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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칼럼

蘇軾 문예 감상의 세 가지 척도 /최재혁.우송대

蘇軾 문예 감상의 세 가지 척도


崔 在 赫*1)

 

< 目 次 >
1. 들어가는 말
2. 自然美
2.1 天工自然의 기교
2.2 陶淵明, 吳道子, 文同
3. 含蓄美
3.1 言外之意의 발현
3.2 陶淵明, 柳宗元, 杜甫, 韋應物
4. 物我一體
4.1 物化의 경계
4.2 文同, 陶淵明
5. 나오는 말
參考文獻
中文摘要

1. 들어가는 말


* 又松大學校 觀光經營學科 招聘敎授
268 中國語文學論集 (第 40 號)


창작이 작가가 사유를 통해 작품으로 발현된 것이라면, 감상은 독자가 작품을 통해 사유
한 것이라 말할 수 있겠다. 창작과 감상은 동전의 양면처럼 문예활동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두 가지 요소이다. 하나는 작가가 몸소 겪은 인생에 대한 맛을 작품으로 독자에게
고백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독자가 일찍이 겪었던 인생에 대한 맛을 작품을 통해 되새
길 수 있게 한다.
무엇을 우수한 작품이라고 하나? 인생 경험을 기막히게 잘 묘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이는 바로 인생 경험을 적절하게 묘사한 작품을 우수한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이는 적절한 비유와 전고를 사용하여 매우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을 우수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우수한 작품을 한 마디로 단언하기란 어렵다. 게다가 매 시대마다 문학에 대한
관념이 다르고 문학가들마다 문학관이 다르다. 그렇다면 蘇軾은 도대체 어떤 문예작품을 즐
겨 감상하였을까? 소식의 평어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세 가지, 즉 ‘자연미’, ‘함축미’, ‘물아일
체’ 등으로 정리해볼 수 있다.
蘇軾은 문예 창작시 중시했던 점을 감상자의 입장에서도 똑같이 중시하였다. 소식은 ‘辭
達’, ‘隨物賦形’, ‘傳神’ 등의 문예 창작 이론을 몸소 실천하면서 다른 작가들의 문예 작품을
감상할 때에는 ‘자연미’, ‘함축미’가 드러난 문예 작품을 최고로 보았으며 더 나아가 작가와
감상자가 동일한 물상에 대해 똑같은 체험과 체득을 얻게 되면, 문예 심미 사유가 극점에
달하여 ‘物心統一’, 즉 ‘물아일체’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 ‘물아일체’는 작가의 감정이 대상
물에 이입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物我間에 하나가 된 상태, 즉 同化 내지는 體化에 이르게
된 경지를 감상자 역시 도달했을 때에 가능한 것이다. 감상자가 한 작품을 통해 물아일체를
느꼈다면 작가와 감상자는 최고의 교감을 이루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知音’이란 말도
바로 여기서 논하고자 하는 문제의 중요성을 정확히 보여주는 말이다.
많은 산문 작품 속에서 소식은 역대 많은 문인들을 평가하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칭송되
었던 인물을 나열해보면, 陶淵明, 柳宗元, 吳道子, 韋應物, 杜甫, 文同 등이다.1) 본문에서는
소식이 전대 문인들을 주로 평가한 세 가지 척도를 중심으로 논술하고자 한다.


1) 이들 외에도, 蘇軾의 평어 중에는 孟浩然, 李白, 王維, 韓愈, 孟郊, 賈島, 李賀, 白居易, 張志和, 陸
贄, 杜牧, 李商隱, 司空圖, 貫休, 歐陽修, 蘇洵, 蘇舜欽, 梅堯臣, 柳永, 范仲淹, 王安石, 曾鞏, 司馬光,
米芾, 黃庭堅 등이 언급되어 있다. 張健, 〈蘇軾的文學批評硏究〉, 文史哲學報(國立台灣大學文
學院, 1973년6월)제22기, 211~258쪽; 宋金四家文學批評硏究(張健, 台北: 聯經出版事業公司,
1975─1983년), 54~111쪽 참고.
蘇軾 문예 감상의 세 가지 척도(崔在赫) 269


2. 自然美
이른바 ‘자연미’란 작품의 정경이 모두 참되고 청신하여 아무런 인위적인 작태가 없는 것
을 말한다. 중국 고대 철학자들은 ‘自然’을 매우 중시하였다. 공자는 “사리에 통달한 智者는
물을 좋아하고 의리에 안주할 줄 아는 仁者는 산을 좋아한다.(知者樂山, 仁者樂水.)”2)라는
설법을 사용하여 산수에 감정을 기탁하여 자연을 본받고자 하였다. 老子 역시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道法自然.)”3)라고 여겨 그 철학적 최고 개념인 ‘道’를 ‘自然’으로 해석하였다. 莊子
는 더 나아가 “소박하여 본질 그대로면 천하에 겨룰 것이 없을 만큼 훌륭해진다.(樸素而天下
莫能與之爭美.)”4)라고 지적하였다. 중국은 예부터 자연미를 숭상하여 문예창작자들 역시 자
연의 아름다움을 본받고자 하였다.


2.1 天工自然의 기교
작가는 창작할 때 우선 자연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그래서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억
지로 짓지 않고 창작에 고심하지 않는다. 蘇軾은 여러 글 속에서 자연을 중시하는 사상을
반영하였다. 그는 “시인은 한가로운 초목을 조각하여 그 속내를 들추어내니 귀신도 응당 곡
하리.(詩人雕刻閑草木, 搜抉肝腎神應哭.)”5)라고 말하여 억지로 짓느라 고심하는 것을 반대
하였다.
창작은 “한데 섞이어 마음속에 와 닿아 절로 입을 통해 시로 발해야(雜然有觸於中, 而發於
詠歎.)”6) 진정이 토로되게 되고 비로소 독자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다. 자연미는 진솔한
감정에서 나와 거짓으로 꾸미지 않는 것으로, 이는 바로 소식이 요구했던 최고의 문예 경계
임을 알 수 있다. 소식은 謝民師의 작품들을 극찬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2) 論語‧雍也, 十三經注疏(台北: 藝文印書館, 1997년) 제8책, 54쪽.
3) 老子‧25章, 王弼集校釋(樓宇烈 校釋, 台北: 華正書局, 1992년), 65쪽.
4) 莊子集釋(淸‧郭慶藩 集釋, 台北: 貫雅文化事業公司, 1991년), 外篇〈天道〉第十三, 458쪽.
5) 蘇軾詩集(淸‧王文誥 輯註, 孔凡禮 校點, 北京: 中華書局, 1982─1992년) 제4책 권22, 〈次韻孔
毅父集古人句見贈五首(之四)〉, 1157쪽.
6) 蘇軾文集(孔凡禮 點校, 北京: 中華書局, 1986─1990년) 제1책 권10, 〈南行前集敍〉, 323쪽.
270 中國語文學論集 (第 40 號)


보내주신 서신과 詩, 賦, 雜文은 잘 보았습니다. 대략 흘러가는 구름과 흐르는 물처
럼 처음엔 작정한 방향이 없는 듯했지만, 마땅히 가야할 곳에 항상 가고 응당 그치
지 않을 수 없는 곳에서 항상 멈춘다. 文理가 자연스러우며 姿態가 곳곳에서 드러납
니다.
所示書敎及詩․賦․雜文, 觀之熟矣. 大略如行雲流水, 初無定質, 但常行於所當行, 常
止於不可不止, 文理自然, 姿態橫生.7)


소식은 ‘行雲流水’라는 말을 빌어 자연미를 강조하였다. 소식은 〈書辯才次韻參寥詩〉에
서 宋代 詩僧 辯才를 평가하면서 “평생 시 짓는 것을 배우지 않았지만 바람이 불어와 물을
일으켜 절로 물결을 이루어내는 듯하다.(平生不學作詩, 如風吹水, 自成文理.)”8)라고 말하였
다. 시를 배운 적이 없는 辯才는 공교롭게도 세속의 시인들의 제한이 없었기에 그가 지은
시는 천연스러운 정취가 절로 나왔다.
소식의 문예 감상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그가 자연미를 강조하면서도 결코 인공창조
의 필요성을 잊지 않았다는 점이다. 소식은 수사 기교를 통해 천부적인 자연미에 도달할 것
을 중시하였다. 그는 〈書李伯時山莊圖後〉에서 “도는 있지만 기예능력이 없다면 물상이 비
록 마음으로 짐작되더라도 손으로 나타내지 못한다.(有道而不藝, 則物雖形於心, 而不形於
手.)”9)라고 말하였다. 이는 바로 작가가 객관 사물의 규율성과 특징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것을 표현해낼 수 있는 고도의 기교 또한 지녀야한다는 점을 말한다. 마음속에
물상을 담아내고도 손으로 그려내어야만 비로소 창작을 완성할 수 있다.
소식은 몸소 이해한 詩作의 참 맛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좋은 시는 입으로 내면 누구나 가려낼 수 있고, 속된 자는 자신이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고 의심하네.
好詩衝口誰能擇, 俗子疑人未遣聞.10)
입으로 흔하디 흔한 말을 내뱉어도 법도는 옛 격식을 본받네. 사람들은 妙處가 아니
라 말하지만 妙處는 여기에 있네.


