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정치

조선초기 경학사상의 문화다원론적 특징-미시적 접근과 거시적 접근을 중심으로/엄연석(嚴連錫).한림大

jn209 2025. 6. 8. 09:31

 

<目 次>

1. 머리말

2. 조선초기 경학사상의 배경과 경세론적 특성

3. 조선초기 경학사상에 대한 미시적 해석-理氣 개념에 내포된 보편성과 특수성

4. 조선초기 경학사상에 대한 거시적 해석-경세 론과 제도론으로 연역

5. 맺음말

 

 

1. 서론

 

이 글은 조선초기 경학사상이 내포하고 있는 문화다원론적 특 성1)을 미시적 관점과 거시적 관점에서 고찰하고자 한다.

 

    1) 문화다원론은 기본적으로 수많은 인류 종족의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각각의 문화는 독특한 역사적 환경의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 특정한 사회의 역사적 맥락을 헤아려서 그 문화를 평가해야 하며, 어 떤 문화 요소도 그 나름의 분명한 존립 근거가 있다는 것이다. 루스 베네 딕트(Ruth F. Benedict)는 문화의 유형에서 특정 문화권에서의 인간 행위 가 그 사회의 관습에 따라 얼마나 다양한가를 보여주었다. 그에 따르면 각각의 문화는 서로 상대적인 측면들을 가지고 있으며, 문화적 가치는 그 사회적 환경과 조건에 따라 고유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서, 각기 다른 규범체계를 구성한다. 이 또한 문화 사이의 가치론적 비교가 불가능하며, 평등한 시각에서 문화마다 그 요소들은 고유한 상대적 가치를 가지는 것 으로 이해하는 입장이다.(엄연석, 「주역 상징체계에 내포된 문화다원론 적 함의와 도덕적 표준」, 인문연구 156호, 영남대 인문과학연구소, 2019, 158쪽.) 

 

이 글 에서 조선초기 경학사상의 문화다원론적 특징을 미시적 관점과 거시적 관점으로 살펴보기 위해서는 몇 가지 검토할 사항이 필 요하다.

 첫째는 ‘경학(經學)’이라는 말이 뜻하는 의미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둘째는 경학이라는 말의 의미 를 규정하는 것과 연관하여 ‘사상(思想)’이라는 개념의 의미를 설 명하는 것이다.

 셋째는 경학이 유학의 육경(六經)에 관한 주석과 해설, 그리고 정치적 제도화 등을 포괄하는 의미를 가지는 것으 로 광의(廣義)로 해석할 때 경세론을 포함한다는 것에 대한 문제 이다.

  넷째는 이러한 검토에 근거하여 조선시대 경학사상의 문화 다원론적 체계는 유학의 주석사로서 한당의 훈고학, 송대의 성리 학, 명대의 양명학에 관한 주석 및 해설에 대한 연구를 수평적 시각에서 포괄하는 것에 대한 검토이다.

  다섯째, 유가 경학(經學) 의 내용이 사서삼경(四書三經)의 정치사상과 제도에 관한 문제들에 대한 주석과 해설을 포괄하고 있는 만큼, 정치제도와 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경세론에 관한 내용을 검토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조선초기 경학에 대한 문화다원론적 특징을 성리학적 우주론, 심 성론, 실천 수양론, 정치경세론, 제도론 등으로 구분하여 이를 시 대적 선후와 주제 영역을 수평적 다원적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조선초기 경학사상의 문화다원론적 특징을 미시적 관점과 거 시적 관점으로 구분하는 것에 이 논문의 특징이 있다.

먼저 미시적 관점의 연구가 경학 사상에 대한 주석이나 해설 가운데 우주론과 심성론, 실천수양론에 대한 개념적, 분석적, 연역적 해명이 라고 한다면, 거시적 관점의 연구는 정치사상 및 경세론, 제도론 에 대한 경험적, 종합적, 귀납적 조명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미시적 해석이 현상으로 드러나기 이전의 현상을 드러내 는 이치에 대한 미시적 양상에 대한 분석적 해명이라면, 거시적 해석은 이치가 드러난 현상이 지니는 양상에 대한 검토가 된다.

이 글은 성리학을 이념으로 하여 국가의 전장제도를 확립하는 데 강조점을 두었던 조선초기와 왕조의 제도와 체계가 안정기에 접어든 조선전기를 중심으로 미시적 관점 및 거시적 관점에서의 경학적 특징을 검토하고자 한다.

먼저 조선 초기는 왕조건국의 기초를 이념적 제도적 기초를 세운 정도전(鄭道傳)과 권근(權近), 변계량(卞季良), 양성지(梁誠之), 최항(崔恒), 김종직(金宗直), 성현 (成俔) 등과 같은 관학파의 경학사상을 중점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이들에 대한 조명을 통하여 조선초기의 경학사상이 공시적 관점과 통시적 관점, 경학사상의 범위가 지니는 다양성에 따른 해석의 차이를 포함하여 문화다원론적 함의를 가지고 있음을 해 명하고자 한다.

다음 제2장에서는 조선 초기 경학사상과 함께 경세론적 배경 을 살펴보고자 한다.

제4장에서는 조선 초기 경학사상을 미시적 관점에서 해석하되, 이기(理氣) 개념에 내포된 보편성과 특수성 에 주목하여 검토하고자 한다.

제5장에서는 조선초기 경학사상의 거시적 측면으로서 경세론과 제도론으로 연역되는 측면을 해명 하고자 한다.

마지막 맺음말에서는 조선 초기 경학사상이 경학과 경세론을 포괄하여 문화다원론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강조 하고자 한다.

 

2. 조선초기 경학사상의 배경과 경세론적 특성

 

이 장에서는 조선초기 경학사상의 배경을 살펴보기 위하여 경 학적 사유가 시원을 이루던 고려 후기 이후 정치적 사회경제적 제도 그리고 불교를 중심으로 하는 종교적 배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어서 경학적 사유를 구체적으로 행한 학자관료들의 기본 적 학문적 특징을 검토하고자 한다.

고려시대는 중기 이후 무신정권이 이어지고, 원나라의 침략과 지배에 따른 정치 사회적 환경의 변화로 급격하게 사회적 안정 성이 무너지면서 적폐를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권문세족은 고려 후기에 선대의 공덕으로 음서(蔭敍)로 관인신분을 세습하거나, 왕실과 혼인을 맺은 외척으로 범위를 넓혀 간 세력이었다.

원나 라가 고려를 지배하게 된 이후 고려 왕실은 원(元)의 황실과 혼인관계를 맺어 그들의 부마(駙馬)가 됨으로써 보호를 받고자 하 였다.

이에 따라 고려의 주요 관제로 변경지방의 군사문제를 의 논하는 회의기관으로 도병마사(都兵馬使)는 각종 국사(國事)를 처리한 중심기구로서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로 개편되었다.

이 도평의사사에 참여하는 구성원이 거실의 자제로 권문세족 출신의 관인들이었으며, 이들은 국정 전반에 참여함으로써 자신 들의 정치 경제적 권리를 행사하며 지배계층으로 군림하였다.

이 들은 거대한 농장(農莊)과 많은 노비를 소유하여 이를 자기 자손 들에게 세습하였다.

이들 관인은 국가로부터는 녹봉 대신 녹과전 (祿科田)도 지급받았다.

그리하여 이들이 소유한 농장은 수백 결, 수천 결에 달했고 산천을 경계로 하거나 주군(州郡)에 걸치는 광 대한 것도 있었다.2)

 

     2) 한국사연구회 편, 한국사연구입문, 지식산업사, 1982, 254쪽.

 

이들 권문세족들은 경제적으로 토지의 겸병 과 독점을 통하여 고려 후기의 국가의 경제적 모순을 낳는 중심 세력이 되었다.

고려 말기에 접어들면서는 불교계가 사회경제적 폐단의 소굴 이 되었다.

본래 고려시대에는 과거제도에 승과(僧科)를 두어 합 격자에게 국가에서 직위와 토지를 하사하였다.

수준 높은 대우를 함에 따라 고려시대에는 승려가 되려는 사람이 많았다.

이렇게 불교가 융성하면서 폐단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세금과 군역을 피 하고자 승려가 되려는 사람이 생겨났고, 사원은 재산을 늘리기 위하여 토지 겸병에 힘쓰고 상업이나 고리대업에도 종사하였다.

불교계는 말기에 부패가 심화되어 사원에서는 토지를 겸병하고 모리(謀利)의 소굴이 되고, 간승(奸僧)들이 발호하여 날마다 호화로운 생활을 하였다.3)

고려 말기에 유학 지식을 통하여 신진 사 대부로 성장한 학자들은 대부분 이러한 불교계의 모순과 폐단을 비판하는 대열에 참여하였다.

