 진술 방법을 모색하게 했으며, 신학은 인식주체인 실존의 하나님 경험에 근거한 진술로 이를 극복고자 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실존적 경험에 따른 하나님 에 대한 진술도 그 실효성을 잃어가는 것 같다.
그리스도교에서 삶의 의미 와 가치를 찾는 이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축적된 사회조사의 결과2)를 통해서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2) https://kosis.kr/statHtml/statHtml.do?orgId=101&tblId=DT_1PM1502&conn_path=I3 매 10년 마다 한국의 종교인구 변화에 대한 대한민국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1995년 의 조사는 1985년 대비 ‘종교 있음’의 응답이 증가한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 시기에 종교의 역할이 유의미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2005년의 조사는 1995년 대비 역시 증가한다. IMF 구제금 융의 경제적 위기가 종교 가담율의 증가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2015년의 조사는 현저한 감소를 보인다. 한국의 정치, 경제, 문화 전반의 안정과 서구와의 교류 확대에 따른 의식 변화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연도 종교있음 불교 개신교 천주교 종교없음
1985 17,203,296 8,059,624 6,489,282 1,865,397 23,216,356
1995 22,597,824 10,321,012 8,760,336 2,950,730 21,953,315
2005 24,970,766 10,726,463 8,616,438 5,146,147 21,865,160
2015 21,553,674 7,619,332 9,675,761 3,890,311 27,498,715
이러한 현실은 탈근 대의 다원주의와 다원성에 대한 이해와 적절한 신학적 대응을 요청하는 것도 사실이다.3)
그러나 보다 실천적으로는 신학을 통한 진리주장의 정당 성을 현대 지식의 수준에 맞게 논증하는 것과 신학적 진술이 설득력을 가 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숙고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4)
3) 이상은, “다원성의 도전 속의 기독교 윤리- 현대 기독교 사회윤리의 도전으로서의 ‘다원주의’의 질 문”, 「조직신학연구」 41 (2022): 206-238 참조.
4) 「조직신학연구」에 발표된 최근의 여러 연구논문을 통해 이에 관한 연구가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 음을 확인할 수 있다. cf. 임영동, “기독교 자연신학을 위한 과학적 방법론-알리스터 맥그래스를 중 심으로”, 「조직신학연구」 39 (2021): 54-93; 오승성, “말씀과 체험으로부터의 인식론을 넘어 성경 으로부터의 인식론으로: 토대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 「조직신학연구」 40 (2022): 184-218; 윤형철, “탈진실의 해독제로서 비판적 실재론의 차용?: 웬첼 반 휴이스틴의 후토대주의 합리성에 대한 재검토”, 「조직신학연구」 42 (2022): 10-45.
즉, 현대 한국사회 에서 하나님에 관한 진리 주장을 유효하게 하기 위한 신학적 진술의 방법 을 모색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본 연구는 유효한 신학적 진술의 방 법으로 데이비드 트레이시(David Tracy, 1939-)가 주장하는 수정모델을 제안하고자 한다.
미국 가톨릭 신학자인 트레이시는 1974년 출판한 「질 서를 향한 복된 열정(Blessed Rage for Order)」에서 수정모델(revisionist model)을 주장한다.
수정모델은 역사를 통해 이어 온 전통적인 신앙의 핵 심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변화하는 상황에 적절한 신학을 전개하기 위 해서는 신학의 연구 대상인 성경, 전통, 교리와 교의(Dogma) 전반에 대한 철저한 재해석이 필요하며, 그 재해석은 다른 학문이 제공하는 보편적 세 계 이해를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수정모델의 기본 적 입장은 신학이 제공하는 앎(지식)인 하나님에 대한 진술이 인간 지식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서 초월적 방법인 버나드 로너간(Bernard Lonergan, 1904-1984)의 ‘지평-분석’에 기초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II. 버나드 로너간의 ‘지평-분석’
‘지평-분석’은 로너간의 고유개념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지평-분석’ 또는 지향성-분석(intentionality-analysis)이라 불리는 이 방법은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과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 카를 라너(Karl Rahner, 1904-1984)와 버나드 로너간5), 메를 로퐁티(Maurice Merleau-Ponty, 1908-1962)6), 알퐁스 드 발른스(Alponse Marie adolfe De Waelhens, 1911-1998)7), 폴 리쾨르(Paul Ricoeur, 1913- 2005)8), 에머리히 코레트(Emerich Coreth, 1919-2006)9)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사용했다.
5) 라너와 로너간의 지향성 또는 의도성은 그들의 초월적 방법(transcendental method)에서 확인될 수 있다. cf. Otto Muck, The Transcendental Method (New York: Herder and Herder, 1968).
6) 이와 관련된 국내의 연구는 다음과 같다: 김영필, “에드문트 후설의 ‘바깥의 현상학’-‘수동적 지향 성’을 중심으로”, 「철학논총」 106 (2021): 73-101; 홍성하, “해석학과 현상학:지향성 개념에 대한 해석학적인 현상학-브렌타노와 훗설 그리고 하이데거에게 있어서”, 「해석학연구」 1 (1995): 13-40; 문한샘, “메를로-퐁티의 시간성: 『지각의 현상학』을 중심으로”, 「현대유럽철학연구」 44 (2017): 29 참조.
7) Alphonse de Waelhens, Existence et Signification (Louvain: Paris: Editions E. Nauwelaerts; Beatrice Nauwelaerts, 1958) 참조.
8) 김영진, “지향적 대상의 이종성과 현상학-해석학의 대립”, 「해석학연구」 21 (2008): 59 참조.
9) 박병준, “인간, 물음으로서의 존재 - 철학적 인간학적, 형이상학적 탐구”, 「가톨릭철학」 12 (2009): 5 참조.
보다 일반적으로 ‘지평-분석’은 두 가지 주요한 사상운동, 즉 초월적 방법론 운동과 현상학적 운동의 결과로부터 도출된다.10)
10) David Tracy, The Achievement of Bernard Lonergan (Herder & Herder, 1970), 7.
로너간의 ‘지평-분석’은 감각 경험으로부터 얻은 인식을 기반으로 축 적된 인간의 인식이 비감각적 경험 대상, 곧 궁극적인 실재인 하나님에 대 한 인식에까지 이를 수 있음과 그 인식 가능성의 조건을 설명하는 초월적 방법(transcendental method)이다.
로너간은 초월적 방법인 ‘지평-분석’을 통해 인간의 인식 구조와 인식 가능성의 조건을 설명함으로써 인식의 확 장과 인식의 근거가 궁극적 실재로서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 여준다.
이러한 인식론적 근거의 확정은 모든 인식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 음을 의미하며, 이는 중세의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25-1274)가 논증한 존재론적 필연으로서의 하나님을 근대가 요청하는 인식론적 필연 으로서의 하나님으로 설명하는 방법이 된다.
1. 지평의 의미
로너간에 따르면 지평(horizon)은 ‘주어진 관점에서 본 최대 시야’ 11)로 서 의미를 찾는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최대 의미가 제한(limit)되어 있음 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제한된 최대 의미를 넘어 설 수 있는 가능성을 내 포한다.
지평은 인식의 범위를 규정하는 주체적 극(subjective pole)과 대 상적 극(objective pole)을 가진다.
주체적 극은 주체에 내재된 ‘의미를 향 한 주체의 의도(intention)’를 나타내고, 대상적 극은 의도를 가진 주체에 의해 파악되거나 주체에 개방된 ‘의미의 세계’를 나타낸다.12)
11) Bernard Lonergan, Insight: A Study of Human Uderstanding (New York, Philosophical Library, 1957): Preface to a Discussion, 152-164; Cognitinal Structure, 221-240; “Metaphysics as Horizon”, Gregorianum 44.2, 1963: 202-221; “Chirst as Subject: A reply”, Gregorianum 40.2, 1959: 242-270. cf. David Tracy, The Achievement of Bernard Lonergan, 14.
