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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이야기

[스크랩] 바르게 배워 바르게 실천하자

바르게 배워 바르게 실천하자

-불탄절(佛誕節)을 맞이하여-

 

마성/ 팔리문헌연구소장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餘佛者)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오직 홀로 높으신 이

시방세계 다 보아도 비교할 자 가이없네.

일체세간 모든 것을 남김없이 살펴봐도

우리 부처 세존만큼 거룩한 이 없으시네.

 

오늘은 인류의 영원한 스승이신 석가모니불께서 이 땅에 오신 날입니다. 우리 불교도들에게는 이 보다 더 값진 날은 없을 것입니다. 또한 오늘은 우리 인류에게 바른 삶의 길을 제시해 주신 뜻 깊은 날입니다. 그러므로 지상의 전 인류와 더불어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유정무정들이 합장하여 맞이해야 할 감격스럽고 환희에 찬 날입니다. 이 거룩한 부처님의 탄신일을 맞이하여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고 편안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가난한 이웃들에게도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충만하시길 축원합니다.

 

오늘은 성인의 탄생을 축하하는 축제일(祝祭日)입니다. 모든 불자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탄생을 봉축하는 참으로 기쁜 날입니다. 일찍이 우리 겨레는 불교가 전래된 이래 신라와 고려시대에는 물론 숭유배불 정책으로 일관했던 조선시대에도 줄곧 이 날을 민족의 명절로 경축해 왔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봉축 행사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연등회(燃燈會)이고, 다른 하나는 관불회(灌佛會)입니다. 연등(燃燈)이란 등불을 밝힌다는 뜻입니다. 불교에서 ‘등’은 지혜를 상징합니다. 등불을 밝힘으로써 어리석음과 어둠을 물리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각양각색의 등불을 들고 행진하는 것을 ‘제등행렬’이라고 하며, 이러한 행사 전체를 통틀어 ‘연등회’라고 합니다.

 

이러한 연등회의 역사는 매우 오래 되었습니다. 신라 진흥왕 12년 팔관회와 함께 국가적 차원에서 열리기 시작하여, 특히 고려시대 때 성행하여 국가적 행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날에는 등불을 밝혀 다과(茶菓)를 베풀고, 임금과 신하가 함께 음악과 춤을 즐기며, 부처님을 즐겁게 하여 국가와 왕실의 태평을 빌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한 때 유학자들의 반대로 중단되었으나 현종 때 다시 행해졌고, 조선 왕조에 와서도 연등회가 있었습니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연등축제는 1975년 부처님 오신 날이 공휴일로 지정되고, 그 이듬해인 1976년부터 여의도에서 조계사까지 연등행진을 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올해의 연등회는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받아 처음을 실시하는 행사입니다. 앞으로 연등회를 인류문화유산으로 만들기 위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불교계와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재청이 힘을 합쳐 추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연등회의 인류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국내 절차가 마무리되면서 연등회 인류무형유산 등재는 이르면 2013년 11월 열리는 제8차 무형유산위원회에서 결정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불교신문> 2012년 4월 2일자)

 

한편 불탄일을 다른 말로 ‘관불절(灌佛節)’이라고도 합니다. 관불이란 초파일에 탄생상(誕生像)을 목욕시킴으로써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뜻으로 행하는 의식을 말합니다. 욕불회(浴佛會), 불생회(佛生會), 용화회(龍華會), 탄생회(誕生會), 석존강탄회(釋尊降誕會), 화회식(花會式)이라고도 불리며, 줄여서 보통 관불(灌佛), 욕불(浴佛)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관불회 혹은 욕불회는 석가모니불이 룸비니 동산에서 탄생하실 때, 아홉 마리 용들이 물을 품어 아기 부처님의 몸을 씻어주었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찰에서는 초파일 당일 관불의식을 봉행합니다. 불단이나 대웅전 앞에 탄생불을 안치한 뒤 욕불게(浴佛偈)를 크게 외우고, 작은 국자 같은 것으로 감로다를 부처님의 정수리에 붓게 됩니다.

 

이러한 의식은 인도에서부터 일찍이 널리 행해져 왔으며, 중국에서는 4세기경에 시작돼 당송시대에 널리 행해졌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후기까지 부처님 오신 날 행사에 연등회와 관등회가 널리 행해져 등불 켜는 행사를 위주로 진행되었지만, 관불 역시 부처님 오신 날 행사의 중요한 의식으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외형적인 봉축 행사에 참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배워 바르게 실천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남전의 『대반열반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온갖 향과 꽃으로 그리고 기악과 무용으로 나를 찬탄하고 예배하며 공양 올리지만, 이러한 것은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며,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지금까지 내가 가르친 바의 진리를 바르게 이해하고 그것을 몸소 실천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진정 나를 기쁘게 하고, 나를 찬탄하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의 제자라면 출가․재가를 막론하고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부처님의 생애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스승, 석가모니불은 기원전 6세기 지금의 네팔 룸비니 동산에서 탄생하셨습니다. 그의 아버지 숫도다나는 사캬 왕국의 통치자였으며, 그의 어머니는 마야 왕비였습니다. 그는 당시의 관습에 따라 16세의 어린 나이에 미모와 자애를 겸비한 야소다라 공주와 결혼했습니다.

