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민중신학의 개척자인 심원(心園) 안병무(安炳茂, 1922-1996)는 민중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 집단적 연대와 역사적 실천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해 나가는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지금 여기에 현존(現存)하는 ‘예 수사건’ 또는 ‘그리스도 사건’이 일어난다고 보았다.
그러나 민중의 ‘자기 초월’(自己超越)로 요약되는 그의 독특한 ‘민중사건’론(論)은 신학 이론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고난과 투쟁으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 속에서 민 중이 자기 주체성을 형성하고 변혁을 이루는 민중운동 현장 및 민주화운 동 과정과 밀접한 연관을 맺으면서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갔다. 따라서 자기초월 개념을 중심으로 구성된 안병무의 민중사건론을 조명하는 작업 은 오늘날 그리스도교 신앙과 민주주의의 관계를 탐구하는 데 중요한 의 의를 지닌다.
그러한 취지에서 이 글은 안병무의 자기초월적 민중사건론을 현대 종교사회학을 선도하고 있는 독일의 사회이론가 한스 요아스(Hans Joas, 1948-)의 “가치의 생성”(genesis of values)으로서의 ‘자기초월’(self-tran scendence) 개념과의 비판적 대화를 통해 종교학적·사회학적 의미에서 현 재성과 보편성을 지니는 담론으로 확장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요아스는 가치가 인간이 자기 자신을 초월하는 경험 속에서 생성된다고 주장하며, 이를 단지 개인적 각성뿐만 아니라 집단적·사회적 차원에서도 이루어지 는 것으로 설명한다는 점에서 안병무의 민중사건론과 높은 수준에서 유 의미한 접점을 형성한다.
따라서 민중의 자기초월적 사건에서 새로운 가 치가 생성되는 과정 및 그 가치들이 어떻게 민주주의적 정치의 주체 형 성에 기여하는지에 대한 요아스의 이론적 통찰을 안병무의 민중사건론에 접목하여 그 메커니즘을 구체적으로 탐색함으로써, 현재의 상황에서 안 병무와 요아스의 자기초월 개념을 비교 분석하는 작업은 민중이 주체적 으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새로운 정치적 방향성을 모색하는 데 유익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이다.
논문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우선 다음의 Ⅱ장 1절에서는 본격적으 로 안병무의 자기초월 개념을 종교현상학적 관점에서 분석하여, 이것이 단순한 개인적 성찰이 아니라 민중의 집단적 고난과 저항 속에서 발현하 는 역사적·신학적 사건임을 규명한다.
특히 민중의 자기초월을 통해 예 수사건이 현재적으로 재현(再現)된다는 안병무의 ‘화산맥’ 이론을 중심으 로, 그의 민중사건론이 전통 신학의 한계를 넘어 종교현상학적 사건 이 론으로 재해석될 수 있음을 논증한다.
이어서 2절에서는 이러한 이론적 분석을 바탕으로 1970~80년대 한국 현대사의 구체적 사례들—민청학련 사건 구속자 어머니들의 기도, 전태일의 분신과 노동자들의 연쇄적 희 생, 송광영의 분신과 그 어머니의 부활 체험, 그리고 안병무 자신의 감옥 경험—을 통해 민중의 자기초월이 어떻게 개인적 고통을 집단적 각성과 역사 변혁의 동력으로 승화시키는지 세밀히 검토한다.
그리고 Ⅲ장 1절 에서는 한스 요아스의 자기초월 이론을 가치 생성, 자기형성, 그리고 성 스러움의 경험이라는 주요 구성 요소를 중심으로 심층적으로 분석한 후 2절에서 이론적 기반, 발생 맥락, 주된 결과, 그리고 사회 변혁적 함의 등의 측면에서 안병무의 자기초월 개념과 요아스의 자기초월 개념을 비 교 분석하여 공통점과 차이점을 명확히 한다.
3절에서는 이러한 비교 분 석을 토대로, 특히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상황 에서, 안병무의 자기초월 개념이 요아스의 가치 생성 이론을 통해 어떻 게 새롭게 해석될 수 있으며, 민중의 저항과 새로운 민주적 가치의 생성 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논한다.
마지막으로 Ⅳ장 결론에서는 연구 결 과를 종합하고, 민중신학의 현대적 과제와 후속 연구의 방향을 제시하며 글을 맺는다.
Ⅱ. 안병무의 자기초월 개념의 분석 및 한국 민주화운동사적 사례 고찰
1. 안병무의 자기초월 개념의 종교현상학적 함의
안병무에게 자기초월은 사건의 관점에서 민중을 이해하는 핵심 개념 이다.1)
그는 민중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로 “자기초월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명시한다.2)
1) 안병무 민중신학의 핵심 테제인 ‘사건론’과 하이데거의 ‘사건’(Das Ereignis) 개념의 내적 연관성에 대해서는, 전철, “초기 안병무가 바라본 서구신학의 빛과 그림자,” 「신학사상」 152 (2011/봄), 79 108; 안병무의 민중사건론의 독특성이 민중의 자기초월 가능성과 종말성에 대한 강조에 있다는 점에 관해서는, 정용택, “금융화 시대의 민중신학에 관한 시론적 연구 - 안병무의 ‘가능성’(Möglich keit) 개념을 중심으로,” 「신학사상」 199 (2022/겨울), 237-271; 안병무의 민중사건론이 메시아를 민중으로 세속화하는 것을 넘어, 민중 그 자체를 사건으로 범속화하는 탈(脫)신성화 및 재(再)신성 화의 변증법적 기획임을 밝힌 연구로는, Yongtaek Jeong, “Minjung Theology as a Project of Prof anation: Focusing on the Minjung-Event Theory of Byung-Mu Ahn,” Religions 14/11 (2023), 1-18 참조.
2) 안병무, 『민중신학 이야기』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0), 338.
그런데 이러한 자기초월은 단순히 개인적 차원의 내적인 성찰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민중의 집단적 고난과 저항 속에서 발현(發顯)하는 역사적·신학적 사건이다.3)
안병무가 강조하 는 것은 민중이 “자기의 재능, 자기의 성격, 자기의 무기력, 자기의 가능 성을 초월해서 나타난 새로운 군상”이라는 점이다.4)
이는 민중이 자신들 의 한계 상황을 극복하고 새로운 역사적 주체로 등장하는 것을 의미한 다.
그렇지만 이러한 민중의 자기초월 역량에 대한 안병무의 신뢰와 확 언이 민중의 선험적인 주체성이나 본유적인 도덕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님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안병무는 민중을 “자기초월이 가능한 집단” 으로 규정하면서도, 동시에 “민중 자체는 개개인을 보거나 한 집단으로 볼 때 대단하지 않아요. 그러나 거기서 ‘자기초월’의 사건이 일어나요. 난 이것을 하느님의 선교(Missio Dei), 예수운동의 연속, 성령의 임재라고 부 를 수 있다고 봐요”5)라고 덧붙이며 민중의 자기초월을 통한 “그리스도 경험과 그리스도 증언은 개인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집단적이고 전체적 인 차원에서 이루어진다”6)는 점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금 안병무의 자기초월 개념에서 특히 중요한 대목은 그것 이 민중이라 불리는 사회적 집단이 보유한 본질적·정태적 속성 같은 것 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민중 자체가 역동적인 ‘사건’으로 파악된다는 점임 을 암시한다.
안병무는 민중의 자기초월 사건 속에서 ‘지금 여기에’ 예수 가 현존(現存)한다는 자신의 독특한 신학적 입장, 일명 ‘화산맥’(火山脈) 이 론에 기초하여, 예수의 부활사건이 단회적 과거사가 아니라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역사적 현실로서 재현된다고 이해했다.7)
3) 정용택, “민중신학,”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편, 『1970년대 민주화운동과 개신교』 (서울: 북멘토, 2024), 434.
4) 안병무, 『민중신학 이야기』, 338.
5) Ibid., 155.
6) Ibid., 119.
7) 안병무는 그리스도 사건을 “메시아적 화산맥”에 비유하며, 예수운동에서 민중사건이 활화산을 이 루었지만 그것이 일회적 사건으로 끝나지 않았다고 본다. 오히려 화산맥이 계속 분출하듯이 그리 스도 사건은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는 2천 년 전을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예수사건을 통해 부활을 경험할 수 있다. 이는 예수사건의 질적 고유성과 사건 유일회성을 부정하고, 그리스도 사건의 현재적 연속성을 강조하는 관점이다. 안병무, 『민중신학 이야기』, 104.
이는 민중이라 불리는 집단이 단순히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함께 모여 상호작용하고 있 는 관계들의 집합에 머무르지 않고, 고통과 저항이라는 구체적 역사적 상황 속에서 민중이 속해 있는 국가 내지는 사회라 불리는 정치적 공동 체 전체의 각성과 변화를 추동하는 역동적인 ‘운동’(movement)으로 이해 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자기초월의 사건 속에 예수가 자신을 나타낸다고 하는 나의 이러한 입장이 양해된다면, 예수의 부활사건은 역사 속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 순간에도 말입니다.8)
여기서 안병무는 예수의 부활사건을 통해 드러난 예수와 오클로스의 집단적 자기초월이 위의 대담 — 『민중신학 이야기』 원고의 토대를 이루 는 — 이 이루어지고 있던 시점, 즉 1987년 민중운동의 절정기에 현재 진 행 중임을 강조한다.9)
문제는 그러한 현상이 민중신학자인 안병무의 관 점에서는 사회과학적 분석으로는 설명 불가능하다는 것, 즉 사회과학적 분석의 틀로는 온전히 파악될 수 없는 ‘초월적’(transcendental) 성격을 지 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안병무는 민중운동에 대한 사회과학적 분석의 필 요성과 정당성을 인정하면서도, 그러한 분석 방법으로는 민중사건의 궁 극적 실상을 온전히 해명할 수 없다는 생각을 피력했다. 그에 따르면 민 중의 자기초월은 비록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볼 수도 있지만, 동시에 과 학적 인식의 한계를 뛰어넘는 차원을 지니고 있다.10)
8) Ibid., 338.
