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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속 향원(鄕原)에 대한 이상심리학적 해석 - 내현적 자기애(covert narcissism)를 중심으로/김용희.성균관대

 한글 요약

본 연구의 목적은 논어(論語) 속 향원(鄕原)이라는 인간 부류의 성격을 규명하고, 현대 이상심리학의 자기애(narcissism)의 틀로 해석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논어 속 향원의 대표적인 두 가지 특성인 ‘말 잘함(佞, 巧言)’과 ‘자기 합리화’ 전략을 파악하고, 이것을 현대 이상심리학(abnornal psychology)의 ‘내현적 자기애(covert narcissism)’ 유 형과 비교 분석하는 것이다. 향원은 공자가 ‘덕의 적(德之賊)’으로 표현한 위험한 인물이다. 또한, ‘가라지(莠)’로 표현되었다. 즉, 나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위험한 인물이기 때문에 피해야 하지만, 가 려내기가 어렵다는 의미로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안 문제는 ‘21세기 현대사회에서 향원과 같은 인물은 어떻게 알아차릴 것인가?’이다. 필자는 이러한 현안 문제에 대한 답을 모색하기 위해 먼저, 논어에서 나타나는 향 원의 특성에 대해 규명하고자 한다. 향원이라는 인물은, 내면은 소인(小人)이지만, 이 와 다르게 외면은 청렴, 결백, 겸손을 겸비한 군자(君子)의 모습으로 타인들에게 인식 된다. 따라서, 겉과 속이 다른 인물이다. 이러한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서, 말 잘함(佞, 巧言)과 자기합리화 전략을 사용하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은 ‘웅대한 자기상’과 ‘내적 자만심’, 대인관계에서 나타나는 ‘자기중심성’과 관련이 있으며, 현대 이상심리학 중 ‘내현적 자기애(covert narcissism)’와 성격적 특성이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주제어: 향원(鄕源), 가라지(莠), 말 잘함(佞, 巧言), 자기애성, 내현적 자기애 

 

1. 들어가는 말

본 논문은 논어(論語) 속 향원(鄕原)이라는 인간 부류의 성격을 규명하고, 현대 이상심리학의 틀로 해석하는 것이 목적이다. 구체적으로 논어 속 향원의 대표적인 두 가지 특성인 ‘말 잘함(佞, 巧言)’과 ‘자기 합리화’ 전략을 파악하고, 이것을 현대 이상심리학 중 ‘내현적 자기애(covert narcissism)’의 유형과 비교 분석하는 것이다. 동양철학은 인간관계에 관한 지혜를 담고 있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하지만, 동양철학의 상징적 표현들은 가끔 해석의 난해함을 야기시키기 때문에 현대인 이 즉각적으로 해석하여 실천하기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 결하기 위해, 필자는 동양철학에 담겨있는 인간관계에 대한 지혜를, 현대인의 접근이 용이한 심리학으로 해석함으로서, 현대인의 일상적 영역에서 긍정적으 로 기능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시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동양철학은 인간생활에 관련된 모든 분야를 다루고 있다. 사회, 종교, 정치, 처세 등 인간이 관계하는 대부분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 중 하나인 공자의 사 상이 2,500년이 지난 현대에도 독자들에게 읽히는 이유는 시공을 초월한 항존 (恒存)하는 진리가 담보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필자가 관심을 갖는 것은 인 간관계에 관한 내용이다. 논어 속 공자의 언명들은 대부분 인간과 인간관계 대해서 다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에서 향원은 공자가 ‘덕의 적’으로 표현한 위험한 인물이다. 또한, ‘사이 비(似而非)’ 혹은 ‘가라지(莠)’로 표현되었다. 즉, 나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 문에 피해야 하는 인물이지만, 가라지와 같아서 가려내기가 어렵다는 의미로 해 석해 볼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항존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2,500년이 지 난 현재 시점에서도 적용이 가능한 내용일 수 있다. 따라서, 현대에도 향원과 같 은 인물은 조심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안문제 는 “21세기 현대사회에서 향원과 같은 인물은 어떻게 알아차릴 것인가?’이다. 필자는 이러한 현안문제에 대한 답을 모색하기 위해서, 먼저, 논어에서 나타 나는 향원의 특성에 대해 규명하고자 한다. 향원은 논어에서 단 한번 거론되 는 단어이다. 따라서, 논어 원문만으로는 그 성격적 특성을 파악하기 어렵다. 때문에, 향원과 관련된 논어 주석서의 내용들과 맹자에 언급된 내용들을 바탕 으로 향원의 특성을 정의내려보고자 한다. 이어서, 현대인에게 접근이 용이한 심리학을 끌어들여 해석하고자 한다. 현대 이상심리학 중 내현적 자기애(covert  narcissism)의 성격적 특성과 유비하여 해석해 보고자 한다.

 

2. 논어 속 향원의 모습

향원은 논어연구에서 짧은 문장으로 표현된다. 논어에서 단 한번 등장하 며, 그마저도 간단한 문장이다. “향원(鄉原)은 덕(德)의 적(賊)이다.”1) 향원은 논어 연구에서 주요한 소재로 등장하는 예(禮), 인(仁), 도(道) 등 에 비해 상대적으로 언급 횟수가 적다. 따라서 개념의 진의를 파악하기가 용이 하지 않다. 하지만, 언급회수가 적다고 해서 그 의미를 간과하기 어렵다. 왜냐하 면, 공자가 스스로 덕(德)을 해치는 적(賊)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공자에게 덕은 중요한 개념이다.

주지하다시피, 공자는 혼란한 춘추시대를 바로 잡기 위 한 방법으로 주나라의 예를 복권하는 것을 평생의 사명으로 삼았고, 그것을 실 천하려고 노력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문(斯文)전파의 사명(使命)은 천(天)으로부터 부여 받은 것이다. 자신의 사명에 대한 믿음은 공자의 절체 절명의 위기 속에서 드러난다.

