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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사단(四端)의 한 해석: 칸트의 선험철학적 관점/정혜진.국민대

 글 요약

본 논문에서 수행하고자 한 목적은 다음의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로 본 연 구는, 맹자의 ‘사단’(四端)’ 개념에 그림자처럼 붙어있는 ‘생득성’을 칸트의 선험철학적 사고에 의존하여 해석함으로써 생득성이 야기하는 불필요한 오해―사단을 경험적인 것으로 착각하는 것―를 불식시키고자 하였다. 둘째로, 본 연구는 맹자의 사단을 칸트 의 선험철학적 관점에 따라 해석함으로써 ‘사단’은 도덕적 행위의 실천을 가능하게 하 는 선험적 조건이며, 이 조건으로서의 ‘사단’은 개인의 ‘주관성 또는 경험성’에 속하는 것이 아닌 ‘선험성 또는 초월성’에 속하는 것임을 보이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본 연구 는 맹자의 사단을 경험에서 나온 것이 아닌, 경험 이전의 것(아프리오리)으로 해석함 으로써 맹자의 ‘사단’은 도덕적 상대주의와 감정주의에서 벗어난 ‘선험적’ 차원의 것임 을 분명히 하여 도덕적 심성을 함양하고자 할 때 가정할 수밖에 없는 논리적 원인으로 해석하였다.

주제어: 맹자, 사단(四端), 사덕(四德), 칸트, 아프리오리

 

1. 서론

맹자의 사단(四端)-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 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타고나는 네 가지 도덕적 감정으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다. 황진홍은 ‘유가윤리학’은 기본적으로 ‘도덕적 감정’을 그 출발점으로 삼고 있으며, 이와 같은 특징이 맹자의 사단설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난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맹자가 말하는 사단은 결코 형이상학적 이거나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경험적 의미를 풍부하게 갖는 ‘도덕감’(moral feeling)이며 이러한 맹자의 ‘사단설’은 후대 유가 윤리학의 주류를 이루며 송명 대의 육구연과 왕수인에게 직접적으로 계승된다고 보았다(이명휘, 2012, p.35-36). 그러나 맹자의 사단을 단순히 인간이 태어날 때 사지(四肢)를 타고 나듯이, 타고나는 마음의 싹과 같은 감정으로 치부하기에는 맹자의 ‘사단’의 개 념에는 인성론을 둘러싼 여러 가지 심각한 이론적 질문들이 내포되어 있다. 당 장 시급한 것은, 도덕적 행위를 일으키는 근거로서의 마음을 ‘타고나는 감정’으 로 보는 것이 맹자의 주장이라고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더 나아가 ‘性은 善’이라는 맹자의 주장(「告子 上」6), 즉 ‘性善’의 의미와 관련하여 보면, 사단은 다름아닌 ‘性善으로서의 性’을 의미하며 이러한 의미에서의 사단 을 단순히 도덕적 감정 또는 도덕적 정감으로 해석하는 것이 맹자의 성론을 온 전히 드러내었다고 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주지하다시피, 동양철학에 있어서 인간의 본성에 관한 탐구의 물꼬를 튼 사람 이 있다면 그는 단연코 맹자일 것이다. 孟子 전편 중에서도 「告子」편에 나타 난 性에 관한 고자와 맹자 사이에 벌어진 논쟁은 인간의 본성에 관한 맹자(孟 子)의 견해를 여실히 드러낸다. 맹자는 당시 만연해 있던 고자의 性에 관한 견 해를 반박하고 ‘性은 善’이라는 이른바 성선설(性善設)을 주장한다. 인간의 ‘성 은 선’이라는 맹자의 주장은 고자가 말하는 성무선무불선설(性無善無不善說)과 상충한다. 고자는 인간의 性을 버드나무 가지에 비유하고, 의(義)를 버드나무 가지로 만든 그릇에 빗대어 인간의 본성에 본디 착함과 악함이 없고 이는 후천 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라 말한다.1) 이는 사람이 태어나고 난 이후에 사회적 관 습에 따라 인간의 도덕성이 형성된다고 보는 관점과 맥을 같이 한다.

고자에 따 르면,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공경하는 것은 사회적 관례이고, 인간이 이것을 처음부터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는다2).

     1) 孟子, 「告子」 上: “告子 曰 性 猶杞柳也 義 猶桮棬也 以人性爲仁義 猶以杞柳爲桮 棬”

     2) ibid.: “孟子 曰 何以謂仁內義外也 曰 彼長而我長之 非有長於我也 猶彼白而我白之 從其白於外也 故 謂之外也” 

 

사회적 관습이나 관례는 외부에 존재한다는 것이 고자의 입장이다.

또한 고자에 의하면, 性은 물에 처음부터 동쪽 과 서쪽이라는 방향성이 없듯이 선(善)도 불선(不善)도 아니다.3)

더 나아가 고자는 인간의 생리적 욕구가 다름 아닌 性이라는 식의 주장을 하면서, 이는 인간이 무엇인가를 가지고 태어난다면 그것은 욕구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며, 거기에는 도덕 가치 판단과 관련된 요소가 없다고 보는 관점을 취하고 있다.

고자가 인간의 성에 관하여 기본적으로 견지하는 입장은 인간의 마음인 인(仁)이 사람 안에 있으나 인간이 마땅히 따라야 할 덕인 의(義)는 바깥에 있다고 하는 인내 의외(仁內義外)설이다.4)

한편 맹자는 고자의 주장을 동일한 비유를 사용하여 반박한다.

맹자는 고자의 버드나무 비유를 사람을 해쳐서 仁과 義를 추구하는 주장이라고 말한다.5)

맹자에 의하면, 물에는 동서의 구분이 없지만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본성이 있는 것 처럼 인간의 본성은 善이다.6)

그러나 이러한 맹자의 반박은 직접적으로 性이 선하다는 견해를 피력한다기보다는 고자의 주장을 비판하면서 性에 관한 자신 의 견해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7)

또한 맹자의 비유를 통한 간접적 반박이 실 제로 고자의 주장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비판하였는가 하는 데에는 의문이 있다. 맹자는 고자가 인과 의를 각각 인간의 안과 밖으로 나누는 것에 비하여 진나라 사람의 비유를 들며 인과 의가 모두 안에 위치한다는 생각을 드러내면서8) 고자 와의 견해 차이를 드러내는가 싶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맛있는 음식을 좋아함 을 비유로 들면서 자신의 인의내재설(仁義內在設)을 주장하는 것을 보면, 인간의 성은 인간의 생리적 욕구라는 고자의 주장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 다.9)

 

      3) ibid.: “告子 曰 性 猶湍水也 決諸東方則東流 決諸西方則西流 人性之無分於善不善也 猶水之無分於東西也”

      4) ibid.: “告子 曰 食色 性也 仁 內也 非外也 義 外也 非內也” 인내의외에 관한 맹자와 고자의 논쟁에 관한 자세한 고찰은, 정혜진,「’仁內義外 논쟁‘에 나타난 맹자의 性의 개념: 메타프락시스적 관점」(도덕교육연구 제30권 1호, 2018) 참조.        5) ibid.: “孟子 曰 子 能順杞柳之性而以爲桮棬乎 將戕賊杞柳而後 以爲桮棬也 如將戕賊 杞柳而以爲桮棬 則亦將戕賊人 以爲仁義與 率天下之人而禍仁義者 必子之言夫”

      6) ibid.: “孟子 曰 水 信無分於東西 無分於上下乎 人性之善也 猶水之就下也 人無有不 善 水無有不下”

      7) 김인, 「孟子에 있어서의 性의 개념과 그 도덕교육적 함의」(도덕교육연구 제13권 1호), 51-68쪽.

