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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論語)의 시작과 끝- 유가(儒家) 소수파 담론과 장자(莊子)의 계보 - /김시천.상지대

 요약문

20세기 철학사 연구는 한대(漢代)의 문헌 분류 개념인 ‘가’(家)를 서구적 학파(school)와 동일시해 온 경향이 있다.

이와 같은 철학사 이해는 지난 몇십 년간 새로운 문헌이 발굴되고, 개별 텍스트에 대한 연구가 심화되 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였다. 특히 선진 문헌에 대한 텍스트 이론적 연구는 보다 유동적이고 개방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해 주었다.

나는 이 논문 에서 루이스(Mark E. Lewis)가 말하는 ‘텍스트 전통’(textual tradition) 개념을 발전시켜, 저자가 아닌 전사자(轉寫者, transcriber) 혹은 전술자(傳 述者, transmitter)를 중심으로 논어와 장자에 접근하고자 했다.

왜냐 하면 논어를 비롯한 선진 문헌들은 스승 자신의 저술이 아니라 그의 제자들 또는 추종자들에 의해 전사(transcribe)되거나 전술(transmit)되고 엮여진(compile) 텍스트들이기 때문이다.

선진 문헌의 기록자들은 특정 스승의 제자나 추종자들로서, 이들은 글쓰기를 통해 자신들의 이론을 기입하는 근거로 스승을 이용―전통적 표현으로 가탁(假託)―하였다.

기록자들은 자신들의 입장과 실천을 스승의 말로 텍스트에 기입함(inscribe)으로써 스승이 남긴 위대한 가르침의 전술자 (transmitter)로 자처함으로써 스승의 권위를 자신들의 권위로 가져오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입장이 달랐던 전술자들의 다양성은 텍스트 내부에 ‘당파적 분열의 증거’(evidence of factional splits)를 남겼다.

장자와 논어는 이러한 내적 분열의 증거를 보여주는 주요 사례다.

장자에 실린 ‘중언’(重言) 중에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 등장하는 부분들과 논어를 비교, 연구하면 장자 텍스트의 성격은 20세기의 철학사 구도와 다른 시각에서 조망할 수 있게 한다.

나는 이 글에서 20세기 철학사적 기술의 도식인 유가와 도가라는 이 분법의 틀로 장자에 접근하지 않고, 장자 철학의 유래와 그 문제의식 을 밝혀내 보고자 한다.

 첫째, 장자에 등장하는 공자와 그의 제자들에 관한 서사들은 논어의 내적 분열과 관계되며, 그 저자들은 ‘덕행파’(德行派) 혹은 ‘안회파’(顔回派)라는 가설을 제안할 것이다.

 둘째, 장자에 등장하는 공자와 그 제자들에 관한 서사는, 논어 소수파(minorité)인 안회파의 소수 문학적 성격의 이야기들로서 재평가될 수 있음을 논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오늘날 우리가 장자 철학 혹은 ‘노장 전통’이라 부르는 사상의 핵심은, 공문(孔門)의 내적 분열의 과정에서 형성된 이른바 ‘소수파-되기’의 흔적으로 해석할 수 있음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와 같은 논의들은, 우리로 하여금 장자가 유가와 도가 등의 학파와 갖는 관계는 물론 그 사상적 유래와 후대의 ‘노장 전통’에 대해 보다 심화된 연구와 토론을 가능하게 해 줄 것이라 기대한다.

 

주 제 : 동양철학, 중국철학, 유가, 도가, 장자

검색어 : 노장전통, 논어, 장자, 안회, 소수파

 

 

1. 장자와 철학사의 그늘: 유가인가, 도가인가?

이 글에서 우리가 생각해 볼 논제는 아주 단순한 물음에서 시작 한다. 왜 장자(莊子)는 도가(道家)이면서, 노자(老子)보다 공자(孔子) 를 긍정하는 걸까? 또 장자에는 노담(老聃)에게 면박당하는 공자 이야기도 꽤 나오지만, 공자가 장자의 대변자로 등장하는 것은 어 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런 물음들에 대해 20세기에 이루어진 대답은 장자라는 텍스트를 ‘장주’(莊周)와 분리하고, 그 내부의 여러 갈래를 구분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학자들은 대체로 관봉(關鋒),1) 그 레이엄(Angus C. Graham),2) 유소감(劉笑敢)3) 등의 연구에 따라 ‘내편’(內篇) 7편이 장주 자신의 저술이라면, ‘외편’(外篇)과 ‘잡편’(雜篇)은 그의 후학들의 저술이라 본다.

그런데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장자열전」(莊子列傳)은, “그가 지은 글이 십여만 자인데 대체로 우언(寓言)으로, 「어부」(漁夫), 「도척」(盜跖), 「거협」(胠篋)을 지어 공자를 따르는 무리(孔子之徒)를 비판하고 노자의 술(術)을 밝혔다”4)고 한다.

 

     1) 關鋒, 莊子哲學討論集, 中華書局, 1962.

     2) 앵거스 그레이엄, 장자, 김경희 옮김, 이학사, 2014. 그레이엄은 장자의 내편과 장자학파, 원시주의 계열, 양주 계열, 혼합주의 계열 다섯 부분으로 장자를 나눈다.

     3) 리우 샤오간, 뺷장자철학뺸(개정판), 최진석 옮김, 소나무, 1998. 유소감은 장자의 내편과 술장파(述莊派), 무군파(無君派), 황로파(黃老派) 네 부분으로 나눈다.

     4) 史記, 「莊子列傳」: 故其著書十餘萬言, 大抵率寓言也. 作漁父·盜跖·胠篋, 以 詆訿孔子之徒, 以明老子之術. 

 

이에 따르면 장자는 ‘공자를 따르는 무리’를 비판한 인물인데, 이는 「어부」·「도척」·「거협」 에 근거할 때만 타당하다.

장자 전체로 넓혀 과연 장자가 공자를 비판하고 있는가를 묻는다면, 그 누구도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

게다가 사마천은 「어부」·「도척」·「거협」이 장주의 저술이라 하지만, 그레이엄과 유소감은 장자 후학의 저술로 분류하고 있다.

또, 사마천은 일개 사(士)였던 공자의 전기를 ‘열전’(列傳)이 아닌 ‘세가’(世家)에 배치하여 제후처럼 대접하였고, 장자는 「천도」(天 道) 편과 「천하」(天下) 편에서 공자에게 최상의 명칭인 ‘현성소왕’(玄 聖素王), ‘내성외왕’(內聖外王)이란 헌사를 바치고 있다.5) 게다가 장자에 등장하는 인물로 출현 빈도가 가장 많은 것은 공자이며,6) 노자나 노담과 비교하면 세 배에 가깝다.7)

더 나아가 “안회(顔回)를 비 롯한 공자의 제자(자공, 염구, 자로, 증자 등) 및 이름이 불분명한 제자를 포함하면”8) 놀라울 정도로 유가에 속하는 인물들이 더 많다.

 

      5) 정세근, 노장철학과 현대사상, 예문서원, 2018, 182-3쪽.

      6) 장자에서 공자(孔子) 또는 중니(仲尼)는 총 44개의 에피소드에 걸쳐 등 장한다. 노자와 비교할 때 거의 3배에 달하며, 이 글에서 다는 이야기들 거의 대부분에 등장한다. 적어도 숫자만으로 보면 장자의 주인공― 저자가 아닌 화자―은 공자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윤무학은 출현빈도를 조 사하여 ‘孔子’가 86차례, ‘仲尼’가 61차례라고 지적했다. 윤무학, 「莊子의 寓話에 반영된 儒家」, 東洋哲學硏究제55집, 한국동양철학연구회, 2008, 332쪽.

      7) 장자에서 등장하는 노자(老子) 또는 노담(老聃) 15회, 노래자(老萊子) 1 회로 총 16개의 에피소드에 등장한다. 윤무학에 따르면 ‘老子’가 22차례, ‘老聃’이 32차례로 공자에 비해 1/3에 해당한다. 윤무학, 같은 글, 같은 곳.

      8) 윤무학, 같은 글, 같은 곳. 

 

따라서 우리는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장자는 정말 공자와 유가 를 비판하는 도가(道家)인 것일까?