12) David Tracy, The Achievement of Bernard Lonergan, 14.
따라서 지평은 주체적 극과 대상적 극이 서로를 조절하고 조건화한 결과가 허락하 는 최대 시야가 제공하는 인식의 범위를 의미한다.
또한 지평에 의해 제 약된 인식은 인식 주체의 의도에 의해 파악된 대상의 정체와 그 의미가 된 다.
이런 점에서 인식주체가 대상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는 가능성은 주체 가 가진 의도로부터 주어지며, 근본적으로 이러한 주체의 알고자 하는 의 도는 하나님에 의해 주어지는 것으로 본다.
그렇기에 현 지평에서의 인식 은 인식 주체인 인간의 개별적 능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사한 은총인 ‘알고자 하는 의도’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된다.
결과적으로 인식은 은총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간이 인식과 인식 가능성을 선 사하는 하나님의 은총을 깨닫고, 은총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인식에 이르 는지가 설명되어야 한다.
로너간은 이를 의도성으로 설명한다. 로너간에게 의도성은 궁극적 의 미로부터 선험적으로 주어진 무제약적인 욕구로서 그 자체로 하나님의 은총이다.
따라서 궁극적 실재가 부여한 선험적 욕구로부터 추동되는 가 치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의도,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도이면서, 알고자 하는 의도가 내재되어 있는 인간, 곧 은총 안에 있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현재 주어진 최대 시야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앎(의미)을 넘어 보다
더 큰 의미와 궁극적 근원을 알고자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은총에 이끌린 인간은 자신의 현 지평에서 얻은 인식을 바탕으로 자신이 인식한 최대 의미를 넘어서는 의미를 발견하고, 자신의 인식을 궁극적 실 재에까지 확장시켜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다고 주장한다.13)
13) Bernard Lonergan, Method in Theology (NewYork: Herder&Herder. 1971), 8.
로너간이 말하는 궁극적 실재인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총이라는 앎을 향한 무제약적인 의도성은 칸트(Immanuel Kant, 1724-1804)가 물자체 (Ding an Sich)에 대한 인식(앎)의 욕구가 선험적으로 주어져 무제약적이 라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다만 칸트는 물자체를 인식할 수 없다고 보는 반면 로너간은 인간의 내면에 주어진 무제약적인 욕구인 은총을 통해서 은총의 근원인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입장이다.14)
2. 초월적 방법으로서 ‘지평-분석’
‘지평-분석’이 초월적 방법이라는 것은 ‘지평-분석’이 인간 인식의 과정 과 인식의 조건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지평-분석’은 주체의 인식에 한계가 있음을 밝힘으로써 인식 주체의 현 지평을 드러내는데, 이 과정 속에서 인식 주체는 하나님의 은총인 회심을 통해 한계를 가진 자신 의 현 지평을 초월함으로써 더 넓은 앎으로 나아가며, 궁극적으로 하나님 에 대한 앎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평을 초월하기 위해서는 현 재의 인식이 최종적이지 않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로너간은 인식 주체가 스스로 인식의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주어지는 회심(conversion)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로너간에서 있어서 회 심은 제약된 현 지평을 인식하는 출발점이며, 동시에 현 지평을 넘어서는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된다. 로너간은 회심을 3가지 단계, 곧 지적 회심, 도덕적 회심, 종교적 회심으로 구분한다.15)
14) 로너간의 은총에 관한 최근 논문은 다음을 참조. 박신연·이규성, “《대학장구(大學章句)》의 8조목 (八條目)과 로너간의 회심(回心,conversion)의 비교연구”, 「종교문화비평」 42 (2022): 353-355.
15) Bernard Lonergan, Method in Theology, 130-131, 238.
16) Bernard Lonergan, Method in Theology, 266.
그리고 각 단계의 회심 으로 도달하게 되는 인식의 잠정적인 결론을 자기-의식의 자기-전유(selfappropriation)로 정의한다.16)
회심이 현 인식의 한계를 알게 하면서, 그 인식을 초월하게 하는 근거가 되기에 회심으로 주어지는 결과로서의 자 기-의식의 자기-전유는 잠정적일 수밖에 없다.
즉, 자기-전유는 회심의 결 과이면서 현재의 인식 지평을 객관화하는 행위이다.
동시에 궁극적 실재 를 향한 변증법적 상승운동의 잠정적 결과로서 현재의 지평 너머에 있는 더 큰 의미를 향한 새로운 질문을 가능하게 하는 객관적 토대가 된다.
다 시 말하면 인식 주체는 하나님의 은총인 회심을 통해 자신의 지평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자기-전유에 이르고, 자기-전유는 또 다시 심화된 회심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총인 회심은 인식지평의 확 장을 위한 변증법적 순환 운동을 지속하여, 궁극적 실재에 대한 인식에 이 르게 한다. 로너간은 인식을 얻기 위해서는 경험, 이해, 판단의 인지과정이 필요 하다고 말한다.17)
로너간은 인지과정과 관련하여 인식을 세 국면(threefold division)으로 구분하여 설명함으로써 인식의 확장으로 나아가는 ‘지 평-분석’의 조건을 보여준다.
첫째, 앎(The known) – 나 자신이 제기하고 답할 수 있는 질문의 범위이 다.
둘째, 모른다는 사실을 앎(the known unknown) – 나 자신이 제기할 수 있고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며 해결 가능한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질문의 범 위, 그러나 사실상 아직 답을 할 수 없는 상태이다.
보다 전통적인 표현으로 는 docta ignorantia(무지의 지)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셋째, 모른다는 사실을 모름(the unknown unknown) – 질문을 제기하지 못하는 질문의 범위, 나 자신에게 의미가 결여되어 있기에 사실상 질문을 제기할 수 없는 상태이 다.
여기에서 의미가 결여되어 있다는 말은 문자적으로 나 자신에게 의미 없 음을 뜻한다.
전통적으로 이러한 상태를 indocta ignorantia(무지의 무지)의 영역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두 번째와 가까운 상태는 나의 앎(docta)과 나의 모름(indocta ignorantia) 사이에 있는 한계(the limit) 또는 경계(boundary) 라 부를 수 있다.
세 번째와 가까운 상태는 나의 지평 너머에 놓여 있는 것이 원칙적으로 질문의 답으로 주어진 것 아니라 나에게 무의미한 것과 무의미 한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는 상태이다.18)
17) Bernard Lonergan, Insight, 299-303.
18) Bernard Lonergan, Method in Theology, 20-24. cf. David Tracy, The Achievement of Bernard Lonergan, 9-10.
엄밀한 의미에서 아는 상태(The known)는 주체의 인식확장 과정인 ‘지평-분석’에로 나아가지 못한 상태이다.
따라서 이 상태는 인식이 객관 화되지 않은 상태, 주관성에 함몰된 상태, 모든 것을 안다고 착각하는 상 태, 완결된 인식에 이르렀다고 착각하는 상태로서 부분적이고 제한된 인식에 고착된 상태이다.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 질문하고 자신이 아는 것 의 범주 안에서 답을 하기 때문이다.
감각 경험을 통한 인식, 색의 구분이 나 외양에 따른 분류 기준에 대한 인식 등이 이에 해당한다.
모른다는 것 을 모르는 상태(the unknown unknown)는 인식 주체에게 무의미한 상태, 곧 앎의 대상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상태이다.
이 상태에서의 경 험은 성찰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이 상태는 인식이기보다 동물의 본능적 인 반응에 가깝다.
따라서 이 상태에서는 대상에 대한 경험만이 있고 성찰 을 통한 이해와 판단에 이르지 못한 상태로서 대상을 향한 질문이 제기될 수 없는 상태, 곧 전적인 무지의 상태이다.
현재의 인식 지평을 확인하고 이를 근거로 인식을 확장하는 ‘지평-분석’으로 이행하기 위해 주목해야 할 인식의 단계는 모른다는 것을 아는 상태(The known unknown)이다.