 

젊은 왕자는 마음대로 호사를 부리며 그의 궁전에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삶의 실재와 인류의 괴로움과 맞서게 되어 그는 이 세상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인 해탈을 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의 외아들 라훌라가 태어난 직후인 29세 때, 그는 왕국을 떠나서 해탈을 찾는 고행자가 되었습니다.

 

6년 동안 고행자 고따마는 갠지스 강 유역을 방황하다가 유명한 종교적 스승을 만나서 그들의 체제와 방법에 따라 공부하고, 준엄한 고행의 실천에 헌신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를 만족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전통적 종교와 그들의 방법을 포기하고, 그 자신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이와 같이 하여 35세 때인 어느 날 저녁 붓다가야에 있는 네란자라 강기슭에 있는 보리수 아래 앉아서, 고따마는 깨달음을 이루었습니다. 깨달음 이후 그는 붓다(Buddha), 즉 ‘깨달은 자[覺者]’로 알려졌습니다.

 

그의 깨달음 이후, 붓다는 베나레스 근처 이시빠따나의 사슴 동산에서 그의 옛 동료인 다섯 고행자들에게 첫 설법을 했습니다. 그날부터 45년 동안, 그는 모든 계급의 사람들을 아무 구별 없이 가르쳤습니다. 그는 카스트 혹은 사회적 계급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그가 설법한 진리는 이것을 이해하고 따를 준비가 된 모든 남녀들에게 열려 있었습니다. 붓다는 80세 때 쿠시나라에서 입적했습니다.

 

이러한 부처님은 ‘아홉 가지 특성[九德]’을 갖춘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부처님의 아홉 가지 특성은 곧 ‘붓다의 열 가지 호칭[來十號]’ 속에 담겨 있습니다. 이에 대해 니까야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해져 있습니다.

 

그분 세존께선 바로 아라한(應供)이시며, 완전히 깨달으신 분(正等覺者 또는 正遍知)이시며, 지혜와 실천이 구족하신 분(明行足)이시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善逝)이시며,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世間解)이시며, 가장 높으신 분(無上士)이시며,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調御丈夫)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天人師)이시며, 깨달으신 분(覺者) 세존(世尊)이시다.

 

첫째, 응공(應供, arahant)이란 ‘존중과 공경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빨리어 아라한뜨(arahant)를 중국에서 아라한(阿羅漢)으로 음사했습니다. 아라한은 사람과 천인[人天]으로부터 공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는 말입니다.

 

둘째, 정변지(正遍知, Sammāsambuddha)란 ‘완전히 깨달은 자’라는 뜻입니다. 정등각자(正等覺者)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이른바 사제(四諦)의 진리를 여실히 통달한 자라는 의미입니다. 즉 괴로움[苦], 괴로움의 원인[集], 괴로움의 소멸[滅],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道]에 대한 이치를 통달했음을 뜻합니다.

 

셋째, 명행족(明行足, Vijjācaraṇasampanna)이란 ‘지혜와 실천을 겸비한 자’라는 뜻입니다. 명행족의 명(明)은 지혜를 말하고, 행(行)은 실천을 의미하며, 족(足)은 명과 행을 갖추었다는 뜻입니다. 즉 붓다는 일생동안 언행(言行)이 일치한 분이었습니다.

 

넷째, 선서(善逝, Sugata)란 ‘잘 건너간 자’라는 뜻입니다. 피안의 저 언덕으로 건너가서 다시는 생사고해(生死苦海)에 돌아오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선서를 ‘행복해진(sugata, 善逝) 사람’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다섯째, 세간해(世間解, Lokavidū)란 ‘세상을 잘 아는 자’라는 뜻입니다. 지세간(知世間)이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일체 세간의 온갖 일을 다 안다는 말입니다. 붓다가 세상을 안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모든 현상은 연기법(緣起法)임을 꿰뚫어보았다는 의미입니다.

 

여섯째, 무상사(無上士, Anuttara)란 ‘가장 높은 자’라는 뜻입니다. 두 발 가진 이 가운데 가장 높은 분, 즉 양족존(兩足尊)을 의미합니다.

 

일곱째, 조어장부(調御丈夫, Purisadamma-sārathi)란 ‘사람을 잘 길들이는 자’라는 뜻입니다. 뿌리사(purisa)는 사람을 말하고, 담마(damma)는 ‘길들여져야 할’ 대상을 말합니다. 그리고 사라티(sārathi)는 마부(馬夫) 혹은 조어자(調御者)를 말합니다. 붓다는 마치 ‘숙련된 조련사’처럼 사람들을 잘 제어하여 길들일 수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여덟째, 천인사(天人師, Satthā-devamanussānaṁ)란 ‘신과 인간의 스승’이라는 뜻입니다. 붓다는 인간 세계의 스승일 뿐만 아니라 신들의 스승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아홉째, 불(佛, Buddha)이란 ‘깨달은 자’라는 뜻입니다. ‘불타(佛陀)’라고 음사하기도 하지만, 붓다란 곧 ‘깨달은 자[覺者]’를 의미합니다.

