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야기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살의 신적-드라마(Theo-Drama) 속 행 위 주체인 인간 배우(Human-Actor)에 관한 고찰: ‘소외’ 개념을 중심으로/박형철.서울女大

jn209 2025. 5. 30. 11:36

Ⅰ. 들어가는 말: ‘소외’ 혹은 ‘왕따’

Ⅱ. 인간 배우(human actor)의 정체성과 역할

Ⅲ. 인간 배우의 소외

Ⅳ. 소외의 극복

Ⅴ. 나가는 말: 소외와 사랑에 대한 융합적 사고에의 제언

 

 

 

Ⅰ. 들어가는 말: ‘소외’ 혹은 ‘왕따’

 

금세기 최고의 복수극 중 하나로 꼽히는 <더 글로리>는 미혼모의 딸, 가 난한 유년시절, 그리고 학교폭력에 의해 영혼이 가루처럼 부서진 한 존재의 처절한 실존을 다룬다.

죽기 좋은 날이었기에 먼지가 되어 흩어지기로 한 날 문득 드는 생각, ‘왜 내가 죽어야 하지?’ 그녀는 자신을 지옥으로 떨어뜨린 모두를 용서 없이 파멸시키기로 결심한다.

그들의 자식들까지 무서운 연좌 제의 형벌로. ‘왕따’, ‘이지메’, ‘bullying’은 학교나 회사 그 밖의 집단 내에서 크고 작 게 무리를 지어 특정인의 인격을 무시하고 신체적 폭력을 가하는 ‘집단 따돌 림/괴롭힘’의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1

 

     1) 왕따를 지칭하는 단어도 다양하다. ‘전따’는 전학 온 아이를 따돌리는 경우, ‘반따’는 반에서 따돌 리는 경우, ‘은따’는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 ‘진따’는 심하게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를 말한 다.

 

비뚤어진 사회의 경직성을 반영하는 이런 ‘소외’ 현상은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경험한 피해자들에게 ‘자살’이라 는 극단적인 선택을 종용하기도 한다.

‘존재적 외로움’에 대한 사회적 발현이자 ‘자기소외’에 대한 또 하나의 대표적 현상은 ‘고독사’다.

남녀노소를 막론해 나타나는 외로운 죽음은 그 이유도 다양하다: 외로움의 실존을 다행히 극복하고 오랜 시간을 살아내었 더라도 노화와 병으로 종국에 선택하기도 하는 ‘존엄사’, 자기 자신을 잊어 버리는 또는 잃어버리게 만드는 ‘자기 상실’의 치매 등. 그래서 자기 소멸의 선택을 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그러나 아름다운 영화 <미 비포 유>, <그대 를 사랑합니다>는 가슴 아픈 먹먹함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수작이 라 평가할 수 있다. 사실, ‘소외’(疏外, alienation)라는 개념은 다양하게 정의된다. 기본적으 로는, 현시대의 시쳇말인 ‘왕따’처럼 어떤 무리에서 따돌리거나 멀리하는 현상을 말하며 나아가서는, 정신분석학, 경제, 철학에서도 자신의 분야에 적 합한 정의개념을 내놓기도 한다.

사회의 병리 현상이자 인간이라면 모두 직 면하는 보편적 문제라고 말하는 학자들이 말하는 소외는 크게 두 가지로 나 뉜다:

 1. 소외가 개인의 느낌과 상관없이 일어나는 객관적/사회적 사실이라 는 것,

 2. 개인의 주관적 심리적 상태에 불과하다는 것.

정신분석학적으로 볼 때 인간이 자신의 본질을 상실하여 비인간적 상태를 ‘소외’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자기소외’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현대인들 모두가 경험하는 실존의 상태이다. ‘소외’는 크게는 국가들, 사회의 각 분야, 종교, 가족, 부부 사이에서 ‘버림 받았다’고 느끼는 개념일 수 있으며, 좀 더 개인-존재적으로 고찰하면 각 개인에게 내재 되어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기에 이는 좀 더 신학철학적으로 고찰할 수 있다.

결국, <존재에의 용기>에서 틸리히(P. Tilllch)가 정리하는 3가지 불안/ 두려움 중 첫 번째인 ‘운명과 죽음’에 대한 불안/두려움은 필멸의 존재인 모 든 인간이 지니고 태어나는 극한의 ‘자기소외’가 될 수 있다.

확실한 건 실존 의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은 누구든지 다양한 형태와 느낌으로 심리적/사회 적으로 소외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인간 소외의 문제가 개인적/사회적 양상 을 넘어 존재-실존적인 부분까지 통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복합 양상을 띤다면, 그에 대한 고찰 또한 다양한 학문적 접근을 통해 융합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는 것이 본고의 핵심 논지이다.

이에 본고는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살(H.U. von Balthasar)의 신적-드라마 를 출발점으로 삼고, 그가 자신의 신학 안에서 인간 배우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해서 심리학-사회학과의 대화를 시도한 내용을 ‘소외’에까지 확장한다.

소외에 관한 연구는 인간을 총체적 존재라고 말하는 심리학, 타자와 사회를 전제로 하는 사회학 그리고 초월적 영역까지를 다루는 신학의 입장 간의 대 화를 통해 융합적 사고를 시도함으로써 소외에 대한 확장된 고찰을 제시할 것이다.

나아가 존재-실존적 소외의 극복/정복을 가능하게 하는 철학-신학 적 ‘사랑’에까지 그 지평을 넓히고자 한다.

거대 개념과 명제들을 정의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이러한 학문적 과정이 학제 간 대화와 통섭의 가 능성을 넓히는 데 유의미한 도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Ⅱ. 인간 배우(human actor)의 정체성과 역할

 

1. 세계 무대(world stage)의 행위 주체

 

발타살의 역작인 삼부작(Trilogy) 중 신적-드라마의 중심 주제는 ‘구속 사’이며 그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발타살은 인간의 역사를 죄와 죽음 으로 얼룩진 비극으로 보는데, 이 비극은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라는 비극을 통해 극복되며 이로 인해 인간의 구원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한다.

필자가 재 구성한 신적-드라마의 구성 요소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 예수, 성경 등 ‘핵 심 요소’, 드라마의 기반 및 배경이 되는 ‘세계 무대’, 하나님과 함께 행위의 주체가 되는 ‘인간 배우’.

세계 무대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장이며 인간 배우가 삶 속에 주어진 역할을 연기하는 무대가 된다.

또한, 인간 배우는 이 미(already) 이루어진 존재적 구원뿐 아니라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not yet) 실존적 구원을 위해 세계 무대 속으로 참여하여 주어진 역할과 책임을 감당 해야 하는 가능성의 존재가 된다.2

 

    2) ‘이미’와 ‘아직’ 사이의 긴장을 내포한 구원의 드라마 속 인간 배우가 지니는 두 가지 역할(고정된 (fixed) 역할과 가변적(changeable) 역할)에 대해서는 다음 논문을 참조. 박형철. “한스 우르스 폰 발 타살(H.U. von Balthasar)과 캐빈 밴후저(Kevin J. Vanhoozer)의 드라마 이론에 나타나는 구원론에 관한 연구: 두 드라마 이론의 요소들(elements)을 중심으로.” 「장신논단」 44/4 (2012). 

 

이는 세상 사회-정치의 공적 영역(public sphere)에까지 그의 역할과 책임이 확장된다는 것을 함의하기도 한다.

결국,  인간 배우는 신적-드라마 주인공인 예수의 연기를 미메시스함으로써 주어 진 삶의 무대 위에서 자신의 즉흥연기를 통해 비극-코미디(tragi-comedy)의 장인 세계 무대를 희망의 무대로 만들어가는 행위 주체가 된다.3

 

  3) 비극-코미디(tragi-comedy), 미메시스(mimesis), 즉흥연기(improvision), 카타르시스(catharsis) 개념 에 대해서는 다음 논문 참고. 문영빈, 박형철. “비극을 통해 새롭게 조망하는 구원의 드라마: ‘하마 르티아’(hamartia)를 중심으로.” 「신학연구」 62/4 (2013).   

 

그리고 이 것이 예수의 부활 이후 종말론적 카타르시스를 완성해가는 장이 된다.

