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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 이후 중국 대중미디어의 고구려 서사 방식:TV 역사드라마를 중심으로/이승호.경희대

I. 서론: 역사 서술로서의 TV 드라마

역사 또한 결국 하나의 담론에 지나지 않는다는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 역사 학의 시선과 맞물려 ‘역사 서술’이 역사학자에 의해 근대적 사실주의 문법으로 작 성된 정형화되고 객관적인 문장이라는 일반의 개념은 점차 희석되어가는 반면, 영 상·소설·사진·그림과 같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구현되는 역사 역시 ‘역사 서술’이 라는 시각이 형성되고 있다(하효숙 78-79; 김기봉, 2009 125). 1

 

      1 이러한 인식은 다음과 같은 김기봉의 언급에서 잘 나타난다. “과거를 역사로 구성하는 것이 역사가의 상상력이라면, 역사학과 역사소설의 차이는 역사가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했던 것처럼 그 렇게 크지 않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역사가는 연대기에 내재해 있는 이야기를 ‘발견’하는 데 반해, 소설가는 그 이야기를 연대기 밖에서 ‘발명’한다는 점이다.”(김기봉, 2007 9)     

 

그리고 이러한 시 선의 연장선 위에서 역사 텍스트는 곧 역사가에게 내재되어 있는 정치성(politics) 의 결과물이며, ‘과거에 대한 사실’이기보다는 역사가가 제안하는 ‘과거에 대한 그림’이라는 지적은 의미심장한 면이 있다(하효숙 77).

또 이러한 점에서 어느덧 현 대 역사 서술의 한 축이 되어버린 ‘TV 역사드라마’에 대한 검토 또한 의미를 가 지게 된다.

오늘날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나 TV 드라마는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 에 ‘드라마적 서사구조(dramatic narrative structure)’를 덧입혀 풀어낸 것이기 때문 에 전반적인 극의 연출이 반드시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게 재현될 수는 없으며, 거 기에는 일정 정도 ‘창작’, 즉 ‘드라마적 허구’라는 요소가 개입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역사 드라마’가 반영하는 역사적 사실에 주목하기보다 해당 드라마를 하나 의 ‘창작된 작품’으로서 인정한 위에서 작품 속에 구축된 인물 캐릭터나 내러티브 자체에 접근하고 분석하고자 하는 시도도 가능해진다(김명희 7-8).

그리고 그와 같은 ‘창작’의 과정에서 영화나 드라마의 스토리에는 당연 일정한 역사관과 역사 인식이 투영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나 사 회 구성원의 욕망 혹은 그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이루어지게 된다. 특히 한국 TV 드라마의 경우 영화나 문학작품과는 달리 극이 전개되며 시청자들과 언론의 반응 또는 제작사의 사정에 따라 이야기 과정이 다르 게 펼쳐질 수 있는데(성창규 118), 이러한 사례는 드라마가 사회적 욕망을 충실히 반영할 수 있게 해주는 조건을 마련해주기도 한다. 문제는 그러한 환경 속에서 제작된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 혹은 드라마는 그 것을 시청하는 수용자에게 특정한 ‘역사적 사실’을 그것과 결합한 허구와 함께 너 무나도 쉽게 구성하고 인식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드라마적 허구’는 역사드 라마가 역사와 관련한 전문적 저술서나 교양서적·다큐멘터리 등 다른 어떤 매체보 다도 훨씬 쉽게 일반 대중의 관심과 집중을 불러일으킬 수 있게 해주는 요소이다. 이처럼 역사드라마는 여타 매체보다 역사 서술 및 정보 전달에 있어서 수용자에 대한 현실 구성력이 훨씬 뛰어나기 때문에 간혹 ‘드라마적 허구’와 ‘역사적 사실’ 을 혼동하는 경우가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다.

역사를 소재로 한 TV 드라마나 영 화가 제작될 때마다 ‘역사 왜곡’이라는 딱지가 붙으며 사회적 우려를 불러일으키 는 이유이다

이 글은 2002년 2월에 시작되어 2007년 2월에 종결된 ‘동북공정[東北邊疆歷 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 2 이후 중국의 대중매체, 특히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에 비친 한국의 고대사상(古代史像)을 검토하고자 준비한 것이다.

 

      2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의 정식 명칭은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與 現狀系列硏究工程)”으로서 말 그대로 “중국 동북 변경 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관한 체계적인 연 구 과제”라는 의미이다. 이는 곧 현대 중국의 영토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는 중국(혹은 중화민 족)의 역사라는 중국 정부 입장에 기초하여 오늘날 중국 둥베이 3성 지역(랴오닝성·지린성·헤이 룽장성)에서 전개된 역사를 모두 중국의 역사로 바라보고 체계적으로 연구하고자 하는 정책적 연구 과제였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와 같은 동북공정의 기조 속에서 중국학계는 고대 중국 동 북 지역을 무대로 하여 역사를 전개하였던 부여·고구려·발해의 역사를 자국의 역사 속에 편입시 켜 배타적·독점적 경향의 역사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한국 학계와도 많은 학술적 갈등을 이어오고 있다.

