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다윈 폭격
ABDACOM의 보급항은 호주 북서부에 자리잡은 다윈이었다. 다윈은 호주 본토에서는 가장 북쪽에 있는 항구로서 동남아시아에 가장 가까웠지만 그래도 전선에서 너무 멀어서 보급항으로 부적합했다. 또한 다윈은 단순히 항구로서도 한계가 많았는데 정박지는 널찍했으나 조수간만의 차가 6m에 달하여 조류가 강했다. 다른 문제는 수심이었다. 원래 항구는 어느 정도 깊은 것이 좋으나 다윈의 경우는 30m 가 넘었는데 이는 지나치게 깊은 것으로 배가 가라앉으면 건질 수 없었다. 진주만의 수심은 약 15m 였는데 야마토급이나 아이오와급의 흘수가 11m 정도였으니 당시 항구의 수심은 그정도면 충분했다.
다윈의 항구시설도 빈약했다. 하역장소라고는 L-자형 부두 하나가 전부였는데 바깥쪽 선석의 길이는 170m, 안쪽 선석의 길이는 120m 로 중간 크기의 화물선 2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작은 규모였다. 하역 장비도 원시적이어서 이동식 수동기중기 2개(10톤 짜리와 5톤 짜리), 그리고 이동식 동력기중기 2개(3톤 짜리와 1.5톤짜리)가 있을 뿐이었다. 하역용 거룻배는 개인 소유가 4척(10톤에서 30톤 사이), 그리고 해군 소유의 70톤짜리 2척이 있었다.
교통도 불편했다. 육로로는 접근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에 외부로 나가려면 1주일에 한번 꼴로 들르는 배를 타야만 했으며 행선지에 따라서는 그곳에 가는 배가 올 때까지 최대 1달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었다. 한마디로 호주 대륙에 있었지만 외딴 섬이나 마찬가지였다. 조그만 시가지는 거의 모두가 목조건물로서 미국의 서부개척시대를 연상케 했다. 주민 수는 약 4,000명이었으나 진주만 기습 이후 어린이와 부녀자 약 1,500명을 소개하여 공습을 당한 1942년 2월 19일에는 공무원, 민간항공사 직원, 부두노동자, 건설인부, 그리고 주로 중국인과 백인으로 이루어진 소수의 사업가 등 2,500명 정도가 남아 있었다.
연합군은 다윈을 보급기지로 개발하기 위하여 창고 몇동과 8,000톤짜리 석유탱크 9개, 12,000톤짜리 석유탱크 2개를 건설했다. 시가지 북서쪽의 비행장은 확장하여 공습 당시 미국제33추격비행대대(임시)가 주둔했으나 조만간 자바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북동쪽에 새로 만든 비행장에는 허드슨 폭격기를 보유한 호주제13비행대대가 주둔했으며 시가지에 가까운 민간비행장에는 호주제12비행대대의 위라웨이 전투기 5대가 주둔했다. 항구에는 작은 부유선거도 하나 갖다 놓았다. 공격을 받을 당시 다윈을 지키던 호주육군병력은 1개 여단과 지원부대였으며 해군은 1,105명, 공군은 약 2,000명이었다.
일본군은 연합군의 보급기지인 다윈의 기능을 정지시키려고 시도했다. 일본잠수함들이 기뢰를 부설했으나 결과가 신통치않자 항공모함을 동원한 공습을 계획했다. 2월 10일에 일본의 4발 대형비행정이 다윈 부근까지 날아와 항구를 정찰하고 사라졌다. 일본군은 다윈을 공습함으로써 티모르 등 요지 공략시 배후의 위협을 없애려 했다.
