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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성>과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 나타난 하이데거의 불안/손윤희.동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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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론

모더니즘 문학에서 나타난 현대인의 불안을 이전의 논문에서는 정치․경제․ 사회 문화적 관점으로 분석하였다면1, 본 연구는 인간의 존재의미를 탐구하는 하이데거의 실존론적 존재론적 관점에서 카프카와 베케트의 작품에서 드러난 현대인 의 불안을 분석하고자 한다.

 

    1 필자는 모더니즘의 예술의 전형인 카프카의 소설<변신(The Metamorphosis)>과   베케트의 극작품<유희의 끝(Endgame)> 의 주인공인 그레고르 잠자(Gregor Samsa)와 클롭(Clov) 및 햄 (Hamm)이 자본주의 상품구조와 이로 인한 권력의 지배와 피지배 관계에서 물화되어 가는 ‘현 대인의 불안’을 분석하였다(손윤희 111)

 

먼저 경제, 사회 문화적 차원의 불안을 티모시 뷰스 (Timothy Bewes)는 사물화에 대한 불안감은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편적인 것 이 되었다고 주장한다(ⅻ). 산업화의 진전과 자본주의 상품구조에서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는 인격적 관계이기보다 상품(혹은 화폐)의 물적 관계로 전락하면서 인 간은 자신의 실존과 의식이 ‘(사)물화’(Reification)되는 불안을 경험한다.

또한, ‘위 험사회’를 초래하는 사회적 요인들 가운데에 부의 불평등한 분배를 주장하는 사회 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불평등한’ 사회의 가치체계는 ‘불안한’ 사회의 가치체계로 대체된다”고 지적한다(97).

 

다시 말해서, 위험사회를 유발하는 사회적 요소들 중에서 부의 불평등한 분배가 존재하며 이것은 불안한 사회로 대체될 수 있다.

이러한 자본주의 물화로 야기된 불안은 결국에 한 개인이 독자적 존재가능에 이르게 하는 실존론적 불안의 연구적 단초가 된다.

먼저, 실존론적 차원의 불안을 쇠렌 오뷔에 키에르케고르(Sören Aabye Kierkegaard)는 <불안의 개념>에서

 

“죄악은 불안의 근본적 상태로부터 생겨나게 된다. 불안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드는 심리적 상태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불안은 단지 특정한 사람이 특정한 시간에 경험하는 기분 혹은 감정이 아니고 인 간조건의 일부인 자유에 대한 근본적 반응이다”고 말한다(Carlisle 97 재인용).

 

불 안이 인간의 일상에서 갖는 긍정성에 대해 키에르케고르는

 

“불안은 가능성의 가능성으로서의 자유의 현실성이다. 이런 연유에서 불안은 동물에게서 발견될 수 없다” 고 말한다(Hong and Hong 139 재인용).

 

다시 말해, 인간만이 정신을 갖고 있기에 불안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이데거의 불안은 키에르케고르의 불안과는 구별된다.

실존의 근본 존재론2을 주창한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존재와 시간(Being and Time) 3에서 키에르케고르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다는 것을 밝히며

 

“불안(Angst, Anxiety)은 처해있음(Befindlichkeit, State of mind) 4으로서 세 계-내-존재의 한 근본양식이다”고 말한다(BT 233).

 

    2 근본 존재론(fundamental ontology)은 인간과 존재의 근원적 관련성을 탐색한다. 인간이 어 떻게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으며 인간에 대한 존재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하이데거의 근본 존재론이다. 이 근본 존재론은 현존재의 실존론적 분석론(existential analytic of Dasein)에서 찾아야한다(Being and Time 34). 실존론적 분석은 현존재를 그 실존범주 (existentialia)에 입각해서 분석하고 있다. 실존범주는 현존재의 존재성격이다(70).

    3 Martin Heidegger, Being and Time을 앞으로 본문 안에서 BT로 표기한다.

    4 우리가 존재론적으로 “처해 있음”이라는 용어로 가리키는 것은 존재적으로 가장 친숙하고 일상적인 것, 즉 우리의 기분이다(BT 172). 

 

즉, ‘불안’은 자기 자신의 존재 를 문제 삼는 인간의 실존론적 본질을 가장 분명히 드러내는 일종의 기분이다.

이 불안은 일상의 안락함과 편안함에 몰두한 현존재에게 엄습하여 자기의 존재양식인 본래성과 비본래성5을 선택하게 한다.

 

    5 비본래성은 현존재가 본래적 자기를 회복하여 기획투사하지 않고 세계의 해석, 즉 나에 대한 타자들의 해석에 자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즉, 타자들과 같은 존재양식을 취하는 것이 비본래성 이다. 반면, 본래성은 이러한 비본래성을 거부하고 본래적 자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현존재는 불안 속에서 비본래적 자기를 상 실하고 자신의 존재를 반성하며 단독적으로 자기의 실존을 결정한다. 여기서 불안 을 키에르케고르는 기독교의 죄와 구원의 관점에서만 해석한다면, 하이데거는 현 존재[인간]의 존재 물음과 관련하여 불안의 현상을 분석한다. 이처럼, 하이데거는 현존재와 세계의 공속관계 속에서 유발하는 인간의 실존론적 불안을 주목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카프카의 <성 (The Castle)>과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주인공인 K와 블라디미르(Vladimir) 및 에스트라공(Estragon)이 불확실한 실존에서 자신들을 구원해 줄 존재와의 만남이 계속 좌절되면서 일순간에 그 존재에게 도달 할 수 없다는 불안을 느끼고 자기 자신의 존재를 문제 삼고 자기의 존재양식을 선 택한다는 점에서 하이데거의 실존론적 불안과 일치한다.

먼저, 카프카의 <성> 에서 마을의 측량사로 초빙된 K는 성의 일원으로서 정착할 목적으로 성의 관리인 클람 을 만나기 위해서 성으로 향하지만 그와의 만남이 계속 좌절된다. K는 클람의 정 부인 프리다(Frieda)와 그의 조수들과의 유희적 놀이를 하던 중에 일순간에 클람을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에 사로잡힌다. 클람과의 만남이 좌절되면서 K는 불안 을 느끼고 그와의 만남이 무한히 유예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함에도 불구하고 그 와의 만남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마을에 머무르는 것을 선택한다. 루카치는 “카프카의 ‘불안’은 모더니즘의 가장 뛰어난 경험이다”(Lukács, “The Ideology” 36)고 말한다. 이에 김용익은 “그[카프카]의 실제의 삶과 문학에 커다란 의미를 부 여한 불안의식은 그의 작품을 해독하고 체험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핵심적 요체” 라고 지적한다(92). 브렌단 모런(Brendan Moran)에 따르면,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카프카 읽기는 키에르케고르와 하이데거의 불안과 구분되고, “벤야민 이 말한 불안은 감각-경험, 구체적인 것, 사회성과 관련된다”(“Anxiety and Attention” 202).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프카의 불안은 키에르케고르와 하이데거의 종교적-존재론적 관점에서 “무와 관련된 불안”으로 분석된다(202).