 

2. 심리학과 사회학을 통해 보는 정체성과 역할

 

‘나’라는 개념에 대해 발타살은 어떤 학문으로 살피든(철학 혹은 과학) 경험적인 세상 속 인간에게 주어진 ‘역할’을 조망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고 말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내면세계로부터 세상을 넘어 신적 영역에 이르기까지의 무한 차원으로 지평이 확장되는 거대한 질문이며, 그 에 대한 대답은 세계라는 무대 위에서 각 개인에게 주어진 역할이 무엇인지 규정함으로써 가능해진다.

그는 먼저 심리학과 대화를 시작하며 심리학의 주관심사인 ‘인간-존재 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한계 수용’의 개념과 연결한다.

현대 심리학은 개 개인의 차별적 특성에 관심을 가지며, 자기 존재를 포용하는 전체성 안으로 통합시킴으로써 인간을 치유하는 것을 지향한다.

발타살은 이것이 인간 배 우가 지니는 ‘한계 수용으로써의 역할’이라고 규정하고, 한계 수용을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로 보는 프로이트(S. Freud), ‘가면’과 ‘역할’ 두 의미를 동시에 지니는 ‘페르소나’ 이론의 융(C.G. Jung), ‘인간은 스스로 한계를 받아 들이고 사회로부터 부여된 역할과 함께 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라고 주장 하는 아들러(A. Adler)를 언급한다.4

 

   4) Theo-Drama(이후 TD) I, 493-531. 박형철•한스 우르스 폰 발타살의 신적-드라마(Theo-Drama) 속 행위 주체인 인간 배우(Human-Actor)에 관한 고찰 13

 

발타살은 아들러의 이론을 통해 심리학에서 사회학으로 관심을 확장하 며 ‘나’와 그 사회적 역할 사이의 차이를 설명하는데, 이를 통해 역할-사회 학에 대한 논의를 진행함과 동시에 ‘자기-소외’ 개념을 말한다.

그는 역할과 자기-소외 문제, 나아가 사회적 정체성 및 역할 ‘거리’ 문제에 대해서 에릭 슨(E. Erikson), 다렌도프(R. Dahrendorf), 고프만(E. Goffman)의 이론을 정리 하고 마지막으로 버거와 룩만의 사회학적 관점이 우리에게 ‘드라마로서의 사회’를 보여주었다고 평가한다.

또한, 우리가 이러한 사회학적 관점에 주목 해야 하는 이유를, 이것이 명확하게 극장(theatre)의 유비를 사용했다는 것, 나아가 인간과 배우가 지니는 역할 사이의 차이에 대해 그리고 전체 드라마 적 과정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5

심리학/사회학과 연결하여 한계 수용으로써의 역할을 설명한 발타살은 소외로써의 역할을 설명하기 위해 에크하르트의 성육신에 관한 가르침을 가 져온다.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의미는 ‘자신을 비우는 것’이며, 이러한 소 외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것이 모든 인간에게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 배우의 책임 그리고 소명에 대한 역할이 된다.6

 

     5) 발타살은 ‘사회학’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사회학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보다 인간 주체들과 그들의 사회화에 대해 더 관심이 많은 듯하다. 하지만 독특한 ‘나’, 보편적 인간성의 역 할/형태로 참여하는 것 등을 살피다 보면 결국 근본적인 ‘나’에 대한 문제를 다시 마주하게 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나’와 그 사회적 역할 사이에 생기는 차이에 관한 관심일 수 있다. 이는 자기-소외(self-alienation)와 그 이후 이어지는 자기-재입증(self-revindication) 간의 차이일 수 있으 며, 이러한 연구는 최근 역할-사회학에 대한 풍성한 논의를 만들어 왔다. 이에 발타살은 우리가 사 회학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하며, 그것이 명백하게 ‘극장’의 유비를 사용해왔고, 인간 배 우가 가지는 역할 간 차이에 대해서 그리고 전체로서의 드라마 과정에 대해서 지속적인 관심을 가 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TD I, 531-44.

     6) TD I, 551-8. 

 

사실 발타살은 『신적-드라마』 1권 후반 인간의 정체성과 역할에 관해 언 급하면서 한계 수용과 함께 소외를 다루기는 하지만 소외에 대해 명확하게 규정하지는 않는다.

이는 발타살이 신적-드라마의 주체를 삼위일체 하나님 이라고 강조하며, 각 위격의 정체성과 역할에 최우선으로 관심을 두는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소외’ 개념 또한 삼위일체의 역할에서 먼저 시작한 뒤 세상과 인간 속에서 다루어지기를 원한다.

여기서 삼위일 체의 역할이란 성부, 성자의 자기 비움, 자기 수여의 케노시스, 성육신과 십 자가 대속죽음 그리고 파스카 신학에 이르기까지를 포함한다.

이 내용은 다 음 장 신학적 입장으로 고찰하는 인간 배우의 소외에서 다시 다루기로 한 다.7

 

     7) ‘자기 비움’으로 아버지의 첫 ‘케노시스’는 삼위 전체로 확장돼 하나님의 근원-케노시스(UrKenosis)가 성립된다. 자기 비움 말고 아들은 아버지와 동일본질이 될 수 없으며,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에게 똑같은 자기 비움을 ‘위격적으로’ 확인하며 ‘우리’인 하나님으로 존재한다. Cf. 노우재, “발타살의 드라마틱 구원론: 삼위일체 하느님 사랑의 결정적 표징인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신 학전망」 179 (2012), 64.

 

Ⅲ. 인간 배우의 소외8

 

발타살은 인간 배우의 역할에 관해 ‘인간적’ 한계 수용을 넘어서 ‘신적’ 소외에 이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필자는 발타살이 심리학-사회학과 의 대화를 통해서 인간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해 정리한 것을 ‘소외’에도 똑 같이 적용하려 한다.

학제 간의 대화와 융복합적 사고를 통해 ‘소외’라는 개 념이 새롭게 정의될 수 있다면, 인간 배우의 ‘소외 역할’은 발타살이 의도하 는 ‘사명’ 이상의 풍성한 의미를 담아낼 수 있다.9

 

     8) ‘소외’는 ‘alienation’, ‘estrangement’ 학자들에 의해 둘 다 사용되는데 여기에서는 구분하지 않기로 한다.

     9) 발타살은 ‘Role to Mission’에 대한 내용을 TD I, 481-648에서 폭넓게 다룬다.

 

1. 심리학-사회학적 입장

 

소외는 사회화 과정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으며, 그 속에서 개인과 사회의 부조화 문제를 살펴야 하는데 이는 정신분석 분야에서도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물론 프로이트는 사회화 과정을 정신분석으로 설명하지 않으며 총체적 ‘나’에 대한 일치와 완성 그리고 이를 통해 건강한 존재가 되는 것에 관심 을 가진다.

이에 굳이 프로이트의 소외를 정의하자면 ‘파편화된 자아’의 상 태다.

하지만 그에게 영향을 받은 학자들에게 소외 개념은 좀 더 특징적으로 나타나는데, 사회화 과정 속 자아발달단계를 일련의 의미들의 통합과정으로 보는 에릭슨에게 의미 연결 통합이 되지 않는 자아의 정체성 혼란이 소외라면, 라깡(J. Lacan)에게 소외는 자기 형성에서 불가피한 것이다.10

사실 사회과학 용어로써 ‘소외’는 마르크스와 헤겔로부터 시작되는 것 으로 보는데, 헤겔이 소외를 인간 존재의 관점에서 보았다면 마르크스는 사회현상으로 보았다는 점이 다르다.

프롬(E. Fromm)의 입장은 복합적인데 소외에 대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학을 자신의 철학적 방법으로 수용하면서 마르크스 사회이론의 철학적 관점 을 중시한다.

그는 소외를 ‘인간이 자신을 이방인으로 경험하는 양식’이며 이는 개인과 사회 전반에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이다.

프롬은 소외를 현대인의 병으로 간주하며 현대인에게 나타나는 소외 유형을 다섯 가지로 분류한다.11

 

     10) 프로이트에게 영향을 받은 학자들은 많지만, 주제가 무엇이냐 따라 입장 차가 나타난다.