 

다만, 중 국에서 제작된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들의 경우 대부분 한국고대사와 관련한 소재 가 다루어지고 있지 않아 분석의 대상으로 삼기에 타당치 않다. 역사를 소재로 한 극화의 경우 시청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극의 배경이 되는 시대와 다양한 인물에 대한 서사, 사건의 긴 전개 과정 등이 모두 구현되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이와 같은 시대극은 그 특성상 긴 호흡의 영상으로 담아낼 수밖에 없는데, 90분에 서 120분 정도의 짧은 영화 속에서 특정 역사 시대를 구체적으로 구현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역사 영화는 이미 대중에게 잘 알려진 소재 로서 별도의 부수적 설명이나 장치가 필요 없는 스토리가 주로 극화될 수밖에 없다.

역사를 소재로 한 중국 영화에서 <삼국지연의> 나 <수호지> 의 영웅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반대로 중국인의 입장에서 변방 혹은 외국의 역 사라 인식되는 고구려를 비롯한 고대 한국의 역사가 스크린에 모습을 비추기란 쉽 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장편의 시리즈물로 제작될 수 있는 TV 역사드라마의 경 우에는 중국 대중미디어가 그리는 고대 한국의 이미지를 살필 수 있는 사례가 제 법 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중국에서 제작된 TV 역사드라마를 주요 분석 자 료로 삼아 검토할 계획이다. 물론 이조차도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자료가 많 다고는 할 수 없지만, 몇몇 작품들에서는 한국 고대 국가에 대한 중국 사회의 특 수한 시각이 엿보이는 지점들이 보인다.

일단 본 연구에서 채택한 사례는 <설인귀 전기(薛仁贵传奇)>(2007년 방영, 전36부작), <수당영웅(隋唐英雄) - 1부>(2012 년 방영, 전120부작), <무미랑전기(武媚娘传奇)>(2014년 방영, 전82부작) 세 작품이다.

이들 작품은 모두 중국에서 2000년대 이후로 제작된 TV 역사드라마로서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였던 사례임과 동시에 그 안에는 고대 한국, 특히 중국 대중 미디어가 그리는 고구려의 이미지가 부분적으로나마 투영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설인귀전기>, <수당영웅>, <무미랑전기> 세 작품 속에 투영되어있는 고구려와 한국고대사의 이미지를 분석하되, 그것이 2002년에 시작되 어 2007년에 종결된 중국의 동북공정이 만들어낸 고구려상(高句麗像) 혹은 한국 고대사상(韓國古代史像)과 어떤 연관 속에서 구현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2007년 3월 5일에 첫 방영된 <설인귀전기>는 동북공정이 막바지에 달한 시점에 제작된 작품인 반면, <수당영웅>과 <무미랑전기>는 한 차례 동북공정의 회오 리가 휘몰아치면서 한·중 간에 역사 문제가 첨예한 대립을 거친 이후인 2010년대 에 제작된 작품이다.

따라서 양자 간에 나타나는 역사적 관점이나 입장에 차이를 살핌으로써 동북공정이 진행되던 당시와 그것이 종결된 이후 나타나는 중국 사회 의 고구려상과 한국고대사상의 시기적 차이 및 변화 양상도 일부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II. 영상미디어와 역사학의 조우: ‘영상역사학’과 역사 왜곡 논쟁

모두가 알고 있듯이 역사는 영화나 TV 드라마의 단골 소재로서 활용된다.

흔히 ‘사극’으로 일컬어지는 역사를 소재로 한 영상물들에 대해 역사학계에서도 오 랫동안 관심을 보여 왔으며, 그러한 관심은 곧잘 ‘비평’으로 제시되곤 하였다. 그 리고 이러한 가운데 역사학계 일각에서는 영화나 TV 드라마와 같은 영상미디어와 역사의 결합 현상을 진지하게 주목하고 탐구하고자 하는 시도로서 ‘영상역사학 (visual history)’이라는 학문적 개념도 제시된 바 있다. 3

 

     3 김기덕은 영상역사학: 역사학의 확장과 책무 에서 전통적인 역사학이 문자기록에 근거하고 문자로 구현되는 역사물을 주된 연구 및 활용대상으로 했다면, ‘영상역사학(visual history)’은 새롭게 ‘영상기록’과 ‘영상으로 구현되는 역사물’의 분석·연구·창출·활용을 탐구하는 역사학이라고 정의하고 있다(101)

 

 

이를 제창한 김기덕은 ‘영상역사학’에 대한 연구가 곧 역사학 학문분과의 기본적 책무이자 새로운 역사학의 확장을 가능하게 한다고 보고 있다(김기덕 125).

사극을 포함하여 역사를 대상으로 제작된 혹은 역사성이 담긴 영상물에 대한 이와 같은 학문적 접근은 ‘역사 서술로 서의 사극’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데에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으며, 이로써 오늘날의 역사학자들은 또 하나의 숙제를 떠안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최근 들어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나 TV 드라마의 경우 이른바 ‘퓨전’이 유행이다. 그리고 ‘퓨전사극’으로 칭해지는 이러한 작품들의 대척점에는 다시 ‘정 통사극’이 자리하고 있다.