1942년 2월 15일 오후 2시에 나구모 주이치 중장의 기동부대가 다윈 공격을 위하여 팔라우의 정박지를 떠났다. 진주만 기습 이래 단일 목표를 노린 함대로서는 가장 강력한 기동부대는 제1항공전대(아카기, 카가), 제2항공전대(소류, 히류), 제8전대(도네, 치쿠마), 제1수뢰전대로 이루어져 있었다. 제1수뢰전대는 경순양함 아부쿠마, 제17구축대(이소카제, 우라카제, 타니카제, 하마카제), 제18구축대제1소대(카스미, 시라누이), 그리고 제27구축대제2소대(아리아케, 유구레)로 이루어져 있었다. 카가는 2월 9일에 팔라우 정박지에서 자리를 옮기다가 암초를 들이받아 속력이 18노트로 줄었으나 작전에 참가했다.
기동부대는 2월 19일 아침에 티모르 동쪽, 다윈에서 북서쪽으로 약 320km 떨어진 발진해역에 도착했다. 발진은 오전 6시 52분에 시작하여 7시 30분에 마쳤다. 다윈공격대는 제로기 36대(각 항모에서 9대씩), 99식함상폭격기 71대( 히류 17대, 나머지 3척 18대씩), 그리고 800kg 짜리 폭탄을 장착한 97식함상공격기 81대(카가 27대, 나머지 3척 18대씩)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지휘는 진주만 기습과 마찬가지로 후치다 미츠오 중좌가 맡았다. 비슷한 시각에 켄다리2 비행장에서는 가노야 및 제1항공대의 육상공격기 54대가 이륙했다.
다윈으로 접근하는 도중 히류의 제로기 9대는 본대와 분리되어 앞서 나갔다. 히류의 제로기들은 도중에 미군의 카탈리나 1대를 만나 격추하고 북서쪽으로부터 다윈에 진입했다.
반면 후치다가 이끄는 본대는 다윈에 접근하자 호주군의 의표를 찌르기 위하여 빙 돌아서 남동쪽으로부터 다윈에 진입했다.
1942년 2월 19일 목요일 아침의 다윈은 평온해 보였다. 폭뢰 200톤을 실은 화물선 넵튜나(5,952톤)는 부두의 바깥쪽에, 부두 확장용 목재를 실은 호주화물선 바로사(4,265톤)는 부두의 안쪽에 접안하고 있었다.
정박지에는 티모르로 가다가 회항한 미국수송선 메그스(7,358톤), 마우나로아(5,436톤), 포트마(5,551톤), 그리고 영국수송선 툴라기(2,281톤)가 있었는데 싣고 있던 병력은 모두 상륙시킨 상태였다.
필리핀으로 항공유를 운반하려던 유조선 애드미럴 할스테드(3,289톤)와 다윈에 공급할 연료를 싣고 있던 영국유조선 브리티시 모터리스트(6,891톤)도 정박 중이었고 싱가포르로 가려던 호주병원선 마눈다(9,155톤)와 탄약을 실은 호주수송선 질랜디어(6,683톤)도 있었다.
미국구축함 피어리(1,190톤)는 연료보급을 위해 머무르고 있었다. 수상기모함 윌리엄 프레스톤(1,308톤)은 항구의 동쪽에 정박한 채 카탈리나를 지원하고 있었으며 함장 에서리지 그랜트 소령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하여 상륙한 상태였다.
10톤급의 거룻배까지 포함하여 그날 다윈항에 있던 배는 총 57척이었다.
일본군의 다윈공습상황도. <Rising Sun, Falling Skies> Jeffrey R. Cox, Osprey, 2014. P.217
2월 19일 아침에 민간 비행장의 위라웨이 전투기들은 지상에서 정비를 받고 있었다. 북동쪽의 비행장에는 티모르에서 철수한 호주제2비행대대의 허드슨 폭격기 6대가 착륙했다. 제10정찰비행단의 카탈리나 5대는 티모르해로 정찰나갔는데 이중 토머스 무어러 중위가 조종하는 기체는 히류의 제로기를 만나 격추되었다.