     11) 임채광, “소외 개념에 대한 프롬과 마르쿠제의 정신분석학적 해명,” 「동서철학연구」 67 (2013), 385-407 

 

고프만, 버거, 룩만 등 극/무대를 유비로 사용하는 연극 사회학자들이 인 간 배우를 ‘이방인’의 개념과 연관 지을 때 인간은 소외자 그리고 도피자가 되기도 한다.

고프만은 ‘인간 행위자’를 ‘공격, 몰래 접근, 도망칠 준비가 되 어 있는’ 존재로 묘사하며, 기든스(A. Giddens)는 ‘이방인’, ‘인간 행위자’ 둘 다 궁극적으로 어떠한 상황에 ‘위치될 수밖에’ 없기에 불안해한다고 말한 다.

룩만과 버거는 ‘당연한 사실과 세계’에 대해 믿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실 이방인이라는 주제는 슈츠(A. Schutz)와 짐멜(G. Simmel)이 주로 사용 했지만, 가핑켈(H. Garfinkel)과 고프만이 또한 인간 배우를 이방인으로 묘사하기도 한다.12

우선적으로 일반 사회과학들 안에서 인간 소외에 대해 통합적으로 정리 하는 것은 ‘소외’에 대한 융합적 사고를 통해 보편적 정의를 시도를 위한 본 고의 전반부 작업이다.

다음 장의 신학-철학적 입장에서 구체화하겠지만, 소 외에 대한 필자의 기본 입장과 그 정의는 ‘소외는 존재한다’는 것이다.13

이 는 소외가 인간 개인, 타자와의 관계, 사회적 상황, 나아가 신/절대자 등 무 한의 영역에까지 존재론적으로 확장-적용되어 ‘언제 어디에서나, 누구에게 나’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인간 존재 자체에 관심이 있는 프 로이트가 소외에 대해 명시적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사상에는 소외가 내포될 수밖에 없다.

쾌락 원칙과 현실 원칙 간 행복을 추구하는 ‘나’ 그리고 삶과 죽음의 본능을 지닌 존재로서의 ‘나’ 사이에서 소외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고통을 제거한 채 그 상태를 지속시킬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고통을 피할 수 없는 육 신을 지닌 인간은 타자와의 관계를 비롯한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부정적 힘 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결국, 인간은 존재 자체로부터 뿐 아니라 타자, 사회 등 외부의 힘으로 인해 소외를 경험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14

또한, 삶 과 죽음의 본능 가운데 자기방어기재를 무의식중 사용하는 인간은 파괴 경 향성을 지니며 타자에게 짐승 같은 공격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사회 속에서 타자를 ‘소외시키는 주체’ 또한 될 수 있음을 준다.15

 

   12) 김광기, “이방인의 사회학 I: 이방인에 대한 사회학적 소묘: 짐멜, 슈츠, 고프만, 그리고 가핑켈,” 「한국사회학회사회학대회 논문집」 (2003), 193-217.

   13) 본고는 다음 장에서 ‘소외’ 개념에 대한 정의를 좀 더 구체적으로 확장해 설명한다: ‘소외는 실존 의 상태이다. 이를 인지하고 경험하는 것이다. 결국, 존재하는 것 자체가 소외이다.’

   14) 자아의 ‘현실 원칙’에 의해 이드와 초자아 사이 수위가 조절된다. 이드는 스스로에게 불이익을 남 기지 않기 위해 에고에게 양보하는데, 이는 현실 원칙이 ‘타자 및 사회’를 전제함을 내포한다. 임경 수, 『심리학과 신학에서 본 인간 이해』(서울: 학지사, 2009), 40.

    15) Sigmund Freud, Civilization and Its Discontent, James Strachey ed. and trans. (New York: W.W. Norton & Co., 1961), 58-9, 66; 인간 본능 즉 이드와 초자아의 갈등은 영원히 지속된다. 그래서 결 국 ‘자아 즉 에고’는 둘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으며 끊임없는 화해를 시도하는 것이다. 

 

사회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아발달이 이루어진다고 보는 에릭슨의 연 대기적 질서 안에 소외가 내재한다는 사실 또한 8개의 단계마다 정체성 위기 가 나타나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위기 극복의 중요성은 매 단계에 서 정체성 혼란이 언제든 소외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나타난다.16

모 든 위기를 극복하고 의미-정체성을 지켰을지라도 노년기에 몸과 사회적 역 할이 다 사라졌을 때, 모든 인간은 절망이라는 피해갈 수 없는 감정을 느낀 다.

결국, 인간-존재는 소외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소외된 이방인으로서의 기분’에 대해 앞에 언급한 사회학자들 (고프만, 룩만, 버거, 슈츠, 짐멜, 프롬17)은 인간이라면 느낄 수밖에 없는 감 정 상태라고 각자 자신들의 언어로 정리한다.

특히 슈츠는 이를 연극 무대 와 연관 지어 설명하면서 이방인에 대해 ‘객석에서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간’ 존재로 비유/묘사하는데, 이는 ‘객석에서 무대로’의 이미지를 사회학적으 로 바라볼 때 ‘소외에서 참여로’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다.18

 

     16) 에릭슨의 자아발달 단계 중, 정체성에 대한 첫 번째 위기가 청소년기에 발현된다는 것에 대한 부 연 설명이다. 모든 단계에 위기는 존재하는데 그 극복을 통해 정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이 중요하다. 임경수, 『심리학과 신학에서 본 인간 이해』, 127.

     17) “인간에게는 외로움의 공포가 더 크다. 인간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시도하는데, 그것이 ‘자유로 부터의 도피’이다.” 하지만, 프롬의 이 말은 인간이 ‘자유(freedom) vs 안전(security)’ 이라는 딜레 마 또한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Erich Fromm, Escape from Freedom (New York: Holt, Rinehart & Winston, 1964), 20

    18) “객석에서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간 사람, 그전엔 단순한 방관자/구경꾼에 불과했던 이 사람이 무 대 위 공연의 배역을 맡은 일원이 되며, 공연 동료 배우들과의 사회적 관계로 빠져들어 가게 되 어 서로에게 상대 배역자가 되며, 결국에는 진행되고 있는 무대의 공연에 참여하게 된다.” Alfred Schutz, Collected Papers vol. II: Studies in Social Theory (The Hague: Martinus Niijhoff, 1964), 97-8. 

     

중요한 것은, 이것이 발타살이 버거의 사회화 이론을 사용해 인간 배우로 하여금 ‘사회화 속 역할 주체’로부터 ‘사역 속 사명 주체’로의 능동적 변화 를 요청했던 내용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즉 발타살은 인간이 한계를 수용하 고 ‘소외’의 역할에까지 참여할 수 있을 때, 진리 안에서 상처받은 세계를 위 해 드라마적-사회적인(dramatically social) 존재로서 책임지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하는데, 이 내용이 바로 필자가 신적-드라마 속 인간 배우의 소외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된 동기이다.19

 

    19) Ben Quash, “Drama and the Ends of Modernity,” in Balthasar at the End of Modernity (Edinburgh: T&T Clark, 1999), 139-41, 150, 169; Cf. TD I, 533-44, TD II, 51.

 

2. 신학적 입장

 

‘소외’에 대한 신학자들의 공통된 출발점은 죄론이다.

판넨베르크(W. Pannenberg)는 소외 개념을 ‘자의식과의 단절’로 규정하고, 단절과 소외로 인해 생겨나는 자아와 자의식의 불일치가 자의식의 왜곡 또는 자아 정체성 상실 위기를 초래할 때 이를 죄로 규정한다.

그는 철학자 및 사회학자들과 대 화하며, 소외가 경제적인 현상이 아닌 종교로 인한 현상으로써 일종의 ‘종교 적 결핍 현상’, ‘종교적 영양실조의 표현’이라고 말한다.

종교와 소외의 관계 를 말할 때 포이에르바하(L. Feuerbach)와 마르크스가 중요한 이유는, ‘종교 자체가 소외’라는 개념을 언급한 포이에르바하까지 소급되어 이르기 때문 이다.20

 

    20) 볼파르트 판넨베르크, 박일영 옮김, 『인간학: 인간사회론』(서울: 분도출판사, 1996), 365-68. 

