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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철학에서 깨달은 사람의 모습과 그 삶의 방식 -성인과 현자의 구별을 중심으로/이재권.충북대

한글 요약

노자는 춘추시대의 타락한 현실 인간들과 타 학파에서 제시하는 이상적 인간상을 비판하고, 자신의 새로운 이상적 인간상을 제시했다. 노자철학의 궁극 목표는 도를 깨 달아 聖人이 되고, 그가 자신과 세상을 위하여 유의미한 행위(무위)를 하는 것이다. 노 자가 제시한 새로운 인간상은 聖人과 賢者(賢人)이다. 현자는 도를 깨달아 인격적으로 훌륭한 인물이다. 성인 역시 도를 깨달아 인격적으로 훌륭한 인물인데, 그는 통치라는 사회적 임무도 수행하는 인물이다. 양자 모두 내면적 인격 완성 측면은 같은데, 성인 이 수행하는 사회적 역할이 현자보다 더 넓다는 차이가 있다. 현자는 혼탁한 세상을 정화하여 서서히 맑게 만든다. 기성의 질서에 안주하지 않고, 무기력한 세상에 생기를 불어넣어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다. 현자는 사사로운 마음과 이기심이 없어서 잘남을 감추고 겸손하며, 남들 앞에서 자랑하지 않으므로 오히려 진 정한 존경을 받고, 세상 사람들과 함께 잘 어울려 살아간다. 현자는 타인에게 덕을 베 풀므로 복이 남아돌고, 존경과 명예가 흘러 넘쳐난다. 노자는 성인을 갓난아이와 물에 비유한다. 갓난아이는 천진난만하고 순진무구하여 아무런 욕심이 없는 존재다. 갓난아이는 고정관념에 집착하지 않아 매사에 부드럽고 유연하며 담백하다. 또한, 지나친 욕망을 갖지 않으므로 타인들과 갈등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해주고 항상 낮은 곳으로 향하며, 자기 정체성을 고집하 지 않는다. 갓난아이와 물의 속성을 내면화한 성인은 보통사람들의 삶을 지배하는 욕 망·의도·감정·편견 등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이다.성인은 부드러운 리더십을 가진 훌륭한 지도자이다. 그의 행위는 세상의 기준(준칙) 이 된다. 그는 백성들과 주도권 다툼을 하지 않고, 그들 위에 군림하지 않으며, 그들의 입장을 존중해주고, 그들보다 낮은 자리에 위치한다. 그는 세상 사람들과 유연하게 소 통하므로 다투는 일이 없다. 그는 현실을 개혁해서 좋은 세상을 만들려는 적극적인 인 물이다. 성인의 통치 행위는 소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無爲를 적극 적으로 행하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일이 순리대로 잘 풀려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이 된다.

 

주제어: 노자, 성인, 현자, 통치자, 지도자, 무위.

 

 

1. 시작하는 말

노자의 철학은 현실에서 출발했다. 춘추전국의 혼란한 사회상과 그 속에서 살 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불만을 품고, 당시의 사회 현실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비판했다.

그는 현실비판에 투철했으므로 ‘비판’이 노자철학의 가장 큰 특징의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비판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노자는 현실 을 비판하고 초월하여 무릉도원에 은거하려는 것이 아니다.

노자는 자신의 대안을 제시하여 새로운 이상사회를 건설하려고 한다. 이상사회를 건설하려면 지도 자가 필요하다. 노자가 생각하는 이상사회 혹은 이상 국가의 지도자가 되기 위 해서는 종래의 인물과는 다른 특성을 가진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다. 그래서 노 자는 새로운 이상적 인간상을 제시하는 것이다.

노자는 이상적 인간을 ‘성인’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성인은 도를 깨달은 인물 이다.

노자는 깨달은 사람에게 ‘성인’이라는 하나의 표현만 사용했는데, 노자 에 등장하는 성인을 분석해보면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하나의 유형은 우리가 종래 통치자로 규정한 성인이고, 다른 유형은 도를 깨달았으나 통치자가 아닌 성인이다.

논자는 후자를 ‘현자’ 혹은 ‘현인’이라고 새롭게 이름 붙여서 통치자와 구별한다.

이렇게 해야 깨달음의 보편성이 확보될 수 있다.

왜냐하면, 성인이 곧 통치자라면 한 국가에 성인은 한 명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자에는 깨 달은 사람과 관련된 내용이 가장 많다.

이 논문에서는 현실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깨달은 사람, 즉 성인과 현자의 모습 및 그들의 삶의 방식, 특히 행위 방식에 대하여 고찰해보려고 한다. 현자의 모습과 통치자의 모습은 어떠한지, 또 그들은 어떻게 다른지 혹은 어떤 차이가 노자철학에서 깨달은 사람의 모습과 그 삶의 방식  있는지 알아보려고 한다. 다음은 그들의 행위 방식과 통치 방식에 대하여 살펴 보고, 지도자로서의 바람직한 지도력(리더십)에 대해서도 살펴보려고 한다. 이를 통하여 바람직한 인간의 모습과 그의 행위 방식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보려고 한다.

또한, 노자가 제시하는 성인상은 오늘의 관점에서 어떤 의 미가 있는지도 생각하고 고민하려고 한다.

 

2. 노자의 새로운 인간상

기성의 가치관에 따라서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 즉 대다수 당대의 사람들은 그것을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삶의 기준으로 삼는다.

춘추전국시대에 그런 상식적 가치관과 완전히 일체가 된 인물이 유가적 성인이다.1) “공자에게 있어서의 ‘성인’은 덕성과 그러한 덕성을 통한 정치적 성취를 겸비한 존재”이며 “인격의 완성자로서 지극히 고상한 존재”2)이다. 그러나 노자는 기성의 가치관을 비판하 고 부정하며 새로운 가치관을 주장했다. 새로운 가치관의 이념을 구현하며 살아 가는 사람이 노자가 말하는 성인이다.3) 노자의 ‘성인’에 관한 논의는 이전에도 많이 있었는데, 관점에 따라 다른 해석 과 주장이 제기되었다. 다양한 해석 가운데, 노자의 ‘성인’을 정치 지도자 즉 통 치자에 국한할 것인가, 아니면 성인의 특성을 일반화시킬 것인가가 대립적인 관 점의 하나이다. 먼저 통치자에 국한하는 박원재의 견해를 살펴보자. “노자 수양론 의 주체가 일반인이 아니라 통치자라는 점은 무엇보다 노자 수양론의 중심적인 방법론인 ‘무위’의 실천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것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4)

 

        1) 論語 「爲政」. 子曰: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 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마음속에서 하고 싶은 대로 하더라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은 규범과 완전히 일체가 되었다는 말인데, 이것은 완전한 사회화가 이루어진 것이며, 이런 상태가 유가적 성인의 경지라고 생각한다. \

       2) 조원일, 「공자의 성인관 연구」, 동서철학연구 제67호, 한국동서철학회, 2013, 272쪽.

       3) ‘성인’이라는 용어는 함께 사용하지만, 유가의 성인과 도가의 성인은 내용/의미가 다르다.

노자는 가치 초월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새로운 관점을 만들고, 그것 을 실현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유가의 성인상과 다른/구별되는 도가적 성인상을 제시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이재권, 「노자의 학문에 대한 비판 사상」, 동서철학 연구 제97호, 한국동서철학회, 2020, 15쪽을 참고하기 바람.

      4) 박원재, 「‘성인’과 ‘백성’」, 중국철학 제12권, 중국철학회, 2004, 15쪽. 

 

“‘무위’는 이상적인 정치를 담보해주는 방식이며, 나아가 ‘천하’를 장악할 수 있게 해주는 등의 실효적인 이익을 가져다주는 행위 원칙이다.”5) 이런 관점에서 김시천은 “성인은 이상적 통치자로서 천지의 작용에 유비적으로 도를 행하는 도의 집행자이자 도의 주체”6)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성인을 통치자로 국한하지 않고, 그 특성을 확대해석하여 일반화하는 경우도 많다. “노자의 수양론에서 ‘인간’ 일반에 적용되는 규범적 원리를 읽어내는 작업이 전혀 불가능하다고만 할 수는 없을 듯하다.”7) “노자가 말하는 ‘무위’ 의 진정한 가치는 정치의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삶의 영역에서도 개개 의 행위들을 실효적으로 지도하는 적극적인 규범적 원리가 될 수 있다는 데 있 다.”8) “노자가 말하는 聖人은 곧 ‘자연의 본성과 하나 된 인간’으로, 道를 체득하 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소한 天地萬物에 피해를 끼치지 않는 인간을 지칭한다. 즉 私를 넘어서 公的이며, 보편적 이익과 이치에 부합된 인간으로 이해되고 있 는 것이다.”9) “노자 도덕경에서 성인은 자기 수양을 통해 일반 사람들과 다른 특수한 경지에 오르게 된다. 노자가 추구한 성인은 변화하는 외부 사물에 구애 받지 않고 도의 항상성을 추구하되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아 보전하는 특성을 지 니고 있다.”10) “노자의 성인은 지극한 분별의 무용함을 깊이 알아서 ‘지금 이 대로의 평범함’을 지키는 인물이다.”11)

 

      5) 박원재, 위의 논문, 16쪽.

      6) 김시천. 「노자와 제왕의 도」, 동양철학연구 제69집, 동양철학연구회, 2012, 114쪽.

      7) 박원재, 앞의 논문, 9쪽.

      8) 박원재, 앞의 논문, 28쪽.

      9) 최오목, 「老子 無爲思想의 基底」, 도교문화연구 제34집, 한국도교문화학회, 2011, 117쪽.

     10) 이유정·신창호, 「노자 도덕경에 나타난 성인의 인격교화론」, 인격교육 제6권 제1호, 한국인격교육학회, 2012, 105-106쪽.

      11) 유일, 「노자에서 스승의 모습 탐색」, 교육철학 제59집, 한국교육철학회, 2016, 110쪽. 

 

노자에 성인에 관한 개념 정의는 없으므로 성인의 성격(덕성)을 분석해서 그가 어떤 인물인지 추론할 수 있다.

논자는 “明觀으로 도를 깨달은 사람이 聖人과 賢者(賢人)이고, 세상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지혜로운 사람이며, 통치자가 되 어 좋은 사회와 국가를 만들기 위해 세상을 다스리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노자가 생각하는 깨달은 사람은 기존의 부조리한 현실 사회와 타락한 인간 그리고 잘못된 가치관을 부정·비판하고 극복한 새로운 인물이다. 논자는 노자에서 도를 깨달은 사람을 성인과 현자로 나누고, 성인은 통치자로, 통치자가 아닌 현자 혹은 현인은 사회의 지도자로 구분한다.12)

 

        12) 이와 관련해서는 뒤에 가서 자세하게 논의하기로 하자. 

 

먼저 노자가 제시하는 성인의 인간적 풍모에 대하여 간략하게 살펴보자.

 

1) 성인의 모습

노자는 성인이 순수한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하여 갓난아이에 비유한다. 갓난 애는 성인의 비유적 표현으로 赤子와 嬰兒이다. 성인은 백성들을 갓난아이처럼 대할 뿐만 아니라, 자신도 갓난애처럼 순수한 삶을 산다. 老子에는 赤子가 한 번(55장), 嬰兒가 세 번(10, 20, 28장) 등장한다.

