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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유대민족 비판에 관한 성격 연구/송현종外.연세대

한글 요약

‘신의 죽음’으로 대표되는 니체의 그리스도교 비판에 관한 논의를 자세히 들여다보 면, 우리는 니체의 유대민족에 대한 비판도 만날 수 있게 된다. 오늘날에도 니체를 연 구하는 학자들이 니체를 파시즘이나 나치즘과 연관시키는 일이 있지만 드물다. 하지 만, 니체의 사유가 가진 몇몇 특징들은 여전히 어떤 의문에 놓여 있기도 하다.

이에 본 논고는 니체의 유대민족 비판이 어떤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어떤 논리를 배경으로 취하고 있는지를 세밀히 파악하여 비판의 성격을 분명히 하는데, 그 목적이 있 다.

이를 위해서 먼저 니체가 그의 저술 전체에서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는 그리스도교 비판을 중심으로 쟁점이 되는 주제와 개념을 발굴하여 정립하였고, 이 개념들이 당대 유럽을 휩쓴 인종주의와 어떤 연관 관계에 놓여 있는지를 고찰하였다.

이후 니체가 사용한 ‘가치전도’라는 용어가 함축하고 있는 철학적 의미를 역사적으로 다루어보고자 한다.

동시에 ‘가치전도’가 유대-그리스도교적 특징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와 전환의 배경을 기억사적으로 살펴보고자 하였다. 결론적으로 본 논고가 의도하는 바는

첫째, 니체의 유대민족에 대한 비판이 일관되게 철학적이고, 종교적이라는 점을 밝힘으로써 니체의 사유를 정치적 편견이나 인종주의의 혐의에서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며,

둘째로는 니체가 ‘가치전도’와 관련하여 유대민족에 대해 양가적인 태도를 보임을 지적하고, 마지막으로 서양의 사유 전통에서 유대-그리스도교 이전에 대한 기억사적 고찰을 시도함으로써 ‘신의 죽음’ 이후의 가치는 무엇인가? 라는 논의의 지평을 열고자 하였다.

 

주제어: 안티크리스트, 규범전도, 반유대주의, 반셈족주의, 우주신론

 

1. 서론

 

“모든 신들은 죽었다. 이제 우리가 바라는 것은 초인이 사는 세상이다.” -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

 

니체가 행한 신에 관한 담론은 즐거운 학문에서 시작하여, 안티크리스트 에 이르기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이 담론에서 니체는 유럽을 지배해온 그리스도교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일삼으며, 그 내용적 한계와 오류를 명시하고자 하였다.

니체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교는 유럽의 역사 전체를 짓누르는 ‘신’에 관한 지 배적인 원리였기에, 자신의 새로운 사유를 선보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거대한 산이었음이 분명하다. 니체에 의해 세상에 본격적으로 드러난 ‘신은 죽 었다’라는 표현1)이 함축하고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1) 하이데거는 니체를 평가하면서 이 표현의 함의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신은 죽었 다’라는 말은, 초 감성적 세계가 [감성적 세계에 대해 이제] 영향력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초 감성적 세계는 삶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형이상학은 다시 말해, 니체가 플라톤주의라고 이해하였던 서양철학은 그 종말에 이른 것이다. 니체는 그 자신의 고유한 철학을, 형이상학에 대항하는 반대의 운동으로 ... 이 해하고 있다.” Heidegger, Martin., “Nietzsches Wort ‘Gott ist töt’” im Holzwege, Frankfurt am Main: Vittorio Klostermann, 1957, p.217, (국역본) 신상희 역, ‘신 은 죽었다’숲길, 파주: 나남, 2008, 322쪽, 신의 죽음과 관련한 논의를 종교현상 학적으로 다룬 멀치아 엘리아데(Mircea Eliade)는 니체의 ‘신의 죽음’이라는 명제 를 통해서 유일신교의 신(God)은 ‘휴면상태의 신(deus otiosus)’이라는 개념을 도출해 낸 바 있다, Ellwood, Robert., The Politics of Myth; A Study of C.G, Jung, Mircea Eliade, and Joseph Campbell, NY: SUNY Press, 1999. p.118. 니체 또한 선 악을 넘어서에서 이와 유사한 의미로 신의 죽음에 관해 말하고 있다. “‘아버지’ 신 은 근본적으로 거부되었고, 마찬가지로 ‘심판자’, ‘보상자’도 거부되었다. 신의 ‘자유 의지’도 마찬가지다: 신은 인간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 설령 들었다 하더라도, 그는 인간을 도울 수 없다”, Nietzsche, Friedrich., Jenseits von Gut und Böse ; Zur Genealogie der Moral, herausgegeben von Giorgio Colli und Mazzino Montinari, München: Deutscher Taschenbuch Verlag ; Berlin ; New York : W. de Gruyter, 1999, (국역본)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김정현 역, 서울: 책세상, 2002, 25절,50쪽, 이하 국역본을 JGB로 표기. 니체의 ‘신은 죽었다’라는 명제는 서양의 역사를 지배해온 유일신의 죽음으로부터 지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무력함을 함축하고 있다 

 

첫째, 이 표현은 전통적으로 지켜온 그리스도교의 신 관념과 그에 상응하는 교리가 역사적 으로 단절되었음을 내포하고 있다.

둘째로, 단절 이전까지 존재자 전체의 성격 을 규정해온 사유의 틀은 니힐리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니체가 거부 하고 있는 것이 ‘신’ 그 자체인가? 라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 을 것이다. 왜냐하면, 니체가 비판하고 있는 대상을 세밀하게 특정해보면, 그 이 면에 놓인 것이 ‘신’이라기 보다는 그리스도교와 그것의 탄생 배경인 플라톤주 의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니체가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플라톤주의와 그리스도교 양자가 공유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파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필자는 양자가 공유하고 있는 관념으로 ‘초 감성적 세계를 통한 존재자 전체의 규정’과 그에 따른 ‘반자연성에 대한 옹호’를 제시하고자 한 다. 이 공통된 관념을 배경으로 니체의 그리스도교 비판은 두 갈래로 나누어진 다. 그중 하나는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원죄론과 반자연성에 대한 비판인데, 이 두 관념은 유대민족의 근본적인 세계관과 태도를 형성한다. 다른 하나는 예수에 대한 상대적 지지와 더불어 행해지는 복음주의적 성격(바울의 신학)에 대한 비 판이다. 유대민족에 대한 비판은 니체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바그너를 비롯한 여러 인물이 유대민족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고, 이는 정치적인 선동으로 이어지 기 쉬웠다. 이 비판자들이 행한 유대민족에 대한 비판의 주제 중 가장 문제가 된 것으로 ‘반유대주의’를 배제할 수 없다. 19세기 말 이래로 서구 사회에 정치적인 갈등과 혼란을 부추겨온 반유대주의는 알프레드 로젠베르크(Alfred Rosenberg) 와 같은 국가사회주의 이론가들이 니체를 곡해한 근거이기도 하였다. 다른 한편 이러한 경향은 20세기 초에 등장한 신화학자들에 의해 다른 맥락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기도 했다.2)

 

    . 2) Ellwood, ibid, pp.vii–xiv. 394

 

따라서 이 글은 유럽의 반유대주의적 기류들과 니체의 유대민족 비판과의 연관성을 고찰함과 동시에 니체의 유대민족 비판이 어떤 배 경에서 이루어졌으며, 이 비판이 겨냥하고 있는 대상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밝히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니체는 그리스도교가 갖는 가치관을 하나의 역사적 운동으로서의 니힐리즘으로 규정하고, 그 극복을 위해 ‘가치 전도’와 ‘힘에의 의 지’라는 용어를 도입하여 논의를 심화시켜 나간다. 그렇다면 여기서 되짚어볼 것은 애초에 유대민족이 이루어 냈던 ‘가치 전도’는 무엇으로부터의 전도였는지일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해당 논의를 기억사적 관점 에서 다루고자 한다.

