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사에 관한 역사 서사의 유형과 갈등/변화에 대한 신학적 연구/황용연.제3세대그리스도연구소
Ⅰ. 서론
짧게 잡아도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 사회에서는 흔히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으로 통칭되는 두 진영 간의 사회적 갈등이 점점 심화되는 양 상이 나타나고 있다(이후로는 진보 진영으로 통칭되는 진영을 리버럴 진영이라 부르기로 한다).
특히 이 두 진영 간의 정권 교체가 몇 차례에 걸쳐 이루어 지고 그 정권 교체 과정에서 두 차례에 걸쳐 대통령 탄핵이 이루어지는 등 상당히 격렬한 상황들이 일어나면서 두 진영 간의 사회적 갈등이 사 회 전방위에 퍼지고 그 정도가 상당히 격렬한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 사회적 갈등의 전개 과정에서 양 진영은 자신들을 정당화하는 서 사를 형성하고, 그 갈등에 참여한 당사자들은 자신이 참여한 진영의 서사를 공유하게 된다.
이 서사는 갈등에 참여한 당사자들의 자기 정당성 의 기반이 되며 또한 상대편과의 갈등에서 하게 되는 언행을 형성하는 기반이 된다.
기존의 리버럴 진영과 보수 진영의 사회적 갈등 양상에서는 각 진영 의 주요 서사가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양 진영의 이해를 중심으로 형성 되는 특징이 나타났다.
2024년 김형석 독립기념관 관장 임명과 관련되 어 이른바 일제 시대 당시의 조선인의 국적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고 이 것이 김형석 관장을 임명한 윤석열 정부에 대한 규탄의 예로 활용되는 것에서 보듯이 양 진영의 역사 서사의 갈등은 양 진영의 전체적 갈등의 주요 표출 지점이 되었다.
양 진영의 서사가 이러한 깊은 갈등에 이르기까지는 다음과 같은 과 정이 있었다. 1)
식민지로부터의 한반도의 근대화 과정이 단일 국민 국가 건설이 아닌 분단과 한국 전쟁으로 귀결된 영향으로, 남한의 공식적 역 사 서사가 북조선을 반역적인 타자로 배제하고 남한을 한반도 근대화의 적자로 주장하는 보수적 민족주의 서사로 형성되었다. 2)
1)에서 언급된 보수적 민족주의 서사의 허점을 특히 남한 건국 및 국가 운영 주도 세력 의 식민지 당시 부역 행위(이른바 ‘친일’로 통칭되는), 건국 과정의 폭력과 학살, 그리고 이후 정권의 독재와 국가 폭력을 중심으로 파헤치면서 이 서사에 기반한 기존의 역사 주체성을 위기로 몰아넣는 비판적 민족주의 서사가 형성되었다. 3)
2)에서 언급된 저항적 민족주의 서사에 대한 반동 으로 기존의 보수적 민족주의 서사를 자본주의 근대성의 성공적 성취라 는 성과에 초점을 맞추어 개편하려는 ‘뉴라이트’로 통칭되는 시도가 있었 다.
이 시도는 이 성취를 남한 건국 및 국가 운영 주도 세력에 귀속시키 면서 이 세력에 가해졌던 ‘친일’이라는 비판을 무마하려는 시도로 이어져 남한 국가서사에 내장된 기존의 민족주의적 속성과의 충돌을 서슴지 않 는 양상을 보였다. 양 진영의 역사 서사의 갈등이 이런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양 진영은 서로의 서사를 남한의 역사적 정통성을 부정하는 서사로 몰아붙이는 프 로퍼갠더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리버럴 진영이 견지하는 비판적 민족주 의 서사의 관점에서는 이미 앞에서 지적한 남한 건국 및 국가 운영 세력 의 ‘친일’과 독재 연루 행적, 특히 이 맥락에서는 ‘친일’ 행적이 문제가 된 다.
그래서 통칭 ‘뉴라이트’적 서사가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을 무마하려 는 시도 자체만으로도 현재에도 그 ‘친일’ 행적을 반복하겠다는 시도로 독해되어 그런 시도가 남한의 역사적 정통성에 대한 부정이라는 프로퍼 갠더가 성립하게 된다.
반면 통칭 ‘뉴라이트’적 시각에서는 비판적 민족 주의 서사의 특히 ‘친일’ 비판은 남한의 자본주의 근대성의 성공적 성취 를 이루어 낸 남한 건국 및 국가 운영 주도 세력의 성과를 부정하여 그 세력에게서 주도권을 뺏고, 자본주의 근대성의 적인 북조선과 타협하여 현재의 대한민국 국가를 부정하는 새로운 국가를 만들겠다는 시도에 지 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지점에서 역시 남한의 역사적 정통성에 대한 부 정이라는 프로퍼갠더가 성립한다.
이 논문의 영역인 신학적 탐구의 영역에서 주목할 점을 보태어 보면, 이러한 양 진영의 역사 서사의 대립 구도에 양 진영 모두에서 그리스도 교, 특히 개신교 인사들의 개입이 상당하다는 점을 주목할 점으로 꼽을 수 있다.
보수 진영의 경우에는 개신교의 주류가 대체로 보수적 성향을 띠고 있고 역사적으로 남한 건국 과정에 미친 영향력이 적지 않기 때문 에 기존의 보수적 민족주의 서사를 익숙하게 받아들이기도 했다.
또한 통칭 ‘뉴라이트’의 등장 이후 이 세력이 주력하는 작업 중 하나인 남한의 건국 과정과 그 주도자인 이승만에 대한 변호 작업에 보수 개신교 인사 들이 학술적/대중적 담론 형성 작업으로 가담하는 경우가 꽤 발견된다.
한편 리버럴 진영의 경우 이 진영이 한국의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상에 있는 위치를 갖고 있기 때문에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거나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인사들의 언행에서 비판적 민 족주의 서사의 영향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리버럴 진영과 보수 진영 양 진영의 역사 서사의 대중적 영향 력이 여전히 지속됨에도 불구하고 이 역사 서사들이 갖고 있는 약점도 존재한다.
우선 학술적 연구가 진전될수록 양 진영 모두의 역사 서사들 의 학술적 결점이 드러난다는 약점이 있다.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역 사 서사의 대립을 포함한 양 진영의 사회적 대립에서 거리가 멀어지는 사람들, 특히 청년 세대들에게는 양 진영 모두의 역사 서사의 설득력 자 체가 약화된다는 약점도 존재한다.
이 논문에서는 2장에서 한국 근현대사에 관한 역사 서사의 유형을 고찰하고, 3장에서는 그 역사 서사들이 개신교 영역에서 전개/변형되는 양상을 고찰한다.
4장에서는 2, 3장에서 살펴본 역사 서사들에 대한 비 판적 고찰을 진행하고 5장에서는 4장의 논의에서 제기되는 신학적 고찰 의 이슈에 대한 논의를 진행한다.
Ⅱ. 한국 근현대사에 관한 역사 서사의 유형
이 논문에서 유형화하여 살펴볼 역사 서사는 보수적 민족주의 서사, 비판적 민족주의 서사, 자본주의의 성취 서사 3가지이다. 이 서사들은 (국정) 한국사 교과서를 통해 국가의 사관으로 공식화되거나, 일정한 대 중적 영향력을 가졌던 서사들이다. 또한 세 서사 모두 민족주의 이슈에 깊이 관련된 서사라는 특성을 공유한다.
1. 보수적 민족주의
이 서사는 남한/북조선 양 정부의 수립과 한국 전쟁으로 인해 남한 과 북조선의 분단이 굳혀진 후 남한의 역사적 서사의 주류를 이루고 국 가 공교육의 핵심을 이루었던 서사이다.
이 서사는 기본적으로 한반도의 근현대사가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해방 후의 미국의 영향 등 외세의 영 향력이 강하게 작용하는 시기였음에도 그 근현대사에서 형성된 한국, 특 히 남한 사회의 근대성은 한국인들 스스로 형성해 내거나 혹은 그럴 가 능성이 충분히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특성을 가진다.