오전 9시 15분에 플로이드 펠 소령이 이끄는 제33추격비행대대(임시)의 P-40 워호크 10대가 자바로 가기 위하여 중계지인 티모르의 쿠팡을 향해 이륙했다. 하지만 약 20분 후에 티모르 상공의 날씨가 나쁘다는 기상 정보를 받은 펠 소령은 다윈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오전 9시 37분에 다윈에서 북쪽으로 80km 떨어진 배서스트섬의 해안감시대원인 존 맥그래스 신부가 다윈으로 향하는 일본기들을 발견하고 "대규모 편대가 남쪽으로 향함. 고공" 이라고 보고했다. 쿠팡으로 가다가 돌아오는 펠 소령의 P-40들과는 방위가 달랐음에도 다윈에서는 P-40이라고 속단했다. 그리하여 레이더가 없는 다윈이 공습을 미리 알아차리고 대비할 유일한 기회는 사라졌다. 잠시 후 실제로 펠 소령의 P-40들이 돌아와 5대는 착륙하고 나머지 5대는 상공에서 초계했다. 그때 일본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진주만에서처럼 일본군은 또다시 기습에 성공했다. 제10초계비행단의 정비병인 톰 앤더슨은 남동쪽에서 접근하는 일본기를 처음 본 순간 마침내 아군의 대규모 증원이 도착했다고 생각했다.
오전 9시 45분에 히류의 제로기 9대가 다윈 상공에 나타나 초계중이던 P-40전투기 5대를 공격했으며 잠시 후 본대의 제로기들이 가세했다. 압도적인 열세에 몰린 P-40 전투기 5대 중 4대가 순식간에 격추되었다. 이미 착륙한 P-40전투기 5대 중 3대가 다시 이륙하는데 성공했으나 역시 격추되었으며 나머지 2대는 이륙하는 도중 지상에서 파괴되었다. 이 과정에서 격추된 제로기는 1대였다. 이날 미육군 및 항공대의 전사자는 9명이다.
오전 9시 57분에 후치다의 본대가 도착했다. 공습경보는 58분에 울렸으며 동시에 3.7인치 대공포 16문이 사격을 시작했다. 정박 중이던 피어리와 프레스톤도 급히 기동을 시작하면서 사격했다. 곧이어 99식함상폭격기들이 떨어뜨린 폭탄이 함선에 명중하기 시작했다. 프레스톤의 후갑판에 폭탄이 떨어져 불이 났으며 프레스톤 옆에 계류되어 있던 카탈리나 3대는 기총소사를 받아 파괴되었다. 프레스톤의 전사자는 14명, 카탈리나를 운용하던 제10정찰비행단의 전사자는 16명이었다.
항구 안에서 가장 큰 전투함이었던 구축함 피어리는 일본군의 집중공격을 받았다. 피어리는 필사적으로 회피운동을 했으나 세계 최고 수준인 일본군 함폭조종사의 폭탄을 피하기에 항구는 너무 좁았고 배들은 너무 많았다. 처음의 몇발은 잘 피했으나 곧이어 5발의 폭탄을 연속적으로 얻어맞았다. 첫번째 폭탄은 함미에 떨어져 조타기계실을 침수시키고 프로펠러 1개를 날려버렸다. 두번째 폭탄은 소이탄이었는데 굴뚝 사이에 떨어져 주변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3번째 폭탄은 기관실에 명중했는데 불발탄이었다. 네번째 폭탄은 전방 탄약고에 명중했다. 대폭발이 일어나 함의 핵심부분이 파괴되었으며 함장 존 버밍햄 중령을 포함하여 많은 승조원이 사망했다. 마지막은 역시 소이탄이었는데 후방기관실에서 폭발했다. 피어리는 오후 1시에 함미부터 침몰했다. 마눈다에서 파견한 보트와 호주해군의 조사선 서던 크로스가 생존자를 구조했으나 함정 주변을 불타는 기름이 둘러싸고 있어서 사상자가 늘었다. 피어리의 승조원 132명 중에서 88명이 전사했다. 생존자 44명 중 장교는 포술장 커틀렛 중위가 유일했는데 공격을 받을 당시 육상의 병원에 입원중이어서 생명을 건졌다.