9) Ibid., 222. “역사 안에는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지금도 우리 사회에 민중운동이 격렬하 게 일어나고 있는데 거기서 확실하게 자기초월의 사건이 일어나고 있어요.”
10) Ibid., 222.
여기서 우리는 “인식의 한계를 초월하는”이라는 표현을 주목해야 한 다.
이것은 안병무의 자기초월로서의 민중사건 이해가 민중이라는 적 주체 자신과 관련해서만 초월적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사회 현상 그 자체로서도 사회과학적 분석의 지평을 벗어나는 것임을 암시하기 때 문이다.
사회 현상을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연구하여 사회의 구 성과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고 예측하며, 나아가 사회 문제 해결에 이바 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과학적 분석의 한계를 넘어서는 어떤 차 원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과학에 대해 갖는 초월적 성격 이 곧바로 신학적 차원으로 환원되기는 어렵다. 안병무에 따르면 민중의 자기초월은 절망, 체념, 무력감 등 자신들이 처한 한계 상황을 극복하고 새로운 역사적 주체로 등장하는 과정으로서, “죽어야만 산다”는 역설적 구조를 따른다.11)
그런데 이때 “죽어야만 하 는” 것에는 신학적 인식의 한계 역시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왜 냐하면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의 인식론적·존재론적 한계의 극복을 통해 안병무는 민중사건을 신학적 의미를 넘어선 ‘종교현상학적’ 사건으로 파 악하는 데 도달했기 때문이다. 앞서 인용한 문장에서 확인되듯이, 안병 무는 민주화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1970~80년대 한국 사회에서 발 생했던 민중사건을 예수사건의 반복이자 현재 진행형인 메시아 사건으로 해석했다.
그는 민중의 자기초월을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이 역사 속 에서 현재적으로 계속 일어나고 있는 실제 사례로 해석한 것이다. 이는 2천 년 전의 예수사건이 오늘날 민중의 자기초월적 사건을 통해 현재화 됨을 의미한다.
그런 맥락에서 안병무는 “오늘 민중현장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부활사건으로 경험하는 것은 예수의 부활사건을 전제로 해서만 가능하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신학을 하는 사람은 현재 여기서 일어나 는 부활사건의 증인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12)
11) 안병무, 『불티: 성서에세이 1』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8), 129.
12) 안병무, 『민중신학 이야기』, 338.
이러한 그리스도 사건에 대한 재인식을 통해 그는 기독교에서 유일 무이한 성현(聖顯, hierophanies)으로 취급되던 그리스도의 성육신(incarnation)과 그러한 그리스도와의 만남으로 실현된다고 보던 ‘구원’을 제도 교회의 권역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제 고난받는 민중이 자 신을 초월하는 민중사건의 현장에서 이루어진다고 파악했다.
종교학적 관점에서 이는 전통 신학과 달리 지극히 ‘속된’(profane) 일상적 공간에서 ‘성스러운’(sacred) 공간으로 이행하는 ‘초월적 세계와의 교섭’이 일어난다 고 보았음을 나타낸다.
나아가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민중사건의 현장에 참여할 때 발생하는 것으로 설명함으로써 기독교적 구원 경험 자체를 재 정의한 것이다. 그렇기에 안병무의 민중사건론은 종교적 경험을 더 이상 교회의 예배와 같은 특정 종교 전통의 의례 참여로 제한하지 않고, 오히 려 “성스러운 것(the sacred)의 경험을 가리키며, 따라서 존재, 의미, 진리 의 개념과 연관된 것”으로 엘리아데가 정의하는 종교현상학과 상통한 다.13)
가령 “말씀이 선포되고 성례전이 행해지는 자리, 다시 말해서 그리 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리에만 그리스도가 현존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 아요. 그리스도의 이름도 모르고, 예수의 이름도 모르는 곳이라도 고난 당하는 민중의 현장에는 그리스도가 현존합니다”라는 그의 선언 역시 종 교현상학적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14)
실제로 안병무는 참된 종교란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를 초월할 수 있 는 힘을 지녀야 하며, 특히 기독교에서 하느님을 역사의 주재자로 믿는 다면 자기초월이 가능하고 이것이 곧 무조건적 ‘내맡김’으로서의 믿음이 라고 주장함으로써 자신의 자기초월 개념을 종교학적 관점에서 참된 종 교 경험의 본질적 조건으로 제시한다.15)
13) Mircea Eliade, The Quest: History and Meaning in Religion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9), v; 더글라스 알렌/유요한 옮김, 『엘리아데의 신화와 종교』 (서울: 이학사, 2008), 40.
14) 안병무, 『민중신학 이야기』, 108-109.
15) 안병무, 『기독교의 개혁을 위한 신학』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9), 98.
그리고 이러한 종교학적 의미화 를 통해 민중사건론이 사회학적 분석을 넘어, 종교현상학적 차원에서 진 정한 종교 경험의 핵심을 ‘자기초월’로 파악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민중 사건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바로 이러한 자기초월적 믿음의 실현이자 참된 종교 경험의 구현으로 이해된다.
그러므로, 민중사건 안에서 민중과 예수가 만나 존재론적으로 ‘하나 됨’을 이루고 그 사건 자체가 신의 구원 역사와 동일시될 수 있음을 주장 하는 안병무의 자기초월적 민중사건론은 하이데거와 엘리아데의 종교현 상학적 사건론을 통해 새롭게 해석될 수 있다.16)
16) 마르틴 하이데거/김재철 옮김, 『종교적 삶의 현상학』 (서울: 누멘, 2011); 미르치아 엘리아데/이은 봉 옮김, 『종교형태론』 (서울: 한길사. 1996); 미르치아 엘리아데/이은봉 옮김, 『성과 속』 (서울: 한 길사, 1998).
민중의 가혹한 희생을 수반했던 국가 주도의 산업화 과정에서 비인간화된 주변적 존재이자 냉 전적 발전국가 담론하에서 타자화된 비존재인 고통의 담지자, 곧 민중이 라 불린 이들에게서 자기초월 가능성을 발견했던 그의 민중사건론은 엘 리아데 성현 이론의 급진적인 적용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안 병무의 자기초월적 민중사건론은 특별한 종교적 신념이나 의례 참여 없 이도 일상적인 ‘속’(俗)의 시공간에서 ‘성’(聖)의 시공간으로 이행하는 초월 적 세계와의 교섭 가능성을 제시한 (신학 너머의) 종교학적 사건 이론으로 재해석되어야 한다.
2. 한국 민중운동 및 민주화운동사에 나타난 자기초월의 구체적 사례들
안병무는 민중의 자기초월에 관한 논변을 추상적 이론의 차원에 가 두지 않고, 한국 민중운동 및 민주화운동의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구체 적으로 전개한다. 그에게 자기초월은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한국 민중들 이 실제로 체험하고 실현해낸 역사적 현실이다.
그의 저작에서 크게 네 가지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첫째, 박정희 유신체제(1972-79) 하에서 ‘민청학련 사건’17) 등으로 자녀를 감옥에 보낸 어머니들의 기도회에서 안병무는 자기초월의 가장 감 동적인 사례를 목격했다.
17) 민청학련 사건은 1974년 박정희 정권이 유신헌법에 대한 개헌 논의를 탄압하기 위해 긴급조치 1 호와 4호를 연이어 발표하며 표면화되었다. 당시 학생운동 지도부는 전국적인 동시다발적 시위 를 계획했고, 이 과정에서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이라는 명의의 유인물이 등장하자 정부는 이를 빌미로 대대적인 탄압을 시작했다. 학생운동 차원의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공산주의적인 체제 전 복 운동으로 몰아간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당시 개신교 청년학생운동의 중심이었던 한국기 독학생회총연맹(KSCF)의 간사들과 주요 학생 활동가들이 대거 구속되어 조직 운영에 큰 타격을 입었으며, 박형규 목사, 김찬국, 김동길 교수 등 개신교계 주요 인사들까지 구속되는 등 그 파장 이 광범위했다. 민청학련 사건은 개신교 사회운동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이후 구속자 관련 사업 이 개신교 사회운동의 주요 사업 중 하나가 되었고, NCCK 인권위원회의 창립과 맞물려 민주화 운동을 보호·지원하는 개신교 인권운동의 비중이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민청학련 사건의 배 경과 여파, 민주화운동사적 의의에 관해서는 황용연, “개신교의 반유신 민주화운동,”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편, 『1970년대 민주화운동과 개신교』 (서울: 북멘토, 2024), 121-127 참조.
민청학련 사건으로 인해 자기의 두 아들을 감 옥에 보낸 어머니가 이 기도회에서 대표로 기도했는데, 안병무는 그때 받은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고 회고한다.
이 어머니의 기도는 개인적 고 통을 넘어선 집단적 책임감의 각성을 보여준다.
