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루시뇰 이 프라츠 (1861~1931)/받은 글
Santiago Rusiñol i Prats는 바르셀로나 출신의 스페인 화가, 언론인, 수집가, 시인 및 극작가였습니다.
그는 카탈루냐 모더니즘 운동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천 점이 넘는 그림을 그렸고, 스페인어와 카탈루냐어로 수많은 작품을 썼습니다. 그는 현대 미술가로서 파블로 피카소에 영향을 미쳤으며 카탈루냐의 도시 시체스에 작업실을 마련하였는데, 오늘날 그곳은 카우 페라트(Cau Ferrat)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체스는 루시뇰을 비롯한 미술가, 작가, 음악가들의 모더니즘의 중심지가 되었고, 연극, 시, 회화, 음악을 결합한 모더니즘의 축제가 이곳에서 개최되었습니다.
루시뇰은 주로 산문 형식의 서사시와 산문 시를 계속 썼습니다. 1907년에 집 필하여 몇 년 뒤에 발표한 그의 소설 '에스테베씨의 으르렁거림(Laura del senior Esteve)'은 각색되어 연극으로 공연되기도 하였습니다. 20세기 초 그는 바르셀로나를 비롯한 스페인 전역과 파리에서 다작 화가이자 작가로서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그는 바르셀로나 몬시오 거리에 있는 페레 로메우 이 보라스가 운영하던 엘스 콰드레 가츠 카페에서 열린 사교 모임에도 참여했습니다.,,그곳은 사교의 장이자 대안 예술의 공간이었는데, 젊은 파블로 피카소도 자주 드나들던 명소였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화가 라몬 카사스와 조각가 엔릭 클라라소와 깊은 우정을 나누었습니다.
루시뇰은 화가 토마스 모라가스의 화실에서 드로잉과 유화, 수채화 등 다양한 기법을 배웠습니다.
그는 1879년 파르셀로나의 살라 파레스에서 열린 그룹전에 처음으로 작품을 출품했으며, 이후에도 평생 이 화랑과 함께 작품을 그렸습니다.
그는 그 당시 유행하던 역사화를 그리지 않고 풍경, 인물, 문학 작품 속 장면 등을 그렸습니다. 그의 작품은 주로 카탈루냐의 자연 풍경을 묘사하는 것이 많았으며, 또한 노동하는 장면이나 도시 풍경도 즐겨 그렸으며, 일상적인 일에 몰두하는 인물들을 그렸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당대 평론가들로부터 대체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1888년 그는 파레스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라 반과르디아(La Vanguardia) 신문에 기고하였으며, 파리 살롱에 처음으로 작품을 출품했고, 바르셀로나 만국 박람회에 참가했습니다.
루시뇰은 젊은 시절부터 풍경 그림에 깊은 애정을 보였는데, 바르셀로나 미술계에 인상주의 기법을 도입한 호아킴 바이레다의 작품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풍경 속을 누비며 새로운 회화적 모티브, 색채, 감각을 발견하여 능숙하게 작품에 담아냈습니다.
그의 그림에 대한 열망은 1889년 동료 화가 라몬 카사스와 함께 파리로가면서 절정에 달합니다. 모더니즘과 인상주의의 중심지였던 파리는 루시뇰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고, 보헤미안적 이상은 그의 예술적 여정을 이끄는 지침이 되었습니다.
그는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폴 시냐크, 제임스 휘슬러, 테오필 슈타인렌과 같은 거장들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예술적 여정을 결정짓는 중요한 계기는 1895년 그리나다 여행에서였습니다.
알함브라 궁전과 헤네랄리페 정원의. 푸르른 풍경을 뒤로 하고, 그는 스페인 곳곳을 끊임없이 탐험하며 황폐해진 정원들을 작품의 주요 소쟈로 삼았습니다. 깊은 우울감, 고독, 그리고 방랑벽으로 가득찬 루시뇰의 작품들을 감상해 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