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의 네 가지 주요 해석법에 대한 해석학적 고찰 ‐ 존 D. 카푸토의 포스트모던 해석학을 중심으로-/김봉근.삼육大
Ⅰ. 들어가는 말
“요한계시록의 구조에 대한 해석은 독자 수만큼이나 많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1) 역사적으로 요한계시록만큼 다양한 해석을 낳은 성경 텍 스트는 많지 않을 것이다.
크레이그 R. 쾨스터(Craig R. Koester)는 그의 앵커 바이블 요한계시록 주석의 서론에서 지난 2,000여 년간의 요한계 시록 해석의 역사를 크게 네 시기로 나누어 정리해 주고 있다.2)
1) B. McGinn/R. Alter & F. Kermode (ed.), “Revelation.” The Literary Guide to the Bible (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1987), 525.
2) Craig R. Koester (ed.), Revelation: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2014), 29-64.
첫 번째 시기는 로마 제국의 교회에 대한 핍박과 정치적 변화에 초점을 맞춘 초 대 교부로부터 500년대까지이고,
두 번째 시기는 중세 대부분의 시기를 관통하는 1500년대까지이며,
세 번째 시기는 종교개혁자들의 반가톨릭적 해석과 그에 맞선 로마 가톨릭의 해석이 대립한 1750년대까지이고, 마지막
네 번째 시기는 계몽주의 이후 역사 비평적 해석과 2차 세계 대전 이후 오늘날 글로벌 상황에서 시도되는 다양한 해석들까지이다.
쾨스터 가 제시하는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먼저 177년에 리옹의 주교가 된 초 대 교부 이레니우스(Irenaeus)는 박해당하는 신실한 신자들을 위해 큰 용 기를 주는 책으로 요한계시록을 이해했다.
400년경에 도나투스파에 소 속되었던 티코니우스(Tyconius)는 가톨릭 교회로부터 배척받는 상황에서 요한계시록의 갈등 장면을 교회의 지속적인 투쟁과 관련시켜 해석했고, 1202년 피오레의 요아킴(Joachim of Fiore)은 역사를 삼위일체 하나님에 의거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시대로 구분하고, 역사주의적 관점에서 천년왕국과 미래를 연결시켜 해석했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요한계 시록을 교회 전체 역사의 개요로 취급하는 중세 후기의 관행을 수용하고 본격적인 반교황적(antipapal) 해석을 보여주었고, 로마 가톨릭은 이에 대 항하면서 요한계시록 본문을 과거 혹은 미래의 특정 시간과 관련시켜 해 석했다.
계몽주의 이후 역사 비평적 관점에서 요한계시록의 문학 형식에 주목하거나 저자가 짧은 환상 이야기들을 결합시켰다고 주장하는 편집 이론들(compilation theories)과, 헤르만 궁켈(Hermann Gunkel)의 종교 역사적 접근 방법, 그리고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장르에 대한 연구들에서 묵시 문학이 내러티브의 틀(narrative framework)과 초월적인 실체들을 계시하는 중재자들(intermediary)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등 매우 다양한 해석적 관점들이 제시되었다.3)
3) 요한계시록 해석의 수용사적 측면은 다음의 책들에서도 간략하게 볼 수 있다. Bruce Chilton, Visions of the Apocalypse: Receptions of John’s Revelation in Western Imagination (Waco: Baylor University Press, 2013); Judith, Kovacs & Christopher Rowland. Revelation: The Apocalypse of Jesus Christ (Oxford: Blackwell, 2004).
요한계시록 해석의 전체 수용사적 측면을 살펴보는 것은 특정한 역 사적 시점의 인식적 한계에 매몰되지 않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텍스트 해석의 다양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요한계시록 해석에 대한 통시적 관점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4)
또한 역사 비평적 해석이 텍스트 완성 이전의 과거의 기원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 달리 텍스트가 완성된 이후에 이루어진 다양한 해석적 시도들에 초점을 맞춘 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연대기적으로 요한계시록 해석을 성찰하는 방식에는 다양한 유형의 해석이 동시에 발생한 경우를 간과하 거나 수 세기 간격으로 발생한 유사한 해석들 사이의 공통점을 성찰하는 것을 무시할 위험이 있다.5)
또한 쾨스터와 같이 해석의 역사를 기독교 역사에 대한 다소 주관적인 시대 구분 안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자 의적 접근이 될 수 있고, 유럽 기독교 중심의 해석을 벗어나 조금 더 다 양한 지역에서의 해석을 볼 수 없다는 점에서도 한계가 있다.
이러한 약 점을 보완할 수 있는 것은 요한계시록 해석의 일정한 패턴을 구분하여 접근하는 것이다.
오늘날 요한계시록 해석을 위하여 탈식민주의적 해석, 해방신학적 해석, 생태주의적 해석, 여성주의적 해석, 수사학적 해석, 전승사적 해 석, 그리고 서사적 해석 등 다양한 접근 방법이 시도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6)
4) Susan Gillingham, “Biblical Studies on Holiday? A Personal View of Reception History,” Emma England & William John Lyons (eds.), In Reception History and Biblical Studies: Theory and Practice (London: Bloomsbury. 2015), 17–30.
5) Ian Boxall, “Reception History and the Interpretation of Revelation,” Koester, Craig (ed.), The Oxford handbook of the Book of Revelatio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20).
6) 예를 들어 니체적 관점에서 요한계시록을 해석한 D. H. 로렌스와 이를 지지하는 들뢰즈, 그리고 이를 다시 비판적으로 활용하는 캐서린 켈러의 요한계시록 해석의 ‘차이와 반복’을 살펴보려면 다 음의 논문을 참조하라. 김봉근, “D. H. 로렌스, 질 들뢰즈, 캐서린 켈러의 요한계시록 해석 비교 연구 - 존재론적 이해와 해석적 차이를 중심으로,” 「신학사상」 205 (2024/여름), 61-88. 요한계시록 에 대한 전승사적 해석의 실례는 다음의 논문을 참조하라. 박두환,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두 증인 (ὁ δύο μάρτυς) 에 관한 전승사적 연구 - 요한계시록 11장 1-14절을 중심으로,” 「신학사상」 171 (2015/겨울): 43-66.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인정하고 있듯이 네 가지 해석 방법, 곧 요한계시록이 1세기 당시의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이해 하는 과거주의 해석(preterism), 종말의 특수한 시점에 집중하여 해석하 는 미래주의 해석(futurism), 역사적 시간과 무관하게 텍스트 내부의 영 적 원리를 추출해서 이해하고자 하는 이상주의 해석(idealism), 요한계시록 전체가 텍스트 외부의 역사적 개요를 예언적으로 암시하고 있다고 생 각하는 역사주의 해석(historicism)은 가장 주도적인 대표적인 해석방법 이다.7)
7) Grant Osborne, Revelation BECNT (Grand Rapids: Baker, 2002), 18-22. 요한계시록의 역사주의 해석은 중세 후기의 피오레의 요아킴에서 원형적 모습을 보였으며, 루터와 칼뱅 같은 종교개혁자 들이 적그리스도를 로마 가톨릭의 교황으로 지목하면서 본격화 되었다. 과학자 아이작 뉴턴 역시 천문학 지식을 활용하여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역사주의적 해석에 열정을 바쳤으나, 오늘날에 는 이러한 관점이 거의 사라지고 일부 개신교단에만 남겨져 있다. 대표적으로 칼빈주의자로서 후 천년적 역사론을 지지하는 프란시스 리의 F. N. Lee, John’s Revelation Unveiled (Brisbane: Queensland Presbyterian Theological College, 2000)와 함께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학자인 Ranko Stefanović, Revelation of Jesus Christ: commentary on the book of Revelation (Michigan: Andrews University Press, 2002)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주의 해석은 다시 D. K. Preston의 완전 과거주의 혹은 철저 과거주의(consistent pretersim, hyper-preterism, full preterism)와 스페인 의 예수회 신부 루이 알카자(Luis del Alcázar, d. 1613)가 쓴 요한계시록 주석에서 출발한 부분적 과거주의 혹은 온건 과거주의(partial preterism, moderate preterism)로 나뉜다. 오늘날 대부분의 개혁주의 진영의 학자들이 지지하는 부분적 과거주의 해석은 또다시 세 가지로 나뉘는데, 철저 부 분적 과거주의(consistent partial preterism)와 전환적 부분적 과거주의(transitional partial preterism), 통합적 부분적 과거주의(integrated partial preterism)가 그것이다. 철저 부분적 과거주의를 ‘구속사적 과거주의’(redemptive historical preterism)라 말하고 자신은 ‘수정된 과거주의자’(modified preterist)로 부르는 K. L. Gentry Jr. The Divorce of Israel: A Redemptive-Historical Commentary on the Book of Revelation (Vallecito: Chalcedon, 2024).가 대표적이며, 로마 제국의 역할을 간 과하지 않는 절충적 부분적 과거주의자인 P. J. Leithart, 그리고 D. Chilton 등을 함께 고려해 볼 수 있다. 과거주의 해석에 대한 최근의 연구 경향은 송영목, “요한계시록의 부분적 과거론적 해석 의 근거와 타당성,” 「신약연구」 22/3 (2023/9), 415-455를 참조하라. 과거주의는 스페인 예수회 소 속의 프란시스코 리베이라(Franciscus Ribeira)로부터 본격화된 미래주의 해석과 함께 16세기 후반 에 종교개혁의 반교황적 해석에 대항하기 위해 등장했다. 