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야기

『주역(周易)』 동인(同人)의 우정론/엄국화.서울大

jn209 2025. 5. 30. 19:59

Ⅰ. 들어가는 말

Ⅱ. 소통(疏通)의 우정론

Ⅲ. 동심(同心)의 우정론

Ⅳ. 다산(茶山)의 ‘이인동심 기리단금’ 해석

Ⅴ. 나가는 말

 

 

Ⅰ. 들어가는 말

 

나는 평생을 한학자들과 더불어 지냈고, 바로 이 ‘이인동심 기리단금 (二人同心 其利斷金)’이란 말로 나의 배움의 길을 시작했습니다.

이 문장은 내한선교사 제임스 게일(James S. Gale) 1 이 1936년 『코리아 미션필드(Korea Mission Field)』에 “주역과 성경의 합류: ‘이인동심 기리단금’ 과 마태복음 18장 19절”이라는 제목으로 남긴 마지막 글의 일부이다.

게일 은 한국선교사라면 한국인들과 같이 지내야 하며, 한국인들을 서구인들처럼 계몽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존중하면서 포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러 국문학 작품들을 영어로 번역했는데, 동양고전에도 관심을 두어 1924년에 『대학』의 한영(韓英) 대조판인 『선영대조대학(鮮英對照大 學)』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는 마지막 글에서 동양고전, 특히 『주역(周易)』 에 관한 큰 관심을 다시 한 번 표명했다.

 

지금도 『주역』의 울림과 음성이 들려오고, 내 생애에 계속해서 들려 오고 있습니다. 『주역』은 때로는 한국 학자의 입을 통하여 들려오기 도 하고, 때로는 내가 태어나던 1863년 그해에 『역경(易經)』을 번역 한 중국학 학자인 레게(James Legge)를 통하여 들려오고, 그리고 64괘 로 구성된 각 장의 괘가 들려옵니다. 『역경』의 소리는 육성으로 들려 온다고 하기보다는, 상상을 통하여 저 멀리에서 나를 찾아오는 여운 의 음성입니다.2

 

   1) 제임스 게일(James S. Gale, 1863-1937)은 캐나다 토론토대학을 졸업한 후 1888년 토론토대학교 YMCA 소속으로 활동했던 선교사로 한국 이름은 기일(奇一)이다. 한국문화에 대해 포용적이었던 게일은 다른 선교사들보다 한국문화에 잘 적응했다

  2) 유영식, 『(착[한]목자) 게일의 삶과 선교』 (진흥, 2013) 상, 250. 212 「기독교철학」 제42호

 

중국 예수회 선교사들에 의해 『주역』이 라틴어로 번역된 이후, 영어 번 역본이 완성된 것은 제임스 레게3 에 의해서이다.

게일도 레게의 『주역』 영 역본을 통해서 역학(易學)을 접했기 때문에 여기서도 레게의 이름을 언급 했을 것이다.

내한선교사로 헌신하면서 조선의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 또는 조선의 제임스 레게가 되기를 희망했던 게일은 마지막 글 을 통해 ‘이인동심 기리단금’을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이 문장은 하나의 위대한 진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두 사 람이 마음을 합치기만 하면 경이로운 일을 해낼 수가 있습니다. 성경 에서도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나요?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 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4

 

     3) 제임스 레게(James Legge, 1815-1897)는 중국에서 활동한 선교사로 한자식 이름은 이아각(理雅各) 이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언어학자이며 중국학자인데, 동양고전 영어번역서의 초기번역가로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다. 레게는 런던선교회의 말라카와 홍콩 대표로 근무하였으며, 옥스포드 대학교 에서 최초의 중국학 교수가 되었고, 막스 뮬러(Max Müller, 1823~1900)와 함께 1879년에서 1891년 까지 중국의 경전들을 번역한 시리즈를 발간하였다.

    4) 유영식, 『(착[한]목자) 게일의 삶과 선교』 상, 251. 

 

게일은 동인괘의 ‘이인동심 기리단금’과 마태복음 구절의 유사성을 지 적하고 있는데, 그 주제는 ‘우정’이다.

마테오 리치의 첫 번째 한문저작이 우 정에 관한 『교우론(交友論)』이었던 것을 상기할 때 게일이 우정이란 주제 로 마지막 글을 쓴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까지 국내에서 마테오 리치 의 『교우론』을 중심으로 우정에 관한 많은 연구들이 발표되었지만, 『주역』 동인괘가 ‘금란지교(金蘭之交)’의 원전임에도, 우정과 관련하여 제대로 다 루어지지 않았다.

이 글에서는 동인괘의 ‘이인동심’과 관련된 『주역』의 해석들을 우정론의 관점에서 재구성하고, 더불어 다산 정약용의 독특한 해석 까지 연결하고자 한다.

 

Ⅱ. 소통(疏通)의 우정론

 

1. 지천태(地天泰)

 

건괘와 곤괘를 비롯하여 64개의 괘로 이루어진 『주역』에서 우정을 논하 기 위해서는 열세 번째 동인괘를 중심으로 살펴야 하는데, 동인괘를 이해하 기 위해서 먼저 열한 번째 태(泰)괘와 열두 번째 비(否)괘의 관계를 알아야 한다.5

 

   5) 실제 태괘의 2효 효사에서 ‘붕망(朋亡)’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여기서 ‘붕(朋)’은 일반적으로 부정적 의미로 해석되어, ‘붕당을 없애는 것’로 이해된다. ‘붕망’에 대한 청대 학자 이광지의 해석 은 다음과 같다. “‘붕당을 없애는 것[朋亡]’은 때가 이미 편안하면 사람들이 편안함에 익숙하여 그 마음이 방자해져 절도를 잃으니, 이것을 묶어 바로잡으려 하면, 무리들의 사사로움을 끊어버리 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에 ‘붕망’이라 한 것이다.” 이광지, 신창호 외 역주, 『주역절중』 (학고방, 2018), 403.

