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뱅크의 참여적 존재론과 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존재론 /김진훈.예아성결교회
Ⅰ. 들어가는 말
급진 정통주의(Radical Orthodoxy)는 1990년대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신학 운동으로, 존 밀뱅크(John Milbank), 캐서린 픽스톡 (Catherine Pickstock), 그레이엄 워드(Graham Ward)에 의해 전개되었다.
이 신학 운동은 세속적인 근대성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며 현대 기독교 신학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급진 정통주의의 핵심은 신학이 학문 의 여왕, 다시 말해 모든 형태의 지식이 검증받아야 하는 근본적 틀로 기 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학이 메타서사가 되기를 원하는 급진 정통주 의는 세속적 이성이 학문의 기초를 제공한다는 계몽주의적 개념에 직접 적으로 도전하며, 모든 인간의 지식이 궁극적으로 신학적 관심과 관련되 어 있다고 주장한다.
모든 피조물은 독립적으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존재에 참여함을 통해서만 존재한다는 참여적 존재론을 주장하는 급진 정통주의가 보기에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성을 주장하는 자율적 존재 영역 은 근본적으로 반신학적이다.
그러기에 세속적 근대성은 종교적 사상의 단순한 부재가 아니라 왜곡된 신학이다.
급진 정통주의의 신학적 주장은 다음 네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세속적 근대성은 왜곡된 신학의 창조물이다.
둘째, 이성과 계시의 대립은 근대적 타락이다.
셋째, 하나님을 배제한 모든 사유는 궁극적으로 허무주 의적이다.
마지막으로 피조된 영역들은 초월적인 것에 참여할 때만 인정 된다.
이러한 급진 정통주의는 포스트모던 철학과의 관계에서 독특한 위 치를 차지한다.
급진 정통주의는 정통 기독교 교리에 대한 헌신을 유지하 면서도 근대성에 대한 특정 포스트모던적 비판들을 전략적으로 수용하여, 포스트모던 상대주의나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근대적 이원론에 도 전한다.1)
밀뱅크는 급진 정통주의의 설계자로 평가할 수 있다.
그의 1990년 저 작 신학과 사회이론: 세속 이성을 넘어서는 급진 전통주의의 시초가 되 었으며, 세속 사상에 대한 계보학적 비판을 제시했다.
그는 신학과 사회 이론에서 “세속적 사회이론과 상충되는 그리스도교적 시각” 2)을 제시하 고자 했다.
1) John Milbank, Catherine Pickstock, Graham Ward, Radical Orthodoxy: A New Theology (London: Routledge, 1999), 1-20.
2) John Milbank, Theology and Social Theory : Beyond Secular Reason, 서종원, 임형권 역, 『신 학과 사회이론』(서울: 새물결플러스, 2019), 50.
그는 일반적으로 중립적이고 자율적인 이성으로 이해되는 것이 실제로는 특정한 역사적 기원을 가진 ‘폭력의 존재론’이라고 주장했 다.3)
그가 보기에, 근대성이라는 것은 흔히 이해되듯이 종교에 대한 이성 의 승리가 아니라, 신적 섭리로부터 자유로운 존재 영역들을 설정하는 자 유주의적인 신학적 비전의 승리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계시로부터 독립적인 자율은 근본적으로 자율이 아니라 폭력을 감추고 있는 것에 불 과하다.
이러한 밀뱅크의 세속성에 대한 계보학적 비판과 참여의 형이상 학을 통한 대안적 신학적 비전은 급진 정통주의 신학 운동 전체 방향을 결 정했으며, 현대 기독교 신학이 세속적 근대성과 관계 맺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했다.
자율적 이성이 결국은 폭력의 존재론에 불과하다는 관점에서 밀뱅크 는 현대 철학의 핵심 인물들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전개한다. 특히 그는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존재론적 사유에 대해 날카로운 비 판을 제기하는데, 이는 단순한 철학사적 논쟁을 넘어 급진 정통주의의 신 학적 기획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이다.
밀뱅크가 보기에 하이데거의 존 재론은 겉보기에는 전통 형이상학을 극복하고 존재의 의미를 새롭게 해 명하려는 시도로 나타나지만, 실상은 현존재의 실존적 구조를 통해 존재 이해를 제약하는 또 다른 형태의 주체 중심적 사유에 불과하다.
임순숙은 이러한 밀뱅크의 비판이 계시 중심주의에 치우쳐 하이데거의 현존재의 존재론에서 이성이 가진 긍정적인 역할을 간과했다고 지적 하며, 밀뱅크와는 다르게 신앙과 이성의 균형을 강조한다.4)
3) John Milbank, 『신학과 사회이론』, 55.
4) 더 자세한 내용은 임순숙, “존 밀뱅크의 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존재론에 대한 비판에 관하여” 「조직 신학연구」 49 (2025)를 참조하라.
그러나 필자 가 보기에 임순숙의 주장은 신학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설득력이 떨어진 다.
밀뱅크는 하이데거의 현존재의 존재론은 칸트의 선험철학과 구조적 유사성을 지니며, 현존재가 존재자들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기에 존 재론적 폭력의 문제를 드러낸다고 진단하는데, 필자는 이러한 밀뱅크의 해석에 대체로 동의한다.
본 논문은 밀뱅크의 하이데거 비판을 체계적으로 검토하여, 그의 비판 이 하이데거 존재론의 어떤 측면을 정확히 포착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비 판의 타당성과 한계는 무엇인지를 분석한 후, 그의 참여적 존재론이 가지 는 신학적 함의를 도출할 것이다.
Ⅱ. 존재 의미를 은폐시키는 현존재의 존재론
1. 존재 이해를 제약하는 현존재의 존재
밀뱅크가 보기에, 하이데거는 그의 스승인 후설과 달리 인식론적 차 원의 근저에는 존재론적 차원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식론이 존재론을 전 제하기에, 존재론 없는 인식론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5)
후설은 드러나 는 현상 자체를 그대로 해석학적으로 기술하려고 하는 반면, 하이데거는 그러한 현상 자체를 드러나게 하는 현존재의 존재를 분석하고자 한다.
그 래서 밀뱅크는 “하이데거는 자기의 스승인 에드문트 후설에 맞서서 현상적 사물들 자체에 대한 이해가 존재론적 문제를 제외한 채로 단지 인식론 의 차원에서만 다루어질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고 말한다.6)
따라서 밀뱅 크가 보기에, 하이데거의 선험철학은 “기초존재론, 즉 현존재의 존재 내지 현존재의 실존에 대한 설명으로 전환된다.” 7)
5) 배우순, “후설 현상학과 M. 하이데거 현상학의 비교 문제” 「철학논총」 76 (2014): 443-446.
6) John Milbank, 『신학과 사회이론』, 568.
7) John Milbank, 『신학과 사회이론』, 568.
칸트에게 선험철학이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선험적 조건을 해명하는 것이었다면, 하이데거의 선험철학 은 그러한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론적 지평인 현존재의 존재를 해명 하려 한다는 점에서 선험철학이 인식론에서 존재론으로 전환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밀뱅크가 현존재의 존재 범주로 가장 먼저 지적한 것이 바로 ‘실존 가 능성’이다.
그가 보기에 “실존 가능성이란 우리의 시간성, 사멸성, 역사성 에 아로새겨진 가능성” 8)이다.
밀뱅크가 현존재의 존재를 설명하는 가장 핵심적인 범주로 ‘실존 가능성’을 제시한 것은 하이데거가 가능성, 즉 실 존을 현존재가 가진 가장 근본적인 존재론적 특징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이데거에게 실존은 “현존재가 그것에 대해 이러저러하게 태도를 취할 수 있고, 또 언제나 어떤 방식으로든 태도를 취하는 그 존재 자체” 9)이며, 이러한 실존이 바로 현존재의 본질이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현존재의 본 질은 그의 실존에 있다.” 10)고 말한다.
