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무기설(無記說)
"이치에 맞지 않는 질문엔 답하지 않아"
인간사유 뛰어넘는 사변적 문제
신중하고 합리적인 태도로 응답
부처님 가르침 가운데
무기설(無記說)이라는 독특한 가르침이 있다.
구체적으로 답하지 않고 옆으로 미루어 놓았다는 의미로,
사치기(捨置記)라고도 한다.
인간이 가지는 궁극적인 의문에 대해
부처님이 구체적으로 대답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무기설은 무아설(無我說)과 더불어 부처님의
철학적인 사유와 통찰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것으로,
부처님 가르침이 인간의 합리적인 사유를
바탕으로 전개된 것임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나아가 인간 사유의 한계를 벗어난 문제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하지 않는, 신중하면서도
합리적인 자세를 보여주는 예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무기로써 대답한 것으로
대표적인 것이 14무기, 10난무기(難無記)다.
부처님이 무기로써 구체적으로 대답하지 않은 대표적인 질문은
〈중아함경〉'전유경(箭喩經)' 에 보이는 우주와 인간에 대한 문제다.
일반적으로 14무기로 표현되는 14가지 문제는 다음과 같다.
"(1) 세계는 ① 상주(常住)인가 ② 무상(無常)인가
③ 상주이며 또 무상인가 ④ 상주도 아니고 무상도 아닌가.
(2) 세계는 ⑤ 한계가 있는가 ⑥ 한계가 없는가
⑦ 한계가 있거나 또는 한계가 없는가
⑧ 한계가 있지도 않고 한계가 없는 것도 아닌가.
(3) 영혼은 신체와 ⑨ 같은가 ⑩ 다른가.
(4) 여래는 사후(死後)에 ⑪ 존재하는가, ⑫ 존재하지 않는가
⑬ 존재하며 또 존재하지 않는가,
⑭ 존재하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가."
이 14가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것을 14무기라 하며,
③ ④와 ⑦ ⑧의 질문을 제외한 경우에는 10난무기라 한다.
14무기로 표현되는 질문은
우주와 인간에 대한 궁극적인 의문을 보여준다.
먼저 (1)은 이 자연 세계가 영원히 존재하는지
아닌지의 문제로써 시간적인 영속성의 여부를 묻고 있다.
그리고 (2)는 이 세계가 한계가 있는지 없는지를 묻는 것으로,
공간적인 끝이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3)은 영혼과 신체가 같은지 다른지의 문제로서,
인간의 정신적 본질과 신체의 구체적 관계를 묻고 있다.
(4)는 부처님의 사후 문제로서, 이것은 인간이 죽은 뒤
윤회(輪廻)를 하는가를 묻는 것이다.
이 질문들은 모두 미묘하고 심오한 문제를
담고 있는 것으로 긍정과 부정의 단정적인 답변으로
그 의문을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들이다.
'전유경' 은 이 질문들이 "이치와 맞지 않고,
법(法)과 맞지 않으며, 범행(梵行)이 아니어서
지혜로 나아가지 않고, 깨달음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열반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고 말하고 있다.
이들 질문이 진리를 체득하는 데는 물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마치 독화살에 맞은 자가
화살을 빼내지 않고 독의 종류나 화살의 재료를
문제 삼아 논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이는 14무기 같은 질문들이 인간의
구체적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임을 지적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도 이런 문제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제각기 해답을 제시했다.
부처님 당시 사람들은 물론 동서양의 종교가들 또한 다양하게
그 해답을 제시했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의 대답은
과학적 지식과는 전혀 별개의 독단적인 대답이었다.
이런 점에서 이런 미묘한 문제에 대해 신중하고
합리적으로 접근한 부처님의 태도는 특히 돋보인다.
부처님은 언제나 자신의 가르침이 인간의 사유로
이해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임을
제자들 스스로 확인하도록 가르쳤다.
인간의 사유를 뛰어넘는 것에 대해서는
신중하고 조심하는 합리적인 자세를 취했다.
신중한 철학적 자세와 합리적인 사유태도를 보여주는
부처님의 무기설은 2500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신선하게 느껴지는 중요한 가르침이다.
[글 : 이태승 위덕대 불교문화학부 교수 / 불교신문 기사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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