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 보살 사상으로 바라본 ‘세계시민보살(Universal Bodhisattva citizenship)’의 덕목- 불교 시민성 정립의 이론적 토대 - /퇴우 정념(박동순).월정사
1. 들어가는 말
‘시민성1)’ 혹은 ‘시민의 역량’에 대한 논의를 시작함에 앞서 반드시 고려하고 넘어가야 할 주요한 핵심의제가 있다.
1) ‘citezenship’은 ‘시민권’과 ‘시민성’의 두 가지로 번역되고, 혼용되고 있다. 각각 ‘시민의 권리’와 ‘시민적 덕성’을 함의하는 단어이므로 표방하는 사상적 기반이 자유주의 혹은 공화주의[공동체주의]인지의 여부에 따라 다르게 쓰이고 있는 것이다. Kymlicka(2016), 451에서 ‘citezenship’은 ‘시민 덕성’으로 번역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불교적 시민의 덕성’의 함양을 목적하므로 ‘시민성’으로 통일하여 논의한다; ‘시민의 덕성이란 시민들이 공동의 이익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에 기여하려는 마음가짐과 자세’를 의미한다. ‘덕’이나 ‘역량’으로 번역되는 영어 ‘virtu’, 라틴어 ‘virtus’ 에서 유래한 것이다. 고대 로마 공동체의 안전과 방어를 책임진 시민군인 성인 남성의 덕성을 포괄하는 말로 용맹, 남자다움, 역량 등을 의미했다. 로마가 제국으로 성장하며 그리스 철학을 수용하게 되어 도적적·윤리적 덕성까지 포괄하게 된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영웅과 군인의 덕목 외에 정치공동체의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시민의식을 가리키게 된 것이다. 김경희(2024), 11;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공화국은 시민적 덕성(civic virtue) 즉, 공공선에 봉사하겠다는 시민들의 각오와 능력에 의지할 수 있어야 한다.’ Viroli(2012), 145.
논의 범주가 정치 철학적이거나 혹은 윤리학적이거나의 여부를 넘어, 논점으로서 시민의 역량을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간주하는가 혹은 ‘공화주의[공동체주의]’적 관점에서 간주하는가에 대한 출발선의 방향을 세우는 일이 그것이다.
시민성 논의는 일반적으로 자유주의 또는 공화주의의 두 가지 사상 중 한쪽 노선을 기준점으로 삼는다.2)
물론 양자의 이론 모두 일관된 맥락의 정의를 내리기 쉽지 않은 만큼 짧지 않은 역사와 이론적 발전을 거듭해 왔고 현시점에도 이론적 논의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본 논문의 비교항으로 논의될 서구 전통의 자유주의는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최상의 가치로 간주하는 정치 철학으로, 제한된 정부와 자유권 이념이 핵심을 이룬다.
한편 공화주의 이론은 공공선을 담보하는 법의 지배 안에서 시민들이 다른 시민들에게 예속되지 않고 자유를 누리며, 시민적 덕성을 실천하는 정치 질서를 세우는 것을 목표한다.3)
팬데믹, 국지적 분쟁,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 문제 등 전 지구적 위기 상황은 점차 빈도가 증가하고 그 내용 역시 복잡성을 띠고 있다. 일례로, 우리가 인식하는 전 지구적 대응책이 요구되는 기후 위기 논의도 기후라는 하나의 개념 축으로 떼어 논의할수가 없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산업구조와 정치적 이해관계, 국가 간 외교 문제가 함께 논의되지 않고는 그 해답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상황 역시 전쟁이라는 의제뿐 아니라, 화학무기 사용으로 야기되는 인명 살상을 비롯한 토양 및 환경의 심각한 파괴 상태와 그에 따르는 농업 및 식량 · 보건 산업적 피해를 함께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즉, 현시대의 갈등 상황은 갈등의 원인을 역추적하여 규명해 낸다고 할지라도 얽혀 버린 이해관계들 속 문제 해갈의 기미는 요원하다.
주권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거시적 문제들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시대에 응답하는 시민성 개념에 대한 재논의의 필요성이 요구된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본 논문은 ‘불교적 시민성’ 개념의 정립을 시도하기 위해 화엄경4)에 제시된 법계연기 세계관과 십선계의 도덕률을 근거로 ‘세계시민보살(Universal Bodhisattva citizenship)’의 사상적 기반을 모색하고자 한다.
2) Leydet, Dominique(2023) "Citizenship", Th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Fall 2023 Edition).
3) 김경희(2024), 12.
4) 본 논문에서는 實叉難陀 譯 80華嚴을 참조함.
화엄경은 보살 사상을 담고 있는 대승불교의 대표적 경전 중 하나로, 보살도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정련된 현대적 윤리관을 제시해 줄 수 있다.
화엄 사상으로부터 착안한 ‘세계시민보살’ 개념은 근대 국가관 이후 펼쳐진 다양한 이론적 논쟁들 이후 교착상태에 놓인 국가와 시민에 대한 정치 철학적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본 논문의 구성은 다음의 과정으로 전개하려 한다.
먼저 Ⅱ장에서는 근대 정치 철학의 두 기둥이라 할 수 있는 자유주의와 공화주의에 대한 개념을 알아보고, 각각의 이론이 담지한 시민성의 덕목이 어떠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파악해 볼 것이다.
현대에 들어서도 롤스(John Rawls)와 샌델(Michael J. Sandel)을 통해 이어지는 노선 양자 간 이론적 긴장 관계는 개인과 공동체 간의 조화를 위한 국가관과 존재론의 수립이 상당 부분 밀접한 관련을 지니면서도 정립되기 쉽지 않은 난제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Ⅲ장에서는 대안으로서의 화엄 사상이 가지는 시민성의 덕목을 보살도를 통하여 접근할 것이다.
먼저 보살 가나 집단이 형성된 배경을 통하여 보살 사상에 함의된 평등성을 도출하고, 대승 보살계 단초가 된 십선계 내용을 통하여 보살의 의무와 권리에 대한 논리적 접근을 시도하려 한다.
더불어 보살이라는 존재 양태를 통해 공동선을 향유하는 시민의 덕성을 알아보는 것으로 ‘세계시민보살’의 이론적 토대 형성을 시작해 볼 것이다.
이어 Ⅳ장에서는 ‘세계시민보살’이 가지는 시민의 덕목으로서 해인 삼매를 통한 평상심 회복이 보편적 영성으로서 개념적 도약이 가능한지의 여부를 확인할 것이다.
불교 전통의 영성은 형이상학적 도그마를 소거한 공성 자각으로서의 평상심으로 좀 더 보편화된 영성을 추출할 수 있다고 예상하였기 때문이다.
이어 법계 연기관을 통해 공적영역 윤리관을 재 확립하는 과정에서는 ‘세계시민보살’로서의 개인이 공동선을 향한 주체로 부상하는 논리적 흐름이 발견되는지 여부를 확인해 보려 한다.
상기 제시된 논의과정을 통하여 어떠한 이유로 이 시대에 ‘세계시민보살’이라는 개념화 정립이 요구되는지에 대한 필요성을 제시하고, 서구 전통 시민성과 비교하여 세계시민보살의 덕목이 지니는 특징들이 시대적 요구와 조응하는 불교 시민성 연구의 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Ⅱ. 서구 전통 시민성의 덕목
1) 자유주의적 시민성의 덕목
‘자유주의’와 ‘시민성’이라는 두 개념이 함께 복합어로 쓰이는 것이, 적어도 정치 철학사적 맥락으로 보자면 단순한 언어 개념 조합으로 이해되는 것 이상으로는 불가능한 접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자유주의’적 최상의 가치는 시민으로서의 개인적 ‘권리’에 있다.
‘시민성’이 함의하는 ‘시민적 덕성[virtue]’의 개념은 공동체를 이루는 인간의 도덕적 능력과 공존의 가치를 함의한다.
그러므로 시민성은 원자화된 개인을 강조하고, 정치적 참여를 개인권 보장의 수단으로 간주하는 자유주의 진영에서 강조될 가치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자유주의와 걸맞은 시민적 역량은 권리 개념을 강조한 ‘시민권’으로 쓰이는 것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국가라는 구획된 영토 범위 내에서 법제화된 사법 시스템 아래 개인과 타자의 욕구에 대한 적절한 타협 및 안전과 삶의 지위를 보장받으려면, 영토 내 실행되어야 할 개개인의 의무와 그에 상응하는 권리가 보장되는 구조가 구성원 모두에게 균등히 형성되어야 한다.
즉, 자유주의적 시민은 관계 속에서 형성된 사회적 조건들을 모두 소거한 환원된 자아 혹은 연고 없는 자아(unencumbered self)5) 로서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는 도덕률을 상정한다
. 그것이 곧 ‘권리(right)’이고 권리는 자유주의 진영 내 시민 모두가 동등히 부여받는 비개인적(impartial) 가치이다.
‘자유’의 개념은 통상적으로 자유주의 정치제도 전통 아래 ‘개인의 권리’에 초점을 두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은 자유의 개념을 소극적 자유(negative liberty)와 적극적 자유(positive liberty)로 분류하였다.6)
5) ‘연고 없는 자아(unencumbered self)’는 샌델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하며 사용한 개념으로, 무지의 베일에 가려진 환원적 자아는 상황과 역사로부터 분리된 비현실적 자아임을 강조하였다. 인간의 존재 이유는 공동체와 도덕 및 사회적 관계로 형성되고 그렇게 형성된 정체성이 곧 자아라는 것이다. Michael J. Sandel(1998), 65-69 참조.
6) I. Berlin(2002), 168-186 참조.
‘소극적 자유’는 ‘인간이 타자의 간섭없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영역’을 의미한다.
즉 ‘~로의 자유(freedom to)’로서 국가나 타자가 개인적 사유와 신체적 선택에 간섭하지 않으며 개인의 내 · 외적 자유 확립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편 소극적 개념에서 더 나아가 ‘적극적 자유’는 주체로서의 확장된 자유를 뜻한다.
‘~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는 자기 통제와 실현을 통해 정제되지 않은 무지와 욕망, 사회로부터의 억압을 벗어나 스스로를 창조하는 자아로서의 자유이다.
요컨대 자유라는 개념은 외부 세계의 그 어떠한 제약으로부터 속박되지 않는 환원된 자아를 소망할 것이나,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연동된 자유주의는 ‘소유권리’7)와 같은 재화의 소유 및 재분배 문제와 무관할 수가 없다.