이 상태는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상태이며,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한 객관화가 이루어진 상태이다. 이 상태는 자 신이 경험을 통해 얻은 이해와 판단을 통해 얻게 된 기존의 인식으로는 새 로운 경험에 대한 이해와 판단을 할 수 없음을 인식한 상태, 곧 한계 경험 (limit experience)의 상태이다.
다시 말하면 기존의 인식으로는 정확히 무 엇인지 파악할 수 없지만 새로운 경험과 경험 대상의 정체를 질문할 수 있 는 상태이다.
이 상태는 새로운 경험과 그 대상이 지금까지 아는 것의 경 계 너머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아는 것의 경계가 분명히 드러나 지만, 질문하는 대상의 정체는 여전히 알 수 없기에 기존의 인식을 근거로 질문만이 가능한 상태이다.
모른다는 것을 아는 상태는 자신의 앎이 완전하다는 사실의 부정을 내 포한다.
로너간은 자신이 아는 상태임을 부정하는 것, 곧 자신의 앎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능케 하는 것을 회심(conversion)이라고 말한다.
하 나님의 은총인 회심에 이르러서야 지금까지 자신이 아는 상태가 완전한 앎의 상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회심에 이르지 않고서는 지금까지 아는 것의 최대 의미 너머에 더 큰 의미가 있다는 사 실을 알지 못하며, 지금까지 아는 것의 의미보다 더 큰 의미를 묻는 질문 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회심을 통해 모른다는 것을 아는 상태에 이르러 서야 자신의 인식 경계를 분명히 알 수 있고, ‘아는 것이 객관성’ 19)을 가 질 수 있게 된다.
19) 로너간은 이러한 객관성을 초월적 객관성 또는 구성적 객관성이라고 말한다. cf. Walter E. Conn, “Objectivity - A Developmental and Structural Analysis: The Epistemologies of Jean Piaget and Bernard Lonergan”, Dialectica 30. 2/3 (1976): 211.
이러한 설명은 인식의 객관성이 인식 주체의 경험적 확 실성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 가능성의 조건이며, 인식 가능성의 조 건인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다는 사실을 명확히 드러내는 초월적 논증 (transcendental arguments)이다
3. ‘지평-분석’의 신학적 함의
‘지평-분석’은 지평이 허락하는 최대 의미를 넘어서는 의미에 대한 질 문과 답을 하는 과정, 그리고 그러한 질문을 할 수 있는 조건을 확인하는 초월적 방법이다.
‘지평-분석’은 하나님의 은총인 회심으로 시작하고 하나 님의 은총에 힘입어 자신의 현 인식 지평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자기-전 유로 이어진다.
‘지평-분석’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인식 지평을 객관적으 로 인식하게 됨으로써, 자신의 인식이 완결된 인식이 아니라 궁극적 실재 인 하나님을 향한 과정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깨달음은 인식 주체 의 능력에 의한 획득이 아니라 궁극적 실재인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초월적 객관성에 의존한 깨달음이다.
‘지평-분석’은 현재의 지평을 명확히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며, 현재 의 지평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 의미를 파악함과 동시에, 지금 주어진 최대 의미보다 더 큰 의미를 향한 질문을 가능하게 하는 과정과 조건을 보여 준다.
이는 ‘지평-분석’이 앞선 인식을 내포하는 점진적인 인식의 확장을 의미하며, 동시에 궁극적 의미인 하나님을 갈망하도록 허락한 은총에 순 응하는 인간의 자발적인 응답을 보여준다는 것을 뜻한다.
로너간은 ‘지평분석’을 통해 자신의 지평을 확인하고 그 지평이 허락하는 최대 의미를 넘 어 궁극적 의미인 하나님에 대한 앎에 이르기 위해서는 인식 주체인 인간 이 현재의 지평을 최종 지평으로 여기지 않는 개방성(openness)과 변형 가능성, 곧 은총으로 주어지는 자기 부정과 자기 초월의 토대인 회심을 향 한 개방 그리고 자발적인 현 인식의 포기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를 통해 드러나는 ‘지평-분석’의 신학적 함의는 인간 인식 가능성의 조건 이며 인식의 궁극적 목적이 하나님임을 밝힘으로써 존재론적으로 설명했 던 하나님의 필연성과 실재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근대의 주된 진리와 진리의 근원에 대한 탐구 방식인 인식론으로 하나님을 설명하는 방법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III. 데이비드 트레이시의 수정모델
트레이시는 ‘지평-분석’을 통해 하나님을 중심에 둔 신학적 진술의 일 관성을 확보하면서 감각경험을 진리 파악의 유일한 근거로 보는 근대적 인식을 포괄하는 신학적 설명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그는 신학이 제공하 는 앎(인식/지식)의 현 지평을 파악하는 초월적 방법인 ‘지평-분석’을 신 학적 진술의 객관성을 확보하는 근거로 삼는다.
트레이시는 분석된 신학 의 현 지평으로부터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담은 신학적 진술의 한계를 수 긍하면서도, 그 진술에 담긴 하나님에 대한 인식의 객관성을 인식 가능성 의 조건이며 궁극적 인식 대상인 하나님으로부터 취한다.
마찬가지로 근 대 이후에 등장한 세속학문의 객관성도 인식의 근거이며 인식 가능성의 버나드 로너간의 ‘지평-분석(horizon-analysis)’을 통한 조건인 하나님으로부터 취한다.
즉, 모든 인식의 객관성은 인식 주체의 능 력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식의 근원이며 조건인 하나님으로부 터 주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학은 교회의 전통적인 교리와 교의에 대 한 진술 방법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세속학문의 진술 방법을 통해서도 하 나님에 대한 이해와 설명을 시도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입장에서 본다 면 현대의 탈종교적이고 다원적인 상황에 적합한 신학적 진술의 다양성과 일관성, 그리고 하나님을 통한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트레이시는 로너간의 ‘지평-분석’이 인식의 조건이면서 인식의 최종 대상이며 궁극적 실재인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인식 가능성을 담고 있는 초월적 방법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래서 그는 ‘지평-분석’으로 밝혀진 인식 지평의 자리에 자신이 분류한 각 신학이 제공하는 하나님에 대한 앎 (인식/지식)을 대입하여 설명함으로써 각 신학의 진술이 각각의 지평에서 객관적 진리를 주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그는 지금까지의 모든 신학 이 로너간이 말하는 지평, 곧 각자 도달한 자기이해의 최대치 안에서 각기 자기이해에 충실한 방식으로 하나님과 신앙을 이해하고 설명해 왔다고 본 것이다.
그렇기에 모든 신학은 신학의 궁극적 목적에서 볼 때, 부족하 거나 편협해 보일지라도 결코 부정되거나 제외되어서는 안 되며, 각각의 신학이 해왔던 역할을 지속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신학의 발전에 이바지하 고 있다고 본다.
트레이시의 관점에서 가장 최근에 등장한 신학이면서 동 시에 주류신학의 위치를 차지하는 신정통주의 신학은 근대주의가 제기한 질문에 적절한 답을 제공했고,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트 레이시는 신정통주의 신학이 신학방법을 슐라이어마허의 낭만적인 해석학이나 헤겔이 말하는 절대정신의 변증법에 한정하는 한, 다시 말해 자신 의 인식 지평에 머무는 한 근대적 질문의 특정 부분뿐 아니라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탈근대적 질문에 적절한 답을 주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트레이시는 ‘지평-분석’을 통해 기존 신학적 진술의 객관성을 옹호하고, 제 한된 지평에 따른 한계를 명확히 보여주고자 한다.
그리고 기존 신학의 한계를 극복하는 신학방법으로 수정모델을 제시하면서 수정모델 역시 변화 하고 발전해야 한다고 본다.