20세기 철학사 연구는 한대(漢代)의 문헌 분류 개념인 ‘가’(家)를 서구적 학파(school)와 동일시하고, 각각의 문헌을 특정 학파에 배속한 후에 그 내부의 사상을 정합적으로 파악하여 다른 문헌의 사상과 대비시키는 방식으로 철학사를 구성하였다. 예컨대 공자의 ‘유가’ 가 성립되자 이를 비판하며 ‘묵가’(墨家)가 갈라져 나왔고, 맹자(孟子) 와 순자(荀子)는 공자를 이어 유가를 발전시켰다면 노자를 이은 장자는 유가를 비판한 사상으로 정립된다.9)

이런 도식은 각각의 문헌 내부의 차이와 다양성을 사상시켜 버리는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20세기 이래 새롭게 발굴된 출토 문헌들―주로 목간(木簡)과 죽간 (竹簡) 그리고 일부의 비단책(帛書)―은 고전 중국의 텍스트에 대한 철학사적 접근에 상당한 의심을 품게 한다.10)

오늘날의 인쇄, 제본된 책과 달리 죽간이나 목간 형태의 텍스트들은 하나의 편(篇) 혹은 심지어 하나의 장(章)이 독립적 단위로서 새로운 단위들이 추가되고, 옛 단위들이 제거되거나 순서가 재배열되는 유동성(fluidity)과 개방성(openness)을 특징으로 한다.11)

 

      9) 이런 철학사 구성의 대표가 풍우란(馮友蘭)이다. 그의 영문판 중국철학소사에서 체계화되어 중국의 철학사 전체를 해명하는 이런 도식은, ‘儒家’ (Confucianism), ‘墨家’(Mohism), ‘道家’(Taoism), ‘新道家’(Neo-Taoism), ‘新儒家’(Neo-Confucianism) 그리고 최근의 ‘現代新儒家’(New-Confucianism) 와 같은 용어들을 통해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Fung Yu-Lan, A Short History of Chinese Philosophy―A Systematic Account of Chinese Thought from its Origin to the Present Day, New York: The Macmillan Company, 1948.

     10) 아마도 이와 관련하여 가장 주목할 만한 예 가운데 하나가 노자19장 의 ‘絶仁棄義’에 관한 논란이다.

통행본과 달리 ‘곽점초간’(郭店楚簡) 노자에는 “絶智棄辯, 民利百倍. 絶巧棄利, 盜賊無有. 絶僞棄慮, 民復孝慈.”라고 하여 유가와 도가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논란을 낳았다. 이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다음을 보라. 이승률 지음, 죽간·목간·백서, 중국 고대 간백자료의 세계 1, 서울: 예문서원, 2013, 42-46쪽.

     11) Lewis, Mark Edward, Writing and Authority in Early China,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99, p. 54. (한글본은 최정 섭 옮김, 고대 중국의 글과 권위, 미토, 2006, 121쪽) 

 

이런 시각에서 보면 하나의 제자서는 훨씬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될 수 있다.

나는 이 글에서 어떤 정합적 이론이나 학설을 중심으로 정의되는  배타적 ‘학파’ 개념 대신 루이스(Mark E. Lewis)가 말하는 ‘텍스트 전통’(textual tradition) 즉, “한 사람의 공통의 스승과 그의 텍스트에 대한 충성으로 규정되는” 학파라는 의미를 발전시키고자 한다.

이 때 한 학파의 본질적 요소는 “한 사람의 스승과 그의 추종자들”12)이며, 이 때의 ‘스승’(子)은 텍스트로 구성되며 그의 추종자들은 텍스트를 보호하승하고, 전였던 사람들이다.

이 논문의 주된 관심은 스승이 아닌 추종자와 그들의 글쓰기(writing)에 주목하려는 것이다.

나는 이 추종자들을 전사자(轉寫者, transcriber) 혹은 전술자(傳述者, transmitter)라 부르고자 한다.

논어(論語)는 공자의 저술이 아니라 그의 제자들 또는 추종자들에 의해 전사(transcribe)되거나 전술(transmit)되고 엮여진(compile) 텍스트이다.

논어의 저자는 그의 제자나 추종자들이며, 이들은 글쓰기를 통해 자신들의 이론을 기입하는 근거로 스승을 이용―전통적 표현으로 가탁(假託)―하였다. 저자들은 자신들의 입장과 실천을 스승의 말로 텍스트에 기입함(inscribe)으로써 “위대한 성인 혹은 교사의 지혜의 전술자(transmitter)”13)로 자처하였고, 이를 통해 스승의 권위를 자신들의 권위로 가져왔다. 이들 전술자들의 다양성은 공문 (孔門) 내부의 ‘당파적 분열의 증거’(evidence of factional split s)14)로 논어 내부에 남아 있다.

 

     12) Lewis, Mark Edward, 같은 책, p. 55. (한글본: 같은 책, 121-122쪽)

     13) Lewis, Mark Edward, 같은 책, p. 58. (한글본: 같은 책, 128쪽)

     14) Lewis, Mark Edward, 같은 책, p. 58. (한글본: 같은 책, 128쪽)

 

시간적으로 논어보다 훨씬 후대의 문헌인 장자는 논어보다 더 복잡한 상황을 반영한다.

장자 「우언」(寓言) 편의 말처럼 현대의 해석자들은 장자를 우언(寓言)의 철학자라 부른다.

그런데 실제 장자에는

“우화(fable), 일화(anecdote), 고사(story), 대화(dialogue), 논쟁(debate)의 모음”15)으로서 우언만큼이나 많은 ‘중언’(重言)이 실려 있으며, “이 중언 중에서 공자를 의탁해서 변론한 부분이 장자의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16)

 

우리가 관심을 장자의 ‘중언’에 집중한다면, 장자 텍스트의 성격은 20 세기의 철학사 구도와 다른 시각에서 접근할 수도 있다.

장자의 ‘중언’에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들―상당수가 공자와 그의 제자들 그리고 그 주변인들―이 특히 그러하다.

나는 이 글에서 20세기 철학사적 기술의 도식인 유가와 도가라는 이분법의 틀로 장자에 접근하지 않고, 장자 철학의 유래와 그 문제의식을 밝혀내 보고자 한다.

 첫째, 장자에 등장하는 공자와 그의 제자들에 관한 서사들은 논어의 내적 분열과 관계되며, 그 저자들은 ‘덕행파’(德行派) 혹은 ‘안회파’(顔回派)라는 가설을 제안할 것이다.

 둘째, 장자에 등장하는 공자와 그 제자들에 관한 서사는, 논어 소수파(minorité)17)인 안회파의 소수 문학적 성격의 이야기 들로서 재평가될 수 있음을 논할 것이다.

 

      15) Lewis, Mark Edward, 같은 책, p. 61. (한글본: 같은 책, 134쪽)

     16) 이남영, 「莊子의 孔子觀」, 曙宇 崔載喜博士 還曆紀念論文集, 최재희박사 환력기념논문집발간위원회, 靑林社, 1975, 157쪽. 이 논문에서 이남영은, 감산(憨山) 석덕청(釋德淸)이 장자 「인간세」(人間世) 편에서 주석한 문장 “공자를 重言으로 빌려 말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같은 聖人을 모독하겠는가”(借重孔子之言者, 曷嘗侮聖人哉.)를 인용하면서 장자가 공자 사상 의 연장에서 논의하고 있다. 이는 매우 선구적인 업적으로 기록되어야 할 듯하다.

       17) 이에 대해서는 4절에서 자세히 논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오늘날 우리가 장자 철학 혹은 ‘노장 전통’이라 부르는 사상의 핵심은, 공문(孔門)의 내적 분열의 과정에서 형성된 이른바 ‘소수파-되기’의 흔적으로 해석할 수 있음을 제안하고자 한다. 

 

2. 안회(顏回)의 침묵: 유도(有道)와 무도(無道)

우리가 장자의 ‘중언’에 주목할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 은 등장인물의 다양성이다.

장자에 등장하는 인물 유형들은 크게 다섯 가지 계열로 구분할 수 있다.

황제(黃帝)를 포함하는 요순(堯 舜)-허유(許由) 계열, 제후(諸侯)-제자(諸子) 계열, 장자(莊子)-혜시(惠施) 계열, 노담(老聃)-중니(仲尼) 계열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자(孔子)- 제자(弟子) 계열이다.18)

이 다섯가지 계열 가운데 가장 의미 있는 것은 바로 ‘공자-제자 계열’이다.