자신 혹은 특정 집단의 자유가 타자의 자유를 속박 · 착취하는 또 다른 자유라는 이름의 굴레가 되어버리는 가능성 역시 상존하는 것이다.
이처럼 자유주의 전통은 로마법에서부터 롤스의 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해석과 이견들이 산재하지만, ‘개인의 자유’를 최상의 가치로 간주한다는 공통의 전제는 논의들 전반을 포괄하는 핵심의 내용이라 하겠다.
국가제도 아래 자유주의적 시민성은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는데 인식론적 부분과 정치 사회적 부분으로 나누어 접근 가능하다.8)
첫 번째 인식론적 접근은 ‘독립된 개인’으로서, 현대 자유주의 사상을 정초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닐만한 홉스(Thomas Hobbes)의 ‘인간은 생존을 위해 정치사회를 구성한다’라는 입장을 들 수있다.9)
인간은 독립적이고 본질적으로 비사회적이므로, 자유주의 전통에서 시민은 궁극적으로 사회로부터 고립된 개인에서 출발해 개인으로 남는다.10)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은 선명히 분리되고, 시민권의 취득 및 행사 과정에 있어 개인의 이익 추구는 항상 최우선 순위 과제가 된다.
또한 시민들은 그 어떤 경우에라도 본인의 의사와 반대되는 정치 참여를 강요받지 않는다.
두 번째, 정치 사회적 측면으로 보는 자유주의적 시민성은 ‘정치권력’에 대한 개념을 종종 시민의 권리와 대립되는 구조로 이해하는 것이 특징이다.11)
이는 ‘획득’되었던 소중한 자유의 가치가 고대 봉건주의 및 인권 개념이 전무했던 시대의 요청에서 비롯된 것과 맥락을 함께 한다.
친 자유주의 진영 시민들에게 정치권력은, 감시하며 제한해야 할 일종의 방어진지 구축의 대상과도 같은 것이다.
이후 자본주의의 발달과 민족주의의 흐름을 거쳐 시민권이 곧 민족국가의 정체성으로 인식되기까지, 자유주의에서 시민권은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의 영역(area)이면서 동시에 정치과정에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정치적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12)
7) 자유 지상주의자 노직(Robert Nozick)은 정의와 시장경제를 ‘소유권리’로 연관 짓는다. 현재 소유한 재화에 대한 자격이 소유주에 있다고 가정한다면, 결과와 관계없이 각자의 자유로운 교환으로부터 발생하는 모든 결과는 그 자체로 정의로운 분배라는 것이 ‘소유권리 이론’의 핵심이다. Kymlicka(2016), 178-179.
8) 곽준혁(2008), 132 참조.
9) 위 논문, 132 참조.
10) 위 논문, 132-133 참조.
11) 위 논문, 133 참조.
12) Heater(2002), 곽준혁(2008)에서 재인용.
지금까지 정리해 본 자유주의적 특성은 국가 영역 아래 법적·제도적으로 보장받아야 할 ‘시민의 권리를 핵심의 가치로 한다는 것’13)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자유주의적 시민의 역량은 어떠한 덕목을 지니고 가치 실현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 다섯 가지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14)
13) 곽준혁(2008), 133.
14) 상기 정리된 자유주의 시민의 덕목 다섯 가지는 조주현(2018), 3 내용을 요약 발췌한 것임.
1. [평등]
유주의는 특수적이며 임의적인 공동체의 전통이나 관습의 형태로 자행된 모든 종류의 집단적 차별을 거부하고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모든 인간은 동일하게 존엄하다는 ‘평등’의식을 지향한다.
2. [관용]
자유주의는 공동선이나 포괄적 선의 합의가 불일치하게 되어 공동체 간 또는 공동체 안에서 폭력, 전쟁과 같은 배타적 갈등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그것을 예방 또는 극복해 주는 ‘관용의 덕목을 요구한다.
3. [계몽된 자기 이익 실천]
자유주의는 자신의 이익과 권리를 우선적으로 중시하되 그것을 존중받기 위해서라도 타인의 이익과 권리를 존중할 줄 아는 정도로서의 ‘계몽된 자기 이익’적 윤리를 실천한다.
4. [분별]
자유주의는 단기적 이익보다는 장기적 이익을, 일차적 선호보다는 이차적 선호를 합리적으로 선택 및 추구할 줄 아는 ‘분별’의 덕목을 강조한다.
5. [정의]
자유주의는 개인 상호 간 이익과 모두에게 공정한 불편부당으로서의 ‘정의’를 추구한다. 정리된 내용을 살펴보면, 권리가 부각된 시민적 역량은 환원된 자아로서의 개인이 국가 안에서 지니는 평등한 권리 및 불편부당한 정의를 추구함을 알 수 있다.
더불어 ‘계몽된 자기 이익’과 ‘분별’의 추구는, 상호 간 자유라는 가치의 충돌을 최소화하려면 지녀야 하는 ‘계몽된 의식’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음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비개인적 시민들 개개인은 동등하며 양질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하여 한정된 재화와 기회비용을 신중히 고려하는 의식적 노력을 게을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이 경고하였던바, 자유주의는 환원적 자아의 이기적 본성을 극복해야 하는 난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한계 또한 명확하다.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를 통해 다음과 같이 예상하였다.
‘개인주의(individualism)’라는 것은 새로운 관념에 의해서 창출된 신기한 표현이다. 우리들의 조상은 오직 ‘이기주의(egoism)’만을 알고 있었다.이기주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열정적이고 과도한 애착을 말하는데 이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모든 문제를 자기 자신과 관련시키게 하고 자기 자신을 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좋아하게 한다. 개인주의는 성숙하고 평온한 감정으로서 이것은 사회의 각 구성원으로 하여금 동료인간으로부터도 분리되게 한다. 그래서 이와 같이 그가 그 자신의 조그마한 성을 형성한 후에는 기꺼이 사회를 잊어버린다. 이기주의는 맹목적인 본능에 근거한다. 그러나 개인주의는 타락한 감정에서부터 생기기보다는 잘못된 판단에서 생긴다…(중략)… 이기주의는 모든 덕성의 씨앗을 마르게 한다. 그러나 개인주의는 처음에는 공공 생활의 덕성을 좀먹다가 마침내는 다른 모든 것을 공격, 파괴하며 최후에는 이기주의로 전락한다. 이기주의는 옛날부터 악덕이며 어떤 형태의 사회에도 존재해왔다. 그러나 개인주의는 민주주의를 그 기원으로 하고 있으며 그것은 사회의 평등화에 비례해서 확산되고 있다.15)
양질의 자유주의적 시민의 덕성이 근원적 기반이 된 사회는 자유의 가치와 권리의 위상이 함께 선순환적으로 작동할 것이다.
그러나 한정된 재화와 맞물린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파편화된 개개인의 시민을 자유라는 허상 속에 가두고 오히려 진정한 자유는 누리지 못하는 ‘자유롭지 못한 자유주의’로 함몰될 위험을 경계해야 할 필요성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진정한 자유주의적 가치는, 충분한 덕성이 뒷받침된 시민의 역량을 바탕으로 발휘될 때 비로소 충족되는 존재로서의 자유로움이라 할 수있는 것이다.
2) 공화주의적 시민성의 덕목
현대의 공화주의 이론과 그로부터 파생된 이론인 공동체주의는 근대 서구에서 탄생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인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과 반성으로부터 발전하였다.16)
본래 공화주의는 ‘공화(또는 공화국)’에 관한 사상이나 이론 또는 원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공화’라는 용어는 고대 로마로부터 비롯되었다.17)
15) Tocqueville(2015), 667-669.
16) Kymlicka(2016), 337; 김현경(2024), 35.
공화 (국)이라는 의미의 ‘republic’은 라틴어 ‘res publica’에서 유래되어 ‘공적인 것’ 혹은 ‘공공의 것’이라는 어의를 지닌다. res publica는 구체적으로 로마라는 특정 국가적 형태, 국가의 모든 공적 업무, 모든 공유 재산, 국가가 공적 업무를 통해 추구해야 하는 목적 등의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18)
이를 요약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res publica란 국가가 왕 혹은 지도자 개인의 사유물이나 사적인 것이 아닌 ‘국민의 공유물’또는 ‘공적인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2. res publica는 국가가 수행하는 공적 업무를 의미한다.
1번에서 파생된 의미로서 공적인 업무 즉, 국방 · 외교 · 치안 · 사법 · 행정 · 종교와 같은 공적 업무 전반을 지칭한다.
3. res publica는 개인의 사유재산과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국가 혹은 공공단체가 소유하는 국유재산이나 공유 재산을 뜻한다.
4. res publica란 공화제 내에서 국가가 추구하는 목적, 즉 공익 내지 공공선을 의미한다.
국가는 어느 개인의 사익이 아닌 공익을 추구해야 하는 주체인 것이다.19)
정리해 보면 res publica는 ‘공익 내지 공공선의 실현을 위해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국가’20)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다수의 주체가 모인 국가 혹은 집단은 특정 권력의 지배에 예속되지 않아야 하고, 국가나 집단 구성원 각각의 행위자는 참여의 성취자이자 주인의 의미를 내포한다.
그러나 공화주의를 특정한 정치체계 혹은 원자화된 개인적 자유주의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간주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21)
최초에 ‘공화(res publica)’라는 말이 사용되었을 때, 그것은 전제 또는 자의적 권력에 반대되는 정치체제를 지칭하는 하나의 개념으로 사용되었을 뿐, 결코 왕정이 아닌 어떤 정치체제를 지칭하는 말은 아니었던 것이다.22)
17) 한상수(2021), 504 참조.
18) 위 논문, 505 각주 4 재인용.
19) 위 논문, 505-506 내용 발췌하여 재정리.
20) 위 논문, 506.
21) 곽준혁(2007), 134 참조.
22) 위 논문, 134.
비롤리(Maurizio Viroli)가 정의 내린 공화주의를 살펴보면 ‘동등자들이 만나는 공간-즉, 국민들이 공동체의 동료로서 서로 우정을 쌓고 공동체의 진로를 논의하는 공간-에서 어김없이 발생하는 정치적 아이디어’23)로 표현된다.
