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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조선시대 감사(監司)와 병사(兵使) 간의 갈등: 갈등의 원인 및 갈등관리의 방식과 전략 /김렬외

 


김 렬* 조 민 경**

 

조선시대 감사(監司)와 병사(兵使) 간의 갈등 갈등의 원인 및 갈등관리의 방식과 전략.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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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문요약
조선왕조의 중앙집권체제에서 감사(監司)와 병사(兵使)는 한 도(道)에서 왕권을 대행하는 주체로서 지방통치업
무를 수직적・수평적으로 분담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업무분담은 직무상 상호의존성과 중첩성을 수반하였으며, 이
로 인해 양자 간에 지위나 권한 등에 있어서 갈등적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본 연구는 양자 간 갈등의 원천을
지방통치업무의 수직적・수평적 분화에 따른 직무의 상호의존성과 중첩성에 두고, 「조선왕조실록」, 「일성록」, 「승
정원일기」, 「비변사등록」, 「국조보감」 등에 제시된 사례를 통해 갈등의 원인과 관리방식을 살펴보았다. 감사와 병사 간 갈등의 원인은 매우 복합적이며, 군무(軍務)와 직접 관련된 사항에서부터 순전히 개인적인 관계
까지 매우 다양하였다. 군무와 직접 관련된 ‘과업갈등’의 예로서 군사동원, 전쟁 수행, 치안, 교열, 성지 수축 등을
둘러싸고 발생한 다툼을 들 수 있으며, 우월적 위상이나 지위를 점하기 위한 경쟁으로 유발된 ‘관계갈등’은 주로 영
접・상견・회좌 등의 의례, 부하에 대한 지배・관리, 개인적인 신분・당파 등이 주요 원인이었다. 조선시대 국정의 최고결정체는 국왕을 정점으로 하는 의정부・비변사였으며, 그 하위체제인 감사와 병사 간의 갈
등에 대하여 무대응・회피하거나 계서적 권력을 통해 개입하였다. 과업갈등의 경우는 대체로 양자 간 수직적 위임・ 대리관계를 인정하여 감사 위주의 ‘통제지향적 개입’이 실제 갈등관리의 유용한 방식으로 활용되었다. 한편, 관계갈
등은 그 원인에 따라 관리방식에 있어서 다소 차이가 있었는데, 외관의 포폄을 둘러싼 갈등에 대해서는 ‘경쟁지향적
개입’이 이루어졌으며, 군무와 관련된 용형으로 빚어진 갈등의 경우는 병사의 직단권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경쟁지
향적 회피’방식이 채택되었다. 주제어: 조선, 감사, 관찰사, 병사, 병마절도사, 갈등, 갈등관리, 갈등관리전략


Ⅰ. 서론
조선의 중앙집권적 지방통치체제에서 관찰사(觀察使)와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는 한 도(道)에
서 왕권을 대행하는 주체였다. 관찰사는 행정・재정・사법 등 민정(民政)뿐만 아니라 군정(軍政)까지
도 통할하는 권한을 가졌으며, 감사(監司)・도백(道伯)・도신(道臣)・방백(方伯)・도선생(道先生) 등으


** 제1저자
** 교신저자

24 「지방정부연구」 제22권 제4호


로 지칭되었다. 병마절도사는 도내의 군무(軍務)를 총괄하는 주장(主將)으로서 병사(兵使)・곤수(閫
帥)・수신(帥臣)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이들 관직은 모두 종2품으로 동등한 관품(官品)이었으며,

관찰사(이하 ‘감사’로 지칭한다)는 문신(文臣)으로 그리고 병마절도사(이하 ‘병사’로 지칭한다)는
대개 무신(武臣)으로 임명되었다. 따라서 품질(品秩)이 같은 문신과 무신이 한 도의 통치자로 공존
하면서 그 지위나 권한 등에 있어서 갈등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 조직은 위임・대리에 의한 수직적 분화와 기능 분리에 따른 수평적 분화를 통해 업
무수행의 효율화를 도모한다. 수평적・수직적으로 분화된 업무 사이에는 상호의존성과 중복성・중
첩성이 존재하게 되며, 업무의 상호의존성과 중첩성은 당사자들 사이에 갈등적 관계를 구조적으
로 유발하게 된다(박통희, 1995: 1318~1328; 오세덕 외, 2018: 275). 이러한 갈등적 관계를 다룬 선
행연구는 매우 다양하며, 대체로 공공부문 혹은 기업조직의 구성원이나 부서 간에 발생한 갈등의
주요 원인과 그 관리방식을 다루고 있다. 정부조직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특정 정책이나 사업
을 둘러싸고 발생한 부처 간 갈등사례를 고찰하거나(유홍림 외, 2006; 임정빈, 2013), 상대적 지위
관계 혹은 업무특성 등에 따른 갈등에 대하여 당사자들이 대처하는 방법을 논하기도 하였다(이창
원 외, 2003; 김호정, 2011).
한편, 조선시대의 갈등사례를 다룬 연구도 있는데, 이병갑(1992; 1999)은 16세기 동인과 서인 간
의 정책과정상 이익갈등을 분석하였고, 남지대(2013)는 태종 초 국왕과 대간 언론의 갈등사례를
살펴보았으며, 김정운(2015)은 전쟁 수행에 있어서 정치지도자와 군사지도자의 리더십 갈등을 논
하였다. 하지만, 감사와 병사 간 갈등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찾아볼 수 없고, 다만 지방통치행정이
나 군사제도에 관한 연구에서 이들 간 갈등의 존재가 간략히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장병인(1984: 180)과 이존희(1990: 126)를 들 수 있는데, 감사와 병사 사이에 그 지위나 군
정상의 권한과 책임에 있어서 문제가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한 지방을 위임받아 함께 관할하는 감사와 병사는 어떤 형태든 대립과 마찰을 겪었을 것이며,

그러한 갈등이 공식적으로 표출된 사례는 「조선왕조실록」, 「일성록」, 「승정원일기」, 「비변사등록
」, 「국조보감」 등 국가의 공식 기록물과 개인의 일기나 문집 등에 적지 않게 등장한다. 이들 문헌
기록상 갈등사례를 통해 갈등의 원인과 유형 및 그에 따른 관리방식 등을 논하는 것이 본 연구의
목적이다. 먼저 조선의 중앙집권적 지방통치체제에서 감사와 병사 간에 수직적・수평적으로 분화
된 직무를 살펴보고, 분화된 직무들의 상호의존적・중첩적 관계에 따른 갈등의 사례를 문헌기록에
서 파악한다. 문헌기록상 사례를 통해 갈등의 원인을 고찰하고, 국왕을 정점으로 하는 국정의 최
고결정체가 그 하위체제인 감사와 병사 간 갈등을 관리 혹은 해결하기 위하여 선택한 방법을 검토
한다. 특히 전통적 관료제에서 갈등관리의 전형적인 도구로 활용되는 ‘권력에 의한 지배’가 어떻
게 적용되었으며, 그러한 권력적 지배가 지향하는 관점은 무엇인지를 이해하고자 한다.

어느 조직이나 사회에서 갈등은 보편적인 현상일 수 있으며, 갈등에 관한 연구는 대체로 갈등의
원인을 찾고 유용한 관리방법을 도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본 연구는 조선시대 감사와 병사
간에 발생한 갈등사례를 분석하여, 갈등의 원인이나 유형을 고찰하고, 국정의 최고결정체에 의한
갈등관리의 방식과 전략을 검토한다.

이를 통해 전통적인 관료제 조직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그 관

 

조선시대 감사(監司)와 병사(兵使) 간의 갈등: 갈등의 원인 및 갈등관리의 방식과 전략 25


리방법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며, 특히 조선왕조의 중앙집권체제가 지방을 효과적으로 지배・통치
하기 위하여 감사와 병사를 어떻게 활용하였는지를 추론할 수 있다.

