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불교의 성립에 관한 제학설
마성/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최근 《법보신문》에 불설 · 비불설 논쟁이 진행되었습니다. 원래 불설 · 비불설 논쟁은 대승경전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대승경전의 불설 · 비불설에 대한 논의는 대승불교 흥기와 동시에 제기되었습니다. 그 증거는 대승경전의 여러 곳에서 발견됩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대승경전이 ‘불설’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우리는 아직까지 인도에서 대승불교가 어떻게 성립되었는가에 대해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결정적인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 한 대승경전의 진위 여부는 판가름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주제는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대승경전이 ‘불설’이라고는 하지만 ‘친설’이라고 믿을 수 없는 측면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승경전 찬술의 배경과 과정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대승불교의 성립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대승불교 흥기와 함께 대승경전이 찬술되었기 때문입니다. 몇몇 학자들은 대승경전이 찬술된 뒤 대승불교운동이 일어났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대승불교운동이 먼저 일어나고 나중에 그 독자적인 사상을 표현하기 위해 새로운 경전을 편찬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대승경전은 일시에 제작된 것이 아니고 여러 역사적 발전 단계를 거쳐 현존하는 대승경전의 형태로 편찬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대승불교운동을 주도한 자들이 대승경전을 찬술한 것만은 사실일 것입니다. 따라서 대승불교운동을 주도한 자가 누구인지를 알면 대승경전의 성립에 관한 의문은 어느 정도 해결될 것입니다.
대승불교는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발생하였는가? 이른바 대승불교의 원류 혹은 기원에 관한 탐구의 역사는 오래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대승불교 성립에 관한 연구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하나는 대승불교 성립의 조건을 외부적 요인에서 찾고자 시도한 작업이고, 다른 하나는 대승불교 성립의 조건을 불교의 내부적 요인에서 찾고자 시도한 작업입니다.
첫째, 대승불교 성립의 조건을 외부적 요인에서 찾고자 시도한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이러한 작업을 시도한 학자는 헨드릭 케런(Hendric Kern, 1833-1917), 막스 뮬러(Max Müller, 1823-1900), 케이트(A. B. Keith, 1879-1944), 체르바스키(Th. Stcherbatsky, 1866-1942) 등이었습니다. 케런은 대승불교가 우빠니샤드와 힌두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대중부(大衆部)는 대승과 공통된 사상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대승은 『바가바드 기따(Bhāgavad Gītā)』에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는 『바가바드 기따』와 『법화경』의 유사한 게구(偈句)를 대조함으로써 『바가바드 기따』의 박띠(Bhakti) 신앙이 대승경전 불타신앙 성립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Hendrik Kern, Manual of Indian Buddhism, (Strasbourg, 1896), p.122.] 윈터니츠(Maurice Winternitz, 1863-1937)도 케런의 사상을 계승하고 있습니다.[Maurice Winternitz, A History of Indian Literature Vol. Ⅱ, Revised Edition, (Delhi: Motilal Banarsidass, 1983), pp.282-407.] 이들은 대승불교가 대중부에서 기원하였음을 인정하면서도 외부적 요인도 영향을 받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또한 체르바스키는 대승불교는 경량부(經量部)에서 발전한 것이며, 대승불교의 범신론적(汎神論的) 불타관(佛陀觀)은 힌두교의 신관(神觀)과 우빠니샤드 사상의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Th. Stcherbatsky, The Conception of Buddhism Nirvāṇa, (Leningrad, 1927), pp.61, 51, 28.]
그러나 무르티(T. R. V. Murti)는 신성(神性), 박띠(Bhakti, 信愛), 절대에 관한 힌두교적 관념으로부터 대승불교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케런, 막스 뮬러, 케이트, 체르바스키 등의 견해에 의문을 나타내면서, 외부적 요인은 간접적이고 부수적인 것으로 보았습니다.[T. R. V. Murti, The Central Philosophy of Buddhism, (London: George Allen and Unwin, 1974), p.81] 히라카와 아키라(平川彰, 1915-2002)도 힌두교의 사상․종교․문화가 대승불교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명확한 흔적은 아직 발견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平川彰, 『初期大乘佛敎の硏究』(東京, 春秋社, 1968), p.19 참조.]