 

‘태평(泰平 또는 太平)’ 또는 ‘평화(平和)’를 의미하는 태괘의 모 양의 다음과 같다. ䷊ 지천태(地天泰) 태괘(䷊)의 경우, ‘건(☰)’이 아래에 있고, ‘곤(☷)’이 위에 있는 형상이 다.

‘건’은 하늘[天]을 상징하고, ‘곤’은 땅[地]을 상징하므로, 태괘는 땅이 위에 있고, 하늘이 아래에 있는 모습이다.

‘지천태(地天泰)’라고 부르는 것 은 이렇게 위에 땅이 있고 아래에 하늘이 있는 모양을 ‘태평(泰平)’한 상태 로 판단하는 것이다.

자칫 땅의 형상이 위에 있고, 하늘의 형상이 아래에 있는 것을 하늘과 땅이 제자리에 자리잡지 않은 불편한 상태로 볼 수 있다.

그 러나 음양의 조화를 중시하는 『주역』 해석 전통에서 태괘는 매우 긍정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괘로 인식되었다.

태괘의 괘사(卦辭, 괘에 붙은 말)를 보면 그 인식을 알 수 있다.

작은 것이 가고 큰 것이 오니, 길하고 형통하다. 小往, 大來, 吉, 亨. 의리학6 전통에서 정이천(程伊川)7 은 ‘작은 것’은 음을 말하는 것이 고, ‘큰 것’은 양을 말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6) 의리학(義義學)은 『주역』의 괘와 효에 대해 의미[義]와 원리[理]를 중심으로 해석하는 전통으로 위진시대의 왕필과 북송시대의 정이천이 대표적이다. 반면, 모양[像]과 숫자[數]를 중심으로 해석 하는 상수학의 전통도 한대부터 이어져왔는데, 다산의 『주역사전』도 상수학 전통의 성격이 강하다 고 평가받는다.

   7)정이천(程伊川, 1033-1107)은 정호의 동생으로 정이이다. 두 형제 모두 조선에서 북송오자(北宋 五子)로 존숭되었는데, 특히 정이천의 『이천역전(程伊易傳)』과 주자의 『주역본의(周易本義)』를 합친 『주역전의(周易傳義)』가 『주역』의 통행본으로 활용되었다. 

 

위에 있는 곤괘는 음으로만 이 루어진 괘인데, 아래로 내려오려는 성질이 있다.

또한 아래에 있는 건괘는 양 으로만 이루어진 괘인데, 위로 올라가려고 하는 성질이 있다. 아래로 내려가 는 성질의 것이 위에 있고, 위로 올라가려는 성질의 것이 아래에 있는 것은 바람직한 위치에 놓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와 같이 양과 음이 호응을 이루어 선순환하고 있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길(吉)하고 형통[亨]한 것이다.

『주역』의 모든 괘에는 「단전(彖傳)」이라는 글이 붙어 있어서 괘사에 대해 해설하고 있는데, 태괘의 괘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것은 천지가 사귀어 만물이 소통하고, 상하가 사귀어 그 뜻이 같은 것이다. 是天地交而萬物通也, 上下交而其志同也.

“작은 것이 가고 큰 것이 오니, 길하고 형통하다.”라는 괘사에 대해서, “천지가 사귀어 만물이 소통한다.”라고 풀이하였다.

 

자연 상태에서는 하늘 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에 있는 것이 정상적이지만, 태괘가 보여주는 형상 은 하늘이나 땅 그 자체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양과 음의 기운이 소통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위로 올라가려는 ‘건[天]’와 아래로 내려가려는 ‘곤 [地]’이 중간에서 만나게 되므로 천지가 서로 사귀고 그 다음에는 만물이 소 통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천지(天地)가 사귀는 것[交]과 만물(萬物)이 소통하는 것 [通]을 달리 말하면, 마지막에 표현된 ‘그 뜻이 같은 것(其志同也)’이다.

‘지동(志同)’은 ‘동지(同志)’와 같다.

우정을 나누는 벗을 ‘동지’라고도 하 는데 ‘동지’의 원래 의미는 ‘교통(交通)’, 즉 “사귀고 소통하는 것”이다.

비 록 ‘기지동야(其志同也)’의 주체는 ‘상하(上下)’이지만, 결국에 ‘위·아래의 구분 없어지고’, ‘같은 뜻을 공유하고’, ‘사귀고 소통하는 것’은 바로 ‘평화 [泰]’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태(泰)’는 우정의 기반이 되는 ‘소통’ 그리 고 소통의 결과로써 다른 신분계층의 사람들이라도 뜻을 함께하고 화합하는 ‘태평’을 나타내는 괘인 것이다.

 

2. 천지비(天地否)

 

『주역』의 11번째 태괘는 ‘교우(交友)’ 관계 또는 ‘같은 뜻을 가진 사람 들(同志)’ 사이의 관계와 관련하여 소통과 평화가 어떤 의미인지 잘 보여준 다.

이어지는 『주역』의 12번째 괘인 비괘(否卦)는 그 반대적 상황을 보여줌 으로써 의미를 더 분명하게 설명한다.

우선 비괘의 모양은 다음과 같다.

 

䷋ 천지비(天地否)

 

천지비(天地否)라고 부르는 것은 하늘을 상징하는 ‘건(☰)’이 위에 있 고, 땅을 상징하는 ‘곤(☷)’이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주역』 64괘는 두 괘씩 짝을 이루고 있는데,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건괘(䷀)와 곤괘(䷁)가 서로 온전 한 양과 온전한 음으로 대치되는 것처럼, 태괘과 비괘로 음과 양이 서로 반전 되어 있다.

두 괘를 나란히 비교해 보면 그 대비가 더욱 분명해진다. ䷊ ䷋ 지천태와 천지비 앞서 태괘는 땅을 상징하는 ‘곤’이 위에 있고 하늘을 상징하는 ‘건’이 아 래에 있지만, 각각 내려오고 올라가려는 성질 때문에 오히려 서로 만나게 되 고 소통하게 되어 결국 뜻이 일치되는 평화로운 상태를 이룬다고 하였다.