      8) 孟子, 「告子」 上: “曰 耆(嗜)秦人之炙 無以異於耆吾炙 夫物 則亦有然者也 然則耆 炙 亦有外與”

      9) 이외에도 인간의 본성을 물의 성질에 비유하는 것은 맹자뿐 아니라 고자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이에 관하여서는 홍원식, 「인간의 본성에 관한 논쟁: 고자와 맹자, 맹자와 순자간의 논쟁」(중국철학 제4권 1호, 1994), 41-70쪽 참고.

 

맹자가 ‘性이 善’임을 주장하는 근본적인 근거는 적어도 맹자가 제시하는 이런 저런 비유에서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맹자가 주장하는 성 선(性善)의 의미 탐구는 ‘사단(四端)’의 개념을 고찰하는 것이 도움이 될지 모 른다. ‘사단’의 개념이 정확하게 이해된다면 맹자의 ‘성선(性善)’의 의미 또한 이 런 저런 비유에서 비롯된 애매성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맹자의 사단 개념 역시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의미상의 애매성을 내포 하고 있다. 사단은 도덕적 감정인가의 여부는 잠시 논외로 미루어더라도, 인간 에게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 (是非之心)이라는 네 가지 마음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측은 지심은 남의 불행을 보고 측은해하는 마음이고, 수오지심은 악을 미워하고 부끄 러워하는 마음이다. 사양지심은 겸손히 사양할 줄 아는 마음이며, 시비지심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마음이다. 이러한 네 가지 마음이 없다면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10) 이 네 가지 마음을 학문적 탐구를 통해 끝까지 실현하게 되면 인의예지 (仁義禮智)라고 하는 사덕(四德)으로 확충(擴充)된다. 사단이 있고, 이 사단을 확충하였을 때 사덕이 되는 것이므로 사덕의 단서(端緖)로서의 四端이라는 인 간의 본성은 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맹자의 사단과 사덕 개념을 해석하는 데에도 주의가 요구된다.

「公孫丑」 상편에서 사단이 사덕의 존재 를 알 수 있는 단서라고 밝히는 것과 다르게, 「告子」 상편에서 맹자는 사단과 사덕을 동일한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11)

 

       10) 孟子, 「公孫丑」 上: “由是觀之 無惻隱之心 非人也 無羞惡之心 非人也 無辭讓之心 非人也 無是非之心 非人也”             11) 孟子, 「告子」 上: “由是觀之 無惻隱之心 非人也 無羞惡之心 非人也 無辭讓之心 非 人也 無是非之心 非人也” 

 

맹자의 사단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 해서는 사단과 사단의 관련은 보다 분명히 드러내고, 나아가 ‘성선’으로서의 성 은 ‘사단으로서의 성’을 의미한다는 점, 그리고 ‘사단으로서의 성’은 도덕적 감정 과 같은 경험적 마음일 수 없다는 점을 밝혀보고자 한다. 아마도 이 과정에서 고 자의 ‘인내의외설’(仁內義外設)과 달리, 어째서 맹자는 仁도 義도 모두 ‘안’이라 는 ‘仁義內在설’을 주장하는가 하는 점 또한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본 논문에서는 사단의 개념을 중심으로 사단과 사덕의 관련을 고찰해보고 여 기에 반영되어 있는 맹자의 생각이 무엇인가를 살펴본 후, 칸트의 선험철학에 기초하여 맹자의 사단의 개념을 해석해보고자 한다. 인간의 도덕적 행위은 맹자 가 의하면 사단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며 이 점에서 사단은 도덕적 행위와 실천 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서의 ‘性’이다. 이때의 四端의 존재방식을 칸트의 선험철학의 핵심개념인 아프리오리(a priori)에 의존하여 해석해보고자 한다. 칸 트의 선험철학에 기초하여 해석하고자 하는 이유는 四端은 도덕적 행위를 하기 이전에 이미 갖추어진 도덕적 감정이라는 식의, 사단의 생득성을 둘러싼 혼란을 해소함으로써 四端의 존재방식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여지를 담보할 수 있기 때 문이다. 그 결과로 맹자의 ‘사단’의 의미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이해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2. 사단(四端)과 사덕(四德)의 관련: 맹자의 교육적 고려

맹자는 사단을 언급하기에 앞서 인간에게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이 있다는 점을 밝힌다. 「梁惠王」 상편에서 맹자는 양혜왕(梁惠王)에게 군자는 동물이 죽 는 장면을 보고 나면 애처로워 고기를 먹지 못하므로 일부러 푸줏간을 멀리한다 고 말한다. 이 애처로워하는 마음이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이다. 불인인지심은 남의 불행을 보고서 ‘차마 어찌할 줄 모르는 마음’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12)

 

         12) 孟子, 「梁惠王」 上: “曰 無傷也 是乃仁術也 見牛 未見羊也 君子之於禽獸也 見其生 不忍見其死 聞其聲 不忍食其肉 是以 君子 遠庖廚也“

 

이 불인인지심을 언급한 이후, 맹자는 불인인지심을 상세화하여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 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의 사단(四端)을 언급한다. 서론에서 언급하였듯이, 일반적으로 맹자가 말하는 사단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네 가지 마 음이다. 이 마음은 사덕(四德)-仁義禮智-의 존재를 밝히는 ‘단서’가 된다. 측 은지심(惻隱之心)은 인(仁)의 단서이고,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의(義)의 단서 이다. 사양지심은 예(禮)의 단서이며, 시비지심은 지(知)의 단서이다. 얼른 보 기에, 사덕의 단서 또는 실마리가 사단이라는 식의 사단과 사덕의 관련을 생각 하기 쉬우나, 여기에는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우선 본격적으로 사단과 사덕의 관계를 논하기 전에 맹자가 사단과 사덕에 관 하여 말한 구절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측은히 여기는 마음은 仁의 싹이며 잘못에 대하여 부끄러워하고 분개 하는 마음은 義의 싹이며 사양하는 마음은 禮의 싹이며, 옳고 그름을 가 리는 마음은 智의 싹이다. 사람이 이 네 개의 싹(四端)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마치 사람이 사지(四肢)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13)

 

(惻隱之心 仁 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智之端也 人之 有是四端也 猶其有四體也, 「公孫丑 上」 6) 측은히 여기는 마음은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 잘못에 대하여 부끄러워하고 분개하는 마음은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 사양하는 마음은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은 사람 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 측은히 여기는 마음은 仁이며, 부끄러워하고 경계하는 마음은 義미며, 공경하는 마음은 禮이며, 옳고 그름을 판단하 는 마음은 智이다.