그럼에도 수정모델이 탈근대의 다원적인 진 리 주장에 대한 인식조차 하나님에 대한 인식의 과정으로 본다는 점에서 가장 적절한 신학적 진술을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1. 수정모델의 인식론적 전제
수정모델을 설명하기 위한 신학모델의 분류는 인식의 점진적인 발전 을 설명하는 로너간의 ‘지평-분석’의 방법, 곧 초월적 방법을 직접 적용한 것이다.
따라서 신학모델의 분류 기준과 방법을 살핌으로써 트레이시의 신학적 진술 방법인 수정모델이 초월적 방법인 ‘지평-분석’에 근거하고 있 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신학모델의 분류를 통해 트레이시는 지금까지 등장 한 모든 신학의 통찰과 그에 따른 진술이 각 신학의 상이한 인식 지평에 의해 제한된 이해를 제공하지만, 각 신학이 처한 맥락에서 볼 때, 신앙의 핵심에 대한 진술의 객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20)
20) David Tracy, The Achievement of Bernard Lonergan, 3.
트레이시는 근대의 자연과학과 인간 이성이 추구하는 앎 역시, 궁극 적 인식 대상인 하나님을 향한 앎의 과정에 있다고 본다.
그렇기에 현대의 신학은 과학을 비롯한 다양한 학문이 이루어 놓은 학문적 방법과 그 성과 를 포괄하는 신학적 진술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보았다.
즉, 자연과학 의 발견과 세계 이해의 발전이 인식의 근거인 하나님의 객관성으로부터 주어진 객관적 인식이며, 하나님을 향한 과정적 인식이기에, 신학은 이러 한 인식을 포괄하는 신학적 진술을 제공해야하는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는 것이다.
트레이시는 그 과제를 실천하는 방법이 수정모델이라고 주장 한다.
트레이시는 수정모델의 목적이 인간 이성이 이루어 온 세계에 대한 확장된 인식을 포괄하는 방법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에 관한 신앙을 설명 하는 것이기에, 수정모델은 현대 사회를 향한 교회의 복음선포 사명에 적합한 신학 방법이며, 점증하는 탈근대적 질문에도 신앙에 입각한 답을 제 공할 수 있는 유효하고 유연한 신학 진술의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트레이 시는 교회의 역사 속에서 각 시대에 따라 주도적 역할을 했던 모든 신학은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가치와 의미가 있으나, 지금의 교회가 맞이한 변 화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신학 진술 방법에 수정이 필요하 다고 주장하면서 수정모델을 제시했던 것이다.
2. 수정모델의 의미와 목적
트레이시가 말하는 수정모델은 일반적으로 정치학에서 말하는 수정 주의(revisionism)와 다르다. 트레이시가 수정모델(revisionist model)을 신학적 수정주의(theological revisionism)나 수정주의 신학(revisionism theology/revisional theology)으로 지칭하지 않는다는 사실21)에 주목해야 한다.
21) 트레이시는 Blessed Rgae for Order 1장의 각주 7에서 revisionist model이라는 용어를 사용 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The term “revisionist,” although often identified with inner-Marxist discussions, is perhaps appropriate to describe the post-neo-orthodox and post-liberal attempts of contemporary theologies to revise in a major way all the reigning models for Christian theology outlined in the following chapter.” 트레이시는 수정 주의자라는 용어가 마르크스주의자들 내부에서 사용하는 용어이지만 신학에서의 revisionist는 지 금까지 주도적인 신학 모델들에 대해 수정을 시도하는 포스트-신정통주의신학과 포스트-자유주 의신학이라고 주장한다. 용어 번역에 있어서 원문에 충실하기 위해 ‘수정주의자 모델’로 옮겨야하 나 문맥상 본 논문에서는 ‘수정모델’로 옮겨서 사용하겠다.
트레이시는 신학이 어떤 주의(-ism)로 규정되어 고착되기보다 신앙 의 대상인 하나님과 인간이 살아가는 현실인 세계에 대한 적절한 이해와 설명을 신앙인뿐 아니라 지성이 있는 모든 이들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보 았다.
이런 맥락에서 트레이시의 수정모델은 기존 신학의 폐기나 일방적 환원의 결과를 통해 새로운 신학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 방법적인 수정, 곧 신학적 진술 방법의 수정을 통한 통합적 이해와 설명을 지향한다고 이해 해야 한다.
트레이시는 자신이 분류한 각각의 신학모델이 모두 신학 본연 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고, 각각의 신학모델이 일정부분에서 성과를 이루었다는 긍정에서 출발하지만, 현대에 신학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 은 기존 신학모델의 단일한 관점과 진술 방법으로는 돌파할 수 없다고 보 았던 것이다.
트레이시는 맥스 블랙(Max Black, 1909-1988)의 언어에 대한 연구 를 바탕으로 이안 렘지(Ian Thomas Ramsey)와 프레데릭 페레(Frederick Ferre)가 종교 언어에 대해 수행했던 연구 결과22)를 통해 자신이 제안한 수정모델의 필요성을 논증한다.
블랙은 언어를 ‘그림(또는 척도) 모델 (picture or scale model)’과 ‘현시(顯示)(또는 유비) 모델(disclosure or analogue model)’로 구분한다.23)
이를 근거로 렘지와 페레는 종교 언어가 실재에 대한 정확한 그림을 제공하는 그림 모델이 아니며, 종교 언어는 신 학을 통해 해석되는 실재를 공개하거나 재현하는 역할을 하는 현시 모델 이라고 주장한다.24)
22) Max Black, Models and Metaphors (Ithaca, N.Y.:Cornell University, 1962), 219-243; Ian Ramsey, Models and Mystery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64), 1-21.
23) David Tracy, Blessed Rage for Order, 22의 각주 3 참조.
24) David Tracy, Blessed Rage for Order, 23.
트레이시는 종교 언어가 현시 모델이라는 종교언어분석 결과를 수용 하여 종교 언어를 구성하는 신학의 자기-지시(self-reference)와 대상-지시 (object-reference)를 분석한다.
즉, 언어분석의 관점에서 각 신학이 자기지시와 대상-지시를 통해 공개하는 내용을 분석함으로써 역사적으로 등 장했던 신학의 지평을 비교할 수 있게 한다.
트레이시는 역사적으로 등장 했던 신학들이 지시하는 제한된 지평에서 비롯된 제한된 자기-지시와 대 상-지시로는 세계와 그 세계에 대한 확장된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현 시대 를 향해 하나님에 대한 적절하고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공하기에는 불충 분하다고 본다.
특정 신학의 단일한 관점과 진술 방법으로는 인간의 공통 경험으로서의 종교 경험과 그리스도교의 경험이 혼재되어 있는 현재의 맥락을 온전히 파악하거나 설명하지 못한다고 본 것이다.
트레이시는 수정모델의 자기-지시를 그리스도교 신앙에 담긴 가치와 의미 그리고 세속성에 바탕하고 있는 세속 신앙(secular faith)에 담긴 의 미 모두를 찾고 실천하는 주체로서의 신학자라고 규정한다.
동시에 자기지시의 주체가 탐구하고 설명해야 할 대상-지시를 인간 공통 경험의 종교 적 차원과 그리스도교 전통의 기록인 성경으로 규정한다. 수정모델을 따 르는 신학자는 자기-지시에 근거하여 대상-지시에 담긴 의미를 찾고, 이 를 실천하기 위해 대상-지시에 대한 엄밀한 연구를 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 진다.
따라서 수정모델은 확장된 인식 지평을 반영한 자기-지시와 대상지시를 통해 현 상황에 대한 현상학적 이해를 마련하고, 앞선 신학모델들 의 성과를 해석학적 이해로 융합하고자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수정모 델은 종교 언어로서 신학이 제공하는 내용이 근대의 학문적 엄밀성을 확 보하고, 동시에 앞선 신학의 통찰이 다양하고 다원적인 탈근대에 적절하 고 이해 가능한 신학적 진술이 될 수 있도록 재해석함으로써 신학 본연의 목적에 이르고자 한다.