 

2. 니체저술에 나타난 그리스도교 비판의 특징

앞서 언급한 니체의 그리스도교 비판의 두 갈래 길을 미리 간단히 제시하자 면, 첫 번째 비판은 구약성서의 원죄론에 기초한 그리스도교의 도덕론 비판에 해당한다. 이 비판의 배경에는 그리스도교가 현실을 추상적-초월적 존재로 대 체함으로써 반자연적 가치를 옹호하는 것에 대한 적대감이 있다. 두 번째는 신 약 성서의 복음주의와 연관이 있는데, 니체가 고발하고 있는 내용은 복음주의자 들이 성서에 나타난 그리스도라는 인물의 삶의 실천은 뒤로한 채 복음주의를 앞 세워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 권력을 추구하였다는 것이다.

 

1) 동정의 종교

니체의 그리스도교 비판은 매우 노골적이다. 니체에 따르면, 그리스도교는 ‘병’을 필요로 하며, (사람들을) 병들게 만드는 것이 교회의 구원(론)에 담긴 진 짜 의도3)라고 매도하고 있으며, 그리스도교 운동은 “인류의 가장 큰 불운”4)이 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니체의 글 중 이 구절만을 떼어놓고 본다면, 이 구절은 학자의 준엄한 비판이라기보다는 그저 악의에 찬 비난에 가까워 보인다. 그렇다 면, 니체의 이 구절을 읽는 이는 이토록 격렬한 니체의 비판이 어디에서 비롯되 었는지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비판의 유래에 대한 단 초는 니체가 그리스도교를 한마디로 “동정의 종교”5)라로 규정하는 데에서 발견 된다.

 

      3) Nietzsche., Friedrich, “Der Antichrist” im Der Fall Wagner; Götzen- Dämmerung; Der Antichrist; Ecce homo; Dionysos-Dithyramben; Nietzsche contra Wagner, herausgegeben von Giorgio Colli und Mazzino Montinari, München : Deutscher Taschenbuch Verlag, 1999 (국역본)안티크리스트, 백승영 역, 서울: 책세상, 2013, 51절, 291쪽 참조, 이하 국역본을 ANT로 표기.

     4) ANT, 51절, 293쪽.

     5) ANT, 7절, 219쪽.

 

니체가 말하는 동정이란 힘, 강인함에 반대되는 것으로써 병들고, 비참한 것을 유지, 보존하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무와 피안을 지킨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삶이 가진 활력을 증대하고, 더 강하게 만드는 경향과는 반대로 동정은 오히려 삶을 무기력하고, 허무하게 만드는 부정적 실천을 함축한다.6)

니체는 존재 전체를 가치의 유지와 보존이 아닌 가치의 생성과 힘의 상승을 중심축으로 사유하고 있기에,7) 동정이 갖는 이러한 성격을 당연히 부정적으 로 본다. 그리스도교에서 동정은 교리를 규정하고 있는 중심적인 가치에 해당하 며, 이는 구약성서의 원죄개념에서 비롯된다. 원죄개념에 기초하여 볼 때, 인간은 유약하고, 고통받고, 억압받고 병든 존재이며, 그래서 결국 동정받아야 할 존 재로 자리매겨진다.

니체의 관점에 볼 때 그리스도교의 원죄 관념은 삶의 향유 (jouissance)를 억눌러 왔으며8), 인간과 자연에 주어진 활력과 건강을 부정하 게 만들어, 생명을 오히려 병들고, 연약한 것으로 취급하도록 만드는 원천이 된 다.그리스도교가 생명에 대한 찬미와 힘에의 증대를 부정하게 된 것은 단순히 억 압받는 자들에 대한 자비와 사랑 때문만은 아니었다. 니체에 따르면, 그 근저에 는 자연과 인간의 본래적인 활력과 생명을 추상적인 것으로 대체하고자 하는 의 도가 있다는 것이다. 사제들은 인간의 자연적 행위가 ‘신’이나 ‘영혼’과 같은 추상적 개념에서 유래한다고 설파함으로써, 행위를 도덕적으로 해석하도록 만들 었다9). 그에 따라 인간 행위를 ‘죄’의 관념으로 판단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고, 자신들의 판단에 따라 인간 행위에 징벌을 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니체가 보기에 죄는 그리스도교가 인간의 탁월한 지식과 고결한 본성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고안해 낸 “인류에 대한 가장 큰 범죄”10)에 해당한다.

 

    6) ANT, 7절, 219-220쪽, 참조.

    7) ANT, 6절, 219쪽, Nietzsche., Friedrich, Also sprach Zarathustra (국역본)짜라 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정경석 역, 서울: 삼성출판사, 1990, 276-298쪽 참조, 이하 국역본을 ASZ로 표기.

    8) ASZ, 273쪽.

    9) ANT, 15절, 230쪽.

   10) ANT, 49절, 288쪽. 

 

한마디로 도덕성의 관점에서 그리스도교는 인간 행위의 처벌 기준을 삶에서 요구하는 것들이 아니 라 자신들이 정해놓은 추상적인 교리에서 마련한 셈이다. 그 결과 사제들은 모 든 인간에 대한 행위를 자신이 정한 관념적인 틀에서 규제할 수 있는 독점권을 얻게 되었고, 그리스도교는 인간을 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도록 수치의 나락으 로 떨어뜨림과 동시에 인간에게서 삶의 건강성과 명랑성을 근원적으로 제거하 는 데 성공한다. 생명을 죄라는 형식으로 묶는 것에 성공한 그리스도교는 인간, 자연, 세계에 대해서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니체에 따르면, 유대-그리스도교적 도덕은 ‘원한의 도덕’으로서, “삶의 상승 운동, 제대로 잘됨, 힘, 아름다움, 지상 에서의 자기 긍정을 나타내는 모든 것을 부정”11) 함을 내포하고 있다. 위에서 보듯이 그리스도교는 삶의 건강성, 긍정성을 비참, 병, 동정, 고통, 억압 등의 부 정적인 것으로 대체한다. 이러한 ‘도덕’의 차이는 사랑에 관해서도 차이를 보이 는데,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자비와 용서는 상위의 존재가 자신보다 아래에 있 는 존재에게 행사하는 권력 관계를 전제로 하지만, 니체에게서 사랑이란 삶에 대한 긍정적 태도에서 비롯되는 진정한 자기인식이자 생명의 찬가라고 보고 있 다.12) 결론적으로 니체에 따르면 사랑이란 병든 자가 받는 것(동정)이 아니라, 용서와 동정을 초월하여 삶의 긍정과 건강함에서 기인하는 힘을 기꺼이 나누어 주는 것이다. 니체는 그리스도교가 원죄론의 관념에서 형성된 교의로 인간에게 신앙을 강 요함으로써 인간 정신의 자유를 박탈한다고 보고, 그리스도교의 신앙에 대해서 도 가차 없는 일격을 가한다. 먼저 그가 옹호하는 위대한 정신이란 모두 회의주 의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왜냐하면, “정신의 힘과 힘의 넘침에서 나 오는 자유는 회의를 통해 입증되기”13) 때문이다. 여기서 니체가 말하는 강인하 고 위대한 정신의 자유는 무조건적인 확신이나, 근거 없는 믿음이 아니라, 모든 확신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니체에게서 확신은 단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수단 에 해당할 뿐이기에, 회의가 기본인 위대한 정신이 확신에 복종해서는 안 된다. 니체가 말하는 확신이란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믿음을 가진 자, 온갖 종류의 ‘신앙을 가진 자’는 필연적으로 의존적인 종류의 사람이다 – 자신을 목적으로 설정하지 않고, 더욱이 자발적으로 는 목적을 도대체가 설정할 수 없는 자들이다. ‘믿는 자’는 자기 자신에 게 속하지 않는다.14)

 

       11) 니체는 여기서 자신의 저서 도덕의 계보학에서 언급한 내용인 고결한 도덕과 원한의 도덕을 상기시키며, 후자는 전자를 부정하면서 발생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ANT, 24절, 243쪽. 신개념의 변화에 관해서는 ANT, 17절, 233쪽, 참조.

