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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이야기

[스크랩] 부처님이 갖춘 여덟 가지 위대함?

부처님이 갖춘 여덟 가지 위대함

 

마성(摩聖) /팔리문헌연구소장

 

오늘은 ‘팔무등법(八無等法)’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팔무등법’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특별히 언급된 적이 없기 때문에 다소 생소하게 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이 팔무등법은 초기경전인 <장아함경(長阿含經)>의 세 번째 경인 「전존경(典尊經)」에 설해져 있습니다. [이 경과 대응하는 빨리 경전은 Dīgha-nikāya, No. 19 Mahāgovinda-sutta이다. 한역의 전존(典尊)은 고빈다(Govinda)를 번역한 것이다.] 팔무등법을 우리말로 풀이하면 ‘여덟 가지 비교할 수 없는 법’이라는 말입니다. [빨리 경전인 마하고빈다-숫따(Mahāgovinda-sutta)에서는 ‘여덟 가지 있는 그대로의 칭송(aṭṭha yatha-bhucce vaṇṇa)’으로 되어 있으며, 그 내용도 약간 다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한역 「전존경」의 내용을 번역 · 해석한 것임을 밝혀둔다.]그러면 ‘여덟 가지 비교할 수 없는 법’이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부처님이 갖춘 여덟 가지 위대한 특성을 말한 것입니다. 따라서 팔무등법이란 다른 사람들이 갖추지 못한 오직 부처님만이 갖춘 여덟 가지 위대한 특성이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특성은 다른 사람들이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비교할 수 없는 법[無等法]’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경전에서는 이 팔무등법을 설하게 된 배경이 신화적으로 서술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내용도 매우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 때문에 팔무등법이 주목을 받지 못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팔무등법은 비록 신화의 형식을 빌렸지만 부처님의 위대함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에 우리 불교도들에게는 큰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줄 수 있는 가치 있는 내용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다만 경전에서는 팔무등법의 내용이 너무나 간략하게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그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경전에서 다 기술하지 못한 내용들을 보충 설명함으로써 팔무등법의 중요성과 그 의미를 재조명해 보고자 합니다. 팔무등법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게 되면 부처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인가를 저절로 알게 될 뿐만 아니라 저절로 머리가 숙여질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팔무등법을 설하게 된 배경부터 살펴보고, 그 다음 팔무등법의 내용을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전존경(典尊經)」은 신화적인 형태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 경은 범천이 설주(說主)가 되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신들의 회합에서 삼십삼천의 신들에게 설합니다. 그것을 빤짜시카(pañcasikha) 간답바(Gandhabba)의 아들이 듣고 부처님께 찾아와서 보고하는 형식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 경의 전개과정에서 범천이 여러 신들에게 먼저 부처님의 위대함을 강조하기 위해 팔무등법을 언급하게 됩니다. 경전에서는 범천이 신들에게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래는 지진 · 등정각의 십호를 구족하였습니다. 과거나 미래나 현재에 있어서 이와 같은 지진의 십호를 갖춘 부처님과 같은 이를 보지 못했습니다. 불법은 미묘하여 잘 강설하고 지자의 행하는 바이니 과거나 미래나 현재에 있어서 미묘한 법이 부처님과 같은 이를 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여래는 지진 · 등정각의 십호를 구족하였습니다. 과거나 미래나 현재에 있어서 이와 같은 지진의 십호를 갖춘 부처님과 같은 이를 보지 못했습니다.

 

불법은 미묘하여 잘 강설하고 지자의 행하는 바이니 과거나 미래나 현재에 있어서 미묘한 법이 부처님과 같은 이를 보지 못했습니다.

 

부처님은 이 법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깨닫고 통달하여 걸림이 없어 스스로 즐거워하십니다.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어서 능히 이 법에 스스로 깨닫고 통달하여 걸림이 없어 스스로 즐거워하기 부처님과 같은 이를 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부처님은 이 법으로써 스스로 깨닫고는 또 능히 열반의 경로를 열어 보여 친근하고 점점 나아가 적멸에 드시는 데 이른다. 마치 항하와 염마의 두 물이 모두 큰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것과 같이, 부처님도 또한 그러하시어 능히 열반의 경로를 열어 보여 친근하고 점점 나아가 적멸에 드셨다.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어서 능히 열반의 경로를 열어 보이기 부처님과 같은 이를 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여래는 권속을 성취하셨습니다. 찰제리 · 바라문 · 거사 · 사문들의 지혜 있는 자는 다 이 여래가 성취하신 권속들입니다. 그래서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어서 권속의 성취됨이 부처님과 같은 이를 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여래는 대중을 성취하셨으니 이른바 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이다.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어서 대중을 성취하기 부처님과 같은 이를 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여래는 말과 행동이 서로 응합니다. 말하는 바는 행동과 같고 행하는 바는 말과 같습니다. 이러한 것이 법의 법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래서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어서 말과 행동이 서로 응하여 법의 법이 성취됨이 부처님과 같은 이를 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여래는 이익하게 하는 바가 많고 안락하게 하는 바가 많아 자비심으로써 하늘과 사람을 이익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어서 이익하게 하는 바가 많고 안락하게 하는 바가 많기 부처님과 같은 이를 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여래의 팔무등법(八無等法)입니다. [『長阿含經』권5, 「典尊經」(『大正藏』1, pp.30c-31a)]

