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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버지 관계 패턴’으로 본 요한복음 서문의 로고스 기독론/김주헌.총신대

초록

요한복음의 서론(Johannine Prologue, 이하 서문)은 연구사적으로 요한복음 해석에 있어 중요한 연구 본문 중 하나다. 서문에 대한 가장 중요하고 논쟁적 인 토론의 분야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요 1:14)의 의미가 무엇인지 분석하 는 것이다. 요한 연구에서는 요한복음의 서문에 등장한 이런 성육신의 관념을 로고스 기독론(Logos Christology)라는 명명 하에 이에 관한 다양한 연구들이 등장했다.

본 논문은 일차적으로 이런 로고스 기독론의 폭넓은 연구사를 개략 적으로 되짚는데, 그 흐름을

1) 로고스 개념에 대한 신학적-역사적 차원에서 의 의미 규명;

2) 유대교-헬레니즘 배경 간 영향력 파악을 통한 읽기;

3) 영지주의적 읽기의 세 가지 지류로 파악하고자 했다.

그리고 최근 로고스 기독론을 분석하는 새로운 학문적 조류를 조망하고자 하는데 이를 외르크 프라이(Jörg Frey)의 입장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프라이는 자신의 최근 저작들을 통해, 그동안 학계에서 잘 해소되지 않은 긴장의 영역인 요한복음의 신학적 읽기와 역사적 읽기의 긴장을 해소하고자 했으며, 두 요소를 통합하려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다.

그러나 프라이의 뛰어난 제언에도 불구하고, 그의 제 안은 요한복음의 다양한 특징적 요소들을 로고스 기독론에 적용하여 설명하는 데에는 모든 부분을 균형 있게 다루지는 못한 듯한 한계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본 논문은 먼저 아들-아버지 패턴을 규명하며, 이를 서문의 로고스 기독론 해석에 적용하면 프라이의 제안을 비롯한 기존 로고스 기독론 해석이 미처 주목하지 못한 부분을 조망할 수 있음을 제언한다.

그리고 이에 근거해 본 논문은 아들-아버지 관계 패턴이 요한복음의 신학적 메시지를 하나의 틀로 일관되게 포괄하여 볼 수 있는 대안적인 해석 제시에 기여 할 수 있음을 주장 하면서, 요한신학 전반과 연결할 수 있는 아들-아버지 관계 패턴의 타당성을 개진하고자 한다.

주제어 요한복음 서론, 로고스, 기독론, 아들-아버지 관계, 관계 패턴

 

 

I. 서론

요한복음의 서문은 단락 자체의 신학적 함의와 용어들의 심원함, 서문 속에서 등장하는 선명한 이미지의 대비 등을 통해서 지금도 요 한복음 해석에 있어 주요한 연구 본문 중 하나로 여겨진다. 그중에 여전히 논쟁적인 부분은 전통적으로 성육신의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요 1:14)”의 정확한 의미를 어떻게 분석하 는가이다.

신약학에서는 요한복음의 서문에 등장한 이런 성육신의 관념을 ‘로고스 기독론(Logos Christology)’으로 명명하고 이에 대한 다 양한 입장들을 개진해왔다.2)

 

       2) 물론 이 로고스 기독론이 형성되는 과정은 초대 교회의 교부들과 후대 기독교 교리 성립에서의 논쟁-종속 기독론 (Subordination Christology), 필리오케 논쟁 (Filique controversy) 등-을 포함한 여러 복합적인 신학적 논제들을 관통하고 있 다. 그러나 지면의 한계로 이 모든 논쟁을 다 개괄할 수 없기에, 본 논문은 이 논쟁에 직접 뛰어들기보다는 서문에 등장한 용어와 주제들을 중심으로 최 근의 논의에 보다 직접 대화를 시도할 것이다. 이를 위한 접근 방법은 본 논문 에서 후술할 아들-아버지 관계 패턴인데, ‘아들-아버지’라는 용어의 활용 때문 에 이 패턴이 종속 기독론의 범주에 속한 것이라는 오해를 미리 불식하고자 한다.

그 근거는 첫째, 요한의 아들, 아버지 언어 사용이 반드시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종속 아니면 일치 중 양자택일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Christopher Cowan은 요한복음의 아들-아버지 언어가 이런 종속과 일체의 긴장을 다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Christopher Cowan, “The Father and Son in the Fourth Gospel: Johannine Subordination Revisited,” JETS 49 (2006), 115-35.

둘째, 우선 인접 문맥을 통한 접근으로 요한복음의 로고스의 용례를 살피 는 것이 성서학에서 우선되어야 함을 고려하면, 후대의 여러 논쟁에 따라 해석의 두께가 덧씌워진 ‘로고스’ 개념을 끌어오는 것은 논의를 지나치게 복잡화할 우려가 있다. F. Watson의 지적처럼, 니케아 공의회를 비롯한 여 러 논쟁들이 요한복음과 다른 성경 텍스트간 예수를 대상으로 지속될 대화에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이런 대화는 사실 텍스트들 자체에 내재됐었다고 볼 수 있다. F. Watson, Gospel Writing: A Canonical Perspective (Grand Rapids: Eerdmans, 2013), 340. 물론 논자는 이 주장에 기대어 로고스 단어에 대한 최소주의적 해석만을 주장하는 것도, 우리가 원저자의 의도를 완전히 복원하여 읽을 수 있음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논자는 서문안 에서 로고스의 일차적 의미가 하나님의 품에 있던(begotten) 특수한 존재가 빛으로서, 육신을 입고 세상에 현현했다는 계시적 사건의 매개체라는 다수 학자가 지지하는 견해에 동의하는 편이다. 그리고 요한복음의 아들은 내러티브의 진행에 따라 로고스의 이런 계시적 역할을 동일하게 수행하며(참조. 요 3:11, 13, 31, 32; 5:37; 6:46), 이는 자신의 근원이 아버지, 혹은 위로부터 왔고, 자신은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라 밝힌다 (참조. 6:33, 38, 41, 46, 50, 62; 8:14, 23; 13:33; 14:2, 28; 16:5, 28). 따라서 논자는 이런 로고스 개념에 요한의 아들-아버지 관계를 유비적으로 적용할 여지는 충분하다고 판단하며, 로고스를 아들-아버지 언어와 연계시키는 문예적 차원의 해석을 우선하여 서문의 해석을 시도하려 한다. 

 

본 논문은 이런 로고스 기독론의 다양한 연구사를 개략적으로 되짚고, 최근 로고스 기독론을 분석하는 새로운 학문적 조류가 무엇인지 제시하는 데 일차적 목표를 두고자 한다.

나아가 필자가 제시하는 ‘아들-아버지 관계 패턴’의 정의를 통해서 기존의 제안들이 조망하지 못한 로고스 기독론에서의 새로운 대안적 해석을 살펴보고 그 타당성을 개진해보고자 한다.