7) 蘇軾文集제4책 권49, 〈與謝民師推官書〉, 1418쪽.
8) 蘇軾文集 제5책 권68, 〈書辯才次韻參寥詩〉, 2144쪽.
9) 蘇軾文集 제5책 권70, 〈書李伯時山莊圖後〉, 2211쪽.
10) 蘇軾詩集 제3책 권19, 〈重寄〉, 995쪽.
蘇軾 문예 감상의 세 가지 척도(崔在赫) 271


衝口出常言, 法度法前軌. 人言非妙處, 妙處在於是.11)
입 밖으로 술술 말하여도 절로 이루는 것을 시의 묘미로 보았다. 법도란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그렇다 해서 창작은 결코 ‘前規’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법도는 살아있는 것이
어서 응당 대상물 자체가 지닌 특징을 반영하는 것을 위주로 삼아야한다. 시가 창작의 묘미
는 바로 저절로 그리 되는 것에 있고 말하는 가운데 일정한 법도를 지니는 것이다. 소식은
書法을 논할 때에도 “글씨란 붓 틀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 붓 가는 바를 물이 세차게 흐르
듯이 듣고 법도를 잃지 않는다면 바로 얻었다고 말할 수 있다.(知書不在於筆牢, 浩然聽筆之
所之, 而不失法度, 乃爲得之.)”12)라고 말하였다. 붓 가는 대로 써서 어떠한 법도에 얽매이지
않고 서법 자체의 자연 이치에 따라 창작하지만 법도를 부정하지도 않는다. 소식은 이러한
자연을 따른 원칙을 가장 중요한 법도라 여겼다. 소식이 말한 법도는 즉 자연의 법도이다.
이는 변화에 순응하며 대상물의 자연스런 모습을 적절히 묘사하는 것이지 죽어 변치 않는
법도가 아니다. 그래서 소식은 법도와 자연 규율 관계 속에서 문예창작은 법도를 잃지 않으
면서도 법도에 구애받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는 자연을 위주로 한 법
도와 자연의 통일을 주장하였다.13)
그는 〈書鄢陵王主簿所畫折枝〉에서 “시와 그림은 본디 하나의 이치이니, 바로 天工과 淸
新이라네.(詩畫本一律, 天工與淸新.)”14)라고 말하였다. 이는 바로 소식이 시가와 그림의 표
현이 자연의 이치에 합치되어야 한다고 여겼음을 설명한다. 시가와 그림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은 이러한 점에서 다름이 없다. 즉 모든 예술은 한결같이 사물의 자연스런 모양인 ‘天工’
과 사물의 무궁무진하게 변하는 모양인 ‘淸新’을 표현해야 하는 것이다. 소식은 이 두 가지를
시가와 그림이 응당 도달해야할 최선의 경지라 여겼다. 문예창작은 자연을 본받아야 하며
인위적인 수식을 더하지 말아야 천연의 신비한 경지에 이른다. 소식은 시가와 그림이 서로
다른 문예 형식이지만 그 둘 사이에는 ‘天工’과 ‘淸新’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여겼다. ‘天工’


11) 竹坡詩話(周紫芝 撰); 蘇軾資料彙編(四川大學 中文系 唐宋文學硏究室 編, 北京: 中華書局,
1994년) 上編一, 250쪽.
12) 蘇軾文集 제5책 권69, 〈書所作字後〉, 2180쪽.
13) 소식이 陸機와 劉勰 등과 다른 점은 법도와 자연의 통일을 주장하면서 劉勰은 법도를 통해 자연
에 이르는 데 중점이 있었고 蘇軾은 자연을 법도로 삼아 법도의 틀을 깨고자 하였다는 데 있다.
이 점이 劉勰이 이해한 ‘법도’와 다른 점이다. 中國古代文學創作論(張少康, 台北: 文史哲出版社,
1991년), 335~336쪽 보임.
14) 蘇軾詩集 제5책 권29, 〈書鄢陵王主簿所畫折枝二首(之一)〉, 1525~15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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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자연에서 나와 조탁하지 않은 天衣無縫의 경지를 뜻하지만 ‘天工’에서 나온 것이라도 반
드시 사람들에게 ‘淸新’한 느낌을 주어야 한다.
작가는 객관적 현실 자체의 자연 규율과 상태를 존중해야 하고 주관적인 편견으로 억지로
고쳐서는 안 되며 더욱 몇 가지 틀에 박힌 법도와 규율로 구속해서는 안 된다. ‘사물’ 자체가
어떤 ‘형태’라면 그것에 그 ‘형태’를 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隨物賦形’이고 ‘行雲流水’이다.
소식이 강조한 天工自然은 결코 예술 기교의 운용을 배척한 것이 아니다. 소식은 그림을 논
할 때에 “화가들이 雪浪石의 세를 다투어 그리지만, 하늘의 솜씨는 천둥 친 도끼 흔적을 볼
수 없네.(畫師爭摹雪浪勢, 天工不見雷斧痕)”15)라고 강조하였다. 이로 볼 때, ‘天工’과 ‘淸新’
을 지닌 天衣無縫의 자연미는 바로 소식이 적극적으로 추구하였던 목표였다. 소식이 말한
天工自然은 결코 자연주의에서 말하는 자연이 아니라 예술적 가공과 숙련을 거친 후에 ‘天
工’에 도달한 자연미인 것이다.


2.2 陶淵明, 吳道子, 文同
소식은 “길을 나서면 陶淵明集을 지니고 다녔다. 도연명은 이 사람의 울적함 쓰고 있어
마침 여기에 의지할 따름이다.(隨行有陶淵明集. 陶寫伊鬱, 正賴此爾)”16)라고 하였고, “바
다 밖으로 유배되어 전전하는 것은 마치 아무도 없는 계곡에서 도망 다니는 것과 같아서,
함께 대화를 나눌 자가 없는데다가 서적도 모두 지닐 수 없어 다만 陶淵明 작품집과 柳宗元
시문집만을 항상 주변에 두고 두 명의 벗으로 삼았다.(流轉海外, 如逃空谷, 旣無與晤語者, 又
書籍擧無有, 惟陶淵明一集, 柳子厚詩文數冊, 常置左右, 目爲二友)”17)라고 하였다. 그는 도연
명의 문집을 해남도로 귀양 가는 상황에도 가져갔을 정도로 도연명의 작품을 통해 자신의
심사를 풀었다. 그는 陶淵明의 〈飮酒〉詩를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동쪽 울타리에서 국화를 따다가 한가로이 남산을 보네.” 국화를 따다가 산을 본다
는 것은 경계와 意趣가 만난 것이다. 이 시구가 최고로 기묘한 곳이다. 근래 나온
俗本에는 모두 ‘남산을 바라본다.’라고 적혀있는데, 이 한 편의 神氣가 몽땅 흩어져
없어졌다.


15) 蘇軾詩集 제6책 권37, 〈次韻滕大夫三首‧雪浪石〉, 1998~1999쪽.
16) 蘇軾文集 제4책 권55, 〈與程全父十二首(之十)〉, 1626쪽.
17) 蘇軾文集 제4책 권55, 〈與程全父十二首(之十一)〉, 1627쪽.
蘇軾 문예 감상의 세 가지 척도(崔在赫) 273


“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因採菊而見山, 境與意會, 此句最有妙處. 近歲俗本皆作‘望
南山’, 則此一篇神氣都索然矣.18)
‘見’자는 무의식적이면서도 기대하지 않다가 보게 되었다는 의미에서 자연스러운 데 비해,
‘望’자는 확실히 의도적이고 뭔가 기대하면서 바라보았다는 의미에서 부자연스럽다. 소식은
이 글자를 판별하는 데에서도 자신이 얼마나 자연미를 숭상하는지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
다. 이에 대하여, 胡仔는 “소식이 陶淵明의 ‘동쪽 울타리에서 국화를 따다가 한가로이 남산을
보네’라는 시에 대해 국화를 딴 다음에 한가로이 산을 보았다는 것은 애초 의도하지 않았지
만 경치와 意趣가 만났으니 좋아할 만하다고 말하였다.(東坡云: 陶淵明詩‘采菊東籬下, 悠然
見南山’. 采菊之次, 悠然見山, 初不用意, 而景與意會, 故可喜也.)”19)라고 하였다. 소식은 도연
명 시에 담긴 자연의 정취를 좋아했다. 그래서 明代 都穆은 “소식이 도연명의 이치를 담론한
시 세 수를 끄집어낸 적이 있었다. 하나는 ‘동쪽 울타리에서 국화를 따다가 한가로이 남산을
보네.’라는 시구이고, 둘은 ‘동헌에서 웃으며 놀다가 애오라지 이러한 삶을 다시 얻었네.’라는
시구이고, 셋은 ‘손님이 천 금 나가는 귀하신 몸을 기르다가 임하여 그 보배를 다 사라지게
했네.’라는 시구이다. 이 모두 道를 안 말이라 여겼다. 나는 도연명이 도를 안다는 데에 그치
지 않을 뿐더러 그 기묘한 말 역시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東坡嘗拈出淵明談理
之詩有三: 一曰‘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二曰‘笑傲東軒下, 聊復得此生’, 三曰‘客養千金軀, 臨
化消其寶’, 皆以爲知道之言. 予謂淵明不止於知道, 而其妙語, 亦不止是.)”20)라고 하였다. 여기
서 언급한 세 수의 시를 골라 ‘道’를 알았다고 한 말이 정확히 무엇에 근거한 말인지는 모르
겠다. 하지만 소식이 특별히 도연명의 풍모와 그의 자연미가 넘치는 시를 애호하였음을 미
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는 〈書吳道子畫後〉에서 吳道子의 그림이 자연의 이치를 담아내었다고 말하였다.
오도자가 그린 인물은 마치 등불로 그림자를 취한 듯하여, 거꾸로 오고 바로 가며
곁으로 보이고 옆으로 나오며 가로로 기울고 평평히 곧게 서는 것들이 각각 서로
적절히 조절되어 자연의 이치를 얻어 털끝만한 차이도 없다. 법도 가운데서 새로운


18) 蘇軾文集 제5책 권67, 〈題淵明飮酒詩後〉, 2092쪽. 여기에 나온 시는 〈飮酒(之六)〉( 陶淵明
詩文彙評, 151쪽)이며, 다음과 같다. “結廬在人境, 而無車馬喧. 問君何能爾? 心遠地自偏. 采菊東
籬下, 悠然見南山;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 此中有眞意, 欲辨已忘言.”
19) 苕溪漁隱叢話前集(胡仔 編, 台北: 長安出版社, 1978년) 권3.
20) 南濠詩話(都穆, 北京: 中華書局, 1991년).
274 中國語文學論集 (第 40 號)


