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섭법의 기본교의
마성(摩聖) /팔리문헌연구소장
‘사섭법’(四攝法)이란 팔리어 cattāri saṃgaha-vatthūni, 범어 catvāri saṃgraha-vastūni)를 번역한 불교술어입니다. 이 술어를 중국의 역경승들은 사섭법(四攝法), 사섭사(四攝事), 사사섭법(四事攝法), 사집물(四集物) 등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줄여서 ‘사섭(四攝)’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사섭법을 우리말로 옮기면, ‘네 가지 거두어 주는 일’, ‘네 가지 보살핌’, ‘네 가지 섭수의 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섭수(攝受)’라는 말은 자비로운 마음으로 일체 중생을 두호(斗護)함을 말합니다. 여기서 두호(斗護)함이란 남을 두둔하여 보호함이라는 뜻입니다.
불교사전에서는 사섭법을 “중생을 불법(佛法)에 끌어들이기 위한 보살의 네 가지 행위. ⑴보시(布施). 부처의 가르침이나 재물을 베풂. ⑵애어(愛語). 부드럽고 온화하게 말함. ⑶이행(利行). 남을 이롭게 함. ⑷동사(同事). 서로 협력하고 고락을 같이함.”이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설명은 사섭법의 참뜻을 완전히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섭법에는 불교의 실천이념인 사회사상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간과해 버리면 사섭법의 의미가 퇴색되어 버립니다.
화합과 협동은 공동체에 필요한 중요한 덕목입니다. 섭법(攝法) 또는 섭사(攝事)란 중생을 상호 결합시키는 조건이라는 뜻입니다. 화합과 협동을 통하여 원만한 사회적 관계를 이루려는 이타적(利他的) 실천행이 바로 사섭법의 핵심 내용입니다. 사섭법이란 ‘네 가지의 섭수하고 애호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보살이 고통 받는 중생을 섭수하여 중생에게 친애의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보살을 신뢰하게 하여 나아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게 하는 네 가지 기본적인 실천방법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사섭법은 자비실천의 구체적인 방법인 것입니다.
사섭법의 각 항목은 경전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장아함경>의 「중집경(衆集經)」에서는 혜시(惠施)․애어(愛語)․이인(利人)․등리(等利)로 되어 있고, <대집법문경(大集法門經)>에서는 보시(布施)․애어(愛語)․이행(利行)․동사(同事)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중아함경>의 '수장자경(手長子經)'에서는 혜시(惠施)․애언(愛言)․이리(以利)․등리(等利)로 되어 있고, <중아함경>의 「선생경(善生經)」에서는 혜시(惠施)․애언(愛言)․행리(行利)․등리(等利)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잡아함경> 권26, 667경(經)에서는 혜시(惠施)․애어(愛語)․행리(行利)․동행(同行)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섭법의 각 항목은 경전마다 약간 다릅니다. 현재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사섭법은 보시․애어․이행․동사입니다. 이것은 <대집법문경>에 나오는 것입니다. 이를 근거로 그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보시섭(布施攝, dāna-saṃgaha)이란 자신이 소유한 것을 남에게 조건 없이 베풀어주는 것을 말합니다. 이른바 가난한 자에게는 재(財)를 주고 법(法)을 듣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법을 시여(施與)하는 것입니다. 시여를 하되 법(法)에 맞게 하며, 준다는 생각도 떠나서 베푸는 것이 진정한 보시의 의미입니다. <잡아함경> 권26, '사섭사경(四攝事經)'에서 “가장 훌륭한 보시란 법보시(法布施)다”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아비달마집이문족론(阿毘達磨集異門足論)>에서는 “어떤 것이 보시섭사(布施攝事)인가? 