하늘이 이 문(文)을 없애려 하셨다면 내가 이 문(文)에 참여하지 못 했을 터이지만, 하늘이 이 문(斯文)을 없애지 않으셨으니, 광인(匡人) 이 장차[其] 나를 어찌하겠는가?”논어「자한」2) 이러한 사명과 더불어, 천으로부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Charisma)을 부여 받았는데, 그것을 덕(德)이라고 볼 수 있다. 하늘이 나에게 덕(德)을 주셨으니, 환퇴(桓魋)가 장차[其] 나를 어찌 하겠느냐?3)

 

    1) 論語, 「陽貨」, “子曰 鄕原德之賊也”

    2) 論語, 「子罕」, “天之將喪斯文也 後死者 不得與於斯文也 天之未喪斯文也 匡人 其 如予

    3) 論語, 「述而」, 子曰 天生德於予 桓魋其如何

 

위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공자는 자신이 하늘로부 터 부여받은 사문 전파의 사명과 덕이라는 힘이 있는 이상, 감히 광땅 사람들이 나 환퇴가 자신을 해칠 수 없다는, 천에 대해 의지하는 마음과 강한 믿음을 통해 위기상황을 극복한다. 이렇듯 공자에게 덕은 자신의 사명을 실현시키는 중요한 힘 으로 인식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공자에게 덕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이런 맥락 속에서, 공자가 향원에 대해서 덕을 해치는 적이라고 규정했다는 것은, 공자가 목표했던 이상사회로 가는 여정에 걸림돌이 되는 대단히 위험한 인물로 인식했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따라서, 향원이라는 인물은 논어 속 에서 짧은 문장으로 단 한번 등장하지만 그 중요성에 대해서 간과하기 어렵다.

향원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논어 원문 외에 관련 주석서와 맹자(孟 子)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논어에서 향원은 단 한번 등장 하기 때문에, 논어 원문만으로 향원을 분석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향원의 성격 양상에 대한 서술은 논어의 고주(古註)나 신주(新註) 모두 대체적으로 크게 이견이 없어 보인다.

그 중 정약용과 맹자의 표현에서 향원이 특 성이 잘 드러난다.

맹자는 향원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비난하려 해도 들추어낼 것이 없으며, 풍자하려 해도 풍자할 것이 없 으며, 유속(流俗)과 동화하고 더러운 세상에 영합하여, 평소에는 진실하 면서 신의가 있는 듯하고 행동함에는 청렴결백(淸廉潔白)한 것 같아서 여러 사람이 다 그를 좋아하면 스스로 옳다고 여기지만, 그런 자와는 함 께 요순(堯舜)의 도에 들어갈 수가 없네(自以爲是。而不可與入堯舜之 道). 그러므로 ‘덕을 해친다.’고 하신 것이네.4)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비슷하지만 아닌 것인 사이비(似而非)’를 미 워하노니, 가라지를 미워함은 벼싹을 어지럽힐까 염려해서이고, 말재주 있는 자를 미워함은 의(義)를 어지럽힐까 염려해서이고, 말 잘하는 입을 가진 자를 미워함은 신(信)을 어지럽힐까 염려해서이고5)

   

   4) 孟子, 「盡心下」, “曰非之無擧 也刺之無刺也 同乎流俗 合乎汙世 居之似忠信 行之 似廉潔 衆皆悅之 自以爲是 而不可與入堯舜之道 故曰德之賊也

    5) 孟子, 「盡心下」, “孔子曰惡似而非者 惡莠 恐其亂苗也 惡佞 恐其亂義也 惡利口 恐 其亂信也 惡鄭聲 恐其亂樂也 惡紫 恐其亂朱也 惡鄕原 恐其亂德也”

 

라고 표현하였고, 이에 대해 정약용은 그것이 옳은 줄 알면서도 여러 사람이 아니라고 하면 따라서 아니라 하고, 분명히 저것이 검은 줄 알면서도 여러 사람이 희다고 하면 따라서 희다하고6) 새로운 뜻을 들으면 비웃고는 스스로 바른 것이라고 내세워 방류(傍 流)에 돌아가고(聞新義則哂之。自居以正而歸之於旁流), 작은 관직을 주면 이를 양보하여 겉으로는 겸손한 듯이 보이나 욕심은 큰 것을 얻는 데에 있고, 행하는 일을 점검하면 별로 허물을 잡아낼 만한 것이 없으나, 심술을 가만히 살펴보면 비루하다고 여기지 않을 수 없으니, 종신토록 배워도 함께 요순의 경지에 들어갈 수 없다.7)

 

    6) 論語古今注, “明知其是而衆非之則非之 明知其黑而衆白之則白之”

    7) 論語古今註, “聞新義則哂之 自居以正而歸之於旁流。授小職則讓之 外視若謙而意 在於大得 點檢行事 別無可捉 點觀心術 罔非可鄙 終身爲學而不可與入堯舜之域”

 

향원은 군자와 비슷한 흉내를 내지만, 근본은 소인에 가까운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향원의 성격 특성에 대한 의견은 신주(新註)나 고주(古註)의 내용이 배치되는 것 없이 대체로 비슷하다. 따라서 이러한 주석들의 의견을 종합 해 보면 ‘향원’이라는 인간 부류의 성격적 특성에 대해 판단을 내려 볼 수 있다. 먼저 향원은 겉과 속이 다른 인물이다. 즉 내면은 사익을 추구하지만, 외면은 공익을 추구하듯 하고, 타인들에게 호혜적이며, 겸손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다. 이러한 모습은 사회적으로 대중의 욕구를 잘 맞추는 모습, 즉 맹자가 말한 유속(流俗)에 잘 동조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결과적으로 허물을 잡아낼 만한 것 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향원의 이러한 모습은 충직(忠直)하고 신의(信義)가 있으며, 청렴(淸廉)하고 결백(潔白)한 듯하여 모든 사람들은 좋아하게 된다.