하이데거의 현존재의 존재론에서 현존재의 실존은 근본적으로 역사적 이다.
하이데거는 역사성의 범주로 ‘숙명’과 ‘운명’을 든다.
우리가 역사적 으로 숙명적이고 운명적인 존재이기에 현존재의 가능성 또한 역사적으로 숙명적이고 운명적이다.11)
8) John Milbank, 『신학과 사회이론』, 568.
9) Martin Heidegger, Being and Time, 소광희 역, 『존재와 시간』 (서울: 경문사,1998)20.
10) Martin Heidegger, <존재와시간> 64
11) Martin Heidegger, <존재와 시간>540-542
그러기에 밀뱅크 또한 현존재의 실존 가능성 중 마지막 범주로 역사성을 설정한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 밀뱅크는 하이데거가 어떤 맥락에서 현존재의 존재를 분석하고자 하는지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다.
하이데거는 근본 적으로 존재 일반의 의미를 해명하고자 했지, 현존재의 존재만을 해명하 려고 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하이데거가 존재 일반의 의미를 해명하려는 과정에서 기초 존재론인 현존재의 존재를 해명하려고 했는지에 대한 설 명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밀뱅크는 꼭 필요한 그 설 명을 빠뜨린 것이다.
그는 하이데거가 기존의 형이상학이 존재론적 차이 를 고려하지 못하여 존재 망각에 빠졌기에 기존의 형이상학을 극복해야할 필요성을 느꼈다고만 설명한다.12)
그러므로 필자가 보기에, 하이데거 의 존재론에 대한 밀뱅크의 비판을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밀뱅크 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그 부분을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밀뱅크는 근본적으로 역사성을 특징으로 하는 하이데거의 현존재가 자신의 주변에 있는 존재자에게 의미를 부여하여 자신에게 적절한 생활 세계를 구성해낸다는 점에서 칸트의 주체와 같이 폭력적인 측면을 가지 고 있다고 평가한다.
하이데거의 철학에서 현존재는 대상의 본질과는 관 련이 없이 현존재 자신이 의미 지평이 되어 자신만의 의미를 대상에 부여 하여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으로 대상을 구성하여 생활세계를 만들어내 기에 현존재의 존재론은 존재 의미의 제약조건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하이데거 철학에 대한 밀뱅크의 이러한 비판의 핵심은 하이데거 또한 칸트처럼 대상을 ‘구성’한다고 본 것이다.
즉, 칸트의 철학에서 경험 대상 이 12가지 범주에 맞춰 강제적으로 구성되는 것처럼, 하이데거 철학에서 도 현상이 오로지 현존재의 존재 범주에 의해 강제적으로 의미 구성된다 는 것이다.
칸트에게 있어서 범주들은 감성적 직관의 다양한 내용들을 통 일하여 객관적 경험을 구성하는 선험적 형식이다.13)
이 과정에서 물자체 는 인식 불가능한 영역으로 남겨지고, 현상들은 인간의 인식 능력인 범주 에 맞춰 구조화된다.
마찬가지로 하이데거의 현존재는 존재자들을 자신 의 실존적 관심과 이해 지평 안에서 도구적 존재자로 구성하며, 이 과정에 서 존재자들의 고유한 존재 방식은 현존재의 유용성 구조 안에 포섭된다.
서동욱은 하이데거 사유는 단지 근대 형이상학의 연속성으로만 환원되지 않으며, 그의 ‘무(無)·불안·죽음’ 개념은 신학적·비(非)서구적 독해의 장으로도 확장됐다고 주장한다.14)
12) John Milbank, 『신학과 사회이론』, 569-570.
13) Immanuel Kant, The Critique of Pure Reason, 최재희 역, 『순수이성비판』(서울: 박영사, 2013), B106.
14) 서동은, “하이데거의 존재 사유: 두 종교적 지평 사이에서” 「현대유럽철학연구」 70 (2003): 262– 263.
그러나 밀뱅크는 하이데거의 사유가 존재론적 폭력의 한 형태로 규정한다.15)
실존주의 해석학에 관하여 앤서니 티슬턴(Anthony Thieselton) 또한 밀뱅크의 이러한 염려를 공유한다.
티슬턴이 보기에, 실존주의 해석학은 인간의 경험을 초월한 신앙을 인간의 경험 범주로 축소시켜 버린다.
만일 실존주의 해석학이 하나의 총체적 해석학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면, 그 일면성이 가져오는 피해는 기독교 신학에 치명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으 며, 또한 우리의 신약 이해에 큰 폭행을 가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기독교 신 앙의 공동체적, 공적 차원은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고, 많은 관심의 영역들이 시야 밖으로 사라지게 되고 말 것이며, 인간 경험의 범주를 초월하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실재에 관한 교회의 증거 역시 타협 되어지고 말 것이다.16) 하이데거의 현존재의 존재론이 가진 이러한 폭력성은 비단 밀뱅크 만 지적한 것은 아니다.
프리먼(Lauren Freeman)과 엘피도로(Andreas Elpidorou)는 현존재의 존재론적 범주 중 시간성 속에서 존재론적 폭력성 을 발견한다.
그들이 보기에, ‘기존하면서 현전화하는 장래’라는 시간성은 현존재의 피투적 구조를 반영하며, 이는 존재자들의 의미가 현존재의 시 간적 지평으로 제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존재자들의 의미를 이렇게 현 존재의 유한한 시간 지평에만 제한하는 것은 현존재의 존재 의미로부터 자유로운 존재자들의 존재 의미를 축소하는 것이다.17)
15) John Milbank, 『신학과 사회이론』, 571.
16) Anthony C. Thiselton, New Horizons in Hermeneutics: The Theory and Practice of Transforming Biblical Reading, 최승락 역, 『해석의 새로운 지평』(서울: SFC, 2015), 387-388.
17) Lauren Freeman, Andreas Elpidorou. “Affectivity in Heidegger II: Temporality, Boredom, and Beyond” Philosophy Compass 10(2015): 672-674.
2. 현존재가 부여한 의미만으로 구성된 생활세계
하이데거의 현존재는 ‘세계-내-존재’라는 근본틀을 갖는다.
따라서 현 존재를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그 근본틀인 세계-내-존재를 이해해야 만 한다.
하이데거는 하이픈을 사용하여 ‘세계-내-존재’라고 하는데, 이는 단순한 문학적 장치가 아니라 현상의 전체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그 는 세계-내-존재가 ‘세계,’ ‘현존재는 누구인가?,’
그리고 ‘내-존재’라는 세 가지 계기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하이데거는 현존재가 속한 세계의 의미를 다층적으로 구분한다.
첫째 세계는 주체가 세계 내에서 단순히 마주치는 모든 존재자의 총체이다.
둘 째 세계는 예를 들어 수학자들의 세계와 같은 자연과학적 세계라 볼 수 있 다.
셋째 세계는 현존재가 거주하고 있는 생활세계이다.