다양한 성격의 개개인들이 모여 조화와 협력을 통한 공론을 나누는 광장을 이루어 가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공화주의에서는 ‘함께 하는 것’ 그리고 ‘서로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24)
그러므로 ‘시민성’이라는 개념의 본의적 측면에서 본다면, 자유주의보다 공화주의를 위한 덕목으로 쓰이는 것이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하버마스(Jürgen Habermas)가 언급하듯이, 헌법적 자유의 제도들은 해당 국민이 그 제도들을 만드는 정도만큼만 가치를 지니게 될 뿐이다.25)
권리의 보장을 목표로 한다면, 권리를 위한 제도의 공고화를 위한 공동 단위의 공론화 및 입법적 참여는 필수이다.
더 나아가 킴리카(WillKymlicka)에 의하면 시민성이 양 · 질적 향상을 더해가야 하는 이유는 반드시 제도의 안정성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현대 민주주의의 건전성과 안정성이 단지 민주주의의 기본적 제도들의 정의(justice)뿐만 아니라 그 제도에 속한 시민의 자질과 태도에도 의존하고 있음을 확실하게 해주었다.
그와 같은 자질과 태도들의 구체적 예를 들어보면, 그들의 정체성(sense of identity) 그리고 민족적, 지역적, 인종적 혹은 종교적 정체성의 경합적 형식을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관점, 그들 자신과는 구별되는 타인들을 관용하고 함께 일할 수 있는 능력, 공공선을 증진시키고 의존할 만한 정치적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정치과정에 참여하려 하는 그들의 욕망, 그들의 경제적 요구와 그들의 건강과 환경에 영향을 미치게 될 개인적 선택에 있어서의 자기 절제와 개별적 책임감을 수행하는 것을 보여줄 의지 등이다.
이러한 자질들을 갖춘 시민들 없이는, 민주주의는 운용되기 어렵게 될 것이고, 심지어 안정적이지 못할 것이다.26)
23) Viroli (2012), 7-8
24) 위의 책, 10.
25) Habermas(1992), 7. Kymlicka(2016), 452에서 재인용
26) Kymlicka(2018), 452.
공화주의에 있어 주요한 가치는 ‘공동의 의제를 함께 논의하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함께하는 참여에 선행되어야 할 인간의 소양은 ‘타자를 동등하게 고려하는 사유의 힘’일 것이다.
인식론적으로 접근한 공화주의의 인간상은 상호의존적 인간에서 비롯되는 것 또한 맥락을 함께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은 ‘좋은 삶(eu zen)’을 위해 군집한다는 언급에 기초한다.27)
다시 말해 인간은 상호의존적이며 본질적으로 사회를 통해 자신을 발현할 수밖에 없는 까닭에, 공화주의 전통의 시민은 적극적 정치참여를 통해 스스로의 본성을 발현해야만 행복을 성취할 수 있는 존재이지 고립된 존재가 아닌 것이다.28)
고립된 개인이 아닌 세계 속 진취적 행위자로서 공화주의 시민은, 자유주의에서 정치권력을 대립 구도로 간주하는 것과 달리 내 자신이 정치적 주체이며 행위자이고 제도를 만들어 가는 성취자이다.
정치 사회적 관점에서 공화주의적 정치 참여는 인간성의 발현이며, 시민권은 자연적으로 부여되는 권리가 아니라 정치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얻어지는 시민적 자격으로 이해된다.29)
그러므로 시민은, 원자화 · 파편화될 수가 없는 세계의 조각이자 일부분이다.
시민의 덕성은 ‘심의와 정책 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발현’30)되는 내재적 가치인 것이다.
한상수는 공화주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의내렸다.
공화주의란 ‘국가는 정치적 존재로서의 국민이 시민적 덕성을 발휘하여 자치를 실행하는 정치적 공동체로서 법치를 통하여 공동선을 실현하고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는 이념 혹은 원리’를 말한다.31)
이를 바탕으로 공화주의 시민의 역량은 어떠한 덕목을 지니고 가치 실현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 여섯 가지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32)
27) 곽준혁(2008), 132 참조.
28) 위 논문, 132-133 참조.
29) 곽준혁(2008), 133.
30) 위 논문, 133.
31) 한상수(2021), 615.
32) 위 논문, 615-617 참조하여 정리함.
1. [인간]
정치적 요소로서의 인간이라는 개념 요소는 공화주의의 철학적 기초이다.
2. [공동선]
공화주의는 공동선을 추구하는 이념이나 원리라고 할 수 있다.
3. [자유]
현대 공화주의 이론의 가장 주요한 기여는 기존의 소극적 자유를 극복하고 새로운 차원에서 자유의 의미를 규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4. [자치]
공화주의 관점에서 ‘자치’의 실현은 공동선을 확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므로 핵심 개념 요소가 될 수 있다.
5. [법치]
법치는 공동선과 자유라는 공화주의적 목적이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현실적이며 수단적 원리이자 제도이다.
6. [시민적 덕성]
시민적 덕성은 공화주의적 제도가 목적인 공동선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필수적 문화 기반이다.
상기 내용 6번에 해당되는 시민적 덕성은 관용 · 절제 · 다양성의 존중 등 다수의 하위 덕목들을 포괄할 것이다.
요컨대 공화주의 시민의 역량에 있어 최상의 가치는 ‘시민적 덕성을 기반한 정치적 실천의 확장’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시민의 덕은 인간의 존엄과 참여의 정치적 요소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시민적 덕성에 내재된 유연함 그리고 사유의 보편성 확보일 것이다.
신념을 지니고 세계 속의 실천을 확대해 나가는 지향성은 중요한 것이나, 신념의 내용과 방향성의 지점에서 다시 보편적 도덕률이 요구되는 것이다.33)
33) 대체적으로 공화주의는 특수주의를 표방한다. 보편주의는 크고 작은 다양한 공동체에 공유되는 특수주의보다 상위의 가치가 될 수 없고, 다양성을 상실케 하는 요소로 간주된다. 이러한 내용을 주장한 대표적 학자는 샌델이다.
주지하다시피 신념을 가장한 무지의 발현과 그에 따르는 다수의 맹종과 실천은 인간이 경험해 온 역사 속에서 대규모의 제노사이드로, 다종다양한 폭력의 형태로 축적되어 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시금 종교적 황금률은 여전히 보편의 윤리관을 제시해 줄 수 있으며 특히 다음으로 살펴볼 화엄 사상의 보살도는 종교적 도그마를 배제한 보편의 도덕률에 대한 함축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Ⅲ. 화엄 사상의 보살도 개념으로 바라본 시민성의 덕목
1) 보살도의 시민적 의무와 권리
(1) 보살도에 함의된 평등사상
대승불교의 근간을 이룬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보살 사상은 대승의 사상적 요체라 할 수 있는 개념이다.
보살은 ‘Bodhisattva(菩薩)’가 음사된 것으로, 본래 ‘보리 살타(菩提薩埵)’의 줄임말이다.
‘bodhi’는 ‘깨달음’을 뜻하고 ‘sattva’34) 는 有情중생을 뜻하므로 보살은 곧 ‘ 깨달음을 지닌 유정’ 혹은 ‘깨달음을 구하는 유정’이라는 어의로 통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다.35)
34) 최근 ‘sattva’는 생태 관련 분야와 불교사상을 다루는 연구에서 종종 ‘생명’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35)스에키 후미히코 외(2016), 169-170에 따르면 ‘보살’의 기원적 의미는 다양한 해석이 제시된다.
본고의 연구 목표인 대승, 특히 화엄 사상 계열의 보살 사상을 사상적 기반으로 정립하려는 시도에 따라 상기의 해석을 따른다.
이후 ‘부처님의 깨달음을구하고(自利) 모든 중생을 구하려 노력하는(利他) 자’로 발전[上求菩堤下化衆生]되었다.36)
출가 비구 집단인 승가 이외의 보살 가나 집단37)이 등장한 역사적 사실은 당시 높은 수준의 경직된 보수적 신분제를 유지하고 있던 고대 인도지역의 사회· 문화적 특징을 고려한다면 신분관과 인권에 대한 하나의 혁명과도 같은 전환점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이는 보살의 사상적 특질을 고려할 때 함께 등장하는 ‘일승(一乘, ekayana)’의 사상적 개념을 짚어보면 더욱 선명해진다.
‘일승’은 붓다의 가르침을 신앙하며 다양한 의견을 지닌 집단 내에서 보살과 성문, 연각이 서로 다른 실천 수행론으로 열반을 목표하지만, 이들 모두 동등한 지위임을 인정하며 집단 내 차등을 두지 않는다.
히라카와 아키라(平川彰)에 의하면 일승 사상은 초기 불교에서 유지된 4성 평등 지침과 상통하고, 승가 내 성원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이 율장을 통하여 보장되어 있었다.38)
비구가 출가하려면 사회적으로 속해있던 신분 및 사회적 보장들이 담보된 가문으로부터의 단절은 필수 요건이었다.
요컨대 보살 사상은 태생적으로 구획되는 성별, 신분의 제약적 범주에 지배받지 않고, 출 · 재가인과 남녀노소 누구나 깨달음이 가능한 평등주의적 관점을 위시한 실천 사상이었다.
부파교단에 수용된 보살은 붓다와 같은 특정한 위인에 한정되었고 보살의 자격 역시 매우 높고 엄격히 구분 지워졌다.39)
반면 부파교단 외 새로이 형성되었던 범부보살 집단에서 보살의 지위는 ‘누구나’ 성불 가능한, ‘누구나’ 보살이 될 수 있는 신념을 지니는 대승의 신앙 체계가 형성되었던 것이다.40)
따라서 태생적으로 평등주의를 내재한 보살 사상을 ‘모든 인간에 내재된 깨달음의 · 부처가 될 가능성으로서의 도덕적 가능성’41)의 독법으로 읽어낼 수 있다면, 도덕적 실천 능력을 담지한 범부들이 구성원이 되어 일종의 사회적 계약으로 건립된 ‘공동체’혹은 ‘국가’라는 개념적 단위 내 구성원으로서 시민의 의무와 권리에 대하여 충분한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36) 시즈타니 마사오(2013), 155.
37) 히라카와 아키라(1999), 57.
38) 위의 책, 72 참조.
39) 시즈타니 마사오(2013), 162.
40) 위의 책, 162-165 참조.
41) 안옥선(2008), 113.