왜냐하면 이들의 출현은 논어와 상당히 흡사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전체 10권(卷) 20편(篇) 512개의 장(章)으로 구성된 통행본 뺷논어뺸 는, 그 전형인 ‘자왈’(子曰) 혹은 ‘공자왈’(孔子曰)로 시작되는 230개 의 장과 대화 혹은 교수(敎授) 장면으로 구성된 282개의 장으로 구 성된다. 뺷논어뺸의 대화 혹은 교수 장면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 는 것은 제자들과의 것이다. 대화 혹은 교수 장면에 출연하는 제자 가운데 이 글과 관련된 인물들의 출현 빈도를 보면 자로(子路) 41 회, 자공(子貢) 38회, 안회(顔回) 21회, 자장(子張) 20회, 자하(子夏) 20회, 염구(冉求) 16회, 증삼(曾參) 14회, 민자건(閔子騫) 5회, 원헌 (原憲) 2회 등의 순으로 나타난다.19)

 

     18) 장자에 등장하는 ‘중언’을 중심으로 인물별 계열로 구분하는 것은 뺷장 자뺸 읽기에 새로운 시각을 줄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적어도 텍스 트의 전승, 스승과 추종자들로 하나의 ‘파’(派)를 재구성한다면 등장 인물 에 주목하는 것은 매우 유용하다. 이 글에서 앞의 다섯 가지 계열 구분 은 잠정적인 것으로 놓고, 논의에 필요한 만큼만 언급할 것이다.

    19) 그 외에 논어에 등장하는 공자의 제자로는 자유(子游, 8회), 중궁(仲弓, 7회), 번지(樊遲, 6회), 공서화(公西華, 5회), 민자건(閔子騫, 5회), 재아(宰 我, 5회), 유약(有若, 4회), 자금(子禽, 3회), 자고(子羔, 2회), 염경(冉耕, 2회), 남용(南容, 2회) 등이 있고 기타 1회씩 등장하는 7인이 더 있다.이와 관련된 통계적 논의는 다음을 참조할 것. 김시천, 논어, 학자들의 수다: 사람을 읽다, 더퀘스트, 2016, 33-40쪽. 16 김시천

 

<표 1> 공자-제자 계열 등장 인물의 논어와 장자 출현 빈도 비교

제자(弟子)      論語 출연 횟수        莊子 출연 횟수와 편명

안회(顔回)      21회                      12회: 「人間世」, 「大宗師」(2), 「天運」, 「達生」, 「山木」, 「田子方」(2), 「知北遊」, 「讓王」(2),

                                                             「至樂」, 「漁父」

증삼(曾參)     14회                        8회 ‘曾史’: 「騈拇」(2), 「胠篋」(2), 「在宥」(3), 「天地」(1),

                                                     3회: 「外物」(曾參), 「寓言」(曾子),  「讓王」 (曾子)

자공(子貢)      38회                      7회: 「大宗師」, 「天地」, 「天運」, 「至樂」, 「讓王」(2), 「漁父」

자로(子路)      41회                      6회: 「天道」, 「秋水」, 「田子方」, 「讓王」, 「漁父」, 「則陽」

자장(子張)     20회                       1회: 「盜跖」

염구(冉求)    16회                        1회: 「知北遊」

민자건(閔子騫) 5회                      1회 ‘閔子’: 「德充符」

원헌(原憲)        2회                      1회: 「讓王」

 

이를 장자와 비교해 보면 주요 인물의 경우 유사한 빈도를 나 타낸다. 안회가 12회로 가장 많고, 증삼이 11회, 자공이 7회, 자로 가 6회 그리고 자장, 염구, 민자건, 원헌이 각 1회씩이다. 이 가운데 사추(史鰌)와 함께 병칭되어 ‘증사’(曾史)로 나오는 8회를 제외하면 실제 증삼의 출현 횟수는 3회이다.

이렇게 보면 논어와 장자의 공자-제자 계열의 중언 서사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공자의 제자들로 는 자로, 자공, 증삼 그리고 안회이다.

이들은 대개 공자가 천하(天下)를 주유하던 14년의 고난의 시간 동안 어려움을 함께 했던 인물 들이기도 하다. 놀랍게도 뺷논어뺸와 뺷장자뺸의 이야기들 상당수는 14 년 유랑 기간의 일들을 기록하고 있다. 뺷논어뺸 「선진」(先進) 편에는 공문사과(孔門四科)의 뛰어난 제자들 의 명단이 나온다.20) 이들이 공문십철(孔門十哲)이며, 공자 사후 7대 제자로 불리는 인물인 유약(有若), 증삼, 자장을 셋을 더하면 십삼현 인(十三賢人)이 된다. 이령의 추정대로 이들을 사과에 배속하여 표로 만들면 다음과 같다.21)

 

<표 2> 논어 공문사과와 십삼현인 인물표

공문사과 (孔門四科)                십철(十哲) 출연횟수 논어/장자                    십삼현인(十三賢人) 출연횟수 논어/장자

덕행(德行)                       안회(顔回) 21/12, 민자건(閔子騫) 5/1,                  유약(有若) 4/0, 증삼(曾參) 14/3                                                                     염백우(冉伯牛) 2/0, 중궁(仲弓) 7/0                                                                                               언어(言語)                         재아(宰我) 5/0, 자공(子貢) 38/7

정사(政事)                        자로(子路) 41/6, 염구(冉求) 16/1                                     자장(子張) 20/1

문학(文學)                            자유(子游) 8/0, 자하(子夏) 20/0

    계                                            10명                                                                         3명

 

    20) 論語「先進」 3: 德行: 顔淵, 閔子騫, 冉伯牛, 仲弓. 言語: 宰我, 子貢. 政事: 冉有, 季路. 文學: 子游, 子夏.

    21) 리링 지음, 뺷논어, 세번 찢다: 계보, 사상, 통념을 모두 해체함뺸, 황종원 옮김, 글항아리, 2011, 165쪽. 

 

그런데 오늘날의 통행본 논어를 놓고 보면 몇 가지 이상한 점이 눈에 띈다.

먼저 논어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사람들은 공자의 고국인 노(魯) 출신이 아니라 타국 출신이 많다는 점이다.

자로와 자공은 위(衛), 자하는 위(魏), 자장은 진(陣), 자유(子游)는 오(吳) 나라 출신이다.

이들은 노 나라 출신 염구와 더불어 모두 벼슬에 나아갔 던 사람들이다. 노 나라 출신으로는 안회, 민자건, 염백우, 중궁으로 서 말년의 제자들인 유약, 증삼과 함께 모두 덕행에 분류할 만한데, 공자가 벼슬을 시킨 중궁을 제외하면 모두 벼슬을 거부했던 사람들 이다. 뺷논어뺸에서 제자들이 출연하는 대화 혹은 교수 장면 전체를 놓고 보면, 뺷논어뺸는 주로 출사(出仕)하여 현실에서 성공했던 인물들이 다 수파를 점한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염구는 계씨에 충성한 이유로 공자에게 파문당했음에도 불구하고22) 뺷논어뺸에 16번 즉 6번째로 많 이 등장한다. 그에 비해 공자의 수제자 혹은 애제자로 알려진 안회 는 총 21번 등장하지만 실제 그가 화자(話者)로 등장하는 것은 단 5 회이다. 총 16회에 걸친 안회에 대한 언급은 공자가 안회를 칭찬하 는 대화에서 등장한다. 아마도 안회가 대화를 나누는 가장 유명한 장면은, 그가 공자에게 인(仁)에 대해 묻자 공자가 ‘극기복례’(克己復禮)로 답하는 장면에서 이다. 안회는 이 대화에서도 “자세히 말해 주세요”, “제가 불민하지 만 그 말씀을 받들겠습니다”와 같이 공손하고 최소한의 말만을 할 뿐이다.23)

 

    22) 論語 「先進」 17: 季氏富於周公, 而求也爲之聚斂而附益之. 子曰: “非吾徒 也. 小子鳴鼓而攻之, 可也.”

    23) 論語 「顏淵」 1: 顔淵問仁. 子曰: “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 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 顔淵曰: “請問其目.” 子曰: “非禮勿視, 非禮勿 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顔淵曰: “回雖不敏, 請事斯語矣.”

 

사실 이러한 특징은 덕행파에 속하는 제자들 거의 모두에 해당한다. 자신의 의지를 피력하거나, 장황하게 질문하거나 뺷시경뺸 (詩經)을 인용하며 끝내 인정받고자 하는 자로, 자공, 자하와는 사뭇 다르다.

논어 「술이」(述而) 11장의 다음 장면은 안회가 대화에 참여할 때 어떤 모습이었는지 상상하기에 적당한 상황을 보여준다.