 

3. 말 잘함(佞, 巧言)에 대한 공자의 입장

필자는 향원의 특성 중 하나를 말 잘함이라고 판단한다. 공자가 직접적으로 ‘말 잘함(佞, 巧言)’이 향원의 특성이라고 표현을 한 구절은 없지만, 공자의 ‘말 잘함’에 대한 입장을 파악해 본다면, 그것이 향원의 특성임을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다. 먼저 ‘말 잘함’에 대한 자공과의 대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자(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말이 없고자 하노라.” 자공(子貢)이 말 하였다. “자(子)께서 말씀을 안 하시면 저희 소자(小子)들이 어떻게 전 술(傳述)하겠습니까?” 자(子)께서 말씀하셨다.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 냐? <말을 하지 않아도> 사시(四時)가 운행(運行)되고 백물(百物)이 생장(生長)한다.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 논어「양화」8)

 

위 구절에서 공자는 실제로 말 잘하는 타인들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 보다는, 스스로 말을 하지 않고자 한다고 선언한다. 이 대목에서 공자의 말하지 않겠다 고 한 대한 공자의 의도를 파악한다면, ‘말 잘함(佞, 巧言)’에 대한 공자의 입장 을 좀 더 명확히 알아차릴 수 있다. 위 내용에서 공자가 사용한 ‘말’에 대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 대목과 관련된 논어의 천 개념에 관한 논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위 대목에서는 천 개념에 대한 두 가지 쟁점이 가능하다. 천 개념은 ‘초월적인 의미를 갖는가?’아 니면, ‘천 개념은 단순히 자연현상을 표현한 현실적 개념인가?’ 라는 쟁점화가 가능하다. 또한, 이러한 쟁점에서 천의 해석에 따라 공자의 ‘말 없고자한다’라는 대목의 의미가 달라 질 수 있다. 위 대목에 대해 주희는 ‘천은 사시가 운행되고 백물이 생장하는 자연 현상이 천리와 의리의 발현으로, 성인의 도와 의리를 드러내 주는 것’9)이라고 표현하 며, 순수한 자연현상 이면의 힘 또는 원리로서 천을 해석한다. 더불어 “성인의 일동일정(一動一靜)은 오묘한 도와 정밀한 의리의 발현이 아님이 없으니, 이 또 한 하늘(天)일 뿐이다.”10) 라고 말하며 성인과 하늘을 동일시시킨다.

 

     8) 論語, 「陽貨」, “子曰 予欲無言 子貢曰 子如不言 則小子何述焉? 子曰 天何言哉? 四 時行焉, 百物生焉, 天何言哉?

     9) 論語集註, “四時行 百物生 莫非天理發見流行之實 不待言而可見.”

   10) 論語集註, “聖人一動一靜, 莫非妙道精義之發, 亦天而已, 豈待言而顯哉? 此亦開示 子貢之切, 惜乎其終不喩也.” 

 

이러한 해석은 천이 순수한 자연현상이라기보다는 리(理)를 드러내는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자연현상 이면에 그것을 운행시키는 분리된 힘으로서 표현한다. 또한 천과 성인을 동일시하면서, 천에 대해 한사코 성인의 초월적인 힘과 연 결시키려는 시도를 볼 수 있다. 이때의 천은 순수한 자연현상을 넘어선 초월적 의미이다.

또한 일동일정(一動一靜)이라는 표현은 성리학적 세계관의 기본이라 고 할 수 있는 태극도설(太極圖說)을 떠올리게 한다. 따라서, 이러한 해석은 성리학의 형이상학적 세계관과 인간관의 틀을 통해 천을 해석한다는 것을 방증한 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공자가 말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 이유는 천리가 발현하여 사 시가 운행되는 오묘한 도와 의리는 단순한 언어적 표현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우 며, 그 이면의 신비로운 모습을 이해해야 한다는 의도였다고 해석 할 수 있다. 즉, 표면의 전경에 드러나는 언어적 표현에 초점을 맞추는 것보다, 그 이면의 리 (理)의 신비로움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때에 말을 하지 않겠다고 공 자가 선언한 것은, ‘말’에 대한 공자의 입장을 설명하기 위한 표현이었다기보다, 천의 초월적이며 오묘한 성질을 설명하기 위해 비유적으로 활용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은 한당 시대의 고주(古註)에 비해 철학적 성향이 강한 남 송시대의 신주(新註)의 영향을 드러내는 대목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하안의 해석은 보다 단순하다.

단지 말이 많은 것이 이익이 적기 때 문에 실천할 것을 종용하기 위한 비유의 수단으로 천을 사용했다고 해석한 다.11)

 

     11) 論語註疏, “以言之為益少 故欲無言 ‘子曰 天何言哉 四時行焉 百物生焉 天何言哉’ 者 此孔子擧天亦不言而令行以為譬也”

 

이때에 천은 주희의 해석과는 다르게 단순한 자연현상으로서 이해될 수 있다.

자신의 의지에 대해 언어적으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비언어적인 자연현상 을 통해 사시를 문제없이 운행시킨다는 점에서 비유로 적절하다는 의미이다. 논 어주소(論語注疏)에 나타난 이러한 해석의 경향은 신주(新註)에 비해 훈고적 성향이 강한 고주(古註)의 성격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정약용 역시 주희의 해석을 비판한다.

백성을 교화시키 기 위해 많을 말을 하는 것보다, 지도자가 묵묵히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이 효과적이라는 측면에서 말없는 천의 운행을 비유한 것은 적절하였다고 평가 하지만, 그것을 리(理)의 발현(發現)만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질의 를 던진다.

즉 리는 본래 지(知)가 없으니 말을 하고자 해도 할 수가 없으므로, 말을 할 수는 있으나 굳이 그렇게 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실천으로 보여주는 지도자와는 다른 맥락이므로 그 비유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하며, 주희의 해석 에 대해 비판을 가한다. 이러한 정약용의 해석은 큰 맥락에서는 동의가 되지만, 이 대목에서 필자는 정약용의 비판에 논리적인 오류가 있다고 판단한다.

정약용의 논리대로 리가 말을 못하는 것 때문에 지도자에 대한 비유로써 적절치 않다면, 자연현상으로서의 천 역시 말을 못하므로 같은 맥락에서 비유가 적절치 않아야 한다. 따라서, 올바 른 지도자로서의 비유에 대해, 공자가 제시한 자연현상으로서의 현실적인 천은 적합하고, 주자가 제시한 초월적 개념인 리는 맞지 않는다라고 설명한다면,

내용 논리의 측면에서 동일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주장에 대한 타당성의 문제가 생기게 된다.