(惻隱之心 人皆有之 羞惡之心 人皆有之 恭敬之心 人 皆有之 是非之心 人皆有之 惻隱之心 仁也 羞惡之心 義也 恭敬之心 禮也 是非之心 智也, 「告子 上」 6)

 

위의 두 인용문에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맹자는 心을 맥락에 따라 四端이라고도 말하기도 하고 四德이라고도 말하기도 한다. 즉 앞의 「공손추 상」 6에서는 측은지심 등이 四德-仁義禮智-의 발단(端)-仁의 端, 義의 端, 禮의 端, 智의 端-을 가리키다가, 뒤의 「고자 상」 6에서는 측은지심 등의 사단이 발단이라는 말없이 그대로 四德-仁義禮智-을 가리키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 대목에 대한 주희의 주를 살펴보면, 앞의 「공손추 상」 6에서 사단을 누구 나 가지고 있는 네 가지의 마음이라고 한 것은 마치 사단이 마음에 있는 식물의 싹과 같아서 그것이 인의예지로 확충(擴充)된다는 점을 말하기 위한 것이며, 뒤 의 「고자 상」 6에서 누구나 가지고 있는 네 가지의 마음을 그대로 四德이라고 한 것은 마음의 본체(本體)가 곧 仁義禮智라는 점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14) 이 와 같은 주희의 해석은 ‘사단’은 ‘경험적 마음’(情)이며 그것이 仁義禮智의 四德 으로 확충된다고 보는 입장이다15)

 

      13) 인용문의 번역은 이홍우의 성리학의 교육이론(2014)의 번역을 따른 것이다.

      14) 前篇 言是四者爲仁義禮智之端 而此不言端者 皮欲其擴而充之 此直因用以著其本體 故 言有不同耳, 孟子集註, 告子 上 6

      15) 惻隱羞惡辭讓是非 情也 仁義禮智 性也 心統性情也 端緖也 因其情之發 而性之本然 可得而見 猶有物在中 而緖見於外也, 孟子集註, 公孫丑 6 

 

그리하여 주희는 사단은 情이고, 사덕이 性 이라고 주장한다. 즉 주희는 맹자의 사단과 사덕을 情과 性의 관련으로 파악하 였다. 그러나 맹자의 ‘사단’을 주희의 해석에 따라 ‘경험적 마음’으로 간주한다 면, 태어날 때부터 경험적 내용이 담긴 마음을 타고난다는 불합리에 빠지게 되 어, 생득설에 대한 거부감을 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맹자가 性의 생득성을 부정  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인간은 분명 타고나는 것이 있으며, 인간이 타고 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으로 보아야 하는가 하는 것이 맹자에게서는 믿거나 말거나의 문제가 아닌, 의미 있는 질문으로 성립한다.

일단 맹자는 인간이 타고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성’ 즉, ‘사단으로서의 성’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맹자가 한번은 四端으로 한번은 四德으로 말하는 이유는 性의 완전한 실현태가 사덕이기 때문이다. 맹자에 의하면, 사덕(仁義禮智)은 ‘사단으로서의 性’이 완전하게 실현된 상태-맹자의 용어로, 擴充된 상태-로서의 마음을 가리켜 부르는 이름이다. ‘미발’(未發)과 이발(已發)의 개념을 써서 규정해 보자면, 사덕은 ‘이발’(已發)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16) 맹자에게서 사단은 性이며 이 ‘사단으로서의 성’의 실현을 설명하기 위해서 四德을 말한 것이다. 맹자에게 있 어서 이 두 가지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즉 ‘사단으로서의 성’은 ‘未發’이며, 사덕으로서의 성은 다름 아닌 ‘已發’이라고 볼 수 있다. 성을 어느 관점에서―표 현이전이냐 표현이후이냐―규정하느냐의 차이를 제외한다면 사단과 사덕은 동일한 개념이다. 그러나 동일한 개념을 어째서 두가지로 구분하여 말하는가 하는 점을 맹자에게 묻는다면 맹자는 무엇이라고 대답하겠는가? 그 대답은, 추측컨 대, 우리의 삶이 올바른 모습을 갖추도록 해주는, 삶의 이상적 표준을 드러내기 위해서라는 것일 것이다. 四德은 우리가 획득해야 할 삶의 이상적 표준이며, 맹 자의 四端은 그것을 향하도록 처음부터 그것이 우리의 본성으로 주어져 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한 것이라고 수 있다.17)(정혜진, 2018, p. 33-35).

 

     16) 이하 미발과 이발의 개념과 사단 사덕의 해석문제는, 전적으로 이홍우 교수의, ‘선악의 존재방식, 도덕교육연구 27(1), 2015, p. 224 ff’ 에 의존하고 있다.

      17) 타고나는 것으로서의 性과 획득되는 것으로서의 性의 관련 문제에 관한 고찰은, ‘김인, 인간의 본성과 교육, 성경재, 2003’ 참조. 

 

이처럼 맹자의 사단과 사덕의 관련을 미발과 이발의 관련으로 파악해본다면, 사단은 性이며 사덕은 ‘性의 완전한 표현’이다. 이러한 사고 속에는 인간의 심성 함양이라는 교육적 고려가 녹아있다.

四端이 외부 사태에 적용되어서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게 될 때 그 속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 어느 정도 四德을 구현하고 있다. 이점을 반대방향에서 말하면, 사덕을 표현하고 있는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부터 추론되는 마음, 그것이 ‘사단으로서의 성’이다. 그러나 우리가 ‘미발의 표준으로서의 性’을 ‘四端’으로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과연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은 그것의 외적 표현물들을 통해서만 알려지고 확 인될 수 있다. 四德은 이점에서 보면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四德은,이미 우리가 획득한 마음(情)속에 있으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의 생 각과 말과 행동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사덕은 현재의 우리의 마음이면서 그와 동시에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 획득하고 지향해야 할 이상적 표준으로서의 마음이기도 하다.

맹자는 우리의 마음이 지향해야 할 표준을 분명히 하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인간의 본성으로 주어져 있다는 점을 말하고자 한 것으 로 보인다.

 

3. 칸트의 선험철학적 관점 : 아프리오리(apriori)

이상의 맹자의 사단 개념을 선험철학적 관점에서 해석하기 위해서 이 절에서 는 칸트의 아프리오리의 개념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칸트의 선험철학의 시작을 알리는 순수이성비판부터 간략히 살펴보기로 하겠다. 순수이성비 판에서 칸트는 자연형이상학의 가능성을 ‘인간의 인식’을 거점으로 탐구한다. 이 작업을 위하여 칸트는 인간의 이성이 인식할 수 있는 범위의 한계를 결정한다.

칸트는 처음에 어떻게 인간이 사물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지를 분석한다. 칸트에 의하면 인식은 크게 직관과 개념으로 구분할 수 있다. 직관은 사물의 표 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부류이다. 개념은 사물들 간의 관계를 통하여 대상을 인식하고 만들어내는 적극적인 부류이다. 이 두 가지를 가능하게 하는 능력이 각각 감성과 이성이다. 감성과 이성은 구분되는 개념이지만 현실 속에서 실제로 이루어지는 인식은 이 두 가지 능력을 동시에 사용함으로써 성립 된다. 감성이 제공하는 내용이 없으면 이성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사고를 할 뿐 이고, 이성의 능동적인 역할이 없으면 주어지는 정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뿐이다. 이 두 가지 성질은 우열(優劣)이 없다. 감성이 없으면 대상은 주어지 지 않을 것이다. 이성이 없으면 대상은 도무지 생각되지 않을 것이다. 내 용이 없는 사고는 공허하고, 개념이 없는 직관은 맹목이다.”(Kant, [KrV]18), B75, 백종현(역), p. 96을 인용한 김재호, 2018에서 재인용)

 

        18) 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은 약호 [KrV]로 표기하고 초판(1781) 은 “A”로, 재판(1787)은 “B”로 표시하고, 이어 면수를 제시한다. 본 연구에 언급된 칸트 원저서 제목은 다음의 약호를 사용하고, 이를 수록한 베를린 학술원판 전집  [AA] 권수(와 인용 역본)는 다음과 같다. 순수이성비판 : Kritik der reinen Vernunft [KrV], AA Ⅲ~Ⅳ. 윤리형이상학 정초: 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GMS], AA Ⅳ. 실천이성비판 :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KpV], AA V. 형이상학서설: Prolegomena zu einer jeden künfitgen Metaphysik, die als Wissenschaft wird aufreten können [Prol], AA Ⅳ. 