대화 장면의 분위기를 보여주기 위해 보조적인 설명을 번역에 추가하였다.

선생님이 <자로에게 들으란 듯이> 안연에게 말했다.

 

“<관직에> 써 준다면 나아가 <도를> 행하고, <군주에게서> 버려지더라도 <초야에 묻 혀 도를> 간직할 줄 아는 사람은 아마도 안회 너와 나 뿐일 것이다!” <옆에서 듣고 있던> 자로가 말했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삼군을 이 끄신다면 누구와 함께 하겠습니까?” 선생님이 말했다. “맨손으로 호랑 이를 때려잡으려 하고 맨몸으로 강을 건너려다 죽게 되더라도 후회하 지 않을 사람과는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이윽고 주변의 제자들을 돌아보면서> 나는 반드시 일을 하면서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계획을 세워 성공하려는 사람과 함께 할 것이다.”24)

 

     24) 뺷論語뺸 「述而」 11: 子謂顔淵曰: “用之則行, 舍之則藏, 唯我與爾有是夫!” 子 路曰: “子行三軍, 則誰與?” 子曰: “暴虎馮河, 死而無悔者, 吾不與也. 必也臨 事而懼, 好謀而成者也.” 

 

공자와 자공의 대화에서는 군자(君子)의 풍격, 인의 실천(爲仁), 사 (士)의 사귐이나 관중(管仲)과 같은 롤 모델, 박시제중(博施濟衆)과 같 은 통치자의 의무, 서(恕) 같은 인간 관계의 덕목이 주된 소재로 등 장한다. 이는 자로, 자하와 자장, 염구와 같이 정사(政事), 언어(言 語), 문학(文學)에 속한 제자들과의 대화에서 나타나는 유사한 주제 들이다. 모두 군주를 모시는 가신으로 임용(用)되었을 때 필요한 자세나 소양에 해당한다.

앞의 대화에서 자로는 자신의 용맹함을 통해 출사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드러낸다. 하지만 공자가 안회에게 내비 친 말은 “쓰이지 못해도 진정한 도를 간직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야 한다는 은근한 암시를 주고 있다. 공자는 안회를 끔찍히 아꼈던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에는 안회가 공자 어머니의 집안 즉 외가(外家) 쪽 인척이라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안씨(顔氏)는 무(巫)로써 천인(賤人)에 속했다. 따라서 공자에게서 귀족의 소양인 예(禮)를 철저하게 익힌다 해도 신분상의 한계로 인해 안회는 출사(出仕)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 공자와 자로의 나이 차이는 9살, 안회와는 30살 차이다.

따라서 20살 이상의 차이가 나며 무용이 뛰어난 사인(士人) 자로와 함께 하는 자리의 대 화에서 조용히 침묵하는 안회의 행동은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천형은 덕행파 제자들 공통의 운명이었던 듯하다.

염경은 몹쓸 병에 걸려 죽었고(「옹야」(雍也) 10),25) 중궁 또한 천민 출신이었다(「옹야」 6).

더욱이 뛰어난 효자로 칭찬받았던 민자건은 장애인이었으며, 벼슬에 초빙을 받았으나 이를 거부한 인물이기도 하다.

노나라의 실세 계씨가 민자건을 비(費)의 재(宰)로 삼고자 하자, 그 사신에게

 

“당신이 나를 대신해 거절한다는 뜻을 잘 전해주십시오. 만약 다시 나를 부르는 일이 있다면 <국경 너머> 문강의 북쪽, <제나라로> 떠나버릴 것입니다.”26)라고 말한다.

 

그에 비해 논어에서 공자 다음의 주인공들이라 할 수 있는 자로, 자공, 염구등은 모두 계씨(季氏)의 가신을 지냈다.

공자는 여러 차례에 걸쳐 “천하에 도가 있으면 세상에 나오고, 도가 없으면 숨는 법이다. 나라에 도가 있는데도 가난하고 또 천하다면 부끄러운 일이고, 나라에 도가 없는 데도 부귀를 누린다면 부끄러운 일”27)이라 강조했지만, 이들의 관심은 출사하여 공을 세우는 것이었다.

 

    25) 論語 「雍也」 10: 伯牛有疾, 子問之, 自牖執其手, 曰: “亡之, 命矣夫! 斯 人也而有斯疾也! 斯人也而有斯疾也!”

    26) 論語 「雍也」 9: 季氏使閔子騫爲費宰. 閔子騫曰: “善爲我辭焉. 如有復我者, 則吾必在汶上矣.”

    27) 論語「泰伯」 13: 天下有道則見, 無道則隱. 邦有道, 貧且賤焉, 恥也; 邦無 道, 富且貴焉, 恥也. 

 

아마도 자로의 마음을 울렸던 공자의 말은, 은둔자 장저(長沮)와 걸익(桀溺) 을 만났을 때 했던 말이었을 것이다.

 

<사람이> 새나 짐승과 함께 무리를 이루어 살 수는 없는 법이다. 내가 <여기 나를 따르는> 이 사람들과 함께 하지 않고 누구와 함께 한다는 말인가? 세상에 도(道)가 있다면 내가 <세상을> 바꾸려 하는 일에 관여치 않았을 것이다.”28)

 

     28) 論語「微子」 6: 夫子憮然曰: “鳥獸不可與同群, 吾非斯人之徒與而誰與? 天下有道, 丘不與易也.” 

 

그렇다면 개성과 욕망이 달랐던 다양한 공자의 제자들이 뺷논어뺸 라는 텍스트 하나의 울타리 안에서 공존한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 할 것인가? 사실 이것은 설명하기 어려운 점이기도 하지만, 뺷논어뺸 의 기록이 바로 공문십철로 대표되는 그의 제자들에게서 비롯된 것 이 아니라 그들의 추종자들인 전사자 혹은 전술자로부터 비롯된 것 이라 한다면, 보다 쉽게 설명될 수 있지 않을까? 뺷논어뺸는 단지 공 자라는 스승 한 사람에게 바쳐진 텍스트가 아니라, 그의 제자들의 제자들이 함께 참여한 여러 텍스트들의 모음이었던 것은 아닐까?

논어 전체를 통해 21번이나 언급되는 안회를 비롯, 같은 덕행파 제자들의 특징은 한 마디로 ‘침묵’이었고 또한 불사(不仕)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뺷장자뺸에 등장하는 원헌과 증삼도 포함된다. 이 들은 뺷논어뺸의 주인공이라기보다 주변인에 가까웠다. 달리 말해 뺷논 어뺸에 등장하는 수많은 제자들은 덕행, 언어, 정사, 문학으로 구분할 수도 있지만 더 중요하게는 천하가 유도(有道)한가 무도(無道)한가, 무도한 세상에서 도의 추구자의 진퇴(進退)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둘 러싼 두 입장으로 공문 내부의 ‘당파적 분열’로 읽을 수도 있다.

일찍이 곽말약(郭沫若)은 한비자(韓非子) 「현학」(顯學) 편에서 “공자가 죽은 이래 자장, 자사(子思), 안씨(顔氏), 맹씨(孟氏), 칠조씨 (漆雕氏), 중량씨(仲良氏), 손씨(孫氏), 악정씨(樂正氏)의 유(儒)로 나뉘 었다.”29)는 기록에 주목하였고, 장자에 등장하는 다양한 안회의 이야기에 대해 “‘안씨(顔氏)의 유가’의 전습록을 장자가 ‘중언’(重言) 으로 만들어 채용한 것”30)이라 보았다.

더 나아가 장자 스스로가 ‘안씨의 유가’이며, 장자 「설검」(說劍) 편에서 장자가 조(趙) 나라 왕을 만날 때 유복(儒服)을 입었다는 묘사를 바탕으로 그 또한 유자 (儒者)였다고 주장한다.31)

 

    29) 韓非子 「顯學」: 自孔子之死也, 有子張之儒, 有子思之儒, 有顔氏之儒, 有孟 氏之儒, 有漆雕氏之儒, 有仲良氏之儒, 有孫氏之儒, 有樂正氏之儒.

    30) 郭沫若, 중국고대사상사(원제: 十批判書), 조성을 옮김, 까치, 1991, 167쪽.

    31) 郭沫若, 같은 책, 222쪽 230쪽 참조.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논어와 장자는 공자-제자들의 이야기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공자를 중심으로 보면 논어는 공자의 제자들 모두의 공통의 이야기에 대한 기록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제자들 사이의 내적 갈등 혹은 도(道)의 분기를 보여준다.