예컨대, 근래 영화 작품에서는 <임금님의 사건수첩> (2016)이 퓨전사극이었다면, 김훈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남한산성>(2017)은 정 통사극이라 할 수 있다.

또 TV 드라마에서 <태왕사신기>(2007)가 퓨전사극 혹은 ‘판타지사극’의 유행을 처음 열었던 상징적인 작품이라면, KBS 드라마 <정도전>(2014)은 퓨전사극의 홍수속에 모처럼 정통사극으로서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다.

이와 같은 ‘퓨전’과 ‘정통’의 구분은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을 작품 안에 얼마만큼 반영하였는가 혹은 충실하였는가에 따라 나뉘어 진다. 물론 이와 같은 분류의 경계 지점 위에 서있는 작품들도 있겠는데, 대표적으로 영화 <광해>(2012) 를 들 수 있겠다.

<광해>는 분명, 역사 기록에는 없는 이야기지만 당대의 시대성 을 비교적 충실히 반영하면서 ‘있음직한 이야기’를 구성해내고 있다. 따라서 비록 그것이 ‘역사적 사실’에 어긋난다 할지라도 어느 정도 ‘역사적 상상력’의 범주 내 에서 인정해 줄 수 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즉 학문으로서 역사를 다루는 역사학자의 입장에서는 사극의 서사 속에 개재 된 ‘역사적 상상력’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러한 상상력이 당시 시대의 분위기와 가치관, 행동양식에 맞아야 그 시대에 대한 역사 서술로서 인정해 줄 수 있다는 다소 경직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학자들의 고지식한 잣대와 시선은 퓨전사극에 대한 역사왜곡 논쟁을 촉발시키기 마련이다. 조금은 고 리타분하다 느껴질 걱정, 즉 ‘사극의 왜곡된 고증이나 상상력은 일반대중에게 잘못된 역사이해와 역사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이다(김기덕 114; 권덕영 142).

물론 이와 같은 역사왜곡 논쟁이 퓨전사극을 향해서만 제기되는 것은 아니다. 나 름 ‘역사적 사실’과 고증에 충실하면서도 그 서사 속에 녹아있는 특정 정서, 예컨 대 ‘대중 일부의 욕망에 충실한 폭력적·배타적 서사’나 ‘특정 이데일로기를 과도하 게 반영하는 굴절된 서사’에 대한 비판은 사극과 관련하여 언제나 제기되어 왔다.

반면 포스트 모더니즘 역사학의 입장에서는 일반 역사학자들의 시선에서 최소 한 지켜져야 할 규칙들이라 여겨졌던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고증의 굴레를 부정 한다.

즉 ‘모든 역사는 있었던 그대로의 과거가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쓰여진 텍스트라는 점에서 연극처럼 연출된 것’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역사를 구성해 왔던 역 사학의 시선에서 지금의 사극을 향해 왜곡의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난센스라는 입 장이다. 나아가 오늘의 역사학은 ‘팩션(faction)’을 허구로서 질타하고 연구대상에 서 제거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자체를 또 다른 차원의 역사적 사실로서 인정하고 그 안에 숨어있는 역사적 맥락을 드러내는 작업을 수행해야 함을 역설한다(김 기봉, 2006 158-59). 날카로운 통찰이다.

하지만 ‘팩션’으로서 사극의 서사 속에 녹아있는 역사적 맥락을 드러내기 위해 서는 결국 다시 역사학의 전통적 시선을 불러와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즉 일반 ‘사실’이 아닌 역사가들에 의해 구성된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을 기준으로 하여 해당 작품이 그러한 제도권의 역사서술과 어떤 점에서 차이를 드러내었는지 분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흔히 우리가 ‘역사 왜곡’이라 비판하는 지점을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어야 일반에 통용되는 ‘역사적 사실’을 비틀어서라도 작품 속에 담고자 했던 서술자(창작자)의 의도와 수용자의 욕망을 관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극을 통해 어떠한 상상력이 동원되든, 결국 그것은 무엇을 말하기 위 하여 상상했는가, 즉 어떤 관점을 드러내기 위하여 그러했는가, 그리고 그것은 이 시대에 어떠한 메시지를 주는가에 대한 검토가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김기덕 118). 아래에서 검토할 중국의 TV 역사드라마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초하여 다루어질 것이다

 

III. 드라마로 옮겨 간 전근대 문학의 서사: <설인귀전기>(2000)

먼저 살펴볼 작품은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설인귀전기>이다.

2007년 3월 5일 부터 중국 국영방송 CCTV를 통해 방영된 <설인귀전기>는 제작자가 ‘한국의 역사 왜곡’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고 스스로 밝힐 정도로 뚜렷한 정치적 의도성을 가진 역사드라마였다.