이와 같이 카프 카의 작품에 내재한 불안은 불확실한 실존에 처한 현대인의 시대적 상황을 대변6 하며, 나아가 하이데거의 실존론적 불안과도 연결된다.

 

     6.<성>의 K는 아무리 기다려도 자기가 원하는 성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성의 진입의 기다림은 그 자체가 내재적인 의미에서 볼 때 불확실성과 불안 그리고 공허함을 속성으 로 하는 현대인의 시대적 특성을 대변하기도 한다”(안진태 582)

 

마찬가지로,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도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황량한 시골길에서 그들의 헐벗음과 굶주림을 구제해 줄 고도를 계속 기다린다. 고도와의 만남이 계속 좌절되면서 그들은 절망적 실존에서 존재의 고통을 망각하기 위해서 유희적 놀이를 하던 중에 고도를 만날 수 없을 것 이라는 불안감에 잠식된다.

그들은 그와의 만남이 무한히 연기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함에도 불구하고 그 곳을 떠나지 않고 고도에 대한 기다림을 선택한다. 이 작 품은 의미와 목적을 상실한 혼돈의 우주와 직면한 인간 군상을 보여줌에도 불구하 고 고고와 디디가 불안을 통해 자기 자신의 존재를 문제 삼고 자기의 존재양식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모든 행위가 무의미함을 인식하면서도 그들은 불안을 매개로 본래적 자기로서 고도에 대한 기다림을 선택한다. 불안을 알렉 레이드(Alec Reid)는 베케트의 작품들이 “기다림, 무력감, 그리고 인간의 좌절”과 같은 현대인 의 실존적 불안으로 가득 차 있음을 지적한다(30). 루비 콘(Ruby Cohn)은 베케트 의 작품이 우울한 인간조건인 “두려움, 절망, 그리고 죽음”을 주안점으로 두는 실 존주의 철학 작품으로 간주한다(“Philosophical Fragments” 175).

또한, 마틴 에슬 린(Martin Esslin)에 따르면 “유럽의 지식인들은 <고도를 기다리며>를 형이상학적 고뇌, 즉 “존재의 불안”, 시간의 특성, 인간조건의 부조리성에 관한 진술로 여긴다 (“The universal” 172).

랜스 St. 존 버틀러(Lance St. John Butler)는 베케트와 하이데거가 “공통의 존재론”에 의해 연결됨(7)을 주장하고 하이데거의 불안 개념을 베케트의 소설인  <와트>와 <몰로이>에 적용하여 분석한다(45-50).

 그러나 이러한 분석은 피상적이고 희곡 작품들에 나타난 인간의 불안을 분석하고 있 지 않다는 점에서 한계점을 지닌다. 따라서 본 논문은 하이데거의 실존론적-존재론적 관점에서 카프카와 베케트의 작품들에서 나타난 불확실하고 절망적 실존에 처한 인간이 불안을 통해 자기 자신 의 존재를 문제 삼고 자기의 존재양식을 선택한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러 므로 본 연구는 카프카의  <고도를 기다리며>에 적용하여 불안이 어떻게 고고(Gogo)와 디디(Didi) 7로 하여금 그들의 존재의 본래적 가능성으로 이르도록 촉구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7 작품에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성은 나타나지 않고 그들의 이름마저 자주 불리지 않 고 서로를 향해 고고와 디디로 주로 칭한다. 고도의 메시지를 전하러 온 소년은 블라디미르를 알베르트(Albert)로 부르고, 에스트라공이 포조(Pozzo)에게 그 이름을 묻자 아담(Adam)이라고 대답한다. 이는 그들이 인간 이외에 그들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보편적 인간, 즉 하이데거의 현존재와 일치한다.

 

       < II.>

불안은 현존재의 존재의 근원적인 전체성을 분명하게 파악하기 위한 현상적 지반을 제공한다.

이러한 연유로 불안을 논의하기에 앞서 본고는 일생을 인간조건 인 ‘존재(함)’(Sein, Being) 8에 대해 천착한 하이데거의 현존재 분석을 간략하게 되 짚고자 한다.

 

      8 독일어 Sein[영어 Being]은 한글로 번역하면 “존재함이다. 그러나 우리는 Sein을 “존재”라는 낱말로 통용하고 있다. 필자는 Sein의 정확한 번역이 “존재함[임/있음]”이라는 것을 밝혀둔다. 하이데거는 존재함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존재한다’(이다/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라고 물었을 때, 우리는 이미 ‘존재한다’(이다/있다)의 이해 안에 머물러 있다. 존재한다는 것은 존재자를 존재자로서 규정하는 것이며 존재자가 이미 그런 식으로 이해되어 있다는 것이다”(BT 25).

 

 

존재의 의미는 현존재 분석을 통해 구현된다. 현존재는 세계-내-존재 로서 “자기의 존재이해”(BT 32)를 갖고 있으면서 “그때마다 자신의 존재를 문제 삼는다”(42). 여기서, 현존재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의 이해 과정 속에서 자기존 재의 이해를 갖고 있는 ‘인간’을 뜻한다. 현존재의 존재는 그의 실존을 매개로 드 러나는데, “현존재가 세계-내-존재로서 실존하는 존재일 수 있는 것은 세계를 개시 하는 ‘처해있음’(Befindlichkeit)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박인정 36). ‘처해있음’ 이란 현존재가 ‘거기에’[혹은 세계 내]로 ‘던져져 있음’이다(BT 175).

현존재가 부 지불식간에 세계로 내던져져 ‘불안’에 처하게 되면서 자신의 존재를 문제 삼게 된 다. 불안은 현존재에게 근본적으로 세계에 대한 불안이다. 하이데거는 개시성의 하 나로서 처해있음을 말하며 불안과 두려움이 각기 그 처해있음의 양상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불안은 처해있음으로서 공포(혹은 두려움)와 구분된다.

하이데거는 공포(Furcht, fear)를 “공포의 대상이 각기 그때마다 특정한 영역에서 가까이 접 근해오는, [접근해]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유해한 세계 내부적 존재자9”라고 말한다(230).

공포는 구체적이고 특정한 공포의 대상이 존재한다면, 불안은 현존재를 위협할 대상이 규정되어 있지 않다. “이 무규정성은 어떤 세계내부적인 존재자가 위협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현사실적으로 결정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한 도대체 세계내부적인 존재자가 “중요치”10 않다는 것을 말한다”(BT 231).