이처럼 국가의 토지와 농장을 대부분 권문세가와 불교사원이 사유지로 점령하여 전제(田制)가 문란하게 됨에 따라 고려말기에 국가의 재정을 파탄이 나고 고갈되어 고려말기는 국가의 경제력 이 극도로 쇠퇴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문제를 공민왕은 전민변정 도감(田民辨正都監)을 설치하고, 신돈(辛旽)을 등용함으로써 여러 가지 개혁정책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여기에서 전민변정도감은 고려 후기 권세가에게 점탈된 토지·농민을 되찾기 위해 설치된 임시관서였으나, 권문세족의 반발로 실패하였다.

전제개혁을 위 한 이러한 노력은 이후 1391년(공양왕3)에 개혁파 신진사류이자 조선왕조 건국공신인 조준(趙浚)이 과전법(科田法) 4)을 시행한 것 으로 결실을 맺었다.

 

     3) 이병도, 한국유학사, 아세아문화사, 1987, 98쪽.

     4) 과전법은 토지분급에 관한 규정, 조세수취규정, 전주와 전객의 관계에 관 한 규정 등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고려 말, 국가 재정의 고갈 문제를 해 결하기 위해 권문세족이 불법으로 점유한 토지를 몰수하여 관리들에게 급 료로 토지를 분급한 제도이다. 해당 관리는 과전에서 나오는 세금을 거두 는 권리인 수조권을 부여받았다. 이는 조선 초 이 토지제도의 근간을 이 루었다. 과전법 시행으로 개인수조지는 축소되고 국가수조지가 확대되어 국가를 지탱해주는 물적 기반이 늘고, 농민들을 국가가 직접 파악함으로 써 국가통치기능이 회복되었다. 

 

고려 후기에 무신정권이 성립되고, 원나라의 지배가 시작되면서 권문세족과 불교 사원의 토지겸병과 독점으로 인한 국력의 약화로 고려는 유학과 성리학을 이념으로 삼아 새롭게 성장하기 시작한 신진사대부 세력에 의해 멸망되고 새로운 조선왕조가 개 창되었다. 여기에서 새 왕조를 열었던 신진사대부들이 지향했던 유학과 성리학 이념을 담은 경전(經傳)을 새 왕조의 운영원리이 자 기초로 삼아 연구하는 학문을 경학(經學)이라고 일컬을 수 있 다.

이제 조선왕조의 통치이념으로서 유학과 성리학을 토대로 하 는 경학(經學)적 사유의 시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기로 한다.

경 학(經學)의 시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갈 때 그 기준을 경(經)을 학습하는 기관을 설립한 것으로부터 찾고자 한다면, 신라시대 국 학에까지 올라가야 하지만 이 글에서는 고려시대의 경전 학습기 관의 연원을 고찰하고자 한다.

고려사(高麗史)「선거지(選擧志)」「서문」에 ‘태조는 먼저 학교 를 세워다’고 하거나, 서경(西京)에 행차하여 그곳에 학원을 세웠 다는 등의 기사로 볼 때 고려시대에는 태조 왕건이 건국을 한 초기부터 신라의 국학(國學)을 이은 국립대학이 있었을 것으로 추론된다.

이후 성종(成宗) 11년(992년) 에 “국자감(國子監)을 창 건하라”는 기사가 전하는 것으로 보아 국자학, 태학, 사문학을 포함하는 국자감이 성종 시기에 세워졌으나 형식적인 기관만 설 립하고 재정상 어려움과 사학(私學)의 성행으로 실질적인 교육이 이루어지지는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

예종(睿宗)과 인종(仁宗) 때 는 관학진흥책을 썼는데, 특히 예종은 최충의 9재(齋)를 모방하 여 7재(齋)를 설치하였다.

여기에서는 7종의 전문 강좌로서 주 역(周易), 상서(尙書), 모시(毛詩), 주례(周禮), 대례(戴 禮), 춘추(春秋), 무학(武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 데 앞의 6종이 유학재(儒學齋)로 삼경(三經)을 포함하는 유가 경 전을 공부하는 재(齋)이다.

고려시대 국자감의 유학부(儒學部)의 교육과정과 수업연한을  보더라도 효경(孝經)‧논어(論語), 상서(尙書)‧공양전(公羊傳)‧곡양 전(穀梁傳), 주역(周易)‧모시(毛詩)‧주례(周禮)‧의례(儀禮), 예기 (禮記)‧좌전(左傳) 등의 과목으로 이루어지며, 각각 1,2,2,3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경전은 모두 유학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경 전들이며, 이들로부터 바로 경학(經學) 교육을 위한 제도적 장치 가 고려 전기부터 갖추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학관(學 官)으로 유학부에는 경학(經學)에 뛰어나고 언행이 독실하여 사 범(師範)이 될 만한 인물을 박사조교로 삼아 각 경서를 가르치도 록 하였다.5)

 

  5) 朴龍雲, 高麗時代史 上, 1996, 367~373쪽. 

 

이렇게 경학에 관한 교육을 국가적으로 정비하는 과정을 통해 유학을 학습한 학자들이 양성되었다.

안향(安珦)은 충렬왕 160년(1290년)에 연경(燕京)에서 처음으 로 신간 주자서(朱子書)를 얻어 보고 잠심 연구하여 그 내용이 공맹(孔孟)의 정맥임을 알고 그 책을 손수 베끼고 초상을 모사하 여 돌아왔다.

이후 우탁(禹倬)과 권부(權溥)등이 각각 주역「정 전(程傳)」을 도입하고, 사서집주를 간행하여 유학과 성리학을 수용하였다. 이들 성리학에 관한 서적 도입을 시초로 고려 후기 에 이제현(李齊賢), 이곡(李穀), 백문보(白文寶), 이색(李穡) 등은 유학에 기초를 두면서도 성리학을 학습하여 송대 이기심성론을 중심으로 하는 형이상학적 경학(經學)의 세례를 받기 시작하였 다.

그러면 고려 말기와 조선 건국시기에 활동했던 경학자들이 제시한 경학적 사유의 일단을 점검해보고자 한다.

먼저 목은 이색은 고려말기 경전 내용에 대하여 경학적 사유 의 시원을 연 대표적 학자라 할 수 있다.

그는 이기론과 심성론,  수양론 등 성리학의 기본 이론을 받아들이면서도 유학의 경학적 사유를 제시하였다.

이색은 중용과 주역을 경학적 관점에서 이해하고자 하였다.

그는 중용을 유가의 심법(心法)이 담겨 있 는 경전으로 간주하였고, 성(誠)이 천도와 인도를 통일하는 기준 이 되는 것으로 보았다.

또한 중화계구(中和戒懼) 등의 개념을 통하여 심성론과 수양론의 내용을 제시하는 측면에서 중용의 경학적 측면을 해설하였다. 또 주역의 경우는 정이 계열의 의리역의 관점에서 설명하였고, 강건한 양(陽)을 중시하였다.

나아가 정(貞)을 주역의 중심개념으로 해석하면서 이것으로 오경 (五經) 전체를 일관되게 해석하였다.6)

이어서 정몽주의 경학에 대한 이해는 「포은봉사고서(圃隱奉使 藁序)」에 기록된 정도전의 증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그에 따르 면 정몽주는 대학의 핵심 요강을 제시하고 중용의 극치를 이해하는 데서 도를 밝히고 전하는 요지를 얻었고, 논어와  맹자의 정밀함에서 마음을 보존하고 본성을 함양하는 요점과 체험하고 넓히는 방법을 얻었다.

주역에서는 선천과 후천이 번 갈아 체용(體用)이 되는 것을 알았고, 서경에서 정일집중(精一 執中)이 제왕이 전해준 심법임을 알았다.

시는 인륜의 규범과 사물의 법칙에 대한 가르침이 근본하고, 춘추는 도리와 공리가 나뉨을 변별하였다.7)

 

     6) 琴章泰, 朝鮮前期의 儒學思想, 서울대학교출판부, 1997, 40쪽.

     7) 三峯集 卷3, 「圃隱奉使藁序」, “先生於大學之提綱, 中庸之會極, 得明道傳 道之旨, 於論孟之精微, 得操存涵養之要, 體驗擴充之方, 至於易知先天後天, 相爲體用. 於書之精一執中, 爲帝王傳授心法, 時則本於民彝物則之訓, 春秋 則辨其道誼功利之分.” 