그런데 바샴(A. I. Basham)은 최근에 대승불교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정치사회적 배경과 이란 종교와의 관련성을 구체적으로 밝혔습니다.[A. I. Basham, "The Evolution of the Concept of the Bodhisattva", The Bodhisattva Doctrine in Buddhism, ed. L. S. Kawamura, Delhi, 1997 참조.] 그는 기원전 180년 마우리아 왕조가 멸망하고, 슝가 왕조, 쿠산 왕조를 거치면서 북인도는 극심한 사회적 혼란에 빠졌고 전통적인 사회적 제도와 관습 등은 거의 해체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대승불교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안성두, 「대승경전 찬술의 배경과 과정」,『불교평론』제11 · 12호, 2002, p.18 참조.] 왜냐하면 이러한 혼란의 시대는 실로 새로운 종교운동, 즉 불탑 숭배와 관련이 있다고 믿어지는 대승불교나 인도의 비쉬누 신앙, 시바 신앙 등의 종교적 헌신 운동의 시작을 위한 비옥한 토양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안성두, 위의 글, pp.18-19.] 그리고 대승불교의 아미타불(amitābha), 보살 등의 사상은 이란 종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 명백하다고 했습니다. 특히 대승불교의 특징인 ‘보살’ 사상의 형성에 있어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은 증거를 네 가지로 요약하여 제시하고 있습니다. 바샴은 결론적으로 보살 사상의 여러 측면에 걸쳐 이란 종교의 영향이 인정될 뿐 아니라 보살 사상 자체도 그 출발점은 부분적으로 이란 종교와의 접촉을 통해 생겨났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안성두, 위의 글, p.20-21.]
둘째, 대승불교의 기원을 불교 내부에서 찾고자 시도한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이것은 대승불교의 뿌리를 ‘역사적 붓다’에서 찾고자 시도된 것입니다. 그 결과 도달한 대표적인 두개의 가설은 대중부 기원설과 재가불탑 기원설입니다.[시모다 마사히로, 김재성 역, 「탈현대 불교학의 새 방향」, 『불교평론』 제22호, 2005, p.270.] 먼저 대중부 기원설부터 검토해 보겠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대승불교의 기원을 대중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마에다 에운(前田慧雲)은 그의 저서 『대승불교사론』에서 대승불교의 원류를 대중부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제1결집의 전설과 부파불교의 교리를 설한 자료 등에 의해 보살장(菩薩藏)이 존재하였음과 대중부계의 제부파(諸部派) 교리가 대승불교의 교리와 공통되고 있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前田慧雲,『大乘佛敎史論』, 1927, p.100; 신성현, 「大乘佛敎의 成立에 대한 諸異論考」, 『東國思想』제24집(東國大學校 佛敎大學, 1991), p.48에서 재인용.] 그러나 그는 “불멸 100년간의 대승에 관한 소식은 거의 절망적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시즈타니 마사오 · 스구로 신죠오,『大乘의 世界』, 정호영 옮김(서울: 대원정사, 1991), p.109.]라고 탄식했습니다. 나리나끄샤 둣뜨(Nalinaksha Dutt)는 상좌부계의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가 대승불교의 발전에 공헌하였음을 인정하면서도 대중부가 곧 대승의 선구자라고 말했습니다.[Nalinaksha Dutt, Aspects of Mahāyāna Buddhism and its Relations to Hīnayāna, (London: Luzac & co., 1930), pp.26-30.] 에드워드 콘즈(Edward Conze)는 불신론, 아라한을 인간적으로 보는 점, 공사상(空思想), 법무아(法無我) 등을 설한 점 등을 들어 대중부가 대승의 기원에 기여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Edward Conze, Buddhist Thought in India, (London: George Allen & Unwin Ltd., 1962), pp.195-204.] 그는 “대승불교가 어떤 것에서 파생되었다면, 그것은 대중부로부터이다. 이것조차도 부분적으로만 사실이다. 대승불교는 처음에는 어떤 혁신을 가져오기는커녕, 전통적인 자료들에서 공통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어떤 측면들을 새롭게 강조한 것에 불과했던 것처럼 보인다.”[Edward Conze, ibid., p.203.]고 말했습니다. 빠윳또(P. A. Payutto)도 대중부가 발전한 것이 대승불교라고 말했습니다.[P. A. Payutto, Thai Buddhism in the Buddhist World, (Bangkok: Mahachulalongkornrajavidyalaya University, 2005), p.43.]