미래주의 해석은 초기 교부들(예: Justin, Irenaeus, Hippolytus)이 사용했던 방식과 일정 부분 비슷하다. 예를 들어, Origen 이후 우화적 방 법(책에 대한 영적 접근)과 Augustine와 Ticonius 이후 중세 신학자들이 천년기 관점의 승리(chiliasm: 천년지복설)로 미래주의 방법을 사용했다고 할 수 있다. 미래주의는 요한계시록의 4-22장이 주로 역사의 종말에 일어날 사건들을 지시한다고 믿는데, 이 접근 방식에는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와 고전적 천년주의(classical premillennialism) 등이 있다. KJV 성경의 열렬한 옹호자이 면서 전천년적 세대주의자로서 계시록의 환상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기를 선호하는 P. S. Ruckman 의 경우 역사주의와 혼합된 미래주의 해석을 지향한다. C. Marvin Pate et.al., Four Views on the Book of Revelation (Grand Rapids: Zondervan, 1998)에서는 과거주의와 이상주의 해석 외에 점진 적 세대주의(Progressive Dispensationalist)와 고전적 세대주의(Classical Dispensationlist)를 요한계 시록의 주된 해석방법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최근의 대표적인 미래주의 요한계시록 연구서는 B. M. Fanning, Revelation ZECNT (Grand Rapids: Zondervan, 2020).가 있다. 이상주의 해석은 보통 상징주의적 해석이라고 불리는데, 이상주의적 관점으로 계시록을 주석한 대표적인 인물은 19세기 말 영국 Aberdeen 대학의 교수였던 William Milligan이다. 이들에 의하면 요한계시록은 특정한 사건이 아니라 영적인 원칙을 알려주는 책이다. 20세기 초반의 William Hendriksen, 20세기 후반 의 미국 칼빈신학교 조직신학자 Anthony Hoekema, 그리고 Tyndale 주석 시리즈의 요한계시록 주석을 쓴 Leon Morris 등도 이상주의 해석학자들이다. 최근에 요한계시록을 이상주의적 관점으 로 세밀하게 해석한 대표적인 학자는 비일(G. K. Beale)인데, 그는 신약의 구약 사용 방식으로 분 석한 요한계시록 주석에서 이상주의적 해석을 사용한다. 그의 해석은 구속사에 뿌리를 둔 수정된 이상주의의 관점으로, 이상주의, 미래주의 그리고 과거주의를 융합한 해석을 보여준다. Gregory K. Beale, Revelation: A Shorter Commentary (Grand Rapids: Eerdmans Publishing, 2015) 참조. 이 상주의의 최근 연구 경향은 김경식, “요한계시록의 이상주의적 해석, 그 근거와 타당성,” 「신약연 구」 21/2 (2022/6), 236-270.를 참조하라. 한편, 요한계시록 앵커바이블을 쓴 크레이그 R. 쾨스터 는 이 네 가지 해석 가운데 어떤 것도 전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으나, 이상주의와 과거주의를 적절 히 활용하면서도 문학적 문맥(literary context)을 중요한 해석적 방법으로 생각한다. Craig R. Koester, Revelation: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New Heaven: Yale University Press, 2014) 참조.
코백스(Kovacs)와 롤랜드(Rowland)는 이와 같은 네 가지 해석법을 성찰하면서 요한계시록의 종말론적 이미지를 해석하는 두 가지 축을 제 시하는데, 세로축은 연대기적 시간에 따라 텍스트를 과거와 현재와 미래 의 시간 속에서 해석하는지 아닌지에 따라 구분되고, 가로축은 각각의 환상 이미지가 일회적인 역사적 사건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Decoding)되 는지 아니면 텍스트에서 추출한 영적 원리를 우선으로 이해하되 적용점 에 있어서 역사 속에서 반복적인 실현(Repeated actualization)으로 해석할 것인지 여부에 달려있다.8)
8) Judith Kovacs & Christopher Rowland. Revelation: the apocalypse of Jesus Christ (Hoboken, N.J.: John Wiley & Sons, 2008), 8.
코벡스와 롤랜드의 기준에 따르면 요한계시록 해석은 먼저 텍스트 외부에 특정 역사적 시간에 텍스트를 직접적으로 적 용하는지 여부에 따라 그러한 시간성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주의 해석과 나머지 해석이 분류되며, 텍스트 내부의 환상 이미지를 어느 시점의 특 정 역사적 시간에 대한 일대일 대응으로 해석하는지 여부에 따라 나머지 해석들이 구분된다.
이렇게 보면 이상주의 해석을 제외한 나머지 과거주 의 해석, 미래주의 해석, 역사주의 해석은 요한계시록 텍스트가 텍스트 너머의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일대일로 지시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공통 점이 있지만, 그 시간이 과거 1세기 당시인지(과거주의 해석), 미래 종말의 시간인지(미래주의 해석), 과거로부터 종말까지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지 (역사주의 해석)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즉 현재 요한계시록의 네 가지 주 요 해석법은 텍스트가 텍스트 외부의 특정 역사적 시간을 직접적으로 지 시하는지 여부에 따라 일차적으로 분류되며, 역사적 시간성의 지시 여부 를 인정한다면 그 시간대를 과거와 미래와 전체 역사 가운데 어떤 범주 로 설정할 것인지에 따라서 이차적으로 분류된다고 할 수 있다.
스티브 그레그(Steve Gregg)는 요한계시록의 전체 본문을 7개 파트, 곧 1–3장(The Seven Letters), 4–7장(The Seven-Sealed Scroll), 8–10장 (The Seven Trumpets), 11–13장(The 1,260 Days), 14–16장(The Seven Last Plagues), 17–19장(The Great Babylon), 20장(The Millennium), 21–22장 (The New Creation)으로 나누어 각 장별로 네 가지 해석이 어떻게 다른지 병행 주석 방식으로 정리해서 보여준 바 있다.9)
9) Steve Gregg, Revelation: four views; a parallel commentary (Revised & Updated Edition) (Nashville: Thomas Nelson, 2013).
그런데 그레그의 책을 보면 어떤 해석학적 프레임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과적으로 요한계시록 텍스트 해석의 의미가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기에 이러한 방법들 에 대한 해석학적 성찰이 강력하게 요청된다 할 것이다.
본고는 존 카푸 토의 포스트모던 해석학을 바탕으로 전통적으로 요한계시록 해석의 중심 을 차지해왔던 이상의 네 가지 방법에 대해 비평적으로 고찰해 보고 카 푸토의 관점에서 최선의 해석법은 무엇일지 탐구해 보고자 한다.
Ⅱ. 존 카푸토의 포스트모던 해석학과 약한 신학으로서의 신시학
해석학은 본래 중세에 성서 해석학과 고대 문헌들에 대한 해석학으 로 시작되었으나, 뉴턴 물리학과 과학 혁명 이후 자연과학 방법론에 맞 서 정신과학의 과학적 방법론을 확립하려고 분투하는 과정에서 슐라이어 마허(Friedrich D. E. Schleiermacher)와 딜타이(Wilhelm Dilthey)의 낭만주의적 해석학(Romantic hermeneutics)이 근대 일반 해석학의 토대를 놓았 다.
하지만 과학적인 방법론을 사용해서 인문 과학에서도 객관적으로 저자의 의도를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이와 같은 근대 해석학은 20세기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으로부터 시작해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존 카푸토는 하이데거와 가다머와 데리다의 사유를 정리하면서 이들을 통해 오늘날 포스트모던 해석학이 확립되었다고 주장한다.
카푸토는 해석학 전반에 대해 다루는 이론서를 두 권 저술했는데, 『급진적 해석학: 반복, 해체, 해석학 프로젝트』 (Radical hermeneutics: Repetition, deconstruction, and the hermeneutic project, 1988)와 『해석학: 정보화 시대의 사실과 해석』(Hermeneutics: Facts and interpretation in the age of information, 2018)이 그것이다.10)
10) John D. Caputo, Radical hermeneutics: Repetition, deconstruction, and the hermeneutic project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1988); John D. Caputo, Hermeneutics: Facts and interpretation in the age of information (London: Penguin UK, 2018). 두 번째 책은 한국어로 존 카푸 토/이윤일 옮김, 『포스트모던 해석학: 정보 시대에서의 사실과 해석』(서울: 도서출판 b, 2020)으 로 번역되었다. 이 두 권의 책 사이에 30여 년간 하이데거와 데리다에 관한 여러 책들을 썼고, 다 양한 공저에 참여한 것까지 하면 매우 많다. 대표적으로 John D. Caputo, Demythologizing Heidegger (Indiana University Press, 1993); John D. Caputo, The Prayers and Tears of Jacques Derrida: Religion without Religion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1997); John D. Caputo, The mystical element in Heidegger’s thought (New York: Fordham University Press, 2020) 등이 있다
첫 번째 책이 그의 학문 여정 의 초창기에 키에르케고어와 후설, 하이데거, 데리다 등의 철학자들 중 심으로 쓴 이론 중심의 책이라면, 두 번째 책은 그의 학문 여정을 거의 마무리 짓는 시점에서 하이데거와 가다머와 데리다를 중심으로 포스트모던 해석학의 이론적 특징을 책의 전반부에 정리하고 후반부에서는 법과 정의, 간호학, 포스트휴먼과 기술, 그리고 종교의 영역에 이러한 해석학 이 어떻게 적용 가능한지를 실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을 출판하기 전에 ‘현사실성의 해석학’ (hermeneutics of facticity)이라는 강의를 했는데,11) 여기에서 ‘현사실성’이 란 단순히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가라는 ‘해석’의 문제를 가리킨다.
