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미 교카 해성발전(海城発電) 에 나타난 전쟁의 윤리-신념의 충돌을 중심으로-/임태균.성결大
目 次
1. 들어가는 글
2. 길항하는 두 세계관: 코즈모폴리터니즘과 내셔널리즘
3. 적장(敵将)의 감사장과 운노의 도발: ‘신앙’으로 묘사된 간자키의 신념의 행방
4. 영국인 기자의 시점이 의미하는 바
5. 나오는 글
1. 들어가는 글
이즈미 교카(泉鏡花, 1873~1939, 이하 ‘교카’로 약칭)는 일본 특유의 전통적 정서에 근간을 둔 몽환적인 세계를 그린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의 초기 작품군 가운데는 이른바 ‘전쟁소설’이라 일컬어지는 일련의 작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 점은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교카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두 차례에 걸친 큰 전쟁을 경험하면서 이를 소재로 한 열편에 이르는 작품을 발표하 였다. 그 중 예비병(予備兵) (1894.10.1.~10.24. 読売新聞)을 비롯해 해전의 여 파(海戦の余波) (1894.11.26. 幼年玉手函제11편), 비파전(琵琶伝) (1896.1.4. 国民之友제277호), 해성발전(海城発電) (1896.1.5. 太陽제2권 제1호), 부엌 문(勝手口) (1896.11.20.,12.5. 太陽제1권 제23호 제24호), 개선제(凱旋祭) (1897.5. 新小説제2년 제6권), 기누기누강(きぬぎぬ川) (1902.1. 新小説제7권 제1호, 1902.5. 新小説제7권 제5호) 등 7편은 청일전쟁의 양상과 군인을 제재로 한 작품이다.
하지만 이들 작품 중 해성발전 에 대한 선행연구는 청일전쟁을 제재 로 삼은 전쟁소설이라는 해석과, ‘관념(비참)소설’의 일종으로 파악하는 두 가지 해석이 존재해 왔다.
즉, ‘내셔널리즘과 인터내셔널리즘의 대립구도’라는 관점에 선 전쟁소설로서의 평가와, 주인공인 간호원 간자키 아이사부로(神崎愛三郎)의 ‘박애’에 대한 신념과 특이한 성격경향에 주목한 연구가 그것이다.1)
1) 金子亜由美(2011.10) 人外 の 信仰 ―「海城発電 試論―」(国文学研究 165, 早稲田 大学国文学会), p. 48. 이 시기에 발표한 교카의 관념소설적 경향의 작품군에 대해서 우치다 로안(内田魯庵)은 1895년, 小説界の新潮流(殊に泉鏡花子を評す) (国民之友 第17巻 第262号, 民友社)라는 글에서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극단적인 인물상의 부자연 스러움을 지적하고, 이듬해 발표한 泉鏡花 (青年文第3巻 第1号, 少年園)를 통해 “그 의 안중에는 일종의 관념(특히 의무의 관념)이 있을 뿐 관념의 집합체인 마음이라는 것은 없다”며 교카의 인물이 지니는 관념성의 불완전성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이처럼 초기 작품군에서 타자나 사회에 대해 냉담한 태도를 보이는 관념소설적인 극단적 인물 상은 교카가 추구했던 다양한 시도의 한 형태였던 것만은 사실이다. 한편 노혜경은 교카의 감상을 인용하며 그의 작품을 관념소설로 보는 평가는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 이 문단에서 만들어진 것이며 작가 스스로도 이러한 호칭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고 평하 였다.(魯恵卿(2010) 泉鏡花の初期作品における人物造型 일본언어문화 제17집, p. 522.)
가네코 아유미(金子亜由美)는 이와 같은 해성발전 의 텍스트 해석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하여 “메이지 20년대 후반의 일본을 규정하는 역사적 문맥을 반영하 면서, 거기에 다 담아낼 수 없는 과잉성을 지니고 있는 점”을 지적하여 간자키상 (像)에 대한 새로운 견해를 제시함으로써 이러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자 하였다.
가네코는 인부들과 간자키의 대립을 당시의 보편적 세계관에 비쳐진 ‘인간’ 즉 ‘국민’과 ‘비인간’적 존재와의 적대관계라는 관점에서 파악하고 ‘국가주의’나 ‘세계주의’ 그 어디에도 환원되지 않는 새로운 가능성으로서 “‘박애’라는 이름의 공공성의 영역으로의 참여를 보증하는 ‘비인간’의 <윤리>”를 그리고자 하였다고 결론지었다.
이러한 견해는 전쟁소설이냐 관념소설이냐고 하는 양자택일적인 작품해석에서 벗어나 간자키라고 하는 새로운 인물조형을 통해 그리고자 한 교카의 실험적 작가정신을 엿보게 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기존 선행연구의 논고를 토대로 간자키의 인물조형에 주목하여 이 둘의 관점을 아우르는 새로운 작품해석의 가능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해성발전 은 청일전쟁이 종료된 이듬해인 1896년 1월에 비파전 과 더불어 잇달아 세상에 내놓은 단편으로 신진작가 시절 교카의 전쟁관을 엿볼 수 있는 문제작이다.
본 논문에서 교카의 여러 전쟁소설 가운데서도 특히 해성발전 에 주목하고자 하는 이유는 이 작품이 군인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 대신에 상대적으 로 전쟁 문학에서 크게 조명 받지 못하는 의료 및 병참을 담당하는 간호원과 부대 작업 인부들이라고 하는 비전투 인력에 대한 묘사를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는 점에서 특이성을 지닌 작품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2)
교카의 전쟁소설에서 지향하는 반전 반군적 주제에 대해서 제일 먼저 언급한 것은 미우라 가즈히토(三浦一仁)이다.
미우라는 반전이 아닌 반군적이라는 시각 에서 이들 작품을 조명하고 “전쟁이 서로 사랑하는 이들을 갈라놓는다는 전쟁이 지니는 비참함에 대한 호소”와 “전쟁열풍으로 들뜬 세속적 인간에 대한 비판”에 주목하여 논하였다.
또한 미우라는 교카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당위성에 대 해서는 일면 긍정하면서도 전쟁 그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었다 고 논하였다.3)
한편, 무라마쓰 사다타카(村松定孝)는 비파전 과 해성발전 을 예로 들어 교카가 전쟁과 군대, 무사도에 입각한 군인정신에 대한 혐오의 감정을 갖고 있었다고 지적하여 국수주의를 비롯한 체제비판이라고 하는 관점에서 해석 을 덧붙였다.4)
2) 청일전쟁과 대만정복전쟁에 참전한 장교 하사관 병사수는 24만 616명으로 추정되는데, 그밖에 부대 작업 인부의 수는 15만 3974명으로 나타나 군인 외에 상당한 비율의 인부가 참전한 것을 알 수 있다.(原田敬一(1994) 軍隊と日清戦争の風景―文学と歴史学の接 点―」 鷹陵史学 鷹陵史学会, p. 225.)