넷째 세계는 생 활세계를 가능하게 하는 세계성 자체를 의미한다.18)
하이데거는 첫째와 둘째 세계는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적 분리를 전제하는 세계인 반면 셋째 와 넷째 세계는 그러한 이분법적 분리에서 벗어나 현존재가 언제나 이미 세계 안에 거주하는 환경세계라 생각한다.19)
하이데거가 보기에 우선적으로 현존재가 거주하고 있는 세계는 환경 세계, 즉 생활세계이다. 현존재는 생활세계 속에서 존재자들을 일상적으 로 도구로 사용한다.20)
현존재의 생활세계에서 존재자는 자연과학적인 객 체가 아닌 현존재가 손안에 두고 사용하는 도구로 드러난다.21)
생활세계 속에서 도구가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도구의 존재 양식이 바로 용 재성이다, 생활세계 속에서 현존재는 개별적 도구에 앞서서 도구 전체성 을 미리 발견한다.22)
18) Martin Heidegger, 『존재와 시간> 97-98
19) Martin Heidegger, 『존재와 시간> 82
20) Martin Heidegger, 『존재와 시간> 102
21) Martin Heidegger, 『존재와 시간 > 150
22) Martin Heidegger, 『존재와 시간 > 103
하이데거가 용재적인 생활세계를 중시한 것은 자연과학적인 세계만을 진정한 세계로 이해한 근대 존재론자들에 대한 비판에서 나온 것이다.
근 대 자연과학적인 세계에서 인간은 인식하는 주체이고, 존재자는 인식의 대상, 즉 전재자가 된다.
인식의 대상으로서 파악된 존재자는 오직 자연 과학적인 성질, 즉 전재성만이 그 자신의 존재가 된다.
그러나 하이데거가 보기에, 이러한 주객 이분법적인 자연과학적 세계는 현존재가 이미 도구 에 몰입된 생활세계에 비해 파생적이다. 그에게 근원적 세계란 현존재가 이미 친숙하게 거주하고 있는 생활세계이기에 망치는 연구, 즉 인식의 대 상이 아니라 사용의 도구, 즉, 못을 박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도구적 존 재가 존재자의 원초적인 존재이기에 그는 “용재성은 그 자체로 있는 그대 로의 존재자의 존재론적 범주적 규정이다.” 23) 라고 말한다.
그런데 밀뱅크가 여기서 문제 삼는 것은 이러한 용재적 의미부여 과정 이 바로 있는 그대로의 존재자의 고유한 존재 방식을 무시하거나 은폐한 다는 점이다.24)
23) Martin Heidegger, 『존재와 시간>,107
24) John Milbank, 『신학과 사회이론』, 571.
하이데거의 생활세계에서 망치는 못을 박기 위한 도구로, 못은 벽에 박히기 위한 존재자로 나타난다.
이때 망치나 못의 존재 의미는 전적으로 현존재의 목적과 관심에 의해 결정된다.
존재자는 현존재의 배 려적 교섭, 즉 실용적 목적 안에서만 그 의미를 획득하며, 현존재의 실용 적 관심을 벗어난 존재자들의 독립적 존재 방식은 고려되지 않는다.
이는 칸트의 범주가 세계를 인간의 이성적 구조에 맞게 재구성하는 것과 동일 한 구조다.
필자가 보기에 존재자의 존재 의미를 현존재의 존재 의미로만 축소한 다고 보는 밀뱅크의 비판은 매우 적절한 비판인 것처럼 보인다.
하이데거 의 이러한 ‘인간 중심적인’ 사유는 생활세계에 대한 분석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보기에 현존재의 존재 의미만으로 존재 의미를 축소 하려는 하이데거의 인간 중심적인 사유는 ‘기호’에 대한 분석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하이데거에게 기호는 특별한 종류의 도구이다.
그는 “기호는 다른 사 물과 표시 관계를 맺는 하나의 사물이 아니라, 하나의 도구, 즉 도구 전체 를 분명하게 배시 속으로 부상(浮上)시켜서, 그 결과 배시와 일치해서 용 재자의 세계 적합성을 고지하는 그런 도구이다.” 25)고 말한다.
그러므로 기 호는 다른 무언가를 명시적으로 지시하거나 가리키는 역할을 한다.
기호 는 현존재들 사이의 단순한 인과 관계나 논리적 명칭이 아니라 현존재의 실용적 관심을 반영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 방향 지시등은 번쩍이는 불빛 이 아니라 좌회전 또는 우회전 하라는 방향 지시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방 향 지시등은 운전, 교통 규칙, 내비게이션, 그리고 궁극적으로 현존재의 목적지 도달이라는 맥락 내에서 기능한다.26)
그러므로 기호 구조 역시 현 존재의 실존적 구조에 종속되는 것이다.27)
하이데거의 기호 분석에서 볼 수 있듯이, 도구는 항상 다른 그 무엇을 ‘지시’한다.
하이데거에게 지시란 도구의 근본적인 구조적 특징으로, 도구 적 존재자들이 항상 자신을 넘어 다른 무언가로 그 사용자를 보내거나 지 시하는 방식을 가리킨다.28)
키슬(Theodore Kisiel)은 하이데거의 형식적 지시에 대해 “그것은 정적인 실체적 개념이 아니라 동적인 방향 지시적 개념으로서, 현존재의 수행 과정과 실존적 가능성을 향해 열려있다.” 29)고 말한다.
25) Martin Heidegger, 『존재와
26) 하이데거는 현존재가 존재자들에게 취할 수 있는 태도를 관조와 배려라 한다. 관조란 인간이 사물 을 자연과학적으로 인식하는 방향을 취하는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배려란 현존재가 도구와 관 계 맺는 모든 형식이다. 예를 들어 옷을 입는 것, 밥을 먹는 것 모두 현존재가 존재자를 배려하는 행 위이다.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90-91을 참조하라.
27) John Milbank, 『신학과 사회이론』, 572.
28) Martin Heidegger, 『존재와 시간.,114
29) Theodore Kisiel, The Genesis of Heidegger’s Being and Time.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5), 183-185.
즉 지시는 현존재의 존재론적 측면, 좀 더 구체적으로는 실용적 측면과 관계하여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이데거 존재론에서 존재자는 오직 현존재와 실용적 관계만을 가져야 의미를 갖는다.
다시 말해 하 이데거의 생활세계 속에서 존재자들의 적절함은 현존재가 존재자들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서 시작된다.30)
의미의 출발지가 이렇게 오로지 현 존재의 실용적 관심이기에 존재자의 존재 의미는 결국 실용성만으로 축 소되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을 알기에 밀뱅크는 현존재가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는 근본 적으로 존재론적 폭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31)
현존재가 의미를 부여하 는 행위는 겉보기에는 존재자들의 존재 의미를 올바로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존재자들을 현존재의 실용적 구조에 종속시키는 것이 다.
존재자들은 그들 고유의 존재 방식을 인정받지 못하고, 오로지 현존재 에게 유용한 것으로서만 존재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
이는 존재자들의 존 재론적 다양성과 독립성을 억압하는 결과를 낳는다.32)
이는 칸트의 범주 가 세계를 인간의 이성적 구조에 맞게 재구성하는 것과 동일한 폭력적인 구조다.
칸트의 철학에서 세계는 그 자체로서의 모습은 인식 불가능한 영 역으로 남겨지고,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은 범주적으로 구조화된 현상적 자연뿐이다.
마찬가지로 하이데거의 현존재도 존재자들을 자신의 실존적 구조에 맞게 의미화하며, 이 과정에서 존재자들의 독립적 존재 가능성은 현존재의 관심 지평 안에 흡수된다.
이는 밀뱅크가 보기에 하이데거가 비 판하고자 했던 전통 형이상학의 문제점을 하이데거 자신이 다른 형태로 반복하는 것이다.33)
30) Martin Heidegger, 『존재와 시간 강독』(서울: 그린비, 2014), 168-170.
31) John Milbank, 『신학과 사회이론』, 572.
32) John Milbank, The Word Made Strange: Theology, Language, Culture (Oxford: Blackwell, 1997), 84-120.
33) John Milbank, 『신학과 사회이론』, 573.
전통 형이상학이 존재자를 실체와 속성의 구조로 고정화했다면, 하이데거는 존재자를 현존재의 실존적 구조 안에서 도구적 존재로 고정화한 것이다.
