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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스크랩] 하나님의 명칭 소고(윤용진 교수)

 

                                                                  하나님의 명칭 소고(윤용진 교수)


1.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름
가. 하나님
1) 엘( אל ) - 엘 엘리욘( אל אליון ) / 엘 올람( / (אל עולם
엘 샤따이( אל שׁדי ) / 엘 엘로헤 이스라엘( / (אל אלהי ישׂראל
엘 로이( (אל ראי
2) 엘로힘( (אלהים
나. 주
1) 야웨( (יהוה
2) 아도나이( (אדוני
3) 야웨 체바오트( (יהוה צבאות
4) 기타 - 야웨 이레( יהוה יראה ) / 야웨 닛씨( / (יהוה נסי
야웨 로페( יהוה רפה ) / 야웨 샬롬( / (יהוה שׁלום
야웨 샴마( (יהוה שׁמה
다. 아버지( אב , 아브)
라. 왕( (מלך
2. 신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름
가. 하나님(θεός, 데오스)
나. 주(κύριος, 퀴리오스)
다. 아버지(πατηρ, 파테르)
라. 왕(βασίλευς, 바실류스)
하나님의 명칭에 대한 소고
윤용진 교수
우리 기독교인들이 믿는 신앙의 대상이신 하나님의 호칭은 매우 다양하다. 불신자들이
라도 당장 몇 가지의 다양한 호칭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다양한 호칭만큼이나 그
의미 또한 다양한 특징을 가지고 있을 것인데 성도들이 과연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사
용하는지 궁금하다. 추측하건대 호칭의 정확한 의미는 모르지만 신앙의 대상은 분명하니까
상호 동의적인 의미에서 생각나는 대로 부르고 있을 것이다.
자고로 이름이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나름대로의 가치와 명예를 지니고 있다. 하물
며 천지를 창조하고 섭리하시는 절대 주권자 하나님의 이름이야 어찌 존귀하지 않겠으며 그
명예와 영광이 온 우주에 충만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의 피조물인 우리 인간들은 그 분을
제대로 대접해드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실정이다. 죄로 인한 영원한 죽
음으로부터 값없이 영원한 생명으로의 구원을 얻은 성도들 조차 그 분의 이름을 정확하게
불러 드리지 못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경외심 없이 일상의 대화 속에 함부로 거론하는 것은 그 분
의 계명을 어기는 결과를 낳게 된다. 하나님은 제 3계명을 통하여 “너는 너의 하나님 야웨
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야웨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
지 아니하리라”(출20:7)1)고 경고하셨다. 그러나 전적으로 타락하여 무지한 인간들이 하나님
1) 이 구절의 히브리 원문은 다음과 같다.
의 이름을 어떻게 정확하게 알 수 있겠는가. 범죄하여 교만해진 인간들의 언행심사를 보면
자신이 하나님인체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창조하시고 이 땅에 보내어 살게 하시는 전능자
하나님을 무시하는 어리석은 일들을 자행하고 있다.
이렇듯 하나님을 모르는 무지한 죄인들에게 내려진 형벌은 그들을 추악한 상태로 그대
로 내버려두시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금수와 버러지 형상으로 바꾸어 조물주
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는 저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내버려 두셨고(롬1:23-24), 부끄러운 욕심
에 내어버려 두셨으며(26절),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므로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
려 두셨다(28절).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다양한 하나님의 명칭이 지니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아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조직신학 신론에서 언급하
고 있는 정보는 매우 빈약하다. 본고에서도 충분히 언급하지는 못했지만 성경을 통해 계시
된 하나님의 다양한 이름들을 성경신학적인 면에서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자.
1.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름
가. 하나님
1) 엘( (אל
고대 근동 아시아 셈족들의 문서에 나타나는 가장 보편적인 신의 이름은 엘( אל )이다.
특히 우가릿 문서에서는 최고 신의 이름으로 나타난다. 그들에게 있어서 엘 신은 신들과 사
람의 원시적인 아버지로서 때론 엄격하고 때론 자상하며 지혜로운 판단력을 가진 존재였다.
이 명칭이 서부 셈족어에서는 복합되어 나타나는데 어떤 이들은 이것을 엘 신에 대한 국지
적인 표현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 예로 멜기세덱이 호칭한 엘 엘리욘( אל אליון )을 든다(창
14:18-20).2) 이와 같이 엘 또는 그와 복합된 명칭이 구약에서 약 200회 이상 발견된다.
구약에서의 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명칭이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ישׂראל )의 이름에도 야웨( יהוה )의 요소가 아니라 엘( אל )의 요소가 들어가 있다. 이
사실은 이스라엘과 엘의 관계가 이스라엘과 야웨의 관계보다 역사적으로 앞선다는 것을 암
.aw]V;l' /mv]Ata, aC;yIArv,a} tae hw:hy] hQ,n"y] al yKi aw]V;l' *yh,la> hw:hy]A!veAta, aC;ti al
위의 구절에서 aw]V;l(라샤웨)는 ‘헛되이’, ‘아무 가치없이’란 뜻이고 aC;ti al(로 티사)는 동사 נשׂא
(들어 올리다, lift up)의 단축형(jussive) 용법으로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리시는 강한 금지명령(‘들어
올리지 말라’)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부분을 다소 노골적으로 직역한다면 “너의 하나님 야웨의 이름
을 (너희의 일상 언어중에) 함부로 거들먹거리지 말라”가 된다. 이 말씀은 불신자들이 경솔하게 일상
대화 속에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이나 신자들이 깊은 생각없이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는 모든
언어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2) William A. VanGemeren, ed.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Old Testament Theology &
Exegesis, Vol. I(Grands Rapids: Zondervan Publishing House,1997), p. 400.
시한다.
그러나 야웨라는 명칭(출6:2-3)의 역사가 모호하기 때문에 단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엘이란 명칭이 보다 고대적인 본문에 더 자주 사용된다는 것 뿐이다.3) 엘과 복합된 형태의
명칭들로는 첫째,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라는 뜻으로 멜기세덱이 고백한 엘 엘리욘( אליון
אל , 창14:18-20;신32:8 cf. 시73:11;107:11)이 있고 둘째, ‘영원하신 하나님’이라는 뜻으로 번역
되었으나 하나님의 완전성을 강조하며 야웨와 동격으로 사용된 엘 올람( אל עולם , 창21:33)
이 있다.
셋째로, 70인역(LXX)에 기초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번역된 엘 샤따이( אל שׁדי , 창
17:1;28:3;35:11;43:14;48:3;49:24-25; cf. 민24:4,16)가 있는데 이 명칭은 출6:2-3을 통하여 야웨와
동일한 명칭임을 알 수 있다.4) 그리고 이 명칭은 이스라엘에 대한 특별한 언급도 없는 욥기
에 약 30여회 나타나 욥기의 고대적 배경을 보여 주고 있다.
넷째, 엘 엘로헤 이스라엘( אל אלהי ישׂראל , 창33:20)은 ‘하나님, 즉 이스라엘의 하나님’
이란 뜻으로서 야웨보다는 엘의 요소가 이스라엘의 신 명칭에 더 가까움을 보여준다.
다섯째, 엘 로이( אל ראי )는 애굽 여인 하갈의 이야기(창16:13)에만 등장하는 이름으로
서 비 이스라엘계와 관련되었을 뿐만 아니라 특별히 인간이 하나님을 호칭한 유일한 예이
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특별한 체험이 하나님의 새로운 이름과 어떻게 연관되는
지를 흥미있게 반영해 주고 있다.
