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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스크랩] 웨슬리의 구원론 / 조종남박사

웨슬리의 구원론


                                                                            한국 최초의 웨슬리 학자가 말하는 ‘웨슬리의 구원론’
                                                                                                명지대 석좌교수 조종남 박사의 웨슬리 신학 [2007-01-25 05:53]

 


웨슬리 신학은 그 출발과 형성에서부터 특징을 지니고 있다. 웨슬리는 본인이 어떻게 하면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느냐 하는 심각한 실존적인 탐구에서 마침내 ‘가슴이 뜨거워지는 신앙 체험’을 하고 확신과 열정을 가지고 선교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의 신학은 칼빈에게서 보듯이 논리적인 개진을 통하여 형성된 것이 아니라 그의 설교의 광장에서 형성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웨슬리는 추상적인 논리에 빠지는 과오를 범치 않을 뿐 아니라, 전통적으로 이어 내려온 신학의 내용에 피와 살을 붙여서 산 신학을 만든 것이다. 사도 바울이나 초대 사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정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과정에서 신학을 개진한 것과 흡사하다.

웨슬리가 자신의 설교집 서문에서 말하고 있듯이, 설교를 통하여 성서에서 발견한 구원의 도리를 설명하려는 것이 그의 주요한 관심이었다. 그러므로 웨슬리 신학의 핵심은 바로 구원론에 있다. 웨슬리는 인류의 구원이 하나님의 사랑 곧 구속의 은총에 의한 것임을 강조하였다. 구원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총에 의하여 사람이 믿음으로 받는다고 강조하는 면에서 웨슬리는 칼빈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웨슬리는 칼빈보다 더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의 넓이와 깊이를 강조한다는 데서 구분된다. 또한 구원론에 있어 종교개혁자들이 의인을 강조하였다면, 웨슬리는 성화를 더 강조하였다. 사실 웨슬리의 구원론은 성화론 중심의 구원론이다. 윌리암 홀던(William Hordern)이 지적한대로 웨슬리야말로 성화의 교리를 어느 신학자보다 강조하고 광범위하게 개진한 학자일 뿐 아니라, 이 성결의 복음을 통하여 18세기 영국 교회와 사회를 새롭게 한 전도자이다.

그러면 웨슬리가 칼빈과는 달리 하나님의 은총의 넓이를 어떻게 설명하였으며 또한 은총의 깊이를 말하는 그의 성화론의 특징은 무엇인가를 살펴보기로 한다.

Ⅰ. 모든 인류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은총

웨슬리는 복음을 말함에 있어 먼저 우리 자신이 죄인으로서 자기 자신의 힘으로는 자기 구원을 위하여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무능력자라는 것을 인식시키고 다음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제시하곤 하였다.

1. 자기를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죄인

인간의 죄를 심각히 인지한 점에서 웨슬리는 칼빈과 맥락을 같이한다. 웨슬리에 의하면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생명을 상실했고 영적인 생명의 관계를 상실했다. 아담은 전 인류를 대표하는 시조이기에, 아담이 범죄하였을 때 그 영향은 온 인류에게 미쳤다. 따라서 인간의 이성과 자유의 기능은 부패되었으며,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사랑과 순종은 자기 사랑과 자기 의지대로 대치되었다. 그러므로 웨슬리는 모든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했고 진노의 자식이 되었다고 보았다. ‘진노의 자식’이란 원죄의 죄책을 함축하는 말이다. 곧 아담의 죄로 인하여 죄책이 모든 사람에게 전가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웨슬리는 변론하기를, 지금까지 어느 시대 어느 사람이든지 심지어 영아들까지도 죽음을 맛보았다는 사실은 이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였다. 왜냐하면 죄로 인하지 않고서는 죽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만일 영아가 죄인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리스도가 온 인류의 구주가 될 수 있겠는가라고 하며 다음과 같이 반문했다.