하느님 아버지시여, 저희가 진심으로 하느님 앞에 회개합니다. (…) 과거, 내 자식만 잘 먹이고 잘 입히겠다는 생각을 했던 일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십자가 고난의 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내 자식이 세상 에서 출세하기만을 원했던 것을 용서해주시옵소서. 많은 가난한 이 웃을 보면서도 그들의 이웃 되기를 꺼려한 죄를 용서해주시옵소서. 또한 이 나라의 불우한 과부들과 고아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사치를 즐겨하는 어머니들의 죄를 용서해주시옵소서. 이제 저희들은 사랑하 는 아들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저희 어머니들에게 무엇을 원하시는 지를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남의 자식을 내 자식처럼 사랑하라는 것 입니다.18)
18) 안병무, 『민중신학 이야기』, 340.
안병무는 이 어머니의 기도에서 진정한 자기초월의 의미를 발견했다 고 고백한다.
그에 따르면, 이 어머니는 단지 자신의 자식만을 위해 기도 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개인적 아픔을 딛고 일어나 자기 고통을 망각할 정도로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이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안병무는 바로 이러한 변화된 의식과 실천에서 자기초월이 구현되었 다고 해석한다.
이러한 자기초월의 과정은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심화된 다.
안병무는 10년 후, 전국학생총연합(전학련) 의장이 체포되어 옥에 갇 혔을 때 드려진 또 다른 어머니의 기도를 소개한다.
이 어머니는
“우리 아들 딸들은 (…) 불의를 참지 못하여 가난한 이웃과 불행한 친지들의 아 픔을 앉아서만 볼 수 없어 잘해보자고 외친 것입니다. 나 개인을 버리고 안일한 생활 속에서 썩어가는 모든 잘못된 역사를 후세에 남기지 않으려 고, 부끄러운 세대가 되지 않으려고 하나의 소리가 되어 외치고 있습니 다”라고 기도했다.19)
이 기도에는 자신의 아들 딸들의 석방을 직접적으 로 요구하는 말은 한마디도 없으며, 오히려 “자기 자식들을 새로운 민족 의 역사가 전개되게 하는 데 희생의 제물로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로 표 현된다.
안병무는 이를 두고 “민족적 지평으로 승화”된 것이라 해석하며,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민족 전체의 아픔과 역사 변혁을 위한 희생을 기 꺼이 받아들이는 자기초월의 극치를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이처럼 구속 자 어머니들의 자기초월은 개인적인 고통이 민주화운동 탄압이라는 사회 적 맥락 속에서 집단적으로 공유되고 성찰될 때, 강력한 정치적 선언이 자 행동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둘째로, 안병무는 전태일(全泰壹, 1948-1970)이라는 이름의 한 노동자 가 일으킨 사건을 민중의 자기초월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해석한다.
그는 평화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했던 22세의 청년 전태일이 1970년 11월 13일 자신의 몸에 기름을 붓고 분신한 사건을 단순한 자살이 아니라 개 발독재 시대 한국 자본주의의 노동문제에 무관심한 사회에 대한 절규이 자 동료 노동자들의 고통을 세상에 알리려 했던 희생적인 자기초월의 행 위로 규정한 것이다.20)
19) Ibid., 341.
20) 전태일 사건을 민중사건으로 해석하는 안병무의 저술들에 관한 상세한 분석으로는, 정용택, “노 동의 프레카리아트화와 민중신학,” 「신학사상」 196 (2022/봄), 265-305 참조.
안병무에 따르면 전태일은 자신의 안위를 초개와 같이 버리고 개인적 권익보다 동료들의 권익을 위해 투신한 것이며, 따라서 그의 죽음은 자신의 생명을 동료들의 권리 개선을 위한 제단에 제 물로 바치고 자신의 몸을 그들의 삶을 위해 나누어준 ‘메시아적’ 자기희 생에 해당한다.21)
전태일이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고발해야겠는데, 고발할 길이 전혀 없으니까 자기 몸을 태우면서 고발을 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 고통의 문제를 자기 개인에게 한정시키지 않고 노동자 전체의 문제로 승화시킨 데서 민중적 메시아상이 드러나게 된 거지요.
‘전태 일이 메시아다’라는 말을 쓸 필요는 없어요.
‘그리스도는 전태일에게 서 이렇게 현존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거예요.22)
실제로 전태일 사건은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폭로하고 초기 노 동운동의 각성을 촉발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더 넓은 민주 화 투쟁의 중요한 토대를 형성했다.
안병무는 전태일의 희생이 평화시장 을 위시한 노동현장으로 사회의 시선을 돌리게 하고 전체 사회에 큰 충 격을 주었다는 점에서 분명한 자기초월의 행위라고 단언한다.23)
나아가 전태일의 분신 이후 김경숙, 김종태, 박영진, 박종만 등 많은 노동자들이 계속해서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희생했다고 명시적으로 언급한다.24)
21) 안병무, 『민중신학 이야기』, 103.
22) Ibid., 116.
23) Ibid., 258, 330.
24) Ibid., 341; 안병무, 『역사와 민중』 (서울: 한길사, 1993), 206.
그 는 한국 민주노조 운동사에서 이러한 순교적 사건들이 지속적으로 발생 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이를 민중의 자기초월이 개인적 차원을 넘어 집단적 각성과 행동으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한 다.
결국 이러한 ‘연쇄폭발’은 개별적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반복되 는 역사적 사건들로서, 한 사람의 심오한 자기초월 행위가 다른 이들에 게 궁극적 헌신의 모델을 제공하며 희생의 계보를 만들어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전태일 사건 이후로 반복되어 온 일련의 자기희생적 사 건들이 한국 노동운동의 정체성과 추진력의 핵심이 되며, 안병무의 관점 에서 노동자들의 자기초월 행위가 역사적 변화를 추동하는 결정적 동력 임을 보여준다.
셋째로, 안병무는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 하에서의 학생운동, 특히 1985년 송광영(宋光永, 1958-1985)의 분신 사건을 통해 자기초월의 종교 적 차원을 발견한다.25)
25) 송광영은 1985년 9월 17일 경원대 교정에서 분신자살한 학생운동가이다. 광주 태생으로 전태일 의 길을 따르겠다는 신념으로 청계천 노조에서 활동하다가 검정고시를 거쳐 경원대 법학과에 입 학했다. 그는 실존주의 철학연구회와 경제문제연구회를 창설했으며, 군사정권의 학원안정법 제 정에 맞서 “광주 학살 책임지고 전두환은 물러가라, 학원 악법 철폐하고 독재정권 물러가라”고 외치며 분신했다. 한 달 전인 8월 15일 광주에서 분신한 홍기일 열사의 뒤를 이은 것이었다. 늦봄 문익환 목사는 송광영이 화상으로 투병하던 한 달 동안 자주 병원을 찾아 격려했으며, 11월 28일 별도의 영결 예배에서 추도사를 했다. 문익환은 송광영을 추모하는 시 「나의 조국 나의 사랑」에 서 열사의 어머니의 목소리를 빌려 “제 똥 구린 줄이라도 아는 세상이 되기만 한다문사 광영인 백 번이라도 제 몸에 불 싸지를 거구만”이라고 노래했다. 송광영의 분신은 1980년대 학생운동사에 서 자기희생을 통한 저항의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안병무는 그의 저서 여러 곳에서 문익 환의 시를 인용하며 송광영 열사와 이오순 여사의 이야기를 민중의 자기초월의 사례로 소개한 다. 안병무, 『민중신학 이야기』, 342-346; 안병무, 『역사와 민중』, 206-209.
송광영은 학생들을 향해 지금은 몸을 버려 나라 를 구할 때이며, 폭력으로 저항할 힘도 없고 사람을 죽일 입장에 있지도 않은 상황에서 오직 자기 자신을 하느님께 바쳐 기도하는 길밖에 없다고 외쳤다.
이는 폭력적인 저항 수단이 부재한 상황에서 자신의 생명을 바 쳐 불의에 항거하려는 의식적인 자기초월의 결단이었다. 안병무의 관점 에서 송광영의 이러한 외침은 힘에 대한 근본적인 재정의를 담고 있다.
압도적인 국가폭력 앞에서 송광영은 기존의 폭력적 방식이 아닌, 자기희 생과 영적 헌신에 기반한 다른 종류의 힘을 제시한 것으로 소개된다.
그 의 분신 행위는 제물이자 기도로서, 물리적 힘을 초월하는 도덕적·영적 힘에 호소하려는 시도였다.
이는 양심, 공감, 그리고 희생의 상징적 무게 를 통해 작동하는 영향력의 다른 차원을 도입함으로써 폭력을 독점한 국 가에 도전한다. 안병무는 이 사건을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심오하고도 정교하게 해 석하며, 특히 송광영의 어머니인 이오순 여사의 경험을 통해 그 의미를 민중신학적으로 확장한다.
여사는 아들의 죽음 이후, 문익환(文益煥, 1918-1994)이 기록한 시(詩)에 나타나듯이,
“이상히여, 눈만 감으면 광영 이 뛰어다니는 게 여기도 저기도 보이네”, “저 아우성이 모두 광영이 아 닌 게비여”,
“오! 자유 저 노래는 또 뭐여 그것도 광영이구먼”이라고 중 얼거리며 아들의 현존을 느낀다.
그리스도인도 아니고 민주주의에 대해 제대로 배운 것도 없는 평범한 어머니가 아들의 죽음 앞에서 처음에는 깊은 슬픔에 잠겼지만, 어느 순간 자기 아들이 수천 명으로 수천의 소리 로 민중가요 「오! 자유」를 부르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안 병무는 이러한 놀라운 자기초월의 사건에 대해 일본의 청중들 앞에서 그 리스도의 이름도 모르는 이 어머니에게서 예수의 부활사건이 재현되고 있다고 증언하며, 그가 결코 죽지 않았고 지금도 민중들 가운데 살아 있 다고 선언한다.