3) 三浦一仁(1983) 泉鏡花―反軍小説家として 西田勝編 戦争と文学者:現代文学の根 底を問う 三一書房.
4) 村松定孝(1992) 泉鏡花の反戦小説―その軍人憎悪をめぐって 文化評論 377, pp. 233-238.
또한 고바야시 히로코(小林弘子)는 ‘반권력(反権力)’이라고 하는 견지에서 해성발전 은 전쟁으로 인한 비극적 양상과 더불어 전쟁에 동원된 다양한 인물들에 대한 묘사를 중심으로 약자 편애의 논조가 주조를 이루고 있다 고 논하였다.5)
5) 小林弘子(2013) 海城発電―明治軍国主義と赤十字博愛精神 泉鏡花 逝きし人の面 影に 梧桐書院 참조.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선행연구를 토대로 해성발전 의 전쟁소설로서의 면모 를 재평가하고 등장인물들의 조형을 통해 전쟁의 무정함과 인간의 신념에 대한 메시지를 확인함으로써 교카가 그리고자 한 전쟁문학으로서의 새로운 가능성과 더불어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인간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고자 한 교카의 작가정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더하고자 한다.
2. 길항하는 두 세계관: 코즈모폴리터니즘과 내셔널리즘
해성발전 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가운데서 개인의 신념이나 도덕, 애국심 이라는 테마를 그린 작품이다.
전체 8장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의 무대는 중국의 해성으로 이야기는 일본군 간호원 간자키가 적군에 포로로 잡혀 두 달 동안 부상병 간호에 종사한 뒤 무사히 일본군에 돌아오는 데서 시작된다. 간자키는 자신의 직무에 진력한 성과로 적장으로부터 감사장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인부들 은 간자키가 적군에게서 감사장을 받은 점에 불신감을 품고 그의 발언이나 행동 에 의구심을 갖게 된다.
간자키는 어디까지나 ‘애국’이나 일본 고유의 민족정신인 ‘야마토다마시(大和 魂)’에 관여할 생각은 없으며 단순히 ‘간호’라는 ‘직무’를 수행했다고 주장한다.
간자키의 냉철하면서도 천진난만한 태도, 그리고 애국심에 대한 무관심이 일본 인 인부6)들에게는 허용하기 어려운 이질적인 성격의 것이다.
6) 전쟁에 참전한 비전투 인력 중 부대작업 인부를 ‘군부(軍夫)’라 일컬었다.
특히 인부들이 ‘선 생님’으로 떠받드는 작업반장 운노(海野)는 간자키의 태도에 격노하여 추궁하는 역할을 맡는다. 운노는 간자키의 무책임하고 애국심이 결여된 자세를 비난하며 그 역시 자신의 신념에 따라 간자키를 몰아세운다.
간자키가 포로가 된 경위는 그가 부상당한 중국인 부호를 간호하기 위해 파견 된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간자키는 중국인 부호의 딸 이화(李花)와의 사이에 일종의 이성으로서의 감정이 싹트게 되는데, 이에 대해 간자키는 자신은 직무에 충실했을 뿐 사사로운 감정은 없었다고 술회한다. 하지만 전쟁이라고 하는 비인 도적이고 폭력적인 상황 속에서 인부들은 간자키에게 ‘애국주의’를 종용하고 폭력적인 행동에 나서게 된다. 결말부에서는 영국인 기자가 그 장면을 담담하게 기록하며 전보로 전달하는 형태로 맺고 있다. 바로 이 영국인 기자가 보낸 전보를 의미하는 중국의 해성시 (海城市7))에서 보내진 ‘해성시 발(発) 전보’가 실은 이 작품의 제목을 해성발전 이라고 명명한 이유이다.
영국인 기자의 냉철하고 객관적인 시점이 전쟁의 현실 과 그에 대한 인간의 무력함과 무정함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이 소설은 박애주의를 바탕으로 자신의 직무를 ‘신앙’처럼 여기는 간자키의 의지와 애국심을 강요하는 운노 일행의 의지가 길항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우선 이 작품에서 간호원 간자키와 작업반장 운노의 인물 조형이 극명한 대비 를 이루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교카는 당시의 보편적인 애국주의의 현실을 작업반장 운노를 비롯한 인부들의 언설을 통해 제시한다.
운노는 자신을 비롯한 인부들을 “부모와 처자를 내버려두고 고국을 위해 진력한다는 이른바 애국지사” 라 명명한다. 일반적인 일본국민이 지닌 애국주의를 표방한 셈이다.
인부들은 운노를 ‘십장(親方)’이 아니라 ‘선생님’으로 부르며 추종하는데, 이에 대해서 작 자는 “운노는 노 운동가(老壮士8))”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7) 중국 요령성 소재 시. 1894년 12월 13일, 일본군 제3사단이 청나라 군대의 거점이었던 봉천부(奉天府) 내의 해성(海城)으로 공격한다. 전투는 얼마 안 있어 종료되고 해성은 일본군의 점령 하에 들어오게 되지만 교통의 요충지였던 해성은 청나라 군대에게도 중요한 곳으로 탈환과 방어를 둘러싸고 양군의 격전이 1895년 2월말까지 지속되었다.
8) 메이지 시대 중기에 자유민권운동을 하던 활동가를 일컫는 용어로 정당에 고용된 경호원 이나 운동원을 의미하기도 한다. 당시 민권운동가들이 군 배속 인부 조직에 가담하여 군국주의 사상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했음은 일례로 다마시사(多摩市史)의 기술에서도 확인된다. 기록에 의하면 청일전쟁 개전 직전인 1894년 7월에 가나가와현 청년회가 자유당 유지자 대회를 열고 ‘의용병’ 조직화를 만장일치로 결의하여, 미타마(三多摩) 운동원을 중심으로 한 자유당이 주도한 의용병 운동 개시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또한 “자유당은 청일전쟁을 계기로 민권운동가층이 군 배속 인부 조직인 다마구미(玉組)”를 조직하여 해외에 진출하고 군국주의에 가담해가는 방향으로 변질되고 있었다.”고 전한 다.(多摩市史編集委員会編(1999) 多摩市史 通史編2, pp. 254-266 참조.)