 

      9 세계 내부적 존재자는 세계에 의해 규정되고 세계를 근거로 해서만 이 존재자를 만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세계 내부적 존재자는 세계 내부에 있는 존재자인 나무, 돌등 현존재적이지 않은 존재자를 말한다.

     10 영어판과 독어판 모두 ‘relevant’로 표기하고 있는데, 의미로는 ‘중요한’(Sein und Zeit 247)으로 해석된다

 

  말하자면, 하이데거의 무(Nichts, nothing)는 단순히 세계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불안 속에서 현존재가 일상의 실존하는 세계 내부적인 존재자가 무의미해지고 그 세계가 드러나는 것이다. 불안은 현존재가 불안해하는 이유인 현존재의 본래적 세계-내-존재-가능으로 되던져준다(BT 232). 불안은 무의미한 놀이들에 빠져있는 현존재에게 엄습하여 자 신의 가장 고유한 세계-내-존재로 단독화하는데, 이 본래적인 세계-내-존재는 이해 하는 세계-내-존재로서 자신의 가장 고유한 가능성을 향하게 한다. 일상의 안락함 에 익숙한 “현존재가 [세계의 편안함에]빠져있을 때, 불안은 ‘세계’에 몰입해 있는 현존재를 되찾아온다”(BT 233).

이 불안은 현존재로 하여금 자기의 존재양식을 선택할 자유를 향해 열려 있음을 보여준다.

하이데거에게 “불안은 현존재의 가장 고유한 잠재성을 향한 그의 존재, 즉 자신을 선택하고 장악하는 자유에 대한 그의 ‘자유로운 존재’를 분명히 드러낸다”(BT 232).

다시 말해서, 현존재는 불안을 통해 자기의 존재양식, 즉 본래적 존재와 비본래적 존재를 스스로 결단해서 선택할 수 있다. 이처럼 불안은 현존재에게 일상의 편안함과 익숙함을 낯설게 만들고 가장 독자적 존재가능에 이르는 존재가 되게 한다

 

           < III>

카프카의 <성>에서 K가 직면한 낯선 세계는 불안과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있다.

시즈모어(Christine W. Sizemore)에 의하면, “카프카 읽기의 문학적 경험은 불 안의 경험이다”(388). K의 불안은 작가 카프카 자신의 생애의 불안이 투영된 산물 이라 볼 수 있다.

함스부르크 왕가가 다스리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왕국 치하의 도시 프라하에서 유대인 태생인 카프카는 독일인과 체코인 양쪽으로부터 배척을 받은 게토 구역에서 자라나면서 어느 곳에서도 소속될 수 없었다.

더욱이, 카프카가 밀레나(Milena Jesenská)에게 보내는 한 편지에서 유년 시절에 그의 “‘겁먹은 듯한 불안과 사자의 눈빛을 담은 진지함’의 원인이 부모의 교육” 탓이었음을 전언 한다(Wagenbach 34).

카프카는 특정한 세계에 소속될 수 없는 이방인으로서 불안과 강압적인 아버지의 교육 방식으로 인해 그의 내면에 내재된 불안이 그의 작품에 투영되었다.

이로 인해, “카프카 문학에서 ‘생의 불안’ 또는 ‘실존적 불안’으로 불리는 지각되지 않는 불안은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는 불안으로 그의 전 작품의 분위기를 지배하며 그의 작품 이해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서명수 43 재인용).

<성>의 변화무쌍한 겨울 날씨와 불확실한 클람의 존재로 인해 K는 자신의 존 재마저 불안정한 상황에 처하면서 불안에 휩싸인다.

마을의 측량기사로 초빙되어 밤늦은 시각에 도착한 K가 마주한 마을의 세계는 사물을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분명하고 어둠에 휩싸여 있다.

칠흑 같은 밤에 마을의 모습을 K는

 

“마을은 눈 속에 깊이 파묻혀 있었다. 성이 있는 언덕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안개와 어두 움에 숨겨져 있었으며 커다란 성이 있음을 보여 주는 아주 희미한 불빛조차도 눈 에 띄지 않았다”고 기술한다(The Castle 3).

 

자욱한 안개와 흩뿌리는 눈과 어둠으 로 인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마을의 모습은 K가 앞으로 마주할 그의 불확실 하고 불안한 상황을 대변한다. 그러나 이 “불안 속에서 현존재는 자신의 가장 고 유한 존재 가능성에 직면하게 되며, 그것을 떠맡도록 처해 있는(geworfen) 존재로서 드러난다.

즉 그의 불안에서는 ‘던져져 있으면서도 기투하는’ 현존재의 전체적인 성격이 개시된다”(박찬국 212 재인용).

불확실한 세계로 내동댕이쳐진 K는 성으로 도달하려고 부단히 애를 쓰지만 꽉 막힌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면서 불안을 경험하고 그로 인해 자기 존재의 본래성에 직면하게 된다.

간밤에 성의 허가증의 소지를 두고 K는 성의 집사의 아들인 슈바르처(Schwarzer)와의 실랑이로 몹시 피곤하였다. 마을 여관에서 하룻밤을 보낸 K는 권 력의 중심기관으로서 ‘성’의 볼품없고 초라한 모습을 “그것[성]은 고대의 성곽이나 보다 최근에 지은 대저택이 아니라 광범위한 대지로, 몇 채의 2층 건물들과 빽빽 하게 들어찬 많은 나지막한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만약 그것이 성이라는 사 실을 몰랐다면 작은 마을로 여겼을지도 모르겠다”(8)라고 기술한다. 권력의 요체인 성에 대한 인상을 K는 시골집으로 이루어진 아주 형편없는 작은 마을로 빗대어 말하며 적잖이 실망한다. 그는 마을의 측량기사로서 자신이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를 알기 위해서 성으로 향하던 중에 때마침 만난 학교의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며 백작에 대해 질문을 하지만 ‘그’를 모른다는 말만을 듣게 된다.

성을 향해

 

“그[ K]는 계속 앞으로 걸어갔지만, 길은 길게 뻗어 있었다. 이 도로, 즉 마을의 큰길은 성이 있는 언덕으로 나 있지 않았다. 성이 있는 언덕을 향해가는 듯하다가, 마치 일부러 그런 듯 구부러져 버렸다. 성에서 멀어지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더 가 까워지는 것도 아니었다”(11).

 

성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으로 K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성을 향해 계속 전진하지만 도무지 성에 도달할 수 없다. 이에 빅터 브롬버 트(Vicor Brombert)는 “카프카의 세계의 궁극적인 권위는 도달할 수 없음에 있 다”(641)고 말한다.

