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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회주의와 초월적 영성/심의용.숭실대

  한글 요약

현대 종교계에서는 종교에서 영성으로의 변화를 말하고 있다. 영성은 주로 영성 훈 련의 맥락에서 논의되고 있다. 동양이건 서양이건 영성은 오랫동안 문제되었고 사회 적 개혁이 필요한 시기에 등장하였다. 영성(靈性)이란 말은 마테오 리치가 천주교를 중국에 전파하는 과정에서 번역된 말이다. 선교사들에 의해 조선에도 전래되어 논의 되었다. 무교회주의자들은 조선에 적합한 기독교를 추구하면서 초월적 영성을 강조했 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육체적 물질성과 세속적 역사성을 결여하고 있다. 현대에서 육체적 물질성이나 세속적 역사성과 밀접하게 연결된 영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초월적 영성에서 사회적 영성으로의 전환이다.

주제어: 영성, 무교회주의, 초월성, 육체성, 역사성

 

1. 들어가는 말

현대는 과학의 시대이다. 과학 시대는 인간의 삶을 풍요하게 한 듯 하지만 빈 부격차, 인간성 상실, 욕망의 노예, 물질주의 팽창 등으로 인간의 영혼은 더욱 불안해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종교는 이런 문제에 어떤 해결책도 주지 못하고 있다. 최근 중앙일보에 종교학자 길희성 교수의 대담이 실렸다. 제목은 “제도 종 교의 시대 막을 내렸다. 이제는 종교에서 영성으로”였다.1) 종교계에서는 이런 측면에서 가나안 신자를 주목한다. 가나안은 교회에 안 나 간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이제 세계적으로 ‘교회 밖 신자’(unchurched Christian)나 ‘교회 없는 신앙’(churchless Christianity)이 확산되고 있다. 서양 에서도 ‘소속 없는 신앙’(believing without belonging)이라는 현상이 있다. ‘가 나안’ 즉 교회에 안 나가는 신자의 증가 현상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2) 사람들이 제도화된 교회를 외면하고 코로나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시대에 영성은 새롭게 조망될 수 있다. 사실 현대에서 종교의 핵심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영성이다. 영성은 존재론적 불안을 해소하고 응답하는 것이다. 영성에 대 한 강조는 교회라는 제도를 통한 구원과는 달리 ‘자기 초월의 방식으로 얻게 되 는 삶의 방식’3)을 말한다. 영성은 현대에서 많은 분야에서 주목하고 있다. 종교적 영역뿐만 아니라 사회 복지학, 간호학, 종교학, 교육학 등 휴먼서비스와 관련된 학문분야에서 영성에 대한 연구를 통해 힐링과 치유에 대해 논하고 있다.4) 또한 과학에서도 영성을 논의하고 있다. 특히 심리학 분야에서 영성을 통한 치유의 근거를 논의한다. 하 지만 종교인들과 일반인들이 영성을 세속적 일상과 신체성을 배제하고 매우 고 상하고 형이상학적 개념으로만 이해한다고 비판하고 있다.5) 영성은 역사적으로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단순하 게 정의될 수는 없다. 기독교에서 영성학(spirituality)은 신학의 분야에서 독립 되어 이문화간, 종교간 대화를 촉진시킬 수 있는 현대 학문으로 자리 잡고 있 다.6)

 

     1) 중앙일보, 2020.04.29., <백성호의 현문우답>.

     2) 김현준, 「‘교회 밖’ 신앙모임의 종교적 기능 : 한국 개신교 포스트-복음주의의 탄생과 성격에 관한 시론」, 현상과 인식 가을, 한국인문사회과학회, 2017, 167-170쪽.

     3) 산드라 슈나이더스(Sandra M. Schneiders)에 따르면 영성은 “자기 초월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통합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함으로써 얻게 되는 체험(experience)” 이다. 최승기, 「영성학 방법론 탐구: 산드라 슈나이더스(Sandra M. Schneiders)를 중심으로」, 신학논단 77,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2014, 301쪽.

    4) 정명숙, 「국내 영성연구의 동향」, 한국심리학회지 37(3), 한국심리학회, 2018, 385-387쪽.

    5) 이나미, 「과학의 시대에서 본 영성의 심리학적 의미」, 헬스앤미션Vol5, 한국가톨 릭의료협회, 2006, 35-36쪽. 

   6) 기독교에서 영성학(spirituality)이 영성신학(spiritual theology)과 어떻게 구별되어 신학과 독립된 학문인지에 대해서는 최승기의 앞의 글 297쪽 각주1)을 참조하라.

 

그럴 때 영성은 단지 특정 영역의 종교를 넘어 이해될 수 있는 폭넓은 개념이기도 하다. 산드라 슈나이더스(Sandra M. Schneiders)에 따르면 영성학은 개인의 체험 을 ‘학제간(interdisciplinary) 방식으로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의된다.7) 그럴 때 영성학의 연구 대상이 되는 개인의 체험은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적이 다. 영성은 단지 개인이 육체를 초월한 정신 체험도 아니고 사회와 역사를 초월 한 신비 체험도 아니다. 또한 필립 쉴드릭(Philip Sheldrake)은 영성을 ‘세속적이며 변증법적’이라고 정의한다. ‘세속적’은 교의(dogma)보다는 일상이 중심에 있는 것이고 ‘변증법적’ 은 전통적 영성 이론과 훈련이 현재의 경험과의 관계 안에 놓인다는 뜻이다.8)

 

      7) 최승기, 앞의 글, 2014, 302쪽.

      8) 박정은, 「사회적 영성의 정의와 방법론」, 사회적 영성, 현암사, 서울, 2014, 178쪽.

 

이런 점에서 현대에서 논의되는 영성의 문제는 물질성과 초월성의 문제와 세 속적 일상과 성스러움의 세계 사이의 문제이다. 현대 학문의 경향은 점차로 물 질성과 세속성을 강조한다. 이는 근대 이후 세속과 종교, 물질과 정신이라는 이 원론적 사고를 벗어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이러한 영성의 문제는 단지 서양 근대 이후의 문제는 아니었다. 영성(靈性)이 라는 말은 중세 스콜라적 아니마(anima)를 천주교 선교사가 번역한 말이었다. 때문에 동아시아적 사유와 서양 기독교적 사유가 충돌하는 과정이 담긴 언어였 다. 이 영성에 대한 논의는 조선후기 그리고 식민지 시대에도 동일한 구조로 반 복된다. 식민지 시기 무교회주의자들은 특히 영성을 강조하였다. 본 논문은 현대 신학 혹은 종교학에서 논의되는 영성에 대한 이론적 논의를 참고하여 영성의 중요한 특성인 초월성을 서양과 동양이라는 역사적 맥락 속에 서 논의하고 무교회주의자들이 영성을 강조하게 된 배경과 특성을 살펴볼 것이 다. 그리고 영성의 초월성이 가진 한계를 유영모를 통해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현대 사회에서 사회적 영성에 대한 논의의 지향점을 논의해 보고자 한다.