반 면에 비괘는 ‘비색(否塞)하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소통하지 않고 꽉 막힌 형상이다. 비괘(䷋)에는 하늘을 상징하는 ‘건’이 위에 있고, 땅을 상징 하는 ‘곤’이 아래에 있기 때문에 자연의 정상적인 상태로 보일 수 있다.

그러 나 비괘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일상적인 자연의 모습이 아니라, 위로 올라 가려는 양의 성질과 아래로 내려가려는 음의 성질이 어긋나서 서로 사귀려 하지 않고 소통하지 않으려는 상황이다.

양의 성질이 위에 있기 때문에 양은 계속해서 위로 향하고, 음의 성질은 아래에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아래로 향 하면서 결국 서로 만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비괘를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 기 위해 그 괘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바른 사람이 아니니, 군자의 곧음에 이롭지 않으니, 큰 것이 가고 작은 것이 온다.

否之匪人, 不利君子貞, 大往小來.

 

태괘의 괘사 “작은 것이 가고 큰 것이 오니, 길하고 형통하다.”에서는 부 정적인 표현이 한 번도 나오지 않은 것과 달리, 비괘에서는 ‘비(否)’, ‘비인 (匪人)’, ‘불리(不利)’ 등의 부정적인 표현이 주로 등장한다.

‘비(否)’ 자는 ‘태’가 가진 ‘크다’, ‘편안하다’, ‘통하다’라는 의미들과 정반대인 ‘꽉 막혀 있는 상태’를 뜻한다.

‘비인(匪人)’의 ‘비(匪)’도 ‘아니다’라는 부정의 의미 인데, ‘사람이 아니다’라고 하면 의미가 잘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바른 사람 이 아니다.’라고 풀이했다.

그리고 ‘불리(不利)’는 문자 그대로 이득이 되지 않거나 해로운 것을 나타낸다.

비괘의 괘사가 부정어들로 넘치는 것처럼 이 것을 해석한 「단전(彖傳)」에서도 부정어가 주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천지가 교류하지 않아 만물이 불통하고, 상하가 교류하지 않 아 천하에 나라가 없는 것이다.

是天地不交而萬物不通也, 上下不交而天下无邦也.

태괘가 천지가 사귀고, 만물이 소통하는 것과 달리, 비괘는 천지가 ‘사귀 지 않고[不交]’, 만물이 ‘불통(不通)’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정치적으로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소통하지 않기 때문에 천하에 나라[邦]가 존재하지 않 게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천지비’는 서로 화합하지 못하며 배척하고 반목 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결국 관계가 깨지고 사회가 분열되는 지 경에 이르는 것이다. 비괘를 태괘와 비교해 보면, 『주역』에서 말하고자 하는 ‘평화’ 또는 ‘태평’의 의미가 더욱 분명해 진다. ‘평화’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교감’과 ‘소통’하는 관계를 전제로 이루어진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데 모여 끊임없이 교감하고 소통하려는 자세에서 안정과 조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주역』은 기본적으로 세계의 전반적인 운행에 관한 원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다루고 있는 범위가 크고, 해석도 주로 군주론 또는 정치적인 차원에 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지천태’는 군주와 신하의 관계 또는 군주와 백성 이라는 상하 관계에서 평화가 이루어진 상태를 논하는 것이고, 옛 세계관에 서 국가 간 질서의 원리를 설명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평화’라는 것은 국 가적 관계에서만 중요한 과업이 아니다. 개인들 사이에 마음의 평화를 유지 하면서 벗들과 또는 동지들과 좋은 관계를 이어가는 것 또한 사회적으로 매 우 중요한 일이다.

 

Ⅲ. 동심(同心)의 우정론

 

1. 화천대유(火天大有)와 화택규(火澤睽)

 

䷌ 천화동인(天火同人)

 

우정과 관련하여 소통을 의미하는 열한 번째 태괘와 불통을 의미하는 열 두 번째 비괘에 이어지는 열세 번째 동인(同人)괘의 모양이다.

상괘(上卦) 는 하늘을 상징하는 건(☰)이고, 하괘(下卦)는 불을 상징하는 리(☲)이다.

정이천은 동인괘에 대해서,

 

“하늘과 땅이 교류하지 못하면 비색하게 되고, 위와 아래가 서로 함께 함면 동인괘가 되니, 비괘와 그 뜻이 반대가 되기 때문에 서로 이어지게 했다.”8

 

       8) 한국주역대전DB, “夫天地不交, 則爲否, 上下相同, 則爲同人, 與否義, 相反, 故相次.” 

 

라고 개괄적으로 설명한다.

왜 동인괘가 비괘에 이어지는지에 대해 설명한 것인데, 태괘과 비괘가 정반대의 상황을 보여주 는 것에 반해, 동인괘와 그 다음 짝을 이루는 대유(大有)괘 두 괘 모두 긍정 적인 상황을 보여준다.

그림으로 보면 다음과 같은데, 열세 번째 동인괘에 이 어서 열네 번째 대유괘가 오는 순서에 관한 정이천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 ䷍ 천화동인과 화천대유

 

대유괘는 「서괘전(序卦傳)」에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자는 물(物) 이 반드시 그에게로 돌아온다.

그러므로 대유(大有)로 받았다”고 하 였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자는 물이 그에게로 돌아오는 바가 되기 때문에 대유괘가 동인괘 다음에 온 것이다.9

 

    9) 한국주역대전DB, “大有, 序卦, 與人同者, 物必歸焉. 故受之以大有. 夫與人同者, 物之所歸也, 大 有所以次同人也.”

 

동인(同人)의 의미대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자’에게 ‘물(物)’이 돌 아오기 때문에 동인괘 다음에 대유괘가 있다는 설명이다.

11번째 태괘와 12 번째 비괘가 정반대의 상황이라면, 13번째 동인괘와 14번째 대유괘는 원인 과 결과의 상황이다.