이를 통해 송광영의 죽음이 개인의 비극을 넘어선 부활 사건으로 승화되었음을 강조한 것이다.26) 송광영 어머니의 이러한 자기초월적 행동은 개인적 희생의 영향이 공동체에 의해 어떻게 증폭되고 계승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송광 영은 육체적으로 죽었지만, 그의 어머니는 광장에 모여 송광영의 죽음을 애도하며 민주주의 실현을 요구하고 있는 학생들의 행동과 외침 속에서 자기 아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으로 인식한 것이다.
안병무는 청중들에게 “저 밖에 경찰과 대치하는 수많은 학생들이 그의 분신입니다”라고 명확 히 말한다. 이는 단순히 시적인 표현이 아니라, 순교자의 정신과 대의가 집단에 의해 계승되고 구현되어 투쟁이 지속되는 사회적·심리적 현실을 묘사한다.
이렇게 개인의 희생이 지속적인 집단행동으로 전환되는 과정 이 기나긴 군부독재 체제에 맞선 한국 민주화운동의 핵심 동력이었다.
송광영의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을 통해 “광영이 마음이 민주주의랍니다” 라는 깨달음에 이르며,
“민주주의 만세다. 광영아. 내 아들 광영아!”라고 외친다.27)
26) 안병무, 『민중신학 이야기』, 342-346.
27) Ibid., 344.
이는 개인의 희생이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와 연결되어 공동체 전체의 염원으로 확장되는 자기초월의 과정을 보여준다.
문익환의 시를 통해 묘사된 어머니의 고백에서 아들이 지금 살아 있으며, 경찰과 대치하는 수많은 학생들이 그의 분신이라는 부활 인식이 드러난 것이다. 안병무에게 이는 개인적 죽음이 집단적 부활로 승화되는 자기초월의 종 교적 차원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였다.
마지막으로, “몸으로 민중의 일부로 존재”하는 것을 경험하게 된 안 병무 자신의 감옥 생활은 기존의 도덕적 판단을 넘어서는 자기초월적 인 간 이해로의 근본적 전환을 가져다주었다.28)
말하자면 안병무 자신이 감 옥에서 몸소 “인식의 한계를 초월하는”29) 자기초월을 경험한 셈이다.
그 는 감옥에 들어가기 전까지 강도, 절도범, 폭력배 등 사회적으로 ‘범죄자’ 로 낙인찍힌 이들을 민중의 범주에서 제외시켰다.
그러나 감옥에서 그들 과의 직접적인 만남은 그에게 충격적인 깨달음을 주었다.
안병무는 이 죄인들에게서 일반인보다 오히려 순수한 면, 배운 자들보다 오히려 진실 한 면을 발견했다고 고백한다.
비록 그들의 언어가 야만적일지라도, 그 것이 삶 그대로를 표현해 주는 생동적이고 진실한 언어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30)
이러한 경험은 그로 하여금 지배자들의 관점에서 세워진 낡은 가치 기준을 내면화해 온 자신의 한계를 성찰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죄’ 와 ‘죄인’이라는 개념을 지배적 사회 질서의 관점에서 신학적으로 해체하 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안병무는 죄를 누가 규정하는가에 대한 근본 적 질문을 던지며, 기존 질서가 설정한 구조악의 법망에 걸리면 죄인이 되지만 예수는 사람들을 죄인으로 보지 않고 그런 손아귀에서 해방시켜 야 할 대상으로 보았다고 주장한다.31)
28) 안병무, 『역사와 민중』, 412.
29) 안병무, 『민중신학 이야기』, 222.
30) 안병무, 『기독교의 개혁을 위한 신학』, 169-170. 31) 안병무, 『민중신학 이야기』, 98.
그의 감옥 경험은 이러한 신학적 비판의 체험적 토대를 제공한 것이다.
이처럼 감옥이라고 하는 사회의 가장 변두리로 밀려난 이들과 원치 않게 더불어 살게 되면서, 안병무는 예기치 못했던 순수함, 진실함, 그리 고 꾸밈없는 인간성을 그들로부터 발견하게 된다.
본회퍼는 감옥에서 민중을 발견한 것이다.
그 민중! 예수가 싸고돌고 또 예수가 좋아 밤낮으로 좇아다니던 그 갈릴리의 민중과 동일한 그 민중을! 예수가 저들을 무조건 받아들였는데 누가 저들을 정죄할 것 인가? 있다면 교리요, 교권이지 본회퍼는 자신은 그럴 수 없었다.32)
위의 인용문에서 본회퍼를 안병무 자신으로 바꿔도 무방할 것이다.
본회퍼와 마찬가지로 안병무에게도 감옥 생활이, 민중이 그들의 극심한 소외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바로 그 소외 때문에, 자기희생과 자기초월 의 역량을 발휘할 수도 있다는 역설을 인식하게 되는 계기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안병무가 감옥에서 만난 죄수들은 사회 계층의 최하단에 위치 하며, 지배 체제에 의해 권리와 존엄성을 박탈당한 존재들이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안병무는 바로 이곳에서 당대 한국인들의 사회적 삶을 있 는 그대로 표현하는 진실한 언어를 발견했다고 말한다.33)
32) 안병무, 『기독교의 개혁을 위한 신학』, 408.
33) Ibid., 170.
이는 사회적 허식과 환상이 극한의 억압에 의해 강제로 제거될 때, 날것 그대로의 진 정한 인간성이 드러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안병무에게 이 날것의 인간 성은 자기초월의 잠재성을 품고 있는데, 그들의 인간성이 주류 사회의 위선에 덜 구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영적 진리와 변혁적 행동의 잠 재력이 어디에서 발견될 수 있는지에 대한 심오한 발견이다.
따라서 감 옥에서의 경험은 안병무로 하여금 민중을 “현재의 모순된 체제의 한 희 생자”로, 동시에 기존의 도덕적 판단을 넘어서는 순수성과 진실성을 간 직한 존재로, 나아가 자기초월의 가능성을 지닌 주체로 인식하게 하는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
이상의 구체적 사례들을 통해 안병무는 민중의 자기초월이 추상적 개념이나 정치적 이념이 아니라 1970~80년대 군사독재 체제하에서 한 국의 민중들이 극한의 억압과 고난의 상황에서 실현해 낸 역사적 현실임 을 증명하고자 했다. 어머니들의 기도, 전태일과 송광영의 희생, 그리고 안병무 자신의 감옥 경험은 각각 독특한 양상으로 자기초월을 드러내지 만, 이것들은 결코 개별 사건들의 나열로 볼 수 없다. 오히려 이러한 다 양한 민중의 자기초월 행위들이 서로 연결되어 한국 민중운동 및 민주화 운동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형성하고 추동한 핵심 동력이었음을 강조한다.
모든 사례는 개인적 한계와 고통을 넘어 공동체적 각성과 연 대를 촉발하고, 궁극적으로 불의한 권력 구조에 맞서 역사의 변혁을 끌 어내는 민중의 주체적 역량을 보여준다.
특히 “집단으로서의 민중이 자 기초월을 할 수 있다.
자기초월해서 민중이 일으키는 사건이 예수사건이 다”34)라는 그의 단호한 주장은 이러한 민중운동 현장 및 민주화운동 과 정에 직접 참여하며 고난을 함께 했던 안병무 자신의 실제 경험에 기반 하여, 민중의 자기초월이 단순한 사회 현상을 넘어선 깊은 신학적 의미 를 지니게 되는 연유를 밝혀준다.
안병무는 민중사건을 “하느님의 자기 실현의 장”인 ‘하느님사건’이자 “예수와 더불어 일어난 일체의 민중사건” 으로서의 ‘예수사건’(또는 ‘그리스도 사건’)이며 결국 “민중에 의한 혁명의 사건”으로 재규정된 ‘성령사건’이기도 하다는 논점으로 발전시킴으로써, 자기초월적 민중사건이 곧 삼위일체 하느님의 구원 사역이 지금 여기에 서 실현되는 통로임을 역설했다.35)
34) 안병무, 『민중신학 이야기』, 27.
35) Ibid., 147, 81, 221.
Ⅲ. 한스 요아스의 가치 생성 이론과 안병무의 민중사건론의 비교 분석
1. 요아스의 자기초월적 가치 생성 이론
요아스에게 자기초월은 인간이 기존의 자아 경계를 넘어 새로운 가 치와 의미를 경험하고 형성하는 핵심적인 과정을 포착하기 위한 개념이 다.
그는 가치의 발생 기원, 즉 가치 생성의 경험적 토대를 합리적 선택 이나 사회적 규범의 내면화만으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고 보고, 인 간 경험의 더 깊은 차원, 즉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경험에 주목한다. 요아스는 “가치는 ‘자기형성’(self-formation)과 ‘자기초월’(self-tran scendence)의 경험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하며,36) 이를 통해 가치가 단순 히 추상적인 관념이나 사회적 강요의 결과가 아니라, 인간의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경험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때 그가 말하는 가치(values)란 “정서적으로 충만한 바람직한 것에 대한 관념”으로서, 선 하고 바람직한 것에 대한 이상(idea)을 가리킨다. 가치는 기본적으로 “주 관적으로 자명하고 감정적으로 매혹적인” 특성을 갖는다.37)
36) Hans Joas, The Genesis of Values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0), 1.
37) Hans Joas, “The Cultural Values of Europe: An Introduction,” Hans Joas and Klaus Wiegandt (eds.), The Cultural Values of Europe (Liverpool, UK: Liverpool University Press, 2008), 4.
이 정의는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을 포함한다.