Ⅲ. 본래적인 존재가 불가능한 현존재
전통적으로 현존재는 주체나 실체로서 이해되었으나, 하이데거는 이 를 비판하며 현존재의 본질이 실존에 있다고 강조한다.
현존재의 본질은 자신의 존재를 문제 삼는 실존이기 때문에, 현존재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 라 가능성으로서 존재한다.
하이데거가 보기에, 일상적으로 현존재는 더 불어 사는 존재, 즉 공동존재이다.
그래서 그는 현존재가 타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34)
이런 의미에서 하이데거는 “세계 없는 단순한 주관이란 우선 존재하지도 않고, 결코 주어져 있지도 않다.
마찬가지로 타자 없이 고립된 자아도 우선 주어져 있지 않다.” 35)고 말한 다.
세계-내-존재의 두 번째 계기인 ‘현존재는 누구인가?’하는 물음에 하 이데거는 현존재는 공동 존재이기에 평균적 일상성에서 ‘세인’이라고 규 정한다.36)
하이데거에 따르면, 현존재의 존재는 근본적으로 사회적 존재이며 공 동 존재는 현존재의 근본 실존범주로서, 단순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 다는 자연과학적인 사실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살아간다는 실 존적인 사실, 즉 ‘현사실’이다.
각각의 현존재는 타자들의 존재를 전제하 는 사회적 규범을 공유하는 가운데 살아간다.
하이데거는 현존재가 타자 들과의 관계에서 정체성을 규정받는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한 사람 이 교사, 부모, 또는 친구가 되는 것은 오직 타자들과의 공동존재 덕분이 다.37)
34) 박찬국,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강독』(서울: 그린비, 2014), 168-170.
35) Martin Heidegger, 『존재와 시간>,171
36) 소광희, 『존재와 시간 강의』(서울: 문예출판사, 2003), 81.
37) 박찬국,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강독』, 171.
공동 현존재는 세계-내-존재와 등근원적이며, 현존재가 고립된 주체 가 아니라 타자들과 함께 세계를 공유하는 존재이기에 하이데거는 “현존 재의 세계는 공동 세계이다. 내-존재는 타자와의 공동 현존재이다.”고 말한다.38)
공동 존재로서 현존재는 타자들과 관심을 공유한다. 따라서 평균적 일 상성 속에서 현존재는 타자의 관점들을 자신의 것으로 무비판적으로 받 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이때, 현존재는 세인이 된다.
세인은 특정한 개인 이나 집단이 아니라, 평균적 일상성에서 모든 사람이면서 동시에 아무도 아닌 사람들을 가리키는 중성적 실존방식이다.39)
하이데거는 세인을 단순 한 대중으로서 파악하며, 현존재가 우선 세인으로 주어지고 대개 세인으 로 그친다고 지적한다.40)
하이데거는 세인의 특성을 차이성, 평균성, 평탄화로 구분한다.41)
차이 성은 세인이 남들과 자기를 차별화하여 돋보이려는 경향과 동시에 그 차 이를 없애고 남들과 같아지려는 경향을 가리킨다.
이는 현존재가 타자들 과의 상호작용에서 자기를 비교하며, 독특성을 희생하는 방식으로 나타난 다.42)
평균성은 예외적이고 근원적이고 비밀스러운 것을 제거하고 누구나 아는 것으로 만드는 성격을 의미한다. 현존재는 평균적 일상성에서 누구 나 그렇게 하듯이 행동하며, 독특한 가능성을 평균화된 규범으로 대체한 다. 평탄화는 모든 것을 평탄화하여 불투명하게 만드는 과정으로, 세인이 세계 해석을 규제하여 은폐된 것을 숙지된 것으로 내세운다. 이는 상식이 지배하는 현상으로 이어진다.43) 박찬국은 이러한 차이성, 평균성, 평탄화 가 현존재가 환경세계에 몰입한 채 남들에 의해 지배되어 자기를 상실하 는 상태를 반영한다고 말한다.44)
38) Martin Heidegger, 『존재와 시간>,174
39) 소광희, 『존재와 시간 강의』, 86.
40) Martin Heidegger, 『존재와 시간>,188
41) Martin Heidegger, 『존재와 시간>,186
42) Martin Heidegger, 『존재와 시간>,184
43) Martin Heidegger, 『존재와 시간>,185
44) 박찬국,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강독』, 169.
밀뱅크는 이러한 세인의 구조가 현존재의 존재 이해 자체를 구조적으 로 왜곡시킨다고 주장한다.45)
왜냐하면 현존재가 세인으로서 존재하는 한 현존재의 존재 이해는 필연적으로 평균적이고 평탄화된 이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하이데거가 추구하는 진정한 본래적 존재 이해와 모 순되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현존재가 본래성을 잃어버린 실존 상태를 ‘퇴락’이라고 부 른다. 퇴락된 상태에서 현존재의 의사소통은 퇴락된 타자라고 할 수 있는 세인들과의 공통되고 공유된 이해가능성, 다시 말해 피상적 수준에서 그 치고 만다.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 제1부 제35절에서 지적하듯이, 일 상적 대화에서 언어는 평균적 이해 가능성을 가진다. 공동 현존재가 대화 를 따라갈 수 있는 것은 누군가가 더 깊이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공동 현존재 모두가 모호한 가정들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세인의 공적 세 계가 상황들의 풍부한 각자적이고 본래적인 의미를 일반적인 빈말로 평 탄화한다. 밀뱅크가 보기에 하이데거가 이해하는 현존재는 평균적 일상성에 있 어서 퇴락되어 있다.
따라서 현존재는 퇴락되어 있기에 근원적으로 평균 적이고 막연한 존재 이해만을 가지고 있어서 존재에 대해 평균적이고 막 연한 물음만을 던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현존재는 존재를 이해하는 것 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왜곡할 수밖에 없다.46)
45) John Milbank, 『신학과 사회이론』, 574.
46) John Milbank, 『신학과 사회이론』, 573.
현존재가 퇴락된 세계 속에 살기에 잘못된 물음을 던져 존재 이해가 왜곡될 수밖에 없다는 밀뱅크의 비판은 필자가 보기에 하이데거의 ‘현존재는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 분 석을 살펴보았을 때 적절한 비판이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현존재를 퇴락으로 이끄는 것 중의 하나가 빈말이 다. 빈말은 사람들이 실제로 그것들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이야기하는 일상 적 수다와 소문 같은 의사소통 방식을 가리킨다.
빈말에서 사람은 퇴락된 모든 현존재가 말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한 공허한 대화속에서 현존재 상호 간의 이해는 오직 대략적으로 그리고 표면 수준에서만 이루어진다.
그 러므로 빈말은 퇴락된 말로 현존재를 평탄화시킨다. 의미들이 피상적으로 반복되고, 누구도 더 깊은 통찰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하이데거는 빈말을 “뿌리 뽑힌 현존재의 이해 내용의 존재양식이다.” 47)라고 말한다.
빈말과 더불어 호기심 또한 현존재를 퇴락으로 이끈다. 호기심이란 체 류하고 정주하여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반짝 관심만 기울이고 떠나가 는 것이다. 즉,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박찬국은 호기심을 “호기 심은 첫째로는 자신이 몰입해 있는 주위세계에 머무르지 않으며, 둘째로 는 새로운 가능성들을 향해 관심이 분산되어 있다는 두 가지 계기로 구성 되어 있다.” 48)고 말한다.