 

판넨베르크는 현대 신학에서의 소외가 다른 누구보다 틸리히의 죄의 개 념에 대한 해석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본다.

틸리히에게 소외는 존재의 본 질과 실존이 분리된 상태이다.

이는 존재가 그 근원, 타 존재들, 나아가 자기 자신으로부터 분리된 상태를 말하는 것이며, 이 상태는 존재의 실존적 곤경 상태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소외가 종교적 관점에서 죄에 대한 재 해석인 이유는, 성서 속 묘사되는 인간의 곤경에 대해 가장 효과적으로 묘사 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21

 

       21) 정성민, “틸리히 신학에 있어서 소외 문제와 해결,” 「한국기독교신학논총」 34 (2004), 241-68. 

 

소외에 대한 보편적 정의에 도전하는 본고는 앞에서 ‘소외는 존재하는 것’이라고 짧게 언급했다.

이를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소외는 실존의 상태 이다.

이를 인지하고 경험하는 것이다.

결국, 존재하는 것 자체가 소외이다’ 라고 말할 수 있다.

소외라는 개념에 대해 숙고하며 좀 더 구체적인 정의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필자는 이런 내용이 소외에 관한 틸리히의 정의와 맞닿 아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또한, 소외와 이를 극복하는 것에 대해 본고는 보 편적 언너 개념을 통해 해결책을 제시하려 하지만, 그 사상과 내용 자체가 신학적이기에 이 또한 틸리히적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인간-세상을 신적드라마라는 발타살의 드라마 해석학을 사용하여 설명하려는 본고의 접근은 ‘신학적’이다.

이에 틸리히가 ‘보편성’과 ‘일반성’을 구분하듯 본고 또한 보 편성에 대한 수정과 재정의를 통해 제한적으로 사용하려 한다.22

필자가 말 하는 보편성이란 사회과학들과 대화하되, 틸리히처럼 실존주의 철학의 존 재론적 방법론을 통해 신학적 내용을 설명하는 것을 말한다.

그럼에도 이러 한 재정의의 접근이 의미 있고 유효한 이유는, 본고가 발타살의 신적-드라마 를 통해 드러내고자 노력하는 ‘아름다움에 의한 구원’이 부분적으로나마 설 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과 인간의 궁극적 구원과 해방과 회복은 ‘사랑 이라는 완전하고 무한함을 지닌 아름다움’, 즉 신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신적 존재에 의해 이루어진다.23

 

     22) 틸리히는 ‘universal’의 의미를 ‘general’의 의미와 구별한다. ‘일반적’의 의미가 “특수한 계시 사 건으로부터 추상화된 일반적/필연적인 법칙”이라면 ‘보편적’은 “모든 주장을 포용하는 하나의 특 별한 사건”이다. Paul Tillich, Systematic Theology , vol. 1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5), 138.

     23) 신학적으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다. 

 

이는 실존주의 철학과 존재론적 구원론의 융합을 통한 보편성의 획득이라고 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소외는 실존의 상태이며 이를 현실에서 인지하고 경험하는 것이기에 제한된 시공간 속 유한한 존재로 있는 것 자체가 소외의 상태가 된 다.

틸리히가 1차 대전을 겪으면서 인간 실존의 심연을 경험하고 깨달은 후 신학과 철학의 경계에서 양쪽의 연합을 시도했다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지금 그리고 여기’가 극복해야 할 실존의 소외 상태인 것이다.24

아 퀴나스는 실존을 언급하며 신의 창조 속 피조물 전체를 가리켰으며, 틸리히 에게 영향을 끼친 하이데거는 실존적 인간에 대해 자유를 가지고 있지만 유한한 존재라고 말한다.

이는 철학이든 신학이든 한계 상황에 처한 인간과 세 상의 존재-실존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창조 신학을 인정하고 태초로 거슬 러 올라간다면, 자유와 동시에 범죄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던 인간은 타락 의 결과로 소외의 상태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틸리히는 이와 관련 ‘소외가 곧 죄이며, 죄가 곧 실존상태’라고 말한다.

본질로부터 실존의 분리는 창조 세계로부터의 현실 세계의 분리라는 것이다.25

 

     24) 필자는 틸리히가 언급하는 ‘철학과 신학의 경계에 서 있다’보다 ‘철학과 신학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가 더 좋다고 본다. 두 분야가 서로 보완함으로써 그 지평을 확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 이다. 위의 보편성에 대한 개념에서 살펴봐도 신학과 철학의 존재론적 출발과 그 내용이 거의 같음 을 확인할 수 있다. 신학과 철학 리고 종교와 신화의 관계에 관한 연구로는 김선태, “발타살의 역사 관: 신화와 철학과 종교의 관계,” 「가톨릭신학과사상」 61 (2011), 75-112.

    25) 철학적 용어로서 ‘소외’ 개념은 헤겔에 의해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는 ‘자연’에 대한 자기의 이론에서 ‘소외된 정신’을 표현하기 위해 소외 개념을 사용했다. 헤겔은 세계과정 전체를 신의 ‘자 기소외’의 과정으로 본다. 여기서 소외(alienation과 estrangement)를 의미하는 두 단어는 실존주의 철학에서 큰 역할을 감당한다. 틸리히는 ‘estrangement’를 즐겨 사용하는데, 이것이 ‘이방인’의 이 미지로서 더 강력한 분리의 의미를 지녔다고 말한다.

 

인간은 결국 영원한 순수함과 가능성을 지녔던 원초적 상태로부터 소외되고 분리된 것인데, 반대로 생각 하면 죄와 타락이 없었으면 소외도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 된다.

하지만 에덴 의 타락 이후 지금까지 나아가 새창조의 그 날까지 소외는 현실로 존재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창조시대에 무한함과 완전함의 가능성을 지녔던 인간이 필멸할 수밖에 없는 유한자가 됨으로써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소외를 경험 하고 이후 그 상태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실존적 소외는 인 간이 신에게서 분리된 순간 이후, 인간뿐 아니라 세상 모든 존재들과 그 관계 나아가 신에게까지 적용될 수 있다.

죄로 인해 소외는 인간뿐 아니라 죄와 공존할 수 없는 신에게도 일어난 것이며, 신은 죄인들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아가 스스로 삼위일체 안에서 분리-소외의 위험을 기꺼이 감수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타락한 인간과 세상의 회복을 위한 자발적 사랑을 선택 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26

 

     26) 경륜적 삼위일체 안에서 발생하는 관계의 역동을 말한다. 

 

이런 신적 소외의 가능성이 존재-실존적 소 외를 극복하기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에 발타살과 틸리히는 신적 존 재인 삼위일체 하나님 세 위격에 역할과 개념들(근원-케노시스, 죄 자체, 자 기수여, 자기 비움, 초순종 등)을 부여함으로써 설명해내고자 한다.

또한, 신 적-드라마의 절정이자 정점으로 드러난 십자가 위 희생과 사랑 그리고 죽음 과 부활은 모든 존재-실존적 소외의 극복을 위한 희망이 된다.

 

Ⅳ. 소외의 극복

 

프로이트와 에릭슨 그리고 많은 심리학자에게 소외는 자아발달의 과정 중 건강한 정체성이 확립되는 인간에게는 발생하지 않는다.27

기든스와 고프 만 같은 사회학자들이 소외의 상징적 이미지로 보는 이방인에게는 ‘위로자 를 통한 회복과 안도감’이 필요하다. 또한 프롬은 ‘사랑이란 분리된 것들을 결합하고, 소외를 극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내용을 고려해볼 때 사 회학과 심리학에서 말하는 소외의 극복은, 존재 자체로서든 혹은 사회 속 존 재로서 개인이든, 총체적 인간상으로의 전존재적 회복으로 인한 온전함과 건강함을 유지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28

 

    27) 필자는 프로이트가 직접적으로 소외 개념을 다루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소외라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건강한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이상적(ideal) 인 것이며 위기로 인한 단절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28) 이는 쉴러(F. Schiller)의 중심 사상이라 할 수 있는 ‘미적 교육’의 핵심 내용이다. 

 

발타살이나 틸리히 같은 학자들에게 소외 문제의 극복은 기본적으로 예 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다.