“만약 우리가 영아의 원죄를 부정한다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순전하고 죄책도 없는 피조물을 형벌하신다는 말이 되지 않는가? 그러므로 영아도 원죄를 물려받은 죄인이며, 따라서 그리스도의 공로가 없다면 멸망 받을 수 밖에 없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웨슬리는 어느 학파 못지않게 인간의 죄를 강조한다. 그는 원죄를 인정하는 것이 이방종교와 기독교를 구분하는 첫 근거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진리는 은혜를 받은 영안에만 알려진 진리요, 이방인들은 자기의 죄와 부패를 깨닫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기에 웨슬리는 ‘은총만이요(sola gratia)’를 주장하는 정통신학자이다. 일부에서 웨슬리가 인간의 자유의지를 말한다 하여 그를 마치 페라기우스주의자나 인본주의 신학자라고 하는 것은 그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오는 말이다.

그러면 웨슬리는 그 당시의 칼빈주의자들과 어떻게 다른가? 이에 대하여 웨슬리는 죄를 강조하는 면에서는 ‘칼빈주의의 끝’에 이르렀다. 차이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은총을 어떻게 역사하시느냐에 있어 머리칼 하나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했다.

2. 선행하는 하나님의 은총과 인간의 책임

구원에 있어 하나님의 은총을 강조함에 있어서 웨슬리는 칼빈과 입장을 같이 한다. 우리는 칼빈주의가 하나님의 은총을 강조함에 있어서 큰 공헌을 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실 칼빈이 신학을 수립할 때는 르네상스의 영향 하에 중세기의 신 중심적 신앙 문화를 대치하기 위한 인본주의 운동이 확산될 때였다. 고전적 칼빈주의는 이런 흐름에 강하게 반대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고전적 칼빈주의가 5대 교리를 기초로 하여 이중예정론으로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를 설명하는 데 있어, 구원이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에 따르는 것일 뿐임을 강조해 마치 인간에게는 아무 책임이 없는 것처럼 여겨지고 말았다.

웨슬리는 이를 수용할 수가 없었다. 웨슬리는 ‘하나님의 온전한 가르침’을 설교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인간의 책임 간의 관련이 분명히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면에서 웨슬리는 하나님께서 은총을 어떻게 역사하시느냐에 있어 칼빈과는 머리칼 하나의 차이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웨슬리는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를 어떻게 보았는가? 웨슬리는 설교의 광장에서 인간을 구속론적 구조로 보았다. 그는 인간은 이미 하나님의 선행적 은총의 역사 아래 있기에 타락한 인간도 이미 은혜의 계약 아래 살고 있다고 본 것이다. 웨슬리에 의하면 선행적 은총에 의하여, 곧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원죄의 죄책은 인간이 태어나자마자 제거되었으며, 모든 사람에게는 초자연적으로 약간의 자유의지가 회복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웨슬리가 말하는 선행적 은총이 칼빈주의가 말하는 일반적 은총과 아주 흡사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칼빈주의의 일반은총은 특별은총과 단절되어 있는데 반해, 웨슬리는 은총의 역사의 계속성을 주장하면서 선행적 은총을 하나님의 구원코자 하시는 은총의 역사의 시작으로 본다. 그리하여 웨슬리에 의하면, 선행적 은총은 깨우치는 은총, 의롭게 하는 은혜, 거룩케 하는 은혜 그리고 영화롭게 하는 은총으로 이어지면서 역사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웨슬리는 하나님의 은총을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사랑(은혜)으로 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사람에게 하나님께 호응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는 것으로 본다. 곧 하나님의 은혜를 인간의 호응을 요청하는 은혜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은총으로 역사하시기에, 사람은 할 수 있고 따라서 사람에게는 해야만 할 책임이 있다고 웨슬리는 주장한다.

