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교이야기

[스크랩] 대승불교의 전개 과정

대승불교의 전개 과정

 

마성/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오늘은 대승불교의 전개 과정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주제는 인도에서 대승불교가 성립된 이후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사실 대승불교도라면 대승불교가 어떻게 성립되어 오늘에까지 이르게 되었는가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자신이 신앙하는 대승불교사상에 확신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대승불교사상의 뿌리와 그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 대승불교의 특징과 우수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여기서 대승불교의 사상적 전개 과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처음 대승불교운동이 일어났을 때에는 아직 대승불교사상이 체계화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후 대승불교운동이 화려하게 전개되고 다수의 경전이 성립되었습니다. 그러자 이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확보할 필요성이 제기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대승불교사상의 철학적 근거를 마련한 사람이 바로 나가르주나(Nāgārjuna, 龍樹)였습니다. 대승불교운동은 이름 없는 사람들에 의해 추진되어 많은 경전의 작자가 누군지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나가르주나는 그 이름이 알려진 최초의 인물입니다. 이는 그의 명성과 함께 이 시대에 이르러 점차로 대승이 교단형성의 방향으로 나아갔음을 말합니다.[시즈타니 마사오 · 스구로 신죠,『大乘의 世界』, 정호영 옮김(서울: 대원정사, 1991), p.218.]

 

나가르주나는 중관파(中觀派)의 개조이지만 또한 중국에서는 팔종(八宗)의 조사(祖師)로도 추앙되고 있습니다. 나가르주나 이후의 대승사상은 모두 그의 이론을 기초로 하여 전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는 한편으로는 과대한 평가이기는 하지만, 그의 사상이 대승의 근본적 입장인 대립의 초극(不二)에 가장 강력한 논리를 제공하고 있음은 사실입니다.[시즈타니 마사오 · 스구로 신죠, 위의 책, p.218.] 나가르주나의 전기에 관한 자료는 구마라집역 『용수보살전(龍樹菩薩傳)』이 유일한 자료입니다. 이 자료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는 의문이지만, 그가 남인도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활동을 하였으며, 이 지역의 왕조와 교섭을 가졌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의 연대를 엄밀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대개 서력 기원후 2-3세기경 또는 150-250년경으로 보는 학자가 많습니다. 또한 그는 많은 저서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후세 여러 책들이 그의 저작으로 가탁되고 있으므로 진위가 명확하지 않은 문헌들이 적지 않습니다.[시즈타니 마사오 · 스구로 신죠, 위의 책, pp.218-220.]

 

한마디로 대승불교의 이론은 나가르주나에 의해 체계적으로 정리되었습니다. 그는 불교 최고의 논사로서 제2의 붓다로 칭송되고 있는데, 『반야경』의 공(空)사상을 논리적으로 밝히기 위해 수많은 논서를 저술하였습니다. 특히 그의 주저(主著)인 『중론(中論)』에서 불교의 근본진리인 연기(緣起)를, 생멸(生滅) · 거래(去來) · 일이(一異) · 단상(斷常)의 차별적 대립을 넘어선 것[八不中道]으로 해석하여, 어떠한 견해에 대한 집착도 부정하고 있습니다. 현실 세계에서 경험되는 모든 것은 다른 것과의 관련 속에서만 존재[緣起]할 뿐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無自性], 따라서 일체는 공(空)이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는 바로 연기 · 무자성 · 공의 이론을 확립하여 대승불교의 초석을 제공하였던 것입니다.[불교교재편찬위원회 편,『불교사상의 이해』(서울: 불교시대사, 1997), pp.148-9.]

 

이와 같이 대승불교가 탄생하고 나서부터 나가르주나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대승경전이 작성되었습니다. 이들 경전에 나타난 대승불교를 뒤의 것과 구별해서 일반적으로 초기대승불교라고 부릅니다.[시즈타니 마사오 · 스구로 신죠, 위의 책, p.13.] 