틸리히에게 인간의 실존-곤경 상태를 해결 할 수 있는 존재는 ‘궁극적 실재’이며, 이는 존재 자체로서의 하나님과 새로 운 존재(The new being)인 그리스도 예수이다.

여기서 존재 그 자체로서의 하나님은 모든 존재의 유한성을 해결하는 존재이며, 새로운 존재인 예수 그리 스도는 소외를 해결하는 존재가 된다.29

예수의 성육신은 ‘인간의 실존에 완 전히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가 된 것’이며 이는 인간의 죄와 죽음에 대한 그 리스도의 참여 즉 예수 그리스도의 소외를 통해 인간의 실존적 소외 문제가 해결됨을 의미한다.30

발타살의 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예수의 소외가 희 생(sacrifice) 자체이며, 그러한 희생이 인간의 소외를 해결한다고 말한다.

성 육신에서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예수의 삶 전체가 소외이자 희생이며 온 세 상을 회복시키고 온전케하는 ‘아름다운 힘’이 된다.31

‘소외의 극복은 사랑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주장이 보편성을 획득하 기 위해서는 앞서 소외에 대해 정의한 것처럼 사랑에 대한 보편적 정의가 필 요하다. 이에 필자는 ‘사랑은 신이다’라고 정의하고자 한다.

여기서 ‘신’이 란 절대적 타자, 하나님, 창조주, 영원한 당신, 무조건자 등으로 불리는 유한 함으로 규정하고 제한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32

좀 더 정의를 구체화하면 ‘사랑은 유한한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무한함과 완전성을 지닌 구원하는 신적 아름다움이다.’33

 

   29) 이는 앞서 언급된 ‘한계 수용으로써의 역할’, ‘소외로써의 역할’이 인간 배우에게 주어졌는데, 이 역할들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돕는 주체가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30)예수의 소외로의 참여는 인간 소외의 ‘존재적’ 문제를 해결한다. 거꾸로 생각하면, 예수 안으로 인간이 자발적 참여함으로 그 결속을 통해 인간의 ‘실존적’ 소외까지 해결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31)아름다움이 ‘회복시키는 힘’이 된다는 말은 그것이 ‘새창조’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 된다는 말이 다.

   32)부버(M. Buber)는 ‘영원한 당신’의 길을 제시하며, 이는 여러 이름으로 불려왔지만, 무엇보다 ‘신’이라고 불리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고 말한다. 신응철, “부버, 틸리히, 가다머: 부버의 <나-너 > 철학에 대한 틸리히와 가다머의 해석을 중심으로,”「해석학 연구」 27 (2011), 232-3

    33) 무한성/완전성과 연관하여 ‘사랑’ 개념을 정의하는 것은, ‘세상/인간의 실존적 소외는 정말 극복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상충한다. 고통과 죽음의 실존은 극복되지 못한 채 여전히 존재하기 때 문이다. 그러면, 소외가 이 땅에서 극복되지 않았기 때문에 완전-무한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가? 이는 인간이라는 유한자가 무한자인 신을 어렴풋이 상상만 할 뿐, 전부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무한한 신에 대해 유한한 그만큼만 이해하는 것처럼, 완전-무한한 사랑에 또 한 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본고는 사랑에 대한 이러한 제한적 정의를 틸리히와 발타살과 프롬의 이론을 통해 소외에 대한 융합적 고찰을 시도해보려 한다.

먼저 개인과 사회 속 소외의 극복을 위해 앞서 언급한 심리학-사회학자들을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을 한 명만 선택하자면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심 리학자인 프롬일 것이다.

탈무드의 영향을 많이 받은 프롬은 성서 속 에덴의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자신의 인간 이해에 대한 철학적 기초를 수립한다.

자연과 더불어 조화의 상태로 존재하던 태초의 인간은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자연과 분리-소외된 자신을 지각하게 된다.

그는 사랑을 통한 재 결합이 없는 인간의 분리-소외의 자각은 수치심의 근원이며, 더불어 죄의식 과 불안의 근원이라고 말한다.

이에 인간의 가장 큰 욕구는 홀로됨의 감옥을 떠나 분리됨과 소외를 극복하는 것이다.34

여기서 모든 시대와 문화 속에 동 일하게 나타나는 인간의 질문을 볼 수 있는데, ‘어떻게 분리와 소외를 극복 하고 원래의 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는가’이며 이런 공통 질문의 근거 역시 같은 근원을 가지고 있다.

이런 분리와 소외로부터 기인하는 불안을 공통적 으로 지니는 인간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프롬은 사랑과 이성 으로 본 것이다.

프롬에게는 사랑이 예술이자 기술이기 때문에 그는 지식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5가지 유형의 사랑을 제시하는데 어머니의 사랑, 자기애, 형제애, 성적 사랑 마지막으로 신의 사랑이 그것들이다.

중요한 건 프롬이 창조 이야기로 신, 자연, 그리고 자연의 관계를 통해 소 외와 극복을 설명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이 경외할 수 있는 숭고 와 완전함을 원하기에 이 신의 사랑이 필수적이라고 말한다는 것이다.35

 

      34) Erich Fromm, The Art of Loving: An Enquiry into the Nature of Love (New York, Evanston and London: Harper Colophon Books, 1956), 9-10.

      35) Fromm, The Art of Loving , 1-2, 52, 54, 81.

 

틸 리히에게는 이 신적 사랑이 바로 ‘궁극적 실재 곧 새로운 존재’인 예수 그리 스도가 되는 것이다.

그에게 그 실재에 대한 ‘궁극적 관심’은 성서의 계명인 데, ‘우리 하나님이 유일한 주님이시니,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해 주님이신 하나님을 사랑하라’의 추상적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종교적 관심은 무조건적이다.

또한, 궁극적이고 무한하며 총체적인 동시에 ‘실존적’ 성격을 지시한다.36

이에 틸리히에게 인간의 소외 상태를 해결하는 궁극적 실재/새 로운 존재인 예수가 중요한 이유는, 첫째 예수 스스로 유한한 인간 실존의 비 극적인 요소들에 참여했기 때문이며, 둘째 새로운 존재라는 개념이 본질 존 재와 실존 존재 사이 분열을 가리키기 때문이다.37

예수는 본질과 실존 사이 의 소외라는 큰 간극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로서, 실제적 실존의 소외를 정복하는 실제적 존재가 된다.38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새로운 존재 가 실존 상황에 처한 본질-존재이기 때문이며, 궁극적으로 예수가 본질과 실 존의 소외를 정복한 존재로서 ‘구원하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예수 로부터 새로운 존재를 얻음으로써 자신의 본질과 실존의 연합이 가능해지는 바로 그때 인간은 자유와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39

구원하는 힘이자 신적 사랑인 예수는 ‘사랑은 존재론적인 것’이라고 피 력하는 틸리히에게 존재만으로 ‘사랑, 힘, 정의’를 모두 포함하는 아가페의 하나님이며, 이는 본고가 발타살의 신적-드라마를 통해 탐구하는 보편적 구 원론 안에서 말하고자 하는 ‘구원하는 아름다운 힘’으로써의 사랑과 연결된 다.

또한 이 사랑은 스스로 무한성을 제한하거나 유한성에 참여함으로 무한 자의 ‘신비’를 드러내는데, 이것이 틸리히에게 ‘연합’과 ‘재결합’의 개념으 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로서 예수가 인간의 유한성에 참여하면 서 비록 시간과 공간의 조건으로 제한을 받게 되었지만 자기 자신 존재의 근 원으로부터는 단절되지 않았는데, 이것은 예수가 하나님과의 영속적인 하나 됨의 관계, ‘하나님과의 온전한 연합’을 이루었음을 의미한다고 말한다.40

 

   36) 폴 틸리히, 유장환 역, 『조직신학 I』(서울: 한들출판사, 2001), 27.

   37) 그리스도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존재로서 새로운 존재를 생성하는 존재다. 기독교가 가짜 종교로 취급받지 않으려면 나사렛의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주장이 참이어야 한다.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긍정하는 것이 믿음의 행위이고 또한 대담한 용기의 행위이다” Tillich, Systematic Theology, vol. 2, 97, 116.

