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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강남종귤 강북위지 -귤화위지(橘化爲枳)

江南種橘江北爲枳 , 江南种橘江北为枳 , jiāng nán zhòng jú jiāng běi wéi zhǐ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안영(晏嬰, 안자(晏子))은 세 명의 왕(영공(靈公) · 장공(莊公) · 경공(景公)) 밑에서 재상을 지냈으나 평생 절검(節儉)과 역행(力行)의 삶을 살았다. 그는 재상이 된 뒤에도 밥상에는 고기반찬을 올리지 않았고 아내에게는 비단옷을 입히지 않았으며, 조정에 들어가면 임금께서 묻는 말에만 대답할 정도로 스스로 품행을 조심하였다. 또한 달변과 임기응변으로도 유명했지만 아주 키가 작고 볼품없는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어느 해, 그는 초(楚)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다. 평소 안영이 뛰어난 지모의 소유자라는 소문을 들은 초의 영왕(靈王, 재위 BC541∼BC529)은 안영을 시험하기 위해 대문 옆에 작은 문을 내어 안영을 그리로 안내하도록 했다. 안영은 들어가기를 거부하면서 말했다. “개나라 사신이나 개문으로 드나들게 해야지. 나는 초나라의 사신이니 이 문으로 들어갈 수 없다.(使狗國者, 從狗門入. 今臣使楚, 不當從此門入.)” 영왕은 이 말을 듣고 성문을 열고 안영을 맞이하게 했다. 이튿날 안영은 왕궁으로 가 영왕을 알현했다. 영왕이 입을 열었다. “제나라에는 사람이 없소? 그대 같은 사람을 사신으로 보내다니.” 안영이 대답했다. “제나라 도성 임치는 집이 3만 호에, 길 가는 사람들이 서로 어깨를 부딪치고 팔을 들어 올리면 해가 가려지고 땀을 흘리면 비가 내릴 정도로 많습니다. 어찌 사람이 없다 하십니까?” “그런데 어째서 경과 같은 사람을 사신으로 보냈단 말이오?” 안영이 대답했다. “제나라에서는 사신을 보낼 때 상대국에 맞게 사람을 보냅니다. 현명한 자는 현명한 왕에게 보내고, 무능한 자는 무능한 왕에게 보냅니다. 저는 가장 무능하기 때문에 초나라로 오게 된 것입니다.”(▶ 비견접종(比肩接踵) 참조)

「영왕이 연회를 베풀었다. 영왕이 안영에게 술을 권했다. 술이 거나해졌을 무렵 관리 두 사람이 한 사람을 묶어 데려와 왕을 알현했다. 영왕이 물었다. “그 죄수는 누구인가?” “제나라 사람입니다. 절도를 했습니다.” 영왕이 안영을 보며 물었다. “제나라 사람들은 도둑질을 잘합니까?” 그러자 안영이 피석(避席, 자리에서 일어남)하며 대답했다. “귤이 회남에서 나면 귤이 되지만, 회북에서 나면 탱자가 된다고 들었습니다. 잎은 서로 비슷하지만 그 과실의 맛은 다릅니다. 그러한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물과 땅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백성들 중 제나라에서 나고 자란 자는 도둑질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초나라로 들어오면 도둑질을 합니다. 초나라의 물과 땅이 백성들에게 도둑질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왕은 웃으면서 말하였다. “성인은 농담을 하지 않는다고 하오. 과인이 오히려 욕을 당하게 되었구려.”(晏子至. 楚王賜晏子酒. 酒酣, 吏二縛一人詣王. 王曰, 縛者曷爲者也. 對曰, 齊人也. 坐盜. 王視晏子曰, 齊人固善盜乎. 晏子避席對曰, 嬰聞之, 橘生淮南則爲橘, 生於淮北爲枳. 葉徒相似, 其實味不同. 所以然者何. 水土異也. 今民生長於齊不盜, 入楚則盜, 得無楚之水土, 使民善盜耶. 王笑曰, 聖人非所與熙也. 寡人反取病焉.)」

이 이야기는 《안자춘추(晏子春秋)》에 나오는데, 안영의 말에서 ‘강남종귤 강북위지’가 유래하였으며, 사람은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회남과 회북은 각각 회수(淮水)의 북쪽과 남쪽을 말한다. 예로부터 중국은 회수를 분기점으로하여 남방과 북방을 구분 지었다. 같은 말로 ‘남귤북지(南橘北枳)’가 있다.