이와 같이 엘이란 명칭은 특히 창12-50장에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모세 이전시대
에 있어서 가장 현저한 하나님의 명칭이라고 할 수 있다.5)
2) 엘로힘( (אלהים
흔히 엘의 복수형이 엘로힘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엘로힘의 단수는 엘로아( (אלוה
이다. 엘로아(Eloah)는 모두 57회 정도 나타난다. 그 중에 약 41회가 이스라엘의 사회 배경
과 거리가 먼 욥기에 나타난다. 엘로힘은 구약에만 약2,570회 사용되고 있는데 이 복수 형태
는 자주 야웨와 다른 신들의 호칭으로도 쓰인다(출20:3). 그러할 경우 엘로힘 앞에 정관사가
붙기도 하고(출18:11) 복수 형용사(시97:7)나 복수 동사들이 함께 쓰이기도 한다.
3) Loc. cit.
4) [개역]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나는 야웨로라(출6:2)
[BHS] .hw:hy] ynIa} wyl;ae rm,aYOw" hv,moAla, !yhila> rBed'y]w"
[LXX] ejlavlhsen de; oJ qeo;" pro;" Mwush'n kai; ei\pen pro;" aujtovn ejgw; kuvrio"
[개역]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야웨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출 6:3)
[BHS] .!h,l; yTi[]d'/n al hw:hy] ymiv]W yD;v' laeB] bqo[}y"Ala,w] qj;x]yIAla, !h;r;b]a'Ala, ar;aew:
[LXX] kai; w[fqhn pro;" Abraam kai; Isaak kai; Iakwb qeo;" w]n aujtw'n
kai; to; o[nomav mou kuvrio" oujk ejdhvlwsa aujtoi'"
5) Ibid., p. 401.
이방신에 관련되어 사용된 복수 형태는 다신론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
엘의 하나님으로서 엘로힘은 하나님의 절대성 내지 배타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
고 더 나아가서 장엄의 복수를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6) 반면에 삼위일체 하나
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창1:26이나 사6:8등의 다양한 증거들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엘로힘은 야웨처럼 엘과도 호환될 수 있는 용어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시42-83편이 엘로힘을 특별히 구분하여 사용하는 것을 예로 들며
특정한 시대와 장소에 국한되었던 이스라엘 내의 일부 그룹이 엘로힘이라는 신의 명칭을 선
호했던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특히 비 이스라엘계의 하나님 경배와 관련하여 의도된 것
으로 변증적이거나 선교적인 목적 하에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이해한다.7)
나. 주
1) 야웨( (יהוה
한국 개역성경이 여호와(Jehovah)라고 번역한 히브리어 יהוה 는 “야웨”(Yahweh)로 발음
하는 것이 좋겠다. 이 명칭의 어원은 היה (하야) 또는 הוה (하와)라는 동사로서 그 의미는 다
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이다”(be), 둘째 “...이 되다”(become), 셋째 “살
다”(live) , 넷째 “일어나다”, “발생하다”(happen/take place) 등이다.8)
이 동사는 매우 중요한 신학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창조와 관련
하여 많이 활용되고 있다(창1:1-2:4). 또한 하나님의 언약에 관련된 활용의 예를 많이 찾아
볼 수 있다.9) 다음으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받을 때 이 동사가 어김없이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주의 말씀이 임하여 가라사대”등의 표현이 그것이다. 즉 야웨께서 자신의 메신
저인 선지자들에게 말씀을 주시는 경우에 자주 사용되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동사가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활용되었다는 점이다. 그것
은 “야웨”( יהוה )인데 이것과 관련된 또 다른 하나는 그 의미를 풀어서 말씀해 주신 “에예
아쉐르 에예”( אהיה אשׁר אהיה , 출3:14)라는 구절이다. 특히 후자는 동사 היה (하야)의 활용
중 가장 난해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먼저, 이러한 명칭이 강조된 배경을 살펴 보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시켜 족장
들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이행하시려고 미디안 광야로 피신해 있던 모세를 부르셨다(출3장).
6) Ibid., p. 405.
7) Loc. cit.
8) W. L. Holladay, A Concise Hebrew and Aramaic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9) 예를 들면, 이스라엘이 하늘의 별과 해변의 모래처럼 될 것(창15:5;28:14;호1:10)과 물 댄 동산
(사58:11;렘31:12)처럼 또는 열매 풍성한 감람나무(호14:6)처럼 될 것이라는 약속들에 사용되고 있다.
특히 율법언약 중 저주 조항에 관련하여 많이 나타난다(레26:33,37;신28:23,40,41,44,46,65;29:23;사1:29;렘
17:6,8;20:16 등). 또한 “너희는 내 백성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려 함이니라”는 언약형식(covenant
formula)에도 많이 활용되고 있다(창17:7-8;출6:7;29:45;레11:45;22:33;25:38;26:12,45;민15:41;신29:13;렘
7:23;11:4;24:7;30:22;31:1,33;32:38;겔11:20;14:11;36:28;37:23,27). cf. NIDOTE, vol. I. p. 1024.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들은 모세는 이 엄청난 그리고 거부할 수 없는 복음의 메세지를 듣고
적지 않게 놀랐다. 그리하여 이 엄청난 계획을 수행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내가 누구관
대...”( מי אנכי )라고 자신의 무능함을 토로했고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יה ימך
אה , 출3:12)고 보장의 말씀을 주셨다.
또한 자기 동족들에게 이 소식을 전할 때 그들이 ‘우리 조상의 하나님 이름이 무엇이냐
מה שׁמו) )’고 물을 경우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느냐는 모세의 질문에 하나님은
“에예 아쉐르 에예”( אהיה אשׁר אהיה )라고 답을 주셨다. 즉 하나님은 자신을 가리켜 “에
예”( אהיה )라고 소개한 것이다.
그 후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바로에게로 가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출애굽을
허용할 것을 요구하였다(출5장). 그 결과 바로의 거부는 물론이고 이스라엘은 더욱 학대를
당하게 된다. 백성들의 거센 항의에 면목이 없게 된 모세의 항변을 들으신 하나님은 모세에
게 다시 한번 출애굽의 언약을 확인시키시며 자신의 이름을 야웨( יהוה ,출6:2-3)로 계시하신
다. 이제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것은 하나는 야웨( יהוה )이고, 다른 하나는 에예( אהיה )이다.
우선 본문의 순서대로 에예( אהיה )를 살펴보기로 하자.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이스라
엘 백성들에게 무엇으로( מה ) 소개해야 되느냐고 물었을 때 그 의미는 야웨의 정체성
(identity)에 대한 질문이라기 보다는 야웨의 성격(character/nature)에 대한 질문으로 이해하
는 것이 좋을 것이다.10) 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에 대하여 학자들마다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첫째, 하나님의 존재의 독특성을 강조해 준다는 해석이 있다. 70인역에 따르는 Schild와
Lindblom은 에예 아쉐르 에예( אהיה אשׁר אהיה )를 “I am the one who is”로 번역하여 야
웨는 여러 이방신들 중에 유일한 참 신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정상적
인 히브리어 문법에 어긋남으로 인하여 비판을 받는다.11)
둘째, 하나님은 만물의 근원이심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Albright와 Freedman은 에예( יה
אה )를 사역동사(Hiphil)로 이해하여 에예 아쉐르 에예( אהיה אשׁר אהיה )를 “I create
whatever I create”로 번역한다. 그러나 이 입장은 본문의 맥락이 이스라엘의 창조주로서 하
나님을 강조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언약을 지키시어 이스라엘을 구속하시는 야웨의 기능
에 촛점이 맞춰져 있고 또한 이 동사가 사역형으로 사용된 다른 실예를 찾기 어렵다는 점에
서 비판을 받는다.