뜻을 나타내고 호방함 밖으로 오묘한 이치를 부쳤다. 이른바 칼날을 놀리는 데도
여유가 있고 도끼를 휘둘러 바람을 일으킨다는 것이니, 대개 고금에 한 사람뿐이다.
道子畫人物, 如以燈取影, 逆來順往, 旁見側出, 橫斜平直, 各相乘除, 得自然之數, 不差
毫末, 出新意於法度之中, 寄妙理於豪放之外, 所謂遊刃餘地, 運斤成風, 蓋古今一人而
已.21)
이를 통해, 그는 자연미를 최고의 경계로 보았고 자연미를 이룬 오도자의 그림을 애호하
였음을 알 수 있다. 소식이 말한 ‘자연의 이치(自然之數)’는 바로 사물의 자연 규율에 완전히
부합할 수 있는 법도이다. 吳道子의 인물화는 자연의 법도를 장악한데다가 그 妙法을 이해
하였기에 어떠한 모습을 그린다 해도 그 운용이 자유자재하면서도 어떤 구속도 받지 않았다.
자연 속에 법도가 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소식은 당시 문인들 중에서도 文同의 작품을 자연미를 구현했다는 점에서 애호하였다. 그
는 〈文與可飛白贊〉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처음에 나는 그(文同)의 詩文을 보고 또 그의 行書, 草書, 篆書, 隸書 등의 書法도
볼 수 있었는데, 여기에 멈추었구나 라고 생각했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일 년이
지나서 다시 그가 쓴 飛白 書體를 보게 되었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만물의 樣態를
다 드러내었구나. 뭉게뭉게 가벼운 구름이 달을 가리는 듯하고, 펄럭펄럭 바람이 깃
발을 휘감아 도는 듯하구나. 야들야들 아지랑이가 버들강아지를 엉키는 듯하고, 간
들간들 흐르는 강물이 노랑어리연꽃을 춤추게 하는 듯하구나. 축 늘어져 멀지만 서
로 이어져 있고 한껏 움츠려 가깝지만 좁지 않구나. 그 工巧함이 이러한 경지에 이
르렀지만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始余見其詩與文, 又得見其行草篆隸也, 以爲止此矣. 旣沒一年, 而復見其飛白. 美哉多
乎, 其盡萬物之態也. 霏霏乎其若輕雲之蔽月, 翻翻乎其若長風之卷旆也. 猗猗乎其若
遊絲之縈柳絮, 裊裊乎其若流水之舞荇帶也. 離離乎其遠而相屬, 縮縮乎其近而不隘也.
其工至於如此, 而余乃今知之.22)
소식은 글이든 그림이든 간에 어떠한 법칙에 제한 받아서는 안 되며 대상물의 자연스런
모습을 제대로 표현해내어야만 “만물의 자태를 다하는(盡萬物之態)”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
고 여겼다. 그래서 그는 문동의 글씨에 대해서 〈黃州再祭文與可文〉에서 “志氣가 강해지자


21) 蘇軾文集 제5책 권70, 〈書吳道子畫後〉, 2210~2211쪽.
22) 蘇軾文集 제2책 권21, 〈文與可飛白贊〉, 614~615쪽.
蘇軾 문예 감상의 세 가지 척도(崔在赫) 275


강론하는 말이 구름과 같이 나온다. ……天力이 자연스러우니 애써 힘들일 일을 시행하지
않는다.(志氣方剛, 談詞如雲. ……天力自然, 不施膠筋.)”23)라고 하였다.
소식은 특별히 陶淵明, 吳道子, 文同 등의 문예 작품들을 애호하였고 그들이 이룬 자연미
를 칭송하였다. 그들은 애초부터 전혀 의도함이 없이 경물을 접하고 그 형상 그대로인 자연
의 자태에 의거하여 제대로 그려내었고 어떠한 기존의 법칙에 구애받지 않았다. 이 때문에
소식은 그들의 작품을 매우 애호하였던 것이다.


3. 含蓄美
작가는 언어로 속내를 다 드러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착안하여 작품에 ‘言外之意’를 구현
한다. 함축미는 바로 이것을 가리키며, 梅堯臣이 “다하지 못하는 뜻을 함유하고 언어 밖으로
드러낸다.(含不盡之意, 見於言外.)”24)라고 한 말과 일맥상통한다. 작가는 대상물에 자신의
감정을 기탁하여 그 기본적 의미 속 깊숙이 내재하는 함의에 독자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 문예의 제한된 조건 속에서 무한한 의미를 담아낼 수 있다면 함축미를 제대로 살린
작품이라 하겠다. 작품 속에 言外之意를 구현하는 것은 모든 작가들의 바람이다. 언어 운용
과정 중에서 언어와 의미는 동일하면서도 불완전한 관계이다. 이는 작가가 본래 의도했던
구상을 제대로 표현하기 어렵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하게만 볼 수 없다. 왜냐
하면 言外之意가 사람들의 심미과정 속의 연상과 상상을 더욱 환기시켜 사람들의 미감을
더욱 격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많은 작가들이 실제 창작 중에 터득한 공통된 인식이
다. 작가는 기막히게 풍부한 내용으로 독자들에게 무궁한 弦外之音과 味外之旨를 느낄 수
있게 한다.


3.1 言外之意의 발현


23) 蘇軾文集 제5책 권63, 〈黃州再祭文與可文〉, 1942쪽.
24) 歐陽修全集(北京: 中國書店, 1986─1992년) 下冊, 詩話, 1037쪽.
276 中國語文學論集 (第 40 號)


言外之意는 바로 言內之意의 확대와 연장이다. 言內之意를 떠나 추상적으로 言外之意을
담론하는 것은 전혀 가치 없는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詩經이래로 중국에서는 ‘言外之意’을
중시한 전통을 지녀왔다. 〈詩大序〉에서 “윗사람은 풍으로 아랫사람을 교화하고 아랫사람
은 풍으로 윗사람을 풍자하는데, 꾸민 文辭를 위주로 하여 넌지시 간하기에 말한 사람은 죄
가 없고 듣는 사람은 경계하기에 족하였다. 그래서 ‘風’이라 일컫는다.(上以風化下, 下以風刺
上. 主文而譎諫, 言之者無罪, 聞之者足以戒, 故曰風.)”25)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宋代 司馬光
은 “옛 사람들이 시를 지을 때, 뜻이 언어 밖에 있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여 체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귀하게 여겼다. 그래서 말한 사람은 죄가 없고 듣는 사람은 경계하기에
족한 것이다. 근세 시인 중에 오직 杜甫만이 그 취지를 체득하였다.(古人之爲詩, 貴於意在言
外, 使人思而得之, 故言之者無罪, 聞之者足以戒也. 近世詩人唯杜子美最得其旨.)”26)라고 풀이
하였다. 이른바 ‘생각하여 체득하다(思而得之)’란 바로 독자 스스로 문예 형상의 구체적 분석
을 통하여 되새겨 반추하다가 풍부한 흥미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동일
한 意象이라 할지라도 독자에 따라 그 느끼는 감회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葉燮이
原詩에서 “意象을 암묵적으로 이해하는 표면에 우연히 만난다.(遇之於黙會意象之表.)”27)
라고 말한 것이다. 司馬光은 직접 杜甫의 〈春望〉을 예로 들어 “‘나라가 허물어졌는데도 산
과 물은 남아 있고, 성에 봄이 찾아오니 풀과 나무가 우거졌다. 시국을 생각하니 꽃을 보고도
눈물을 뿌리고, 가족과 헤어져 있으니 새소리에도 마음이 놀란다.’ 산과 물이 있다는 것은
남은 것이 없음을 설명하고 풀과 나무가 우거졌다는 것은 인적이 없음을 설명한다. 꽃과 새
는 평상시에 즐길만한 것이지만 꽃 보면 눈물이 나고 새소리 들으면 슬프다 하니, 시국을
알만하다. 그의 시는 모두 이와 같아서 일일이 다 거론할 수 없다.(‘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
感時花濺淚, 恨別鳥驚心.’ 山河在, 明無餘物矣; 草木深, 明無人矣; 花鳥, 平時可娛之物, 見之
而泣, 聞之而悲, 則時可知矣. 他皆類此, 不可遍擧.)”28)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이 시는 고국산


25) 詩經‧序, 十三經注疏 제2책, 16쪽.
26) 歷代詩話․溫公續詩話(何文煥 輯, 台北: 漢京文化事業公司, 1983년), 277~278쪽.
27) 葉燮은 原詩‧內篇에서 “말할 수 있는 이치는 다른 사람들도 모두 말할 수 있다. 어찌 시인의
말로 표현할 필요가 있겠는가? 징험할 수 있는 일은 사람마다 서술할 수 있다. 이 또한 어찌 시인
이 그것을 서술할 필요가 있겠는가? 반드시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이치와 서술할 수 없는 사실
이 있어 意象을 암묵적으로 이해하는 표면에 우연히 만나게 되면, 이치와 사실은 앞에 환하게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게 된다.(可言之理, 人人能言之, 又安在詩人之言之; 可徵之事, 人人能述之,
又安在詩人之述之; 必有不可言之理, 不可述之事, 遇之於黙會意象之表, 而理與事無不燦然於前者
也.)”( 中國歷代文學論著精選下, 84쪽.)라고 언급하였다. 詩意가 깊어지려면 말할 수 없는 이치
와 드러내 보일 수 없는 사실을 문예 형상으로 제대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蘇軾 문예 감상의 세 가지 척도(崔在赫) 277


천이 피폐해진 것을 보고 무한한 감개가 일어 시인의 意趣를 景物에 기탁한 것이다. 이는
불가지론이 아니며 사고를 통해 완전히 체득할 수 있다.
意象을 만들 때의 감정 활동은 외재하는 객관 물상에 의해 일어나지만 객관 물상은 무한
한 함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간단한 물상이라도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그 느끼는 감정과
생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창작 주체가 만약 이러한 意象의 다의성과 다층차성을
장악할 수 있다면 독자는 예술적 감염을 받고 난 후 그 사유 활동 역시 작가의 사상 감정에
따라 비등하여 더 넓은 상상 공간에 날아올라 시인의 가장 깊이 내재한 영적 세계에 접하게
될 것이다. 이 때 문예 창작은 최적의 발현을 얻을 수 있다.
소식은 〈書黃子思詩集後〉에서 서법가는 반드시 ‘言外之意’를 드러내야 하고 시인 역시
‘言外之意’를 구현해야 한다고 여겼다.
나는 일찍이 書法을 論하면서 鍾繇와 王羲之의 공덕을 일컬어 조용하고 한가하며
간결하고 심원하다 하면서 그 오묘함이 筆法 밖에 있다고 말하였다. ……李白과 杜
甫이후에도 시인들은 연이어 일어나서 비록 그 사이에 심원한 운치가 있다고 하더
라도 재능이 자신의 뜻을 전달하기에는 미치지 못했다. 단지 韋應物과 柳宗元만은
간결함과 예스러움에서 섬세함과 풍성함을 드러내고 담박함에서 지극한 뜻을 기탁
하였으니 다른 사람들은 미칠 바가 아니었다. 唐末의 司空圖는 기구한 병란의 시기
에 살았으나 詩文이 고아하고도 여전히 태평성대의 遺風이 남아있었다. 그는 二十
四詩品에서 詩歌를 논하여 “매화나무 열매는 실 뿐이고 소금은 짤 뿐이다. 음식에
는 소금과 매실이 없어선 안되지만 그 음식의 아름다운 맛은 항상 짜고 신 것 밖에
존재한다.”라고 말하였다. 아마도 詩歌의 표면적 문자에서 얻을 수 있었던 것을 24
韻으로 스스로 배열하면서 당시에 그 묘미를 깨닫지 못하였음을 한스러워한 것일
것이다. 나 역시 그 말을 여러 번 반복하며 슬퍼하였다.