 

큰 덕을 품은 사람은 갓난아이에 비유할 수 있다. … 조화를 아는 것을 한결같음이라 하고, 한결같음을 아는 것을 밝음이라고 한다. 삶을 이롭 게 하려고 덧붙이는 것[益生]을 재앙이라 하고, 마음으로 기를 부리는 것을 굳세다고 한다. 사물은 장성하면 곧 노쇠하게 되니, 그것을 일컬어 도에 어긋난다고 한다. 도에 부합하지 않으면 일찍 죽고 만다.13)

왕필의 말처럼 “갓난아이는 구하는 게 없고, 하고자 하는 것도 없어 뭇 사물들 을 해치지 않는다. … 큰 덕을 품은 사람은 다른 사물을 해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것도 그 온전함을 손상하는 일이 없다. … 큰 덕을 품었다는 것은 어떤 것 도 그의 덕을 허물어뜨리거나 그 참됨을 바꿀 수 없다는 말이다. 부드럽고 약한 것은 다투지 않기 때문에 부러지거나 꺾이지 않는다. … 만물은 조화로움을 늘 그러함으로 여기기 때문에 조화로움을 알면 늘 그러함을 얻는 것이다. … 삶이 란 보탤 수가 없으니, 보태면 일찍 죽는다.”14)

 

       13) 老子 제55장. 含德之厚, 比於赤子. 蜂蠆虺蛇不螫, 猛獸不據, 攫鳥不搏. 骨弱筋柔 而握固, 未知牝牡之合而全作, 精之至也. 終日號而不嗄, 和之至也. 知和曰常, 知常曰 明, 益生曰祥, 心使氣曰强. 物壯則老, 謂之不道, 不道早已.

      14) 王弼, 老子注 제55장. 赤子, 無求無欲, 不犯衆物, 故毒(蟲)[螫]之物無犯(之)[於] 人也. 含德之厚者, 不犯於物, 故無物以損其全也. 以柔弱之故, 故握能周固. 作, 長也. 無物以損其身, 故能全長也. 言含德之厚者, 無物可以損其德, 渝其眞. 柔弱不爭而不 摧折, 皆若此也. 無爭欲之心, 故終日出聲而不嗄也. 物以和爲常, 故知和則得常也. 不 曒不昧, 不溫不凉, 此常也. 無形不可得而見, [故曰, 知常]曰明也. 生不可益, 益之則 夭也. 心宜無有, 使氣則强. 

 

왕필은 갓난아이의 특성을 잘 설명했는데, 갓난애의 특성이 곧 성인의 특성이다. 억지로 구하려 하지 않고, 무리 하게 시도하지 않으며, 타자를 해치지 않으니, 그들도 갓난애(성인)15)를 해치 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서로 늘 조화롭게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지낸다. 부드럽 고 유연하므로 다투지 않고, 상처를 주고받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언제나 온전 함을 유지할 수 있는데, 굳이 무엇을 더 보탤 필요가 없다. 추가로 보태는 것은 사족에 불과하다. 갓난아이[赤子·嬰兒]는 순수한 본성을 지니고 태어났는데, 후 천적으로 타락하여 중생[衆人]이 된 것이다. 따라서 순수한 본성을 회복하여 도를 깨달으면 성인이 된다.16) 그렇지 못한 사람이 중생[衆人] 곧 보통사람이다.17)

 

정기를 모으고 유순해져서 갓난아이처럼 될 수 있겠는가?18) 나만이 홀로 담백하여 한 점의 사사로운 정이나 욕심의 징조도 없음 이 마치 아직 웃지도 못하는 갓난아이와 같구나.19) 수컷을 알고 암컷을 지키면 천하의 골짜기가 된다. 천하의 골짜기가 되면 늘 그러한 덕이 떠나지 않아 다시 갓난아이로 되돌아간다.20)

 

     15) 갓난아이와 성인의 관계에 대해서는 본 논문의 3장 1절을 참고하기 바람.

     16) 노자가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직접 언급한 적은 없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노자의 인간관이 성선설을 밑바닥에 깔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갓난아이를 존경하는 것도 하나의 예로 볼 수 있다. 이재권, 「무위와 현실」, 동아시아 문화사와 무위, 2010 한국도가철학회 하계학술대회, 안동 고산서원, 미발간 원고 28-29쪽 참조. 그러나 경험주의 계열의 학자는 인간의 본성 자체를 부정한다. “다윈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에게 보편적인 본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성·정신·도덕성 등은 모두 인간이 진화의 과정에서 획득한, 환경에 대처하는 능력에 대한 이름들이다.” 이유선, 「로티: 아이러니스트가 꿈꾸는 자유주의 유토피아」, 연구모임 사회비판과 대안 엮음, 현 대 정치철학의 테제들, 고양 : 사월의 책, 2014, 100-101쪽. 그러나 이 문제를 여 기서 자세하게 논의할 수는 없다.

       17) 보통사람의 범주에는 백성뿐만 아니라, 성인이 아닌 일반적인 통치자도 포함해야 한다.

왜냐하면, 노자가 비판하는 일반적인 통치자는 도를 깨닫지 못한 사람이므로 성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런 통치자는 보통사람인데, 능력에 맞지 않게 ‘통치자’라는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통치자는 지위와 역할이 불 일치 하는 인물이다. 노자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런 인물이 통치자가 되면 안 된다. 노 자는 도를 깨달은 성인만이 진정한 통치자의 자격이 있다고 본다. 노자의 보통사람 에 대한 비판은 이재권, 「노자철학에서 현실인간에 대한 비판」, 동서철학연구 제 87호, 한국동서철학회, 2018을 참고하기 바람.

       18) 老子 제10장. 專氣致柔, 能嬰兒乎.

       19) 老子 제20장. 我獨泊兮 其未兆, 如嬰兒之未孩.

       20) 老子 제28장. 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 爲天下谿. 常德不離, 復歸於嬰兒. 

 

노자는 갓난아이를 천진난만하고 순진무구하여 아무런 욕심이 없는 존재로 본다. 그 모습이 마치 아직 웃을 줄도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갓난아이는 고정관념에 집착하지 않아 매사에 부드럽고 유연하며 담백하다. 수컷의 강인함 이나 암컷의 유약함 중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다. 수컷의 강인함을 알고, 암 컷의 부드러움을 지키면 세상의 반쪽이 아닌 전체를 포함하는 골짜기와 같아진 다. 모든 것을 품는 골짜기에는 늘 그러한 덕[常德]이 잠시도 떠나지 않는다. 그 곳에는 늘 그러한 덕을 간직한 갓난아이가 살고 있다. 갓난아이는 성인에 대한 비유이므로 성인의 속성이 바로 그렇다는 것이다. 노자가 볼 때 인간들 사이에 벌어지는 온갖 문제의 근원은 대부분 지나친 욕망 추구 때문이다. 갓난아이는 지나친 욕망을 갖지 않으므로 타인들과 갈등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21)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 구 멍을 막고, 그 문을 닫으며, 그 날카로움을 꺾고, 그 엉킴을 풀며, 그 빛 을 누그러뜨리고, 그 더러움과 함께 한다. 이를 그윽한 같아짐[玄同]이 라고 한다. 그러므로 가까이할 수 없고, 멀리할 수도 없으며, 이롭게 할 수 없고, 해롭게 할 수도 없으며, 귀하게 여길 수 없고, 천하게 여길 수도 없다. 그러므로 천하에 고귀한 것이 된다.22)

 

도를 깨달아 지혜로운 사람은 많은 말을 하지 않고, 말이 많은 사람은 지혜로 운 사람이 아니다. 도를 깨달아 지혜로운 사람은 욕망의 구멍을 막고, 욕망의 문 을 닫는다. 날카로움(예리함)을 드러내지 않고, 실타래처럼 엉킨 세상의 분란을 해결한다. 남보다 뛰어난 잘남의 아우라를 감추고 속세와 섞여 하나로 동화된 다. 이것이 바로 현묘하게 같아지는 경지이다. 이렇게 하면 친함과 소원함의 편 을 가르지 않고,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으며, 귀천을 구분하지 않는다. 편을 가르고, 따지기 좋아하고, 분별을 잘하면 결국 차별을 일으켜 갈등의 씨앗이 된 다.23)

 

      21) 육체적‧본능적 욕구와 정신적·의식적 욕망을 구분해야 한다. 노자는 인간사의 문제 가 대부분 후자 때문에 일어나는 것으로 본다. 이에 관한 내용은 이재권, 「노자철학 에서 깨달은 사람의 욕망 해소 방법」, 유학연구 제60집,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2022를 참고하기 바람.

    22) 老子 제56장. 知者不言, 言者不知. 塞其兌, 閉其門, 挫其銳, 解其分, 和其光, 同其 塵, 是謂玄同. 故不可得而親, 不可得而疏, 不可得而利, 不可得而害, 不可得而貴, 不 可得而賤, 故爲天下貴.

    23) 분별지와 차별지의 의미상 차이에 관해서는 이재권, 「노자의 학문에 대한 비판 사상」, 21쪽을 참고하기 바람.

 

그렇게 하지 않으므로 오히려 세상 사람들로부터 고귀한 존재로 우러름을 받는다. 이것은 노자가 제시하는 새로운 인간상이다. “노자는 인간 실존의 심리학적이고 인지적인 측면의 영역들에서 활동을 최 소화하거나 줄이는 방법들을 지지하는데, 이는 인간적인 것을 탈인간화하는 것 에 가깝다. 도가적 성인은 욕구·의도·감정·판단과 같이 명확하게 인간적인 특징 들을 결여한 인간존재로 그려지고 있다.”24)

그래서 위진시대에는 성인은 감정이 있는 존재인가, 아니면 감정이 없는 존재인가에 대한 논쟁[聖人有情無情之 辯]이 벌어지기도 했다.25)

 

         24) 한스 게오그뮐러, 김경희 옮김, 도덕경의 철학, 서울 : 이학사, 2021, 259쪽.

         25) 대체로 유학 성향이 강한 현학자는 성인은 인간적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라고 주장 하고, 도학 성향이 강한 현학자는 성인은 객관성을 중시하므로 인간적 감성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위의 인용문 중 “도가적 성인은 욕구·의도· 감정·판단과 같이 명확하게 인간적인 특징들을 결여한 인간존재로 그려지고 있 다.”고 하였는데, 도가의 성인이 “인간적인 특징들을 결여한 인간존재”라는 표현 은 너무 극단적인 해석이다. 도가적 성인은 보통사람들의 삶을 지배하는 욕망· 의도·감정·편견 등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이지, 인간적인 특징을 결여한 외계인 이나 탈인간이 아니다. 성인은 사회의 지도자이며 국가의 통치자이다. 노자에는 이런 내용이 매우 많으므로 이에 관해서는 다음 장에서 자세하게 다루려고 한다.

성인의 인간적인 풍모에 대해서는 여기서 마무리하고, 이제 현자(현인)로서의 모습에 대하여 살 펴보기로 하자.

 

2) 현자(현인)로서의 모습

老子에서 도를 깨달은 사람은 현자(현인)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老 子에 ‘賢者’ 혹은 ‘賢人’이라는 용어는 없는데, 통치자가 아닌 깨달은 사람을 가 리켜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현자는 인격적으로 완성된 사람으로서 사회적 지도 자이다. “성인은 모든 사심과 집착을 정화·초월하여 대도의 자유자재한 참생명 을 실현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의 겉모습은 일상인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지 만, 그의 정신 경계는 한정할 수 없고 측량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가 세간의 어 떤 자리에서 일을 하건 모든 사람을 감화시켜 일상인들로 하여금 道心을 자각하 도록 인도하며,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安心立命할 수 있도록 한다.”26)

 

       26) 김항배, 불교와 도가사상, 서울 : 동국대학교 출판부, 1999, 29쪽.

 

여기서  말하는 ‘성인’은 곧 현자이다.

도를 깨달아 인격의 완성을 얻고,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사회의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양자의 공통점이다.

그런데 성인은 국가의 통치자가 된다는 것이 양자의 차이점이다.

현자와 성인은 편의적으로 구분한 것이지, 명확하게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저서나 논문에서 도를 깨달은 사람은 성인이고, 성인은 통치자라고 하는데, 논자는 왜 성인과 현자를 구분하는가?

