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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삼위일체론의 "인격" 개념에 대한 현대적 이해와 전망- Barth 삼위일체론의 존재방식 개념을 중심으로 -/황돈형.중앙신대

1. 들어가는 글

 

하나님에 대한 참다운 진리를 밝히는 것은 신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특히 삼위일체 하나님을 밝히는 것은 기독교의 고유한 하나님 이해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신학의 근본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과 같이 과학적 논리성이 모든 학문의 기준역할을 수행하고 특히 다원주의와 사이버 문화 등이 전통적 사회구조의 급격한 변화를 요구하는 상황에 있어서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을 밝힌다는 것은 현대적 상황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변증하는 것일 뿐 아니라 기독교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과제인 것이다. 즉 삼위일체 하나님을 말하는 것은 단지 과거의 교리적 유산으로 생기는 이론적 문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만이 아니고 복음 가운데 알려진 하나님의 존재와 구원을 오늘날의 상황에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이어야만 하는 것이다.1

이런 차원에서 본 논문은 먼저 삼위일체론의 형성과정을 통해 삼위일체론에서 사용된 인격 개념의 의미가 어떻게 설명되었는가를 파악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과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서 이룩된 삼위일체론에 있어서 인격 개념은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이루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과 연관하여 현대적 상황에 가장 논쟁적으로 삼위일체론의 새로운 이해를 시도한 바르트(K. Barth)의 인격 개념(존재방식)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서 바르트는 어떻게 하나님의 존재를 초월적으로 근거 지으면서도 역사적으로 밝혔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바르트의 인격이해에 대한 평가와 전망을 통해서 복음적 삼위일체론의 신학적 지평을 밝히고자 한다.

 

2. 삼위일체론에 있어서 인격 개념의 형성과 의미

 

삼위일체 신앙은 고대 교회의 신앙적 핵심을 서술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견지에서 초기 교부들은 신앙의 핵심인 삼위일체를 다양한 관점에 따라서 서술하고자 하였다.2 그런데 이러한 삼위일체론이 기독교의 정통적 신앙을 표현하는 보편적 교리로 확정된 것은 니케아(Nicea)회의와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회의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삼위일체 교리가 형성되는 과정에 있어서 중시해야 할 점은 삼위일체론이 결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철학적인 이론에 의해서 규정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3 다시 말해서 삼위일체에 대한 논쟁에서 한결 같이 강조된 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이 전적으로 한 분 하나님 안의 아버지, 아들 그리고 성령의 세 인격의 구분과 일치의 상호 내재적인 관계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는 신앙이었던 것이다.4

그리하여 로고스 이론이 등장한 이후 삼위일체론 논쟁의 시초단계에 있어서 한 분이신 하나님을 강조하며 세 인격의 신성에 대하여 논의할 때 먼저 하나님은 하나의 본질로 존재하지만 하나님 안의 세 인격이 종속론적으로 구분되어 개별적 실체( 불확실하게 만들었던 입장을 정죄하였다.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하나님의 구원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아버지와 아들의 동일성을 강조한 아타나시우스(Athanasius)의 입장을 택한 것이다. 그리하여 니케아 종교회의(A. D. 325)에서 아버지와 아들 두 인격이 서로 동일본질(5 예수 그리스도 안에 알려지신 아들의 본질이 참된 하나님 아버지의 본질과 전적으로 일치한다는 것을 강조하였었던 것이다. 그 후 콘스탄티노플회의(A. D. 381)에서는 성령의 참된 신성을 의문시하였던 양태론적 입장들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6 그리하여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의 결정은 삼위일체의 세 인격의 동질성과 동등성, 즉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성령의 참된 신성을 보장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이루어진 구원과 함께 교회에서 수행하는 모든 세례와 성찬의 행위 가운데 구원의 연속성을 보장하였던 것이다. 이는 하나의 본질적 면보다도 삼위일체의 세 인격의 신성을 강조함으로써 한 분 하나님을 나타내고자 하였던 카파도키아 신학자들의 입장과 상응한 것이었다.7 이들은 □8 이렇게 카파도키아 신학자들은 구원을 이루시는 삼위일체의 세 인격의 고유한 신성을 보장하기 위해서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이루어진 구원이 모든 이를 위한 하나님 자신의 구원의 역사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삼위일체론이 등장하였다면 또한 삼위일체론의 핵심적 과제는 세 인격의 구분을 통한 한 분이신 하나님의 유일성을 보장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드러난 하나님의 구원을 확실하게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제는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존재를 설명함에 있어서 사용되는 철학적인 개념의 적합성에 대한 문제와 함께 항상 새롭게 이해되어야만 하였다.9

이러한 맥락에서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존재 문제를 새롭게 해결하고자 시도 한 서양교회의 대표적인 이는 성 어거스틴(St. Augustinus)이었다. 그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신성이 하나임을 강조하며 하나님 자신 안의 세 가지 상호적 관계를 논함으로써 삼위일체를 종속론적이거나 양태론적으로 빠지는 위험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먼저 한 분 하나님의 무한한 본질(essentia)을 강조하였다. 즉 하나님 안의 구분에 있어서 종속적으로 이루어지는 다신론적 해석의 여지가 있을 수 없게 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무한한 영원성 가운데 세 인격의 불변하는 존재를 나타내기 위해서 관계(relatio)라는 개념을 사용하였다. 즉 그에 따르면 하나님의 전능과 선, 완전성 등에 대하여 말할 때 그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동질성 가운데 한 분이신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버지나 아들은 모두 한 분이신 하나님으로서 전능하시고 선하시고 완전하시다. 아버지나 아들 성령은 무한한 본질 가운데 한 분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을 아버지, 아들, 성령으로 말할 때에는 신성의 영원한 본질 안의 변함없는 세 분의 고유한 존재로서(alius)10 상호 내재적 인격관계를 말한 것이다. 여기서 그는 인격(persona, □□□□□□□□)이란 개념이 자칫 실체(substantia)로 오해됨으로써 세 인격을 세 신으로 파악할 수 있거나 본질과 인격이 서로 다른 범주의 설명양식으로 인격 개념 자체가 양태론적 위험 가운데 쓰일 수 있기 때문에 인격개념 보다도 관계(relatio)라는 개념을 중시하였다.11 즉 인격이란 개념은 하나님의 참된 존재 자체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침묵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었으며12 일반적으로 인격개념은 삼위일체의 세 위격을 삼신론적으로 오해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13 따라서 삼위일체의 내재적 세 인격의 서로간의 존재와 세상과의 관계에서 한 본질 가운데 있는 세 인격의 차이를 표현하는 것으로 관계라는 개념을 더욱 중시하였던 것이다.14 이러한 차원에서 그는 삼위일체의 세 인격들을 근본적으로 한 본질 가운데 다른 분들과의 관계, 즉 아버지로부터의 아들의 관계, 아들로부터의 아버지의 관계,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의 동일본질로부터의 성령의 내재적인 관계로서 주장하게 된 것이다.15 이렇게 인격을 관계로서 이해하는 방식을 통해서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본질적 동일성을 보장하고 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드러난 구원을 하나님의 사랑의 실재로서 분명히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16