다만, 정약용의 비판에 대해 세부적인 내용보다 형식 논리에 집중해서 바라본다면, 이 대목에서 정약용은 지나치게 형이상학적인 ‘리 (理)’의 개념틀로 천을 이해한다는 것에 대한 비판을 가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하안과 정약용의 해석은 주희의 해석보다 좀 더 현실적인 천의 모습에 방점을 두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주희가 천의 이면에 작동하는 신비스러운 리 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말’이라는 것을 사용했다고 해석한다면, 하안과 정 약용은 오히려 ‘말’에 대한 공자의 입장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연적 천을 활용한 것뿐이라는 입장이다.

이러한 쟁점에 대해 나름의 결론을 내기 위해서는 공자가 천을 언급하게 된 배경에 대해 이해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자공과의 대화에서 천을 이야기 하게 된 맥락은 말이 없고자 한다는 공자의 표현 대해 자공의 걱정 섞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천이라는 비유를 들게 된 것에서 출발한다. 이때에 중요한 점은 ‘말 잘함(佞, 巧言)’이다. 이에 대한 공자의 입장을 이해한 다면, 공자가 왜 말을 하지 않겠다고 했으며,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천을 끌어들 여 비유했는지 그 맥락을 이해해 볼 수 있다. ‘말 잘함(佞, 巧言)’에 관한 공자의 입장은 논어에 몇 번의 구절로 나타난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을 꾸미는 사람 가 운데는 인한 사람이 드물다.”12)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옹은 인하지만 말은 잘하지 못합니다.” 공자 께서 말씀하셨다. “말재주를 어디에 쓰겠는가? 구변 좋은 응답으로 사람 의 말을 막아서 자주 남들에게 미움을 받으니, 그가 인한지는 알지 못하 겠으나, 말재주를 어디에 쓰겠는가?13)

 

     12) 論語, 「學而」, “子曰 巧言令色 鮮矣仁”

     13) 論語, 「公冶長」, “或曰 雍也仁而不佞 子曰 焉用佞? 禦人以口給 屢憎於人 不知其 仁 焉用佞?”

 

자로가 자고를 비읍의 읍재로 삼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남의 아들 을 해치는 구나!” 자로가 말하셨다. “백성이 있고 사직이 있으니, 하필 글을 읽은 뒤에야 학문을 하는 것이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이런 까닭에 말재주 있는 자를 미워하는 것이다.”14) 공자의 말에 대한 입장은 여러 언명 중 위의 세 구절에서 잘 드러난다. 말 잘 하는 모습은 ‘쓸모없음’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며, 말 잘하는 사람 중에는 ‘인(仁) 한 사람이 드물다’, 또는 말 잘하는 사람을 ‘싫어한다’라고 하며 직접적으로 반 감을 표현한다. 공자에게 ‘말 잘하는 모습’은 ‘군자’와 공존 할 수 없는 모습처럼 보인다. 이러한 입장은 위의 세 가지 언명 뿐 아니라 논어 곳곳에 나타난 다.15)

 

     14) 論語, 「先進」, “子路使子羔爲費宰 子曰, 賊夫人之子 子路曰 有民人焉 有社禝焉 何 必讀書 然後爲學? 子曰 是故惡夫佞者”

     15) 論語, 「公冶長」, “子曰 巧言令色足恭 左丘明恥之 丘亦恥之 匿怨而友其人 左丘明 恥之 丘亦恥之” 論語, 「公冶長」, “或曰, 雍也仁而不佞 子曰 焉用佞? 禦人以口給 屢憎於人 不知其 仁 焉用佞?” 論語, 「雍也」, “子曰, 不有祝鮀之佞 而有宋朝之美 難乎免於今之世矣.” 論語, 「先進」, “子路使子羔爲費宰 子曰, “賊夫人之子.” 子路曰, “有民人焉, 有社禝 焉, 何必讀書, 然後爲學? 子曰, “是故惡夫佞者.” 論語, 「憲問」, “微生畝謂孔子曰 丘何爲是栖栖者與? 無乃爲佞乎? 孔子曰 “非敢爲 佞也 疾固也.” 論語, 「衛靈公」, “顔淵問爲邦 子曰 行夏之時 乘殷之輅 服周之冕 樂則韶舞 放鄭聲 遠佞人 鄭聲淫 佞人殆” 論語, 「季氏」, “孔子曰 益者三友 損者三友 友直 友諒 友多聞 益矣 友便辟 友善柔 友便佞 損矣.” 

 

전술한 내용에 비추어 볼 때 말 잘함에 대한 공자의 입장은 명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앞선 논쟁에서도, 공자의 말 잘함(佞, 巧言)에 대해 거 부감이 있다는 입장과 연결지어 판단해 본다면, 주희가 말한 초월적 ‘리’를 드러 내기 위한 수단적 기능보다는, 단지 말 잘함(佞, 巧言)을 싫어하는 공자의 입장 을 드러내기 위해서, 현실적 천을 수단으로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공자는 말 잘하는 모습을 싫어하며, 쓸모없다고 느꼈다면 ‘공자는 논어라는 책이 남겨질 정도로 왜 그 렇게 많은 말을 했을까?’라는 의문을 가져 볼 수 있다. 또한, 군자의 모습을