 

II. 요한복음 서문의 ‘로고스(λόγος)’3)에 대한 기존의 연구사

 

       3) 학자들 중에는 요한복음 서문의 로고스와 요한서신의 ‘말씀(the Word)’와 의 연관성을 제시한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R. E. Brown은 요한복음 1:1-18 과 요한일서 1:1-3간 평행요소를 상세히 제시한다. R. E. Brown, The Epistles of John: Translated, with Introduction, Notes, and Commentary (Garden City: Doubleday, 1982), 176-80. 하지만, Judith Lieu가 지적했듯이 요한복음과 요 한일서에서의 동일한 단어, 개념 등을 비교할 때, 각각의 단어의 사용, 그 에 따른 추론, 문맥에서의 사용이 미묘하게 다른 점 등을 들어 두 서신이 같은 요한 전승을 독립적으로 활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Judith Lieu, I, II & III John: A Commentary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2008), 17. 또한 Stephen S. Smalley가 진술하듯, 요일 1:2의 ‘우리에게 드러난 영생’ 이 요한복음 서문의 내용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요한일서 의 저자가 반드시 그의 서문에서 요한복음의 서문과 요한복음 속 λόγος가 나타난 방식을 차용했다고 확언할 수는 없다. Stephen S. Smalley, 1, 2, 3 John (Dallas: Word, 1991), 6.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요한일서와 요한복음의 로고스 간 연관성이 아직 확실히 확인된 것이 아니기에 이를 논외로 하고 논의를 개진하려 한다. 참조. 요한복음의 λόγος(the Word)와 λόγοι(Speech)의 관계에 대한 최신 연구는 Deborah Forger, “Jesus as God's Word(s): Aurality, Epistemology and Embodiment in the Gospel of John,” JSNT 42 (2020), 274-302 (특히 278-83)을 참고하라

 

요한복음 서문의 로고스의 사상적 배경에 대한 여러 접근 중 주요 한 갈래는

1) 요한복음의 로고스의 개념 속 신학적 의미, 혹은 역사적 의미를 어떻게 해석할지에 대한 논의와

2) 요한의 로고스 개념이 제2 성전기 유대교 혹은 헬레니즘의 배경 중에서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 대한 논의4)

 

        . 4) 이 입장에 대해선 Daniel Boyarin처럼, 로고스의 개념이 예수 당시의 유대교 안의 이위일체적 신학(binitarianism)의 반영(여기에는 당대 헬레니즘의 영향이 있었음을 가정)하여 두 배경적 영향을 절충하는 입장도 있지만,대체적으로는 유대교 혹 헬레니즘 중 특정한 한쪽 배경에 더 비중을 두고 연구하는 입장들이 아직은 더 많은 듯하다. Boyarin의 주장은 다음을 참고 하라. Daniel Boyarin, “The Gospel of the Memra: Jewish Binitarianism and the Gospel of John,” HTR 94 (2001), 243-84. 

 

3) 요한의 로고스 사상을 영지주의와 비교해 그 유사성을설명한 입장 등을 들 수 있다.

1)에 대한 토의의 예시로 에른스트 핸헨(Ernst Haenchen)의 입장을 들 수 있다.

핸헨은 서문의 1절 후반부를 “and divine [of the category divinity] was the Logos”로 번역함으로, ὁ θεὸς가 ‘하나님’으로, 관사 없는 θεός는 신성 (divine)으로 해석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로고스와 하나님의 상이성(相異成)을 주장하는 것이다.5) 이런 입장에서 요한복음의 아버지(하나님)와 아들은 완전히 구분되는 것이며, 아들은 동일성이 아닌 종속성의 존재론적 범주에 속한다.6) 반면 마크 아폴드 (Mark Appold) 는 요한복음의 아들과 아버지의 동일성이 ‘하나됨의 모티프’를 통해서 일관되게 요한복음의 전체에 걸쳐 나타난다는, 아들과 아버지의 동일성을 더 부각하는 입장을 제시했다.7)

2)에 대한 토의에서 마이클 페퍼드(Michael Peppard)는 유대 배경보다는 헬레니즘의 영향이 요한에게 더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전제하에, 로고스의 성육신의 개념의 대상이 예수가 아닌 신자들임을 주장했다. 그는 하나님으로 보냄을 받은 존재가 예수가 아닌 세례자 요한이었으며(1:6), 하나님의 ‘독생자’란 기독교인들이지 그리스도가 아님을 말한다.8)

 

        5) Ernst Haenchen, John 1: A Commentary on the Gospel of John Chapters 1-6, trans. by Robert W. Funk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84), 109.

       6) Haenchen, John 1, 109.

       7) Mark Appold, The Oneness Motif in the Fourth Gospel (Tübingen: Mohr Siebeck, 1976).

       8) Michael Peppard, “Adopted and Begotten Sons of God: Paul and John on Divine Sonship,” CBQ 73 (2011), 103. 그는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독생자 개념 은 요한일서에야 등장하며, 거기서도 사본들간 중대한 불일치로 인해 성육신의 대상이 그리스도인지는 불분명함을 주장한다. Peppard, “Adopted and Begotten Sons of God,” 103. 

 

페퍼드에 따르면, 요한복음의 서문에서 핵심이 되는 부분은 아들됨이나 독생자가 아니라 (두 개념이 서문에 등장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에) 말씀/빛이 성육신을 통해 아버지의 영광을 선명하게 제시한다는 요한의 독특한 계시적 관점이다.9) 이런 로고스 배후에 있는 개념 을 추적하는 데 있어 페퍼드는 유대교의 영향보다는 헬레니즘의 관점이 요한복음의 서문에 더 영향을 미쳤다고 치중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10) 반면, 루벤 뷰너(Ruben A. Bühner)는 최근 Messianic High Christology에 서 자신은 당대 제2성전기의 초기 유대 메시아주의의 개념을 요한이 어떻게 독특한 기독론으로 발전시켰는지를 추적하는 연구를 진행할 것이라 시사한다.11) 뷰너의 입장은 페파드의 입장과 반대로 요한복음 의 서문 속 유대교 전승의 뿌리를 찾는 데 더 치중한다. 뷰너는 분명 요한의 기독론이 예수의 신성을 강조한 독특한 것이지만, 이는 당시에 초인적인 메시야를 고대하던 당대의 유대교 사상에 뿌리를 두고, 유대교안의 토론 가운데서 발전한 것임을 감안하고 읽어야 함을 지적한다.12)

 

     9) Peppard, “Adopted and Begotten Sons of God,” 107. Michael Peppard는 독생자 를 단수가 아닌 복수인 하나님의 자녀들로 처리할 경우 나타나는 사본학 적 문제에 대해서도 이미 인지하고 이에 대해 답하려 시도한다. Peppard, “Adopted and Begotten Sons of God,” 104.

    10) Peppard의 요한복음의 아들 됨에 대한 연구의 전조는 그의 저작 Michael Peppard, The Son of God in the Roman World: Divine Sonship in Its Social and Political Context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1)를 참조하라. 유사한 입장 은 조재형,『그리스-로마 종교와 신약성서』(서울: 부크크, 2018) 을 참조하라.

    11) Ruben A. Bühner, Messianic High Christology: New Testament Variants of Second Temple Judaism (Waco: Baylor University Press, 2021), 145.

    12) Bühner, Messianic High Christology, 145, 169. 

 

뷰너는 기존 학계의 흐름을 두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요한이 유대교 메시아 전승을 알고 이런 전통적 메시아 용어를 자신의 복음서 저술에 활용했다는 것을 합의한 입장이다.

둘째는 요한의 승귀된 기독론이 최소한 유대교의 메시야 관에서 벗어난 독자적인 입장이라는 것이다.13)

하지만 뷰너의 입장은 요한이 제2성전기 유대교의 메시아니 즘을 다 알지는 못했더라도, 몇몇 초인적인 메시아의 측면을 묘사하는 데 쓰인 개념들을 빌려와 이 유대교 전승속 개념들 안에서의 추론을 통해 요한이 자신만의 독자적인 기독론을 발전시켰다고 정리한다. 그는 신성한 말씀이 완전한 인간이 된다는 것과 또 죽음에 이르렀다는 개념은 스토아 학파적이거나 플라톤 중기 사상의 로고스 관념 혹은, 또는 이 플라톤적 사상을 차용한 필로의 입장과도 구분됨을 말한다.