그 후 보에티우스(Boetius)는 삼위일체의 세 인격을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적 사고에 따라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인격을 본성적으로 이성적이며 개체적이고 실체적인 것(persona est rationalis naturae individua substantia)으로 정의했다.17 이것은 인격이란 개념을 신성의 내적 구분을 나타내기 위한 언어의 활용론적 입장에서 이해하지 않고 그 대신 인격개념에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여 이성적인 개체를 지칭하도록 사용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어거스틴은 인격을 논할 때 하나님의 본성의 일치를 이루고 있는 하나님 자신의 세 가지 근원적인 내적 관계임을 강조한 것과 달리 보에티우스는 삼위일체의 세 인격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제 일의적 실체 개념으로 파악한 것이다. 이것은 이제까지 삼위일체론의 근거를 구원론 위주로 파악하고 있었다면 이제는 철학적인 차원에서 실체론적 입장이 삼위일체론의 중요한 기준점이 된 것이며 이는 한 분 하나님의 본질과 세 실체적인 인격과의 구분을 애매하게 만드는 것이었다.18 이러한 가운데 어거스틴의 신학적 전통은 리처드(Richard von St. Viktor)에 의하여 지속적으로 나타났다.19 그는 신적 사랑을 중심으로 삼위일체를 파악하고자 하면서도 또한 신적인 사랑 자체를 삼위일체의 기본구조 안에서 변증법적으로 설명하였다. 즉 최고의 사랑은 자기만의 폐쇄적인 사랑이 아니며 서로의 상대방을 필요로 하며 그 가운데 또 다른 이에게 전달될 수 있는 사랑이다.20 이러한 완전한 사랑은 전적으로 하나님 자신(아버지-아들-성령)에게서부터 발견되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삼위일체의 세 인격의 필요성을 보장하며 동시에 삼신론적 위협을 극복하기 위해서 보에티우스의 인격 개념을 수정하고자 하였다. 즉 인격 개념을 실체적인 것과 구분 지으면서 개별적인 특수성에 해당하는 실존(existentia)개념으로서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21 그리하여 삼위일체의 인격을 신적 실체 상태에 대한 설명이라기보다 신적 존재의 발생적 근거에 대한 개념으로서 이해한 것이다.22 이에 따르면 삼위일체의 인격은 그 자체로 세 인격 상호간의 관계를 구성함으로써 이루어지는 불가공약적 실존(incommunicabilis existentia)으로서 파악된 것이다. 그리하여 아버지는 아들과의 관계 안에서 아버지로서 아들과의 관계를 구성하는 고유한 존재가 알려지는 아버지이고 아들은 또한 아버지와의 관계를 통해서 아버지와의 관계를 구성하는 고유한 존재로서 아들로 알려지는 것이다.23 그리하여 신적 존재의 통일성을 보장하는 인격개념이 중시된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인격개념의 신학적 의미와 철학적 의미의 종합은 토마스(Thomas v. Aquinas)에게서 발견된다. 그는 다른 이들과 달리 특히 내재적 삼위일체에 있어서 두 가지 발현과정이 서로 다른 것에 대하여 강조한다. 즉 한 분 하나님으로서 동일한 분이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분 하나님 안에는 두 가지 발현과정을 통해서 삼위의 세 인격의 분명한 구분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버지로부터 아들이 출생하는 것과 또 아버지로부터 성령이 드러나는 것 사이의 구분을 통해서 아들과 성령은 아버지와도 다를 뿐 아니라 양자 사이에도 서로 다른 특별한 인격의 차이를 강조하는 것이다.24 이것은 삼위일체의 인격을 설명할 때 보에티우스의 개체적 인격개념을 수용하면서도 특히 어거스틴의 관계개념을 따른 것으로 평가된다.25 그는 삼위일체의 인격을 보에티우스에 따라 개체적 실체인 이성의 존재로서 최상의 존재적 범주로서 설명하면서도 동시에 신적 인격의 특성은 신적 본성 안에서만 알려지는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리하여 엄밀한 의미에서 인격개념은 어거스틴이 주장한 인격의 관계개념에서 파악되고 있는 것이다. 즉 삼위의 세 인격은 그 자체 안에 자신의 고유한 이성적 본성을 통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상대적인 특별한 대상적 관계를 이루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 안에는 완전하게 서로가 서로에게 대상이 되는 관계성 외에 어떤 차이도 없는 하나님의 성부 되심과 아들 되심, 그리고 성령의 드러남의 한 분 하나님의 세 인격적 실재가 알려진다.26 이렇게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은 세 인격이 자기-존립적인 존재로서 서로가 분명히 구분되는 내적인 관계 가운데 하나의 본성(natura)으로 계신 분이며 그런 분으로서 참된 복락의 진리를 나타내는 구원의 삼위일체인 것이다.27 이렇게 해서 인격개념은 구원의 진리를 보장하는 내재적 삼위일체를 이해하는 철학적이면서도 신학적 언어로서 사용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중세 아리스토텔레스적 철학적 신학의 체계를 거부한 루터(M. Luther)는 전통적으로 주어진 삼위일체론을 왜곡되지 않은 교리로서 복음을 나타내는데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였다.28 그럼에도 철학적 존재 개념의 완성체로서 신적개념으로부터가 아니라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삼위일체를 이해하였다. 그리하여 삼위일체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중심으로 드러난 한 분 하나님의 계속적인 사역으로서 나타내고자 하였다.29 그리고 또한 세 인격의 구분에 따라서 아버지는 창조의 사역을 아들은 구원의 사역을 성령은 성화의 사역을 이루신 한 분 이신 하나님으로 이해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중요한 것은 경륜적 삼위일체를 내재적 삼위일체에 근거한 것으로 파악함으로써 세 인격이 한 분 하나님 안에 고유하게 존립하신 분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루터에게 있어서 인격이란 하나님의 역사적인 과정을 통한 삶 자체의 내재적 관계성을 규정짓는 관계적인 개념으로서 이해된다. 세 인격은 고유한 신적 존재 자체의 특성으로서 상호간의 관계를 통해서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참된 신성과 구원을 알리는 것이다.30 칼빈은 삼위일체의 세 인격의 특성을 아들의 계시를 통해서 밝히기 시작한다.31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알려진 세 분의 인격은 신성의 하나의 본질 가운데 변역할 수 없는 세 존재방식(subsistentia)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인격은 신성의 통일성 가운데 바뀔 수 없는 고유성(proprietas)으로서 세 분 아버지, 아들, 성령 각각의 이름에 부과된 특별함을 나타내는 것이다.32 그리하여 세 인격을 통해서 밝혀진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은 한 분 하나님에 대한 하나의 믿음을 요구하는 세례의 명령(28: 19)으로 표현된다.33 즉 개별적 실체 개념으로서 그 본질상 하나의 신적인 근원으로부터 관계에 의하여 규정된 하나님의 존재를 인격개념으로서 파악함으로써 하나님의 유일성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하나님의 사건으로서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까지 논의된 삼위일체론의 인격 개념을 정리함에 있어서 가장 중시해야 할 점은 인격을 신적 본성의 실체적 개념(substantia)과 동일시하면 삼위일체론은 양태론으로 떨어질 수 있고 혹 삼위의 인격을 신적 본성으로부터 분리된 개별적 신성(□□□-□□□□□)으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종속론적) 삼신론의 위험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런 위험을 극복하고 삼위일체적인 인격개념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나타내기 위해 적합하게 사용될 수 있는 요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1) 인격개념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계시 역사 가운데 드러나는 하나님 자신의 세 분의 구분을 기초로 해야 한다. 2) 아버지, 아들, 성령의 세 인격의 실체성은 근원적으로 하나님의 존재 자체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3) 세 분 인격의 차이는 신적 본질과 다른 어떤 것에 의한 구분이 아니고 전적으로 신적 본질의 내재적 상호관계에서 규정된 것으로서 파악되어야 한다. 4) 세 분의 인격적 특성은 삼위일체의 본래성을 밝히는 것으로서 한 분 하나님이신 기독교적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알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세 분의 인격은 하나님의 존재의 동일성과 통일성을 나타내는 것이어야 한다.