    38) Tillich, Systematic Theology , vol. 2, 119.

   39) ‘새로운 존재’를 경험한다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에게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지니는 실존적 소외 를 극복한 예수 속에 있는 힘을 경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Tillich, Systematic Theology , vol. 3, 400. 40) Tillich, Systematic Theology , vol. 2, 126. 

 

나아가, 존재들은 분리-소외로부터 재결합의 경향과 열망을 가지며, 이에 사 랑은 분리-소외된 것들의 재결합 과정을 의미한다고 말한다.41

즉 틸리히는 신적 사랑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가 삼위일체의 연합 및 세상 전 존재들과 의 연합을 가능게 함으로ㅆ 완전한 회복과 일치를 성취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유한성과 무한성의 역동-관계로부터 비롯되는 신비는 발타살 사 상에서 케노시스, 삼위일체 개념과 연관되어 중요하게 다루어지는데 그 신 비가 소외의 정복을 가능하게 하는 사랑과 연결된다. 먼저 발타살은 “유한 한 세계 속에서 유한한 존재로 살고 있지만, 인간의 이성은 무한을 향해 그리 고 전 존재를 향하여 열려 있다”42고 말한다.

이는 인간이 존재 근거를 자기 안에 가지고 있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과 계약맺는 하나님의 ‘자기 내어줌’을 주제로 하는 발타살의 신적-드라마는, 구원의 역사 속에서 자기 비움(Katalogia)을 통해 삼위일체 사랑의 신비를 보여줌으로써, 존재 자체로 부터 드러나는 사랑의 신비를 표출하는 하나님을 소개한다.

발타살은 ‘사랑 의 근본 원천’을 성부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앞서 다룬 ‘희생’ 역시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내포한다.

무한하고 완전한 ‘사랑’인 하 나님이 유한한 인간 세상을 창조하고, 아들을 낳기까지 스스로를 ‘제한’한 것은 삼위일체의 첫 번째 자기포기이자 자기 비움이며 성부 하나님의 자기 수여로 인한 ‘희생’이기 때문이다.43

 

     41) 이는 틸리히가 “사랑은 존재론적 개념이다”라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42) 장홍훈,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 사랑의 유비, 발타살 신학의 정점,” 「신학전망」179 (2012), 5.

    43) 발타살은 성부 하나님의 ‘자기 비움’ 희생을 ‘근원-케노시스’와 연결한다. 

 

케노시스(Kenosis)라 불리는 이 ‘자기 비움’의 신비는 자기 수여와 더불어 성자의 ‘초순종’을 포함 삼위일체적 사 랑의 신비를 보여준다. 그리고 발타살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형태’는 십자 가 위 자기 비움에서 절정에 이르는 순종의 특징을 지닌다.

또한, 필자가 말 하는 ‘그리스도의 소외’에서 중요한 지점이 십자가 희생인데, 이때 발타살 은 예수 그리스도가 ‘죄 자체’(to be sin(고후 5:21)), ‘저주’(갈 3:13))가 됨으로써, 무한자가 인간의 유한한 시간성과 죽음의 조건으로 내려와 무한히 버 림받고 무한한 고통을 경험했다고 말한다.44

이는 소외 자체가 됨을 통해 이 를 극복하고 정복한다는 의미와 기본적으로 연결되는 것이다.45

삼위일체와 케노시스가 신비인 이유는, 죄(또는 소외)로 인한 인간과 하나님의 무한한 거리가 성부와 성자의 사랑의 거리로 수용됨을 통해 극복된다는 데 있다.46

이에 대해 발타살은 “삼위의 사랑은 무한히 넓어서 온 세상을 품는다.”고 표 현하기도 한다.47

마지막으로, “과연 실존은 극복될 가능성이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돌 아가서 두 가지를 함께 생각해본다 :

  1. 극복될 수 없는 인간과 세상의 소외 와 비극적 한계 상황,

  2. 그 극복의 해답이 되는 무한하고 완전한 신적 사랑.

그리고 동시에 신적-드라마 안에서의 인간 배우의 역할과 책임 그리고 참여 에 대해 다시 생각하며, 불가능한 가능성(Impossible Possibility)을 희망해 본 다.48

 

    44) 죽음의 십자가를 넘어 지옥을 경험하기까지 무한고통을 끌어안은 내용, ‘완전한 소외/소외의 끝’ 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내용에 대해서는 Balthasar, Theodramatik, vol. III (Einsiedeln: Johannes, 1980), 459, 462;Theodramatik, vol. IV (1983), 257.

    45) 발타살의 주요 명제인 “인간 실존 비극은 예수 그리스도의 비극을 통해 극복된다”와 맥락을 같이 한다.

   46) 발타살은 세상 전부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발생하고 성령에 의해서 지탱/극복되는 ‘무한한 거리’로 끌어안겨 있다고 말한다. 시간 내 모든 것은 영원한 사건의 품속에서 그 가능한 귀결로 발 생한다는 것이다. 아들에게 자신의 신성 전부를 전달하는 아버지의 행위는 “세상 가운데 발생할 모 든 고통과 분열, 소외의 영원한 전제이자 극복이다. 그리고 동일한 행위 가운데 사랑의 선사와 만 남, 행복의 영원한 전제와 가능성이 있다.” Balthasar, Theodramatik, vol. III, 302.

    47) 장홍훈,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 사랑의 유비, 발타살 신학의 정점,” 28.

    48) 본고의 논지와 지향점은, ‘구원하는 아름다움은 신적 아름다움 및 인간적 아름다움으로, 아가페 는 신적 아가페 및 인간 아가페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구원된 실존으로서 인간은 십자가와 부활의 그리스도를 추종하여 삼위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면서 그 사랑을 증언한다.

구원에 대해 경륜적 삼위일체의 드라마적 행위로 인간은 새로운 드라마적 실존을 부여받음으로써 삼위일체의 구원의 드라마에, 그리고 내재 삼위일체 의 사랑의 신비에 참여하게 된다.”49

 

     49) Balthasar, Theologie der drei Tage, 194.  

 

Ⅴ. 나가는 말: 소외와 사랑에 대한 융합적 사고에의 제언

 

사실 심리-사회학 그리고 신학-철학을 대표하는 학자들의 이론을 모두 정리해 하나로 통합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소외’를 보편적 개 념으로 상정하고, 그와 관련되는 대상(신/절대자, 인간, 세상50)에 대한 생 각을 다양한 접근을 통해 정리하면서 최대한 그 개념을 통합 및 규정하려는 시도는 의미 있는 작업이다.51

소외에 대한 연구사를 정리한 카우프만(W. Kaufmann)은 소외가 특별한 시대적 현상은 아니라고 말하며, 인간 자의식 자체가 소외를 내포하며 사회, 타인, 자신 그리고 자연으로부터의 소외를 통 해 성장한다고 말한다.52

카우프만의 서술은 본고가 지향하는 ‘융합적 사고 를 통한 소외의 정의’와 내적으로 의미 연결성을 가진다.

이는 카우프만의 ‘자연’ 안에 ‘신/절대자’라는 신학-철학적 개념을 포함할 때 가능해진다.

이는 한 개념에 대한 융합적 사고가 학제 간 ‘방향성을 지닌 대화’를 통 해 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53

 

     50) ‘절대자’는 신, 하나님, 절대정신/이념을, ‘인간’은 총체적 자아 또는 타인 등 대상을 전제하는 개 인, 그리고 ‘세상’은 자연과 세상을 포함하여 대표성을 지니는 단어.

    51) 철학의 목적은 진리의 탐구이고, 기독교 세계 안에서일지라도 진리를 추구/탐구하는 ‘철학’은 가 능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신에 대한 절대적 신앙이 최우선 순위에 놓일 때 과연 진리에 대한 지 적 활동이 유요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Cf. 이경재, “기독교철학 개념 정립을 위한 세계관의 실재론적 전회,” 「기독교철학」32 (2021), 141-3.

    52) 인간이 인격체로 독립하기 위해서는 환경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분리해야 하기 때문에 인간의 핵 심적 모습이 소외라는 것이다.