      12) ASZ, 274-275쪽.

      13) ANT, 54절, 297쪽.

      14) ANT, 54절, 298쪽.

 

다시 말해, 정신의 자유를 갖지 못한 자들은 주체적이지 못하고, 자립적이지 못한 자들이며, 자신의 목적을 스스로 세울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점에서 신 앙이란 자기 자신의 본질을 다른 것에게 내어 주는 행위이며, 신앙이라는 확신 은 정신의 감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신앙을 가진 자는 감옥에 갇힌 사람 이기에 그들은 ‘노예’가 된다. 그리스도교적 신앙은 처음부터 희생이다: 모든 자유와 긍지, 모든 정 신의 자기 확실성을 바치는 희생이다. 동시에 이는 노예가 되는 것이며, 자기 조소이자, 자기 훼손이다.15)

 

     15) JGB, 46절, 83쪽.

 

결과적으로 니체가 말하는 그리스도교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인간을 노예화하 는 독단론이며, 인간의 자유를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빼앗은 교리이다.

 

2) 반자연성과 복음주의자들

앞서 언급한 대로 니체는 신, 영혼, 영 등의 추상적인 개념들을 모든 존재자의 본질로 근거 지우는 것이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니체에게 있 어서 그 개념들은 삶과 생명에 반하기에, 오히려 인류를 파국으로 몰아가기 위 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니체가 볼 때 그리스도교는 현실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죽은 관념들을 가지고 살아 있는 인간에게 도덕적 교리나 윤리적 행위지침 으로 제공하고 있는 셈이 된다. 결국, 그리스도교의 신 관념이 내포한 초 감성적 특성은 인간과 자연을 거부되어야 할 것으로 규정한다. 니체는 그리스도교의 이 런 측면에 반발하고 있다.16) 왜냐하면, 삶의 활력이 가져오는 건강과 생기에 대 한 예찬 그리고 자연의 풍요로움 속에서 생과 그 조화로운 질서를 긍정하던 고 대 그리스인들의 삶의 방식이 그리스도교의 틀 안에선, 오직 부정되어야 할, 열 등한 것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치 전환을 통해서 얻는 이익의 수혜 자가 신 자신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할 것이기에, 결국 그 이익은 오롯이 그 신을 숭배하는 집단, 즉 사제들에게 돌아갈 것이다.17)

 

     16) “그리스도교 신 개념 ... 이것은 지상에 실현되었던 것 중에서 가장 부패한 신 개념 중 하나이다. ... 신이 삶에 대한 미화이자 삶에 대한 영원한 긍정이 되는 대신, 삶에 대한 반박으로 변질되어 버리다니! 신 안에서 자연과 삶에의 의지에 대한 적대가 선언되고 있다니!” ANT, 18절, 234쪽.

    17) ANT, 27절, 250쪽.

 

그렇다면, 사제들이 말하는 ‘신의 뜻’이란 표현은 곧 사제들의 탐욕을 정당화하는 수사적 장치라고 말할 수 도 있을 것이다. 사실상 ‘신’의 자리는 신 관념의 해석자들이 점유하게 된 것이 며, 그들의 해석이야말로 세상의 모든 일을 판단할 유일무이한 수단이 된 것이 다.18) 사제들의 해석은 ‘선’과 ‘선의 결여(privatio boni)로서의 악’이라는 구도 에서 보이듯, 한 방향의 가치만 받아들여지도록 인간과 세계를 규정하였다. 이 러한 해석은 모순적이거나 다양한 것들을 배제하거나 재단하게 될 것이다. 그 자체 선도 악도 아닌 생명에 대해서 획일적으로 재단하는 것은 곧 하나이자 전 체로서 존재하는 생명에 대한 파괴로 이어지게 될 것이며, 가치들의 통일체인 삶과 자연에 대한 사망선고로 이어질 것이다. 이렇듯 모든 자연스러운 것에 대 한 왜곡과 더불어 생명에 대한 추상화는 그리스도교의 본질에 속함과 동시에 유 대민족의 숙명이기도 하였다.19) 지금까지 그리스도교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가해온 니체의 태도가 예수라는 한 인물에 이르면 그 태도가 바뀐다. 그렇다고 니체가 예수를 새로운 가치창출 자로서 재정립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혹독하게 가한 비난의 화살이 그를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하다. 그렇다면, 그의 비난의 화살이 겨냥 한 자는 누구인가? 그들은 인간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이외의 방법으로서는 그들의 신을 사랑할 줄 몰랐다. 그들은 시체처럼 살려고 생각하였으며, 그들은 그 시 체를 검은 옷으로 감쌌다. 그들의 설교에서조차 나는 시체실의 악취를 맡는다.20)

 

      18) “신 개념은 이제 사제 선동가들의 손아귀에서 도구가 되어 버렸다.” ANT, 25절, 245쪽.

      19) ANT, 24-25절, 242-246쪽, 이에 대해 비교종교학자 조지프 캠벨은 아브라함의 종교(Abrahamic religions)를 만들어낸 셈족(the Semite)이 가진 추상성, 즉 반자연성을 사막의 척박한 환경에서 거주한 종족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들은 자연의 세례를 거의 받지 못한 환경에 거주하였기에, 자연신보다는 조상신을 숭배하였고, 그로 인해 자연은 신성을 부여받지 못하였으며, 신 관념 또한 극히 자연 초월적일 수밖에 없었다. 덧붙여 셈족은 자신의 보존을 의지할 다른 것이 없었기에, 타 종족에 대해 배타적일 수밖에 없었으며, 그 결과 자신이 옳고 타자는 옳지 않다는 ‘정의’관념을 내세워 ‘심판론’으로 발전시켜왔다. Campbell, Joseph., The Masks of God: Creative Mythology, NY: Penguin Books, 1991, pp. 626-627, (국역본)신의 가면 4: 창작신화 조지프 캠벨, 정영목 역, 서울: 까치, 2002, 746쪽.

     20) ASZ, 276쪽. 