문질 빈빈(文質彬彬)으로 규정했는데, 내적인 질(質)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문(文)으로서의 ‘말’을 쓸모없다고 한다면, 이 또한 모순일 수 있다. 따라서, 공자는 ‘말 잘 하는 것’ 자체를 싫어했다기보다는, ‘말만 잘하는 것’을 싫어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본 논의의 시초가 되는 공자와 자공과의 대화에서 공자가 말하고자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주희 해석처럼 초월적 천의 의미를 드러내기 위한 도구가 아니고, 단순한 자연현상으로서 천을 비유로 들었을 뿐이며, 오히려 천 을 강조했다기 보다는 현실적으로 ‘실천하지 않고, 말만 잘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천을 끌어들여 설명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공자는 현 실적으로 ‘말만 잘함(佞, 巧言)’을 싫어했다고 볼 수 있다. 필자는 이러한 ‘말 잘함(佞, 巧言)’의 모습이 향원의 특성과 유사하다고 판단 한다. 이것의 근거로 ‘교언영색(巧言令色)’을 들 수 있다. 즉 교언영색의 모습이 향원의 행동특성에 부합한다고 판단할 수 있다. 또한, 맹자가 향원에 대해서 언 급한 대목에 대해서도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향원이 광자를 비난하기를 ‘어찌하여 이렇게 말과 뜻이 커서 말은 행 실을 돌아보지 않고 행실은 말을 돌아보지 않고서 「옛사람이여, 옛사람 이여!」 하는가?’ 하며, 향원이 견자를 비난하기를 ‘행실을 어찌하여 이처 럼 외롭고 쓸쓸하게 하는고?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이 세상의 일을 하여 남들이 선하다고 하면 그만이다.’ 하여 세상에 아첨하는 자가 향원이네16)

 

      16) 孟子, 「盡心 下」, “曰 何以是嘐嘐也 言不顧行 行不顧言 則曰 古之人 古之人 行何 爲踽踽涼涼 生斯世也 爲斯世也 善斯可矣 閹然媚於世也者 是鄕原也”

 

맹자가 이해하는 향원은 광자와 견자에게 각각 말을 교묘하게 바꾸어가며 본 인이 원하는 대로 비판한다. 또한, 자신의 행동에 대한 판단을 내릴 때, 군자의 판단기준인 의(義)의 의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이득인 리(利)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향원이 견자를 비판하는 대목을 풀이해보면, 자신의 내적 신념과 위배되더라도, 단지 타인들이 선하다고 판단되는 것을 선택해야 하며, 이유는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러한 맥락에서 교언영색과 연결고리가 있다고 판단되며, 향원의 중요 한 특성 중 하나라고 파악한다. 

 

4. 자기합리화 전략과 향원(鄕原)

필자는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해 본다. ‘향원이 자신의 내면을 잘 드러내지 않는 기술이 워낙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자신의 본래 모습을 감추고, 많은 사람들에게 마치 충직, 신의, 청렴, 결백을 갖춘 군자(君子)의 모 습으로 인식 될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즉 ‘어떻게 오랫동안 타인들을 속일 수 있을까?’하는 의문인 것이다. 인간은 어느 정도 자신의 속내를 숨길 수 있기 때 문에, 적은 수의 사람을 짧은 시간 동안은 속일 수 있지만, 결국 많은 사람을 대 상으로 하거나, 시간이 오래될수록 결국 자신의 속내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하 지만, 주석을 통해 살펴본 향원의 모습을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 를 군자의 모습으로 착각하고 있다. 단지 그 속내를 유심히 살펴본 자만이 그 내 면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향원은 어떻게 자신의 모습을 오랫동안 많 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속일 수 있는지, 그 요인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첫 번째 요인은 전술한 바와 같이 교언영색이라고 보고 있으며, 더불어, 향원의 ‘자기 합리화’에서 비롯되는 ‘자기 확신’을 하는 성향에서 찾을 수 있 다고 생각한다.

맹자가 묘사한 향원의 모습 중 자기 확신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사람들이 향원을 충직과 신의, 청렴과 결백한 사람으로 인식할 때 “자이위시(自 以爲是)”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즉, 자신 스스로 자신을 평가할 때 타인들과 마 찬가지로 스스로를 충직과 신의, 청렴과 결백한 사람으로 인식한다. 혹은 믿고 있다는 것이다.

정약용의 서술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

“새로운 뜻을 들으면 비웃고는 스스로 바른 것이라고(自居以正) 내세워 방류(傍流)에 돌아가고”라는 대목이 있다.

이 때 중요한 점은 자거이정(自居以正) 즉, 스스로 바르다고 생각하는 것을 내세운 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필자는 향원이라는 인물이 시비(是非)에 대한 자신의 판단기준에 대해 옳은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라고 판단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실제 자신의 모습은 시비의 의사결정에서 판단기준이 되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만, 스스로는 자기 자신은 의(義)에 맞게 행동한다고 착각하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향원이라는 인물의 내, 외적 상태에 대한 두 가 지 가능성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향원이 외적으로는 군자의 행세를 하지만 내적으로는 자신이 소인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는 경우이다. 이 때 향원은 외적 모습과 내적 모습이 분열된 상태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향원은 외적으로 군자인 척 하기 위한 역할극을 해야 하며, 시비의 판단에 있어서도 자 신의 내적 기준을 내세우기 보다는, 군자의 판단 기준을 고려하여 그것을 따르 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때에 향원의 행동이나 모습은 부자연스러울 수 있다. 왜냐하면, 일상생활에서 끈임 없이 역할극을 해야하며, 그 자체가 많은 에너지 를 소모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가능성은 향원은 외적으로, 내적으로 모두 스스로 군자라고 굳게 믿 고 있는 경우이다. 이럴 경우 내,외적 모습의 분열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시비의 판단에 있어서 군자의 흉내를 내거나 역할극을 할 필요가 없게 된다. 이 미 자신의 내면이 군자라고 믿고 있다면, 자신의 내적 신념대로 그대로 외적으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에 향원의 행동은 자연스러울 수 있다. 이러한 두 가지의 가정에 대해 전술한 자거이정(自居以正)과 연결고리가 있 어 보이는 것은 후자이다. 즉 향원은 자신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과 소향이 갖추어진 인물이라는 것을 스스로 확신하고 있는 상태로써 외적인 모습 뿐만 아니라 내적으로도 스스로 자신을 군자라고 확신하고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향원의 특성은 합리화(justification)로 볼 수 있다. 합리화는 정신분석적 방어기제(Defence mechanism)의 일종으로, 프로이트가 이솝우화의 신포도 이야기를 끌어들여 설명한 방어기제이다. 합리화의 핵심은 ‘자기기만적’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향원이 자신의 내면은 소인이지만, 스스로 자신을 군자라고 확 신하는 모습을 보고 자기 기만적 상황에 빠져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만약 향원이 합리화를 쓰지 않을 경우 그의 내면과 외면은 소인과 군자로 분 열된 상태일 것이다. 이때는 스스로 내면과 외면의 괴리에 대해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외적으로 군자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일종의 역할극이 필요하다. 이럴 경우 자기 확신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하지만 합리화를 사용하는 경우 스스로 자신의 내면이 군자라고 믿으며 자기 기만이 이루어지고, 이때에 내면과 외면의 분열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 결과는 자기 확신적 행동 양상으로 드러나게 된다. 따라서, 자신이 외적으로 보여지고 자 하는 모습이 역할극이 아닌 실제 자기 자신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스스로 저 항 없이 이러한 상황은 오래 지속 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현대에 존재하는 성 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특징과 유사하다. 이들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는 병식 (病識)이 없다는 것이다. 즉 자신의 성격이 문제적이어서, 타인들을 착취하거나, 물질적 정신적 상처를 가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전혀 인정하지 않는 상태이다. 