이와 달리 뷰너는 하나님의 지혜로서 로고스가 세상으로 보냄을 받음과 (Wis 9:10; and Sir 24:8; 참조. 1 En. 42:1) 그 로고스가 시온에 장막을 치고 앉았다는 것(Sir 24:8), 그리고 요한복음의 로고스의 (우리 중에) ‘거함 (indwelling)’ 개념과 이와 유사한 유대교 지혜 전승의 예를 들어 (요 1:10-12과 1 En. 42:1) 요한복음의 로고스는 헬레니즘적 영향 보다는 유대교의 영향 아래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14)

그러나 유대교 전승에서 하나님의 지혜는 창조의 동반자이며, 하나님께로부터 낳아졌지만(begotten) (Wis 7:26; Philo Fug. 9. 48 50; Sir 24:3, 9과 잠언 8:22-31), 여전히 창조되지 않은 창조주와 창조된 피조 물의 경계는 구분된다(Sir 42:21).15)

그러나 뷰너는 이런 유대 지혜 전승과 요한의 서문에서의 차이는 이런 신적인 속성들이 요한에서는 로고스에게까지 돌려진다는 점이며, 따라서 요한의 서문에서 예수에 대한 인식은 창조되지 않은 다른 피조물과의 구별된 신성 (the divine identity)을 나타낸다고 지적한다.16)

 

      13) Bühner, Messianic High Christology, 171.

      14) Bühner, Messianic High Christology, 150.

      15) Bühner, Messianic High Christology, 150.

      16) Bühner, Messianic High Christology, 157.

 

뷰너와 유사하게 제프리 허버드(Jeffrey Hubbard)는 요한복음의 로고스의 기능과 (특별히 율법 해석의 기능) 기원을 당대의 제2성전기 문 헌들과 비교해 제시한다. 그는 4Q Instruction과 Wisdom of Solomon에서  등장한 율법의 해석을 요한복음의 해석과 비교하여, 요한의 수신인으 로 상정된 공동체가 하나님의 육화된 말씀으로서 성경을 다시 읽게 만드는 경험을 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지혜가 예수를 통해 드러난 것은 요한의 관점에서는 새롭게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온 유대교 율법 해석에 대한 지침과 같았다는 것이다.17) 사실 이런 유대교 배경 중심으로 요한복음의 예수의 로고스와의 연결성을 살피는 관점의 선구자는 리차드 보컴(R. Bauckham)이다.

보컴은 하나님의 말씀의 현신인 로고스로서 예수는 하나님께만 속한 내재적인 독특한 정체성을 소유했으며, 따라서 창조의 순간 창조주와 함께 창조의 사역에 동참한 존재임을 역설한다. 보컴의 독특한 점은 로고스가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고 해서, 하나님 자체와 바로 동일한 존 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독특한 내재적 본성을 공유하나, 하나님과는 구별된 존재라는 주장이다.18)

 

       17) Jeffrey Hubbard, “Torah and Divine Revelation in Three Jewish Texts: 4Q Instruction, Wisdom of Solomon and the Fourth Gospel,” JSNT 44 (2022), 574. 이와 유사하게 Matthew Gordely는 성육신이 하나님의 영광을 특정한 이 미지를 통해서 나타내는 것은 유대교적 자의식에서 핵심이 된다고 주장 한다. Matthew E. Gordley, New Testament Christological Hymns: Exploring Texts, Contexts, and Significance (Downers Grove: IVP, 2018), 168. 이런 자의 식의 예시는 1) 로고스에 쓰인 ‘거하다’는 동사가 천막을 치다인 σκηνόω 인 것; 2) 영광을 보는 것 (1:14)이 하나님의 영광이 천막에 임재하는 것을 상기시킴; 3) 모세를 통한 율법 수여가 요한복음 서론에 언급된 것 등을 든다. Gordley, New Testament Christological Hymns, 159.

      18) Richard Bauckham, The Testimony of the Beloved Disciple: Narrative, History, and Theology in the Gospel of John (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07), 241. 

 

이는 그의 신적 정체성 기독론(Divine identity Christology)의 입장을 요한복음에 적용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 다. 따라서 요한복음 서문의 로고스는 창세기 창조 내러티브 안에서, 이미 하나님께만 적용할 수 있는 신적 정체성을 공유하는 존재로서 선재적인 그리스도(pre-existent Christ)를 말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의 요지이다.19)

마지막으로 3)의 입장에서, 영지주의적 읽기와 요한복음을 연결시키는 흐름의 대표자 중 한 사람으로 불트만(R. Bultmann)을 꼽을 수 있다. 불트만은 영지주의 사상의 보냄에 대한 모티프를 적극적으로 요한복음 해석에 도입했으며,20) 그의 이런 읽기는 로고스에 대한 해석에도 일관되게 나타난다. 따라서 그의 입장에서 로고스는 아버지로부터 보냄을 받은 지식(혹 지혜)의 구현화 된 형체로서 이해된다고 볼 수 있다. 불트만과 유사한 입장에서 영지주의와 요한복음을 더 깊이 연결하고자 시도한 학자는 핌 퍼킨스 (Pheme Perkins)이다. 그는 천상계의 빛(구원자)가 아래 세상의 어둠으로 내려온 대표적인 영지주의의 주제 중 하나가 요한복음 서론에 반영되었음을 주장한다(요 1:1-5, 10-13). 그리고 모세와 같은 이들 중 다른 누구도 하나님을 알거나 봤다고 주장하지 않았음을 짚으며 이 빛의 독특성을 강조한다(1:18).21) 그는 요한복음 안에서 영지주의 대표적 주제인 인간에게 계몽을 주려는 빛의 계시자에 맞서는 어둠에 속한 적대자 신화가 확장되는 대신에 이 적대자들이 유대교의 선생들로 나타난다고 짚어낸다(8:12-59 ).22)

 

       19) Bauckham, The Testimony of the Beloved Disciple, 241. cf. Michael F. Bird, Jesus Is the Christ: The Messianic Testimony of the Gospels (Downers Grove: IVP, 2013), 99-104.

      20) R. Bultmann, The Gospel of John, trans. by G. R. Beasley-Murray (Philadelphia: Westminster, 1971), 8.

      21) Pheme Perkins, “Gnostic Motif in the New Testament,” The Gnostic World, ed. by Garry W. Trompf, Gunner B. Mikkelsen and Jay Johnston (Oxford: Routledge, 2018), 91.

      22) Perkins, Gnostic Motif in the New Testament, 91.

 

따라서 퍼킨스는 빛/어둠의 이항 대립적 구도에서 요한복음 서문의 로고스와 빛을 영지주의의 빛 아래 보다 일관된 해석을 이끌어내 고자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입장과 유사하게 영지주의적 배경으로 요한복음 읽기를 시도한 국내 학자는 조재형이 있다. 그는 모나드의 발현과 귀환을 로고스의 세상의 옴과 아들의 아버지께로 감등의 개념과 동치시켜 설명하려 했다.23)

그는 로고스의 육화 개념을 고대 영지 사상의 모나드로부터 신성이 발현되어 인간에게까지 도달하는 과정과 비교한 해석을 제시했으며, (비록 고대 영지주의자들의 해석의 모든 부분을 다 적용할 수는 없더라도) 이 해석이 요한복음속 빛으로 온, 육신을 입을 예수에 대한 이해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줬을 가능성을 제언한다.24)

요한복음 안에서 로고스를 정의하는 것도 앞서 설명한 세 갈래의 연구 흐름들의 영향을 받는다.