 

안티크리스트 전체에서 니체가 예수를 직접적으로 공격하거나 비판하는 대목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니체가 행한 비판의 목표는 예수가 아니라, 교회 권력과 사제들, 그리고 복음주의자들이다.21) 같은 책에서 니체는 예수가 실천한 그리스도교적 삶이란 내면적인 것이며, 사랑과 복음의 실천22) 이었으나, 사제들은 그리스도교적 삶의 실천 대신에 예수의 유일성을 앞세워, 신앙에의 굴종과 그렇지 않을 때 겪게 될 심판을 강조하였다. 그들은 삶의 구원은 신의 아들 즉, 구세주에 대한 믿음과 신의 불멸성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으로만 이루어진다 고 강조함으로써, 불신에 대해 징벌적 공포로 위협한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내 세에 대한 종말론적인 심판을 통해서 인간을 신에게 무조건적으로 복종시키기 위해 신앙을 강요함으로써 자신들의 세력을 더 강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니체는 신에 대한 경외감에서 오는 두려움, 공포에의 위협을 통해서 독단적인 세계관을 강요하는 것과 그에 따른 징벌적 심판은 마음속에서 천국을 건립하고 사랑을 실 천하는 예수의 삶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고 기술하고 있다.23) 니체는 교회의 진짜 목적은 자연적인 가치를 탈 가치화 시키는 것이었고, 신이 아니라, 사제들 이 세상의 지배자가 되는 것이었다고 보았다. 니체가 보기에 사제들은 세계에 군림하기 위해, “피안, 최후의 심판, 영혼의 불멸, 영혼”24)등의 개념들을 만들어 낸 반면 예수는 호전적이지 않고, 오히려 세상에 초탈한 삶을 살았으며, ‘죄’ 개 념에도 개의치 않으며25), 신과 인간이 공속하는 삶에 만족하는 인물이었다고 본다.

 

      21) “사제와 교회는 예수에게 ‘거짓 가치’를 부여하고 예수를 ‘황당한 언설’로 묘사하여 신의 죽음을 초래하는 장본인으로 등장한다.” 백승영, 니체,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 서울: 책세상, 2005, 269쪽.

     22) ANT, 33절, 259쪽

     23) 백승영, 위의 책, 275-276쪽.

     24) ANT, 38절, 265쪽.

     25) ANT, 41절, 271쪽. 

 

그에게 있어서 이런 공속이야 말로 참된 기쁜 소식, 즉 복음인 것이다.

하지만, 예수와는 달리 사제들은 예수의 죽음에 대한 ‘보복과 복수’를 감행하는데 몰두했으며, 이를 실현코자 예수를 더욱 위대하게 만들어야만 했고, 자신들의 의도를 거부하는 이들을 ‘심판’해야만 했다.

결과적으로 니체가 겨냥한 비판의 화살은 예수가 아니라, 복음주의자들이었으며, 그들이 추상적 관념들로 만들어 낸 교리를 향해 있다고 볼 수 있다. 

 

3. 니체와 반유대주의와의 관계

니체의 저술에서 유대인은 심심치 않게 등장할 뿐만 아니라, 당대에 반유대주 의자로서 위세를 떨친 작곡가 바그너와의 친분도 니체로 하여금 반유대주의와 연관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런 피상적인 근거를 들어 니 체를 반유대주의자로 단정하는 것은 상당히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유대주의를 정의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반면에, 유럽에서 말하는 반유대주의는 상당 히 복잡한 스펙트럼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유대인에 대한 혐오 는 로마 제국시대에도 등장할 정도로 뿌리가 깊으며, 그에 따라 혐오의 스펙트 럼도 매우 다양할 수밖에 없다. 유대인에 대한 혐오는 단순히 유대교에 대한 교 리적 특징을 비난하는 것에서부터, 유럽 내 소수 이민족에 대한 배타적 태도에 이르기까지 여러 요인에 기반을 두고 있다. 더욱이 유대민족이 20세기에 크나 큰 시련을 겪음에 따라, 사후적으로 전 시대의 반유대주의의 맹아들을 색출해내 는 학문 내적인 또는 학문 외적인 활동들도 심심찮게 발견되고 있다. 그 와중에 가장 큰 조명을 받는 사람은 아마도 하이데거와 그가 발굴해낸 니체라는 두 철 학의 거장일 것이다. 또한, 최근에 하이데거의 블랙 노트(Black Note)가 발견됨 에 따라, 하이데거와 나치즘과의 연관성에 다시 불꽃이 일었으며, 동시에 니체의 유대민족에 대한 비판이 어떤 성격이었는지도 다시금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장은 동시대의 인종주의가 갈수록 심화하여 위험성을 띤 채로 현실정치세력의 이념으로 부상하는 가운데, 니체의 반그리스도교적 입장이 반유대주의 (anti-Judaism), 더 나아가 반셈족주의(anti-Semitism)라는 인종주의와 연관 이 될만한 근거가 있는지를 면밀히 고찰하고자 한다. 이어서 다양한 맥락 속에 놓인 니체의 유대민족에 대한 비판이 당대의 여러 반유대주의 운동의 흐름과 관 련하여 어떠한 성격을 갖는지도 살펴보고자 한다. 그 결과 이러한 작업을 통해 서 니체가 유대민족에 대한 비판을 수행한 맥락이 보다 명확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1) 유럽의 반유대주의(anti-Judaism)와 반셈족주의(anti-Semitism)26)의 배경

 

       26) 두 용어 모두 ‘반유대주의’로 번역될 수 있지만, 한글로 두 용어를 구분하고자 임의 로 ‘반셈족주의’라는 인종주의적 색채가 가미된 용어를 도입하고자 한다.

 

니체의 유대민족에 대한 비판의 성격을 규정하기 위해선 먼저 유럽에서 오랜 기간 지속해온 반유대주의의 여러 맥락을 분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니체의 철학이 대체로 어떤 부류들이 내세운 맥락에 놓여 있으며, 그 맥락에 속 해있는 그룹들과 정치적-이념적 특징을 공유하고 있는지를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의 반유대주의(anti-Judaism)의 경향들은 대체로 세 가지로 범주 화할 수 있으며, 각각 종교, 경제, 사회문화적인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번째로 종교적인 측면에서 반유대주의는 가장 널리 퍼진 생각으로서, 유대인을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라는 관점에서 보고 이에 대한 혐오를 표방하는 경향이다. 이 경향은 유럽의 그리스도교적인 세계관을 중심으로 등장하였는데, 전통적으로 그리스도교인들은 유대인들이 개종을 거부한 민족이라는 점에서 그들에게 반감을 품으며, 특히 그들이 유월절(Passover)에 행하는 ‘살해의례’는 유대인들이 배타적이고, 잔인한 성격을 지닌 자들이란 선입견을 품게 했다.

유럽의 그리스도교도들은 유일신교의 기원에서 유래한 역사적 맥락과 의례적 특징으로 인해 유대인에 대해 반감을 갖게 되었다.

두 번째로, 경제적 측면에서도 유대인들은 유럽인들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유대인들은 토지를 기반으로 한 생산 활동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고리 대금업과 같은 금융업을 통해서 생계를 유지함에 따라, 타민족의 미움을 사기가 쉬웠다. 이에 유럽인들은 유대인들이 땀흘려 일하는 노동의 가치를 폄하하거나, 부정한다고 여기게 되어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수전노, 구두쇠 등의 별칭을 붙이 기도 하였다.27)

마지막으로 유럽인들에게 유대인들에 대한 증오를 유발시킨 요인은 사회문화적 측면에 해당한다.

이 요인은 주로 유대인들이 가진 고유한 민족적 정체성에 따른 것이다. 그들은 유대교의 율법에 충실한 삶을 살며, 그 어느 곳에 정착하더라도 그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버리지 않고, 자신들만의 삶의 방식을 고집하며 타민족의 문화적 정체성에 동화되기를 거부하였다. 이렇듯 유대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타민족의 공동체 내에서28) 타민족과 사회-관습적으 로 거리를 두려고 했던 성향은 타민족들에게 ‘외국인 혐오증(Xenophobia)’을 유발하는 동기가 되어왔다.