트레이시의 수정모델은 역사를 통해 이어온 다양 한 신학의 성찰들과 신학의 중심 주제를 현재의 관점으로 다시 바라보고 (revision), 각 신학의 성과를 현실에 적합하게 표현하는 방법에 대한 기획 으로 드러난다.
그렇기에 트레이시의 신학은 새로운 신학의 정립이 아니 라 신학의 진술 방법에 대한 모색이라고 보아야 한다.
3. ‘지평-분석’에 따른 신학모델의 분석
트레이시는 다원적인 현대의 상황에서 신학이 다루는 다양한 대상에 대한 해석의 기준과 신학의 역할에 대한 명료화가 필요하다는 분석을 통 해 신학모델의 구분과 해설의 필요성을 주장한다.25)
25) David Tracy, Blessed Rage for Order, 22-23.
트레이시는 ‘지평-분 석’으로 각 신학모델의 지평을 확인한다.
그는 각 신학모델의 인식 지평에 내재된 주체적 극의 자리에 신학의 주체를 드러내는 자기-지시를 둔다.
그리고 대상적 극의 자리에 신학의 연구 대상을 드러내는 대상-지시를 둔다.
그리고 지평을 확인하기 위해 양극이 서로 조건 짓는 내용을 파악하듯 이, 자기-지시와 대상-지시가 서로 조건 짓는 내용을 파악함으로써 각 신 학모델이 종교언어로서 현시모델을 구현하는 정도를 보여준다.
즉, 주체적 극과 대상적 극의 상호 조건지음을 통해 현 지평이 드러나듯이, 각 신 학이 공개하는 자기-지시와 대상-지시의 상호 조건지음을 살핌으로써 각 신학의 현 지평을 객관화하고, 각 신학이 추구하고 밝히고자 하는 바를 비 교한다.
이 과정은 트레이시의 신학적 토대가 ‘지평-분석’에 있으며, 초월 적 방법으로서의 ‘지평-분석’이 수정모델의 목적과 그 목적을 실천하는 기 준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본 절은 신학모델에 대한 트레이시의 ‘지 평-분석’을 살핌으로써 ‘지평-분석’이 신학에 적용되는 구체적 예를 확인 하도록 하겠다
1) 정통주의 신학
정통주의 신학(Orthodox theology)26)의 신학자는 한마디로 그리스도 교 전통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가진다.
26) 원문 Orthodox theology는 정통신학으로 옮기는 것이 정확하다. 하지만 국내 신학계에서 사용하 는 용어는 이를 정통주의신학으로 옮기고 있기에 기존의 표기를 따르기로 한다.
그들의 자기-지 시는 신학자와 신자들이 속한 전통에 충실한 신앙인으로서의 주체이다.
정통주의 신학의 대상-지시는 신앙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이다.
따라서 정 통주의 신학은 근대주의자의 연구와 성과를 신학의 내적 요인으로 고려 하지 않는다.
정통주의 신학의 입장에서 볼 때, 가장 완전한 해석의 원칙 은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한다’는 원칙이 된다.
이런 입장은 신앙과 전통 에 대한 충실한 자기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자신의 전통에 속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정통주의 신학의 전통에 대한 해석과 인간 이해는 무의 미하거나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2) 자유주의 신학
자유주의 신학(Liberal theology)27)의 핵심은 모든 근대 학문에 존재하 는 비판적 추진력을 구성하는 세속신앙에 대한 자유주의 신학자의 윤리적, 실존적 실천이다.
이들의 자기-지시는 근대성의 기본 가치, 즉 모든 의 미와 진리 주장에 대한 비판적 연구가 주장하는 가치를 실천하는 근대적 의식을 가진 주체로서의 신학자이다.28)
27) 원문인 Liberal theology는 자유신학으로 옮기는 것이 정확한 번역이다. 그러나 국내 신학계에서 는 이를 자유주의신학으로 옮기고 있기에 기존의 표기를 따르겠다.
28) David Tracy, Blessed Rage for Order, 26.
자유주의 신학의 대상-지시는 이 러한 근대주의적 실천과 비판에 따라 재구성된 그리스도교 전통이다.
따 라서 자유주의 신학은 더 이상 순수한 전통에 대한 단순한 해석에 머물지 않는다.
전통의 해석에 있어 근대적 의식이 반영된 비판적 연구 과정에 관 심을 두고, 여러 학문적 발견과 성과에 부합하는(adequate) 방식으로 전 통을 재구성한다.
자유주의 신학은 내용적으로 신앙의 중심을 유지하면 서 형식적으로 근대주의의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그 시도는 실패에 도달하게 된다.
3) 신정통주의 신학
신정통주의 신학(Neo Orthodox theology)29)의 자기-지시는 전통적인 신자로서 어떤 신념을 가진 신학자가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앙, 신뢰, 신적 사랑(agape)을 향한 기본적인 실존적 태도를 가진 주체로서의 신학자이 다.
29) 원문인 Neo Orthodox theology는 신정통신학으로 옮기는 것이 정확한 번역이다. 그러나 국내 신 학계에서는 이를 신정통주의 신학으로 옮기고 있기에 기존의 표기를 따르겠다.
이들의 대상-지시는 예상치 못한, 공로가 없는, 의로운 사건으로서 인 간 존재 안에서 작동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은총이다. 신정통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과 은총에 대한 실존적 태도를 갖도록 요청하며 자유주의 적이고 세속적인 인식이 환상이라고 비판한다.
트레이시의 분석에 따르면 신정통주의 신학은 넓은 의미에서 자유주의 신학의 전통에 놓여있다.30)
트레이시는 신정통주의 신학자들이 마르 크스(Karl Marx, 1818-1883),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 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84-1900)가 세속 문화에서 수행했던 자유주의적 근대성에 대한 수용과 부정이라는 두 가지 태도를 신학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본다.
신정통주의 신학이 보여준 자유주의 신학과 근대주 의에 대한 비판은 단순히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거부에 그친 게 아니라 두 가지 측면의 비판을 통해 자유주의 신학을 비판적으로 계승한다고 말한 다.
첫째, 신정통주의 신학은 인간 상황에 대한 자유주의 신학의 분석이 인간의 유한성과 가능성은 잘 설명할 수 있지만, 비극과 공포, 인간의 죄 라는 부정적인 요소는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그럼에도 신정통주의 신학은 자유주의 신학이 주장한 근대성의 기본가치를 수용함으로 써 이를 계승한다.
둘째, 신정통주의 신학은 자유주의 신학이 수행한 예수 그리스도 사건에 대한 재해석이 실패했다고 비판하고 이에 대한 재해석 을 시도함으로써 이를 계승한다.31)
근본적으로 신정통주의 신학은 신앙에 대한 명시적인 인식만이 진정 한 그리스도교 신학의 적절한 토대를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 서 신정통주의 신학자가 신학의 가능성을 위한 실존적 조건으로서 신학 자 자신의 신앙을 주장함으로써 정통주의 신학과 합류한다.
그러나 신정통주의 신학자의 신앙은 정통주의 신학에서 말하는 신앙과 달리 근본적 으로 경험적이다.
따라서 사실상 신정통주의 신학은 근대 이후의 세속주의자(secularist)처럼 본질적으로 인간 경험의 변증법적인 성격에 대한 더 깊은 인식을 요구한다.32)
30) David Tracy, Blessed Rage for Order, 27.
31) David Tracy, Blessed Rage for Order, 27.
32) David Tracy, Blessed Rage for Order, 28.
신정통주의 신학은 인간 상황의 부정적인 요소 들인 죽음, 죄책감, 비극, 죄에 대한 심오한 분석을 통해 자유주의 신학과 근대주의가 보여준 것 보다 실제 인간 상황에 대한 더 정확한 이해를 가능하게 했다.
더욱이 신정통주의 신학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무한한 질적 구분과 하나님과 세계 사이의 돌이킬 수 없는 변증법적 성격을 주장한다.