 

2. 초월적 영성의 역사적 배경

영성은 주로 기독교에서 논의되어왔다. 주로 신비주의 운동과 관련되었지만 교회 부흥과 관련되어 있었다. 영성과 관련된 신비주의 운동은 주로 기독교 부 흥이나 개혁과 관련된다.9) 20세기에 특히 영성이 강조되는 이유는 현대 사회의 여러 문제와 관련된다. 복잡한 현대 조직 사회와 기술사회의 비인간적인 문제, 근대적 이성주의의 문제, 동양의 금욕주의와 신비주의적 종교에 대한 서양인들 의 지속적인 관심 등이다.10) 영성(靈性)에서 한자적 의미의 영(靈)은 무당이 기우제를 드려서 비가 내리 게 하는 것이다. 무당은 신적인 영역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었 다. 그러나 영성이라는 한자는 중국 고전에 나타나지 않는 용어이다. 영성을 뜻 하는 영어 spirituality는 서양 문화에서 기원한다. 영성의 어원적 기원은 구약 성경의 희브리어 루아흐(ruah)에서 기원한다. 이 는 바람을 의미하며 희랍어의 퓨뉴마(pneuma)와도 관련되는 말이다. 영은 바 람과 관련되지만 귀신, 마귀 등을 의미하며 인간도 영적인 존재로 생각했다고 한다.11) 구약의 루아흐와 신약의 퓨뉴마가 spiritualitas라는 라틴어로 번역된 것이다. 어원적으로도 퓨뉴마는 몸을 뜻하는 소마(soma)와 대립되며 정신을 뜻하는 프시케(pysche)와도 구별되는 영혼의 능력과 관련된 특별한 영을 가리킨다. 라 틴어 spiritualitas도 몸의 본성을 뜻하는 carnalitas와 대비되고 물질적 요소인 corporalitas나 materialitas와 대비된다. 또한 시간적인 것을 뜻하는 temporalia 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시간적이며 세속적인 것을 넘어서는 영원하고 초월적인 영역과 관계된다.12)

 

       9) 전성용, 「영성이란 무엇인가 - 성령론적 영성신학 서설」, 신학과 선교 44권, 서 울신학대학교 기독교신학연구소, 2014, 13쪽.

      10) 신경규, 「선교적 관점에서 본 복음적 ‘영성’ 개념의 고찰」, 고신선교, 고신대학교 선교연구소,, 2002, 121-122쪽.        11) 전성용, 앞의 글, 2014, 9-10쪽.

      12) 신승환, 「현대철학에서 영성 이해의 가능성」, 가톨릭철학 25호, 한국가톨릭철학 회, 2015, 99-100쪽. 

 

영성의 특성을 일반적으로 신비주의와 관련하여 육(肉)과 대립되는 이원론적 특성, 도피주의(escapism), 열광주의(enthusiasm)로 규정하여 세속의 죄악시, 금욕주의적 경향, 무아지경의 황홀 체험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러한 영성의 특 성은 역사적으로 주로 기독교적인 차원이나 신비주의적 차원에서 논의되었다. 바울은 영을 부활하신 예수님과 동일시했고 영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영 안에 사는 사람을 의미했다. 이 영적인 사람은 육체의 욕망과 성령이 원하는 것을 구별할 줄 알고 참된 지혜를 깨달아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세속적이며 육체적인 것과는 대비되는 것이다. 물론 현대 영성 연구 경향은 이런 점을 부정하면서 세 속과 육체와의 관련성을 논의하고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영성을 순수한 기독교적인 의미만이 아니라 물질과 반대 되는 개념으로도 사용했다. 때문에 중세 신학은 이런 이원론적 요소를 견지했 다. 이러한 영성은 14-15세기에 교회의 지도력이나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으로 사용되었지만 17세기에는 인간의 내적인 속성이나 영혼의 내적인 상태를 의미 하게 된다. 즉 기독교적 완전을 추구하는 수단과 영혼의 자유를 위한 내적 훈련 과 관련된 것을 의미했다.13) 이러한 변화는 종교개혁과 관련된다. 종교개혁 이후 17세기 계몽주의 영향을 받은 계몽 신학은 합리주의적 태도를 가지고 성경과 교리를 비판적으로 연구했 다.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은 이 계몽 신학의 유산을 이어 받은 것이다. 이에 반 해 비슷한 시기 정통주의를 비판한 경건주의 운동은 신자의 내적 체험과 성령의 주관적 역사를 강조했다. 계몽 신학과 다른 점은 영성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18,19세기에 경건주의 운동의 영향으로 신앙 부흥 운동이 일어났다. 19세기 는 선교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난다. 이런 운동은 계몽 신학이 확산되는 것과는 대조적인 일이다. 계몽주의라는 이성의 시대에 대한 기독교의 대응은 경건주의였 고 경건주의는 영성을 강조하여 부흥운동과 선교를 일으킨다. 이런 서구 사회에 서 일어난 영성 운동은 근대 이성주의에 대한 기독교적 대응에서 나온 흐름이다. 기독교적인 차원에서와는 달리 영성은 서양의 근대 철학이나 현대철학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영성을 논의하는 영역은 종교철학이나 신학이었다. 주로 신비 주의와 관련해서 중요한 개념이었다. 그러나 과학 기술의 발달과 자본주의의 문 제점으로 실존적이면서도 동시에 초월적인 영역에 대한 관심이 증가함에 따라 철학의 영역에서도 새롭게 주목하고 있다.14)

 

     13) 유재경, 「영성의 연구 경향과 전망」, 신학과 실천 제24호, 한국실천신학회, 2010, 186-188쪽.