 

      27) 나인호, 증오하는 인간의 탄생 고양: 역사비평사, 2019, 168쪽 참조.

      28) 유대민족은 타 공동체 내에서 자신만의 습속을 고수하는 소수민족문화(enclave culture)의 대표적 예이다. 

 

오랜 역사를 지녀온 반유대주의와는 달리, 비교적 근래에 등장한 반셈족주의 (anti-Semitism)는 자민족 중심주의나, 유럽의 외국인 혐오증, 근대민족주의,  유사과학(pseudo-science)을 배경으로 혈통 중심의 인종주의에서 비롯된 정치 운동이다. 특히 반셈족주의는 특정 집단이 자신이 속한 민족의 우월성을 나타내고 정당화하기 위해 고안해낸 용어 중 하나이며, 자신이 속하지 않은 특정 민족을 차별하고, 격하하기 위한 목적을 띤 비교적 역사가 짧은 근대적 발명품이다.29) 위에서 살펴본 바대로 반유대주의는 서양에서 역사적으로 지속해온 개 념이지만, 반셈족주의는 셈족30)이라는 특정한 집단을 특정하여, 그 집단을 향 해 혐오를 일삼는 근대적 용어에 해당한다. 반셈족주의란 용어의 유래를 되집어 보자면, 이 용어는 처음엔 ‘반유대주의’를 지칭하는 용어였지만, 일순간 갑작스럽게 질적 변화를 맞게 된다. 이와 관련해 니체와 반유대주의의 관계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로버트 호럽(Robert C. Holub)교수는 반셈족주의라는 용어의 의미 변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언어학적이고, 인류학적인 기원을 지닌 반셈족주의라는 용어는 1879년 말 사회-정치적 운동과 결부된다. 야콥 카츠(Jacob Katz)는 1879년 을 “근대 유대사의 전환점”이자 “근대 반셈족주의의 시작”이라고 부른다. 그 해 수많은 반유대적인 정치 경향들이 반셈족주의라는 유사과학적 관념에 힘입어 정점에 달했으며, 아마도 이러한 경향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와 경제 분야로 진출한 유대인들의 영향력에 대한 반발일 것이다.31)

 

      29) “인종주의는 ‘인간의 불평등’을 전제한 채, 자신을 우월하거나 올바르거나 최소한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정형화하고, 반면 타자를 열등하거나 그릇된 존재로 부정하 는 동-서를 가리지 않고 오랫동안 일상화된 인류의 모든 생각과 행위 전반을 지칭 한다.” 나인호, 위의 책, 13쪽.

    30) 셈족(the Semite)에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아랍인들도 포함되기에, 이 용어는 20 세기에 나치들도 사용하기를 포기한 용어이다. 하지만, 오늘날 반유대주의는 ‘anti-Judaism’이 아닌 ‘anti-Semitism’을 지칭하는 인종주의적인 표현인 경우가 많다. 이 글에선 아랍인들의 포함 여부에 관한 다소 역사적-정치적 논의는 다루지 않을 것이며, ‘anti-Semitism’이란 표현은 대체로 ‘반유대인종주의’를 지칭한다고 볼 수 있으며, 반유대주의와 구분하기 위해 이 표기는 이 글에서만 임의로 ‘반셈족 주의’로 표기함을 알린다.

     31) Holub, Robert C., “Nietzsche and the Jewish Question” in New German Critic No. 66 Special Issue on the Nineteenth Century (Autumn, 1995), Duke University Press, 1995, p.105. 

 

여기서 문제 삼고 있는 1879년은 아돌프 슈퇴커(Adolf Stöcker)가 “근대적  유대인에 대한 우리의 요구”라는 강연을 한 해이기도 하다. 이 강연은 당시 반유 대주의 물결이 휩쓸던 독일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반유대주의 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 이유는 슈퇴커가 ‘근대적 유대인’이라 는 용어를 통해 유대인을 유대교 신자가 아니라 근대 자본주의 물질문명을 지배 하고 있는 낯선 인종으로 새롭게 규정하기 때문이었다.32)

 

      32) 나인호, 위의 책, 177쪽.

 

슈퇴커를 대표로 본격화된 반유대주의 운동은 더욱 정치적 색채를 띠게 됨과 동시에 독일 전체로 확산하였다. 이 변화로 인해 기존에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에 대한 유럽인들의 혐오를 일컫는 용어인 반유대주의는 이제 유대인이라는 종족적 특성을 중심으 로 (종교적, 역사적 측면보다 정치적 경제적 측면을 부각하면서) 유대인을 경멸 하는 반셈족주의로 의미변화를 겪게 되었다.

 

2) 반셈족주의에 대한 니체의 태도

니체 또한 이러한 일련의 정치적 운동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니체는 반유대주의와 반셈족주의를 동일한 표현으로 보는 것에 모종의 불편함을 느꼈으며, 이는 1881년 노트에 그가 쓴 “Misojuden”33)이라는 표현에서 그 흔적 을 찾아볼 수 있다. 그가 그리스어와 독일어를 혼합하여 신조어를 만들어서 쓴 연유는 그 또한 당대의 유력인사들의 중심문제였던 반유대주의 문제에 대해 복잡한 심경이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음을 추측해볼 수 있다. 물론 20세기 초반 니체와 반유대주의의 관계를 명백하게 표명한 학자들도 있 다. 플라톤주의 정치학자인 레오 슈트라우스(Leo Strauss)는 니체를 “파시즘의 계부(step-father)”라고 불렀으며, 공산주의 문예 비평가인 지외르지 루카치 (Györgi Lukács)는 “독일 국가사회주의의 간접적인 지지자”34)라고 발언한 바 있다.

 

    33) “Miso 는 그리스어로 증오를, juden은 독일어로 유대인을 가리킨다” Holub, ibid, p.105.

   34) Corngold, Stanley., and Waite, Geoffrey, “A Question of Responsibility: Nietzsche with Hölderlin at War, 1914-1946”, in Nietzsche, Godfather or Fascism? : On the Uses and Abuses of a Philosophy, edited by Jacob Golomb and Robert S. Wistrich, Princeton, N.J. :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2, p.196.

 

하지만 현재에 이르러 니체에 관한 많은 연구가 심층적으로 이루어진 오늘날의 시점에서 볼 때, 위의 학자들이 행한 발언을 그대로 수용하기는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오히려 니체야말로 모든 독단론에 대해 반대한 학자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토록 해석이 달라진 까닭은 무엇일까? 그 이유는 니체의 유대인에 대한 언설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그는 당대의 인종주의자들 이 주로 사용한 편견에 가득 찬 표현을 따르고 있지 않았다. 더불어 니체는 반셈 족주의란 표현을 유대인을 겨냥해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니체는 1886년에 쓴 선악을 넘어서에서 독일인과 유대인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독일에는 충분히 많은 유대인이 있으며, 또 독일인의 위장과 피는 이 정도의 ‘유대인’들을 소화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 그러나 유대인은 의심할 여지 없이 현재 유럽에서 살고 있는 가장 강하고 강인하고 순수한 종족이다. 그들은 사람들이 오늘날 즐겨 악덕이라고 낙인찍고 싶어 하는 그 어떤 덕목에 의해 여전히 최악의 조건 아래서도 (오히려 유리한 조건 아래에서보다 더 잘) 스스로를 관철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 무엇보다 ‘현대적 이념’ 앞에서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확고한 신념 덕분에 말이다.35)

 

         35) JGB, 251절, 253쪽.