予嘗論書, 以謂鍾․王之跡, 蕭散簡遠, 妙在筆畫之外. ……李․杜之後, 詩人繼作, 雖
間有遠韻, 而才不逮意, 獨韋應物․柳宗元發纖穠於簡古, 寄至味於澹泊, 非餘子所及
也. 唐末司空圖, 崎嶇兵亂之間, 而詩文高雅, 猶有承平之遺風. 其論詩曰: “梅止於酸,
鹽止於鹹. 飮食不可無鹽․梅, 而其美常在鹹․酸之外.” 蓋自列其詩之有得於文字之
表者二十四韻, 恨當時不識其妙. 予三復其言而悲之.29)
비록 소식 역시 李白과 杜甫 이후의 시인들에게는 간혹 눈에 띄는 수작이 보이긴 했지만
28) 歷代詩話․溫公續詩話, 277~278쪽.
29) 蘇軾文集 제5책 권67, 〈書黃子思詩集後〉, 2124~2125쪽.
278 中國語文學論集 (第 40 號)


대다수 “재능이 그 의중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才不逮意)”라고 평하였다. 이로 볼 때,
그 역시 시인 심중의 ‘意’와 그 예술성과가 다를 수 있고 심지어는 많은 차이가 있기도 하다
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작가는 의중을 직접 표현하지 않고 형상 속에 기탁하여 문예 형상
의 은유를 이용하여 언어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도리를 곡진하게 다 드러내면서도 문의를
지나친 언사로 다 드러내는 폐단을 막을 수 있었다. 그래서 문예 창작은 풍부한 함의를 지면
에 완전히 드러낼 필요가 없다. 다만 유도 방식으로 작가의 창작 의도에 접근하여 독자가
작품에 기탁된 의미에서 더욱 풍부한 연상 활동을 진행할 수 있다. 만약 문예 창작 그 자체
가 소금과 매실이라면 비평이나 감상은 소금과 매실 밖에 존재하는 맛을 맛볼 수 있어야
우수한 작품으로 평해질 수 있다. 司空圖의 관점과 마찬가지로 소식 역시 이 점을 감지하였
다. 감상자는 문예 작품에 개입하여 작가의 작품 면모나 의도를 뛰어넘기도 하기 때문이다.
소식은 〈書鄢陵王主簿所畫折枝〉라는 시에서 “누가 하나의 붉은 점을 가없는 봄에 부치
었다고 말했던가.(誰言一點紅, 解寄無邊春.)”30)라고 하였다. 예술가가 “하나의 붉은 점(一點
紅)”에서 “가없는 봄(無邊春)”을 표현해내려면 반드시 현실 생활 속에서 세밀한 관찰과 연구
를 통해야만 예민한 작가 기질로 ‘일반’적 ‘개별’성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다.31) 회화 예술의
형상은 직관적이고 화면 공간 역시 제한적이다. 따라서 항상 부분으로 전체를 표현해야 감
상자가 제한적인 화면으로도 화면 밖의 무궁한 意趣를 미루어 알 수 있다.
소식은 形似를 위주로 한 묘사를 반대한다. 소식은 최고 경계에 이른 작품은 바로 ‘形似’에
기초하여 ‘神似’를 구현한 것이라고 여겼다. 그는 ‘言外之意’를 감지하기 위해서 문예 감상과
정 중에 ‘形神兼備’한 작품을 더 높이 평가하였다. 작가 주관정신 중의 묘미는 항상 시와 그
림 밖에 은밀히 숨겨있기 마련이다. 감상자는 대상물의 진정한 본질을 탐구할 때 단지 形似
의 표면만 탐구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그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깨고 되풀이 사색하여야
비로소 그 속에 담긴 ‘言外之意’를 찾아낼 수 있다. 王若虛은 “形似의 밖에서 묘미를 논한다
해서 그 形似를 버리는 것은 아니고,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要諦가 그 틀을 잃지
않는 데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論妙在形似之外, 而非遺其形似; 不窘於題, 而要不
失其題)”32)라고 말하였다. 소식은 “王維의 詩를 음미하면 詩 속에 그림이 있고, 王維의 그림
을 살펴보면 그림 속에 詩가 있다.(味摩詰之詩, 詩中有畫. 觀摩詰之畫, 畫中有詩.)”33)라고 하


30) 蘇軾詩集 제5책 권29, 〈書鄢陵王主簿所畫折枝二首(之一)〉, 1526쪽.
31) 中國古代文學創作論(張少康, 台北: 文史哲出版社, 1991년), 214쪽.
32) 滹南遺老集附詩集(金‧王若虛, 台北: 新文豐出版社, 1984년) 권39, 〈詩話〉, 249쪽.
33) 蘇軾文集 제5책 권70, 〈書摩詰藍田煙雨圖〉, 2209쪽.
蘇軾 문예 감상의 세 가지 척도(崔在赫) 279


였고 “杜甫의 詩는 그림으로 그려내지 못하고, 韓幹의 그림은 詩로 나타내지 못한다.(少陵翰
墨無形畫, 韓幹丹靑不語詩.)”34)라고 말하였다. 言外之意를 발현한 문예작품은 詩文이든 書
畵든 간에 그 어떤 다른 방식을 잘 써본들 그 본색조차 제대로 묘사해내기 어렵다.


3.2 陶淵明, 柳宗元, 杜甫, 韋應物
소식은 陶淵明과 柳宗元의 작품을 함축미가 있다는 점에서 애호하였다.
옛 시인들 중에는 擬古한 작품이 있지만 古人을 追尊하여 和韻한 시인은 없었다.
古人을 추존하여 화운한 시인으로는 蘇軾에게서 시작되었다. 나(蘇轍)도 시인들 중
에 심히 좋아하는 시인은 없지만 陶淵明의 시를 유난히 좋아하였다. 陶淵明이 지은
시는 많지 않다. 그러나 그의 시는 질박한 듯하나 실은 화려하고 야윈 듯하나 실은
살지다. 曹植, 劉楨, 鮑照, 謝靈運, 李白, 杜甫 등의 시인들은 모두 그에 미치지 못한
다. 우리가 앞뒤로 그의 시에 和韻한 작품은 대략 109편이고, 그 득의함에 이르러
陶淵明을 그리 부끄럽게 하지 않았다고 스스로 여겨진다. 지금 이 작품들을 모아
함께 기록하여 훗날의 군자들에게 남긴다.
古之詩人有擬古之作矣, 未有追和古人者也. 追和古人, 則始於東坡. 吾於詩人, 無所甚
好, 獨好淵明之詩. 淵明作詩不多, 然其詩質而實綺, 臞而實腴, 自曹․劉․鮑․謝․
李․杜諸人皆莫及也. 吾前後和其詩凡一百有九篇, 至其得意, 自謂不甚愧淵明. 今將
集而幷錄之, 以遺後之君子.35)
柳宗元의 시는 陶淵明보다 아래지만 韋應物보다는 위이다. 韓愈의 시에 있어서는
豪放하고 奇險한 면은 지나치고 溫麗하고 靖深한 면은 미치지 못한다. 고담한 것을
귀히 여기는 것은, 그것이 겉이 메마르면서도 속은 기름지고, 담박한 듯이 보이지만
실은 아름답기 때문으로서, 陶淵明과 柳宗元이 그렇다. 만약 속과 겉이 모두 고담하
다면, 또한 말할 가치나 있겠는가? 佛家에서는 “사람이 꿀을 먹으면 속과 주변이 모
두 달다.”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다섯 가지 맛을 볼 때도 그 달고 쓴 것이 모두 이러
해서 그 속과 주변을 분별할 수 있는 자는 백 명 중에 한 둘도 없음을 안다.


34) 蘇軾詩集 제8책 권48, 〈韓幹馬〉, 2630쪽.
35) 蘇轍集(陳宏天․高秀芳 校點, 北京: 中華書局, 1990년) 제3책 欒城後集卷21, 〈子瞻和陶淵明詩
集引〉, 1110쪽; 蘇文忠公詩編注集成總案(淸‧王文誥 撰, 成都: 巴蜀書社, 1985년) 下冊 권41, 丁
丑12月條下; 蘇軾詩集 제6책 권35, 1882쪽.
280 中國語文學論集 (第 40 號)