 

3. K. Barth의 삼위일체의 인격 개념의 이해

 

본 단락에서는 현대적 상황에서 논쟁적으로 삼위일체론적 신학을 전개한 바르트(K. Barth)의 삼위일체론을 살펴보고자 한다. 특별히 바르트가 강조한 삼위일체의 인격 개념으로서 삼위일체의 존재방식에 대하여 위에서 논한바 인격 개념의 4 가지 의미적 요점을 중심으로 각 항목에 따라서 살펴보고자 한다.

 

 

 

 

3 .1 - 바르트의 삼위일체론의 근거: 바르트는 하나님의 존재를 형이상학적 방식으로 나타내지 않고 계시의 사건을 중심으로 역사적 주체이신 유일하신 하나님 이해를 통해서 나타내고자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절대적인 신성의 의미를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계시의 사실 가운데 알려지는 하나님의 주권으로서 파악하는 것이다.34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사건 가운데 자신을 알리시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 하나님은 자신을 주로써 계시하신다. - 통해서 드러난 진리인 것이다.35 따라서 이제 하나님의 주권을 통해서 참되신 하나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계시 사건에 대한 해석으로서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파악해야만 되는 것이다.36 즉 바르트에게는 계시자, 계시, 계시 사건(존재)의 지양될 수 없는 다양성 가운데 지양될 수 없는 통일성을 이루는 계시이해가 하나님의 존재의 세 번의 자기반복으로서 삼위일체론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37 그리하여 계시의 구분에서 세 분의 인격이 논의되는 것이다.

 

 

 

 

3. 2 - 세 인격(존재방식)의 실체성: 삼위일체적 계시의 구분을 하나님 자신에 해당하는 것으로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삼위일체적 계시 이해가 전적으로 하나님 자신이 인격 가운데 말씀하시는 행위에서 가능하게 된 것임을 강조해야 한다.38 이를 위해서는 먼저 삼위일체론이 세상의 존재 구조나 절대정신의 변증법적 운동에 대한 철학적 이해에 기인한 것이 아니고39 오로지 우리에게 스스로 자신을 나타내신 하나님의 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임을 밝혀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바르트에게 있어 삼위일체가 어떤 신적 사건에 대한 인간의 주관적 해석이 아니고 하나님 자신의 자기전달에 해당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삼위일체론 자체가 하나님 의 자기 자신에 대한 해석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룰 역사적으로 표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역사적 행위가 인간에게 알려질 수 없는 하나님의 자기 드러냄의 사건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40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임마누엘- 으로서 그 자신에 있어서 인간의 역사와 세계 속에는 감추어진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완전히 그 자신과 다르게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우리와 똑 같은 피조물의 형태 가운데 또 한번 철저히 바로 그 자신이신 하나님이신 것이다.41 하나님은 우리가 파악할 수 없는 깊은 심연 가운데 또 다시 한 번 그 자신의 자유 가운데 아버지이실 뿐 아니라 아들 하나님으로서 자신의 참된 주권을 나타내시는 것이다.42 그리고 아들의 역사적 계시 가운데 알려지신 하나님은 그 자체로 이미 다 알려지고 남은 것이 없는 하나님이 아니다. 계시는 언제나 계시일 뿐이다. 즉 아버지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분으로서 아들의 계시는 아들 안에서 자신을 나타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계시 가운데 지속적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규정하시는 하나님 자신의 사건으로서 이해되고 알려질 수 있는 것이다.43 그리하여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의 계시 가운데 그 참된 주권을 나타내시는 것이다.44 마지막으로 성령 하나님은 아들의 계시 가운데 알려지는 아버지를 오늘날 우리가 알 수 있도록 하시는 아버지와 아들의 영으로서 하나님 자신이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계시는 추상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건으로서 오늘 나에게 가장 구체적으로 유일회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45 그리하여 아들의 계시 가운데 자유로우신 하나님 아버지가 오늘 나에게 다시금 전달되는 사건은 또 한 번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주권이 나타나는 사건인 것이다.46

계시의 사건에서 밝혀지는 아들과 아버지 그리고 성령의 구분은 하나님의 주권이 나타나는 하나님 자신의 가장 본래적인 사건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삼위일체의 세 인격은 하나님의 존재 자체로부터 드러나는 하나님 자신에 대한 진술인 것이다. 즉 삼위일체적 인식은 신적 현상에 대한 인간의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가능성에 기인한 안식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기원하며 하나님 자신에 의해서 표현되어 하나님에 대한 신앙적 응답 가운데 자신을 알리시는 계시의 인식인 것이다. 삼위일체 되신 아버지, 아들 그리고 성령의 존재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 가운데 드러나신 하나님의 세 번의 파괴 될 수 없는 다양한 방식 가운데 바로 자기 자신으로서 우리를 위한 하나님으로 계신 하나님의 실재를 나타내는 것이다.