이를 통해 신정통주의 신학은 자유주의 신학이 인간 경험에 대한 ‘적합성의 기준(criteria of adequacy)’에 따라 그리스도교 전통을 재구성하려고 했던 것에 그리스도교 전통의 중심 의미에 대한 ‘적절성의 기준(criteria of appropriateness)’을 포함하여 심화시켰다.33)
33) David Tracy, Blessed Rage for Order, 29.
4) 급진주의 신학
급진주의 신학(Radical theology)34)의 자기-지시는 근대 이후의 현대적 이고 세속적인 지적, 도덕적 가치를 추구하는 신학자로서의 주체이다.
대 상-지시는 전통 그리스도교의 근본적인 재구성이다.
그 재구성은 전통적인 신앙 대상인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이다.35)
이러한 부정은 타인을 위한 삶의 전형으로서 예수를 바라보거나 예수를 해방된 인간성의 결정적 육화(incarnation)의 현현으로 긍정하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전통주의 신 학, 자유주의 신학, 그리고 신정통주의 신학이 말하는 하나님에 대해 근 본적으로 반대하는 급진주의 신학은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하나님은 인간 을 서로 소외시키고, 인간을 세상으로부터 소외시키며, 궁극적으로 인간 을 진정한 자아로부터 소외시킬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유지되어야 할 전통으로서의 그리스도교의 주장은 해방과 타인에 대한 헌신으로 세상을 인간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삶, 즉 나자렛 예수의 현재화된 삶과 현대 세계에서 하나님의 죽음이라는 해방적 사건에 대한 확언뿐이라고 주장한 다.36)
34) 원문인 Radical theology는 Radical의 원래 의미인 근본, 뿌리라는 뜻을 살려 근본신학으로 옮기 는 것이 정확한 번역이지만 국내 신학계에서는 이를 급진주의 신학으로 옮기므로 혼란을 피하기 위해 이를 따르기로 한다.
35) David Tracy, Blessed Rage for Order, 31.
36) David Tracy, Blessed Rage for Order, 31.
급진주의 신학의 강점은 현대의 세속적 가치와 삶의 가능성을 그리스도교의 근본 가치로 바라보려는 모든 인간이 직면하는 질문, 즉 하나님 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가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이해인가를 묻는 질문을 통해 그리스도교의 근본 가치를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입 장의 약점은 하나님의 실재를 긍정할 의미 있는 방법이 없다면 신학을 계 속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5) 수정모델
수정모델(Revisionist model)은 정통주의 신학, 자유주의 신학, 신정통 주의 신학, 급진주의 신학의 상대적 강점과 한계를 염두에 두고, 고전적 자유주의 신학자와 근대주의자의 비판적 과제를 이어가는 데 전념한다.
이를 통해 수정모델을 지지하는 신학자는 더 많은 역사적, 철학적, 사회과 학적 연구와 성찰이 제공한 새로운 자료 그리고 후기 신정통주의 신학의 성과와 급진주의 신학의 우려에 비추어 이전의 신학모델들이 보여준 한 계를 바로잡으려 노력한다.
따라서 수정모델을 지지하는 신학자에게 현 대 신학의 중심 과제는 탈근대로 규정된 현재에 대한 인식과 그리스도교의 주요 가치, 인지적 주장, 실존적 신앙에 대한 재해석을 바탕으로 두 요소 간의 관계를 살피고, 두 요소 간의 통합과 화해를 지향한다.37)
무엇보다 수정모델을 지지하는 신학자는 세속의 동료와 함께 계몽주의적 실존주의가 초래한 실존적 무력감의 결과가 신비화로 돌아가는 계 기가 되는 것을 거부한다.
오히려 비판이론, 상징에 대한 재해석, 책임 있 는 사회적, 개인적 실천의 지속을 통해 현대의 세속신앙을 포괄할 수 있 도록 전통적인 그리스도교의 자기 이해에 수정을 시도한다.38)
37) David Tracy, Blessed Rage for Order, 32.
38) David Tracy, Blessed Rage for Order, 32.
수정모델은 새로운 신학을 위한 체계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경험에 근거해서 신학을 전개하고자 했던 자유주의 신학을 비판적으로 수용함으 로써 현대에 맞게 수정하는 방법을 지향한다.
수정모델의 자기-지시는 세속성의 신념과 가치를 드러내는 세속신 앙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신념, 가치, 신앙을 동시에 실천하는 신학자로 서의 주체이다.
수정모델은 이런 이중적 실천을 통해 비(非) 신론적(nontheistic)이고 반(反) 그리스도교적인 세속주의라는 세속성에 대한 일반적 인 이해와 반(反) 세속적이고 종교적인 초자연주의라는 그리스도교에 대 한 일반적인 이해의 통합을 시도한다.
이 같은 이중적 실천은 수정모델이 지향하는 신학의 과제이다.
따라서 수정모델을 지지하는 신학자는 세속성과 그리스도교 전통이 의미와 진리에 대한 공개적인 기준에 따라 도전 받고 검증되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수정모델은 세속성을 신앙의 관점 에서 이해하고자 했던 신정통주의 신학의 성과에 대한 수용과 더불어 신 정통주의 신학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 그리스도교 전통에 대한 공개 적인 검증을 시도함으로써 탈근대의 요청에 응답하고자 한다.
수정모델의 대상-지시는 보편적인 인간 공통 경험에 나타나는 의미와 그리스도교 전통의 중심 주제에 대한 해석에 나타나는 의미 모두를 비판 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즉, 수정모델은 인간의 공통 경험에 존재하는 종교적 의미와 명시적 종교인 그리스도교의 경험을 담고 있는 전통과 성 경에 존재하는 의미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수행한다.
IV. 수정모델에 대한 비판과 신학적 과제
트레이시는 자기-지시와 대상-지시를 통해 각각의 신학모델을 분석함 으로써 자신이 제안하는 수정모델이 다른 신학모델들의 지평을 아우른다 고 주장한다.
이는 다원주의로 대표되는 탈근대가 신학에 던지는 과제, 즉 현재 해결되지 못하거나 혹은 이해되거나 파악되지 못했던 신학의 과제 를 해결하고 파악하는 유효한 방법이 기존 신학모델의 강점을 취하면서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를 하는 수정모델에 있다는 주장과 이어진다.
트레이시는 ‘지평-분석’으로 밝힌 수정모델의 지평을 통해 인식의 근거와 조 건인 하나님을 중심으로 지금까지의 신학이 보여준 지평을 포괄하고 초 월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트레이시는 수정모델이 제시하는 자기지시의 두 가지 요소인 그리스도교 신앙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세속신앙 의 의미와 가치가 모두 궁극적 실재인 하나님에 대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 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현재의 인식 지평에서 객관성을 확보한 두 요소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인식은 수정모델을 수행하는 주체의 능력으로 얻어 진 것이 아니라 인식 가능성의 조건이며 궁극적 인식 대상인 하나님으로 부터 주어진 것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인식으로 나아가는 과정적 인식이 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수정모델의 신학적 진술은 확장된 인식에 개방되 어야 하며, 언제나 변화 가능한 잠정적 진술이면서도 객관적 진술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 모든 인식의 객관성과 사실성을 담보하는 근원을 인식주 체가 아닌 하나님으로 상정함으로써 수정모델에 따른 신학적 진술은 신 정통주의 신학으로부터 비판받았던 자유주의 신학으로 회귀하지 않게 된 다.
마찬가지로 인식의 객관성과 사실성의 근원을 하나님으로 둠으로써 세속학문의 지식(인식)이 그 자체로 객관성을 가지면서도 그 인식의 근원 이 하나님임을 재확인한다. 이를 통해 트레이시가 비판했던 세속학문의 진술을 신앙으로 환원했다는 신정통주의 신학을 넘어서게 된다.