성에 닿으려고 노력할수록 더 멀어지는 K는 그곳에 도달할 수 없다는 불안감마저 든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깊이 쌓여 있는 눈으로 K는 걸음조차 떼기 힘들고 온몸 에 땀방울이 맺히면서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게 된다.

해가 저물기 전에 도착하 기를 희망했던 성이 벌써 어둠에 잠긴 채 자신과 멀찍이 떨어져 있는 모습에 K는

 

“확실히 한두 시간밖에 걸리지 않은 것 같은데, 그는 생각했다. 아침에 출발했고, 배도 고프지 않았어. 조금 전까지만 해도 대낮처럼 환했는데 지금은 깜깜해졌단 말이야”(16)라고 말한다.

 

K는 성을 향해 걸어가면 갈수록 성과는 멀어진다는 불안 을 감지하고 이를 회피하기보다 직시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하이데거의 “불안은 내던져진 현사실성이라는 자신의 존재가 문제된다는 사실을 피하는 돌아섬이 아니라 오히려 그 앞에 직면하게 한다”(박인정 39).

이 불안은 K로 하여 금 일상의 편안함 속에서 돌아서서 자신의 본래적 존재에 직면하게 한다.

그러나 프리다와의 사랑 놀음과 그의 조수들의 장난에 온통 정신을 빼앗긴 K 는 클람을 만나야 하는 목적성을 잊어버린다. 헤렌호프(Herrenhof) 여관에서 K는 주점 여급인 프리다를 만나고 클람의 정부인 그녀는 여관 주인으로부터 K를 숨겨 주고 “그 둘은 서로 껴안았고, K는 그녀의 자그마한 몸이 불타고 있음을 느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망각한 채 서로에게 꽉 달라붙어 있었기에 K는 정신을 차리려 고 애썼으나 소용없었다”(38). 프리다와의 사랑놀이에 K는 온통 마음을 빼앗긴다. 더욱이, K는 이름만 다를 뿐 쌍둥이처럼 모습과 목소리가 너무 빼닮아 구별하기가 힘든 그의 조수 아르투르(Artur)와 예레미아스(Jeremias)의 장난기 많고 무례한 행 동들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가령, K는 밤중에 무슨 소리에 잠이 깨어 비몽사 몽간에 프리다를 쪽을 더듬다가 그녀 대신 조수 한 명이 자기 옆에 누워 있는 것 을 보고 놀라서 고함을 지르며 반쯤 몸을 일으켜 부지불식간에 자기의 주먹으로 조수를 한 대 갈겨 울리고 만다. 이외에도, 프리다와 K가 식사를 하는 중에도 조 수들은 한시도 가만있지 않고 그를 계속 귀찮게 굴고 무례한 행동들을 서슴지 않 는다. 이처럼 프리다와의 사랑놀이와 조수들의 장난기 많고 무례한 행동들에 K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고 성에 도달하려는 목적도, 클람을 만나려는 목적도 망각한 다. 이에 하이데거는 자기의 존재이해를 상실한 익명의 중성자(불특정한 다수)를 ‘세상 사람들’(Das Man, They)이라고 부른다(BT 164). 이 ‘세상 사람들’은 일상에 몰입하여 현세적인 것들이 주는 즐거움에 젖어 자기존재를 상실하며 살아가는 인 간을 말한다. 이 “‘세상 사람들’은 안정적 자기 확실성, 자명한 ‘편안함’을 현존재 의 평균적인 일상성 안에 가져온다. 반면에 불안은 현존재를 ‘세계’에 빠져있으면 서 몰입해 있음에서 되찾아온다”(BT 233). 프리다와 그의 조수들과의 한바탕 놀이 로 인해 K는 자기존재를 상실한 채 일상세계에 몰입하여 살아간다. 그러나 일순간 ‘성’에 닿을 수 없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히게 되면서 그는 자기의 존재를 각성한다. 또한, 클람의 존재에 대한 불확실성은 K로 하여금 방향 상실의 혼란과 불안 속에 빠져들게 한다. “불확실성의 원리가 적용되는, “모든 것에 걸쳐 있는” 카프카 의 불안은 결국 존재의 문제 부딪히게 된다”(김용익 93). 정체를 파악할 수도 없는 클람의 존재 앞에 K는 불안해하고 혼란스럽다.

추어 브뤼케 여관의 여주인 가르데나(Gardena)는 한때에 클람의 애인이었고 그가 준 기념품인 사진, 숄, 나이트캡을 간직하며 영예로운 일로 생각한다.

클람을 만나 면담하려는 K에게 가르데나는 그를 실제로 보는 일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고

 

“그[클람]는 마을 사람과 이야기하지 않아요. 그가 지금까지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그는 적어도 프리다의 이름을 불렀고, 그녀는 마음대로 그에게 말할 수 있었고, 엿보 는 구멍으로 들여다보는 허가까지 받았어요. 그러나 그는 프리다와도 결코 이야기 해본 적이 없어요”(45)라고 말한다.

 

가르데나의 말대로라면 프리다가 클람의 호의 로 그의 방에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었지만 정작 그가 프리다를 불렀는지는 단언 할 수 없다. 게다가, K는 올가에게서 클람을 만나본 적도 없고 불확실한 그의 모 습에 대한 소문만 무성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혼재된 클람의 다양한 상(像)을 올 가는

 

“그는 마을을 올 때와 떠날 때가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고 해요. 맥주를 마시 기 전과 후가 다르고, 깨어 있을 때와 잠을 잘 때가 다르며, 혼자 있을 때와 대화 를 나눌 때가 다르게 보인다고 해요.[...] 다행히도 옷에 대해서만은 보고가 일 치해요. 그는 언제나 똑같은 옷, 즉 옷자락이 긴 검은 재킷을 입고 다녀요”(159)라 고 말한다.

 

올가의 말대로라면 클람의 옷차림을 제외하고는 그의 존재에 대한 정 확한 정보는 아무것도 없다.

마찬가지로, 바르나바스(Barnabas)도 성의 사무국에 출근하고 있지만 그것이 성의 사무국인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고 클람에게 직접 배치되어 그의 심부름을 지 시받고 있지만 정작,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이런 연유로 바르나바스의 누이인 올 가는 K에게 아침 일찍 그가 성에 간다고 하면 우울한 마음에

 

“정말 헛된 여정, 온 종일 낭비하는 일이고, 헛된 희망이에요. 그게 다 무슨 소용이에요?”(161)라고 말 한다.