때문에 드라마 제작에는 당시까지 중국 드라마 중 최고 제작 비인 2천만 위안이 투입되었으며, 바오젠펑[保剑锋]·장톄린[张铁林] 등 중국 현지 최정상급 연예인이 캐스팅되는 등 준비단계에서부터 작심하고 만들어진 드라마라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설인귀전기>는 2007년에 방영된 중국 드라마 중에 최고 시청률인 18%를 기록하였으며, 당시 중국 뉴스 매체들은 해당 드라마의 시청률이 한류 드라마 <대장금>의 시청률을 상회했다고 보도했을 정도로 중국 사회에서 큰 성공과 반향을 일으켰다(이희성 5-27).

우선 드라마 <설인귀전기>의 대략적인 줄거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무예가 출중한 젊은 무인 설인귀는 당의 개국공신 이정에게 사사를 받고 하산하지만, 그가 부재한 중에 돌아간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책임으로 가문에서 쫓겨나게 된다.

이후 장사귀의 온갖 방해 속에서도 우여곡절 끝에 군대에 투신한 설인귀는 천산 전투·봉황성 전투 등 고구려[작중에는 발료국(渤遼國)으로 묘사]와의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다.

이렇게 점차 군인으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설인귀는 위기에 빠진 당태종을 구하고 연개소문[작중에는 철세문(鐵世文)으로 묘사]을 토벌 하여 그 공으로 평료왕에 봉해진다.

이후 설인귀는 잠시 누명을 쓰고 죄인 신세로 전락하기도 하지만 끝내 명예를 회복하고 다시 당의 대원수가 되어 서역의 반란을 평정하러 간다. 이상의 큰 줄거리 속에서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부분은 당과 고구려[작중 의 발료국]의 관계가 극의 전반부와 중반부까지 드라마의 주요 갈등 요소로 부각 되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고구려의 권력자 연개소문[작중의 철세문]이 당태 종과 설인귀의 최대 적수로 묘사되고 있는 점이 주목되는데, 총 32부작의 드라마에서 연개소문이 설인귀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23부까지 드라마 3분의 2에 해당 하는 스토리가 설인귀와 연개소문의 대결 구도로 전개된다.

즉 연개소문이 죽음을 맞는 23부까지의 내용은 당나라의 ‘친밀한 속국’ 고구려에 권력자 연개소문이 등장하면서 보장왕[작중에는 발건왕(渤建王)으로 묘사]을 겁박하고 또 양국 간에 갈 등과 전쟁을 조장하였는데, 이때 당나라의 명장 설인귀가 위기에 빠진 당태종을 구하고 연개소문을 죽임으로써 평화를 가져왔고 또 속국 고구려와의 우애도 다시 회복시킨다는 것이 주요 줄거리로 전개된다. 특히 극중에서 보장왕은 시종일관 당나라에 우호적인 인물이자 당태종 이세민을 추종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반면 연개소문은 그러한 보장왕의 외교적 태도에 불만을 품고 압박을 가하는 인물이자, 고구려와 당나라의 외교 관계를 갈등 국면으로 몰고 가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이처럼 드라마 <설인귀전기>는 설인귀라는 한 인물의 전기적 성격의 역사드라 마라 할 수 있지만 대체적으로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기보다는 그 줄거리에 허구 적 요소가 많이 개입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여기에 중국 역사드라마의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무협 활극의 요소’가 강하게 가미되어 이를 고증에 바탕한 일반적인 역사드라마로 바라보기 어렵게 만드는 면이 있다. 특히 보장왕의 딸 ‘소 양공주’가 설인귀를 사랑했다는 이야기나 전투 중에 고구려 대원수 연개소문이 설 인귀에게 패하여 죽임을 당한다는 설정은 드라마가 전혀 역사적 사실에 입각하지 않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보장왕의 딸로 등장하는 ‘소양공주’는 역사 적으로 실재한 인물이 아니며, 연개소문이 설인귀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는 이야기 도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이처럼 드라마가 왜곡을 넘어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먼 줄거리로 전개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드라마 <설인귀전기>가 중국 원대(元代)에 민간에서 유행하였 던 평화(平話) 설인귀정요사략(薛仁貴征遼事略) 과 명대(明代)에 간행된 설창 사화(說唱詞話) 설인귀과해정요고사(薛仁貴跨海征遼故事) 등에서 주요 모티 프를 추려내고, 여기에 제작자의 상상적 허구를 가미하여 제작하였기 때문이다. 여 기서 잠깐 드라마 내용에 큰 영향을 끼친 설인귀정요사략 과 설인귀과해정요고 사 두 작품의 내용을 비교해 보면 특히 결말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음이 확인 된다. 설인귀정요사략 의 경우 붙잡힌 연개소문이 당태종에게 목숨을 구걸하다가 끌려나가 죽임을 당하는 반면, 설인귀과해정요고사 에서는 설인귀와 연개소문이 쟁투를 벌이는 장면에서 그 결말을 맺지 않은 채 두 장수를 모두 칭송하며 끝이 난다. 즉 적어도 드라마의 결말 부분만큼은 설인귀정요사략 의 내용을 반영한 것 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드라마에서 묘사하고 있는 설인귀와 연개소문의 이미지는 사서에 기록 된 역사적 사실에 바탕하고 있다기보다는 중국의 고전 문학이나 경극에 투영되어 있는 두 인물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고구려와의 전 쟁 중 연개소문에 의해 궁지에 빠진 당태종을 설인귀가 구원하였다는 설정이나 연 개소문이 7개의 비도를 날리는 모습 등은 모두 중국 전근대 문학작품과 경극에 보 이는 설인귀와 연개소문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임에 틀림 없다. 물론 문헌기록을 4 연개소문의 사망 시점에 대해서는 사료마다 전하는 시점에 차이가 있으며 학계에서도 665년 설과 666년설로 의견이 나뉘어 있다. 그러나 어떻게 보더라도 연개소문이 사망한 시점에는 작중 에 등장하는 당태종이 이미 사망(649)한 뒤이며, 무엇보다 연개소문이 당과의 전쟁 중에 사망했 다고 볼 근거는 전혀 없다