하라다 게이이치(原田 敬一)는 이에 대해서 “민권가의 만년을 의미한다9)”고 해석한 바 있다.
이처럼 자유민권운동가를 연상케 하는 운노의 애국주의의 호소는 인부들의 마음을 결속 하고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더 나아가 군국주의를 표방하는 당시 일본의 대륙침략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작용하게 된다. 교카는 이러한 애국주의를 표방하는 운노 일행의 대척점에 국경을 초월하여 자신의 직무를 신봉하는 간호원 간자키라고 하는 인물을 조형함으로써 둘 사이 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스토리를 전개해나간다. 간자키는 적십자사의 간호원으 로 청나라군대에 포로로 붙잡혀 적군의 부상병들의 간호에 진력했던 인물이다.
적십자사 간호원인 간자키는 보편적인 인류애를 추구하는 인물로 국경을 초월하 여 사람을 구하는 일에 진력하며 오로지 ‘직무의 과오’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목숨처럼 생각하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제 직무상 부상병을 구호하는 데는 적이니 아군이니 일본이니 청나라니 하는 그러한 명칭도 구별도 없습니다. 그저 부상병이 있을 뿐 그밖에 달리 아무 것도 없는 것이죠.”(510))
9) 原田敬一(1994) 軍隊と日清戦争の風景―文学と歴史学の接点―」 鷹陵史学 鷹陵史 学会, p. 224.
10) 인용문의 숫자는 각 장을 의미한다. 이하 동일.
그에 반해 일본군 작업반장 운노는
“우리 부모와 처자를 내버리고 고국을 위해 한목숨 다하고자 하는 애국지사가 용서하지 않아”
라며 애국심이 투철한 직무 정신을 갖고 있다.
간자키가 두 달 동안의 포로 생활 중 적병의 간호에 힘써
“지극하고 친절하여 놈들을 위해 엄청 진력을 다했다며 적장이 네놈을 보낼 때 감사장을 보냈다지”(2)
라고 할 정도의 신임을 얻은 것은 그의 입장에서는 납득할 수 없는 처사이다.
이미 담당장교로부터 포로 생활 기간 중에 겪은 일을 심문 당하면서 적진의 정황에 대해 보고하라는 말에 아는 바가 없다고 답변한 간자키의 소문을 들은 운노는 그를 따로 붙잡아 심문하며 그의 ‘애국심’이 없음 에 분개한다.
‘무책임’하고 ‘애매’한 간자키의 언사에 격노하지만, 적진의 정황에 대해서 묻는 운노 일행의 추궁에 간자키는 “들은 것이라곤 신음소리뿐이고 본 것이라곤 붕대뿐이오”라고 답한다.
인도주의11)를 표방하는 간자키와 애국주의로 무장한 운노는 각기 ‘코즈모폴 리터니즘(cosmopolitanism)12)’과 ‘내셔널리즘’이라고 하는 세계관을 지닌 인물이 라 할 수 있다.
11) 인도주의는 19세기 유럽을 기원으로 하는 특정한 것이지만, 사회 문화의 차이와 상관없 이 보편적으로 공유되어야 할 코즈모폴리턴한 인도 원칙이라 간주되는 일이 많다.(近藤 久洋(2011) 人道主義は普遍的か―新興国と国際人道レジームの未来―」 木村宏恒他2 人編 開発政治学入門:途上国開発戦略におけるガバナンス 勁草書房, p. 53.)
12) 세계시민주의를 일컫는 용어인 코즈모폴리터니즘은 모든 종교와 철학 사상이 민족주의 적인 배타성과 지역성을 넘어서서 세계주의를 지향하는 사고이다. 기존의 선행연구에 서는 대부분 간자키의 세계관을 인터내셔널리즘(internationalism)의 측면에서 논하고 있다.(酒井敏(1996.11) 軍夫 文明戦争 の暗部―文学テキストからの照明―」 日本文 学 45, p. 34.) 코즈모폴리터니즘은 인터내셔널리즘과 유사한 성격을 띠고 있지만 개인 의 보편적 권리와 윤리에 중점을 둔 코즈모폴리터니즘은 국가와 국가 간의 정치적 경제 적 협력에 초점을 맞춘 인터내셔널리즘과 차이를 나타낸다. 적십자의 핵심정신은 인간 의 보편적 존엄성을 강조하는 데 있기 때문에 보편적 인도주의와 글로벌 연대, 인간 중심적 사고라는 차원에서 해석해볼 때 코즈모폴리터니즘적 세계관에 더 가깝다고 해석 할 수 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관점에서 코즈모폴리터니즘이라는 용어를 간자키의 논리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도입하고자 한다. 평화공존을 위한 제도나 조건을 탐구하는 사상이며 이는 ‘세계주의’ 또는 ‘세계시민주의’의 용어에 해당한다. 내셔널리 즘이 국가나 국민이라는 스스로의 우월성을 나타나는 사상인 것에 대해 코스모폴리터니 즘은 국가나 민족과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하나의 공동체라는 사고방식에 서 있다. 川出良枝(2023) 平和の追求 18世紀フランスのコスモポリタニズム 東京大学出版会 참조.
국가주의의 틀에 갇혀 중국군을 오로지 적으로만 파악하는 운노 일행과는 달리 직무를 우선시하는 간자키의 입장에서는 부상병 간호라고 하는 직무만이 자신의 사명으로 적군이나 아군이라고 하는 개념은 중요치 않다.
다음 인용문은 운노와 간자키의 인물 조형을 명백하게 나타내는 장면이다.
작업 반장은 의아한 듯이 “그렇다면 뭔가 전혀 무신경해서 적의 사정을 캐내려 하지 않은 겐가.” “달리 물어보려고도 생각지 않았소.”(3)
운노의 입장에서는 간자키의 행위가 지극히 ‘무책임(無責任)’하고 ‘무신경(無 神経)’하게 비쳐질 수밖에 없다.
적진의 상황을 알아내기 위해서라면 척후병이나 탐정 같은 이들이 목숨을 걸고 일을 수행해내는데, 가장 안전하고 편리한 처지에 이를 방치했다는 것이 운노의 입장에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다.
그러한 탓에 간자키의 행위가 ‘무신경’한 일로 비쳐진 것이다.
그의 행위는 더 나아가 ‘무심(無心)’하고 ‘순진(無邪気)’(3)하게까지 비쳐진다.
내셔널리즘에 젖어있는 운노의 입장에서는 간자키의 반응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을 따름이다.