그 까닭은 깨달음의 보편성을 주장 하기 위해서이다. 깨달음의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깨달음을 얻은 사람 이 반드시 통치자가 되는 것은 아니며, 통치자가 아닌 사회의 지도자로 활동하 며 살아가기도 한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만약에 도를 깨우친 사람은 반 드시 통치자가 돼야 한다면, 깨달음을 얻은 인물은 한 국가에 한 명만 가능하기 때문이다.27)

 

         27) 老子에 ‘현자(현인)’의 용어가 등장하지 않으므로 성인과 현자의 구별은 논자의 자의적인 시도이지, 명확하게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 논자가 ‘현자(현인)’이라는 용 어를 만든 것은 제3장의 “不尙賢”, 제75장의 “是賢於貴生”, 제77장의 “其不欲見賢” 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노자는 현자의 특성을 가진 인물에 성인이라는 용어를 사 용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노자는 통치자가 아닌 깨달은 사람을 성인이라고 부르 는 때도 있다(제7장, 77장, 81장 등). 논자가 여기서 ‘현자(현인)’을 표제어로 내세 우고 강조하는 이유는 성인은 곧 통치자라는 세간의 고정관념을 타파하기 위해서이 다. 도를 깨달은 사람, 즉 성인은 통치자가 되어야 하지만, 성인이 다수일 경우 모든 성인이 다 통치자가 될 수는 없다. 도를 깨달은 성인은 한 명이 아니다. 다수의 성인 중에 한 사람만 통치자가 되고, 나머지 성인들은 사회의 지도자인 ‘현자(현인)’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되어야만 도의 깨달음이 보편성을 갖게 되고, 보통사람인 백성들도 성인을 향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노자가 ‘현자(현인)’라는 용어(표현)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때로는 ‘성인’으로, 때로는 주어를 생략하고 깨달은 사람의 모습과 그의 행위에 대하여 많이 언급하고 있다. 불교에서 凡夫라도 불성을 깨달으면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처럼, 노자도 보통사람 누구나 도를 깨달으면 성인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는 왕권신수설과 다르지 않은데, 이는 노자 사상의 개 방주의적·보편주의적 성격과 맞지 않는다.

따라서 老子에 비판적 통치철학과 관련된 내용이 차지하는 부분이 많기는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고, 보통사 람들의 일상적 삶과 관련된 보편적·일반적인 내용도 많다. 현자도 이런 측면과 관련이 있다. 옛날에 선비 노릇(장수의 역할)을 훌륭하게 잘 행한 사람은 미묘하고 그윽이 통달하여 그 깊이를 알 수 없었다. 무릇 헤아릴 수가 없으므로 억 지로 형용하면 다음과 같다.

 

머뭇거림이 마치 겨울철에 시내를 건너는것 같고, 망설임이 마치 두려워 사방의 주위를 살피는 것 같으며, 근엄함 이 마치 손님과 같고, 확 풀리는 것이 마치 얼음이 녹으려는 것 같으며, 도타움이 마치 통나무와 같고, 드넓음이 마치 계곡과 같으며, 뒤섞여 있 음이 마치 혼탁한 것 같다. 누가 혼탁함을 정화하여 서서히 맑게 할 수 있는가? 누가 안정된 것을 움직여 서서히 생동하게 할 수 있는가? 이 도 를 보존한 사람은 가득 채우려 하지 않는다. 대저 오로지 채우려 하지 않 으므로 덮어줄 뿐 새롭게 이루지 않을 수 있다.28)

 

위 인용문에서 노자는 도를 체득하여 도와 하나가 된[與道同體] 사람의 모습 을 묘사하고 있다.

즉 노자는 신중함·경계하고 삼감[戒惕]·위엄 있는 거동[威 儀]·융화·돈후·매우 넓음·소박함(순수함)·평온하고 조용함·뛰어남 등을 도를 잘 닦은 선비의 기상과 경지로 표현했다.29)

도를 깨달은 사람은 세상의 일에 통달 하여, 미묘하고 깊이를 알 수 없어, 뭐라고 규정하거나 정의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설명을 해줘야 하므로 억지로 비유하면 이와 같다는 것이다. 현자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무위도식하거나, 세상사를 외면하지 않는다. 그는 혼탁한 세상을 정화하여 서서히 맑게 만든다. 기성의 질서에 안주하지 않고, 무기력한 세상에 생기를 불어넣어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다. 이처럼 현자는 새롭고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새로운 행위 방식을 채택한다. 그러나 그는 지나침(과함) 의 부작용을 잘 알기 때문에 자신의 방식을 사람들에게 억지로 강요하거나 세상 에 가득 채우려 하지 않는다. 하늘과 땅(천지)은 장구(영원)하다. 하늘과 땅이 한결같이 오래 갈 수 있는 까닭은 자기만 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래 살 수 있다. 이와 같으므로 성인은 자신을 뒤에 두려고 하지만 오히려 앞서게 되고, 자신을 밖에 두려고 하지만 오히려 그 몸을 보존하게 된다. 그것은 사사로움이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그 사사로움30)을 이룰 수 있다.31)

 

       28) 老子 제15장. 古之善爲士者, 微妙玄通, 深不可識. 夫唯不可識, 故强爲之容. 豫焉 若冬涉川, 猶兮若畏四隣, 儼兮其若容, 渙兮若氷之將釋, 敦兮其若樸, 曠兮其若谷, 混 兮其若濁. 孰能濁以靜之徐淸. 孰能安以久動之徐生. 保此道者, 不欲盈, 夫唯不盈, 故 能蔽不新成.

       29) 臧宏, 中國哲學智慧的問題硏究, 合肥 : 安徽人民出版社, 2006, 202쪽.

       30) 이 때의 사사로움은 개인적 차원의 사사로움이 아니라, 성인의 참된 자아의 완성을 의미한다. 

      31) 老子 제7장. 天長地久. 天地所以能長且久者, 以其不自生, 故能長生. 是以聖人後其 身而身先, 外其身而身存. 非以其無私邪. 故能成其私. 

 

인간만이 사회적 존재가 아니라 세상의 존재들은 모두 자기 종족 및 타 종족 들과 함께 어울려 더불어 살아간다. 그것이 생태계이다. 먹이사슬에서 하위의 존재들은 번식력이 강하고 환경 적응력이 뛰어나다. 이에 비해서 상위의 포식자 들은 번식력이 약하고 환경 적응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다 같이 살 수 있는 것이 다. 만약에 이와 반대가 되면 하위의 존재들이 먼저 사라지게 되고, 다음에는 하 위의 존재를 먹이로 하는 상위의 존재가 없어지고, 결국에는 모든 존재가 멸종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인간만이 먹이사슬의 원칙에서 예외적인 존재이다. 인 간은 생물학적으로는 선천적 환경 적응력이 약한데, 이성적 사유 능력과 문명을 발전시켜 환경에 잘 적응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환경을 조작·통제·지배하게 되 었다. 그래서 오늘날 인간은 최상위의 포식자가 되었다. 그런 인간이 자신만 살 려고 하면, 오히려 생태계의 평형을 깨뜨려 모두가 멸망하게 될 것이다. 지금 그 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는 학자들이 많다.32)

 

      32) 현대 학문에서는 인간중심주의 문명의 결과로 지구 전체의 생태계가 파괴되어 결국 멸망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염려하는 학자들이 많다. 학자들은 이를 ‘인류세’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P. 크뤼천 외 지음, 이별빛달빛 엮음, 김용우 외 옮김, 인 류세와 기후위기의 대가속, 파주 : 한울출판사, 2022 참조.

 

온갖 것들과 함께 어울려 살려고 노력할 때 나도 잘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하늘의 도[天道]이다. 그런 데 인간은 종종 이성을 잘못 발휘해서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에 물들어 평온 상태를 파괴하는 일이 있다. 잘난 사람들은 자신의 잘남을 뽐내기 위해서 남 앞 에서 자랑질하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못난 사람들은 존경하 거나 부러워하는 마음이 생기지만, 동시에 시기심과 질투심도 갖게 된다. 노자 는 현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현자는 사사로운 마음, 이기심이 없어서 잘남 을 감추고 겸손하며, 남 앞에서 자랑하지 않으므로 오히려 진정한 존경을 받고, 세상 사람들과 함께 잘 어울려 살아간다. 이것이 현자의 모습이고, 그의 새로운 행위 방식이다. 세상에 일방적인 것은 없고, 모든 것이 상호적·상관적·상대적이 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으며, 주는 것이 있어야 얻는 것도 있다. 한쪽 끝으로 치우치지 않고, 양쪽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하늘의 도는 마치 활시위를 당기는(잡아매는) 것과 같구나! 활시위가 높으면 내리누르고 낮으면 들어 올리며, 남으면 버리고 모자라면 보태준다. 하늘의 도는 남는 것을 덜어내어 부족한 것에 보태준다. 사람의 도 는 이와 같지 않으니, 부족한 것에서 덜어내어 남는 쪽에 보태주고 받든 다. 누가 남는 것을 덜어내어 세상을 받들 것인가? 오직 도를 깨달은 사 람뿐이다. 그래서 성인은 일을 하지만 뽐내지 않고, 공을 이루되 머물지 않으니, 이는 현명함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것이다.33)

 

하늘의 도[天道]는 높으면 내리누르고 낮으면 들어 올리며, 남으면 버리고 모 자라면 보태준다. 더 적극적으로 남는 것을 덜어내어 부족한 것에 보태준다. 노 자는 이런 원리를 활시위를 매는 것에 비유해서 설명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하 늘의 도는 세상의 평형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도는 이와 반대로 부족한 것에서 덜어내어 남는 것에 보태주고 받든다. 옛말에 “아흔아홉 가마 니를 가진 부자가 가난뱅이의 한 가마니를 뺏어다 백 가마니를 채운다”는 속담 이 있다. 이는 인간의 무한 욕망을 표현한 말이다. 노자는 이러한 이기적인 인간의 도[人道]를 비판한다. 하늘의 도를 깨달은 사 람은 하늘의 도처럼, 남는 것을 덜어내어 부족한 사람들에게 보태주고 그들을 받든다. 이는 과거의 빈민 구제 정책이나 오늘날의 복지 개념과 유사하고, 노블 레스 오블리주 정신과도 유사하다. 오늘날의 장학금 제도나 과거 경주 최부자 집의 뒤주에 작은 구멍을 내어 가난한 사람들이 쌀을 가져가게 한 것도 이런 정 신을 실천한 사례이다. 기독교의 정신처럼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해야 진정성과 순수성이 더욱 빛난다. 그래서 노자는 현명함을 드러내지 말라고 제안한다. 보통사람들은 세속적인 명예를 얻기 위해서 자기 홍보(PR)를 대놓고 한다. 그러나 도를 깨달은 현자는 일을 완성해도 뽐내지 않고, 공을 이루어도 자 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보통사람들과 동고동락할 수 있고, 진정한 존경을 받는 데, 이것이 참다운 명예를 이루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것, 역사에 이름 을 남기는 것이 영원히 사는 것이다. 노자가 말하는 장생의 참 의미는 이런 것이 지, 결코 육체적 不死가 아니다.34)

 

      33) 老子 제77장. 天之道, 其猶張弓與. 高者抑之, 下者擧之, 有餘者損之, 不足者補之. 天之道損有餘而補不足. 人之道則不然, 損不足以奉有餘. 孰能有餘以奉天下. 唯有道 者. 是以聖人爲而不恃, 功成而不處, 其不欲見賢.

      34) 이와 관련된 내용은 이재권, 「노자철학에서 몸과 마음: 정신적 깨달음과 관련하여」, 동서철학연구 제99호, 한국동서철학회, 2021, 13-15쪽을 참고하기 바람.