 

이러한 정몽주의 경전이해는 경학을 통하 여 성리학의 다양한 영역을 파악하는 것이고, 성리학적 경학의 핵심 요령을 제시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8)

정몽주(鄭夢周) 이후 여말선초의 경학(經學) 사상에 관하여 현저한 업적을 세우고 있 는 학자이자 정치가로는 정도전(鄭道傳, 1342-1398)과 권근(權近, 1352-1409)을 들 수 있다.

정도전의 경학사상은 기본적으로 경 세론적 필요성에 따라서 경전적 근거를 위하여 유학의 여러 경 전을 원용하면서 그 제도적 실천적 의의를 해명하고자 한 것이 다.

반면에 권근의 경학 사상이 지니는 특징은 유학의 여러 경전 (經傳)이 가지는 경세론적 실천적 의미와 함께 경전 자체와 경전 사이의 연관성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자 했으며, 나아가 오경천견록(五經淺見錄)에서 볼 수 있듯이 개별 경전에 대한 전문적인 주석을 붙이고 있다는 점에서 뛰어난 성과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정도전의 경학사상은 그의 재상중심론(宰相中心論)을 뒷받침하 기 위한 경세론적 관심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의 경학 사상 은 그의 중심 저술인 삼봉집(三峯集),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 경제문감(經濟文鑑), 경제문감별집(經濟文鑑別集) 등에 편 재하여 나타난다.9)

 

    8) 琴章泰, 같은 책, 53쪽.

    9) 금장태는 삼봉 정도전이 이들 저술을 지은 의의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 다. “삼봉은 유가적 원리에 따라 조선경국전의 체계를 구성하면서 또한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대 왕조를 통한 정치의 득실을 평가하여 귀감을 보 이기 위해 경제문감, 경제문감별집을 저술하였다. 이들 저술은 유교 이념을 정치적으로 구체화하고 사회적으로 제도화하여 유교사회의 기반 을 확립시키고 유교이념의 이상을 구현하고자 한 의지를 발휘한 것이며,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도학적 경세론의 체계화이다”(금장태, 같은 책, 148 쪽)라고 하였다. 

 

그는 논어, 맹자, 대학, 중용 등에 대한 주자의 해석을 토대로 성리학적인 인론(仁論)과 경세론을 제시하는 경학적 특색을 가지고 있다.

또한 조선경국전은 주례(周禮)의 육전(六典) 체제에 기초하여 원나라의 경세대전의 편목을 참고하였고, 그 구체적 내용은 남송대에 지어진 주례정 의와 산당고색 등을 활용하였다.

그는 주자학의 정치이념에 입각하여 새로운 왕조의 기반을 세우려고 하였고, 이를 조선경 국전에 반영하고자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경제문감과 경제문감별집을 지어 주례 정의에서 재상이 육전 전체를 총괄하고 궁정 사무까지 맡는 이 른바 재상정치론을 원용하였다.

경제문감에서 그는 재상과 대 관, 간관, 위병 등을 통하여 재상의 정치운영과 대간의 권력 견 제를 중심으로 한 정치운영, 감사, 주목, 군태수, 현령 등을 통한 중앙과 지방의 통일적 집권체제의 구상을 제시하였다.

경제문감 에서는 산당고색, 서산독서기 등 사공학으로 분류된 서적 에 실려 있는 주자의 견해를 대폭 수용하였다.

이처럼 경제문감 은 성리학을 포용한 사공학의 경세론적 측면을 수용하면서 인 성 혹은 도덕적 본성과 아울러 경세론까지 외연이 확대된 주자 의 정치사상을 받아들였다.10)

306 공자학 제48호  

 

이처럼 정도전은 조선왕조를 열기 위하여 유학과 성리학을 이념적 기초로 하여 그 경전적 근거를 세우기 위하여 사서삼경과 주례에 대한 여러 해석들을 원용 함으로써 경세론적 관심에 중점이 두어진 경학사상적 특징을 보 여주고 있다.

권근(權近)의 경학 사상은 오경(五經) 전체에 대한 주석서를 짓고, 이들 사이의 유가철학적 의미구조를 체계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조선 건국시기에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권근의 경학(經學)에 관한 저술은 입학도설(入學 圖說)과 오경천견록(五經淺見錄)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권근의 경학 저술은 그의 사상을 내포하고 있는 대표저작일 뿐만 아니 라 한국경학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체계성을 이루고 있다.

 입학도설과 오경천견록을 중심으로 하는 그의 경학의 가장 커다란 특징은 사서오경을 그 의미 연관성에 따라 체계화하고 있다는 점이며 그 체계화의 방법을 성리학의 체용론(體用論)을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그는 입학도설에서 대학의 기본구조를 체용 (體用), 본말(本末), 지행(知行), 공부와 공효의 대응 구조로 이해 하며, 특히 3강령과 8조목을 각각 체용(體用)과 지행(知行) 구조 로 파악하였다.

중용에 대해서도 권근은 체용론에 따라 그 구 조를 설명하는데, 중화(중화)를 체용(體用)과 이기(理氣)의 이원 적 구조로 이해하였다.

권근이 체용론의 관점에서 해석한 유학 경전 가운데는 오경(五經)을 체용 개념을 통하여 이해한 것이 백 미(百媚)를 이룬다.

그는 오경 각각의 경전 자체를 체용으로 나 누어 이해할 뿐만 아니라, 오경 사이의 관계를 체용론으로 이해 하고 있다.

그는 역경을 오경의 전체(全體)라 하고, 춘추를 오경의 대용(大用)이라고 하여, 주역과 춘추를 오경의 체용 적 기본구조로 표출시키고 있다.

또한 그는 오경의 유가적 통합성을 확인하면서 오경(五經)을 성인(聖人)과 상응시켜 체용론으 로 해설하는데, 곧 성인은 오경의 전체요, 오경은 성인의 대용이 라는 것이다.11)

 

   11) 琴章泰, 같은 책, 164쪽. 

 

이처럼 권근은 여말선초 왕조 건국기에 성리학의 핵심논리로 서 체용론에 입각하여 여러 경전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리학적 경학의 확고한 기초를 구축하였다.12)

강문식은 권근의 오경천견록은 고려 중기 북송성리학의 영향으로 형성 된 이래 이제현, 이색 등을 거쳐 이어진 오경(五經) 중심의 경학 풍을 수용하고 여기에 충렬왕대 이후 수용된 성리학적 경학론을 반영함으로써 고려 경학을 총정리하고 동시에 조선 경학의 출발 점이 되었던 중요한 저술이라13)고 평가하였다.

 

     12) 체용론이란 형식으로 체계화 권근의 경학에 대하여 강문식은 권근의 경 학 체계의 핵심이론을 천인합일론으로 보았다. 그는 “그의 천인합일론은 고려말 성리학 수용 이래 나타난 천리적 천관에 기초하여 성립된 것으 로, 핵심은 천리의 분명한 실체를 인식하고 그에 부합하는 인도를 구현 함으로써 천인합일을 달성한 이상사회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권근의 천인합일론은 오경 전체를 하나의 일관된 체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연결고리가 되며, 나아가 정치관 사회신분론, 예론 등 그 의 모든 학문 사상 체계의 이론적 출발점이 된다”(강문식, 권근의 경학 사상연구, 일지사, 2008, 344쪽.)라고 하였다.

     13) 강문식, 같은 책, 345쪽. 

 

3. 조선초기 경학사상에 대한 미시적 해석 - 理氣 개념에 내포된 보편성과 특수성

 

인의예악에 기본을 두는 도덕적 이상 정치는 송대에 이르러 천리(天理)를 본체로 하는 이기론(理氣論) 형이상학에 근거를 두 게 된다.

그런데 송대 주희에 의하여 집대성된 이기심성론 또한 자연과 인간을 포괄하여 근원적 실체를 전제하면서 이를 통하여 시공을 초월한 보편성을, 기를 통하여 시공에 제약을 받는 특수 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 이기론에서 언급하는 이와 기 개념 각각이 지니는 특징과 이 양자 사이의 상관관계를 간략하게 정 리해 보고자 한다.

이(理)는 선진시기에 본래 옥의 결이나 조리를 뜻하였다.

그러 나 순자에서는 마음을 성실하게 하여 의를 행하는 것이 이(理) 라고 하는 것이나14), 예기에서 ‘의리(義理)는 예(禮)의 문(文) 이다’15)고 하는 것처럼 인간의 행동을 세련되게 하는 것으로서 사회적인 도리로 이해되었다.