 

하지만 아말리아(Amalia)만이 유일하게 성의 관리들의 기만적이고 태만한 일 처리를 비판하고 무능함을 통찰한다. 성의 관리 소르티니(Sortini)의 요구를 거 절한 동생 아말리아11는 “관리들이 하는 말은 신뢰할 게 못돼요.그들은 그러한 경우에 뭔가 솔깃한 말을 하지만, 그것은 별 의미가 없거나 전혀 없기도 해요. 말을 꺼내자마자 벌써 잊힌다고나 할까요. 물론 다음번에도 사람들은 그들의 말에 꼼짝 없이 속아 넘어가요”(181)

 

라고 말하며 관리들의 기만적 속성을 비난한다.

 

     11 아말리아는 소르티니에게 낯 뜨거운 내용의 연서를 받고 그것을 찢어서 심부름꾼의 얼굴에 던져버렸다. 올가의 가족은 권력자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마을의 법을 어긴 죄로 마을 사람들에 게서 배척을 당해 고립되며 낙담한 아버지는 갑자기 늙어 병들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올가 는 성에 대한 정보는 얻고자 헤렌호프에서 일을 도와주며 하인들의 야유와 희롱을 당하는 신세가 된다

 

 아말리아가 관리들(혹은 성)로부터 “빠져있음에서의 돌아섬은 오히려 불안에 근거하고”(BT 230), 이 “불안은 현존재를 개별화시키며 ‘유일한 자기’로 열어 밝힌다”(233).

그녀는 무자비한 권력자로서 성의 관리에게 저항하면서 고립과 불안을 경험하고 관리들의 기만성을 꿰뚫고 있다.

성의 관리들의 권력과 강력한 권위로

 

“마을 사람들은 두려움과 불안으로 관리들을 존경한다.[...][그러나] 그들의 행태는 추문들로 가득하다”(Yari and Afrougheh 64).

 

아말리아와는 달리, 마을 주민들은 성의 관리 들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느껴 그들에게 복종을 선택한다.

더욱이, K는 성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믿었던 바르나바스마저 클람을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에 불안해한다. 클람을 만나기 위해 K는 헤렌호프에서 가서 그의 마을 비서인 모무스(Momus)를 만나려고 한다.

그러나 모무스는 K가 클람과 면담하기 위해 몰래 숨어 있었던 사실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그를 심문 하려고 들자, 그는 이를 거부하며 여관 밖으로 뛰쳐나간다.

추어 브뤼케로 돌아오 는 도중에 K는 바르나바스를 만나 클람의 편지를 전해 받는다. 편지에는 그의 측 량사 일에 대한 성실과 열의를 칭찬하는 내용이었다.

이에 K는 바르나바스에게

 

“그는 잘못 알고 있어. 난 측량사 일은 하지도 않았거니와, 조수들이 얼마나 쓸모 있는지는 자네도 직접 봐서 알 거야. 그리고 내가 하지도 않은 일을 물론 중단할 수 없고, 그를 불쾌하게 하는 것도 말이 안 돼. 내가 어떻게 그의 칭찬을 받을 만 하다는 거야! 난 결코 안심할 수 없어”(107-108)라고 말한다.

이에 바르나바스는

“반드시 그 말을 전해 드릴게요. 지난번에 저에게 한 말도 반드시 전해드릴게 요”(108)

라는 말에서 K는 비로소 그가 자신의 메시지를 성에 전하지 않았다는 것 을 알게 되고 섬뜩함을 느낀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섬뜩함은 불안의 근본적 처해 있음 안에서 자신을 본래적으로 드러낸다, 즉 섬뜩함은 내던져진 현존재의 가장 기본적인 열어 밝혀져 있음으로서 세계-내-존재를 세계의 무(nichts, nothing)앞에서 세운다”(BT 321).

 

바르나바스가 K의 말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그의 말을 외우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화가 치밀어 “그걸로 충분해 난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아”(108)라고 말한다.

클람과의 만남이 무한히 유예될 것 을 K는 인식한다. 바르나바스와의 또 다른 일례에서, K는 클람과의 만남이 불분명하다는 것을 인식함에도 불구하고 그와의 만남을 위해 마을을 떠나기보다 머무름을 선택한다.

예레미아스와 함께 헤렌호프 여관으로 가는 도중에 K는 바르나바스를 만난다.

바르나바스는 K에게 “해 냈어요”12라고 말하고 그는 “무엇을 해냈다는 말이야? 내 부탁을 클람에게 전했어?”(215)라고 되묻는다.

 

    12 바르나바스가 ‘해냈어요’라는 말은 클람의 비서인 에어랑어(Erlanger)가 K에게 헤렌호프로 자신을 만나러 오라고 했다는 것을 전하는 일이었다.

 

“난 최선을 다했지만 그건 불가능 했어요”라는 그의 말에 낙심한 K는 “아무런 성과가 없다면, 아무리 애썼다고 하더 라도 내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 바르나바스”(215)라고 응수한다.

클람의 불분명한 정체와 그와의 만남이 연거푸 좌절되면서 K는 절망적 현실을 자각하고 불안해한 다. 그리하여 그는 절망적인 상황과도 같은 겨울이 하루 빨리 지나가고 생명이 움 트는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이곳의 겨울은 길어요. 정말 길고 단조로운 겨울이에요”(279)라는 하녀인 페피(Pepi)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K의 존재적 고통 이 끝나지 않고 계속될 것을 암시한다.

그가 학교로 돌아가려는 찰나에 마부인 게 어슈테커(Gersẗacker)는 에어랑어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K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 가려고 한다. 마치 칠흑 같은 어둠에 둘러싸인 마을에 첫발을 내딛는 것처럼 K는 웃으며 게어슈테커의 팔에 매달려 어둠(즉, 불확실한 세계) 속으로 발을 내딛는다. “불안으로 인해 현존재는 본래성과 비본래성이라는 자기의 존재양식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존재임을 열어 밝히며 불안은 궁극적으로 현존재로 하여금 그 본래성으 로 돌아가도록 한다”(소광희 133-34). 또 다시 불확실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불안 속에서 K는 그 마을을 떠나기보다 불분명한 클람의 존재와의 만남을 위해 마을에 머무름을 선택한다.

 

            <IV>

베케트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통해 불확실과 절망으로 가득 찬 ‘거기에’로 내던져진 불안한 인간 군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 그루의 앙상한 나무만이 서 있 는 시골길에서 장시간의 굶주림에 노출된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하이데거의] 현존재로서 그들의 헐벗음을 구제해 줄 고도를 기다린다.

하이데거는 인간의 존재조건을

“이 존재자[현존재]가 ‘거기에’로 내던져져 있음”(the thrownness of this entity(Dasein) into its “there”, BT 175)

이라고 말한다.