“음, 좀처럼 드문 호걸이네. 일본의 명예야. 적으로부터 감사장을 받다니. 아마도 자네 말고는 아무도 없을 걸세. 자네도 명예로 생각하겠지? 대단해! 정말 대단해! 고장의 빛이 요 일본의 꽃일세. 우리도 본받아야겠네. 자네, 그 소중한, 아니 고이 간직해둔 것이겠네만 부디 한번 그 감사장을 보여줄 수 있겠나?” 라며 입은 나긋나긋하게 말하지만 가슴에 차오르는 불쾌한 감정은 감출 길 없이 소리로 미어져 나왔다.(3)
비아냥거림으로 점철된 운노의 언설에서 격분의 감정을 숨길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간자키의 행위에 엿보이는 ‘무책임’, ‘무신경’, ‘무심’함이 운노에게는 ‘불쾌’한 감정으로 표출되고 있는 장면이다.
천진난만한 모습과 ‘담백’함에 어이 가 없어진 운노는 ‘바보 천치가 아닐까 의심하면서, 일단 시험 삼아 애국이 무엇 인지를 가르쳐보고자 한’(4) 것이다.
‘무책임’, ‘무신경’으로 일관하는 간자키의 언설은 독자들의 공감대 형성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이는 관념소설이 지니는 부자연스러운 인물 조형이라고 하는 결점13)이라고 하 는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운노의 시선에 비친 간자키가 ‘바보 천치’로 비쳐지고 있듯이 철저하게 희화화한 캐릭터로서의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3) 酒井敏(1996.11) 軍夫 文明戦争 の暗部―文学テキストからの照明―」 日本文学 45, p. 35.
하지 만 이는 관점을 달리 하여 보자면, 중국인에 대한 적개심으로 중국을 야만스러운 나라라 멸시하는 국가주의에 사로잡힌 운노 일행과 대조적으로 이질적인 감성을 지닌 인물 간자키를 조형한 것은 일종의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하고자 한 작가의 실험정신의 발로라 해석할 수 있다.
운노 일행의 애국주의적인 시선을 상대화하 고 그 대척점에 선 박애주의로서의 적십자의 ‘직무’정신을 최우선시하는 새로운 인물 조형을 통해 독자에게 호소하고자 한 바가 있다고 본다.
즉, 인간의 아이덴 티티를 ‘국민’으로서의 관점이 아니라 ‘세계시민’으로서 파악하고자 하는 사고 가 그 배후에 있다고 해석해볼 수 있는 것이다. 14)
14) 川出良枝(2023) 平和の追求 18世紀フランスのコスモポリタニズム 東京大学出版会 참조.
하지만 단순히 이러한 세계관 만으로 간자키의 사고와 성격을 규명하기는 어렵다. 간자키의 내면에는 ‘신앙’ 이라 여겨지는 부동의 신념이 존재하는데 다음 장에서 이에 대해 고찰해보도록 하겠다.
3. 적장(敵将)의 감사장과 운노의 도발: ‘신앙’으로 묘사된 간자키의 신념의 행방
이 작품에서 적장이 간자키에게 보내온 감사장의 존재는 운노를 격분하게 만든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적장이 이러한 감사장을 보낸 것은 일본군 에 대한 일종의 도발로, 일본군 내부에 동요를 일으키는 교란작전의 일환이라 해석할 수 있다. 결국 운노는 이를 빌미로 일본군 인부들에게 호소한다.
“이 녀석을 보라고. 너희는 무슨 생각이 들지? 감사 편지야. 잘 들어봐, 지나인이 감사 인사를 담아 보낸 편지란 말이야. 인간은 정직한 법이야. 아무 이유 없이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는 자는 없어. 게다가 적이야, 우리의 적인 지나인들이야. 지나인이 감사 인사를 하며 포로를 돌려보내다니 천부당만부당한 일이 아닌가!”(3)
운노의 선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잘 보라고. 무기력하게 포로로 잡혀서 목숨이 두려워 항복하고 아군은 어찌되든 상관 없이 지나인 간호에 매진했지. 얼마나 간호에 힘썼는지 보통이 아니었던 게지. 이 글 속에도 쓰여 있어. 마치 뭐냐 부모나 형제라도 대하듯이 엄청 친절하게 했다지를 않나. 그래서 목숨을 건지곤 무슨 낯짝으로 돌아와서는 이 감사장까지 받았어. 어때, 대단하지 않나? 너희들이라면 어떻게 할 것 같나?”(4)
이에 호응하듯 인부들이 “역적, 역도, 매국노, 죽여라, 때려라, 하며 모두 일제 히 매도하”는 목소리를 높이자 운노는 차라리 감사장을 찢어버려서 밟아버리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하며 “그리하면 조금은 분이 풀리기도 하려니와 어느 정도 저자들이 납득할 것”이라고 운을 뗀다.
운노는 “안 그러면 저래 봬도 고국을 위해서는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는 자들이니 어찌 나올지 몰라”(4)라며 간자키를 압박하지만 간자키는 말도 끝나기 전에 대수롭지 않게 감사장을 호주머니에 받아 넣는다.
이러한 무심한 행동에 운노는 “양심에 물어!”라며 호통을 치지만, 간자키는 “양심의 가책을 받을 구석은 전혀 없습니다.”고 담담하게 말할 뿐이다.
이는 직무에 충실한 것을 당연한 일로 여기는 간자키의 직업의식이 드러나는 대목으로 여기에 정치나 국가의 이데올로기가 개입할 여지는 전혀 없는 셈이다.
간자키의 천진난만한 모습과 ‘담백’함에 어이가 없어진 운노는 “바보 천치가 아닐까 의심하면서, 일단 시험 삼아 애국이 무엇인지를 가르쳐보고자 한” 것이다.
“일본남아(神州男児)”로서의 자부심을 상실하고 고문이 고통스럽다 하여 “아무 렇지 않게 아군의 내부 상황을 털어놓다니 어이없는 겁쟁이다”라거나 “힘써 찾 아봤지만 적의 경계가 삼엄해서 유감스럽게도 알아내지 못했다고 하면 그나마 덜할 텐데”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음에 놀라움을 표한다. 운노는 간자키를 ‘역적’이나 ‘매국노’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가 적과 내통하여 아군을 정탐하 러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품게 되는데, 이러한 합리적인 추론에 이르게 된 것은 “그렇지 않으면 저 야만스러운 잔혹한 적이 그렇게 쉽사리 포로를 돌려 줄 법은 없다”(5)고 여겼기 때문이다.15)
15) 여기서 ‘야만’이라고 하는 표현이 눈에 띄는데, 이는 중국인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드러 낸 것으로, 당시 중국에 대한 일본국민의 일반적인 인식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로 당시 일본 병사들이 남긴 기록에는 ‘불결’과 ‘냄새’라는 인상이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는 데, 이는 메이지유신 이후 문명화정책으로 인해 ‘위생’과 ‘청결’에 대한 철저한 교육을 받은 병사들의 인식이기도 했다. 당시 일본 사회에는 후쿠자와 유키치에 의해 ‘문명의 의전(義戦)’이라고 하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청일전쟁은 문명과 야만의 전쟁이다(日清戦争は文野の戦争なり) (時事新報사설 1894.7.29.)라고 하여 문 명주의의 입장에서 무력행사를 긍정하였다.(酒井敏(1996.11) 軍夫 文明戦争 の暗部 ―文学テキストからの照明―」 日本文学 45, pp. 27-36 및 유용태 박진우 박태균 공저 (2010) 함께 읽는 동아시아 근현대사1 창비, p. 242 참조.)