예를 들어 한국 교 육 체제의 근대화는 주로 한국인 스스로 세운 학교들에 의해 수행되었고 그런 학교들은 일제 권력에 의해 탄압받았음을 강조하는 경우 등이다1).
이런 특성에는 외세, 특히 일제 강점기에 진행된 근대적 제도의 성립 과 정을 식민주의적인 수탈의 관점으로만 주로 이해하려는 경향도 수반되는 데, 일제 강점기 초창기의 토지 조사 사업을 통한 지주-소작인 체제의 확립에 대한 견해2)가 그 예이다.
또한 이런 특성에 수반되는 다른 특성을 지적한다면, 근현대사, 특히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각 사회 분야별로 진행된 한국인들의 근대적 활 동을 그 활동 상호 간의 길항 가능성을 보지 않은 채 모두 병렬함으로써 한국의 근대성의 원형을 정립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출간 당 시 남한의 주요 역사 개론서 중 하나였던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을 비롯 한 당시의 역사 개론서들에서는, 실제 역사에서는 갈등과 상호 배척 관 계였던 동학농민운동을 비롯한 각종 대중봉기운동과 독립협회운동이 그 에 대한 아무런 서술 없이 근대적 민족 형성 운동의 각 유형으로 배치되 며, 일제 시기의 한국인 자본가 형성과 한국인 노동운동/농민운동의 형 성 역시 둘 사이의 갈등과 길항의 아무런 서술 없이 일제 강점기의 한국 의 근대성 형성의 각 양상으로 병렬된다.3)
1) 신용하, 『일제 식민지 근대화론 비판』(파주: 문학과지성사, 1998), 43-44.
2) Ibid., 53-70.
3) 이기백, 『한국사신론』(서울: 일조각, 1976), 334-342, 356-361, 416-430; 변태섭, 『한국사통론』(서 울: 삼영사, 1989), 422-430, 440-443, 495-505.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식민 지를 극복한 한국의 독립 국가 수립은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동안 전개 되었던 한국인들의 근대성 형성 활동이 성과를 거둔 것으로 이해된다.
이때, 일제 강점기 내내 이어져 온 한국인들의 근대성 형성 활동을 통해 형성되었다고 상상되는 민족 정통성의 상상적 담지자인 대한민국 임시 정부4)의 정통성을 분단 남한 정부인 대한민국 정부가 단독으로 계 승했다는 서사가 대한민국의 정통성 주장에 핵심 근거가 된다.
특히 이 정통성 주장의 핵심은 분단 남한 정부가 계승했다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 의 정통성’에 반역하는 집단의 위상을 분단 북조선 정부인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정부에 부여하는 것이다.
분단 북조선 정부가 한국 전쟁을 촉발한 것은 이 정통성 주장을 정당화하는 핵심 그거 중의 하나가 된다.
이리하여 특히 한국 전쟁 이후, 보수적 민족주의 서사에서 민족주의 는 남한 국가의 정통성을 뒷받침하는 대중 동원의 주요 수단이 되며, 북 조선은 이 서사에서 반민족적인 타자의 위치를 부여받게 된다.
이러한 반민족적인 타자인 북조선이 일으킨 한국 전쟁의 상처를 극복하고 그 타 자인 북조선이 성취하지 못한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를 성취했다는 것이 보수적 민족주의 서사의 결론이 된다.
물론 여기서도 경제 성장과 민주 주의 사이의 갈등과 길항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어, 앞에서 지적 했던 일제 강점기 시대의 서사에 나타나는 병렬 현상과 비슷한 양상이 나타난다.
짚어 둘 것은 이때 이 서사에서 남한의 민주주의란 남한의 (근 대화) 역사의 주체가 대중이라는 최종적 귀결점으로까지 확장되었다는 의미를 갖게 되며 그 최종적 귀결점으로서의 대중을 지칭하는데 ‘민중’이 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도 한다는 점이다.5)
4) 이런 주장이 가능한 근거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성립을 3.1운동과 그 이후의 임시 정부 수립 운동 의 결과로 해석하는 데에 있다. 한영우, 『미래를 여는 우리 근현대사』(서울: 경세원, 2016), 178-179.
5) 이기백, 『한국사신론』, 456. 주지하다시피 이 주장은 민중신학을 비롯한 1970년대 이후의 민중론 일반에서 민중 주장의 유효성을 주장하는 담론으로 전용되기도 하였다.
2. 비판적 민족주의
비판적 민족주의는 앞에서 다룬 보수적 민족주의의 중심에 놓이는 한국의 근대성의 성립과 남한 정부의 수립이 사실은 민족주의의 입장에 서 보면 바람직하지 않은 측면이 상당히 많다는 회의에서 출발한다.
일 단 민족주의의 입장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해방 후 단일 국가 성립이 실패하여 분단으로 귀결되었다는 점만으로도 회의의 근거가 생긴다.
또 한 보수적 민족주의 서사에서는 이 분단의 책임의 귀결자가 김일성과 북 조선 건국 주도 세력뿐이지만, 그렇게 됨으로써 이승만과 남한 건국 주 도 세력 역시 분단 조건 하에서의 남한 정부의 성립을 획책하고 실현했 다는 점에서 분단에 최소한 동등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보수덕 민 족주의 서사가 누락했다는 점도 회의의 근거가 된다.
또한 보수적 민족주의 서사 내에서 호명되는 각 방면의 근대성의 선 구자들, 그리고 그들 본인이나 그들의 추종자로서 남한 정부의 성립에 참여했던 사람들 상당수가 일제 강점기 식민지 권력에 협력한 경력을 갖 고 있으며6) 많은 경우 그것을 숨겨 왔다는 사실 역시 앞에서 말한 ‘바람 직하지 않은 측면’의 대표적인 예가 된다.
이는 강만길에 의하면 “해방 후 가장 중요한 친일 청산의 과제” 중 하나인 친일 협력자 처벌이 이루어 지지 못한 결정적 원인이 된다.7)
한편, 이러한 결점을 내재하며 진행된 남한 정부의 성립 과정은 서중석에 의하면 일제 강점기의 독립 운동 세 력 상당수를 남한 건국 반대 세력으로 몰아붙였고, 이 중 사회주의 세력 들은 저항하는 봉기를 일으켰으며, 이 봉기들을 기화로 하여 일제 협력 자가 구성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던 경찰과 군대 등의 국가 폭력 기구와 이를 보조하던 사적 폭력 집단은 봉기가 일어난 지역에서 민간인 학살을 저질렀다.8)
6) 김동춘은 이런 인사들 중 상당수가 신생 국가의 정부 기구 운영을 위해서 일제 강점기의 정부 기 구 참여자들이라도 기용해야 한다는 명분에 의해 남한 정부 건국 과정에 참여했음을 지적하고 있 다. 김동춘, 『대한민국은 왜?』(파주: 사계절, 2015), 77.
7) 강만길, 『20세기 우리 역사』(파주: 창비, 2009), 271.
8) 서중석, 『지배자의 국가, 민중의 나라』(파주: 돌베개, 2010), 352-356.
그리고 이 연장선상에서 한국 전쟁 때에도 남한 정부와 그 지지자인 미군이 주도하는 민간인 학살이 상당히 많이 발생했고 그것이 은폐되어 왔다.
이러한 모든 문제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이남희의 표 현을 빌리면 “역사 주체성의 위기”9)를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위기의식에 동의하는 비판적 민족주의의 입장에서는 남한 분단 정부의 수립이 민족 의 역사적 행로를 왜곡한 사건으로 규정되며, 이승만 정부 이후의 박정 희/전두환 군사독재도 그 두 사람의 자의적인 권력 행사 때문만이 아니 라 위에서 살펴본 남한 건국 과정의 폭력성이 불러온 대중과 지배자의 피할 수 없는 괴리와 갈등을 억눌러야 했기 때문이라는 측면이 더 강하 다고 본다.10)
이런 시각에서 보면 해방 후, 특히 한국 전쟁 후의 한미 관 계는 대중과 괴리된 정부가 찾아내야 하는 다른 권력 기반인 외세에의 추종으로 읽히게 된다.