호기심은 마치 전체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모든 새로운 것을 쫓는 불안한 충동이지만, 실제로는 새로움에 의해 계속 휩쓸려간다. 호기심은 사물들이 거기 있도록 절대 허용하지 않는 세계와 의 존재 형식이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호기심을 단지 알아두기 위한 앎이 지 진리를 이해하기 위한 진지한 머무름이라고 하지 않는다.49)
마지막으로 애매성은 일상적 이해가 사물들을 열린 채로 두고 미결정 상태로 남겨두는 방식을 가리킨다. 하이데거가 분석하는 애매성은 만사 가 진정으로 이해되고, 파악되고, 언표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세인들의 말을 가리킨다.50)
이는 무엇이 진정한 이해 속에서 개시되 어 있는 것이고 무엇이 그렇지 못한 것인지가 분명하게 결정되어 있지 않 은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애매성은 퇴락되어 있는 현존재를 철저하게 지배한다.51)
47) Martin Heidegger, 『존재와 시간>,244
48) 박찬국,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강독』, 235.
49) Martin Heidegger, 『존재와 시간>,248
50) Martin Heidegger, 『존재와 시간>,249
51) Martin Heidegger, 『존재와 시간>,251
중요한 것은 밀뱅크가 이러한 현존재의 퇴락의 양상들이 단순히 극복 가능한 현상이 아니라 현존재의 구조적 특성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이다.52)
현존재가 세계-내-존재로서 필연적으로 타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 는 한, 세인의 지배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현 존재의 존재 이해는 언제나 구조적으로 왜곡될 수밖에 없다.53)
하이데거 의 현존재의 존재론에 밀뱅크가 제기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하이데 거의 존재 이해가 순환적 구조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54)
하이데거는 존재 의 의미를 올바로 해명하기 위해 현존재의 존재를 분석한다.
그러나 현존 재의 존재 이해 자체가 이미 빈말, 호기심, 애매성 등으로 왜곡되어 있다 면 현존재의 존재를 통해 진정으로 존재의 올바른 의미에 도달할 수 있는 가?
이런 물음에 밀뱅크는 부정적으로 답한다.
즉, 현존재는 근본적으로 퇴락되어 있기에 현존재의 존재를 통해서 드러나는 존재 이해는 왜곡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존재는 퇴락된 상태에서 존재를 이해하고, 이러 한 이해를 바탕으로 존재자들에게 의미를 부여한다.
그런데 이 의미부여 과정 자체가 현존재의 퇴락으로 인해 존재자들의 고유한 존재 방식을 은 폐한다면, 현존재가 존재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존재의 참된 의미가 아니 라 현존재 자신의 실존적 구조, 보다 정확히는 퇴락된 실존적 구조의 투영 일 뿐이다. 이점이 바로 밀뱅크가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존재론적 폭력’이 라고 비판한 근거 중의 핵심 근거이다.55)
52) John Milbank, 『신학과 사회이론』, 575.
53) 유창형은 칼빈의 전적 부패와 웨슬리의 선행 은총을 비교하며, 하이데거의 퇴락이 신학적으로 극 복 불가능한 구조적 특성이 아님을 시사한다. 자세한 내용은 유창형, “중생 전후의 인간 상태에 대 한 칼빈과 웨슬리의 비교연구” 「조직신학연구」 27 (2017): 113-118을 참조하라.
54) John Milbank, 『신학과 사회이론』, 575.
55) John Milbank, 『신학과 사회이론』, 576.
밀뱅크가 보기에, 하이데거는 전통 형이상학의 존재 망각을 비판하면 서 존재론적 차이를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현존재의 실존적 구조를 절대 화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존재 망각을 초래한 것이다.
하이데거는 한편 으로는 현존재의 고유한 실존적 가능성을 강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현존재가 본질적으로 세인의 지배하에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러한 모 순적 태도로 인해 평균적 일상성 속에 퇴락된 현존재는 결코 본래적 존재 에 이를 수 없다.56)
56) Roy Martinez, “An “Authentic” Problem in Heidegger’s Being and Time” Auslegung: a journal of philosophy 15 (1988): 2-4.
바로 이 모순적 태도로 인해 하이데거는 존재론적 허 무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다.
Ⅳ. 선구적 결의성의 모순
하이데거의 철학에서 본래성과 비본래성의 구별은 도덕적 평가가 아 니라 존재론적인 관점에서 분석된 현존재의 존재 양상이다.
비본래적 현 존재는 세인의 지배하에서 차이성, 평균성, 평탄화 원리에 따라 살아가며, 자신의 고유한 존재 가능성을 망각한다.
반면 본래적 현존재는 불안 속에 서 자신의 개별성과 유한성을 직시하며, 세인의 해석에 의존하지 않고 자 신의 존재를 스스로 선택한다.
하이데거의 의하면 이러한 본래성을 가능 하게 하는 것이 바로 선구적 결의성이다.
선구적 결의성은 현존재가 자신의 존재에 대해 본래적, 즉 각자적 이 해를 갖게 하는 것으로서 평균적 일상성 속에서는 은폐된 현존재의 근본 적 가능성이다.
선구적 결의성은 “본래적이고 전체적인 결의성으로서 죽 음으로 선구하는 결의성” 57)이며, “현존재가 자신의 극단적 가능성인 죽 음을 향해 앞으로 달려가 결의해서 본래적 자기에 도래하고, 기존에 있었 던 본래적 자기를 회복하여, 자기가 처한 상황을 적극적으로 현전화 하는 것” 58)이다.
57) 박찬국,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강독』, 385.
58) 소광희, 『존재와 시간 강의』, 160.
하이데거에 의하면, 죽음 등을 통해 이루어지는 선구적 결의성으로 인 해 현존재가 자신의 유한성을 직면할 때 자유가 명확해진다. 그에 따르면 이 선구적 태도는 단순한 허무주의적 퇴각이 아니라 오히려 현존재가 기 존에 규정된 방식들에서 벗어나 참된 선택 가능성을 경험하는 방식이다.
즉, 죽음을 앞세운 선구는 본래적 선택의 계기로서 현존재가 다수의 가능 성 가운데 자기에게 맞는 길을 직접 선택할 수 있음을 드러낸다.59)
하이데거에 의하면 죽음을 향한 선구와 양심의 부름에 대한 결의성이 본질적으로 통합되어 나타난 것이 바로 선구적 결의성이다.
즉 선구적 결 의성은 죽음과 양심의 변증법적 통일에서 비롯된다.
‘선구적’이라는 형용 사는 현존재가 자신의 가장 독자적인 가능성인 죽음을 미리 앞당겨 대면 하는 시간적 구조를 나타낸다.
‘결의성’은 양심의 부름에 응답하여 자신의 본래적 존재 가능성을 결연히 선택하는 실존적 태도를 의미한다.
하이데거에게 죽음은 생물학적 사실이 아니라 현존재의 실존론적 구 조를 구성하는 근본적 현상이다.
그는 생명체의 죽음과 현존재의 죽음을 엄격히 구별한다.
왜냐하면 현존재의 죽음은 자기의 죽음을 향해 있는 현 존재의 존재 방식이며, 이는 현존재의 존재 이해에 필수적이다.
죽음은 현 존재에게 ‘불가능성의 가능성’으로 다가온다.
현존재는 죽음의 순간에 죽 기 때문에 죽음을 경험할 수 없으면서도 죽음이라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 기에 현존재에게 죽음은 불가능성의 가능성인 것이다. 이러한 죽음의 양 면성이 현존재의 유한성을 드러내는 핵심적 계기가 된다.
하이데거는 현존재의 죽음을 네 가지 근본적 특성으로 분석한다. 첫 째, 죽음은 가장 독자적인 가능성이다.
죽음은 각자가 혼자서 죽어야 하 는 것으로, 누구도 타인의 죽음을 대신할 수 없다. 이는 현존재의 본질적 개별성을 드러낸다.60)
둘째, 죽음은 몰교섭적 가능성이다.