 

이 인용문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니체가 당대의 정치적 현실을 잘 알고 있 었으며, 당시에 유행하는 독일 민족주의의 천박한 형태와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니체가 유럽의 유대인의 지위를 긍정하고, 높이는 듯한 표현을 함으로써, 유대인의 민족적 긍지를 인정하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니체는 유대인에 대해 양가적 감정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로부터 니체가 유 대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혐오감정을 품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니체의 절친한 친구이자 신학자였던 오버벡과 니체가 나눈 대화 내용은 니체가 당시 독일의 반유대주의 기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를 암시하고 있다.

 

나는 니체와 내가 반셈족주의와 관련해 매우 일치된 생각을 하고 있 었다고 믿는다. 종교적 혐오뿐만 아니라 민족주의자들의 혐오를 비롯한 어떤 종류의 광신주의도 우리의 생각과는 거리가 매우 멀기 때문에, (물 론 우리가 여러 배경과 연관해서 서로 다른 이유에서 그럴지라도) 우리 는 근본적으로 반셈족주의에 대한 어떠한 공감도 가지고 있지 않다. 반 셈족주의를 향한 이러한 폐쇄적인 태도가 우리를 다른 유럽사람들과 다르게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철저히 폐쇄적인 태도는 동시대에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 시대에 거의 대부분이, 적어도 교육받은 사람 모두가 유대인을 향한 확실한 반감을 품기 때문에, 우리 모임에 있는 유대인들 스스로도 그런 태도를 갖는다.36)

 

오버벡의 솔직한 설명에 비추어보자면, 니체가 당대의 반유대주의적 기류에 반대한다는 것은 명백해 보이며, 덧붙여 그가 가진 인종주의에 대한 거부감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니체는 이 사회가 낳은 ‘실패작’ 인 바그너주의자들을 비난하면서 그들이 모두 ‘반유대주의자’라는 사실을 불편해했으며37), 동시에 그러한 정서를 담고 있는 ‘독일적인 것’에 대한 경멸을 드러내는데에도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니체가 유대인과 유대민 족에 대해 전적으로 긍정한다고도 주장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앞서 보았듯이 니체는선악을 넘어서나안티크리스트에서 유대민족이 가진 반자연성과 원 죄론에 기반을 둔 철학적 세계관이나 가치들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감 없 이 표현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린 니체가 유대인에 대해 가진 태도를 좀 더 세분화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니체가 인종주의적 반셈족주의(antiSemitism)를 외치고 다니는 천박한 민족주의를 반대한다고 해서 종교적 측면 에서 유대민족에 반대하는 반유대주의(anti-Judaism)적 정서도 없었다고는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첫째 앞서 제시한 반유대주의의 경향 중에서, 경제적 측면 에 해당하는 노동보다는 고리대금업과 같은 화폐를 수단으로 하는 직업을 선호 하는 성향은 그들이 추상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반자연적 태도와 연관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고수하기 위해 고립주의적 성향을 보인다는 것도 기본적으로 유대교의 계율에 근거하여 타민 족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니 체는 때때로 유대인에 대해서 유럽에서 가장 강인한 민족이라고 추켜세우기도 하고38), 유대민족은 오래전에 과감하게 가치 전도를 이루어 낸 탁월한 민족이라고 칭송하기도 하였다.

 

       36) Holub, ibid, p.121.

       37) 니체는 바그너와 독일적인 것에 관해 서술하면서 “독일 제국적 역사서술” 이나 “반 유대주의적 역사서술”이 등장하는 것에 대해서 염려하고 있다. Nietzsche, Friedrich., “Ecce Homo” im Der Fall Wagner ; Götzen-Dämmerung ; Der Antichrist ; Ecce homo ; Dionysos-Dithyramben ; Nietzsche contra Wagner, Friedrich Nietzsche ; herausgegeben von Giorgio Colli und Mazzino Montinari, München : Deutscher Taschenbuch Verlag, 1999, (국역본)이 사람을 보라 백승영 역, 서울: 책세상, 2013, 448쪽.

       38) 각주 35번 참조. 

 

니체가 보인 이런 상반된 태도는 반그리스도교적 입장 에서 유대인에 대해 비난을 가한 니체의 의도를 알 수 없게 만든다.39)

 

       39) Brinker, Menahem., “Nietzsche and the Jews” in Golomb, ibid, p.108. 

 

3) 유대인의 가치 전도에 관한 기억사적 접근

먼저 니체에게 있어서 가치 전도 그 자체는 기존에 행해져 오던 가치평가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과 동시에 새롭게 가치를 창조해내는 위대한 과업으로서, 강 하고, 순수한 자의 용기 있는 행위에 해당한다. 이 맥락에서 유대인은 니체에게 분명히 칭송받아야 할 민족임이 분명하다. 니체에게 있어서 유대인들은 “가치의 전도라는 저 기적적인 일을 해낸”40) 민족임과 동시에 그에게 있어서 이스라엘 민족은 “자연적 가치가 완전히 탈가치화된 역사의 전형으로서 귀중한 가치가 있는41)” 민족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런 용기 있고, 고귀한 행위를 행한 주체 가 그가 줄곧 비판해온 유대인들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유대인의 가치 전도의 행 위가 어떤 의미인지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니체가 행한 양립 불가능 해 보이는 언설이 갖는 의미를 로버트 호럽은 잘 설명해주고 있다.

 

한편으로, 니체는 새로운 가치체계를 창출해낼 수 있었던 한 민족 혹은 한 나라에 대해 존경을 표하였다.

유대인들의 종교가 새로운 윤리적 규준과 고대 세계의 가치설정에 대한 광범위한 전회를 도입했다는 사실은 불행할지언정 주목할만한 성과다. ... 하지만 우리는 니체의 생각에 비추어볼 때 유대인들이 궁극적으로 서구 문명의 위대함에 대해 몰락을 일으킨 유약하면서, 본능에 반하는(anti-instinctual) 가치체계를 도입 한 것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틀에서 유대인들은 니체가 찬동한 다양한 사회적 질서에 반하여 서있다.42)

 

    40) JGB, 195절, 151쪽. 

   41) ANT, 25절, 244쪽.

   42) Holub, ibid, p.114. 

 

호럽이 밝히고 있듯이, 유대인들이 서구 역사에서 가치 전환을 이루어 내었다 는 사실 자체는 칭송받아 마땅한 ‘주목할만한 성과’에 해당한다. 하지만, 전환된 가치의 내용은 서구 역사에서 ‘불행한’ 것이었다. 여기서, 니체는 가치 전환의 시도 그 자체에 대한 평가와 시도의 결과인 전환된 가치에 대한 평가를 다르게 내리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유대민족이 전환 시키기 이전의 가치체계는 어떤 것이었나?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니체가 보기에 유대민족이 전환하기 이전의 관점은 고대 이집트와 고대 그리스의 다신적이며, 신인동형적 세계관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여러 신의 관계 속에서 인간을 바라보고, 인간과 세계의 본질을 신성으로 규정함과 동시에, 인간인 통치자가 신성을 부여받는 존재가 되는 세계였다. 이것이 바로 유대인들이 플라톤주의의 도움으로 몰락시킨 세계였다.