왜냐하면 공자의 사후 그의 제자들의 추종자들은 공통의 스승인 공자의 권위는 인정했지만, 동시에 자신의 스승에게도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그 권위를 자신에게 부여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타국 출신이지만 가장 많은 일화를 남긴 자로와 자공, 스승에게만 붙이던 ‘자’(子)로 불렸던 염자(冉子), 유자(有子), 증자(曾子) 등의 존칭은 논어속에 이들을 통해 스스로의 권위를 세우고자 했던 3세대 추종자들의 욕망과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다른 한편 안회로 대표되는 이른바 ‘덕행파’에 속하는 인물들은 대체로 노나라 출신이었음에도 주류에 속하지 못했고, 그들 나름의 전승의 계보를 창출하기 시작했을지 모른다.

어쩌면 논어의 시작은 공자에게 있지만, 그 끝은 안회를 통해 장자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3. 진(陣)과 채(蔡) 사이에서: ‘치’(治)에서 ‘유’(遊)로

그렇다면 장자의 공자-제자 계열 중언들을 안회파 혹은 덕행파 라고 볼 수 있는 내적 증거는 무엇일까? 우리가 이미 앞서 보았던, <표 1> 공자-제자 계열 등장 인물의 뺷논어뺸와 뺷장자뺸 출현 빈도 비 교는 가장 기본적인 증거가 된다. 공자의 제자 가운데 안회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물론, 뺷논어뺸에서는 침묵하던 그가 뺷장자뺸에서 는 적극적 화자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총 12가지 이야기 속 에서 우리는 안회가 어떤 과정을 거쳐 삶의 태도가 바뀌며 이른바 ‘장자화’(莊子化)32) 되어 가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전자방」(田子方)에서 안회는 스승 공자를 닮고자 하는 처절한 노 력을 했으나 도저히 미치지 못하는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공자 에게 아무런 벼슬이나 명예가 없음에도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드는 이유를 궁금했던 것이다. 해 한다. 「인간세」(人間世)에서는 못된 위 (衛) 나라 군주를 교화시키고자 떠나려는 안회를 말리며 공자가 안회 에서 ‘마음의 재계’(心齋)에 관한 가르침을 전수하는 이야기나 나오 고, 「추수」(秋水)에서는 제(齊) 나라 군주에게 유세하러 가자 공자는 안회가 혹 죽지나 않을까 자공에게 걱정하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들 은 안회 또한 자로나 자공처럼 천하를 다스리는 일에 관심이 있었음 을 보여준다. 또 다른 이야기들은 안회가 공자와 세상을 여행하며 스스로 도 32) 여기서 ‘장자화’란 두 차원에서 의미를 갖는다. 한편으로는 뺷논어뺸에 기 록된 안회의 인격이 뺷장자뺸 사상에서 기대할 수 있는 그런 인격의 인물 로 변화한다는 뜻이며,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뺷논어뺸에서 안회로 표상 되는 삶의 이상이 뺷장자뺸에서 장주의 사상으로 표상되는 삶의 이상으로 체현된다는 것을 함축한다. 나는 이 점을 다음 절에서 ‘소수파-되기’라고 해석할 것이다. 23 뺷논어(論語)뺸의 시작과 끝 (道)를 깨우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대종사」(大宗師)에서는 맹손 재(孟孫才)의 기인한 상례(喪禮)를 의심하던 안회는 공자의 가르침을 통해 예악(禮樂), 인의(仁義)를 잊고 크게 통하는 좌망(坐忘)의 경지에 도달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특히 목숨마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거 문고를 뜯으며 아무런 흔들림 없는 공자의 모습은 안회가 추구하는 삶의 궁극적 경지를 드러낸 모델로 각인된 듯하다. 이 장면은 안회는 물론 이른파 덕행파 인물들이 추구하는 삶의 전형으로 완성되는데, 재미있게도 「양왕」(讓王) 편에서는 원헌, 증자, 안회가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삶의 이야기가 나란히 나온다. 그 가 운데 안회의 일화는 다음과 같다. 공자가 안회에게 말했다. “안회야! 집안이 가난하고 지위도 낮은데 어찌 벼슬을 하지 않느냐?” 안회가 대답했다. “벼슬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게는 성곽 밖에 밭 오십 묘가 있어 죽을 공급하고, 성곽 안에 밭 십 묘가 있어 무명과 삼을 공급하기에 충분합니다. 거문고를 연주하면 스스로 즐거워하기에 충분하고, 또 선생님께 배운 도는 스스로 즐겁게 살아가기에 충분합니 다. 그래서 저는 벼슬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공자는 수심에 잠겨서 얼굴빛을 바꾸며 말했다. “훌륭하다, 안회 자 네의 뜻이! 내가 듣건대 만족할 줄 알면 이득에 스스로 묶이지 않고, 스스로 얻음을 깨달으면 얻음을 잃어도 두렵지 않고, 마음에 수행이 이루어지면 지위가 없어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이런 점 을 마음에 새겨둔 지 오래이지만 지금 자네에게서 이게 뒤늦게 실행되 고 있음을 본다. 이것이 나의 수확이다.”33)

 

    33) 莊子 「讓王」: 孔子謂顔回曰: “回, 來! 家貧居卑, 胡不仕乎?” 顔回對曰: “不願仕. 回有郭外之田五十畝, 足以給飦粥; 郭內之田十畝, 足以爲絲麻; 鼓琴 足以自娛, 所學夫子之道者足以自樂也. 回不願仕.” 孔子愀然變容曰: “善哉回 之意! 丘聞之, ‘知足者不以利自累也, 審自得者失之而不懼, 行修於內者無位而 不怍.’ 丘誦之久矣, 今於回而後見之, 是丘之得也.”(번역은 김정탁, 장자:  역주편,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19, 877쪽)

 

이 대화 내용은 공자 문하의 안회파 제자들이 추구했던 도(道)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첫째는 무도한 세상에서 도의 진정한 체득자라는 증거는 바로 가난(貧)이다. 둘째는 불사(不仕)로서 종속된 삶의 거부이다. 셋째는 강호(江湖)의 즐거움(樂), 즉 삶의 향유(遊)이 다. 이런 삶과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뺷논어뺸의 다수파에 해당하는 자로, 자공, 염구와 같은 인물들의 눈에서 보면 실패한 인생이었을 수 있다. 그래서 안회파가 보여주는 삶과 가치는 일종의 ‘소수파-되 기’라 할 수 있고, 따라서 이를 더 밀고 나아간 뺷장자뺸는 들뢰즈가 말하는, 일종의 소수 문학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우리가 앞서 ‘당파적 분열’이라 불렀던 갈등은 어디에서 확인할 수 있을까? 그 갈등은 오랜 유랑 길에서 만난 위기 상황에 대한 묘사에서 극적으로 등장한다. 뺷논어뺸와 뺷장자뺸에는 공자와 그 제자들이 유랑 중에 겪었던 심각한 위기에 대한 기록을 공통으로 남 기고 있다. 또한 이 사건은 너무도 유명하여 제자서 대다수에 기록 된 일이기도 하다. 그것은 바로 진채지간(陳蔡之間)에서 일어난 일이 었다. 뺷논어뺸는 그 사건을 이렇게 기록한다. 진(陳) 나라에서 양식이 떨어지자 따르는 자들이 병이 나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자로가 화가 나서 뵙고 말했다. “군자도 곤궁에 처할 때 가 있습니까?” 선생님이 말했다. “군자는 곤궁이 닥치면 그것을 견디 고, 소인은 곤궁이 닥치면 곧 제멋대로 날뛴다.”34)

 

    34) 論語 「衛靈公」 2: 在陳絶糧, 從者病, 莫能興. 子路慍見曰: “君子亦有窮 乎?” 子曰: “君子固窮, 小人窮斯濫矣.”

 

기원전 489년, 공자 일행은 초(楚) 나라로 향하던 중 진 나라 땅 에서 7일 간이나 고립되어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위기에 처한다. 

논어는 위기 상황에서 자로가 몹시 화를 냈다는 것만을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장자는 이 상황을 보다 극적으로 묘사한다. 공자 일행이 진 나라와 채 나라 사이에서 궁지에 몰려 제대로 먹지 못해 얼굴이 말이 아니었는데도 공자는 오히려 거문고를 연주하며 노래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 상황에서 자로와 자공이 보인 태도였다. 장자는 그 일을 이렇게 묘사한다.