셋째,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보장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많은 학자들이 이러한 문형 자체
는 성경 히브리어에 관용적인 표현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러한 예로 출4:13(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왕하8:1(거할 만한 곳으로 가서 거하라), 출33:19(은혜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
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등을 제시한다. 따라서 에예 아쉐르 에예( יה אשׁר אהיה
אה )는 이스라엘의 자녀들을 위한 구속계획의 성취를 보장하는 야웨의 약속을 강조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제 야웨( יהוה )에 관하여 살펴보도록 하자. BDB는 이 품사의 문법적 성격을 동사 하야
10) Loc. cit.
11) 만일 70인역에 따라 충실하게 번역한다면 אלי הוא 가 적절할 것이다. Ibid., p. 1025.
היה) )의 Qal(일반동사 능동형) 또는 Hiphil(사역동사 능동형)임을 조심스레 제시하고 있다.12)
첫째, 야웨를 일반동사의 능동형(Qal)으로 볼 경우 야웨의 의미는 야웨의 신비한 속성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the one who is”, “the absolute and unchangeable on”, “the existing,
ever-living”, “creator” 등을 뜻한다. 이것은 다른 이방신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임을
명시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스라엘과 애굽 백성, 그리고 애굽의 바로 앞에 행한 10가지 재앙
은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심을 드러내시는 자기 계시였다. 왜냐하면
10가지 재앙 중의 약 70%는 애굽인들이 신으로 섬기는 피조물로서 그것들이 얼마나 허무하
며 한낱 무익한 피조물임을 알게 하고 야웨 자신이 참신임을 공표하시는 사건이었다.
둘째, 야웨를 사역동사의 능동형(Hiphil)으로 볼 경우 위에서 언급한 어근 하야( היה )의
몇 가지 의미를 중심으로 야웨의 신학적 의미를 생각해 보자.
a) “to be”의 관점에서 볼 때 야웨는 “마땅히 있을 것을 있게 하는 자”(the one
bringing into being), 다시 말해서 “필요한 것을 반드시 공급하시는 분”이란 뜻이다. 출애굽
의 제안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지만 선뜻 따라 나서기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왜냐하
면 애굽을 벗어나는 일 자체가 군대의 칼날과 깊고 넓은 홍해의 장애로 쉽지 않을 뿐만 아
니라 그것들을 통과한다 하더라도 시나이 사막은 마실 물과 먹을 양식이 전혀 없는 험악한
산악지대 황무지로서 죽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자명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
정을 잘 아시는 하나님은 그들의 필요를 능히 채워주실 분이라는 뜻에서 자신을 야웨로 계
시하는 것이다.
b) “to become”의 관점에서 볼 때 야웨는 “마땅히 되어야 할 모습으로 되게 하는
분”(giver of existence)이시다. 즉, 자기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구속언약을 성취하시는 분
(performer of his promises)이시다. 종의 신분에서 자유로운 신분으로 구출해 주시는 이유
는 이스라엘을 “보배”로 여기시고 이방나라를 자기에게로 이끌 “제사장 나라”로 삼으시며
(출19:5-6) ‘그들을 거룩한 자기 백성으로 만드시고 자신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기 위한’ 목
적에서 자신을 야웨로 계시하시는 것이다(출6:7; 29:45).
c) “to live”의 관점에서 야웨는 자기 백성들에게 진정한 삶을 가져다주시는 분
(life-giver)이시다. 광야 40년의 유랑생활은 사느냐 죽느냐 하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의 연속
이었다. 하나님의 은혜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배은망덕하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궁극적인
삶의 길로 이끌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들이신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나님은 자
신의 이름을 야웨로 계시하는 것이다.13)
d) “to happen” 또는 “to take place”의 관점에서 야웨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의 삶을
인도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이스라엘의 삶은 그들의 구속주이신 야웨와의 언약관계에
서 이루어진다. 야웨와 맺은 언약을 준수할 때는 행복이 보장되지만 파기할 경우에는 가차
없는 징벌이 그들 위에 내려진다(레26; 신28장). 야웨는 이스라엘의 역사만 아니라 이방세계
12) B.D.B. pp. 224-28.
13) 필자의 상게서 제 3장을 참조하라.
의 모든 역사를 자신의 공의와 인애로써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만유의 주재이시다.
2) 아도나이( (אדוני
고대 근동 아시아의 셈족어 문서들에서도 신들과 인간에 대하여 사용된 이 명칭의 동족
어들이 발견된다.14) ‘주’ 또는 ‘주인’을 뜻하며 구약에 약 30회 출현하는 아돈( אדון )의 복수형
에 제 1인칭 공성 단수의 대명사 접미 י(ָ아이, my)가 붙은 형태인 아도나이는 모두 449회
나타난다. 발음은 “나의 주인들”( י󰗻 ד󰔣, my lords)과 혼동하지 않도록 살짝 변화시켰다.
그러나 이것은 “주(Lord)"를 의미하는 야웨란 명칭을 대신할 수 있기에 여기의 어미 יָ
는 접미라기 보다는 명사적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어느 것을 택하든 이 명칭은 위엄
과 강함을 뜻한다. 또한 ‘바알’( בעל , “주인”, “남편”)과 유사한 의미로 인하여 적절한 변화가
불가피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용례로는 이 명칭이 315회나 야웨라는 명칭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사용된 몇몇의 실예들은 이 명칭 자체가 통치나 소유권 또는 능력이 아니라
권위에 더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아브라함, 창18:12; 라반, 창31:35; 요셉, 창45:8;
엘리, 삼상1:15). 하나님의 대용으로 이 명칭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곳은 선지서인데 모두
320회나 된다. 그 중 에스겔서에만 무려 217회 나타나 있다. 시편에서도 55회의 용례를 찾을
수 있다. 선지서의 대표적인 용례중 특히 사3:15;10:24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관련되어
나타난다.
몇몇의 본문들이 보여주는 보다 보편적인 예로는 “온 땅의 주”(수3:13;시97:5;미4:13),
“주의 주”(신10:17;시136:3) 등이 있는데 이 외의 여러 요소들을 종합해 볼 때 아도나이는
“모든 것의 주”를 의미한다고 정리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여 아도나이의 기본적인 의
미는 왕( מלך , 멜렉)이신 ‘하나님의 우주적 주권’인 것이다.15)
3) 야웨 체바오트( (יהוה צבאות
이 용어는 흔히 “만군의 야웨”로 번역되고 있으나 체바오트( צבאות )의 의미에 대하여 다
양한 의견이 있다. 이 용어는 “전쟁에 나가다”, “징집되다”, “제의(祭儀)를 섬기다” 등의 뜻
을 가진 동사 차바( צבא )에 기원을 둔 여성복수 명사형이다. 명사의 뜻은 “병역”, “전사(戰
士)”, “군대”, “제의 봉사”, “노역” 등으로 다양하다. 고대 근동의 아카드 언어에서도 같은 어
근의 유사한 의미들을 발견할 수 있다.16)
구약에서 이 용어의 동사형은 479회나 출현하는 명사형에 비해서 겨우 14회 정도 밖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 용어의 대부분의 용도는 전쟁과 제의에 관련되어 있다. 특히 구약과 고
대 근동 아시아의 문서들(ANE Texts)이 전쟁과 제의의 두 영역에 중첩되어 사용되는 예들
14) TDOT 1:59-61.
