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불교방송 원고>
지계의 중요성
마성/ 팔리문헌연구소장
불자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팔리문헌연구소장 마성입니다.
이제 동지도 지나고 올 한해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지난 한 해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유익할 것입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릴 주제는 ‘지계의 중요성’입니다. 이 주제를 말씀드리기 전에 우선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 불자님들의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잠시 언급하고자 합니다.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면 누구나 각오를 새롭게 다집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해에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를 계획합니다. 개인은 물론 단체나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삶을 창조해 나갑니다. 이러한 인간들의 노력 덕분에 인류의 문명이 발전해 왔습니다.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생활하지만 인간은 꿈과 이상을 가지고 계획을 세워 실천합니다.
이것을 대승불교에서는 발원(發願) 혹은 서원(誓願)이라고 합니다. 원을 세운다는 뜻입니다. 발원은 자신이 어떤 삶을 살겠다고 그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는 것입니다. 삶의 목표와 방향이 설정되어야 비로소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됩니다. 반면 삶의 목표와 방향이 설정되어 있지 않으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마치 나침반 없이 항해하는 배와 같습니다. 그래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원을 세우는 것입니다.
대승의 보살은 누구나 원을 세웁니다. 원은 어떤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입니다. 그 간절한 소망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곧 보살의 삶입니다. 원을 세우지 않으면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보살은 원을 세우되 이타(利他)의 서원을 세웁니다. 만일 자기 자신을 위한 개인적인 원이라면 욕망과 다를 바 없습니다. 욕망은 개인적인 이기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보살의 원은 대비심에서 나옵니다. 따라서 보살은 자신이 세운 원을 통해 궁극의 깨달음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원이 있으면 어떠한 역경에 부딪쳐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그것을 원력(願力)이라고 합니다. 원력으로 말미암아 난관을 극복하고 창조적인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원이 없으면 천불(千佛)이 출현해도 구제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원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떤 원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와 인격도 달라집니다.
세상에는 자신이 바라는 대로 모든 일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만일 자신의 생각대로 모든 일이 쉽게 이루어지면 교만한 마음이 생깁니다. 큰일을 성취한 사람일수록 많은 좌절과 시행착오를 겪은 사람들입니다. 그때 좌절해 버리면 인생의 패배자가 되고 맙니다. 그 사람을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은 원력의 힘입니다. 그 원력의 힘에 의해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발원은 인생에서 새로운 힘과 용기를 심어주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발원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희망과 다르지 않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무기는 희망입니다. 희망이 없으면 미래에 대한 비전도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희망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용기를 갖고 도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도전 없는 삶은 무의미합니다. 현실에 안주하는 것은 나약한 자의 변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신이 세운 목표를 향해 도전하는 삶이야말로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것이 바로 발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새해에는 원을 세웁시다. 그 발원은 세세생생의 원도 있을 것이고, 일생의 원도 있을 것이며, 올 한해의 원도 있을 것입니다. 아직 원을 세우지 않은 사람이라면 한해의 원부터 세워 실천하기를 권합니다.
다음은 ‘재가자에게 계율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계율의 의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계율은 계(戒)와 율(律)의 합성어입니다. 계(Sīla)는 불교의 수행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지켜야 할 도덕적 수행이며, 율(Vinaya)은 승가의 질서 유지를 위하여 필요한 타율적인 행위 규범을 뜻합니다. 따라서 계는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성격을 지닌 반면 율은 객관적이고 타율적인 성격을 지녔습니다. 그래서 율의 조항을 위반했을 때에는 벌칙이 가해지지만, 계에는 그와 같은 벌칙이 없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러한 계와 율은 불교 윤리의 두 가지 측면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이행해야할 계인 준수사항(cāritta)이고, 다른 하나는 금해야 할 율인 금지사항(vāritta)이다.
흔히 계율은 출가한 스님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고, 재가자와는 무관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이것은 재가자의 계율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나온 것입니다. 불교의 계율은 출가자를 위한 계율과 재가자를 위한 계율로 구분됩니다.
