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김정은이 ‘실용적’이라는 사람들/최강/조선일보(3/13)
지난 1월 북한은 5년 만에 조선노동당대회를 열고 당 규약을 개정하면서 “강력한 국방력으로 근원적인 군사적 위협들을 제압하겠다”고 했다. 노동신문은 이것이 “조국 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앞당기려는 당의 확고한 입장의 반영”이라고 했다. 핵무기를 포함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남한을 압도하여 적화통일을 달성하겠다고 공표한 것이다. 노동당 규약은 북한 헌법에 우선하기 때문에 이를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만일 우리 정부가 ‘북한을 군사적으로 제압해 빠른 시일 내 통일을 하겠다’고 발표했다면 북한은 노골적 선전포고라며 엄청나게 반발했을 것이다.
남북관계에서 우리는 쉽게 ‘화해와 협력’을 말한다. 하지만 진정 화해와 협력을 하려면 북한 정권의 목표와 김정은 위원장의 생각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김 위원장을 가리켜 “실용적”이라며, 마치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인 듯 칭송하는 이들이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북한은 중국이나 러시아는 물론 어떤 공산 국가에도 없는 독특한 체제이다. 3대 세습 체제를 튼튼히 하는 것이 최우선적 목표이고, 이를 위해 그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 고모부 장성택을 고사포로 처형하고 이복형 김정남을 독극물로 암살한 것이 이를 보여준다. 장성택 처형을 두고 존 케리 당시 미 국무장관은 “기괴하고 끔찍하며 참혹하다”고 말했다.
북한은 한미 동맹이 자신들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런가?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에 따르면 북한은 세계 4위 규모인 정규군 128만명과 예비 전력 700만을 갖고 있고, 보유 핵무기도 수십 개로 추정된다. 이에 더해 중국과는 ‘조중(朝中)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을 통해 동맹을 맺고 있고, 러시아의 지원도 받고 있다. 우리의 동맹인 미국은 멀리 태평양 너머에 있고 주한미군은 2만8000명인데, 북한의 동맹인 중국 상비군은 200만이 넘는다. 요즘 컴퓨터 게임으로 전락했다는 걱정을 듣는 한미 연합훈련도 북한 침략으로부터 우리를 방어하는 훈련이지 북한을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다. 김 위원장도 이를 잘 알 텐데, 북한에 군사적 위협이라고 하는 주장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 주한미군 철수를 위한 억지 주장에 불과하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에서 우리나라는 167국 중 23위, 북한은 최하위인 167위이다. 2019년 세계은행 국내총생산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12위인데, 북한은 203위밖에 있는 10여 나라 중 하나이다. 김 위원장은 정치적으로 자유롭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대한민국이 코앞에 있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권력에 대한 정치적 위협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북한의 잘못된 선택 때문이지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북한과 김 위원장이 변해야 해결될 문제이다.
대한민국의 존재 자체가 정치적 위협이므로, 김 위원장에게는 대한민국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이다. 북한이 중국, 러시아 등 비자유주의(illiberal) 국가들과 협력을 모색하는 것도 이를 위해서다. 한국, 미국, 일본 등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 맞서는 전초 기지로서 북한의 중요성을 부각시켜 중국과 러시아의 지지를 받아내려는 것이다. 제8차 당대회에서 김 위원장이 ‘역사적 뿌리를 가진’ 북·중 관계 공고화와 북·러 관계의 강화를 외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의 목표는 한결같이 대한민국을 지도에서 없애는 적화통일이다.
김 위원장의 생각이 바뀔 때까지 우리는 “화해와 협력”이라는 정치적 수사에 현혹되지 말고 그의 오판을 줄여 전쟁을 방지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북핵에 노출된 수도권 방어를 위해 방어 미사일도 추가 배치해야 한다. 지금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집착할 때가 아니다. 우리는 1978년 한미연례안보협의회 이후 지난 40여 년간 미국에 핵우산을 확실히 보장해달라고 요구해왔다. 그러면서 미국 주도 미사일 방어체제에는 참가하지 않는 자기 모순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전반적인 상황이 어렵지만, 북한의 동맹인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설득하여 GDP의 24%에 달하는 과도한 군사비를 주민의 복지를 위해 쓰도록 하고 중국 수준의 개방을 하도록 한다면 여러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김 위원장을 설득하도록 외교적 노력을 경주해야 할 이유다.