비판적 민족주의의 시각에서 박정희 정부는 앞에서 이야기한 민족의 역사적 행로의 왜곡에서 탈출한 “한국 역사의 올바른 방향으로의 진전”11) 이었던 4.19혁명을 좌절시키고 등장한 군사 독재이자, 보수적 민족주의 가 높이 사는 경제 성장을 시작한 정부라는 점에서 민족의 역사적 행로 의 왜곡을 심화시킨 정부가 된다.
물론 박정희 정부 시기의 경제 성장도 비판적 민족주의의 입장에서는 민족의 역사적 행로의 왜곡이라는 평가에 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러한 평가는 크게 두 가지 내용으로 이루어지는 데, 하나는 이 경제 성장이 대중의 고통을 수반했으며 민족 경제의 종속 성을 심화시켰다는 내용이다.
다른 하나는 경제 성장에 대한 박정희 정 부의 공헌도가 가능한 한 한정되어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다.
전자의 경우 박정희 정부 시기의 경제 성장이 한국 경제의 대외의존 도를 결정적으로 높여 자주적 경제 발전의 길을 차단하고 미국 헤게모니 하의 반공주의에 근거한 분단의 물질적 기초를 마련했다고 평가한다.12)
9) 이남희/유리·이경희 옮김, 『민중 만들기』(서울: 후마니타스, 2015), 27.
10) 강만길, 『20세기 우리 역사』, 297-298, 331.
11) Ibid., 311.
12) 강만길,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서울: 역사비평사, 2000), 344, 350.
한 박정희 정부 시기가 재벌이 정부의 파트너가 되어 한국 경제의 주도권을 결정적으로 장악하는 시기가 되었음을 지적하기도 한다.13)
한편 후자의 경우 박정희 정부 시기 경제 성장의 결정적 요인을 질 좋고 값싼 노동력의 존재, 농지 개혁 성취, 중동 특수, 주요 수출 시장이었던 미국 국내 경제의 당대의 호황 등의 내외부 조건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있으 며,14) 박정희 정부 시기의 경제 성장이 막상 박정희 정부의 애초 주력 분 야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성취되었다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15)
그러나 이 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정부 시기에 시작된 경제 성장이 남한의 국가적 자율성의 기반이 되었음을 부정하지 않는 견해도 존재한다.16)
민족의 역사적 행로가 이렇게 왜곡되었다는 비판적 민족주의의 입장 을 받아들이면, 이를 바로잡는 길은 그 왜곡의 출발점인 분단과 폭력적 인 건국 과정을 바로잡는 통일과 민주주의를 성취하는 것에 있다.
그래 서, 1987년 6월 항쟁, 2000년 6.15 공동 선언, 2016년 박근혜 탄핵 촛불 시위, 2018년 이후의 남북/북미정상회담 등이, 민족의 역사적 행로를 바 로잡는 사건들이 된다.
한 가지 짚어 둘 점은 1972년 7.4 공동 성명이 박 정희 정부에 의해 진행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앞의 ‘바로잡은 사건들’의 목록에 들어간다는 것이다.17)
13) 김동춘, 『대한민국은 왜?』, 248-251.
14) 김영배, “‘경제는 잘 했다’의 오해와 진실,” https://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1312 9.html, 2025.01.30.
15) 박근호/김성칠 옮김, 『박정희 경제신화 해부』(서울: 회화나무, 2017), 371-372.
16) 서중석, 『배반당한 한국민족주의』(서울: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04), 71-72.
17) 강만길, 『20세기 우리 역사』, 341.
위와 같이 논의된 비판적 민족주의 서사의 요소들 가운데 2000년대 이후 리버럴 진영에서 대중적으로 특히 많이 활용된 요소는 ‘친일’이다.
남한 건국 세력의 행적에 대한 비판을 통해 ‘역사 주체성의 위기’를 감지 하게 하는 언어였던 친일은 그 건국 세력의 행보를 계승한다고 인지되는 현재의 보수 진영 전반에 대한 비판의 언어로 확장되어 보수 진영의 과 거에 대한 비판 언어에서 현재에 대한 비판 언어로 속류적으로 확장되어 ‘토착왜구’ 등의 멸칭을 낳았다.
재인 정부 시기의 한일 관계 악화 등은 현재에 대한 비판 언어로서의 효과를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 다.
이는 뒤에서 다룰 뉴라이트 진영과의 역사 전쟁을 이해하는 데 중요 한 요소가 된다.
3. 자본주의의 성취: 뉴라이트
비판적 민족주의로 인해 제기된 역사 주체성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 한 보수 진영의 시도 중에서 특히 ‘뉴라이트’로 통칭되는 시도가 짚어볼 만하다.
뉴라이트의 서사는 기존의 보수적 민족주의의 핵심 서사인 분단 남한 정부가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정통성을 계승한 유일 합법 정부라는 서사를 계승한다.
하지만 기존의 보수적 민족주의가 (북조선 분단 정부라는 결정적 타자를 제외하고) 근대성의 여러 요소들간의 가능한 길항 관계를 뭉 뚱그리는 성향이 있었던 것에 반해서 뉴라이트 측의 시도는 자본주의의 성취라는 특정 요소를 부각시키고, 다른 요소들을 부차화하여 이 자본주 의의 성취를 근거로 한 프라이드의 기반 위에 국가 서사를 구축하려는 명백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뉴라이트 측이 이 자본주의의 성취를 내세 울 수 있었던 배경과 관련하여 뉴라이트의 서사가 등장하던 초기, 민주 화운동 진영이 한국 산업화에 대해 근거없는 붕괴론 혹은 위기론적 전망 만을 펼쳤으며, 한국 자본주의의 역동성과 생명력을 간과했다는 반성18) 이 있었음을 짚어 둘 가치가 있다.
뉴라이트의 서사 안에서는 이 서사의 궁극적 목표인 자본주의의 성 취에 도움이 되는 능력을 준비해 왔다는 주체들이 주역이 되며 그 주체 들의 계보는 구한말의 급진개화파 ― 일제 강점기의 실력양성파 ― 해방 후의 자유민주주의 세력으로 그려진다.19)
18) 이종오 외, “심포지엄: 산업화/민주화 그리고 이후,” 「신학사상」 132 (2006/봄), 12.
19) 남시욱, 『한국 보수세력 연구』(서울: 청미디어, 2001), 95; 이영훈, 『대한민국 역사』(서울: 기파랑, 2013), 146-147.
특히 이 서사의 관점에서 일제 강점기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근대법, 시장 경제, 근대적 테크노크라트 등의 근대적 제도가 처음 도입된 시기라는 의미이며,20) 이로 인해 흔히 이 서사는 자칭타칭 ‘식민지 근대화’ 서사라고 불리기도 한다.
자연히 이 서사는 위에 언급된 계보 중 일제 강점기의 실력양성파와 해방 후 자유 민주주의 세력의 구성원들 상당수가 행했던 일제 식민지 권력에 대한 협 력 문제를 소홀히 하게 되며, 그 협력에 대해 ‘친일’이라는 언어를 사용해 서 진행되는 비판에 대해서 상당히 강경한 반론을 편다.
이러한 점 때문 에 이 서사를 만든 뉴라이트 진영은 종종 비판적 민족주의를 수용한 사 람들에게 ‘새로운 친일파’로 인지되고 이 ‘새로운 친일’이 이 진영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양 인지되는 경우가 많다.