현존재는 아무런 예고도, 준비도 없이 맨몸뚱이로 절망적인 세계로 내던져져 자신의 존재를 입증해 야 하는 미션이 주어졌다. ‘거기에’로 인간의 존재조건은 연극무대 위의 배우들이 본질적으로 그 현장, 즉 ‘무대 위’에 있어야만 그들의 존재가 입증되는 것과 일치 한다.

제롬 애쉬모어(Jerome Ashmore)에 따르면, “현존재는 세계-내-존재이다.

그러나 현존재는 세계 내에 집이 있지 않다. 현존재는 거기에서 낯선 이방인이고, 무기력하며, 희망이 없다”(78).

작품에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이방인으로서 불확실한 세계로 내동댕이쳐져 그들의 존재를 증명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기력하 며 희망을 찾아볼 수도 없다.

고도가 올 때까지 그들은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지 루한 기다림의 시간을 유희적 놀이들로 채운다.

고도에 관한 일체의 정보도 없이 고고와 디디는 절망적 실존에서 그들을 구원해주리라는 맹목적인 믿음에서 그를 기다리지만 일순간 그가 오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작품의 첫 장면은 고고가 낮은 언덕에 걸터앉아 벗겨지지 않는 구두를 벗으려 고 진땀을 흘리며 “할 일이라곤 없어”(Noting to be done. Waiting for Godot 7) 라고 말하며 잠시 휴식을 취한 후에 다시 낑낑거리며 구두를 벗으려고 발버둥질한다.

휴 케너(Hugh Kenner)에 따르면, “할 일이라곤 없어”라는 말은 그의 무기력감 을 표현한다”(56).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고고와 디디는 권태로운 기다림의 시간을 구두 벗기 놀이를 통해 때우고 있다.

말하자면, 기다림은 그들에게 무위적(無爲 的) 시간이다.

이에 황훈성은 “‘Noting to be done’를 첫째로 ‘되는 일이 없다’로, 둘째로 ‘할 일이 없다’라고 해석한다.

전자의 생산적인 기다림이 그 동안 흐르는 시간을 꽉 채우고 있다면,

후자는 무위적 기다림의 시간은 텅 비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고고와 디디가 벌이는 온갖 재담, 유희도 이 텅 빈 시간을 채우기 위한 비극 적이면서도 어설픈 몸짓이다”(289).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고고와 디디의 노력이 나 의지가 그 기다림을 앞당길 수 없기에 그들의 행위의 노력은 무익할 수밖에 없다.

가령, 포조와 럭키를 만나 한바탕 놀이를 하는 중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 고 누구 하나 오지도 가지도 않는군. 정말 끔찍해”(27)라는 고고의 대사는 텅 빈 시간을 채우기 위한 그들의 어설픈 행동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해준 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고도를 기다리는 무료함이 반 복된 일상에서 의미없는 잡담이나 놀이를 멈출 수 없다.

고도의 기다림이 그들의 존재 이유의 근거가 되기에 결코 포기할 수 없다.

유희적 놀이들(신발 벗기, 모자 돌리기, 말장난, 역할극)은 불확실과 혼돈의 실존에 처한 그들의 존재적 고통을 망각하게 한다.

그러나 고고와 디디는 유희적 놀 이들에 빠져 있다가 일순간에 섬뜩함을 직면하면서 불안해한다.

무의미한 놀이들은 그들이 처한 비극적인 현실을 은폐하는 도구로 작용한다.

하지만 불안은 유희 적 놀이들에 몰입된 고고와 디디에게 그들이 처한 실존과 마주하게 하고 자기의 고유한 존재로 이르도록 촉구한다.

고고와 디디는 지루한 기다림이 지속되면서 럭키가 흘린 모자를 갖고 ‘모자 돌리기’ 놀이를 한 후에도 여전히 고도가 오지 않자, 포조와 럭키를 흉내 내는 역할 놀이로 전환하여 그들의 무료함을 달랜다.

 

블라디미르: 내가 럭키 노릇을 할 테니 넌 포조를 해라. (그는 짐의 무게에 눌려 허 리가 꺾인 럭키를 흉내 낸다. 에스트라공 어이없는 듯이 그를 바라본다) 자, 시작이야! 에스트라공: 날더러 어떡하라는 거야?

블라디미르: 내게 욕지거리를 해봐!

에스트라공: (심사 숙고한 후에.) 나쁜 놈아! 블라디미르: 더 심하게!

에스트라공: 임질! 매독!

VLADIMIR: I’ll do Lucky, you do Pozzo. (He imitates LUCKY sagging under the weight of his baggage. ESTRAGON looks at him with stupefaction.) Go on!

ESTRAGON: What am I to do?

VLADIMIR: Curse me!

ESTRAGON: (After reflection.) Naughty!

VLADIMIR: Stronger! ESTRAGON: Conococcus! Spirochete! (Waiting for Godot 47)

 

역할극은 그들이 처한 고통스러운 현실을 잠시라도 망각하게 하는 일종의 놀이와 도 같다.

고도에 대한 힘겨운 기다림을 그들은 유희적 놀이들을 통해 달래며 고도 가 온다고 호들갑을 떨다가도 아니라는 사실에 금세 태세를 전환하여 “서로 욕하 자”(48)라고 말하며 장난을 친다.

역할극과 마찬가지로 장난도 기다림의 시간을 때 우는데 유용하고 언제 끝날 줄 모르는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을 빠르게 지나가게 한다.

장난은 그들에게 고도에 대한 무료한 기다림의 시간을 버티게 하는 힘이다. 심지어 지루한 기다림을 달래기 위해 그들은 습관처럼 자살을 기도한다.

인간이 처한 존재의 고통을 베케트는 고고의 입을 빌려 “목을 매는 게 어때?”(12)라는 말 로 표현한다.

무한히 지속될 기다림의 실존적 고통을 끝내줄 유일한 해결책은 죽 음임에도 불구하고 그 죽음마저 희화화된다.

앙상한 나무 앞에서 고고와 디디는 장난치듯이 서로에게 먼저 목을 매라고 말하는데, 고고는 자신의 몸무게가 가벼워 서 나뭇가지가 부러지지 않아 죽고 디디는 무거워서 나뭇가지가 부러져 살아남게 되면 그들이 죽을 가능성이 반반이므로 결국에 아무 짓도 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 다고 말하며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 고도를 기다린다(12).

‘목매다는 일’은 그들 에게 지루한 고도의 기다림을 달래며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런 현실을 잠시 망각 하게 하는 유희적 놀이이다.

그러나 유희적 놀이들을 하는 중에 일순간에 고고와 디디는 고도가 오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고도는 그들에게 불확 실한 부조리 세계 속에서 존재의 의미이고 삶의 이유이다.