 

감성과 이성의 분류를 통해 인간의 인식이 일어나는 과정을 기술하는 학문이 일반 논리학이다.

일반 논리학은 다시 순수 논리학과 응용 논리학으로 구분된 다. 응용 논리학은 우리의 인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습관이나 경험의 역할까 지 고려하는 논리학이다. 반면에 순수 논리학은 경험적인 조건들을 제외하고 이루어지는 형식적 규칙을 다룬다. 여기에서 순수 논리학이 우리의 인식이 타당한 지를 검증할 수 있는 규준으로 기능할 수 있다. 또한 순수 논리학은 우리의 경험 이전에 있는 ‘아프리오리’를 다루게 된다.

 

일반 논리학은 순수 논리학이거나 응용 논리학이다. 전자에 있어서는 우리의 이성이 적용되는 바 모든 경험적인 조건들을 우리는 무시한다. 가령 감각기관의 영향, 상상(想像)의 관여, 기억의 법칙, 습관의 힘, 애 착 등등 또 선입견의 원천, 더 나아가 혹종(惑種)의 인식을 낳게 하고 혹 은 이런 인식을 잘못 우리의 인식 안에 밀어 넣는 모든 원인도 일반적으 로 무시한다.”(Kant, [KrV], B77, 백종현(역), p. 96)

 

한편 순수 논리학은 이성의 순수한 사용에 관하여서 올바르게 사용하였는지 를 판단하는 규준이 될 수 있지만, 경험적인 요소들을 제외하였기 때문에 인간 의 인식이 대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인간의 인식을 감 성과 이성으로 구분하였기 때문에 이 둘을 포괄하는 새로운 논리학이 필요하다. 이에 칸트는 인간이 인식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다루는 ‘선험적’(transcendental) 논리학을 제시한다. 선험적 논리학은 경험적 인식을 가능하게 만드는 논리적 조 건으로서의 아프리오리에 관한 학문이라고 볼 수 있다. 아프리오리(a priori)는 자의적으로 ‘경험 이전’을 의미하지만, 아프리오리는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사 실적 조건이 아니다.19)

 

    19) 철학에서 칸트의 공헌을 집약적으로 표현하는 개념인 ‘아프리오리’(a priori)는 플라톤의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상태’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아프리오리는, 자의상으 로는, ‘무엇무엇에 앞서는 것’ 또는 ‘이전’을 뜻하며, 여기서 무엇무엇에 해당하는 것은, ‘이후’를 뜻하는 ‘아포스테리오리’(a posteriori)에서와 마찬가지로, 경험이다. 그리하여 아프리오리는, 아포스테리오리가 ‘경험 이후’를 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험 이전’을 뜻한다. ‘지식은 경험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반드시 경 험과 더불어 생긴다’라는 칸트의 유명한 명제와 비추어, ‘경험 이전’을 뜻하는 아프 리오리는 ‘지식’이 될 수 없다. (칸트 자신은 a priori knowledge ‘아프리오리적 지 식’, 또는 a priori concept ‘아프리오리적 개념’과 같은 용어를 쓰지만 이 용어는 경험 이전에 지식이나 개념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지 식’-이미 ‘경험과 더불어’ 생긴 지식-에서 경험 내용을 관념상으로 배제했을 때에 남게 되는 ‘순수한’ 지식을 가리킨다. 이 경우의 아프리오리는 ‘순수이성’에서의 ‘순 수’와 동일한 의미를 나타낸다.) 아프리오리는 지식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식 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프리오리는 지식을 획득하는 사태- 즉, 인 식의 사태-에서 인식을 하는 당사자의 마음의 한 부분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식은 아니지만 인식의 주관적 요소로 작용한다’는 이 표현의 플라톤의 ‘메논’에서 이끌어 낸 ‘알면서도 알지 못한다’는 표현과 완전히 동일한 의미를 나타낸다. (이홍우, 2006: 282-282). 

 

 

아프리오리는 경험적 인식의 조건이기는 하지만, 이 때의 조건은 경험의 논리적 조건, 즉 논리적 가정에 해당하는 것이다. 여기서 아프 리오리가 경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인식할 수 있을 때 아프리오리를 칸트는 ‘선험적’(transcendental)이라고 부른다(Kant, [KrV], B25, 백종현(역), p. 68). 아프리오리는 경험을 통해서 그 내용을 인식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경험적 인식과 동시에 존재하며 경험적 인식을 가능하게 해주는 인식의 주관적 조건이 라고 말할 수 있다. 칸트는 감성을 가능하게 하는 아프리오리로 ‘시간과 공간’을 제시한다. 외부에 있는 대상을 감성을 통하여 인식할 때, 우리는 대상이 어디에 있고 어느 순간에 있음을 파악한다. 이러한 인식이 가능하려면 ‘시간과 공간’의 이념이 우리의 경험이 일어나기 이전에 이미 있어야 한다는 점을 논리적으로 가정해야 한다. 이성의 경우 칸트는 ‘열두 가지 범주’를 제시한다.20)

 

    20) 칸트는 범주를 12개로 확정하여 제시하고 있다. 칸트에 의하면, 일체의 판단은 크게 4가지 강목(head), 즉 분량(Quantity)에 대한 판단, 성질(Quality)에 대한 판단, 관계(Relation)에 대한 판단, 양상(Modality)에 대한 판단으로 구분된다. 이 4가지 강목들은 다시 3가지 계기(moment)로 세분된다. 즉 분량의 강목은 ‘단일성’ (Unity), ‘다수성’(Plurality), ‘전체성’(Totality)으로 성질의 강목은 ‘실재성’(Reality), ‘부정성’(Negation), ‘제한성’(Limitation)으로 구분되며, 관계의 강목은 ‘실체와 속성’(Substance & Accident), ‘원인과 결과’(cause & Effect), ‘능동자와 수동자’(Agent & Patient)로 양상의 강목은 ‘가능성과 불가능성’(Possibility & Impossibillty), ‘현존재와 비존재’(Existence & Non-Existence), ‘필연성과 우연성’(Necessity & Contingency)으로 세부뇐다. 칸트는 이러한 ‘순수한 개념’들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전례에 다라서 ‘범주(category)’라고 명명하고 있다. (Kant, [KrV], B105-109.)

 

범주는 분량,성질, 관계, 양상의 개념으로 분류가 되고 다시 그 각각은 세 가지 세부 기능들 로 분류된다.