이처럼 자연의 무늬 또는 인간의 사회적 도덕률을 규정하는 의미로 쓰이던 이(理)가 송대 주희에 이르러서는 현상사물의 배후에서 그것을 규정짓는 자연과 도덕 을 포괄하는 형이상학적 실체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주희의 철학에서 핵심 개념은 이(理)이며, 이것은 그의 철학의 출발점이자 귀결처이지만, 반드시 기에 의지하여 비로소 물질적 토대를 가지고 운동할 수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리와 기의 상 관관계를 언급하였다.

 

아래로부터 미루어 올라가면 오행(五行)은 단지 이기(二氣)이고, 이기(二 氣)는 일리(一理)일 뿐이다. 위로부터 미루어 내러오면, 단지 이 하나의 리는 만물이 그것을 나누어 체(體)로 삼는다. 만물 가운데 다시 각각 하나의 리를 갖추고 있는 것이 이른바 “건의 도리가 변화하여 각각 성명을 바르게 가진 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총괄하면 또한 단지 하나의 리일 뿐이다.16)

 

   14) 荀子「不苟」, “誠心行義則理, 理則明, 明則能變矣.”

   15) 禮記「禮器」, “義理, 禮之文也.”

   16) 朱子語類卷94, “自下推上去, 五行只是二氣, 二氣又只是一理. 自上推而 下來, 只是此一个理, 萬物分之以爲體. 萬物之中, 又各具一理, 所謂乾道變 化, 各正性命. 然總又只是一理.” 

 

그는 이기 관계를 말하면서 위와 아래로 오고 가면서 오행(五 行)과 이기(二氣)를 매개로 만 가지 사물로부터 하나의 리로, 하 나의 리로부터 만 가지 사물로 사물과 이치의 순환적 변화를 강 조하였다.

주희의 세계의 구조에 대한 이해에서 이는 우주만물의 본원이고, 인류사회의 최고의 원칙이다.

본체로서 이는 자체로 유일무이한 것이고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 은 순수하게 절대적이고 공허한 이(理)이다.17)

반면 기는 음양으로 분화되면서 천차만별한 구체적인 현상세 계를 사물과 형형색색의 세계를 낳는 것이다.

주희는 천지 사이 에서 음양이 갈마들어 수많은 사물을 산출하는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천지의 시초에 단지 음양의 기만 있었는데, 이 기가 운행하여 갈고 문지르 는 것이 빠르게 이루어지면 많은 찌꺼기를 빚어내게 된다. 속에서 나오지 못 하는 것은 곧 중앙에 땅이 된다. 맑은 기는 하늘이 되고, 해와 달이 되며, 별 이 되어, 단지 밖에서 지속적으로 돌고, 땅은 중앙에서 움직이지 않는다.18)

 

  17) 張立文, 宋明理學硏究, 中國人民大學出版社, 1985, 398쪽.

  18) 朱子語類卷1, “天地初間, 只是陰陽之氣, 這一个氣運行, 磨來磨去, 磨得 急了, 便拶許多渣滓, 裡面無處出, 便結成个地在中央. 氣之淸者, 便爲天, 爲日月, 爲星辰, 只在外常周環運轉, 只便地在中央不動.” 

 

음양의 두 기가 움직여서 빠르게 변화하면서 삼라만상의 사물 이 빚어져 나와 하늘과 일월성신과 땅이 된다.

이 때 자연사물에 있어서 기는 단순하게 사물의 특성을 다양하게 하는 질료적인 것이 되는 반면 인간사회에 있어서 기는 청탁후박(淸濁厚薄)에 따라 도덕적 자질의 차이를 가져온다.

여기에서 자연 사물에서와 인간사회에 적용되는 이와 기의 상관관계는 필연성과 법칙성, 보 편성과 특수성, 단일성과 다양성, 당위성과 목적성 등의 관점에 서 이해된다.

다시 말하면 성리학에서 언급되는 이기(理氣) 개념은 자연과 인간을 대상으로 할 때 그 의미가 다르게 이해된다.

뿐만 아니라 학자들마다 각각의 철학적 관점과 이론체계에 따라서 이들 개념 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가 달라진다.

이렇게 학문적 체계에서 구 별되는 의미가 현실적인 정치상의 제도에 적용될 때는 커다란 문화적 차이를 가져오게 된다.

이 점에서 개별 학자가 제기하는 이기심성론 체계가 내포하고 있는 이론적 특성을 세밀하게 점검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화다원론 논의의 핵심 전제는 인류 종족의 모든 문화는 역 사 문화적 사회적 환경과 조건에 따라 특수성과 다양성에 따라 고유성을 가지고 평등하고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문화다원론은 특수성과 개별성, 다양성과 평등성을 핵심적인 특징으로 전제하 는 이론이다.

이를 성리학의 이기(理氣) 개념의 본질적 특성에 대한 논의로 연역해 보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먼저 이기(理氣) 개념 가운데 문화다원론의 핵심 의미를 설명 하는 데는 기(氣) 개념에 대한 분석적 이해가 필요하다.

기(氣) 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본격적으로 진행한 학자는 북송대 장재 (張載, 1020-1077)이다.

그는 기본론(氣本論)을 통하여 기(氣)를 중심으로 하는 우주론과 심성론을 제시하였다.

그는

“기는 텅빈 무한한 공간에 차 있으면서 오르내리고 날아 퍼져서 잠시도 멈 추어 있지 않으며” 이로부터 “비와 바람이 되고 서리와 눈이 되 어, 온갖 사물이 유동적인 형태를 가지며, 산천이 응결되어 형체 를 이루게 된다”19)

라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유동하는 기가 어지러이 얽히면서 결합하여 형질을 이루는 것이 사람과 사물의 온갖 차이를 낳는다. 음양의 두 극단이 그치지 않고 순환하는 것 이 천지의 대의를 세운다”20)

 

  19) 正蒙「太和」, “氣坱然太虛, 升降飛揚, 未嘗止息,……萬品之流形, 山川之 凝結.”

  20) 正蒙「太和」, “游氣紛擾, 合而成質者, 生人物之萬殊. 其陰陽兩端循環不 已者, 立天地之大義.”

 

라고도 하였다.

장재는 여기에서 성 리학의 기본체론을 제기하면서 태허 본체기로부터 현상사물이 형성되는 과정을 묘사하면서 기(氣)가 온갖 사물의 특수성과 다 양성을 낳는 근원이 되는 것으로 보았다.

여기에서 사물들은 어 떤 의미에서 각각의 특수성과 고유성에 따라 상대적으로 평등한 가치를 갖는다.

특수성과 개별성의 계기로 다양성과 고유성을 가 지는 이와 같은 기적(氣的) 현상은 바로 문화다원론이 전제하는 특성을 함축하고 있다.

요컨대, 문화다원론의 핵심 전제 또는 논 의를 성리학으로부터 도출하고자 한다면 이러한 기론(氣論)은 그 철학적 근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문화다원론이 특수성과 다양성을 가지는 개별 문화의 고유하고 평등한 가치를 전제한다고 하더라도 이들 문화 사이에 고립과 대립과 같은 방향으로 치우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따 라서 문화다원론이 개별 문화의 상대적 고유성을 인정하더라도 여러 문화의 전체적인 조화 또한 지향해야 하는 의미를 갖는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문화다원론이 보편성과 통일성보다 특수성과 고유성, 다양성에 치우치는 가치를 제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면, 성리학의 기론(氣論)은 필연적으로 보편적 의미를 가지는 ‘이 (理)’와 결합하여 이기론(理氣論)으로 종합되기 때문에 문화다원 론에 대한 철학적 근거가 될 수 있다.21)

 

    21) 장재와 정이는 각각 음양의 기의 다양성과 리의 통일성을 말한다. 장재 는 “음양의 氣는 흩어지면 온갖 다르게 되어 사람은 그 하나가 됨을 알 지 못하고, 합하면 뒤섞여서 사람은 그 다름을 알지 못한다(陰陽之氣, 散 則萬殊, 人莫知其一也. 合則混然, 人不見其殊也.)”라고 하였고, 정이는 “음 양 두 기와 오행은 강유로 만가지의 다름이 있지만 성인이 말미암는 것 은 오직 一理이다(二氣五行, 剛柔萬殊, 聖人所由惟一理)”라고 하였다. 장 재는 음양의 기가 다양한 방향성을 가지고 쉬지 않고 움직이면서도 그 속에 일정한 조리를 내포하고 있는데 이것을 性命의 理라고 하였다.(엄연 석, 「신기선의 동도서기론과 동서사상의 지평융합」, 동도서기의 의미지 평, 근현대한국총서3 동과서, 2019, 53쪽,) 이렇게 성리학에서 기(氣)가 사물의 모든 차이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는 것이라면, 리(理)는 이들을 하 나로 통일시키는 원리라 할 수 있다. 이렇게 氣가 모든 현상의 다양성을 가져오는 근거가 된다면, 리는 모든 사물의 차이와 다름을 하나로 통일 시키는 근거가 된다. 이 점에서 기는 문화다원론의 핵심 전제를 가능케 하는 성리학적 존재론적 근거가 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하 면 성리학의 理氣論에 내포되어 있는 이러한 보편성과 특수성의 이념을 정치적 측면, 사회적, 경제적 측면에 적용할 수도 있고, 문화적 측면에 적 용할 수도 있다. 이것을 문화적 측면에 적용할 때 문화보편론 또는 문화 다원론으로 논의를 나누어 전개할 수 있다.