 

이것 역시 현자의 모습과 새로운 행위 방식 을 제시한 것이다. 노자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니고 있으면서도 더 채우려는 것은 그만두느니만 못하고, 갈아서 더 날카로워지면 오래 보존할 수 없다. 금과 옥이 집안에 가득하면 지킬 수 없고, 부귀하여 교만해지면 스스로 허물을 남기게 된다. 공을 이루면 자신은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이다.35)

 

위의 인용문도 현자의 모습과 새로운 행위 특성을 제시한 역설적인 내용이다. 남들이 갖지 못한 무언가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 이상 무엇을 소유하려고 욕심내 면 안 된다.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하는 가치는 유한하므로 한 사람 혹은 소수의 사람이 모든 것을 독차지하면 안 된다. 한 가지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은 그 것에 만족해야지, 여러 분야의 가치를 지배(장악)하면 불공평하고, 그러면 사람 들의 불만을 사게 된다. 왈쩌는 이런 공평 가치를 ‘다원적 평등’이라고 한다.36)

또한, 남의 약점이나 허물을 날카롭게 지적하면 원망을 사게 되며, 언젠가 다시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독화살로 되돌아온다. 타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 하려면 허물은 덮어주고, 장점은 칭찬을 해줘야 한다. 오늘날 유행어가 된 ‘내로 남불’이 되면 안 된다. 사회의 지도자는 항상 겸손하고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 너무 많이 가지려고 하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 세상을 위해서 봉사하고 공을 이루어야 하지만, 그런 다음에 동네방네 자랑하지 말고, 뒤로 물러나야 진정한 존경을 받게 된다. 여기서 “노자가 말한 ‘몸이 물러난다’[身退]는 말은 세상으로부터 도피한 소극 적인 숨은 선비[隱士]가 되라는 뜻이 아니고, 고령으로 은퇴한 다음에 집에서 조용히 지내라거나, 만년을 평안하게 보내라는 뜻도 아니며, 시간을 두고 기다 렸다가 교활하게 일을 도모하라는 뜻도 아니다. 이 말을 음모론적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이 말의 참뜻은 사람이 업적을 이룬 후에는 성과나 공적에 머물러 있지 말고, 재주를 겉으로 드러내지 말고, 자신의 존재를 부풀리지 말며, 과거에 이룬 성취에 연연하지 말라는 뜻이다.”37)

 

       35) 老子 제9장. 持而盈之, 不如其已. 揣而銳之, 不可長保. 金玉滿堂, 莫之能守. 富貴 而驕, 自遺其咎. 功遂身退, 天之道.

      36) 마이클 왈쩌, 정원섭 외 옮김, 정의와 다원적 평등, 서울: 철학과현실사, 1999 참조.

      37) 臧宏, 앞의 책, 204쪽. 

 

이런 특성을 가진 인물이 바로 현자이다. 믿음직한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꾸민 말)은 미덥지 않다. 착한 사람은 말을 잘하지 못하고, 말을 잘하는 사람은 착하지 않다. 핵심 을 아는 사람은 박식하지 않고, 박식한 사람은 핵심을 알지 못한다.

성인은 쌓아두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함으로써 자신은 더욱 남아돌고, 남에 게 베풀어주므로 자신은 더욱 많아진다. 하늘의 도는 이롭게 하되 해를 끼치지 않는다. 성인의 도는 무엇을 하더라도 다투지 않는다.38)

진실은 단순하고 소박하다. 진실한 말은 담백하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화 려한 수식을 하지 않는다. 거짓을 진실로 위장하려니 말을 많이 하고, 화려하게 수식을 한다. 문제의 본질을 아는 사람은 많은 말을 하지 않고 곧바로 핵심을 설 명한다. 문제의 본질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핵심을 벗어나 주변을 맴돌면서 박 식함을 자랑한다.

공자도 본인이 단순히 박식한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39)

장자는 “도는 작은 성취에 숨게 되고, 말은 화려한 수사에 숨게 된다”40)고 말했다.

작은 성공을 이룬 사람은 대단한 것인 양 과장을 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 애 를 쓰고, 화려한 말장난으로 진실한 말을 가려 빛을 잃게 된다. 춘추전국시대의 혼란기에 잘난 척하던 영리한 자들 즉 제자(백가)들이 대부분 그랬다. 사회가 혼란할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진다. 그러므로 현자는 말을 꾸미지 않고, 많 이 떠벌이지도 않으며, 박식함을 자랑하지 않는다. 이것은 당시의 영리한 척, 잘 난 척하던 지식인들과는 다른 인간상이고, 새로운 행위 방식이다.41)

또한, 현자는 재물을 많이 쌓아두려고 하지 않는다. 한정된 재화를 누군가 많 이 차지하면 다른 누군가는 적게 소유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제로섬 게임이다. 재화의 불공평한 분배가 동서고금의 첫 번째 사회문제이다. 그러므로 사회정의 론의 첫 번째 의제도 공평한 재화의 분배 문제이다.42)

 

     38) 老子 제81장. 信言不美, 美言不信, 善者不辯, 辯者不善, 知者不博, 博者不知. 聖人 不積, 旣以爲人, 己愈有, 旣以與人, 己愈多. 天之道, 利而不害. 聖人之道, 爲而不爭.

     39) 論語 「衛靈公」. 15.3. 子曰:賜也,女以予為多學而識之者與? 對曰:然,非與? 曰:非也,予一以貫之.

     40) 莊子 「齊物論」. 道隱於小成, 言隱於榮華.

     41) 이재권, 「노자의 현실비판 사상」, 동서철학연구 제83호, 한국동서철학회, 2017, 53-56쪽.

     42) 이재권, 「노자철학에서 깨달은 사람의 욕망 해소 방법」, 제4장 참조.

 

현자는 많이 가지려고 하 지 않고, 반대로 남들에게 베풀어주려고 한다. 덕은 타인에게 베풀어주는 것이 고, 그 결과 나는 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보통사람들 가운데는 덕을 베풀지 않고 공짜로 복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종교인 중에는 복을 달라고 기도 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현자는 타인에게 덕을 베풀므로 복이 남아돌고, 존경 과 명예가 흘러 넘쳐난다. 언제나 타인을 이롭게 하고 해를 끼치지 않는 하늘의 도를 깨달아 실천하는 현자는 남과 싸울 일이 없다.

 

세상 사람들 모두 나의 도는 커서 닮은 것이 없는 듯하다고 한다. 오 직 크기 때문에 닮은 것이 없는 듯한 것이다. 만약 닮았다면 오래전에 작 아졌을 것이다. 나에게 세 가지 보물이 있는데, 잘 지켜 보존하고 있다. 첫째는 자애로움이고, 둘째는 검소함이며, 셋째는 감히 천하에 나서지 않음이다. 자애로우므로 용감할 수 있고, 검소하므로 널리 베풀 수 있으 며, 감히 세상에 나서지 않으므로 만물의 으뜸이 될 수 있다. 지금 자애 로움을 버리고 용감하려고 하고, 검약을 버리고 널리 베풀려고만 하며, 뒤로 물러남을 버리고 앞서려 하므로 죽게 될 것이다. 무릇 자애로움은 그것으로 전쟁에 임하면 이길 것이고, 그것으로 지키면 견고할 것이다. 하늘이 장차 누군가를 구하려고 한다면 자애로움으로 그를 지켜줄 것이 다.43)

 

여기에서 ‘나’는 노자 혹은 현자이다. 노자가 바로 현자이다. ‘나의 도’는 천도 이다. 현자는 하늘의 도를 깨달은 사람이다. 하늘의 도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一 者이므로 가장 큰 것이다. 그러므로 닮을 대상도 없고, 닮은 것이 없다. 즉 무엇 과도 비교할 수 없다. 만약 무엇을 닮았다면 一者가 아니고, 가장 큰 것도 아니 다. 무엇을 닮은 것은 작은 것이다. 세상 사람들 눈에는 구체적이고 작은 것만 보이므로 그것을 유용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에게 큰 것은 보이지 않으므로 쓸모가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못난 선비는 도에 대해서 들으면 크게 웃 는다. 못난 선비에게 웃음거리가 되지 않으면 도라고 할 수 없다.”44) 마치 다섯 섬이나 되는 큰 박의 쓸모없음을 타박하는 혜시와 같다. 생각을 바꾸면 장자처 럼 다양한 용도로 유용하게 쓸 수 있다.45)

 

      43) 老子 제67장. 天下皆謂我道大, 似不肖. 夫唯大, 故似不肖. 若肖久矣, 其細也夫. 我 有三寶, 持而保之. 一曰慈, 二曰儉, 三曰不敢爲天下先. 慈故能勇, 儉故能廣, 不敢爲 天下先, 故能成器長. 今舍慈且勇, 舍儉且廣, 舍後且先, 死矣, 夫慈以戰則勝, 以守則 固, 天將救之, 以慈衛之.

     44) 老子 제41장. 下士聞道, 大笑之, 不笑不足以爲道.

     45) 莊子 「逍遙遊」 참조. 장자의 ‘무용지용’에 관해서는 정세근, 도가철학과 위진현 학 제6장「유와 무」를 참고할 것. 

 

도를 깨달은 현자가 삶 속에서 지키고 간직하는 세 가지 보배는 자애로움, 검 소함, 세상 사람들 앞에 함부로 나서지 않는 것이다. 자애로움은 부모의 자식에 대한 내리사랑이다. 부모의 자식 사랑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무조건적 사랑이다.

그러므로 자식에게 위난이 닥치면 부모는 조건 없이 자신을 희생한다. 이것 이 진정한 용기이다. 조건을 따지면, 조건 없는 용기를 발휘할 수 없다. 타인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사랑해야만 참다운 용기를 발휘할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희생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세상 사람 중에는 자애로움은 버리고 용감하려고 만 한다. 그것은 무모함이나 만용이다. 그러면 죽음이 기다린다. 또한, 현자는 모든 것을 검약하므로 언제나 모자람이 없고 넉넉하다. 그러므로 남들에게 베풀 수가 있다. 옛말에 ‘광에서 인심난다’고 했다. 아무리 많아도 씀씀이가 헤프면 남는 것이 없으므로 남을 도울 수가 없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남을 도우려고 하면 함께 굶어 죽는다. 한편, 도를 깨달은 현자는 함부로 세상 사람들 앞에 나서서 잘난 체하지 않는다. 남들 앞에 나서기 좋아하는 사람은 아직 도를 깨닫지 못한 얼치기이다. 남들 앞에 나서서 잘난 체하면 미움을 받는다. 공을 이루었으면 남 들에게 공치사하지 말고, 몸을 낮추고 겸손하게 뒤로 물러나야 한다. 그래야 지 도자로 추앙을 받는다. 작은 공을 이루고도 큰소리로 떠벌이며 생색내고, 사람 들 앞에 나서서 잘난 체하다가는 비난받고, 욕을 얻어먹고, 허물을 남기게 된다. 또한, 노자는 전쟁의 혼란 속에서 평화를 부르짖은 반전주의자이다. 노자는 국가 간의 전쟁뿐만 아니라 사적인 싸움도 적극적으로 말린다. 인간은 생명체이 므로 전란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아무리 반전주의자라고 해도 자 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응전은 불가피한 일이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싸 움에 개입하더라도 상대방에 대한 연민과 자애로움을 가져야 한다. 적에 대한 증오심이 강하면 전쟁에서 이겨도 뒷날 보복을 당하게 된다. 동서양의 많은 문 학 작품의 주제가 사랑과 더불어 원한과 싸움 그리고 복수이다. 그것은 대를 이 어서 계속된다. 영원한 승리는 없다. 그러므로 연민과 자애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래야 나도 지키고, 나의 후손도 지키고, 내 나라도 지킬 수 있다. 이것이 영원히 평화롭게 사는 방법이고, 바로 하늘의 뜻이다. 하늘도 이렇게 사 는 사람을 도와주고 지켜줄 것이다. 이것이 천도와 인도를 일치시키는 것이다.

 

3. 깨달은 사람의 행위

1) 지도자로서의 새로운 리더십

갓난아이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착한 본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사는 사람이다.

갓난아이는 순수하므로 타인과 갈등을 벌이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며, 착하게 산다. 갓난애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착한 아이는 성장하면서 점차 타락 한다. 타락한 成人이 착한 본성을 회복하여 도를 깨달으면 聖人이 된다. 聖人은 사회의 지도자로서 인간 사회의 문제들을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다. 이 점이 갓난애와 성인의 차이다.

노자의 성인은 유가의 윤리적 지도자나 법가의 법률적 리더와 다른 새로운 내용을 지닌 세상(사회, 국가)의 지도자이다.