그러므로 웨슬리가 인간의 책임을 말하는 근거는 결코 페라기우스주의적인 인본주의에 있지 않다. 반 페라기우스주의적 입장도 아니다. 그의 입장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 하에서, 곧 하나님이 홀로 은총으로 역사하신다는 테두리 안에서의 신인 협동을 말하는 것이다. 스타키는 이를 복음적 협동설이라고 불렀다.

여기에서 우리는 웨슬리가 설교의 도장에서 개진한 신학의 강점을 엿볼 수 있다. 즉 신학은 형식 논리에 따라 추리할 때에 결론이 양자택일에 필연적으로 귀착된다. 그러나 웨슬리는 설교의 도장 곧 인격적인 대화의 관계에서 신학을 개진함으로써 양자의 주장을 모두 포괄하는 결론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로저스가 지적한 대로 자연과 은총은 별개지만 웨슬리는 이들을 생명력 있고 기능적인 관계를 갖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접근방식은 웨슬리 신학의 방법론이 가지는 특색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웨슬리의 신학방법의 역동성이다. 그리고 만일 이것이 무시된다면 웨슬리의 입장에 대한 해석은 필연적으로 모호해지거나 타협하게 돼 웨슬리를 정당하게 다루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웨슬리는 이런 독특한 방법으로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을 이해하였던 것이다. 그는 타락한 인간을 아담 때문에 죄인으로 보는 동시에 그리스도 덕분에 은혜의 수혜자로 본 것이다.

웨슬리에 의한 이 같은 접근 방식은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책임성의 관계에 적용시켜 볼 때 그 의의가 크게 드러나게 된다. 또한 이 점에 있어 웨슬리는 칼빈주의와 대조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고전적 칼빈주의에 의하면, 구원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예정으로 시작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구원을 받고 못 받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결정에 있는 것이요, 사람에게는 책임이 없다. 그리하여 믿음은 예정된 자에게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그 후에야 믿음의 선물인 회개를 통하여 주님을 닮아가는 성화에 들어간다. 따라서 칼빈주의에 있어서의 구원의 순서는 1. 중생 2. 믿음 3. 회개 4. 회심의 순이다.

그러나 웨슬리의 신학에 있어서는 위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구원은 하나님의 선행적 은총의 역사로 시작한다. 이 은총에 의하여 사람은 자기의 죄를 깨닫는 회개를 할 수 있게 되며, 이 회개와 믿음으로 중생의 은혜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웨슬리에 있어서는 회개가 믿음에 선행하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회개는 하나님의 선행적 은총의 역사 가운데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의 진노에서 피하고자 욕망하는 것이다.

웨슬리에 있어서 이 회개는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를 활용하느냐 안 하느냐는 사람의 책임인 것이다. 이런 면에서 사람은 자기 힘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존재지만, 동시에 자기 운명을 결정할 책임을 가진 존재다. 우리는 회개에 따라 주시는 믿음과 은혜라는 선물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웨슬리의 전도 메시지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이었다.




조종남 박사

1927년 경기도 연백군에서 출생한 조 박사는 서울신학교와 숭실대 철학과를 거쳐 미국 애즈베리 신학교와 미국 에모리대학교 대학원에서 목회학석사(M.Div.), 철학박사(Ph.D.)를 각각 취득했다. 이후 계속적인 연구활동으로 1987년 미국 아주사 퍼시픽대학교에서 명예인문학박사학위(H.L.D.), 2001년 에즈베리 신학교에서 명예신학박사학위(D.D)를 수여받았다.

1967년 서울신학대학에 교수로 부임한 이래, 서울신학대학 제3~6, 9대 학장, 대한성서공회 회장, 세계복음주의 신학위원회 위원, 세계복음화 아시아 로잔위원회 회장, 세계복음화 로잔 국제위원회 부회장, 88년 올림픽 선교협의회 회장,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 전국신학대학협의회 이사장, 한국웨슬리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182830

출처 : 예장 서울노회
글쓴이 : 정원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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