 

그러면 미시적 관점에서 우주론과 심성론과 관련되는 개념에 대하여 다원론적 해석을 할 수 있는 사례를 들어 보기로 한다.

권근은 입학도설에서 천인심성분서지도를 제시하였는데, 여기에 서 기화(氣化)와 이(理), 성(性) 등을 통하여 그 의미를 불교의 공(空)과 양주(楊朱)의 혼(混)과 비교하여 설명하였다.

곧바로

 

‘천(天)’이라고 하면 혹 어둡고 공허하여 전혀 주재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여 그것이 모든 이치의 근원이 됨을 모르고, 혹은 끝없이 두루 사물을 덮어서 기화를 행하는 것에 구애되어 하나의 근본이 오묘함을 지니고 있음 을 모른다. 또 내게서 성(性)이 디는 것이 그 근원이 모두 천에서 나오며 그 이(理)가 모두 나에게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모르게 되어, 때로 불교의 공 (空)과 양주의 혼매[混]에 빠지게 될 것이다.22)

 

     22) 權近, 入學圖說, 「天人心性分釋之圖」, “直謂之天, 則或意其冥漠空虛都 無主宰, 而不知其爲萬理之源, 或拘於蒼茫遍覆以行氣化, 而不知其有一本 之妙, 且又不知吾之所以爲性者, 其源皆出於天, 其理皆備於我, 而或溺於佛 氏之空楊氏之混矣.” 

 

성리학의 형이상학과 우주론에서는 형체가 없는 것을 이(理)라 고 하고 형체를 형성하는 요소를 기(氣)로 규정하면서 온갖 사물 의 이치와 현상, 존재와 유행을 설명하는 체계로 삼는다.

권근은 이 단락에서 천의 모든 현상적 이치의 근원으로서 주재성과 만 물의 하나의 근본으로서의 오묘함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또한 천은 나의 본성[性]의 근원인 동시에, 이 성은 바로 천의 이(理)가 나에게 구비되어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어서 그는 이 러한 하늘의 이(理)와 인간의 성(性)이 지니는 특성은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의 세계와 구별되고, 도가의 시원이 된 양주(楊朱) 의 혼(混)과도 구별되는 것으로 봄으로써, 이들 개념이 조선왕조 건국 초기에 불교를 비판하는 이론적 근거가 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라고 하겠다.

정도전은 삼봉집(三峯集)「천답(天答)」이라는 논설에서 천지 만물이 기(氣)의 차원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동중서의 이 론에 근거하여 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을 제시하였다.

 

“대개 천지 만물은 본래 하나의 동일한 몸이다. 그래서 내 마음이 바르면 천 지의 마음도 바르고, 나의 기가 순조로우면 천지의 기도 순조롭다. 이것이 천지의 재이와 상서가 실로 인사의 득실에 말미암는 다는 것이다”23)

 

라고 하였다.

정도전은 동중서의 동류상동(同類相 動)으로서의 기(氣)의 의미를 받아들여 하늘과 인간은 동일한 유 형의 기(氣)를 매개로 서로 감응하는 존재임을 강조하였다.

그가 받아들인 동중서의 기(氣) 개념에는 상서로운 기와 혼탁한 기가 있을 수 있으며.

이러한 시각에는 기(氣)를 천지와 인간이 공유 하고 있다는 전제가 있는 것이다.

변계량은 한걸음 나아가 동중서 천인감응설의 하나의 사례인 재이설(災異說)을 언급하면서 재이가 일어나는 이유에 대하여 다 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지금의 재이의 변고는 다시 어찌 하늘이 전하를 두터이 살펴서 경계하고 각성하게 함으로써 왕업을 무궁하게 영원히 다스려 안정시키고자 한 것입니 다. 그러니 동중서가 말한 하늘이 임금을 어질게 사랑한다는 말을 어찌 믿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24)

 

    23) 鄭道傳, 三峯集, 「天答」, “蓋天地萬物, 本同一體, 故人心之心正, 則天地 之心亦正. 人之氣順, 則天地之氣亦順. 是天地之有災祥, 良由人事之有得失 也.”

    24) 卞季良, 春亭集卷7, 「永樂十九年月日封事」, “今之災變, 又豈非天厚殿下, 俾之警省覺悟, 以保長治久安之業於無窮也耶. 董子所謂天心仁愛人君者, 豈不信哉.” 

 

그는 하늘이 재이를 내리는 목적을 자상에서의 정치적 실정에 대하여 경고하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 보다 궁극적으로 임금이 실정에 대하여 반성하게 함으로써 다시 왕의 통치를 안정시키고 자 하는 목적도 함께 있다는 것이다.

변계량의 재이에 대한 해석 은 정치적 안정을 지향하여 임금의 계신공구 수양을 통한 왕조의 안정을 지향하고 있다.

이것은 ‘재이’ 개념에 대하여 제왕의 수양이라는 미시적 관점과 통치의 안정이라는 거시적 관점을 연 속적으로 보는 점에서 조선 초기 정치문화의 다원성을 강조하는 의미를 갖는다.25)

 

     25) “한대의 동중서 철학 내에는 춘추라는 학문의 이론 구축과 함께 그것 에 기반한 대일통적 경세학이 종합되어 있어서, 미시적이고 거시적인 경 학의 특징을 동시에 반영하고 있는 반면, 조선 초기에는 두 가지 특징이 함께 보이기는 하지만, 각각이 별개의 형태로 전개된 것처럼 보인다. 만 약 두 가지 특징의 불가분의 관계, 즉 이기 개념에 기반한 경세론의 전개 라는 특징이 명확하게 밝혀질 수 있다면 조선조의 경학이 문화다원론적 입장에서 조선시대를 이해하는 핵심 개념으로 정식화될 수 있을 것이다” 고 한 논문의 심사의견을 고려할 때 변계량이 동중서 천인감응설을 설명 한 것은 조선전기의 경학사상의 미시적 관점과 거시적 관점을 일관성을 가지고 이해하는 것이다. 

 

4. 조선초기 경학사상에 대한 거시적 해석 - 경세론과 제도론으로 연역

 

이 장에서는 조선초기 경학사상의 문화다원론적 특징을 거시 적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조선초기 경학사상에 대한 거시적 관점의 연구는 미시적 관점에서 연역되는 것으로서 정치사상 및 경세론, 제도론을 중심으로 하여 미시적 관점에서 도출된 이론을 사회문화적 현상으로 드러난 부분에 적용한 귀납적 종합적 조명 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미시적 해석이 현상으로 드러나 기 이전의 현상의 배후에서 작용하는 원리에 대한 미시적 분석 적 해명이라면, 거시적 해석은 이치가 드러난 현상이 지니는 다 양한 양상에 대한 경세론적 종합적 검토가 된다.

그러면 먼저 조선초기 경학사상에 대한 거시적 관점에서의 탐색을 조선 건국시 기 전장제도의 확립을 통하여 조선왕조의 국가 운영체계 및 이 념을 제시하고자 했던 정도전 경학사상으로부터 시작해 보기로 한다.

정도전이 지은 책 가운데 조선왕조 운영의 골격을 구성하는 핵심적 내용이 들어 있는 저술은 경제문감(經濟文鑑)이다.

그 는 경제문감에서 주례(周禮)의 육전(六典) 체제를 기반으로 새로운 왕조의 권력 구조를 구상하였는데, 남송대 주례 주석서인 주례정의로부터 체제와 항목을 받아들였다.