     14) 신승환, 앞의 글, 2015, 98쪽.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영성은 희브리 문명과 그리스 문명으로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지만 주로 영적인 인식을 추구하는 신비주의인 영지주의(gnosticism) 전통과 관련된다. 이는 빛과 어둠, 선과 악, 영과 육, 세속과 초월이라는 이원적 전통이 강하다. 영성은 단적으로 신과의 인격적 관계 속에서 자기를 초월하는 능력과 관련된다. 이는 신비적인 체험이고 초월적이고 심오한 영역의 직관적 경험이다. 근대 이후에는 영성 개념은 단지 기독교에 국한되지 않았다. 넓은 의미에서 종교적이며 신앙적인 태도와 정신적 특성을 가리킨다. 현대에서는 모든 종교적 문화에서 사용되어 선불교, 유대교, 이슬람의 영성으로 사용될 수 있다. 모든 종 교적 태도 혹은 초월적 영역과 관련되고 보편적이고 영적인 체험을 가리키는 말 로 쓰인다. 이때 중요한 점이 초월성이다.15) 초월성은 라틴어 transcendere로서 ‘범부를 넘어가다’는 의미이다. 종교적으 로는 신의 초월성이다. 종교는 초월적 존재를 전제하고 신앙을 통해 구원, 해탈 등을 추구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초월적 존재는 보편적 가치를 가능하게 한 다. 물론 초월성은 종교 이외에 철학이나 윤리학에서 논의할 수 있다. 초월은 감 각적인 세계를 넘어서거나 현실적 경험을 넘어선 영역이다.16) 일반적으로 초월성은 이원론적 구조로 이해된다. 그러나 구약 성경의 루아흐 (ruah)는 원래 이원론적 의미가 아니었다. 플라톤적 이원론과 신플라톤주의의 신비주의가 특히 이원론적 의미를 심화시켰고 바울은 영과 육을 대립되는 개념 으로 사용하여 ‘영적인 사람’과 ‘육적인 사람을 구별하고 있다.17) 이런 이원론적 구조는 아퀴나스에게 이어진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형상론(質料形相論, hylomorphism)을 바탕으로 영혼론을 구성하고 있다. 그래서 아퀴나스에게 초월은 육체적, 즉 질료적 조건을 초월하는 영혼의 비질료 적 존재의 특성이다. 이러한 초월적 근거가 바로 형상이라는 영혼의 본질에 근 거하고 있다.18)

 

     15) 신승환, 앞의 글, 2015, 103-104쪽.

     16) 김성원, 「보스턴 유교(Boston Confucianism)의 초월성 개념에 관한 연구」, 종교 연구 47, 한국종교학회, 2007, 87쪽.

     17) 신경규, 앞의 글, 2002, 137쪽. 18) 이명곤, 「토미즘의 인간적 행위에서 자기초월의 의미」, 철학연구 105, 대한철학 회, 2008, 5쪽. 무교회주의와 초월적 영성 503 

 

아퀴나스의 영혼은 이원론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주목해야할 것은 영성(靈 性)이라는 말은 천주교가 중국에 전래되는 과정에서 중세의 스콜라적 영혼, 즉 아니마(anima)를 번역할 때 선교사들에 의해 만들어진 말이라는 점이다. 아니 마는 처음에 혼령(魂靈)으로 번역되었다. 아퀴나스의 아니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니마를 기독교적으로 재해석한 것 이다. 아니마는 제일 질료에 형태를 부여하는 실체적 형상이다. 아니마는 육체와 무관한 지성적 원리이다. 그래서 질료로부터 분리되어 영속하기 때문에 초월적이면서 영혼불멸과 관련된다. 이는 중국인들에게 낯선 개념이었다.19) 중국인 에게서 혼백은 기와 분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교사들이 아니마를 번역할 때 기(氣) 개념과 충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의 사고에는 육체와 영혼을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는 없었다. 중국인에 게 영혼은 육체를 초월한 것이 아니다. 영혼은 혼(魂)과 백(魄)의 구분으로부터 나온 용어이다. 중국의 사고에서 혼과 백은 정(精)과 기(氣)라는 음양의 운동이 다. 주희는 이러한 혼과 백을 영(靈)으로 부른다. 백(魄)은 형(形)의 신(神)이고 혼(魂)은 기(氣)의 신(神)이다 혼백 은 신기의 정수이므로 이를 일러 영(靈)이라고 한다.(魄者, 形之神. 魂 者, 氣之神. 魂魄是神氣之精英, 謂之靈.)20) 혼과 백은 육체와 영혼이 이원론으로 구분되는 것과는 달리 혼과 백 모두 기 의 활동이다. 이는 모두 기(氣)에 수렴되어 기의 활동이 된다. 그러므로 혼백과 기는 분리될 수 없다. 혼은 육체라는 기를 초월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중국인 에게 영혼을 설명하는 것이 선교사들에게는 중요한 문제였다.21) 마테오 리치가 선택한 언어가 영혼(靈魂)이었다. 마테오 리치는 영혼과 기 (氣)를 분리하여 이해했다. 즉 기인 오행(五行)을 질료로 한정하여 생명력을 제 거했다. 결국 기는 생명을 상실한 개별적 원소가 된다. 따라서 더 이상 ‘기는 만 물을 살아있게 하는 생명력의 근본이 아니다(氣非生活之本也)’.22)

 

     19) 최정연, 「혼령(魂靈)에서 영체(靈體)로-anima humana의 역어를 둘러싼 조선 지 식계의 반응」, 中國文學 95집, 한국중국어문학회, 2018, 74-75쪽.

     20) 주희, 주자어류(朱子語類) 권7, 161항.

     21) 김선희, 「중세 기독교 세계관의 유교적 변용에 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 위 논문, 2008, 198쪽.

     22) 김선희, 앞의 글, 2008, 174-176쪽. 

 

마테오 리치에게 영혼 즉 아니마는 기(氣) 즉 육체와 분리된 것이고 인간의 본질이다. 이후 아니마는 다양하게 번역된다.

루지에리(Michele Ruggieri)가 1584년 최 초로 혼령(魂靈)으로 번역하고 마테오 리치는 처음에는 신혼(神魂)으로 번역했 다가 1603년 영혼(靈魂)으로 번역하였다. 1615년에 바뇨니(Alfonso Vagnoni) 는 혼령과 영혼을 혼용한다. 1624년에 삼비아시(Francesco Sambiasi)는 아니 마(亞尼瑪)로 음역했다. 이후 선교사들은 아니마가 기와 같은 종류가 아님을 해명하고자 신명의 체 (神明之體), 영명의 체(靈明之體) 등으로 번역했다. 1648년 롱고바르디는 신명 의 체로 번역한다. 신(神)은 육체와 분리되는 것이고 명(明)은 사고와 추론을 하고 체(體)는 스스로 설 수 있는(自立) 실체(substance)를 말한다. 초월적인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용어보다 영성이라는 말이 더 자주 사용되었다. 1646년 알레 니(Julio Aleni)는 영성(靈性)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그가 영성을 택한 이 유는 성리학 전통에서 성(性)에는 혼(魂)으로부터 연상되는 기의 특징이 없었 고 이것이 기에 속하지 않는 보편자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23) 조선조에서도 이러한 대응은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18세기 신후담(愼後 聃)은 영혼을 기의 활동이라고 보고 영혼불멸설을 부정했다. 물론 천주교를 신 앙으로 수용한 유학자들과 논쟁도 이어지면서 영성의 개념이 수용된다. 대표적 으로 정약용은 아니마를 영혼이나 영성으로 수용하지 않고 영명지체(靈明之體) 를 사용한다. 정약용에게서 영명지체는 기와 무관한 비물질적 정신이었다. 영명치제는 육 체에 내재되어 있지만 그것과 섞이지 않는 무형의 존재이며 의지 작용, 추론할 수 있는 작용을 한다. 이런 정약용의 생각은 형기(形氣)와 섞이지 않으면서 정 신 기능을 발휘하고 육체를 주관한다는 점에서 기와 구분된다.24) 동학에서도 영성을 말한다. 동학은 시천주(侍天主)라 하여 몸과 마음을 초월 하는 더 깊은 차원을 말한다. 수운은 ‘내유신령(內有神靈)’이라 했고 손병희는 성령(性靈)이라고 했다.25)

 

    23) 최정연, 앞의 글, 2018, 76-82쪽.