실제로는 태괘의 ‘소통과 평화’의 관계가 동인괘의 ‘우 정’으로 이어지고, 대유괘의 ‘크게 소유함’의 결과로 마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반면에 동인괘의 정반대 상황을 묘사하는 괘는 화택규(火澤睽)이 다.

규괘와 바로 앞에 있는 풍화가인(風火家人)의 모양은 다음과 같고, 서른 일곱 번째 가인괘와 서른여덟 번째 화택규의 관계에 대한 정이천의 해설은 다음과 같다.

 

䷤ ䷥ 풍화가인과 화택규

규괘는 「서괘전」에 “집안의 도(道)가 다하면 반드시 어그러지므로 규괘로 받았으니, 규(睽)는 어그러짐이다”라고 하였다.

 

집안의 도가 다함에 어긋나 흩어짐은 이치가 반드시 그러하므로 가인(家人)괘의 뒤에 규(睽)괘로 받았다.10

동인괘가 태괘와 비괘에 이어서 소통과 불통 사이에서 소통이라는 평화 적 상황에서 중간 단계로 사람이 함께 하게 되는 장면을 묘사한 것에 반해, 동인괘과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규괘의 경우는 가인괘에 이어서 나오기 때 문에 보다 좁은 범위에서 ‘가정의 도[家道]’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물론 가 (家)의 개념이 오늘날과 같은 좁은 의미의 가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大夫)의 영향력이 미치는 공간으로 더넓게 이해할 수도 있다.

가정적 으로든 사회적으로든 규괘의 의미는 ‘어긋나 흩어짐[乖離散]’이라는 부정 적인 의미이다.

규괘의 괘사는 “작은 일은 좋다(小事, 吉)”이다.

‘작은 일[小事]’은 음 식과 의복 같은 문화적 차원의 일이다.

‘소사’의 반대인 대사(大事)에 관하 여 공영달의 주석은

“큰일은 부역을 일으키고 대중을 움직이는 것을 말하 니, 반드시 대동(大同)의 세상이라야 할 수 있다. 작은 일은 음식과 의복을 말하니, 대중의 힘이 필요치 않아 비록 어긋나더라도 할 수 있다.”11라고 하여, 전쟁이나 토목공사 같은 부역은 ‘대동’이라는 조건에서 가능하다고 하 였다.

 

     10) 한국주역대전DB, “睽, 序卦, 家道窮必乖, 故受之以睽, 睽者乖也. 家道窮則睽乖離散, 理必然 也, 故家人之後受之以睽也.”

      11) 한국주역대전DB, “大事, 謂興役動衆, 必須大同之世, 方可爲. 小事, 謂飲食衣服, 不待衆力, 雖 睽而可.” 

 

대사(大事)를 하기 위해서는 ‘대동(大同)’ 또는 ‘동인(同人)’이라는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2. 천화동인(天火同人)

 

들에서 동인을 한다.

형통하다.

큰 강을 건너도 이롭다.

군자로서 곧고 바른 자세를 지니면 이롭다.

同人于野亨, 利涉大川, 利君子貞.

 

대사(大事)를 치르기 위한 또는 대유(大有)를 이루기 위한 조건이라 할 수 있는 동인괘의 괘사이다.

사람이 함께 모이기 위해서는 태괘에 설명해 의 하면, 소통의 관계를 기반으로 해서 뜻이 같아야 하고, 마음이 같아야 한다.

여기서 동인괘 괘사에서 사람이 모이는 곳을 들[野]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 것은 공개된 장소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야합(野合)’이라는 말이 부정적 인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들에서 하는 동인[同人于野]’은 지도자가 공 개적인 장소에서 민중과 함께 모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매우 긍정적으 로 평가된다.

그래서 그 결과로 ‘큰 강을 건너도 이롭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자세를 군자 또는 지도자가 가져야할 자세로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동인괘 에 속한 6개의 효사(爻辭)는 다음과 같다.12

 

  12) 동인괘의 효사들은 곽신환의 번역을 인용했다. 곽신환, 『주역의 지혜』 (서광사, 2017), 257.

 

(초9) 문에서 동인한다.허물이 없다.

初九, 同人于門, 无咎. 

(62) 종족 간에 동인한다. 수치스럽게 버틴다.

六二, 同人于宗, 吝.

(93) 덤불 속에 군사를 숨기고 높은 언덕으로 올라간다. 3년을 일어나 지 않는다.

九三, 伏戎于莽, 升其高陵, 三歲不興.

(94) 그 담장에 올라간다. 공격하여 이기지 못한다. 그러나 좋다.

九四, 乘其墉, 弗克攻, 吉.

(95) 먼저 울부짖고 나중에 웃는다. 큰 군사가 싸우다 서로 만난다.

九五, 同人, 先號咷而後笑, 大師克, 相遇.

(상9) 도시에서 떨어진 교외에서 동인하다. 후회가 없다.

上九, 同人于郊, 无悔.

6개의 효사 중에서 초9의 “허물이 없다(无咎)”, 94의 “좋다(吉)”, 상9의 “후회가 없다(无悔)” 등 세 개의 효사는 긍정적인 점사로 마무리 되고 있다.

62효에서 “수치스럽게 버틴다(吝)”라는 부정적인 점사가 나온 것은, ‘혈연 안[于宗]’에서만 동인하기 때문이다.13

 

    13) ‘종(宗)’에 관한 크게 두 가지 해석 전통이 있는데, 첫 번째는 ‘종주(宗主)’로써 95효의 지칭으로 보는 것이고, 두 번째는 ‘종족(宗族)’이라는 혈연관계로 이해한 것이다. 다산도 두 번째 관점을 취 해서 해석했다. 왕부지, 김진근 역, 『주역내전』 2 (학고방, 2014), 380-381 참조. 

 

큰 일을 하기 위해서는 혈연 관계를 넘어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폭넓게 동인(同人)해야 한다.