이성과 대상이 관계를 맺으려면 이러한 아프리오리라는 인식의 주관적 조건으로서의 인식 틀이 ‘경험 이전에’ 있다고 보지 않으면 안된다. 이처럼 ‘아프리오리’는 언제나 경험적 인식과 동시에 있지만, 경험으로부터 독립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아프리오리의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할 수는 없 다. 인간은 아프리오리라는 이념의 존재를 논리상으로만 인식할 수 있을 뿐 그 것을 경험적 대상의 속성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아프리오리는 경험적 인식이 성립했다는 그 지점으로부터 연역적으로 도출될 수밖에 없는 인식의 논리적 조 건이다. 아프리오리의 성격을 좀 더 고찰해보기 위해 칸트가 제시하는 네 가지 이율배반 중 인간의 자유에 관한 이율배반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칸트에게서 ‘자유’는 ‘아프리오리’로서 자연세계에서 어떤 구체적 대상으로 인식되지 않는, 연역적으로 도출되는 ‘이념’이다. 인간과 자유의 관련문제에 입각해서 자유의 이념에 관 한 두 가지 가정을 생각해볼 수 있다. 먼저 ‘인간은 자유롭다’는 명제만을 받아 들인다면 인간이 자연법칙에 종속되어 있다는 엄연한 사실이 설명되지 않는다. 반면에 ‘인간은 자유롭지 않다’는 명제만을 받아들이면 인간이 자연적 경향성을 극복하고 추구하는 도덕법칙이 성립되지 않는다. 두 명제 모두 거짓임을 받아들 이기는 어려우므로 결국 두 명제 모두 참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이 때 모순이 발생한다. 이 이율배반에 따라 생기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하여 칸트는 자연법칙에 종속된 감성적 세계(현상계)와 물자체가 나타내는 세계(본체계) 를 구분하게 된다. 인간 역시 칸트는 ‘자연세계에 속하는 인간’과 ‘물자체 세계 에 속하는 인간’이라는 두 측면으로 구분한다.

 

그러므로 이렇게 해서 실천적 자유가, 곧 그 안에서 이성이 객관적으로 규정하는 근거들에 따라서 원인성을 갖는 자유가, 현상으로서의 동일한 결과들에 관한 자연필연성에 조금도 손해를 입히는 일 없이, 구출된다. 바로 이것은 우리가 [선험적] 자유와 그것의 자연필연성과의 화합― 동일한 관계에서는 아니지만 같은 주체에서의―에 관해 말해야만 했던 것의 설명에도 이바지할 수 있다....이렇게 해서 사람들은 이성적 존재자 들에서 또는 일반적으로 존재자에서, 그것들의 원인성이 사물 그 자체로 서의 그것들에서 규정되는 한에서, 자연법칙들과의 모순에 빠지지 않고 서, 상태들의 하나의 계열을 자기로부터/스스로 시작하는 능력을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행위의 객관적 이성 근거들과의 관계는 시간적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Kant, [Prol], A156, 백종현(역), p. 276).

 

여기서 행위의 근거가 되는 이념들 간의 관계는 ‘시간적인’ 것이 아닌 ‘논리적 인’ 것이다.

이러한 구분은 이성의 사변적 사용에 한계를 그음과 동시에 자유 이념에 근거하여 인간이 주체가 되는 윤리형이상학의 가능성까지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21)

 

        21) 칸트가 말하는 ‘물자체’는 이후 실천이성비판에서 이루어지는 이성의 실천적 사 용에 관한 논의에서 중요한 신, 자유, 영혼의 불멸성을 받아들이도록 해주었다. 칸트는 또한 형이상학의 대상과 한계를 규정하고, 세계를 두 가지 측면으로 구분한 후 두 측면에 걸쳐 있는 존재로서 인간을 말함으로써 인간이 도덕 실천의 주체임을 밝힐 수 있었다. 이에 관하여서는, 이재헌, “칸트의 물자체 개념–칸트의 형이상학 구상과 초월에 대한 입장에 관하여-”, 철학사상문화 제6호, 2008, 147-170 참고. 

 

이에 관한 내용은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에서 보다 구체화된다. 칸트는 실천이성비판에서 도덕법칙과 자연법칙을 구분한다. 이성이 실천적으로 사용되었을 때 도출되는 법칙은 도덕법칙이다.

 

순수 이성의 실천 규칙은 첫째로, 실천적인 것으로서, 객관의 실존에 관한 것이고, 둘째로 순수 이성의 실천 규칙으로서, 행위의 현존과 관련 하여 필연성을 수반하는, 그러니까 실천 법칙이며, 그것도 경험적 규정 근거들에 의한 자연법칙이 아니라, 그에 따라서 의지가 모든 경험적인 것으로부터 독립해 (순전히 법칙 일반의 표상 및 이 법칙의 형식에 의하 여) 규정되어야 하는 자유의 법칙이고, 그러면서도 가능한 행위로 나타 나는 모든 경우는 오로지 경험적일 수 있으므로, 다시 말해 경험 및 자연 에 속할 수 있다. (Kant, [KpV], 백종현(역), p. 36)

 

그렇지만 도덕법칙을 수립하는 데 자연법칙이 제외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어떤 특정한 행위를 할 때 따르는 행위의 준칙(Maxim)은 그 자체로는 도덕법 칙이 될 수 없다. 준칙은 개인의 경험에 기반한 것으로서 보편적이지도 선험적 이지도 않다. 준칙은 개인의 경험에 따라 우연적으로 구성된 행위의 주관적 원리이다. 칸트에 의하면 도덕법칙은 객관성과 필연성을 담보해야 하는데, 준칙은 그럴 수 없다. 준칙은 개인의 주관적 경험과 판단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으로서, 자연법칙에 따라 그 타당성을 검사받는다. 자연 세계에서 인간의 경험적 판단은 어쩔 수 없이 자연법칙을 필요로 한다. 즉, 자연법칙에 부합하지 않으면 준칙은 성립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모종의 질료를 전제로 하여 성립하는 준칙은 도덕법칙으로서 가능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에 칸트는 경험적인 실천 원리들이 도덕 법칙이 될 수 없음을 논증한다. 쾌와 불쾌, 다수의 행복, 건강 등의 실천 원리들은 개인에 따라서 주관적일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보편적일 수 없다.

도덕법칙은 질료를 전제하지 않아야 하므로, 순전한 ‘형식’이어야 한다.

결국 도덕법칙이 될 수 있는 것은 어떠한 질료를 조건으로 요구하지 않는 ‘형식’으로서의 아프리오리이다.

인간의 자연적 경향성은 누구에게나 보편타당한 도덕적 강제를 요구할 수 없다. 이 점은 도덕적 감정도 마찬가지이다.

칸트는 인간이 도덕법칙을 자신의 행위 준칙으로 삼으려고 의욕하는 개인이 이를 어겼을 때 느끼는 특별한 감정 자체가

도덕법칙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이 감정은 도덕법칙에 따라 행위 할 때 필요한 것임은 인정하고 있다.

 

오히려 본래 유일하게 도덕 감정이라고 일컬어질 만한 이 감정을 정 초하고 개발하는 것이야말로 의무에 속하는 것이기조차 하다. 그러나 의 무의 감정이 이것으로부터 도출될 수는 없다(Kant, [KpV], 백종현 (역) 68)

 

지금까지 언급한 칸트의 입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칸트는 인간 이성의 사변적인 사용으로는 인식할 수 없는 영역이 있음을 규정하고, 인간이 아프리오리가 나타내는 세계와 자연법칙에 지배되는 세계에 걸쳐 있는 특수한 존재임을 밝힌다.