그렇다면 보살의 덕목으로부터 국가라는 집단적 특수성을 가지는 시민의 의무와 권리 개념을 도출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짧지 않은 역사적 간극을 수용하더라도, 주권 개념의 맹아조차 희박하던 시대, 신앙을 중심으로 결집된 일종의 연대체를 통하여 형성된 지침으로부터 의무와 권리 규준을 찾아보려면 긴 역사적 간극을 지나온 흐름 안에서도 변함없이 유지되는 사상적 보편성의 원칙과 흐름을 발견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구체적 . 조항들은 보살이 지니고 숙지하며 실천해야 할 계율로부터 찾아볼 수 있다.
(2) 화엄경에 나타나는 계율 속 의무와 권리
초기 대승불교도들에 의한 ‘자리이타에 중점을 둔 십선계(十善戒)42) 중심 계율 운동’이 확대되기 시작한 이후, 화엄경 성립 시기에 이르러 십선계는 삼취정계(三聚淨戒)의 형태로 정리되었다.43)
대승계에 있어 가장 큰 흐름을 형성하는 삼취정계의 기조가 화엄경에서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계’는 본래 ‘관습이 된 행위’를 의미한다.
이것이 성질 · 습관 · 행위의 개념으로 불교 교단에 유입되어 ‘자발적 의지의 발로로 선한 행위나 좋은 습관을 쌓도록 하는 것’으로 범용된 것이다.44)
42) 十善業道經(T15, pp.158a4-6) “故名善法. 此法即是十善業道. 何等為十? 謂能永離殺生, 偷盜, 邪行, 妄語, 兩舌, 惡口, 綺語, 貪欲, 瞋恚, 邪見.”; 이 법이 곧 열 가지 선업(善業)의 길이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이른바 능히 산 목숨을 죽임[殺生]·타인의 소유물 훔침[偸盜]·삿된 행동[邪行]·망령된 말[妄語]·이간질하는 말[兩舌]·사악한 말[惡口]·지나치게 꾸미는 말[綺語]·탐욕(貪欲)·성냄[瞋恚]·삿된 견해[邪見]를 영원히 여의는 것이다; 권탄준에 의하면 ‘화엄경전체에 나타난 보살계는 十善戒이고, 十善道가 초기 대승불교에서 十善戒, 즉 대승계로 전환되는데 화엄경에서 十善戒로 설해지고 있는 까닭은 十善은 ‘十善業道’라고 불렸고 ‘十惡業道’와 함께 선악의 기준이나 도덕의 덕목을 나타내는 것으로 취급되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요컨대 화엄경 전체를 포괄하는 지침은 ‘보살계’인 것이다. 권탄준 (2007), 17 참조.
43) 채인환(원영)(2007), 53.
44) 한편, 대승불교의 윤리적 기초로써 강조된 십선도는, 業思想을 기반으로 하여 널리 확장되었다고 하는 설이 있다. 십선도는 10가지 실천 덕목으로 규정되어 있으나, 간단하게는 身口意三業으로 정리된다. 즉, 신체적 행위, 언어표현, 심리작용을 도덕적으로 바로잡는다고 하는 목적이 십선도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십선도를 三業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에 있다. 인과응보라고 하는 단순한 진리를 바탕으로 하는 業思想이 사회근저에 흐르고 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승이라고 일컫고 있던 무리들은 필시 그러한 사회의 흐름을 이용하였을 것이다. 사회 전반에 걸쳐 깊숙이 퍼져있는 근본적인 인과의 법칙, 십선도와 三業思想 은 善因善果라고 하는 가장 서민적인 기준으로부터 발생한 思考였다고 생각한다. 이 業思想은 결과보다 因을 중시하는 동기적인 측면에 중점을 둔다. 그러므로 三業의 인을 청정히 하는 것이 곧 십선업도를 수행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發想은 선업을 중시하는 견해로부터 발생되었다. 선한 행위로 좋은 과보를 받는다고 하는 평범한 진실을 이용하여 자기반성에 이르게 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대승불교도들은 기존의 業思想을 받아들여 윤리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것이다. 보편적인 윤리관을 확립하기 위하여 원점으로 돌아가 계율의 참정신을 회복하고자 했던 그들의 의도가 십선도에 여실히 드러난다. 勝又俊敎(1982), pp.70-74. 채인환(원영)(2007), 7-8 에서 재인용.
따라서 ‘계’는 자발적 의지로 숙지하는 행위 규범이며 신 · 구 · 의 3업 중 하나와 반드시 결부되는 특징을 보인다.
자발적 ‘의지’는 ‘의무’와 비교하여 좀 더 성품 및 내적 윤리관에 초점을 두는 의업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의무’는 그러한 내적 의지 · 의향을 바탕으로 행하게 되는 신 · 구업에 해당되는 것이다.
화엄경에서 보이는 십선도의 열 가지 지침은 각각 ‘칠부대중의 소승계본을 수지하는 것[律儀戒]을 바탕으로 보리를 성취하기 위한 갖가지 선업을 행하고[攝善法戒], 뭇 중생들의 이익를 도모함[饒益有情戒]으로서 완성’되는 세 가지 범주 형태로 구분지어 설하는 삼취정계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45)
일례로 십회향품의 삼취정계는 ‘삼종정계’로서 다음과 같이 서술된다.
보살마하살이 큰 나라의 왕이 되어 법에 자재하고 명령을 내려 살생하는 것을 못 하게 하는데 중략 동물들에게 공포가 없게 하고 생명을 빼앗는 일이 없으며, 보살의 행을 닦아 인자하게 사물을 대하고 침노하지 않으며…(중략)…중생들을 편안하게 하며, 부처님들 선호하는 뜻을 세우고 항상 삼종정계(三種淨戒)에 머물며, 중생들도 편안히 지내게 하여 보살마하살이 중생들로 하여금 오계(五戒)에 머무르며 살생하는 업을 영원히 끊게 합니다.46)
45) 이상엽(2010), 98.
46) 大方廣佛華嚴經巻27(K80, p.596b14-b21) “佛子! 菩薩摩訶薩作大國王, 於法自在, 普行教命, 令除殺業; 閻浮提內城邑聚落一切屠殺, 皆令禁斷; 無足, 二足, 四足, 多足, 種種生類, 普施無畏無欺奪心, 廣修一切菩薩諸行, 仁慈莅物, 不行侵惱, 發妙寶心, 安隱衆生; 於諸佛所立深志樂, 常自安住三種淨戒, 亦令衆生如是安住. 菩薩摩訶薩令諸衆生住於五戒, 永斷殺業.”
더하여, 「십지품(十地品)」 이구지(離垢地)의 십선법에서는 내용에서는 구체적 상황의 예시를 들어 삼취정계의 형태를 찾아볼 수 있다.
① [不殺生]
보살이 이구지(離垢地)에 머물면 저절로 일체의 살생을 멀리하여…일체 생명을 이롭게 하고 자비심을 일으켜 …나쁜 의지로 중생을 괴롭게 하지 않는데, 하물며 그들을 고의로 살해하겠습니까.
② [不偸盜]
그는 또 일체 도둑질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소유에 만족할 줄 알고, 만약 타인에 속한 물건이라면 훔치려는 마음을 내지 않습니다. 타인이 사용할 물건에 대해서는 주지 않으면 가지지 않습니다.
③ [不邪淫]
그는 또 사음(邪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내에 만족하고 남의 여자에 대해 한 생각도 내지 않습니다.
④ [不妄語]
그는 또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진실한 말 · 분명한 말 · 시기에 맞는 말 등을 선호하여, 심지어 꿈 속에서도 거짓말을 하지 않거늘 하물며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⑤ [不兩舌]
그는 또 이간질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남의 사이를 깨뜨리려는 마음이 없고, 누군가 싸우거나 사이가 갈라진 사람이 있으면 그 중간에서 화해시키기를 항상 좋아합니다.
⑥ [不惡口]
그는 또 나쁜 언어를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거칠고 남을 속이고 괴롭히는 언어는 그 자신을 파괴시킬 뿐 아니라 타인마저 해치므로 그러한 언어는 모두 멀리합니다.
⑦ [不綺語]
그는 또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항상 말을 수호하여 해야할 때는 말하고 하지 않아야 할 때는 말하지 않으며, 때를 기리어 말하고, 이롭게 말하며, 법을 따라 말하고, 요량하여 말하며…하물며 일부러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을 하겠습니까.
⑧ [不貪欲]
그는 타인의 물건을 탐내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타인에 속한 물건이거나 타인이 쓸 물건에 대해서는 자신이 소유하려 생각하지 않습니다.
⑨ [不瞋等]
그는 성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중생들에 대해 사랑하는 마음과 자비의 마음을 냅니다.
⑩ [不邪見]
또 그는 길흉을 점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른 견해를 닦아 행하고 결정코 죄와 복의 인연을 깊이 믿습니다. 또 그는 아첨하거나 속이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정성껏 삼보에 대한 믿음을 결의합니다.47)
47) 大方廣佛華嚴經巻24(K79, p.169b14-c7) “菩薩住離垢地, 自然遠離一切殺生, 捨棄刀仗, 無瞋恨心, 有慚有愧, 於一切衆生起慈悲心, 常求樂事, 尚不惡心惱於衆生, 何況加害? 離諸劫盜資生之物, 常知止足, 若物屬他, 他所受用, 於是物中不與不取; 離於邪婬, 自足妻色, 於他女人不生一念; 離於妄語. 常眞實語, 諦語, 隨語, 乃至夢中尚不 妄語, 何況故作? 離於兩舌無破壞心, 於鬪諍離散人中, 常好和合; 離於惡口, 所有言語麤獷苦惡, 自壞其身, 亦壞於他, 如是等語皆悉捨離; 離無義語, 常自守護, 所可言說, 應作不作, 常知時語, 利益語, 順法語, 籌量語, 乃至戲笑, 尚無所犯, 何況故作? 不貪他物, 若物屬他, 他所攝用, 不作是念: ‘我當取之.’離瞋害心, 常於衆生, 求愛潤心, 慈悲心: 離於占相, 習行正見, 決定深信罪福因緣; 離於諂曲, 誠信三寶, 生決定心.”