15) Ibid., p. 275.
16) NIDOTE, vol. III, p. 733.
은 현대 성경해석자들을 적지 않게 자극하고 있다. 구약시대에 일반적인 야웨의 현현(顯現)
의 장소는 언약궤가 안치된 성막 또는 성전에서와 전장(戰場)에서의 두 가지 경우이다.
그리하여 야웨 체바오트를 전쟁의 용사( אישׁ מלחמה )이신 야웨(출15:3)를 강조하는 “만군
(萬軍)의 야웨”로 해석하는 입장이 있다. 그 대표적인 용례는 이스라엘을 이끌고 가나안 땅
정복전쟁을 시작하기 직전의 여호수아가 정복전쟁의 승리를 보장받은 사건에서 찾을 수 있
다(수5:13-15). 여호수아에게 나타난 사르 체바 야웨( שׂר־צבא־יהוה )는 한글 개역성경이 “여호
와의 군대장관”으로 번역하고 있다. 대부분의 영역본들도 “LORD of Hosts”로 읽고 있다.
이러한 해석은 체바오트( צבאות )의 용도를 군대에 관련하여 이해하려는 것으로서 전쟁의 용
사이신 야웨의 특성을 강조하는 입장이다.17)
그러나 군대를 지칭할 때는 단수로 표현하지 복수형으로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체바
오트( צבאות )는 “천사들”을 가리킨다고 보는 입장이 있다.18) 야웨 체바오트가 천사들과 연결
된 구절에서 발견된다고 보는 것이 그 이유이다.19) 이러한 입장에 따르면 천사들은 하나님
의 보좌를 둘러싸고 있는 군대로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데(창28:12;32:2;수5:14;왕상22:19;시
68:17;103:21;148:2;사6:2) 대부분 단수가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해석은 군대적 의미를 배제
시키고 있으며 오히려 왕으로서의 하나님의 영광을 표현하는 이름의 의미와 조화를 이룬다
고 주장한다(신33:2;왕상22:19;시24:10;사6:3;24:23;슥14:16).
그러나 야웨의 천사들이 야웨의 군대적 기능을 담당하기도 하고 야웨께서 거룩한 전쟁
의 용사이신 사실은 구약신학과 신약신학의 매우 중요한 주제이므로 야웨 체바오트( צבאות
יהוה )에서 군사적인 의미를 전혀 배제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외에도 체바오트를 “별들”
로 이해하려는 입장이 있으나 설득력이 약하다.
4) 기타
야웨라는 이름에 관련하여 수식어들이 붙어 야웨의 속성 내지는 사역의 다양한 특성들
을 보여주는 이름들이 적지 않게 있다. 그 중 몇 가지를 성경에 나타나는 순서대로 살펴 보
기로 하자.
첫째는 야웨 이레( יהוה יראה )이다. 이 명칭은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칠 때 이를 저지하시고 수양을 준비시켜주신 하나님의 사역에 관련된 이름이다(창
22:14). 이 호칭은 아브라함이 그 땅, 곧 모리아 땅을 가리켜 한 말이다. 여기에서 이레( ראה
י)는 동사 ראה (“보다”)의 일반형 능동(Qal) 미완료 3인칭 남성 단수로서 “그(야웨)가 볼 것
이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아브라함에 의하여 지명을 가리키는 고유 명사로서 고착
된 것이다. 이 용어가 지니는 신학적 의미는 ‘야웨께서 (바치는 자의 자세를) 보실 것이다’
17) cf. T. Longman III &D. Reid, God is a Warrior(Grand Rapids: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95); 윤용진,「야웨의 戰爭神學」(서울: 그리심, 1998).
18) 조직신학자 L. Berkhof는 이 입장이 가장 참조할 가치가 있다고 조심스레 추천한다. L.
Berkhof, 이상원 역, 「조직신학」,상(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8), p. 241.
19) 삼상4:4;삼하6:2;사37:16;호12:4,5;시80:1,4;89:6-8.
또는 ‘야웨께서 (바치는 자의 마음을) 아실 것이다’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더 나아가서
는 ‘야웨께서 (바치는 자의 마음과 믿음을 아시고 꼭 필요한 것을) 준비하실 것이다’라는 뜻
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의미의 확장된 해석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개인적인 생활
에 관련해서도 적용할 수 있겠으나 궁극적으로는 인류의 죄를 위한 대속제물로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야웨 로페( יהוה רפה )이다. 이 명칭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가리켜 호칭하신 것이
다. 애굽을 탈출한 후 시내광야를 향하여 행군을 시작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라에서 물로
인해 고통받을 때 그 쓴 물을 고치시고 자신의 사역의 특성을 강조하신 명칭이다(출15:26).
출15:26의 히브리 원문에는 로페( רפה )라는 Qal 능동분사 남성 단수 뒤에 “너를”( ך)이라는
목적격 접미가 붙어 있다. 로페( רפה )는 “고치다”, “치료하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라파( פה
ר)의 능동분사형으로서 그 의미는 “치료하는” 또는 “치료하는 자”이다. 그리하여 야웨 로페
יהוה רפה) )의 정확한 의미는 “치료하시는 야웨” 또는 “치료하시는 자 곧 야웨”이다. 본문
에 따르면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야웨의 법도와 규례를 잘 지켜 의를 행한다면 그 어떤
질병도 내리시지 않겠다고 약속하시고 자신은 만병을 통치하시는 최고의 의사이심을 드러내
고 계신다.
셋째는 야웨 닛씨( יהוה נסי )이다. 이 명칭은 출애굽의 여정을 가로막는 대적 아말렉과
의 전투에서 야웨의 도우심으로써 승리한 뒤 모세가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그 제단의 이름
을 야웨 닛씨라고 부른 것이다(출17:15). 여기에서 닛씨( נסי )란 “깃발”을 뜻하는 명사 네쓰( ס
נ)에 소유격을 의미하는 대명사 접미 1)י 인칭 단수)를 붙인 것이다. 그리하여 “야웨는 나의
(승리의) 깃발이시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 명칭은 야웨께서는 자기 백성을 위하여 대적들
과 싸우시는 전쟁의 용사이심을 보여준다. 야웨는 이스라엘 대적들의 침략과 압제를 물리치
시고 자기 백성을 안전하게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용사요 통치자 왕이시다(출15:3,18). 그러
므로 우리 하나님의 백성이 그 누구를 무서워하며 그 무엇을 두려워 할 것인가. 야웨는 자
신의 구원역사를 가로막는 모든 원수들을 쳐부수고 승리하시어 그의 나라를 굳건히 세우시
는 분이시다.
넷째는 야웨 샬롬( יהוה שׁלום )이다. 이 명칭도 제단의 이름이다. 사사 기드온이 미디안
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라는 야웨의 부르심을 받고 그 중대한 사명에 힘겨워 할 때 야
웨께서 함께 하시겠다는 분명한 표징을 확인하고 나서 부른 이름이다(삿6:24). 야웨께서 자
신을 부르시고 또한 자신과 함께 하실 것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뵈었던 야웨의 사자를 인하
여 기드온은 죽을까봐 두려워 떨었다. 그 때에 죽지 아니하리라는 야웨의 보장을 받고 감사
함으로 쌓은 제단을 기드온은 야웨 샬롬이라고 불렀다. 샬롬( שׁלום )이란 “완성되다”, “건강
하다”, “평안하다” 등의 의미를 지닌 동사 샬람( שׁלם )의 명사형으로서 “완성”, “평화”, “평
강” 등의 뜻을 갖는다. 이 외에도 샬람( שׁלם )은 강조동사 능동형(Piel)으로서 “맹세를 이행하
다”라는 용도로 쓰인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야웨 샬롬( יהוה שׁלום )은 “야웨는 평강이시다”,
“야웨는 약속을 이행하시는 분이시다” 등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소명기사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명칭은 오직 야웨로서 야웨의 속성과 그 사역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야웨 하나님은 평강의 주로서 자기 백성들과의 약속을 반드시 이행하시는
신실한 분이시다.