 

 

 

 

3. 3 - 세 인격(존재방식)의 상호 내재적 규정: 그렇다면 바르트는 삼위일체의 세 인격을 어떻게 설명하였는가? 우선 그는 삼위일체론에 있어서 인격이란 개념은 근본적으로 하나님 안에 세 분의 구분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쓴 개념일 뿐이지 세 분이 있는데 이 분들이 바로 인격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고 강조한다.47 이와 함께 인격이란 개념이 이제까지 필수적인 것처럼 사용되었던 까닭은 인격 대신에 마땅히 대신할 만한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48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인격 개념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는데 그것은 근대에 들어서 인격 개념에 자아의식(Selbstbewu49 그리하여 바르트는 존재방식(Seinsweise)란 말을 인격 대신으로 사용하고자 한다.50 존재방식이란 크엔쉬테트(Quenstedt)modeus entitativus로서 말한 것으로 고대 동방교회의 □□□□□□ 51 이것은 이제까지의 인격 개념을 설명할 때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 인격의 고유한 신적 본질로서의 존립성과 신적인 본질로서 드러난 구분된 관계성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이를 신적 실체에 대한 형이상학적 언어로 설명하려는 것보다 역사적 계시에서 드러나는 아버지, 아들 성령의 자체적인 구분에서 설명하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칼빈이 인격 안에서 신성을 이해하며 동시적으로 각 인격에게 이러한 성격이 속한 것이라고 주장한 점에52 동의하면서 바르트는 존재방식이라는 말이 인격에 대한 이러한 이해에 더욱 적합하다고 강조한다.53 계시의 사건에서 드러난 세 분의 존립성이 각 각의 경우 완전하게 신성을 정의하고 드러낸다는 것을 더욱 강조하는 방식, 즉 존재방식 방식으로 이해할 때 아버지, 아들, 성령은 한 분 하나님의 본질 가운데 나누어지는 부분적인 요소가 아니라 계시의 사건을 통해서 이해된 계시자(은폐된 하나님) - 계시(드러난 하나님) - 계시의 사건존재(알려진 하나님), 아버지- 아들- 성령, 십자가- 부활- 성령강림, 창조주- 화해자- 구원자 등의 세 번의 파괴될 수 없는 다양성 가운데 세 번의 반복되는 파괴될 수 없는 단일성으로, 세 번의 분명한 존재의 구분 가운데 계신 세 번의 반복되는 한 분 하나님으로서 분명한 이해를 나타낸다는 것이다.54 그리하여 계시의 사건에서 알려지는 한 분 하나님은 세 존재방식(인격)으로서만 존립하고 세 존재방식 가운데서만 한 분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사건에서 아버지로서, 아들로서 그리고 성령으로서 세 존재방식 가운데 하나님이 나타난다는 것이 그 자체로서 분리된 하나님을 보여주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이 세 분의 존재방식 자체가 하나님의 본질 가운데 고유한 존립으로서 더욱 더 신성의 내재적 관계 가운데 드러난 한 분 하나님으로서의 통일성을 분명히 지키고 드러내고 있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55 그리하여 이제 내재적 삼위일체의 세상에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행위에 대하여 말하고자 하였던 Opera trinitatis ad extra sunt indivisia(삼위일체 하나님의 세상을 향한 행위는 나누어질 수 없다)의 의미는 바르트에게 있어서는 삼위일체의 세 존재방식의 차이와 이런 차이 가운데 드러난 한 분 하나님을 이해하는 핵심적 기준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바르트는 삼위일체의 세 존재방식을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본질에서부터 이해하려는 전통적인 입장을 이어가고자 하면서도 하나의 본질 가운데 계신 세 분의 존재방식을 나타내고자 할 때는 이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역사적인 계시의 사건에서 본질적인 범주보다 주체적인 범주로서 이해하고자 한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56

그리하여 이제 삼위일체의 세 존재방식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이 드러나는 계시의 사건으로서 각각의 존재방식에서 역사적 방식으로 하나님의 주체적 유일성을 나타내는 것이기에57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출발점으로 드러나는 삼위일체의 세 분의 존재방식의 관계성도 오로지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역사적인 과정을 통해서 알려지게 되는 것이다. 즉 삼위일체의 세 존재방식의 관계성은 형이상학적 철학적 과제로서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되어지며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 가운데 주어진 아버지, 아들 그리고 성령의 지양할 수 없고 변할 수 없는 구원의 일치된 계시에서만 찾아지는 것이다.58 그리하여 먼저 계시의 사건에서 드러난 세 분의 존재방식인 아버지의 존재(paternitas), 아들의 존재(filiatio), 성령의 존재(processio, spiritio passiva)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계시로서 오로지 하나님 안에서만 서로가 서로에게 대상적인 관계를 이루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관계(아버지는 근원이시고 아들은 태어나신 분)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통한 성령과의 관계성(아버지는 근원이시고 성령은 아버지와 및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통해서 드러난 분)에서 드러나는 세 존재방식의 하나 됨은 이 세상의 다른 피조물들과 유비가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하나님 자신의 내재적 사태에서만 근본적으로 규정된 유일한 것이다.59 한 분 하나님이 그 자신으로서 그 자신에게 대상적이게 되는 가운데 바로 그 자신으로서 동일성을 유지하는 하나님 자신 안의 하나밖에 없는 삼중적(아버지-아들-성령) 관계성에서 이루어지는 하나 밖에 없는 통일성(한 분이신 하나님)을 이루시는 것이 세 분의 존재방식인 것이다.60 이런 의미에서 바르트는 하나님의 세 분의 존재방식을 자기 스스로 안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자기관계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역사적으로 "우리 인간에게 알려지는 인간을 위한 하나님"으로서 영원 전부터 그 자신 스스로가 우리를 위한 분으로서 알려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61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 드러난 삼위일체의 세 분의 존재방식은 "하나님 자신에 대한 하나님 자신의 해석으로서 하나님의 자기 상응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구체적으로 이 땅위에 이루어지는 계시의 실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드러난 십자가의 사건 자체가 하나님이 영원부터 자신 안에서 스스로 자신을 우리를 위한 분으로서 정하셨음을 알린다는 것이다. 이렇게 삼위일체의 세 존재방식은 단지 삼위일체의 인격개념에 대한 대체된 형이상학적 서술이 아니라 역사적 계시의 사건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참된 신성을 밝히는 영원성 가운데 영원의 반복62으로서 알려지는 것이다.