자본주의의 성취 서사를 구축하는 뉴라이트 진영은 해방 후의 남한 의 자유민주주의 체제 선택과 그로 인한 분단 정부 수립이 당시 대중의 성향과 괴리되었던 것임을 대체로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 들은 북조선이 이미 분단 정부 수립을 시작한 상태에서 불가피했던 것이 며 또한 그 시기에 반드시 이루어져야 했던 것이라고 주장한다.21)
물론 그 이유는 그 체제 선택의 결과로 현재의 자본주의의 성취가 가능했다는 점에 있으며, 또한 그 체제 선택의 결과로 이후 민주화의 여지까지 열렸 다고 주장하기도 한다.22)
또한 분단 정부 수립이 최선의 옵션은 아니었 더라도 냉전 체제에서 피하기 힘든 차선의 옵션이었다고도 주장한다.23)
한편, 뉴라이트 서사에서 는, 체제 선택/분단 정부 수립과 대중의 괴 리가 상당히 많은 민간인 학살을 초래하는 구조적 요인이 되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 민간인 학살들에 대한 진상규명의 필요성에 동의한다.24)
20) 이영훈, 『대한민국 이야기』(서울: 기파랑, 2007), 173-179.
21) 이영훈, 『대한민국 역사』, 115
22) 유영익, “대한민국 발전의 비결,” 이인호·김영호·강규형 편, 『대한민국 건국의 재인식』(서울: 기파 랑, 2009), 389-390.
23) 김일영, 『건국과 부국』(서울: 생각의나무, 2004), 78.
그 러나 그러면서도 그 사건들의 궁극적인 책임은 북조선 분단 정부 및 그 추종자들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은 여전히 유지하며,25) 동시에 그러 한 학살 사건을 근대 국민 국가 일반의 형성 과정의 폭력으로 치부해 버 리려는 경향을 노출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국가 건설을 이룩한 다음 단계는 뉴라이트의 서 사에 의하면 경제 건설과 민주주의 성취가 된다.
경제 건설에 대한 뉴라 이트의 입장은 당대의 박정희의 경제정책이 상당히 효율적인 동원을 이 룩한 것이 경제 건설의 중요 요인이었다는 것이며, 당대적 지평에서 박 정희 외에 그 요인에 대한 대안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26)
또한 이 경제 건설 과정에서 형성된 중산층이 이후 민주화를 이룩하는 주된 요인 중 하나였다는 지적도 잊지 않는다.
물론 뉴라이트 측이 민주화에 대한 사회운동 세력의 공헌을 명시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으나, 그 사회운동 세 력의 상당 부분이 사회주의에 경도되어 있었다는 지적도 함께 하고 있 다.
이리하여 건국-경제 건설-민주화의 3단계로 마무리되는 뉴라이트 의 서사27)에서, 남한은 빠른 민주화와 빠른 산업화를 동시에 달성한 국 가로 그려진다.28)
24) 이영훈, 『대한민국 역사』, 45
25) Ibid., 135, 168.
26) Ibid., 377-378.
27) Ibid., 44.
28) 김세중, “대한민국의 빠른 민주화,” 김영호 편, 『대한민국 건국 60년의 재인식』(서울: 기파랑, 2008), 227.
이때 ‘빠른’의 의미는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신생 국가 의 역사를 비교할 때, 한국의 민주화와 산업화의 속도가 상당히 빠른 편 에 속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비판적 민족주의 서사에 관해 다룰 때 언급한 대로 비판적 민 족주의 서사에서 ‘친일’이 보수 진영의 과거에 대한 비판 언어에서 현재 에 대한 비판 언어로 변화함에 따라 뉴라이트 진영에서도 ‘친일’ 언어에 대한 반박의 비중과 강도가 높아졌다.
특히 문재인 정부 시기의 한일관 계 악화 이후 그 강도는 극단화되어 이른바 ‘반일 종족주의’라는 언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Ⅲ. 개신교 영역에서의 근현대사 역사 서사의 양상과 변형
1. 보수적 개신교 영역에서의 역사 서사의 전개와 변화
보수적 개신교는 잘 알려진 대로 해방 직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개 신교인들이 적극 관여한 것은 물론 제도적 차원에서도 적극적으로 정부 수립을 지원했다.
윤정란의 연구에 의하면 자본주의 근대성 확립 추구에 적극적이었던 서북 지역 개신교인들이 해방 후 월남하여 한국 전쟁 때 개신교의 국제적 통로를 통해 들어온 구호물자를 독점하면서29) 한국 개 신교의 교권과 국제적 협력 관계의 주도권까지 잡게 되었다.30
그리고 이들을 비롯한 한국 개신교인들은 1950년대 중후반 이후 민주주의 실천 과 사회적 빈곤 제거를 통한 승공 담론을 적극적으로 펼치게 되며 이 승 공의 관점에서 민주주의 실천에서 문제를 보인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리 는 4.19와, 4.19 이후 사회적인 반공 성향 약화에 대응하여 일어난 5.16 을 모두 지지하는 양상을 보였다.31)
29) 윤정란, 『한국 전쟁과 기독교』(파주: 한울, 2015), 17-18.
30) Ibid., 160-162.
31) Ibid., 280-281, 286-294.
이러한 역사적 경로를 밟아 온 한국의 보수적 개신교는 자연히 보수 적 민족주의 성향의 역사 서사를 그대로 가져왔는데, 그로 인해 2010년 대 이후 보수 진영 역사 서사의 뉴라이트적 변화에도 역시 그대로 동조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들이 이러한 동조 성향을 드러내는 구실로 많이 행하는 언행 중 하나는 2000년대 이후의 한국사 관련 공식 담론에 서 개신교의 역할이 푸대접 받아왔다는 언행이다.
그런 공식 담론에서 개신교 이외의 다른 종교에 대한 서술은 분량도 늘고 긍정적 어조인데 개신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언행의 연장선상에서 이러한 경향 의 담론 중에는 박근혜 정부의 국사 교과서 국정화 정책에 찬성했던 경 우까지 발견된다.
뉴라이트 경향의 역사 담론이 특히 집중하는 지점 중 하나가 해방 전 후사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며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이승만에 대한 고 평가가 이루어지게 되는데 개신교 우파의 역사 담론들도 이 점을 공유한 다.
특히 이승만이 개신교 신자이며 개신교 신자들이 대한민국 정부 수 립에 많이 참여했다는 점 때문에 개신교 우파적 담론에서는 대한민국 정 부 수립을 기독교 친화적인 의미를 담아 해석하려는 경향이 눈에 띈다.
이러한 경향이 대중적 담론 차원에서 나타날 때는 아예 뉴라이트 경향의 역사 담론이 강조하는 문명 용어를 “문명=기독교적 문명”이라는 의미로 전유하여 대한민국에 “기독교 국가로서의 사명”을 부여하는 경우까지 발 견된다.
예를 들어 개신교 우파 학생 단체를 표방하며 활동하는 트루스 포럼의 유튜브에는 “자유민주주의는 기독교의 선물”이라고 주장하는 영 상이 올라와 있다.
이로 인해 현재 벌어지는 역사 서사의 갈등을 두고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체제를 지켜야 하는 영적 전쟁”32)이라고까지 의미 부여를 하는 경우도 있다.
32) 우도환, 『교회가 알아야 할 대한민국 건국사』(파주: 비전드림, 2020), 6.
이런 현상은 보수적 역사 서사의 수용을 넘어, 종교적 지평에서의 서사의 의미 변화까지 이루어진 경우라고 할 것이다.
또한 뉴라이트 경향으로 해석된 자본주의적 문명 용어를 개신교 우 파가 수용할 때 그 수용은 역사 해석의 측면에만 그치지 않고 당대적 현 실에 대한 해석에도 적용된다.
이때 반공주의 경향(반자본주의를 반문명과 동일시하는)이 많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연장선상에서 능력주 의 경향도 함께 나타나고 있다.
그리하여 현재 한국의 우파 개신교가 가 장 활발히 펼치는 사회운동인 차별금지법 반대 운동에 대해서, 차별 금 지를 능력 있는 인재를 뽑는 데 대한 제약으로 해석하여 차별 금지법 반 대 운동을 찬성하는 논리를 펴기도 한다.33)
33) 황지현, “이 시대 이기는 무기는 거룩함과 의로움,”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174 24, 2025.1.30.