 

안회(顏回)가 밖에서 나물을 뜯는데 자로(子路)와 자공(子貢)이 서로 대화를 나누며 말했다. “우리 선생은 노나라에서 두 번 추방되었고, 위 나라에선 종적을 감추었고, 송 나라에선 나무에 깔릴 뻔했고, 상 나라와 주 나라에선 궁지에 몰렸고, 이제는 진 나라와 채 나라 사이에 서 포위당했다. 그러니 우리 선생을 죽여도 죄가 되지 않고, 선생을 업신여겨도 이를 금하는 사람이 없어졌다. 그런데도 현을 뜯으며 노래 하고, 거문고를 타며 음악을 그치지 않으니 군자가 이처럼 부끄러움을 몰라도 되는가?” 안회는 대꾸도 하지 않고 방에 들어가서 이 사실을 공자에게 아뢰 었다. 공자는 거문고를 옆으로 밀어놓고 탄식하며 한탄스러운 듯이 말 했다. “자로와 자공은 비천한 인간(細人)이다. 불러와라. 내가 그들에게 말하겠다.”35)

 

이 사건에 대한 묘사는 제자서(諸子書)마다 초점이 각양각색이다.

묵자(墨子)36)는 식량과 옷을 구해온 제자들에게, 어디서 구했는지 묻지도 않고 먹고 입는 공자의 이중성을 비난하는 데에 중점을 둔다.

 

    35) 莊子 「讓王」: 孔子窮於陳蔡之間, 七日不火食, 藜羹不糝, 顔色甚憊, 而弦歌 於室. 顔回擇菜, 子路子貢相與言曰: “夫子再逐於魯, 削迹於衛, 伐樹於宋, 窮 於商周, 圍於陳蔡, 殺夫子者無罪, 藉夫子者無禁. 弦歌鼓琴, 未嘗絶音, 君子之 無恥也若此乎?” 顔回無以應, 入告孔子. 孔子推琴喟然而歎曰: “由與賜, 細人 也. 召而來, 吾語之.”(번역은 김정탁, 앞의 책, 881쪽)   

    36) 墨子 「非儒下」 참조.

 

 이와 달리 뺷맹자뺸(孟子)37)와 뺷순자뺸(荀子)38)는 공자 일행이 왜 이런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데에 중점을 둔다.

 

     37) 孟子 「盡心下」 참조.

     38) 荀子 「宥坐」 참조. 

 

하지만 뺷장자뺸의 묘사는, 자로와 자공이 어떻게 행동했는가를 묘사 하는 데에 큰 비중을 둔다. 심지어 공자의 입을 빌어 자로와 자공이 ‘세인’(細人)이라 비난하기까지 한다. 진 나라와 채 나라 사이에서 일어난 이 위기에 대해 자로와 자공 은 공자의 위기이자 그가 추구하던 삶의 무력함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한다. 바로 그것이 뺷논어뺸와 뺷장자뺸 모두에서 화난 자로가 말했 던 ‘궁’(窮)이다. 이는 뺷논어뺸의 기록과 일치한다. 하지만 이어지는 이야기는 공자의 가르침을 통해 자로와 자공까지 즐김(樂)의 삶의 궁 극적 가치를 깨닫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자로와 자공이 들어와서 자로가 말했다. “이런 지경이라면 궁지에 몰렸다고 말할 수 있지 않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군자는 도에 통하면 통한다고 말하고, 도에 궁하면 궁한다고 말한다. 어지러운 세상의 환란을 만났 으니 이게 어찌 궁한 거냐! 안으로 살펴보아도 도에 궁함이 없어야 하 고, 어려움을 당해도 덕(德)을 잃지 말아야 한다. 큰 추위가 닥치고, 서리와 눈이 내려야 나는 송백지무(松柏之茂) 즉 소나무와 잣나무의 무 성한 푸름을 안다. 진 나라와 채 나라 사이에서 생긴 이번의 포위는 나에겐 오히려 다행이다!” 그런 뒤 공자는 거문고를 다시 가져다가 차분히 줄을 뜯고 노래하 자 자로는 벌떡 일어나서 방패를 들고 춤을 췄다. 자공이 감격하며 말 했다. “나는 하늘이 얼마나 높은지, 땅이 얼마나 낮은지 알지 못했다.” 옛날에 도를 터득한 사람은 궁함도 즐기고, 통함도 즐겼기에 정말 로 즐긴 건 궁함과 통함 그 자체가 아니다. 도덕이 여기에 있다면 궁함과 통함은 추위와 더위, 또 바람과 비가 번갈아 오는 것처럼 하나의 순서일 뿐이다. 때문에 허유(許由)는 영수 북쪽(潁陽)에 숨어서 즐거웠 고, 공백(共伯)은 공수간에 숨어서 뜻을 얻었다.39) 바로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뺷논어뺸의 ‘내적 분열’이 어떻게 뺷 장자뺸에서 장자화 되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왜냐하면 뺷장자뺸에 등장 하는 자로와 자공은 ‘강호’(江湖)의 세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인 물들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대종사」(大宗師)에서 자공은 자상호(子桑 戶), 맹자반(孟子反), 자금장(子琴張)이라 세 친구의 기이한 삶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천지」(天地)에서는 혼돈씨(混沌氏)의 도술을 익힌 노인에게 두레박을 권했다가 ‘기심’(機心)에 가려 정신을 못차린다고 혼나기도 한다. 자로는 공자와 여행하며 수많은 강호의 스승들을 만나지만 서로 통하지 못하고, 또 「천도」(天地)에서는 공자에게 주(周)의 노담(老聃) 에게 책을 소장케 하자고 권하며 함께 하지만 노담에게 면박당하기 도 한다. 즉 뺷논어뺸에서 주류이자 다수파였던 자로와 자공은 뺷장자뺸 에서는 주변인 혹은 비판의 대상이 된다. 특히 「양왕」 편에는 가난 했지만 천자(天子)조차 신하 삼을 수 없었던 증자(曾子) 이야기40)

 

      39) 莊子「讓王」: 子路子貢入. 子路曰: “如此者可謂窮矣!” 孔子曰: “是何言也! 君子通於道之謂通, 窮於道之謂窮. 今丘抱仁義之道以遭亂世之患, 其何窮之爲! 故內省而不窮於道, 臨難而不失其德, 天寒旣至, 霜雪旣降, 吾是以知松柏之茂 也. 陳蔡之隘, 於丘其幸乎!” 孔子削然反琴而弦歌, 子路扢然執干而舞. 子貢曰: “吾不知天之高也, 地之下也.” 古之得道者, 窮亦樂, 通亦樂. 所樂非窮通也, 道 德於此, 則窮通爲寒暑風雨之序矣. 故許由娛於潁陽而共伯得乎共首.(번역은 김 정탁, 앞의 책, 881-2쪽)

     40) 莊子 「讓王」: 天子不得臣, 諸侯不得友. 

 

바 로 앞에, 원헌에게 망신 당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공자의 제자 원헌(原憲), 즉 자사가 노(魯) 나라에 살 때 집은 사방 한 칸 정도로 작고, 지붕은 자라난 풀로 덮였다. 쑥으로 만든 싸리문 은 온전치 않고, 문지도리를 뽕나무 줄기로 삼았다. 그리고 깨진 항아 리를 박아 그 입으로 창을 낸 두 개의 방이 있었고, 또 창은 칡베로 가리었다. 위에선 비가 새고, 아래 바닥은 축축했는데 원헌은 바르게 앉아 줄(弦)을 뜯으면서 노래했다. 자공은 큰 말이 끄는 수레를 탔는데 그 수레 안은 감색으로 장식하 고, 겉은 흰색으로 만들었다. 이 수레가 원헌의 집 입구 골목을 들어 가지 못해 자공은 걸어서 그를 만났다. 원헌은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갓을 쓰고, 닳아서 뒤축도 없는 신을 신고, 명아주 지팡이를 짚은 채 문에서 마중했다. 자공이 놀라서 말했다. “아아! 선생께선 무슨 병이 있나요?” 원헌이 응해 말했다. “나 원헌이 듣건대 재물이 없는 걸 가난하다고 하지만 도를 배우고도 행하지 못하는걸 병이라고 했소. 지금 나 원헌 은 가난한 게지 병이 든게 아니요.” 자공은 우물쭈물 뒷걸음질치면서 부끄러운 얼굴빛을 띠었다. 원헌이 웃으며 말했다. “세상의 좋은 평판을 바라면서 행동하고, 친하게 어울 리는 사람만 벗하고, 배움은 남에게 뽐내기 위해서 하고, 가르침은 자 기의 이득을 위해서 하고, 인의를 내세워서 간특한 짓을 하고, 또 수 레와 말을 장식하는 것은 원헌으로선 차마 하지 못하는 일이요.”41)