북한과의 대화는 계속해야 하고, 필요하면 비위도 맞춰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반대한다고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고, 중국이 반대한다고 북한 핵미사일로부터 우리 생명을 지킬 방어용 미사일까지 배치 못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2.이란 핵합의,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장지향/매경(3/17)
미국과 이란이 핵합의 복원 협상을 두고 신경전 중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란에 핵합의 우선 복귀를,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미국에 제재 우선 해제를 요구하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버락 오바마 정부 주도로 주요 6개국 및 유럽연합과 이란이 체결한 2015년 핵합의를 깨뜨리고 이란 제재를 부활하자 이란도 핵합의 이행을 파기하고 우라늄 농축 재개를 선언했다. 조 바이든 정부는 이란 핵합의 복원을 중동정책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미 민주당 정부와 이란 온건파 모두에 핵합의 복원은 절실하다. 2020년 12월 바이든 당선인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중동 안정을 위한 최선의 길은 이란 핵합의라고 강조했다. 새 정부 외교안보 라인도 2015년 핵합의 주역 블링컨 국무장관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꾸렸다. 올 1월 미국평화연구소 회의에서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핵합의 복원을 바이든 정부 외교의 중대한 우선순위라고 밝혔다.
이란 온건파는 핵합의 복원이 실패하면 국내 정치 생명이 끝날 수 있다. 트럼프 정부가 대이란 최대 압박 정책을 벌이자 이란 강경파는 핵합의에 서명한 온건파를 공격해 코너로 몰았다. 강경파는 반미 이슬람혁명 수출을 위해 핵개발도 고려하지만 온건파는 핵포기와 이란의 정상국가화를 추구한다. 트럼프 정책의 여파로 2020년 2월 총선에서 강경파는 230석, 온건파는 20석을 얻었다.
2015년에도 미 민주당 정부와 이란 온건파에 핵합의는 절실했다. 당시 오바마 정부는 이라크전 참전에 따른 여론 악화, 셰일 에너지 개발로 인한 중동 의존도 하락, 중국 견제를 위한 아시아 중시정책 부상으로 `중동 떠나기`를 준비했다. 떠나기 전 오바마 정부는 핵합의를 성사시켜 이란 온건파에 힘을 실어주면 강경파 견제와 나아가 역내 수니·시아파 힘의 균형까지 이뤄낼 것이라 계산했다. 핵합의는 강경파의 핵무기 1기 제조에 필요한 브레이크아웃기간을 최소 10년간 1년 이상으로 연장했다. 게다가 국제연합전선의 극단주의 테러조직 ISIS 격퇴전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미국은 이란 도움이 필요했다. 시아파를 주적으로 삼는 ISIS는 이란에도 위협이었다. 핵합의를 둘러싼 화해 무드 속 미국과 이란은 공동의 적 ISIS를 상대로 함께 싸웠다.
2015년 핵합의는 이란 온건파에 강경파 주도 정국 속 오랜 고립에서 벗어날 기회였다. 강경파의 핵개발 의혹에 2011년 국제사회의 이란 제재가 본격화됐다. 이에 중산층과 젊은 유권자의 불만이 폭발하면서 2013년 대선에서 온건파 하산 로하니 후보가 극적으로 당선됐다. 국내 여론의 압박 앞에 최고종교지도자는 온건파의 핵합의 추진을 허락했다. 로하니 대통령과 자리프 외무장관은 강경파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핵감축을 받아들이고 제재 해제를 이뤘다.
미 민주당 정부와 이란 온건파의 핵합의 진정성은 여전해 보인다. 하지만 6년여 세월은 다른 변화를 가져왔다. 가장 달라진 건 이란 강경파의 막강해진 파워다. 최고종교지도자의 군조직 혁명수비대는 시리아 내전 개입을 발판으로 레바논 헤즈볼라, 이라크·시리아 친이란 민병대, 예멘 후티반군, 가자지구 하마스 등 꼭두각시 조직을 집중 지원하며 지역 헤게모니를 다졌다. 신형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 탑재 잠수함도 공개했다. 역내 반대도 커졌다. 2015년 핵합의 과정에서 배제됐던 수니파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는 인접국의 협상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이란 핵무장을 우려하는 이스라엘은 핵과학자 암살, 핵시설 파괴의 비밀작전 지속을 공언하고 있다. 올 6월 이란 대선이 실시된다. 바이든 정부가 절실히 원하는 2021년 핵합의 복원엔 이란 온건파 정부가 필요하다. 이는 절반에 못 미치는 가능성이지만 2013년 온건파 대통령 당선의 기적이 다시 일어날지 지켜봐야 한다.