 

한편 나가르주나 이후에도 새로운 사상을 설하는 여러 대승경전이 성립되었으며, 아상가(Asaṅga 無着, 310-390)나 반수반두(Vasubandhu 世親, 400-480)와 같은 고승이 나타나 이를 체계화하는 데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습니다. 이 시기를 중기대승불교라고 합니다. 이 중기의 대승불교는 전시대에 확립된 초기대승불교의 새로운 전개로 간주됩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나가르주나에 의해 일단 종합 정리된 대승불교는 교리의 발달과 함께 새로운 경전의 제작이 요구되었습니다. 이들 새로운 경전에서는 앞 시대에 수립된 공사상에 입각하면서, 미혹과 깨달음의 주체의 문제로서 마음의 본질에 대해 논의하고 있습니다. 즉 마음은 한편으로는 깨달음의 세계를 낳는 원천이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혹의 세계를 낳는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마음은 보리의 바탕인 동시에 윤회의 주체이기도 한 것입니다. 전자는 바로 마음이 붓다라고 하는 이상적 측면에서 고찰한 여래장설(如來藏說)로서 『여래장경(如來藏經)』, 『승만경(勝鬘經)』, 『열반경(涅槃經)』 등이 이와 같은 계통의 경전이라면, 후자는 마음의 현실적 기능의 분석에서 출발하는 유식설(唯識說)로서 『해심밀경(解深密經)』이 대표적인 경전입니다.[불교교재편찬위원회 편, 위의 책, p.149]

 

이에 대해 좀 더 보충 설명한다면, 주체의 문제를 추구하는 과정에 붓다의 구제를 중심으로 하는 입장과 보살의 주체적 실천을 중심으로 하는 입장이 명확히 구분되었으며 각각의 이론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전자에서는 중생의 마음이 붓다의 구제에 대응하는 원리로 생각되어 여래장(如來藏, tathāgatagarbha) · 불성(佛性, buddhadhātu) 등의 교의가 구성되고, 후자에서는 아뢰야식(阿賴耶識, ālayavijñāna) · 유식(唯識, cittamātra) 등의 교의가 성립되었습니다. 그리고 각각에 관계된 경전이 작성되었습니다. 여래장과 불성은 실질적으로는 거의 동일한 개념이지만, 불성은 주로 『열반경』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이 경은 여래장사상 뿐만 아니라, 그 밖의 광범위한 문제를 취급하고 있습니다. 또한 여래장과 유식 두 사상의 교섭을 반영하는 『능가경』도 작성되었습니다.[시즈타니 마사오 · 스구로 신죠, 위의 책, pp.234-235.]  

 

유식사상은 일체의 분별망상이 비롯되는 장(場)으로서 인간의 의식 자체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그것의 전환을 통해 진여(眞如)와 열반의 성취를 목적으로 하는 이론으로, 3-4세기 무렵 출현한 아상가(무착)와 그의 동생인 반수반두(세친)에 의해 완성되었습니다. 나아가 여래장사상과 유식사상을 동일시하여 양자 간의 융합을 모색하려는 경전과 논서도 생겨나게 되었는데, 이와 같은 새로운 경전이 제작되고 연구되는 시기를 중기대승(中期大乘)이라고 합니다.[불교교재편찬위원회 편, 위의 책, pp.149-150.] 

 

중기대승불교 시대는 인도정치사에 있어서 굽따 왕조시대에 해당됩니다.[시즈타니 마사오 · 스구로 신죠, 위의 책, p.13.] 교단사적으로 굽따 왕조시대에 이르러 전 시대에 번영하였던 부파불교는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부파불교의 쇠퇴 원인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새롭게 융성하였던 대승불교가 점차로 세력을 넓혀갔다는 점입니다.

 

둘째, 부파불교를 지지하던 왕들과 유력한 상업계층이 몰락하거나 바라문교적인 신앙으로 개종하였다는 점입니다.