2. 비판적 민족주의 역사 서사에 대한 기독교 영역의 수용
비판적 민족주의 역사 서사의 성립 과정은 한국 사회의 민주화운동 과정과 그 궤를 같이 한다.
한국 개신교 사회운동은 한국 사회의 민주화 운동과 보조를 맞추며 형성되면서 비판적 민족주의 역사 서사를 자신의 것으로 수용했다.
그 수용의 영향력 하에서 비판적 민족주의 서사가 꽤 긴 시간 견지했던, 한국 사회를 예속자본주의 사회로 보는 견해를 개신교 사회운동 역시 수용하기도 했다.34)
원래 개신교 영역에서의 민족주의의 영향력은 1960년대 한경직 등 의 친정부적 입장의 개신교 인사들까지 한일 협정 반대 운동에 참여했던 예 등에서도 잘 드러나지만, 특히 개신교 사회운동은 통일 운동 분야에 서 업적을 쌓으면서 비판적 민족주의 서사의 설득력을 더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문익환의 “민주는 민중의 부활이요, 통일은 민족의 부활이 다”35)라는 주장은 비판적 민족주의 서사의 핵심 요인인 역사 주체성의 위기를 그리스도교적 용어를 통해서 그리스도교 내부 담론으로 만들어낸 예라고 할 것이다.
34) 고재식 외, “심포지엄: 한국 사회의 자주화와 그리스도교의 과제,” 「신학사상」 60 (1988/봄), 95.
35) 문익환, 『하나가 된다는 것은 더욱 커지는 일입니다』(서울: 삼민사, 1991), 112.
한편 앞에서 본 것처럼 비판적 민족주의 역사 서사 내에서는 2000년 이후 대중적 차원에서 역사 서사 안의 여러 요소 중 ‘친일’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세를 띠는 방향으로의 전환이 일어났는데, 이는 ‘친일’이 가장 대중적인 감정을 많이 불러일으키는 요소 중 하나인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감정의 차원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기 때문에 이 ‘친일’이라는 말은 보수 진영에 대한 비방어로 사용되는 경향이 상당히 강한데, 개신 교 영역에서도 이러한 경향과 용법이 그리 완화되지 않고 사용되고 있 다.
다음과 같은 진술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바른 역사의식이 현재와 미래를 향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정 권(이명박 정부)이 뒷받침받고 있는 식민지 근대화론 같은 일제 식민 주의 사관은 하루속히 청산해야 한다. 열린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세 계사적 거시 안목을 확보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의 완전한 해방 독 립은 통일 조국이 이뤄질 때임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36)
36) 이만열,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이』(서울: 동연, 2021), 29.
Ⅳ. 보수/리버럴 진영의 역사 서사들에 대한 비평
1. 대립하는 양 진영의 합의된 기반 : 대한민국
위에서 소개한 보수적 민족주의, 비판적 민족주의, 자본주의의 성취 라는 세 가지 서사는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보수 진영과 리버럴 진영의 역사 갈등을 표출하며 그 서사 안에서 양 진영은 서로를 ‘반대한민국적’ 존재로 몰아붙이는 근거를 찾는다.
그런데 여기서 서로를 ‘반대한민국적’ 이라는 말로 몰아붙인다는 점을 다시 환기해 보자.
뉴라이트 서사를 구축하는 인사들의 초기 주장 중 가장 논란이 되었 던 것이 이른바 “건국절” 주장이다.
1945년 일제의 권력이 (상징적으로) 무효화된 날이라는 의미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는 날(로 주장되는)이라는 의미가 공존하여 광복절로 지정되어 있는 8월 15일을 후 자의 의미만을 취하여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1948년 건국되었음을 기 념하는 건국절로 바꾸어 지정하자는 주장이었다.
이 주장에 대한 비판적 민족주의 진영의 반론은 주로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을 1948년이 아니라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는 1919년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위와 같은 반론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대한민 국이 대한민국 임시 정부와 연속적인 존재라는 전제와,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일제 강점기의 해방운동의 정통성을 독점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전 제가 모두 성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이 전제들 자체의 역사적 신빙성 이 오늘날 점점 약화되고 있다는 것은 제쳐 두더라도 이 전제들이 앞에 서도 살펴보았듯이 보수적 민족주의/자본주의의 성취라는 보수 진영의 두 역사 서사 모두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이런 서사들에서도 핵심 출발 점의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한마디로 말해 극심한 대립 관계라는 보수 진영/리버럴 진영 모두, 현재의 대한민국만이 한반 도 내에서 유일하게 정당한 역사적 자격을 갖춘 국가라는 점에는 능동적 으로 합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를 들어 이런 일이 벌어진다.
사건의 전개 과정 중에 명백 하게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대한 저항 운동이 들어 있었던 제주도 4.3사 건의 경우, 보수적 민족주의 서사 안에서는 반역 사건의 위치에 놓이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리버럴 진영은 이 사건의 민간인 희생자들에 초점 을 맞추어 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방식으로 4.3 사건 관련자들의 명예 를 회복하려 했다.
그러나 이는 4.3사건 내에 존재했던 저항에 대해서는 봉합하겠다는 것이며 이 봉합은 보수 진영 중의 일부에 의해 “추모해야 할 희생자”가 맞는지 아닌지를 가리겠다는 반동의 빌미로 이용되고 있 다.
한편 보수 진영과 리버럴 진영의 세 가지 서사들은 모두 남한의 산업 화와 민주화라는 두 가지 성취를 긍정하는 입장을 취한다.
앞에서 본 것 처럼 이 세 가지 서사들 모두 현재의 대한민국만이 정당한 역사적 주체 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므로 이런 긍정은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 데 이 두 가지 성취에 대해서 이 세 가지 서사들이 보수 진영/리버럴 진 영으로 갈라져서 취하는 입장을 살펴보면 묘한 엇갈림이 발견된다.
다음 표는 양 진영의 입장을 도식화한 것이다.
<표> 산업화와 민주화의 요인에 대한 보수 진영과 리버럴 진영의 입장
산업화 민주화
주체적 요인 박정희 정부의 리더십 사회운동의 저항
객관적 요인 우수한 노동력, 수출의 주력인 자유민주주의 체제 선택과 제도의 마련
미국 시장의 호황, 일본의 지식과 경제 성장에 따른 중산층의 형성
기술 도입에 유리
이 표는 보수 진영/리버럴 진영 양 진영이 주장하는 산업화와 민주 화의 주체적 요인과 객관적 요인을 종합한 표인데, 이탤릭체로 쓴 부분 은 보수 진영이 주로 강조하는 요인이고, 평문체로 쓴 부분은 리버럴 진 영이 주로 강조하는 요인이다.
보수 진영은 산업화에 대해서는 주체적 요인을, 민주화에 대해서는 객관적 요인을 주로 강조하고, 리버럴 진영 은 산업화에 대해서는 객관적 요인을, 민주화에 대해서는 주관적 요인을 주로 강조하는 엇갈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즉, 보수 진영과 리버럴 진 영이 서로 주체적 요인과 객관적 요인 중 자신들의 입장에 더 맞는 부분 을 강조하다 보니 이런 엇갈림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런 엇갈림 현상은 보수 진영과 리버럴 진영 모두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가지 성 취를 긍정하는 것을 넘어, 그 두 가지 성취를 모두 자신들의 것으로 독점 적으로 전유하려는 욕망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2. 보수 진영과 리버럴 진영
각각에 대한 비판 앞에서 살펴본 현재의 대한민국에 대한 유일하게 정당한 역사적 주 체라는 긍정과 그 대한민국의 성과라는 산업화와 민주화에 대한 독점 욕 망 외에도, 보수 진영과 리버럴 진영의 서사는 각각의 문제점을 갖고 있 으며 이 문제점 중에는 저 독점 욕망의 실현과도 연관되는 점들도 있다.
먼저 보수 진영의 서사는 보수적 민족주의 서사든 자본주의의 성취 서사 든 특히 경제 발전과 자본주의 성취라는 결과로 과거의 문제점들을 정당 화하거나 최소한 변명하려는 서사라는 특징을 가진다.