이구지의 십선법은 초기 대승 교단의 계율 형성이 ‘止惡[律儀戒, 자리]’과, 더 나아가 선을 실천하는 의지인 ‘行善[攝善法戒, 자리]’을 통해 악업을 끊기 위한 노력, 즉 선업 실천 의지인 바른 견해를 중요시하였던 출가사문들의 규범을 포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止惡과 行善의 두 가지 규범에 보살도 최상의 미덕이라 할 수 있는 ‘적극적 이타[饒益有情戒, 利他]행’이 더해져 세 가지 삼취정계의 형태가 갖추어진 것이다.
삼취정계는 상기 내용에 보이는 십선법의 내용에 세부적 실천 항목들이 각각 더해져 시간이 흐르며 대승 보살계의 체계를 형성하게 되었다.48)
보살의 의무와 권리 규준은 결국 삼취정계 3가지 덕목의 실천 방향을 따라가 보면 내재된 보편적 가치의 내용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인격적 역량 발전의 도모를 거쳐[止惡] 나아가 십선법으로 축약되는 윤리적 지침 실천[行善]에 힘쓰고, 마지막으로 적극적 이타행을 실행하는 구조인 것이다.
자리(내적)-자리(외적)-이타로 이루어진 삼취정계의 도식적 흐름은 인간 보편의 의무이자 황금률에 대한 원칙의 제시를 함께 보여준다.
또한 이러한 보편적 의무의 개념인 지계의 내용은 권리에 대한 함의를 함께 제시해 주는데, 아래 <표 1> 내용을 통하여 확인해 보도록 하겠다.48)
삼취정계의 내용은 이후 유가행파의 근본 경전인 瑜伽論菩薩地, 地持經, 善戒經에 설해진 보살계로 발전되어 화엄경에서 시작된 계율 덕목들은 더욱 세분화되고 구체화 되었다.
본고의 목적은 화엄경의 계율에서 목격되는 보편적 가치를 통하여 시민성 개념을 정립하려는 것이므로 삼취정계에 대한 세부 내용은 더 자세히 서술하지 않기로 한다.
<표 1>
십선법 의무(A) 권리(B)
불살생 살생하지 말라 살해당하지 않을 권리 신
불투도 타인 소유의 유·무형 재화를 탐하지 말라 자산을 침해당하지 않고 경제적 불평 등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신
불사음 비윤리적 성생활을 금하라 성적 폭력·학대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신
불망어 거짓된 언어를 삼가하라 허위 정보에 대한 필터링을 제도적으 로 요구할 수 있는 권리 구
불기어 비생산적 언어를 삼가하라 건전하지 않은 소통 문화로부터 자유 롭고, 보호받을 권리 구
불악구 악한 언어를 삼가하라 직·간접적 폭력 및 혐오와 차별 등의 소통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구
불양설 이간질 하지 말라 갈등 조장·사회적 분열로부터 공동체 내에서 보호받을 권리 구
무탐욕 지나친 탐욕을 경계하라 지속 가능한 방식의 소비생활을 실천 하고 자원 분배 불평등 의
으로부터 소외 당하지 않을 권리
무진에 분노를 버리고 경계하라 개인적 범주를 비롯해 집단의 증오범죄, 정치적 양극화 등 의
극단의 대 립과 갈등에 희생되지 않을 권리
무치 삿된 견해를 경계하라 열린 사고와 올바른 덕성을 갖추고, 생 명 보편의 가치를 의
함께 탐색할 권리
상기 십선법의 조항을 면밀히 살펴보면, 공통의 논리적 구조를 확인해 볼 수가 있는데, 도식화해 보면 다음과 같다.
<표 2>
의무 A는 B에게 10가지의 악업을 하지 말라(본래 십선법).
권리 B는 A로부터 10가지의 악업을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표1>의 신 · 구 · 의 삼업을 보면, 의업에 해당하는 무탐 · 무진 · 무사견의 세 가지는 <표2>의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을 것이다.
탐욕이나 분노 그리고 삿된 견해는 일차적으로 ‘의업 주체(A)’를 해하는 것이고,의업의 대상인 ‘타자(B)’가 직접적 영향을 받을 수도, 받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악업은 행위 주체(A)에 국한되는 업이라 할 수는 없다. 탐욕의 경우, 반드시 탐욕의 대상이 되는 사람 또는 사물(B)이 외부에 존재해야 하고, ‘탐욕’이라 정의될 만한 수준의 심리적 업력이 상승되면 이미 그 탐욕은 외부 대상을 필연적으로 향하게 된다. 나머지 두 가지 의업들 역시 유사한 성격으로 파악될 수 있고, 그렇다면 세 가지 의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의무(A)-권리(B)의 논리구조가 성립될 수 있을 것이다.
2) 보살도의 시민적 연대와 협력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황금률에 준하는 십선계의 덕목들은 열반의 추구라는 불교적 최고선이 개인의 과제로 한정되지 않으며, 열반을 지향하는 ‘나’와 더불어 타자와 함께 지향해야 할 공동의 가치로 부상되는 단계적 지침에 대한 자리 이타적 흐름을 보여준다.
주지하다시피 보살 사상의 존재론적 요체는 空의 체득과 不空의 건립이다.
나를 비롯한 다수의 타자들이 함께 열반으로 향하는 실천을 행하지만 보살은 空인 동시에 不空의 상태를 체득하였으므로 ‘내가 누군가를 구제하였다’ 혹은 ‘내가 이타행을 하였다’라는 의식조차 여읜 경지에 머무른다.
즉, 타자를 요익케 하는 것은 곧 나 자신을 요익케 하는 것이고 이 같은 자리이타에는 어떠한 邪見(mithyā-dṛṣṭi)도 끼어들 수 없다. ‘나를 보존시키려는 의지’적 경향을 끊어내고[空]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신체[不空]를 지닌 보살은 건립된 기세간 내에서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속해있는 세계를 위한 참여와 협력에 전력을 다할 것이다.
참여와 협력은 내적 윤리관의 형성과 강력한 이타주의적 요익중생 추구를 지침으로 하는 삼취정계의 특성이기도 하다.
보살의 존재 양태가 무인 동시에 유이기 때문에 가능한 지침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관조하는 진정한 사유는 ‘있는 그대로 놓아버리는 방임’과 결을 달리한다.
‘이것이 어떠한 상황인가?’, ‘문제를 드러내는 올바른 상황 내 우리가 있는 것인가?’
혹은 ‘우리는 상황 해결에 있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실용적 사유와 실천의 모색에 다름 아닌 것이다.
보살의 세계는 적극적 개입과 사유 작용이 요구되는 것이고, 지계의 내용은 바로 그러한 책임과 덕성의 함양을 그대로 담고 있다.
화엄경 「입법계품」에서는 선주비구(善住比丘)의 가르침을 빌어 공의 이치를 위한 지혜의 증득을 위한 방법론으로 앞서 제시된 바 있는 십선계를 비롯한 계의 적극적 수지 · 실천이 제시됨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선남자여, 나는 이미 보살의 장애 없는 해탈의 문[菩薩無碍解脫門]을 성취하였으므로 오고가고 다니고 그칠 때 맞추어 사유하고 수습 관찰하여 곧 지혜의 광명을 얻었으니 이름이 ‘궁극적으로 장애 없음[究竟無碍]’이다…(중략)..선남자여, 나는 다만 속히 부처님께 공양하고 중생들을 성취시키는 데 걸림없는 해탈문만을 알고 있으며, 저 보살들이 대비심을 발하는 계행 · 바라밀 계행 · 대승의 계행 · 보살도와 상응하는 계행…(중략)…보리심을 버리지 않는 계행 · 항상 불법으로 타자를 위하는 계행 · 온갖 지혜에 항상 뜻을 두는 계행…(중략)…이러한 공덕들에 대해 내가 어떻게 알며 말할 수 있겠는가.49)
‘잘 머무른다[善住]’라는 설법자의 명칭은 ‘삼계의 미혹을 다스려 머무는 바 없이 머무른다’라고 하는 의미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50)
더불어 ‘보살의 장애 없는 해탈의 문[菩薩無碍解脫門]’으로 얻은 지혜 광명은 곧 ‘일체법이 공(空)하다고 하는 것을 관조할 수 있는 힘’51)이다.
49) 大方廣佛華嚴經巻62(K80, pp.819b8-820a2) “善男子!我已成就菩薩無礙解脫門, 若來若去, 若行若止, 隨順思惟, 修習觀察, 卽…時獲得智慧光明, 名: 究竟無礙… 善男子! 我唯知此普速疾供養諸佛成就衆生無礙解脫門. 如諸菩薩持大悲戒, 波羅蜜戒, 大乘戒, 菩薩道相應戒…不捨菩提心戒, 常以佛法爲所緣戒, 於一切智常作意戒… 而我云何能知能說?”
50) 新華嚴經論巻34(T36, p.958a), 권탄준(2007), 83에서 재인용.
51) 권탄준(2007), 83.
선주비구의 법문이 시대의 요청에 답해줄 수 있는 이유는 요컨대 보살의 지혜 광명을 위한 실천의 시작이 십선법을 비롯한 계를 수지하는 것이고, 그러한 실천은 궁극적으로 ‘걸림없는 해탈의 문’ 앞에 한 발 내딛는 ‘보살로서의 나’를 자각하게 되는 순간으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시민의 덕성 또한 크게 상이한 맥락이라 할 수 없다. ‘덕성’이란 도덕적 품성과 인격의 완성을 위한 부단한 내면화의 노력을 의미하고, 자신과 타자의 복지를 함께 고려하는 윤리성의 단순한 ‘실천’이나 ‘실행’이 아닌, 체화를 통한 삶의 태도와 내면의 성품 혹은 습관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덕성은 궁극적으로 자신을 비롯한 외부 타자들과의 연대 속에서 실행되어야 하는, 공동체 속 주체의 실현을 위한 덕이다.
다시 말해 화엄경의 보살도가 함의하는 시민의 협력은, 공동체 내의 각 개인들이 최적의 사회환경을 마련하는 수단으로서의 협력일 뿐 아니라 ‘나’ 자신이 완전히 세계 속에 존재하는 동시에 ‘지계[덕성]와 일치하는 완전한 삶’의 활동52)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52)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 내린 행복(eudaimonia)은 ‘궁극적이고 자족적인 삶의 목적이며, 가장 고귀하고 유쾌한 선이며 ‘완전한 덕에 일치’하는 완전한 삶이란 지혜의 실행이자 관조를 말한다’라고 하였다. Aristotle, H(1926), 1097b 14-1177 27 참조.