 

셋째, 부파의 승려들이 이미 확립한 자파의 교의체계를 지키고 이를 전파하는 데에 전념하여 새로운 사상으로 전개하지 못했던 점입니다.

 

넷째, 승원 안에서의 학습에 전념함으로써 민중으로부터 유리되었던 점이 쇠퇴의 이유들입니다. 전 시대에는 자파의 교의를 전파하고 교단을 확대시키고자 하는 정열과 노력이 있었지만, 이것도 점차 희박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부파불교가 쇠퇴하게 된 시기는 로마와의 무역이 쇠퇴하고 꾸샤나(Kuṣāna), 안드라(Āndhra)의 두 왕국이 붕괴된 3세기 중엽부터라고 합니다. 이 시기는 신흥의 대승이 일단의 교의 체계를 완성하고 부파교단에 대항할 수 있는 교단 세력을 굳히기 시작한 시대였습니다. 그리하여 지지자를 잃고 몰락한 부파도 있었고, 유부(有部)와 같은 큰 부파에 흡수된 부파, 그리고 대승으로 흡수된 부파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시즈타니 마사오 · 스구로 신죠, 위의 책, pp.85-86.]   

 

굽따시대에 이르러 대승불교에서는 여래장 사상을 설하는 『승만경』과 『대승열반경』, 유식사상을 설하는 『해심밀경』과 『능가경』 등의 소위 중기의 대승경전이 나타났습니다. 이들 경은 초기의 대승경전의 대부분이 신앙적 · 문학적인 데에 비해, 이론적 · 철학적입니다. 그리고 언어는 고전적인 산스끄리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물론 민중의 요망에 의해 새로운 교설이 개발되고, 대중에 인기가 있는 힌두교의 신에 대한 신앙을 채용하여 이를 불교적으로 변용 하고자 하는 시도도 엿보입니다. 나아가 굽따 제국의 출현은 정법(正法)이 오랫동안 지속되기 위한 국가와 종교의 관계는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을 갖게끔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금광명경(金光明經)』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배경으로 하여 성립된 것입니다.[시즈타니 마사오 · 스구로 신죠, 위의 책, p.86.]   

 

이들 대승경전은 4세기 말 경에는 모두 성립되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여래장사상은 일찍부터 중국불교의 전개에 큰 영향을 주었으나, 인도에서는 반수반두 이후 거의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유식사상은 아상가와 반수반두에 의해 크게 발전하였습니다. 특히 반수반두의 유식설은 많은 논사들에 의해 연구되었으며, 그 결과 유가행파(瑜伽行派)라는 학파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리고 나가르주나의 사상을 계승하는 중관파(中觀派)와 함께 인도대승의 2대 흐름으로 오랫동안 번영하였습니다. [시즈타니 마사오 · 스구로 신죠, 위의 책, pp.86-87.]  

 

굽따 불교의 특색의 하나는 바라문사상과 힌두교적 신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는 점입니다. 힌두사회가 확립됨에 따라 불교는 상류지식층인 바라문과 사회의 기저를 이루는 일반민중 사이에 위치함으로써 그 사상과 신앙의 영향에서 이탈할 수 없었습니다.[시즈타니 마사오 · 스구로 신죠, 위의 책, p.103.]   

 

대승사상의 새로운 전개에 바라문사상이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지적하는 일은 용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가르주나 · 아상가 · 반수반두는 바라문 출신이며, 진나 · 계현도 그러합니다. 그들은 바라문의 전용어인 산스끄리뜨어를 사용하여 저술활동을 하였으며, 소위 중기의 대승경전도 이 언어로 작성되었습니다.[시즈타니 마사오 · 스구로 신죠, 위의 책, p.103.]   