93부터 95까 지 ‘군사[師]’, ‘공격[攻]’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에 동인괘는 전쟁이라는 ‘대사(大事)’와 관련된 괘로 볼 수 있다.

고대 전쟁의 전략과 전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원 동원[同人]’이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95효사의 “선호도이후소(先號咷而後笑, 먼저 울부짖고 나중에 웃는다.)’라는 상반절이다.

“대사극상우(大師克相遇, 큰 군사가 싸우다 서로 만난다.)”라는 95효사의 하반절은 3효부터 이어지는 전 쟁의 상황고 관련된 점(占)의 결과를 말해주는 ‘점사(占辭)’인데, 상황을 설 명하는 상반절의 ‘선호도이후소(先號咷而後笑)’라는 말을 이해가 쉽지 않 다.

그럼에도 ‘선호도이후소’는 동인괘를 대표하는 문장으로 오랫동안 인식 되었다.

그 이유는 「계사전(繫辭傳)」14에서 이 문장에 대한 특별한 해석이 있기 때문이다.

 

    14) 「계사전(繫辭傳)」은 공자 저작설에 관한 논란이 있지만, 『역경(易經)』의 최초의 해설서로서 그 권위는 여전하다.

 

『주역(周易)』 450개의 괘·효사 중에서 「계사전」을 통해 해 석된 문장은 극소수이다.

『주역』이 유교경전이 된 이후 ‘선호도이후소’는 「계사전」의 해석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계사전」에서 공자의 해석은 다음 과 같다.

 

두 사람이 마음을 함께하니 그 날카로움이 쇠를 끊을 것이요, 마음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말은 마치 난초처럼 향기롭다

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 15

 

     15) 한국주역대전DB, “‘남과 함께 함에 먼저는 울부짖다가 뒤에는 웃는다’하니,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의 도가 혹은 나아가고 혹은 처하며, 혹은 침묵하고 혹은 말하나 두 사람이 마음을 함께 하니, 그 날카로움이 금을 절단한다. 마음을 함께 하는 말은 그 향기로움이 난초와 같다

(同人, 先號咷而 後笑, 子曰, 君子之道, 或出或處或黙或語, 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 

 

우정에 관한 사자성어들은 대부분 경전이나 고전에서 나온 것들인데, 동 인괘를 출처로 삼은 성어가 바로 ‘금란지교(金蘭之交)’이다. 특히, 뒷부분 의 ‘기취여란(其臭如蘭)’은 『명심보감(明心寶鑑)』 「교우편(交友篇)」의 첫 번째 문장을 출처로 하는 ‘지란지교(芝蘭之交)’와 비슷하다.

이는 『공자 가어(孔子家語)』에서 가져온 문장으로 다음과 같다.

 

선한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은 지초(芝草)와 난초(蘭草)가 있는 방 안 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서 오래 지나면 그 향기를 맡지 못하니 이는 바 로 지초와 난초에 동화(同化)되어서이고, 불선한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은 절인 생선 가게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서 오래 지나면 그 악취를 맡지 못하니 이는 또한 절인 생선에 동화되어서이다.16

 

       16) 같은 곳, “與善人居如入芝蘭之室, 久而不聞其香卽與之化矣, 與不善人居如入鮑魚之肆, 久而 不聞其臭亦與之化矣.” 

 

‘지란지교’에서는 교우 관계에서 ‘선(善)’과 ‘불선(不善)’의 영향을 대 비시키기 위해, 지초와 난초의 향기를 절인 생선의 냄새와 비교하였다.

그러 나 동인괘 95효사의 「계사전」 해석에서는 동인(同人)을 동심(同心)으로 바 꾸어, 그 날카로움이 그 쇠보다 강하고 그 말은 난초처럼 향기롭다하며 동심 의 긍정적인 면만 강조하였다.

‘이인동심’부터 ‘기취여란’까지 16자의 짧은 해설은 ‘선호도이후소’에 대한 「계사전」의 해설 중 뒤에 절반만 가져온 것 인데, 이에 대한 분석은 다음 장에서 다산의 해설을 통해 이어가겠다.

 

Ⅳ. 다산(茶山)의 ‘이인동심 기리단금’ 해석

 

다산 정약용의 저서 『주역사전(周易四箋)』은 유배지에서 가장 먼저 완 성한 해설서이다.

『목민심서(牧民心書)』로 대표되는 1표2서는 사서 육경에 관한 해설서 저술을 마치고 유배 말기에 완성되었다.

경학(經學)과 관련된 해설서들을 먼저 저술하고 경세학(經世學) 저서들을 저술한 것이다.

유배지 에서 가장 먼저 완성한 『주역사전』은 주역 해석에 관한 추이(推移), 효변(爻變), 호체(互體), 물상(物象) 네 가지 방법론을 제시했기에 ‘사전(四箋)’17 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17) 전(箋)은 ‘띠지’ 또는 ‘메모’ 같은 것인데, 『주역사전』 외에 『상례사전(喪禮四箋)』에도 ‘사전’이 라는 제목을 붙였다. 『주역사전』에서 제시하는 주요 방법론 네 가지가 ‘사전’으로 표현된 것으로, ‘추이’는 12벽괘를 주축으로 보는 것이고, ‘효변’은 각 효사의 양효와 음효를 뒤집어 보는 것이고, ‘호체’는 2·3·4효를 하호괘로, 3·4·5효를 상호괘로 보는 것이다. ‘물상’은 「설괘전」을 기본으로 괘 를 해석하는 대표적인 ‘상학(象學)’의 방법론이다.

 

『주역사전』은 상수학(象數學)적 해석이 강한 해설 서이지만, 의리학(義理學)적 해석이 완전히 배제되지는 않았다.

다산은 동 인괘를 해설하며 먼저

‘동’에 대해, “동(同)이란 모이는 것이며, 만나보는 것 이다(同者, 會也, 見也).”라고 정의하는데,

‘회합(會合)’에 대해 두 가지로 설명한다.