아들의 아버지에 대한 종속성과 분리 성을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로고스의 신성 혹, 성육신을 통한 창조주의 육화(肉化)보다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로고스의 대리적 전달자 (prerogative)로서 특별한 기능을 더 강조한다.

반면, 아들과 아 버지의 동일성을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창조주로서의 로고스의 성육신 사건과 이를 통해 드러난 계시의 빛으로서 성격을 더욱 강조한다.

또, 영지주의의 입장은 이런 신성과 인성에 대한 입장개진 보단 상승/ 하강, 지식(빛)/무지(어둠) 혹은 모나드로부터의 방출/귀환 등의 영지주의 사상의 특징들과 요한복음의 로고스의 유사성을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까지도 요한 학계 안에서는 이런 여러 입장 사이에서 확실한 결론이 내려지기보다는, 여전히 각 입장에 대한 근거 제시와 그 반박들이 계속 오가는 실정이다. 따라서 다양한 입장간 차이는 아직 크게 좁혀지지 않은 듯하다.25)

 

     23) 조재형,『초기 그리스도교와 영지주의』(서울: 동연, 2020), 165-67.

     24) 조재형,『초기 그리스도교와 영지주의, 166-67, 169.

     25) 요한복음 서문에 두 경향에 대한 최근 연구사에 대한 개략적 통찰은 Jan G. van der Watt ed., Prologue to the Gospel of John: Its Literary, Theological, and Philosophical Contexts (Tübingen: Mohr Siebeck, 2016) 와 Judith M. Lieu and Martinus C. de Boer eds., The Oxford Handbook of Johannine Studie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8)를 참조하라. 

 

앞선 모든 다양한 학자들의 논의는 요한복음 서론과 로고스의 의미에 대해서 다각도의 유의미한 통찰을 많이 남겼지만,

결과적으로는 학문적으로 지나치게 다양화된 스펙트럼을 펼쳐 놓아 합의를 이루기 어려운 학적 난맥상을 낳은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경향을 극복하고자 학계에서는 새로운 흐름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 학자들의 변화된 연구 추세는 요한복음의 서문 안을 탐구할 때 지나치게 특정화된 혹은 편중된 도식 안에서 역사/신학 혹은 유대교/헬레니즘/영지주의의 배경 중 한 가지에 치중해 읽는 접근을 지양하는 것이다. 이런 시도가 지속된다면, 서문 속 로고스를 해석 하는데 있어서도 요한의 예수 묘사의 복합성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 다.

그리고 이에 따라 획일적이지 않은 서문에 대한 해석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26)

 

     26) Marianne M. Thompson, “The Human Jesus in the Gospel of John: The Word made flesh,” Portraits of Jesus in the Gospel of John, ed. by Craig Koester (London: Bloomsbury, 2018), 30. 

 

다음 소단락에서는 이런 흐름의 최전선에서 요한복음의 신학과 역사적 요소의 긴장을 완화하고 통합하고자 한 외르크 프라이 (Jörg Frey) 의 견해를 중심으로 이 새로운 해결 방식을 통한 요한복음 로고스 기독론의 개진을 살펴보고자 한다.

 

III. 최근 제시된 해결방안–프라이(Jörg Frey)의 입장을 중심으로-

프라이는 자신의 최근 저작 Theology and History in the Fourth Gospel 과 Glory of the Crucified Son을 통해 그동안 학계에서 잘 해소되지 않은 요한복음의 신학과 역사적 읽기의 긴장을 해소하고 두 요소를 통합하려는 새로운 읽기를 시도한다.

그는 예수가 하나님(아버지)로부터 왔으며, 그가 아버지로부터 본 것과 들은 것을 증언하기 위한 신적 권위를 가진 독특한 계시자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런 아버지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모티프 (sending motif)’가 요한의 고기독론적 칭호들과 모순 되지 않고 서문에 등장한 고기독론적 틀과 요한복음에서 전개되는 예수에 대한 고기독론적 지칭들과 잘 조화됨을 지적한다.27) 따라서 이런 프라이의 설명은 성경의 하나님이 그의 아들과의 배타적인 관계를 통해 규정된다고 하는데, 왜냐면 그 아들이 아버지의 형상을 담은 계시적 존재로서 아들과의 관계를 통해 아버지를 알게 하며(1:18) 사람들에게 아들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보게 하기 때문이다(14:7, 9).28) 프라이의 해석의 관점을 서문의 로고스 해석에 적용할 경우, 그의 분석에서 핵심이 되는 개념은 로고스의 ‘거함’이다. 그는 유대인의 셰키나 신학(하나님의 임재가 자신의 백성들 중에, 더 구체적으로는 성막과 같은 특정한 장소에 나타남을 인식하는 신학)의 특징이 요한복음 서문에 나타남을 지적한다. 따라서 프라이는 하나님의 거함이 성막 가운데 나타나듯 로고스도 우리 안에 거함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한 다(출 25:8; 29:45-46; 겔 43:7,9; 왕상 6:12-13).

프라이는 서문의 로고스 표현에 들어있는 전승을 두 지류로 분석하는데

첫 번째는 하나님의 만물을 갱신하는 과정에서 그의 백성들과 맺는 종말적 친교이고,

두 번째는 유대 지혜 전승이다 (예. Sir 24).

그에 따르면 이런 전승의 두 갈래가 모여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가 성막에 거하듯이 하나님의 백성 의 한가운데 하나님의 계시 혹 영광이 머물게 됐다는 것이 요 1:14가 설명하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안에 거하게 됐다는 표현의 신학 적 의미이다.29)

 

    27) Jörg Frey, Theology and History in the Fourth Gospel: Tradition and Narration (Waco: Baylor University Press, 2018), 34-35.

    28) Frey, Theology and History in the Fourth Gospel, 57. 29) Jörg Frey, The Glory of the Crucified One: Christology and Theology in the Gospel of John, trans. by Wayne Coppins and Christoph Heilig (Waco: Baylor University Press, 2018), 277.

 

따라서 프라이가 분석한 셰키나 전승을 통해 로고스의  육신을 입음과 그의 영광을 보는 것이 유대교의 신학과 연결되고, 이를 통해 예수의 인성과 그를 통해서 비춰지는 신적인 영광이 이스라엘에게 나타난 새로운 방식의 계시임이 드러난다.30) 곧 예수라는 새로운 계시의 매개를 통해 등장한 새 시대의 계시로 전환하여 보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요한이 풀어내는 이 성육신의 개념 안에는 아들과 아버지의 구분됨도 선명하게 나타나지만, 동시에 아버지와 아들의 상호 내주와 아버지와 아들의 하나 됨, 곧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본성, 활동, 의지 에서의 친밀하고 내적인 연결도 명확하게 표현된다. 따라서 성육신화된 로고스인 예수는 아버지의 재표현(to represent)이 아닌 완전한 표현이며(to present),

오직 이 아들 안에서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볼 수 있게 드러나는 것이다.31) 그리고 이런 아버지와 가장 가까운 존재로서 로고스 자신은 아버지의 본성과 의지를 밝혀내어 계시하고, 해석해주 는 역할을 감당한다.32)

이런 프라이의 접근은 오랫동안 요한학계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유대/헬레니즘 간, 역사/신학 간에 있는 각양의 제안들이 쌓아 논 해석의 간극을 넘어서 새롭게 텍스트를 볼 여지를 만드는 데 의의가 있다.

프라이 자신의 말처럼 종교사적 배경을 설명하는 기존의 연구 방식에 보다 더 넓게 텍스트가 수용되는 과정을 복합적으로 분석하는 전승사적 시각이 결합된다면, 이를 통해 요한복음 텍스트 자체의 이해가 심화될 수 있을 것이다.33)

 

     30) Frey, The Glory of the Crucified One, 283.