이와 같이 대승불교 기원의 문제에 대하여 외부적인 요인과 더불어 내부적으로는 대중부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음을 많은 학자들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특히 교리적인 공통점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대중부 외에도 대승과 공통된 주장을 하는 부파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시즈타니 마사오 · 스구로 신죠오, 앞의 책, p.109.] 대승불교의 기원에 대한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대승불교와 부파불교의 교리적 유사점은 단지 대중부뿐만 아니라 다른 부파와의 관련성 또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대승불교의 대중부 기원설이 비판받기 시작했습니다. 미야모토 쇼손(宮本正尊)은 『대비바사론』을 연구하여 그 중 설일체유부에 의해 격렬히 비판되는 비유자(譬喩者) 교리를 명확히 하여 비유자의 설에는 대승불교와 공통되는 교리가 보이고 있음을 밝혔습니다.[宮本正尊,『大乘と小乘』, (八雲書店), pp.1-95.] 또한 아카누마 지젠(赤沼智善)은 대중부의 교리로 밝혀졌던 자성청정심설(自性淸淨心說)은 대중부뿐만 아니라 다른 부파에도 보이며, 팔리 니까야(nikāya)에도 이미 설해져 있음을 지적했습니다.[赤沼智善(1939),『佛敎敎理之硏究』. 1939.] 또한 미즈노 고겐(水野弘元)은 구분교(九分敎)․십이분교(十二分敎)․십지설(十地說)․두타설(頭陀說) 등을 단서로 하여 대승경전에 이용되고 있는 부파교리를 상세히 추구하여 화지부(化地部)와 법장부(法藏部) 등이 대승경전과 관계가 있음을 명확히 밝혔습니다.[水野弘元, 「大乘經典の成立と部派佛敎との關係」, 『日本佛敎學會報』第18號(日本佛敎學會, 1953), pp.83-108.] 또한 심리설(心理說)의 발전에 대해서도 대승불교 특히 유부(有部)의 심리설(心理說)과 관계가 깊음도 지적했습니다.[신성현, 앞의 글, p.50.] 이러한 연구 성과로 인해 대중부 기원설에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한편 히라카와 아키라(平川彰)는 대승의 기원은 교리의 기원임과 동시에 교단의 기원이기 때문에 교단으로서의 대승불교가 초기에 어떤 형식으로 존재하였으며, 무엇과 관계를 맺고 있었는가를 규명하기 위해 대승의 ‘교단으로서의 기원’을 문제 삼았습니다.[시즈타니 마사오 · 스구로 신죠오(1991), p.109.] 그는 대승불교 성립의 직접적인 사회적 배경은 불탑 숭배이고, 그 중심은 재가신자의 활동이었고, 보살이 출현함으로써 대승불교가 성립되었기 때문에 불전문학(佛傳文學)과 불탑신앙(佛塔信仰)이 대승불교의 원류라고 주장했습니다.[Hirakawa Akira, “The Rise of Mahayana Buddhism and Its Relationship to the Worship of Stūpas", Memoir of Research Department of the Tokyo Bunko No. 22, 1963, pp.57-106; 『インド佛敎史』, Tokyo, 1974.] 대승불교는 대중부에서 유래했을 것이라는 가설을 완전히 뒤엎는 파격적인 주장이었습니다. 시즈타니 마사오(靜谷正雄)는 히라카와 아키라의 견해를 받아들여 이를 기반으로 원시대승(原始大乘)이라는 가설을 세웠습니다.[靜谷正雄, 『初期大乘佛敎の成立過程』, (京都: 百華苑, 1990), pp.39-50.] 또한 폴 윌리엄(Paul Williams)도 히라카와 아키라의 견해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Paul Williams, Mahāyāna Buddhism: The Doctrinal Foundations, (Routledge, 1989), p.20.]