이 가운데서 보시란, 모든 시주(施主)들이 사문과 바라문, 가난한 이, 고행(苦行)을 닦는 이, 도를 수행하는 이, 구걸하는 이들에게 음식과 탕약과 의복과 꽃다발과 바르는 향과 가루 향이며 방사․침구․등촉 등 물건을 보시하는 것이니, 이것을 보시라 한다. 또 마치 세존께서 수장자(手長者)를 위하여 말씀하시되, ‘장자야,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모든 보시(布施) 가운데서는 법보시가 가장 뛰어난 줄 알아야 한다’고 하신 것과 같나니, 이것을 보시라고 한다. 섭사(攝事)란, 이 보시로 말미암아 다른 이를 평등하게 거두어 주고[等攝] 가까이 거두어 주며[近攝] 가까이 지니고[近持] 서로가 친근히 하면서 붙좇는 일이다. 이와 같은 보시는 다른 유정을 평등하게 거두어 주고 가까이 거두어 주며 가까이 지니고 친근히 하면서 따르게 할 수 있나니, 이 때문에 이 보시(布施)로 거두어 주는 일[攝事]을 보시섭사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보시를 논할 때 일반적으로 삼륜공적(三輪空寂)을 말합니다. 삼륜공적이란 시여하는 자가 자신이 시여하는지(施者), 누구에게 시여하는지(受者),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 물건을 시여하는지(施物)를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단지 자비연민(慈悲憐愍)의 정(情)에 이끌려 시여를 행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선으로서의 무아의 보시인 것입니다.
둘째, 애어섭(愛語攝, peyyavajja or peyyavācā-saṃgaha)이란 따뜻하고 사랑스런 말로써 서로 대화하고 서로 위로하며 격려(激勵)하는 것입니다. <잡아함경> 권 26, '사섭사경'에서 “가장 훌륭한 말이란 착한 남자가 듣기를 원하면 때에 맞춰 법을 연설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아비달마집이문족론>에서는 “어떤 것이 애어섭사(愛語攝事)인가? 이 가운데서의 애어(愛語)란, 이른바 기뻐할 만한 말이요, 재미있는 말이며, 얼굴을 펴고 평온하게 보면서 하는 말이요,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하는 말이며, 웃음을 머금고 그보다 먼저 하는 말이요, 그보다 먼저 인사하면서 위로하는 말이며, 좋아할 만한 말이다. 그리고 ‘잘 오셨습니다’하는 말이니, 그는 말하기를, ‘어서 오세요, 잘 오셨습니다[善來]. 구수(具壽)여, 당신은 세상일에 대하여 참을 만하시고 제도할 만하시며 안락하게 계실 만하십니까? 당신은 음식․의복․침구와 그 밖의 살림살이에 모자라는 것은 없으십니까?’고 하는 것이니, 이와 같은 등 갖가지로 위로하고 문안하는 말을 ‘잘 오셨습니다’하는 말이라 한다. 곧 이 말과 앞에서 말한 모든 좋은 말[愛語]들을 통틀어 애어라 한다.
또 세존께서 수장자(手長者)에게 말씀하시되, ‘장자야,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모든 애어 가운데서 가장 훌륭한 것은 모든 선남자(善男子)와 선여인(善女人) 등을 잘 권유하여 인도해서 귀를 기울여 정성스럽게 법을 듣게 하며 어느 때나 법을 설하고 어느 때나 가르쳐 주며 어느 때나 결택(決擇)하게 하는 것이다’고 하신 것과 같나니, 이것을 애어라 한다. 섭사(攝事)란, 이 애어로 말미암아 다른 이를 평등하게 거두어 주고 가까이 거두어 주며 가까이 지니고 서로 친근히 하면서 따르게 하는 일이다. 이와 같이 애어는 다른 유정들을 평등하게 거두어 주고 가까이 거두어 주며, 가까이 지니고 친근히 하면서 따르게 할 수 있나니, 이 때문에 좋은 말[愛語]로 거두어 주는 일[攝事]을 애어섭사라고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사회는 언어의 공동체라는 지적처럼 인간관계에서 언어의 기능(機能)은 매우 큰 비중을 갖습니다. 사실상 사회에서 인간관계는 언어를 통하여 이루어지며 언어는 사회로부터 그 생명력을 얻습니다. 초기경전은 일찍부터 언어의 중요성을 인정하여 중도적(中道的) 실천 덕목인 팔정도(八正道)에서 바른 생활(正命)과 함께 올바른 말(正語)을 중요 항목으로 시설하고 있으며, 초기경전에서 설하고 있는 십선계(十善戒)는 언어의 범계를 가장 무겁게 다루고 있습니다. 애어란 기쁨을 주는 말(可喜語), 조리에 맞는 말(可味語), 환한 얼굴로 하는 말 등으로 설명되기도 합니다.