 

 

 

 

 

3. 4 - 삼위일체의 본래성: 그렇다면 이렇게 삼위일체의 세 분의 존재방식을 통해 서술된 하나님은 과연 하나님 자체를 역사적 차원에서 모두 다 알리고 있는 것인가? 바르트는 삼위일체의 세 인격 즉 존재방식을 역사적 방식으로 나타내고자 할지라도 하나님의 존재를 역사적 과정에서 해소시키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63 그에 따르면 하나님의 삼위일체적 존재는 하나님 자신 안에서 철저하게 신비로서 남아 있어야 한다.64 그에 따르면 여전히 우리에게 있어 왜 하나님의 하나의 존재가 신성의 근원일 뿐 아니라 이 근원으로부터 출생하거나 발현된 존재로서 세 분의 존재방식으로 인식되는가? 하는 것과 그리고 삼위일체의 세 존재방식이 신성에서 일치하면서도 왜 그렇게 부정할 수 없는 고유한 방식으로 존재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세 존재방식이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성령의 삼중적인 방식 가운데 일치를 이룰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이런 경우에 어떻게 세 존재방식이 한 분이 되고 한 분이 세 존재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인간의 이성적인 논리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65 즉 우리는 이성에 의한 어떠한 논리적 필연성을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단지 중요한 것은 이미 그렇게 사실적으로 우리에게 계시된 것에서 하나님의 참된 존재를 신앙을 통해서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66 그리하여 바르트에게는 삼위일체의 세 분의 존재방식을 통해 하나님을 설명한다는 것은 더 근본적으로 삼위일체되신 세 분의 존재 방식이 하나님 자신의 사랑의 자유로서 자신을 스스로 규정하며 우리를 만나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을 역사적 구체성 가운데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삼위일체의 세 존재방식이 서로 상호간의 순환과 점유 가운데 하나님의 존재의 신비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즉 바르트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삼위일체의 세 존재방식 가운데 인식한다는 것은 바로 세 존재방식의 순환과 점유를 통해서 하나님의 신비가 참으로 역사적 사건으로서 계시된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하나님의 자기 구분 가운데 드러나는 일치성(순환)과 일치성 가운데 더욱 분명하게 구체적으로 밝혀지는 세 존재방식의 구분(점유)은 삼위일체 신학의 기준인 oprea trinitatis ad extra sunt indivisia의 핵심으로서 간주되는 것이다.67

하나님의 신비적 삼위일체의 인식이 가능해지는 것은 세 분의 존재 방식의 차이 가운데 하나님의 존재의 자기 관계성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며 하나님의 세상을 향한 자기 상응의 계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때 하나님의 세 분의 존재방식은 서로가 서로의 존재방식에 완전하게 참여하는 것으로 말할 수 있다. 이런 철저한 상호간의 침투와 내주 가운데 하나님의 존재의 삼위의 일체된 모습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존재가 알려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세 존재 방식은 서로의 존재에 대한 완전한 제한과 그 제한 가운데 서로에 대한 침투(circumincessio)를 이루며 서로가 서로에게 완전히 내주(circuminsessio)하는 의미를 포함하는데 이를 순환(□□□□□□□□□□□)이라고 한다.68 그리하여 세 존재방식은 하나의 존재가 다른 두 존재에 의하여 제한되며 동시에 다른 두 존재에 참여하고 또한 반대로 다른 존재는 하나의 존재에 의하여 제한되고 동시에 다른 하나의 존재에 침투하는 것이다. 이런 상호 침투적 하나님의 존재는 하나님의 존재방식의 특징을 드러낸다. 즉 하나님의 세 존재방식은 서로의 내적 존재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바르트는 이러한 지식이 하나님의 영역에 속한 신비로서 우리에게 전달된 계시의 지식인 것을 강조한다.69 그에 따르면 이런 신비와 인간의 지식으로서의 구분을 통해서만이 세 존재방식의 순환에 대하여 책임적으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순환적 일치 가운데 드러난 하나님의 존재를 이제 다시 이 세상에서 드러난 세 존재방식을 철저하게 긍정하는 것 가운데 자신의 일치를 나타내는 분으로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즉 세 분의 존재방식의 일치에서 하나님의 역사적 계시가 우리에게 알려질 수 있었다면 이것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 존재 방식, 즉 아버지로서, 아들로서, 그리고 성령으로서 자신 스스로에 대하여 동의하시고 그에 상응하며 존재하심으로써 가능해진 것이라는 점이 중요하다.70 그리하여 다시 여기서 바르트는 하나님 자신 안에 드러난 세 존재방식을 강조하는 점유에 대하여 말한다.71 그는 무엇보다도 토마스의 정의에 동의하면서 점유를 하나님의 특별한 세상에 대한 행위를 근거한 하나님의 존재방식으로서 설명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세 존재방식은 분명히 세상에 드러난 하나님의 세 가지 행위방식과- 창조, 화해, 구원- 상응하며 각 존재방식에 점유된 특성을 부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잊지 말아야 할 점은 바로 이 행위들이 하나님의 세 존재방식의 고유성 자체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이 행위들은 하나님의 세 존재방식의 순환을 통해서 이루어진 내적 존재로서의 통일성 가운데 드러난다는 것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점유를 논함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각 존재방식에게 귀속된 특징적 행위들 가운데 하나님의 삼위일체의 일치성이 추상적으로 이루어진 일치성이 아니라 오히려 바로 인간의 현실에서 주어진 세 행위방식 가운데 이루어진 일치성인 것을 밝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바르트는 인간의 현실 가운데 드러난 하나님의 계시의 일치 가운데 한 분 하나님의 세 존재방식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72

 

3. 5 - 요약: 이제까지 바르트가 전통적으로 사용되었던 삼위일체론의 인격개념의 의미지평에서 존재방식이란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였는가를 살펴보았다. 결과적으로 볼 때 바르트는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서 하나님의 존재와 그 내적 구분을 파악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역사적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계시가 하나님 자신의 구분을 나타내며 바로 하나님의 구분 그 자체로 하나님 존재의 통일성을 나타내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 인격개념을 포기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대신 사용한 존재방식 개념을 통해서 역사적 차원에서 밝혀진 하나님의 세 가지 특징적인 계시의 형태로부터 하나님 자신의 내적인 순환적인 일치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바로 이런 과정에서 하나님의 세 존재방식은 역사적 계시에서 하나님의 내재적 삼위일체(하나님의 본질)와 경륜적 삼위일체(하나님의 행위)의 철저한 동일성을 강조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바르트는 존재방식의 개념을 통해 인격개념의 핵심인 세 인격의 신적 본질의 동일성과 각 자의 고유한 존립성을 철저하게 역사적 차원에서 설명하도록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4. K. Barth의 세 존재방식의 개념에 대한 평가와 전망

 

바르트는 신학적 전통을 충실하게 파악하며 신학적 과제로서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 자신의 말씀하시는 사건으로서 현재적으로 선포되는 것으로 말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바르트에게 중요한 것은 전통적 하나님 이해를 하나님 말씀의 현재적 사태 가운데 나타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계시가 이루어지는 역사적 사건 가운데 전통적 개념들을 새롭게 해석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격개념의 4 가지 의미기준과 연관지어 볼 때에 73 이런 차원에서 74 여기서 바르트의 공헌은 삼위일체의 인격개념에 대한 전통과 교리의 언어를 이성적 추상화에 빠지지 않도록 하고 하나님의 계시적 역동적 사건에서 파악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존재는 더 이상 역사 뒤의 숨겨진 어떤 원리나 혹 모든 것을 기계적으로 결정하고 있는 세상의 근본적 원인으로서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현실적으로 인격적인 살아계신 주님으로서 십자가에서 지금도 우리의 모든 죄를 심판하시고 구원하시며 인간에게 새로운 구원의 세상을 가져오시는 분인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역사적 계시를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이해로서 강조하는 바르트 신학을 올바로 평가하고 존재방식 개념이 나타내는 의미의 발전적 이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들을 숙고해야한다:

75 이것은 바르트가 하나님에 대한 말과 하나님 자신의 말씀 사이의 근본적 차이를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말로써 증거 될 수 있는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계시의 능력에 기인한 것으로 보고 있음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76 바르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양자의 차이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의 절대적인 차이 가운데 이루어지는 하나님 자신의 계시의 능력인 것이다. 이런 차이를 무시하면 마치 Berkouwer가 주장하는 것처럼 바르트의 삼위일체의 예정론적 이해와 그의 만인구원론의 부정이 서로 모순 되게 보이는 것이다.77 다시 말해서 바르트에게 있어서 십자가에서 모든 인간의 구원을 위하시고 예정을 이루시는 하나님 자신의 이해와 하나님의 계시를 역사적 원리로 파악하고 모든 인간의 구원을 주장하는 것은 서로 완전히 다른 것이다. 인간의 구원을 위하시는 하나님과 그에 대한 상응한 인식의 발생은 무조건적으로 일치되는 세상의 대상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아니고 성령의 은혜를 따라서 지금 그렇게 이루어지도록 선포되는 것이며 이러한 일치가 이루어졌을 때가 바로 계시가 발생한 것이다. 이것은 삼위일체론을 통해서 참된 초월적 하나님 존재를 나타내는 것이 세상에 대한 포괄적인 존재론의 지평에서 철학적인 방식과 전제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계시로부터 하나님의 존재를 말할 때 삼위일체의 세 인격(존재방식)에 대한 이해는 인간의 종교성에 기인한 선험적 논리적 방식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신 삼위일체의 세 인격(존재방식)에 대한 참된 이해는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실질적인 능력으로부터 하나님을 말하는 것으로 신앙적 언어지평에서부터 가능해진다는 점을 강조해야 하는 것이다.

78 즉 하나님에 대한 계시는 그 자체로 이미 이 세상 안에서 발생한 하나님의 행위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뜻과 능력에 의하여 이루어져 현실적인 결과로서 드러난 상태를 포함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계시는 역사적 상황에서 하나님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는 진실한 언어라는 것이다. 이런 계시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인격을 파악할 때 하나님의 존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된 복음 가운데 세상의 죄를 심판하며 죄인을 구원하시는 분으로서 인간을 향해 선포되고 행위로 이루어진 실현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삼위일체적 계시의 핵심을 하나님 자신의 자존성(An-Sich-Sein, F79 즉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이해를 그리스도론적으로 역사적인 지평에서 수행하되 이미 그리스도 안에 포함된 창조론적 의미를 종말론적으로 새롭게 나타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 인격(존재 방식)에 대한 개념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존재의 동일성을 나타내는 세 분의 신적 주권의 동일한 드러남에 대한 이해만이 아니고 바로 이 신적 주권 아래서 이해되는 세상의 모습에 대한 종말론적 해석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즉 바르트가 화해론에서 밝힌 것처럼 아버지 아들 성령의 각 인격(존재방식) 안에서 이해되는 세상의 존재를80 보다 더 언어적인 현실이해와 연관시켜서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81 이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실체화하는 이해와 함께 역사적 행위를 나타낼 수 있는 계시의 언어적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며82 일상적 언어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언어적 지평에서의 하나님에 대한 말의 진리가 발생하는 실질적인 연관성을 밝힐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83 다시 말해서 근원적 생활세계의 지평이 모든 언어적 행위의 출발점이 된다고 할 때, 언어의 심층적인 중심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존재를 성령론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일상적 언어맥락 가운데 하나님을 통한 새로운 자아의 의미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 언어적 동기를 분명히 함으로써 일상적 언어 소통 과정에 모든 이와 최대한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하나님의 행위를 서술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삼위일체의 세 인격(존재방식)은 이 세상에서 그 자신 안에 스스로 관계적 대상성을 이루시면서 한 분 하나님으로서의 세상과 실재적인 관계를 언어적 계시의 사건을 통해서 이루어나가시는 분이라는 것을 밝혀야 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세 인격(존재방식)으로서 알려진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동일성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만 하나님은 창조와 화해 그리고 구원의 역사를 통해서 세상과 맺으시는 관계성 가운데 세상에서 자신의 본래적 대상성을 밝히시며 실존하시는 자신의 고유한 행위의 주체임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1 Henry P. Van Dusen: The Trinity In Experience and Theology, in: Theology Today. Vol. 15, No. 3, Oct. 1958, p. 377-378. 그리고 구약과 신약에 알려진 삼위일체에 대한 증거로서 H. Bavinck: The Doctrine of God, W. Hendriksen , Grand Rapids 1977, pp. 255-274. 참조.

2 E. J. Fortman: The Triune God. A Historical Study of the Doctrine of the Trinity, Grand Rapids 1972, pp. 37-52, 101-123.

3 참고 F. Pieper: Christian Dogmatics 1, Saint Louis 1950, pp. 398-405. 특히 p. 403.

4 O. Weber: Grundlagen der Dogmatik 1, Neukirchen-Vluyn 6 Aufl. 1983., p. 408.

5 니케아 종교회의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는 Theologische Realenzyklop

6 O. Weber; Grundlagen der Dogmatik 1., pp. 444-455.

7 Theologische Realenzyklop

8 F. Clourth: Handbuch der Dogmengeschichte Bd. II. Trinit

9 P. Althaus: Die Christliche Wahrheit, G

10 Augustine: Civitas Dei XI 9, 10.

11 Augustine: De Trinitate. V. 5, 6. 김종흡 역, 서울 1994. (pp. 173-174).

12 Augustine: De Trinitate. V 9. (p. 180).

13 Augusitne: De Trinitate. VII 6, 11. (pp. 224-227). 어거스틴은 본질로부터 인격이 알려진다고 할지라도 동일한 본질의 세 인격이라는 표현이 자칫 일반적인 세상의 범주적인 차원에서 서로 다른 두 가지 범주를 나타내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14 Augusitne: De Trinitate. V. 11, 12 (pp. 182-183). 비교: 어거스틴이 삼위일체론 후 반부에 시도하는 여러 가지 심리적인 차원의 유비는 한 인격 안에 이루어지고 있는 사태라는 점에서 이해가 되어야 한다. 즉 어거스틴은 전혀 다른 삼위일체론을 만들고자 한 것이 아니다. 즉 그는 한 분 하나님이 세 인격으로 계시다는 것을 한 사람의 인격 가운데 이루어지는 심리적 사태를 통해서 유비적으로 설명하고자 시도한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15 Augusitne: De Trinitate. V. 11, 12 (pp. 182-183, 특히p. 183). 비록 어거스틴이 성령이 이해됨에 있어서 아버지와 아들의 존재를 동시적으로 전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이 아버지와 맺는 관계를 근원적 관계(principaliter)로서(De Trinitate XV. 17, 29 p.440) 표현하고 있다.