11) John D. Caputo, Hermeneutics: Facts and interpretation in the age of information, 30. 377
즉 하이데거에게 해석은 해석자의 실존적 상황을 벗어나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세계 내-존재’로서 인간이 자신의 삶과 세계를 해석하는 동시에 자신이 처한 세계에 의해 해석되는 존재론적 순환 행위였던 것이다.
그래서 하이데거 는 인간이라는 말을 ‘현존재’로 바꿔 말했고, 역사적 ‘선-이해’에 대한 인 식을 바탕으로 역사적 해석의 토대가 되는 ‘현존재의 역사성’(Geschichtlichkeit)을 강조했다.
하지만 후기 하이데거는 ‘해석학’이라는 말을 사용 하기 꺼려했고, 현존재의 기투에 의해 구성된 존재 사건에 초점을 맞추 었던 전기 사유에서 존재 자체에로 사유의 무게 중심을 옮겼다.
그는 인 간 실존이 그러한 존재의 드러남과 도래에 개방되어 있는 자라고 주장했 다.
이제 현존재는 실존적 개성을 추구하고 완성하는 존재가 아닌, 존재 자체의 역사적 운동의 수용자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때문에 대부분 의 학자들은 하이데거가 전기의 해석학적 개념을 버렸다고 생각하지만, 카푸토는 하이데거가 1937년에 프랑스 독자들에게 하이데거의 사상을 소개해준 장 발(Jean Wahl)에게 보낸 『휴머니즘에 관한 편지』(Letter on Humanism, 1947)가 『존재와 시간』의 거의 모든 중요한 용어들에 대해 해 석학적 재해석 또는 반복적 수정(Widerholung; retrieval)을 가했음을 보여 주었다고 주장한다.12)
즉 후기 하이데거는 해석학이라는 말에는 흥미를 잃었지만, 여전히 역사적 존재로서 『존재와 시간』을 해석학의 기능적 차 원이 아닌 존재론적 차원에서 역사적 재해석을 보여준 것이라고 본 것이 다.
카푸토는 이것을 『존재와 시간』에서 하이데거가 언급한 해석학적 폭 력의 실례라고 말한다.
가다머의 『진리와 방법』은 근대 해석학에서 제안한 객관주의적 ‘방법’ 을 비판하고, 하이데거적인 해석학의 ‘진리’를 설명하고자 시도한 ‘철학적 해석학’에 관한 책이다.13)
12) Ibid., 80.
13) Ibid., 89.
가다머는 이 책에서 예술 작품의 진리와 인간 과학의 진리를 차례로 설명하는데, 여기서 가다머가 단순히 객관주의를 비판하고 그것을 부정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 요하다.
즉 가다머는 객관성 자체를 전면적으로 폐기하려는 것이 아니 라, 랑케식의 해석학적 객관주의를 반대했던 것이며, 역사적 존재로서의 해석학적 객관성의 한계 상황을 설명하려고 한 것이다.
따라서 가다머에 게 역사적 존재로서 독자는 자신이 서 있는 역사적 지평과 저자가 서술 하던 당시 과거의 지평이 만날 때, 전통의 확장이자 ‘진리-사건’으로 지 평의 융합(Fusion of Horizon)을 경험하게 된다.14)
이것은 과거의 전통과 독자가 대화할 때 새로운 해석학적 진리가 계속해서 나타나는 경험이다.
독자는 과거와 지속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담화 혹은 대화 놀이를 경험하 는 것이며, 과거는 생산적인 해석학적 순환 속에서 해석이 끝없이 이어 지는, 카푸토가 제안하는 포스트모던 해석학의 모습이 출현한다.
가다머 의 철학적 해석학과 결을 같이 하는 폴 리쾨르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거 리 두기’(Distanciation), ‘의미론적 자율성’(Semantic Autonomy), ‘전유’ (Appropriation) 등의 개념을 활용해서 지평의 융합을 설명한다.15)
여기서 ‘거리 두기’는 글이 완성된 순간 텍스트는 저자에게 더 이상 매이지 않고 그와 거리를 두게 된다는 것이며, ‘의미론적 자율성’은 저자가 더 이상 글 의 본래적 의도를 주장할 수 없고, 텍스트 역시 더 이상 저자에게 종속되 지 않은 상태에서 누구에게나 열린 독자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그 리하여 독자는 저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본문 자체와 직접 대화하며 자신 의 삶에 적용하는 ‘전유’의 경험을 하게 된다.16)
14) Ibid., 102.
15) Paul Ricoeur, Interpretation Theory: Discourse and the Surplus of Meaning (Fort Worth, TX: The Texas Christian University Press, 1976), 32.
16) 하지만 리쾨르는 가다머에게서 역사적인 상대성을 지칭하는 ‘귀속성(Zugehörigkeit; belonging)’ 개념과 텍스트를 설명할 대상으로 취급하는 객관주의적 방법을 지시하는 ‘거리 두기(Verfremdung; distanciation)’ 개념을 가져와 독자에게 적용시키면서 ‘진리’와 ‘방법’ 혹은 ‘이해’와 ‘설명’의 양자 간의 변증법을 추구함으로 가다머와는 또 다른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을 개척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리쾨르에게 저자의 역할은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독자들의 다원성에 의해서 “복잡해”진 것일 따름이라는 점이다. 메롤드 웨스트팔/김동규 옮김, 『교회를 위한 철학적 해석학』(고양: 도서출판 100, 2019), 104-105 참조. 때문에 저자의 죽음에 반대하며 리쾨르의 철 학적 해석학을 성서학적 내러티브 이해에 접목시키는 케빈 밴후저와 달리 카푸토는 리쾨르의 해 석학적 작업에는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김봉근, “케빈 밴후저의 성서해석학에 대한 비판 적 고찰 - 현대 문학 비평과 폴 리쾨르의 철학적 해석학의 수용을 중심으로,” 「신학과 학문」 24 (2018/12), 10-49 참조.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요한계시록을 포함하여 성서 해석학적 작업에서 일부 신학자 들은 텍스트 자체에 대한 해석과 그 해석이 마친 이후에 그에 근거해서 독자들이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것을 구분해서 설명하곤 하는데, 하이데 거 이후의 포스트모던 해석학에서 그러한 접근은 해석과 적용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텍스트와 독자와의 상호 관계성 안에서 해석이 통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데리다는 표면적으로는 해석학을 전통적 의미에서 텍스트의 본질적 의미를 탐구하는 방법이라 규정하고 비판했다.
하지만 카푸토는 데리다 의 초기 주저인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1967)에서 제시하는 독해의 원 리들이 해석의 이론으로 해석학적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 주장 한다.17)
17) John D. Caputo, Hermeneutics: Facts and interpretation in the age of information, 121.
데리다가 제시하는 두 가지 독해 원리는
첫째, 작가의 의도에 집 중해서 텍스트 자체를 상세히 주석하는 재생산적(반복적) 독해로서의 일 차적 독해와
둘째, 작가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텍스트 내부의 세계를 독 자의 현재와 미래의 세계에 드러내면서 존재론적으로 교류하는 생산적 (비판적) 독해로서의 이차적 독해이다.
가다머가 하이데거를 통하여 텍스트의 생산자로부터 수용자로 해석학적 초점을 이동시켰던 것처럼, 데리다 역시 저자로부터 독자로 혹은 창작자로부터 수용자로 이동시키면서 독자의 생산적 해석을 주창한다.
하지만 데리다는 지평 융합을 향해 나아가는 가다머보다 독자들의 모험적 해석학을 더 강조한다. 그는 일차적 독해(원본의 과거적 재생으로서 첫 번째 반복)의 전형으로서 유대교의 랍비와 루소와 후설을 제시하고, 이차적 독해(원본의 불가능한 미래적 투사로서 두 번째 반복)의 전형으로 시인과 니체와 제임스 조이스를 대비시킨다.
랍비가 교조적으로 전통과 율법이 담긴 성서를 반복하고, 루소가 죄의 근원 으로 회귀하려 하고, 후설이 원본의 정밀한 재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시인은 그 어떤 제약도 없이 자유롭게 해석하고, 니체는 기원이 없지만 메시아처럼 미래에 ‘진리’가 올 것처럼 믿으면서 새로운 진리를 창조 하고, 조이스는 음운과 의미의 새로운 조합을 통해 언어를 창조하면서 예상치 못한 결과들을 만들어낸다.
데리다는 이 두 가지 해석들 사이 (being-between)에서 해석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데리다에게 해석은 두 가지 종류의 해석을 단순히 융합하는 것이 아닌, 그 사이에서 진동하는 협상이며, 전통과 현재 사이의 끊임없는 중재이다.
데리다의 해석학적 논의에 근거해서 카푸토는 포스트모던 해석학의 중핵을 “해석적 명령은 끝까지 간다”(The interpretive imperative goes all the way down)라고 말한다.18)
이것은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록』에서 “나 는 나에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quaestio mihi magna factus sum)라고 말 했던 것처럼, 포스트모던 해석학의 문제가 단순히 텍스트의 일차적 의미 를 엄밀하게 독해해 내는 기능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누 구인지와 같은 ‘인간’ 존재의 문제로 회귀한 하이데거적 존재 부름의 문 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이러한 포스트모던 해석학을 관통하는 신학은 영구적이고 구조적인 신학의 유혹, 사고를 객관화하려는 유혹, 하나님을 마술을 행하 는 초월적 존재로 생각하려는 유혹과 같은 악마의 세 가지 유혹에 저항 하는 신학이기도 하다.19)
이러한 신학을 카푸토는 명제와 증명을 구성하여 실체에 집중하고 참 명제와 거짓 명제의 분리에 몰두하여 이단을 양 산하며 그리스의 로고스 개념의 역사적 발전에 따라 형성된 ‘강한 신 학’(strong theology) 혹은 ‘영광의 신학’(theology of glory)이라 명명하고, 그에 반대되는 ‘약한 신학’(weak theology) 혹은 ‘급진 신학’(radical theology)을 제안한다.20)
18) Ibid., 141.