셋째, 이행섭(利行攝, atthacariyā-saṃgaha)이란 자신을 뒤로하고 남을 먼저 이롭게 하는 이타적(利他的)인 행위를 일컫고 있습니다. 요즈음 표현으로 하면 공익(公益)을 도모하는 것 또는 사회봉사의 개념도 이 속에 포함될 것입니다. <잡아함경> 권 26, '사섭사경'에서 “가장 훌륭한 이익주기란 믿지 않는 사람은 믿음에 들어와서 믿음을 세우게 하고, 계율을 세우려는 이에게는 깨끗한 계율로, 아끼는 이에게는 보시로 나쁜 지혜를 가진 이에게는 바른 지혜로써 끌어들이어, 그것을 세우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아비달마집이문족론>에서는 “어떤 것이 이행섭사(利行攝事)인가? 이 가운데서 이행(利行)이란, 모든 유정으로서 혹은 중한 병이 들어 있거나 혹은 액난(厄難)을 만나 고생하면서 구제할 이가 없을 때에 곧 그곳으로 가서 자비심을 일으켜 몸과 말의 업(業)으로써 방편을 제공하고 시봉하며 방편으로 구제하는 이로운 행[利行]을 하는 것을 이행이라 한다.
또 세존께서 수장자에게 말씀하시되, ‘장자야,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모든 이행 가운데서 가장 훌륭한 것은 믿지 않는 이[不信者]로 하여금 방편으로써 권유하고 인도하며 조복하고 편히 세워서 믿음을 원만하게 하는 것이요, 파계한 이[破戒者]로 하여금 방편으로써 권유하고 인도하며 조복하고 편히 세워서 계율을 원만하게 하는 것이며, 간탐하는 이[慳貪者]로 하여금 방편으로써 권유하고 인도하며 조복하고 편히 세워서 보시를 원만하게 하는 것이요, 나쁜 지혜를 지닌 이[惡慧者]로 하여금 방편으로써 권유하고 인도하며 조복하고 편히 세워서 지혜를 원만하게 하는 것이다’고 하신 것과 같나니, 이와 같은 모든 것들을 말하여 이행이라 한다.