    24) 최정연, 앞의 글, 2018, 85-93쪽.

    25) 김용휘, 「동학·천도교의 ‘모심’의 영성과 사회복지」, 영성과 사회복지 제4권, 영성 과 사회복지학회, 2017, 4쪽. 

 

동학은 먼저 자기 안에 있는 하늘을 발견하여 본연 의 초월적 차원을 회복하고 모든 존재를 하늘처럼 모시고 공경하는 삶을 사는 것을 강조한다. 영혼, 영성, 영명 등은 성리학적인 개념은 아니었다. 이는 아니마가 번역되는 과정에서 나온 말로 성리학적 체계에서 육체와 관련하여 초월적 영역을 강조하 려고 채택된 말들이었다. 그래서 아니마를 번역할 때 기(氣)의 개념과 논쟁을 일으키며 번역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영성이라는 개념은 서양에서는 물질성을 초월하는 영성을 말하지만 동아시아에서는 물질과 육체를 초월하기보다는 기에 내재하는 초월성을 말한다.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본다면 동아시아에서 영성은 기와 관련되기 때문에 물 질적 육체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사회 정치적 의미를 가진다. 영성의 초월성이 신성한 것 혹은 성스러운 영역과 관련된다면 신성한 것과 성스러운 영역은 이 육체에서 발현된 현상이며 사회 정치적 맥락을 지니는 것이다.26) 현대에서 논의되는 영성은 육체를 초월한 외적인 측면보다는 내면적 차원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신비적 영역이 아니라 사회와 역사적 영역의 참여를 강조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영성에 대한 논의가 동아시아의 기론(氣論)과 만날 수 있는 접점이 되는 것이다.27)

 

       26) 심의용, 「아니마(anima)에서 영성(靈性)으로」, 근대 사상의 수용과 변용Ⅱ, 보고 사, 서울, 2021, 119-123쪽.

       27) 심의용, 앞의 글, 139-141쪽.

 

현대에서 내면적 영성이 논의되는 이유는 근대적 이성에 대한 불신으로서의 탈근대와 기존 제도적 종교에 대한 저항으로서 탈종교, 그리고 근대가 만든 절 대적 가치들에 저항하는 포스트 담론들과 관련이 있다. 영성은 바로 이 ‘탈’과 관련된 문제이고 이것은 초월의 의미와 밀접한 연관 관계에 있다. 그러나 현대 철학에서 말하는 초월은 이성적 영역을 넘어선 신비적인 직관이 나 계시를 통한 현실 부정이나 세속으로부터의 탈피와 같은 것은 아니다. 오히 려 현실 부정을 통한 현실에의 참여이며 신비적 황홀경이 아니라 현실 사회에 대한 개인적 체험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이는 보편적 가치를 통해 구체적인 역사 현실을 초월하여 그 역사 현실을 의 심하고 부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개혁의 태도와 관련된다. 보편적 가치가 구체 적 역사를 초월하여 그 역사를 부정하고 새로운 개혁을 열어나가려는 것이다. 그럴 때 영성은 구체적 사회와 역사 그리고 그곳에 참여하는 구체적 인간의 물 질성과 함께 논의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3. 무교회주의와 영성

마테오리치가 동아시아에 아니마를 소개하기 위해 영성이라는 말로 번역한 이래로 영성이라는 개념은 끊임없는 논란거리였다. 서양에서 일어난 19세기 부 흥주의 신학은 조선 땅에도 영향을 끼쳤고 영성은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1884년 선교 이후 한국에 들어온 초기 장로교 선교사들 대부분이 이 부흥운동의 영향을 받은 인물이었다. 그래서 한국 교회가 1904년부터 1907년까지 대부 흥 운동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초기 선교사들의 성령론은 부흥주의 신학 에 속했다.28)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에서도 영성을 강조한다. 이에 대한 평가는 보수진 영과 진보진영에 따라 다르다. 보수진영은 신앙운동의 모범으로 주장하지만 진 보진영은 정교분리(政敎分離) 신앙으로 교회 신앙을 몰역사적인 것으로 만들었 다고 비판한다. 당시 항일 정신과 사회정치적 참여 의식을 약화시켰다는 말이 다. 실제로 평양 대부흥 운동이 몰역사적이고 정치적 의식을 약화시킨 이유는 선교사들이 말한 정교분리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당시 선교사들은 일본에 저항했던 조선인들이 교회에 오자 교회의 정치적 행 위를 금하는 법령을 정해 정교분리적 입장을 표했다. 그리고 이토오 히로부미와 정교분리에 관한 묵계를 맺었다.29) 정교분리적 정책과 관련하여 주목할 부분은 무교회주의자들이다. 무교회주의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기도 하고 부정적이기도 하다. 부정적인 평가는 개인의 신비주의적인 체험을 강조하고 단순한 신앙공동체로서의 섹트적 신앙운동으로 폄하하려는 입장이다. 긍정적 평가는 민족적 사명을 수행할 수 있 는 신앙적 성찰을 제공하고 민족 신앙으로서 영성과 경건을 강조했다는 점이 다.30)

 

      28) 김영재, 「성령론에 대한 역사적 고찰」, 신학정론15, 협동신학대학원대학교, 1997, 98-100쪽.

      29) 최영실,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에 대한 비판적 고찰 – 회개·영성·부흥의 문제를 중심으로」, 신학사상 138집, 한신대학교 신학사상연구소, 2007, 12-19쪽.

      30) 서정민, 「한국 무교회주의 운동사 검토」, 신학사상 146집, 한신대학교 신학사상 연구소, 2009, 214-217쪽. 