이러한 정당화와 변명의 결과로 보수 진영의 서사 내의 자유민주주의는 사실상 대중과 괴 리된 채로 출발하고서도 자신을 자유‘민주주의’라고 주장하는 아이러니 한 상을 갖게 되며, 이 아이러니는 그 후에도 자유민주주의가 대중의 삶 과 끊임없이 겉도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 겉도는 자리에 대신 남는 것 은 사실상 보수 진영의 자기 선언, 그것도 상당 부분 자신만이 자유민주 주의 세력이라는 극단적 자기 선언이며, 이는 주지하듯이 최근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이라는 형태로까지 나타난 바 있다.
한편 비판적 민족주의 서사의 경우, 민족이라는 거대 주체로 포섭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상당히 급진적인 경우도 있으며 그 대표적인 이슈인 통일 이슈에서는 현재의 대한민국에 대한 긍정을 일정 부분 포기 하는 경우까지도 존재했다, 그러나 민족 문제로 포섭하기 어려운 문제들 에는 약점을 노출하여 페미니즘/소수자 운동 등과 끊임없이 갈등을 빚는 경향이 있다.
또한 역사 속의 대중(의 저항)의 구체적인 양상을 생략하고 민주주의라는 명분으로 뭉뚱그리려 하는 경향도 존재하는데, 이는 앞에 서 지적한 산업화와 민주화의 가치를 독점하겠다는 욕망과도 관련이 있 다.
이와 관련해 살펴볼 가치가 있는 양상이 소위 5.18 당시 북조선군 침 투설을 둘러싼 양상인데, 이 침투설을 반박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든 감독 에 의하면 저런 침투설이 나올 수 있었던 빌미는 ‘민주화운동’이라는 이 미지가 저 침투설에 의해 북조선군이라고 악선전이 이루어진 총으로 무장한 사람의 이미지를 포괄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이는 ‘민주화운동’이라 는 이미지 자체의 형성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필요로 한다.
또한 이 다큐멘 터리의 주요 소재가 된 ‘김군’은 제작 과정에서 당시 수용 시설에 있던 도 시 빈민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적되었는데, 이 역시 당시의 사회상 과 저항의 양상 중 일부가 민주화운동이라는 이미지 형성 과정에서 배제 된 징후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윤석열 정부 탄핵 국면에서 제기된 다음과 같은 지적 역시 대중의 저항의 구체적인 양상을 민주주의라는 명분으로 뭉뚱그린다는 지적과 상통한다.
광장 스펙터클은 권력을 위한 이미지로 쉽게 도구가 되고, 소수자들 의 정치는 그들이 이용할 수 있는 광장 스펙터클 안에서 기능할 때만 칭찬받는다. 지난 박근혜 퇴진 집회가 더불어민주당을 위한 이미지 로 재차 반복되어 사용됐음에도, 박근혜 퇴진 집회 당시 함께 했던 다양한 소수자들의 정치적 요구는 더불어민주당이 집권하는 내내 제 대로 실현된 적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37)
역사 서사에 대한 이러한 비평을 더 깊이 살펴보기 위해서 천꽝싱의 동아시아 탈식민주의에 관한 논의를 살펴볼 수 있다.
그는 탈식민운동은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을 피식민/식민 이후 사회의 민족주의로 손쉽게 수 렴시켜서 당위를 부여받은 거대 주체를 건설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운동 이어서는 안 되며, 피식민/후기 식민 사회 내부에서 타자의 위치에 놓이 는 소수자들이 “서로 동일시하기”의 과정을 겪음으로서 스스로의 역량을 키우는 비판적 혼합주의가 탈식민운동의 내용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38).
37) 연혜원, “[여성논단] 광장 스펙터클에 저항하기,” 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 ew.html?idxno=256183, 2025.1.30.
38) 천꽝싱, 『제국의 눈』(파주: 창비, 2003), 153-154.
천꽝싱은 또한 동아시아에 깊이 개입해 있는 미국과, 그 결과로 한국과 중국에 빚어진 분단 등을 감안할 때, 동아시아의 탈식민운동은 탈냉전이 라는 요소와 함께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39)
그런데 이 탈냉전이라는 요소를 깊이 살펴보면 동아시아에서의 미국 의 개입은 미국에 대한 선망을 낳기도 하기 때문에 그 선망을 어떻게 극 복할 것인가의 이슈도 사유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40)
특히 이러한 선망 은 식민 이후 사회에 존재하는 내부 균열의 상층부에 위치하는 세력이 제국과 얽히는 포인트이며 동시에 하층부까지 영향을 미치는 포인트이기 도 하다.
따라서 이 지점에서 탈제국이라는 이슈가 제기되며 탈냉전으로 확장된 탈식민 운동은 탈제국으로까지 확장되어야 한다41).
39) 천꽝싱, 『제국의 눈』, 189; 천꽝싱, “세계화와 탈제국, ‘방법으로서의 아시아’,” 이정훈·박상수 편, 『동아시아, 인식지평과 실천공간』(서울: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출판부, 2010), 95.
40) 천꽝싱은 타이완이 대륙으로부터의 “자유”와 “안전”을 얻기 위해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타이완 지식인 모임 [Club 51]의 예를 든다. 천에 의하면 이 “자유”와 “안전” 은 타이완 독립론의 본질이기도 하며 [Club 51]의 주장은 곧 타이완 독립론이라는 국민 국가 건 설/유지의 주장이 미국의 제국적 개입과 떨어질 수 없음을 폭로하는 예가 된다. Kuan-hsing Chen, Asia as Method: Toward Deimperialization (Durham and London: Duke University Press, 2010), 162-163.
41) 천꽝싱, “세계화와 탈제국, ‘방법으로서의 아시아’,” 89.
천꽝싱의 이러한 주장을 참조해서 우선 보수 진영의 역사 서사들을 살펴보면, 보수적 민족주의와 뉴라이트적인 자본주의의 성취 서사 등 보 수 진영의 역사 서사들, 특히 뉴라이트 역사 서사는 자본주의 경제 성장 과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물신화함으로써 이 가치들이 대중의 삶과 끊 임없이 괴리된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었음을 대중과 괴리된 채로 출발한 자유‘민주주의’라는 아이러니에서 본 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가치들이 물신화될 수 있는 이유는 결국 이 가치들이 근대화된 선진국들 의 가치, 특히 대한민국의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미국이 주장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탈식민-탈제국의 문제가 나오게 되며 그 괴리의 결과가 낳은 건국 시기 민간인 학살 등의 문제는 탈냉전 문제의 직접적인 예가 된다.
한국 전쟁 이후 보수 진영이 주도하여 정치 이데올 로기 차원의 반공주의와 경제적 차원의 미국 경제권 편승 등으로 기반을 쌓아온 남한 사회의 존재 방식도 탈냉전 이슈와 긴밀히 연관된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리버럴 진영의 비판적 민족주의 서사를 같은 참조점을 통해 살펴보면 비판적 민족주의 서사는 민족이라는 거대 주체 구축에 주력하 는 속성을 갖는데, 이는 천꽝싱의 입장에서는 직접적인 탈식민적 비평의 대상이 된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이 서사가 민족이라는 지평 외에서 종 종 약점을 노출한다는 점과 민주주의라는 명분이 대중의 삶을 생략하고 뭉뚱그리는 경우가 많다는 약점 등은 천꽝싱의 비판을 적용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다.
또한 앞에서 본 것처럼 리버럴 진영의 역사 서사도 산 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가지 성취를 독점하려는 욕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시선에서 산업화-민주화라는 가치와 제국적 가치의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게 되므로 탈식민-탈제국적인 비평이 필요하게 된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전제하고 윤석열 정부의 행보를 살펴볼 때 다음 과 같은 비평이 가능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주요 행보 중 하나는 리버 럴 진영의 이전 정부의 행보를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앞에서 제국적 가 치라고 지적한)에서의 심각한 이탈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시정한다는 명분 으로 남한의 국제적 입장을 ‘가치 외교’라는 명분 하에 저러한 제국적 가 치의 수행자라는 미국과 일본의 입장에 더 크게 동조화하려는 것이었다.