 

Ⅱ. 감사와 병사에 의한 지방통치


1. 관찰사제(觀察使制)와 절도사제(節度使制)
조선왕조의 지방통치구조는 왕권을 정점으로 하는 중앙집권체제의 확립 및 강화를 기본 방향
으로 하였다. 건국 초기에는 고려의 5도(五道) 양계(兩界) 지방행정구획체제를 답습하였으나, 1413
년(태종 13년)에 이르러 본격적인 지방제도를 정비하면서 전국을 8도(八道)로 개편하고 334개의
부(府), 대도후부(大都護府), 목(牧), 도호부(都護府), 군(郡), 현(縣)을 두었다. 이렇게 구획된 지방행
정단위별 통치는 외관(外官)의 제도화로 가능하게 되었는데, 외관직에서 최고의 지위를 점하는 것
은 도(道)의 관찰사 혹은 감사였으며, 그와 더불어 육군의 최고지휘관인 병마절도사 혹은 병사가
있었다. 이들은 자신의 관할지역에 국왕의 통치철학을 전달・실현하는 왕권의 대행자(使臣)로서 역
할을 수행하였다(김렬, 2015a: 71).
감사는 고려의 안찰사(按察使)・안찰사(按廉使)를 이어받은 것으로서 그 제도가 채택된 1402년
(태종 2년)에는 도관찰출척사, 즉 ‘都觀察黜陟使兼監倉安集轉輸勸農管學事提調刑獄兵馬公事’가 정
식명칭이었다.1) 과거 사안마다 별도의 사신(使臣)을 파견하여 수행하던 업무를 모두 포함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는데, 이후 1466년(세조 12년) 지방관제의 대폭적인 개편으로 그 명칭이 관찰사로
변경되었다.2) 감사는 한 도의 최고통치자(一道之主)로서 행정・재정・사법 등 민정뿐만 아니라 군
정까지도 통할하는 지위와 권한을 지니고 있었다. 감사와 더불어 각도에는 육군의 최고지휘관으로 병사(兵使)가 파견되었다. 고려말 도순문사(都
巡問使) 및 그 이후 도절제사(都節制使)가 1466년(세조 12년) 진관체제의 성립에 따라 병마절도사
로 명칭이 변경되었다.3) 이처럼 병마절도사로 직함이 바뀌면서 종래 관찰사가 지니던 ‘제조병마
(提調兵馬)’의 직함이 삭제되었으며, 이로써 지방군에 대한 지휘 계통은 병사가 장악할 수 있게 되
었다(육군군사연구소, 2012: 296; 오종록, 1985a: 92). 진관체제하에서 거진(巨鎭)과 제읍(諸邑)의
수령이 각자의 지위에 상응하는 병마 직함을 겸대(兼帶)하게 되었기 때문에, 병사는 수령의 군정에
대한 포폄에 참여하는 등 군사업무에 대하여 수령을 직접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육군군사
연구소, 2012: 295).


1) 이러한 명칭은 모든 정사(政事)를 관찰(觀察)하고 외관(外官)을 출척(黜陟)하는 본직 외에 감창(監倉)・안집
(安集)・전수(轉輸)・권농(勸農)・관학(管學)・형옥(刑獄)・병마(兵馬) 등의 업무가 포함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2) 「세조실록」 12년 1월 15일(戊午)조. 3) 「세조실록」 12년 1월 15일(戊午)조.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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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감사와 병사의 지위와 권한
조선의 중앙집권적 지방통치체제에서 감사와 병사는 한 도에서 왕권을 대행하는 주체로서 지
위를 지니고 있었다. 감사는 그 제도가 채택된 당시의 정식명칭에서 보듯이, 감독관의 직무로서
관하 모든 외관을 지휘・통제・감찰하는 외헌(外憲) 기능(이존희, 1990: 18; 이희권, 1999: 43)뿐만
아니라, 지역장관의 직무로서 권농(勸農)・구휼(救恤)・수세(收稅) 등 지방민을 통치하는 방백(方伯)
기능(이존희, 1990: 18; 이희권, 1999: 51)을 담당하였다.

한편 병사는 한 도의 군무(軍務)를 총괄하는 주장(主將)으로서 국방이 그 본연의 직무였다.4) 여
기에는 전쟁 수행 및 치안, 습진과 무예훈련, 무기의 제조 및 정비, 군사시설의 수축(修築), 치안, 군적(軍籍) 작성 및 군사 징발(徵發) 등이 포함되었다(오종록, 1985b: 101~112). 그 외에도 수령의
군사업무에 대한 감독권이 있었고, 수령에 대한 포폄에 참여하고 그 체임(遞任)에 군무상 해유(解
由)를 발급하는 권한을 지녔으며, 아울러 수령의 군사상의 범법행위를 규찰하여 형벌을 가할 수
있었다.5)
이처럼 한 도를 통치하는 감사와 병사는 종2품으로 동등한 관품(官品)이 원칙이었다.6) 양자는
모두 외관의 정직(正職)이었지만, 감사는 문신, 병사는 대개 무신으로 임명되었다. 따라서 품질(品
秩)이 같은 문신과 무신이 한 도의 통치자로 공존하면서 그 지위나 권한 등에 있어서 알력이 일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양자의 관할권을 명확히 하려는 논의 과정에 1472년(성종 3년) 대사간
(大司諫) 성준(成俊) 등의 상소에 따라 겸병사제(兼兵使制)를 시행하게 되었다.7) 이는 녹봉과 기타
비용을 줄이려는 명분상 목적을 띠었지만, 실제는 ‘권세를 나누어 서로 제어하는 도리(分權相制之
道)로 곤외의 병권을 나누어야 한다(分閫外兵權)’는 취지에서 도입되었다.8) 즉, 군사상의 쌍두체제
를 통해 감사와 병사 간에 상호 견제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어느 한쪽이 지방 병권을 전제하는 것
을 방지하고자 하였다(장병인, 1984: 1181).
겸병사제에서 감사는 병사의 직임을 겸하긴 하지만, 국경을 방어하는 것이 그 본연의 직무가 아
니었다(임선빈, 2000: 24). 즉, 겸병사제 하에서도 감사와 병사에게 주어진 각자 본래의 주된 직무
는 기본적으로 구분이 되어있었다. 예컨대 ‘감사는 국가를 위해 한 지방을 선화(宣化)하고 병사(兵
使)는 국가를 위해 천리(千里)를 절충(折衝)함이 그들의 임무이므로9) 감사는 안에 있으면서 백성을


4) 군정절목(軍政節目)에 따르면, 절제사가 수행해야 할 중요한 직무는 절제교열(節制敎閱), 정기기(整機器),
고성곽(固城郭)이다(「세조실록」 3년 10월 24일(甲寅)조).
5) 「경국대전」 병전, 용형(用刑)조 및 형전, 추단(推斷)조.

6) 조선시대 관료의 등급은 관계(官階)라고 칭하였으며, 이는 품(品)과 계(階)로 구성되기 때문에 품계(品階)라
고도 하였다. 즉, 품으로 큰 등급이 정해지고, 품 내에서 등급이 세분화되면서 계로 칭호가 정해지는 방식
으로 연결되었다(김렬, 2015b: 164~175; 김렬, 2017: 639).
7) 「성종실록」 3년 1월 15일(任子)조. 「경국대전」 병전, 외관직(外官職)조에 의하면, 전국의 병사(兵使) 정원
은 15원(員)이었는데, 8도의 각도에서 1인씩 총 8인은 감사가 겸임하였고, 그 외 충청도・전라도・평안도에
는 각 1인씩 그리고 경상도・영안도는 각 2인씩 전임(專任) 병사가 있었다.

8) 「성종실록」 3년 1월 15일(任子)조. 9) 「성종실록」 4년 8월 4일(癸亥)조.

조선시대 감사(監司)와 병사(兵使) 간의 갈등: 갈등의 원인 및 갈등관리의 방식과 전략 27


다스리는 것을 주관하고, 병사는 밖에 있으면서 적을 막는 것을 주관하며,10) 병사는 구관(句管) 방
수(防守)하고 감사는 다만 한 도를 총관(摠管)하고 있을 뿐이므로 이것이 다른 까닭이다.11) 따라서
감사는 한 도의 행정책임자로서 군정도 장악한다는 점에서 병사를 겸할 뿐, 실제 군사의 지휘 관
계는 주진(主鎭)의 병사로부터 거진(巨鎭)의 첨절제사(僉節制使), 또 그로부터 제진(諸鎭)의 동첨절
제사(同僉節制使)로 연결되는 일원적 계통이 확립되어 있었다(육군본부, 1968: 162).