그러나 2막은 1막과 다름없이 고도에 대한 지루한 기다림의 일상이 반복되면서 고고는 고도의 기다림이 헛되다는 것을 인식하고 불안해한다.

 

에스트라공: 우리가 너무 일찍 온 거야.

블라디미르: 항상 해 질 녘에 왔잖아.

에스트라공: 하지만 밤이 오긴 틀렸어.

블라디미르: 밤은 순식간에 찾아올 거야. 어제처럼 말이야.

에스트라공: 그러고 나면 밤이 되겠지.

블라디미르: 그러면 우리는 그때 갈 수 있을 거야.

에스트라공: 그 담엔 또 날이 밝아오겠지. (사이. 절망에 잠기며.) 어떡하면 좋지? 어떡하지!

ESTRAGON: We came too soon.

VIADIMIR: It’s always at nightfall.

ESTRAGON: But night doesn’t fall.

VIADIMIR: It’s fall all of a sudden, like yesterday.

ESTRAGON: Then it’ll be night.

VIADIMIR: And we can go.

ESTRAGON: Then it’ll be day again. (Pause. Despairing.) What’ll we do, what’ll we do! (45-46)

 

오늘도 어제와 변함없이 그들은 고통스러운 실존 속에서 자신들을 구제해줄 고도 를 손꼽아 기다린다.

그들의 기다림은 이제 습관이 되었고 반복되는 지루한 기다 림의 일상을 끝내 줄 밤이 오길 희망한다.

밤이 지나고 나면 고도를 만날 것이라 는 확신에 찬 디디와는 달리, 고고는 밤이 와도 금세 낮이 되어 이 지루한 기다림 이 끝나지 않을 것을 예상하여 “어떡하면 좋지? 어떡하지!”라고 말한다.

불안은 고고와 디디에게 고도가 오지 않을 수 있다 것을 일깨워주고 그들이 처한 절망적 실 존을 마주하게 한다.

현존재로 하여금 고립된 존재이게 하면서 “불안은 현존재를 개별화시켜서 ‘유일한 자기(solus ipse)’로서 열어 밝힌다”(BT 233).

불안을 맞닥뜨린 현존재는 세계 그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세계로부터의 몰입을 끊고 단독적으로 자기의 실존을 결정한다. 불안을 직면하기 전에 고고와 디디에게 일상의 권태는 존재의 고통이었다.

베케트에게 “삶의 지루함은 존재의 고통으로 대체 된다”(the boredom of living is replaced by the suffering of being. Proust 8).

제임스 카니 (James Carney)도 말하듯이,

“고통과 지루함은 습관의 거대한 차원의 양극단이다” (ⅸ).

존재의 고통을 망각하게 하는 기다림의 “습관은 대단한 마취제”(habit is a  great deadener. Waiting for Godot 58)와 다름없다.

고도에 대한 기다림의 일상은 습관을 의미하고, [습관은] 우리로 하여금 존재의 완전한 실재에 대한 고통스럽지 만 결실 있는 인식에 도달하는 것을 방해한다(Esslin, The Theatre 37).

그리하여 기다림은 그들에게 일상의 습관이 되었고, 습관은 그들에게 자기존재의 고통을 잊 게 한다.

게다가, 절망적 실존에서 고도의 존재는 그들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하지만 그 와의 만남이 불분명하고 그의 존재마저도 불확실하다.

이에 찰스 R. 라이언스 (Charles R. Lyons)은 “고도의 불확실성, 그의 정체성의 모호성, 그리고 그의 도래 에 지연이 이 드라마에서 그의 중요성을 이룬다고 지적한다(49).

기다림의 대상인 고도의 존재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고도와의 약속마저 불분명하여 고고는 “토요일 이라니 어느 토요일 말이야? 오늘이 토요일이던가? 아니면 혹시 일요일일지도 모 르지? 아니면 월요일이거나 금요일일지도 모르고”(11)라고 말한다.

불확실한 기억 으로부터 유발하는 불안을 존 필링(John Pilling)은 “기억상실증은 그들의 불안을 고조시킨다”(Amnesia heightens their anxiety)고 말한다(72).

이전에 고도와의 약속에 대한 기억이 현재와의 연속성이 단절되면서 고고와 디디는 불안에 잠식된다.

고도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내일, 또 모레도, 그 뒤에도 쭉, 그가 올 때까지 기다림을 멈출 수 없다.

그렇다고, 고도는 그들에게 확실히 오겠다고 말한 적도 없 다.

더욱이, 기다림의 대상인 고도의 이름도 정확히 알지 못해서 고고는 “그자 이 름이 고도라고?”, 디디는 “그럴 걸”(14)라고 응수한다.

고도에게 묶여 옴짝달싹하 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들은 기다림의 대상이 고도인지도 불확실하다.

불확실한 고도의 존재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고도의 메시지를 전하러 온 한 소년은 “고도 씨 가 오늘 밤엔 못 오고 내일은 꼭 오겠다고 전하래요”(33)라는 말만을 남기고 떠나 버린다.

마찬가지로 2막도 1막처럼 소년이 다시 등장하여 어김없이 고도는 오늘 밤에 못 오고 내일 온다는 말을 전한다.

이전에 고고와 디디와의 만남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소년으로 인해 그들의 실존이 불확실해진다.

고도의 불확실성은 불안의 대상이 전적으로 무규정적이라는 측면에서 하이데거의 불안과 일치한다.

불안의 대상이 “세계 내에서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 데도 없다”(nothing and nowhere within-the-world, BT 231)는 측면에서 ‘무’(nicht)이다. 즉,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 데도 없다’라는 말은 세계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내부적인 존재자 가 그 자체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BT 231).

그리하여 불안은 인간으로 하여금 세계 내부적 존재자가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않게 하며 인간에게 자기의 존재양식을 선택할 자유가 열려있음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고고와 디디도 현존재로서 무의 상황에 처하게 되면서 자기의 존재양식을 선택할 자유가 주어진다.

가령, 고고는 입버릇처럼 “가자”라고 말을 건네 지만 디디는 그때마다 “갈 순 없어”, “고도를 기다려야지”(10)라고 말하며 꼼짝도 않는다.

하이데거의 무는 그들에게 고도를 기다릴 것인지, 아니면 떠날 것인지에 대한 그들의 선택의 자유를 준다.

라이언스도 말하듯이 “고고와 디디는 그들의 행위를 고도와의 만남의 잠재성에 근거를 두기”(49)에 고도와의 만남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해 기다림을 지속한다.

고도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그들은 세계 내부적 존재자가 아무것도 아닌 것, 즉 ‘무’로 인식한다.

이 무는 그들에게 세계 안의 모든 것들이 의미 없고 고도를 기다릴지 말지에 대한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한다.