섭사(攝事)란, 이 이행으로 말미암아 다른 이를 평등하게 거두어 주고 가까이 거두어 주며 가까이 지니고 서로 친근히 하면서 따르게 하는 일이다. 이와 같은 이행은 다른 유정들을 평등하게 거두어 주고 가까이 거두어 주며 가까이 지니고 친근해서 따르게 할 수 있나니, 이 때문에 이 이로운 행[利行]으로 거두어 주는 일[攝事]을 이행섭사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넷째, 동사섭(同事攝, samānattatā-saṃgaha)이란 남과 더불어 고락(苦樂)을 함께 나누는 것을 뜻하며, 그 지향하는 바는 스스로를 단체에 동화(同化)시키는 능동적(能動的)인 행동을 말합니다. <잡아함경> 권 26, '사섭사경'에서 “가장 훌륭한 이익 함께하기란, 이른바 아라한에게는 아라한으로써, 아나함에게는 아나함으로써, 사다함에게는 사다함으로써, 수다원에게는 수다원으로써, 계율이 깨끗한 이에게는 깨끗한 계율로써 그에게 주는 것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아비달마집이문족론>에서는 “어떤 것이 동사섭사(同事攝事)인가? 이 가운데서 동사(同事)란, 산 것을 죽이는 이에 대하여 깊이 싫증을 내고 여의는 이로서 그를 잘 도와주는 벗이 되어서 산 것을 죽이는 일을 여의게 하고, 또는 도둑질하는 이에 대하여 깊이 싫증을 내고 여의는 이로서 그를 잘 도와주는 벗이 되어서 도둑질을 못하게 하며, 또는 음욕의 삿된 행을 하는 이에 대하여 깊이 싫증을 내고 여의는 이로서 그를 잘 도와주는 벗이 되어서 음욕의 삿된 행을 여의게 하고, 또는 거짓말을 하는 이에 대하여 깊이 싫증을 내고 여의는 이로서 그를 잘 도와주는 벗이 되어 거짓말을 하지 않게 하며, 또는 술을 마시는 이에 대하여 깊이 싫증을 내고 여의는 이로서 그를 잘 도와주는 벗이 되어서 술을 마시지 않게 하는 것이니, 이와 같이 그 일을 함께하는 것[同事] 등을 말하여 동사라 한다.
또 세존께서 수장자에게 말씀하시되, ‘장자야,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모든 동사 가운데서 가장 훌륭한 것은 아라한과(阿羅漢果)․불환과(不還果)․일래과(一來果)․예류과(預流果)를 얻은 이가 아라한과․불환과․일래과․예류과와 더불어 일을 함께하는 것이다’고 하신 것과 같나니, 이것을 동사라 한다. 섭사(攝事)란, 이 동사로 말미암아 다른 이를 평등하게 거두어 주고 가까이 거두어 주며 가까이 지니고 서로 친근히 하면서 따르게 하는 일이다. 이와 같이 동사는 다른 유정들을 평등하게 거두어 주고 가까이 거두어 주며 가까이 지니고 친근히 해서 따르게 할 수 있나니, 이 때문에 일을 함께하며[同事] 거두어 주는 일[攝事]을 동사섭사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부처님은 일찍이 ‘법(法)에 있어서의 동사(同事)’(samānattatā dhammesu)라 하여, 그 단체의 규칙이나 관습 등이 법에 위배(違背)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자신을 거기에 동화시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만일 법(法)에 위반된다면 거기에서 탈퇴(脫退)한다든가 아니면 이를 개혁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중아함경? 권33, 「선생경(善生經)」에서는 사섭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거사의 아들이여, 네 가지 섭사가 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은혜를 베푼다. 둘째는 정다운 말이다. 셋째는 이로운 행동이다. 넷째는 이익을 같이 하는 것이니라. 이에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시었다.
은혜를 베풀고 정다이 말하여/ 항상 남을 위하여 이롭게 행하며/ 중생과 함께 이익을 같이하면/ 그 좋은 이름은 멀리 퍼지느니라.
이렇게 세상을 껴잡는 것은/ 마치 수레를 모는 사람 같나니/ 만일 세상에 껴잡는 법 없으면/ 어머니는 그 아들로 말미암아/ 공양과 공경을 받들 수 없고/ 아버지가 아들에게도 또한 그러하니라.
만일 세상에 껴잡는 법 있으면/ 그러므로 그 때문에 큰 복을 얻고/ 멀리 비치기 마치 햇빛 같아서/ 이익도 빠르며 드날리기도 빠르니라.
요컨대 이 사섭법은 가정과 사회, 국가와 세계를 하나로 거두는데 필수적인 사회적 도덕이라 하겠습니다. 부처님은 사섭법에 의해 세간을 거두는 것은 마부에 의해 수레가 나가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고 있으며, 수장자(手長子, Hatthaka)가 500대중을 사섭법으로 통섭(統攝)하고 훌륭한 공적을 올려 부처님의 칭찬을 받았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수장자의 일화가 담겨져 있는 ?중아함경? 권1, 「수장자경」의 내용을 읽어보겠습니다.