 

그러나 이런 평가 이전에 무교회주의가 일어난 역사적 배경에 주목해야 한다. 무교회주의는 민족과 역사에 대한 관심과 이에 부응하지 못하는 교회에 대한 실 망이라는 배경에서 생겨났다. 우찌무라 간조에서부터 김교신의 「성서조선」 운 동까지 제도화된 교회와 국가를 강조하는 제국주의를 비판하면서 영성을 강조 하고 있다. 우찌무라 간조의 불경 사건이 상징하듯이 그의 무교회주의는 종교와 교육과 관련한 이노우에 테츠지로(井上哲次郞)의 교육칙어가 발포되어 시작되었다. 이 는 국가와 신앙의 대립구도를 가지고 국가주의와 비국가주의, 현세주의와 탈현 세주의, 충효주의와 박애주의라는 대립구도를 낳게 된다.31) 이는 국가를 강조하는 제국주의적 정책에 대한 비판이며 종교적 박해에 대한 저항이라는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무교회주의자인 우찌무라 간조는 종교계 의 교파적인 싸움에 실망을 느끼고 기독교 국가인 미국에 대해서도 실망했다. 일본기독교회가 기독교의 제도화에 관심을 가졌다면, 조합교회는 국가주의적이 었고, 무교회주의는 영적이었다.32) 이런 경험이 무교회주의를 주장하게 된 배경이다. 우찌무라 간조는 민족을 초 월한 기독교가 아니라 일본적 기독교를 추구했다. 흔히 두 개의 J(jesus와 japen)를 사랑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찌무라 간조의 무교회주의를 애국주의로 평가하는 것33)은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국가주의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찌무라는 제도화된 교회나 국가적 권력에 저항한 인물이다. 두 개의 J는 기독교의 본질과 서구적 형식을 구별할 때 생기는 충돌이었다. 즉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라는 보편적인 문제와 민족적 정체성이라는 역사적 문제 의 충돌이었다. 즉 그리스도인은 구체적인 역사 현실 안에서 어떻게 민족적 정 체성과 기독교적 보편성을 확립하는가의 문제였다.34) 이것이 우찌무라 간조가 일본혼을 강조한 이유이다. 이러한 특색은 그대로 조선의 무교회주의자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우선 식민지 시기에 조선의 무교회주의와 무정부주의는 모두 1920년대에 출현했는 데 그 사회정치적 맥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선총독부의 총독으로 부임한 사이토 마코토(齊藤實)는 선교사들에게 영적인 사업만 몰두하라고 권고했는 데35) 이는 정치적인 문제에 관여하지 말하는 협박이었다.36)

 

       31) 양현혜, 「일본무교회운동과 그 신학」, 일본사상 21호, 한국일본사상사학회, 2011, 132쪽.

      32) 양현혜, 앞의 글, 2011, 140쪽.

      33) 이현선, 「한국에서 무교회주의 수용연구」, 목원대 신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4-6쪽.

      34) 양현혜, 「김교신과 무교회주의(1)」, 기독교사상 38, 대한기독교서회, 1994, 109 -110쪽.

      35) 구미정, 「아나키즘과 무교회주의의 대화」, 현상과 인식, 한국인문사회과학회, 2016, 54쪽.

      36) 민경배는 3·1운동 이후 선교사들의 고뇌를 독립운동의 정당성은 인정하지만 일본 인들의 눈치를 보면서 정치적인 문제에는 간섭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용 도가 “日人도 洋人도 다 마귀다”라는 말을 인용하고 있다. 민경배, 「이용도의 신비 주의에 대한 형태학론적 연구」, 사학연구 20, 한국사학회, 1968, 261-262쪽. 

 

특히 우찌무라 간조를 흠모했던 김교신은 사해동포의 허상을 깨닫고 조선적 기독교를 추구하게 된다. 김교신의 조선적 기독교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민 족적이고 토착적인 기독교를 강조하는 ‘조선적 기독교’로 규정하는 연구가 있고 기독교의 측면을 더 강조하는 ‘기독교적 조선’로 규정하는 연구가 있지만 중요 한 것은 신앙과 민족, 즉 성서와 조선의 접맥이다.37) 김교신은 기독교의 핵심을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이 체험한 기독교다. 영적 기독교다. 산 기독교다. 즉 그리스도다.38)라고 말하고 있듯이 영적인 측면을 강 조한다. 또한 우찌무라 간조가 일본혼을 강조하듯이 조선심(朝鮮心)을 강조하 고 있다. 김교신은 서양 선교사들로부터의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독립을 강조했지만 특 히 “정신적으로도 조선인 스스로 성서와 접전(接戰)하여 영의 양식(靈糧)을 뽑 아낼 수 있는 자립된 신자가 되기를” 바랐다.39) 그가 말하는 영적인 것과 조선 심은 상통한다. 그래서 서양 선교사들이 말하는 기독교보다는 조선심을 가진 조 선인이 성서를 읽고 성서적 진리를 조선에서 실천하는 일이 중요했다. 결국 교 회의 권력과 권위로부터 벗어난 신앙이었다. 영적인 것과 조선심은 보편적인 측 면과 구체적인 역사가 만나는 지점이다. 무교회주의는 보편과 구체라는 점에서 신앙과 조선이 갈등하면서 전통 사상 을 중시했고, 성(聖)과 속(俗)이라는 점에서 제도적 종교보다는 세속적 실천을 강조했다. 김교신이 조선심을 강조했지만 이는 단지 신비적이고 감정적인 차원 의 영성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기독교가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흐르는 것을 매우 비판적으로 보 았다. 그는 성령운동과 같은 부흥회 유산을 무시하지는 않았지만 그 부작용과 한계를 간파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제는 이러한 기독교적 무당의 무리를 정리하여야 하며, 성신 열병 환자를 퇴치하여야 한다.... 식염주사 같은 부흥회로써 열을 구하지 말고 냉수를 끼쳐서 열을 식히면서 학도적 양심을 배양하며, 학문적 근거 위 에 신앙을 재건할 시대에 처하였다.40)

 

     37) 전인수, 「김교신의 조선산 기독교: 그 의미 구조와 특징」, 한국기독교와 역사, 한 국기독교역사학회, 2010, 164-175쪽.

    38) 이현선, 앞의 글, 2015, 23쪽

    39) 전인수, 앞의 글, 2010, 173쪽.

    40) 김용복, 「김교신의 무교회운동 재고: 그 목표와 한계」, 성경과 신학 제54호,복음주의신학회, 2010, 228쪽 재인용.