첫째, 가치는 감정적이고 정서적으로 충만하다. 어떤 것이 우리에게 가치가 될 때, 우리는 그것에 감정적으로 애착을 갖게 된다. 따라서 “x는 나에게 가치이지만 나는 x에 대해 관심 이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
이러한 정서적(affective) 차원이 가 치를 규범(norm)과 구별한다. 우리는 규범을 존중할 수 있지만 그것에 매 혹되거나 정서적으로 연결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둘째, 물론 이러한 정서적 차원만으로 가치 현상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가치는 정서적 차원에 더하여 개념적(conceptual) 차원을 가지며, 무언가를 바람직한 것 으로 개념화하도록 이끈다.
가치는 단순히 우리가 실제로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무언가이며, 우리로 하여금 욕망을 긍 정적 또는 부정적으로 평가하게 만든다.38)
자기초월은 바로 이러한 요아스의 가치 이론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이 다.
그는 자기초월의 경험을 “한 사람이 자신을 초월하는 경험, 그러나 적어도 즉각적으로는 도덕적 성취의 의미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경계를 넘어 끌려가는, 나 자신 밖의 무언가에 사로잡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으로부터의 이완이나 해방의 의미에서의 경험”으로 정의한 다.39)
이러한 경험들은 개별적이거나 집단적일 수 있으며, 타자와 기쁘 게 동일시하는 경험부터 파괴적 증오의 폭력적 경험까지 광범위한 현상 학적 스펙트럼을 포괄한다. 또한 타자의 이익과 필요에 대한 적극적 헌 신뿐만 아니라 때로는 자기 자신이 세계와 맺고 있는 관계가 소멸할 위 험에 대한 비극적인 경험까지도 아우른다. 요아스의 이론화에서 주목할 점은 가치에서 자기초월로 나아가는 방 향이 종교적 ‘성스러움’(sacredness)에서 자기초월로 나아가는 방향과 본 질적으로 동일한 구조를 갖는다는 것이다.
요아스에 따르면, 성스러움의 발생은 근본적으로 인간학적 현상이다.40)
38) Matteo Santarelli, “Values, Valuations, and Power: Re-Assessing and Applying Joas’ Theory of Values,” Iride 34/3 (2021), 582.
39) Hans Joas, Do We Need Religion? On the Experience of Self-transcendence (Boulder, Colorado: Paradigm Publishers, 2008), 7.
40) Hans Joas, “Sacralization and Desacralization: Political Domination and Religious Interpreta tion,” Journal of the Society of Christian Ethics 36/2 (2016), 27.
종교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때때로 자기 경계를 넘어 끌려가는 느낌을 받는 경험, 즉 자기초월의 경험을 한다.
이러한 경험을 할 때, 그들은 불가피하게 자신 이 경험한 힘의 원천을 자신의 의지력을 넘어서지만 동시에 자신의 생명 력이 의존하는 것으로서 자기의 ‘외부에’ 위치한다고 식별하고 감각한다. 그래서 이러한 원천들에는 일상생활에서 발견되는 사물, 개인, 상황들과 는 다른 특별한 성질들이 부여되어야 한다.
만약 이들이 성스러운 것과 그 원천들에 대한 경험에 비추어 도덕적으로 수용 가능한 것이 무엇인지 를 사유하기 시작한다면, 종교현상학적으로는 선과 악, 신적인 것과 악 마적인 것을 모두 포함할 수 있는 성스러운 것은, 결국 절대적으로 선한 것이 된다.
요아스에 따르면, 성스러움이란 어떤 것의 가치가 절대적이고 무조 건적이며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상대적이고 조건적인 모든 평범 한 것과 질적으로 다르다는 믿음의 산물을 가리킨다.
여기서 요아스는 종교사회학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뒤르켐(Émile Durkheim)에 의지하여 ‘성스러운 것’과 ‘종교적인 것’(the religious)을 구별한다.
뒤르켐은 “종교 란 성스러운 사물들, 즉 구별되고 금지된 사물들과 관련된 믿음과 의례 가 결합된 체계”이며, 그러한 성스러운 사물들과 관련된 믿음과 의례가 곧 “교회라고 불리는 단일한 도덕적 공동체 안으로 그것을 신봉하는 모 든 사람을 통합시킨다”고 설명한다.41)
성스러움과 달리 종교들은 “성스 러움의 경험을 해석하고, 실천들과 서사들을 통해 이 경험을 용이하게 하며 제도들을 통해 그것에 지속적 형태를 부여하려는 시도들”로서,42) 종교와 성스러움은 동일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둘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는 것이 요아스가 이해하는 뒤르켐 종교사회학의 근본 전제이다.
실제로 다른 세속적 내용들도 성스러움의 특징적 자질들, 즉 주관적 자명성과 정서적 강도를 띨 수 있으므로, 성스러움은 새로운 내용에 부 여될 수 있으며, 이동하거나 전이될 수 있다고 요아스는 지적한다.43)
41) 에밀 뒤르켐/민혜숙 · 노치준 옮김,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 (서울: 한길사, 2020), 188.
42) Joas, “Sacralization and Desacralization,” 26.
43) Hans Joas, The Sacredness of the Person: A New Genealogy of Human Rights (Washington, DC: Georgetown University Press, 2013), 5.
그 에 따르면, 현대 사회에서는 자유, 평등, 인권, 민주주의, 애국과 같은 여 러 세속적 가치들이 전통 사회의 종교적 믿음과 같은 성스러움의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현대에도 성스러움의 경험에 논리 이전의 믿음과 감정이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리하여 성스러운 것의 힘은 지배 권력을 종식 하고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한 동력이었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신성화하는 폭력적 잠재력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요아스의 자기초월 개념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그것이 가 치 또는 성스러움이 생성되는 경험적 토대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그에게 자기초월의 경험은 가치 생성의 핵심적 동력으로, 가치가 순수한 합리적 계산이나 외적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개인이 자신의 경계를 넘어서는 강렬한 경험을 통해 생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경험은 개인에게 주관적 자명함과 정서적 강렬함을 동반하며, 단순한 선호나 의견을 넘어 삶의 방향을 규정하는 근본적 지침이 된다.44)
자기초월 경험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그것이 개인의 의지 나 통제를 벗어난 수동적 성격을 지닌다는 점이다.
요아스는 이를 ‘사로 잡힘’(Ergriffensein) 또는 ‘자기항복’(self-surrender)이라는 개념으로 설명 한다.
그에게 어떤 것이 가치를 지닌다는 확신은 “의지의 행사를 통해서 가 아니라 자기항복을 통해, 더 정확히는 이러한 자기항복을 통해 이상 적 힘들이 개인에게 힘을 주고 지탱해 줄 때 달성되는 것이다.”45)
개인은 의도적으로 자기초월을 추구할 수 있지만, 진정한 자기초월의 경험은 무 언가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사로잡히는 방식으로 다가온다.
이는 자아가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힘이나 대상에 의해 압도당하고 이끌리는 경험을 의미한다.46)
44) Hans Joas, Faith as an Option: Christianity’s Possible Futures (Redwood City, California: Stanford University Press, 2014), 22-23, 84-85.
45) Joas, The Genesis of Values, 52.
46) Joas, The Sacredness of the Person, 153-154.
그야말로 사건에 휘말리는 경 험인 것이다. 요아스는 1997년에 출간한 초기 대표작 『가치의 생성』에서 개인적 또는 집단적 가치의 생성 과정에 대해 뒤르켐 종교사회학뿐만 아니라 미 국의 실용주의 철학자 제임스(William James)의 종교심리학에도 상당히 의지하여 가치가 생겨나는 경험을 해부하고 종합했다.47)
그는 가치에 대 한 더 강한 헌신이 어떻게 실제로 생겨나는지, 나아가 가치에 대한 몰입 과 헌신이 어떻게 발생하는지에 대한 물음이 여전히 공적 논의에서 철저 히 결여되어 있다는 관찰에서 출발한다.
가치는 합리적으로 생산되거나 강제적 주입을 통해 전파될 수 없다는 점에서만 광범위한 합의가 이루어 져 있을 뿐이다.
가치에 대한 헌신은 확실히 잘 계획된 주체들의 의도에 서 생겨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강한 가치 헌신에 수반되는 “나는 달리 할 수 없다”는 느낌을 불쾌한 제약이 아니라 자유의지의 발로이자 대의(大 義)에 대한 지지의 표현으로서 경험한다.
바로 여기에 가치의 역설이 있 다. 요아스는 “불가피하면서도 동시에 자발적인 가치에 대한 헌신이라는 이 명백히 역설적인 느낌이 어떤 경험들로부터 생겨나는가?”라는 질문을 가치의 발생 기원 또는 그것의 생성 과정을 해명하려는 자신의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는다.48)
47) Joas, The Genesis of Values, 35-36; 윌리엄 제임스/김재영 옮김,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서울: 한 길사, 2000); 신진욱, 『한스 요아스, 가치의 생성』 (서울: 컴북스, 2018), 21.
48) Joas, The Genesis of Values, 5; 신진욱, 『한스 요아스, 가치의 생성』, 21-22.
요아스에 따르면, 개인은 특정 대상에 가치를 ‘부여하기로’ 의식적으 로 결심하거나 선택할 수 없다.
오히려 가치는 예기치 않게 일상으로 침 입하는 강렬한 체험 — 제임스가 ‘사로잡힘’ (being seized)이라 부른 순간 — 을 통해 스스로 드러나며, 그때 비로소 나에게 소중한(valuable) 것이 된다.
이 체험은 먼저 자기항복의 수동적 차원을 지닌다.