성인(聖人)이 사람들을 모여서 만나게 함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첫째는] 일가(一家)의 기뻐하는 마음을 모아 돌아가신 할아버지(祖 考)를 모시게 하는 것이며,

[둘째는] 천하의 즐거워하는 마음을 모아 상제(上帝)를 모시게 하는 것이니,

[회합의 방식은] 단지 이와 같을 따름이다.18

 

     18) 방인 외 옮김, 『주역사전』 2 (소명출판, 2007), 345,“聖人之會合人類, 厥有二道. 得一家之歡心, 以事祖考, 得天下之歡心, 以事上帝, 如斯而已.” 

 

다산은 회합에 대해 가족들이 모이는 사적인 모임과 왕공(王公, 천자 와 제후)들이 모이는 공적인 모임으로 구분한다.

종묘(宗廟)의 의례는 종족 을 모으는 수단으로 설명하고, 교사(郊社)의 의례는 천자와 제후들을 모으 는 수단으로 설명한 것이다.

특별한 점은, 천자와 제후의 모임을 설명하면서 ‘상제(上帝)’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중국 주자학 계열의 전통에서나 조선 주자학의 역학 전통에서 동인괘를 해설하며 ‘상제’를 언급한 경우는 보이 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다산이 유배 초기 『주역』을 해석하면서도, 중 국 예수회 선교사들의 소사상제(昭事上帝, 상제를 밟게 섬김)를 중심으로 하는 해석 전통을 견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동인괘 해설에서만 ‘상제’를 3번 언급한 것이 특이하다.

동인괘 95효사 중 “선호도이후소(先號 咷而後笑)”에 관한 해설은 다음과 같다.

 

여괘(旅卦)가 소과괘(小過卦)로 변하는 점괘(占卦, 여괘 상9)에서 말하기를

“선소후호도(先笑後號咷, 나그네가 먼저는 웃고, 나중에는 울부짖는다)”

라고 하였거니와

《[여괘의] 상9의 효사(爻詞)》 “호 도(號咷)”라고 한 것은 소과괘의 상(象)에 해당된다.

소과괘에는 간 (艮)의 죽음과 진(震)의 소리가 있으며 《소과괘는 뇌(雷)와 산(山) 으로 구성된 괘》 감(坎)으로써 그 죽음을 애통해 하니 《소과괘는 본래 대감(大坎)》 가운데가 곧은 괘이다.

《3과 4가 강양(剛陽)》

마땅히 이 [동인괘 95의] 효와 더불어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19

 

     19) 같은 책, 350, “旅之小過曰, 旅人, 先笑後號咷, 《上九詞》 號咷者, 小過之象也. 小過之卦, 艮死 震聲, 《雷山卦》 坎以哀之, 《本大坎》 中直之卦也. 《三四剛》 宜與此爻, 參看.”

 

위 인용문은 상수학적인 방법론으로 ‘선호도이후소’에 관하여 설명한 것이다. ‘울부짖음’이라는지 ‘죽음’과 ‘애통’에 관하여 각각 소과괘와 그것 을 구성하는 감괘의 ‘상(象)’으로 해석하는 전형적인 상수학적 전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상수학적인 해설은 효사의 해석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사전」의 “이인동심 기리단금 동심지언 기취여란(二人同心, 其 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이라는 문장까지 이어진다. 먼저, ‘이인동심 (二人同心)’에 관한 상수학적 해석은 다음과 같다.

 

돈괘(遯卦)와 대장괘(大壯卦)에는 각각 건(乾)이 하나씩 있는데 《[돈괘의] 상건(上乾)과 [대장괘의] 하건(下乾)》 건은 곧 사람이니 《우번(虞翻)의 설(說)》 [돈괘의 한 사람과 대장괘의 한 사람 을 합치면] 이것은 두 사람이 된다.

지금 [동인괘 95가 효변(爻變)하 여 리괘(離卦)로 되면, 돈괘의 상건과 대장괘의 하건이] 모두 리(离) 가 되는데 《[리괘의] 상괘(上卦)와 하괘(下卦)가 모두 리(离)》 리 (离)는 곧 허심(虛心)이므로, [이것은 곧] “이인동심(二人同心)”, 즉 “두 사람이 마음을 함께 하는 것”이 된다.20

 

  20) 같은 책, 371-372, “遯與大壯, 各有一乾, 《上下乾》 乾則爲人, 《虞氏云》 此二人也. 今皆爲离, 《上下离》 离則虛心, 二人同心也.”

 

‘선호도이후소’를 해석하며 두 사람[二人]이 등장하는 것은, 추이법을 통해서 보면 돈괘와 대장괘에 건(乾, ☰)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 을 의미하는 ‘두 개의 건’이 다시 효변법을 통하여 리(离, ☲)가 되는데, 리는 물상법에 의하면 ‘허심(虛心)’ 즉, ‘비어 있는 마음’이기에 두 사람이 자기 의 마음을 비우고 같은 마음이 된다고 해석했다.

추이법과 효변법, 물상법을 동원하여 ‘이인단심’을 해석하였다.

이어지는 ‘기리단금(其利斷金)’에 대 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두 [사람이] 마음을 이미 합쳐서 《[리괘(離卦)의] 상괘(上卦)와 하 괘(下卦)가 리(离)》 건(乾)의 강양(剛陽)의 한 가운데를 잘라내니 《동인괘의 상괘가 본래 건(乾)》 이것은 “단금(斷金)”, 즉 “금을 자 르는 것”이다.

《건은 금이 됨》 태(兌)는 곧 예리(銳利)함이 되니 《대장괘의 상호괘(上互卦)는 [태(兌)이니] 날카로움이 됨》 그 날 카로움으로 쇠[金]를 잘라내는 것이다.

 

여기서는 ‘자른다’는 것의 의미를 상수학적으로 풀고 있는데, 동인괘의 상괘인 리괘(☲)의 가운데 음(⚊)을 건(☰)괘의 가운데 양(⚋)이 잘린 것으 로 설명하는 방식이다.