통해 연개소문이 비도를 부렸다는 대목은 찾을 수 없으며, 역사적으로 연개소문과 당태종이 전쟁터에서 서로 직접 조우한 적도 없다.

따라서 이러한 서사구조를 취하고 있는 드라마를 두고 고증의 오류라던가 혹 은 ‘역사 왜곡’이라고 비판하는 것이 오히려 무의미할 수도 있겠다. 단순히 역사적 인물을 차용하여 만든 ‘무협 드라마’ 정도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 히 그렇게만 보기에는 드라마에 내재된 몇 가지 의미심장한 요소가 있어 주목을 끈다. 첫 번째로 극중에서는 당과 고구려 양국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당 우위의 상하 관계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당시 드라마 제작 과정에서 강력한 영향 력을 미쳤을 중국 학계의 동북공정 논조가 그 서사구조에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 다. 만약 이와 반대로 당과 고구려의 대립 및 적대적 관계를 강조한다면 극의 긴 장감을 높일 수는 있었겠지만, 두 나라를 ‘중화민족’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울타리 안으로 묶기가 어려워져 자칫 드라마가 동북공정 논조와 다른 결론으로 흘러갈 위 험이 있다. 때문에 드라마에서는 고구려를 마냥 중국의 적대적인 국가로 배척하여 묘사하기 보다는 당 우위의 우호적인 양국 관계를 강조하면서, 당나라가 종주국이 며 고구려는 그의 충성스러운 속국이라는 주장을 드라마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내 려 하고 있다. 즉 해당 드라마에서는 고구려사를 중국 역사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동북공정의 기조 속에 작중의 고구려 또한 당이라는 중국 중앙왕조의 지방정권이자 소수민족

정권으로 충실하게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당태종과 고구려 보장왕은 시종 일관 우애로운 관계를 유지하며, 특히 보장왕은 당태종을 강하게 추종하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설인귀의 활약에 힘입어 ‘연개소문(철세문)의 난’을 평정하고 고구 려로 돌아간 보장왕이 자신의 신하들에게 “당태종을 본받아 정치를 바로 하라.”고 명하는 장면은 그러한 묘사의 절정을 보여준다.

한편, 드라마의 서사구조 상에서 이처럼 당나라를 추종하는 인물로 고구려왕을 묘사하려다보니 우호적인 양국의 관계를 방해하는 인물로 연개소문의 ‘악행’을 작 중에서 더욱 부각시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즉 고구려는 그동안 당나라의 충성 스러운 속국으로서 그 의무를 다하여 왔는데, 연개소문이 등장하면서 그러한 이상적인 관계를 방해하였다는 식의 서사구조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작중에서 연개소문은 당나라를 성심으로 섬기고자 하는 고구려 보장왕을 겁박할 뿐만 아니라 군대 를 일으켜 당나라를 공격한 전쟁의 원흉으로 묘사되고 있다.

물론 역사적으로 고구려와 당의 전쟁은 당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되었다. 요컨대, 드라마에서는 연개소문을 당나라와 고구려의 ‘공동의 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설인귀의 지휘 아래 당나라 군대가 연개소문이 이끄는 고구려 군대를 격파하는 모습을 보고 고구려 보장왕과 소양공주가 기뻐하는 장면은 그러한 서사적 의도를 명확히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이러한 양국 간의 위기를 해결하는 평민 영웅으로서 설인귀를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드라마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연개소문이 당나라 ‘삼강월호성’을 포위하고 당태종을 궁지에 몰아넣는 장면에서는 설인귀가 ‘용문진’이라는 신묘한 진법을 통해 연개소문을 물리치는 대활약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설인귀의 활약에 당태종뿐만 아니라 연개소문에 의해 핍박을 받던 고구려 보장 왕마저 기뻐한다.

결국 이러한 대목은 평민 영웅 설인귀에 의해 두 나라 모두 무사히 위기를 극복하였다는 식의 서사로 귀결되고 있다.

또한 설인귀는 장사귀 등의 집요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당태종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그를 구원하는 전형적인 충신으로서의 면모를 보인다.