 

불교는 그 신앙면에서 힌두교의 현저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 좋은 예가 관음입니다. 십일면관음은 쉬바신앙의 영향의 소산이라고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다라보살도 성력숭배의 영향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금광명경』은 여신숭배를 채용하여 변재천(辯才天, Saravati) · 길상천(吉祥天, Śri)을 정법수호의 신으로 하고 있으며, 종래의 범천(梵天) · 제석천(帝釋天) · 사천왕(四天王) 등 외에 쉬바 · 비쉬누에서 마니바드라약차(藥叉, Maṇibhadra Yakṣa)와 같은 비교적 지방적인 민중신까지 받아들여 호법의 선신으로 만들었습니다.[시즈타니 마사오 · 스구로 신죠, 위의 책, pp.103-104.]   

 

또 하나의 특색은 학문적 · 사변적 경향이 강한 불교가 우세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는 학문 · 철학을 애호한 굽따 사회의 소산이기도 하지만, 전 시대에 이미 현저하게 이러한 경향으로 기울었던 소승불교는 물론이고 본래 신앙적 · 직관적이었던 대승불교도 학문적 · 사변적 방향으로 전개하여 갔습니다. 따라서 대 · 소 2승은 모두 전도적인 교단불교로서 보다는 학파불교의 양상이 현저하게 되었습니다. 전 시대의 대승이 ‘법사’를 중심으로 하는 전도의 불교라면, 이 시대의 대승은 ‘논사’중심의 학파불교였습니다.[시즈타니 마사오 · 스구로 신죠, 위의 책, p.104.]   

 

굽따 후기 이후의 인도대승의 학술 중심지는 나란다(Nalanda)였습니다. 현장에 의하면, 나란다의 승려는 객승을 합하여 항상 1만에 이르렀으며, 모두 대승을 연구하고 소승 18부도 겸학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에서는 세간의 일반적인 문헌과 바라문교의 성전 『베다』도 연구되었으며, 문법학 · 논리학 · 의학 · 수학도 교수되었습니다. 많은 학자가 있으므로 강좌는 매일 100여 곳에서 열렸으며, 학승은 촌음도 헛되이 보냄이 없이 연구에 열중하였습니다. 당시의 나란다 학원장은 계현(戒賢, Śīlabhadra)이었는데,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여 그의 이름을 부르는 대신 ‘정법장(正法藏)’이라고 하였습니다. [시즈타니 마사오 · 스구로 신죠, 위의 책, p.92.]  

 

반수반두 이후 한참 동안은 유가행파가 높은 수준을 유지한 것 같습니다. 그것은 중국에 와서 활약한 진제(眞諦, 499-569)에 의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6세기에는 쇠퇴하기 시작하고 700년경부터 인도불교는 쇠퇴기에 들어 다시 부활하지 못했습니다. 반수반두 이후에는 진나(陳那, 400년 경-480년경)와 법칭(法稱, 650년경 활약)의 논리학 연구를 제외하고는 하나도 독창적인 책은 나타나지 않았고, 주석서와 강요서만 만들어졌습니다. 이처럼 창조적 생명이 고갈한 시대가 되고 나서, 인도불교는 티베트로 들어갔습니다. 7세기 중반 경 티베트문자 · 문법이 대성한 뒤 불전의 번역이 시작되어 8, 9세기에 과반수의 대장경이 번역되었습니다. 2, 3세기에 대승이 창조적인 활력으로 넘치는 시대에 들어간 중국불교와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우에다 요시부미,『대승불교의 사상』, 박태원 옮김(서울: 민족사, 1989), p.219.]