    53) 각주 55) 참조. 하나님이 모든 존재와 지식의 원천이자 총체이고 그 하나님(절대적 신앙의 대상) 을 떠난 ‘철학적 진리 탐구’가 불가능하다면, ‘기독교 철학’이라는 문구 자체에 딜레마를 내포하는 것이며, 인문-사회학과의 대화에서 중립을 유지하기가 힘들 수 있다. 김영한, “기독교 세계관으로 서 기독교 철학,”「기독교철학」37 (2023), 62.

 

신적-드라마에서 출발하여 인간 배 우의 소외에 대하여 타학문을 향한 융합적 사고를 해보면 다음과 같다.

성육 신에서 십자가의 희생에 이르기까지 예수 자신이 소외됨으로써 인간의 존재적 소외를 극복했다면, 인간 배우는 예수의 소외에 자발적으로 참여함으로 써 실존적 소외를 극복할 수 있다.

이는 예수의 희생과 십자가를 본받아 결 속됨으로써 인간 배우라는 총체적 존재가 파괴되고 재건됨으로 새롭게 되고 정체성이 다시 태어남을 통해 회복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망가 지고 깨진 총체적 ‘나’의 소외까지도 극복될 수 있다고 말하는 프로이트/에 릭슨과 연결된다.

또한, 발타살이 말하는 희생은 틸리히/프롬의 사랑 개념과 연결된다. 소외에 대한 융합적 고찰에의 도전은 소외를 극복/정복하고자 하 는 열망에 대한 실천이자 ‘소외는 사랑으로 극복된다’는 명제가 얼마나 어 디까지 정의/해석될 수 있는지에 대한 좀 더 심도깊은 학문적 숙고와 통찰 을 요구한다.

본고가 ‘소외’와 ‘사랑’에 대한 융합적 고찰을 통해 각 개념에 대한 보편 적인 정의를 시도했던 노력은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소외는 존재한 다. 다시 말하면, 소외는 실존의 상태이며, 이를 인식하고 경험하는 것이다.’

결국, 존재하는 것 자체가 소외이다. 그리고, ‘사랑은 신이다: 사랑은 유한자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완전성과 무한성을 지닌 신적 존재이다.’

두 개념에 대한 도전적 정의에는 ‘정말 실존(즉 소외)의 정복/극복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전제되는데, 본고의 연구 과정 중 재확인하게 되는 한계를 통해 ‘불 가능하다’라는 답을 필자가 이미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존 및 소외가 사랑으로 극복될 수 있다는 주장은 어디에 근 거하는가?

이는 지금-여기의 현재 실존을 겪으며 살고 있는 필자의 다른 질 문에 근거한다: ‘소외의 극복은 “어떻게” 가능한가?’

필자는, 이미 자체로 존재하는 인간과 세상의 실존-소외가 유한자인 인간을 통해 극복될 수 없다 면, ‘완전하고 무한한 힘, 즉 신적 사랑’으로 가능할 것이라고 상상하고 소원 하는 것이다.54

 

   54) 발타살에 따르면 ‘하나님의 계시는 일차적으로 삼위일체적 사랑의 드라마다.’ 그리고, ‘사랑마저 유한한 인간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며, 인간은 사랑이 본래 무엇인지 경험한다.’ H. U. 폰 발타사르, 『남겨진 단 하나, 사랑』(서울: 가톨릭출판사, 2023), 100-1.

 

물론, 신적 사랑이라는 개념은 융합적 사고와 학제 간 종합에의 시도를 통해 도출된, 종교마저 초월하는 ‘사랑’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경험을 모든 것의 근원으로써 중요시했던 프로이트의 이론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 는, 신학과 종교에 관한 필자의 학습과 경험을 통한 배경지식이 탐구 과정 중 도전적으로 새로운 정의를 시도함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 리고 여전히 보편적 정의에 대한 정당성이 유효한 이유는, 신학자들뿐 아니 라 철학자들 특히 문학가들이 인간과 세상의 실존을 인식-해석하는 가운데 불안, 공포, 고통, 악, 죽음, 지옥 등의 두려움을 넘어 선, 아름다움, 진리, 천국 등 신적 영원을 갈망해 왔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기 때문이 다.

도스토예프스키와 괴테가 언급한 ‘추한 세상’에 대해 많은 작가들은 고 통, 불의, 폭력이 존재하는 곳이라고 말했으며, 작가이자 실존주의 철학자인 사르트르(J.P. Sartre)는 <출구 없는 방>에서 다른 곳이 아닌 타인들이 존재 하는 이 세상이 ‘지옥’이라고 말했다.55 인간과 세상의 실존이 잘 표현된 < 출구 없는 방>은, 지옥과 천국 사이 긴장의 상황/과정을 잘 묘사한 루이스의 <천국과 지옥의 이혼> 서문과도 잘 연결된다.

“비상구는 없다. 아무리 조금 이라 해도 지옥과 공존하는 천국이란 없다.”56

이는 만약 그런 ‘곳’이 존재한 다면, 인간은 존재의 마침을 지나 영원에 ‘최고와 최악의 상태’가 있다고 ‘믿 거나 상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두 상태의 중간 상태에 놓인 인 간은 그 ‘복합 시공간’57의 긴장 가운데 ‘무한한 거리’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 을 인식하는 동시에 이미 그 속에 존재하는 실존적 소외가 유한자의 어떠한  사고와 행위를 통해서도 극복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준 다.

 

     55) De Gruchy, Christianity, Art and Transformation, 133. Cf. Jean Paul Sartre, No Exit, 이강열 역, 『출구 없는 방』(고양: 예니, 1984).

    56) C. S. 루이스, 『천국과 지옥의 이혼』(서울: 홍성사, 2003), 서문.

    57) 필자는 창조와 종말 사이의 시간, 그리고 천국과 지옥 사이의 공간을 합쳐서 ‘complex time-space’ 라는 개념으로 규정한다. 

 

필자는 이 지점에서 신학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존-세상의 추함과 무한한 거리가 존재로서의 인간이 경험하는 절망의 상태라면, 신학 이 초월적 신비와 계시를 통해 한 줄기 빛과 희망을 선사할 수 있기 때문이 다.

사랑을 통한 소외의 극복이 ‘불가능한 가능성’에의 시도라면, 신학 특히 신학적 미학은 소외의 극복을 이루어낸 모델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루치는 추한 세상과 인간이 ‘십자가의 소외된 아름다움’을 통해서만 구원받 을 수 있다고 말한다.

나아가 아름다운 구속의 힘은 인간과 세상을 변혁시키 는 것과도 연관되며 그렇기 때문에 신학과 실존은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고 말한다.58

또한, 에크하르트는 무한한 거리 메우기를 통해 소외의 극복이 가 능해지는 이유가 성육신에서 출발하는 예수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 하며 그 중요성을 강조한다.59

신학적 미학의 핵심이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드라마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육신 자체가 삼위일체의 소외가 되기 때문 이며 그것이 있었기에 십자가의 희생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성육신을 통해 세상의 빛이 되어 온 예수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드라마 행위로부터 비롯되 는 것이며 그 중심에는 사랑이 존재한다.60

 

    58) De Gruchy, Christianity, Art and Transformation, 133, 226, 245.

    59) 케노시스 신비와 연결해서 경륜적 삼위일체의 관점에서 보면, 성자와 성부의 무한한 거리를 발생 시킨 사건이 바로 ‘성육신’이다. C.S. Lewis, The Problem of Pain, 이종태 역, 『고통의 문제』(서울: 홍 성사, 2002), 7에서 재인용. 54; 그루치는 이를 ‘성육신의 드라마’라고 표현한다.

    60) 삼위일체의 소외는 ‘창조’ 및 ‘성육신’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성육신에서 시작된 성 자의 소외는 십자가에서 절정을 이룬다. 사실 그의 소외는 지옥(또는 음부)에 내려감까지 이어진다 고 봐야 한다. 발타살은 하나님의 ‘행위’(action/deed)의 중요성을 말할 때 성육신이 그 중심이 된 다고 말한다. Balthasar, Love Alone Is Credible (San Francisco: Ignatius Press, 2005). 