DD-226 피어리의 침몰 광경. https://en.wikipedia.org/wiki/Bombing_of_Darwin
폭뢰 200톤을 싣고 부두에 접안 중이던 넵튜나에도 폭탄이 명중하여 어마어마한 폭발을 일으켰다. 커다란 불꽃과 함께 검은 구름이 하늘로 솟구쳤으며 폭발의 충격파가 시가지를 뒤흔들었다. 프레스톤의 함장 그랜트 소령은 육상에서 열린 회의를 마친 후 보트를 타고 프레스톤으로 돌아가다가 넵튜나의 폭발로 인한 너울에 휘말렸다. 보트는 그대로 뒤집혔고 가까스로 익사를 면한 그랜트 소령은 가까운 부표로 헤엄쳐 가서 구조될 때까지 매달려 있어야만 했다. 너덜너덜해진 넵튜나는 곧 침몰했으며 36명의 승조원이 목숨을 잃었다. 또한 부두 주변에 있던 민간인 23명도 폭발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 이 폭발로 부두의 연료파이프가 끊겨 불타는 기름이 바다로 쏟아졌다.
넵튜나가 폭발하는 순간. 앞에 보이는 배는 호주해군의 소해함 델로레인. https://en.wikipedia.org/wiki/Bombing_of_Darwin
넵튜나 바로 옆에 있던 화물선 바로사도 폭탄을 맞은데다가 넵튜나의 폭발로 큰 손상을 입었다. 침몰을 막기 위하여 예인선 와토가 바로사를 끌어 해안에 좌초시켰다. 바로사가 싣고 있던 목재는 모두 소실되었으나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다.
티모르로 가던 도중 회항한 수송선들도 피해를 입었다. 미국수송선 메그스는 여러 발의 명중탄을 맞아 후방이 불길에 휩싸인 채 침몰했으며 66명의 승조원 중 1명이 사망했다. 마우나로아는 2발의 폭탄이 열린 선창을 통해 들어와 선저를 직격하는 바람에 용골이 부러지면서 순식간에 침몰했으나 다행히 승조원은 모두 구조되었다. 포트마는 지근탄에 의하여 선체에 구멍이 숭숭 뚫리자 침몰을 피하기 위하여 해안에 좌초했으며 1명이 사망했다. 툴라기도 좌초했으며 사망자는 없었다.
유조선 브리티시모터리스트도 폭탄에 맞아 선미부터 침몰했으며 2명이 사망했다. 질랜디어도 폭탄 1발을 맞고 침몰했으며 사망자는 2명이었다. 호주해군의 보조초계정 마비(14톤)도 지근탄에 의하여 침몰했으나 승조원 4명은 모두 구조되었다.
병원선 마눈다는 명중탄 1발과 지근탄 1발을 맞아 12명이 사망하고 중상자 7명을 포함하여 47명이 부상을 입었다. 애드미럴할스테드도 지근탄으로 피해를 입었다.
99식함상폭격기가 주로 함선을 공격하는 동안 97식함상공격기는 4,200m 높이에서 부두, 기중기, 창고, 석유탱크, 비행장 심지어 시가지도 공격했다. 제공권을 장악한 제로기도 초저공으로 내려와 기총소사를 가했는데 너무 낮게 날아서 사람들은 웃고 있는 조종사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시가지는 불길에 휩싸였으며 민간인 16명이 사망했다. 다행히 석유탱크는 무사했다.
공습은 시작한 지 15분도 지나지 않은 오전 10시 10분에 끝났다. 공격대는 신속하게 북상하여 모함으로 복귀했으며 착함은 오후 12시 42분에 끝났다.