 

때문에 김교신의 조선산 기독교는 조선 전통과 관련하여 학문적 근거위에 신 앙을 재건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종교 개혁의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 실 제로 김교신은 유학이 갖고 있는 호학(好學)의 태도, 인의(仁義)를 중시하는 지 사(志士)적 태도를 높이 평가하면서 기독교가 가진 맹목적이고 반지성적인 신 앙을 비판하였다.41) 식민지 조선에서도 이와 같이 영성을 강조하는 무리들이 있었다. 대체로 이를 조선적 기독교 운동이라 칭하는데 그들은 반선교사적 경향을 가지면서 조선 교 회의 자립과 자치를 주장했다. 이용도는 수도적·신비적 영성이 나타나고 김교신 은 유교적 영성과 도교적 영성이 보인다. 최태용의 신비주의적 요소는 ‘영적 기 독교’로 분류되고 ‘영과 진리’의 회복을 강조했던 김인서는 조선신학을 주장했 다.42) 이 조선적 기독교의 특징은 조선어로 표현된 기독교, 조선이라는 전통 문화 환경을 중시, 일상생활에서 경험한 성서적 진리를 조선의 것으로 표현, 성서를 공부하고 강해하는 조선식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다.43) 왜 서양의 근대가 일본을 통해 유입되는 식민지시기에 서양 선교사들에 대한 반감과 교회에 대한 부정 등이 일어나면서 조선심과 영성을 강조하게 된 것일 까. 당시 일본은 서양을 대할 때는 고통 받는 아시아로, 아시아를 대할 때는 서 양 열강의 일원이라는 이중성을 가진 ‘서양화라는 근대 공간’을 생존 전략으로 택했다. 이런 역사적 상황 속에서 식민지 조선은 서양 세계에 의해 식민지화되 어 가면서 동시에 서양의 대리인이었던 일본제국에 저항해야만 했다.44)

 

      41) 연창호, 「김교신의 전통 사상 인식 – 유학 이해를 중심으로」, 동양고전연구 68, 동양고전학회, 2017, 238쪽.

      42) 전인수, 「1920-30년대 조선적 기독교 운동 연구」, 연세대학교 대학원 신학과 박사 학위 논문, 2010, 1-23쪽.

      43) 전인수, 앞의 글, 2010, 175-187쪽.

      44) 이소마에 준이치, “식민지 조선과 종교 개념에 관한 담론 편성”, 종교와 식민지 근 대, 책과함께, 서울, 2013, 215-216쪽. 

 

서양 근대화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이라는 역사적 조건 속에서 초월성 은 보편적 신앙을 통해 역사와 현실을 부정하고 개혁을 이루는 것이다. 서양 선 교사들의 반감과 제도화된 교회에 대한 부정은 식민지적 현실에 대한 부정이다. 초월성은 현실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에서 말하자면 역사 현실을 부정하면서 다시 현실을 개혁하는 태도이다. 여기에 영성은 그 런 보편적 신앙의 핵심이다. 19세기 말에 자강 운동이 개혁파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자강은 경제와 군사력 을 포함하지만 동시에 정신적인 차원은 자강 운동이 핵심이었고 그 후에 이는 계몽운동으로 이어진다. 이들 가운데 기독교인들은 영적인 강화를 주장했던 것 이다. 이는 어쩌면 영적인 투쟁이었다. 이런 영적인 투쟁에서 조선의 땅에서 민 족화 혹은 토착화된 기독교가 조선인의 영(靈)에 더 적합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 문이다.45)

 

    45) 전인수, 앞의 글, 2010, 223쪽.

 

이렇게 조선적 기독교와 초월적 영성을 말한 사람으로 주목할 만한 사람은 유 영모이다. 유영모는 조선어로 표현된 기독교를 추구했고 전통 사상을 중시하면 서 성서적 진리를 조선의 것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는 점과 영성의 초월성이 라는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4. 유영모와 초월적 영성

안타깝게도 김교신은 일찍 죽었기 때문에 전통 사상과 기독교를 접목하는 데 에 어떤 체계적인 완성도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김교신이 존경했던 다 석 유영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영모는 유불도와 기독교를 회통했고 김교신 에게 많은 영향을 준 인물이었다. 김교신이 기독교의 편협함에 빠지지 않았던 이유는 평생 유영모를 스승으로 섬겼기 때문이었다. 김교신은 유영모와의 학문적 교제를 통해 전통사상과 기독 교의 교류가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죽기 전까지 15년 동안 다석과 동양사상을 토론했다. 그는 유영모가 동양 경전을 가지고 펼치는 독창적인 사상에 큰 충격 을 받았다고 수차례 털어놓았다.46) 다석 유영모는 영적인 세계를 말한다. 근래 현대 종교 다원주의 시대에 유영모의 비정통 무교회주의와 종교 다원주의적 입장은 세계 신학계가 놀랄 만큼 이른 시기에 이루어졌다고 평가한다.47)

 

      46) 연창호, 앞의 글, 2017, 257-260쪽.

     47) 정양모, 「다석 유영모 선생의 신앙」, 다석 유영모의 동양사상과 신학, 솔, 파주, 2002, 98쪽. 

 

하지만 종교다원주의자로 평가하는 데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오히려 유영모는 성경과 예수를 중시하면서 기독교를 한국적으로 이해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기독교 토착화라고 규정한다. 즉 ‘토착적 기독교인’이라고 평가한다.48)

여기서 말하는 토착적이란 전통 사상, 즉 유교, 불교, 도교의 사상적 배경 아 래에서 기독교를 이해했다는 것이다. 유영모는 하느님을 아버지, 한아님, 맨첨, 한얼, 얼나, 참나, 빈탕, 허공, 무 (無), 도(道) 등으로 표현한다. 인간은 절대이며 완전인 하느님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없이 계신 하느님’이라고도 하지만 하느님은 인간 안에 있다. “하나님께 가는 길은 자기의 속으로 들어가는 길밖에 없다.”49) 자기 속이란 성(性)을 말한 다. 그것은 ‘바탈’이라고 한다. 인간의 바탈이란 하느님을 인식할 수 있는 인간의 본성인 ‘얼나’이다. 수성(獸 性)으로 인해 이 바탈이 가려있지만 이를 극복할 수양이 필요하다. 유영모가 금 욕주의를 강조하는 이유이다. 이 ‘얼나’를 영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맘 속 깊이 들어가면 하느님을 닮은 영성(靈性)의 얼나가 있다. 이 얼 나를 온전히 드러내는 것을 도교에서는 성성(成性)이라 하고 유교에서 는 양성(養性)이라고 한다. 몸성히(健康) 맘놓이(放心) 바탈이뤄(成性) 이렇게 세 가지를 가지고 줄곧 우(하느님)로 오르고자 한다.50) 성성, 양성, 방심 등 도교적 혹은 유교적 용어가 쓰이고 유영모에게서 도교적 사고는 많이 발견된다. 유영모는 하느님으로 향한 것을 효나 부자유친으로 표현 하기도 한다. 유교적 표현들이지만 실제로 유영모는 유교에 대해 비판적이기도 하다. 부모, 임금, 조상 등을 섬기는 일을 비판하면서 “중국은 가족주의인데 가족주의로 중국이 망했다”51)고 할 정도이다.

유영모는 수양을 말하지만 그것은 유교적이지 않다.