3.미얀마의 비극, 국제사회의 망각/이재현/세계일보(3/11)
지난 2월 1일 미얀마로부터 군사쿠데타 소식이 날아들었다. 2015년부터 5년간 이어졌던 아웅산 수치의 민간 정부가 무너졌다. 아웅산 수치의 민족민주동맹과 정부 주요 인사를 체포한 군부는 권력기관을 장악하고 쿠데타를 공식 선언했다. 2020년 11월 있었던 선거에서 선거부정이 확인되었다고 주장하며 1년간 비상 통치 후 선거를 다시 실시하겠다고 했다. 미얀마 국민은 이런 군부의 말을 믿지 않았다. 군부의 재등장에 반대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이어졌다. 시위에 대한 군부의 강경 진압은 결국 시위대의 사망으로 이어지더니 그 수는 매일 늘어나고 있다. 정부 인사와 민족민주동맹 인사를 포함, 1700여명이 구금되어 있고 구금 중 고문으로 인한 사망자도 나오고 있다.
2011년 군부 스스로 정치개혁을 시작했을 때 미얀마에도 봄이 찾아오는 줄 알았다. 2015년 선거에서 아웅산 수치의 민족민주동맹이 승리해 정부를 구성했을 때 민주화는 궤도에 오르는 듯했다. 군부의 로힝야족 탄압을 보고도 모호한 태도를 취했던 아웅산 수치에 실망하면서도 민주화는 되돌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긍정론이 너무 안일했던 것은 아닐까? 2008년 군부가 만든 현 미얀마 헌법은 의회 의석의 25%를 군에 자동 할당한다. 이로써 의회 75% 동의가 필요한 헌법 개정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헌법상 미얀마군 통수권자는 대통령이 아닌 군사령관이다. 2015년 출범한 민간 정부는 군에 대한 통제권이 없었다. 군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의미다. 표면적으로 순항하는 듯했던 민간 정부는 늘 군부의 칼끝에 놓여 있었던 셈이다.
더 멀리 보면 오늘 미얀마의 비극은 1962년 군부가 처음 쿠데타를 일으킨 시점부터 예견된 사태다. 영국 식민통치가 그어 놓은 국경선 안에서 어색한 동거를 하던 버마족과 소수종족의 관계는 버마라는 신생 독립국의 통합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식민통치 결과로 탄생한 다종족 국가는 하나같이 국민국가 형성과 통합에 애를 먹고 있다. 미얀마 군부는 소수종족과 인구 70%를 넘는 버마족 사이 복잡한 관계를 강압으로 해결하려 했다. 이렇게 시작된 군부 통치는 아웅산 수치 정부가 들어선 2015년까지 53년 동안 거의 단절 없이 지속하였다. 이 기간은 소수민족과 무장투쟁, 인권 유린, 자유에 대한 억압으로 점철되어 있다. 2015년부터 5년간의 민간 통치는 미얀마 독립 이후 73년간 역사 중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
군부 쿠데타에 대한 미얀마 국민의 저항이 거세다. 거센 저항만큼이나 군부의 탄압도 강하고 희생자도 속출한다.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자 국제사회의 이목이 쏠렸다. 미국과 유럽의 국가는 이미 미얀마에 대한 경제제재를 시작했다. 그 효과가 어떨지, 군부 통치를 종식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미얀마 군부는 1990년대부터 거의 20년에 달하는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를 받았다. 그런데도 다시 군부가 등장한 것은 국제사회의 제재가 한계를 가진다는 의미다. 이제는 시간 싸움이다. 민주화를 원하는 미얀마 국민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지지는 한때 반짝해서는 안 된다. 군부가 단념할 때까지 꾸준히 지속하여야 한다.
한국의 역할도 있다. 우리는 한국이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루어낸 것을 자랑스럽게 말한다. 자랑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 이면에는 책임도 따른다. 미얀마 국민도, 미얀마 국민을 응원하는 국제사회도 한국의 역할을 바라고 있다.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룬 중견국, 아니 이제 선진국인 한국은 미얀마 사태에 적극적 목소리를 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 정부는 외교적 마찰을 우려해 이런 사안에 미온적 태도를 보인 적이 많다. 이번 미얀마 사태에서는 달랐다. 청와대나 외교부는 전과 달리 강한 메시지를 냈다. 군부는 아웅산 수치를 비롯한 억류된 인사들을 즉각 석방하고 작년 선거에 나타난 미얀마 국민의 의사를 존중하라는 내용이었다. 시민사회도 미얀마 국민과 적극적 연대에 나서고 있다. 이런 한국의 태도가 한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하고 행동으로 뒷받침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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