필자는 향원이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을 속일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을 합리화를 통한 자기 확신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따라서 향원은 단지 겉과 속이 다른 사람 이 아니고, 외면은 군자인 척을 하지만 내면은 소인인 경우이지만 합리화의 과 정 속에 자기기만을 통해 스스로를 군자로 믿어버리는 사람이라고 판단해 볼 수 있다. 때문에 타인들은 그 본래 모습을 파악하기 더욱 어려울 수 있다. 이러한 합리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향원의 또 다른 특성은 앞서 논의한 말 잘 함(佞, 巧言)이다. 향원은 스스로를 군자라고 합리화하여 자기확신을 하고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내면과 외면 사이의 괴리가 없어진 것이 아니 고, 그 괴리에 대한 인식(認識)이 자신의 의식에서 소외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아무리 자기기만을 한다고 하더라도 북극성과 같은 자연스러운 덕의 카 리스마가 내면에서 뿜어져 나올 수 없다. 따라서, 그것을 보상할 만한 외적인 화 려함이 필요할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필자는 그것이 바로 ‘말 잘함(佞, 巧 言)’이라고 판단한다. 맹자가 향원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인용한 공자의 언명에서 그것은 잘 드러난 다.

공자는 “말재주 부리는 자를 미워함은 의(義)를 어지럽힐까 두려워서이고” 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향원이 자신의 표현하는 방식 중 하나로 교언영색(巧 言令色)을 들 수 있다. 향원이 타인들에게 충직, 신의 청렴, 결백을 갖춘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는 자기 기만적 합리화 뿐 아니라 ‘교언영색’이라는 기술 또한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논어에서 규정한 군자의 모습은 문질빈빈(文質彬彬)이다. 이러한 군자의 모습은 북극성의 주위를 뭇 별들이 저절로 돌 듯, 덕이라는 힘으로 자연스럽게 표현될 것이다. 이러한 논어적 군자의 틀을 향원에게 적용시켜본다면 향원이 교언영색하는 원인을 파악해 볼 수 있다. 내면이 소인인 향원은 저절로 표현될 덕이 없기 때문에, 외면을 더욱 화려하게 꾸며야 할 것이라고 유추해 볼 수 있다. 따라서, 군자를 문질빈빈으로 정의내릴 수 있다면, 향원은 문질빈추(文質彬 醜)로 표현해 볼 수 있으며, 이러한 내적 질(質)의 부족함을 보상하기 위해서, 외적인 문(文)에 더욱 치중할 수 밖에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양상 중 하나로 교언영색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따라서, 교언영색은 향원의 중요한 특성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앞선 논의에서, 말(言)에 대한 논어 속 공자의 관점을 살펴보았고, 그 결과 공자는 말 잘함 자체를 싫어한다는 것보다, 말만 잘 하는 사람(佞, 巧言令色)을 싫어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러한 성향을 포함하고 있는 인물은 논어속에서 향원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향원의 행동양상을 추적해 본 결과, 두 가지의 결론에 도달하였다. 향원은 자기 합리화에 빠져서, 스스로를 ‘군자’라고 자기기 만하는 자기 확신에 찬 인물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내면과 외면의 괴리가 존재 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말 잘함(巧言令色)이라는 책략을 사용하는 인물이다.

 

5. 내현적 자기애(convert narcissism)와 향원(鄕原)

필자는 이러한 향원의 특성을 현대 이상심리학의 내용 중 내현적 자기애 (covert narcissism)자의 특성과 동치점이 있다고 판단한다. 자기애 즉,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라는 용어는 연못 속에 비친 자신의 모 습을 너무 사랑해서 연못에 뛰어들어 죽었다는 그리스 신화 속 나르키소스 (Narcissus)에서 시작되었다.17)

네케(Paul Nacke)는 자신의 몸을 마치 성적 (性的)인 대상으로 삼는 사람들, 즉 자신의 몸에게 스스로 성적 만족을 느끼는 사람들의 태도를 지칭해서 처음으로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18)

 

      17) 권석만, 이상심리학, 학지사, 2016, 218쪽

      18)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근본 개념, 유희기, 박찬부, 열린책들, 2014, 45쪽 

 

인간에게 적절한 자기애는 자신을 존중하고, 자기 효능감을 높이는 긍정적인 기능을 한다. 더불어, 자기애는 인간의 보편적 성격의 한 측면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이 자기애적 성향을 띠는 것은 정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것이 지나치게 되면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며, 사회적 부적응을 야기시키는 성격장애로 발전 할 수 있다.

자기애적 성격장애는 아래와 같은 특성을 지닌다.

  1. 자신의 중요성에 대한 과장된 지각을 갖고 있다.

  2. 무한한 성공, 권력, 탁월함, 아름다움, 또는 이상적인 사랑에 대한 공 상에 집착한다.

  3. 자신이 특별하고 독특한 존재라고 믿으며, 특별하거나 상류층의 사람 들만이 자신을 이해할 수 있고 또한 그런 사람들하고만 어울려야 한다 고 믿는다.

  4. 과도한 찬사를 요구한다.

  5. 특권의식을 가진다.