그러나 그가 주장하는 수정모델이 이론적인 정합성을 가졌음에도 한 계와 위험성에 대한 비판에서 자유롭지는 않아 보인다.
대표적인 비판은 예일학파와 시카고학파 간의 공공신학 논쟁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39)
39) 김은득, “공적으로 신학하기(Doing Theology Publicly): 헤르만 바빙크를 중심으로”, 「조직신학 연구」 44 (2023): 150-185.
예일학파의 관점에서 본다면, 수정모델이 인식의 점진적인 확장을 배경으로 변화하는 시대적 요청에 부합하는 신학적 설명을 시도한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지만, 현대의 다원주의와 다원성에 대한 담론을 포괄하기 위 해서는 자연스럽게 신앙에 대한 상대주의적 태도를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정통주의의 관점에서 바라본 수정모델의 주장은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포기나 타협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카고학파와 예일학파 간의 공공신학 논쟁은 데이비드 트레이시의 수정모델과 조지 린드벡(George Arthur Lindbeck, 1923-2018)40)의 후기 자유주의신학 사이의 논쟁으로 요약될 수 있다.
린드벡은 종교와 경험에 대한 신학의 세 가지 모델41)을 제시하면서 트레이시의 수정모델을 경험-표 현 모델(experiential-expressive model)로 분류한다.
린드벡에 따르면 수 정모델에서 주장하는 종교 경험은 다양성을 고려한 공통점에 대한 설명을 시도하기에, 수정모델로는 그리스도교와 타종교의 차별성을 확인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42)
이는 그리스도교의 특수성이 종교적 보편성으로 희석 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린드벡은 문 화-언어모델(cultural-linguistic alternative model)을 주장한다.
그는 이 모 델을 통해 종교를 일반적 인간 경험의 범주에서 해석될 수 있는 대상이 아 닌 ‘신화나 설화로 구체화되고 의식화된 인간의 자아와 세계에 대한 경험 과 이해를 구성하는 포괄적인 해석 체계’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43)
40) 미국 루터회 신학자이며 예일대학교 교수였다. 에큐메니칼 신학자이며, 한스 프라이(Hans Wilhelm Frei, 1922-1988)와 함께 후기자유주의 신학(postliberal theology)을 이끌었다.
41) George A. Lindbeck, The nature of Doctrine: Religion and theology in a postliberal ag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84), 30-45. 린드벡은 종교와 경험에 대한 이해에 따라 신학 을 명제주의 모델(propositionalism model), 경험-표현 모델(experiential-expressive model), 문화-언어 대체 모델(cultural-linguistic alternative model)로 구분하며, 자신은 문화-언어 모 델의 입장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린드벡에 따르면 로마 가톨릭 신학자인 로너간과 트레이시는 경 험-표현 모델의 입장이며, 이에 따른 교리의 이해는 감정, 태도 또는 실존적 지향을 상징적으로 표 현한 것이라고 본다.
42) George A. Lindbeck, The nature of Doctrine, 41-42.
43) George A. Lindbeck, The nature of Doctrine, 40-41. cf. Werner G. Jeanrond, “Theology in the Context of Pluralism and Postmodernity: David Tracy’s Theological Method”, in Postmodernism Literature and the Future of Theology, ed. David Jasper (Macmillan Press, 1993), 156.
트레이시의 수정모델은 신학 본연의 목적에 이르기 위한 해석의 틀을 넓힌 다는 점에서, 또 인식의 근원과 인식 가능성의 조건을 하나님으로 두고 있는 초월적 방법을 통해 인식론의 신학적 통합을 지향한다는 점에서는 분 명 유의미하지만, 신앙의 특수성을 보편성으로 환원해서는 안 된다는 린드벡의 비판에 따라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현재 한국 교회는 말씀의 진리를 따르는 믿음에 확신을 가 지면서도, 변화되는 시대의 요구에 응답해야 하는 이중의 과제를 안고 있 다.
이러한 현실은 수정모델과 이에 대한 린드벡의 비판을 통합하는 신학 적 진술 방법에 대한 숙고를 요청한다고 할 수 있다. 자칫 복음의 가르침이 신앙공동체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남게 되어서도 안 되며, 동시에 교회의 입장에서 대중들이 신앙과 다원주의를 혼돈하도록 방치해서 도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더더욱 트레이시와 린드벡의 신학적 진 술 방법의 대조적인 관점은 한국 교회의 미래를 위해 면밀한 검토가 이루 어져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 두 관점의 통합을 모색할 수 있는 단초가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1854-1921)의 신학방법인 ‘종합적 방법 (Synthetic Method)’에 있다는 의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44)
바빙 크는 경험론과 합리론의 종합적 대안으로 실재론적 인식론을 제시하면서 인간의 일상경험을 인식의 출발점으로 본다.45)
이는 트레이시의 인식론적 전제와 중첩된다.
한편으로 바빙크는 신학이 다른 학문과는 다른 고유한 인식론을 가지고 있음으로 해서 인간 내부에 하나님의 객관적 계시에 상 응하는 주체적 기관으로서 신앙을 말한다.46)
44) 김은득, “공적으로 신학하기(Doing Theology Publicly): 헤르만 바빙크를 중심으로”, 「조직신학 연구」 44 (2023): 165-176.
45) 김은득, “공적으로 신학하기(Doing Theology Publicly): 헤르만 바빙크를 중심으로, 172.
46) 김은득, “공적으로 신학하기(Doing Theology Publicly): 헤르만 바빙크를 중심으로, 174.
이는 린드벡의 문화-언어 모 델에서 말하는 ‘구체화되고 의식된 인간의 자아’와 중첩된다.
이러한 중첩 을 보이는 바빙크의 신학방법은 수정모델의 핵심인 인식 가능성의 조건 이며 궁극적 인식 대상인 하나님을 중심에 두는 초월적 방법과 경험을 통 해 점진적으로 축적되는 인식 과정을 전제하는 인식론이 현대의 다원적 진리 주장으로 희석되지 않도록 신학 주체의 실존적 조건에 대한 성찰의 끈을 놓치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이렇듯 트레이시의 수정모델이 신앙의 보편성을 강조하면서 신앙의 특수성이 약해졌다는 비판을 받았지 만, 수정모델의 신학진술 방법에 대한 변화가능성을 견지하고, 무엇보다 현대의 다원적인 상황 속에서 ‘신학적 진술과 진리주장의 객관성을 논증 하는 기준’ 47)을 초월적 방법에 따라 하나님에게 두는 중심을 유지한다면, 트레이시의 수정모델을 통한 신학 진술 방법에 대한 연구와 성찰은 탈종 교화가 가속되는 한국의 교회 현실에서 기존의 신학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과 이해를 제공하는 데에 기여할 것이다.
47) 신학적 진리 진술과 진리 주장의 객관성을 논증하기 위해 트레이시가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는 기 준은 초월적 방법(transcendental method)의 핵심인 하나님이다. 그는 이 방법을 통해 인식 론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존재론적인 차원에서의 궁극적 실재를 하나님으로 전제하고 있다. 트 레이시는 로너간과 라너의 초월적 방법에 대한 비판적 수용을 통해 수정모델을 전개하고 있다. 이에 관해서는 초월적 방법에 대해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는 다음의 논문 Michael G. Parker, “Transcendental methods and transcendental arguments: A criticism of Rahner’s transcendental theology”, The Thomist: A Speculative Quarterly Review 63.2 (1999): 191- 216. 참조.
V. 나가는 말
트레이시의 수정모델은 기존의 신학을 현대의 상황에 적용하기에 한 계가 있지만 폐기해야할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기존의 신학은 자신의 인 식을 포함하면서 그 인식을 넘어서는 지평을 가진 수정모델 안에서 새롭 게 해석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수정모델 역시 완결된 신학적 진술 방 법이 아니라 확장되는 인식 지평에 의해 변화에 개방적이어야 한다.