마지막으로 야웨 샴마( יהוה שׁמה )를 들 수 있다. 이 명칭은 에스겔 선지자가 본 환상에
서 나온 것이다(겔48:35). 에스겔은 범죄한 유다 백성들에 대한 야웨의 징벌로써 야웨의 영
광이 예루살렘을 떠나가는 환상을 보았다(겔10:18-22;11:22-24). 그 후 예루살렘이 회복되리라
는 메시지와 더불어 야웨의 영광이 떠나갔던 예루살렘 동편 문을 통하여 다시 돌아오는 환
상을 본다(43:1-5). 새로운 성전의 건설과 더불어 예루살렘 성은 이제 야웨께서 함께 하시는
거처가 될 것이라는 의미에서 그 성읍의 이름이 야웨 샴마( יהוה שׁמה )가 될 것이다. 여기에
서 샴마( שׁמה )란 “거기에”를 뜻하는 샴( שׁם )에 방향을 표시하는 헤( ה)가 접미되어 공간적인
의미를 지닌 보어 역할을 한다. 따라서 야웨 샴마( יהוה שׁמה )란 “야웨께서 거기에 계신다”
라는 뜻이다. 야웨께서는 자기 백성들이 야웨께서 미워하시는 온갖 더럽고 추한 것들을 멀
리 제하여 버릴 때에 영원토록 그들 중에 거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겔43:9). 즉, 야웨는 그의
자녀들이 어디를 가든지 함께 계실 것이고, 어느 때든지 영원토록 함께 하실 것이다. 단, 야
웨의 뜻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행동할 때 그리 하실 것이다.
다. 아버지( אב , 아브)
이 용어는 보통 자녀들에 대한 상대적 개념으로 쓰이지만 성경에서는 조상들을 가리키
는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설명하는 신학적인 비유로
서 이스라엘의 아버지되시는 하나님을 가리킬 때 많이 사용된다. 여기에서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에까지 확대된다. 이 명칭이 이스라엘 사회에 깊이 배어 있다는
사실은 요압, 아비야, 엘리압 등과 같은 이름들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의 구절들은 이스라엘의 아버지이신 야웨의 입장과 행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출4:22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야웨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신1:31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같이 너희 하나님
야웨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신8:5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같이 네 하나님 야웨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시103:13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야웨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
잠3:12 대저 야웨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같이 하시느니라.
렘31:9 울며 올 것이며 그들이 나의 인도함을 입고 간구할 때에 내가 그들로 넘어지지
아니하고 하숫가의 바른 길로 행하게 하리라. 나는 이스라엘의 아비요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
렘31:20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마음이 측은한즉 내가 반드시
그를 긍휼히 여기리라. 야웨의 말이니라.
호11:1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 내었거늘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이스라엘의 대표자로서의 다윗 왕의 아버지가 되시는 야웨
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삼하7:14;시2:7;89:26). 또 한 가지 이 용어는 신명기에 많이 나타나
있듯이 상속적인 개념도 함축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20)
이스라엘의 아버지이신 야웨는 이스라엘에 대하여 매우 큰 기대를 가지고 계신다. 하나
님의 자녀로서 이스라엘은 아버지되신 야웨께 신실해야 하고 존경하며 순종해야 한다. 이스
라엘을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들(sons)”이라는 복수 표현을 한 것은 민족 공동체적 차원에
서의 책임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불성실했고 불순
종하였으며 거역하였다(사1:2;30:9;렘3:4,19;말1:6).21) 특히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자식같이
양육하였거늘 이스라엘은 짐승만도 못하게 배은망덕하였다’고 탄식하셨다(사1:2-3).
아버지와 아들로서의 관계성에 관련된 책임과 의무는 율법언약에 규정된 언약관계에서
의 그것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성은 언제나 변함없는 것은
아니었다. 출애굽과 시내산 언약 체결 당시에 형성된 이 관계성(출4:22)은 율법언약의 파기
로 인하여 깨져 버렸다.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로 인하여 하나님은 진노하셨고 그들을 버리셨
다. 바벨론 포로라는 엄청난 사건은 도무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부자지간이라고 말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성을 기억해
주시도록 간곡하게 호소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야웨의 자존심에 강력히 호소하고 있는 것
이다.
사63:16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치
아니할지라도 야웨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상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
사64:8 그러나 야웨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선지자로서 사역했던 예레미야도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회복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토로하고 있다.
렘31:9 울며 올 것이며 그들이 나의 인도함을 입고 간구할 때에 내가 그들로 넘어지지
아니하고 하숫가의 바른 길로 행하게 하리라. 나는 이스라엘의 아비요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
렘31:18 에브라임이 스스로 탄식함을 내가 정녕히 들었노니 이르기를 주께서 나를
징벌하시매 멍에에 익숙지 못한 송아지 같은 내가 징벌을 받았나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 야웨시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
렘31:19 내가 돌이킴을 받은 후에 뉘우쳤고 내가 교훈을 받은 후에 내 볼기를 쳤사오니
20) NIDOTE, vol. I, p. 222.
21) Loc. cit.
이는 어렸을 때의 치욕을 진고로 부끄럽고 욕됨이니이다 하도다.
렘31:20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마음이 측은한즉 내가
반드시 그를 긍휼히 여기리라. 야웨의 말이니라
렘31:21 처녀 이스라엘아 너를 위하여 길표를 세우며 너를 위하여 표목을 만들고 대로
곧 네가 전에 가던 길에 착념하라. 돌아오라. 네 성읍들로 돌아오라.
선지자들의 간곡한 호소에서 엿볼 수 있듯이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을 영
원히 버리지 않으신다. 뒤에 가서 살펴 보겠지만 야웨께서는 자신의 거룩하신 이름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신다. 결코 그 명예와 영광을 다른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신다(사48:9-11). 야
웨 하나님은 자존심이 매우 강하신 분이시다. 이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가 부
활하심에서 가장 강하게 부각되었다.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다
윗의 후손 메시야이시다(행2:24-28).
라. 왕( 22 (מלך )
이스라엘의 신 야웨께서 왕으로 묘사된 것과 유사한 비유적 용례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애굽, 시리아 등지의 문헌에서도 발견된다.23) 왕이라는 용어 앞에 정관사가 붙어나올 때는
왕에 대한 공손한 태도를 보이거나(삼하3:21) 존경의 뜻을 표현할 때이다(느2:3).
구약에서 야웨 하나님의 명칭으로 왕이라는 표현을 단독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 야웨의 왕권에 관하여 지혜문학에서는 그 흔적을 발견하기 어렵고, 내러티브
(narrative)나 초기 선지서 등에서 약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사야, 예레미야, 스가랴 등의 선지서에서는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특히
시편(29;93편)에서 야웨 내지 메시야를 왕으로 비유하는 예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또한 다
니엘, 말라기서를 비롯하여 쿰란(Qumran) 문서와 같은 후기 작품들에서도 이 개념을 발견
할 수 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왕되심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하나님의 왕되심은 구약신학의 핵
22) 왕( מלך , 멜렠)이란 용어는 “다스리다”, “통치하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מלך (말랔)의 명사형이
다. 이 용어가 일정한 영역이나 사람들에 대한 “다스림” 내지 “통치”와 관련하여 그 의미가 분명히 드
러난 것은 삿9:2을 통해서이다.