19) John D. Caputo, “Devilish Hermeneutics, The Temptations of Jesus and Radical Theology,” Pierre Bühler & Stefan Berg & Andreas Hunziger & Harmut von Sass (eds.), in Anfechtung: Versuch der Entmarginalisierung einers Klassikers, Hermeneutische Untersuchungen zur Theologie 71 (Tübingen, Ger.: Mohr Siebeck, 2016), 191–208.
20) John D. Caputo, Cross and Cosmos: A Theology of Difficult Glory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2019)에서 특히 6장 “From Theology to Theopoetics: An Excursus on Method in Theology”을 보라. 이 장은 이미 “Theology, Poetry and Theopoetics,” foreword to Luis Cruz-Villalobos, Poesia, Teologia (Santiago de Chile: Hebel, Ediciones Colección Arte-Sana, 2015); Richard Kearney & Matthew Clemente (ed.), reprinted in The Art of Anatheism (London: Rowman Littlefield, 2018), 43–48에 실렸던 내용이기도 하다. -
그리고 이 약한 신학이 신학을 수행하는 방법으로 신 시학(神詩學; theo-poetics)을 제시한다.
여기서 신시학이란 초월적인 신학적 기표를 현상학적으로 중단하고(epoche), 사물 자체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것이다.21)
.21) John D. Caputo, “The Theopoetic Reduction: Suspending the Supernatural Signified,” Literature and Theology 33/3 (2019/9), 248-254.
때문에 성경 해석에서 객관화나 개념화 담론을 피하고, 비독단적이며 개방적이고 유연한 방식을 활용하여 확정적이고 고정적이 고 신조적인 모든 해석에 저항한다.
왜냐하면 신시학 안에서 신학은 교 리이기 이전에 시이고, 신조이기 이전에 세계 창조이며, 논리로 굳어지 기 이전에 삶과 죽음과 고통과 기쁨의 말을 숨 쉬게 하면서 정통주의의 공식적 교리나 공의회의 내용 이전에 주어지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카푸토가 제시하는 포스트모던 해석학은 텍스트에 대한 독자 의 ‘진리-인식론적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텍스트를 통한 독자의 ‘진리존재론적 경험의 문제’이다.
정리해보면 포스트모던 해석학은 해석자가 처한 현존재의 역사성을 고려하여(하이데거), 저자와 독자의 역사적 지평 의 융합을 꿈꾸되(가다머), 텍스트에 대한 일차적 독해를 넘어 이차적 독 해에서 독자의 현재와 미래로 모험을 감행하는(데리다), 그러면서도 비독 단적이고 개방적이며 유연한 약한 신학으로서의 신시학(카푸토)이라 할 수 있겠다
Ⅲ. 텍스트와 역사 사이에서 ‘추상-기계’로서의 요한계시록
근대 성서 해석학은 계몽주의 이성의 인도를 따라서 텍스트가 완성 되기 이전의 역사적 기원(the world behind the text)을 분석하는 데 초점 을 맞춘 ‘역사 비평적 성서 해석’을 발전시켰다.
하지만 20세기 초반에 신-문학 비평(New Criticism)이 등장하면서 텍스트 자체(the world within the text)에 집중하는 ‘문학 비평적 성서 해석’이 유행했다.
그런데 하이데거와 가다머의 해석학적 이해를 문학 비평에 새롭게 적용한 20세기 중반에 한스 로베르트 야우스(Hans Robert Jauss)와 볼프강 이저(Wolfgang Iser)는 다시 ‘독자 반응 이론’(Reader-oriented theory)을 내놓았다.22)
22) Raman Selden & Peter Widdowson & Peter Brooker, A reader’s guide to contemporary literary theory (London: Routledge, 2017), 38-43.
이 것이 성서 해석학에서는 포스트모던 해석학으로 독자에 집중하는 모습 (the world in front of the text)으로 나타나고, 카푸토가 말하는 약한 신학 (혹은 급진 신학)으로서 신시학과 만나게 된다.
큰 틀에서 보자면 하이데거 와 가다머와 데리다의 해석학적 입장을 따르고 있는 카푸토는 ‘저자’에서 ‘텍스트’로, 다시 ‘텍스트’에서 ‘독자’로 해석의 중심을 옮겨온 근현대문학 과 철학적 해석학의 흐름을 성서 해석학에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전통적인 네 가지 대표 해석법은 카푸토가 정리한 데 리다의 해석학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일차적(주석적) 독해에 충실한 것이 다.
그들은 모두 저자가 의도했던 텍스트의 고정된 의미가 있다고 생각 하고 그것들을 판별하는 데 열중하였다.
특히 과거주의 해석과 미래주의 해석과 역사주의 해석은 요한계시록 텍스트와 특정 역사적 시점(혹은 사 건)을 일대일로 대응시키는 해석적 경향성이 강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 다.
네 가지 해석법은 모두 텍스트 내에 초월적 존재로서 하나님과 그분이 계시한 객관적 진리가 존재함을 전제로 해서 그 본질적 진리를 되찾 거나 발견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하지만 조금 더 구체적인 맥락에 서 보면 그 네 가지 해석법은 차이가 있다.
먼저 이상주의 해석이 텍스트 내부의 관점에 조금 더 충실한 것이라면, 과거주의와 미래주의와 역사주 의 해석은 모두 텍스트가 텍스트 외부의 특정한 역사적 사실을 지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해석이다.
그런데 텍스트 외부의 역사적 지시성을 가지 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주의 해석에 서 요한계시록은 1세기 당시의 사건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이후의 독자들에게는 직접적으로 해당되는 것이 아닌 반면에(물론 영적 교훈의 적 용은 가능하다), 역사주의 해석과 미래주의 해석은 독자들의 실존적 삶에 서 현재 혹은 다가올 미래의 특정 시점을 가리키고 있기에 조금 더 직접 적으로 독자와 텍스트 사이의 존재론적 해석학적 순환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것이 역사주의 해석자들이나 미래주의 해석자들이 요한계시록 텍스트에 더 열광적인 이유이다. 물론 이상주의와 과거주의 해석 역시 텍스트 자체의 영적 교훈을 발 견하고 그것을 독자들의 삶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현재의 독자들과 연계 될 수 있으나, 텍스트 자체가 독자들과 존재론적 상호 관계를 직접 맺는 것과 텍스트의 의미를 독자의 역사적 실존과 무관하게 해석한 이후에 사 후적으로 적용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포스트모던 해석학의 관점에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이데거가 강조했던 해석자의 역사성을 텍스트 안으로 끌고 들어가는 “현존재의 존재론”이다.23)
23) 마르틴 하이데거/이기상 옮김, 『존재와 시간』(서울: 까치글방, 1998), 43.
과거주의 해석은 요한 계시록 텍스트가 이미 1세기에 성취되었다고 믿기에 이후의 독자들은 이 미 마친 경기를 보는 것과 같다.
이상주의 해석 역시 텍스트의 역사적 무 시간성을 전제로 해석하고 우선적으로 텍스트 자체의 주석적 의미에 집 중한다.
물론 그것이 역사적 비시간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독자들은 역사적 시점에 적용을 시도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텍스트 자체의 (의무적) 역량이 아닌 독자들의 자의적 판단에 의한 것이기에 늘 선택적 사안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두 가지 해석법은 텍스트를 현재 시점 의 독자의 역사적 시간과 일차적으로 분리된 상태에서 해석이 이루어지 기 때문에 네 가지 해석법 가운데 (해석학적으로) 가장 안전한 해석이긴 하 지만, 혹여 그것이 요한계시록 텍스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존재론적 역 사적 실천적 역량을 조금 더 극대화시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홀히 여기는 것이 아닌지에 대해서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데리다는 최소 한의 명료성을 보장해 주는 일차적 독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보았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텍스트 속에 감춰진 깊은 상충점을 향해 나아가서 텍스트를 모험에 빠뜨리고, 텍스트 의 취약성을 드러내며, 독자와 존재론적으로 교우하는 개방적이고 비판 적인 이차적 독해였다.24)
24) John D. Caputo, Hermeneutics: Facts and interpretation in the age of information. 특히 4장 “데 리다와 해석에 대한 두 가지 해석”을 참조하라.