예컨대, 특별 대우를 받을 만한 이유가 없는데도 특별 대우나 복종을 바라는 불합리한 기대감을 가진다. 

  6. 대인관계가 착취적이다. 예컨대, 자기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타인들을 이용한다.

  7. 감정이입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타인들의 감정이나 욕구를 인식하거나 확인하려 하지 않는다.

  8. 흔히 타인을 질투하거나 타인들이 자신을 질투하고 있다고 믿는다.

  9. 거만하고 방자한 행동이나 태도를 보인다.19)

위와 내용에서 파악할 수 있는 자기애자의 성격적 특성 중 첫 번째 ‘웅대한 자기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실제 자신의 능력보다 자신을 월 등하게 높게 평가하기 때문에, 높은 목표와 이상으로 이어진다. 더불어서, 자신 은 이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라고 스스로를 위치시키면서, 내적으로 특 권의식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특성은 향원의 성격적 특성과 유사한 면이 있다고 판단된다. 향원은 본래 소인의 특성을 지녔지만, 자기 합리화에 빠져서, 스스로 를 ‘군자’라고 자기기만하는 자기 확신에 찬 인물이라는 점에서 ‘웅대한 자기상’ 과 연결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신의가 있는 듯하고 행동함에는 청렴결백(淸廉潔白)한 것 같아서 여러 사람이 다 그를 좋아하면 스스로 옳다고 여기지만20) 위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스스로도 자신이 옳다고 느낀다’는 점이다.

 

         19) 권석만, 이상심리학, 학지사, 217-218쪽.

         20) 孟子, 「盡心下」, “居之似忠信 行之似廉潔 衆皆悅之” 21) 論語古今註 外視若謙而意在於大得

 

이 대목 에서 스스로를 군자에 위치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점을 웅대한 자기상을 지닌 인물로 판단해 볼 수 있다.

작은 관직을 주면 이를 양보하여 겉으로는 겸손한 듯이 보이나 욕심은 큰 것을 얻는 데에 있고21)

위 문장도 자신의 능력보다 높은 이상과 목표를 지닌다는 점에서 향원의 웅대 한 자기상이 표현되었다고 판단되며, 자기애적 성향을 파악할 수 있는 대목이라 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겉으로는 자신의 관직을 양보하는 모습에서 겸손 하거나 혹은 소극적인 모습인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만약, 향원이 자기애적 성향이 있다면, 누가 봐도 자신의 우 월감을 드러내고, 타인들로부터 끊임없는 찬사를 요구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 에, 자신의 자만심이나 특권의식이 외적으로 잘 드러나게 마련이다. 하지만, ‘향 원은 웅대한 자기상과 자만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외적으로 잘 드러나 지 않고, 오히려 겸손하고, 청렴한 인간으로 보여지는가?’ 하는 점이 의문으로 남는다.

먼저 필자는, 앞선 분석에서 향원이 오랜기간 타인들을 속일 수 있는 이유는 자기기만에서 오는 합리화 전략을 사용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파악했다.

이와 더불어서, 필자는 내현적 자기애성(convert narcissism)을 끌어들여 분석하고자 한다.

자기애성에는 두 가지 부류가 존재하는데, 외현적 자기애(overt narcissism)와 내현적 자기애(convert narcissism)이다.

대표적인 차이는 외현적 자기애는 표면적으로 자기애적 성향이 잘 드러나지만, 내현적 자기애는 그러한 성향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외현적 자기애자는 주위 타인 들이 즉각적으로 그 성향을 파악할 수 있지만, 내현적 자기애자는 오랫동안 세심 하게 관찰해야지 그 내면의 ‘웅대항 자기상’ 혹은 ‘자만심’등을 파악할 수 있다.

즉, 이러한 특성은 대인관계의 특성에서 가장 날 드러나게 된다. 외현적 자기 애자는 오만과 자기과시, 안하무인적 행동이 외적으로 현저하게 드러나지만, 정 작 그것이 타인들에게 어떻게 인식되는지에 대해서 자각이 없는 상태이다. 하지만, 내현적 자기애자는 오히려 타인들의 시선이나 평가를 의식하며, 자신을 낮 추거나 겸손한 태도를 보인다. 이때에, 겸손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우리가 흔 히 생각하는 의미의 겸손함이라기보다, 자기 내면의 웅대한 자기상에 손상을 입 는 상황을 회피하기 위한 책략이다. 즉, 타인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부정적 평가 를 할 경우 웅대한 자기상에 손상이 일어나고, 그것은 자존심에 타격을 주기 때 문에 그것을 회피하려고 하는 것이다. 22) 더불어, 타인들의 시선을 신경쓴다고 해서 그것이 타인의 생각을 존중하고, 감정을 공감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타인을 하나의 인격체로서 소통의 대상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나에 대한 평가를 위해 존재하는 ‘나의 연장선’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인관계가 착취적이며,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23)

 

     22) 한수정, 자기애성 성격장애, 학지사, 2016, 72-73쪽.

     23) 앞의 책, 72-73쪽.

 

요약하자면, 자기애자의 내면적 특성인 웅대한 자기 상, 자만심, 자기중심성, 착취적 대인관계 등은 외현적, 내현적 자기애자 공히 동일한 특성을 지니고 있지만, 자신의 웅대한 자기상의 충족 및 손상을 피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향원이 타인들과 관계맺기 하는 방식을 내현적 자기애의 성 향과 유비적으로 해석 해보고자 한다. 즉, 향원은 내적으로는 소인에 가까운데, 외적으로 그런 성향이 잘 드러나지 않고, 오히려 겸손하고 청렴한 군자의 모습 으로 보여질 수 있는 이유는 내현적 자기애의 특성인 자신의 내적 웅대한 자기 상 보호를 위해서, 타인들의 평가에 민감한 성향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같은 맥락으로, 내현적 자기애자들은 ‘자신이 타인들에게 받아들여 질 수 있 는지? 또는 어떻게 하면 타인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 한다. 따라서, 타인들의 표정과 반응을 세심하게 살피며 그들의 욕구에 부합하 도록 노력한다. 이러한, 대목은 향원의 중요한 특성인 말만 잘함, 즉 교언영색과 연결성이 있어 보인다. 이와 관련된 전술했던 맹자와 정약용의 주석과 더불어서 하안의 주석에도 잘 드러난다.