Ⅳ. 세계시민보살의 덕목: 화엄 세계관의 실천
1) 보편적 영성: 평상심의 회복
화엄 사상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은 온 우주에 편재[十方遍在]한 시방불이다.
먼저 화엄경에 설해진 편재해 있는 비로자나불에 대한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겠다.
비로자나불의 큰 지혜 바다는 광명이 두루 비추어 한량이 없다53).
부처의 몸은 온 법계에 충만하여 널리 일체중생 앞에 나투신다54).
모든 부처의 몸은 오직 하나의 법신이다55).
하나의 몸이 무량이 되고 무량의 몸이 하나로 돌아온다56).
이 연화장세계 바다 속 하나하나의 먼지속에 일체의 법계가 갖추어져 있다57).
53) 大方廣佛華嚴經卷2(K79, p.13b25) “盧舍那佛大智海, 光明普照無有量.”
54) 大方廣佛華嚴經卷6(K80, p.460c24) “佛身充滿於法界, 普現一切衆生前.”
55) 大方廣佛華嚴經卷5(K79, p.37b22) “一切諸佛身, 唯是一法身.”
56) 大方廣佛華嚴經卷13(K80, p.499c04) “一身爲無量, 無量復爲一.”
57) 大方廣佛華嚴經卷3(K79, p.21b04) “於此蓮華藏, 世界海之內, 一一微塵中, 見一切法界.”
상기 내용을 바탕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첫 번째, 우주는 무한한 유기체이자 동력체로서 비로자나불은 편재된 동시에 무수히 많은 몸으로 자유로이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편재된 모든 부처는 하나의 몸이며 낱낱의 먼지 속에도 일체의 법계가 담겨있고 법계는 부처의 몸으로 충만하므로 이러한 우주 자체가 하나의 유기체이다.
즉 하나 속에 전체가 있고 전체 속에 하나가 있다[一卽多多卽一].
세 번째, 모든 부처의 몸은 하나의 법신인 까닭에 諸佛은 곧 비로자나불이다.
우주의 구조는 수많은 부처가 각각의 불국토에 주 하는데, 우주는 곧 연화장세계로 비유되며 연화장세계의 주불이 비로자나불이므로 우리가 경험하는 제현상들은 모두 비로자나불의 현현이다.
화엄 사상에서 현상을 이해하는 주요한 메타포는 법신으로서의 연화장세계뿐만이 아니다.
‘해인삼매(海印三妹)’는 바람이 일지 않는 맑은 수면위에 비추는 사물과 같이 마음이 고요할 때 萬像이 현현하는 내적 상태를 의미58)하는데, 화엄경은 인간 일상의 삶이 비로자나불의 바다를 유영하는 것과 같음을 설하고 있다.
불자들이여, 비유하면 큰 바다가 일체중생의 물질적 형상[色像]의 본질적 진리[印]가 되기 때문에 그것을 인(印)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여래 · 응공 · 등정각의 보리도 역시 그와 같아서 일체중생의 생각과 모든 감관이 보리 가운데 나타나지만 나타나는 바가 없으므로 여래를 일체각(一切覺)이라 하는 것이다.59)
비유하면 저 모든 큰 바다에 일체중생 무리의 형상들이 모두 선명히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을 일체의 인(印)이라 하는 것처럼 온 우주 저 모든 세계의 일체 중생들이 위없는 저 보리 바다에 무엇이던 나타나지 않는 것이 없다.60)
58) 華嚴一乘教義分齊章卷1(T45, p.484a19) “謂此一乘教起要依佛海印三昧中出. 不同三乘等依佛後得智出.”‘해인삼매’는 화엄경의 總定으로 일컬어진다.
59) 大方廣佛華嚴經卷35(K79, pp.249a08-11) “佛子! 譬如大海爲一切衆生色像之印, 是故大海說名爲印; 如來, 應供, 等正覺菩提亦復如是, 一切衆生心念諸根, 現菩提中, 而無所現, 故說如來爲一切覺.”
60) 大方廣佛華嚴經卷35(K79, pp.249c12-13) “十方世界中譬如諸大海, 一切衆生類, 色像悉顯現, 故說一切印. 一切衆生類, 無上菩提海, 無法而不現.”
해인삼매가 다음 절의 내용인 법계 연기관과 함께 화엄 사상의 세계관을 이루는 이유는 온 우주의 삼라만상이 우주 자체의 대 삼매, 다시 말해 비로자나불의 삼매 안에서 그림자이며 진리로서 역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토대로 우주 안의 그 어떤 현상과 사물도 고정적 근거 없이 대 삼매에 의거해 비로자나불의 바다를 유영한다.
종차별도, 인종주의도, 빈부의 격차도 고정적이지 않으므로 그 어떠한 이방인도, 배제와 폭력의 악순환도 근거를 잃는다.
무엇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것이 동시에 해인삼매 안에 있다는 것을 뜻하고, 거꾸로 다시 그것이 해인삼매를 반영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비로자나불에 감싸여 있으면서도 존재는 다시 비로자나불을 감싸 안고 있다.
해인삼매의 세계는 나의 참여가 커질수록 더욱 확장되어 간다.
Ⅲ장에서 살펴본 선주비구는 세계 참여의 방법론으로 십선계를 제시하며 ‘보살의 장애 없는 해탈의 문’이 확장되는 세계의 문임을 역설한다.
요컨대 구도(求道)의 핵심은자아 내에 현존하는 활동력에 대해 얼마만큼의 찬동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구도의 행보는 매일의 삶이며, 타자와 연대하는 삶 속의 실천이자 시민으로서의 역량이다.
찬동력의 정도는 평상심의 정도가 일상의 삶 속에서 십선계와 어느 정도 일치되었는지 여부에 의해 결정될 것이고 이러한 평상심이 곧 ‘보편의 영성’이라 할 수 있다.
세계시민보살은 해인삼매의 세계를 이해하고 깊이 받아들이고 내재화하여 자신이 속한 세간을 더욱 선한 방향의 연화장세계로 창조해 나아갈 의지를 지닐 것이다.
보편의 영성을 회복하는 것은 십선계의 도덕률과 자신의 덕을 일치시키는 삶을 살며, 해인삼매의 우주 속에서 능동적으로 가치를 창조하는 주체성의 회복이다.
집단의 구성원으로 살아가야 할 필연의 개개인들은 역량을 회복하고 세간을 ‘함께’ 선한 의지로 개선해 나아갈 주체로 부상할 것이다.
이와 같이 부상된 윤리적 주체는 해인삼매라는 필연의 법칙 안에서 능동적 참여와 실천의 도약을 통해 시민의 덕성을 재구성할 수 있다.
2) 상호 긍정의 세계관: 법계 연기관
앞 절에서 비로자나불의 편재성으로 풀이되는 화엄의 세계관을 알아보았던바, 우주의 모든 현상은 연기이며 공한 까닭으로 상호의존의 관계성을 지닌다.
심리적 현상 뿐 아니라 우주의 모든 물리적 원리와 현상이 상호의존적 생성의 과정이라는 뜻이다.
화엄 사상은 우주의 모든 현상에 연기 이론을 적용한 법계 연기론을 세계관으로 한다.
모든 것은 자기 자신 –이라고 믿는- 의 힘과 의지로는 존재 불가능하다. 만약 어떤 사물의 근저에 형이상학적 실체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 사물은 여타의 사물들과 진정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상호의존적인 까닭에 존재의 의미가 존재 자체 이외의 다른 것들을 통해 정의된다면, 일체가 공하다는 입장에서 존재와 존재 이외의 다른 것들은 그 어떠한 위계 없이 동일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결국 상호 의존성[相入]과 동일성[相卽]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고 모든 존재는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으면 성립이 불가하므로 연기적 관계라 할 수 있다.61)
61) Francis H. Cook(1994), 63 참조.
화엄 사상은 모든 것이 상호 의존하여 생성 · 소멸한다는 우주관을 표방하며 이러한 우주를 법계(法界)라 한다.
법계는 이사무애(理事無礙)와 사사무애(事事無礙)로 나누어 이해될 수 있는데, 이사무애란 현상과 원리가 융통하다는 것이고, 사사무애란 개별현상들이 상호 융통한다는 것이다.
이 모든 현상의 총화가 무한히 반복되는 상즉과 상입으로서의 우주이자 사사무애 법계를 화엄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의 몸[법신]으로 간주하는 것이 화엄 사상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62)
62) 위의 책, 112.
사사무애 법계를 비로자나의 법신으로 본다는 것은, 인식되는 모든 현상들과 모든 존재들이 함께 더불어 비로자나불의 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 절에서 살펴보았듯이, 인간이 보살도의 덕목을 더욱 증장해 나아갈수록 해인삼매의 정도가 깊어진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사사무애 법계관은 인간이 타자와의 관계를 확장해 나아갈수록 비로자나 법신과 일체가 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요컨대 사사무애가 학습된 보살의 실천은 세계 속에서 이웃들과의 연대감을 통해 해탈을 추구할 것이다.
보살이 일체중생을 해탈시킬 때까지 자신의 성불을 미루겠다고 서원하는 근거 역시 화엄의 세계관에 내재된 상즉 상입의 개념에서 비롯된다.
우주와 존재는 분리된 실체가 아닌, 상호 존재 자체를 가능케 해주는 의존관계이며 비로자나 법신안에서 하나의 법계로 연결되어 형성되어 있다.
서로의 肢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법계 개념에 따르면 자신과 타자를 분리된 존재로 간주하는 것은 우주의 실상을 보지 못하는 까닭이고, 자신의 삶이 타자의 삶과 분리되어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 역시 비로자나 법신의 개념과 모순을 이룬다.
법계 개념에는 한 인간의 신 · 구 · 의 삼업이 필연적으로 타자의 삼업에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논리가 포함되어 있다.
보살은 이러한 세간 속에서 자신과 타자를 위한 한 가지의 원칙을 택할 것이다.
그것은 자신을 이롭게 하는 동시에 타자를 이롭게 하는 ‘자리이타’의 원칙이다.
그렇다면 타자에 대한 ‘이로움’이란 무엇일까?
모든 번뇌의 원인은 무명이므로 일체의 법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고, 곧 세간과 출세간에 대한 유능함과 선함을 증장시켜 주는 것이다.
자신의 덕성을 비로자나 법신에 이르기까지 확장해 나아가며 이웃의 덕성을 역시 동등히 확장해 주는 것, 다시 말해 세계 모든 이웃들이 해인삼매를 이루는 그날을 지향하는 것이다.