반면, 이러한 설인귀의 영웅적 활약상을 부각시키기 위해 상대적으로 고구려 보장왕뿐만 아니라 중국 에서 당대(唐代)의 최고 성군(聖君)으로 추앙받는 당태종마저 아둔한 인물로 묘사 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그리고 설인귀의 강력한 라이벌로 그려지는 연개소문 (철세문)은 전형적인 악역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러한 서사구조 역시 중국의 전근대 문학작품이나 경극에 투영된 설인귀에 대한 이미지를 차용한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고구려 보장왕의 딸로 등장하는 소양공주가 설인귀를 염모하다가 끝내 설인귀를 위기에서 구하며 두 번째 부인이 된다는 설정도 다분히 의도적인 서사구조라 할 수 있다.

심지어 드라마 상에서는 두 사람의 결혼을 당태종이 직접 주선하기도 하는데, 결국 이러한 스토리는 당과 고구려가 연개소문에 의해 촉발된 큰 위기를 극복하고 역사적으로 다시 한 가족이 되었다는 서사로의 귀결을 의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북공정으로 체계화된 고구려사에 대한 중국의 입장이 드라마적으로 극명하게 잘 나타나고 있는 대목이다.

 

IV. 의도적 격하와 배제의 서사: <수당영웅>(2012)·<무미랑전기>(2014)

다음으로 살펴볼 작품은 2010년대 중국 드라마로서 <수당영웅 – 1부>(2012) 과 <무미랑전기>(2014)이다.

앞서 살펴본 2007년 방영된 <설인귀전기>에서는 비록 고구려를 발료국(渤遼國)으로 연개소문을 철세문(鐵世文)으로 보장왕을 발건왕(渤建王)으로 묘사하며 직접적인 역사적 연결을 피하고 있지만, 적어도 그 스토리에서만큼은 당과 고구려의 관계를 자신들의 시각에 맞추어 적극적으로 서술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 중국에서 동북공정이 종료되고 수년의 시간이 흐 른 뒤에 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 <수당영웅>과 <무미랑전기>에서는 고구려사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의 비중을 최대한 줄이거나 생략하려는 경향이 눈에 띈다.

먼저 2012년에 방영된 <수당영웅 – 1부>에서는 특히 수양제와 당태종을 중심으로 수나라 흥망과 당나라의 건국 과정이 주요 스토리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그런데 수양제 시대 고구려와 수나라의 관계를 고려하면 드라마의 주요 스토리가 단연 고구려·수 전쟁을 중심으로 전개될 것 같지만, 전연 그렇지 않다는 점이 흥미 롭다.

드라마의 해당 줄거리는 주로 수나라 내부의 정치 상황만을 중심으로 전개 되며, 여기에 고구려와 수의 전쟁 과정이나 수양제가 고구려 침공에 실패하는 장면이라든지 전쟁 실패가 수나라 몰락의 직접적인 원인 중 하나였다는 등의 ‘역사적 사실’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나마 작중에 고구려에 대한 이미지를 확인 할 수 있는 몇몇 장면이 있는데, 이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드라마 초반부에서는 고구려 영양왕(嬰陽王) 고원(高元)이 수나라 천자가 거행하는 사냥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중국을 찾는 장면이 잠시 그려지는데, 그 호칭은 고구려왕 대신 요왕(遼王)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고구려왕은 자연스럽게 수나라 천자의 신하로서 묘사되고 있다.

우선 ‘고원’은 당시 고구려의 왕위에 있던 영양왕이 이름이 맞다. 즉 <수당영웅>에서는 앞서 <설인귀전기>에서처럼 고구려와 관련된 인물들에 대해 인명을 바꾸거나 새롭게 창작하려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6~7세기 고대 동아시아에서 조공·책봉관계가 가지는 현실적 의미나 작동 원리는 차치하고서라도, 당시 고구려가 국제적으로 수에 조공을 하는 조공국의 위치에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당시 고구려 영양왕이 직접 수나라에 간 적은 없다. 아니, 역사상 고구려왕이 중원의 황제를 알현하려 요하를 건넌 사례는 전무하다. 즉 드라마에서 묘사하는 장면은 ‘역사적 사실’에 어긋난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상에서 고구려왕을 ‘요왕(遼王)’이라 표현함은 곧 수의 황제가 고구려왕에게 내린 책봉호를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당시 고구려 영양왕의 책봉호는 ‘상개부의동삼사 요동군공 고구려왕’(上開府儀同三司 遼東郡公 高句麗王)이었 다. 즉 ‘요왕’이라는 표기는 ‘요동군공 고구려왕’이라는 책봉호를 뒤섞어 축약해놓 은 것으로, 여기서 주목할 점은 ‘고구려’라는 국명이 빠져있다는 점이겠다.

즉 드라마 전체를 통해 일관되게 나타나는 ‘배제적 서사’의 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또한 수나라 천자를 알현하는 고구려왕과 그를 수행하는 신하들의 복장 묘사도 이채로운데, 모두 털 가죽옷으로 몸을 덮고 있어 고구려 벽화 등에서 확인되는 고구려 고유의 복식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하고 있다. 즉 전연 역사적 고증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은 채, 드라마상에서 고구려의 이미지가 무분별하게 소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에서는 사냥 중에 갑작스레 수양제와 영양왕 간에 무예를 겨루는 장면이 그려지기도 하는데, 여기서 영양왕은 수양제와의 대결에서 패배하고 수양제를 존경하게 되었다는 식의 서사가 덧붙여진다.