柳子厚詩在陶淵明下, 韋蘇州上. 退之豪放奇險則過之, 而溫麗靖深不及也. 所貴乎枯
澹者, 謂其外枯而中膏, 似澹而實美, 淵明․子厚之流是也. 若中邊皆枯澹, 亦何足道.
佛云: “如人食蜜, 中邊皆甛.” 人食五味, 知其甘苦者皆是, 能分別其中邊者, 百無一二
也.36)
陶淵明과 柳宗元의 작품이 지닌 특징에 대하여, 소식은 平淡하지만 평범하지 않다고 여겨
서 “질박한 듯하나 실은 화려하고 야윈 듯하나 실은 살지다.(質而實綺, 臞而實腴)”라고 하고
“겉이 메마르면서도 속은 기름지고 담박한 듯이 보이지만 실은 아름답다.(外枯而中膏, 似澹
而實美)”라고 말하였다. 이를 통해, 소식은 최고의 작품이란 표면적으로는 담박함을 드러내
지만 내면적으로는 무궁무진한 도리를 내포한 것이라고 여겼음을 알 수 있다. 감상자가 이
러한 작품을 감상할 때 작품 속에 담긴 무궁한 함축미를 느껴 더욱 감동 받게 된다. 이러한
문예 감상은 유한한 현상 세계를 통하여 현상 안에 숨은 근본적인 원천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 때, 문예 작품은 무한한 情理를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소식은 〈評子美詩〉에서 杜甫 시 밖에는 항상 사실이 있다고 말하여 杜甫 시에는 정경
묘사뿐만 아니라 역사적 진실이 담겨 있다고 여겼다.37) 이렇게 杜甫는 雄邁한 기풍을 지니
고서 시에 역사를 담았기에, 소식은 그를 司馬遷과 비견하기도 하였다.38) 소식은 杜甫의 杜
鵑詩를 직접 예로 들면서 두보 시가 지닌 상징적 함축미를 강조하였다.39) 杜鵑詩는 두견새
의 유무로 刺史의 忠庸함을 비유하였다. 두보가 물상에 기탁하여 사실을 비유하였지만 그의
강건한 필치는 종횡으로 막힘이 없다. 이것은 비록 杜甫의 최고 작품은 아닐지라도 매번 사
람들을 놀라게 하는 뛰어난 구성으로 자연 만물의 다변하는 현상과 한 인생이 살아가면서
겪는 굴곡을 작품 속에 함께 담아내었다. 杜甫의 작품들은 상징 수법을 통하여 상징물과 피
상징물의 내용이 특정한 경험 아래에서 유사한 연관관계를 갖게 되어 예술적 형상을 구성하


36) 蘇軾文集 제5책 권67, 〈評韓柳詩〉, 2109~2110쪽.
37) 蘇軾文集 제5책 권67, 〈評子美詩〉, 2105쪽. “子美自比稷與契, 人未必許也. 然其詩云‘舜擧十六
相, 身尊道益高. 秦時用商鞅, 法令如牛毛’, 此自是契․稷輩人口中語也. 又云‘知名未足稱, 局促商山
芝’, 又云‘王侯與螻蟻, 同盡隨丘墟. 顧聞第一義, 回向心地初’, 乃知子美詩外尙有事在也.”
38) “問: ‘杜甫似何人?’ (畢)仲游曰: ‘似司馬遷.’ 僕喜而不答, 蓋與曩言會也.” 東坡志林 권11 참고.
39) 蘇軾文集 제5책 권67, 〈辨杜子美杜鵑詩〉, 2100~2101쪽. “南都王誼伯〈書江濱驛垣〉, 謂子美
詩歷五季兵火, 舛缺離異, 雖經其祖父公所理, 尙有疑闕者. 誼伯謂‘西川有杜鵑․東川無杜鵑․涪萬
無杜鵑․雲安有杜鵑’, 蓋是題下注. 斷自‘我昔游錦城’爲首句. 誼伯誤矣. 且子美詩, 備諸家體, 非必
牽合程度侃侃然者也. 是篇句落處, 凡五杜鵑, 豈可以文害辭․辭害意耶? 原子美之意, 類有所感, 託
物以發者也. 亦六義之比興․ 離騷之法歟?”
蘇軾 문예 감상의 세 가지 척도(崔在赫) 281


게 되어 놀라운 함축미를 만들어낸다. 소식은 바로 言外之意를 듬뿍 담은 杜甫 작품을 높이
칭찬하였던 것이다.
소식은 “白居易 시 삼천 수 있지만, 韋應物의 오언시를 오히려 좋아하네.(樂天長短三千首,
卻愛韋郞五字詩)”40)라고 말하면서 韋應物을 白居易보다 높이 평가하였다. 소식은 韋應物의
시를 특별히 애호하여 “단지 韋應物과 柳宗元만은 간결함과 예스러움에서 섬세함과 풍성함
을 드러내고 담박함에서 지극한 뜻을 기탁하였으니 다른 사람들은 미칠 바가 아니었다.(獨
韋應物․柳宗元發纖穠於簡古, 寄至味於澹泊, 非餘子所及也.)”41)라고 주장하였다. 簡古하면
서 穠密함을 겸비하고 淡泊하면서 至味를 함유한다는 말은 최고의 극찬이라 하겠다.
작가는 응축된 언어로 생활 속의 현상을 예술적 형상으로 변모시켜 그 행간에 의미를 담
아 함축미를 만들어낸다. 시가는 더욱 이러해야 한다. 시가는 행을 나누는 형식으로 言內之
意가 글자 속에 있고 言外之意가 행간에 있어야 한다. 이러한 암시는 확실히 독자의 상상을
불러일으켜 시인의 의향에 이르게 한다. 문예 작품에 대해 말하자면, 뜻이 목마르면 神韻
역시 말라버리고 말이 지나치게 직설적이면 그 맛이 적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함축이 끝없
고 백태를 담아내야 독자의 상상은 더 멀리 나래를 펴게 된다.
소식은 司空圖의 “음식에는 소금과 매실이 없어선 안되지만 그 음식의 아름다운 맛은 항
상 짜고 신 것 밖에 존재한다.(飮食不可無鹽梅, 而其美常在鹹酸之外.)”라는 주장에 찬동하였
다. 이 때문에, 그는 “겉이 메마르면서도 속은 기름지고 담박한 듯이 보이지만 실은 아름답
다.(外枯而中膏, 似澹而實美)”라는 평어를 사용하여 陶淵明과 柳宗元의 시문을 찬미하였고
“시 밖에 여전히 사실이 존재한다.(詩外尙有事在)”라는 말을 제기하여 杜甫의 시를 애호하
였으며 “簡雅함 가운데 섬세함과 풍성함을 드러내고, 담박함 가운데 지극한 맛을 싣고 있
다.(發纖穠於簡古, 寄至味於澹泊)”라는 논조를 펴서 韋應物의 시를 칭찬하였던 것이다.


40) 蘇軾詩集 제3책 권15, 〈和孔周翰二絶‧觀靜觀堂效韋蘇州詩〉, 753~754쪽. 觀林詩話에 의하
면, “樂天云: ‘近世韋蘇州歌行, 才麗之外, 頗近興諷; 其五言詩文, 又高雅閒淡, 自成一體. 今之秉筆
者, 誰能及之?’ 故東坡有‘樂天長短三千手, 卻愛韋郞五千詩’之句.”라고 하였다. 또한 白居易 스스로
陶淵明과 韋應物을 높이 사서 〈自吟拙什, 因有所懷〉( 白居易集 제1책 권6, 台北: 漢京文化事
業公司, 1984년, 118쪽)에서 “時時自吟詠, 吟罷有所思. 蘇州及彭澤, 與我不同時.”라고 읊었고,
〈題潯陽樓〉( 白居易集 제1책 권7, 128쪽)에서 “常愛陶彭澤, 文思何高玄, 又怪韋江州, 詩情亦
淸閑.”라고 읊었다.
41) 蘇軾文集 제5책 권67, 〈書黃子思詩集後〉, 2124쪽.
282 中國語文學論集 (第 40 號)


4. 物我一體
물아일체는 자연물과 자아가 하나가 된 상태이며, 대상물에 완전히 몰입된 경지라 하겠다.
이는 바로 문예 창작 중 작가의 주체와 창작 대상의 객체가 하나로 합쳐진 경계이다. 예부터
사람들은 자연 만물에는 그 나름의 본성을 지니고 있어서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에도 氣韻
生動하는 세계가 존재한다고 여겨왔다. 작가가 다만 物我에 존재하는 벽을 걷어내어 대상물
의 내부세계에 잠입하기만 한다면 精美한 작품을 창작해낼 수 있다고 보았다. 물아일체를
통해 작가는 주객을 구분할 수 없는 심미상태에 들어가게 되고 자아를 잊은 채 대상물의
내부세계에 들어가 대상물에 대해 매우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된다. 물아일체는 줄곧 문예이
론가들이 추구해 온 최고의 경계였다. 蘇軾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이를 문예 감상의 중요한
척도로 보았고 문예 창작 중의 여러 체험을 통해 이전 사람들보다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하였
다.


4.1 物化의 경계
물아일체는 物化 사상에서 비롯되었다. 莊子는 〈齊物論〉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옛날 莊周는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된 채 유쾌하게 즐기
면서도 자기가 장주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문득 깨어나 보니 장주가 아닌
가! 도대체 장주가 나비가 된 꿈을 꾼 것일까? 아니면, 나비가 장주가 된 꿈을 꾼
것일까? 장주와 나비에는 반드시 구별이 있을 것이다. 이를 물화라고 한다.
昔者莊周夢爲胡蝶, 栩栩然胡蝶也. 自喩適志與! 不知周也, 俄然覺, 則蘧蘧然周也. 不
知周之夢爲胡蝶與, 胡蝶之夢爲周與? 周與胡蝶, 則必有分矣. 此之謂物化.42)
莊周와 호랑나비는 본디 둘이지만 꿈속에서는 자신이 호랑나비가 되었다가 꿈에서 깨어
나니 자신이 다시 장주임을 발견하게 된다. 이때 그는 한동안 호랑나비가 꿈을 꾸어 莊周로
변한 것인지 아니면 莊周가 꿈을 구어 호랑나비로 변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러한 物我가