    31) Frey, The Glory of the Crucified One, 308.

    32) Frey, The Glory of the Crucified One, 312.

    33) Jörg Frey, “Between Torah and Stoa: How Could Readers Have Understood the Johannine Logos?,” The Prologue of the Gospel of John: Its Literary, Theological, and Philosophical Contexts (Tübingen: Mohr Siebeck, 2016), 233.

 

Theology and History of the Fourth Gospel 과 Glory of the Crucified One은 이런 그의 지향점이 잘 나타난 연구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저술들에 나타난 프라이의 핵심 논제는 당대 요한의 수신자와 현시대 독자들의 현재를 겨냥한, 곧 예수의 부재를 경험하는 과거와 현재의 간극을 메우기 위한 요한의 신학적 관심사 때문에 예수의 이야기에 생명을 부여하고자 요한이 복음서를 저술했 다는 것이다. 프라이에 따르면, 우리는 역사보다는 신학이 요한복음에 서 우선권을 갖는 의미를 긍정해야 하며, 이에 따라 요한복음을 역사 적 정확성을 기하기 위한 사료 중 하나로 읽기보다는 요한이 역사적 전승을 다룬 방식에 집중해 요한복음을 이해해야 한다.34)

 

      34) Frey, Theology and History in the Fourth Gospel, 206, 208-9. 

 

이런 방식으 로 프라이는 다극화된 요한복음 읽기를 넘어서, 신학을 중심으로 역사를 통합한 읽기가 한층 심화한 요한 이해를 가능케 한다고 논증한 다.

그러나 이런 뛰어난 통찰에도 프라이의 제안을 서문에 적용할 경우 몇 가지 아쉬운 점을 들 수 있다.

 

  첫째, 프라이는 요한복음의 신학과 역사를 통합하는 데 있어서 요한의 고기독론적인 서술 속 예수의 독특한 위치와 그의 역할을 잘 포착했으나, 그의 입장에서 요한의 신학적 주제들을 관통하는 주제인 ‘십자가에 달리신 이의 영광’의 신학(혹은 성육신의 신학)이 독특한 지위를 가진 계시자로서 예수의 ‘아들 됨’ 과 로고스의 관계에 적절한 주목을 하지는 않는 듯하다.

물론 프라이가 요한의 텍스트에 맞춰 각론적인 설명 안에서 부분적으로 아들의 독특성을 충실히 다룬 것은 분명하나,

그의 요한 신학의 중추적 렌즈인 십자가의 신학을 통해 예수의 아들됨의 독특성이 로고스와 연계 하여 충분히 적실성 있게 다뤄졌는지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둘째, 로고스의 계시적 역할을 전승사적 접근을 통해 유대교의 셰키나 신학과 연결하여 설명한 것은 탁월했으나, 요한복음 텍스트 안에서의 내적인 설명을 통해 로고스의 역할을 조망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미진한 듯이 보인다.

   셋째, 프라이는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성의 독특성을 강조하며, 분명 상호 내주(reciprocal immanence)에 상당히 심도 있는 설명을 하지만,35) 상호 내주와 아들과 아버지의 하나됨을 매개하는 계시와의 연관점을 좀 더 분명히 설명하지는 않은 듯이 보인다.

따라서 프라이의 신학적 렌즈는, 어떤 학자도 피할 수 없는 비판이긴 하지만, 요한복음의 다양한 특징적 요소들을 로고스 기독론에 적용하여 설명 함에 있어서 모든 부분을 균형 있게 다루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본 논자는 이를 보완하기 위한 대안적 제언으로 ‘아들-아버 지 관계적 패턴’36)을 서문의 로고스 기독론의 해석에 적용할 것을 다 음 소단락에서 제안하고자 한다.

 

      35) Frey, The Glory of the Crucified One, 307-9.

      36) ‘아들 아버지 관계 패턴의 정의’를 보기 위해서는 필자의 박사논문, Kim, Juheon, “The Son-Father Relational Pattern in Matthew, Luke and John: The case from the Son-Father logion and the Fourth Gospel” (PhD Dissertation: University of Aberdeen, 2022), 7; 요한복음과 이 패턴의 연계 점을 보기 위해서는 동일 책의 챕터 5를 보라. 

 

이를 통하여 프라이의 연구를 보완 하고, 요한 학계의 로고스 기독론에 새롭게 논의할 수 있는 대안적 읽기 방식을 제언하려 한다.

 

IV. 아들-아버지 관계 패턴을 통한 요한복음 서문 로고스 기독론의 재조명

 본격적인 논의를 개진하기 전, 우선 필자가 프라이의 견해에 많은 부분을 빚졌으며, 그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함을 미리 밝힌다.

따라서 필자가 제시하는 프라이의 제안에 대한 개선점은 그의 시도 전체에 대한 전면적 수정이 아닌 방법론적인 제언 수준으로 제시될 것이다.

필자의 제언의 목표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필자는 요한복음의 신학을 역사보다 우선시하여, 신학과 역사를 통합해 읽으려는 프라이의 시도 위에, 요한의 신학적 주제들을 일관되게 통합할 수 있는 사고 틀(framework)로서 아들-아버지 관계 패턴을 덧붙이자는 제안을 하려 한다.

이는 프라이의 독법을 더 정교화하는 시도가 될 수 있다.

 둘째, 프라이가 상대적으로 덜 주목한 요한복음의 ‘계시자로서 아들’의 존재를 더 부각하고자 한다.

그 결과로 서문 안에서의 로고스의 역할을 요한복음속 계시자인 아들과 연결할 수 있다는 설명이 아들-아버지 관계 패턴을 통해서 가능함을 살펴볼 수 있다.

 셋째, 프라이가 분석한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성의 독특성이 (그가 집중한)상호 내주를 넘어 서, 요한적 선교와 관계적 역동성이라는 주제들과 이어질 수 있음을 제언하고자 한다.

따라서 아들-아버지 관계 패턴의 적용은 비단 서문 안 로고스의 분석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필자의 제안을 통해 이 패턴이 요한복음의 내러티브가 진행됨에 따라 발전, 심화해 가는 요한적 선교, 관계적 역동성이라는 주제들과 연동하여 심층적으로 적용 될 수 있음을 제안하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필자의 제언 목적은 상호 내주, 요한적 선교, 관계적 역동성 등의 매우 요한적인 주제들을 하나의 틀로써 묶어주고 심층적으로 보게 하는 ‘개념적 이음매’로서 아들- 아버지 패턴의 효용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아들-아버지 관계 패턴 (the Son-Father relational pattern)’의 정의를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이는 마 11:25-27(눅 10:21-22)과 요한복음 전체 (예. 요 5:19-30; 8:35-47; 10:25-38; 14:10-24; 17:1-26)에서 관찰할 수 있는 아들과 아버지 간의 독특한 관계의 표현을 규정하는 용어이다. 이 관계 패턴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기술할 수 있다:

 

“아들은 아버지와 아들 간의 상호성(reciprocity)을 포함하여 아버지, 아들간의 배타적인 상호간의 친밀함(exclusive mutual closeness)를 나타내는 계시적 역할을 한다. 아들과 아버지 사이의 이런 상호적 친밀성은 아들과 아버지가 서로에 대해 가지고 있는 배타적이고 특수한 지식을 서로에게 향해서 중재함(mediating each other)을 근거로 하고 있다.”