또한 산당고색,  서산독서기와 같은 유서(類書)로부터 중국 역대 왕조의 정치 제 도와 관직의 운영과 격언을 참고하면서, 중앙집권적 정치체제와 재상중심정치론에 부합하는 자료를 인용하여 경제문감을 완성 하였다.26)

구체적으로 경제문감에서 정도전은 향-현-주-제로-대성-재 상(왕)에 이르는 상하 통솔 체계를 밝혀서 재상(왕)이 지방의 최 소 단위인 향까지 직접 파악하는 제민적 지배체제를 지향하였다.

그의 이러한 정치론은 주례의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실현한 송대 정치 체제와 재상정치를 주장한 주자의 정치사상이 반영된 것이다.

이처럼 정도전은 보다 철저하게 주례의 육전적 정치체제 를 조선왕조의 정치구조로 확립하려고 하였다.

그에게서 특이한 점은 주자의 정치사상과 송의 정치체제와 재상정치론을 활용했 다는 것이다.27)

 

    26) 도현철, 조선전기정치사상사, 태학사, 2013, 126쪽.

    27) 도현철, 위의 책, 203쪽. 정도전은 고려의 정치체제를 개혁하고 대안으로 새로운 체제를 제시하는 데 사공학을 이용하였다. 사공학 계열은 정치체제, 문물제도에 대한 연구를 행하였다. 그는 곧 인간의 도덕적 본성과 수 양을 강조하는 도학의 한계를 사공학으로 보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성리학을 지향하는 정도전의 입장에서 사공학을 전면적으로 수용하는 것 이 거려져서, 주자학의 논지와 배치되지 않은 사공학 계열의 유서를 활 용하였다.(도현철, 같은 책, 205쪽)

 

권근의 경우도 정도전과 마찬가지로 조선왕조의 운영체제와 이념적 기초를 구축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정도 전이 국가 운영의 조직체계와 운영조례에 확립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권근은 경세론적 논의도 개진했지만 유가 경학을 중심 으로 하여 국가가 운영될 수 있는 이념적 지향과 이론적 학문적 논의를 구체화하였다.

그는 주로 입학도설과 오경천견록을 통하여 성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경세의 이념을 제시하였다.

특히 오경(五經)과 관련해서는 체용론(體用論)에 따라 오경 각각에 있어서 그리고 다섯 경전 사이의 유기적 체계적 관계를 해설하 였다.

거시적 관점과 관련하여, 그의 경세론 논의 중의 하나로서 국 가조직에서 상하의 명분과 관련한 그의 논의를 살펴보기로 한다.

그는 예기(禮記)「예운(禮運)」 편에서 상하의 명분을 세우는 것 과 관련한 논의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사람에게 예가 있으면 그 직분[分]을 얻어서 편안해지기 때문에 반드시 살아나는 도리가 있으나, 예가 없으면 그 직분을 잃어버려서 위태롭게 되기 때문에, 반드시 죽게 되는 이치가 있다. 이것은 예가 매우 중요한 것임을 밝 히고 예가 없는 사람을 경계하기에 충분하다.28)

 

     28) 권근, 禮記淺見錄,卷8, 「禮運」, “人有禮, 則得其分而安, 故有必生之道. 無禮則, 失其分而危, 故有必死之理. 足以明其禮之甚重, 而警乎人之無禮者 也.” 318 공자학 제48호

 

권근은 여기에서 사람이 살고 죽는 핵심 관건이 바로 상하(上 下)의 직분을 규정하는 예(禮)에 달려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 다.

그는 상하의 직분이 분명해질 때 사회가 안정을 유지하게 되 고, 직분이 불분명하여 혼란스러울 때 사회는 어지럽게 돈다는 취지를 언급하였다.

강문식은 권근이 상하의 신분을 규정하는 예 제를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 예기천견록의 취지라고 설명하였다.

 

“예기천견록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권근은 신분 에 따른 예제의 엄격한 구별을 중시하였음이 확인된다. 각 신분 별로 적용되는 예제의 내용을 명확히 구별하여 규정한 다음 이 를 철저히 준수하는 것이 권근의 해법이라 할 수 있다”29)

 

    29) 강문식, 같은 책, 293쪽.

 

고 하 였다.

정도전이나 권근 모두 조선왕조가 개창되고 나서 국가를 통치하는 기본 운영원리와 전장제도의 기초 구축, 정치적 신분질 서의 확립이라는 시대적 요청에 따라 관료조직의 구성 체계를  주례로부터, 정치적 상하의 신분질서를 예기로부터 그 이론적 내용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 때 정도전이 왕조의 거시적 제도적 운영 체계를 적극적으로 구축하고자 했다면, 권근은 미시적 예법 을 통하여 신분질서의 확립을 논의함으로써 미시적 이념과 규범 에 주목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초기와 전기에는 관학파 유학자들이 유학의 정치 이념과 문물제도와 같은 거시적 관점에서 조명할 수 있는 경세론을 다 양한 주제로 제시하였다.

이들 관료 학자들에는 신숙주, 성현, 정 초, 변계량, 양성지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면 이들이 제시한 유가 적 경세론 중에 몇몇 주제에 관하여 검토하고자 한다. 

먼저 신숙주는 언로(言路)를 사람의 몸 전체를 흐르는 혈기가 소통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면서 언로(言路)가 소통되고 개방되 는 것을 강조하였다.

 

천하의 언로는 사람의 혈기와 같다. 혈기가 잠시라도 멈추면 온 몸은 병을 얻어 편할 수 없고, 언로가 하루라도 통하지 않으면 사방이 병을 얻어 임금 이 편할 수가 없다. 그래서 옛날에 천하국가를 다스리는 사람에게는 여러 가 지 통치술이 있었는데, 반드시 직언(直言)과 극간(極諫)을 찾는 것이 가장 먼 저 해야 할 일이다.30)

 

이 구절에서는 임금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몸의 혈기가 원활하게 순환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듯이 혈기와 같 은 국가의 언로를 소통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임금은 자신에게 직언을 하고 정의로운 정사를 극력하 게 권고하는 신하를 적극적으로 찾아서 임용해야 한다는 취지를 말하고 있다.

그래서

 

“신숙주는 간언을 하지 않은 중후한 신하보 다는 극간(極諫)을 하는 경박한 신하가 나라에 도움이 된다고 하 면서 선왕을 힐난한 박팽년(朴彭年)을 용서해 달라고 요청하여 언로개방에 대한 신념을 보여주었다.”31)

 

     30) 申叔舟, 保閑齋集卷16, 「上文宗論言路宦官疏」, “言路之在天下, 猶血氣 之在人身, 血氣一息不行, 則百體受病而天君不能安. 言路一日不通, 則四方 受病而人主不能安, 故古之爲天下國家者, 蓋亦多術而必以求直言極諫爲先 務.”

     31) 김홍경, 조선초기 관학파의 유학사상, 한길사, 1996, 228쪽. 

 

정도전과 권근이 성리학 적 이념에 입각하여 국가의 전장제도를 구성하는 데 여러 경학 적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면, 신숙주는 군왕을 최고 정점으로 하 는 위계적인 유가적 정치질서 속에서도 정부조직에 정당한 위치 를 차지하며 공정과 정의를 지키는 간관(諫官)의 역할의 중요성 을 강조하고 있다.

용재총화(慵齋叢話)를 저술하고 악학궤범(樂學軌範)을 편 찬한 성현(成俔)은 유가적 도리를 실천하는 유자의 존재를 강조 하면서 치도(治道)를 보완하는 사공과 실용학을 다음과 같이 중 시하였다.

 

나라에 하루도 유학자가 없어서는 안 되니, 유학자가 없으면 도가 깃들 곳에 없게 되고, 도가 깃들 곳이 없으면 무엇으로 다스림을 이루겠는가? 옛 날의 유학자는 크게는 하늘을 이어 인륜의 표준을 세우고, 세상을 경륜하여 만백성을 길러 주며, 그 다음으로 개물성무하여 사공을 베풀었다. 경술, 문 장, 형명, 법률, 의복, 서화 같은 소소한 것에 이르기까지 각각 기예를 써서 치도를 보필하지 않음이 없었다. 임금은 모든 사람의 재주를 모아 크게 공업 을 이루었으니, 마치 물줄기가 모여 큰 강이나 바다가 되는 것과 같았다.32)

 

     32) 成俔, 虛白堂集卷8, 「儒者可與守成」, “國不可一日無儒也. 無儒則道無所 寓. 道無所寓, 則治何由而得成乎! 古之儒者, 大則繼天立極, 經綸化育, 其 次開物成務, 以施事功. 至於經術文章刑名法律醫卜書畵之微者, 莫不各售 所技, 以補治道. 人君集衆而大成, 猶河海集衆流爲大也.”