42) 莊子集釋, 內篇〈齊物論〉第二, 112쪽.
蘇軾 문예 감상의 세 가지 척도(崔在赫) 283


합일된 경계를 物化라 칭하였다. 작가는 자신의 감정과 물상이 서로 융합되어 자신이 물상
으로 幻化하여 어느 순간 정신과 물상이 서로 합일된 物化의 경계에 이른다. 이러한 物化
사상은 공예 창조에 운용되는데, 莊子‧達生편에서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工匠 倕가 줄을 그으면 그림쇠나 곱자를 이용하였다. 그의 손이 그림쇠나 곱자와
함께 변화하며 마음으로 헤아리지 않는다. 그 마음이 공구와 하나가 되어 막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발을 잊는 것은 신이 꼭 맞기 때문이고 허리를 잊는 것은 띠가
꼭 맞기 때문이다. 시비를 잊는 것은 마음이 딱 들어맞기 때문이다. 마음속이 변하
지 않고 외적 사물에 따라 얽매이지 않는 것은 일의 만남이 꼭 맞기 때문이다. 알맞
은 데서 시작하여 늘 알맞지 않음이 없는 것은 알맞은 것조차도 잊은 참된 自適의
경지에 있기 때문이다.
工倕旋而蓋規矩, 指與物化而不以心稽, 故其靈臺一而不桎. 忘足, 屨之適也; 忘要, 帶
之適也; 知忘是非, 心之適也; 不內變, 不外從, 事會之適也; 始乎適而未嘗不適者, 忘
適之適也.43)
전설에 의하면 工匠 倕는 堯 임금 때의 유명한 인물이다. 倕가 기물을 만들 때면 심신이
기물과 융합하여 어떠한 주관적인 생각도 배제되어 완전히 기물에 따라 그 재주가 발휘되었
다고 한다. 莊子는 工匠 倕가 기물을 만들 때 技藝가 뛰어나 손과 기물 사이에 어떤 장애도
없음을 비유하였다. 마음과 손이 물화되어 物我 사이에 아무런 거리감도 없고 지체함도 없
는 심리 상태 속에서 자유로이 창작한다면 물아일체에 들어갈 수 있다.
‘물아일체’는 또한 ‘天人合一’ 사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天人合一’은 바로 하늘과 사람
은 공동의 본성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 사상은 중국 철학에서 하늘과 사람에게 절대적
차별이 없음을 시사한다. ‘天’에는 자연계를 주재하는 신령성과 외재필연성 등의 함의를 지
니고, ‘人’에는 주관정신과 인류사회, 및 자연 생리적인 사람 등의 함의를 지닌다. 孟子는 “그
마음을 다하는 자는 그 性을 아니, 그 性을 알면 하늘을 알게 된다.(盡其心者, 知其性也; 知其
性, 則知天矣.)”44)라고 말하였다. 바로 仁, 義, 禮, 智를 지닌 사람의 마음은 하늘로부터 부여
받은 것이기에, 사람의 본성은 하늘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바탕에서 모든 삼라만상에
는 그 나름의 본성이 있는 것이다. 만약 작가가 그 본성을 체득하여 物化의 경계에 들어간다
면 物我 사이에 존재하는 벽이 사라진 물아일체의 경지에 이를 것이 분명하다.


43) 莊子集釋, 外篇〈達生〉第十九, 662쪽.
44) 孟子‧盡心上, 十三經注疏 제8책, 228쪽.
284 中國語文學論集 (第 40 號)


先秦이후의 문론가와 예술가들은 莊子 철학의 ‘物化’사상을 이어받아 자신의 학술과 창작
영역 속에 여러 각도로 풀어내기 시작하였다. 唐代 詩人 符載(?~약813)는 〈觀張員外畫松
石序〉에서 張璪가 그린 〈松石圖〉를 감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張璪의 예술을 살펴보면 그림이 아니라 진정한 道이다. 그 그림을 그릴 때에 직면하
면 신묘한 기교일랑 내버린 채 뜻이 그윽하고 현묘해져야 함을 이미 알았기에, 사물
을 마음속에 두었지 눈이나 귀에 담아두지 않았다. 마음속에서 얻어 손에 응하고
독자적인 모습과 절묘한 모습이 붓 닿는 대로 나타나니, 氣가 어렴풋이 교류하여
神과 더불어 동류가 되었다.
觀夫張公之藝, 非畫也, 眞道也. 當其有事, 已知遺去機巧, 意冥玄化, 而物在靈府, 不在
耳目. 故得於心, 應於手, 孤姿絶狀, 觸毫而出, 氣交沖漠, 與神爲徒.45)
이 글은 張璪가 〈松石圖〉를 그릴 때 도달한 物化에 대한 생동적인 묘사이다. 예술가가
붓끝을 놀려 그림을 그릴 때 그 내심은 이미 객관 세계와 서로 교유하고 붓놀림이 道의 경지
에 도달하는 데에서 ‘心手相應’하는 상태에 도달한다. 이 때 심미 대상인 ‘物’은 창작 주체의
눈과 귀 등의 표면적인 지각에 머물지 않고 작가 내면 깊숙이 존재하는 마음속으로 완전히
융합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물아일체인 것이다. 그래서 符載는 張璪의 그림에 대해 “그림이
아니라 진정한 도이다.(非畫也, 眞道也.)”라는 경탄의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이밖에도 張
彦遠의 歷代名畫記‧論顧陸張吳用筆에는 畫聖 吳道子의 그림이 신묘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논하면서 “그 정신을 온전히 지키고 오로지 그 한 가지에만 마음을 썼기에 造化의 공에 합하
고 오도자의 붓에 빌었으니, 이것이 앞서 말한 뜻이 붓보다 먼저 있고 그림이 다해도 뜻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守其神, 專其一, 合造化之功, 假吳生之筆, 向所謂意存筆先, 畫盡意在
也.)”46)라고 기재하였다.
물아일체에 대한 애호는 회화뿐 아니라 시문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시문도 물아일체에 이
른 후에야 비로소 工巧해진다. 예를 들어, 司空圖의 二十四詩品에 언급된 시가 예술 풍격
중에서도 물아일체를 최고로 평가하였다. 사공도는 예술가의 주체와 창작 대상인 객체 사이
의 융합을 특히 강조하여, “형상 밖으로 추월하여 그 妙理를 얻는다.(超以象外, 得其環中.
〈雄渾〉)”라고 하고 “잠자코 소박하게 사니 오묘한 기틀이 은미하다.(素處以黙, 妙機其微.


45) 中國美學史資料選編(中國文史資料編輯委員會 編, 台北: 光美書局, 1984년) 上冊, 295쪽.
46) 中國美學史資料選編 上冊, 317쪽.
蘇軾 문예 감상의 세 가지 척도(崔在赫) 285


〈沖淡〉)”라고 하고 “하늘과 땅이 함께 서고 神妙한 변화와 함께 하는 바이라.(天地與立,
神化攸同.〈勁健〉)”라고 하고 “우연히 만난 건 하늘로부터 온 것이나, 맑게 울려나는 드문
소리로다.(遇之自天, 泠然希音.〈實境〉)”라고 하는 등의 언급을 하였다.47) 謝榛 역시 四溟
詩話에서 시가 창작은 物化의 경계에 진입할 때 物我 쌍방이 분명히 구별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그가 “생각이 깊고 넓은 경지에 들어가면 나도 없고 물상도 없게 되니, 詩가 깊은
경지에 다다른 것이다.(思入杳冥, 則無我無物, 詩之造玄矣哉.)”48)라고 표현한 말은 문예 창
작 중에 精誠이 專一하면 절로 물아일체에 들어갈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司空圖가 二十四
詩品에서 기술한 24가지 시가 예술 풍격은 物我 경계의 특징을 충분히 표현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司空圖가 묘사한 매 하나의 예술 경계 속에서 작가의 주체와 창작 대상의 객체 사
이에 物我가 구분되지 않고 합일된 경계를 찾아볼 수 있다. 司空圖가 비록 이론적으로 物化
의 문제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지만 거기서 표현된 24가지 풍격의 문예 경계 속에서 物化
사상이 녹아 있고 물아일체를 드러내었다.49)


4.2 文同, 陶淵明
소식이 감상할 때 중시했던 물아일체는 대부분 文同의 대나무 그림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蘇軾─竹─文同’ 삼자 관계를 논술할 필요가 있다.
蘇軾이 거처했던 곳에는 대나무가 즐비했고 대나무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겨 교유하였
다. 시문이나 서화에 능했던 소식은 시문, 서법, 회화를 빌어 대나무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였다. 소식 작품 중에 대나무와 관련된 묘사는 일일이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
다.50) 소식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대나무는 정말 한순간도 떨어져 있지 않던 동반자였다. 대
나무에 대한 애호가 정말 남달랐던 소식은 이러한 감정을 담아 “영남 사람 중에 마땅히 대나


47) 中國歷代文論選 제2책, 203~206쪽.
48) 四溟詩話(北京: 人民文學出版社).
49) 中國古代文學創作論, 56~57쪽 참고.
50) 소식의 작품 중에 대나무의 정태를 묘사한 것들이 유난히 많다. 예를 들면, “暫借藤床與瓦枕, 莫
敎辜負竹風涼.”(〈歸宜興, 留題竹西寺三首(之二)〉, 蘇軾詩集 제4책 권25, 1347쪽); “散亂東牆
疏竹影.”(〈減字木蘭花‧回風落景〉, 東坡樂府箋 권2, 255쪽); “夢驚忽有穿窗片, 夜靜惟聞瀉竹
聲.”(〈雪夜獨宿柏仙庵〉, 蘇軾詩集 제3책 권14, 700쪽); “楚山修竹如雲, 異材秀出千林表.”
(〈水龍吟‧贈趙晦之吹笛侍兒〉, 東坡樂府箋 권1, 69쪽); “花香襲杖履, 竹色侵杯斝.”(〈司馬君
實獨樂園〉, 蘇軾詩集 제3책 권15, 733쪽)) 등이다.
286 中國語文學論集 (第 40 號)


무에 송구스러워할 자가 있다. 먹는 건 죽순이요, 지붕 덮은 건 대나무 기와, 물건 나르는
건 대나무 뗏목, 밥 짓는 건 대나무 껍질, 글 쓰는 건 대나무 종이, 신은 건 대나무 신발이라.
참으로 하루도 이 대나무가 없어서는 안 된다고 말할 만하구나!(嶺南人, 當有愧於竹. 食者竹
筍, 庇者竹瓦, 載者竹筏, 爨者竹皮, 書者竹紙, 履者竹鞋, 眞可謂一日不可無此君也耶.)”51)라고
말하였다. 여기에 쓰인 ‘愧’자를 통해 소식의 대나무에 대한 감정을 남김없이 토로하였다.
소식의 이러한 대나무 사랑을 가장 잘 드러내는 인물로 바로 ‘文湖州竹派’ 창시자인 文同
과의 교유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文同은 字가 與可이고 石室先生이라 불리었고 소식보다
18살 위였다. 두 사람은 이종사촌 관계이면서 시문서화 방면의 知己이기도 하였다. 그들의
우정을 말할 때 그들 공동의 벗인 대나무를 떼어놓고 말할 수 없다.
文同은 대나무 그림을 너무나 실물처럼 잘 그렸다. 그래서 소식은 文同을 스승으로 삼아
대나무 그림의 기교를 배우면서 이를 이론화하는 데에도 힘썼다. 예를 들어 〈淨因院畫記〉
에서 그는 文同의 벽화에 대한 평론을 통하여 ‘常形(사물 외적인 모양)’과 ‘常理(사물 내적인
규율)’의 문제를 제기하여 ‘常理’가 ‘常形’보다 더욱 중요하다고 지적하였다. 이러한 부분이
어긋나 잘못되면 곧바로 예술작품의 전체가 무너진다는 점을 더욱 강조하였다.52) 그는 〈墨
君堂記〉에서도 文同의 대나무에 대한 깊은 이해가 결과적으로 形神이 겸비된 작품을 만들
게 하였다고 말하였다. 이른바 “그 대나무 情을 체득하여 그 대나무 性을 다 드러냈다.(得其
情而盡其性)”53)라는 말은 바로 그 ‘常理’를 얻었다는 것이며 그림 속에 제대로 ‘傳神’을 구현
하였음을 말한다. 소식은 文同이 표현한 대나무 그림 속에 文同 자신의 인격도 그대로 투영
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54) 그는 〈書晁補之所藏與可畫竹〉에서 이 점을 재차 언급하였다.
與可畫竹時, 文同이 대나무를 그릴 때,
見竹不見人. 대나무만 보았지 사람은 보지 못하네.
豈獨不見人, 어찌 홀로 사람을 보지 못하는가.
嗒然遺其身. 풀썩 그 자신을 잊었음이라.