이 동조화 과정에서 특히 일본의 입장에 대한 동조화에 대해 리버럴 진 영은 앞에서 살펴본 ‘친일’(보수 진영의 현재를 비판하는 언어로 전화된)이란 언어로 주로 비판했다.
또한 미국/일본과 중국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남한 외교를 미/일 편중으로 일관해 국익에 큰 문제를 초래했다며 비상 계엄 이후 윤석열 탄핵 사유서에 탄핵 사유 중 하나로 공식화하려는 시 도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때 ‘친일’이나 미/일 편중 등의 비판 언어에 서 드러나는 뉘앙스는 그렇게 함으로써 남한이 미국/일본에 의해서 침탈 을 당할 것이라는 뉘앙스에 가까우며 이런 비판이 대중적으로 전유될 때 ‘매국노’ 등등의 언어가 종종 등장하기도 했다.
앞에서 언급한, 윤석열 정 부의 외교 정책 자체를 탄핵의 사유 중 하나로 공식화하려는 시도는 이 러한 행태의 연장선상에서 가능한 것이었을 터다.
즉, 비판적 민족주의 서사가 이미 제국적 권력의 주변부 중 상층부의 위치에 다다른 남한의 제국적 조건을 망각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는 다 시 그 제국적 조건에 대한 반성을 막고 있는 상황이라는 탈식민-탈제국 적 비평이 가능하게 된다.
지금까지 전개된 비판 이외에, 보수/리버럴 진영 대립과 역사 서사 의 대립 구도의 기본 조건에 관한 또 다른 비판도 가능하다.
이 비판을 위해서 이 논문을 위한 연구 과정에서 진행된 피드백 중 하나를 짚어볼 가치가 있다.
이 피드백을 한 사람은 20대 후반 여성이었는데, 연구 과정 에서 다룬 역사 서사들에 대해서 이런 역사 서사들이 자신의 언어로는 이해하기 어려우며 자기 또래의 경우에는 이런 서사들이 사회를 바라보 는 관점이나 사회에 대한 정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역사관, 역사 서 사는 아닐 것 같다는 피드백을 주었다.
이 피드백은 이 논문에서 다루는 역사 서사들의 갈등과 변화의 영향력이 특정 세대 또는 특정 경향의 사 람들에게 한정된 것일 가능성을 시사하며, 동시에 현재의 사회 갈등의 주 요인 중 하나가 이러한 역사 서사의 영향력을 받는 사람들에게 사회 적 권력이 편중되어 있기 때문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따라서 기존의 역 사 서사 외의 다른 내용의 역사 서사의 필요성이나 역사 서사 외의 다른 방식의 서사의 필요성을 시사하기도 한다.
Ⅴ. 역사 서사들의 갈등과 합의 구도에 관한 신학적 논의
역사 서사들의 갈등 구도에 대한 지금까지의 논의로 미루어 볼 때 이 구도의 초점에 놓여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신학적 논의의 대 상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자체를 신학적 논의의 대상에 올린다고 할 때, 이 구도의 초점에 놓여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신학적 논의의 대 상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자체를 신학적 논의의 대상에 올린다고 할 때, 짚어봐야 할 지점은 대략 다음과 같다.
1) 대한민국 국가의 성립 기반의 본질이 폭력이라는 점
2) 대한민국 국가의 80년 존속으로 인해 이 국가가 남한 지역 인민 의 1차적 존재 조건 중 하나가 되었다는 점
3) 산업화와 민주화 등이 성과로 제시되는 점에서 보듯 남한 지역 인 민의 존재 조건으로서의 대한민국은 인민들에게 부분적으로라도 존재의 만족감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
4) 역사 서사가 대한민국의 존재 방식에 대한 성찰이 되기보다는 대 한민국의 현재에 대한 만족감을 더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는 점
1)에서 4)까지의 짚어볼 지점을 종합하면 남한 지역 인민의 1차적 존 재 조건으로서의 대한민국이 내장하고 있는 폭력을 다룰 신학적 필요가 생긴다.
1차적 존재 조건이 내장하고 있는 문제를 다룰만한 신학적 용어 로 ‘원죄’를 들 수 있겠다.
일반적으로 원죄는 인간의 모든 구체적 조건이 생략된 상태를 상정하고 사용하는 용어지만, 이 용어의 용법을 구체적 조건(이 경우에는 대한민국)을 상정하고 그 구체적 조건에서의 원죄가 무엇 인지를 묻는 용법으로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원죄 용어의 용법을 이렇게 확장하면 대한민국은 성립 과정에서의 폭력이라는 원죄 위에 존재하고 있으며, 이는 대한민국을 존재 조건 중 의 하나로 삼고 있는 남한 인민들 역시 그 원죄와 연루되어 있다는 진술 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산업화와 민주화가 성과로 제시되고 앞에 서 본 것처럼 진영 간의 독점 싸움의 대상까지 되는 양상은 이 원죄에 대 한 은폐가 존재한다는 징후로 해석될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4.3 사건에 대한 담론 해석의 양상은 그러한 징후 중의 하나의 예가 될 것이다.
원죄인 폭력과 그에 대한 은폐가 존재한다면 그로 인해 다른 폭력이 재생산되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이다.
이 점에 비추어 대한민국의 성과로 제시되는 민주화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다음과 같은 진술도 가능하다.
즉 대한민국에서 계속 재생산되는 폭력 중에서 민주화에 의해 어떤 폭력 은 폭로, 저항, 그로 인한 감소의 대상이 되지만, 같은 민주화 조건 하에 서 또 다른 폭력은 그 폭력으로 인한 배제의 효과를 발휘하고 있으며 경 우에 따라서는 전자의 폭력의 감소가 후자의 폭력이 증가하는 조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폭력의 조건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민주화 담론의 기속력을 넘어서는 신학적 담론이 전개될 필요가 있다.
이 지점에서 흥미롭게 살펴볼 수 있는 담론이 일반적으로 기존의 민 주화 담론과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 민중신학의 담 론이다.
민중신학의 최초의 공식적 문헌으로 인지되는, 1975년에 발표된 안병무의 “민족, 민중, 교회”와 서남동의 “민중의 신학에 대하여”는 민족 과 민중의 구별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으며, 이 당시 에는 이 민족과 민중의 구별은 민족을 내세우는 정권이 오히려 그 민족 의 실체가 되어야 하는 민중을 탄압한다는 폭로의 언어로 기능했다.
이 민족과 민중의 구별을 지금까지 논의해 온 역사 서사에 대한 비판적 고 찰과 연결시키면 다음과 같은 진술이 가능하다.
즉 현재의 대한민국이 비록 분단 조건에서 출발할 당시에는 민족과 동일시될 수 없었긴 했으 나, 80년의 존재 역사를 통해 민족과 상당 부분의 동일시를 성취했다고 본다면 지금의 민족의 자리에는 앞에서 살펴본 대한민국의 현재를 긍정 하고 산업화와 민주화 등의 성과를 독점하려 하는 욕망을 보이는 역사 서사들이 배정될 수 있고, 민중의 자리는 이러한 역사 서사들이 은폐하 는 지속적인 폭력과 그에 대한 대응의 자리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민중의 자리에서 가능한 서사의 예를 장애인운동을 통해 살 펴볼 수 있다.
필자의 다른 논문에서 지적했던 대로,42) 장애인운동은 억 울하게 죽임당하거나 혹은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죽 음을 택한 사람들을 열사라는 이름을 붙여 기억해 온 한국 사회운동의 기억의 방법을 지금도 견지하는 흔하지 않은 운동 중의 하나이다.
42) 황용연, “해명과 포섭을 넘어서는 장애신학 - 장애학의 관점을 수용한 민중신학적 장애신학에 관 한 연구,” 「신학사상」 200 (2023/봄), 351-352.