유대인은 고대 세계를 자신들만의 새로운 가치체계43)로 전환시킨 민족이다. 그들이 전환한 가치는 니체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였는가? 유대인은 세계사에서 가장 진기한 민족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존재 와 비존재의 문제에 직면해서 정말 섬뜩하리만큼 고의적으로 어떤 대가 를 치르고서라도 존재를 우선시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치른 대가는 모든 자연, 모든 자연성, 모든 현실성, 외부세계 및 내부 세계 전부에 대한 극 단적인 왜곡이었다.44) 니체는 유대인들이 자연적인 것, 본능적인 것, 현실적인 것이 우선시되는 고 대적 세계관에 대해 ‘고의적으로’ 반란을 일으켰음을 지적하고 있다. 니체가 보 기에 그들은 ‘자연에 반하는’ 가치를 숭상하기로 결단하였으며, 존재의 이면에 자리하는 무와 죽음을 열등하게 만들고, 오로지 드러난 것으로서의 ‘존재’만을 우선시함으로써, 만물을 생과 사, 있음과 없음의 모순적인 통일로서 바라보지 않고, 오직 ‘생과 있음’만을 보고자 한민족임을 고발하고 있다.45) 유대인들의 가치 전도는 그리스도교에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니체가 보 기에 “나사렛 예수라는 이름으로 명명된 작은 봉기 운동은 또 하나의 유대본능 이며,”46) “그리스도교인은 단지 ‘좀 더 자유로운’ 종파의 유대인에 불과”47)하기 때문이다.

 

    43) 그 가치체계를 우린 통상 “아브라함적 종교들(the Abrahamic religions)” 또는 “유 대-그리스도교 전통(the Judeo-Christian traditon)”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 다. 유대인의 가치 전도의 내용과 관련하여, ANT, 9절, 223쪽, 참조.

   44) ANT, 24절, 242-243쪽.

   45) 니체식의 표현을 빌자면, 디오니소스적인 것에 대한 경멸과 아폴론적인 것에 대한 찬미로 읽힐 수 있다.

   46) ANT, 27절, 249쪽.

   47) ANT, 44절, 278쪽. 

 

니체는 이러한 유대-그리스도교 전통이 갖는 가치 전도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호소력 짙게 선언하고 있다.

 

양심을 가지고 그와 같이 원칙적으로 병든 자와 고통받는 모든 자를 보존하기 위해, 다시 말해 행위와 진실에서 유럽종족의 열등화를 위해 작업하는 것 외에 그들이 해야만 했던 것은 무엇이었던가? ... 그래서 강 한 사람을 부서지게 만들고 커다란 희망을 병들게 하고 아름다움에 있는 행복에 의문을 품게 하고 모든 자기 주권적인 것, 남성적인 것, 정복적인 것, 지배하고자 하는 것, ‘인간’이라는 최고로 성공한 유형에 고유한 모 든 본능을 불확실성, 양심의 궁핍, 자기 파괴로 꺾이게 하는 것, 아니 지 상적인 것에 대한, 대지를 지배하고자 하는 모든 사랑을 대지와 지상적 인 것에 대한 증오로 역전시키는 것48).

 

니체에 따르면 유대인들의 가치 전도에는 고대인들이 생각한 건강한 인간상 에 대한 부정이 내포되어 있다. 그들은 약하고, 억압받고, 병들고, 고통받는 자 들을 지지하기 위해 건강하고, 강인하고, 명랑하고(frölich), 고결한 정신을 가 진 자들을 부정해야 했다. 더 나아가 건강하고, 균형 잡힌 자연적 가치와 그 세 계를 희생시켜야 했으며, 지상과 그것에 종속된 모든 것에 원한의 감정을 품고 서 그것을 추상적이고, 초 감성적인 ‘존재’의 지배하에 종속시켰다.

이집트학의 권위자이자, 문화적 기억과 기억사 연구49)를 통해 서양 유일신교의 기원을 연구해온 얀 아스만(Jan Assmann)교수는 타키투스가 유대민족에게 사용한 “규범 전도(normative inversion50))”라는 용어로 유대인들의 가치 전도 를 설명하고 있다.

 

       48) JGB, 62절, 102쪽.

       49) 아스만의 기억사적 접근법은 실증적인 역사적 접근이 어려운 기원전 14세기와 그 이 전의 사건들을 고대 문헌에 드러난 기억의 편린들을 통해서 연구하는 것을 말한다.

       50) “모세는 다른 민족과 정반대의 새로운 종교의식을 제정했다. 유다이아인은 우리가 성스럽게 생각하는 모든 것을 불경하다고 여기는 반면, 우리가 혐오하는 모든 것을 용인한다.” Tacitus, Cornelius, 타키투스의 역사 김경현, 차전환 역, 파주: 한길 사, 2011, 401쪽.

 

아스만이 보기에 유대인은 유일신교를 만들어 낸 민족이고, 유대민족의 중심에는 기억사적으로 ‘모세’라고 지칭되는 이집트 출신의 지도자가 있었다고 본다.

따라서 아스만은 이 모세라고 불린 지도자의 흔적이 역사적 으로는 아케나텐(Akhenaten)이라는 이름으로 실존한 인물에게서 발견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기억사적으로 유대민족은 지배민족인 이집트에 융화되기를 거부함과 동시에 그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이집트의 종교와 습속 일체에 대한 반대를 표명하기에 이르는데, 유대민족이 무조건적으로 반대한 가치체계와 세계관이 바로 이집트 종교가 품고 있는 세계신론(cosmotheism)51)이다.

타키투스에 따르면 유대교는 이집트 종교에 ‘반대하기’ 위해 탄생한 반종교(counterreligion)이며, 그 종교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모세는 권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다른 모든 종교와 완전히 반대인 새로운 종교를 창시한”52)것이다.

이 새로운 종교가 바로 형상화할 수 없는 추상적인 신을 섬기는 유일신교이며, 자신 이외의 모든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아브라함의 종교이다.53)

다른 한편 아스만은 요세 푸스(Josephus)의 아피온 반박문(Contra Apionem)에서 ‘규범 전도’의 더욱 구체적인 표현을 찾아낸다. 이 글에서도 기억사적으로 모세로 추측되는 오사르 시프(Osarsiph)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는 문둥병자들의 지도자이자, 헬리 오폴리스(Heliopolis)의 제사장으로 언급되고 있다. 그 또한 타키투스가 말한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유대인의 ‘규범 전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오사르시프는 규범 전도의 원칙에 근거하여 이집트에서 금지된 것은 모두 허용하고 거기에서 허용된 것은 모두 금지시키는 법을 만든다. 가장 처음이자 중요한 계명은 여러 신을 숭배하지 말 것이고, 제물을 하나도 잡아두지 말 것이며, 다른 금지된 음식도 삼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 다.”54)

 

     51) 아스만은 유일신교(monotheism)에 반해, 세계신론(cosmotheism)이라는 용어를 제시한다. “유일신교의 반대는 다신교(polytheism)가 아니며, 또한 우상숭배도 아니 다. (그 반대는 바로) 세계신론(cosmotheism)이다. 세계신론은 내재적인(immanent) 신의 종교이며, 서로를 논리적으로 배척하기보다는 서로를 환희 빛내며 상호보완하 는 수많은 이미지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숨기는 가려진 진리이다”. Assmann, Jan., The Price of Monotheism, a translation of Die Mosaische Unterscheidung oder der Preis des Monotheismus, Carl Hanser verlag. 2003., trans. Robert Savage, California: Stanford Univ Press, 2010. p.43.

     52) Assmann, Jan., Moses the Egyptian: the Memory of Egypt in Western Monotheism, Cambridge, MA: Harvard Univ. Press, 1998, p.37 (국역본) 이집 트인 모세: 서구 유일신교에 새겨진 이집트의 기억 변학수 역, 서울: 그린비, 2010, 73쪽.