 

     41) 莊子 「讓王」: 原憲居魯, 環堵之室, 茨以生草; 蓬戶不完, 桑以爲樞; 而甕牖 二室, 褐以爲塞; 上漏下溼, 匡坐而弦. 子貢乘大馬, 中紺而表素, 軒車不容巷, 往見原憲. 原憲華冠縰履, 杖藜而應門. 子貢曰: “嘻! 先生何病?” 原憲應之曰: “憲聞之, 無財謂之貧, 學而不能行謂之病. 今憲, 貧也, 非病也.” 子貢逡巡而有 愧色. 原憲笑曰: “夫希世而行, 比周而友, 學以爲人, 敎以爲己, 仁義之慝, 輿 馬之飾, 憲不忍爲也.”(번역은 김정탁, 앞의 책, 873-4쪽)

 

사실 이 장면은 여러 면에서 뺷논어뺸 「헌문」(憲問) 1에서 원헌과 공자가 부끄러움에 대해 논했던 대화를 떠올리게 한다. 원헌의 물음 에 공자는 “나라에 도가 있을 때 녹봉을 타 먹고 나라에 도가 없는 데도 녹봉을 타 먹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라 하자, 원헌은 “남을 이기려 하는 것, 스스로 뽐내는 것, 남을 원망하는 것, 탐욕 부리는 일 등을 행하지 않는다면 어질다고 할 수 있습니까?” 하고 다시 묻는 다.42) 어쩌면 그것은 자공에 대해 물은 것이 아닐까 싶다. 원헌은 심지어 뺷논어뺸 「옹야」(雍也)에 보이듯, 공자 밑에서 벼슬하면서도 녹 봉을 받지 않으려 했던 인물이다.43)

 

     42) 論語 「憲問」 1: 憲問恥. 子曰: “邦有道, 穀; 邦無道, 穀, 恥也.” “克, 伐, 怨, 欲不行焉, 可以爲仁矣?” 子曰: “可以爲難矣, 仁則吾不知也.”

    43) 論語 「雍也」 5: 原思爲之宰, 與之粟九百, 辭. 子曰: “毋! 以與爾鄰里鄕黨 乎!” 

 

높은 벼슬과 부유함을 뽐내고자 찾아간 자공에게 원헌은 그 위선 을 폭로하며 거칠게 비난한다. 원헌의 삶에 대한 세밀한 묘사는 그 의 가난(貧)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그가 진정으로 도를 품은 인물임을 강조하는 것이며, 그의 가난을 비웃는 자공의 말은 뺷장자뺸 「산목」 (山木)에서 위왕(魏王)이 장자를 조롱했던 것과 같은 서사적 요소에 해당한다. 무도한 세상에서 진정한 선비의 가난, 불사(不仕)의 추구, 즐김(樂)과 누림(遊)의 추구는 안회파 계열의 핵심으로서 민자건, 원 헌, 안회 등이 공동으로 추구하고자 했던 공자의 가르침이며, 뺷장자 뺸의 공자-제자 계열 이야기들은 안회파 혹은 덕행파의 텍스트적 실 천이라 보기에 충분한 듯하다.

 

4. 장자와 유가 소수파 담론의 계보학

이렇게 보면 뺷장자뺸의 공자-제자 계열의 중언은, 뺷논어뺸 내부의 당파적 분열을 보여주는 텍스트로서 유가 소수파 담론에 해당한다. 이 때 ‘소수파’라는 용어는 보통 소수자로 더 많이 번역되는데, 본래 들뢰즈(Gilles Deleuze)와 가타리(Félix Guattari)가 카프카 문학비평서인 뺷카프카―소수적인 문학을 위하여뺸(1975)에서 처음 쓴 ‘미 노리테’(minorité)의 번역어로서, 그 후 뺷천 개의 고원뺸(1980)에서 다시 사용하면서 유명해진 개념이다. 하지만 나는 이 글에서 ‘미노리테’ 개념을 김재인의 제안에 따라 소수자보다 ‘소수파’라고 표기해 왔다. 왜냐하면 “보통 소수자라면 사회적 약자, 소외된 사람, 홀대 받는 사람, 불우한 처지에 있는 사 람을 가리킵니다. 물론 이들 역시 어떤 점에서는 소수자입니다. (...) ‘소수자’ 문제는 되기 문제와 긴밀히 연관됩니다.”44) 이렇게 볼 때 흔히 소수자 또는 소수집단처럼 쓰이는 사회학적 개념과 들뢰즈의 소수파 개념은 공통된 의미뿐만 아니라 차이점도 있기 때문이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소수적’(mineure)이라는 말은 어떤 문학을 특징짓는 것이라기보다는, 거대한(혹은 기성의) 문학이라고 불리는 것 안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문학의 혁명적 조건을 뜻하는 것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45)이라 했다.

 

      44) 김재인, 혁명의 거리에서 들뢰즈를 읽자: 들뢰즈 철학 입문, 느티나무 책방, 2016, 76쪽.

      45)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카프카―소수적인 문학을 위하여, 이진경 옮 김, 동문선, 2001, 48쪽 

 

앞의 논의에서 조금씩 암시했지만 나 는 뺷논어뺸 소수파 혹은 안회파의 텍스트적 실천과 새로운 삶의 양식 의 창조라는 일종의 ‘소수파 생성’의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 소수파 혹은 소수 문학이라는 용어를 종종 사용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천 개의 고원: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 2에서 ‘소수파’에 대해 다음 과 같이 서술한다.

 

“다수”와 “소수”는 두 개의 언어가 아니라 언어의 두 가지 사용 또 는 두 가지 기능을 규정하는 방식이다. (...) 오스트리아 제국에서 체코 어는 독일어에 비하면 당연히 소수어이다. 하지만 프라하의 빈이나 베 를린의 독일어에 비하면 이미 잠재적 소수어이다. 독일어로 글을 썼던  체코의 유대인 카프카는 독일어를 소수어로 창조했다. (...) 소수어는 다수어 그 자체가 소수어가 되도록 다수어를 투자하는 것이다. (...) 이 것이 소수파라 불리는 작가들의 힘이며, 이들이야말로 가장 위대하고 유일하게 위대한 작가들이다. (...) 소수파는 그가 모델로부터 일탈하는 한에서 모든 사람되기이며 모든 사람의 잠재적 역량을 갖게 되기 (devenir potentiel)이기 때문이다. (...) 다수파 되기란 없다. 다수파 는 결코 생성이 아니다. 생성에는 오직 소수파 되기만이 있다.46)

 

여기서 소수어, 소수파, 소수문학이란 본래 들뢰즈와 가타리가 유 대계 체코인 작가 카프카와 그의 문학을 설명하던 표현이다. 독일인 이 아닌 체코인으로서 독일어 교육을 받은 유대인이기에 카프카의 글쓰기 현실은 이중 삼중의 불가능성에 봉착한다. 이런 불가능성들 은 그의 글쓰기에 소수문학의 특성을 갖게 하는데, 그 특성들로 인 해 언어는 탈영토화되고, 모든 것이 정치적이 되며, 그리고 모든 것 이 집합적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특성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논의했던 안회파의 텍스트 실천 혹은 글쓰기에도 적용될 수 있다. 중앙집권화된 국가가 발전하던 역 사적 상황에서 부국강병(富國强兵)의 전략에 참여함으로써 천하를 지 배하는 일에 골몰하였던 현실에서, 뺷논어뺸의 다수파는 이에 적극 동 조하였던 인물들이다. 하지만 안회파 인물들의 이야기들은 이를 끊 임없이 탈영토화한다. 출사(出仕) 대신 불사(不仕)를 추구하고 부귀 (富貴) 대신 가난을 선택하고, 나아가 천하(天下)라는 권력 지배 질서 의 바깥으로 끊임없이 탈주를 권하기 때문이다. 이 탈주의 공간에서 새로운 세계상이자 인간 관계를 은유하는 ‘강호’(江湖)의 세계가 출 현한다.47)

 

        46)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뺷천 개의 고원: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 2뺸, 김재인 옮김, 새물결, 1996. 202-4쪽.