이에 버틀러는 “우리가 선택의 자유에 있는 한, 말하자면 우리가 선택하기 전에 진정한 존재가 가장 잘 보장된다.

그래서 부랑자들이 [고도의 도래에 대한] 가능성 을 기다리는 동안에 진정한 그들의 선택은 열려있다”고 말한다(54).

불안 속에서 그들은 세계 내부적 존재자가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하며 진정한 자기의 존재를 선택한다.

그들은 고도의 도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못하며 고도에 대한 기다 림을 선택한다.

마찬가지로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무료한 기다림을 끝내고 싶 어 하는 디디가 “그럼 갈까”, “그래 가자”라고 고고는 대답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60). 불안 속에서 그들은 고도와의 만남이 무한히 유예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존재적 고통도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함에도 불구하고 고도에 대한 기다림을 선택한다.

불안은 그들에게 고도를 기다릴지, 혹은 떠날지를 스스로 자유롭게 결정하게 한다는 측면에서 진정한 자기의 존재에 이도록 촉구한다.

 

V. 결론

게오르그 루카치(György Lukács)는 “현대적 경험인 불안은 ‘내던져짐’ (Geworfenheit)의 부산물이고 해체된 사회의 경험에서 감정적 근원을 가진다”고 말한다(“The Ideology” 39).

모더니즘의 본질적 형식은 바로 불안과 혼돈으로 이 루어져 있다.

이 “불안은 외부 현실의 경험에서 파생되지만, 이런 경험은 본질적으로 주관적이고 현실을 바라보는 (인간의) 특정한 방식에서 초래한다”(Lukács, “Franz Kafka” 73).

모더니즘 문학의 전형인 카프카와 베케트의 작품은 혼돈과 불안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의 시대정신을 담고 있다.

이 불안은 하이데거의 실존론적 불안의 개념과도 일치한다. 불안은 현존재가 가장 고유한 존재가능성에 이르는 존재라는 것, 말하자면 현존재가 자기의 선택과 자유를 향해 열려 있다는 것을 일 깨워 준다.

현존재는 불안을 매개로 자기의 존재양식, 즉 본래적 존재와 비본래적 존재를 선택할 수 있다.

불안은 무의미한 놀이들에 몰두한 현존재에게 단독자로서 본래적 자기로 돌아가도록 한다.

말하자면, 하이데거에게 불안은 세계에 함몰되어 있는 인간을 되찾아오게 한다.

카프카의 <성>과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주인공인 K와 고고 및 디디 가 절망적 현실에서 자신들을 구원해 줄 존재와의 만남이 지속적으로 좌절되면서 갑자기 그 존재에게 도달할 수 없다는 불안을 감지하고 자기 자신의 존재를 문제 삼고 자기의 존재양식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하이데거의 실존론적 불안과 일치한다.

K와 고고 및 디디는 만남의 대상인 클람과 기다림의 대상인 고도와의 조우를 위해 끝없이 노력하지만 그 존재를 만날 수도, 그 존재에게 도달할 수도 없다.

주위 사람들마저 그 존재에 대한 불분명한 정보로 인해 그들은 적잖게 당혹해한다.

클 람과 고도의 불확실성은 불안의 대상이 전적으로 무규정적이라는 관점에서 하이데 거의 불안과도 일치한다.

클람과 고도의 불확실성은 그들로 하여금 세계 내부적 존재자가 아무것도 아닌 것, 즉 ‘무’로 인식하게 한다.

이 무는 그들로 하여금 세계 안의 모든 것, 즉 클람과 고도의 존재 그 자체로서 완전히 중요하지 않은 것으 로 개시되기 때문에 그 세계가 부각된다.

이 무로 인해 K와 고고 및 디디는 세계의 모든 것들이 무의미해지면서 ‘클람’과 ‘고도’를 기다릴지 말지에 대한 자유로운 선택에 기로에 서게 된다.

일상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그들은 주위 사람들과 유희적 놀이들에 마음을 빼앗기다가도 일순간에 만남의 존재이자, 기다림의 존재와의 만남이 연거푸 좌절 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 존재를 만나지 못한다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러나 이 불안은 일상의 편안함 속에 몰입하는 그들에게 가장 독자적 존재가능성에 이르는 존재라는 것, 즉 자기의 존재양식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라는 것 을 일깨워준다.

다시 말해서, 불안은 일상의 친숙한 놀이들에 빠져있는 주인공들에 게 불확실한 존재를 직시하게 하며 그 존재를 기다릴지, 혹은 떠날지를 스스로 자 유롭게 결정하게 한다.

따라서 두 작품은 의미와 목적을 잃어버린 혼돈의 우주와 직면한 인간 군상을 여실히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들이 불안을 매개로 자기 자신의 존재를 문제 삼고 자기의 존재양식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연구적 의의를 지닌다.

 

 주제어: 불안, 프란츠 카프카, 사무엘 베케트, 마틴 하이데거, 실존론적-존재론적 관점

 

Works C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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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BSTRACT:

This paper investigates Heidegger’s concept of anxiety in Being and Time, and re-reads a certain mode of Heideggerian Angst in Franz Kafka’s The Castle and Samuel Beckett’s Waiting for Godot.

In Heidegger’s existential-ontological point of view, through anxiety Dasein [human being] who is in an uncertain existence takes issue with its Being [Sein] and chooses its mode of Being, i.e. inauthenticity or authenticity. This anxiety breaks with the meaningless games of Dasein, and urges Dasein to reach authentic possibilities of its Being. Despite the uncertainty of Klamm’s existence in The Castle, protagonist K visits the castle to see him; Klamm is nowhere to be found, and K is suddenly seized with the anxiety that he won’t be able to meet Klamm while having fun with Frida, Klamm’s mistress, and his two assistants. Applying Heidegger’s concept of anxiety to Kafka’s text, this paper asserts that it is anxiety that causes K to awaken his Being. Likewise, despite the uncertainty of Godot’s existence in Waiting for Godot, Gogo and Didi keep waiting for this absent character; as with Kafka’s text, he too is absent. Gogo and Didi fall into a state of anxiety that they won’t be able to meet Godot while playing meaningless games in order to forget the pain of their Being in trapped with a desperate existential mode. This paper illumines how the anxiety of Gogo and Didi can also be read as Heideggerian, and it is this Angst that causes these characters to reach their own authentic possibility of Being.

 

Key Words: Anxiety, Franz Kafka, Samuel Beckett, Martin Heidegger, Existential-ontological point of view

 

 

 

Received: 2022.05.23. / Reviewed: 2022.06.06. / Accepted: 2022.06.08.

동서비교문학저널제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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