 

그러나 중기 대승불교의 이론은 아비다르마불교의 그것처럼 대단히 번쇄하고 어려워 불교학자들조차 이해하기 힘들 지경이 되어 자연히 초기 대승불교의 순수성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정에 따라 후기 대승이라 할 수 있는 밀교가 출현하게 됩니다. 밀교에서는 붓다의 깨달음을 다라니(dhāraṇī, 陀羅尼)나 진언(眞言), 만다라(曼多羅) 등의 상징으로 나타내며, 의례를 중심으로 한 신앙실천 중심의 불교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점차 힌두교의 의례와 유사하게 되어 그것에 동화되기에 이르렀고, 다른 한편으로 이슬람교도들이 인도에 침입하여 불교사원을 파괴함으로써, 불교는 13세기 무렵 마침내 인도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불교교재편찬위원회 편, 위의 책, p.150]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인도에서 대승불교는 크게 초기․중기․후기의 세 단계로 전개되었습니다. 초기대승불교 시대에는 많은 대승경전들이 성립되었습니다. 그러나 철학적으로 체계화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때 나가르주나가 출현하여 대승불교의 이론을 중관사상(中觀思想)으로 체계화 시켰습니다. 그 후 아상가와 반수반두가 출현하여 유식사상(唯識思想)을 체계화 시켰습니다. 이때 새로운 대승경전들이 많이 제작되고 연구되었습니다. 이 시기를 중기대승불교 시대라고 합니다. 그러나 중기대승불교 시대에는 오히려 번쇄한 이론으로 발전하여 초기의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그때 밀교가 출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밀교는 태생학적으로 힌두교의 의례와 유사하기 때문에 결국 불교는 힌두교 속에 습합되어 버렸습니다. 그 무렵 이슬람교도들의 침입으로 말미암아 인도에서 불교는 소멸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인도에서 불교가 쇠퇴하기 전에 티베트와 중국으로 전해졌습니다. 특히 인도에서 대승불교가 활발하게 꽃필 때, 대승불교사상이 고스란히 중국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인도의 대승불교는 오히려 중국에서 그 빛을 발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불교는 서력 기원전후 동쪽으로 진출해서 중국에 전해지기 시작하였는데, 그 후 수(隋) · 당(唐) 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경론(經論)들이 번역됨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즉 인도의 불교는 오랜 시간과 넓은 지역에 걸쳐 전개되어 왔으므로 결코 단일한 체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중국의 불교인들은 번역된 온갖 경론들에 대해 체계성을 부여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붓다가 일생 동안 설한 교설을 말씀한 순서에 따라, 혹은 뜻의 얕고 깊음에 따라 각기 그들 나름대로 불교의 일체 경론을 분류하고 해석하였는데, 이를 교상판석(敎相判釋, 줄여서 敎判)이라고 합니다.[불교교재편찬위원회 편, 위의 책, p.150]

 

이와 같은 교상판석에 따라 마지막으로 설해진, 또는 가장 뜻이 깊은 것으로 간주된 경론들을 중심으로 하여 마침내 종파(宗派)들이 성립하게 되었습니다. 불교의 종파는 이미 동진(東晋) 시대나 남북조(南北朝) 시대에 여러 경론이 번역되고 그것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나타나기 시작하지만, 당나라 시대에 이르러 마침내 수많은 종파가 성립하면서 불교의 황금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불교교재편찬위원회 편, 위의 책, p.150]

 

중국에는 예로부터 13개의 종파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는 물론이거니와 중국 후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은, 법화경의 일승(一乘)을 대승불교의 근본으로 간주하는 천태종(天台宗), 화엄경의 중중무진(重重無盡)의 법계(法界)를 붓다 깨달음의 본질이라 하는 화엄종(華嚴宗), 정토경전(淨土經典)에서 설하고 있는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의지하여 정토의 실현을 추구하는 정토종(淨土宗), 그리고 경전을 중심으로 하는 앞의 여러 종파와는 달리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을 표방하는 선종(禪宗) 등이 있습니다.[불교교재편찬위원회 편, 위의 책, p.151]

 

이제 인도 대승불교 교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공사상과 유식사상, 그리고 중국불교의 대표적 종파인 천태 · 화엄 · 정토 · 선종 등의 사상에 대해 보다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 <법회와 설법> 통권 제176호, 2010년 01월호, pp.10-12 -

출처 : 팔리문헌연구소
글쓴이 : 마성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