“청하노니 너희는 세겜 사람들의 귀에 말하라.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인이 다 너희를
다스림과 한 사람이 너희를 다스림이 어느 것이 너희에게 나으냐. 또 나는 너희의
골육지친임을 생각하라”(삿9:2)
이스라엘에 있어서 왕의 역할과 지위는 초대 왕 사울의 등극시점에서 사무엘이 왕제도의 폐단을
백성들에게 설명해주던 연설 가운데 잘 드러나 있다(삼상8:11-17). NIDOTE, vol. II, p. 956.
23) 가장 전형적인 예로는 Shamash를 “하늘과 땅의 왕”으로 칭한 것과 바벨론의 창조 서사시에
서 그들의 신 Marduk을 왕으로 부르고 있는 것 그리고 시리아 문헌에서 신 El을 왕으로 묘사하는 것,
애굽의 신 Amun-Re를 “신들 중의 왕” 또는 “하늘의 왕”으로 호칭하는 것을 들 수 있다. Ibid., p. 960.
심 주제(theme)로서 수 많은 학자들이 여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24) 그 분은 온 세상의
왕이시고, 신들의 신이시며, 모든 나라의 왕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왕이시다.
J. Jeremias는 시29;47;74;93;출15:1-18;신33:2-5,26-29;삼하6:15;사6:1-5 등의 구절이 야웨
의 왕권 사상을 잘 드러내 준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그를 비롯한 대부분의 비평학자들은
구약에 나타난 야웨의 왕권사상 모티프(motif)가 고대 근동의 문헌에서 빌어온 재해석이라
고 이해하는데 문제가 있다.25) 온 우주의 창조자이시고 역사의 주관자이신 야웨는 처음부터
진정한 왕이시다. 이스라엘의 왕 제도가 역사적으로 볼 때 고대 근동의 역사보다 뒤진다고
해서 야웨의 왕권사상이 고대 근동의 문헌이나 제도에서 왔다고 보는 관점은 창조주 하나님
께 대한 믿음이 결여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왕이신 야웨의 이미지는 반드시 전쟁의 용사( אישׁ מלחמה )로서의 이미지와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시는 전쟁의 용사이신 야웨는 전쟁에서의
승리로써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 후 그들을 안전한 처소로 인도하시는 통치자 왕이시다(출
15:1-18). 시내산 언약에서 볼 수 있듯이 야웨는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자신의 거룩한 백성이
요 제사장 나라로 선포하신다(출19:5-6). 백성의 상대적 개념은 왕이 아닌가? 하나님은 이미
시내산 언약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왕이심을 세계 만방에 선포하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정(神政)정치를 거부하고 왕정을 요구했던 것은 왕의 기본 의무가
자기 백성들을 대적으로 손으로부터 구원하고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에 있었기 때문이다(삼
상8:5,20). 이 사실은 백성들의 왕정의 요구에 놀란 사무엘에게 야웨께서 ‘그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한 것이다’(삼상8:7)라고 말씀하신 데서
엿볼 수 있다. 전쟁에서의 승리와 대적으로부터의 안전 그리고 진정한 나라의 번영과 안정
은 참된 왕이신 야웨께 달려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어리석게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야웨는
온 우주의 왕이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왕이시요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
의 왕이시다.
2. 신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름
가. 하나님(θεός, 데오스)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명칭 중에 엘(El), 엘로힘, 엘리욘, 엘 샤따이 등에 해당하는 신
약의 명칭은 데오스이다. 이 말은 한글개역 성경에서 하나님으로 번역되었다. 구약의 명칭에
서 보는 것처럼 엘(El)과 더불어 사용된 복합적 용례들이 신약에서도 나타난다. 엘리욘은 휩
시스토스 데오스(Hupsistos Theos)로 번역되었고(막5:7;눅1:32,35,75;행7:48;16:17;히7:1), 샤따이
와 엘 샤따이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판토크라토르(Pantokrator)와 데오스 판토크라토르(Theos
24) 예를 들면, M. Metzger; J. Jeremias; P. Welten; B. Janowski; O. Loretz 등을 꼽을 수 있다.
cf. Loc. cit.
25) cf. Ibid., pp. 961-3.
Pantokrator)로 번역되었다(고후6:18;계1:8;4:8;11:17;15:3;16:7,14).
데오스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모든 자녀들과 각각의 자녀의 하나님으로
간주될 수 있는 보다 더 일반적인 의미로 인하여 나의(mou, 무), 너의(sou, 수), 우리의
(hemon, 헤몬), 너희의(humon, 휘몬) 등과 같은 소유격 후접사들이 동반되어 사용되고 있다
(행2:39;벧후1:1;계4:11;7:12;19:5).26)
신약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데오스의 의미는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마23:9;
롬3:30;고전8:4,6;갈3:20;딤전2:5;약2:19). 하나님의 유일성과 더불어 모든 믿는 이들의 아버지
로서의 하나님께 대한 가장 분명한 신앙은 엡4:6을 통해 고백되고 있다. 이 하나님은 살아계
시며 하나 밖에 없는 참 신이시다(롬3:30;갈3:20;살전1:9;딤전1:17;2:5;유25;cf.요17:3). 이렇듯 참
신에 대한 본질적인 속성을 가리키는 용어임에도 불구하고 가끔 이방의 신들을 표현하는데
에도 사용되고 있다(행17:16,23).
이 외에도 하나님의 탁월성을 표현할 때에 데오스가 사용되기도 하였다. 하나님은 창조
주로서 만유의 주재이시다(행17:24;히3:4;계10:6). 하늘은 그의 보좌이고 땅은 그의 발등상이
다(마5:34;23:22;행7:49). 그 분은 못하실 것이 없는 전능하신 분이다(막10:27). 가장 존귀하신
분이시며(막5:7;눅1:32;행7:48;16:17;히7:1) 만국의 통치자 왕이시다(계15:3).27)
나. 주(κύριος, 퀴리오스)
구약의 헬라어 역본인 LXX(70인역)에서는 이 명칭이 약 9,000회 이상 나타난다. 이 용
어에 걸맞는 구약의 용례들이 많지만 그 중에 아돈( אדן , lord)에 대한 번역으로서 사람에 관
련하여 사용된 경우는 약 190회이다. 아돈( אדן , lord)은 일정한 그룹이나 사회의 최고 책임자
로서 명령권자를 가리키는데(삼상 25장) 호2:16에서는 “주인”과 “남편”이라는 용법으로써 야
웨께 적용되었다(호2:16). 또한 바알( בעל , lord)의 번역으로 사용된 경우는 15회로서 주로 혼
인법이나 재산법 관계에서 나타난다(호2:18;삿19:22-23).28)
그러나 이 용어가 가장 많이 적용되는 히브리어는 역시 야웨( יהוה )이다. 이스라엘 역사
의 전개 결과로 인하여 LXX에서는 야웨라는 명칭을 피하여 아도나이( אדני )라는 용어를 많
이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이스라엘의 야웨 신앙이 포로 이전의 민족적 종교차원에
서 알렉산더 시대(356-323 B.C.) 이후로 국제화되고 있다는 역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야
웨는 창조주이시고 전 우주의 주재이시며 사람의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절대 주권자이시
다.