급기야 운노는 “우리 부모와 처자를 내버리고 고국을 위해 한목숨 다하고자 하는 애국지사가 용서하지 않아.”(5)라고 하며 간자키의 무책임한 태도에 분노를 나타낼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운노의 계속되는 질문에 간자키는 전혀 양심에 가책을 받지 않으며 미소를 띠기까지 하는데, 교카는 이를 “그 신앙이란 매우 확고한 것이다.
운노는 계속 흥분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쉽사리 말도 잇지 못하고 그저 그를 계속 노려봤다”며 그것을 마치 ‘신앙’에 빗대어 묘사하고 있다. 이에 대해 간자키는 자신은
“전투원과는 다릅니다. 저를 책망하신다면 적십자사 의 간호원으로서 따져주시길 바랍니다”(5)
고 한다.
이처럼 운노 일행을 통해 나타나는 국가주의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사고를 표방하는 간자키의 모습을 다음 인용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적의 내부 사정을 살펴보는 일은 군사탐정의 몫이겠죠. 무릇 전투력이 없는 자는 적에게 저항할 힘이 없으니 도망칠 수 있으면 도망치겠지만 실패하면 붙잡히기 마련입니 다. 제 직무상 부상병을 구호하는 데는 적이니 아군이니 일본이니 청나라니 하는 그러한 명칭도 구별도 없습니다. 그저 부상병이 있을 뿐 그밖에 달리 아무 것도 없는 것이죠. 마침 제가 포로가 되어 적진에 있었을 동안에 다행히 의뢰를 받았기에 적의 부상병을 돌봤습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진력을 다하여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면 적십자의 명예에 손상을 입게 됩니다. 아니, 불명예는 상관없지만 요컨대 직무의 과오가 되는 겁니다. 하지 만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아군과 달리 정말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딱할 정도로 모든 게 갖춰져 있지 않고 부족해서 자칫하면 죽게 내버려둘 판입니다. 그렇지만 그래서는 미안하기에 엄청 고생을 하며 겨우 적십자의 간호원이라는 체면만은 지킬 수 있었습니다. 감사장은 우선 그 증표라 할 만한 것인지라 그것을 고국에 선물로 가져가면 전국의 사원은 모두 만족할 거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제 직무조차 간신히 수행했을 지경인데 무슨 여유가 있어서 적의 정세를 살핀다거나 탐정이나 척후병의 임무까지 수행할 수 있겠습니까. 또 설령 그게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쓸데없는 참견이죠. 지금 당신에게 말씀드리는 것이 나 심문을 받으면서 장교님에게 말씀드린 것이나 다 같은 내용이라 더 이상 말씀드릴 게 없습니다. 세상의 평판은 어쩔 수 없죠. 역적이든 국적이든 그건 어찌됐든 상관없습니다. 그저 간호원이라면 그걸로 족합니다. 하지만 간호원으로서의 체면을 잃었다고 할 정도라 면 변명도 하겠습니다. 죄라도 짓겠습니다. 책임도 지겠습니다. 하지만 애국심이 어쨌다느 니 적개심이 어쨌다느니 그런 것엔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적십자 간호원입니다.” 라며 거침없이 말했다. 게다가 간호원의 그 언어에는 어색한 어조 따윈 없었다.(5, 밑줄 인용자)
일장 연설에 가까운 간자키의 발언 속에서 그가 국가주의를 초월한 직무 제일 주의라고 하는 확고한 사명감을 지니고 있는 인물로 조형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험악한 언설과 갖은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국가주의를 강요하는 운노 일행 의 추궁에 ‘무책임’, ‘무신경’, ‘무심’, ‘천진난만’한 태도로 일관해오며 ‘바보 천 치’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게 만들 정도의 간자키이지만, 이 인용문에서는 논리적인 언설이 돋보인다.
“저는 적십자 간호원입니다”라고 하는 마지막 문장 은 그의 아이덴티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문구라 할 수 있다.
적십자 간호원으로서의 ‘체면’만이 간자키가 지켜야 할 유일한 덕목이며, 국민국가라고 하는 개념은 그에게서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러한 간자키의 말에 “반박할 구석을 발견하지 못하고”(6) 분개하는 운노 를 옆에 두고 한 인부가 말을 꺼낸다.
“적십자라느니 간호원이라느니 이 자식 한자말이나 써대고. 뭐 좋은 말로 발뺌하려고 해도 소용없어. 우린 다 알고 있단 말이야 얼간아”
라며 욕설을 퍼부었던 인부는
“중국 계집한테 빠져서 이 튀기 놈. 네놈이 이러쿵저러쿵 지껄여대지만 남경(南京)에 반했으니 중국 인 간호를 하고 편을 들며 내막을 알면서도 말 안하려는 거 아냐?”
라며 추궁 한다.
이어서 인부는 간자키가 중대장의 명령으로 유탄에 맞은 중국인 부호를 그의 집에 바래다주게 한 것이 일의 발단이었다고 전한다.
간자키는 중국군의 눈을 피해 그 중국인 부호의 딸 이화의 방에서 5일 동안 숨어 지냈던 것인데, 중국군 퇴각 후 병영지로 돌아오던 일본인 인부들의 눈에 띈 것은 다름 아닌 눈 속에 쓰러져 있던 이화라는 중국여자였다.
그녀는 간자키를 숨겨줬던 중국인 부호의 딸로 아직도 그를 그리워한다는 말을 남겼다.