유교에서 수신(修身)은 치인(治人)이라는 사회․정치적 지향과 분리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영모가 이해한 성(性)은 유교적 차원으로서 사회정치적 지향이 아니라, 초월에 대 한 지향이다.52)

 

    48) 오정숙, 다석 유영모의 한국적 기독교, 미스바, 서울, 2005, 10-15쪽 참조.

    49) 유영모, 제소리, 솔, 파주, 2001, 201쪽.

    50) 박영호, 다석 유영모 어록, 두레, 서울, 2002, 100쪽.

    51) 박영호, 앞의 책, 2002, 456쪽.

    52) 심의용, 「초월로의 충동과 씨알에 의한 自治」, 동서철학연구 제37호, 동서철학회,  2005, 155-156쪽.

 

때문에 그가 말하는 하나님과 관련된 표현에 주목해야 한다. 유영모는 없이 계신 하느님을 말하고 그것을 알 수 없다고 한다. 유영모에게 서 자기 속에 있는 성(性)은 유교에서 말하는 도덕적 본성이 아니라 하느님을 향한 초월적 본성이다. 그런 점에서 불교의 공(空)이나 도가의 무(無), 허(虛) 와 관련이 깊다. 실제로 유영모는 절대 세계인 하느님을 무와 허로도 표현했다.

 

더러운 상대세 계를 벗어나 절대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얼나와 참나에 대한 추구이다. 절대세계 가 무(無)와 공(空)이며 이것이 ‘없이 계신 하나님’이며 ‘빈탕한데’(虛空)이다. 유영모는 이 무와 공에 대한 경험을 불경과 노자를 통하여 얻었다고 말하고 있 다.53)

 

이 절대무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속에 처음부터 함께 하고 있었다.

유영모는

 

“불교나 노자는 한마디로 빔(空, 無)이라 하면 됩니다. .... 빔은 절 대자가 아니라 절대자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절대의 아들은 빈탕(虛空)을 바라 야 합니다”54)

 

라고 말한다. 모든 더러움을 깨끗이 씻은 내면의 순수한 곳을 초월해 들어가는 것이 하느님 에게로 가는 길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영모는 도덕경에서 나오는 성인을 ‘씻 어난 이’로 번역한다. 하느님으로 가는 것은 더러운 세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종교나 형이상학은 이 세상을 초월하자는 것입니다. 이 세상만 쳐다 보고 있을 수 없으니 이를 생각으로라도 좀 초월해보자는 것입니다. 우 리의 생명이 피어 한없이 넓어지면 빔(無, 空)에 다다를 것입니다. 빔은 맨 처음으로 생명의 근원이요, 일체의 뿌리입니다.55) 유영모는 엄격한 금욕주의를 실천했다. 식색을 금했고 독신주의를 주장하기 도 한다. 더러움에서 벗어나 깨끗함으로 가는 것이다. 더러움을 없애고 깨끗한 초월의 영역으로 진입하는 것은 한국 초기 기독교의 기본적인 상징에 해당한 다.56)

 

    53) 박영호, 진리의 사람 다석 유영모 하, 두레, 서울, 2001, 97쪽.

   54) 박영호, 앞의 책, 2001, 97쪽.

   55) 박영호, 앞의 책, 2001, 86쪽.

   56) 고미숙,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 민족, 섹슈얼리티, 병리학, 책세상, 파주, 2001. 제3장 참조.

 

유영모도 이런 깨끗함이라는 기독교적 배경의 영향 아래 있었던 것이다. 주목할 것은 순수와 깨끗함을 상징한 무와 허라는 절대성이 어둠과 암흑으로 표현된다는 점이다. 다석(多夕)이라는 아호도 ‘하도 지낸 저녁’으로 어둠을 상 징한다. 유영모는 어둠 속에서 하느님을 찾았다. 하느님은 “광명에서 찾을 수 없 고 흑암(黑暗)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광명은 허영이기 때문에 허영 속에서 하느 님을 찾을 수 없다. 우주의 흑암을 음미하는 가운데에서만 하느님을 찾을 수 있 다.”57) 이 흑암에 주목해야 한다. 유영모는 도덕경을 번역했는데 도덕경에서 어 둠과 관련된 글자는 ‘현’(玄)이다. 도덕경에 나오는 현빈(玄牝), 현람(玄覽), 현덕(玄德) 등 ‘현’이라는 한자는 모두 검다는 말로 번역된다. 예를 들어 현빈은 감 앓, 현람은 감안히 보기에, 현덕은 감 속로 번역된다. 검다는 말을 유영모는 이라는 글자로 쓰고 있다. 이 ‘현’과 관련된 이라는 말이 어둠과 현묘한 어떤 것을 말한다. 또한 ‘신’(神) 또한 을 의미한다. 도덕 경의 ‘곡신불사’(谷神不死)를 유영모는 ‘골은 죽지 않아’라고 번역한다. 현 (玄)과 흑(黑)과 신(神)이 ‘’으로 이해된다.58) 또한 이 ‘’ ‘검’은 우리말에 신령(神靈) 혹은 높은 어른을 부를 때 쓰인다.59) 검다는 뜻인 은 단군신화의 곰(熊), 단군 왕검, 검다 등등의 언어와 연관된 다. 어둠과 신 그리고 신령과 왕은 으로 연결된다. 이것이 하느님으로 초월하 는 영성으로 가는 길이다. 그리고 유영모는 죽음을 말한다. 죽음 또한 흑암 즉 어둠이고 검은 세계이다. 그래서 유영모는 “예수는 죽음을 앞에 놓고 나는 죽음 을 위해서 왔다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죽으러 왔다. 예수는 죽음을 영원한 생명 (얼나)를 깨는 것으로 본 듯하다”60)라고 한다.

 

       57) 오정숙, 앞의 글, 150-152쪽 참조.

      58) 심의용, 앞의 글, 2005, 160-162쪽.

      59) 정호완, 우리말의 상상력, 이회, 서울, 2003, 23-28쪽.

      60) 박영호, 앞의 책, 2002, 151쪽. 