보살행의 철학적 근거를 우주 법계의 일체가 비로자나 법신을 이루고 있다는 세계관으로 담보하는 것만큼 세속 안에서 타자와의 관계는 기꺼운 의무로서의 자비만이 남게 될 것이다.
화엄 사상에 있어 비로자나불은 시공간을 초월해 편재해 있고 보살이 이 사실을 삶의 덕목으로 삼는다면 그가 경험하는 모든 사건들과 사물들 그리고 관계안에서 비로자나불과 표리일체를 이루어 단독적 관계를 형성해 나아갈 것이다.
비로자나불과 일체가 된다는 것은 총체성을 본다는 것이고, 총체성을 본다는 것은 주체로서 자신이 곧 공성이 된다는 것이며 모든 것을 포용하기 위해 모든 것을 에워싸는 지속적인 경계의 확장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 같은 세계 인식의 방식이 바로 윤리성의 덕목을 담보해 주는 법계 연기관의 구조적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화엄 세계의 시공간적 내부의 연결성은 곧 관계성의 누적체이다.
따라서 이러한 ‘관계성’에 대한 명료한 이해와 인식의 전환이 삼업의 윤리성을 담보해 줄 것이다.
세계속의 타자에 대한 상호 영향력을 인식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지혜와 不一不二 관점에서 보살행이 가능해지는 윤리적 주체로의 전환이 가능해질 것이다.
유기체의 생명 유지 활동은 ‘나’의 유지와 보존이다.
그런데 이것이 가능해지려면 주변 환경과 여러 조건들의 공생과 희생은 필수 불가결하다.
동물과 환경 간 상관관계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것은 되먹임(feedback)관계로 정리될 수 있겠다.
요컨대 세계와 주체 사이의 선순환적 되먹임 관계가 왜 필요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세계시민보살의 정체성은 바로 이 지점에서 정립된다.
‘자기중심’에서 생명 · 공생 · 세계를 중심에 두는 이타주의의 발현이 가능해지는 지점인 것이다.
이를 통하여 우주적 관계성을 회복하는 긍정의 인식 전환이 요구되며 이를 실천하는 주체가 ‘세계시민보살’이다.
3) 세계시민보살 개념 정립의 필요성
Ⅱ장에서 알아보았던바, 서구 전통의 자유주의 및 공화주의가 표방하는 시민성 덕목은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와 관점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자유주의가 지니는 고립된 개개인의 파편화 그리고 공화주의가 지니는 공동체 중심주의로 인한 보편적 가치의 배제 문제[특수주의]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논의되어야 할 시민의 책임과 덕성이 더 나은 보편의 도덕률을 담지하면서도 국지적 특수성을 포괄하는 시민성을 필요로 함을 보여준다.
전 지구적 문제의 경우 주권 국가단위 해결이 용이하지 않은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적지 않게 거론되는 제3의 담론은 ‘세계시민주의(cosmopolitanism)’63)이다.
63) 세계시민주의적 이상은 세계주의에서 연원되었고 누스바움(M. C. Nussbaum)은 스토아학파로부터 이론을 발전시켰다.
세계시민주의의 역사적 기원은 고대 헬레니즘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4세기 키니코스(Cynicos) 학파는 세계시민(kosmopolites)이라는 개념을 처음 사용하였으며, 키케로, 세네카, 아우렐리우스와 같은 스토아학파는 이러한 세계시민주의를 수용하여 더욱 발전시켰다.근대세계시민주의는 볼테르와 칸트 사상, 프랑스 인권 선언 등에 나타난 계몽주의 사상을 수용하여 이론적 기반을 강화하였으며, 근대 국제법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해 주면서 발전하였다.
히터(D. Heater)는 20세기 세계 시민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4가지로 구분하고 있다.64)
첫째, 아주 막연한 수준에서 인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세계 시민이다.
둘째, 세계 정부를 건설하기 위해 구체적인 실천을 하는 세계 시민이다.
셋째, 개인이 속한 국가보다 높은 수준의 도덕 법칙에 의해 개인이 구속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기초한 세계 시민 개념이다.
말하자면 국제법에 의해 규정되는 세계 시민이다.
마지막으로
넷째, 세계 정부의 수립과는 상관없이 지구적 의식과 지구적 책임감을 지닌 존재로서의 세계 시민 개념이다.
여기에서 세계 정부를 추구하는 두 번째 견해는 많은 비판을 받고 있기 때문에 세계시민주의 개념으로는 적절하지 않다.65)
더불어 ‘세계주의와 세계시민성의 확장은 선의의 프로젝트가 아니며 그것은 유럽 제국의 역사와 연계되어 있는 다분히 유럽적인 관념인데다, 세계시민성의 이상은 비서구 세계를 문명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 그들의 역사적 사명이라는 서구의 오랜, 그러나 왜곡된 역사와 관련이 있다는 점’이라는 적지 않은 비판이 산재한다.66)
64) D. Heater(1998), 170-176. 변종헌(2006), 13에서 재인용.
65) 김지현 · 손철성(2009), 98.
66) 변종헌(2006), 148; 샌델은 공동체주의 입장을 견지하고 세계시민주의를 비판한다. 그는 세계시민주의가 쇼비니즘을 저지하거나 해외 원조의 의무를 부각시키는 등 여러 장점을 갖고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인류 전체에 대해 일정한 책무를 갖고 있다는 세계시민주의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우리가 거주하는 더 포괄적인 공동체들이 더 지역적인 공동체들에 항상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은 잘못이다”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계시민주의가 특수한 정체성보다는 보편적 정체성을 ‘항상’ 우선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점이 있다는 것이다. M. Sandel(2008), 125
유럽의 해외 식민지 건설 과정에서 세계주의는 식민지 국가를 문명화한다는 사명감(civilizingmission)을 반영한 것이거나 제국주의적 팽창 의도를 은폐하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히터의 세 번째 정의 즉, ‘국제법에 의해 규정되는 시민’이라는 측면은 국가법을 하위로 포섭하는 ‘국제법’이라는 다소 모호하거나 혹은 위험한 상위 법칙이 상정된다.
덕목으로서의 체화가 아닌 법률상의 상위 법칙은 국제사법재판소(ICC) 판례의 실효적 측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그것이 구속력이 있거나 없거나의 여부를 떠나 모호하며 동시에 위험 요소를 담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지구적 시각에서 온 생명을 아우르는 보편의 도덕률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대량 살상무기와 팬데믹 그리고 기후 위기에 더하여 인공지능으로 인한 경제 제도의 급속한 변화는 작금의 생존이 절멸의 위기에 처해 있는 인류의 현실임을 직시해야 한다.
상호 의존성과 지구에 대한 깨어있는 책임의식을 지닌 새로운 시민의 덕성이 요청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존의 세계시민주의는 인류 보편의 존엄과 권리를 지향하는 보편주의를 지향하였다.
따라서 공동체주의가 표방하는 집단적 특수성 및 집단 내부로부터 규정되는 객관성과 논리적으로 상치된다는 이유로 이론적 허점이 다소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하는 세계시민은 존재 이유가 정합적이지 못하다.
공동선을 지향하는 하나의 단일 정부 협의체라는 것 역시 세계시민주의가 약소국가 주권 침해의 가능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제약을 분명히 드러냈다.
그러나 ‘세계시민보살’의 개념은 법계 연기관 특유의 세계 인식론 자체가 ‘一卽多多卽一’의 특수성을 포월하는 보편성의 색채가 선명하다.
더불어 보살의 십선계가 보여주는 도덕률의 기준은 시민으로서 규준화 해야 할 의무와 권리를 동시에 제공해 줌으로써, 창조주 없는 존재론과 세계관 내에서 형이상학적 상벌의 도그마가 소거된 윤리관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세계시민보살’은 그러한 이유로 시의적절한 유용함을 지닐 수 있다.
Ⅲ장에서 살펴본바 화엄의 세계관은 대승불교의 종교성을 지니는 동시에 어떠한 도그마로부터 자유로운 특징을 지닌다.
비로자나불의 법신이자 상호의존적 세계 속에서 저마다의 구슬[특수성]은 서로를 비추이는 동시에 구슬 하나하나는 전체의 우주를 이룬다67).
67) 大方廣佛華嚴經卷8(K80, pp.471c06-15) “普賢菩薩復告大衆言: 諸佛子!此世界海大輪圍山內所有大地, 一切皆以金剛所成, 堅固莊嚴, 不可沮壞; 淸淨平坦, 無有高下; 摩尼爲輪, 衆寶爲藏; 一切衆生, 種種形狀; 諸摩尼寶, 以爲閒錯; 散衆寶末, 布以蓮華; 香藏摩尼, 分置其閒; 諸莊嚴具, 充徧如雲, 三世一切諸佛國土所有莊嚴而爲校飾; 摩尼妙寶以爲其網, 普現如來所有境界, 如天帝網於中布列. 諸佛子!此世界海地, 有如是等世界海微塵數莊嚴.”
구슬 하나는 부분인 동시에 전체를 포섭[보편성]한다.
이처럼 생성 소멸하는 거대한 세계의 망은 상호의존의 관계[空]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보살의 십선계는 인드라망으로 이루어진 세계 내 보편의 의무와 권리를 충족하는 도덕률이다.
요컨대 ‘세계시민보살’은 특수주의를 포월한 보편주의를 표방한다.
그것은 붓다 교설 특유의 불교 윤리적 순기능이기도 할 것이다.
‘세계시민보살’의 정체성은 세계를 이롭게 하는 보살로서 ‘利生보살’이다.
‘세계시민보살’의 보현행은 자신[自覺]과 타자[覺他]를 아우르는 이로움을 체현하는 覺行窮滿속에서 실현된다.
화엄 사상을 기반하는 ‘세계시민보살’은 사상적 기반인 연화장세계 그대로가 ‘긍정[性起]’이므로 기존의 세계시민주의가 표방하는 보편주의적 획일화라는 가치의 박제화에 대한 우려를 잠식시킬 수 있다.