여기에서 야웨라는 이름이 지니는 특수성을 몇가지 살펴 보면 첫째, 야웨는 그의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다. 둘째, 그는 이스라엘을 애굽의 압제로부터 구출하시고 자
신의 언약 백성으로서 선택하셨기 때문에 법적으로 이스라엘의 주인(Lord)이시다. 셋째, 그
26) L. Berkhof, op. cit., p. 242.
27) Colin Brown ed., The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New Testament Theology, Vol.
II(Grand Rapids: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86), pp. 73-4.
28) Ibid., p. 511.
는 온 우주의 창조자로서 만물을 마음껏 다스릴 수 있는 법적인 주인이시다.29)
신약에 나타나는 κύριος(퀴리오스)의 구절은 모두 약 717개이다. 그 중 누가의 저작(210
회)과 바울의 서신서들(275회) 가운데 가장 많이 나타난다. 이 구절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누
가와 바울이 헬라의 지배하에 살고 있는 청중들을 위하여 쓴 책과 그들에게 보낸 서신들에
서 κύριος(퀴리오스)를 많이 사용하였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반면에 유대적 기독교
인들의 배경을 가지고 있는 마가복음에서는 겨우 18회 정도 나타날 뿐이고 그것도 대부분
인용구절에서 발견할 수 있다.30) 신약에서 κύριος(퀴리오스)가 사용되는 경우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31)
첫째, 주인(lord)과 종이라는 사회적인 신분 관계에서 통속적 개념으로 사용되었다(마
10:24f.;18:25,27;25:19;눅12:36f.,46;엡6:5,9;골3:22). 즉, 헬라어 κύριος(퀴리오스)는 소유주(막12:9;
눅19:33;마15:27;갈4:1) 또는 고용주(눅16:3,5)를 의미한다. 아내에게 남편은 κύριος(퀴리오스)
이다(벧전3:6;cf.창18:12 in LXX).
둘째, 하나님의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앞에서 보았듯이 구약의 야웨에 해당되는 신의 명
칭으로 가장 많이 쓰였다. 특히 다양한 복합어들이 함께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주의 손
(눅1:66;행11:21), 주의 천사(마1:20;눅1:11;행5:19 등), 주의 이름(약5:10,14), 주의 영(행5:9;8:39),
주의 말씀(행8:25;12:24;13:48f.;15:35f.) 등이다. 또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이라는 문형도 구
약에 근거한 용법들이다(롬12:19=신32:35;고후6:17=사52:11;계1:8 cf. 출3:14). 특히, 요한계시록
에서는 “알파와 오메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 “시작과 끝”, “처음
과 나중”, “주(야웨) 하나님” 등과 같은 여러 종류의 표현으로써 강조되고 있다(계
1:4,8,17;2:8;4:8;11:15,17;16:7;19:6;21:6;22:6,13).
셋째, 예수님을 주(κύριος, 퀴리오스)로 호칭한다. 지상 사역 중의 예수님을 주로서 불렀
다(마7:21;17:4;21:29ff.;막2:28;눅6:46 등).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은 주이
시다(롬10:9;고전12:3;빌2:11). 그는 모든 산 자와 죽은 자를 다스리시는 주이시다(롬14:9). 그
는 주의 주이시고 만왕의 왕이시다(계1:5;17:14;19:15f.). 그는 우리의 구세주이시며 다시 오실
심판의 주이시다(빌3:20;고전1:7-8;5:5;고후1:14;살전5:2;살후1:9;2:1,8;딤전6:14).
다. 아버지(πατηρ, 파테르)
파테르(πατηρ)는 구약 성경의 압( אב , 아버지)에 해당되는 용어로서 부모와 자식 간의 사
랑과 정을 듬뿍 느끼게 하는 용어이다. 어머니(메테르)와 더불어 인도-유럽어원을 가지고 있
다. 파테르(πατηρ)의 가장 흔한 용례는 역시 아버지 또는 조상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신, 하나님의 명칭으로서 이 용어가 사용되었다. 그 이유는 사람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으로부터 기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흔적은 이방인들의 풍습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우가릿(Ugarit)의 신 엘(El)은
29) Ibid., p. 512.
30) Ibid., p. 513.
31) Ibid., pp.513-18.
“인류의 아버지”로, 고대 바빌로니아의 달신 신(Sin)은 “신들과 사람의 아버지”로 불리웠다.
그리이스 시대의 제우스(Zeus)도 “사람과 신들의 아버지”로 불리웠다.32) 그러나 구약에서
하나님이 아버지로 불리워진 것(신32:6;사63:16;64:8;렘31:9;말1:6;2:10 등)은 이스라엘의 창조
주이시고 구속주이시며(출4:22;신14:1f.;호11:1ff.) 그들을 선택하여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사
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물론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분(렘31:9,20;호11:8)으로서의 이
미지 뿐만 아니라 한 가정의 아버지와 같은 권위와 능력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은
존경과 순종의 대상이시다(신32:5f.;렘3:4f.,19;말1:6).
신약에서 언급되는 아버지의 용례 중 약 245회는 신앙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을 지칭하는
것이고 약 157회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사용되고 있다. 특히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여러번 호칭하셨다. 마가복음서에 3회,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서의 병행구에서 4
회, 누가복음서의 독특한 구절에서 4회, 마태복음의 나머지 부분에서 31회, 요한복음에서
100여회 등으로 분포되어 있다. 특히 예수님은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부르셨는데(마
11:25-27) 예수님이 행하신 대부분의 기도문이 그 증거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마
26:39,42;막14:36;눅10:21;22:42;23:34,46;요11:41;17:1,5,11,21,24f.). 그 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
“너희 아버지”라고도 호칭하셨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자신이 하나임을 강변하
셨다(요10:30).33)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서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아버지되심을 약 40여회 언급하고 있다.
그 양태도 다양한데 축복의 메시지(롬1:7;고전1:3;고후1:2)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찬미
(롬15:6;고후1:3;엡1:3)를 통하여도 언급한다. 또한 교리적 신조 구절(고전8:6;엡4:6)과 기도문
(엡5:20;골1:12)에서 언급하고 있다. 그의 어법들은 대개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우리 아버
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롬15:6;고후1:3;11:31) 등이다.34)
사도 요한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특별한 관계, 즉 삼위 중 제 1위와 제 2위되
시는 부자관계를 표현하는데 자주 사용하였다(요6:57;10:30;14:10f.).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을 완전히 알고 계셨고(요3:35;10:15;16:15)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 그 자체였다(요
1:18;8:26-29;12:49f.;14:7,9). 그러나 기독론적 연관없이 하나님의 아버지이심을 표현하는 엡
3:14f.;히12:9;약1:17 등에서는 하나님의 창조주이심과 보편적 개념의 우주적 아버지이심을 보
여주고 있다.35)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은 흥미있는 철학적 해석을 지니고 있다. 플라토(Plato)는 하나님의
창조주이심에 근거하여 “우주의 아버지”이심을, 스토아 학파(the Stoics)에서는 온 우주를
주재하시는 “하나님의 권위”, 즉 그의 자녀들의 “창조주요 아버지며 주재자”이심을 강조하였
다.36)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은 디아스포라(Diaspora)의 유대인들에게도 중요한 사실이었다(마
카비 II 5:7;지혜서2:16ff.;토빗13:4). 또한 유대인 철학자 필로(Philo)와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
스(Josephus)에게서도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37)
32) Ibid(vol. I), pp. 615-16.