다시 말하지만, 수양제와 고구려 영양왕은 직접 조우한 적이 없다.

따라서 역사적 사실과도 전연 관계가 먼 장면이지만, 이러한 묘사를 통해 수나라 우위의 양국 관계를 그리고자 하는 작중

의 의도는 명확히 전달되고 있다.

이것은 보는 그대로 고구려에 대한 ‘격하의 서사 구조’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더욱 의아한 점은 본 드라마에서 고구려가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대목 이 이 장면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점이다. 이후 전개되는 고구려와 수의 전쟁 과정은 드라마의 서사구조 속에서 최대한 배제되는 가운데 다만 흘러가는 대사 처리로 요왕(遼王)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방식으로 제시되고 있을 뿐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무리한 고구려 원정 지속과 계속되는 전쟁 실패는 수 멸망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된다.

역사적으로 고구려와 수나라 간의 전쟁이 가지는 그 무게감 을 고려할 때, 이와 관련한 서사가 전연 없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즉 여기에서도 의도가 분명한 ‘배제적 서사’가 확인되고 있다.

더욱이 2013년에 제작된 <수당 영웅 – 2부>와 2014년에 제작된 <수당영웅 – 3부>의 경우는 대부분의 스토리가 당태종 이세민의 활약상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여기서도 여전히 고구려의 존재는 전연 드러나지 않는다.

드라마의 줄거리는 대부분 중국 내부의 정치 구도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고구려·당 전쟁은 드라마의 서사구조 속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서사 방식은 2014년에 제작된 <무미랑전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무미랑전기>는 측천무후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로서 중국에서뿐만 아니라 한국의 TV 매체에서도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이다. 특히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극의 중반부인 46화까지 스토리 전개를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로서 등장하는 당태종과 관련한 부분일 것이다. 당태종의 치세 기간 동안 당 조정의 주요 현안이었으며 당 초기 역사상 가장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고구려와의 전쟁과 관련한 드라마의 묘사는 어디까지나 배제로 일관되어 있다

오히려 드라마 초반에 당나라에 조공품을 진상하는 나라로 당시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발해국’이 등장한다.

또 당 황제가 주최하는 격구 대회에서는 ‘신라 황자’가 참여한다는 언급이 잠깐 보이는데, 역시 여기에서도 고구려의 존재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역사적으로 신라의 경우 당과 긴밀한 관계를 지속하다가 나당 전 쟁을 기점으로 대립하였고, 다시 발해 건국 이후로 외교적 갈등을 해소하며 당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였다.

발해 또한 당에 대한 투쟁 속에 건국되어 그 역사 초 반기까지만 하여도 당과 대립하며 군사적으로 충돌하였으나, 이후로 점차 갈등을 해소하고 대체로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였다. 이처럼 드라마상에서 당시 있지도 않은 발해국이 거론되거나 ‘신라 황자’가 언급된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당과 긴밀 한 관계를 유지했던 발해와 신라에 대한 이미지가 드라마 상에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반대로 시종일관 당과 격렬하게 대립하였던 고구려에 대한 의도적 배 제의 서사구조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당태종이 주도한 고구려 침공 과정에 대해서는 오히려 역사적 사 실을 완벽하게 비틀어 ‘북방의 반란’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고구려에 대한 철저한 배제의 서사라고 밖에 볼 수 없는데, 반란 자체를 당나라 영역 안에서 일어 난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가 하면, 또 반란군이 내건 깃발에는 ‘류(柳)’자가 쓰여 있어 고구려와 관련한 흔적은 전연 찾아볼 수 없게 지워져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전쟁이 고구려와 전혀 무관한 전쟁을 그리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전쟁 전개 과정의 대략은 당태종의 고구려 침공 과정을 그대로 따르는 줄거리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전쟁 과정에서는 설인귀 등 고구려 침공에 참여한 당나라 장수가 다수 등장하면서 그 사실성을 더하고 있다. 또한 작중의 전쟁 과정을 묘사한 대목을 보면 당태종 이세민은 이 전쟁에서 뼈저린 실패를 맛보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그 패전의 원인은 ‘안암성’에서 오랜 시간 발이 묶였기 때문이라는 언급이 보인다.

당시 고구려에 ‘안암성’이라는 성은 존 재하지 않았는데, 이것은 아마도 고구려 안시성(安市城)과 백암성(白巖城)의 이름을 뒤섞어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이라 짐작된다.

곧 이는 645년 고구려군과 당군이 부딪힌 80일간의 안시성 공방전을 말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더구나 작중에서는 전투중에 당태종 이세민이 큰 부상을 입게 되고, 결국 안암성에서 오랜 시간 발이 묶인 당나라 군대는 퇴각을 결정하는데, 이 또한 안시성에서 패퇴한 당군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결국 <무미랑전기>에서 고구려에 대한 묘사 방식은 ‘철저한 배제의 서사’라고 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는 2007년 동북공정이 종료된 이후 중국 대중미디어가 고구려와 고대 한국을 묘사하는 방식이 크게 변화하였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즉 앞서 <수당영웅 - 1부>에서는 ‘의도적인 격하와 배제’의 방식을 통해 고구려에 대한 이미지를 묘사하였다면, <무미랑전기>에서는 ‘철저한 배제’ 의 서사 방식으로 당태종 시대로부터 고구려의 존재를 삭제하였다고 볼 수 있겠다.