 

성현은 유학자가 새로이 개창한 왕조를 계승 발전시키는 필요 충분조건을 언급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유학자는 하늘과 사람을 관통하는 도(道)가 깃드는 주체가 되어 계천입극(繼天立極)하고 화육경륜(化育經綸)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것은 백성들을 잘 다스리는 이념적 토대이자 강령으로 이상적 통치의 대전제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그는 개물성무(開物成務)의 구체적 과제로서 경술, 문장으로부터 법률, 서화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의 실용 적 제도적 부분을 실행해야 비로소 통치의 충분조건을 충족시키 는 것으로 보았다.

성현의 이러한 관점은 성리학적 이념을 강조 하면서도 사공학(事功學)으로 이상적 통치 원리를 보완하고자 한 정도전의 경세론과 연속되는 측면이 있다.

조선 초기에 경국(經國)의 기초적 요소로서 농업을 근본으로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런 흐름의 일환으로 농사직설(農 事直說)이 지어졌다.

농사직설은 정초와 변효문이 왕명에 의 하여 우리나라의 풍토에 맞는 농법으로 1429년에 간행한 농업서 이다.

이런 농사직설 서문에서 정초는 다음과 같이 국가를 다 스리는 근본으로서 농업의 중요성을 말하였다.

 

농사는 천하 국가의 커다란 근본이다. 옛날부터 성왕은 이것을 급선무로 삼지 않은 적이 없다. …… 참으로 나라의 제사를 받드는 데 쓰이는 곡물이 나, 백성들이 삶을 영위하는 데 바탕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아니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33)

 

    33) 世宗實錄卷44 11年5月條 辛酉條, “農者, 天下國家之大本也. 自古聖王莫 不以是務焉, ... 誠以栥盛之奉, 生養之育, 捨是無以爲也.” 

 

여기에서 정초는 농사의 중요성을 유가적 예법의 중요한 요소 로서 제례(祭禮)를 행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제물을 생산하는 토대 가 되는 것이 농업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유가적 예의 를 행하는 근본이 되는 것이 바로 농사일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 러한 예(禮)의 문제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농사는 백성들이 삶을 영위하는 핵심요소로 경제적 안정을 가능케 하는 전제가 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중시하고 있다.

이 구절은 실용학과 경세론의 관점에서 농사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는데, 국가운영의 기초가 되는 농업생산의 중요성에 대한 조선초기의 인식을 엿볼 수 있 다.

반면 변계량은 다분히 패도(覇道)나 법가적 관점에서 임금의 권력과 이익이 아래로 내려가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군권 확립 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신이 생각건대 권력은 천하가 두려워하는 것이고, 이익은 천하 사람이 추 구하는 것입니다. 권력과 이익의 권한은 하루라도 아랫사람에게 넘길 수 없 습니다. 임금은 지극히 적은 유일자이고, 군신들은 지극히 많은데, 지극히 많 은 신하가 지극히 적은 임금에게 복종하는 것은 대개 권력과 이익이 임금에 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신하에게 넘길 수 있겠습니까?34)

 

    34) 卞季良, 春亭集卷6, 「永樂十三年六月日封事」, 「御群臣條」, “臣竊謂, 權 者, 天下之所畏也. 利者, 天下之所求也. 權利之柄, 不可一日而移於下矣. 人主至寡也, 群臣至衆也. 以至衆而服役乎至寡者, 蓋以權利之在乎上也, 而 移之可乎!”

 

변계량은 조선초기 재상중심론을 제기하면서 왕실의 권위를 소홀히 함으로써 살해당한 정도전의 사례를 타산지석(他山之石) 으로 삼아 신권보다는 군권을 확립하는 것이 국가의 정치적 안 정을 위한 핵심요소라고 간주하였다.

신하들이 임금에게 복종하 는 유일한 이유는 왕이 권력과 이익[利]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 라고 하여 현실적 경제력과 물리력이 왕권을 지탱해 주는 힘이 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권력과 이익을 행사하는 권한이 귀한 신 하나 좌우 측근에게 넘어가면 천하 사람들은 이익을 구하고 권력을 두려워하여 임금 권력을 후친 자가 큰 이익으로 유혹하고 권세로 위협하면 어쩔 수 없이 세가 그에게로 돌아가게 된다”35)

 

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권력과 이익을 지키고 있는 것이 신하들 의 복종에 절대적 요소라는 점을 피력함으로써 조선 초기에 두 번에 걸친 왕자의 난을 거치면서 불안정했던 왕실의 안정을 기 하고자 하는 시대적 필요성을 패도(覇道)와 법가적 통치론을 강 조하는 경세론으로 제시하였다.

변계량은 조선이 중국에 종속되지 않고 독립하여 독자적인 왕 조의 유구한 연원을 가지고 있음을 하늘에서 내려온 ‘단군(檀君)’ 에 대한 인식을 통하여 제시하고 있다.

곧, 그는

 

“우리 동방은 단군이 시조이니, 대개 하늘로부터 내려왔으며, 천자가 봉건하여 나누어 준 것이 아닙니다. 단군께서 내려오실 때는 요임금의 무 진년(戊辰年)에 해당하니, 오늘에 이르기까지 3천년이 지났습니 다”36)

 

라 하였다.

그는 단군 왕조의 역사를 기존의 기자조건이나 위만조선과 같은 중국과 연결된 조선이라는 시각을 벗어나, 독자 적이고 주체적인 조선이라는 민족주의적 관점을 강조하였다.

이 러한 주장에는 ‘중국과 동일한 민족사의 편년체계 수립’, ‘민족 국가의 독립성이라는 자부심’, ‘만리 넓이의 대국으로서의 단군조 선’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37)고 하겠다.

 

    35) 卞季良, 春亭集卷6, 같은 곳, “蓋權利之柄, 或移於貴臣, 或移於左右, 彼 天下之人, 惟利是求, 惟權是畏자, 其常也. 竊人主之柄者, 誘之以重利, 威 之以權勢, 勢不得不歸焉.”

    36) 卞季良, 春亭集卷7, 「永樂十四年六月初一日封事」, “吾東方, 檀君始祖也. 蓋自天而降焉, 非天子分封地也. 檀君之降, 在帝堯之戊辰世, 迄今三千餘祀 矣.”

    37) 김홍경, 같은 책, 263쪽.  

 

변계량의 이러한 민족주의적인 단군관은 조선건국 초기에 문화적 자주성과 독자 성을 견지함으로써 중국과의 대등한 교린외교를 지향하고 있다 는 점에서도 주체적인 경세론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5. 맺음말

 

이 글은 조선 초기 경학 사상이 내포하고 있는 문화다원론적 특성을 미시적 관점과 거시적 관점에서 고찰하고자 하였다.

먼저 미시적 관점을 통한 이해가 경학 사상에 대한 주석이나 해설 가 운데 우주론과 심성론, 실천수양론에 대한 개념적, 분석적, 연역 적 해명이라고 한다면, 거시적 관점에서의 이해는 정치사상 및 경세론, 제도론에 대한 경험적, 종합적, 귀납적 조명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미시적 해석이 현상으로 드러나기 이전의 현 상을 드러내는 이치에 대한 미시적 양상에 대한 분석적 해명을 위주로 한다면, 거시적 해석은 이치가 드러난 다양한 현상에 대 한 검토를 위주로 한다.

조선초기 경학사상사에 대한 그동안의 연구를 살펴보면 성리 학을 중심으로 한 지성사를 특징짓는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한 편으로 새로운 질서 창출을 위한 실천적 이념의 확립이었고, 다 른 한편으로 이단의 척결에 있었다.

조선전기가 어지러워진 시대 에 새로운 질서체계를 세우기 위하여 유학과 성리학 이념이 현 실의 윤리적 정치적 실천 강령을 제공해 주는 수단적 역할을 했 다면, 조선중기에 이르러 성리학은 다양한 우주론적 도덕형이상 학적 논변과 이론적 탐색을 특징으로 한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이르면 성리학의 형이상학적 논쟁들은 다시 탈성리학과 실천 위주의 관점으로 경학사상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발생한다.