이는 초월적인 무엇에게 자신을 온전히 열어 놓는 전면적 몰입의 상태이지만, 동시에 새롭게 인지된 보이지 않는 세계의 질서와 그것이 주는 안전·평화에 응 답하여 삶의 방향 전체를 전환하려는 능동적 결단을 촉발한다. 제임스가 ‘신앙 상태’(faith-state)라 명명한 이러한 지속적 전환은 내적 평온과 ‘존 재하려는 기꺼움’을 낳을 뿐 아니라 행위의 지평을 일상 너머로 확장한 다.
이처럼 가치는 금지와 규제를 중시하는 도덕적 규범과 달리, 인간을 일탈적 열정으로 이끌어 자기초월적 행동을 가능케 하는 경험적 사건 속에서, 수동성과 능동성이 긴밀히 얽힌 채 생성된다.49)
바로 이러한 수동성으로 인해 자기초월의 경험은 개인의 상징적 자 아 경계가 일시적으로 해체되거나 확장되는 것을 필연적으로 수반할 수 밖에 없다.
이를 통해 개인은 타자, 자연, 이상, 혹은 신적인 것과의 새로 운 관계 맺음이 가능해지며, 기존의 자기중심적 관점에서 벗어나 더 넓 은 세계와 연결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결과 기존의 자아가 해체되고 새로운 자아로 재구성되는 과정을 겪기도 한다. 이러한 자기형성의 경험 을 통해 개인이 기존의 자기 이해를 넘어서며, 새로운 정체성 발견의 가 능성을 얻는다는 것이 요아스의 핵심적 통찰이다.50)
여기서 요아스의 자 기초월 개념이 갖는 특별한 의의가 발견된다. 그것은 자기초월을 단지 종교적 경험에만 국한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자기초월 경험의 사 례로 전통적인 종교적 회심이나 기도뿐만 아니라, 사랑에 빠지는 경험, 자연과의 깊은 교감, 미적 황홀경, 죽음과의 대면, 깊은 연민, 집단적 열 광, 심지어 폭력 경험의 충격 등 매우 다양한 항목들을 제시한다. 이는 자기초월이 특정 문화나 종교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 경 험의 한 양상임을, 즉 인간 경험의 보편적 현상으로서 광범위한 현상학 적 범위를 갖는다는 점을 시사한다.51)
49) Hans Joas, The Power of the Sacred: An Alternative to the Narrative of Disenchantment (Oxford, UK: Oxford University Press, 2021), 34-35; 신진욱, 『한스 요아스, 가치의 생성』, 22.
50) Joas, The Power of the Sacred, 81-82, 242.
51) Hans Joas, Under the Spell of Freedom: Theory of Religion after Hegel and Nietzsche (Oxford, UK: Oxford University Press, 2024), 195, 216.
따라서 요아스 이론의 독창성은 자기초월 경험과 신성화(sacraliza tion) 과정, 그리고 가치 생성 사이의 연결고리를 체계적으로 탐구한 데 있다. 그에게 자기초월 경험은 그 자체로 가치가 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초월 경험은 그 경험의 대상이나 원천에 대해 성스러움이라는 특별한 질 적 특성을 부여하는 경향으로 이어진다. 자기초월의 경험을 통해 생성된 “새로운 가치를 그 중심에 두는 새로운 삶과 사회의 가능성을 하나의 ‘전 체’로서 상상적으로 이상화”하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문화적 자원과 제도 환경 속에서, 그러나 기존의 해석 틀에 융합될 수 없는 새로운 체험 의 의미를 명료화하는 행위를 통해 새로운 자아 이상과 사회적 이상을 탄생”시켜야만 비로소 그 성스러운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가치 헌신이 일어날 수 있다.52)
52) Joas, The Genesis of Values, 115, 134-135; 신진욱, 『한스 요아스, 가치의 생성』, 24.
종교사회학적 관점에서 이러한 성스러움이 강력한 정 서적 확신과 구속력을 지니며, 비록 세속적인 이념이나 대상일지라도 강 렬한 자기초월의 경험을 통해 신성화될 수 있다는 사실이 특히 중요하 다.
그런 점에서 신(神)과 같은 초월적 실재에 성스러움의 의미를 배타적 으로 부여하는 전통적 종교의 신성(神性, divinity) 개념과 반드시 일치하 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기에 자기초월의 탈종교적 차원에 대한 요아스 의 이해에서 우리는 안병무의 민중의 자기초월에 대한 논변과의 유사성 을 발견할 수 있다.
2. 자기초월의 이론화에서 안병무와 요아스의 공통점과 차이점
안병무와 한스 요아스의 자기초월 개념은 서로 다른 이론적 배경과 강조점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이 기존의 한계를 넘어서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하는 경험의 중요성을 공유하며, 이 경험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변혁적 힘을 인식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공통점을 지닌다.
첫째, 두 학자 모두 자기초월을 통해 자아정체성의 한계 돌파를 핵심 적인 주제로 다룬다.
안병무는 역사를 초월하는 것과 대조하여 자기초월 을 “자기를 초월함으로써 갈등의 역사 속에 자기를 투신하여 역사를 변 혁하자는 행위”53)로 규정하며, 요아스는 자기초월 경험을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방향으로 끌려가는 듯한 경험”54)으로 정의한다.
53) 안병무, 『민중신학 이야기』, 226.
54) Joas, “Sacralization and Desacralization,” 28.
이는 개인 또 는 집단이 기존의 내적·외적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존재양식과 행위 능력을 획득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두 학자 모두에게 자기초월은 도덕적 성취나 자기계발이 아닌, 자기 바깥의 어떤 실재나 가치, 감동과 같이 설 명할 수 없는 힘에 의해 자아의 경계가 무너지고 이끌리는 경험 가운데 서 발생하는데, 이 힘은 주체 자신에 내재적인 것이 아니라 외재적인 것, 곧 ‘초월적 힘’으로 해석되며, 일상의 존재들과는 구별되는 특수한 성질 을 부여받는다.
그리고 이렇게 구성된 해석이 바로 인간의 자아를 넘어 서는 더 큰 실재의 현존을 직감하게 만드는, 예컨대 “예수 그리스도 사 건, 즉 민중사건”55)과 같은, 인간학적인 보편 현상으로서 “성스러움의 생 성 기원”56)이 된다.
둘째, 두 이론 모두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안병무에게 민중의 자기초월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사건으로, 정확히는 그 사건에 휘말리 는 경험으로 나타난다고 표현될 만큼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경험에 기반 하며, 요아스 역시 가치는 자기형성과 자기초월의 경험 속에서 발생한다 고 주장함으로써 생생한 인간 경험을 자신의 자기초월 이론의 출발점으 로 삼는다.
요아스는 자기초월 개념이 단순히 인지적 판단이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깊은 층위에 뿌리박은 경험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점에서 그는 단지 신념 체계가 아니라 실존적이고 감 응적인 체험의 차원에서 자기초월의 문제에 접근한다고 볼 수 있다.57)
55) 안병무, 『민중신학 이야기』, 117.
56) Joas, “Sacralization and Desacralization,” 28.
57) Isaak Deman, “The Role of Religious Experiences and Religious Institutions: Comparing Peter L. Berger’s and Hans Joas’ Approach to Religion,” Method & Theory in the Study of Religion 34/4 (2021), 328-348.
그런데 안병무도 자기초월을 “그 어떤 기존의 것일지라도 그로부터 자유 한 힘의 발휘”가 나타나는 “해방의 극치상태”로 묘사함으로써 자기초월 이 단순한 관념적 차원을 넘어서는 실존적 해방의 체험임을 분명히 한 다.58)
58) 안병무, 『민중신학 이야기』, 223.
따라서 안병무와 요아스 모두 자기초월을 어떤 일시적인 감정의 분출이나 규범의 내면화가 아니라, 주체가 세계와 새롭게 관계 맺는 창 조적·수용적 경험의 산물로 설명한다고 볼 수 있다.
셋째, 두 이론 모두 자기초월이 지닌 사회 변혁적 잠재력을 인식한 다.
안병무의 자기초월은 1970~80년대 한국 민중운동 및 민주화운동의 핵심 동력이었으며, 요아스의 자기초월에서 비롯된 가치 헌신은 근대적 인권 사상의 효시를 이룬 프랑스 혁명(1789-1799)과 같은 새로운 사회운 동을 촉발하고 기존 규범을 변화시키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즉, 자기초 월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 전체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힘을 지닌다 는 점에 두 학자 모두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학자의 자기초월 이론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차이점들이 존재한다.
첫째, 이론적 틀에서 차이가 나타난다.
안 병무는 민중신학이라는 역사적으로 특수한 한국적 상황신학의 해석 틀 내에서, 특히 예수사건과의 유비 및 그것의 현재적 재현이라는 탈(脫)신 학적 인식론의 관점에서 자기초월을 설명한다.
반면에 요아스는 종교사 회학, 실용주의 철학, 현상학 등 보다 보편적이고 학제적인 사회과학 및 철학의 방법론을 활용하여 자기초월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가치 생성을 이론화한다.
둘째, 경험의 성격에 대한 강조점이 다르다.
안병무의 자기 초월은 주로 한국의 민주화운동사라는 특정한 시공간적 배경 속에서 노 동자·농민·도시빈민을 아우르는 민중이 겪었던 집단적 고난, 정치적 억 압, 그리고 이에 대한 학생·지식인·활동가·종교인·재야 정치인 등의 사회 적 연대와 저항의 조직화라는 집단적 투쟁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이에 반해, 요아스의 자기초월은 종교적 체험, 예술적 영감, 사랑의 감정, 위 기 상황 등 인간 삶의 보다 광범위한 영역에서 발생하는 보편적이고 강 렬한 개인적 또는 집단적 경험들을 포괄적으로 다룬다.