 

  ①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다투지 않으며, 모두가 싫어하는 낮은 곳에 고인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②(최고로 훌륭한 사람은) 장소를 잘 선택하여 기거하고, 마음은 연못처럼 깊고 고 요하게 잘 유지하며, 진실하고 사랑스럽게 사람을 대하고, 언제나 믿음 가는 말을 하며, 다스릴 때는 선정을 베풀고, 일할 때는 효과 있게 처리 하며, 때에 잘 맞추어 행위한다. 무릇 다투지 않으므로 허물이 없다.46)

 

    46) 老子 제8장.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居善地, 心善 淵, 與善仁, 言善信, 正善治, 事善能, 動善時. 夫唯不爭, 故無尤.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공기와 물이다. 그러나 사 람들은 공기와 물의 고마움을 잘 느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무한정 존 재하여 돈을 주고 살 필요가 없고, 너무나 가까이 있어서 그것의 존재 여부를 의 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지구 환경의 파괴로 좋은 물이 부족하 므로 돈을 주고 물을 사서 마셔야 하고, 공기 오염으로 숨쉬기가 힘들게 되니 공 기청정기와 마스크의 도움을 받아 생활하므로 이제야 공기의 고마움을 깨닫게 되었으며, 그 존재의 가치를 깊게 성찰하게 되었다. 이처럼 인간은 고통을 당한 후에야 그것의 원인을 파악하여 대책을 세우려고 애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라고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매우 미련한 존재이다. 그래서 노자는 인간이 자연 으로부터 멀어지려 하지 말고, 자연과 잘 어울려 살아가라고 말하는 것이다. 노자는 성인의 모습을 물에 비유한다. 공기와 물이 다 같이 중요하지만, 공기 는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눈에 잘 보이는 물을 예로 드는 것이다. 만물을 이롭게 해주고 항상 낮은 곳으로 향하는 물은 도를 비유한 것이다. 물의 또 다른 성격은 유연성이다. 물은 상황에 따라 액체·기체·고체로 변하고, 담기는 용기의 모양에 따라 자신의 모양도 다양하게 변화한다. 이처럼 물은 자기 정체성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것이 가장 선한 것, 즉 훌륭한 것이다. 물의 그러한 성격을 닮은, 곧 도를 체득하여 가장 훌륭한 사람은 ②와 같이 행위한다.

도를 체득한 훌륭한 사 람은 세상의 지도자가 되는데, 기존의 지도자들처럼 강한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부드러운 리더십을 발휘하므로 타인들과 다투는 일이 없 다.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다투지 않는 리더가 노자가 추구하는 가장 훌륭한 지도자이다.

노자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한다.

 

③굽으면 온전해지고, 휘어지면 곧아지고, 패이면 채워지고, 낡으면 새로워지고, 적으면 얻게 되고, 많으면 미혹된다.

④이로써 성인은 하나 를 품음으로써 천하의 모범이 된다.

⑤스스로 현명함을 드러내지 않음으 로써 밝아지고, 스스로 옳음을 내세우지 않음으로써 빛나며, 스스로 자 랑하지 않음으로써 공이 있게 되고, 스스로 자만하지 않음으로써 그 이 름이 오래 간다.

⑥오직 다투지 않음으로써 천하가 그와 더불어 다투려 하지 않는다. 이른바 굽으면 온전해진다는 옛말이 어찌 빈말이겠는가? 진실로 온전해져서 그리로 돌아가게 된다.47)

 

     47) 老子 제22장. 曲則全, 枉則直, 窪則盈, 幣則新, 少則得, 多則惑. 是以聖人抱一爲天 下式. 不自見故明, 不自是故彰, 不自伐故有功, 不自矜故長. 夫唯不爭, 故天下莫能與 之爭. 古之所謂曲則全者, 豈虛言哉, 誠全而歸之. 

 

③의 문장은 도의 속성을 표현한 역설적인 내용이다. ④에서 ‘하나’는 도를 가 리키는데, 그 내용은 바로 앞의 문장이다. 성인이 도의 속성인 ③의 문장 내용, 즉 도를 체득하면 ⑤의 문장 내용으로 발현된다. ⑤의 문장 내용이 성인의 덕이 다. 여기서 특별히 강조하는 점은 깨달은 사람은 자신의 잘남이나 공을 자랑하 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결과 ⑥과 같은 효과가 나타난다. 즉 성인은 타인과 명 예를 얻기 위해 경쟁하지 않으므로 갈등 상황이 벌어지지 않아서 다투지 않게 된다. 여기서 말한 역설적인 내용은 진실한 것들이므로 그것을 실천하면 온전하 게 본래의 자리, 즉 도로 되돌아갈 수 있다. 여기서 노자는 성인에 대해 일반적 인 규정을 하지 않고 구체적인 예(속성)를 들어서 표현하고 있다. 도를 깨달아 덕으로 체화한 성인이 세상의 기준(준칙)이 되어야 한다. 도를 깨달은 성인은 새로운 지도자가 되는데, 그는 세상 사람들과 유연하게 소통하므 로 다투는 일이 없다. 그러면 모든 것이 온전해진다. 춘추전국시대는 전란과 혼 란의 시대이므로 노자는 세상의 혼란을 잠재우고, 전쟁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안 녕을 위해서 다투지 말고, 평화롭게 살아가라는 점을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이 다. 세상이 안정되고 백성들이 안전하게 생활하면 모든 것이 온전하게 제자리로돌아간다.

이것이 노자가 바라는 좋은 세상이다. 한편, 유연함을 장착한 새로운 지도자는 백성들과 다투지 않고 융화를 잘 이룬다.

 

성인은 늘 그러한 마음이 없으며, 백성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 는다. 착한 사람에게는 내가 착하게 대하고, 착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나 는 착하게 대하면, 참된 선을 얻는다. 미더운 사람에게 내가 미덥게 대하 고, 미덥지 않은 사람에게도 내가 미덥게 대하면, 참된 미더움을 얻는다. 성인은 세상 사람들을 대할 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세상을 위하여 자신의 마음을 뒤섞으니 백성들이 모두 그들 자신의 이목에 집중한다. 성인은 그들을 모두 갓난아이처럼 여긴다.48)

 

유가처럼 교육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백성들을 가르쳐서 자신의 기 준에 맞추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도가의 성인은 그와 다르다. 성인은 자기중심 적으로 고정된 마음[常心]이 없다. 그러므로 백성들의 마음을 끌어다 자신의 마 음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백성들의 마음에다 맞춘다. 그러면 백 성들과 주도권 싸움을 하지 않게 되며, 갈등 상황도 벌어지지 않는다. 성인은 백 성들의 입장을 존중하므로 소통을 잘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착한 사 람에게는 물론 나도 착하게 대하지만, 착하지 않은 사람까지도 착하게 대하면 그 德化가 널리 퍼져서 결국 모두가 착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믿음직스러운 사 람에게는 나도 믿음으로 대하지만, 미덥지 않은 사람까지도 믿음으로 대하면 그 德化에 감복해서 결국 모두가 미덥게 된다. 노자의 성인은 미리 정해놓은 기준 에 따라 유가처럼 시비를 가리거나 법가처럼 준법·엄형으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 라, 최대한 포용하고 관용을 베풀고 모범을 보여서 스스로 존경하도록 크게 교 화를 하는 것이다.49)

 

       48) 老子 제49장. 聖人無常心, 以百姓心爲心. 善者吾善之, 不善者吾亦善之, 德善. 信 者吾信之, 不信者吾亦信之, 德信. 聖人在天下歙歙爲天下渾其心, 聖人皆孩之.

      49) 자세한 내용은 이재권, 「노자철학에서 몸과 마음: 정신적 깨달음과 관련하여」, 18-28 쪽 참조. 

 

또한, 성인은 자신의 관점에서 백성들을 바라보지 않고,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마침내 성인과 백성의 마음이 하나로 합쳐지므로 백성들 위에 군림하 지 않고 함께 동고동락하니, 백성들은 거리낌 없이 성인을 대하게 되고, 성인은 백성들을 갓난아이처럼 순수한 존재로 여긴다. 그렇게 되면 평화로운 세상이 만 들어진다.

 

뮐러는 “도가적 성인은 ‘너머의 인간(overman)’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적 개인화가 시작되기 이전에 머물러 있는 ‘아래의 인간(underman)’이다. … 성인들은 어떠한 인간적 구분도 전면 거부함으로써 자신들을 다른 모든 인간과 구별되도록 한다. 이 역시 도가 특유의 역설적 방식이다. 바꿔 말해, 도가적 성 인은 인간적 자만심으로부터 자유로운, 즉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결정하려는 충 동으로부터 자유로운 유일한 인간이다.”50)라고 한다.

 

여기서 ‘너머’(over)의 의 미는 초월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도가적 성인은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 다. 노자의 성인은 백성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백성의 아래에 머무르는 존재이다.

 

강과 바다가 온갖 골짜기의 으뜸이 될 수 있는 까닭은 그것이 기꺼이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 골짜기의 으뜸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백성들의 위에 있고자 하면 반드시 말을 낮추고, 백성들보다 앞서고자 하면 반드시 몸은 뒤에 감춘다. 그러므로 성인은 윗자리에 있어도 백성 들이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고, 앞에 있어도 백성들이 해치지 않는다. 그 래서 세상 사람들(백성)이 즐거이(기꺼이) 그를 추대하면서 싫어하지 않는다. 그는 다투지 않으므로 세상 사람 누구도 그와 다투려 하지 않는 다.51)

 

    50) 한스 게오르그 뮐러, 김경희 옮김, 앞의 책, 251쪽.

    51) 老子 제66장. 江海所以能爲百谷王者, 以其善下之, 故能爲百谷王. 是以欲上民, 必 以言下之, 欲先民, 必以身後之. 是以聖人處上而民不重, 處前而民不害, 是以天下樂 推而不厭. 以其不爭, 故天下莫能與之爭. 

 

산등성이가 가장 높고, 산골짜기는 중간이며, 강과 바다가 가장 낮다. 세상 사 람들은 높은 곳을 좋아한다. 남보다 더 높은 곳(자리)을 차지하기 위해서 경쟁 하고 다툰다. 그러나 산등성이의 물은 골짜기로 흐르고, 골짜기의 물은 강이나 바다로 모인다. 세상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낮은 곳에 머무는 자가 최후의 승자 가 된다. “백성들의 위에 있고자 하면 반드시 말을 낮추고, 백성들보다 앞서고자 하면 반드시 몸은 뒤에 감춘다”는 말은 일부 비판자들의 주장처럼 음모론이 아 니다. 도를 깨달은 성인은 말을 조심하고, 백성들 앞에서 잘난 체하며 으스대지 않는다. 본인이 세상의 지도자라고 자처하거나, 사람들 앞에 나서려고 하지 않 는다. 오히려 이처럼 겸손한 행위를 하므로 백성들이 그를 지도자로 떠받든다 (추대한다). 그가 백성들 위에 있거나 앞에 있거나 괘념하지 않고, 해치려고도 하지 않으며, 싫어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성인은 백성과 싸울 일이 없고, 그 어 떤 백성도 그와 다투려고 하지 않는다.

성인의 행위 방법 중의 한 가지는 세상의 누구와도 다투지 않는 것이다. 다투지 않아야 승패가 없다.52)

 

     52) 편을 갈라 시합(게임)을 하거나 다툼(전쟁)을 하면, 이기려는 경쟁심이 과도하게 높아진다. 결국에는 승자와 패자로 나뉜다. 승자는 기분이 좋지만, 패자는 기분이 나쁘다. 그래서 패자는 후일의 승리를 기약하게 된다. 거듭된 시합이나 전쟁에서는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다. 그렇지만, 언제나 패자는 기분이 나쁘다. 인간 사회에서 승패는 끝없는 악순환을 만든다. 애초에 시합이나 전쟁을 하지 말아야 승 패가 없다. 그래야 승패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 

 

그것이 크게 이기 는 것, 진정한 승리이다.

 

2) 통치자로서의 새로운 통치 방식

노자의 성인은 인격자이며, 동시에 통치자이다. 즉 성인-왕[聖王] 혹은 성인 -군주[聖君]이다.53) 老子에는 통치에 관한 내용이 매우 많다. 노자는 당시 의 통치자들과 그들의 통치술에 대해서 비판하고, 새로운 통치 방법을 제시했 다. 따라서 노자는 초월적 관점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자신의 관점에서 새로운 통치 방법을 제기하는 것이다. 老子가 제왕학인 것은 맞지만, 음모론적 제왕학 혹은 술수적 제왕학이 아니라, 비판적 제왕학이다.54)

 

      53) 王은 夏·商·周 三代의 天子의 칭호였으며, 전국시대 列國의 군왕의 호칭이었다. 君 은 토지를 소유한 대부 이상 천자에 이르는 통치자를 통칭하는 말이다.