조선초기의 경학사상사가 인륜도덕과 경세론적 실천을 강조하 였다면, 조선중후기 경학사는 다분히 이론적으로 도덕형이상학적 근거에 대한 탐색과 심성수양론, 그리고 도덕실천론이 병행되는 복합적인 양상을 띠다가, 다산과 같은 학자에 이르러 반형이상학 적 실천적 경험론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동안 주로 퇴계학파와 율곡학파를 중심으로 하는 성리학과 탈성리학적 관점에서 연구 되어 왔던 경학사상사의 해석적 ‘지평地平horizon’을 넘어서 보 다 종합적이고 통섭적인 시각에서 연구하고 문화다원론적 시각 에서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조선시대 경학사상사에 관한 문화다원론적 비판을 주제로 하는 연구는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여러 흐름을 이루었던 경학 사상 들이 서로 경쟁하는 역동적 과정과 그들이 주장하는 철학적 근 거를 구체적인 경전 해석 내용을 비교분석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문화다원론이 보편성과 통일성보다 특수성과 고유성, 다양성에 따른 가치를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성리학의 기론(氣論) 은 필연적으로 보편적 의미를 가지는 ‘이(理)’와 결합하여 이기론 (理氣論)으로 종합되기 때문에 문화다원론에 대한 철학적 근거가 될 수 있다.

조선 초기에 정도전은 동중서의 동류상동(同類相動) 으로서의 기(氣)의 의미를 받아들여 하늘과 인간은 동일한 유형 의 기(氣)를 매개로 서로 감응하는 존재임을 강조하였다.

그가 받아들인 동중서의 기(氣) 개념에는 상서로운 기와 혼탁한 기가 있을 수 있으며 이러한 시각에는 기(氣)를 천지와 인간이 공유 하고 있다는 전제가 있는 것이다.

변계량의 재이에 대한 해석은  결과에 대한 단순한 경고를 넘어서 정치적 안정을 지향하여 임 금의 계신공구 수양을 통한 왕조의 안정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 에서 ‘재이’ 개념에 관한 미시적 다원적 해석의 의미를 갖는다.

조선초기와 전기에는 관학파 유학자들이 유학의 정체이념과 문물제도와 같은 거시적 관점에서 조명할 수 있는 경세론을 다 양한 주제로 제시하였다.

이들 관료 학자들에는 신숙주, 성현, 정 초, 변계량, 양성지 등이 대표적이다.

변계량은 조선이 중국에 종 속되지 않고 독립하여 독자적인 왕조의 유구한 연원을 가지고 있음을 하늘에서 내려온 ‘단군(檀君)’에 대한 인식을 통하여 제시 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민족주의적인 단군관은 조선건국 초기에 문화적 자주성과 독자성을 견지함으로써 중국과의 대등한 교린 외교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체적인 경세론적 관점이라 고 할 수 있으며, 사대주의 역사관과 비교하여 정치문화적 다원론적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요컨대, 이런 측면에서 조선초기 경학사상사를 철학, 종교, 정 치, 외교, 경제, 문화적 관점을 중심으로 문화다원론적 측면에서 연구하는 것은 이 시대를 보다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첩경이 될 것이다.

나아가 조선전기를 넘어 유학을 중심으로 하는 조선 중 후기 지성사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와 함께 성리학과 실학 사이의 연속과 불연속의 계기와 상호연관성에 대하여 새로운 이해 의 시야를 확보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종합하여, 조선시대 경학 사상사에 대한 문화다원론적 연구는 조선시대 유학사상사의 다 양한 흐름과 양태를 경학사의 관점에서 조명하되 유학과 성리학 내부의 이론들, 그리고 불교, 도교, 서학과 같은 외부의 이론들이  모두 수평적 특수성과 고유성을 가지는 측면을 규명하는 것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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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Characteristics of Cultural Pluralism of the Thought of Confucian Classics in the Early Joseon Dynasty-Focusing on Micro and Macro Approaches

Eom Yeonseok (Professor, Hallym University)

This article intends to examine the cultural pluralistic characteristics contained in the thought of Confucian Classics in the early Joseon Dynasty from a microscopic and macroscopic point of view. First, it is a conceptual, analytical, and deductive explanation of cosmology, mind and human nature theory, and practical discipline theory among commentaries and explanations for understanding of the thought of Confucian Classics thought through a microscopic point of view. On the other hand, understanding from a macro perspective can be said to be an empirical, synthetic, and inductive light on political ideology, governance, and institutional theories In the early joseon Dynasty the ideology of Confucianism and Neo-Confucianism played a instrumental role in providing a practical ethical and political code in order to establish a new order system in a chaotic era. In the mid-Joseon period, Neo-Co nfucianism was charactered by various cosmological and moral metaphysical arguments and theoretical explorations. However,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e metaphysical debates of Neo-Confucianism were again converted to post-Confucianism and practice-oriented perspectives. Cultural pluralism aims to present values according to specificity, uniqueness, and diversity rather than universality and unity. Therefore, the theory of Qi(氣) in Neo-Confucianism can inevitably be combined with li(理), which has a universal meaning, and synthesized into the theory of li and Qi(理氣論), so it can be a philosophical basis for cultural pluralism. In the early Joseon Dynasty, Jeon Dojeon accepted the meaning of Qi as the Dongryu-sangdong[同類相動] of Dong Jungseo, the emphasized that the heaven and human beings respond to each other through the same type of Qi[氣]. In the early days of the Joseon Dynasty, Confucian scholars of the government school presented various theories of economic affairs that could be illuminated from a macro perspective, such as the identity ideology of Confucianism and the cultural system. Representative of these bureaucratic scholars are Shin Sukju, Seong hyeon, Jeong cho, Byun Gye ryang, and Yang seongji. Byun Gyeryang suggested that Joseon had a long history of independent dynasty without being subordinated to China through the recognition of ‘Dangun[檀君]’ descended from heaven. Studying 332 공자학 제48호 the history of Confucian classics thought in the early Joseon Dynasty from a cultural pluralist perspective focusing on philosophy, religion, plitics, diplomacy, economy, and culture will be the key to a more comprehensive understanding of this era. Key words: Early Joseon Dynasty, Confucian Classics, cultural pluralism, micro approach, macro approach

 

<국문 요약>

이 글은 조선초기 경학 사상이 내포하고 있는 문화다원론적 특성을 미시적 관점과 거시적 관점에서 고찰하고자 하였다. 먼저 미시적 관점을 통한 이해가 경학 사상에 대한 주석이나 해설 가 운데 우주론과 심성론, 실천수양론에 대한 개념적, 분석적, 연역 적 해명이라고 한다면, 거시적 관점에서의 이해는 정치사상 및 경세론, 제도론에 대한 경험적, 종합적, 귀납적 조명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미시적 해석이 현상으로 드러나기 이전의 현 상을 드러내는 이치에 대한 미시적 양상에 대한 분석적 해명을 위주로 한다면, 거시적 해석은 이치가 드러난 다양한 현상에 대 한 검토를 위주로 한다. 조선전기가 어지러워진 시대에 새로운 질서체계를 세우기 위하여 유학과 성리학 이념이 현실의 윤리적 정치적 실천 강령을 제공해주는 수단적 역할을 했다면, 조선중기 에 이르러 성리학은 다양한 우주론적 도덕형이상학적 논변과 이 론적 탐색을 특징으로 한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이르면 성리학 의 형이상학적 논쟁들은 다시 탈성리학과 실천 위주의 관점으로 전환된다. 문화다원론이 보편성과 통일성보다 특수성과 고유성, 다양성에 따른 가치를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성리학의 기론(氣論)은 필연적으로 보편적 의미를 가지는 ‘리(理)’와 결합 하여 이기론(理氣論)으로 종합되기 때문에 문화다원론에 대한 철 학적 근거가 될 수 있다. 조선 초기에 정도전은 동중서의 동류상 동(同類相動)으로서의 기(氣)의 의미를 받아들여 하늘과 인간은 동일한 유형의 기(氣)를 매개로 서로 감응하는 존재임을 강조하 였다. 조선초기에는 관학파 유학자들은 주로 유학의 정치이념과 문물제도와 같은 거시적 관점에서 조명할 수 있는 경세론을 다 양한 주제로 제시하였다. 이들 관료 학자들에는 신숙주, 성현, 정 초, 변계량, 양성지 등이 대표적이다. 변계량은 조선이 중국에 종 속되지 않고 독립하여 독자적인 왕조의 유구한 연원을 가지고 있음을 하늘에서 내려온 ‘단군(檀君)’에 대한 인식을 통하여 제시 하고 있다. 조선초기 경학사상사를 철학, 종교, 정치, 외교, 경제, 조선초기 경학사상의 문화다원론적 특징 / 엄연석 295 문화적 관점을 중심으로 문화다원론적 측면에서 연구하는 것은 이 시대를 보다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첩경이 될 것이다.

주제어: 조선 초기, 경학, 문화다원론, 미시적 접근, 거시적 접근.

 

공자학 제48호 Oct.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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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dx.doi.org/10.37300/GongJa.4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