     53) “이집트인은 많은 동물과 기괴한 형상을 숭배하는 반면, 유다이아인은 유일신을, 그 것도 오직 마음으로만 생각한다. 신을 소멸해버릴 재료를 써서 인간의 형상으로 빚 는 사람을 그들은 불경하다고 여긴다”. Tacitus, 위의 책, 403쪽.

     54) Assmann, ibid, pp.163-164, (국역본) 63-64쪽.

 

위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볼 때, 유대교는 이집트에 의해 억압받은 소수 민족으로서 그들이 가진 이집트에 대한 감정은 그야말로 원한과 복수심에 가까운 것 이었다. 그로 인해 이집트가 가진 모든 종교적, 문화적 가치와 전통에 대한 무조 건적인 반대가 바로 유일신교를 탄생시킨 추동력이었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 다.

또한, 유대인이 구축한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은 고유한 민족적 특징이나, 독 자적인 공동체적 가치에서 구현된 것이 아니라, 기성 종교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를 위해 급조된 것에 불과하다.55)

 

       55) 효모를 넣지 않은 빵이나 발굽 모양까지 따져서 특정 동물을 먹지 말라고 하는 세세한 규정이 필요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니체가 가치 전도를 통해서 유대-그리 스도교의 정체성에 대한 비판을 가하는 근거가 바로 이 ‘무조건적인 반대’에 해당한다.

따라서 아스만의 논의에 따르면 유대인의 가치 전도는 이집트 세계가 가진 세계신론적(cosmotheistic)에 대해서 이루어진 셈이다. 세계신론은 신들의 세계가 지상적인 세계와 통합되어 인간이 신성을 갖게 되고, 자연에도 신들이 내재하며(panentheistic), 신들의 관계를 통해 인간의 질서를 구현해내는 존재론적 원리이다.

이에 반해 유대인의 세계관은 신과 인간의 관계를 기본적으로 ‘계약’으로 보며, 그 계약으로 인해 추상적인 ‘신’이 인간 개개인의 운명을 통제 하기에 지상적인 모든 것과 자연은 모두 그에 의해서만 존재 근거를 갖게 된다는 교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아스만에 따르면, 유대인의 가치 전도를 경계로 이집트의 가치체계는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된다.

니체가 이집트의 멤피스 신학(the Memphite Theology)이나 세계신론적 성격을 알고 있었는지는 이 글에서 다루기엔 벅찬 문헌학적 주제이다.

다만 여기서 밝히고자 하는 것은 니체가 통렬히 비판한 유대-그리스도교적 특징이 바로 기억사적으로 이집트의 한 지도자에 의해 시행된, 규범 전도의 결과라는 점과 그 결과물은 니체가 고결한 정신이라 칭송한 가치와는 정반대에 놓여 있는 것이며, 서양 역사 전체를 지배 해온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아스만이 타키투스의 용어를 빌어 표현한 ‘규범 전도’와 니체의 ‘가치 전도’는 서로 일맥상통하고 있다.

 

4. 결론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는 표현을 통해서 드러내고자 한 것은 서양의 역사에 서 지배적인 담론으로 명맥을 유지해온 유대-그리스도교의 세계가 이제 효력 을 잃었다는 것이었다. 이 선언이 갖는 철학적인 함의는 초 감성적인 것의 가치가 중심이 되어 인간과 세계를 해석할 수 없음에 따라, ‘신’을 앞세워 형성된 가 치들이 폐기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니체의 비판으로부터 니체가 반유대주의 자라고 추론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니체는 당대에 유행하던 천박한 형태의 민족주의적 열망에서 비롯된 ‘반셈족주의 (anti-Semitism)’의 기류에 편 승하지 않았다는 것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반셈족주의는 그가 치열하게 비판해 온 유대민족의 유일신교적 특성에서 유래한 운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니체를 반셈족주의자라고 규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니체의 유대민족 비판의 성격은 플라톤주의에 근거한 유대-그리스도교의 가치체계를 겨냥하는 것이며, 당대 유행했던 정치적 인종주의인 반셈족주의와는 연관성을 갖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다른 한편, 니체는 유대민족을 유럽민족 중에서 유일하게 가치 전도를 성취한 강인한 민족이라고 칭송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니체는 그들이 세운 가치체계는 비판받을 만한 것이지만, 그들이 가치 전도라는 역사적 행위를 성취해내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유대민족이 성취한 가치 전도는 무엇으로부터의 전도이고, 그 역사적 배경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해 본 논고는 얀 아스만의 기억사적 방법론을 도입하여 이 물음을 추적하고자 하였다.

얀 아스만에 따르면 유대인들이 행한 가치 전도는 기억사적으로 유대민족이 이집트적 세계관인 세계신론(cosmotheism)에 대해 무조건적인 반대입장을 취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결론적으로 유대인들에 대한 니체의 비판은 종교-문화적 맥락에서 이루어졌기에, 당대의 인종주의적 경향에서 자유롭다고 볼 수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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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Defining the Characteristics on Nietzsche’s Criticism of the Jewish Nation

Song, Hyone-Jong(Yonsei Univ.) Lee, Seung-Chong(Yonsei Univ.)

Nietzsche as a critic of Judeo-Christian values, declared ‘Gott ist töt’ in the fin-de-siècle. His statement implied a massive fall of the predominant and central values in the history of Western thought. In other words, its implication has greatly diverged into two aspects: values beyond the sensible are not able to be considered as important as the previous times, and the enormous power of God does not have considerable impact on human life anymore. Nietzsche’s criticism of Judeo-Christian values dealt with two sections: the morality of Christianity on the basis of original sin in the Book of Genesis (the Old Testament) and the concept of the abstract God which abominates natural things in the actual world. In this regard, we can make a conjecture on his inclination towards anti-Judaism. Nietzsche, however, did not agreed to the tremendous enthusiasm of nationalism originated from ‘anti-Semitism’ since it was mainly focused not on monotheistic features of the Abrahamic religions but on rampant racism grounded on pseudo-scientific assumptions such as eugenics, phrenology and anthropological conjectures in the nineteenth century. Therefore, Nietzsche could not be determined to be anti-Semitic because he strongly criticized the concept and cultural heritage of a monotheistic God originating from the Jewish nation, rather than Semitic people themselves. According to the view of Assmann’s ‘mnemohistory’, ‘normative inversion’ of the Semite means a thorough rejection against the cosmotheistic worldview of the Egyptian. Nietzsches’s criticism clearly targeted at not the Jewish people but their religio-philosophical beliefs and values * This work was supported by the Yonsei University Research Grant of 2020.  resulting from what they rejected. Consequently, I think he does not approve of anti-Semitism since he has no racial bias on the Jewish people themselves. In a central line of the argumentation in Nietzsche’s work Anti-Christ, Beyond Good and Evil, and Also spoke Zarathustra, Nietzsche must be not an anti-Semite, but a fierce critic opposed to the values of Judaeo-Christianity in the religio-cultural milieu. Keywords: anti-christ, normative inversion, anti-Judaism, anti-semitism, cosmotheism ▫

 

이 논문은 2020년 11월 20일 접수되고 2020년 12월 11일 심사가 완료되어 2020년 12월 23일 게재가 확정되었습니다.

한 국 동 서 철 학 회  동서철학연구 제98호, 2020. 12. 

니체의 유대민족 비판에 관한 성격 연구.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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