세계를 두 개의 층위로 구분하여 인간과 자유 이념에 따른 이율배반을 해결한 칸트는 비로소 모두에게 보편타당한 도덕법칙이 가능함을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칸트는 보편타당한 도덕법칙은 ‘아프리오리’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결국 칸트의 도덕형이상학은, 자연형이상학과 마찬가지로, 아프리오리와 물자체 개념을 기반으로 하여 성립가능하다는 설명을 하고 있는 셈이다. 아프리오리라는 개념은 명실상부한 칸트의 발명품이자 초월과 내재를 동시에 말하고 한 칸트 선험철학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4. 칸트의 선험철학적 관점에서 해석한 맹자의 사단: 아프리오리로서의 사단

이제 다시 맹자의 사단의 개념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기로 하자. 맹자의 사단을 칸트의 아프리오리 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는가? 사단을 칸트의 선험철학적 개념인 아프리오리로 해석할 때 맹자의 사단의 개념, 그리고 사단과 사덕의 관 련, 더 나아가 성선의 의미 해석에 어떤 이점이 있는가? 2절에 어느 정도 시사되어 있듯이, 맹자의 사단은 ‘未發로서의 性’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칸트의 아프리오리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

칸트의 아프리오리는 경험적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인식주체의 주관적 조건이자 논리적 조건이라는 의미에서의 ‘경험 이전’이다. 경험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닌 ‘선험적’(transcendental)인 것이다. 다시 말하여 아프리오리는 경험적인 것과 언제나 동시에 있으면서 경험적 인식을 가 능하게 하는 경험적 인식의 논리적 가정에 해당하는 인식의 주관적 조건이다. 칸트는 아프리오리를 순수이성비판에서 인식의 사태에는 경험적인 것을 넘어서는 선험적 차원이 있음을 아프리오리의 개념을 통해서 밝혔다는 점에서 가히 혁명적 성과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의 ‘초월적’(transcendant) 측면은 그대로 맹자의 사단의 개념에도 적용해볼 수 있다. 우리가 도덕적 행위를 하게 되는 것은 그 속에 초월적 측면이 개입되어 있으며 맹자는 그 점을 ‘사단’의 개념을 통해서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앞의 2절에서 살펴보았듯이 사단은 ‘미발의 표준으로서의 성’이라고 해석할 경우에 미발의 의미를 문자 그대로 ‘표 현이전 상태’를 의미하는 경험적 의미로 해석하게 되면 경험적인 내용을 타고난 다는 불합리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미발(未發)’의 의미를 칸트의 아프리오리로 해석할 경우 미발은 ‘경험적 의미’가 아닌 ‘형이상학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리하여 ‘미발로서의 사단’은 인간의 마음에 장착된 형이상학적 마음 또는 ‘마음의 형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마음의 형식으로서의 사단은 사덕과 차원을 달리하는 마음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것을 성리학에서는 未發과 已發이라는 개념적 도구를 사용하여 나타내 었다면 칸트의 선험철학에서는 경험적인 것과 선험적인 것 또는 현상계와 본체계라는 용어로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즉 사단을 도덕적 행위와 실천을 가능하 게 하는 아프리오리로 해석해본다면, 그것은 어떠한 경험적 내용도 담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아프리오리로서의 사단은 도덕적 행위와 실천에 ‘선험적으로’ 관여한다. 이런 의미에서 四端은 칸트의 용어로 인간 행위의 ‘선험적 형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맹자가 사단을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등 경험적인 의미가 강하게 풍기는 용어로 진술하였어도 그것은 인간의 행위 속에 들어있는 ‘마음의 형식’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칸트가 경험적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이성의 아프리오리로 범주를 제시하였듯이, 사단은 인간의 도덕적 실천이 가능하려면 논리적으로 가정해야 하는 ‘마음의 형식’이다. 사단은 ‘아프리오리로서의 마음의 형식’으로 규정될 수 있다. 맹자는 사단과 관련하여 사덕 역시 ‘안’이라고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단이 마음의 형식이라고 한다면 사덕은 무엇이라고 볼 수 있는 가? 주희 역시 사덕이 ‘안’이라는 맹자의 주장을 따른다. 「告子」 상편에서 맹자가 나이 많은 말과 어른을 비교하며 고자를 비판한 구절에서 보면, 주희(朱熹)는 말이 희다고 하는 것과 사람이 희다고 하는 것은 같지만 말이 나이가 많으므로 쓸모가 없다는 것과 인간이 나이가 많으므로 공경해야 한다 것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주를 달았다.22)

 

       22) 孟子集註, 「告子」 上: “張氏曰 上異於二字 宜衍 李氏曰 或有闕文焉 愚按 白馬, 白 人 所謂彼白而我白之也 長馬, 長人 所謂彼長而我長之也 白馬, 白人 不異 而長馬, 長 人 不同 是乃所謂義也 義不在彼之長 而在我長之之心 則義之非外 明矣” 

 

나이 많은 어른을 공경하는 것은 인간의 선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것은 義가 바깥에 있다고 보는 고자의 주장을 향한 반박이기도 하다. 인간의 선한 마음의 표현으로 어른을 공경한다면 사회적 관습에 따라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다. 맹자의 성선설은 사단과 사덕을 모두 ‘인간의 마음’으로 보고 사단을 ‘처음부터 인간의 마음 안에 있다고 보지 않으면 안되는 마 음의 형식’으로 본 것에서 비롯된다. 여기서 ‘마음 안에 이미 있다’는 말을 어떻 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마음에 이미 있다는 말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주어져 있 음을 의미할 수도 있고, 논리적으로 따져 보았을 때 논리상으로 먼저 있다고 보아야 함을 의미할 수도 있다. 전자를 ‘시간상 이전’, 후자를 ‘논리상 이전’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사단은 이 두 가지 뜻 중 어떤 뜻으로 해석해야 하는가 하는 점 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전자로 해석할 경우 인간이 마음 속에 구체적 으로 어떠한 내용을 갖고 태어난다는 뜻이다. 그러나 마음속에 이미 경험적 내 용을 가지고 태어난다면 맹자나 주희의 주장의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미 경험적 내용을 가지고 태어난다면 인간은 아무런 인위적 노력 없이도 선해질 수 있다. 그러나 맹자의 사단의 의미를 ‘논리상의 이전으로 해석할 경우, 즉 아프리오리로 해석할 경우, 사단과 사덕의 관련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앞서 말 했듯이 사단을 선험적 차원의 것으로, 사덕은 경험적 차원의 것으로 인간의 마음의 층위를 달리하여 마음을 두 측면에서 파악하는 것이다.23) 사지가 있듯이 이미 있는 것으로서의 사단은 ‘논리상 이전’의 의미로 ‘마음에 이미 있다’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즉 사단을 아프리오리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맹자의 사단은, 칸트의 아프리오리가 그렇듯이, 가장 내면적인 실체이면서 비본질적 요소가 완전히 제거된 가장 순수한 형태의 마음, 즉 ‘미발의 표준으로서의 성’이다. 사단을 이처럼 아프리오리로서의 성으로 해석할 경우, 생득성을 부정할 필요도 없으며 사덕과의 관련에서도 사덕을 이미 가지고 태어난다는 뜻인가 하는 불필요한 논쟁에 휘말리지 않게 된다. 사덕은 사단의 가장 완전하게 표현 된 마음이라는 점에서 ‘已發의 수준에 표현된 사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사 단과 사덕은 모두 안이라는 맹자의 규정은 사단과 사덕은 모두 마음이라는 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도덕적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사단으로서의 성’이 온전히 표현되었을 때―맹자의 용어로는 확충되었을 때―사덕이 된다면, 이 사덕-仁義禮智-은 누구에게나 보편타당한 도덕법칙으로 기능한다. 도덕적 실천의 가능성은 사단에 의해 담보되며, 사덕은 인간행위가 성선에 걸맞는 일인지 판단하는 기준으로 기능하다. 사단으로 인한 행위가 사덕에 부합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과정이 다름 아닌 맹자가 말하는 ‘확충’의 과정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이상의 논의를 토대로 性善의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 겠다. 맹자의 성선설은 고자와의 논쟁에서 성립된 이론이다. 맹자와 반대되는 입장에 서 있는 고자는 인간의 성에 선함도 선하지 않음도 없다고 말한다.24) 성에 선함과 선하지 않음이 없다는 뜻은 성에 도덕적 가치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기준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반면에 맹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단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선함과 선하지 않음을 구분할 수 있다. 여기서 맹자는 시경(時經) 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사물이 있으면 사물이 따르는 법칙이 있듯이 인간이 있으면 인간이 따르는 법칙이 있으며, 이 법칙이 덕(德)이라는 것이다.25)

