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교사상(密敎思想)
마성/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1. 밀교성립의 배경
‘밀교(密敎)’는 ‘비밀불교(秘密佛敎)’의 줄임말입니다. 밀교를 서양에서는 보통 Esoteric Buddhism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비공개적으로 전하는 교의[密敎]라는 뜻으로, 공개적인 교의[顯敎]의 반대말입니다. 또한 밀교는 ‘딴뜨라불교(Tāntric Buddhism, Buddhist Tantras)’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외에도 ‘만뜨라야나(mantrayāna, 眞言乘)’, ‘만뜨라나야(mantranaya, 眞言理趣)’, ‘바즈라야나(vajrayāna, 金剛乘)’, ‘사하자야나(sahajayāna, 俱生乘)’, ‘깔라짜끄라야나(kālackrayāna, 時輪乘)’ 등으로도 불립니다. [히라카와 아키라, 『인도불교의 역사(하)』, 이호근 옮김(서울: 민족사, 1991), pp.253-7 참조] 특히 ‘바즈라야나(금강승)’는 딴뜨라(tantras)를 대표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지만, [David J. Kalupahana, A History of Buddhist Philosophy: Continuities and Discontinuities, Delhi: Motilal Banarsidass, 1994), p.217] 그리 오래된 용어는 아니며, 『금강정경(金剛頂經)』 계통의 밀교에서만 사용되는 용어라고 합니다. [松長有慶, 「mantrayāna, mantranaya, vajrayāna」, 『印佛硏』 21-1, 1973년 3월, p.1011 참조; 히라카와 아키라, 앞의 책, p.254 에서 재인용] 이처럼 다양한 용어들은 밀교의 부분적 특성을 강조한 말일뿐, 밀교의 전체를 포괄하는 용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밀교’는 ‘공개적인 교의(Exoteric Buddhism)’의 반대말인 ‘비밀불교’ 전체를 의미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합니다.
밀교는 흔히 인도불교의 최종 단계로 간주되는데, [Kalupahana, op. cit., p.217] 원래의 불교 모습과는 완전히 다르게 보입니다. 왜냐하면 초기경전에서 “붓다의 가르침에는 스승의 주먹[師拳]이 없다”(DN Ⅱ, p.100)고 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스승의 주먹(ācariya-muṭṭhi)’은 비전(秘傳)을 의미하는데, 붓다는 그러한 비전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밀교에서는 정반대로 ‘비밀리에 전하는 것’을 그 특징으로 표방하고 있습니다. 또한 붓다의 깨달음은 주술과는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붓다가 깨달은 법은 지혜에 의한 것이며, 깨달음은 암흑이 아니고 광명으로서, 미신이나 맹목적 신앙과 무관합니다. [히라카와 아키라, 앞의 책, p.258] 이처럼 초기불교와는 전혀 다른 밀교가 서기 6-7세기경에 인도에서 성립되었습니다. 그러면 먼저 밀교의 성립 배경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밀교의 중심교학을 이루고 있는 진언(眞言, mantra) 혹은 다라니(陀羅尼, dhāraṇī)의 연원은 멀리 리그베다(Ṛg-veda)에까지 소급됩니다. [교양교재편찬위원회 편, 『불교학개론』, 서울, 동국대학교 출판부, 1984), p.159] 바라문교의 성전인 베다(veda)에서는 많은 주문들이 나타나는데, 불교에서는 처음에 이러한 것들을 부정하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초기불교에서 ‘깨달음’은 ‘명(明, vijjā, vidyā)’으로 표현되기도 했습니다. 이를테면 “내가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법에 있어 안(眼, cakkhu)․지(智, ñāṇa)․혜(慧, paññā)․명(明, vijjā)․광명(光明, āloka)이 생겼다.” [SN Ⅱ, p.105, "me bhikkave 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ṁ udapādi, ñāṇaṁ udapādi, paññā udapādi, vijjā udapādi, āloko udapādi."; Vin Ⅰ, p.11] 여기서의 ‘명(明, vijjā)’에는 지식이나 과학 등의 의미가 있으며, 또한 ‘주문(呪文)’의 의미도 있습니다. 주문인 경우의 ‘윗자(vijjā)’는 ‘명주(明呪)’로 번역됩니다. [히라카와 아키라, 앞의 책, p.259]그런데 ‘윗자(明)’에는 붓다에 의해 긍정된 명(明)도 있지만 동시에 부정된 명도 있습니다. 이 부정된 명을 ‘도로무익(徒勞無益)의 명(明)’이라고 합니다. 이 ‘도로무익의 명(tiracchāna-vijjā)’에는 ‘축생(畜生)’이라는 의미도 있기 때문에 한역에서는 이것을 ‘축생주(畜生呪)’라고 번역되었습니다. [히라카와 아키라, 위의 책, p.260] 남전의 『범망경(梵網經)』(DN Ⅰ, pp.9ff)이나 『사문과경(沙門果經)』(DN Ⅰ, pp.67ff)에는 갖가지 ‘도로무익의 명’이 밝혀져 있습니다. 붓다는 제자들에게 이러한 도로무익의 명에 의해 생활을 유지해서는 안 된다고 설했습니다.