“수장자(手長子)여, 너는 지금 이처럼 많은 대중을 거느리고 있구나. 장자여, 너는 어떤 법으로 이 대중을 이끌어 들이는가.”
그 때에 수장자는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 사(事)로써 이끌어 들이나이다. 하나는 은혜로 주는 것이요, 둘은 부드럽고 고운 말이요, 셋은 이익 되게 하는 행동이요, 넷은 행동을 같이 하는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것으로 대중을 이끌어 들이나이다. 혹은 은혜로 주는 것으로, 혹은 부드럽고 고운 말로, 혹은 이익 되게 하는 행동으로, 혹은 행동을 같이 하는 것으로써 하나이다.”
세존께서는 찬탄하여 말씀하시었다.
“좋다, 수장자여. 너는 능히 법답게 대중을 이끌어 들이고, 문(門)답게 대중을 이끌어 들이며, 인연답게 대중을 이끌어 들인다. 수장자여, 만일 과거의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법답게 대중을 이끌어 들였다면, 그 전부는 곧 이 사섭법(四攝法)으로써 이끌어 들이고도 남았을 것이다. 수장자여, 만일 미래의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법답게 대중을 이끌어 들인다면, 그 전부는 곧 이 사섭법(四攝法)으로써 이끌어 들이고도 남을 것이다. 수장자여, 만일 현재의 사문이나 범지로서 법답게 대중을 이끌어 들인다면, 그 전부는 곧 이 사섭법(四攝法)으로써 이끌어 들이고도 남을 것이니라.”
이에 세존께서는 수장자를 위해 설법하시어, 마음을 내게 하고 간절히 우러르게 하며, 성취하게 하고 기뻐하게 하시었다. 한량이 없는 방편으로 그를 위해 설법하시어, 마음을 내게 하고 간절히 우러르게 하며, 성취하게 하고 기뻐하게 하신 뒤에 잠자코 계시었다. 그 때 수장자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예배하고 세 번 돌고 물러갔다.
이와 같이 사섭법은 매우 간단한 교설입니다. 하지만 이에 담겨져 있는 사상은 매우 깊고 심오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蔓延)되어 있는 수많은 갈등과 대립, 크고 작은 분규(紛糾)와 소요(騷擾)는 이 사섭법의 적극적인 실천에 의해 극복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부처님처럼 완벽하지 못합니다. 완벽한 사람은 우리 주위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 사섭법을 완벽하게 구비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장 가까운 가정에서부터 이 사섭법을 익히고 실천할 때 가정과 직장이 곧 지상 극락이 될 것입니다. 부처님은 사섭법에 대해 다음과 같은 시로 표현하였습니다.
보시(布施)와 애어(愛語)와/ 이행(利行)과 동사(同事)를/ 알맞게 곳곳에서 해설해서/ 두루 모든 세간을 거두어 주라.
이런 네 가지 거두어 주는 일이/ 세간에 있어서 만일 없다면/ 아들이 그의 부모에 대해서도/ 효도와 봉양을 하려 하지 않으리라.
이 거두어 주는 일이 있기 때문에/ 법이 있는 이는 따라 움직이나니/ 그러므로 대체(大體)를 얻은 이라면/ 그 이익을 보아 시설하게 된다.
끝으로 아무리 훌륭한 교설(敎說)일지라도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없거나 실천하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아무런 소용도 없습니다. 실제로 현실에서 실천할 수 없는 이론, 즉 이론을 위한 이론들은 평범한 가정생활을 하고 있는 일반불자들에게는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붓다의 교설에 대한 이론적 연구는 오직 실천을 위한 것입니다. 이 사섭법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한다면 훌륭한 불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법회와 설법> 통권 제165호, 2009년 02월호, pp. 1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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