카푸토가 생각하는 포스트모던 해석학에서 텍스트와 독자의 이와 같 은 상호 순환론적인 존재론적 삼투 관계를 생각한다면, 종말의 어느 특 정 시점에만 초점을 맞추는 미래주의 해석보다 모든 시대의 독자들이 언 제나 현재의 자신들이 대면하고 있는 역사적 상황을 텍스트 안으로 끌고 들어가는, 혹은 텍스트 안의 세계와 세계 안의 세계가 교접하는 역사주의 해석이 독자들의 삶을 더 창조적으로 변혁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쾨스터가 요약적으로 제시하듯이 교부 시대의 로마 제국의 핍박에 맞선 요 한계시록 해석이나 중세 후기의 피오레의 요아킴의 예언적 역사 해석, 그리고 로마 교황과 맞서고자 했던 종교개혁 시기의 개혁자들에게 요한 계시록은 당대의 역사적 변혁을 추동시키는 거대한 존재론적 역량 그 자 체였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역사주의 역시 그러한 이점을 살려낼 수 있 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오늘날 활동하는 미래주의와 역사주의 해석학자 들은 요한계시록 텍스트가 특정 역사적 사건을 지시한다고 생각하고, 특 정 텍스트와 특정 역사적 사실을 일대일로 대응시키며 텍스트의 다변적 인 해석 역량을 확장시키기보다는 단 하나의 주관적인 해석에 고정시켜 버린다.
그리하여 매번 텍스트가 예언한 것으로 해석한 역사적 사건이 기대와 다르게 지나가버릴 때, 해석학적 ‘양치기 사건’이 계속 발생한다.
예를 들어 오늘날 대표적인 역사주의 해석학자 중에 한 명인 랑코 스테 파노비치(Ranko Stefanovic)는 일곱 나팔을 역사주의 해석으로 이해할 때, 첫 번째 나팔(계 8:7)은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두 번째 나팔(계 8:8-9) 은 로마 제국의 멸망으로, 세 번째 나팔(계 8:10-11)은 중세의 배교로, 네 번째 나팔(계 8:12)은 중세 이후의 이성의 시대로 해석하는 것으로 동료 역사주의 해석학자들 사이에 일정 부분 합의가 있었다 말하지만, 다섯 번째 나팔(9:1-12)과 여섯 번째 나팔(9:13-21)에 대해서는 해석이 충돌한 다고 고백한다.25)
25) Ranko Stefanovic, “End-Time Demonic Activities in the Book of Revelation.” Journal of Adventist Mission Studies 11/2 (2015/1), 169-182.
그는 자신 이전의 일부 동료 역사주의 해석자들은 다 섯 번째와 여섯 번째 나팔을 이슬람의 중세와 이후의 군사적 상황을 설 명하는 것으로 해석했지만, 오늘날의 주변 역사주의 해석자들은 무신론 과 세속주의로 특징지어지는 계몽주의 이후의 서구 세계의 영적 상태를 지시하는 것으로 해석한다고 말한다.
즉 역사주의 해석학자들은 특정 텍 스트를 특정 역사적 사건에만 고정시키는데, 이렇게 되면 텍스트가 가지 는 역동적 생명력은 사라지고, 텍스트는 일대일 대응에만 고정되는 죽음 의 상태에 들어가고 만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데리다가 언급했던 첫 번 째 종류의 반복인 일차적 독해에 매몰되는 것이다.
이제까지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요한계시록의 이미지나 환상을 자기 시대의 역사적 관점에 서 특정 사건과 일대일로 연결시키는 것으로 해석했다.
데리다가 언급했 던 것처럼, 전통적인 일차적 독해는 필수불가결한 보호벽으로서 필요하 다.
하지만 텍스트와 독자의 존재론적 해석학적 순환이 이뤄지기 위해서 는 고정된 모델을 거부하고, 전통적 해석으로부터 탈주하려는 일탈을 감시하는 규칙을 걷어내야 한다.
그것은 불가능한 것의 반복으로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역사적 상황에 직면하여 자기 방식으로 텍스트 안으로 들어가서 다시 자신의 존재로 되돌아오는 존재론적 해석이 필요한 것이 다.
급진 신학으로서 신시학적 해석은 단수형 ‘계시’ 대신에 복수형의 수 많은 계시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각각의 계시는 문화적 삶의 형태만큼이나 불가능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특별함’을 지니고 있다고 믿 는다.26)
이들에게 계시는 세계 안에서, 세계를 통해, 세계로서 스스로 이 루어지는 잠정적이고 지역적인 예상치 못한 성취인데, 이것이 시간과 역 사 속에서 포스트모던 해석학의 독자가 수행하는 것이다.
카푸토는 신시 학의 아버지로 헤겔을 소환하는데(단, 폴 틸리히가 아버지라면 헤겔은 할아버 지라고 말한다), 이것은 칸트가 종교를 윤리로 환원하고 나머지는 미신으 로 전락시켰던 반면에, 헤겔은 인간의 이성의 도움 없이는 결코 배울 수 없는 삼위일체, 성육신, 십자가, 부활, 승천과 같은 초자연적 신비에 해 당되는 기독교적 주제를 인정하고, 개념적 명료화가 필요한 것들에 대해 ‘상상적-감각적 표현’(Vorstellung; imaginative-sensuous presentation)으 로 ‘시학’의 방식 안에서 ‘계시’를 취급했기 때문이다.27)
하지만 카푸토는 헤겔에게 여전히 지식과 개념(Wissen and Begriff)에 대한 집착이 남아 있 다고 판단하고, 헤겔의 이단적 버전으로 ‘변종적 포스트모던 헤겔주의’ (variant postmodern Hegelianism) 또는 ‘혼종적 기관 없는 헤겔주의’(hybrid headless Hegelianism)를 주창함으로 데리다나 들뢰즈 같은 대륙 철학자 들이 ‘사건’이라고 불렀던 것을 사건의 신학(theology of the event)으로서 의 신시학으로 대체하고자 한다.28)
26) John D. Caputo, “Theopoetics as Radical Theology,” Roland Faber & Jeremy Fackenthal (ed.), in Theopoetic Folds: Philosophizing Multifariousness (New York: Fordham Univ Press, 2013), 139. 27) Ibid., 134-135. 28) Ibid., 137-139.
여기서 카푸토가 제안한 ‘hybrid headless Hegelianism’을 ‘혼종적 기관 없는 헤겔주의’라고 해석한 것은 카푸토의 이 개념이 들뢰즈와 가타리가 『앙티 오이디푸스』에서 제시한 ‘기관 없는 신체’(corps sans organes; the body without organs)의 의미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29)
들뢰즈와 가타리가 앙토넹 아르토에게서 빌려 온 '기관 없는 신체'라는 개념은 유기체에 부여된 어떤 고정된 질서로부 터 벗어나서 무한한 변이와 생성의 잠재성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기관 없는 신체’는 욕망하는 기계들의 연결과 분리를 통한 접속으로 사회의 구속적인 제도를 넘어 생산적인 분열증적 흐름을 만들어낸다.
이곳에서 텍스트의 모든 에너지는 헤겔이 말한 개념적-논리적인 것 이 아닌, 진리의 감각적이고 그림과 같은 구체적 표현으로서 표상(Vorstellung)과 힘을 합쳐 창조적이고 재창조적인 포이에시스(poiesis) 30)의 사 건으로 ‘세계 내 실천’과 ‘세계 내 형성’과 ‘세계 내 창조’를 함께 이뤄간 다.
29) Gilles Deleuze & Félix Guattari/Robert Hurley et al. (tr.), Anti-Oedipus: capitalism and schizophrenia (New York: Penguin, 1972/1977), 9-16.
30)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삶을 순수한 실재를 탐구하여 이치를 발견하는 관조하는 삶(Theoria), 이론을 바탕으로 무엇인가를 창조해 내는 제작하는 삶(Poiesis),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숙고해서 실 천하는 삶(Praxis)으로 나누어 설명한 바 있고, 이후 현재까지 중요한 철학적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즉 시학으로서 성서 해석학은 이전의 종교적 믿음이나 관습이나 기 존 신념에 대한 장식적 미학이 아니라, 다가올 명명할 수 없는 어떤 믿음 을 창조적이고 담론적으로 환기(poiesis) 시키는 것이다. 그러한 텍스트 안에서는 비유와 역설, 반전과 반어, 기적적인 사건과 환상, 터무니없는 이미지 등이 니체적 의미에서의 은유적 군대처럼, 또는 형식적으로 정돈 할 수 없는 밤하늘의 성좌처럼, 느슨하게 조립된 채로 수사학적 구성과 의미론적 수행을 만들어간다.
이렇게 볼 때, 포스트모던 해석학에서 가장 바람직한 해석법은 이상 주의적 해석이나 과거주의 해석처럼 텍스트 자체의 주석적 의미에 초점 을 맞춰 일차적 독해를 수행하되, 기존의 역사주의 해석이나 미래주의 해석이 고정적이거나 전통적인 의미를 고집하던 것에서 탈피하여 모든 시대의 독자가 각각의 동시대적 의미를 언제든지 창조해 내는 개방적이고 비판적인 ‘변종적 포스트모던 역사주의’(variant postmodern historicism) 혹은 ‘혼종적 기관 없는 역사주의’(hybrid headless historicism)라는 이차적 독해를 감행하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예컨대 한철흠은 요한계시록이 묘사하는 선악 간의 종말론적 전쟁을 물리적 전쟁이 아닌 상징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하고, 일본 제국과 로마 제국을 비슷하게 이해하고 교회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거짓 세력의 실체를 드러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31)
물론 이러한 해석 이 엄밀한 일차적 독해에서 벗어나서 틀렸다고 말할 여지도 있을 것이 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해석학에서는 (해석이 인식론적 문제가 아니라 존재론 적 문제이기에) 좋은 해석과 나쁜 해석이 있을 뿐이지 옳은 해석과 틀린 해 석은 존재하지 않는다.32)
문제는 텍스트의 일차적 독해를 바탕으로 요한 계시록을 읽는 독자의 현재의 존재론적 삶과 역동적으로 상관하고 있는 것인가이다.