그러나 최근에는 히라카와 아키라의 설과는 정반대로 대중부 혹은 다른 진취적인 사상을 가졌던 부파불교의 승가 집단에서 대승불교가 태동하게 되었다는 주장이 대두되었습니다. 이를테면 그레고리 쇼펜(Gregory Schopen), 폴 해리슨(Paul Harrison), 조나탄 실크(Jonathan A. Silk), 사사키 시즈카(佐々木閑), 시모다 마사히로(下田正弘) 등입니다. 이들의 연구 방법론은 약간씩 다르지만 대승의 기원을 부파불교의 연장선상에서 찾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쇼펜[Gregory Schopen, Bones, Stones, and Buddhist Monks: Collected Papers on the Archaeology, Epigraphy, and Texts of Monastic Buddhism in India, (Honolulu,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7).]과 해리슨 [Paul Harrison, "Searching for the origins of the Mahāyāna: What are we looking for?", Eastern Buddhist 28, 1995, p.65.]은 비문의 증거를 바탕으로 대승불교운동은 출가수행자 집단에서 수행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시모다 마사히로는 쇼펜의 연구 방법론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문헌적 중심의 연구가 간과해 온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下田正弘,『涅槃經の硏究: 大乘經典の硏究方法試論』, (東京: 春秋社, 1997) 참조.] 또한 파겔(Ulrich Pagel)은 『대보적경』에서 재가보살과 출가보살은 수적인 면에서 거의 대등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증거로 쇼펜의 주장을 비판하고 있습니다.[Ulrich Pagel, The Bodhisattvapiṭaka: Its Doctrines, Practices and their Position in Mahāyāna Literature, (Tring: The Institute of Buddhist Studies, 1995), pp.112-114 참조.] 안성두는 쇼펜의 논의는 어느 집단이 대승경전의 찬술에 있어 주도적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시각이 결여되어 있고, 또한 쇼펜이 의거하는 소수의 비문적 자료가 대승불교의 광범위한 시기를 커버하기에는 너무 빈약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습니다.[안성두, 위의 글, p.35.]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승불교운동의 주체가 부파교단의 출가자 집단이었다는 주장과 기존의 부파교단과는 전혀 다른 그룹, 즉 불전문학과 불탑신앙을 주도했던 재가자를 중심으로 일어난 새로운 불교운동이었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두 가설 모두 그 뿌리를 ‘역사적 붓다’에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시모다 마사히로는 “전자는 교설이나 교의의 연결을 역사적 붓다에게서 찾는 것이며, 후자는 교단의 연결을 역사적 붓다에게서 찾아 불교사 안에 위치 설정을 완성하려고 한 것이다. 즉 ‘역사적 붓다’로부터의 거리에 의해 그 의미를 측정하려 하고 있는 점에서는 양자가 완전히 같은 입장에 서 있다.”[시모다 마사히로. 앞의 글, p.270.]고 했습니다.
대승불교가 부파불교 시대의 대중부에서 유래했다고 보면 대승경전의 연원은 붓다에까지 소급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파교단과는 전혀 다른 어떤 집단에서 비롯된 새로운 불교운동이었다고 보면 대승경전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까지의 연구 성과를 종합해 보면 대승불교는 대중부를 비롯한 제부파에서 유래했다는 증거와 불전문학과 불탑신앙과 관련이 있다는 흔적이 동시에 발견되고 있습니다. 특히 교단사적으로 보면 ‘비구승가(Bhikkhu-saṅgha)’와는 별도로 ‘보살가나(Bodhisattva-gaṇa)’가 존재했었다는 증거가 현존하는 대승계경(大乘戒經)에 분명히 남아 있기 때문에 출가자 집단에서 대승불교를 전적으로 주도했다고 볼 수 없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한 집단이 대승불교의 성립을 주도했다고 단정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현재로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역사의 퍼즐 맞추기를 계속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입니다. 아무튼 대승불교는 다양한 외적인 요인과 불교 내적인 복합적 요소가 얽혀 전개된 새로운 불교운동이었습니다. 따라서 어떤 하나의 원인에 의해 발전된 사상이라고 보기 어려우며, 다양한 원인에 의해 역사적 전개과정 속에서 다른 이질적 요소를 통합하면서 발전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끝으로 대승불교의 성립과 대승경전의 편찬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승불교의 성립에 대한 명백한 사실이 밝혀진다면 대승경전의 편찬에 대한 의문도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승경전의 편찬에 대한 명확한 사실이 밝혀진다 하더라도 현존하는 대승불교 자체를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대승경전의 위상이나 권위에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일본에서 1901년 ‘대승비불설론’을 제기하여 승적을 반환할 수밖에 없었던 무라카미 센조(村上專精, 1851-1928)는 “대승경이 역사적인 불타의 가르침이 아니기 때문에 불교를 믿지 않는다면, 이것은 참다운 신앙이 아니다. 그리고 신앙의 확립은 대승비불설론과 관계가 없다.”[水野弘元, 『경전의 성립과 전개』, 이미령 옮김(서울, 시공사, 1996), pp.41-2 참조.]라는 매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한마디로 대승경전의 실체와 대승불교도의 신앙은 서로 관련이 없다는 뜻입니다.▣
- <법회와 설법> 통권 제174호, 2009년 11월호, pp.10-20 -
'종교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부처님이 갖춘 여덟 가지 위대함? (0) | 2013.10.16 |
|---|---|
| [스크랩] 전도선언의 현대적 의의? (0) | 2013.10.16 |
| [스크랩] 보살의 이념과 실천 (0) | 2013.10.16 |
| [스크랩] 대승불교의 전개 과정 (0) | 2013.10.16 |
| [스크랩] 중관사상(中觀思想) (0) | 2013.10.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