 

열째, 세존(世尊, Bhagavā)이란 ‘존귀한 자’라는 뜻입니다. 글자 그대로 ‘세간에서 가장 존귀한 자’라는 의미입니다.

위에서 열거한 열한 가지 명칭 중에서 붓다 자신을 일컫는 ‘여래’와 ‘깨달은 자’라는 의미의 보통명사인 ‘불(佛)’을 제외한 ①응공, ②정변지, ③명행족, ④선서, ⑤세간해, ⑥무상사, ⑦조어장부, ⑧천인사, ⑨세존을 가리켜 붓다의 아홉 가지 특성[九德]이라고 부릅니다. 여래는 붓다가 자기 자신을 지칭할 때 사용한 용어이기 때문에 붓다의 특성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대반열반경』에서 부처님은 “지금부터 3개월이 넘지 않아서 여래는 반열반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고, 다시 게송으로 이와 같이 설하셨습니다.

 

“내 나이 무르익어

나의 수명은 이제 한계에 달했도다.

그대들을 버리고 나는 가리니

나는 내 자신을 의지처로 삼았다.

 

비구들이여, 방일하지 말고

마음챙김을 가지고 계를 잘 지켜라.

사유(思惟)를 잘 안주시키고

자신의 마음을 잘 보호하라.

 

이 법과 율에서

방일하지 않고 머무는 자는 태어남의 윤회를 버리고

괴로움의 끝을 만들 것이다.” (DN Ⅱ, pp.120-121)

 

또한 초기경전인 『여시어경(如是語經)』에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한 비구가 나의 옷자락을 잡고 나의 뒤에서 나의 발자국을 밟는다 해도, 그가 만약 욕망의 격정을 품고, 성내는 마음과 삿된 생각으로 방일(放逸)하여 깨닫는 바가 없다면 그는 나에게서 멀리 있는 것이며, 나는 그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그 비구는 법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법을 보지 않는 자는 곧 나를 보지 않는 자이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혹 그 비구가 나를 떠나 백일 걸리는 먼 곳에 있더라도, 그가 만약 욕망의 격정을 품지 않고, 성내는 마음, 삿된 생각을 품지 않고 방일하지 않아 깨닫는 바가 있다면 그는 나의 가까이에 있는 것이며, 나는 그와 가까이 있는 것이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그 비구는 법을 보기 때문이다. 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보는 자이기 때문이다.”

 

이 경전의 말씀과 같이, 우리와 부처님과의 관계는 시간과 거리에 상관이 없습니다. 그 분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살펴 그 분의 뜻에 따라 바르게 살아간다면 나날이 부처님 오신 날이 될 것입니다. 또한 부처님께서는 입멸 직전 제자들에게 “모든 현상[諸行]은 소멸해 가는 것이다. 게을리 하지 말고 정진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어느 것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범부들은 영원하지 못한 덧없는 현상에 집착함으로써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부지런히 정진하여 생의 궁극적 목표인 열반을 속히 증득하라고 가르쳤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드는 것이야말로 진정 그 분 오심을 맞이하는 불자의 올바른 마음가짐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이 뜻 깊은 부처님의 탄신일을 맞아 오늘 하루만이라도 부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며, 부처님의 높고도 크신 은혜를 생각하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단순히 사월 초파일은 등을 다는 날이라고만 생각한다면 이는 결코 바람직한 불자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불자이겠습니까? 어떻게 부처님의 은혜를 보답해야 되겠습니까? 이것은 부처님께서 일생을 통해 갈망했던 가장 소중한 일을 우리가 실천함으로써 그분의 은혜에 털끝만큼이라도 보답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간절한 소망은 진리가 이 세상에 널리 드날려 어리석음이 빛을 보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가사정대경진겁(假使頂戴經塵劫)

신위상좌변삼천(身爲床座徧三千)

약불전법도중생(若不傳法度衆生)

필경무능보은자(畢竟無能報恩者)

 

가령 경전을 머리에 높이 이고 티끌 겁을 경유하고

이 몸으로 경상이 되어 삼천 세계를 다 덮는다 할지라도

만약 부처님 법을 전하여 중생을 제도하지 아니하면

결코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지 못한다.

 

이와 같이 우리가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오직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배워 바르게 실천하며, 나아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전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을 부처님의 마을, 부처님의 나라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오늘 이 도량에 참석하신 모든 불자님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실천하며, 또 이웃에 전하는 것이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참뜻을 새기는 일이며, 부처님의 탄생을 경축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끝으로 오늘 사찰을 찾아주신 모든 불자님들께 감사드리며,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여러 불자님들의 가정에 불은(佛恩)이 충만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 팔리문헌연구소
글쓴이 : 마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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