또한 텍스트 해석이 미래로 열려 있기 위해서 경건한 전통 적인 해석은 시적인 무질서와 창조적 모험에 노출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포스트모던 해석학의 관점에서 최상의 요한계시록 읽기는 모든 주석 적 정보가 통합된 해석이 아니라(오히려 이런 책들은 텍스트의 존재론적 역량 을 죽이는 무미건조한 해석이다), 독자가 처한 역사적 세계와 텍스트의 순환 관계 속에서 해석자가 동시대적 모험을 감행하는 해석이다.
들뢰즈의 ‘추상-기계’(machine abstraite; abstract machine)는 그의 ‘기관 없는 신체’라는 표현처럼 개별적 변용을 생성해 내는 원형적 모태 를 지칭하기 위해 만들어졌다.33)
31) 한철흠, “요한계시록의 종말론적 전쟁 재해석 - 참말과 거짓말의 싸움,” 「신약논단」 28/4 (2021/12), 753-784.
32) 물론 이것은 흔히 데리다를 오해하듯이 모든 해석이 다 허용된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카푸토 가 설명하듯이 “텍스트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There is nothing outside of the text)는 문장은 텍 스트의 참조 체계 없이는 또는 그 밖에서는 어떠한 언급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의미이지, 무엇 이든지 다 허용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이 문장은 정밀하고 훌륭한 주석이라는 사전 계기 가 필요하다는 것, 재생산적 독해가 필요하다는 것 등을 이야기하는 문단 뒤에 곧바로 나온다. John D. Caputo, Hermeneutics: Facts and interpretation in the age of information. 4장 “데리다 와 해석에 대한 두 가지 해석”을 참조하라.
33) Gilles Deleuze & Félix Guattari/Brian Massumi (tr.), A thousand plateaus: Capitalism and schizophrenia 2 (Vancouver,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1980/1987), 142-145.
들뢰즈와 가타리에게 ‘기계’는 총체적인 구조에 저항하면서 특정 용도로 사용되어 실제적인 효과를 발생시킬 때 를 지시한다.
반대로 형식적인 유사성에 근거해서 만들어진 ‘추상’은 다 양한 현상들을 하나의 틀로써 제한하고 규정하는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때문에 들뢰즈는 그와 같은 형식적이고 규정적인 추상에 반대하면서, 단 순한 외적 형식을 넘어서 기능과 교화에 의해 정의되는 ‘기계’로서의 추 상을 의미하기 위해 ‘추상-기계’라는 개념을 창안했다.
포스트모던 해석 학에서 바람직한 요한계시록 텍스트는 이와 같이 들뢰즈가 제창한 ‘추 상-기계’로서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텍스트에 대한 전통적인 일차적 독해와 대화하되 그것에 고정되지 않으며, 텍스트를 관통하여 독 자의 현재와 미래로 들어가서 존재론적 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원형적 모 태로서 기능을 가지는 것이다.
이제 이와 같은 실례로 요한계시록 13장 을 읽어보면서 이러한 해석법이 기존의 네 가지 해석법과 어떻게 다른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탐색해 보도록 하자.
Ⅳ. 요한계시록 13장을 포스트모던 해석학으로 해석하기
스티브 그레그는 요한계시록의 네 가지 주요 해석법을 매 장마다 역 사주의, 과거주의, 미래주의, 이상주의 순서로 병치시키며, 각각의 해석 법들이 어떻게 다른 관점을 보여주고 있는지 각 해석법마다 주요 해석자 들의 해석을 요약하며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같은 해석법 내에서도 학 자들의 의견이 갈리는 경우가 많아서 한 권의 책에서 그것들을 모두 일 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별로 각 해석법들의 요점과 흐름을 비교적 간결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유익함이 있다.
아래 내용은 그가 요한계시록 13장에서 소개하고 있는 견해들을 요약하고,34) 필요한 경우에 다른 관련 주석가들의 해석을 덧붙 여 정리한 것이다.
34) Steve Gregg, Revelation: four views; a parallel commentary. 그레그는 이 책에서 요한계시록 11 장부터 13장까지를 묶어서 Part Ⅳ “1,260 Days”로 정리한다. 따라서 13장의 맥락을 이해하기 위 해서는 11장부터 읽으면서 1,260일에 대한 각 입장별 해석이 어떻게 다른지 검토해보는 것이 적 절하다.
먼저 그레그는 요한계시록 11-13장을 1,260일이라는 기간으로 묶어 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여기서 과거주의자들과 미래주의자 들은 이 기간을 문자 그대로 실제적인 3년 반의 기간으로 해석하는데, 과거주의자들이 이 기간을 1세기 당시의 네로가 교회를 박해하던 시기 (AD 65-68년)나 유대 전쟁기간(AD 66-70년)으로 보는 반면에, 미래주의 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의 특정 환난 기간에 적용한다.
한편 역사 주의자들은 성경의 예언 텍스트에서 하루는 일 년을 의미한다는 연일원 칙(민 14:3, 겔 4:6)에 근거하여, 1,260일을 1,260년이라는 역사적 시간으 로 해석하고 교황권이 서구 교회를 지배하고 반대파를 박해한 시기로부 터 프랑스 혁명으로 몰락한 시기까지(AD 532-1792년 혹은 538-1798년)로 해석한다.
이상주의자들은 이 숫자를 전적으로 상징적인 것으로 받아들 이고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재림까지 기독교 시대 전반에 걸쳐 만연한 모 든 신성 모독적인 사건에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13장에 등장하는 두 짐승(바다 짐승과 땅의 짐승)에 대해서도 과 거주의자들은 첫째 짐승을 로마 제국과 특별히 네로라고 해석하고, 둘째 짐승은 로마에서 종교적 형태로 반교회적인 활동을 했던 세력들(황제 숭 배/로마 검찰관이나 유대 총독/유대인 지도자들)이라고 이해한다.
미래주의자 들은 첫째 짐승을 로마 제국이자 종말론적 적그리스도라고 해석하며, 둘 째 짐승은 거짓 선지자로서 로마 가톨릭의 수장이나 유대인 메시아로 위 장한 유대인이 될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상주의자들에게 첫째 짐승은 세 상 나라들과 정부를 통해 활동하는 사단의 박해하는 힘을 상징하고, 둘째 짐승은 이 세상의 거짓 종교와 철학을 상징하며 모든 시대 내내 교회 를 반대하는 존재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역사주의자들에게 첫째 짐승은 수세기 동안 루터와 칼뱅과 녹스와 웨슬리 같은 종교개혁자 들로부터 20세기 마틴 로이드 존스까지 일관되게 주장했던 것처럼 교회 를 박해했던 로마 교황권이었다.
그리고 둘째 짐승은 로마 교황 또는 로 마 교회의 사제 역할을 감당하는 세력이라고 이해한다.
문학적 문맥(literary context)을 강조하는 크레이그 R. 쾨스터는 13장 을 해석하면서 다소 과거주의적 해석을 따라서 첫 번째 짐승에 대해서는 네로가 죽었다가 살아난 것에 관한 전승들로 이해하고, 두 번째 짐승에 대해서는 황제 제의에 대한 귀족 계층의 후원자들, 속주의 의회, 혹은 아 시아의 코이논(koinon), 제국의 사제직, 이방의 관례를 수용한 그리스도 인들, 황제 제의를 포함한 그리스-로마 종교에 대한 보편적 지지 등과 같은 다양한 의견을 제시한다.35)
그런데 이상주의 관점에 서 있는 그레 고리 K. 비일의 경우 네로는 로마 제국의 원수이자 도망자로 죽었고 로 마 제국의 위협 인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첫째 짐승의 부활이 보편적 인 경배와 권세를 낳은 것에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36)
35) Koester, Revelation: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570-571, 589.
36) Beale, Revelation: A Shorter Commentary, 272-273.
따라서 비일은 첫 째 짐승이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재림까지 초시간적 존재로서 역사하는 사단의 악한 영의 활동을 의미하고 한 명의 역사적 인물이나 한 시대로 제한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완성된 악의 구현이 한 개인으로 나타나는 지 아니면 한 기관으로 나타나는지의 여부도 구별되지 않고 역사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13장에 대한 비일의 전체적인 해석 을 요약하면, 사단은 교회를 박해하기 위해 세상 나라에 자신의 대행자 로서의 권한을 주고, 세상 나라는 국가의 대행자로 정치적·종교적·경제 적 동조 세력에게 권한을 주어 교회를 박해하고 경건하지 않은 자들을 미혹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다양한 해석들 사이에서 포스트모던 해석학의 관점에서 가능한 최선의 해석법은 무엇일까?
본고에서는 앞서 포스트모던 해석학에서 최선의 방식을 과거주의나 이상주의 해석처럼 텍스트가 생성되던 당시 혹은 텍스트 자체의 주석적 이해에 초점을 맞추어 일차적 독해를 하고, ‘변종적 포스트모던 역사주 의’ 혹은 ‘혼종적 기관 없는 역사주의’로 독자의 현재와 미래에 초점을 맞 추어 이차적 독해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렇다면 예컨대 비일 의 이상주의적 해석을 바탕으로 오늘날 독자들은 어떻게 ‘변종적 포스트 모던 역사주의’로 나아갈 수 있을까?
그것은 이미 언급했듯이 역사 안에 서 잠정적이고 지역적인 성취로서 복수(複數)의 계시로 가능할 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날 요한계시록 13장에서 사단의 대리자인 첫째 짐승에 협력하는 둘째 짐승은 누구를 의미하는가?