“중국의 개가 될 만한 놈은 일본 민족 고유의 정신(大和魂)을 모르는 놈이다. 일본 민족 고유의 정신을 모르는 놈은 일본인과 한 패가 아니야. 일본인과 한 패가 아니면 중국인이나 마찬가지지. 배때기를 걷어차서 이 창자를 끌어내고 씹어서 내뱉어버리 자구!”(6)
하지만
“사면초가 한 몸에 죄어오는 완력이 차츰 닥쳐옴에도 미간 일점의 걱정도 없이 거리낌 없는 표정으로”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 는 간자키의 반응은 분명 일반적인 것과는 동떨어져 있다.
국가주의를 강요하는 운노의 언설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국가의 체제가 어떤지를 깨닫지 못하는 도리에 어긋난 자요, 열등하고 비겁한 자, 역적이자 파렴치하고 무기력한 인간 말종이야. 모두가 너를 일본인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고 단정하는데, 어디 이래도 양심에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가?”
“부끄럽지 않습니다.”고 간호원은 같은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작업반장은 고개를 끄덕 였다. “알겠네. 어디 이름을 말해봐.” “이름말입니까? 간자키 아이사부로입니다.”(6)
실은 8장으로 구성된 이 소설의 후반부에 해당하는 6장의 말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간호원의 이름이 밝혀진 것이다.
간자키 아이사부로(神崎愛三郎)라는 간 호원의 이름에는 공교롭게도 ‘박애’의 ‘애’가 들어 있다.
이 작품에서는 ‘박애’와 ‘애국’이라고 하는 서로 상반된 신념에 의해 작중 내내 긴장관계가 유지되고 있는데, 코즈모폴리터니즘과 내셔널리즘이라고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작품 속 두 인물을 통해 형상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어서 7장에서 운노가 간자키를 붙잡아온 이곳은 실은 그가 포로로 잡히기 전 기거했던 이화라는 여인의 집이었음을 알려준다.
“자, 미리 알려두긴 했지만, 역시 간호원은 간호원인지라 간호원이 할 일만 하면 되지. 오히려 다른 일은 하지 않는 게 당연하지. 적의 정황을 살피는 것은 탐정이 할 일이고 전투의 임무를 맡는 것은 전투원의 몫이지. 말하자면 적개심을 일으키는 것은 할 일 없는 한가한 사람이나 할 짓이고, 자진해서 국가에 진력하는 것은 호기심 많은 사람이 하는 짓이야. 사람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면 되는 거지. 우리가 너를 책망하는 것도 물론 한가하니까 그렇다는 셈이 되는 거지?”
간자키의 논리에 대해 비야냥거리는 듯한 논조로 조목조목 따지며 그의 심리 를 자극하고자 하는 운노의 도발에도, 간자키는
“그렇습니다. 저는 간호원입니 다”
라고 말할 뿐이다. 다시금 “직무 외의 일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을 텐가!”라고 추궁하는 운노의 질문에도
“할 수 없습니다. 여유가 있다면 거즈를 만들죠”
라는 말만 돌아온다.
이에 운노는 작정한 듯 세 명의 인부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이들 에게 이끌려온 이화는 병상에서의 생활로 수척해진 외모로 묘사된다.
운노는 간자키를 도발하듯 정강이를 들어 이화의 복부를 밟아대며 간자키의 반응을 살핀다.
간자키의 부동의 신념은 포로가 되기 전 자신을 돌봐주고 마음을 주고받은 이화라는 여성의 등장으로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간자키는 자신의 ‘직무’를 지 켜 이화를 외면할 것인가, ‘직무’를 외면하고 이화를 구할 것인가, 라고 하는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된다.
하지만 이화가 능욕당하는 장면에서 “직무 외의 일은 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그녀를 도우려 하지 않는다.
결국 능욕을 당한 끝에 이화는 목숨을 잃고 만다.
이러한 점에서 간자키가 과연 보편적인 인류애에 기반을 둔 ‘박애’정신을 체현 한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수수방관하는 간 자키의 태도에서는 사사로운 감정에 좌우되지 않고 자신의 직무 관념에 투철한 한 인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운노가 마지막으로 꺼내든 카드인 ‘이화’의 등장에도 흔들리지 않는 간자키의 ‘신앙’과도 같은 이러한 부동의 신념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가네코는 이 작품을 메이지 20년대 후반의 일본을 규정하는 역사 적 맥락에서 읽어가면서도 그것으로 채 설명이 되지 않는 ‘과잉성’과 ‘위화감’에 대해서 지적한 바 있다. 16)
16) 金子亜由美(2011.10) 人外 の 信仰 ―「海城発電 試論―」(国文学研究 165, 早稲田 大学国文学会), pp. 48-58 참조. 가네코는 동시대 비평 가운데 미야자키 고쇼시(宮崎湖処 子)의 泉鏡花の海城発電(国民之友, 1896.1) 라는 글을 통해 당시 문단의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고쇼시는 간자키의 ‘성격’묘사에 ‘국가적 관념’이 결여되어 있고 교카가 “국가주의와 세계주의, 애국심과 박애주의의 당착을 그리려다가 실패한 것이다”라고 비판하였다. 즉, ‘인간’=‘국민’이라는 ‘자연’스러운 감성 위에 서서 교카의 해성발전 을 비판한 것인데, 이와 같은 동시대평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국수주의가 만연하던 당시의 관점에서는 ‘국민’이라고 하는 공동체의식이 결여된 간자키의 모습은 ‘위화감’ 그 자체로 비쳐졌을 것으로 여겨진다.
간자키의 성격을 ‘박애’라는 코드로 읽게 되면 마지막 장면에서 발견되는 이화의 능욕 사건에 대한 간자키의 반응은 모순된 것일 수밖 에 없다.
가네코 역시 “간자키의 ‘성격’은 ‘애국적 기개’에도 또는 그와 공범관계 로 성립하는 ‘박애적 정신’에도 포섭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본 논문에서도 이에 동의를 표하고자 한다.
바꿔 말하자면 간자키의 의지적 행동은 어디까지나 직무 제일의 직업정신에 근거한 것이지만, 그 실체라 할 수 있는 ‘박애’정신은 결여된 양상을 띠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간자키는 어디까지나 직무 제일 이라고 하는 직업정신을 신앙과도 같이 여기는 인물로 조형되고 있는 것이며 거기에 한 점의 의구심조차 없는 것이다.17)
17) 해성발전 과 마찬가지로 직무 제일 우선시하는 작가의 관념이 드러나고 있는 작품으로 야행순사(夜行巡査) (文芸倶楽部, 1895.4)를 손꼽을 수 있다
교카는 간자키라고 하는 자신의 직무를 제일로 삼는 새로운 유형의 인물 조형 을 통해 국가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서 새로운 인간상을 실험적 으로 탄생시켰다고 할 수 있다.