51) 蘇軾文集 제6책 권73, 〈記嶺南竹〉, 2365쪽.
52) 蘇軾文集 제2책 권11, 〈淨因院畫記〉, 367쪽.
53) 蘇軾文集 제2책 권11, 〈墨君堂記〉, 355~356쪽.
54) “與可, 文翁之後也. 蜀人猶以石室名其家, 而與可自謂笑笑先生. 蓋可謂與道皆逝, 不留於物者也. 顧
嘗好畫竹, 客有贊之者曰: 先生閒居, 獨笑不已. 問安所笑, 笑我非爾. 物之相物, 我爾一也. 先生又笑,
笑所笑者. 笑笑之餘, 以竹發妙. 竹亦得風, 天然而笑.” 蘇軾文集 제2책 권21, 〈石室先生畫竹贊
幷敘〉, 613쪽.


蘇軾 문예 감상의 세 가지 척도(崔在赫) 287
其身與竹化, 그 몸 대나무와 더불어 동화하니,
無窮出淸新. 무궁함은 청신함에서 나온다네.
莊周世無有, 莊周가 세상에 없으니,

誰知此疑神.55) 누가 이것이 神妙하다는 걸 알까.


대나무를 그리는 화가는 대나무를 자신으로 상상하여 자신을 대상화시킨다. 소식이 文同
의 대나무 그림을 찬양하였던 까닭은 無我의 경계를 그려내었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릴 때
에는 온 신경을 한 데 모아내어야 자신을 잊은 채 대나무에 몰입하는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심미 주체가 창작 객체 속으로 융합되어 그 자신을 잊을 수 있어야 심미 대상의 내재하는
본질과 정신을 파악하게 되고 그 몸이 대나무로 승화하여 그 작품에 무궁한 淸新함을 드러
낼 수 있게 된다. 文同은 대나무를 그릴 때 심미 대상에 완전히 빠져들어 자신의 감정, 정신,
생명을 완전히 대상으로 분화하여 대나무의 생명을 화가 자신의 생명으로 간주한다. 작가는
이러한 物我一體의 상태에서 대나무의 품격과 정신을 철저히 이해하여 작가의 정신이 대상
과 교유하게 된다. 文同이 이러한 경계에 도달할 수 있었던 까닭은 처음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 자신을 먼저 잊고 과정 중에 자신을 대나무와 하나가 되게 하였다는 데에 있다.
소식은 여전히 의문을 제기하였는데, 文同이 대나무를 그릴 때 虛靜한 心態를 유지했다고
해도 ‘忘我’하여 ‘心齋’한 莊周가 이미 죽은 지금 그 누가 文同이 그림을 그릴 때 물아일체에
이르렀음을 이해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 소식은 감상자 역시 주객이 하나 된
‘神與物游’의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는 점을 중시하였다. 이 점을 소식이 깊이 깨달았을 뿐
아니라 文同 스스로도 자신의 물아일체 상태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내가 좋아하는 바는 道이고 이를 대나무에 놓았다. ……차가운 바람이 틈새와 구멍
에서 울부짖고, 날리는 눈발이 언덕과 연못에서 엉긴다. 뭇나무들이 의지할 곳 없음
을 슬퍼하여, 수 백 번 그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기댈 것이 없었다. 그래도 다시 차가
움이 지난 뒤에 푸릇하고, 가련한 자태가 없이 늠름하였다. 松柏을 좇아 자신과 짝
하고, 仁人이 하는 것을 훔친다. 이것이 바로 대나무가 대나무인 이유이다. 처음에
나는 보고 기뻐하였지만 지금은 기뻐하면서도 그 까닭을 몰랐다. 홀연히 손과 종이
사이에서 붓을 잊고 있다가 불끈 흥취가 일어나니 쭉 뻗은 대나무가 빽빽하였다.
夫予之所好者道也, 放乎竹矣. ……淒風號怒乎隙穴, 飛雪凝沍乎陂池. 悲衆木之無賴,
雖百圍而莫支. 猶復蒼然於旣寒之後, 凜乎無可憐之姿. 追松柏以自偶, 竊仁人之所爲,


55) 蘇軾詩集 제5책 권29, 〈書晁補之所藏與可畫竹三首(之一)〉, 1522쪽.
288 中國語文學論集 (第 40 號)


此則竹之所以爲竹也. 始也余見而悅之, 今也悅之而不自知也. 忽乎忘筆之在手與紙之
在前, 勃然而興, 而修竹森然.56)


文同는 대나무를 그리는 과정 중에서 자신의 온 정신력을 창작 대상인 대나무에 투입하여
물아일체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는 화가가 성공적인 그림을 완성할 수 있는 오묘한 이치를
깊이 알고 있었던 것이다. 文同이 대나무를 그리면서 물아일체의 경지에 이를 수 있었던 것
은 바로 그 역시 일상생활 속에 대나무를 항상 곁에 두고 지내면서 대나무의 이치를 깊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文同은 楊州태수를 지낼 때 篔簹谷의 죽림 안에 정자를 짓고는 매일 죽
림을 벗 삼아 지냈고 아내와 죽순을 삶아 저녁식사를 대신하기도 하였다. 蘇轍은 〈墨竹
賦〉를 지어 文同을 贈別한 적이 있었는데, 그 글에서 莊子의 ‘庖丁解牛’와 ‘輪扁斫輪’ 고사
를 빌어 文同의 대나무 그림에 나타난 傳神 능력에 비유하였다.57) 만약 일상생활에서 대나
무를 관찰하여 체득하지 못했다면 물아일체에 이르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 작가가 묘사 대상의 본질과 그 특징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어야 비로소 문예 창작 과정
중에서 그 대상과 하나가 될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감상자는 작가와 그 묘사 대상을
완전히 이해하여 그 작품이 物化의 경계에 도달하였음을 알고 작가와 하나가 된다. 소식은
도연명의 시를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동방의 한 선비, 옷차림이 항상 완전치 않네. 한 달에 아홉 번 우연히 먹고 십 년
동안 딱 한 번 의관을 갖춰 입었네. 그 고생이야 무엇과 비교하리만은, 항상 수심
없는 얼굴이라. ……” 여기 나오는 동방의 한 선비는 바로 陶淵明이다. 그를 따라
노닐 자 누구인지 모르겠다. 만약 이 단락을 이해한다면, 내가 바로 도연명이요 도
연명이 바로 나인 것이다.
“東方有一士, 被服常不完. 三旬九遇食, 十年着一冠. 辛苦無此比, 常有好容顔. ……”
此東方一士, 正淵明也. 不知從之游者誰? 若了得此一段, 我卽淵明, 淵明卽我也.58)
도연명은 “평탄한 경작지에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이 갔다 오니, 좋은 싹 역시 새 것
을 품는다.”라고 하였다. 옛날에 밭을 갈아본 자가 아니면 이 말을 할 수 없고, 나


56) 蘇轍集 제1책 권17, 〈墨竹賦〉, 334쪽.
57) “蓋予聞之, 庖丁解牛者也, 而養生者取之. 輪扁斲輪者也, 而讀書者與之. 萬物一理也, 其所從爲之者
異爾. 況夫夫子之託於斯竹也, 而予以爲有道者則非耶?” 蘇轍集 제1책 권17, 〈墨竹賦〉, 334쪽.
58) 蘇軾文集 제5책 권67, 〈書淵明東方有一士詩後〉, 2115쪽.
蘇軾 문예 감상의 세 가지 척도(崔在赫) 289


같은 대 이은 농사꾼이 아니면 이 말의 기묘함을 깨달을 수 없다.
陶靖節云: “平疇返遠風, 良苗亦懷新.” 非古之偶耕植杖者, 不能道此語, 非余之世農,
亦不能識此語之妙也.59)
소식은 도연명의 시를 빌어 도연명과 하나 되어 물아일체에 도달하였던 것이다. 소식은
〈書淵明述史章後〉에서 “陶淵明이 지은 述史九章 중의 〈夷齊〉와 〈箕子〉는 아마도
느낀 바가 있어 이른 것이리라. 오백여 년의 거리가 있지만 나는 그의 의중을 알겠네.(淵明
作述史九章, 〈夷齊〉․〈箕子〉蓋有感而云. 去之五百餘載, 吾猶知其意也.)”60)라고 하였
다. 여기서 소식은 자신이 도연명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知音’임을 암암리에 밝히고 있다. 文
同 역시 “세상에 나를 아는 자 없더니, 오직 소식만이 한 번 보고는 나의 묘처를 알아냈다.
(世無知我者, 惟子瞻一見, 識吾妙處.)”61)라고 말했었다. 소식은 물아일체를 매우 강조하면서
그것을 문예 감상의 중요한 척도로 삼았다.
소식은 어떤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때 물아일체를 특히 중시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소식
이 물아일체라는 말로 평가한 작품이 매우 극소수라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물아일체
의 작품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소식 자신이 그 작가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감상자인 소식이 작품 속에 묘사된 대상의 ‘常形’과 ‘常理’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서 작가 역시도 그 제재의 ‘常形’과 ‘常理’를 몸소 깨달았을 때,
소식은 비로소 그 작가의 작품이 물아일체에 도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소식은
작품을 감상하려면 매우 깊은 문예 수양과정을 거쳐야 정확한 평가를 내릴 수 있다고 여겼
다. 소식이 文同과 陶淵明 등의 작품을 예로 든 까닭은 소식이 그 작가들을 진정으로 이해하
고 있었고 그 바탕에서 그들의 작품을 감상하였기에 그들의 작품에 구현된 물아일체를 체득