그것은 아직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았지만, 온 세계가 우려하는 재선된 트럼프와 그에 협력하는 미국 보수 개신교 우파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이미 엄청난 희생자를 발 생시키며 우크라이나 침공을 이끌었던 푸틴과 그에 찬성했던 러시아 정 교회가 될 수도 있으며, 2차 세계 대전 직전에 히틀러에 협력했던 독일 개신교회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 어느 것도 둘째 짐승 텍스트 가 특정한 역사적 실체를 고정적으로 지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시 대 어느 지역의 것이라도 텍스트의 일차적 의미에서부터 확장되어 이차 적 독해를 향해 모험적으로 해석된 것이라면 얼마든지 귀 기울여볼 가치 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날 역사주의 학자들 가운데서 가장 활발 하게 활동하는 학자 중에 한 명인 스테파노비치는 그의 요한계시록 주석 에서 첫째 짐승은 프랑스 혁명을 거치며 ‘죽었다가 살아난’ 로마 교황의 폭압적 억압의 회귀를 우려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둘째 짐승은 ‘양’의 특 성을 가진 기독교 국가였지만 나중의 첫째 짐승을 대신해서 세계적인 압 제 세력으로 행동할 미국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한다.37)
37) Stefanović, Revelation of Jesus Christ: commentary on the book of Revelation, 420-434.
여기서 문제는 이러한 역사적 해석을 일차적 대응 관계로 고정시켜 버리지 않고 유연하게 풀어 텍스트가 역사 속에 역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먼저 성실 하게 텍스트의 일차적 주석적 의미를 찾는 것에서 시작하여 오늘날 독자 (해석자)의 역사적 실존적 상황과 관계시키는 것에 달려있다.
이러한 시도가 자칫 섣부른 모습으로 비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텍스트와 독자가 이전의 전통적 해석과 자신이 처한 역사적 삶 사이에서 끊임없이 실제적으로 작용하도록 돕는 것이다.38)
이것은 텍스트의 해석 과 신자의 삶에 적용이 분리되어, 개인의 영성적 차원에서 신앙적 교훈 의 개인적인 적용점을 찾아가는 주관적인 해석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39)
예컨대 미국 버클리의 GTU에서 성서 해석을 통한 해석학적 영성의 방법 을 통해 기독교 영성학을 창립한 샌드라 슈나이더스(Sandra Schneiders) 가 제안하는 '영성적 변화'를 위한 성서 읽기는 한 개인의 주체적 층위에 서 그 나름의 충분한 의미가 있는 작업이다.40)
하지만 요한계시록 텍스 트는 텍스트의 내적 구조에 있어서 초대 교회 일곱 교회 시대(계 1-3장)로 부터 시작해서 최후 종말 시대의 교회(계 20-22장)에 이르기까지 그 사이 의 인류 전 역사를 아우르면서 개인의 영성을 위한 주체적 층위를 넘어 서는 세속 국가의 정치적 층위와 교회 실존적 역사적 층위가 함께 포함 되어 있다.41)
38) 사실 스테파노비치는 전통적인 역사주의 해석의 위험성을 고려하여 과거주의 해석과 이상주의 해석을 일정 부분 활용하고, 텍스트와 역사적 실체의 일대일 고정적 해석보다는 미래의 열린 해 석적 가능성을 인정하면서 역사주의적 해석을 시도한다.
39) 이상주의 해석에서도 비슷하게 텍스트와 독자의 실존적 역사 사이의 단절이 발생한다. 왜냐하면 이상주의 해석에서 해석된 텍스트의 의미가 독자에게 적용되는 것은 여전히 개인의 주관적 선택 의 문제이지, 텍스트 자체가 지시하는 내용은 아니기 때문이다.
40) Sandra M. Schneiders, “Biblical spirituality,” Interpretation 70/4 (2016/9), 417-430: Sandra M. Schneiders, Revelatory Text (Minnesota: Liturgical Press, 1999); 이경희, “기독교 영성학 안에서 의 성서 해석의 의미: 성서영성학이란 무엇인가?,” 「신학과 실천」 56 (2017/9), 293-322.
41) 요한계시록 텍스트의 구조가 내부적으로 이러한 포스트모던 해석학적 관점에서 수정된 역사주 의 해석에 적절한지에 관해서는 추가적인 연구가 다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초대 교회 이후부터 종말의 때까지 그 사이에서 요한계시록을 읽게 되는 모든 독자들의 해석적 작업에 교회가 맞닥뜨린 (다니엘서 7장의 짐승들과 같은) 세속 국가들의 제국주의적 폭력적 요소들을 반드시 포함시킬 때에라야 제대로 된 이차적 독해를 수행할 수있을 것이다.
아나테아 포티에-영(Anathea Portier-Young)은 다니엘서가 묵시론적 텍스트를 통해서 제국과 협력하는 자세를 버리고 새로운 종말론적 비전 에 의해 저항적 태세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42)
그는 다니엘서에 대 한 한진희의 연구에 전적인 지지를 보내는데, 한진희 역시 다니엘서가 묵시론적 교육(apocalyptic paideia)으로 은유와 상징과 비판과 희망의 언 어를 통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제국주의에 대항했다고 본다.43)
요 한계시록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묵시론적 환상을 통해 모든 시대의 신자 들을 위한 정치신학적 역할을 수행하도록 기록되었을 것이다.44)
따라서 요한계시록을 모든 시대의 독자가 텍스트의 일차적 독해에 기반하여 각 각의 동시대적 의미를 언제든지 창조해 내는 개방적이고 비판적인 ‘변종 적 포스트모던 역사주의’(variant postmodern historicism) 혹은 ‘혼종적 기 관 없는 역사주의’(hybrid headless historicism)로 그들이 실존하는 지역과 정치적 상황에 맞서 읽어낼 수 있다면, 요한계시록은 초림과 재림 사이 의 모든 교회 시대에 걸쳐 반제국주의 및 반종교자유 억압적 관점에서 세상에 맞서 저항하는 변혁적 이미지의 묵시론적 추상-기계로서 확고한 정치신학적 텍스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45)
42) Anathea Portier-Young, Apocalypse against empire: Theologies of resistance in early Judaism (Grand Rapids: Eerdmans Publishing, 2011). 특히 1장과 7장을 참조하라.
43) Jin Hee Han, Daniel’s Spiel: Apocalyptic Literacy in the Book of Daniel (Lanham, MD: University Press of America, 2008), 8, 39–48, 95–110.
44) 본고가 주장하는 포스트모던 해석학적 관점에서의 요한계시록 이해와 다르기는 하지만, 대부분 의 보수주의 개신교회가 견지하고 있는 세대주의적 종말론의 입장을 해석사와 전승사를 근거로 비판하고 정치적 해석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다음의 연구 역시 참조하라. 신동욱, “천년왕국 (계 20:4-6) 의 정치적 해석의 가능성,” 「신학사상」 174 (2016/가을), 77-111.
45) 묵시록의 반제국주의적 정치신학에 관련해서 다음의 책들을 더 참조하라. Stephen J. Shoemaker, The apocalypse of empire: Imperial eschatology in Late Antiquity and early Islam. (Philadelphia: University of Pennsylvania Press, 2018); John R. Hall, Apocalypse: From antiquity to the empire of modernity (Hoboken, N.J.: John Wiley & Sons, 2013); Leonard L. Thompson, The book of Revelation: Apocalypse and empir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0).
폴 리쾨르는 다양한 담론의 형태를 명제로 변환해야만 얻을 수 있는 단일화된 계시의 개념 대신 다원적이고 다의적이며 유비적인 계시의 개념을 강조하기 위해 우리가 읽는 성경 자체가 예언적 담론, 내러티브 담 론, 규범적 담론, 지혜 담론 등과 같이 다양한 담론의 형태로 존재한다고 말하며, 성서의 계시가 더 이상 획일적이고 단조로운 방식으로 공식화되 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46)
이것은 성경의 특정 담론의 원시적 형태 를 논리적으로 객관화시키고 명제적 차원의 지식으로 옮기는 신학적 작 업을 거부하고 다의적인 계시의 개념을 지지하는 것이다.
최근까지 요한 계시록의 네 가지 해석법을 사용하는 신학자들은, 과거주의와 미래주의 와 역사주의 해석의 경우에 특정 역사적 사건을 일대일로 대응시키며 텍 스트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층위의 창조적 역량을 모든 시대의 독자들이 충분히 활용할 수 없도록 막았고, 이상주의는 그러한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무시간성 혹은 초시간적 영적 원리를 추출해 내고, 그에 따르는 영적 교훈을 독자들이 알아서 적용하도록 제안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여전히 텍스트에 내재한 역사적 층위가 독자들의 마음에 직접적으로 닿 지 않고 선택적 교훈의 문제로 전락하면서 요한계시록 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존재론적 역량이 사라지고 말았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의 텍스트를 특정 역사적 사건에 고정시키지 않으면서도 모든 시대 독자들의 역사적 실존에 직접적으로 호소할 수 있는 ‘변종적 포스트모던 역사주의’ 혹은 ‘혼종적 기관 없는 역사주의’로 접근할 때에라야 ‘추상-기계’로서 요한계시록 텍스트의 존재론적 생기가 신자들의 삶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고동 칠 수 있을 것이다.47)
46) Paul Ricoeur, “Toward a Hermeneutic of the Idea of Revelation.” Harvard Theological Review 70/1-2 (1977/1-4), 1-37.