셋째, 초월의 지향점 및 주된 결과에 대한 설명이 상이하다.
안병무 에게 자기초월의 결과는 민중의 역사적 주체로의 각성, 예수사건의 현재 적 재현을 통한 신학적 의미 부여, 그리고 타자를 향한 자기희생적 헌신 등으로 구체화된다.
이와 달리, 요아스에게 자기초월의 결과는 새로운 가치의 생성, 그 가치에 대한 깊은 정서적 헌신, 때로는 그 가치에 대한 성스러움의 경험으로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변혁의 구체성에서도 양자 는 차이를 보인다. 안병무의 자기초월은 민주화운동과 같은 구체적인 정 치적·사회적 변혁의 실천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그 동력을 제공하는 것 으로 이해된다.
반면에 요아스의 이론은 사회 변동의 일반적인 메커니즘 으로서 새로운 가치의 생성과 이에 따른 사회적 규범의 변형 및 재구성 에 대한 상대적으로 더욱 일반론적인 함의를 지닌다.
다음 절에서는 이러한 비교 분석을 토대로, 특히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에서, 안병무의 자기초월 개념이 요아스 의 가치 생성 이론을 통해 어떻게 새롭게 해석될 수 있으며, 민중의 저항 과 새로운 민주적 가치의 생성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논한다.
3. 요아스의 이론을 통한 안병무 자기초월론의 종교사회학적 재해석
이제 안병무의 민중신학적 통찰이 지닌 현재적 의미를 요아스의 사 회이론적 틀을 통해 조명함으로써, 민중의 자기초월 경험이 갖는 보편적 가치 창출의 동력과 위기에 처한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공헌할 수 있 는 가능성을 네 가지 측면에서 탐색해 보자.
첫째,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일으킨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은 민중의 저항이 갖는 자기초월적 의미 를 새롭게 조명하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다.
비상계엄 선포와 그 이후 전개된 일련의 정치적 격변은 한국 민주주의를 심각한 위기 상황으로 몰 아넣었다.
계엄령 선포에 이은 국회의 즉각적인 해제 결의안 통과, 그리 고 이에 대한 전광훈, 손현보 등 극우개신교 지도자들의 조직적 선동과 법치주의 및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폭력적 집단행동의 정당화 시도는 한 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후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 의결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결정에도 불구하고, 대선 국면을 거치면서 극우 개신교 세력의 목소리가 다시 커지는 상황은 87년 6월 항쟁과 이후 수많 은 촛불 항쟁을 통해 이룩한 한국 민주주의의 기반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러한 초유의 민주주의 위기 상황은 동시에 민중의 저항과 정치 참여가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발전시키는 데 얼마나 결정적 인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엄중한 상황에 맞서 민중들은 다양한 형태로 저항 의 목소리를 높이고 행동에 나섰다.
12월 3일 밤 충격적인 비상계엄 선 포 소식에 분노한 대중들이 국회 앞으로 속속 모여들어 현장에 투입된 군경에 맞서 뜬눈으로 밤을 새며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끌어냈음 은 주지의 사실이다.
계엄 선포에 분노한 대중들의 집회는 윤석열 대통 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이 예고되었던 2024년 12월 7일 오후 3시부 터 국회 앞에서 이어졌다.
그리하여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선고 로 대통령 윤석열이 파면될 때까지 전국에서 진행된 대통령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여론 형성, 그리고 2024년 12월 21일 부터 22일 새벽까지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의 트랙터 행진과 남태령에 서의 경찰 차벽 저지에 맞선 시민들의 적극적인 연대와 자발적인 지지 및 후원 활동을 통해 봉쇄 해제를 끌어낸 일명 ‘남태령 대첩’ 등은 위기 상황에서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거대한 사회적 열망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들로 남아 있다.
이러한 집단적 저항 행위들은 단순히 개인적인 불만 표출을 넘어, ‘87년체제’ 성립 이래로 대한민국의 근본적 가치로 자리 잡은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이로부터 더 많은 민주주의를 실현하여 보다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개인의 안위나 이해관계를 넘어서 공동체의 가치를 위해 헌신하는 자기초월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안병무가 민중에게서 발견했던 “집단으로서의 민중 이 자기초월을 할 수 있다”는 통찰과도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즉, 민주주 60 神學思想 209집 · 2025 여름 의의 위기라는 극한 상황은 역설적으로 민중들의 자기초월적 저항을 촉 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둘째, 요아스의 가치 생성 이론의 핵심 개념들은 안병무의 자기초월 개념과 깊은 이론적 연결점을 형성하며, 민중사건의 현대적 의미를 확장 하는 데 중요한 틀을 제공한다.
앞서 살펴봤듯이, 요아스의 주된 논점은 자기초월 경험이 새로운 가치를 생성하고, 이 가치들은 강한 정서적 몰 입과 주관적 자명성을 동반하며, 때로는 ‘성스러움’을 부여받아 강력한 행동의 동기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기초월 경험이 사회·정치 제 도(민주주의·인권)와 연결되는 경로를 명확히 그려냄으로써, 이성적 판단 이나 합리적 선택 이전에 강렬한 경험이 가치 생성의 근원임을 보여주었 다.
이러한 요아스의 관점에서 안병무가 기술한 민중의 집단적 고난, 저 항, 그리고 그 속에서의 각성과 연대의 경험, 즉 ‘민중사건’은 요아스가 말하는 자기초월 경험의 한 가지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아니 어쩌면 가 장 대표적인 형태로 이해될 수 있다.
물론 안병무가 “절망과 체념에서 되살아난 이 군상, 이들이 참민 중”59)이라고 주장한 것은, 요아스가 말하는 “자신의 경계를 넘어 끌려가 는 경험” 또는 “자신에 대한 집착으로부터의 이완이나 해방”의 경험을 전 제로 하지 않고서는 설명 불가능하다.
59) Ibid., 338.
민중이 억압적 현실 속에서 개인 적 한계를 넘어 집단적 연대를 통해 저항에 나서는 과정 자체가 강력한 자기초월의 경험이며, 이 경험은 새로운 가치를 잉태할 수 있는 잠재력 을 지닌다.
특히 안병무가 민중을 미화하는 대신에 시종일관 “민중은 자 기초월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강조한 점은 요아스의 ‘가치 일반화’(value generalization) 개념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민중의 자기희생적 저항과 연대는 기존 질서에 대한 반발을 넘어, 인권, 인간 존엄성, 정의, 평등, 연대, 생명 존중과 같은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확립하는 과정 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요아스의 이론은 상충하는 가치 들을 성찰적으로 소통하는 가운데 특정 가치를 보편적으로 만드는 ‘가치 일반화’ 과정을 통해 가치 생성 메커니즘을 설명함으로써, 민중사건론의 종교사회학적 함의를 더욱 풍부히 드러낼 수 있다.
셋째, 민중의 저항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기초월 경험은 새로운 민주 적 가치들이 형성되고 확산되는 결정적인 동력으로 작용한다. 12·3 비상 계엄 사태와 같은 극단적인 민주주의 위기 상황은 민중들에게 깊은 분노 와 절망감을 안겨주지만, 동시에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일깨우고 개인 적 안위나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집단적 행동, 즉 저항을 추동한다.
이러 한 저항의 과정은 그 자체로 강력한 개인적·집단적 자기초월 경험을 수 반한다. 민중들은 자신들의 일상적 삶의 경계를 넘어 민주주의 수호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연대하며, 이 과정에서 기존의 무력감이나 개인주의 적 성향을 극복하고 새로운 정치적 주체로 거듭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안병무가 언급한 “죽어야만 산다”는 자기초월의 역설적 논리 구조는, 민 주주의라는 더 큰 가치를 위해 개인적 희생을 감수하는 자기초월적 저항 의 모습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민중의 저항이라는 강렬한 자기초월 경험은 기존의 권위주의 적 가치관이나 낡은 이념, 개인주의적 가치관을 해체하고, 그 자리에 새 로운 민주적 가치를 생성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인민주권, 자유, 평 등, 시민적 연대와 직접 참여, 공적 추론과 합리적 의사결정, 대화와 타 협, 법치주의와 다원주의 같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들이 저항의 경험 속에서 새롭게 인식되고 내면화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요아스가 강조 한 ‘명료화’(articulation)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즉, 민중은 저항의 구체적인 실천과 그 과정에서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들이 추구하는 민주 적 가치들을 구체적인 언어, 상징, 이야기, 그리고 행동양식으로 표현하 고 공유하며, 이를 통해 그 가치들은 더욱 명확한 의미와 사회적 힘을 획 득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민중의 저항을 통해 생성되거나 재확인된 민주적 가치 들은 단순한 추상적 원칙이나 구호에 머무르지 않고, 참여자들에게 강렬 62 神學思想 209집 · 2025 여름 한 정서적 지지와 깊은 헌신을 불러일으킨다.
요아스의 이론에 따르면, 이러한 자기초월 경험에서 비롯된 가치들은 종종 ‘성스러움’의 차원을 획 득하여,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불굴의 의지와 희생을 정당화하고 추동 하는 강력한 동기를 이룬다.
이는 비상계엄 및 탄핵 정국에서 극우개신 교 세력이 언어도단(言語道斷)에 가까운 ‘국민 저항권’이라는 허울 좋은 이 름으로 ‘서울서부지방법원 점거 폭동’과 같은 위법한 폭력적 집단행동을 정당화하려 했던 행태와는 근본적으로 대조된다.