또한 『율장』의 ‘소사건도(小事犍度)’(Vin Ⅱ, p.139)에는 육군비구(六群比丘)가 도로무익의 명을 배우므로 붓다가 이를 금하도록 했다는 언급이 있습니다. 『사분율』(T22, p.960c)의 해당 부분에는 길흉부서주(吉凶符書呪) 등을 금했다고 설해져 있습니다. 『오분율』(T22, p.174b)에는 미인주(迷人呪) · 기사인주(起死人呪)를 금했다고 설해져 있습니다. 이처럼 비구들이 주문을 배우는 것을 금하고 있지만, 비구의 250계의 조문 중에는 도로무익의 명을 금지한 조문은 없습니다. [히라카와 아키라, 위의 책, p.261] 그러나 「비구니율(比丘尼律)」에는 비구니들이 도로무익의 명을 배운다거나 남에게 가르치는 것을 금하는 조문이 있습니다. 『빨리율』(Vin Ⅳ, p.305)의 비구니 파일제법(波逸提法) 제49조에 육군비구니가 도로무익의 명을 배웠기 때문에 세간에서 비난받았으며, 붓다가 이를 금지시킨 사실이 설해져 있습니다. 또 50조에는 도로무익의 명을 남에게 가르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한역 여러 율에도 이에 해당되는 조문이 있습니다. 『사분율』(T22, p.754a)과 『십송율』(T23, p.337b-c)에는 “갖가지 주술을 금했다.”고 설해져 있습니다. 이처럼 비구니율에는 도로무익의 명을 금지하는 조문이 있습니다. [히라카와 아키라, 위의 책, p.262]
그러나 호신(護身)을 위해 사용하는 주문, 즉 호주(護呪, paritta)는 초기불교 교단에서도 통용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비구니율」에서는 ‘도로무익의 명’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예외가 인정되었던 것입니다. 이를테면 『빨리율』(Vin Ⅳ, p.305)에서 “문자를 배우고 다라나(dhāraṇa)를 배우고 수호(守護)를 위해 호주(paritta)를 배우는 것은 죄가 아니다.”라는 대목이 그것입니다. 『빨리율』의 ‘호주’는 『사분율』(T22, p.754b)에서는 “치복내충병주(治腹內蟲病呪)를 외우고, 치숙식불소주(治宿食不消呪)를 외우며, 글을 배우고, 세속항복외도주(世俗降伏外道呪)를 외우고, 치독주(治毒呪)를 외우는 것은 호신을 위한 것이므로 죄가 아니다.” 또한 『십송율』(T23, p.337b)에서도 “치치주(治齒呪) · 복통주(腹痛呪) · 치독주(治毒呪)를 독송하는 것은 수호안온을 위해서라면 죄가 되지 않는다.” 이처럼 수호를 위한 주문은 인정되었고, 후에는 민간비법과 바라문교의 주법(呪法)을 받아들이거나 이를 모방하여 불교 특유의 진언을 창안해냄으로써 밀교성립의 기반이 조성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양교재편찬위원회 편, 앞의 책, pp.159-160]
한편 밀교는 대승불교에서 발전한 것임은 말할 나위없습니다. [히라카와 아키라, 앞의 책, p.269] 대승경전에 밀교적 요소가 많이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히라카와 아키라, 위의 책, p.270] 첫째는 대승경전이 발전한 쿠샤나왕조 시대의 북인도에 이민족의 주술적인 종교가 유입되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힌두교가 나타나 불교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바라문교는 나중에 원주민이었던 드라비다인들의 종교와 결합하여 힌두교로 변용되었습니다. 