논쟁의 결과 운노 일행의 논리를 일부 수용하는 인물이었다면 이러한 인간상의 완성은 불가능했을 것이며, 국가주의의 세계관에 포섭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냉정하면서도 명료한, 어찌 보면 기계적인 반응을 보이는 인물이기에 이러한 전개가 가능했다고 본다. 국가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상의 추구를 통해 간자키의 언설은 결과적으로 ‘박애’ 의 형태를 빌어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코즈모폴리터니즘의 세계관을 표방하기 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는 이 소설이 관념소설의 면모를 띠고 있다는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다.
고쇼시가 지적했던 ‘국가적 관념’과 ‘국민’이라고 하는 공동체의식이 결여된 간자키의 모습에 ‘위화감’을 느낀 것은 당연한 현상일 수밖 에 없다. 이렇게 본다면 해성발전 은 단순히 ‘실패작’으로서가 아니라 교카의 다양한 실험정신이 드러난 작품으로서 평가할 만하다.
4. 영국인 기자의 시점이 의미하는 바
해성발전 의 마지막 8장에서는 작중에서 대비되는 인물로 조형되고 있는 간자키와 운노 사이에 벌어지는 일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영국기자 존 벨튼의 묘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존 벨튼은 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끝까지 지켜보다가 마지막 장에서 기사로 정리하여 영국에 전보로 보내게 된다.
이 영국인 기자에 대해서는 3장에서 최초로 묘사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간자키 와 운노의 대화를 출입구 쪽에서 지켜보는 ‘키 큰 인물’로 “검은 두건에 얼굴을 가리고 검은 외투에 몸을 감싼 채 장화를 신고 있었는데 슬쩍 고개를 움직여 매서운 눈매로 그 감사장을 쳐다봤다”(3)고 묘사되고 있다.
7장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존 벨튼은 “꿈쩍도 않고 담배를 피던 그 새까만 인물은 신발 소리 요란 하게 걸음을 옮겨 그들을 방 밖으로 내보냈다”고 묘사된다.
이 작품에서는 ‘박애’와 ‘애국’이라는 관념이 간자키와 운노라고 하는 두 인물 의 조형을 통해 극명한 대립을 이루고 있는데, 기자 존 벨튼의 존재는 작품의 외연에서 독자들과 비슷한 견지에서 이 무대를 지켜보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영국인 기자 존 벨튼은 작중에서 작품의 종반부에 이르기까지 간혹 간단한 묘사가 이루어질 뿐 그 존재는 미미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8장에서 존 벨튼의 등장은 의미심장하다.
8장에서 존 벨튼은 다음과 같이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그때까지 자리를 비우 지 않고 “눈을 떼지 않고 계속 서 있던 검은 옷의 사람은” 그녀의 죽음을 목도하고 숙연한 자세로 의자로 돌아와 책상에 한쪽 팔꿈치를 괴고 눈빛을 번뜩이며 연필 끝을 노려본다. “ 월 일 해성 발(発) 나는 목격했다. 일본군 가운데는 적십자의 의무를 다한 나머지 적으로부터 감사장을 보내온 역적이 있다. 하지만 또 적개심으로 인해 중국의 병든 여인을 붙잡아 능욕한 애국 인부가 있다. 상세한 내용은 추후에. 존 벨튼 영국 런던부 아워리 텔레그래프사 편집 행”(8)
위의 인용문에서 존 벨튼은 간자키가 적십자의 ‘의무’를 다하여 적장으로부터 감사장을 받은 점과 그로 인해 간자키를 적대시하여 ‘역적’으로 몰아세우는 인부 들의 일방적인 시선을 관찰자적인 시점에서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적십자 간호원 신분의 간자키가 자신의 ‘의무’를 다하였지만 이러한 행동은 국민국가 관념으로 무장한 운노를 포함한 인부들의 시선에는 ‘역적’ 행위로 보일 수밖에 없음을 한 영국인 기자의 객관적인 시점으로 바라보고 있다.
여기서 서양인이라 는 설정이 의미하는 바는 객관적인 시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기자라도 만약 일본인 기자 신분이었다면 묘사의 관점은 달라질 수 있고 편향적인 묘사로 객관적인 시점을 획득하는 데 실패했을 가능성이 있다.
영국인 기자의 서술이 균형감각을 유지하고 있음은
“적개심으로 인해 중국의 병든 여인을 붙잡아 능욕한 애국 인부”
라는 표현에서도 나타난다.
병든 몸의 이화를 능욕한 것은 간자키의 ‘매국’ 행각에 분개한 운노 일행의 ‘적개심’의 발로이며, 이러한 극한 상황을 통해 그의 신념을 시험하고자 한 행동이었는데, 이러한 운노 일행의 일련의 행동은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다름 아닌 ‘애국’의 한 형태였던 것이다.
전보를 보내는 존 벨튼의 모습은 소설의 외연에 위치하면 서 두 세계관을 객관적인 잣대로 바라보는 심판관과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석된다.
영국인 기자 존 벨튼이라고 하는 인물조형을 통해 이 작품에서 제시하고자 한 이데올로기의 대립, 즉 코즈모폴리터니즘과 내셔널리즘이라고 하는 양립 불 가능한 두 개의 세계관의 극명한 대립을 객관적인 시점에서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 셈이다.
8장에서의 보고는 같은 동족의 입장이 아닌 영국인이라는 특성에서 오는 문화적 차이와 서구적 가치관에 근거한 적십자 운동의 ‘박애주의’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바라보게 함으로써 전쟁의 한 단면을 전하는 ‘르포르타주’로서의 성격을 띤다.
이처럼 영국인 기자에 의한 객관적인 보고라는 요소가 전쟁소설로서의 측면을 형성하는 중요한 포인트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진 사건 을 알리고자 한 ‘세상’은 다름 아닌 이 글을 읽는 ‘독자’인 셈이다.
전장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통해 독자는 전장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추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5. 나오는 글
이상으로 본 논문에서는 청일전쟁을 소재로 창작된 해성발전 이라고 하는 단편소설에 대한 기존의 선행연구의 방향성이 ‘전쟁소설’과 ‘관념소설’이라고 하는 두 개의 축을 통해 성립되어 온 것에 대해서 이 둘의 관점을 아우르는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발견하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해성발전 의 전쟁소설 로서의 면모를 재평가하고 등장인물들의 조형을 통해 전쟁의 무정함과 인간의 신념에 대한 메시지를 확인하고 교카가 그리고자 한 전쟁문학으로서의 새로운 가능성과 더불어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인간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고자 한 교카의 작가정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더하였다.