민주주의의 근본 가치 를 수호하기 위한 민중의 자기초월적 저항은 그 자체로 진정한 의미의 성스러운 가치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러한 가치에 대한 헌신은 민주주의 를 위협하는 어떠한 세력에도 굴하지 않는 힘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안병무가 민중의 자기초월 사건에서 예수사건의 현재화를 보 았듯이, 민주주의 위기 상황에서 민중의 자기희생적 저항을 통해 새로운 민주적 가치가 생성되고 확산되는 과정 역시 예수사건을 오늘날 우리 사 회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라는 구체적인 형태로 새롭게 현존하고 활동하는 방식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이는 민중신학이 지닌 예언자적 역할과 그 현재성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는 지점이다.
이 와 같이 안병무가 바라 본 자기초월에 대한 민중의 헌신성과 새로운 사 회에 대한 열망은 요아스의 가치 생성이나 성스러움의 개념을 통해 종교 사회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으며, 이는 그들의 저항이 지닌 정당성과 변 혁적 힘을 더욱 강화하는 이론적 토대로 작용한다. 즉,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민중의 헌신적 저항은 자기초월 경험을 통해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가 새롭게 생성되거나 재확인되고, 이 가치가 참여자들에게 성스러 운 의미를 띠게 되어 강력한 행동 동기를 부여하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요컨대, 요아스의 가치 생성 이론을 통해 안병무의 자기초월 개념을 재조명하는 작업은 민중신학의 현대적 의의를 밝히고 그 실천적 함의를 확장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다.
결정적으로 요아스의 이론은 안 병무의 자기초월 개념이 한국의 민중운동 및 민주화운동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맥락을 넘어 인간의 보편적인 자기초월 경험과 그로부터 비롯되 는 가치 생성 과정의 중요한 실례로서 이해될 수 있는 이론적 틀을 제공 한다.
이를 통해 민중신학의 논의가 더욱 넓은 학문적 대화의 장(場)으로 진입하고, 그 보편적 설득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기에 안병무의 자기초월 개념을 요아스의 가치 생성 이론으로 재해석함으로 써, 민주주의 위기 상황에서 민중이 단순한 수동적 피해자나 관찰자가 아니라, 자기초월적 저항과 연대를 통해 새로운 민주적 가치를 창출하고 역사의 주체로 나설 수 있는 능동적 행위자임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민중의 저항과 정치 참여가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얼 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가 될 수 있다.
민중의 자기초월적 경험은 새로운 민주적 가치와 규범을 생성하는 원천이며, 이러한 가치에 대한 정서적 헌신과 예수사건의 재현으로서 민중사건을 통한 성스러움의 경험은 민주주의를 위한 지속적인 투쟁의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Ⅳ. 결론
안병무가 제시한 자기초월의 구체적 발현 양상들은 그의 민중신학이 상아탑 속에서 이루어진 관념적 사유의 산물이 아니라, 한국 민중의 고 통스러운 역사 현실에 깊숙이 참여하며 형성된 실천적인 ‘증언의 신학’임 을 명확히 보여준다.
어머니들의 기도에서 나타난 개인적 슬픔의 사회 적·민족적 아픔으로의 승화, 전태일과 송광영으로 대표되는 노동자와 학 생들의 자기희생적 저항, 그리고 안병무 자신의 감옥 경험을 통한 기존 도덕률을 넘어서는 민중 이해는 모두 자기초월이라는 핵심 개념을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안병무가 민중운동 현장 및 민주화운동 과정에 몸 소 참여하면서 목도한 그러한 자기초월의 사례들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공동체적 각성과 연대를 촉발했으며, 한국 사회 발전의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했다. 안병무는 자신이 경험했던 민중의 자기초월적 사건들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이 민중들을 통해 재현되고 있음을 통찰하 며, “민중사건은 예수사건이다”60)라는 혁신적인 명제를 통해 그 신학적 의미를 체계화했다.
60) Ibid., 117. 정용택 | 민중의 자기초월과 민주적 가치의 생성 ‐ 안병무와 한스 요아스의 이론적 대화를 중심으로 65
이는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이 2천 년 전의 단회 적 과거사가 아니라, 고난받는 민중의 자기초월을 통해 현재 진행 중인 화산맥과 같은 역사적 현실임을 확증하는 것이었다.
나아가 그는 1970~80년대 ‘하느님의 선교’의 이름으로 수행된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민중운동 및 민주화운동 참여가 단순히 일부 정치적인 그리스도인들에 국한된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역사 가운데 화산맥으로 흘러온 예수사건의 반복과 재현이라고 보았다. 결국 안병무에게 민중의 자기초월은 억압적 현실을 변혁하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주체적 힘 이자, 신의 구원 활동이 가시화되는 통로였던 셈이다. 그의 이러한 구체 적 사례 제시는 민중신학이 한국 현대사의 특수한 맥락 속에서 민주화운 동의 정신적·신학적 토대를 제공했음을 보여준 증거인 동시에, 고난받는 민중의 삶 속에서 자기초월의 가능성을 통해 희망과 해방의 가능성을 발 견하려 했던 학문적 탐구의 중요한 성과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안병무의 민중의 자기초월론은 신학이 삶의 현장과 유리되지 않고, 구체적인 역사 적 사건들과의 지속적인 대화 가운데 그 실천적 의미를 찾아야 함을 우 리에게 상기시킨다.
이 글은 그러한 과제를 계승하기 위해 독일의 사회이론가 한스 요아 스의 가치 생성 이론을 통해 안병무의 자기초월 이론을 현대 종교사회학 의 틀에서 재해석하고, 그것이 갖는 보편적 의미와 현재적 적용 가능성 을 논구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즉, 안병무와 요아스의 자기초월 이론을 종합함으로써 현재 한국 사회가 직면한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민중신학의 실천적 과제를 새롭게 조명해보려 한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민중의 자기초월적 경험을 사회적으로 인지하고, 그 경험을 통해 생성된 민주적 가치들을 공동체적으로 공유하고 확산시키며, 나아가 이러한 가 치들이 사회 제도와 문화 속에 뿌리내리도록 하기 위한 실천적 과제의 모색을 요청한다. 또한 종교가 민주주의 위기 상황에서 파괴적이거나 반 동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해방과 사회 정의를 위한 건 설적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실제적 가능성과 그 구체적 조건을 탐구 하는 심도 있는 신학적 성찰과 사회학적 분석의 융복합적 과업을 요구한 다.
궁극적으로 안병무의 신학적 담론과 요아스의 사회과학적 담론 사이 의 이론적 대화는 종교적 경험과 사회 변혁 사이의 복잡하고 역동적인 관계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상보적이고 생산적인 통찰을 제시한다.
안병 무의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민중사건 분석은 요아스의 다소 추상적일 수 있는 일반 이론에 생생한 현실성과 구체성을 부여하며, 반대로 요아스의 보편적 가치 생성 이론은 안병무의 민중신학적 통찰이 갖는 보편적 의미 와 이론적 일반성을 드러내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호 조명 을 통해, 우리는 민중의 자기초월 경험에서 새로운 민주적 가치가 ‘생성’ 되고 ‘신성화’되는 과정,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해서 강력한 사회적 에너 지와 헌신을 창출하는지에 대해 보다 통합적이고 설득력 있는 이해에 도 달할 수 있게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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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초록
이 논문은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로 촉발된 한국 민주주의 위기 상황에서 안병무의 ‘자기초월’ 개념을 한스 요아스의 가치 생성 이 론과 비교 분석하여 민중신학의 현대적 의의를 탐구한다.
안병무는 민중 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 집단적 연대와 역사적 실천을 통해 새로운 가능 성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예수사건이 현재화된다고 보았다.
요아스의 자 기초월 이론과의 대화를 통해 민중의 자기초월적 저항이 새로운 민주적 가치를 생성하고 신성화하는 메커니즘을 규명하며, 이것이 민주주의 수 호를 위한 강력한 동력이 됨을 논증한다.
이를 통해 민중신학이 현재의 민주주의 위기 극복에 기여할 수 있는 실천적 과제를 제시한다.
주제어 자기초월, 민중사건, 가치의 생성, 민주주의, 성스러움
Self-Transcendence of Minjung and the Genesis of Democratic Values — A Theoretical Dialogue between Byung-Mu Ahn and Hans Joas Yong-Taek Jeong Research Professor, Christian Social Ethics Hanshin University Theological Thought Institute 69 T his paper explores the contemporary significance of Minjung theology by analyzing Byung-Mu Ahn’s concept of ‘self-transcendence’ in comparison with Hans Joas’s theory of value genesis, particularly in the context of the Korean democratic crisis triggered by the martial law declaration on December 3, 2024. Ahn argued that the Jesus event becomes present when Minjung transcends their limitations and creates new possibilities through collective solidarity and historical practice. Through dialogue with Joas’s theory of self-transcendence, this study elucidates the mechanism by which the self-transcendent resistance of Minjung generates and sacralizes new democratic values, demonstrating that this becomes a powerful force for defending democracy. The paper argues that these self-transcendent experiences serve as the source of new democratic values and norms, while the emotional commitment to these values and the experience of ‘sacredness’ through minjung-events as manifestations of the Jesus event provide the driving force for sustained struggle for democracy. This research contributes to understanding how Minjung theology can offer practical tasks for overcoming the current democratic crisis.
Key Word Self-transcendence, Minjung-Event, Genesis of Values, Democracy, Sacredness)
논문접수일: 2025년 5월 31일 논문수정일: 2025년 6월 10일 논문게재확정일: 2025년 6월 20일
神學思想 209집 · 2025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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