 

위에서 인용한 경전의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경전에서 “여러분, 여래는 지진․등정각의 십호를 구족하였습니다. 과거나 미래나 현재에 있어서 이와 같은 지진의 십호를 갖춘 부처님과 같은 이를 보지 못했습니다.” [『長阿含經』권5, 「典尊經」(『大正藏』1, p.30c), “諸賢! 如來 · 至真 · 等正覺, 十號具足. 不見過去 · 未來 · 現在有如來 · 至真, 十號具足, 如佛者也.” ]라고 했습니다. 이 대목은 부처님의 십호구족(十號具足)을 찬탄한 것입니다. 십호(十號)란 ‘붓다의 열 가지 호칭[如來十號]’를 말합니다. 이른바 응공(應供) · 정변지(正遍知) · 명행족(明行足) · 선서(善逝) · 세간해(世間解) · 무상사(無上士) · 조어장부(調御丈夫) · 천인사(天人師) · 불(佛) · 세존(世尊)입니다. 이 열 가지 호칭의 원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즉 ①존중과 공경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자(arahant, 應供), ②완전히 깨달은 자(sammāsambuddha, 正遍知, 正等覺者), ③지혜와 실천을 겸비한 자(vijjācaraṇasampanna, 明行足), ④잘 건너간 자(sugata, 善逝), ⑤세상을 잘 아는 자(lokavidū, 世間解), ⑥가장 높은 자(anuttara, 無上士), ⑦사람을 잘 길들이는 자(purisadammasārathī, 調御丈夫), ⑧신과 인간의 스승(satthā devamanussānaṁ, 天人師), ⑨깨달은 자(Buddha, 佛, 覺者), ⑩존귀한 자(bhagavā, 世尊)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원래 ‘붓다의 열 가지 호칭’에는 ‘여래(如來, Tathāgata)’가 포함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래’라는 단어는 붓다가 자기 자신을 지칭할 때만 사용한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Walpola Rahula, What the Buddha taught (London and Bedford: Gordon Fraser, 1959), p. 1, no. 3; Edward J. Thomas, The Life of Buddha as Legend and History, First Indian edition (New Delhi: Munshiram Manoharlal, 1992), p. 1, no. 1.]마치 왕이 자기 자신을 지칭할 때, ‘짐(朕)’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튼 붓다의 열 가지 호칭 속에 부처님의 위대성이 모두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경에서 말하는 십호구족은 이러한 부처님의 덕성을 드러낸 것입니다.

 