그러한 힌두교의 영향을 받아 대승불교에는 힌두교의 신들이 많이 도입되고, 그 신들에 대한 기도나 의식이 정비되었습니다. 이것이 불교의 예술적 성격과 결합하여, 힌두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만다라미술이나 현란한 밀교의례로 발전한 것입니다. [히라카와 아키라, 위의 책, pp.270-271] 다시 말해서 바라문교가 힌두교로 부흥함에 따라 인도의 불교는 점차 힌두화되고, 이러한 힌두교의 영향 아래 7세기 중엽부터 대승불교는 급격히 밀교화하여, 결국 불교의 본래적 성격과는 현저히 다른 ‘비밀불교(tantricism)’가 출현하데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밀교가 성립되었지만, 그 근본적인 동기는 불교 자체의 교학적인 발전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중세의 불교 역사가였던 부통(Bu-ston)은 ‘불교 사상이 소박한 초기 형태에서부터 세련된 체계적 형태에 이르기까지 일직선적으로 발전해 왔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견해는 티베트의 라마들이나 일반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Kalupahana, op. cit., p.218] 실제로 밀교는 중관사상과 유식사상을 동시에 계승 발전시켰으며, 아울러 두 학파의 결함을 보완하여 성립되었습니다. 또한 밀교는 『화엄경』이나 『법화경』의 사상을 계승하고, 『기신론(起信論)』의 진여연기설(眞如緣起說)을 더욱 발전시켰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성립되었기 때문에 밀교의 사상적 특성과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교양교재편찬위원회 편, 앞의 책, p.160] 이와 같이 밀교가 성립하기까지는 교학적으로나 교단사적으로 매우 복합적인 원인과 배경을 갖고 있었습니다. [교양교재편찬위원회 편, 위의 책, p.158]
2. 밀교의 기본교리
밀교는 깨달음의 세계에서 모든 교리와 사상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교리와 사상을 보다 시각적이고 육감적이며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 만다라(曼茶羅, Maṇḍala)입니다. 만다라는 원래 깨달음의 경지를 의미하였으나, 수행의 도량(道場) 또는 부처나 보살을 모신 단(壇)의 뜻으로도 쓰이게 되었습니다. 밀교에서는 깨달음의 세계를 태장계만다라(胎藏界曼茶羅)와 금강계만다라(金剛界曼茶羅)로 체계화시켰습니다.
밀교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은 『대일경(大日經)』과 『금강정경(金剛頂經)』입니다. 태장계만다라는 『대일경』의 사상을, 금강계만다라는 『금강정경』의 사상을 각각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태장계만다라는 중생에게 원래 갖추어 있는 맑고 깨끗한 본성을 나타낸 것으로써, 이법신(理法身) 또는 이만다라(理曼茶羅)라고도 합니다. 한편 금강계만다라는 중생이 아직 깨닫지 못한 무명(無明)의 상태에서 수행을 하여 그 본성인 보리심을 깨달아가는 수행의 공덕을 나타낸 것으로써, 이를 지법신(智法身) 혹은 지만다라(智曼茶羅)라고도 합니다. 이처럼 두 종류의 만다라, 즉 태장계만다라와 금강계만다라 서로 다른 별개의 것이 아니라, 본래 본체(本體)가 서로 같기 때문에 불이(不二)의 관계인 것입니다. [교양교재편찬위원회 편, 위의 책, p.161]