Ⅲ. 감사와 병사 간 직무분담 및 갈등관계


1. 감사와 병사 간 직무의 분화
관료제 조직은 위임・대리에 의한 수직적 분화와 기능 분리에 따른 수평적 분화를 통해 업무수
행의 효율화를 도모한다. 수직적 분화는 계층 간의 업무분담으로서, 상관은 소관 업무의 일부를
부하에게 위임하고 그 업무를 지도, 감독 및 통제한다. 이러한 수직적 분화에서는 상관과 부하에
게 각기 분담된 업무 간에 상호의존성과 중첩성이 존재하게 된다. 한편, 수평적 분화는 일정한 기
준에 따라 하나의 업무를 둘 이상의 단위로 나누어 독립시켜 서로 다른 역할을 부여하는 것을 말
한다. 이러한 수평적 분화의 경우, 상호배타적이고 망라적인 분류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사실상 어
려우므로 분화된 업무들은 본질적으로 상호의존적이며 중복적인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박통
희, 1995: 1315).


1) 감사와 병사 간 수직적 분업
조선시대 지방행정체제에서 감사는 왕권의 대행자로서 순무(巡撫)ㆍ선양(宣揚)ㆍ규탄(糾彈)뿐만
이 아니라 한 도의 수군・육군을 모두 통솔하는 직무를 담당하였다.12) 한 도의 민(民)뿐만 아니라
군(軍)에 대한 통치자로서 감사의 위상은 1401년(태종 1년) 「태종실록」에 기록된 다음의 기사에 잘
제시되어 있다. 관찰사는 재보(宰輔)의 존귀(尊貴)로써 왕명(王命)을 받들어 절월(節鉞)을 가지고 나가서 한 도
(道)를 진무하니, 군민(軍民)과 관리(官吏)들이 우러러 사모하고 두려워하여 호령을 받들어 행하
기를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합니다.13)


10) 「성종실록」 24년 11월 17일(戊申)조.

11) 「숙종실록」 11년 12월 1일(丁亥)조.

12) 「광해군일기(중초본)」 1년 3월 10일(辛卯)조.

13) 「태종실록」 1년 11월 7일(辛卯)조.28

「지방정부연구」 제22권 제4호


이처럼 한 도를 전제(專制)하는 감사는 그 직무의 일부를 전임(專任) 병사와 분담하고 있었다.

즉, 감사의 지방통치 전반에 대한 직무 중에서 군정에 관한 업무는 병사에 의해 실질적으로 수행
되도록 제도화되었다.14) 따라서 병사는 감사 휘하에 있는 관원(官員)으로서15) 도내의 부원수(副元
帥)의 지위에 있었으며,16) 따라서 이들 간 권한의 경중과 존비의 서열에 있어서 차등이 있었다.17)
이와 같은 수직적 직무분화에 따라 감사와 병사는 계서적(階序的) 관계를 형성하였으며, 감사는
병사의 직무수행을 지도・감독 및 규율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감사가 그 관하(管下)의 병사를 절
제(節制)하는 상호 계서적 관계18)는 세종조(世宗朝) 우사간(右司諫) 박관(朴冠)의 상소문에서 명확
히 드러난다. 감사는 한 지방을 통찰하는 직책이므로, 무릇 군민(軍民)에 관한 일을 관섭(管攝)하지 않는 것이
없겠으나, 왕왕이 도절제사(都節制使)가 직위와 품질(品秩)이 감사와 같다 하여, 체통과 소속의
본의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처사를 독단하며 태연히 출입하니, 진실로 타당하지 못한 일입니다. 이제부터 도절제사는 적(敵)을 대응하거나 군병을 동원하는 이외에 군병의 점검 고찰, 산행(山
行)의 출입 등, 비록 하루 동안의 행역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감사에게 보고한 연후에 시행하도
록 하여 체통을 세우도록 하소서(「세종실록」, 5년 11월 9일(丙戌)조).


2) 감사와 병사 간 수평적 분업
조선시대 국왕의 지방통치행정은 크게 민정과 군정으로 기능 분화하여 감사와 병사에 의해 각
각 수행되도록 제도화되었다. 즉, ‘감사는 안에 있으면서 백성을 다스리는 것을 주관하고, 병사는
밖에 있으면서 적을 막는 것을 주관하는 일이 각자에게 주어진 본연의 직무였다.19) 나아가 군정에
대해서도 감사와 병사 간 분업을 도모하였는데,20) 모든 군사행정에 관계되는 것은 감사가 총찰하
고, 방위하거나 경비하는 일은 병사가 담당하도록 하였다.21)
감사와 병사 간 군무분담은 군사적 대응력 향상을 위한 것이기도 하였지만,22) 분할지배(divide
and rule)를 통한 병권의 전제 방지 및 상호 견제가 주된 목적이었다. 양자 모두에게 발병부(發兵
符) 우부(右符)와 도내 제진(諸鎭)의 발병부 좌부(左符)를 부여하여,23) 이들이 도내 육군의 징병권을
공동으로 보유하도록 하였다. 또한, 군사지휘체계의 정점(頂點)에 있는 병사의 전횡을 막기 위하


14) 「태종실록」 7년 6월 1일(癸未)조 및 8년 1월 2일(辛亥)조.

15) 「비변사등록」 인조 2년 1월 6일조.

16) 「순조실록」 28년 11월 18일(甲寅)조.

17) 「명종실록」 7년 8월 16일(丙寅)조.

18) 「숙종실록」 36년 10월 3일(甲子)조.

19) 「성종실록」 24년 11월 17일(戊申)조.

20) 「숙종실록」 6년 1월 9일(己亥)조.

21) 「세종실록」 32년 2월 6일(辛巳)조 및 「성종실록」 10년 7월 11일(乙丑)조.

22) 「중종실록」 10년 2월 14일(壬寅)조.

23) 「경국대전」 병전, 부신(符信)조 및 「예종실록」 1년 9월 1일(辛巳)조.

조선시대 감사(監司)와 병사(兵使) 간의 갈등: 갈등의 원인 및 갈등관리의 방식과 전략 29


여 징발(徵發)할 때 반드시 감사에게 이첩(移牒)하도록 하였다.24) 한편, 감사가 병사의 죄를 논할
적에는 사유를 갖추어 묘당에 품처를 청해야 하며 직접 파직을 청할 수 없도록 제한하였다.25)
감사와 병사는 상등(相等)한 종2품의 외관직으로 서로 나란히 앉으며,26) 이들은 모두 국왕에게
직접 계(啓)하고 행이(行移)할 수 있는 권한을 지녔다.27) 각 관하의 외관을 고과(考課)하여 등제계
문(等第啟聞)함에 있어서, 수령은 감사가 등제를 매겨 계문하되 병사가 동의하도록 하였으며,28)
진장(鎭將) 등 주요 서반(西班) 외관은 병사가 등제계문하되 감사가 동의하게 하였다.29) 또 외관의
범법행위를 규찰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감사의 직무이지만, 병사에게도 군무와 관련된 범법행위에
대하여 조율하고 논죄하는 권한이 주어졌다.30)


2. 감사와 병사 간 갈등관계
관료제 조직에서 수평적・수직적으로 분화된 업무 간의 상호의존성과 중첩성은 상호 협력을 지
향하지만, 당사자들 사이에 있어서 갈등적 관계를 구조적으로 유발한다(박통희, 1995: 1318~1328;
오세덕 외, 2018: 275). 조선왕조의 중앙집권적 관료체제에서 국왕으로부터 한 지방을 위임받아31)
함께 관할하는 감사와 병사 간에도 수직적・수평적 직무분화에 따라 갈등관계가 구조적으로 형성
되었다. 이러한 갈등도 수직적・수평적 직무분화에 따른 상호의존적・중첩적 관계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감사와 병사 간 갈등이 공식적으로 표출된 사례는 「조선왕조실록」, 「일성록」, 「승정원일기」, 「
비변사등록」, 「국조보감」 등 국가의 공식 기록물과 개인의 일기나 문집 등에 적지 않게 등장한다.

이들 문헌을 보면, 감사 혹은 병사의 장본(狀本) 전체가 제시된 경우는 전혀 없고, 계청(啓請)한 사
안에 대해 국왕을 중심으로 조정(朝廷)에서 논의(稟處)하였던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이들
문헌이 감사와 병사 간 갈등의 구체적인 실상을 상세히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갈등의 주요 원인과
중앙정부의 갈등관리방식을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준다.