아카기항공대는 모함으로 돌아가던 중 오전 10시 35분에 식량을 싣고 필리핀으로 향하던 수송선 돈이시드로와 플로렌스D를 발견했다. 제2항공전대사령관 야마구치 다몬 소장은 착함한 함재기 중 히류와 소류에서 각 9대씩 18대의 함폭을 뽑아 오후 1시 36분에 발진시켰다. 함폭 18대는 오후 3시 26분에 2척의 수송선을 발견하고 폭격을 가한 후 오후 5시 30분에 귀함했다. 소류의 함폭으로부터 250kg 짜리 폭탄 3발을 얻어맞아 선체에 구멍이 뚫린 돈이시드로는 좌초했고 히류의 함폭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플로렌스D는 침몰했다. 돈이시드로에서는 11명, 플로렌스D에서는 4명이 사망했는데 플로렌스D의 사망자 중 1명은 아침에 제로기에 의해 격추되었다가 구조된 무어러 중위의 카탈리나 승무원이었다.
다윈의 고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켄다리2 비행장을 이륙한 가노야 및 제1항공대의 육상공격기 54대가 정오에 도착했다. 요격하는 연합군기는 없었으며 일본기는 2개의 비행장을 폭격했다. 활주로에는 구멍이 숭숭 뚫렸으며 지상에 주기중이던 비행기 몇대가 파괴되었다.
이로써 다윈 폭격이 끝났다. 일본군의 손실은 히류의 제로기와 카가의 함폭 각 1대였다. 공격대를 수용한 기동부대는 신속하게 북상하여 21일 오전 10시 15분에 켄다리의 스테어링만에 무사히 도착했다.
2월 19일의 폭격으로 다윈에서는 선박 9척(피어리, 넵튜나, 메그스, 마우나로아, 브리티시모터리스트, 질랜디어, 켈랏, 카랄리, 마비)이 침몰했고 3척(바로사, 포트마, 툴라기)이 좌초되었으며 이외에도 프레스톤, 마눈다, 애드미럴할스테드를 비롯한 10척이 크고 작은 피해를 입었다. P-40전투기 11대가 공중전에서 격추되었으며 P-40전투기 2대, 허드슨 6대, 그리고 LB-30(B-24의 파생형) 1대가 지상에서 파괴되었다. 사망자는 236명으로 피어리와 넵튜나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다윈은 당분간 보급항으로서의 기능이 정지할만큼 큰 피해를 입었으며 호주육군은 일본군의 침공에 대비하여 수비대를 증강시켰다. 다윈수비대는 참호를 파고 철조망을 치는 등 지상전투 준비를 서두르는 동시에 다윈을 포기해야할 때를 대비하여 폭격에서 살아남은 석유탱크를 비롯한 중요한 시설에 폭파준비를 했다. 공포에 질린 주민들은 다윈을 떠났다.
침공 우려는 과도한 것이었다. 일본은 호주를 점령할 생각이 없었으며 그럴 능력도 없었다. 하지만 다윈 폭격과 뒤이은 주민의 탈출 소식은 호주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호주인들이 다윈 폭격에서 받은 충격은 미국인들이 진주만 기습에서 받은 충격보다 결코 덜하지 않았다.
다윈 폭격으로 남쪽으로부터의 위협을 제거한 후 일본제38사단의 3개 대대를 기간으로 한 이토지대가 20일 새벽에 티모르에 상륙했으며 이어서 요코스카제3특별육전대의 공수부대원 450명이 강하했다. 일본군은 치열한 전투 끝에 23일 오전에 티모르 수비대의 항복을 받아내었다.
일본군이 자바로 접근함에 따라 남서태평양미해군부대 사령관 글래스포드 제독은 칠라찹에 있는 지원함들이 위험하다고 느꼈다. 2월 19일과 20일에 걸쳐 잠수모함 홀랜디어와 보급을 받던 잠수함 2척, 구축모함 블랙호크와 상처를 입은 구축함 벌머와 바커가 칠라찹을 떠나 호주 서해안의 블랙마우스만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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