둘째, 경전에서 “불법은 미묘하여 잘 강설하고 지자의 행하는 바이니 과거나 미래나 현재에 있어서 미묘한 법이 부처님과 같은 이를 보지 못했습니다.” [<長阿含經> 권5, 「典尊經」 (<大正藏> 1, p.30c), “佛法微妙, 善可講說, 智者所行, 不見過去 · 未來 · 現在有微妙法, 如佛者也.”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부처님이 설한 법의 위대성을 드러낸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붓다의 가르침이 지니는 기본적인 성격은 ‘법의 여섯 가지 특징’ 혹은 ‘여섯 가지 덕목’으로 표현됩니다. 이른바 ①세존에 의해 잘 설해진 것(svākkhata, 世尊善說法), ②현실적으로 증험되는 것(sandiṭṭhika, 現見), ③시간을 지체하지 않는 것(akālika, 卽時的, 現生的), ④와서 보라고 할 수 있는 것(ehipassīka, 來見的), ⑤열반으로 인도하는 것(opanayika, 引導涅槃), ⑥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paccataṁ veditabbo, 自證)을 말합니다. 그러나 붓다 당시의 종교․사상가들은 어떤 문제에 대해 애매모호하게 답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붓다는 인식론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언어로써 명료하게 표현하였습니다. 그리고 붓다는 제자들에게 스승이 설했기 때문에 진리라고 판단해서는 안 되며, 스스로 검증해 보고 확인한 다음 받아들이라고 충고했습니다. [<長阿含經> 권5, 「典尊經」 (<大正藏> 1, p.30c), “佛由此法, 而自覺悟, 通達無礙, 以自娛樂. 不見過去 · 未來 · 現在能於此法而自覺悟, 通達無礙, 以自娛樂, 如佛者也.” ]이와 같이 붓다의 가르침은 만인에 의해 검증을 거쳤기 때문에 ‘잘 설해진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셋째, 경전에서 “부처님은 이 법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깨닫고 통달하여 걸림이 없어 스스로 즐거워하십니다.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어서 능히 이 법을 스스로 깨닫고 통달하여 걸림이 없어 스스로 즐거워하기 부처님과 같은 이를 보지 못했습니다.” [<長阿含經> 권5, 「典尊經」 (<大正藏> 1, p.30c), “佛由此法, 而自覺悟, 通達無礙, 以自娛樂. 不見過去 · 未來 · 現在能於此法而自覺悟, 通達無礙, 以自娛樂, 如佛者也.”]라고 했습니다. 이 대목은 부처님도 자신이 깨달은 법에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부처님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루었습니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이룬 직후, 자신이 의지할 곳은 오직 자신이 깨달은 법뿐임을 토로한 적이 있습니다. 또한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자기에게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라고 당부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무상(無常) · 고(苦) · 변이법(變易法)이기 때문입니다.

 

넷째, 경전에서 “여러분, 부처님은 이 법으로써 스스로 깨닫고는 또 능히 열반의 경로를 열어 보여 친근하고 점점 나아가 적멸에 드시는 데 이릅니다. 마치 항하와 염마의 두 물이 모두 큰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것과 같이, 부처님도 또한 그러하시어 능히 열반의 경로를 열어 보여 친근하고 점점 나아가 적멸에 드셨습니다.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어서 능히 열반의 경로를 열어 보이기 부처님과 같은 이를 보지 못했습니다.” [<長阿含經> 권5, 「典尊經」 (<大正藏> 1, p.30c), “諸賢! 佛以此法自覺悟已, 亦能開示涅槃徑路, 親近漸至, 入於寂滅. 譬如恒河水․炎摩水, 二水竝流, 入於大海. 佛亦如是, 善能開示涅槃徑路, 親近漸至, 入于寂滅. 不見過去 · 未來 · 現在有能開示涅槃徑路, 如佛者也.”]라고 했습니다. 이 대목은 앞에서 설명한 법의 여섯 가지 특징 중에서 다섯 번째에 해당되는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opanayika, 引導涅槃)’을 말합니다. 부처님의 주된 관심사는 중생들로 하여금 저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외의 것들은 모두 열반으로 인도하기 위한 방편법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불교의 궁극적 목표가 열반증득임은 말할 나위없습니다.

 

다섯째, 경전에서 “여러분, 여래는 권속을 성취하셨습니다. 찰제리․바라문․거사․사문들의 지혜 있는 자는 다 이 여래가 성취하신 권속들입니다. 그래서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어서 권속의 성취됨이 부처님과 같은 이를 보지 못했습니다.”  [<長阿含經> 권5, 「典尊經」 (<大正藏> 1, pp.30c-31a), “諸賢! 如來眷屬成就. 剎利 · 婆羅門 · 居士 · 沙門 · 有智慧者, 皆是如來成就眷屬. 不見過去 · 未來 · 現在眷屬成就, 如佛者也.”]라고 했습니다. 이 대목은 부처님의 후원자는 어느 특정 계급이나 집단 혹은 지역이 아니었음을 말한 것입니다. 당시의 모든 계급의 사람들이 부처님을 존중하고 공경하였습니다. 다른 종교지도자들은 어느 한 집단이나 종족의 지지를 받는데 지나지 않았지만, 부처님은 만인의 스승으로 존경을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부처님은 위로는 왕에서부터 아래로는 거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뭇 신들로부터도 찬탄과 보호를 받았습니다.