밀교에서는 연기(緣起)의 근원이 되고 우주와 모든 존재를 구성하는 본체(本體)를 육대(六大)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육대(六大)란 지(地)․수(水)․화(火)․풍(風)․공(空)․식(識)을 말합니다. 지(地)는 그 성질이 견고부동하여 만물을 능히 생성(生成)하고 보호하는 덕성과 그 작용을 의미합니다. 수(水)는 그 성질이 습윤(濕潤)하여 만물을 능히 섭수(攝受)하는 작용을 뜻합니다. 또한 화(火)는 그 성질이 따뜻하여 만물을 성숙시키는 작용을 말합니다. 풍(風)은 그 성질의 유동성이 있어 만물을 장양(長養)하는 작용을 가리킵니다. 공(空)은 그 성질이 무애(無碍)하여 일체를 포섭하며 걸림이 없는 작용을 말합니다. 식(識)은 명료하게 아는 요지(了知)의 성질이 있어 결단하고 판단하는 작용을 가리킵니다. [교양교재편찬위원회 편, 위의 책, p.161]
이와 같은 의미를 상징하고 있는 육대(六大)에 있어서 지․수․화․풍․공 등 오대(五大)는 색법(色法)으로서 물질적 근원을 의미하고, 식대(識大)는 심법(心法)으로서 정신적인 본질을 가리킵니다. 뿐만 아니라 색법과 심법의 관계에 있어서 오대를 떠나 식대가 있을 수 없고, 식대를 무시한 오대도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우주의 원리요 인생의 현실입니다. 색법과 심법이 서로 걸림 없는 연기적 관계에 있을 수 있는 원리는 육대가 각기 다른 나머지 오대를 그 자체 안에 갈무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색법(色法, 五大)을 나타낸 태장계만다라와 심법(心法, 識)을 체계화한 금강계만다라도 서로 무관한 관계가 아니요, 서로 무애한 연기적 불이(不二)의 관계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교양교재편찬위원회 편, 위의 책, pp.161-162]
밀교에서는 우주와 인생을 형성하는 본체를 육대(六大)로 파악하고, 그 육대의 연기에 의하여 생성된 모든 존재의 모습(相)을 다시 대만다라(大曼茶羅), 삼마야만다라(三摩耶曼茶羅), 갈마만다라(羯磨曼茶羅), 법만다라(法曼茶羅) 등으로 구분합니다. 이러한 4종 만다라에는 종교적․철학적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교양교재편찬위원회 편, 위의 책, p.162] 이른바 대만다라(mahā-maṇḍala)는 회화 조각 등으로 표현되는 불상(佛像)의 집대성과, 그 각각의 불상 보살상이 갖추고 있는 상호(相好)의 덕성을 말합니다. 삼마야만다라(samaya-maṇḍala)는 관음보살이 연꽃을 가지고 있음은 동체대비(同體大悲)와 물들지 않는 것을 상징하고, 문수보살이 칼(利劍)을 가지고 있음은 큰 지혜로써 범부의 어리석음을 끊는 것을 상징하는 것처럼 모든 불상과 보살상이 가지고 있는 물건과 그 수인(手印) 등의 특성을 삼마야만다라라고 합니다. 갈마만다라(karma-maṇḍala)는 모든 불보살이 중생구제를 위해 행하는 일체의 활동을 의미하고, 법만다라(dharma-maṇḍala)는 모든 불보살의 명칭과 그 가르침의 내용을 말합니다.