죽음에 직면할 때 현존재는 모든 세간적 관계로부터 단일화되며, 세인의 해석이나 위안 을 벗어나 자신만의 존재 가능성과 대면한다.61)
59) Anna M. Rowan, “Dasein, Authenticity, and Choice in Heidegger’s “Being and Time”” Logos i Ethos 41 (2016): 93-94.
60) Martin Heidegger, 『존재와 시간>,337-338
61) John Milbank, 『신학과 사회이론』, 572-573.
셋째, 죽음은 뛰어넘을 수없는 가능성이다.
죽음은 모든 현존재에게 피할 수 없이 다가오는 궁극적 한계이며, 이를 통해 현존재는 자신의 절대적 유한성을 깨닫는다.62) 넷째, 죽음은 무규정적 가능성이다. 죽음은 확실하지만, 그 시점은 불확실하다. 이러한 불확정성이 현존재가 죽음을 일상적으로 망각하게 하지만, 동시에 진정한 불안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63) 하이데거에게 죽음에로의 선구는 현존재가 죽음을 가장 본래적 존재 로 향한 존재로 미리 앞당겨 대면하는 실존적 태도이다. 이는 단순히 죽음 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자신의 가장 근본적인 가능성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현재의 존재 방식을 전환하는 것이다. 박찬국은 선 구를 “죽음으로 선구하는 방식으로만 현존재가 원래부터 지속적으로 책 임 존재로 존재했음을 깨닫게 되는 바, 결의성은 죽음으로의 선구로서만 본래적인 결의성이다.” 64)고 말한다.
62) Martin Heidegger, 『존재와 시간>,343
63) Martin Heidegger, 『존재와 시간>,357
64) 박찬국,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강독』, 392.
이러한 죽음에로의 선구는 하이데거 는 불안이라는 근본 심정성과 밀접히 연관한다. 불안은 두려움과 달리 특 정한 대상을 갖지 않으며, 현존재를 세계 전체의 무(無) 앞에 직면시킨다. 죽음에 대한 불안은 현존재를 세인의 빈말, 호기심, 애매성에서 벗어나게 하고, 자신의 가장 고유한 존재 가능성과 직면하게 한다. 이러한 상황은 현존재를 사회적 관계에서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본래적인 공 동존재를 가능하게 한다. 또한 불안은 현존재가 반복할 수 있는 것으로서 의 내던져져 있음에 다시 직면하게 하여 진정한 자기 이해의 토대를 마련 한다. 일상적으로 현존재는 죽음을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나 남의 일로 거 리를 두며, 세인의 위안 속에서 죽음의 실존론적 의미를 은폐한다. 선구적 태도는 이러한 일상적 은폐를 극복하고 죽음을 자신의 가장 고유한 가능 성으로 되찾는다. 그러나 밀뱅크는 바로 이 지점에서 하이데거의 근본적인 한계를 지적한다.
밀뱅크가 보기에, 죽음을 본래적 실존의 가능 조건으로 설정하는 것 은 존재를 무(無)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허무주의적 선택일 뿐이다. 하이 데거가 죽음을 통해 현존재의 전체성과 본래성을 확보하려 하지만, 이는 결국 무로의 투신이며, 존재자들의 긍정적 의미와 가치를 부정하는 결과 를 낳는다.65)
밀뱅크에 따르면, 하이데거의 죽음 분석은 형이상학적 신화의 성격을 갖는다.66)
죽음이 현존재를 본래적 자기로 개별화한다는 주장은 경험적으 로 검증할 수 없는 추측이며, 오히려 죽음에 대한 불안이 현존재를 더 깊 은 소외와 고립으로 이끌 가능성을 간과한다.
현존재가 스스로의 결정을 통해 의미를 투사하고, 마음씀과 결의를 통해 본래성을 회복한다는 주장 은 존재에 대한 태도로부터 우리의 생활을 통해서만 증명될 수 있을 뿐이 라는 밀뱅크의 지적은 이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67)
더욱 문제가 있는 것은 하이데거가 죽음으로의 선구를 통해 존재론적 폭력을 정당화한다는 것이 다.
죽음이라는 단일한 지평 아래 모든 존재자를 종속시키고, 현존재의 개 별성과 자기 동일화를 절대화하는 것은 타자성과 차이를 폭력적으로 배 제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밀뱅크가 추구하는 존재론적 평화와는 정반 대의 방향이다.68)
밀뱅크는 하이데거의 ‘양심’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하 이데거가 주장하는 양심은 전통적인 도덕적 양심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현존재의 실존적 존재 방식이다.
양심은 현존재를 세인-자기에서 본래적 자기로 부름으로서, 현존재의 본래적 존재 가능성을 증언한다.
하이데거 는 “양심은 한결같이 오직 침묵의 소리로만 말한다.” 69)고 표현하며, 이 침묵의 부름이야말로 현존재를 세인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고 강조한다.
65) John Milbank, 『신학과 사회이론』, 572-573.
66) Laurence Paul Hemming, “Speaking out of Turn: Martin Heidegger and die Kehre” International Journal of Philosophical Studies 6 (1998): 395-397.
67) John Milbank, 『신학과 사회이론』, 574.
68) John Milbank, 『신학과 사회이론』, 575.
69) Martin Heidegger, 『존재와시간>,389
양심의 부름은 “내 안에서부터 오지만 나를 넘어서 온다.” 70)는 독특한 구 조를 갖는다.
이는 양심이 현존재 자신으로부터 발원하면서도 비본래적 인 세인이 본래적인 차원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양심은 현존 재를 그의 가장 독자적 존재 가능으로 불러낸다는 점에서 현존재의 본래 적 실존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 개시성이다.
하이데거는 양심의 부름을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한다.
첫째, “누가 부 르는가?” 부르는 자는 현존재 자신이지만, 세인-자기가 아닌 불안 속에서 개별화된 현존재이다.
이 부르는 자는 세계에 대한 마음씀에 의해 위협받 고 떨고 있으면서, 피투적 존재 가능을 향한 마음씀의 근거로서 자기를 드 러내는 현존재이다.
둘째, “누구를 부르는가?” 부름을 받는 것은 세인 속 에서 자기를 상실한 현존재이다.
양심은 이러한 비본래적 현존재를 자기 의 가장 독자적 책임 있음으로 불러낸다.
셋째, “무엇이라고 부르는가?”
양심의 부름은 구체적인 내용이나 지시를 주지 않는다.
오히려 현존재를 가장 독자적 책임 있음을 향해 소환할 뿐이며, 이것이 바로 양심의 침묵하 는 성격이다.71)
그런데 여기서 양심의 부름이 개시하는 책임 있음은 법률적이고 도덕 적인 책임이 아니라 현존재의 근본적인 존재 구조이다. 하이데거는 이를 “타자의 현존재 속에 어떤 결핍을 야기하는 원인” 72)이라고 규정한다.
70) Martin Heidegger, 『존재와 시간>
71) Martin Heidegger, 『존재와 시간>
72) Martin Heidegger, 『존재와 시간>
이러 한 책임 있음의 구조는 세 가지 차원에서 나타난다.
첫째, 현존재는 자신 의 존재 근거가 되지만, 그 근거 자체는 무(無)이다.
현존재는 자신이 존 재한다는 사실을 선택하지 못했으며, 이는 피투성의 차원에서 나타나는 근원적 무력성이다.
둘째, 현존재는 기투하면서 동시에 다른 가능성들을 포기해야 한다.
어떤 가능성을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가능성들을 단념하는 것이며, 이는 현존재의 본질적 유한성을 드러낸다.