특별 히 이 요한복음 안에서 관계 패턴을 이루는 요소를 아들-아버지-지식- 계시의 연속적인 관념적 묶음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37)

따라서, 아들-아버지 패턴이 요한복음의 전체를 관통할 수 있는 개념적 이음 매가 된다는 필자의 주장을 전제하고 요한복음 서론에 아들-아버지 간 관계 패턴을 적용하여 분석하면, 다음 세 가지 특징을 관찰할 수 있다.

 첫째, 아들과 아버지의 상호 내주(mutual indwelling)이다. 아들과 아버지는 독특하고 배타적인 서로간 상호성을 바탕으로 친밀한 하나 됨을 이루는 것이 요한복음의 내러티브가 진행될수록 강조되어 나타 난다. 세상은 아버지에 대한 어둠에 싸여 있지만, 아들은 아버지를 알고 그에게 가르침을 받아왔으며(5:19, 21, 30), 아버지에게 배우고 들은 대로 말하고 가르친다 (7:17-18; 8:26-27, 38; 10:32; 12:49-50; 14:10, 11, 24, 25; 15:15; 17:7-8).38)

 

      37) 아들-아버지 패턴을 구성하는 이 네 가지 요소에 대해 보다 구체화된 각 복음서 맥락(마태, 누가, 요한)에서의 분석은 필자의 박사논문 “The Son-Father Relational Pattern in Matthew, Luke and John”의 2-5장을 참조하 라. 특별히 요한적 의미의 아들, 특별히 다른 전치사가 없는 ‘absolute Son(ὁ υἱός)’의 특징을 보기 위해서는 Pope Benedict XVI, Jesus of Nazareth: From the Baptism in the Jordan to the Transfiguration (London: Bloomsbury, 2007)를 참고하라.

      38) Adesola Joan Akala, The Son-Father Relationship and Christological Symbolism in the Gospel of John (London: Bloomsbury, 2014), 117. 2

 

그리고 이 둘의 배타적인 사이를 매개하는 것 은 둘 사이에 오가는 친밀한 지식인데, 이는 아들/아버지가 각각 참된 아버지/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지식을 근본으로 하고 있으며, 주로 아들의 계시를 통해 아버지에 대한 지식이 드러남이 요한복음 속 아들의 발화로써 나타난다.

이런 상호 내주가 잘 나타낸 구절들에서 (10:38; 14:10, 11, 20; 17:20, 21) 아들과 아버지의 본질적 하나 됨은 아들과 아버지의 단순한 동일화를 표현한 것은 아니다. 아들과 아버지의 존재적 차이는 긍정하되 둘 사이 관계는 불가분한 것이라는 전제는 분명히 드러난다. 이미 ‘아들’과 ‘아버지’라는 관계적인 용어에서  이 둘이 서로를 포괄하고 있는 것이 나타난다.39) 그리고 아들과 아버 지의 이런 배타적 관계 안에서의 교류는 이 둘 사이에만 국한되지 않 고 보혜사를 통해서 더 역동적으로 예수의 제자들에게까지 확장된 다.40) 그리고 서문은 이런 상호 내주의 내용이 요한복음 안에서 본격적으 로 서술되기 전, 로고스의 보편적 성격을 매우 구체화된 존재인 아들 로 특정한다.41) 그리고 성육화된 로고스로서 예수의 모습을 로고스의 신적 주도성을 표현한 다음의 세 가지 사건들과 연결해 서술한다: 창 조, 율법의 수여, 세례 요한을 보냄 (로고스에 대한 증언을 위해).42)

 

    39) Bauckham, The Testimony of the Beloved Disciple. 251.

    40) 보혜사(성령)의 요한복음 안에서의 역할은 아들과 아버지 사이에 공유된 계시와 지식을 아들의 선택을 입은 자들에게 조망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성령의 가르침은 공동체를 진리 안에서 보존하고, 부활후 승천한 예수와의 사귐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로 간주되었다. Frey, Theology and History, 147. 여기서 성령의 역할은 아들/아버지의 말씀과 영광을 드러냄으로 아들-아버지 간의 이뤄진 상호 내주를 예수의 추종자 들에게까지 확장하여 완성하는 데 있다. 이런 성령의 존재로 인해 ‘다른 이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헌신’이라는 요한적 윤리의 관계적 특징 역시 완성된다. 따라서 아들의 아들-아버지와의 상호 내주, 아들과 그의 추종자들의 상호 내주에 대한 선언은(17:24-26) 아들의 떠남 이후에는, 성령의 지속적인 임재로써 가능해진다. R. Bauckham, Gospel of Glory: Major Themes in Johannine Theology (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15), 61.

     41) 물론 많은 학자들이 서문에 대한 방대한 연구사에서 서문의 내용이 개작 되어 요한복음 작성단계의 후기에 덧붙여졌을 가능성을 지지함은 필자 역시 인지하고 있다 (참조. John Ashton, “Really a Prologue?” The Prologue of the Gospel of John, 27-44). 그러나 필자는 여기서 서언의 최종본문 속 기능적 위치, 곧 내러티브로 진행되기 이전 단계의 문예적 형태로서 서언의 서론적 기능을 고려했음을 밝힌다. 요한복음에서 기독론적 진리를 여는 창구로서 서언의 문예적 성격을 강조한 연구는 다음을 보라. Martin Hengel, “The Prologue of the Gospel of John as the Gateway to Christological Truth,” The Gospel of John and Christian Theology, ed. by R. Bauckham and C. Mosser (Grand Rapids: Eerdmans, 2008), 266-94.

 

그리고 요한 저자의 독생자(μονογενής)라는 용어 표현은 예수와 하나님 사이의 친밀한 관계(filial relationship)를 상징화하는 것이며, 이 관계는 친밀함(intimacy)과 사랑으로 규정된다.43)

따라서 독생자 용어를 통해서 추론할 수 있는 로고스의 이런 초월성의 특징도 아버지와의 친밀하고 역동적인 ‘상호 내주’를 전제한 관계 패턴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1:1-3). 그리고 이 초월성의 시작은 처음부터 로고스의 사역이 절대적인 시작점인 하나님과 함께했기 때문이기에44), 아버지 와 연합을 이룬 아들의 행동과 말은 그 자체로 아버지와의 상호성에 기반한 계시가 된다(참조. 10:15).45) 따라서 요한복음 서문 속 로고스 의 존재에 대한 표현은 ‘아버지가 아들 안에서 완전히 나타나고, 아들 도 아버지 안에서 완전히 나타나며, 아들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 는 계속적으로 아들 안에서 자기를 드러내시며 아들 안에 거하신다(to abide)’라는 슈넬레의 요약적 진술에 충분히 부합하며,46) 이를 통해 서문의 로고스 기독론은 아들-아버지 관계 패턴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42) The Prologue of the Gospel of John.

    43) Akala, The Son-Father Relationship and Christological Symbolism, 140. Udo Schnelle

역시 아들과 아버지의 하나 됨(10:30)의 주제 자체는 요한 신학과 요한 기독론의 핵심 전제이며, 아버지가 자신의 존재 전체를 자신이 하 나님(혹 아버지)과 완전한 하나이며, 자신의 사역이 이런 아버지와 연합 을 통해 이뤄진다고 주장하는 아들을 통해 충만하게 드러낸다고 말한다. 그는 이런 아들 안에서의 아버지의 계시는 아버지의 배타적인 사랑에서 비롯된 것(요 3:16)임을 지적한다. Udo Schnelle,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trans. by Eugene Boring (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09), 663. 따라서, 요한복음 서문의 로고스와 동일시되는 아들이 포함한 ‘빛’ 은 아버지를 알게 하는 지식, 곧 배타적인 아버지의 사랑에서 비롯된 참 된 지식에서 나온 것이므로 이런 요소 역시 앞서 말한 아들-아버지 관계 패턴에 부합한다 할 수 있다.