 

      23)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맹자의 성론을 해석하려는 시도는 김인, 인간의 본성과 교 육(성경재, 2003)과 정혜진, 「’仁內義外 논쟁‘에 나타난 맹자의 性의 개념: 메타프 락시스적 관점」(도덕교육연구 제30권 1호, 2018), 25-43쪽에서 이루어진 바 있다. 이 두 저작에서는 칸트가 인간을 자연 세계와 물자체의 세계 양쪽 차원에 속 한 존재로 파악한 것처럼 맹자의 사단과 사덕을 두 가지 다른 차원으로 구분하여 설 명하고 있다.

      24) 孟子, 「告子」 上: “公都子 曰 告子 曰 性 無善, 無不善也”

      25) 孟子, 「告子」 上: “詩曰 天生蒸民 有物有則 民之秉夷(彝) 好是懿德 孔子 曰 爲此 詩者 其知道乎 故 有物 必有則 民之秉夷也 故 好是懿德”

 

그리하여 인간은 德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인간이 따르는 법칙이자 인간이 추구하는 덕은 다름 아닌 사덕이다.

맹자도 고자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생리적 욕구와 자연적 감정을 타고 난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그러나 맹자는 인간의 본성은 사단이지 생리적 욕구를 인간의 본성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자연적 경향성을 억제하고 ‘사단으로서의 성’이 온전하게 드러난 이상적 경지가 바로 사덕이다. 처음에 불완전하게 드러나는 사단은 부단한 노력을 통하여 사덕 으로 확충된다. 사단으로서의 성은 경험적 제약하에서 사덕을 통하여 불완전하게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이 본연의 性善을 실현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이 자신이 지니고 있는 四端의 존재를 알지 못한 채 자연적 감정과 생리적 욕구 충족에 따르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감정과 욕구 충족에 따르는 삶은 도덕적 삶이라고 할 수 없다.

욕구 충족을 위하여 행위하는 것은 칸트가 말하는 행위의 주관적 준칙과 보편타당한 도덕법칙의 불일치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맹자는 능히 알 수 있고 능히 할 수 있음을 깨닫고 마음 수양을 통하여 자연적 제약을 극복하는 것을 제시한다. 인간은 性善에 부합하지 않는 행위를 저지를 수 있으나 이 때문에 성 자체에 선함과 선하지 않음이 없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악한 행위가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性善에서 거리가 먼 행위가 있을 뿐이다(박승현, 2008, p. 50-57).

고자는 ‘성이 곧 생’(生之謂性)이라는 명제를 제시하는 것으로 보아 아프리오리로서 사단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生은 인간이라면 필연적으로 타고나는 생리적 욕구와 자연적 감정을 가리킨다. 이 생리적 욕구와 자연적 감정은 맹자의 견해와는 다르게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고자에게 生은 그 자체로 어떠한 도덕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고자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의(義)에 의존하여 인간을 도덕적으로 옳은 방향으로 교화시켜야 한다 고 주장한다.

仁은 안에 있고 義는 바깥에 있다(仁內義外)는 고자의 말로 미루어 볼 때, 고자의 주장에는 먼저 인간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경향성과 그 이후에 인간에게 주어지는 외부의 영향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있다. 고자에 의하면, 인의를 행함은 버드나무로 버드나무 그릇을 만드는 것처럼 사람의 본성을 도덕적으로 옳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행위이다.

어른을 공경하는 행위 또한 외 부로부터 학습된 결과이지 결코 인간의 내부로부터 저절로 발휘된다고 볼 수 없 다. 이러한 주장은 일견 인간에게 덕 교육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외부에서 주어지는 義가 어떻게 인간을 덕있는 도덕적 존재로 만들 수 있는가? 칸트가 지적하듯이, 개인의 주관적 준칙은 모두에게 도덕적 실천을 강제할 수는 없으며 모두에게 도덕적 실천을 강제하는 보편적 도덕법칙의 존재는 ‘초월적’(transcendant)일 수밖에 없다. 개인 혹은 집단의 행위 준칙이 모두에게 보편타당하게 적용되려면 일체의 경험적 요소를 준칙의 근거로 삼을 수 없다.

고자가 말하는 외부적으로 주어지는 義는 인간 모두에게 강제될 수 없는 주관적 준칙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이 경우 인간의 도덕 실천의 가능성을 논리적으로 설명해내지 못한다. 맹자는 이를 피하기 위해서 인간에게도 동물과 같은 자연적인 경향성이 있지만, 동물과 달리 옳고 그름을 따지고 마땅히 추구해야 하는 덕을 추구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인간이라면 마땅히 추구해야 하는 덕을 인 간의 본성으로 제시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사단이다. 맹자에게서는 ‘말이 나이가 많은 것을 나이가 많다고 여기는 것’과 ‘사람이 나이가 많은 것을 나이가 많다고 여기는 것’은 다른 것이다.26) 「고자 상」 6절은 맹자의 제자인 공도자가 고자에게서 들은 말을 그대로 옮기면서 스승인 맹자에게 질문을 제기하면서 시작된다. 그 내용을 요약해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선생님, 고자가 말하기를 성은 선함도 선하지 못함도 없다(性無善 無不善)고 합니다. 또 혹자는 문왕과 무왕, 유왕과 려왕을 예로 들어서, 백성의 성이 선하게 될 수도 있고 선하게 되지 않을 수도 있다(性可以爲善 可以爲不善) 고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또 다른 혹자는 고수 같은 아버지 밑에서 순임금이 나 오고 요임금 밑에 상 같은 이가 있다는 것을 예로 들어서, 날 때부터 선한 사람 이 있고 선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有性善 有性不善)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선생 님께서는 性은 善이라고 하십니다. 저들은 모두 틀린 것입니까’27)

 

      26) 孟子, 「告子」 上: “曰 (異於)白馬之白也 無以異於白人之白也 不識 長馬之長也 無 以異於長人之長與 且謂長者 義乎 長之者 義乎“

     27) 公都子曰 告子曰 性 無善無不善也 或曰 性可以爲善 可以爲不善 是故 文武興則民好 善 幽厲興則民好暴 或曰 有性善 有性不善 是故以堯爲君而有象 以瞽瞍爲父而有舜 以紂爲兄之子 且以爲君而有微子啓王子比干 今曰 性善 然則彼皆非與, 告子 上 6

 

性善에 어긋나는 여러 가지 반대되는 사례를 들고 와서 ‘어째서 선생님은 性을 善이라고 하십니까’ 하고 묻는 공도자에 대한 맹자의 대답은 무엇인가? 제자인 공도자의 질문에 대한 맹자의 대답의 첫 구절이 바로 그 유명한 ‘내약기정’으 로 시작되는 구절이다.