 

V. 결론: 고구려에 대한 서사의 두 갈래

지금까지 TV 역사드라마를 하나의 ‘역사 서술’로서 바라보고자 하는 시선에 의지하여 동북공정 이후로 중국 TV 역사드라마에 나타나는 고대 한국과 고구려의 역사상(歷史像)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팩션(faction)’으로서 사극의 서사 속에 녹 아있는 역사적 맥락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사실’이 아닌 역사가들에 의해 구성된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을 기준으로 하여 해당 작품이 그러한 제도권의 역사 서술과 어떤 점에서 차이를 드러내었는지 분석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문제의 식을 바탕으로 살펴본 <설인귀전기>·<수당영웅 – 1부>·<무미랑전기> 세 작품은 각각이 설정한 작품 의도에 따라 서로 다른 방향으로 ‘역사적 사실’을 비트는 서사 구조를 취하고 있었다.

먼저 동북공정이 한창 진행되던 2006년 무렵 제작에 들어가 동북공정 종료 시점인 2007년에 방영된 <설인귀전기>에서는 동북공정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당시 중국 미디어가 묘사하는 고구려의 역사상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즉 해당 드라 마에서는 고구려를 당나라의 충실한 신하국이자 속국으로 묘사함으로써 고구려사를 중국의 역사 안으로 끌어안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또한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양국의 군사적 충돌과 갈등은 ‘연개소문(철세문)’이라는 한 명의 악역에 의한 돌출적 사건으로 묘사함으로써 당나라와 고구려가 모두 하나의 중국 역사 안에서 우호 공존하였던 존재로 묘사하고자 하는 의도가 확인된다. 반면 동북공정이 종료된 이후, 구체적으로 2010년대 이후에 제작된 <수당영웅 – 1부>와 <무미랑전기>에서는 고대 한국과 고구려를 묘사하는 데에 있어 앞선 <설인귀전기>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과 태도를 취하고 있다.

먼저 <수당영웅 – 1 부>에서는 고구려에 대한 ‘의도적 격하’와 ‘서사의 축소·배제’를 통해 고구려의 존재를 작중에서 최대한 낮추고자 하는 경향이 확인된다.

한편, <무미랑전기>에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고구려를 중국의 역사상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반면 역사상 당과 오랜 기간 우호 관계를 이어나갔던 발해나 신라에 대해서만큼은 잠깐이나마 작중 인물의 대사 처리를 통해 언급함으로써 고구려와는 다른 시선을 주고 있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실제의 사실보다는 ‘가상의 사실’이 당대를 살아가는 인간과 집단의 의식과 무의식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을 참고하자면(김기봉, 2006 157), 한국고대사에 대한 <수당영웅>과 <무미랑전기>의 격하와 배제적 서사는

중국 미디어가 반영하는 대중 인식의 무의식적 발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즉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패배하는 수양제나 당태종의 역사는 중국 대중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이와 같은 서사가 이미 그 이전에 종료된 동북공정의 영향이든, 아니면 최근까지 고조되었던 중국 국가주의의 소산이든 <수 당영웅>과 <무미랑전기>는 대중이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TV 사극에는 국가와 국민이 요구하는 정서가 농후하게 표출되며, 따라서 시대 의식을 추출할 수 있는 좋은 소재라는 지적(김기덕 114)은 타당하다.

또한 이처럼 동북공정이 진행되던 시점과 그것이 종료된 시점 사이에 중국 미디어가 고구려를 묘사하는 방식이 극명하게 차이를 보이게 되는 한 요인으로서 동북공정으로 촉발된 한·중 간의 역사 분쟁과 여기에 대한 한국 사회의 강력한 반발 을 거론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동북공정을 통해 노출된 중국 학계의 일련의 정치적 의도와 배타적 주장에 대한 학계를 비롯한 한국 사회 전반의 강력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중국 대중 미디어가 고구려사에 대한 자국 입장을 적극적인 서사 방식으로 전개하기 어렵게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현재 중국 대중 미디어에서는 드라마 상에서 중국사의 일부로서 고구려사를 강조하여 묘사하기도 꺼려지는 한편,

그렇다고 이를 한국의 역사로서 인정하는 상에서 드라마적 서사를 가져갈 수도 없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치 곤란의 상황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한다.

당 초기의 역사에서 고구려의 존재를 완전히 배제하고자 하였던 <무미랑전기>의 서사구조는 이러한 중국 미디어의 입장이 무의식적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주제어: 영상역사학, 역사드라마, 동북공정, 연개소문, 설인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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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접수일: 2020. 8. 26 / 논문심사완료일: 2020. 9. 5 / 논문게재확정일: 2020. 9. 8

동서비교문학저널 제53호 2020 가을 28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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