      54) 유물론 계열의 학자 중에는 老子가 술수적 제왕학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 다. 이는 매우 잘못된 해석이다. ‘지배하는 사람도 없고, 지배받는 사람도 없다’는 공산주의적 유토피아 사회가 아니라면, 현실에서 통치는 불가피한 것인데, 다만 어 떻게 통치하는가의 통치 방법이 문제이다. 노자가 주장하는 통치 방법은 여타의 통 치 방법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이 그 특징이다. 

 

달리 말하면,  老子는 비판적 정치철학 책이다. 노자는 저급한 통치자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이것은 당시의 통치자들과 그 통치 행위를 직접 목격하고 나서 한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노자는 통치자의 등급을 나누고, 저급한 통치와 훌륭한 통치를 대비 한다.

 

최상의 통치자는 아랫사람들이 그가 있음을 알 뿐이고, 그다음의 통 치자는 아랫사람들이 그를 친근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며, 그다음의 통치 자는 아랫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하고, 그다음의 통치자는 아랫사람들이 그를 업신여긴다. (통치자의) 미더움이 부족하여 (아랫사람들의) 불신 이 생긴 것이다. (훌륭한 통치자는) 여유가 있지만, 말을 신중하게 한다.공이 이루어지고 일이 잘되는데, 백성들이 모두 말하기를 “내가 스스로 그렇게 한 것이다”라고 한다.55)

 

아랫사람들이 그의 존재를 두렵게 여기는 통치자는 하급의 통치자이다. 이런 유형의 통치자는 권위주의와 강압적인 힘으로 통치를 한다.56) 최악의 통치자는 피통치자들이 아예 대놓고 무시하는 유형이다. 한 마디로 식물 통치자이다. 이 런 통치자는 통치 행위 자체가 불가능하다. 낮은 수준의 통치자들은 피통치자들 과 의사소통이 부족하다. 이들은 피통치자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해서 백성들이 그를 불신한다. 공자도 통치자에게 첫째로 필요한 덕목은 믿음이라고 했다. 백 성에게 신뢰를 얻지 못하는 통치자는 진정한 통치자라고 할 수 없다.57)

 

        55) 老子 제17장. 太上下知有之. 其次親而譽之. 其次畏之. 其次侮之. 信不足, 焉有不 信焉. 悠兮其貴言. 功成事遂, 百姓皆謂我自然.

        56) “타자에 대한 조종의 시도들은 부분체계들의 자기 논리적 작동을 교란하므로 그러 한 시도들은 헛될 뿐 아니라 해악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의 부분체계가 다른 부분 체계들에 개입하면 다른 부분체계들에서 기능 충족의 효율성을 현저하게 침해하므 로 멈추어야 한다.” 하르트무트 로자 외, 최영돈 외 옮김, 사회학 이론, 파주 : 한 울, 2015, 243쪽 참조.

       57) 論語 「顏淵」.12.7. 子貢問政. 子曰:足食, 足兵, 民信之矣. 子貢曰:必不得已而 去,於斯三者何先? 曰:去兵. 子貢曰:必不得已而去,於斯二者何先? 曰:去食. 自古皆有死,民無信不立.

 

춘추전국시대에 낮은 수준의 통치자들을 목격하고 이런 말을 했겠지만, 사실 이런 유 형의 통치자들은 과거 전제군주시대 뿐만 아니라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자 주 목격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 훌륭한 통치자 상은 아랫사람들이 친근하게 여기고, 자랑스러워 하며, 존경하는 인물이다. 현대적 표현으로 말하면 소통을 잘하는 인물이다. 그 렇지만 노자는 이런 통치자는 두 번째 유형에 속한다고 말한다. 최상의 통치자 는 피통치자들이 그의 존재를 알기는 하지만 전혀 의식하지 않는 유형의 인물이 다. 그에 대해서 당연히 나쁜 평가를 하지 않지만, 심지어 좋은 평가도 하지 않 는다. 있는 듯 없는 듯 여유롭게 행위하지만, 가볍게 규제를 시행하지 않고, 법 을 함부로 남용하지 않으며, 언제나 신중하게 통치한다. 그러므로 모든 일이 순 조롭게 이루어지는데, 백성들은 그것이 통치자 때문이 아니라 본인들 때문에 그 렇게 된 것이라고 믿고, 그 공로를 통치자가 아니라 자신들의 몫으로 돌린다. 노 자가 볼 때, 백성이 존경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통치자가 얻은 명예는 작은 명 예이고, 백성들이 존재를 모를 정도의 통치자가 얻은 명예가 진정 큰 명예이다.

오늘날 모든 것을 돈과 바꾸는 세태, 명예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세상에서 이와 같은 노자의 명예관58)은 성찰할 가치가 크다고 생각한다. 군주체제에서 백성들 이 통치자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유로운 인간 세상을 표현한 말이 다. 노자는 자유로운 인간의 삶을 꿈꾼다. 유가의 이상적 통치자는 인도를 실현한 윤리적 성인(성왕)이다. 법가의 이상 적 통치자는 엄격한 합리적 법률에 기대어 준엄한 법률(준법)과 엄격한 형벌 (엄형)을 사용하는 무서운 인물이다. 그렇다면 도가의 이상적 통치자는 어떤 인 물일까? 도가의 이상적 통치자도 역시 성인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이상적 인물 이 곧 이상적 통치자라고 보았다. 모두가 그런 인물을 성인이라고 부르지만, 유 가의 성인과 도가의 성인은 내용이 다르다.

도가의 성인은 윤리적 성인도 아니 고, 법률적 성인도 아니다. 유가의 성왕은 정열적이고 적극적인 통치 행위를 하 는데, 도가의 성왕은 차분하고 냉정하게 통치를 한다.

여기서는 노자가 생각하는 이상적 인물인 성인의 통치 방식에 대하여 알아보 자.

老子에는 성인의 통치 방식에 관한 내용이 매우 많으므로 몇 가지만 간추 려서 살펴보자.

 

현명함(능력)을 숭상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다투지 않게 할 수 있다.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백성들이 도둑질하지 않게 할 수 있다. 욕심낼 만한 것을 보여주지 말아야 백성들의 마음을 어지럽지 않게 할 수 있다.59)

 

“성인-군주들은 다스리고자 하는 욕구가 전혀 없다. 그들은 아예 욕구라는 것 자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노자에서 이상적인 군주는 다스리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고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애초에 좋아하는 것이나 싫어하 는 것이 없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편향성이 없다.”60)

 

      58) 노자의 명예관에 대해서는 이재권, 「노자철학에서 몸과 마음:정신적 깨달음과 관련 하여」, 17쪽을 참고하기 바람.          59) 老子 제3장. 不尙賢, 使民不爭, 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不見可欲, 使民心不亂.

      60)한스 게오르그 뮐러, 김경희 옮김, 앞의 책, 169쪽.

 

성인-군주가 편향성이 없는 것은 맞지만, 욕구가 없거나, 세속을 초월하거나, 정치를 초월한 인물은 아니다. 노자의 성인은 기존의 세속적 가치를 비판하고 전복시켜서 새로운 가치를 세우고, 새로운 정치를 하려는 인물이다.

세속에서는 지적으로 영리함(현명함)을 유용한 가치로 치켜세우므로 전문적 지식을 배워서 남보다 출세하려고 경쟁을 벌인다. 학생들은 지식을 암기하느라 밤을 새우고, 학부모는 입시 부정까지 서슴지 않는다. 참다운 지혜는 사라지고 파편적인 지식만 난무한다. 지성인은 사라지고 지식인만 득실거린다. 오죽하면 ‘전문가주의’라는 비꼬는 말까지 생겨났겠는가. 지식인은 편향적이거나 한정적 인 시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므로 각자 자기 견해가 옳고, 상대방의 견해가 틀 렸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지나친 공리공담으로 밤을 지새운다. 단편적인 지식 습득의 교육을 멈추어야 지나친 경쟁과 논쟁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 오늘날 정 치권은 말할 것도 없고, SNS상에서 벌어지는 일반인들(보통사람)의 극단적인 말씨름으로 치르는 사회적 비용이 엄청나다. 언론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지만, 타자에게 위해를 가하는 극언까지 다 용서할 수는 없다. 인간은 생물이고 동물이므로 먹어야 산다. 생존을 위한 육체적 욕구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그런데 인간은 이성을 계발하여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 이성 적 인간은 육체적 욕구 외에 정신적 욕망을 갖게 되었다. 정신적 욕망을 잘 사용 해서 좋은 문명을 건설하기도 했지만, 지나친 욕망 추구로 인해 온갖 사회문제 를 일으키기도 한다. 노자는 이 점에 특히 주목한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분 야가 경제적 소유욕이다. 지나친 경제적 소유욕을 발휘한 결과 극단적인 빈부격 차, 상대적 빈곤감 등으로 사회적 갈등이 심각하다. 이것은 동물적인 생존 차원 의 문제가 아니라, 이성적 존재인 인간의 의식/정신 차원의 문제이다.61) 정상적 인 경제활동으로 가난(빈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면, 부동산 투기와 같은 일확천금의 투기를 하거나, 심지어 도둑질을 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그러므로 지금 같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어떤 구체적 제도를 도입해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물질 만능의 가치관을 허물고, 다양한 가치로 분산시키는 등 본질적인 고 민을 하고 대처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돈 모으는 일 말고, 재미있게 살 수 있는 놀 거리를 많이 개발해야 한다. 또한, 노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온갖 색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온갖 소리는 사람의 귀를 먹게 하 며, 온갖 맛은 사람의 입맛을 버리게 하고, 말달리며 사냥하는 것은 사람 의 마음을 미치게 하고, 얻기 어려운 재화는 사람의 행실을 헤살놓는다.62)

 

     61) 이재권, 「노자철학에서 깨달은 사람의 욕망 해소 방법」, 제4장을 참고하기 바람.

     62) 老子 제12장. 五色令人目盲, 五音令人耳聾, 五味令人口爽, 馳騁 獵令人心發狂, 難得之貨令人行妨. 

 

옛날부터 견물생심이라고 했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온갖 아름답고, 화려하 고, 휘황찬란한 것들을 보면 갖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그런 것들에 눈이 멀어 좇다가는 인생을 망치게 된다. 음란한 소리의 유혹에 젖어 있거나, 아첨하는 말 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는 낭떠러지로 추락한다. 아첨하는 말/립서비스를 조심 해야 한다. 오죽하면 공자도 두 번씩이나 “교묘한 말(아첨, 립서비스)을 잘하고, 낯빛을 잘 바꾸는 사람 중에는 어진 사람이 드물다”63)고 했겠는가! 굶어 죽는 사람이 넘쳐나는 세상에 생존을 위한 식사, 건강한 삶을 위한 식사를 벗어나, 식 도락을 즐기면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있고, 결국 건강까지 해칠 수 있다. 지나친 식도락은 일종의 쾌락 행위이다. 오늘날 선진국의 비만 인구 증가와 다이어트 열풍은 반성할 부분이 많다. 옛날에는 말 타고 하는 사냥놀이, 오늘날에는 각종 스포츠 등 승부를 가리는 오락, 특히 돈을 걸고 하는 사행성 오락들은 사람의 마 음을 피폐하게 만든다.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재화를 탐하다가 인생을 망치는 경우를 자주 본다. 뇌물을 받거나, 공금을 횡령하거나, 사기를 쳐서 부당한 이익 을 얻은 것이 발각되어 처벌을 받고, 명예를 잃어버리는 일은 동서고금에 흔한 일이다. 이런 것들이 노자가 파악한 인간의 문제이고, 사회문제이다. 그렇다면 노자에게 대안이 있는가? 노자는 현실 진단에 그치지 않고, 잘못된 현실에 대해서 비판하며 자신의 대안을 제시한다. 따라서 노자는 현실 도피주의 자나 회의주의자가 아니며, 초월주의자도 아니다. 노자는 현실을 개혁해서 좋은 세상을 만들려는 적극적인 사상가이다. 다만 그 방법이 상식적이지 않으므로 사 람들에게 낯설게 보일 뿐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배를 채우지 눈요기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저것 (눈)을 버리고 이것(배)을 취한다.64) 그러므로 성인의 다스림은 그 마음을 비우게 하고, 그 배를 채우게 하 며, 그 뜻을 약하게 하고, 그 뼈를 튼튼하게 한다. 늘 백성들에게 앎이 없 도록 하고, 하고자 함도 없게 하며, 무릇 영리한 사람(현명한 체하는 사 람)이 감히 작위하지 못하게 한다. 작위함이 없이 하면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다.65)

 

    63) 論語 「學而」. 1.3. 子曰:巧言令色,鮮矣仁. 「陽貨」. 17.17. 子曰:巧言令色,鮮 矣仁.