16 Y. M. Congar: I Believe in the Holy Spirit, Vol. III, David Smith , New York 1983, p.86.

17 Boetius: Contra Eutychen et Nestorium, 5. in; Anicius Manlius Severinus Boethius; PL 64.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제 일차적인 실체는 개별적인 존재자로서의 의미가 있었으며 이러한 방식에 따라서 보에티우스는 삼위의 세 인격의 실체성을 강조하게 된 것이다.

18 W. Pannenberg: Grundfragen Systematischer Theologie, Bd. 2, G

19 H. U. v. Balthasar: Einleitung p. 21, in: Richard von Sankt-Victor. Dreieinigkeit, J. Ribaillier De Trinitate의 독일어 역 (F. Courth: Handbuch der Dogmengeschichte II, 1b. (이하 HBD) p. 63. 각주 15에서 재인용 그리고 p. 64.).

20 R. von st. Viktor: De Trinitate III. 2. (F. Courth, HBD. 1 b. p. 66. 각주 49에서 재인용)

21 De Trinitate, IV 23. (F. Courth, HBD. 1 b. p. 67).

22 De Trinitate, IV 22. (ibid). 인격은 신적 본성에서 직접적으로 기인하는 실존이다.

 

23 De Trinitate, V. 8 (ibid).

 

24Thomas v. Aquinas: Summa Theologiae I. q. 27 a. 1-5. 인격은 내재적 삼위일체의 내적 삶의 과정의 "드러남"에서 다루어진다. (F. Courth, HBD. I b. p. 106 각주 48 재인용).

25 Garrigou-Lagrange: The Trinity and God the Creator, www. ewtn. com/ library / Theology htm, P. 2/ 136. 이러한 경향은 그가 철학적 형이상학적 질문과 계시적 인식 사이를 연관시킴으로써 드러나는 종합적 체계에 분명하여 진다. 이에 대하여 L. Scheffczyk: Lehramtliche Formulierungen und Dogmengeschichtliche der Trinit

26 Thomas v. Aquinas, Summa Theologiae I q. 28. a. 2. 그리고 Garrigou-Lagrange, pp. 96/136 - 114/136.

27 Summa Theologae I q. 32 a. 1 ad 3.

28 이러한 입장들은 루터의 Schmalkaldische Artikeln(1537)에 나타나며 삼위의 세 인격이신 하나님은 한 분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유일하신 분이라는 것과 또한 아버지와 아들 성령의 세 인격의 분명한 구분을 말하고 있다(특히 1-3). 하나님의 삼위의 인격성에 대한 고백은 1543년의 Von den letzten Worten Davids1531년의 삼위일체주일의 설교 내용에 보여 진다.

29 루터는 어거스틴의 입장(De Trinitate I 4, 7)을 따라서 삼위일체의 구원의 역사를 "Opera trinitatis ad exta sunt indiviisa"로 파악한다. 이에 대하여 Von den letzten Worten Davids, (WA 54, 23) F. Courth; Handbuch der Dogmengeschichte II, 1c. p. 16. 각주 40에서 재인용.

30 루터는 삼위일체의 인격 개념을 "관계들 가운데 있는 인격존재"(Personsein in relatione)로서 파악하였다. 이에 대하여 WA 37, 41 참조. P. Althaus: The Theology of Martin Luther, R. C. Schultz , Philadelphia 1966, p. 200. 각주. 13.

31 J.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I. 13, 7. W. L. Jenkins , Philadelphia 1960, p. 129.

32 J.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I. 13, 3-6, 19. pp. 123-128. 특히 p. 123, 128, 143..

33 J.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I. 13, 16-20, pp. 140-145, 특히 p. 140, 142,

34 K. Barth: Die Kirchliche Dogmatik, I/ 1, Z

35 KD I/1, pp. 324, 328-351.

36 KD I/1, p. 320. 삼위일체론은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선험적인 이론이 아니다. 삼위일체론은 엄격하게 말해서 인간과 전적으로 다른 하나님의 자기 계시 사건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추구하는 신학적 이론이다. 그리하여 이 삼위일체론적 해석을 통해서 강조되어야 할 점은 하나님의 참된 역사적 주체성으로서 하나님이 역사 가운데 이루시는 자신의 동일성에 대한 질문인 것이다. 그리하여 삼위일체론이 궁극적으로 나타내어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가운데 알려진 하나님의 참다운 모습인 것이다. 이에 대하여 K. Barth: KD IV, I/1, □ 58항 요약참조.

37 KD. I/1, p. 312, 그리고 315. "Offenbarung bedeutet in der Bibel nicht ein Minus, nicht ein Anderes gegen

38 KD I/1, p. 320. 계시는 인격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다(Dei loquentis persona).

39 KD I/1, □ 8. 3 Das Vestigium trinitatis 참조, pp. 352-367. 특히 p. 363-364.

40 KD I/1, p. 332.

41 KD I/1, p. 334. 바르트는 계시로부터 알려진 하나님의 구분된 모습들을 실체라는 말 대신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설명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통해서 하나님의 모든 행위와 역사적 형태 가운데 드러나는 모든 간격을 극복하며 하나님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논한다. (pp. 334-337).

42 KD I/1, p. 338.

43 KD I/1, p. 339-341.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성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의하여 인간이 파악할 수 없는 부활의 새로움으로서만 비로소 파악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들의 계시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계시의 사건으로서 알려지는 것이다.

44 KD I/1, p. 342.

4544) KD I/1, p. 344.

4645) KD I/1, p. 351.

4746) KD I/1, p. 375.

4847) KD I/1, p. 378.

4948) KD I/1, pp. 377-378. 자아의식의 개념이 인격 개념에 속한 뒤로부터는 삼위의 세 인격을 논하는 것은 언제나 삼신론적 위험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런 위험으로부터 스스로 지켜가기 위해서 삼위일체론의 지속적인 발전과정은 양태론적 입장을 더욱 선호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세 인격의 통일을 이루는 숨겨진 하나의 또 다른 신성을 세 인격과 분리시켜서 이해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인격개념이 오히려 삼위일체론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 바르트의 지론인 것이다. 그리고 이와 반대하여 근대의 인격개념의 재인용에 대한 것으로는 W. Kasper: Der Gott Jesu Christi, Mainz 1982, pp. 351ff. 그리고 W. Pannenberg: Grundfragen Systematischer Theologie, Bd. 2, pp. 88ff.