문헌상 기록에 의하면, 갈등의 공식적인 표출은 감사에 의해 장계(狀啓)된 경우가 대부분이
고.32) 병사에 의한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으며,33) 양자 모두에 의해 표출된 사례도 다수


24) 「세종실록」, 26년 10월 23일(戊辰)조.

25) 「경종실록」 4년 3월 16일(庚寅)조, 「영조실록」 8년 윤5월 23일(戊申)조 및 「순조실록」 8년 3월 30일(丙
寅)조.

26) 「경국대전」 예전, 경외관회좌(京外官會坐)조.

27) 「경국대전」 예전, 용문자식(用文字式)조.

28) 「경국대전」 이전, 포폄(褒貶)조.

29) 「경국대전」 병전, 포폄(褒貶)조.

30) 「경국대전」 형전, 추단(推斷)조.

31) 「태종실록」 9년 4월 15일(丁亥)조.

32) 감사의 장계로 표출된 갈등의 예를 보면, 선조 39년 평안 감사 박동량과 병사 성윤문 간 갈등, 인조 5년
전라 감사 민성징과 병사 박상 간 갈등, 인조 10년 평안 감사 민성휘와 병사 이완 간 갈등, 인조 13년 경
상 감사 유백증과 병사 유승서 간 갈등, 인조 15년 공청 감사 정태화와 병사 고홍건 간 갈등, 영조 4년 전

30 「지방정부연구」 제22권 제4호


있었다.34) 또한, 동일한 갈등사례가 여러 문헌에 약간씩 다르게 언급되거나,35) 하나의 사례에 대
한 논의가 수차례에 걸쳐 계속 진행되었던 기록들이 존재하기도 한다.36)
여러 문헌에 기록된 사례를 보면, 갈등이 유발된 원인은 직무와 직접 관련된 사항에서부터 순전
히 개인적인 관계까지 매우 다양하다. 양자 간에 상호의존성과 중첩성이 존재하는 군무와의 관련
성을 기준으로 하여, ‘과업갈등(task conflict)’과 ‘관계갈등(relation conflict)’으로 갈등의 유형화가
가능하다.37) 과업갈등은 갈등이 안고 있는 핵심원인이 ‘과업’에 더 가까운 경우로서, 여기에는 전
쟁 수행, 병력관리, 군사훈련, 군사 장비와 시설 등을 둘러싸고 발생한 다툼들이 속한다. 반면에 관


라 감사 이광덕과 병사 조경 간 갈등, 영조 7년 경상 감사 조현명과 병사 김몽로 간 갈등, 영조 9년 황해
감사 박사수와 병사 한범석 간 갈등, 영조 14년 공홍 감사 윤경룡과 병사 신사경 간 갈등, 영조 25년 전라
감사 한익모와 병사 조동제 간 갈등, 영조 42년 평안 감사 신회와 병사 이장오 간 갈등, 정조 4년 홍충 감
사 홍병찬과 병사 신대겸 간 갈등, 정조 8년 함경 감사 이명식과 병사 구명겸 간 갈등, 정조 10년 충청 감
사 김광묵과 병사 구세적 간 갈등, 정조 10년 평안 감사 조준과 병사 채제공 간 갈등, 정조 16년 충청 감
사 이원형과 병사 이광섭 간 갈등, 정조 20년 황해 감사 서매수와 병사 김사목 간 갈등, 「순조 8년 평안 감
사 조득영과 감사 이광익 간 갈등, 「순조 24년 평안 감사 김교근과 병사 유상량 간 갈등, 「순조 27년 경상
감사 정기선과 병사 권응호 간 갈등, 「순조 28년 전라 감사 서경보와 병사 이존경 간 갈등, 헌종 3년 황해
감사 서만순과 병사 조운영 간 갈등, 헌종 4년 충청 감사 조기영과 병사 한응호 간 갈등, 철종 7년 함경 감
사 이시원과 병사 이근영 간 갈등, 철종 8년 함경 감사 이시원과 병사 이민교 간 갈등, 철종 13년 경상 감
사 이돈영과 병사 백낙신 간 갈등, 고종 21년 함경 감사 임한수와 병사 윤웅렬 간 갈등 등이 있다.

 

33) 병사의 장계에 의해 표출된 갈등의 예를 보면, 현종 5년 충청 감사 이익한과 병사 민진익 간 갈등, 숙종 3
년 충청 감사 이명익과 병사 김익훈 간 갈등, 숙종 37년 함경 감사 이선부와 병사 이상집 간 갈등, 영조
19년 함경 감사 박문수와 병사 구성익 간 갈등 등이다.

34) 감사와 병사 쌍방이 장계를 올려 갈등을 표출한 사례로는 인조 23년 공청 감사 이해와 병사 김대건 간
갈등, 영조 8년 함경 감사 정형익과 병사 한범석 간 갈등, 영조 45년 전라 감사 김상익과 병사 서유대 간
갈등, 정조 1년 경상 감사 이연상과 병사 조규진 간 갈등 등이 대표적이다.

35) 평안 감사 박동량과 병사 성윤문 간 갈등은 「인조실록」・「계곡집(谿谷集)」에, 전라 감사 윤명은과 병사
박경지 간 갈등은 「인조실록」・「승정원일기」, 전라 감사 이광덕과 병사 조경 간 갈등은 「영조실록」・「승
정원일기」, 함경 감사 정형익과 병사 한범석 간 갈등, 황해 감사 유엄과 병사 구성인 간 갈등, 함경 감사
박문수와 병사 구성익 간 갈등, 전라 감사 한익모와 병사 조동제 간 갈등은 모두 「영조실록」・「비변사등
록」, 경상 감사 이연상과 병사 조규진 간 갈등은 「정조실록」・「비변사등록」, 충청 감사 김광묵과 병사 구
세적 간 갈등은 「정조실록」・「일성록」, 평안 감사 조준과 병사 채제공 간 갈등은 「정조실록」・「일성록」・
「비변사등록」, 황해 감사 서매수와 병사 김사목 간 갈등은 「정조실록」・「일성록」, 경상 감사 정기선과
병사 권응호 간 갈등 및 전라 감사 서경보와 병사 이존경 간 갈등은 「순조실록」・「비변사등록」, 경상 감
사 이돈영과 병사 백낙신 간 갈등은 「철종실록」・「국조보감」, 함경 감사 임한수와 병사 윤웅렬 간 갈등
은 「고종실록」・「비변사등록」 등에 수록되어 있다.

36) 「조선왕조실록」의 기사를 중심으로 그 예를 보면, 숙종 5년 함경 감사 이선부와 병사 이상집 간 갈등은
2개(5월 27일조, 6월 5일조), 정조 10년 평안 감사 조준과 병사 채제공 간 갈등은 3개(9월 13일조, 9월
20일조, 12월 15일조), 정조대 충청 감사 이원형과 병사 이광섭 간 갈등은 2개(정조 16년 12월 27일조, 정조 17년 5월 12일조), 철종 8년 함경 감사 이시원과 병사 이민교 간 갈등은 2개(1월 15일조, 1월 17일
조), 철종 13년 경상 감사 이돈영과 병사 백낙신 간 갈등은 2개(2월 29일조, 4월 4일조) 등이다.

37) 많은 선행연구는 과업(task)과 관계(relation)의 두 차원을 갈등상황의 준거로 보아 갈등을 유형화하고 있
다(Pinkley, 1990; 김호정, 2011). 관계갈등의 요인들이 과업수행에 영향을 미쳐 갈등으로 표출되기도 하
므로 과업과의 관련성 기준이 적용상 모호한 점이 있을 수 있지만, 대체로 갈등이 안고 있는 핵심적인 문
제가 ‘과업’과 ‘관계’ 중에서 어느 쪽이 더 강한가에 두고 구분이 이루어질 수 있다(김호정, 2011: 114).

조선시대 감사(監司)와 병사(兵使) 간의 갈등: 갈등의 원인 및 갈등관리의 방식과 전략 31


계갈등은 ‘직무’보다는 만남 등의 의례(儀禮)적 관계, 포폄 등 관원과의 관계, 신분・당파(黨派) 등
사적 관계가 더 강하게 작용한 경우이다. Ⅳ. 감사와 병사 간 갈등의 관리


1. 갈등의 관리모형
갈등은 당사자들 간의 자주적 방법과 상위자 등 제3자의 개입에 의한 방법으로 관리될 수 있다.