        47) ‘강호’ 개념의 의미와 맥락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조할 것. 김시천,  「‘천하’(天下)에서 ‘강호’(江湖)로―장자에서 ‘강호’의 발견과 ‘사회’의 상상」, 사회사상과문화제22권 3호, 동양사회사상학회, 2019. 

 

또한 안회를 비롯한 이들의 사상과 실천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텍스트들이 보여주는 것은, 모든 것이 정치적이 될 수밖에 없 다. 천민 출신이었던 안회, 장애인이었던 민자건 등 안회파 인물들 에게 출사(出仕)는 자로와 자공처럼 신분적으로 주어진 특권이 아니 라 그 자체로 현실의 부정과 변혁을 동반하는 정치적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는 그들의 속한 신분 집단 전체의 문제가 되기 에 정치적인 문제인 동시에 집단적이 된다.48)

 

        48) 이 부분의 논의는 다음 논문의 설명을 참조하여 서술한 것이다. 김명주, 「질 들뢰즈의 “소수자” 개념의 현대 철학적 의미―‘비인격적 주체성’과 관련하여」, 西江人文論叢제49집,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7, 191쪽.

 

20세기에 주로 ‘노장’(老莊)이라 불렸던 전통은 사실 노자와 장자 라는 두 사상가의 철학을 아우르는 것이 아니라, 공자의 문하에서 형성된 다수파에 대해 반기를 들며 끊임없이 소수파-되기를 실천했 던 일군의 텍스트 전승자들의 흔적이자 문학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들이 보여주었던 권력과 권위에 대한 도전과 소박한 인간의 삶에 대한 추구는 이른바 문인(文人) 사회에서 ‘노장 전통’으 로 자리잡았다고 보는 것은 소설 같은 이야기일까? 지난 20세기 철학사 연구는 한대(漢代)의 문헌 분류 개념인 ‘가’ (家)를 서구의 학파(school)와 동일시하며 철학사를 서술해 왔다. 하 지만 1970년대 이래 새로운 출토 문헌의 등장, 텍스트 이론에 의한 연구 등은 보다 유동적이고 개방적인 철학사 이해를 가능하게 해 주 었다. 나는 이 글에서 저자가 아닌 전사자 혹은 전술자 개념을 중심 으로 뺷논어뺸와 뺷장자뺸에 접근하여, 새로운 철학사 서술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았다. 왜냐하면 뺷논어뺸를 비롯한 선진 문헌들은 스승 자신 이 아닌 그의 제자 또는 추종자가 전사하거나 전술하고 편집된 텍스트들이기 때문이다. 선진 문헌의 기록자들은 특정 스승의 제자나 추종자로서, 스승에 가탁한 글쓰기를 통해 스승의 권위를 자신들의 권위로 가져와 스스 로의 사상과 철학을 정당화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입장이 달랐던 전술자들의 다양성은 텍스트 내부에 일정한 ‘당파적 분열의 증거’를 남기게 되었는데, 뺷장자뺸와 뺷논어뺸는 이러한 내적 분열의 증거를 보 여주는 주요 사례다. 우리는 그 중에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 등장하 는 뺷장자뺸의 ‘중언’(重言)과 뺷논어뺸를 비교함으로써, 기존과는 다른 시각에서 철학사를 조망해 보았다. 그 결과 뺷장자뺸에 등장하는 공자 와 그의 제자들에 관한 서사들은 뺷논어뺸의 내적 분열과 관계되며, 그 저자들은 ‘덕행파’ 혹은 ‘안회파’라고 추정해 보았다. 또한 뺷장자뺸 에 등장하는 공자와 그 제자들에 관한 서사는, 뺷논어뺸 소수파 (minorité)인 안회파의 소수 문학적 성격의 이야기들로서 재평가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와 같은 논의들은, 우리로 하여금 뺷장자뺸 가 유가와 도가 등의 학파와 갖는 관계는 물론 그 사상적 유래와 후 대의 ‘노장 전통’에 대해 의미있는 함의를 갖는다. 우리는 뺷장자뺸를 유가 소수파의 텍스트적 실천으로 이해할 때, 뺷장자뺸 내부의 다양한 사상과 흐름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 다. 20세기에 이루어진 공자의 유가, 이를 비판한 노자와 장자의 도 가라는 도식적 철학사 서술은 실제 선진(先秦) 시기의 사상과 실천 그리고 그 학파들에 대해 잘못 이해하게 만든다. 오히려 스승과 제 자 그리고 텍스트로 구성되는 학파가 어떻게 텍스트를 생산하고, 변 형하고, 창조해 나아가는가를 밝히는 것이 실제 사상의 흐름을 이해 하는 데 더 중요해 보인다. 뺷논어뺸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결코 끝난 것이 아니라 다시 뺷장자뺸 에서 시작되었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해 뺷논어뺸로부터의 탈주와 재 영토화의 산물이 뺷장자뺸라면, 이렇게 고대 중국의 철학사를 읽는 것 34 김시천 자체가 20세기의 중국적 철학사로부터의 탈주가 되는 것은 아닐까? 나는 그런 탈주의 끝에, 탈영토화의 끝에 K-철학이라는 재영토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것 또한 너무 나아간 이야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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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the Analects to the Zhuangzi - The Zhuangzi and a Genealogy of the Minority Discourse in Confucian Tradition -

Kim, Sicheon

Studies on the history of Chinese philosophy in the 20th century have tended to equate the Han dynasty's literary classification concept of 'jia'(家) with the western ‘school’. Such understanding of the history of Chinese philosophy has reached a new turning point as new texts have been unearthed over the past few decades and research on the individual texts has been deepened. In particular, text-theoretic studies on Pre-Ch’in texts enabled a more fluid and open understanding. In this paper, I develop the concept of 'textual tradition' that Mark E. Lewis refers to, focusing on the transcriber or transmitter, not the author. In particular, I tried to approach the Analects and the Zhuangzi. This is because Pre-Ch’in texts are not the writings of the masters themselves, but texts transcribed, transmitted, and compiled by their disciples or followers. The writers of Pre-Ch’in literature are students or 40 김시천 followers of a specific teacher, who used the teacher as a basis for writing down their theories through writing― ‘jiatuo’(假託), as traditional expressions. Writers tried to bring the master's authority to their authority by inscribed in the text of their positions and practices in the words of the teacher, and by themselves as transmitters of the great teachings left by the teacher. In the process, the diversity of followers with different positions left the ‘evidence of factional splits’ within the text. The Zhuangzi and the Analects are examples of evidence of this internal split. If we comparatively study the parts in which Confucius and his disciples appear in the anecdotes in the Zhuangzi and the Analects, the nature of the Zhuangzi can be viewed from a different perspective from the historiography of the history of Chinese philosophy in the 20th century. In this article, I would like to uncover the origin of the philosophy of Zhuangzi and his followers without approaching the Zhuangzi through the framework of the dichotomy of Confucianism and Daoism, the schemas of philosophical history in the 20th century. First, I will propoes the hypothesis that the narratives about Confucius and his disciples appearing in the Zhuangzi are related to the internal diversity of the Analects, and that the transmitters of the narratives are the followers, the 'Virtuous faction'(德行派) or the 'Yanhui faction'(顔回派). Second, it will be discussed that the narratives about Confucius and his disciples appearing in the Zhuangzi can be reevaluated as the stories of a minority literary character of the Yanhui faction, which is a minority of the Analects. Lastly, I would like to suggest that the core of the ideas that we call the Zhuangzi philosophy or the 'Lao-Zhuang tradition'(老莊傳統) today can be interpreted as a trace of the so-called 'becoming a minority' formed in the process of internal division of Kongzi school. It is expected that such discussions will enable us to further study and discuss the origins of Zhuangzi’s philosophy and the ‘Lao-Zhuang tradition’ later, as well as the relationship of the the Zhuangzi with schools such as Confucianism and Daoism.

Subject Sphere: East-Asian Philosophy, Chinese Philosophy, Confucianiam, Daoism, Zhuangzi

Key Words: Lao-Zhuang Tradition, the Analects, the Zhuangzi, Yanhui, minority

 

 논문투고일 2021년 8월 10일 / 심사일 2021년 8월 23일 / 심사완료일 2021년 9월 14일

 시대와 철학 2021 제32권 3호(통권 96호) 

『논어(論語)』의 시작과 끝 - 유가(儒家) 소수파 담론과 『장자』(莊子)의 계보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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