    64) 老子 제12장. 是以聖人爲腹不爲目, 故去彼取此.

    65) 老子 제3장. 是以聖人之治, 虛其心, 實其腹, 弱其志, 强其骨. 常使民無知無欲, 使 夫智者不敢爲也. 爲無爲, 則無不治.

 

“도를 체득하려는 사람은 정서적 차분함을 함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수 양에 가장 뛰어난 사람이 통치자가 되기에 가장 적합하다. 도가적 성인은 그 국 가에서 가장 감정적이지 않고 가장 욕구가 적은 사람이다.”66)

 

권력·재화·명예가 대표적인 세속적 가치이다. 보통사람들은 이와 같은 세속적 가치의 의미와 소유 에 집착한다. 세속적 가치는 본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만든(구성한) 상징인데, 인간은 그것을 쟁취하려고 목숨을 건다. 유가가 중시하는 명분이 대 표적인 사례의 하나이다. 사회적 지위는 고정된 것이 아니므로 상대적이고, 가 변적이다. 지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위에 합당한 역할 수행이 중요하 다. 그런데 우리의 전통적 유교 사회에서는 지위 자체를 중시해서 족보나 비석 에 생전의 지위를 기록하는 것이 그의 행실(역할 수행)을 기록하는 것에 우선한 다. 후손들도 자기 조상이 어떤 지위의 벼슬을 지낸 것에 의미를 두고 자랑하는 것이 우선이고, 조상의 행실(역할 수행)을 설명하는 것은 차선으로 생각한다. 도가는 명분보다 실질을 중시한다.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들의 명실 논쟁 에서 실질을 강조한 대표적인 학파가 도가이다.67) 그래서 노자에게는 눈요기보 다 배를 채우는 것이 우선이다. 이 말은 은유적 표현이다. ‘배를 위한다’는 것은 배 터지게 과식하라는 말이 아니다. 앞에서 말한 눈·귀·입·마음 등은 인간의 감 각기관인데, 이것들의 속성은 쾌락을 좋아한다. 쾌락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 하는 사람들이 많다. 노자는 쾌락 즉 有欲(過慾)을 멀리하고, 무욕 즉 寡欲을 중 시한다.

무욕은 금욕이 아니라, 쾌락과 금욕의 중도이다.68)

‘배를 위한다’는 것 은 삶에서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라는 것이다. ‘뜻을 약하게 한다’는 말은 자기의 고집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기의 생각과 판단이 진리도 아니고,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아닌데, 자신의 기준을 타인에게 강요하 는 것이 세속적인 통치자들의 일반적인 통치 방식이고, 보통사람들도 그런 경우 가 흔하다. 통치자가 백성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 ‘백성들이 앎이 없게 하라’는 말은 많은 사람들이 비판하는 것처럼 중우정치 를 조장하는 음모론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 특히 통치자가 분별지와 차별지를 좋아하면 약삭빠른 선비들이 날뛰어 세상을 어지럽힌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약 삭빠르고 간교한 지혜를 갖지 않게 하라는 것이다.69)

 

     66) 한스 게오르그 뮐러, 김경희 옮김, 앞의 책, 186쪽.

     67) 박원재, 「명변사조에 대한 분석과 평가」, 중국철학회, 논쟁으로 보는 중국철학, 서 울 : 예문서원, 1994 참조.

     68) 이재권, 「노자철학에서 깨달은 사람의 욕망 해소 방법」, 153쪽을 참고하기 바람. 

     69) 이재권, 「노자철학에서 명관과 깨달음」, 22쪽을 참고하기 바람. 

 

‘백성들이 하고자 함이 없게 하라’는 말은, 아무런 의욕도 갖지 않아 무기력하게 만들라는 뜻이 아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지나친 욕망이 모든 사회문제의 원인이므로 욕망을 적절하 게 조절하라는 것이다. ‘현명한 체하는 영리한 자들이 감히 하지 못하게 하라’는 말은 아무런 행위도 하지 말라[不爲]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대개 남 앞에 나서 기를 좋아한다. 앞에 나서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자신을 과대 선전하고 그 것을 이용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므로 사회문제가 되는 것이다. 현명한 체하는 영리한 자들은 남에게 봉사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 행위한 다. 그런 사람들이 남에게 피해 입히는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다. 여기 까지는 성인-통치자가 백성들의 잘못된 행위를 비판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라는 소극적·부정적 통치 방식(원리)에 대한 설명이다. ‘작위함이 없이 하면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다’는 마지막 구절은 역설적으 로 성인의 적극적인 통치 방식에 대한 설명이다. 세속적인 통치자들은 열심히만 하면 백성들에게 이롭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방향 설정이다. 진정 무엇이 백성들에게 이로운 것인지 잘 판단해야 한다. 정책 방향을 잘못 잡 고 무조건 열심히만 하면, 도리어 백성들의 이익으로부터 멀리 달아나게 된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이런 통치자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본인은 양심적이고 순 수하게 한 통치 행위이지만, 결과적으로 백성들에게 손해를 끼쳐서 원망을 듣는 통치자들이 많다. 따라서 정책·제도·규범을 시행할 때는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 다. 제도·법률·규칙 등을 수시로 바꾸어 백성들에게 피해를 주고, 세상을 혼란스 럽게 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 한국의 교육 분야나 부동산 분야 등에서 이런 일이 많다. 통치 행위는 동기와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도 중요하다. 無爲의 爲는 人爲·作爲 즉 억지로 꾸며서 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무위는 인 위·작위가 없음 혹은 인위·작위를 하지 않음이지,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음[不 爲]이 아니다. 이처럼 무위와 불위는 의미가 다른 말이다. 무위는 억지로 애쓰 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위하는 것이다. 성인의 통치 행위는 무위를 적극적으로 행하는 것[爲無爲]이다.

 

“무위자연의 의미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 는 의미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눈앞에 나타나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며, 자 연의 섭리에 거스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적극적인 의미인 것이다. … 자연적 인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모든 부자연스러운 것을 적극적으로 피할 때 목적을 이루게 된다.”70)

 

      70) 쟝 그르나에, 장희숙 옮김, 자유에 관하여, 서울 : 청하, 1989, 153-154쪽.

 

노자가 말하는 성인-통치자의 통치 방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통치를 하라는 것이다. 이 방법은 지 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방식이므로 사람들에게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바름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기이함(임기응변)으로 군대를 부리며, 일 벌이지 않음으로써 천하를 얻는다. 내 어찌 그런 것을 알 수 있는가? 이 래서이다. 천하에 꺼리거나 피해야 할 것이 많을수록 백성들은 더욱 가 난해지고, 백성들에게 이로운 물건(날카로운 병기)이 많아질수록 나라 는 더욱 혼란스러워지며, 사람들이 기교가 많아질수록 기괴한 물건(사 악한 일)이 더욱 생겨나고, 법령이 더욱 늘어날수록(복잡해지면) 도둑 이 많아진다. 그러므로 성인이 말하기를, 내가 인위적으로 하지 않으면 백성들은 저절로 자라고, 내가 고요함을 좋아하면 백성들은 저절로 바르 게 되며, 내가 일을 만들지(꾸미지) 않으면 백성들은 저절로 부유하게 되고, 내가 탐욕을 갖지 않으면 백성들은 저절로 통나무처럼 순수해진 다.71)

 

    71) 老子 제57장. 以正治國, 以奇用兵, 以無事取天下. 吾何以知其然哉. 以此. 天下多 忌諱, 而民彌貧, 民多利器, 國家滋昏, 人多伎巧, 奇物滋起, 法令滋彰, 盜賊多有. 故聖 人云, 我無爲而民自化, 我好靜而民自正, 我無事而民自富, 我無欲而民自樸.

 

바른 것으로써 나라를 다스리고, 기이한 것(임기응변)으로써 군대를 부리며, 일 없음(백성들을 귀찮게 하지 않음)으로써 천하를 얻는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세상에 금기 사항이 많을수록 백성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백성들이 병기 (무기)를 많이 가질수록 나라는 더욱 혼란해지며, 사람들이 기교를 많이 부릴수 록 사악한 일이 더욱 생겨나고, 법령이 복잡해질수록 도둑은 더 늘어난다. 이상 은 노자의 현실 진단인데, 보통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과는 매우 다르고 역설적 이며, 현실 진단 속에 그 비판이 숨어 있다. 이런 현실비판을 바탕으로 해서 노 자는 사회문제를 해결할 성인의 통치 방법을 제시한다.

즉 성인-통치자의 통치 방법은 인위적인 일을 하지 말고, 쓸데없이 일부러 일을 꾸미지(만들지) 말고, 탐욕을 갖지 말아야 한다. 그 대신 청정함을 좋아해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통치 하면, 그 결과 백성들은 저절로 자라고, 저절로 바르게 되고, 저절로 부유하게 되고, 저절로 순수하게 된다.

간단하게 말해서 성인-군주의 통치 방식은 無爲· 無事·無欲·好靜이다.

이 또한 역설이며, 새로운 통치 방식이다. 이런 면에서 노 자사상의 독창성을 엿볼 수 있다.

 

4. 깨달은 사람과 그의 행위에 대한 평가

지금까지 노자가 말한 도를 깨달은 현자와 성인의 모습 및 그 행위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노자는 이 세계를 천도 혹은 도라고 명명하고, 도의 원리를 내면화 한 것을 일반적으로 덕이라고 하며, 특별히 인간의 경우에 도를 내면화해서 깨 달은 사람을 성인이라고 한다. 노자에서 성인은 사회·국가의 지도자인데, 때 로는 현명한 사람(현자)으로 설명되고, 많은 경우 통치자로 표현된다. 성인과 현자의 관계는 어떤가? 현자는 도를 깨달아 인격적으로 훌륭한 인물이며, 사회 의 지도자이다. 성인 역시 도를 깨달아 인격적으로 훌륭한 인물인데, 그는 국가 통치라는 사회적 임무도 함께 수행하는 인물이다. 양자 모두 내면적 인격 완성 의 측면은 같은데, 성인이 수행하는 사회적 역할이 현자보다 더 넓다는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양자는 상황에 따라서 동일 인물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따라서 많은 내용이 서로 중복된다.

그럼 성인에게 깨달음의 대상인 도는 어떤 존재인가?

 

도는 언제나 일삼는 것이 없지만, 하지 못하는 것도 없다. 제후나 왕 이 만약 그것을 지킬 수 있다면 장차 만물은 저절로 변화할 것이다. 저절 로 됨에도 억지로 하려고 하면 나는 장차 이름 없는 통나무로 그것을 누 를 것이다. 이름 없는 통나무로 누르면 장차 지나친 욕망을 갖지 않을 것 이다. 욕망을 갖지 않으므로써 고요하게 되면 세상은 장차 저절로 안정 될 것이다.72)

 

    72) 老子 제37장. 道常無爲而無不爲,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化. 化而欲作, 吾將鎭之 以無名之樸. 無名之樸, 夫亦將無欲. 不欲以靜, 天下將自定. 