그 근거로 건이 금(金)이라는 물상법이 적용되었다.

또한 ‘예리함’에 대해서는 호체법을 활용한 후 다시 물상법을 적용하여 태 (兌)괘의 날카로움이라 설명한다. ‘동심지언(同心之言)’에 대한 해설은 다 음과 같다.

 

나는 손(巽)으로써 알려주고 《리괘(離卦)의 하호괘(下互卦)가 손 (巽)》 상대방은 태(兌)로써 말하니 《상호괘(上互卦)는 태(兌)》 이것은 “동심지언(同心之言, 마음을 합쳐서 하는 말)”이다.21

 

      21) 같은 곳, “我以巽告, 《下互巽》 彼以兌語, 《上互兌》 同心之言也.”

 

여기서는 주체를 나[我]와 상대방[彼]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손(巽)은 알려주는 것[告]과 태(兌)는 ‘말하는 것[語]’으로 모두 호체법과 물상법을 적용하였다. 태괘가 입과 말의 형상[口言之象]으로 보는 것은 일반적이다.

 

“나는 손으로 알려주고, 상대방은 태로써 말한다.”라는 해석에서 ‘손고(巽 告)’는 ‘겸손하게 알리는 것’으로, ‘태어(兌語)’는 그 반응으로 ‘기쁘게 대 답하는 것’으로 풀이한다면, 이것이야 말로 ‘같은 마음으로 하는 대화((同心 之言)’가 될 것이다.

이 ‘동심지어’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하는 마지막 ‘기 취여란(其臭如蘭)’에 대한 해설은 다음과 같다.

본래 진(震)의 풀(草)이었는데 《대장괘의 상괘는 진(震)》 여기에 손 (巽)의 향기가 섞이니 《돈괘의 대손(大巽)》 그 형상이 난초(蘭草) 의 모습이다.

《손(巽)은 향(香)이 됨)》 손(巽)은 또한 곧 냄새가 되니 《「설괘전(說卦傳)」의 글》 “기취여란(其臭如蘭)”, 즉 “그 향기가 난 초(蘭草)와 같은 것”이다.22

 

       22) 같은 책, 372-373, “本以震草, 《大壯之上震》 雜以巽芳, 《遯大巽》 其象蘭也. 《巽爲香》 巽則爲 臭, 《說卦文》 其臭如蘭也.” 

 

먼저 ‘난초’에 대한 설명을 하는데, 추이법을 통해 대장괘의 상괘인 진 (震)을 형상을 가지고 풀을 설명했다.

그리고 이 물상법을 다시 활용해 ‘손 괘’에 ‘향기’의 형상이 있음을 설명했고, ‘돈괘’가 등장하는 것은 추이법을 적용해서 설명했다.

여기까지 ‘이인동심 기리단금 동심지언 기취여란’ 열여 섯 글자에 대한 일차적인 해설을 하고, 최종적으로 ‘리(离)’의 의미를 강조 한다.

리(离)는 곧 정성(誠)이 되니 《마음을 비움》 “기리단금(其利斷金, 그 예리함이 쇠를 자른다)”라고 한 것은 리(离)의 정성이 있으면 [쇠 마저] 뚫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23

 

    23) 같은 곳, “离則爲誠, 《心虛中》 其利斷金者, 离誠之所透也.” 230 「기독교철학」 제42호 

 

원래 리(离, ☲)는 동인괘의 아래에 있는 하괘이다.

그런데 효변법에 의 하면, 동인괘 95효는 건괘에서 리괘로 변한 것이다.

앞서 ‘기리단금’을 해석 하며 건의 가운데 양을 끊어 음으로 만들었기에 금을 끊은 것이라 했는데, 여 기서 다시 물상법을 적용해 리(离)의 ‘정성[誠]’을 강조한다.

단순히 가운 데 양 또는 금이 끊어진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정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 이다.

‘정성’은 ‘붕우유신(朋友有信)’에서 말하는 ‘신(信)’의 다른 표현이 기도 하면서, 다산이 『대학』을 해설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개념이기 도 하다.

다산은 『대학공의』에서 실천을 중시하는 논의에서 ‘교우’를 언급 한다.

 

이를 가리켜 성의라고 한다. 그로써 임금을 섬기고 그로써 벗과 사귀며 그로써 백성을 다스리니, 자기의 뜻을 정성스럽게 하는 것은 모두 일을 실천 함에서 이루어진다. 한갓 뜻만으로는 정성스럽게 한다고 말할 수 없으며 한 갓 마음만으로는 바르게 한다고 할 수 없으므로 『대학』에서 “소인이 한가하 게 있을 때 불선을 행하되 하지 않는 짓이 없다”라고 하였다.24

 

     24) 이광호 외 역, 『대학공의』 (사암, 2016), 71, “斯之謂誠意也. 以之事君, 以之交友, 以之牧民, 其 所以誠其意者, 皆在行事. 徒意不可以言誠, 徒心不可以言正, 故經曰小人閒居爲不善, 無所不 至.”

 

『대학』의 수기론(修己論) 또는 성리학의 수양론(修養論)적 관점에서 8 조목 중 세 번째 조목인 ‘성의(誠意)’와 네 번째 조목 ‘정심(正心)’은 ‘격물 치지(格物致知)’의 다음 단계로 이해되지만, ‘뜻’과 ‘마음’에 관한 것이어 서 마치 불교의 수양법처럼 이론적인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다산은 단호히 불교적 해석을 거부하고 ‘실천’을 강조하면서, 유교의 ‘성의’가 임금 을 섬기는 일에나 백성을 다스리는 일뿐만이 아니라, 벗과 사귀는 데에서 실 천함으로 이루어지는 주요한 개념으로 설명했다.

 

Ⅴ. 나가는 말

 

『주역』의 동인괘는 ‘함께 함’ 즉, ‘동인(同人)’이라는 개념을 통해 우정 과 인간관계의 철학을 심오하고 폭넓게 드러낸다.