5049) KD I/1, p. 379.

5150) KD I/1, pp. 380-381. 여기서 바르트는 토마스가 인격을 이해할 때 존립적인 것(subsistere) 혹 불가공약적 성격(incommunicabilitas)으로 본 것과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 조항 1에서 삼위일체의 인격을 (quod) proprie subsistit로 규정한 것과 그리고 칼빈이 Instit. 113, 6에서 인격을 "중재될 수 없는 고 유성을 통해 구분되며(... proprietate incommunicabili distinguitur) 하나님의 본질 가운데 고유적으로 존립하는 것"이라고 규정한 것을 강조하면서 자립한다는 동사(subsistere)가 고유성에 의하여 묘사되는 것을 볼 때 존재방식이라는 동사가 더욱 더 인격을 규정짓고자 하는 핵심적 사태를 분명히 나타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52 J. Calvin: Institutes, I, 13, 9, p. 143. "세 인격 각자 안에 하나님의 전체적인 본성이 이해되며 이러한 성격이 각 인격에게 그의 고유성으로 속한다."

53 KD. I/1, p. 381.

54 KD I/1, p. 381.

55 E. J

56 Chr. Frey: Die Theologie Karl Barths, Waltrop 1994, pp. 150-163, 바르트는 하나님 인식의 출발점을 인간의 분석적이거나 종합적인 이성의 능력에서 찾지 않았으며 오히려 하나님 자신이 말씀하시는 사건으로부터 출발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과 연관되어 해석하고자 하였다.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은 하나님에 의하여 인식되어진 것을 통해서 이루어지며 따라서 하나님 인식은 하나님 자신 안에서 근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의 예정은 역사적으로 더욱 구체적으로 선취된 하나님의 사건으로서 이해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구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이중적 예정으로서 밝혀지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계시 가운데 자신을 알리신다는 것이다. 참고 E. J

57 KD II/2, p. 85. "Gott selber nicht anders existiert und darum nicht anders verstanden werden will und darf als eben in dieser konkreten Lebendigkeit, in dieser Bestimmtheit seines Willens, die als solche auch eine Bestimmtheit seines Wesens ist." (강조는 본인).

58 KD I/1, p. 383. "K

59 KD I/1, p. 384.

60 KD I/1, p. 384.

61 KD I/1, p. 401. 삼위일체의 세 존재방식을 각기 정의하는 요약으로서 p. 404, "Er ist als solcher Gott unser Vater, weil er es als der Vater Gottes des Sohnes zuvor in sich selber ist." p. 419. "Es ist als solcher der zu uns gekommene Sohn oder das uns gesagte Wort Gottes, weil er es als der Sohn oder das Wort Gottes des Vaters zuvor in sich selber ist." p. 470. "Er ist als solcher der Heilige Geist, durch dessen Empfang wir Kinder Gottes werden, weil er es als der Geist der Liebe Gottes des Vaters und Gottes des Sohnes zuvor in sich selber ist."

62 KD I/1, p. 386. 이로써 바르트는 형이상학적으로 규정된 실체개념을 극복하기를 원한다.

63 바르트의 입장은 세속화신학의 입장과 같은 연장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르트는 하나님의 존재를 한 번도 세속적인 방식으로 전환시키고자 한 적이 없으며 단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써 철저히 인식하기 위해서 세상에 주어진 거짓된 우상의 신격화를 타파하고자 한 것뿐이다. 이로써 그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서 인간을 인간으로서 올바르게 세우며 양자의 올바른 관계를 신학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이런 바르트의 신학의 기본적인 입장이 신앙의 유비를 중심으로 이해된 것으로서 E. J

64 KD I/1, p. 388.

65 KD I/1, p. 387. 비교 W. Kasper: Der Gott Jesu Christi, p. 326.

66 U. Hedinger: Der Freiheitsbegriff in der Kirchlichen Dogmatik Karl Barths, Stuttgart 1962, pp. 33-37.

67 KD I/1, p. 391. 하나님의 존재와 행위는 이분법적인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현실은 인간의 현실과 분명히 구분되는 것이지만 구체적인 인간의 현실에서 하나님의 존재가 드러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본질을 행위로서의 본질과 그 자체로서의 본질을 나누어 이해할 때도 이것은 단지 하나님의 본질 그 자체가 "자유로운 하나님의 결정" 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p. 395.에서 바르트는 삼위일체 신학의 근본을 이루는 unitas in trinitatetrinitatis in unitate의 실질적인 표현으로서 순환과 점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68 KD I/1, p. 390. 바르트는 circumincessio가 상호침투로서 시간적 표상임을 말하고도 있지만 이것은 단지 시간적 배열을 표현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면서 대신에 circuminsessio - 상호내주의 차원이라는 것도 포함하고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69 KD I/1, pp. 391-392.

70 KD I/1, p. 394. "...es muist Gott in seiner ewigen Wahrheit Einer. (강조는 본인)

71 KD I/1, p. 393.

72 KD I/1, p. 395.

73 C. Gunton: Barth, The Trinity, and Human Freedom, in: Theology Today, Vol. 43, No. 3, October 1986, p. 317. 그는 바르트의 삼위일체론은 어거스틴의 입장과 카파도키아 신학자들의 입장을 종합한 것으로 평가한다.

74 KD IV/1.-3. 참조.

75 비교 U. H. J. K

76 KD I/ 1, p. 392.

77 G. C. Berkouvwer: The Triumph of Grace in the Theology of Karl Barth, H. R. Boer 편역, London 1956. 참조. C. Gunton: Barth, The Trinity, and Human Freedom, p. 320. 재인용.

78 J. Ellul: Apokalypse. Die Offenbarung des Johannes - Enth

79 이와 연관되어 W. Pannenberg는 바르트 신학의 약점이 바로 하나님의 통일성을 세 존재방식의 근거에서 찾고 세 존재방식의 삶의 완성에서 찾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W. Pannenberg: Grundfragen Systematischer Theologie, Bd. 2, pp, 96ff. 그리고 J. Moltmann: Trinit

80 KD. IV/1, pp. 135-140. 아버지의 계시는 아들에게서 밝혀지고 아들은 이 세상의 현실과 반대된 상황에서 계시의 진리를 드러내며 이런 감추어진 계시는 성령 가운데 밝혀진다. 그리하여 계시가 발생한 곳에 세상의 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구원이 밝혀진다.

81 이에 대하여 Chr. Link: Die Welt als Gleichnis, M

82 U. H. J. K

83 비교 I. Dalferth: Gott Philosophisch-theologische Denkversuche, 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