 

사람이 강직(剛直)하지도 의지가 굳세지도 못하여 사람을 만나면 번번이 그 사람의 취향(趣向)을 탐지해 아첨해 영합(迎合)함을 이르니, 이 것이 덕(德)을 해치는 것이라는 말이다 24)

 

      24)論語註疏, “謂人不能剛毅 而見人輙原其趣嚮 容媚而合之 言此所以賊德”

 

즉, 향원이 의사결정을 내릴 때 기준이 되는 것은, 내적으로 일관된 도덕법칙 에 의한 것이 아니고, 자신에 대한 타인들의 평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향원이 의사결정을 할 때 관심이 있는 것은 ‘타인들이 자신에게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상황’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한 것의 수단으로서, 말 잘함(佞, 巧言) 즉 교언영색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것은 내현적 자기애자의 ‘자존심’ 보호 전략과 유사하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교언영색의 특성은 자기애자의 중요한 특성 중의 하나인, 자기중심성 과 착취적 대인관계 형성과 연결된다.

결국, 향원의 가치판단 기준이 타인들이 자신을 좋게 평가내릴 수 있는 상황이라는 점과 그에 맞추어서 말을 바꾼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들을 속이는 것과 같은 행위이다. 

 

6. 나가는 말

이상의 논의를 통해 향원의 성격적 특성을 규명해 보았고, 이후, 내현적 자기 애자와 유비적으로 해석을 진행하였다. 논어, 맹자 및 그와 관련된 주석서 에 언급된 향원의 특성을 종합하여 유추한 결과 향원의 성격적 특성은 겉과 속 이 다른 인물이다. 겉으로는 청렴, 결백, 겸손을 겸비한 군자(君子)의 모습으로 타인들에게 인식되지만, 내적인 실상은 소인(小人)에 가까운 인물이다. 이러한, 자신의 내 외적 갈등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스스로 군자라고 내적으로 믿어버리 는 자기기만과 합리화에 따른 자기 확신이 있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말 잘함(佞, 巧言)’의 특성도 지니고 있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 다. 전술한 바와 같이 자기 합리화 과정을 통해 자신을 스스로 군자라고 믿어 버 린다고 해도, 내부는 소인이라는 것은 엄연한 실존적 현실이다. 따라서, 자신의 이러한 소인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위한 전략으로 말 잘함(佞, 巧言)을 사용 한다고 판단되었다. 더불어서, 맹자가 지적한대로 시류에 잘 합류하는 인물임을 감안해 본다면, 그때그때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나 의견을 제시함으로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한 수단으로서 말 잘함(佞, 巧言)을 사용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이러한 특성은 시비(是非)의 판단을 내릴 때, 기준이 되는 것은 고 정된 도덕법칙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에 대한 부합 여부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타인과의 관계가 자기중심적이며, 착취적이라는 것의 방증일 수 있다. 향원의 이러한 성향은 자기애자 유사한 점이 있다. 그 중에서 내현적 자기애 (covert narcissism)자의 모습과 흡사하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먼저, 향원 의 자기애적 모습 중 중요한 특성은 ‘웅대한 자기상’이라고 볼 수 있다. 본래는 소인이지만, 자기 합리화에 빠져서 스스로를 ‘군자’라고 자기 기만하는 자기 확 신에 찬 인물이라는 점에서 자기애자의 ‘웅대한 자기상’과 연결된다고 볼 수 있 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자만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오히려 겸손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청렴결백한 군자로 인정받는 모습은, 자신의 웅대한 자기상과 자존심을 보호하려는 내현적 자기애자의 책략과 유사한 모습 이라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또한, 이러한 책략의 수단으로 말 잘함(佞, 巧 言), 교언영색(巧言令色)의 전략을 사용한다고 판단해 볼 수 있다.

 

 

참고문헌

1. 論語 2. 孟子 3. 論語古今注 4. 論語註疏 5. 論語集註 6. 권석만, 이상심리학, 학지사, 서울, 2016. 7.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근본 개념, 유희기, 박찬부, 열린책들, 파주, 2014. 8. 한수정, 자기애성 성격장애, 학지사, 서울, 2016.

 

[Abstract]

Abnormal psychological interpretation of Hyangwon in Analects - Focusing on the covert narcissism

Kim, Yong-Hee(Seonggyun-gwan Univ.)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clarify the characteristics of the human class Hyangwon in Analects and to interpret it as a framework for narcissism in modern abnormal psychology. Specifically, it seeks to identify the two representative characteristics of Hyangwon in Analects, the 'speak well' and ‘self-rationalization’ strategies, and to compare them with the type of narcissism covered in modern abnormal psychology. Hyangwon is a dangerous person expressed by Confucius as a thief of virtue. In addition, it was also expressed as ‘Garaji’. In other words, it can be inferred as someone that is difficult to identify, although they should be avoided because they are a dangerous person who can damage you. If so, our pending issue is “How will people recognize characters like Hyang-won in modern society in the 21st century?” In order to find answers to these pending issues, I would like to first investigate the characteristics of Hyangwon in Analects. Hyangwon is a small person inside, but its external appearance is recognized by others as a noble man with integrity, innocence, and humility. Therefore, he is a person who is different from the outside. In order to maintain this situation, he is a person who uses self-rationalization strategies and skills of speaking well. These characteristics are related to grand self-image, internal pride, and self-centeredness in interpersonal relationships, and can be seen as similar in personality characteristics to covert narcissism in modern abnormal psychology.

Keywords: Hyangwon, Garaji, Good at talking, narcissism, covert narcissism. 

 

2022년 03월 04일 접수      2022년 03월 20일 심사완료         2022년 03월 24일 게재확정

한 국 동 서 철 학 회 논 문 집 동서철학연구 제103호, 2022. 3.

 

『논어』 속 향원(鄕原)에 대한 이상심리학적 해석 - 내현적 자기애(covert narcissism)를 중심으로.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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