자주적 방법은 당사자들이 주체가 되는 경우이며, 조직 차원에서는 갈등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
는다. 즉, 조직계층상 상위자가 하위자들 간의 갈등에 무관심하거나 아예 무시 혹은 회피하여 그
냥 내버려 두는 방법이다(신유근, 1993: 418~419).
자주적 해결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제3자의 개입이 필요하게 되는데, 특히 전통적 관료제에서는
계서적 권위 혹은 권력에 의한 지배가 갈등관리의 전형적인 도구로 활용된다.38) 즉, 계층제 원리
에 따라 갈등당사자들의 상위자가 갈등상황에 개입하여 권력 혹은 권위적 지시나 명령을 통해 갈
등을 해결하게 된다. 예컨대 당사자들의 보직 이동 혹은 처벌적 제재, 중심인물의 제거, 압력 행사,

업무분담체계의 조정 등에 의한 해결이 이에 속한다(박운성, 1998: 331~332; 신유근, 1993: 419).
조선시대 국정의 최고결정체는 국왕을 정점으로 하는 의정부(議政府)・비변사(備邊司)였으며, 이
는 중앙집권적 관료제에서 최상위체제로서 절대적인 권위 혹은 권력을 지녔다. 그러한 국정결정
체는 계층제의 원리에 따라 그 하위체제인 감사와 병사 간의 갈등을 어떤 방식으로든 관리하는 위
치에 있었다. 갈등의 정도가 심각하지 않아 문제가 되지 않거나 자발적 혹은 저절로 갈등이 해소
될 것으로 기대하는 경우, 또는 갈등이 오히려 순기능이 있어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는 무대응 혹은 회피하는 방법이 유용하였을 것이다. 그 외의 경우는 권력적인 지
배・개입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든 갈등에 대응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며, 실제 어느 한쪽 혹은 양자
에 대하여 경책(警責), 개차(改差)・체차(遞差), 파직(罷職)・파출(罷黜)・견파(譴罷), 삭직(削職), 추고
(推考), 나문(拿問), 정죄(定罪), 유배(流配) 등 신분상 제재를 가함으로써 갈등을 해결하였다.39)
이처럼 국정의 최고결정체가 감사와 병사 간 갈등을 관리하였던 방법은 [그림]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 즉, 중앙집권체제에서 감사와 병사를 지배하는 국정의 최고결정체는 양자의 갈등에 대하
여 무대응・회피하거나 권력적 개입방식을 통해 관리하였을 것이다. 그러한 갈등관리방법의 선택
은 양자 간 직무분담의 취지와 형태가 고려된 갈등관리전략에 따라 이루어졌을 것이며, 그 갈등관


38) 선행연구에 의하면, 정부 관료제에서는 강압적・지배적 방식이 부하들의 갈등관리에 가장 빈번하게 사용
된다(Lan, 1997: 31; Kim et al., 1999: 131~133; 이창원 외, 2003, 5; Cai & Zhu, 2013: 100~102).
39)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전・현직 감사에게 내려진 파직의 수는 304건(100.0%)이
었으며, 이는 왜란과 호란을 겪은 선조・인조대(16.0%), 붕당정치가 극에 달하였던 현종・숙종대(15.4%)
정치적・군사적 안정을 꾀하였던 영조・정조대(36.7%)에 그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김렬, 2015a: 78).3

2 「지방정부연구」 제22권 제4호


리의 방식과 전략은 갈등의 원인이나 유형에 따라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그림 1> 감사와 병사 간 갈등의 관리모형


계층제의 원리에 의한 갈등관리방법이 추구하는 전략은 직무의 분화 형태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감사와 병사의 직무가 수직적 분화에 의한 것이라면, 감사는 자신의 직무 중에서 군정 일
부를 병사에게 위임하고, 병사는 그 범위 내에서 감사의 지시를 받고 협의하며 보고하는 위치에
있게 된다. 이러한 감사와 병사 간 위임・대리의 관계에서는 상의하달 및 지도・감독・규율 등 ‘병사
에 대한 감사의 통제’가 군정의 효율적인 수행에 가장 중요시된다. 이에 국정의 최고결정체는 ‘감
사에 의한 병사의 통제’를 강화하는 전략을 구사하면서 갈등관리방식을 선택하게 된다.

이와 달리 감사와 병사의 직무가 수평적 분화에 의한 것이라면, 이들 간에는 상호 경쟁적인 관
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이는 국왕을 비롯한 중앙의 의사결정체가 그 하위체제인 감사와 병사
간 경쟁을 유발하기 위하여 직무를 나누어 지배하는 구도이다.40) 이러한 분할지배의 구도는 양자
에게 상호 협의・조정에 의한 직무수행을 요구하지만, 이들 사이에 경쟁적 갈등을 유발하고 그것
을 적절히 유지・관리하는 전략을 추구한다. 따라서 국정의 최고결정체는 감사와 병사 간 갈등을
어느 정도 용인하면서 ‘상호 경쟁’을 지향하는 전략을 구사하면서 갈등관리방식을 선택하게 된다.

 

2. 갈등의 관리방식


1) 과업갈등의 관리방식
감사와 병사 간 갈등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고 복합적이며, 어떤 형태든 직무와 직・간접적으로


40) 분할지배의 구도하에서 하위자들 간에 업무상 경쟁이 이루어지면, 상위자는 상대적으로 다양하고 충분
한 정보를 얻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상위자의 불리한 입장이 상당 부분 완화될 수 있고 하위자들에 대한
통제력이 강화될 수 있다(박통희, 1995: 1328).

조선시대 감사(監司)와 병사(兵使) 간의 갈등: 갈등의 원인 및 갈등관리의 방식과 전략 33


관련되어 있었다. 갈등이 야기된 핵심문제가 군무(軍務)에 직접 관련된 ‘과업갈등’의 예로서 임전
(臨戰), 징발(徵發), 치안(治安), 교열(敎閱), 성지(城池), 군기(軍器), 군량(軍糧)・군수(軍需)・군마(軍
馬)・봉수(烽燧) 등을 둘러싸고 발생한 다툼을 들 수 있다.

감사와 병사가 외침(外侵)이나 내란 등 유사시 군사를 징발하여 직접 인솔하고 전투에 참여하였
다. 전쟁에 임하여 갈등이 발생한 경우는 대체로 감사의 군사상 최고지휘권을 존중하여 병사에게
제재를 가함으로써 이들 간의 갈등을 해결하였다. 그 예로서 1596년(선조 29년) 함경 감사 홍여순
(洪汝諄)과 병사 이일(李鎰) 간 갈등,41) 1605년(선조 38년) 함경 감사 이시발(李時發)과 병사 김종득
(金宗得) 간 갈등,42) 1646년(인조 24년) 공청 감사 임담(林墰)과 병사 배시량(裵時亮) 간 갈등,43)
1649년(인조 27년) 전라 감사 허적(許積)과 병사 박경지(朴敬祉) 간 갈등44) 등에 대한 처리를 들 수
있다. 병사의 직무에서 임전(臨戰)의 경우와 같은 범주에 들어가는 것으로 맹수나 도적의 포획, 내란
이나 화재의 예방 및 진압 등 치안과 관계되는 일들이 있었다(오종록, 1985b: 110). 「경국대전」에
의하면, 맹수나 도적이 있으면 병사는 먼저 군사를 징발하여 조처하고 계문(啓聞)하게 되어있었
다.45) 이와 같은 치안의 중요성에 따라 치안을 둘러싼 갈등은 주로 병사에게 책임을 물어 엄중한
징벌이 내려졌다. 이러한 사례로 1857년(철종 8년)의 화재 사건, 1813년(「순조 13년)과 1862년(철
종 13년)의 난민 진압, 1793년(정조 17년)의 도적 체포 등을 둘러싼 갈등을 들 수 있는데, 임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감사의 병사에 대한 지휘통제권을 인정하여 병사를 파직하거나 심지어 문초
(問招)・정배(定配)하기도 하였다.46)
교열이란 군병에 대한 훈련과 사열을 지칭하며, 그 핵심이 되는 것이 습조(習操)이다. 병사는 비
상시 군사동원・전쟁 수행 외에 평상시 습조를 통해 방어태세를 완비하는 것이 기본 임무였으
며,47) 감사는 습조가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지원하고 그 이행을 확인하는 책무를 지녔다. 따라서
습조와 관련된 갈등에 대해서는 중앙권력의 개입이 강하게 이루어졌으며, 양자 모두에게 신분상
제재를 함으로써 갈등을 해결하였다.