셋째, 현존재는 퇴 락의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항상 자신을 상실할 위험에 처해 있다. 이는 현존재가 그 자체로서 책을 지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73)
그러므로 양심의 부름에 대한 본래적 응답이 바로 양심을 가지려는 의 지이다.74)
이는 양심의 부름을 올바로 듣는 것으로서, 가장 독자적 본래적 으로 책임을 지게 될 수 있음을 향해 자기를 기투하는 것이다. 박찬국은 이를 현존재가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인 것으로서 이해 하게 되었을 때 결의성이 본래적이 됨을 지적한다.75) 이는 양심을 가지려 는 의지가 일회적 결단이 아니라 지속적인 자기 책임의 인수임을 보여준 다.
또한 양심의 부름이 침묵의 소리로 온다는 것은 하이데거 철학에서 중 요한 의미를 갖는다.
침묵은 단순한 무언이 아니라 세인의 빈말에 대립하 는 본래적 언어 양식이다. 세인의 빈말은 존재자를 그 존재로부터 은폐시 키는 반면, 침묵은 현존재를 자신의 가장 고유한 존재 가능성 앞에 세운 다.76)
소광희는 이를 “본래적 자기를 회복해서 인수하는 것” 77)으로 해석하 며, 현존재가 상황을 적극적으로 현전화하는 과정으로 본다. 이는 침묵이 소극적 태도가 아니라 가장 적극적인 개시성임을 보여준다. 양심의 부름 과 책임 있음의 분석은 결의성을 위한 존재론적 토대를 마련한다.
현존재 가 자신의 근원적 책임 있음을 인정하고, 양심의 부름에 귀를 기울일 때, 비로소 본래적 결의성이 가능해진다.
앞서도 지적했듯이, 하이데거 철학에서 선구적 결의성은 현존재의 본 래적 개시성을 가리키는 핵심 개념이다.
그는 이를 “가장 고유한 책임 존 재를 향해 말없이 대비하는 기투” 78)로 정의하며, 현존재가 양심의 부름에 응답하여 본래적 자기로 되돌아오는 실존적 양식을 나타낸다. 이러한 결 의성은 세 가지 개시성의 본래적 양식으로 구성된다.
73) Martin Heidegger, 『존재와 시간>,393-400
74) Martin Heidegger, 『존재와 시간>,410
75) 박찬국,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강독』, 392.
76) Martin Heidegger, 『존재와 시간>,421
77) 소광희, 『존재와 시간 강의』, 196.
78) Martin Heidegger, 『존재와 시간>,422
첫째, 마음씀의 본래 적 양식으로서 불안이다. 불안은 현존재를 세인의 위안에서 벗어나게 하 고 자신의 근원적 반성과 직면하게 한다.79)
둘째, 이해의 본래적 양식으로 서 자기를 향해 달려오게 하는 기투이다. 이는 현존재가 자신의 가장 고유 한 존재 가능성을 향해 투신하는 것을 의미한다.80)
셋째, 말의 본래적 양 식으로서 침묵이다. 침묵은 세인의 빈말을 중단시키고 현존재를 자신의 본래적 상황과 직면시킨다.81)
결의성은 현존재를 추상적 고립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구체 적인 상황을 본래적으로 개시한다.
하이데거는 선구적 결의성이란 “가장 독자적이고 두드러진 존재 가능을 향한 존재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선구적 결의성을 통해 현존재는 자기가 처한 상황을 적극적으로 현전화 한다.82)
이는 현존재가 주어진 환경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 라, 자신의 본래적 존재 가능성의 관점에서 상황을 새롭게 조명하고 응답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선구적 결의성은 현존재가 본래적 존재가 되게 해준다.
그러나 이 본래성은 무제약적 선택의 가능조건이 아니라, 자 신의 유한성과 피투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본래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본래성이다.
소광희는 이를 “본래적 자기에 도래하고, 이미 있었던 본래적 자기를 회복하는 과정” 83)으로 설명한다.
79) Martin Heidegger, 『존재와 시간>,433
80) Martin Heidegger, 『존재와 시간>,443
81) Martin Heidegger, 『존재와 시간>,457
82) Martin Heidegger, 『존재와 시간>,462
83) 소광희, 『존재와 시간 강의』, 196.
밀뱅크는 바로 이 양심 구조에서 하이데거 철학의 공허한 형식주의를 발견한다. 양심이 침묵의 소리로만 말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하지 않 는다는 것은, 결의성이 어떤 방향으로 향해야 하는지에 대해 아무런 지침 도 제공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이는 결의성을 내용 없는 형식적 결단으로 전락시키며, 그 내용이 순전히 현존재의 자의적 선택에 맡겨지는 결과를 낳는다.84)
더욱이 양심의 부름이 현존재 자신으로부터 발원한다는 하이데거의 분석은 자기 순환적 구조의 한계를 드러낸다.
밀뱅크에 따르면, 이는 외부 의 초월적 타자성이나 신적 부름을 배제하고, 현존재를 자기 자신의 구조 안에 가두는 결과를 낳는다.
양심은 현존재를 그의 가장 독자적 존재 가능 으로 불러낸다는 하이데거의 주장은, 결국 현존재의 퇴락된 존재 이해의 자기 반복에 불과하다는 것이다.85)
또한 이러한 공허한 형식주의는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차원에서 심각 한 문제를 야기한다.
구체적인 상황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행동해 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부재한 채, 오직 본래적 결단의 형식만 강조되는 것은 자칫 독단적이고 폭력적인 결정을 정당화할 위험성을 내포한다.
이 는 니체적인 권력 의지로의 은밀한 복귀이며, 하이데거가 비판하려던 근 대적 주체성의 폭력이 새로운 형태로 하이데거의 존재론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86)
84) John Milbank, 『신학과 사회이론』, 576.
85) John Milbank, 『신학과 사회이론』, 577.
86) John Milbank, 『신학과 사회이론』, 578.
Ⅴ. 나가는 말
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존재론에 대한 밀뱅크의 비판을 요약하면 다음 과 같다.
첫째, 하이데거의 현존재 분석은 존재 일반의 의미를 해명하려는 의도에도 불구하고, 현존재의 실존적 구조를 강조함으로써 칸트의 선험철 학과 유사한 주체 중심적 폭력을 드러낸다.
밀뱅크가 지적하듯이, 현존재 가 존재자들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은 존재자들의 고유한 본질을 무시하고, 오직 현존재의 관심 지평 안에서 존재자들의 존재 의미를 도구적 용재성으로 축소시킨다.
이는 생활세계의 구성에서 기호와 지시 구조를 통해 더욱 명확히 드러나며, 결과적으로 존재론적 폭력을 초래한다.
밀뱅 크가 보기에, 하이데거는 전통 형이상학의 존재 망각을 극복하려 했으나, 도리어 새로운 형태의 존재 망각을 초래했다.
둘째, 밀뱅크가 보기에 하이데거의 현존재는 평균적 일상성 속에서 퇴 락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기에 그 퇴락된 삶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세 인의 지배 아래 현존재는 차이성, 평균성, 평탄화의 원리에 따라 왜곡된 존재 이해를 반복하며, 빈말, 호기심, 애매성 같은 퇴락 양상으로 인해 본 래적 존재 이해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밀뱅크는 현존재가 퇴락된 상 태에서 출발하는 한 진정한 존재의 탈은폐가 불가피하게 왜곡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이는 하이데거의 존재론이 현존재의 사회적이고 역사 적인 맥락을 인정하면서도 그로부터 파생되는 왜곡을 충분히 극복하지 못한 한계를 드러낸다.
셋째, 하이데거의 선구적 결의성에 대한 밀뱅크의 비판은 본래적 삶의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문제시한다.
죽음을 향한 선구와 양심의 부름을 통 해 현존재가 본래적 자기를 회복한다는 주장은, 밀뱅크에 따르면 허무주 의적 무(無)의 관점으로 귀결되며, 구체적인 내용 없는 형식주의로 전락 한다.