트레 이시는 ‘지평-분석’을 통해 각 신학모델을 긍정하면서도 동시에 각 신학 이 자리한 지평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주는 기준을 제공함으로써 지금까 지 등장한 신학으로는 현대의 다원적 상황 속에서 신학이 추구하는 궁극 적인 목적을 이루는 방법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트레이시는 초월적 방법인 ‘지평-분석’을 통해 인식의 과정과 인식 가 능성의 조건을 하나님으로 상정함으로써 모든 인식과 지식에 담긴 진리 가 하나님을 향한다고 본다.
따라서 하나님을 인식하는 과정에 있는 모든 학문적 진리주장은 결정적이거나 완결된 것이 아닌 수정 가능한 잠정적 인 진술이어야 한다고 본다.
그렇기에 신학에 있어서도 수정모델과 각 신 학모델의 인식 지평은 모두 상대적 지평으로서 궁극적 실재인 하나님을 알게 되는 절대적 지평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트레 이시는 상대적 지평이 절대적 지평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지평 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인식과 더불어 지평 확장에 개방된 자세가 필요하 며, 이러한 자세는 인식주체의 능력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 은총의 선물 인 회심으로 주어진다고 본다.
트레이시는 ‘지평-분석’을 신학모델에 적용함으로써 수정모델과 모든 신학모델이 자리한 인식 지평의 한계를 드러내고, 현재와 미래의 신학이 지향해야 할 바를 제시하고자 했다.
트레이시의 수정모델에 의하면 현대 신학은 그리스도교 전통과 인간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현대적으로 해석 해야 한다.
따라서 신학적 진술은 다원주의 상황에서 그리스도교 전통과 인간에 대한 해석의 적합성, 곧 근대의 과학적 사고를 하는 지성인이라면 누구나 이해 가능해야 한다는 조건에 적합해야함과 동시에 그러한 이해 가능한 해석이 그리스도교 전통을 훼손하지 않는 적절한 해석이 되도록 해야 한다.
트레이시의 수정모델은 전통을 통해 전해진 신앙과 이에 대한 신학적 담론이 시대착오적인 교리의 반복에서 벗어나 과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 을 통해 확장된 세계이해를 포괄하는 재해석의 틀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 를 위해 그 중심에 모든 인식의 근원이며 인식 가능성의 조건인 하나님을 둠으로써 인간의 경험과 경험을 통한 인식의 확장을 긍정하면서도 하나 님에 대한 인식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하나님의 은총인 회심에 개방적인 태도를 갖도록 요청하고 있다.
한편 트레이시의 수정모델은 포괄적인 보편성을 강조함으로써 그리스도교 신앙의 특수성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비판의 여지를 가진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수정모델의 인식론적 전제인 하나님 은총에 대한 굳건한 신앙과 자기-부정 그리고 은총에 기댄 인식 지평의 확장에 개방성을 유지함으로써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수정 모델이 최종적인 신학적 진술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지평에서 만 유의미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현대의 상황은 다원주의와 다원성에 대한 담론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수정모델의 토대를 이루는 초월 적 방법에 따른 신학적 인식론과 진술 방법은 현대 신학의 주요한 고려 대 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바빙크가 보여주었듯이 신학에 접근하는 인식론 적 성찰이 신앙의 기초원리와 상응하는 지평을 포괄하게 될 때, 트레이시 가 주장하듯 신학적 진술이 교회를 넘어 지성인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의미로 재해석될 때, 수정모델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인식론적 전제에 따라 현재의 인식 지평을 넘어 신앙 변증의 새로운 방법 과 기준을 모색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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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초록]
본 논문은 다원성을 주장하는 현대사회에서 신학이 하나님에 관한 진 리 주장을 유효하게 하기 위한 신학적 진술의 방법을 다룬다.
신학은 근대 이전까지 존재론적 진술로 진리 주장의 정당성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근대가 가져온 주체로의 전환은 새로운 신학적 진술 방법을 요청했으며, 신학은 하나님에 관한 인식주체의 실존적 진술로 이를 극복고자 했다.
그 러나 신학이 탈근대의 다원주의와 직면하면서 실존을 통한 신학적 진술 의 정당성은 개별 실존의 선택이라는 비판으로 또 다시 위기에 놓이게 된 다.
본 논문은 탈근대에 적합한 신학 진술의 방법을 데이비드 트레이시의 수정모델에서 찾고자 한다. 수정모델은 버나드 로너간의 ‘지평-분석’에서 다루는 인식 지평과 그 확장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는 수정모델이 근대 이후 확장된 인간의 앎(인식)을 반영한 신학적 진술을 시도하고 있으며, 동시에 수정모델의 신학적 진술이 초월적 방법으로서 인식 가능성의 조 건이며 궁극적 인식 대상인 하나님의 존재로부터 부여된 객관성을 가진 다는 사실을 내포한다.
본 논문은 하나님의 은총이 인식과 인식 가능성의 조건임을 밝히는 로너간의 ‘지평-분석’을 살피고, 트레이시가 초월적 방법인 지평-분석에 따라 분류한 신학모델들의 한계를 밝힌다.
이 과정은 수정 모델이 앞선 신학모델들의 장점을 수용하고,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확장된 인식 지평임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수정모델의 신학적 진술 방법이 인 식 가능성의 조건이며 궁극적 인식 대상인 하나님을 전제하고 있음을 보 여준다.
결론적으로 수정모델은 확장된 인식 지평 위에서 초월적 방법을 통해 하나님의 객관성을 근거로 신학모델들의 진리주장을 통합하고, 다원 주의와 다원성의 담론을 포괄함으로써 현대에 적합한 계시 진리를 주장 하는 유효한 신학적 진술의 방법임을 주장하고 있다.
[주제어 : 데이비드 트레이시, 버나드 로너간, 지평-분석, 수정모델, 초월적 방법, 탈근대 신학]
Abstract
The Study of David Tracy’s theological foundation through ‘Horizon-analysis’ of Bernard Lonergan Kyunha Ku (Sogang University) This paper examines the method of theological statements that enables theology to make valid truth claims about God in the context of a pluralistic contemporary society. Until the premodern era, theology could justify its truth claims through ontological assertions. However, the modern turn toward the subject necessitated a new method of theological articulation, leading theology to address this challenge through existential statements based on the cognitional subject. Yet, when confronted with the pluralism of postmodernity, the legitimacy of existentially grounded theological statements is reduced to the level of individual existential choice, placing theology in yet another crisis. This study seeks a resolution to this issue in David Tracy’s revisionist model. The revisionist model presupposes the epistemic horizon and its expansion as addressed in Bernard Lonergan’s ‘horizon-analysis’. This implies that the revisionist model can formulate theological statements that reflect the expanded human epistemology developed through modernity and postmodernity. Simultaneously, it suggests that theological statements within the revisionist model possess objectivity, as they are granted by the existence of God as the ultimate epistemic condition through a transcendent method. This paper explores Lonergan’s ‘horizon-analysis’, which elucidates divine grace as the condition of epistemic possibility, and critically examines the epistemic horizons of the theological models classified by Tracy’s application of ‘horizon-analysis’. Through this process, it highlights the limitations of each theological model. The study demonstrates that the revisionist model constitutes an expanded epistemic horizon that integrates the strengths of previous theological models while addressing their deficiencies. Consequently, it establishes that the theological statements within the revisionist model presuppose both the conditions of epistemic possibility and God as the ultimate epistemic object. Furthermore, the revisionist model, operating within an expanded epistemic horizon, integrates theological truth claims by grounding them in the objectivity of God through a transcendent method. By encompassing discourses on pluralism and plurality, it proposes a valid theological method for asserting revelatory truth in contemporary society.
[Key words: David Tracy, Bernard Lonergan, horizon-analysis, revisionist model, transcendental method, post-modern theology]
논문 투고일: 2025.02.15. 수정 투고일: 2025.03.20. 게재 확정일: 2025.03.27
조직신학연구 제49권 (202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