동인괘에서 강조하는 우 정이란 단순히 개인 간의 정서적 교류를 넘어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그 마 음이 강력한 공동체적 힘을 발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개인적 우정에서 출발하여 사회적, 정치적, 그리고 더 나아가 국가적 차원까지 아우르는 협력 과 소통의 중요성을 담고 있다.

특히 동인괘의 효사 가운데 대표적인 문장인 ‘선호도이후소(先號咷而後笑)’는 처음에는 서로의 입장 차이나 이해의 부족으로 인해 갈등과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서로 이해하고 마 음을 하나로 합쳤을 때 강력한 힘이 발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초기의 울부 짖음과 갈등이 결국 화합과 기쁨의 웃음으로 변화된다는 이 상징은, 모든 인 간관계가 겪을 수 있는 초기의 난관과 이후 찾아오는 진정한 화합과 성취의 과정을 잘 나타낸다.

다산 정약용은 이러한 동인괘의 의미를 독특한 상수학적 방법론을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그는 특히 ‘이인동심 기리단금(二人同心 其 利斷金)’의 구절을 통해 두 사람이 서로의 개인적 욕심과 이해관계를 내려 놓고 진정으로 마음을 하나로 합할 때 날카롭게 금속을 끊을 정도의 강력한 힘을 얻게 된다고 해석하였다.

또한 이러한 마음의 결합이 단지 강력한 힘만 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난초처럼 향기로운 덕성과 명예가 자연스럽게 발 현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해석은 다산의 인간관계에 대한 철학적 통찰을 잘 보여준다.

다산의 해석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그가 ‘동인’을 설 명하면서 공적인 모임과 사적인 모임을 나누어 설명했다는 점이다.

사적인 모임은 가족과 종족 중심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며, 공적인 모임은 보다 폭 넓게 천하의 사람들을 모아 상제(上帝)를 섬기는 형태로 확장된다.

이는 다 산이 바라본 ‘동인’의 의미가 개인과 가족의 범위를 넘어, 공동체와 국가적 차원에서의 화합과 통합의 의미를 담고 있음을 잘 나타낸다.

오늘날에도 다산이 강조한 ‘금란지교(金蘭之交)’는 인간관계의 깊은 이 상으로 계속 남아 있다.

서로 다른 개인들이 단순히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관계가 아니라, 공동의 목표와 이상을 위해 기꺼이 자기 자신을 희생하고 서 로 협력할 수 있는 관계가 바로 금란지교이다.

이러한 관계는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조건이다.

현대 사회는 많은 갈등 과 소통의 부재, 그리고 개인주의의 심화로 인해 관계적 위기를 겪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주역』의 동인괘가 제시하는 우정의 철학은 우리에게 큰 울림과 교훈을 준다.

동인괘가 강조하는 우정과 협력의 정신을 현대적 맥락에 서 재조명하고 실천한다면,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 국가적 차원의 화합 과 평화까지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결국 『주역』 동인(同人)의 우정론은 우 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철학적 유산이다. 

 

참고문헌

『與猶堂全書』 『周易傳義』 James Legge, The Book of Changes (1863) 한국주역대전(韓國周易大全)DB 곽신환 (2017). 『주역의 지혜』. 서광사. 왕부지, 김진근 옮김(2014). 『주역내전』. 학고방. 유영식 편역(2013). 『(착[한]목쟈) 게일의 삶과 선교』. 진흥. 이광지, 신창호 외 옮김(2018). 『주역절중』. 학고방. 정약용, 방인 외 옮김(2007). 『역주 주역사전』. 소명출판. 정약용, 이광호 외 옮김(2016). 『대학공의 대학강의 소학지언 심경밀험 :역 주』. 사암. 

 

초 록

이 글은 『주역』의 동인괘(同人卦)에 나타난 우정의 철학을 고찰하고, 특 히 다산 정약용의 『주역사전』에 나타난 동인괘 해석을 분석한다. 동인괘는 사람들 간의 화합과 소통을 강조하며, 특히 ‘선호도이후소(先號咷而後笑)’ 라는 효사를 통해 초기 갈등 이후에 이루어지는 진정한 화합의 과정을 제시 한다. 다산 정약용은 이를 상수학적 방법으로 해석하여 ‘이인동심 기리단금 (二人同心 其利斷金)’의 의미를 구체화하고, 마음을 합칠 때 강력한 힘과 향기로운 덕성이 나타남을 강조하였다. 다산은 또한 사적 모임과 공적 모임 의 개념을 통해 동인의 의미를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국가적 차원으로 확장하였다.

키워드 : 역경, 주역, 우정, 정약용, 동인 

 

 

Abstract

I-ching’s Friendship : Dong-in (同人)

Kookhwa Uhm (Seoul National University Institute of Humanities)

This study examines the philosophy of friendship presented in the Dongin hexagram (同人卦) of the Book of Changes (Zhou Yi), with a particular focus on Jeong Yak-yong’s interpretation found in his Jooyeoksajeon (周易四箋). The Dong-in hexagram emphasizes harmony and communication among people, especially through the interpretation of the line statement ‘first weep and lament, but afterward they laugh (先號咷而後笑)’, illustrating the process of genuine reconciliation after initial conflicts. Jeong Yak-yong explicated this concept through numerological methods (象數學), highlighting the profound meaning of ‘when two people are at one in their inmost hearts, they shatter even the strength of iron or of bronze (二人同心 其利斷金)’, emphasizing the immense power and virtuous character that emerge when people unify their hearts. Jeong also differentiated private gatherings from public assemblies, expanding the notion of Dong-in from an individual to a societal and national dimension.

Key words : I-ching, Zhou Yi, friendship, Jeong Yak-yong, Dong-in

 

 

논문투고일: 2025.03.31 논문심사일: 2025.04.12 게재확정일: 2025.04.23

기독교철학 제42호 (2025)

 https://doi.org/10.23291/jcp.2025..42.209 

『주역(周易)』 동인(同人)의 우정론.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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