59) 蘇軾文集 제5책 권67, 〈題淵明詩二首(之一)〉, 2091쪽. 여기에 나온 시는 〈癸卯歲始春懷古田
舍〉( 陶淵明詩文彙評, 台北: 世界書局, 1998년 二版, 126쪽)이며, 다음과 같다. “先師有遺訓, 憂
道不憂貧. 瞻望邈難逮, 轉欲心長勤, 秉耒歡時務, 解顔勸農人. 平疇交遠風, 良苗亦懷新; 雖未量歲
功, 卽事多所欣. 耕種有時息, 行者無問津. 日入相與歸, 壺漿勞近鄰. 長吟掩柴門, 聊爲隴畝民.”
60) 蘇軾文集 제5책 권66, 〈書淵明述史章後〉, 2056쪽. 原詩題作讀史述九章, 乃淵明讀史記有感
而作, 〈夷齊〉․〈箕子〉爲首二章. 蘇軾所云, 當是夷齊․箕子的處境․節操與陶潛本人相似, 故
有所感而發之於詩. 여기 나오는 시는 陶淵明詩文彙評 367쪽에 보인다. 〈夷齊〉: “二子讓國,
相將海隅;天人革命, 絶景窮居. 采薇高歌, 慨想黃虞;貞風凌俗, 爰感懦夫.”〈箕子〉: “去鄕之感,
猶有遲遲;矧伊代謝, 觸物皆非. 哀哀箕子, 云胡能夷! 狡童之歌, 悽矣其悲.”
61) 蘇軾詩集 제5책 권26, 〈書文與可墨竹‧敘〉, 1392쪽.
290 中國語文學論集 (第 40 號)


할 수 있었다.


5. 나오는 말
蘇軾은 문예 창작의 대가이면서 문예 감상의 ‘知音’이었다. 문예 감상자의 입장에서 볼 때
소식은 특별한 안목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자연미, 함축미, 물아일체이다. 여기서
물아일체는 사실상 함축미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함축미가 사회
교화 및 다의성을 중시한 것이라면, 물아일체는 물상이 마음을 움직이는 데 그치지 않고 ‘物
心合一’의 상태를 이룬 것을 말한 것이다.
자연미 부분에서 소식은 문예작품이 진실한 감정을 표현해야 하고 언어는 질박하여 어떤
수식의 흔적도 없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격률이나 대우, 또는 지나친 전고의 사용을
반대하였다. 소식은 자연미가 지닌 ‘天工’과 ‘淸新’을 적극적으로 추구하였다. 이것은 바로
‘隨物賦形’과 ‘行雲流水’의 본질이다. 소식이 말한 자연미는 절대로 자연주의 사조에서 말하
는 자연이 아니고 예술적 가공과 단련을 거친 후에 도달할 수 있는 ‘天工’의 자연미를 말한
다. 그가 주장한 자연미를 이룬 시가는 자연스런 단련을 거쳤기에 “하늘의 솜씨는 천둥 친
도끼 흔적을 볼 수 없네.(天工不見雷斧痕)”라는 효과를 맛본 것이다. 소식은 陶淵明, 吳道子,
文同 등을 자연미를 이룬 작가로 보았다.
함축미 부분에서 소식은 문예 작품의 言外之意는 형상 속에 사상을 기탁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이는 작가의 생각을 적나라하게 다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상상력의 여지
를 남겨 두어 형상의 함의를 풍부하게 하는 것이다. 작가는 응축된 언어를 사용하여 함축미
를 만들어내어 독자들에게 시인의 의향 너머까지도 도달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이 바로 모든
창작물은 ‘言外之意’, ‘題外之旨’, ‘字外之意’, ‘畫外之象’, ‘弦外之音’ 심지어는 ‘味外之味’를 구
비해야 한다고 지적한 말이다. 소식은 陶淵明, 柳宗元, 杜甫, 韋應物 등을 작품에 함축미를
발현한 작가로 보았다.
물아일체 부분에서 소식은 物化의 경계에 이른 작품을 애호하였다. 물아일체는 주체인 작
가와 객체인 대상물이 작품 속에서 하나가 된 경지를 말한다. 작가는 자신의 감정과 대상물
이 서로 하나 되어 대상물이 자신처럼 생명력을 지닌 물상으로 변화시켜 物化의 경계에 이
蘇軾 문예 감상의 세 가지 척도(崔在赫) 291
른다. 하지만 작가가 작품 속에 물아일체를 구현했다고 하더라도 감상자가 그 작품 속의 물
아일체를 체득하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물아일체의 작품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감상자가
그 작가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를 가져야 하며 그 대상물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지녀야
가능하다. 소식은 文同과 陶淵明을 진정으로 이해하였고 그 바탕에서 그들의 작품을 감상하
였기에 그들의 작품 속에 구현된 물아일체를 체득할 수 있었다.
자연스럽지 않은 문예 작품을 감상한다면 감상자는 자연미를 느낄 수 없다. 문예 작품은
자연미를 지녀야 한다. 그러나 언어는 의미를 전달하기에는 부족한 도구이기 때문에 작가는
언어를 운용할 때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는다. 예부터 사람들은 ‘말로는 의중을 다 드러내지
못한다.(言不盡意)’라는 말을 해왔듯이 문예 작품 속에 ‘言外之意’를 발현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게다가 문예 작품은 物我一體를 구현해야 한다. 소식이 말한 문예 감상의
세 가지 척도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물아일체를 구현한 작품은 자연미를 지닐
수밖에 없고 함축미에 기초해야 한다. 결국 자연미와 함축미, 그리고 물아일체는 표현만 세
가지로 달리 한 것이고 하나로 귀착된다고 하겠다.


〈 參 考 文 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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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 文 摘 要 〉
蘇軾是文藝創作大家, 也是文藝欣賞的“知音”。從文藝作品的欣賞者立場來看, 蘇軾持有特別
的審美眼光, 如“自然美”、“含蓄美”、“物我一體”。“含蓄美”與“物我一體”實際上是本同末異的,
但前者比較重視社會敎化․含蓄等, 後者不止於物以心動, 進而包含物心同一的體化。
在“自然美”裡, 蘇軾主張文藝作品應當要有眞摯的思想感情, 要求語言樸實流暢, 無雕琢之跡,
在於擺脫種種人爲的不必要的束縛, 如過於講究格律對偶, 以鋪排學問爲詩等。蘇軾積極追求“自
然之美”的一個目標, 乃是“天工與淸新”, 而這也正是其“隨物賦形”、“行雲流水”說的本質內涵。
蘇軾所說的天工自然, 絶不是自然主義意義上的自然, 而是經過了藝術加工、鍛鍊之後而達到的一
種“天工”自然之美。淸新自然的詩歌, 來自於鍛煉之工, 其效果當是“天工不見雷斧痕”。於是蘇軾
特別欣賞陶淵明、吳道子、文同等的文藝作品。
在“含蓄美”裡, 蘇軾認爲, 爲了感到文藝作品裡的言外之意, 寓思想於形象之中, 但是不要把意
思說得太盡, 而是要留一些餘地, 讓讀者運用自身的想像力, 去豐富、補充形象的內涵, 去接近深
藏在意象中的作家本人。對文藝作品來說, 意竭則神韻必枯, 語過實則意味必短, 含蓄不盡, 牢籠
百態, 才有可能使讀者低迴婉轉, 遐想悠遠。所以, 從生活物象到文藝形象的審美轉化過程中, 蘇
軾對文藝作品提出了一個更高的要求,指出一切創作應具有“言外之意”、“題外之旨”、“字外之
蘇軾 문예 감상의 세 가지 척도(崔在赫) 293
意”、“畫外之象”、“弦外之音”, 甚至“味外之味”。蘇軾提起“言外之意”來讚賞陶淵明、柳宗元、
杜甫、韋應物等的文藝作品。
在“物我一體”裡, 蘇軾十分賞識物化之境的文藝作品。所謂“物我一體”, 卽是文藝創作中作家
的主體和創作對象的客體合而爲一的境界。物我一體是作者以自己的情懷和物象交融, 將對象幻
化爲同自己一樣有着活潑的生命氣息的人情化物象, 達到心物交融, 身與物化的境界。“物化”正是
溝通自我與對象的橋樑, 主體“物化”爲物時, 便進入了主客不分的審美狀態, 主體遺忘自我而馳入
對象的內部世界, 從而能對對象作最深刻把握。蘇軾眞正地理解文同和陶淵明的作品, 因而能體會
到“物我一體”的境界。
賞識文藝作品時, 如果鑑賞不自然的文藝作品, 欣賞者感不到“自然美”。因此, 文藝作品應當
持有自然天工的興趣, 誠然顯現“自然美”是很重要的。但語言是一種粗疏的表達思想的工具, 而作
者們對語言的運用, 都有一個熟練程度和表達技巧的高下工拙的問題, 這個問題雖然並沒有改變語
言作爲思想的直接現實的本性, 但由於語言表達對作者思維訓練和文化素養的依賴性, 的確給着作
家們帶來了不少困難。古代文人把它說爲“言不盡意”。因而文藝作品裡發露“含蓄美”也是很重要
的。加之, 文藝作品須要俱現主客合一、心與物化的境界。這就是“物我一體”。易言之, 顯現物化
之境的作品, 不得不涵蓋自然之美, 基礎於言外之意。總之, “自然美”、“含蓄美”、“物我一體”三
者確實歸於一處, 但表現不同。
主題語(key words) : 蘇軾, 文藝欣賞, 自然, 含蓄, 物我一體, 天工, 言外之意, 物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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