 

 

중국의 북방에는 황하(黃河)가 있고 남방에는 장강(長江)이 있는데, 이 두 개의 큰 강 중간쯤, 정확히 말하자면 강소성(江蘇省)의 염성(鹽城) 북부에 회하(淮河)라는 강이 있다. 바로 이 회하를 분기점으로 해서 중국은 북방과 남방으로 구분된다. 이 강 하나를 두고 북쪽과 남쪽은 다음과 같이 판이한 특징을 보인다.

북방에서는 큰 물을 하(河)라고 하고, 남방에서는 강(江)이라 한다. 그래서 누런 물이라는 뜻의 황하와 긴 물이라는 뜻의 장강이라는 명칭이 나온 것이다. 북방은 보편적으로 기후가 한랭하고 물자가 풍부하지 않은 반면, 남방은 기후가 온난하고 물자가 풍부하다. 그러다 보니 생활에서도 북방은 현실적이고 이지적이고 투쟁적인 반면, 남방은 공상적이고 감상적이고 평화적이다. 음악에서도 차이가 난다. 북방의 음악은 박자가 빠르고 억세고 가사는 질박 솔직하며, 합창에 적합한 곡이 많다. 남방의 음악은 박자가 느리고 부드럽고, 가사는 화미 완곡하며, 독창에 적합한 곡이 많다. 미술도 마찬가지다. 북방의 미술인 북종(北宗)은 필법에 힘이 있고 직선적이지만 남방의 미술인 남종(南宗)은 필법이 부드럽고 곡선적이다. 북비(北碑)로 대표되는 북방의 서예는 소박하고 힘 있는 글씨체지만, 남첩(南帖)으로 대표되는 남방의 서예는 우아하고 부드러운 서풍을 지니고 있다.

북방의 건축은 직선적이고 장엄한 반면, 남방의 건축은 곡선적이고 우아하다. 특히 남방 건축의 곡선을 가리켜 봉미(鳳尾, 봉의 꼬리)라고 할 정도로 남방의 건축은 아름다운 곡선미를 자랑한다. 유가 사상으로 대표되는 북방의 기질은 사회 정치와 밀접한 현실주의적이고, 도가 사상으로 대표되는 남방의 기질은 이상과 꿈을 화려하게 노래한 낭만주의적이다. 문학에 있어서는 생활 속의 서정과 사회상을 노래한 《시경(詩經)》이 북방 문학의 대표라면, 작자의 이상과 환상을 낭만적으로 노래한 《초사(楚辭)》는 남방 문학의 대표이다.

주식도 다르다. 한랭하고 건조하며 강우량이 많지 않은 북방의 주식은 밭작물인 밀이고, 온난다습하고 강우량이 많아 논농사에 적합한 남방의 주식은 쌀이다. 체격도 다르다. 북방 사람들은 건장하고 덩치가 크지만 남방 사람들은 비교적 왜소하고 마른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북방 사람들은 종종 “쌀 먹고 자란 애들이 그렇지 뭐.”라고 하면서 남방 사람들을 무시하기도 한다.

물길이 많은 남쪽의 주요 교통수단은 배였고, 산야가 많은 북쪽의 주요 교통수단은 말이었는데, 이를 ‘남선북마(南船北馬)’라고 한다. ‘남선북마’가 남북 간의 지리적 환경의 차이를 나타내는 말이라면, ‘남귤북지’는 기후의 특징을 보여 주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