 

유영모가 조선어로 표현하려고 했던 것도 언어적 배타성과 민족적 한계를 초 월하여 더 넓은 보편의 세계 속에서 이해하려고 했던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무, 허, 빈탕한데 등으로 표현되는 표현은 상당히 도교적 정서가 깔려 있다. 이 런 점에서 그가 말하는 영성도 신비주의적 사고와 통한다. 결국 유영모가 말하 는 영성은 세속의 더러움 초월하고자하는 열망이며 절대아의 공간으로 좁은 자 기 세계를 소멸하려는 추구이다. 그것이 유영모에게 깨끗한 종교적 엄숙함이라는 더러운 세속적 현실을 부정 하는 초월적 영성으로 드러났던 것이다. 어둠과 죽음으로 향하는 영성은 당시 현실에 대한 강렬한 부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차별과 타락의 조선에 대한 극복과 일제에 의한 억압의 탈출로서 근대를 초극하려는 노력으로 해석될 수 있 을 것이다. 유영모가 말하는 영원한 생명인 얼나를 깨는 것은 더러운 세상과 육체를 초월 하는 것이다. 이것을 초월적 영성이라 할 수 있지만 아쉽게도 이러한 초월적 영 성은 다시 더러운 세속을 향해 내려오지는 않았고 더러운 육체를 긍정하지도 않 았다. 그런 점에서 유영모의 부정을 통한 초월적 영성은 육체와 현실에 대한 대 긍정으로 전환하지는 못했다. 때문에 유영모에게 사회적 실천과 역사 인식은 결 여되어 있다. 무교회주의자들이 일어난 사회 역사적 배경은 제국주의적 식민 현실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무교회주의는 교회를 반대한다는 반교회주의 개념 이기보다는 교회의 무한 확대 개념이다. 즉 모든 삶 자체를 하나님을 예배하는 교회의 장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이를 ‘생애교회주의’라고 평가하기도 한다.61) 그러나 조선적 기독교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나 무교회주의자들이 말하는 영 성, 특히 유영모가 말하는 영성은 사회 역사적 지향이 결여되어 있다. 영성은 사 회적이다. 이를 초월적 영성과 대비적으로 사회적 영성이라 할 수 있다.

사회적 영성은 공동체로부터 출발하여 공동체로 돌아오는 것이어야 한다.62)

 

     61) 양현혜, 앞의 글, 1994, 121쪽.

     62) 박정은, 「사회적 영성의 정의와 방법론」, 현암사, 서울, 2014, 188쪽.

     63) 신승환, 앞의 글, 2015, 122쪽.

 

유영모는 그가 속한 공동체로부터 출발했지만 개인적인 신비주의로 흘러 세속을 초월하 여 다시 공동체로 돌아오지 못한 것은 아닐까.

 

5. 결론

영성을 규정하는 말은 다양하다. 영성은 성스러움, 신성, 궁극적 존재의 합일 을 의미하여 신비주의적 차원에서 유래하지만 현대에서는 더 확장된 지평에서 영성은 다양하게 논의되고 있다. 현대에서 영성의 중요한 요소는 초월성이 다.63) 초월성은 세속과 역사를 초월하는 어떤 절대적이거나 신비적인 지평은 아니 다. 오히려 성스러움이 발현되는 장소는 육체이고 세속적인 일상이고 역사적 과정이라는 인간의 지평이다. 육체와 역사 속에 내재한 초월성이다. 성과 속, 빛과 어둠, 선과 악이라는 이원적 전통 속에서 다루어지는 영성은 지나치게 개인의 주관적 신비를 강조하거나 육체와 분리되어 금욕주의적이며 사회적 실천과 역 사적 지향이 결여되었다. 이렇게 신비적 영역으로 ‘영화(靈化)’되고 개인적 차원으로 ‘사사화(私事化)’ 된 경향에 대한 반발로 20세기 이후에는 성령의 ‘공공성’, ‘사회성’, ‘물질성’을 강조하는 움직임이 등장했다.64) 예를 들어 성·인종·계급 차별, 자연 착취와 같 은 사회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지구의 생명을 해방시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영성을 논의하거나 영성의 물질성, 즉 육체와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현대 과학과의 대화에서 실마리를 찾기도 한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동양과 서양의 비교학적 연구이다.65) 특히 진보적인 기독교 학자들 즉 생태신학자들이 이런 연구를 하고 있다. 이들은 의인화된 인격 적 존재로서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내재화된 영을 말한다. 생명 중심주의 적 관점에서 영은 만물의 상호의존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생명을 갖게 된다. 이들은 주로 동아시아의 기(氣)론적 사유에 주목한다. 유교적 자연관과 생태 학적 신학 즉 유교와 기독교간의 만남의 새 지평으로서 기(氣)와 영(靈), 두 개 념이 해석학적 근본원리로 부상함이 지당하다. 또한 이러한 기(氣)를 토대로 한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은 하나님 영 즉 성령을 근간으로 하는 탈형이상학적 신 학, 생태학적 성령론과 더불어 공시적인 논의를 가능케 한다.66)

 

     64) 백소영, 「몰트만과 최한기 ‘사이’에서 기독교 ‘성령론’ 다시 읽기 - 성령의 물질성, 총체성, 공공성에 관하여」,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2집, 한국조직신학회, 2012, 77-79쪽.

    65) 백소영, 앞의 글, 2012, 79쪽.

    66) 이정배, 「유교적 자연관과 생태학적 신학」, 신학과 세계 36, 감리교신학대학교, 1998, 239-240쪽. 

 

기의 특성으로서 거론되는 것은 내적 연결성으로서의 연속성, 상호의존성으 로서의 전체성, 무한한 잠재력으로서의 역동성 혹은 창조성이다. 중국의 기론적 사유, 특히 신유학자들의 영성에서는 초월성이 육체적 물질성이나 세속적 역사 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교회에서 벗어난 영성을 말하는 종교와 과학의 시대인 현대에서 기론적 사유 와 관련하여 육체적 물질성이나 세속적 역사성과 밀접하게 연결된 영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영성은 기본적으로 학제적 연구이기 때문에 기론적 사유와 관련하여 이해(understanding)하고 전용(appropriation)할67) 수 있는 좋은 주제 일 것이다.

 

    67) 영성 연구에서 이해와 전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박정은의 앞의 글 186-187쪽 참 조.

 

이러한 연구는 차후의 연구과제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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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Non-church movement and the transcendentality of Spirituality Sim, Eui-Yong(Soongsil Univ.) Modern religious circles refer to a shift from religion to spirituality. Spirituality is mainly discussed in the context of spiritual training. Spirituality, whether Eastern or Western, has long been a problem and emerged at a time when social reform was needed. The word spirituality was translated by Matteo Ricci during the spread of Catholicism to China, and the difference between the two civilizations was revealed in the process. It was also introduced to Joseon by missionaries and discussed. Those who advocated for a Joseon-style Christianity with an interest in ethnicity and history, especially the Non-church movement, emphasized transcendental spirituality while pursuing a Christianity suitable for Joseon. However, they still lack physical materiality and secular historicality. Discussions on spirituality closely linked to physical materiality or secular historicality are needed in modern times.

Keywords : spirituality, non-church movement, transcendentality, materiality, historicality. ▫

 

 2021년 02월 18일 접수   2021년 03월 17일 심사완료    2021년 03월 22일 게재확정

한 국 동 서 철 학 회 동서철학연구제99호, 202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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