죽음의 독자성, 몰교섭성, 불확정성 등이 현존재를 개별화한다고 해 도, 이는 타자성과 공동체적 윤리를 배제하는 폭력적 고립을 초래할 뿐이 다.
밀뱅크는 이를 니체적 권력 의지의 잔재로 해석하며, 하이데거의 선구 적 결의성이 윤리적이고 정치적 함의를 무시한 채 자기 순환적 구조에 갇 혀 있음을 비판한다.87)
87) 안재경은 칼빈의 구원 확신을 하나님의 확실성으로 보며, 허무주의로 귀결되는 하이데거의 죽음에 로의 선구를 넘어 하나님의 확실성 속에서 신학적 소망과 증거를 발견한다. 자세한 내용은 안재경, “칼빈의 구원확신에 대한 소고” 「조직신학연구」 22 (2015): 155-160을 참조하라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대한 밀뱅크의 이러한 비판 은 자율적 이성이 하나님의 참여를 배제함으로써 존재론적 평화를 달성 하지 못한다는 급진 정통주의의 핵심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밀뱅크의 하이데거 비판은 단순히 철학적 논쟁을 넘어서 신학적으로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신학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하이데거의 존재론 이 드러내는 근본적 한계는 현존재의 존재론이 자기 충족적인 구조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다.
즉, 현존재의 존재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만의 결단으로 본래적이 된다는 것이다.
즉, 현존재는 자 기 스스로가 자신을 구원하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현 존재가 스스로 존재의 의미를 구성하고, 스스로 양심의 부름을 듣고, 스스 로 본래성을 회복한다는 하이데거의 주장은 결국 신적 초월성과 은혜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자율적 인간학으로 귀결된다.
밀뱅크가 예리하게 포 착한 것은 바로 이러한 자율성의 추구가 필연적으로 존재론적 폭력과 허 무주의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급진 정통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진정한 존재 이해와 본래적 실존은 피조물이 창조주의 존재에 참여할 때만 가능하다.88)
88) John Milbank, Being Reconciled: Ontology and Pardon (London: Routledge, 2003), 1-25.
하이데거가 배제한 신적 차원을 회복할 때 비로소 존재자들은 현존재의 도구적 용재성으로 환원되지 않고 그 고유한 존재 의미를 인정받을 수 있으며, 현존재 역시 퇴락의 순환 논리에서 벗어나 진정한 본래성에 도달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밀뱅크의 비판은 하이데거 존재론의 내재적 모순을 정확히 진단할 뿐만 아니라, 세속적 근대성의 한계를 극복하고 존재론적 평화에 이를 수 있는 신학적 대안의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지닌다.
따라서 본 논문이 밝힌 바와 같이, 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존재론 에 대한 밀뱅크의 비판은 철학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정당할 뿐만 아니라, 급진 정통주의가 추구하는 참여적 형이상학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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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초록]
본 논문은 급진 정통주의 신학자 존 밀뱅크의 관점에서 마르틴 하이데 거의 현상학적 존재론을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밀뱅크는 신학과 사회이 론을 통해 하이데거의 존재론이 전통 형이상학의 존재 망각을 극복하려 했으나, 실상은 현존재 중심의 새로운 형태의 존재론적 폭력을 초래한다 고 비판한다. 먼저 현존재의 존재론적 구조를 분석한 결과, 하이데거가 강조하는 실 존 가능성과 시간성은 칸트의 선험철학과 구조적 유사성을 지니며, 존재 자들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존재자 고유의 본질을 은폐한다. 생 활세계에서 현존재는 도구적 용재성을 통해 존재자들을 자신의 실존적 관심에 종속시키며, 기호와 지시 구조 역시 현존재의 의미 지평으로 제한 된다. 이는 존재자들의 독립적 존재 방식을 억압하는 존재론적 폭력을 구 성한다. 둘째, 현존재의 공동존재 분석에서 드러나는 퇴락은 본래적 존재 이해 를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다. 세인의 지배 아래서 현존재는 차이성, 평균성, 평탄화의 원리에 따라 빈말, 호기심, 애매성에 빠져 왜곡된 존재 이해를 반복한다. 밀뱅크는 이러한 퇴락이 극복가능한 현상이 아니라 현 존재의 본질적 특성임을 지적하며, 존재 이해의 순환적 모순을 제기한다. 셋째, 하이데거가 제시한 선구적 결의성에 대한 분석에서, 죽음을 향 한 선구는 허무주의적 무(無)의 관점으로 귀결되며, 양심의 침묵하는 부 름에 응답하는 결의성은 구체적 내용이 부재한 공허한 형식주의에 머문 다. 이는 윤리적 지침 없이 자의적 결단을 정당화할 위험성을 내포하며, 타자성과 공동체적 관계를 배제하는 폭력적 개별화를 초래한다. 결론적으로, 밀뱅크의 비판은 하이데거의 존재론이 신적 참여를 배제 함으로써 존재론적 평화에 이르지 못하고, 현존재 중심의 주체성을 절대 화하여 새로운 형태의 존재 제약을 가한다는 점을 정확히 포착한다. 이는 급진 정통주의의 참여 형이상학이 세속적 근대성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 안적 신학적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주제어: 존 밀뱅크, 급진 정통주의, 마르틴 하이데거, 현존재, 존재론적 폭력]
Abstract
Milbank’s Participatory Ontology and Heidegger’s Phenomenological Ontology
JinHun Kim (Jea Jesus Korea Sungkyul Church)
This paper critically examines Martin Heidegger’s phenomenological ontology from the perspective of Radical Orthodox theologian John Milbank. Through Theology and Social Theory, Milbank argues that although Heidegger attempted to overcome the oblivion of Being in traditional metaphysics, his ontology ultimately perpetrates a new form of ontological violence centered on Dasein. First, analysis of Dasein’s ontological structure reveals that Heidegger’s emphasis on existential possibility and temporality bears structural similarities to Kant’s transcendental philosophy, concealing the intrinsic essence of beings in the process of conferring meaning upon them. In the lifeworld, Dasein subordinates beings to its existential concerns through instrumental readiness-to-hand, while sign and reference structures are similarly constrained within Dasein’s horizons of meaning. This constitutes ontological violence that suppresses the independent modes of being of entities. Second, the phenomenon of fallenness revealed in Dasein’s analysis of Being-with structurally renders authentic understanding of Being impossible. Under the dominance of das Man, Dasein becomes caught in idle talk, curiosity, and ambiguity according to the principles of distantiality, averageness, and leveling-down, perpetually repeating distorted understanding of Being. Milbank identifies this fallenness not as a surmountable phenomenon but as an essential characteristic of Dasein, thereby exposing a circular contradiction in understanding Being. Third, regarding Heidegger’s proposed anticipatory resoluteness, the anticipation of death culminates in a nihilistic perspective of nothingness, while resoluteness in response to conscience’s silent call remains an empty formalism devoid of concrete content. This risks justifying arbitrary decisions without ethical guidance and results in violent individualization that excludes otherness and communal relationships. In conclusion, Milbank’s critique accurately captures how Heidegger’s ontology, by excluding divine participation, fails to achieve ontological peace and absolutizes Dasein-centered subjectivity, thereby imposing a new form of ontological constraint. This suggests that Radical Orthodoxy’s participatory metaphysics can offer an alternative theological vision that overcomes the limitations of secular modernity. [Key words: John Milbank, Radical Orthodoxy, Martin Heidegger, Dasein, Ontological Violence]
논문 투고일: 2025.10.05. 수정 투고일: 2025.11.14. 게재 확정일: 2025.11.18.
조직신학연구 제51권 (202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