 

실존적 소외는 이미 존재하며 인 간은 스스로의 능력으로 이를 극복할 수 없다. 하지만 실존 속으로의 참여, 즉 성육신의 신비와 삼위일체의 행위가 소외의 모든 것(죄로 인한 타락에서 지옥에 이르기까지)을 해결했다.

이제 그 아름다운 사랑을 통해 구원이 이루 어졌음을 믿는 이들은, 실존으로 남아 있는 동안 극복의 과정에 참여하여 구 원의 드라마 주인공인 예수 그리스도를 미메시스함으로써 소외자가 아닌 구 원자가 되어가기까지 감당해야 할 역할과 책임이 있음을 기억하는 배우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인간의 고통을 면해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과 같은 것이 되게 하기 위해서 죽기까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61

 

   61) 조지 맥도널드의 <전하지 못한 설교>의 내용을 C.S. Lewis,『고통의 문제』, 7에서 재인용.

 

참고문헌

Balthasar, Hans Urs von. Glaubhaft ist nur Liebe. 김혁태 역. 『남겨진 단 하나, 사랑』. 서울: 가톨릭출판사, 2023. _____. Love Alone Is Credible. San Francisco: Ignatius Press, 2005. _____. The Glory of the Lord: A Theological Aesthetics, Vols. 1-7. San Francisco: Ignatius Press, 1982-91. _____. Theo-Drama: Theological Dramatic Theory , Vols. 1-5. San Francisco: Ignatius Press, 1988-98. De Gruchy, John W.. Christianity, Art and Transformation: Theological Aesthetics In the Struggle for Justic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1. Freud, Sigmund. Civilization and Its Discontent. Ed. and Trans. James Strachey. New York: W.W. Norton & Co., 1961. Fromm, Erich. The Art of Loving: An Enquiry into the Nature of Love. New York, Evanston and London: Harper Colophon Books, 1956. _____. Escape from Freedom. New York: Holt, Rinehart and Winston, 1964. Lewis, C.S. The Great Divorce. 김선형 역. 『천국과 지옥의 이혼』. 서울: 홍성 사, 2003. Pannenberg, Wolfhart. Anthropologie in Theologischer Perspektive. 박일영 역. 『인간학: 인간사회론』. 왜관: 분도출판사, 1996 Quash, Ben. “Drama and the Ends of Modernity.” In Balthasar at the End of Modernity . Edinburgh: T&T Clark, 1999. Sartre, Jean Paul. No Exit. 이강열 역. 『출구 없는 방』. 고양: 예니, 1984. Schutz, Alfred. Collected Papers Vol. II: Studies in Social Theory. The 박형철•한스 우르스 폰 발타살의 신적-드라마(Theo-Drama) 속 행위 주체인 인간 배우(Human-Actor)에 관한 고찰 33 Hague: Martinus Niijhoff, 1964. Tillich, Paul. Systematic Theology , Vol. 1-3. Chicago: University of Chicag Press, 1975. _____. Systematic Theology . 유장환 역. 『조직신학』. 서울: 한들출판사, 2001. 김광기. “이방인의 사회학 I: 이방인에 대한 사회학적 소묘: 짐멜, 슈츠, 고프 만, 그리고 가핑켈.” 「한국사회학회사회학대회 논문집」 (2003) 김선태. “발타살의 역사관: 신화와 철학과 종교의 관계.” 「가톨릭신학과사 상」 61 (2011) 김영한. “기독교 세계관으로서 기독교 철학.”「기독교철학」37 (2023) 노우재. “발타살의 드라마틱 구원론: 삼위일체 하느님 사랑의 결정적 표징 인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신학전망」179 (2012) 문영빈, 박형철. “비극을 통해 새롭게 조망하는 구원의 드라마: ‘하마르티 아’(hamartia)를 중심으로.” 「신학연구」 62/4 (2013) 박형철.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살(H.U. von Balthasar)과 캐빈 밴후저(Kevin J. Vanhoozer)의 드라마 이론에 나타나는 구원론에 관한 연구: 두 드라마 이론의 요소들(elements)을 중심으로.” 「장신논단」 44/4 (2012) 신응철. “부버, 틸리히, 가다머: 부버의 <나-너> 철학에 대한 틸리히와 가다 머의 해석을 중심으로.”「해석학 연구」 27 (2011) 이경재. “기독교철학 개념 정립을 위한 세계관의 실재론적 전회.” 「기독교 철학」32 (2021) 임경수. 『심리학과 신학에서 본 인간 이해』. 서울: 학지사, 2009. 임채광. “소외 개념에 대한 프롬과 마르쿠제의 정신분석학적 해명.” 「동서 철학연구」 67 (2013) 장홍훈.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 사랑의 유비, 발타살 신학의 정점.” 「신학 34 「기독교철학」 제42호 전망」179 (2012) 정성민. “틸리히 신학에 있어서 소외 문제와 해결.” 「한국기독교신학논총」 34 (2004)

 

초 록

본고는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살(H.U. von Balthasar) 신적-드라마(TheoDrama)의 요소인 인간 배우(Human Actor)를 심리학-사회학적 입장, 그리고 신학적 입장을 통해 융복합적 연구를 진행한다.

우선, 신적-드라마의 기반이 되는 세계 무대(world stage) 속에서 행위 주체 요소가 되는 인간 배우의 ‘정 체성과 역할’에 대해 살피는데, 이를 먼저는 심리학-사회학적 고찰을 통해 나아가 발타살의 신학 안에서 탐구한다.

그리고, 인간 배우의 ‘소외’에 대해, 심리학-사회학적 입장 나아가 신학적 입장을 살핀다.

마지막으로, ‘소외의 극복’을 다루며 ‘소외의 극복은 사랑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명제의 보편 성을 획득하기 위해 제한적으로나마 ‘소외’와 ‘사랑’ 각 개념에 대한 정의를 시도한다.

‘소외는 존재한다’, ‘사랑은 신’이라는 거대한 신학-철학적 명제, 삼위일체 하나님의 케노시스에 의한 ‘자기소외’, 그리고 이를 통한 인간-세 상 소외의 정복에 대한 설명에의 도전이 본 연구의 차별성일 것이다.

본고 는 마지막으로 신적-드라마 속 인간 배우가 자신의 역할, 책임 그리고 참여 를 능동적으로 연기할 때 ‘소외의 극복’이라는 불가능한 가능성(Impossible Possibility) 가능해질 수 있음을 희망적으로 보이려 한다.

키워드 : 소외, 사랑, 인간 배우, 신적-드라마 

 

 

Abstract 

A Study on the Human Actor as Acting Subject Element in Hans Urs von Balthasar’s Theo-Drama: Focusing on the Concept of ‘Alienation’

Hyung-chul Park (seoul women’s university)

This paper is a convergent study of the Human Actor, an element of the TheoDrama of H.U. von Balthasar, from a psychological-sociological and theological perspective. First, it examines the ‘identity and role’ of the Human Actor, who is the acting subject element in the World Stage that is the basis of the Theo-Drama, and explores this first through psychological-sociological considerations and then within Balthasar’s theology. Then, it examines the ‘alienation’ of the Human Actor from a psychological-sociological perspective and then from a theological perspective. Finally, it deals with ‘overcoming alienation’ and attempts to define the concepts of ‘alienation’ and ‘love’, albeit limitedly, in order to obtain the universality of the proposition that ‘overcoming alienation is achieved through love.’ The challenge to explain the great theological-philosophical propositions that ‘alienation exists’, ‘love is God’, ‘self-alienation’ by the kenosis of the Trinity, and the conquest of alienation about human and the world through this, will be the distinctive features of this study. Finally, this paper hopes to show that the ‘Impossible Possibility’ of ‘overcoming alienation’ can be possible when Human Actors in the Theo-Drama actively play their roles, responsibilities, and participation.

Key words : alienation, love, human actor, theo-drama

 

 

논문투고일: 2025.03.31 논문심사일: 2025.04.12 게재확정일: 2025.04.23

기독교철학 제42호 (2025) 

 https://doi.org/10.23291/jcp.2025..42.7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살의 신적-드라마(Theo-Drama) 속 행위 주체인 인간 배우(Human-Actor)에 관한 고찰 &lsquo;소외&rsquo; 개념을 중심으로.pdf
0.77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