교카는 이 작품에서 간자키라고 하는 자신의 직무를 제일로 삼는 새로운 유형 의 인물 조형을 통해 국가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서 새로운 인간상을 실험적으로 탄생시켰다.
운노 일행에 의한 국가주의의 세계관을 끝까 지 수용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끝까지 관철시킨 간자키는 운노 일행의 눈에 비쳐진 것과 같이 독자들의 시선에도 위화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 하다.
‘무책임’과 ‘무신경’, ‘천진난만’이라고 하는 수식어로 형상화된 간자키의 인물상은 국가주의의 시선에서 볼 때 이질감과 위화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인간상의 조형이 이 작품이 발표될 당시 문단에서의 비판 적인 시선에서 노출되게 된 것만으로도 이 작품의 메시지가 ‘문명의 의전’이라 는 인식에 지배당하고 있던 당시에 던진 메시지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케 하는 대목이고, 이는 바꿔 말하자면 국가주의 사상에 대한 정면으로부터의 도전 인 셈이다.
하지만, 간자키의 논리를 일부 수용하는 인물이었다면 이러한 인간상의 완성 은 불가능했을 것이며, 국가주의의 세계관에 포섭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냉정 하면서도 명료한, 어찌 보면 기계적인 반응을 보이는 인물이기에 이러한 전개가 가능했다고 본다.
국가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상의 추구를 통해 간자키의 언설은 결과적으로 ‘박애’의 형태를 빌어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코즈모폴리터니즘의 세계관을 표방하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는 이 소 설이 관념소설의 면모를 띠고 있다는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다.
고쇼시가 지적한 바와 같이 ‘국가적 관념’과 ‘국민’이라고 하는 공동체의식이 결여된 간자키의 모습에 ‘위화감’을 느낀 것은 당연한 현상일 수밖에 없다.
해성발전 은 단순한 전쟁소설에 그치지 않고 전쟁이 인간 심리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심도 있게 파헤친 소설이라 평가할 만하다.
애국심, 개인의 신념, 윤리관의 대립이라는 테마가 착종하여 전쟁의 비인간성과 해악, 무의미함을 독 자들에게 호소하고자 한 작품이다.
해성발전 은 ‘실패작’이 아닌 교카의 초기 실험정신이 빛나는 작품으로, 애국심으로 무장한 편협한 내셔널리즘을 비판하고 국제적인 시야에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 점에서 새로운 인간상의 조형만으로도 재평가 받아 마땅하다.
【참고문헌】
魯恵卿(2010) 泉鏡花の初期作品における人物造型 일본언어문화 제17집, pp. 509-524. 유용태 박진우 박태균 공저(2010) 함께 읽는 동아시아 근현대사1 창비, p. 242. 泉鏡花(1976) 鏡花全集 別巻 岩波書店, pp. 1-904. 金子亜由美(2011.10) 人外 の 信仰 ─ 海城発電 試論─ 国文学研究 165, 早稲田大学 国文学会, pp. 48-58. 川出良枝(2023) 平和の追求 18世紀フランスのコスモポリタニズム 東京大学出版会, pp. 1-424. 小林弘子(2013) 海城発電―明治軍国主義と赤十字博愛精神 泉鏡花 逝きし人の面影 に 梧桐書院, pp. 1-219. 近藤久洋(2011) 人道主義は普遍的か─新興国と国際人道レジームの未来─ 木村宏恒他2 人編 開発政治学入門:途上国開発戦略におけるガバナンス 勁草書房, p. 53. 酒井敏(1996.11) 軍夫 文明戦争 の暗部ー文学テキストからの照明ー 日本文学 45, pp. 27-36. 多摩市史編集委員会編(1999) 多摩市史 通史編2 pp. 254-266. 原田敬一(1994) 軍隊と日清戦争の風景ー文学と歴史学の接点ー 鷹陵史学 鷹陵史学会, pp. 224-225. 三浦一仁(1983) 泉鏡花―反軍小説家として 西田勝編 戦争と文学者:現代文学の根底 を問う 三一書房. 村松定孝(1992) 泉鏡花の反戦小説―その軍人憎悪をめぐって 文化評論 377, pp. 233- 238.
한글초록
본 논문에서는 청일전쟁을 소재로 한 「해성발전」의 분석을 통해 전쟁문학으로서의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과 더불어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인간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 고자 한 교카의 작가정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더하고자 하였다. 교카는 이 작품에서 간자키라고 하는 자신의 직무를 제일로 삼는 새로운 유형의 인물 조형을 통해 국가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서 새로운 인간상을 실험적으로 탄생시켰다. ‘무책임’과 ‘무신경’. ‘천진난만’이라고 하는 수식어로 형상화 된 간자키의 인물조형은 운노 일행의 국가주의의 시선에서 볼 때 이질감과 위화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해성발전」은 단순한 전쟁소설에 그치지 않고 전쟁이 인간 심리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심도 있게 파헤친 소설이라 평가할 만하다. 애국심, 개인의 신념, 윤리관의 대립 이라는 테마가 착종하여 전쟁의 비인간성과 해악, 무의미함을 독자들에게 호소하고자 한 작품이다. 「해성발전」은 ‘실패작’이 아닌 교카의 초기 실험정신이 빛나는 작품으로, 애국심으로 무장한 편협한 내셔널리즘을 비판하고 국제적인 시야에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 점에서 새로운 인간상의 조형만으로도 재평가 받아 마땅 하다.
키워드 : 이즈미 교카, 해성발전, 신념, 코즈모폴리터니즘, 내셔널리즘
Abstract
Izumi Kyōka’s Ethics of War in “Kaijōhatuden” ― Focusing on the Clash of Beliefs ― Yim, Taekyun In this paper, we will examine the possibility of a new interpretation as war literature through the analysis of Izumi Kyōka’s novel “Kaijōhatuden” based on the Sino-Japanese War. Through this, we hope to add a new interpretation of Kyōka’s work, which seeks to expand the horizon of understanding human beings beyond the ideology of nationalism. In this work, Kyōka experimentally created a new human image as an alternative to overcoming nationalism through the creation of a new type of person who puts his job first, called Kanzaki. Kaijōhatuden deserves to be re-evaluated as a new form of human image, as it criticizes narrow nationalism and proposes the possibility of resolving it from an international perspective.
Key Words : Izumi Kyōka, Kaijōhatuden, beliefs, Cosmopolitanism, Nationalism
◆접 수: 2024. 11. 10. ◆수 정: 2024. 12. 15. ◆게재확정: 2024. 12. 27.
韓日軍事文化硏究 第42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