     44) Schnelle,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665.

     45) Schnelle,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665.

     46) Schnelle,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665. 

 

둘째, 요한적 선교 (Johannine mission)이다.

아들-아버지의 계시를 통해 서로를 드러내는 관계의 지향점은 아버지를 아는 지식을 확장하는 요한적 선교임이 요한복음 전체를 통해 뚜렷이 나타난다.

아버지의 아들을 보냄, 소위 요한의 보냄 모티프 (Johannine sending motif)는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에 보냄으로 세상에 진리의 빛을 드러내고, 어둠과 무지에 빠진 세상에 아버지의 말을 밝히 드러내는 데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로고스가 이 세상에 온 이유이며 요한복음의 내러티브를 통해 천명될 요한적 선교의 궁극적 목표이다.

서문에 암시된 대로 성육화된 로고스로서 예수의 선교는 요한복음 안에서 점층적으로 발전하고 심화되는 목표이다.

하나님에 관해 예수는 자신이 그를 보았고, 그분 으로부터 들었다는 극적인 증언을 한다(3:32; 6:46; 8:26, 38, 40; 15:15). 그리고, 이런 증언들은, 사실 서문에서 밝혀진 대로 아버지를 알게 하려는 사명을 이루기 위함이라는 로고스의 궁극적 목적에서 기인한다 (1:18). 곧 로고스가 보냄을 받은 목적은 로고스를 통한 아버지의 관계 적인 자기 계시에 근거하고 있으며, 결국, 이 요한적 선교를 위해 아버 지께서 로고스를 이 땅에 보내셨음이 요한복음 후반부에 설명된다 (14:9).

곧, 프라이의 말처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유일한 이미지가 오직 나사렛의 예수라는 인물상을 통해 구현된 것이며, 오직 그를 통 해서만 아버지가 다른 이들에게 보여지는 것이다(1:18; 참조. 14:7, 9).47) 따라서 로고스인 예수는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계속하는데(5:17, 25-26), 이는 그를 보내신 이의 뜻에 부합하는 일이며 (5:30; 6:38; 8:28), 곧 세상으로 하여금 아버지를 알게 하는 일의 연장선이다.48)

 

     47) Frey, Theology and History in the Fourth Gospel, 19.

     48) Culppeper, “The Prologue as Theological Prolegomenon to the Gospel of John,” 19.

 

이런 요한적 선교에서 로고스의 역할은 생명을 부여함으로 나타나며, 새 생명을 창 조하기 위해 성령과 함께 위로부터 나게 하는 새로운 세례를 베푸는 것도 포함한다(1:33; 3:5). 로고스가 말하는 것은 영과 진리이기 때문이다(6:57).49)

따라서 요한복음 1:18절의 로고스, 곧 아들의 선교에 대한 선언은 아버지를 알게 하는 이런 초월적인 지식으로 인류에게 빛을 주기 위한 아버지의 자기 계시적 의지를 담은 선포로 읽을 수 있다.50) 또한 서문에 나타난 아들에게 주어진 은혜와 진리가 모세에게 주어 진 율법 수여와 암시적으로 연결됨을 포착하면, 아버지의 영광을 드 러내는 아들의 계시는 그 영광에 대한 가시적 표현으로서 은혜와 진 리를 포함을 알 수 있다.51) 따라서 아들을 통해 나타난 은혜와 진리는 아버지가 자기 스스로를 인류에게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며, (로고스 란 빛을 통한 세상에 나타남) 이것이 요한복음 전체에 나타나는 요한 적 선교의 핵심 전제이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의 서문 속 로고스 기독론의 핵심은 아버지의 영광이 아들을 통해 드러나는 ‘계시’에 있다. 이 계시의 배경에는 거룩 한 계시의 전달자이자 계시의 내용 자체인 빛으로서 아들의 영광이 있으며,52) 인성 혹은 신성의 양자택일을 거부하는 요한복음의 논리에 서 아들은 순전한 인간으로 온, 그러나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그 말씀 (로고스)’이다.53)

 

     49) Culppeper, “The Prologue as Theological Prolegomenon to the Gospel of John,” 19.

     50) Akala, The Son-Father Relationship and Christological Symbolism, 139. 아들과 그의 선교에 대한 요한복음 구절들과의 연결을 Schnelle는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The Father loves the Son(3:35; 14:21, 23; 15:9) and send him (3:15; 5:37; 6:29). The Father works (5:17, 19, 20, 36; 8:18; 14:10), validates the work of the Son(5:43), and testifies on behalf of the Son(5:37; 10:25). The Son does the will of the Father(4:34; 5:30; 6:38-40)… for all that the Father has also belongs to the Son(16:5). The Father teaches the Son(8:28), who says only what he hears from the Father(8:38; 12:49, 50; 14:24). The Son accomplishes the Father's work (10:37; 14:31) and is honored by the Son (8:49). The Father… has given all authority to the Son, who also judges (5:22). Finally, the Father glorifies the Son, just as the Son glorifies the Father (8:54, 12:28; 17:1). Schnelle,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661.

    51) Akala, The Son-Father Relationship and Christological Symbolism, 163.

    52) Akala, The Son-Father Relationship and Christological Symbolism, 164.

 

세상은 그 빛(로고스)으로 말미암아 지어졌지만 아직그 빛의 있음을 깨닫지 못하였고, 자기 백성은 그를 영접하지 않았다 (1:9-10). 그러나 영접함으로 그 이름을 믿게 된다면, 다시 말해 요한적 선교에 따른 로고스의 진리 계시에 반응한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고(1:12), 이는 요한이 지칭하는 위로부터의 출생이 된다(1:13; 참 조. 3:3). 따라서 요한적 선교의 기저에 자리한 핵심적인 로고스의 계 시적 역할에서도, 아버지와 아들의 배타적 관계에서 비롯한 친밀한 지식의 구현('빛'으로 규명된 아들의 계시)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로고스의 계시적 특징과 아들과 아버지의 존재적 지 식을 상호 교류하는 계시(아들-아버지 관계 패턴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 점진적으로 확장되는 요한적 선교는 서로 부합하는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셋째,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가 다른 이들에게까지 이어지는 관계적 역동성 (relational dynamic)이다.

아들과 아버지 간 배타적 가까움을 통 한 특별한 관계의 규정은 이 둘 사이에만 머물지 않고 아들, 곧 로고스 에 대한 증언에 참여하는 다른 이들의 참여에까지 확장된다. 그 서문 안에서 첫 대상은 세례 요한이고, 다음은 이 로고스의 빛을 본 자들이 다. 요한복음 1:17에서 ὅτι의 사용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서문의 마지막 두 결론적 구절(1:17, 18)은 육화된 로고스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냄 을 가리키는데, 이 영광 안에서 은혜와 진리의 충만함이 이 충만을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거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참조. 1:14-16)54).

 

    53) Thompson, “The Human Jesus in the Gospel of John,” 23.

    54) The Prologue of the Gospel of John. 

 

따 라서 아버지와 친밀함을 배타적으로 공유한 유일한 관계를 구현한 로 고스는 세상이 은혜와 진리의 충만함을 볼 수 있도록 세상에 현현했 으며, 단순히 자신의 가진 아버지에 대한 지식을 세상이 보게 하는 데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그 진리의 목격자들에게 이 관계적 역동 안에 참여하게 하려는 것이 최종 목표임을 볼 수 있다.