 

도는 의지적 존재가 아니므로 욕망도 없고 의식적인 행위도 하지 않는다. 그 러나 그것은 모든 것의 총체이므로 어떤 것도 그것을 벗어날 수 없다. 세상 만물 의 생성소멸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변화이다. 노자가 볼 때, 인간이 지나친 욕망을 가지는 것[有欲]과 억지로 하는 행위[人爲, 作爲]가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따라서 왕이나 군주 같은 통치자가 도를 깨달아 행위하 면, 즉 무위하면 세상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것이다. 만사가 순조롭게 흘러가 는데, 어떤 인간이 욕심을 부려 억지로 하려고 하면, 도를 깨달은 자가 그런 사 태를 막아야 한다. 통치자의 행위는 자신에게 국한되지 않고, 백성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크므로 관심의 대상이 된다. 통치자가 지나친 욕망을 갖지 않으면 세 상이 평온하고 안정될 것이다. 분석윤리학자들은 형이상학적 원리로부터 당위의 원리를 도출하면 자연주의 적 오류라고 비판하지만, 이것은 인간중심주의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연 을 의인화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인간은 자연의 부분이므로 자연환경의 영향 을 받고 살아가는데, 자연을 의식하며 생활하는 것은 당연하다. 노자는 거의 다 비유적이고 역설인 문장이라는 특성을 고려할 필요도 있다.

 

큰 도는 흘러넘쳐서 왼편 오른편 이르지 않는 곳이 없다. 만물이 그것 에 의지하고 생장하지만 거절하지 않고, 공을 이루지만 이름을 드러내지 않으며, 만물을 먹여주고 길러 주지만 그것의 주인 노릇을 하지 않는다. 항상 욕망을 갖지 않으므로 작은 것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만물이 그 리로 돌아가도 주인 노릇을 하지 않으므로 큰 것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 다. 끝내 스스로 큰 것이라고 여기지 않으므로 그 큼을 이룰 수 있다.73)

 

세계 자체가 도이므로 도가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

도의 현현체가 만물이므 로 만물의 생성소멸이 도의 운행과정의 표현이다.

다시 말해서 도가 만물이고 만물이 도이다.74)

도가 만물을 창조하거나 생성하는 것이 아니다.75)

 

     73) 老子 제34장. 大道氾兮, 其可左右. 萬物恃之而生而不辭, 功成不名有, 衣養萬物而 不爲主. 常無欲, 可名於小, 萬物歸焉, 而不爲主, 可名爲大. 以其終不自爲大, 故能成 其大.

    74) 이재권, 「노자의 유무론」, 38쪽.

    75) 도와 만물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재권, 「우주론적 노자 해석에 대한 비판」, 동서 철학연구 제56호, 한국동서철학회, 2010을 참고하기 바람.

 

만물은 도에 기대어 존재하지만, 도는 만물을 지배하거나 주인 행세를 하지 않는다. 도는 항상 그러한 욕망을 갖지 않으므로 마치 하찮은 존재인 것처럼 보이지만, 반대 로 만물이 그것에 돌아가 기대어도 주인 노릇을 하지 않으므로 진정 위대한 것 이다. 끝까지 스스로 위대하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에 참으로 위대함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도의 특성을 내면화해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성인이 다.

과연 현실에서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니까 성인은 노자의 ‘이상적인 인물상’이다.

성인은 갓난아이처럼 순수하고 욕망이 없는 존재이고, 완벽한 존재이다. 그러나 성인과 갓난아이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갓난아이는 순수하고 욕망이 없는 존재인데, 성인은 그것에 더해 깨달음을 얻어서 완벽한 인간이다.

갓난아이는 어디까지나 성인의 비유이다.

갓난아이가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성인이 되는 것 이 아니라,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노력해서 도를 깨달아야 한다. 세상 에 공짜는 없다. 다만 인위적이거나 조작적인 방법을 사용하면 안 되고, 자연스 러운 무위의 방법이어야 한다.

노자는 자유롭고 자율적인 인간을 추구한다. 완 전한 존재에 대한 희망은 동서고금의 사상가·철학자들에게 많이 있었다. 노자뿐 만 아니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철학은 대개 이상주의적이다. 그 이유는 교 육·인지·문명의 수준이 낮았던 당시에는 선각자들이 계몽의 목표를 세웠기 때문 이다.

내용과 강조점이 다르긴 하지만 유가에서도 성인왕[王道政治]을 말했고, 고대 서양에서도 플라톤의 철인왕이 있었고, 현대에 와서도 니체의 초인, 베버의 카리스마적 지도자, 만하임의 부동하는 인테리겐챠 등이 있다.

노자의 성인 은 인격적으로 완벽한 인간이고, 정치적으로 이상적인 통치자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과연 그런 인간이 존재할 수 있는가? 현대 민주주의 사회 에서 그런 인간상이 의미가 있는가?

여기에는 백성을 통치의 대상으로 여기는 ‘군주의 전제’라는 엘리트주의의 문제점과 衆愚政治 혐의가 지적되고 있다.

이상적인 통치자는 역설적으로 선의의 독재자인 경우가 많다.

노자는 군주제를 기 정의 사실로 전제하고 있으므로, 이는 현대의 민주주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문제 가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정치가 이루어진 그리스 시대부터 학자들은 다수의 인기에 기반한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 愚衆政治를 걱정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국민(시민)의 평균 학력이 높고 언론매체가 발달한 현대에도 이런 걱정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오늘날 민주주의 체제에서 국민(시민)이 직접선거로 뽑은 지도자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국민(시민)이 만족한다고 생각하는가? 본인 들이 선택한 인물에 대해서 본인들이 부정하는 이 모순적인 문제는 앞으로도 계 속 정치철학의 논쟁거리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민주주의 이념도 완벽하지 않 기 때문이다. 성인은 억지스러운 행위 즉 人爲나 조작하는 행위 즉 作爲를 하지 않고, 언제 나 자연스러운 행위 즉 無爲를 열심히 실천해야 한다[爲無爲]고 말한다. 무위는 억지로 애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위하는 것이다. 성인의 통치 행위는 무위를 적극적으로 하는 것[爲無爲]이다. 노자가 말하는 성인-통치자의 통치 방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不爲]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통치를 하라 는 것이다. 그러나 무위자연은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모호한 말이다. 이 방법은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방식이므로 사람들에게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무위는 사회지도층 인물이 아랫사람에게 갑질하지 않음, 내로남불 하지 않음, 원한을 덕으로써 보답하는 것[以德報怨]함이다. 무위자연은 원론적인 주장이다. 이것 은 구체성을 결핍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전반적으로 노자에는 총체적인 원론 만 있고, 구체적인 각론이 없다. 연구자로서 이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것을 노자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과거의 유명한 주석이나 연구서들은 사실 그 당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제시한 각자의 각론들이다. 그러므로 무위자연 에 대한 각론 즉 현실의 문제 해결을 위한 현대화 작업은 노자의 책임이 아니라, 언제나 개별연구자의 몫이고, 이 글을 쓰는 논자 본인의 문제이다. 노자는 춘추시대의 현실을 목격하고 비판한 것이지만, 그 이후의 오랜 역사에 서도, 심지어 오늘날에도 들어맞는 경우가 많다. 인간사의 어느 부분은 역사적 으로 많은 발전이 있었지만, 다른 어떤 부분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으며, 아예 후 퇴한 부분마저 있다. 노자의 사상이 고대 중국 즉 춘추전국시대라는 시대적 한 계가 있지만, 노자는 대부분 역설적이고 원론적인 말을 하므로 시대를 초월해서 적용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그리고 통치자의 통치술에 대한 통치철학이므로 보통사람(대중)들에게는 소용없는 말이라는 비판도 듣는다.76) 물론 어떤 구절 은 특별히 통치자에게만 필요하고 그에게 국한되는 것도 있지만, 성인 혹은 현 자에게 하는 말 중에는 보통사람(일반인)들이 누구나 실천해도 좋은 내용도 많 다. 이런 점이 동서고금의 사람들이 노자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왕정 시대가 아 닌 현대 민주주의 시대에도 여전히 노자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노자 사상에 이런 보편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이종성의 말처럼

“노자의 리 더십은 상호 불통의 현대사회에 소통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의의가 있다. … 노 자의 리더십은 상호 단절과 인간소외 및 대립과 갈등을 빚고 있는 현대사회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요소가 충분하다.”77)

 

       76) 노자 사상의 핵심이 통치철학이라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다른 통치철학들처 럼 군주의 편을 드는 통치철학이 아니라, 군주를 비판하는 비판적 통치철학이라는 점에서 노자 사상의 특징이 있다.

       77) 이종성, 「노자의 리더십」, 동서철학연구 제93호, 한국동서철학회, 2019, 282쪽. 

 

그리고 사람들이 노자를 좋아 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저급한 통치자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대리만족을 하 기 때문이다. 한편, 노자의 주장이 지나치게 이상적이어서 대중민주주의 현실에서 실현될 수 없다는 비판이 많다. 물론 노자의 이상주의를 현실에서 실현하는 데는 당연 히 한계가 있다. 노자가 이상주의적 방향을 선택한 이상 이런 비판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상과 현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사상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은 적지만, 노자가 제시하는 이상에 비추어 현실과 일상을 성찰하고 반성하는 계기로 삼으면, 세계의 평화와 행복한 삶에 도움이 될 것이다. 현실적 으로 보면 법가의 법, 유가의 윤리 규범, 도가의 이상과 자율성이 조화를 이룬 인간, 그런 인간들이 만들어 살아가는 사회·국가가 바람직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노자의 제도비판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노자는 일방적으로 법이 나 윤리 같은 규범의 폐해나 문제점만을 부각해서 비판한다.

법이나 윤리 같은 규범의 첫째 속성은 규제, 즉 자유의 제한이다.

노자는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므 로 자유를 제한하는 제도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다.78)

 

      78) 이 점에서 노자사상의 아나키즘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인륜의 타락이 극심했던 춘추전국시대의 상황에서 제도가 개인에게 가하는 억압과 탄압을 목격하고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제도는 장단점이 있다. 제도가 가져오는 문제점도 있지만, 당시의 백성들처럼 약자에게 주는 이로움도 있다. 제도가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라, 제도의 내용과 그것을 실천하고 운용하는 주체의 의지가 문제이다.

신중하게 제도를 잘 만들어서 선용하면 백성(보통사람들)에게 보 탬이 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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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Man and the Way of Life Learned from Lao-tzu Philosophy Rhee, Jae-Kwon(Chungbuk Natl. Univ.) Lao-tzu criticized the fallen real human beings in the Spring and Autumn era, criticized the ideal human image presented by other schools, and presented his new ideal human image. The ultimate goal of Lao-tzu's philosophy is to realize the Tao(道) and become a sage and do meaningful deeds for oneself and the world. The new human figures proposed by Lao-tzu are the Sages(聖人) and the wise men(賢人). A wise man is a person of great character who realizes the Tao. A Sage is also a good person as he realizes the Tao, but he is also a person who performs the social task of governing people, so the difference is that the social role played by a Sage is wider than that of the wise men. Lao-tzu compares the Sage to infants and water. A newborn child is pure and innocent and has no greed. Infants are not obsessed with stereotypes, so they are soft, flexible, and candid in everything. Also, they do not have excessive desires, so they do not create conflicts with others. Water benefits all things, always goes low and does not insist on its own identity. The Sage is a person who does not cling to the desires, intentions, emotions, and prejudices that dominate the lives of ordinary people. The wise man purifies the turbid world and gradually clears it. Instead of being complacent with the established order, he breathes life into the helpless world and creates a new wind. Because a wise man has no personal greed or selfishness, he hides his pride and is humble, and because he does not boast in front of others, he is truly respected and lives well with the people of the world. The Sage is a good leader with soft leadership. His actions become the standard principles of the world. He does not fight for initiative with the people, does not rule over them, respects their positions, and places himself lower than them. He communicates flexibly with the people of the world, so there is no quarrel. He is an 노자철학에서 깨달은 사람의 모습과 그 삶의 방식 41 active person who tries to reform reality to make the world a better place. The act of “government” from a sage is not passively doing nothing, but actively doing nothing(無爲). Then everything will go smoothly and the world will be peaceful and happy.

Keywords: Lao-tzu, Tao, Sages, wise men, leadership, doing nothing.

 

 

 2022년 08월 25일 접수    2022년 09월 13일 심사 완료      2022년 09월 22일 게재 확정

한 국 동 서 철 학 회 논 문 집 동서철학연구 제105호, 202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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