47) 물론 오늘날 국제 정치 질서가 신냉전의 시대로 급격하게 회귀하고 정치철학적으로는 ‘탈진실’의 시대에 양극화가 가속되는 상황에서 기독교가 인식론적으로 진영 논리에 휩쓸리지 않고, 어떻게 보편적인 예언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또 다른 차원의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 리라 본다. 다음의 논문은 그러한 논의의 적절한 단초를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배세진, “보편을 다시 무대에 올리며, 보편의 상 아래에서 말하기 - ‘탈진실’시대 진리 개념의 포스트-구조 주의적 재구성을 위한 정치철학적 시론,” 「신학과 학문」 26/1 (2024/4), 40-88.
Ⅴ. 나가는 말
오늘날 세계는 여전히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져있고, 세계 기독교인 들은 때로는 가해자로, 때로는 방관자로, 때로는 피해자로 저마다 특수 한 지역적 상황 속에 살아가고 있다.
유사 이래로 짐승들(제국들)의 전성 기가 이어지지 않았던 때는 거의 없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계속되는 바, 이러한 모든 상황에 성서와 요한계시록 텍스트는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앞에 러시아의 그리스도인들과 우크라 이나의 그리스도인들은 각각 서로에게 맞서며 어떤 신앙적 비전과 희망 을 가져야 할까?
트럼프의 재선으로 다시 세계가 요동치고 각국의 이기 주의가 기승을 부리게 될 때, 각국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비 전과 희망을 이야기해야 할까?
중국과 이슬람의 기독교 억압 정책 아래 살아가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성경은 과연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포로기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니엘서가 그러했던 것처럼, 오늘 날 어느 지역에 살아가든 제국의 폭력성 앞에 다양하게 신음하는 세계 각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확실한 희망과 용기와 비전을 줄 수 있는 성서 텍스트는 요한계시록일 것이다.
때문에 요한계시록의 텍스트가 종 말론적 비전과 함성을 다시 외칠 수 있도록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결 박 되어있는 것 같은 요한계시록을 “풀어 놓아 다니게”(요 11:44) 하고자 하는 마음이 이 논문을 쓰게 된 동기였다.
안타깝게도 현재 요한계시록의 주요 해석법으로 제시되는 네 가지 해석법은 모두 한계를 가지고 있다.
과거주의와 미래주의는 요한계시록 의 텍스트를 과거와 미래의 특정 시점으로 제한시켜 놓았고, 역사주의 해석은 매번 동시대의 특정 역사적 사건을 일대일로 고정시켜 해석하는 데 골몰하느며 양치기 소년과 같은 모습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러한 폐해를 벗어나고자 이상주의는 각 텍스트에서 무시간적 교훈을 이끌어내 고 그것을 독자들이 어느 때에든지 역사적 적용을 하자고 제안했지만, 이 경우 텍스트에 내재해있는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복음 시대 전체를 아 우르며 각 시대 속에 살아가는 교회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위로와 희 망과 (저항적) 용기를 주고자 했던 요한계시록 텍스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층위에서의 존재론적 역량은 힘을 잃고 만다.
본고는 이러한 한 계를 극복하고자 모든 시대의 독자가 각각의 동시대적 의미를 언제든지 창조해 내는 개방적이고 비판적인 ‘변종적 포스트모던 역사주의’ 혹은 ‘혼 종적 기관 없는 역사주의’를 제안했다.
이것은 어쩌면 단적으로 텍스트 자체의 주석적 의미에 초점을 맞추는 일차적 해석으로서 이상주의와 독자의 현재의 실존적 상황에 초점을 맞추는 이차적 해석으로서의 역사주의를 통합적으로 융합해 내는 해석법일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엄밀한 일차적 주석을 기반으로 해서 독자들이 각자가 처한 역사적 실존적 영역 에 끊임없이 전통과 대화하며 자기 삶과 텍스트를 함께 뛰놀게 만드는 것이다.
바로 그때 요한계시록 텍스트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 다.
그것은 이미 ‘순교와 증인의 정치학’(스탠리 하우어워스)으로, ‘제국의 폭력에 맞선 예언자적 부르심’(스캇 맥나이트, 코디 매칫)으로, 그리고 ‘페미 니즘 생태주의 운동’(캐서린 켈러)으로 우리 곁에 도래해 있는 것인지도 모 른다.48)
48) Stanley Hauerwas, Approaching the end: eschatological reflections on church, politics, and life (Grand Rapids: Eerdmans Publishing, 2013); McKnight, Scot, and Cody Matchett, Revelation for the Rest of Us: A Prophetic Call to Follow Jesus as a Dissident Disciple (Grand Rapids: Zondervan, 2023); Catherine Keller, Facing Apocalypse: Climate, Democracy and Other Last Chances (New York: Orbis Books, 2021).
하지만 오늘날 요한계시록 텍스트는 여전히 우리에게 더 많은, 더 풍성한, 더 다양한 현존재의 종말론적 비전과 희망을 이끌어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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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초록
오늘날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대표적인 네 가지 방법은 1세기 당시 의 상황에 초점을 맞춰서 해석하는 과거주의 해석(preterism), 종말의 특 수한 시점에 집중하여 해석하는 미래주의 해석(futurism), 역사적 시간과 무관하게 텍스트 내부의 영적 원리를 추출해서 이해하고자 하는 이상주 의 해석(idealism), 요한계시록 전체가 교회의 역사적 개요를 예언적으로 암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역사주의 해석(historicism)이 있다. 이들은 일 차적으로 요한계시록 텍스트가 텍스트 외부의 특정 역사적 시간을 직접 적으로 지시하는지를 인정하는 여부에 따라 이상주의 해석과 나머지 해 석으로 분류되며, 다시 역사적 시간성의 지시 여부를 인정할 경우 그 시 간대를 과거와 미래와 전체 역사 가운데 어떤 범주로 설정할 것인지에 따라서 이차적으로 분류된다. 존 D. 카푸토는 역사적 존재로서 해석자가 처한 현존재의 역사성을 고려하여(하이데거), 저자와 독자의 역사적 지평의 융합을 꿈꾸며(가다머), 텍스트에 대한 일차적 주석적 독해를 넘어 이차적 독해에서 독자의 현재 와 미래로 모험을 감행하는(데리다) 비독단적이고 개방적이며 유연한 약 한 신학으로서의 신시학적(theo-poetics) 해석학을 포스트모던 해석학으 로 제안하였다. 그는 헤겔이 칸트와는 다르게 기독교의 초자연적 신비를 승인하였지만, 여전히 명제적 지식과 개념을 고집하였다고 비판하고, 헤 겔의 이단적 버전으로 ‘변종적 포스트모던 헤겔주의’(variant postmodern Hegelianism) 또는 ‘혼종적 기관 없는 헤겔주의’(hybrid headless Hegelianism)가 사건의 신학(theology of the event)으로서 신시학적 해석학에 적합 하다고 보았다. 본고는 이를 요한계시록 해석법에 적용하여, 모든 시대 의 독자가 각각의 동시대적 의미를 언제든지 창조해 내는 개방적이고 비 판적인 ‘변종적 포스트모던 역사주의’(variant postmodern historicism) 혹은 ‘혼종적 기관 없는 역사주의’(hybrid headless historicism) 해석법을 제 안하였고, 이를 통해 ‘추상-기계’(machine abstraite)로서 요한계시록 텍 스트가 언제든지 각 시대와 지역의 제국주의적 상황에 대항적으로 읽혀 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주제어 포스트모던 해석학, 이상주의 해석, 과거주의 해석, 미래주의 해석, 역사주의 해석
Abstract
An Hermeneutic Reflection on the Four Major Interpretations of Revelation — Focusing on John D. Caputo’s Postmodern Hermeneutics
Bong-Keun Kim (Associate Professor, Korean Literature Department of Global Korean Studies Sahmyook University) There are four main ways of interpreting the book of Revelation today: preterism, which focuses on the context of the first century; futurism, which focuses on a particular point in time in the apocalypse; idealism, which seeks to extract and understand the spiritual principles within the text independent of historical time; and historicism, which considers the entire book of Revelation to be prophetically alluding to the historical outline of the church. These interpretations are categorized into idealism and others based primarily on whether or not the text of Revelation directly indicates historical temporality outside of the text, and secondarily on whether or not, if one accepts the indication of historical temporality, one places that temporality in the past, future, or overall history. John D. Caputo has proposed a postmodern hermeneutic of theo-poetics as a weak theology that starts from the ontological structure of the interpreter as a historical being (Heidegger), dreams of a fusion of the historical horizons of author and reader (Gadamer), but ventures beyond the primary exegetical reading of the text into the reader’s present and future in a secondary reading (Derrida), and is non-dogmatic, open and flexible. He critically asserts that Hegel, unlike Kant, approved of the supernatural mysteries of Christianity, but still insisted on propositional knowledge and concepts, and proposes ‘variant postmodern Hegelianism’ or ‘hybrid headless Hegelianism’, as a theology of the event that is suitable for theo-poetical hermeneutics. Applying this to the hermeneutic of Revelation, this article suggests an open and critical ‘variant postmodern historicism’ or ‘hybrid headless historicism’ hermeneutic that allows readers of all times to create their own contemporary meanings at any given time, so that the text of Revelation as a ‘machine abstrite’ can be read against the imperialist context of each time and place.
Key Word Postmodern Hermeneutic, Preterism, Futurism, Idealism, Historicism)
논문접수일: 2024년 11월 20일 논문수정일: 2024년 12월 16일 논문게재확정일: 2024년 12월 20일
神學思想 207집 · 2024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