서문 안에서 로고스가 관여하여 이런 관계적 역동성에 참여하게 된 수혜자들은 다음과 같다:

   1)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 (1:12, ἔλαβον αὐτόν, πιστεύουσιν εἰς τὸ ὄνομα αὐτου τέκνα θεοῦ γενέσθαι)

   2)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 (1:13, ἐκ θεοῦ ἐγεννήθησαν);

   3) 육신이 된 말씀이 자신들 안에 거한 것을 본 ‘우리들’ (1:14, ὁ λόγος σὰρξ ἐγένετο καὶ ἐσκήνωσεν ἐν ‘ἡμῖν’, 참조. 1:14 하반절의 ἐθεασάμεθα에 내포된 1인칭 복 수 주어와 동일);

   4) 그 (로고스)의 충만한데서 모든 것을 받은 ‘우리’(1:16, ἐκ τοῦ πληρώματος αὐτοῦ ‘ἡμεῖς’ πάντες ἐλάβομεν).

또한, 로고스를 통해 선언된 이 요한적 선교의 사명은 요한복음 내 러티브의 절정 단계인 대제사장적 기도(17장)에서도 나타난다. 이 기 도에서 예수의 간구는 보혜사의 중재를 청원하고 그 보혜사의 미래의 역할을 통해 아들의 추종자들에까지 이 사명이 이전, 확장됨을 선언 적으로 말한다. 이런 로고스의 활동에서 발견한 관계적 역동성은 구체적으로 요한복음 17장에서 세상 중에 내게(아들에게) 주신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낸 것(17:6)과 대응된다. 그리고 진리로 거룩하게 된 그들은 아버지의 보냄을 받은 아들처럼 세상으로 나가며, 아들처럼 진리로 거룩함을 얻는다( 17:18-19). 17장에서 이 관계적 역 동성의 절정은 그들이 아들과 아버지의 상호 내주를 닮아, 그들도 하 나가 되어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게 되는 것이고,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가 아들을 보낸 것을 (아들의 영광이 부재한) 세상이 믿게 되는 것이다(17:21). 아버지와 아들의 하나 됨을 닮아 하나가 된 그들은, 아 들의 기원이 아버지임을 알며(17:25), 또 아버지의 이름을 앎으로 아들을 사랑한 아버지의 사랑이 그들 안에 있게 되어 아들이 그들 안에 있는 상호 내주적 합일을 이루게 된다(17:26).

결국 서언의 로고스 기독론과 아들-아버지 패턴에 담긴 관계적 역동성은 상호 내주와 요한적 선교를 통합하여 새로운 차원의 관계를 제시하는 것이다.

위의 분석들을 종합할 때, 로고스의 역할은 상호 내주를 통한 아버지의 친밀함을 나타내는 것과, 이를 통한 아버지에 대한 지식을 알리는 요한적 선교에 다 해당한다.

이 역할들을 통해 아들(로고스)은 자신이 알고 있고 참여하는 아버지와의 관계적 역동성에 자신을 통해 변화를 받은 자들을 초청하고 있는 것이며, 이 과정은 서문에 나타난 로고스와 관계된 사람들에 대한 진술들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아 들-아버지 관계 패턴은 요한복음의 내러티브 전개에 따라 발전하는 이 세 주제를(상호 내주, 요한적 선교, 관계적 역동성) 서문의 로고스 기독론 안에서도 발견하게 하고, 서문을 요한복음 전체와 연결하는 개념적 연결고리로 작동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V. 결론

본 논문은 요한복음의 서문과 관련하여 다양한 학문적 접근들이 이 뤄졌으며 역사적 읽기와 신학적 읽기 사이의 긴장, 혹은 다양한 유대 교적, 헬레니즘적 혹은 영지주의적 배경 구도 사이에서 지나치게 파 편화된 해석적 난맥상이 로고스의 해석에 적용됐음을 개관했다. 그리 고 이에 대한 최근에 시도된 대안적 접근인 프라이의 통합적 읽기의 의의와 그 한계에 대해서도 개략적으로 살펴봤다. 그리하여 본 논문 은 최종적으로 요한복음의 서문 읽기, 특별히 로고스 기독론 해석에 대한 대안적 제언으로서 아들-아버지 관계 패턴을 제시했고, 이 패턴 의 의의와 이 패턴의 적용이 서문에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살펴보았 다.이를 통해 우리는 요한복음 해석에 있어 아버지와 아들 간의 관계 성과 그 관계를 매개하는 관계적 지식의 중요성을 환기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하면, 요한에게 있어 하나님을 아는 것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 들인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동일하다. 이는 예수가 하나님을 본 자이 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 자이므로 그를 믿음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1:10; 8:55; 14:7; 16:3).55) 이처럼 요한에게 있어 지식, 참 진리는 빛과 연계된 중요한 신학적 요소인데, 아들-아버지 관계 패턴은 아들과 아버지가 배타적이고 친밀한 관계에 근거하여 이 지식을 교류하고, 계시함을 나타내는 이 관계의 독특성을 상기시켜 줌으로 이런 요한적 주제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는데 도움을 준다. 따라서 이 패턴에 대한 규정은 요한복음 읽기에서 이 복음서의 신학 적 메시지를 하나의 틀로 일관되게 포괄하여 볼 수 있는 대안적인 해 석 제시에 기여한다고 볼 수 있다. 슈넬레의 언급처럼 요한적 생각의 기초는 아버지와 아들 간 본질적 존재, 계시, 사역에서의 아버지와 아들의 연합이며, 따라서 요한 신학 의 핵심은 성육신한 선재적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다.56) 이 로고스는 예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형태의 참된 육신을 입은 인간 이었고57), 요한복음 1:17-18에 등장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오직 예수만 이 하나님으로부터의 계시를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계시자임을 강조하고 있다.58)

 

     55) Schnelle,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666.

     56) Schnelle,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669.

     57) Schnelle,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673.

     58) Schnelle,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674.

 

따라서 본 논문에서 제안한 아들-아버지의 관계 패턴은 요한복음 서문에 나타나는 서언적 진술(programmatic statement)을 포함 해 요한복음 전체의 핵심을 관통하는 주제들을 통합적으로 분석함에 있어 유효한 통찰을 제공하는 틀이며, 해석의 길라잡이로서 효용성 있는 관념적 기준(conceptual criterion)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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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bstract

The Logos Christology in the Johannine Prologue Looking through the Son-Father Relational Pattern

Kim, Ju-Heon (Chongshin University, Adjunct Professor)

The Johannine Prologue is one of the important texts in the interpretation of the Gospel of John in the research history. The most controversial area of debate in the Johannine Prologue is to define the meaning of phrase of “the Word became flesh”(John 1:14). In the Johannine studies, various research regarding the incarnation of the Logos has been conducted under the labeling of ‘Logos Christology.’ In this regard, this article aims to review the wide-range of research history on the logos Christology briefly and highlights a recent academic approach for analyzing of Logos Christology. Based on this, the author proposes a conceptual definition of the ‘Son-Father relationship pattern,’ and examines the possibility of a new and alternative interpretation in the Logos Christology via looking from this pattern, which has not been ad- dressed by the existing proposals. By doing so, the author would like to pres- ent the validity of the Son-Father relationship pattern, which can be connected to Johannine theology as a whole.

 

Keywords Johannine Prologue, Logos, Christology, Son-Father relationship, relational pattern

 

(투고일: 2022. 7.19 최종심사일: 2022. 8.29 게재확정일 2022. 8.30)

신약논단 제29권 제3호. 2022년 가을

‘아들-아버지 관계 패턴’으로 본 요한복음 서문의 로고스 기독론.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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