1595년(선조 28년)과 1645년(인조 23년)의 실록기사를 보면, 조련을 둘러싸고 발생한 감사와 병사 간 다툼에 대하여 모두에게 책임을 물어 징벌적 제재를 가하
는 결정이 있었다.48) 심지어 감사의 자질 등이 크게 문제시되어 갈등이 발생한 경우, 습조에 참여
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병사를 파출한 사례가 있었다.49)


41) 「선조실록」 29년 6월 21일(丁巳)조.

42) 「선조실록」 38년 7월 4일(丙子)조 및 6일(戊寅)조.

43) 「인조실록」 24년 4월 4일(庚辰)조.

44) 「인조실록」 27년 2월 5일(甲午)조.

45) 「경국대전」 병전, 부신(符信)조.

46) 「철종실록」 8년 1월 17일(庚午)조 및 13년 4월 4일(丙辰)조.

47) 「경국대전」 병전, 교열(敎閱)조에 따르면, 제진(諸鎭)에서는 농사철을 제외하고 매월 16일 자체로 습진을
하여야 하며, 2월과 10월에는 거진(巨鎭) 소속의 모든 군사가 식량을 싸서 진(鎭)을 바꾸어 진법을 연습
하도록 하였다.

48) 「선조실록」 28년 7월 2일(癸酉)조 및 「인조실록」 23년 11월 10일(戊午)조.34

「지방정부연구」 제22권 제4호


군사시설의 수축을 둘러싼 갈등의 대표적인 사례로 1731년(영조 7년) 경상 감사 조현명(趙顯命)
과 우병사 김몽로(金夢魯) 간 다툼이 있다.50) 감사가 병사와 협의하지 않고 산성(山城)에 대한 절목
(節目)을 만들었기에 병사가 그에 대해 의심하고 불평하면서 상호 비방・장계한 사건이었다. 국왕
은 “감사가 순찰사(巡察使)의 직임까지 겸하고 있기에 병사는 감사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
에서 병사를 파직하고 감사는 장계의 형식만을 문제 삼아 경책(警責)하는데 그쳤다. 2) 관계갈등의 관리방식
감사와 병사 간의 관계갈등은 직무와 직접적인 관련성보다는 영접・상견(相見)・회좌(會坐) 등의
의례(儀禮), 부하(部下)에 대한 지배・관리, 개인적인 신분・당파 혹은 성격・태도・행동 등이 더 강하
게 작용한 경우이다. 이러한 관계갈등은 양자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우월적 위상이나 지위를 점하
기 위한 경쟁이 그 주요 원인이었다.

감사가 부임하거나 순행(巡行)할 때 병사가 공장(公狀) 제출이나 연명(延命) 이행 등 의례를 지키
지 않아 발생한 다툼에 대하여, 중앙권력은 대체로 감사의 상대적인 우월성을 인정하여 병사에게
징벌적 제재를 가하였다.51) 하지만, 병사에 대한 감사의 절대적인 우월성을 용인하지 않은 사례도
있었는데, 1777년(정조 1년)의 실록 기사에 ‘도신이 순행하여 도착했을 때 수신(帥臣)은 교유서(敎
諭書)를 지영(祗迎)하게 되어있고 전도(前導)하는 예(例)는 없다’라고 하면서 오히려 감사를 추고하
도록 하였다.52)
감사와 병사는 외관의 포폄을 둘러싼 감사와 병사 간 갈등은 1442년(세종 24년) 감사의 전최(殿
最)에 대해 병사가 반발하여 직계한 사건이 대표적이다.53) 그 이후 「경국대전」의 규정이 마련되었
음에도, 어느 한쪽이 포폄에 아예 참여하지 않거나 다른 쪽에 협의를 구하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
았다.54) 수령에 대한 감사의 포폄에 병사가 참여하지 않은 경우나 변장(邊將)에 대한 병사의 포폄
에 감사를 참여시키지 않았을 때는 병사에게 그 책임을 물었다.55) 정조대(正朝代)에 수차례 논란이
된 감사 조준(趙㻐)과 병사 채제공(蔡濟恭) 간의 다툼은 그 원인이 당파 등 개인적인 사유였지만,56)
병사를 의도적으로 배제하려고 일부러 기한을 지체한 감사에게 귀양(歸養)이라는 엄한 조치가 취
해졌다.57)


49) 「숙종실록」 3년 3월 8일(甲申)조.

50) 「비변사등록」 영조 7년 12월 18일조.

51) 「영조실록」 42년 9월 5일(壬申)조, 「정조실록」 10년 9월 13일(癸未)조, 「정조실록」 20년 9월 4일(丙午)조
및 「비변사등록」 헌종 4년 3월 9일조.

52) 「정조실록」 1년 4월 5일(庚子)조.

53) 「세종실록」 24년 12월 19일(乙巳)조.

54) 「중종실록」 18년 12월 11일(丁未)조 및 「영조실록」 10년 1월 6일(癸未)조.

55) 「영조실록」 36년 12월 15일(乙酉)조 및 「인조실록」 10년 1월 3일(辛丑)조.

56) 조준과 채제공 사이의 당파적 갈등은 「정조실록」의 여러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6년 1월 12일
(己酉)조, 6년 1월 15일(壬子)조, 7년 1월 5일(丁酉)조, 8년 6월 5일(戊子)조, 10년 9월 13일(癸未)조, 10년
9월 20일(庚寅)조, 10년 10월 13일(癸丑)조 등이다.

조선시대 감사(監司)와 병사(兵使) 간의 갈등: 갈등의 원인 및 갈등관리의 방식과 전략 35


병사는 한 군현의 군사상 책무를 지닌 수령과 여러모로 상호 대립과 충돌을 겪었다.58) 이러한
병사와 수령 간의 알력에 감사가 어떤 형태든 관련되어 그것이 오히려 감사와 병사 간의 다툼으로
전개되기도 하였다. 1744년(영조 20년) 평안 감사 김약로와 병사 조윤성이 각기 의주부윤(義州府
尹)의 잉임(仍任)과 파직을 달리 청하면서 빚은 갈등에 대하여 ’양자 모두가 옳다‘는 결정이 내려졌
다.59) 1780년(정조 4년)에 해미현감(海美縣監)을 두고 유사한 갈등상황이 있었는데, “당초 병사의
직계가 정식에 어긋났으면 감사가 병사를 논책하는 조치를 하여야 하는데 이를 거론하지 않았다” 는 이유로 감사를 추고하도록 하고 병사는 그대로 두었다.60)
이처럼 수령을 둘러싼 감사와 병사 간 갈등은 감사의 수령출척권(黜陟權)을 인정하면서도 대체
로 수령에 대한 병사의 권위를 확보・유지하려는 방향으로 관리되었다. 그러한 의도가 담긴 실록
기사의 내용을 보면, 1598년(선조 31년) 아산현감 홍여성(洪汝誠) 등의 진퇴에 대한 감사 김신원(金
信元)과 병사 이광악(李光岳) 간 갈등을 논하면서, “병사와 방어사도 곤외(閫外)를 전제(專制)할 책
임이 있는 자로서 1∼2명의 수령의 진퇴로 인하여 사체에 손상되게 그들을 추치(推治)할 수는 없
는 일이다”고 하였으며,61) 1828년(「순조 28년) 순천부사 윤명규(尹命圭)의 파직을 둘러싼 전라 감
사 서경보(徐耕輔)와 병사 이존경(李存敬) 간 갈등의 경우, “수신(帥臣)에 쓰인 말이 외람되고 잡스
럽다고 하여 감죄(勘罪)를 청”한 감사에게 월봉(越俸) 3등을 명하면서, “병사도 처벌할 단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 사람의 수령을 논파한 일을 가지고 죄를 씌워 체직시킨다면 일의 체면에 손상
이 될 것이니, 수신(帥臣)을 논죄하는 일은 우선 그만두도록 하라”는 결정을 하였다.62)
「경국대전」에 규정된 직단권(直斷權)을 활용하여63) 상대편의 부하(部下)에게 형장(刑杖)을 가함
으로써 상호 간에 권위를 다투는 경우가 있었다. 1769년(영조 45년) 전라 병사 서유대(徐有大)가 감
영(監營) 소속의 종(隷)에게 곤장을 친 것에 감사 김상익(金相翊)이 노하여 병사의 비장(裨將)을 다


57) 「정조실록」 10년 12월 15일(甲寅)조.

