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우리가 배워온 산맥은 1903년 일본의 지질학자 고토분지로가 발표한 '조선의 산악론'에 기초를 두고 일본인 지리학자 야스쇼에이가 재 집필한 '한국지리' 라는 교과서에서 기인된 것이다.
일제는 조선에 대한 본격적인 자원 찬탈을 시도하기 앞서 고토분치로로 하여금 1900년부터 1902년까지 우리나라 지질을 탐사토록 한 결과 산맥이 등장 하였다.
산맥은 백두산을 매개로 일체가 되는 우리 민족의 구심점을 없애고 백두대간을 훼절시켜 민족정기를 말살하려는 의도에서 도입되었다.
백두대간을 마천령산맥, 함경산맥, 태백산맥, 소백산맥으로 나누었고, 그렇게 나눈 산맥에 잔 가지를 붙여 백두대간의 본래 모습을 알지 못하게 했다.
또한 낭림산맥을 강조 태백산맥-낭림산맥의 선을 나라지형의 중심축으로 부각시켰다. 태백, 소백 등 다른 산맥은 모두 산 이름이 들어 갔으나 백두산이 있는 마천령 산맥은 고개 이름인 마천령을 따서 마천령산맥이라고 지명하였다. 또한 가장 짧은 산맥인 것처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백두산 최고봉을 일왕의 이름인 대정으로 정하여 대정봉이라고 바꿔 놓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고토가 우리나라 땅을 조사한 기간은 1900년 및 1902년 두 차례에 걸친 14개월 동안이었다.
어떻게 기술 수준도 미약했던 100전에 한 나라의 지질구조를 단지 14개월이라는 기간동안 완전하게 조사하는 일이 가능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1903년에 발표된 고토의 지질학적 연구성과는 우리나라 지리학의 기초로 자리잡아 지리교과서에 들어앉게 되었다.
고토는 땅속의 맥줄기를 산맥의 기본개념으로 하였다. 지질 구조선 즉, 암석의 기하학적인 형 (形), 이것들의 삼차원적 배치의 층층을 기본선으로 하였다.
그러다보니 땅위의 산줄기들의 흐름은 무시되고 땅속의 모양새만 따지다보니 산맥줄기가 강이나 내를 건너 뛰고, 능선과 능선을 넘나들고 있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런 현실임에도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 손으로 이 땅을 조사해 볼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제의 침략 야욕이 만들어낸 지리개념이 현재에도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 일제 식민지 치하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해방 후 50년이 넘도록 우리 지형에 맞지도 않는 산맥개념을 쓰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