4종 만다라는 이와 같은 종교적 의미 외에도, 철저한 현실 긍정의 철학적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대만다라는 육대(六大)로 구성된 우주와 인생의 전체적인 모습을 말하고, 그러한 전체는 개체가 모여서 형성되는데, 이러한 전체를 이루는 개체들의 독립된 모습을 삼마야만다라라고 합니다. 갈마만다라는 일체의 존재와 사물의 활동작용을 말하고, 독립된 개체가 각기 그 특수한 활동작용에 따라 나타내는 언어․문자․음성․명칭 등을 법만다라라고 합니다. [교양교재편찬위원회 편, 위의 책, pp.162-163]
이와 같은 사만실상(四曼實相)의 넓은 철학적 의미에서 보면, 이 우주 중의 모든 존재는 그것이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간에 모두가 사만(四曼)의 모습 아님이 없습니다. 즉 일체의 만상이 다 육대법신(六大法身)의 당체(當體)인 까닭으로 하나의 티끌에서부터 우주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대만다라요, 산천초목과 국토 그것은 모두가 삼마야만다라인 것입니다. 또한 경전에 기록된 일체의 문자를 비롯하여 우리들 인간이 사용하고 있는 모든 언어․명칭․문자와 새소리 바람소리에 이르기까지 법만다라 아님이 없고, 인간들의 일상적 활동작용을 위시하여 자연의 변화에 이르기까지 그것은 모두가 갈마만다라인 것입니다. [교양교재편찬위원회 편, 위의 책, p.163]
우주와 인생의 진리와 참모습이 이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인간은 무지의 구름에 가려서 그러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갖가지의 불행과 악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밀교에서는 육대(六大)의 체(體)와 사만(四曼)의 상(相)에 대한 작용(作用)의 세계를 설명함과 동시에, 중생으로 하여금 그것을 깨닫고 체득케 하기 위하여 그 실천 수행의 방법으로서 삼밀작용(三密作用)을 교설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행위를 신체상의 행위, 언어상의 행위, 정신상의 행위 등으로 구분하고, 이것을 현교(顯敎)에서는 신(身)․구(口)․의(意) 삼업(三業)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밀교에서는 특히 삼밀가지(三密加持) 또는 삼밀상응(三密相應)이라고 합니다. 가지(加持)나 상응(相應)이라는 말은 남으로부터 받은 힘(力)이 나에게 더해져 동화되고, 나의 것이 남에게 더해져 동화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삼밀(三密)에는 불(佛)의 삼밀과 중생(衆生)의 삼밀이 있으며, 중생의 삼밀은 다시 유상삼밀(有相三密)과 무상삼밀(無相三密)의 작용이 있습니다. [교양교재편찬위원회 편, 위의 책, p.163]
불(佛)의 삼밀은 생략하고 중생의 삼밀에 대해 살펴보면, 중생은 지혜가 없고 어리석기 때문에 항시 몸과 입과 뜻으로 악업을 저지릅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몸으로 결인(結印)을 하고, 입으로는 진언(眞言)을 염송하고, 마음으로는 언제나 삼매(三昧)에 들어 본존인 법신불(法身佛)의 덕성을 생각하는 일을 중생삼밀(衆生三密) 중에서 유상삼밀(有相三密)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밀교의 수행자가 삼밀(三密)을 행하는 동안 불(佛)의 덕성과 그 삼밀의 위신력이 수행자의 삼밀상(三密上)에 상응(相應)하고, 유상삼밀을 행하는 수행자의 신심이 부처님의 삼밀과 가지(加持)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신밀(身密)과 중생의 신밀이 가지(加持)하고, 부처님의 어밀(語密)과 중생의 그것이 상응일치하며, 부처님의 의밀(意密)과 중생의 의밀이 서로 감응하여 결국은 범부와 부처님이 서로 깨달음을 계기로 만나게 되고, 중생과 법신(法身)이 일여(一如)하게 됩니다. 이러한 경지를 일러 밀교에서는 가지성불(加持成佛)이라고 합니다. [교양교재편찬위원회 편, 위의 책, p.164]
중생이 삼밀가지의 수행을 닦아 일단 가지성불을 하고 나면, 이제는 별도의 결인(結印)과 특수한 진언(眞言)의 지송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성불의 입장에서는 육대법신(六大法身)과 사만상대(四曼相大)가 깨달은 자의 실체이므로 일체의 행위가 결인 아님이 없고, 모든 언어와 음성이 그대로 진언이요, 일체의 마음이 그대로 삼마지(三摩地)인데, 이러한 경지의 삼밀작용을 무상삼밀(無相三密)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입을 열어 소리를 내면 그것이 바로 진언이요, 마음을 일으켜 생각을 내면 그것이 곧 묘관삼매(妙觀三昧)이며, 일체의 행위가 모두 밀인(密印)을 이룬 것입니다. 밀교는 바로 이러한 육신성불(肉身成佛)을 목적으로 하여 수행함을 원칙으로 삼습니다. [교양교재편찬위원회 편, 위의 책, pp.164-165]
- <법회와 설법> 통권 제180호, 2010년 05월호, pp.1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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