58) 예를 들면,

1430년(세종 12년) 병사 이각과 목사 이욱 간 갈등, 1610년(광해 2년) 병사 박엽과 부사 윤수
민 간 갈등, 1616년(광해 8년) 병사 김예직과 군수 이덕부 간 갈등, 1638년(인조 16년) 병사 조후량과 목
사 구봉서 간 갈등, 1660년(현종 1년) 병사 권우와 판관 홍여하 간 갈등, 1664년(현종 5년) 병사 이두진
과 현감 홍주삼 간 갈등, 1679년(숙종 5년) 병사 이필과 목사 조사기 간 갈등, 1728년(영조 4년) 병사 정
수송과 부사 한성흠 간 갈등, 병사 조경과 부사 심유현 간 갈등, 1731년(영조 7년) 병사 김몽로와 목사
구성임 간 갈등, 1749년(영조 25년) 병사 조동제와 부사 김시영 간 갈등, 1786년(정조 10년) 병사 채제공
과 현감 신사운 간 갈등, 1795년(정조 19년) 병사 이해우와 군수 김이현 간 갈등, 1798년(정조 22년) 병
사 조윤정과 부사 신대윤 간 갈등, 1800년(정조 24년) 병사 이성묵과 목사 조영경 간 갈등 등이다.

 

59) 「영조실록」, 20년 2월 8일(丙辰)조.

60) 「일성록」 정조 4년 11월 19일(癸巳)조.

61) 「선조실록」 31년 4월 21일(乙亥)조.

62) 「순조실록」 28년 11월 18일(甲寅)조.

63) 「경국대전」 병전 용형조(用刑條)에, ‘장수(將帥)가 임금의 명령을 받고 밖에 있는 사람은 장형(杖刑) 이하
의 죄는 바로 처단한다’고 규정하였다. 형전(刑典)의 추단조(推斷條)에는, ‘관찰사(觀察使)는 유형(流刑)
이하의 죄는 바로 처단하며,’ ‘절도사(節度使)의 관할을 받는 사람이 군무(軍務) 이외의 범죄가 장형(杖刑)
이상인 것은 관찰사(觀察使)에게 공문(公文)을 보내어 추단(推斷)하게 한다’고 하였으며, 수금조(囚禁條)
에는, ‘문무(文武)의 관원은 계문(啓聞)하여 수금(囚禁)하고, 사죄(死罪)를 범한 사람은 먼저 수금(囚禁)하
고 뒤에 계문(啓聞)한다’고 규정되었다.36 「지방정부연구」

제22권 제4호


스렸던 사건이 있었는데, 이에 대하여 군무와 무관함을 들어 병사를 파직하였다.64) 또한, 1792년
(정조 16년) 충청 병사 이광섭(李光燮)이 역리(驛吏)를 형신(刑訊)하였던 것에 반발하여 감사 이형
원(李亨元)이 병영(兵營)의 아전(衙前)을 추고한 다툼에서는 양자 모두에게 아무런 제재를 취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65)


3. 갈등의 관리전략
위에서 논의한 감사와 병사 간 갈등사례에서 보듯이, 국왕을 정점으로 한 국정의 최고결정체는
무대응・회피 혹은 용인(容認)에서부터 적극적인 개입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양자 간의 갈등을 관리
하였다. 그러한 갈등관리방식의 선택은 양자 간 갈등의 원천이 된 직무분담의 취지나 형태를 고려
한 갈등관리전략에 따라 이루어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즉, 양자의 직무가 수직적 분화에 의한 것
이라면 ‘병사에 대한 감사의 통제’를 강화하는 전략에서 갈등관리방식이 선택되었을 것이며, 양자
의 직무가 수평적 분화에 의한 것이라면 ‘감사와 병사 간 경쟁’을 지향하는 갈등관리전략이 강하
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먼저 군무와 직접 관련된 과업갈등의 경우를 보면, 전통적 관료제에서 갈등관리의 전형적인 도
구로 활용되는 권력적 개입방식이 주로 선택되었다. 권력적 개입은 양자 모두에게 갈등의 책임을
물으면서도, 대체로 병사에게 그 책임을 더욱 강하게 귀결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임전
(臨戰)이나 치안, 군사시설의 수축 등을 둘러싼 갈등에 대해서는 병사에 대한 감사의 지휘통제권
을 존중하여 그에 따르지 않은 병사에게 가혹한 제재를 취하였다. 이러한 갈등관리방식은 도내 군
정의 최고책임자는 감사이며, 그 직무의 일부가 수직적으로 분화되어 병사에게 위임되었다는 판
단에 따른 것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과업갈등의 경우, 양자 간 위임・대리의 계서적 관계를 인정
하여 감사 위주의 ‘통제지향적’ 전략에 의한 권력적 개입이 주로 이루어진 경향이 있었다.

한편, 관계갈등의 경우는 갈등의 주요 원인에 따라 그 관리의 방식과 전략에 다소 차이가 있었
다. 양자 간 갈등이 상호 의례 혹은 포폄 등 외관과의 관계에 기인한 경우는 권력적 개입방식이 주
로 선택되었다. 여기서 의례 관계의 다툼에 대한 권력적 개입은, 감사의 상대적인 우월성을 인정
하면서도 절대적인 우위는 보류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즉, 감사와 병사 간 상하관계에 기반을
둔 ‘통제지향적’ 전략을 구사하면서 어느 정도 ‘경쟁지향적’ 관점에서 권력적 개입을 하였다.

외관의 포폄을 둘러싼 갈등에는 어느 쪽이든 위반자에 대해서 엄격한 제재가 수반되었다. 각 관
하의 외관에 대한 포폄의 주체를 정하고 서로 교차하여 동의하도록 한 규정은 양자 간에 상호 협
의와 견제를 도모하는 제도였다. 특히 감사의 수령출척권에도 불구하고, 수령의 진퇴에 대하여 병
사의 의견을 상당히 존중하는 결정이 적지 않았다. 이는 수령에 대한 병사의 위상을 높이려는 취
지가 있었겠지만, 수령에 대한 감사의 포괄적인 관할권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잠재되어 있었을 것
이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포폄을 둘러싼 갈등에 대해서는 감사에 의한 ‘통제’보다는 양자 간에 상


64) 「영조실록」 45년 8월 5일(甲寅)조. 65) 「정조실록」 16년 12월 27일(辛卯)조.

조선시대 감사(監司)와 병사(兵使) 간의 갈등: 갈등의 원인 및 갈등관리의 방식과 전략 37


호 ‘경쟁’을 지향하는 전략에서 권력적 개입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상대편의 관원(官員)에 대한 용형(用刑)을 둘러싼 다툼은 군무와의 관련성에 따라 권력적 개입의
여부가 결정되었다. 군무와 관계없는 용형으로 발생한 갈등에는 병사에게 권력을 통한 징벌적 제
재가 가해졌으며, 군무와 관련된 병사의 용형으로 야기된 갈등에 대해서는 권력적 개입이 없는 무
대응 혹은 회피적 방법이 선택되었다. 즉, 군무와 무관한 용형으로 빚어진 다툼에서는 감사의 우
월한 지위가 확인되는 ‘통제지향적’ 전략에 의한 권력적 개입이 있었으나, 군무와 관련된 용형으
로 빚어진 갈등의 경우는 감사뿐만 아니라 병사의 직단권도 함께 존중하는 ‘경쟁지향적’ 전략에서
무대응 또는 회피하였다.

 

Ⅴ. 요약 및 결론
조선왕조의 중앙집권체제에서 감사와 병사는 한 도에서 왕권을 대행하는 주체였으며, 지방통치
업무를 수직적・수평적으로 분담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업무분담은 직무상 상호의존성과 중첩성
을 수반하였으며, 이로 인해 양자 간에는 지위나 권한 등에 있어서 갈등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
었다. 이에 본 연구는 갈등의 원천을 지방통치업무의 수직적・수평적 분화에 따른 직무의 상호의
존성과 중첩성에 두고, 여러 문헌기록에 제시된 사례를 통해 갈등의 주요 원인을 살펴보고 그 관
리의 방식이나 전략을 논하였다.