Ⅴ. 나오는 말
본 논문은 ‘불교적 시민성’개념 정립 시도를 목적으로 화엄경에 제시된 법계연기 세계관과 십선계의 도덕률을 근거하여 ‘세계시민보살(Universal Bodhisattva citizenship)’이라는 지향점의 사상적 기반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서구 전통 시민성 논의에 있어 자유주의 전통의 약점으로 꼽히던 원자화 되어버린 파편적 관계성과 개인주의 문제 그리고 공화주의 전통에서 위험성의 여지로 지적되는 신념이 위협 요소가 되는 전체주의 등의 발현은 분명 경계해야 할 요소들이다.
따라서 ‘세계시민보살’개념은 상기 난제들을 해소할 수 있는 적절한 종교 윤리적 대안임과 동시에 불교 시민성 개념 정립의 마중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자유주의 및 공화주의 그리고 세계시민주의 등의 노선들이 세간 속에서 있는 그대로 이론적 구현을 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이론적 구현이 현실에서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전체주의와 같은 사상적 왜곡이 다시금 출몰하고 있다는 반증의 신호일 것이다.
요컨대 자유주의 및 공화주의 전통 시민성에 대한 대안으로서 화엄 사상이 가지는 시민성 덕목을 보살도를 통하여 접근을 시도 한 바, Ⅲ장의 보살 사상에 함의된 평등성의 요소를 보살 가나 집단이 형성된 배경으로부터 확인해 볼 수 있었다.
더불어 십선계의 항목은 보살의 의무와 권리가 계율의 형태로 정리될 수 있음을 파악하였다.
보살이라는 존재 양태는 공동선을 향유하는 시민 덕성의 주요한 지향점으로서 ‘세계시민보살’의 이론적 토대 형성에 있어 핵심이 되는 인간상이다.
이어 Ⅳ장에서는 ‘세계시민보살’이 가지는 시민의 덕목으로서 해인삼매를 통한 평상심의 회복을 보편적 영성으로 정리하였다.
종교 윤리로서 그리고 불교 윤리로서 영성의 요소는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며, 존재적 연결성을 중심으로 하는 보편화 된 영성이 추출될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하였다.
해인삼매에 이어 법계 연기관을 통해 공적영역 윤리관을 재 확립하는 과정에서는 ‘세계시민보살’로서의 개인이 어떠한 흐름으로 공동선을 향한 주체적 도약이 가능한지 발견할 수 있었다.
이는 ‘세계시민보살’이라는 개념화 정립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개념임을 보여준다.
일련의 지구적 문제들에 대한 선의지 공유와 공동의 논의가 절실하지만, 공화주의[공동체주의]는 원자화된 개인이 무화된 집단적 가치만이 여과되어 남을 수 있다.
따라서 건강한 시민성이 안착되려면, 더욱 건강한 개인의 시민적 덕목이 ‘이미’ 형성되어 있거나 적어도 ‘형성하기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 방법론을 화엄 사상의 보살도에서 정제해 보았고, ‘세계시민보살’이라는 주체는 개인과 집단 그리고 보편주의와 특수주의를 포월하는 종교 윤리적 대안으로 충분한 가능성을 보인다는 결론으로 마무리하였다.
이 시점에 시민적 덕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는, 그 어떠한 정치적 노선에 서 있다 할지라도 상황을 판단하는 분별의 지혜 그리고 타자의 생존이 곧 나 자신의 생존임을 절실히 깨닫는 상호 의존성의 자각 없이는, 지구와 국가 그리고 사회집단이 구조적으로 강건할 수 없는 까닭이다.
공성을 자각한 ‘세계시민보살’은 ‘적극적 자유’의 실현자이며 ‘공동선을 모색’하는 참여적 성취자이다.
자유와 권리의 보장으로부터 소외되지 않으면서도 공공의 선을 위한 ‘함께하는 것’ 그리고 ‘서로 나누는 것’의 가치를 자각한다.
관계성을 담보한 주체임을 숙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시민보살’은 시민성을 사유하는 두 가지 방식의 서구 전통 자유주의와 공화주의적 한계를 넘어 전지구적 의식과 책임감을 겸비하며 파편화된 관계를 회복하고, 상호 의존성과 동일성의 지혜를 덕으로 삼아 공동선을 지향할 수 있는 새로운 윤리적 전환을 가능케 하는 공적영역의 시민보살로 도약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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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요약
팬데믹, 국지적 분쟁,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 문제 등 전 지구적 위기 상황은 점차 빈 도가 증가하고 그 내용 역시 복잡성을 띠고 있다. 주권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거시 적 문제들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시대적 요구에 응답하는 시민성 개념에 대한 재논의 의 필요성이 요구된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본 논문은 ‘불교 시민성’ 개념 의 정립을 시도하기 위해, 화엄경에 제시된 법계연기 세계관과 십선계의 도덕률을 근거로 ‘세계시민보살(Universal Bodhisattva citizenship)’의 사상적 기반 모색을 목적 으로 한다.
화엄경은 보살 사상을 담고 있는 대승불교의 대표적 경전 중 하나로, 보 살도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정련된 현대적 윤리관을 제 시해 줄 수 있다.
요컨대 화엄 사상으로부터 착안한 ‘세계시민보살’ 개념은 근대 국가 관 이후 펼쳐진 다양한 이론적 논쟁들 이후 교착상태에 놓인 국가와 시민에 대한 유의 미한 정치 철학적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논의를 위한 선단계로 자유주의와 공화주의 전통의 시민성 덕목을 파악하여 시민성이란 어떠한 내용을 담지하는지 알아보았다.
자유주의는 독립된 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보장 그리고 제한된 정부의 역할을 요구하지만, 원자화된 개인의 이기주의가 국지적 집단화되고 공공의 가치가 배제될 가능성이 크며, 공화주의는 공동선에 초점 을 두는 시민의 덕을 최고의 가치에 두지만, 개인이 집단에 함몰될 우려가 상존한다.
한편 ‘세계시민보살’의 사상적 토대인 화엄경의 보살도는 보살 사상의 출발 자체가 평등주의 사상의 단초로 간주될 수 있고, 대승 보살계의 원형인 십선계는 보편의 도덕 률인 의무와 권리를 논리적으로 내포한다.
결론을 요약하자면 ‘세계시민보살’이 시민 성으로서 함의할 수 있는 덕목은
첫 번째, 화엄삼매를 바탕으로 개인은 결코 원자화될 수 없으며 공동선을 지향하게 되는 필연적 논리구조를 지니므로 공성의 자각이 곧 보 편의 영성으로 진화할 수 있다.
두 번째, 법계 연기관을 기반하여 사사무애가 학습된 보살의 실천은 세계 속에서 이웃들과의 연대감을 통해 해탈을 추구한다.
요컨대 무엇 이 공동의 선을 위한 실천인지 명료히 자각하는 영성과 능동성을 지닌다.
결론적으로 ‘세계시민보살’은 시민성을 사유하는 두 가지 서구 전통의 자유주의와 공화주의 전통의 한계를 넘어 전 지구적 의식과 책임감을 겸비하며 파편화된 관계를 회복하고, 상호 의존성과 동일성의 지혜를 덕으로 삼아 공동선을 지향할 수 있는 새로 운 윤리적 전환을 가능케 하는 공적영역의 시민보살로 도약할 수 있다.
주제어: 세계시민보살, 화엄경, 보살, 불교 시민성, 십선계
[Abstract]
The Virtues of the 'Universal Bodhisattva citizenship' from the Perspective of the Avataṃsaka Sūtra's Bodhisattva Philosphy – Theoretical Foundations for Establishing Buddhist CitizenshipToi-woo
Jeong Nyum (Woljeongsa) Mun, Yu-Jeong (Dongguk Univ.)
Global crises, such as pandemics, localized wars, and ecological problems caused by climate change, are increasing in frequency and complexity. In order to respond to macro issues that exceed the boundaries of sovereign states, it is necessary to rethink the concept of citizenship in a way that responds to the times. Based on these issues, this paper attempts to establish the concept of 'Buddhist citizenship' and explores the ideological basis of 'Universal Bodhisattva citizenship' based on the worldview of dependent origination (法界緣起) and the moral code of the Ten Precepts (十善戒) presented in the Avataṃsaka Sūtra (華嚴經). "The Avataṃsaka Sūtra is one of the key sutras of Mahayana Buddhism which contains bodhisattva ideas, and through its in-depth examination of the bodhisattva path it can provide a refined, modern, and ethical view of individuals and communities. The concept of 'Universal Bodhisattva citizenship' derived from Avataṃsaka philosophy can provide political and philosophical insights into the stalemate between state and citizen seen in various theoretical debates since the origin of the modern view of the state. As a preliminary step to our discussion, we identified the virtues of citizenship in the liberal and republican traditions to understand what citizenship entails. Liberalism calls for independent individual freedoms and rights and a limited role for government, but atomized individual self-interest is likely to lead to localized collectivization and the exclusion of public values. Republicanism places the highest value on civic virtues that focus on the common good, but there is the risk (Universal Bodhisattva citizenship)’ that the individual will be subsumed by the collective. In contrast, the Bodhisattva-path of the Avataṃsaka Sūtra, which is the ideological foundation of the 'Universal Bodhisattva citizenship', can be considered to be the beginning of egalitarian thought. Also the Ten Precepts, the prototype of the Mahayana Bodhisattva system, logically imply universal moral laws of duty and rights. In summary, the virtues of citizenship that 'Universal Bodhisattva citizenship' indicate are: first, based on the sāgara-mudrā-samādhi, individuals can never be atomized and have an inevitable logical structure that promotes the common good, so public awareness can evolve into universal spirituality. Second, the practice of the bodhisattva, as taught by the Dharma Realm of Non-Obstruction Between Phenomena, seeks liberation through a sense of solidarity with our neighbors in the world. In short, it acts as a form of spirituality and activism that recognizes clearly what constitutes action for the common good. In conclusion, the 'Universal Bodhisattva citizenship' can leap beyond the limits of the liberal and republican traditional views on citizenship to become a citizen bodhisattva in the public sphere, capable of a new ethical turn toward the common good, with a sense of global consciousness and responsibility, capable of restoring fragmented relationships, and adept at the wisdom of interdependence and sameness. Keywords: Universal Bodhisattva citizenship, Avataṃsaka Sūtra (華嚴經), Bodhisattva, civic virtue, Ten Precepts (十善戒) ▫
2025년 2월 16일 접수 2025년 3월 18일 심사완료 2025년 3월 21일 게재확정
동서철학연구 제115호, 2025. 3.
DOI: 10.15841/kspew..115.2025.03.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