 

여섯째, 경전에서 “여러분, 여래는 대중을 성취하셨으니 이른바 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입니다.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어서 대중을 성취하기 부처님과 같은 이를 보지 못했습니다.” [<長阿含經> 권5, 「典尊經」 (<大正藏> 1, p.31a), “諸賢! 如來大眾成就: 所謂比丘 · 比丘尼 · 優婆塞 · 優婆夷. 不見過去 · 未來 · 現在大眾成就, 如佛者也.”]라고 했습니다. 이 대목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교단의 구성원에 관한 내용입니다. 부처님은 자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들을 크게 출가자 집단과 재가자 집단 둘로 구분하였습니다. 부처님은 출가자와 재가자를 구별하지 않고 지도하였습니다. 따라서 부처님은 출가자들만의 스승이 아니라 재가자들의 스승이기도 합니다. 또한 부처님은 당시의 사회적 관습으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여성의 출가를 허락하여 비구니교단을 성립시켰습니다. 당시의 다른 종교지도자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부처님께서 얼마나 시대를 앞서가신 분인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오늘날의 정치 지도자는 자기 출신 지역이나 어떤 특정 계파의 지지를 받지만, 부처님은 국경과 인종을 초월한 모든 이들의 스승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 대목에서 말하고자 하는 본뜻일 것입니다.

 

일곱째, 경전에서 “여러분, 여래는 말과 행동이 서로 응합니다. 말하는 바는 행동과 같고 행하는 바는 말과 같습니다. 이러한 것이 법의 법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래서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어서 말과 행동이 서로 응하여 법의 법이 성취됨이 부처님과 같은 이를 보지 못했습니다.” [<長阿含經> 권5, 「典尊經」 (<大正藏> 1, p.31a), “諸賢! 如來言行相應. 所言如行, 所行如言. 如是則為法法成就. 不見過去 · 未來 · 現在言行相應, 法法成就, 如佛者也.”]라고 했습니다. 이 대목은 한마디로 부처님의 ‘언행상응(言行相應)’을 말한 것입니다. 앞에서 붓다의 열 가지 호칭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부처님은 ‘지혜와 실천을 겸비한 자(vijjācaraṇasampanna, 明行足)’입니다. 글자 그대로 지혜[明]과 실천[行]을 갖추었다는 뜻입니다. 그야말로 부처님은 언행(言行)이 일치(一致)하신 분이었습니다. 붓다 당시의 종교지도자들 중에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언행이 일치하지 않으면 신뢰를 얻지 못합니다. 또한 부처님은 그 사람의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먼저 약속한 사항을 지켰습니다. 이를테면 유녀(遊女) 암바빨리의 공양초대에 응한 후, 릿차비족들이 자신들의 공양초대에 응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에도 부처님은 선약을 지켰습니다. 이처럼 부처님은 아무리 하찮은 사람과의 약속일지라도 그것을 준수하였습니다. 특히 종교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가 바로 ‘언행상응’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정치인들이 존경받지 못하는 것도 그들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덟째, 경전에서 “여러분, 여래는 이익하게 하는 바가 많고 안락하게 하는 바가 많아 자비심으로써 하늘과 사람을 이익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어서 이익하게 하는 바가 많고 안락하게 하는 바가 많기 부처님과 같은 이를 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여래의 팔무등법(八無等法)입니다.” [<長阿含經> 권5, 「典尊經」 (<大正藏> 1, 31a), “諸賢! 如來多所饒益, 多所安樂, 以慈愍心利益天人. 不見過去 · 未來 · 現在多所饒益, 多所安樂, 如佛者也. 諸賢! 是為如來八無等法.” ]라고 했습니다. 이 대목은 부처님의 일생은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헌신하셨음을 찬탄한 것입니다. 부처님은 자신의 개인적 부귀와 영화를 모두 버리고 출가하여 일생동안 길 위에서 생활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였습니다. 부처님의 전 생애는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다른 종교지도자들은 열성적인 추종자들에 둘러싸여 편안한 삶을 살았습니다만, 부처님은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유행하면서 단 한 명이라도 더 교화하기 위해 법을 설했습니다. 이러한 부처님의 실천행은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다는 뜻입니다.

 

위에서 설명한 ‘여덟 가지 비교할 수 없는 법[八無等法]’을 통해 부처님께서 얼마나 훌륭한 삶을 사셨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고귀한 인격과 위대함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집니다. 사실 부처님은 인간으로서 가장 완벽한 인격을 완성하셨던 분입니다. 부처님은 인류의 역사상 과거에도 없었고 현재에도 없으며 미래에도 없을 가장 이상적인 인간이었습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구족하셨던 ‘여덟 가지 비교할 수 없는 법’ 가운데 단 하나라도 제대로 갖춘다면 훌륭한 불자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도 부처님같이 고귀한 인격을 완성하기 위해 오늘도 더욱 더 정진에 매진해야 할 것입니다.▣

- <법회와 설법> 통권 제166호, 2009년 03월호, pp.14-24 -

 

출처 : 팔리문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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