감사와 병사 간에 갈등의 원인은 매우 복합적이며, 군무와 직접 관련된 사항에서부터 순전히 개
인적인 관계까지 매우 다양하였다. 갈등의 핵심문제가 군무와 직접 관련된 ‘과업갈등’으로는 임
전, 징발, 치안, 교열, 성지 수축 등을 둘러싸고 발생한 다툼들이 있었다. 한편, 양자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우월적 위상이나 지위를 점하기 위한 ‘관계갈등’의 사례도 적지 않았는데, 이는 영접・상
견・회좌 등의 의례, 부하에 대한 지배・관리, 개인적인 신분・당파 등이 강하게 작용한 경우이다.

조선시대 국정의 최고결정체는 국왕을 정점으로 하는 의정부・비변사였으며, 그 하위체제인 감
사와 병사 간의 갈등에 대하여 무대응・회피하거나 계서적 권력을 통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였다.

갈등이 심각하지 않거나 자발적 혹은 저절로 갈등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 경우, 또는 갈등이 오
히려 순기능이 있어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한 경우에는 무대응 혹은 회피하는 방
식을 선택하였다. 반면에, 양자 간 갈등을 해결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던 경우에는 권력적 개입을
통해 대응하였으며, 이는 대체로 어느 한쪽 혹은 양자에 대하여

경책, 개차 또는 체차, 파직, 삭직, 추고, 정죄, 유배 등과 같은 신분상 제재의 형태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중앙정부의 갈등관리방식은 갈등의 주요 원인이나 유형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었
다. 군무와 직접 관련된 과업갈등의 경우는 대체로 권력적 개입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였으며, 감
사와 병사 모두에게 갈등의 책임을 지우면서도 병사에게 그 책임을 더욱 강하게 귀결시키는 방향
으로 징벌적 제재가 가해졌다. 한편, 관계갈등은 그 원인에 따라 관리방식에 있어서 다소 차이가
있었는데, 양자 간 갈등이 상호 의례에 기인하거나 포폄 등 외관과의 관계로 발생한 경우는 대체

38 「지방정부연구」 제22권 제4호
로 권력적 개입방식이 활용되었다. 하지만 상대편의 관원에 대한 용형을 둘러싼 갈등의 경우, 그
것이 군무와 관계없는 용형으로 발생한 다툼에는 권력적 개입이 이루어졌으나, 군무와 관련된 용
형으로 빚어진 갈등에 대해서는 무대응 혹은 회피하였다.

이처럼 중앙정부의 갈등관리가 약간씩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은 갈등의 원천, 즉 양자 간
직무분담의 취지와 형태를 고려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감사와 병사 간 직무분담이 수직적 분화에
의한 것이라면, 감사는 도내의 행정책임자이며, 병사는 감사의 직무 혹은 군정 일부를 위임받아
수행하는 대리자가 된다. 이러한 양자 간 위임・대리의 계서적 관계는 군무와 직접 관련된 과업갈
등의 경우에 대체로 인정되어 감사 위주의 통제지향적 전략에 의한 권력적 개입이 유용한 관리방
식으로 선택되었다. 또한, 상호 의례적 관계로 인한 갈등이나 군무와 무관한 용형으로 빚어진 다
툼에 대해서도 양자 간 계서적 관계에 따른 권력적 개입방식이 주로 활용되었다.

이와 달리 감사와 병사 간 직무분담이 수평적 분화에 의한 것으로 판단하여, 감사와 병사 간 경
쟁을 지향하는 전략에서 양자 간의 갈등을 관리하기도 하였다. 이는 주로 관계갈등의 경우에 감지
되는 경향인데, 양자 간 경쟁을 유지・촉진하는 방향으로 권력적 개입을 하거나 무대응・회피하는
방식을 구사하였다. 외관의 포폄을 둘러싼 갈등에 있어서 어느 쪽이든 위반자에게 가해진 징벌적
제재는 상호 경쟁을 지향하는 권력적 개입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군무와 관련된 용형으로
빚어진 갈등에 대해서는 감사와 더불어 병사의 직단권을 함께 존중하는 경쟁지향적 전략에 따라
무대응・회피적 관리방식이 채택되었다.

어느 조직이나 사회에서 갈등은 보편적인 현상일 수 있으며, 각 사안에 따라 갈등의 원인이나
관리방식 등은 다양하다. 갈등에 관한 연구는 대체로 갈등의 주요 원인을 찾고 그에 따라 유용한
관리방법을 도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특히 본 연구는 전통적 관료제에서 갈등관리의 전
형적인 도구로 활용되는 권력적 개입이 실제 이루어진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았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조선왕조가 지방을 효과적으로 지배・통치하기 위하여 감사와 병사를 어떻게 활용하였는지
를 파악하고, 조선왕조를 비롯한 전통적 관료제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그 관리방법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나아가 현대 관료제에서 수직적・수평적 업무분화로 인해 발생 가능한 갈등을 효과
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이나 전략을 논하는데 도움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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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김렬(金洌): 미국 Ohio State University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논문: Urban Dynamics and the
Role of Public Policy: An Analysis of Urban Hardship and Fiscal Institutions, 1992), 현재 영남대학교 행정
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인사행정, 지방재정 및 행정사 등이 관심분야이며, 주요 저서로는 「연구조사방법
론(2007)」과 「인사행정론(2016)」 등이 있고, 최근 논문으로는 “재정분권이 지역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
(2014)”, “조선전기 관료의 임기제(2015)”, “조선시대 관료의 승진 실태(2017)”, 등이 있다(ykim@ynu.ac.kr).
조민경(曺民京): 영남대학교에서 행정학 박사를 취득하고(논문: 재정분권이 경제발전에 미치는 효과에 관한
연구, 2012), 현재 대구과학대학교 국방안보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지방재정, 군사학 및 인사행정
등이 관심분야이며, 최근 논문으로는 “재정분권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 메타분석을 통한 효과크기 검증
(2013)”, “지방의회 기능과 상임위원회의 전문성 간의 관계(2015)”, “군 조직의 신뢰증진 방안(2018)” 등이 있
다(cobi77@ynu.ac.kr).
<논문접수일: 2018. 12. 19 / 심사개시일: 2018. 12. 27 / 심사완료일: 2019. 1. 17>조선시대 감사(監司)와 병사(兵使) 간의 갈등: 갈등의 원인 및 갈등관리의 방식과 전략 41
Abstract
A Study on the Conflict between Gamsa (Provincial Governor) and Byongsa
(Provincial Army Commander) in the Joseon Dynasty:
Causes, Methods and Strategies
Kim, Yul
Cho, Min-Kyung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plore how the central government authority dealt with the
conflict between Gamsa and Byungsa in the Joseon Dynasty. Gamsa and Byungsa were the same
top-ranking positions of Jong 2-Poom in a province; the former was the highest civil official in a
provincial government, while the later was the highest military official in the same provincial
government.
By examining numerous cases in the JoseonWangchoSillok(Annals of the Joseon Dynasty), we
find that a variety of conflicts arose and they resulted form the vertical and horizontal
differentiation of duties between Gamsa and Byungsa. In the heavily-centralized regime,
Uijongbu/Bibyunsa(the State Council, which was the highest decision-making body in the Josoen
government) used its authoritarian power to resolve the conflicts.
The Council approached the conflicts with different methods and strategies by the type of
conflicts. When the conflicts were task-related, ‘control-oriented intervention’ strategies were
mostly adopted to resolve them. For the management of relationship conflicts, the Council chose
different but mixed strategies; ‘competitive-oriented intervention’ strategies were used for solving
the conflicts on subordinate eval‎uation, while ‘competitive-oriented avoidance’ strategies were
adopted for the management of the conflicts over punitive action against their subordinates.
Key Words: Joseon Dynasty, conflict management, conflict management strategy, conflict
resolution, Gamsa(Provincial Governor), Byungsa(Provincial Army Commander

 

 

조선시대 감사(監司)와 병사(兵使) 간의 갈등 갈등의 원인 및 갈등관리의 방식과 전략-복사.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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