33) Ibid., p. 619.
34) Ibid., p. 620.
35) Loc. cit.
36) Ibid., p. 616.
라. 왕(βασίλευς, 바실류스)
헬라세계에서 이 용어는 원래 일반적인 통치자 내지 지배자를 가리켰으나 후에 “왕"을
지칭하는 특별한 용어가 되었다. 한 예로서 고대 헬라어 문화권 중에 미케네 문명의 헬라어
에서 바실류스((βασίλευς)는 한 국가의 주권자를 의미하지 않고 보다 하급의 제후나 지도자
를 의미했다. 신적 통치자로서 왕을 가리키는 용어로는 αναχ(아낙스)38)가 사용되었었는데
점차 그 개념은 사라져 갔다. 그러나 호머(Homer)에 보면 바실류스((βασίλευς)가 영향력의
범주의 크기에 상관없이 세습적이거나 합법적인 통치자로 나타난다.
헬레니즘 세계에서 신적 왕권의 개념은 플라토(Plato)에게서 유래했다기 보다는 마케도
니아 군주체제(the Macedonian monarchy)39)의 정치적 전승이나 아카이메네스 왕조(the
Achaemenidae)40)의 신적 왕권 전승에서부터 온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 두 가지 전승의 복
합적인 이미지는 알렉산더 대제(Alexander the Great, 356-323 B.C.)의 인품에서 어느 정도
보존되었다고 할 수 있다.41)
이렇듯 신적 왕권의 개념을 알렉산더 대제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로마황제
숭배를 통해 부활되었다고 생각한다. 즉, 헬레니즘 사상은 황제들을 신의 화신(化身)으로 이
해하였는데 아우구스투스(Augustus, 63 B.C.-A.D. 14)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
나 예수를 주(Lord)로 선포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고백은 이와 같은 로마 황제의 절대주
권에 정면 도전하는 것으로서 첫 3세기 동안 심한 종교적 박해를 당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42)
고대 헬라세계의 문헌들을 살펴 볼 때 어원적인 면에서 왕(βασίλευς, 바실류스)은 왕국
(βασιλεια, 바실레이아)보다 앞선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왕국은 왕보다 더 많이 사용되었
다. 특히 공관복음서에 많이 나타나는데 “하나님의 나라” 또는 “하나님의 왕국”이라는 개념
과 더불어 많이 사용되었다. 또한 바울서신을 비롯한 기타의 서신들에도 많이 등장하는 왕
(βασίλευς, 바실류스)의 개념은 구약 성경과 유대주의(Judaism)에서 이미 하나님과 그리스도
에 대하여 부여하고 있는 사상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신약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왕 개념을 말할 때 세속적인 왕과 엄격히 구별되는 절대적
왕권을 강조한다. 그리고 여러 번의 언급되는 지상의 왕들은 대부분 하나님과 그의 기름부
은 자(그리스도)에 대적하는 자들로 묘사되어 있다. 예를 들면 바로(행7:10;히11:23,27), 헤롯
대왕(마2:1ff.;눅1:5), 헤롯 안티파스(마14:8), 헤롯 아그립바 I 세(행1:1,20), 헤롯 아그립바 II
세(행25:13f.), 아레타스(고후11:32), 그리고 로마의 황제들(딤전2:2;벧전2:13;계17:9ff.)이다. 신
37) Ibid., p. 618.
38) 그리이스 신화에 등장하는 거인족(Gigantes)의 한 사람으로서 아스테리우스(Asterius)의 아버
지로 나타난다.
39) 고대 그리이스 북쪽에 있던 발칸반도의 고대 왕국을 일컫는다.
40) 주전 550년경부터 주전 331년경까지 통치한 고대 페르시아의 왕조를 일컫는다.
41) Colin Brown ed., op. cit(vol. II)., p. 372.
42) Ibid., p. 373.
약 성경은 이러한 왕들을 가리켜 “이 땅의 왕들”(마17:25;행4:26;계1:5;6:15), “이방나라의 왕
들”(눅22:25), “전 세계의 왕들”(계16:14;cf.시2:2;89:27)이라고 불렀다.43)
그러나 신약에 언급되는 다른 지상의 왕들과는 대조적으로 다윗과 멜기세덱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왜냐하면 우선 다윗은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왕이요(삼하7), 예수 그리스
도의 조상이기 때문이다(마1:6;행13:22). 멜기세덱은 살렘왕이요 대제사장(창14:18)으로서 대
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모형이기 때문이다(히7:1ff.).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으로 말하자면 다
윗의 혈통에서 나신 유대인들의 메시야-왕(the messianic King)이요(롬1:3;마1:6), 이스라엘의
왕이시다. 그는 하나님의 왕되심과 동일한 권세를 가지신 분이시다.
따라서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다스리심의 성격이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통
치자이신 그리스도에게로 귀착되어 나타난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실 뿐만 아니
라 다스리시는 통치자 왕이시다. 이 사상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구절은 롬11:36이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
로다 아멘(롬11:36).
그리스도는 장차 오실 재림 주로서 철장권세를 가지시고 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요 영
원히 다스리실 하나님 자신이시다. 아무도 감히 그를 대적할 수 없고 능히 무너뜨릴 수 없
는 난공불락의 절대자 왕이시다.
그리스도의 왕권은 이중적이다. 첫째는 영적 왕권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리
시는 통치권, 즉 그의 백성과 교회에 대한 통치를 말한다. 왕이신 예수님은 말씀과 성령의
영적 방법으로써 죄인을 구원하여 교회를 세우시고 통치하시며 보호, 완성하시는 사역을 하
신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고전11:3;엡1:20-22;5:23). 그리고 이
권세는 현재성(마12:28;눅17:21;골1:13)과 미래성(마7:21;19:23;눅22:29;갈5:21;엡5:5;딤후4:18;벧후
1:11)의 양면성을 띠고 있다.
둘째는 우주적 왕권이다. 온 세상의 개인, 사회, 민족의 운명을 지도하시고 자기 피로
구속하신 백성들의 영적 성장과 성화(聖化)와 최종적인 완성을 증진시키는 사역을 가리킨다.
이것은 원수들을 굴복시키시고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는 사역(마28:19-20;엡1:20-22;고전15:27)
을 말하며 영적 왕권과 더불어 절대적인 주권으로써 만유의 주재되심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살펴 본 하나님의 다양한 명칭들은 다양한 종류만큼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
다. 우리가 성경을 묵상할 때 이와 같이 다양한 의미 중에 어느 것이 강조되어 계시되었는
지 유의하여야 할 것이다. 일점일획이라도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에 우리는 이
전보다 더욱 세심하게 귀를 기울이되 입술을 열어 하나님을 부를 때에도 아무 생각없이 호
칭하지 말고 의미를 생각하여 하나님 면전에서의 겸손하고 진지한 자세를 가지고 호칭하여
야 할 것이다.
43) Ibid., p. 378.
과연 하나님의 우리 존재의 창조자이시고 생명의 구속주이시며, 우리의 필요를 능히 채
우시고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시는 전능자시오 자비와 긍휼의 아버
지가 아니신가? 그 분은 영원무궁토록 존귀와 영광을 받으실 거룩하신 분이시오, 온 우주에
광대하신 그의 이름은 영원토록 찬양 받으실 것이다. 할렐루야!

출처 : 예장 서울노회
글쓴이 : 최정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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