 

情은, 만약 그것이 性에 맞게 표현된 것이라면, 善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性을 善이라고 말한 것은 이런 뜻에서이다. [여기에 비하여] 不善 을 행하는 것은 타고난 것의 잘못이 아니다 (孟子曰 乃若其情則可以爲 善矣 乃所謂善也 若夫爲不善 非才之罪也 고자 상 6)28)

 

      28) 인용문 번역은, 이홍우 교수의 성리학의 교육이론(2014)의 것을 따랐다.

 

위의 맹자의 말에 시사되어 있듯이, 사회적 제약과 자연적 경향성으로 말미암아 性이 있는 그대로 온전하게 표현되는 경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누구나 情 -경험적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그 속에 불완전하게라도 善-仁 義禮智-을 구현하고 있다는 뜻이다.

성과 정은 또는 사단과 그 표현으로서의 개인 각자의 경험적 마음은 개념상으로만 구분될 뿐 사실상으로 분리되지 않는 하나의 세계의 두 측면-未發과 已發-을 가리킨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맹자의 性善은 ‘마음의 초월적 측면’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已發’의 세계(情)에는 善한 것도 있고 不善한 것도 있으며, 더 선한 것도 있고 덜 선한 것도 있는 세계이다. 우리가 사는 已發의 세계는 ‘無不善으로서의 善’, 즉 절대적 善의 관점에서 보면 모두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맹자의 性善은 ‘절대적 선으로서의 性’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5. 결론

본 논문에서 수행하고자 한 목적은 다음의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로 본 연구는, 맹자의 ‘사단’(四端)’ 개념에 그림자처럼 붙어있는 ‘생득성’을 칸트의 선험철학적 사고에 의존하여 해석함으로써 생득성이 야기하는 불필요한 오해- 사단을 경험적인 것으로 착각하는 것-를 불식시키고자 하였다.

둘째로, 본 연구는 맹자의 사단을 칸트의 선험철학적 관점에 따라 해석함으로써 ‘사단’은 도덕적 행위와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선험적 조건이며, 이 조건으로서의 ‘사단’은 개인의 ‘주관성 또는 경험성’에 속하는 것이 아닌 ‘선험성 또는 초월성’에 속하 는 것임을 보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하여 본 연구에서는 맹자의 사단과 사덕의 관련 속에서 드러나는 사단과 사덕의 의미를 고찰하여 사단은 ‘未發의 표준으로 서의 性’이며 사덕은 已發의 수준에서의 ‘사단의 완전한 표현으로서의 性’임을 드러내었다.

이어서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四端을 칸트의 여러 저작에서 드러나는 이념으로서의 아프리오리에 기초하여 해석함으로써 사단은 다름아닌, 인간의 도덕적 행위나 도덕적 실천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논리적으로 가정할 수밖에 없는 ‘마음의 형식’으로 규정하였다. 이 마음의 형식으로서의 四端은 ‘논리적 조건’으로 존재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언제나 도덕적 행위와 도덕적 실천을 통하여 확인되고 확립되는 ‘실천적’ 개념이다.

다시말하여, 사단은 도덕적 행위와 도덕적 실천 이전에 시간상으로 먼저 갖추어진 타고난 도덕적 감정과 같은 것이 아니라, 도덕적 행위와 도덕적 실천을 통하여 확인되고 확립되는 ‘실천적’ 개념 이다.

본 연구에서는 사단으로서의 성을 ‘無不善으로서의 性’ 즉, 맹자가 性善 이라고 할 때의 性과 동일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맹자에게서의 성선은 ‘無不善으로서의 善’이며 이때의 성은 ‘절대적 善으로서의 성’이라는 점에서 ‘초월적’ 성격을 지니는 ‘미발의 표준으로서의 성’으로서 인간의 마음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함께 있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본 연구에서는, 사단도 사덕도 모두 ‘안’이라는 맹자의 인의내재설(仁義 內在設)은 사단과 사덕은 미발이냐 이발이냐의 차원의 차이가 있을 뿐, 두 개념 모두 마음이라는 동일한 실체를 밝히기 위한 것임을 드러내었다.

맹자가 四德과 의 관련하에서 四端을 말하는 이유는 四德이 우리가 획득해야 할 삶의 이상적 표준임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며, 그 표준을 향한 인간의 노력은, 이미 四端이 인간의 본성으로 주어져 있다는 점에서, 마땅이 기울여야 하는 것임을 강조하기 위한, 맹자의 다분히 교육적인 의도가 들어있었다고 볼 수 있다.

맹자가 사단을 주장하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라면 응당 ‘사덕’을 갈고 닦으라고 촉구하기 위 한 것이다.

맹자에 따르면, 우리 인간은 사덕에 가까워진 그만큼 ‘善하다’고 말 할 수 있다. 인간에게 사단이 있음을 미처 깨닫지 못하면, 인간은 악한 행동으로 빠지기 쉽다. 이를 두고 맹자는 인간이 ‘마음을 잃어버렸다’고 표현한다.29)

 

     29) 孟子, “「公孫丑」 上: 舍其路而不由 放其心而不知求 哀哉“

 

사 단이 있음을 깨닫지 못하면 인간은 오로지 식, 색으로 대표되는 생리적 욕구에 따라 행위한다는 뜻이다.

맹자에 따르면, 생리적 욕구는 四德에 맞게 표현되어 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경우에도 四端의 실현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그 사단의 실현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이 바로 ‘四德’의 존재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 은 과제는 어떻게 하면 사단의 실현 범위를 넓혀나갈 수 있도록 ‘四德’의 존재를 가시화하는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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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n interpretation of the concept of Four-Beginnings (四端) in Mencius: Perspective of Kant's Transcendental Philosophy Jung, Hye-Jin(Kookmin Univ.) The intended purpose of this paper can be summarized in two ways: First, this study sought to dispel unnecessary misunderstandings caused by biological attainment by relying on Kant's transcendental philosophical thinking to interpret the "biosis" attached to the concept of the "Four-Beginnings (四端)" of Mencius. Second, this study intended to show that the concept of the "Four-Beginnings (四 端)" of Mencius is a basis for the practice of moral conduct by interpreting the concept of the "Four-Beginnings (四端)" of Mencius according to Kant's transcendental philosophy, and that the concept of the "Four-Beginnings (四端)" is not a subjectivity or an empirical nature of the individual. Thus, this study interpreted the concept of the "Four-Beginnings (四端)" of Mencius as an transcendental (apriori) dimension, making it clear that the concept of the "Four-Beginnings (四端)" of Mencius was a "apriori (transcendental) dimension” separate from moral relativism and emotionalism, and interpreted it as a logical cause and purpose which had to be assumed when trying to cultivate a moral mind. Keywords : Mencius, Four-Beginnings (四端), Four-Virtues (四德), Kant, apriori ▫

 

 2021년 02월 19일 접수     2021년 03월 20일 심사완료     2021년 03월 22일 게재확정

한 국 동 서 철 학 회  동서철학연구 제99호, 2021. 3.

『맹자』 사단(四端)의 한 해석 칸트의 선험철학적 관점.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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