그런 데 장애인운동의 열사에 대한 기억은 그 열사의 삶의 밝은 측면뿐만 아 니라 어두운 측면까지 모두 기억하며 그 기억 안에 그 열사의 삶과 죽음 의 구조와 지금의 장애인들의 삶의 구조가 이어지는 측면을 담아낸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 주는 언술 중 하나가 장애운 동의 이론가 중 한 명인 고병권이 장애인 열사를 사후(死後)의 삶을 살아 가는 사람43)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민중신학의 민중사회전기 용어는 민중으로 지칭될 수 있는 한 사람 의 삶 속에서 민중이 공통으로 맞는 운명을 읽어 내는 것을 민중신학의 방법론으로 삼자는 의미로 쓰이는 용어이다.
그래서 초기 민중신학자 중 한 사람인 김용복이 처음 천명한44) 이 용어는 다른 한 초기 민중신학자 인 안병무에게서는 복음서를 예수라는 한 사람의 삶 속에서 그 시대의 오클로스가 공통으로 맞는 운명을 읽어 내는 민중사회전기로 읽어 내는 것45)으로 전용된다.
43) 고병권, 『묵묵』(파주: 돌베개, 2018), 151.
44) 대표적인 문헌으로는 다음 논문 참조. 김용복, “민중의 사회전기와 신학,” 「신학사상」 24 (1979/ 봄), 58-77.
45) 안병무, 『민중신학이야기』(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0), 287-314.
이 점에 주목한다면 장애인운동의 열사에 대한 기억 전승 방법은 ‘장애사회전기’라는 용어로 지칭할 수 있을 것이다.
‘장애사회전기’라는 관점을 취했을 때 이 장애사회전기는 비단 열사 의 이야기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장애인 열사를 다룬 『유언을 만난 세 계』 이후 장애인 활동가를 다룬 『전사들의 노래』가 출간되었고 이후 비장 애인 장애운동가를 다룬 책까지 출판될 계획인데, 이 모두가 장애사회전 기가 될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을 점은 이 장애사회전기는 열사, 장 애인 활동가, 비장애인 장애운동가들의 삶을 모두 포괄하는 어떤 보편성 을 뽑아내는 시도라기보다, 그 모든 사람들의 삶의 개별적인 서사를 통해 장애인들이 공통으로 맞는 운명의 보편성이 더 넓어지도록 작동하는 시도라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됨으로써 민중사 회전기는 장애사회전기로 전용되며 동시에 장애사회전기는 민중사회전 기의 바람직한 한 가지 작동 구조를 보여 주게 된다.
Ⅵ. 결론
이 논문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1) 한국 사회의 보수 진영과 리버럴 진영은 보수적 민족주의/자본주 의의 성취 서사와 비판적 민족주의 서사라는 각각의 역사 서사를 갖고 있으며 이 역사 서사들이 민족주의라는 지점에서 격렬한 갈등을 빚고 있 고 이 지점에서 약점을 노출한 보수 진영의 역사 서사는 민족주의 요소 를 자본주의적 성취의 요소로 대체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2) 개신교 영역 내에서도 보수적 민족주의/자본주의의 성취/비판적 민족주의 서사가 별 저항 없이 수용되고 있다.
특히 개신교 우파 진영은 최근 자본주의의 성취 서사가 주장하는 문명 요소를 ‘기독교적 문명’으로 해석하여 종교적 의미까지 부여하면서 내부적으로 강화시키면서 차별금 지법 반대 운동 등의 당대적 이슈에까지 연관시키고 있다.
3) 그러나 보수 진영과 리버럴 진영의 역사 서사 모두 대한민국의 현 재를 긍정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고 대한민국의 역사적 성과라고 주장 되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자신의 진영이 독점하고자 하는 특징을 드러낸 다.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라는 어휘가 보수 진영에서는 자신들만이 민주 주의자라는 페쇄적 자기 선언에 동원되며 리버럴 진영에서는 대중의 구 체적인 삶과 저항을 자기 진영의 헤게모니에 뭉뚱그리는 명분으로 동원 된다.
또한 이 역사 서사들의 영향력이 특정 세대 또는 특정 경향의 사람들 에게 한정되어 있을 가능성도 드러났다.
따라서 현재의 사회 갈등의 주 요인 중 하나가 이러한 역사 서사의 영향력을 받는 사람들에게 사회적 권력이 편중되어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4) 3)에서 지적한 문제들은 현재의 대한민국을 남한 지역 인민의 ‘원 죄’의 존재의 조건으로 사유할 필요를 제기한다. 이렇게 사유할 경우 신 학적 언어로서의 민중은 이 ‘원죄’의 조건으로 인해 재생산되고 은폐되는 폭력의 자리에서 논해야 할 언어가 된다.
이 폭력의 자리에서 생산되는 서사의 예를 민중신학의 민중사회전기 용어를 전용한 장애사회전기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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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초록
이 논문은 한국 근현대사에 관한 역사 서사의 세 가지 유형을 보수적 민족주의, 비판적 민족주의, 자본주의의 성취 유형으로 정리하고, 이 서 사 유형 간의 갈등과 변화의 양상을 추적하며 그 양상에서 나타나는 문 제점을 지적한다. 이 역사 서사들은 한국 사회의 보수 진영과 리버럴 진 영 간의 상호 대립의 근거로 꽤 깊이 활용되어 상당히 강한 상호 대립의 양상을 보이지만, 그 상호 대립은 오히려 대한민국 국가의 성과로 인식 되는 산업화와 민주화 모두를 자기 진영의 성과로 독점하고 싶은 양 진 영의 공유된 욕망을 드러낸다.
역사 서사들의 상호 대립의 근저에 대한민국 국가의 성과를 독점하 고 싶은 욕망이 깔려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신학적 성찰은 대한민국이 라는 국가 자체를 그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이때 대한민국은 건국 과정 에서의 폭력이라는 원죄 위에 성립하며 그 원죄 위에서 폭력을 재생산하 고 있다는 통찰이 가능하다.
또한 대한민국 국가의 성과를 독점하려는 욕망은 그 폭력에 대한 은폐가 작동하고 있다는 징후가 된다.
이 폭력과 은폐에 대한 대항의 자리에서 가능한 서사를 지시하는 용어로 민중신학 의 민중사회전기 용어를 사용할 수 있으며 그 구체적인 예로 장애운동에 서 생산되는 장애사회전기를 꼽을 수 있다.
주제어 역사 서사, 보수적 민족주의, 비판적 민족주의, 자본주의의 성취, 민중사회전기
Abstract
A Theological Research on Types and Conflict/Transformation of Narratives about Korean Modern National History
Yong-Yeon Hwang (Research Director, Minjung Theology )
The Christian Institute for the 3rd Era This paper categorizes three types of historical narratives of Korea’s modern national history as conservative nationalism, critical nationalism, and capitalist achievement, traces the patterns of conflict and change among these narratives, and points out the problems with these patterns. These historical narratives have been used as a basis for strong mutual confrontation between the conservative and liberal blocs of Korean society, but the mutual confrontation reveals the shared desire of both blocs to monopolize both industrialization and democratization, which are perceived as the achievements of the Korean state, as their own. Since the desire to monopolize the achievements of the Korean state lies at the root of the confrontation between these historical narratives, theological reflection on this must take the Korean state itself as its object. In this case, we can see that the Republic of Korea was established on the original sin of violence in the founding process and is reproducing violence on top of that original sin. The desire to monopolize the achievements of the Korean state is also a sign that a cover-up of that violence is at work. In the place of opposition to this violence and concealment, we can use the term Korean Minjung theology’s Minjung social biography as a term to indicate a possible narrative, and a specific example is the social biography of disability produced by the disability movement
Key Word (Historical Narrative, Conservative Nationalism, Critical Nationalism, Capitalist Achievement, Minjung Social Biography)
논문접수일: 2025년 2월 27일 논문수정일: 2025년 3월 9일 논문 게재 확정일: 2025년 3월 20일
神學思想 208집 · 2025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