간혹 스님 중에서도 계율에 얽매이지 않는 파격적인 행동을 해야만 마치 출격 장부인 것처럼 오도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이러한 계율 무시의 기행적인 행동이 통용되고 있는 것은 선불교가 가져다 준 병폐 가운데 하나입니다. 한국의 불자들이 시급히 개선해야 할 점은 잃어버린 계율의 중요성을 되살리는 일입니다. 출가·재가를 막론하고 계율에 대한 자각이 우선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계를 바탕으로 하지 않은 수행과 신행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러한 수행과 신행이 있다면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재가자가 지녀야 할 계율
초기경전에서 제시된 재가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은 믿음의 완전한 갖춤[信具足], 지혜의 완전한 갖춤[慧具足], 버림의 완전한 갖춤[捨具足], 계율의 완전한 갖춤[戒具足] 등이 있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이 가운데 계율의 완전한 갖춤인 계구족(sīla-sampanna)은 재가자가 오계(五戒)와 팔재계(八齋戒)를 지키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담미까 숫따(Dhammika sutta, 曇彌迦經)에서 “아내를 거느린 재가자가 완전한 비구의 법(bhikkhudhamma)을 이행하기는 불가능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재가자는 부양할 가족을 거느리고 있기 때문에 비구의 법, 즉 출가 수행자가 지켜야 할 계율을 완전히 이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뿐만 아니라 재가자의 생활은 욕망의 세계에 살면서 수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욕망을 절제하고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재가 생활의 표준이 될 수 있는 규정을 정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정해진 재가자의 계율이 바로 오계와 팔재계입니다. 오계(pañca-sīla)는 재가자가 평소에 지켜야 할 최소한의 계율이고, 팔재계(aṭṭaṅgika uposatha)는 재가자가 특정월과 특정일, 즉 삼장(三長)·육재일(六齋日)에 지키는 계율입니다.
다음의 계율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입멸 삼 개월 전 마가다국의 수도 라자가하를 출발하여 암바라티까와 나란다를 거쳐 빠딸리가마(Pāṭaligāma)에 도착하여 잠시 머물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빠딸리 마을 사람들은 부처님께서 자신들의 마을을 방문해 주신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진심으로 환영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빠딸리 마을의 공회당으로 자리를 옮겨 그 마을의 재가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거사들이여, 계율을 지키지 않고 어긴 자는 다섯 가지 환란이 있다. 다섯 가지란 무엇이겠는가? 거사들이여, 계율을 지키지 않고 어긴 자는 게으름 때문에 커다란 재산의 손실을 겪게 된다. 이것이 계율을 지키지 않고 어긴 자에게 생기는 첫 번째 환란이다. 거사들이여, 또한 계율을 지키지 않고 어긴 자는 나쁜 소문이 퍼진다. 이것이 계율을 지키지 않고 어긴 자에게 생기는 두 번째 환란이다. 거사들이여, 또한 계율을 지키지 않고 어긴 자는 귀족의 모임, 바라문의 모임, 거사의 모임, 사문의 모임 등 어떤 모임에 가더라도 자신감이 없고 주저하게 된다. 이것이 계율을 지키지 않고 어긴 자에게 생기는 세 번째 환란이다. 거사들이여, 또한 계율을 지키지 않고 어긴 자는 혼란스러운 죽음을 맞이한다. 이것이 계율을 지키지 않고 어긴 자에게 생기는 네 번째 환란이다. 거사들이여, 또한 계율을 지키지 않고 어긴 자는 몸이 부서져 죽은 뒤에 나쁜 곳[惡趣] 혹은 지옥에 태어난다. 이것이 계율을 지키지 않고 어긴 자에게 생기는 다섯 번째 환란이다. 거사들이여, 계율을 지키지 않고 어긴 자에게는 이러한 다섯 가지 환란이 있다.
거사들이여, 계율을 지키고 실천하는 자는 다섯 가지 공덕이 있다. 다섯 가지란 무엇이겠는가? 거사들이여, 계율을 지키고 실천하는 자는 게으르지 않기 때문에 재산을 많이 얻게 된다. 이것이 계율을 지키고 실천하는 자에게 생기는 첫 번째 공덕이다. 거사들이여, 또한 계율을 지키고 실천하는 자는 좋은 평판을 얻게 된다. 이것이 계율을 지키고 실천하는 자에게 생기는 두 번째 공덕이다. 거사들이여, 또한 계율을 지키고 실천하는 자는 귀족의 모임, 바라문의 모임, 거사의 모임, 사문의 모임 등 어떤 모임에 가더라고 자신감이 있고 떳떳하게 된다. 이것이 계율을 지키고 실천하는 자에게 생기는 세 번째 공덕이다. 거사들이여, 또한 계율을 지키고 실천하는 자는 평온한 죽음을 맞이한다. 이것이 계율을 지키고 실천하는 자에게 생기는 네 번째 공덕이다. 거사들이여, 또한 계율을 지키고 실천하는 자는 몸이 부서져 죽은 뒤, 좋은 곳[善趣], 또는 하늘세계[天界]에 태어난다. 이것이 계율을 지키고 실천하는 자에게 생기는 다섯 번째 공덕이다. 거사들이여, 계율을 지키고 실천하는 자에게는 이러한 다섯 가지 공덕이 있다.”
이 법문은 재가자가 지켜야 할 계율을 지키지 않는 자와 계율을 지키는 자를 비교 설명한 것입니다. 즉 계율을 지키지 않는 자는 다섯 가지 환란 혹은 재난을 만나지만, 반대로 계율을 지키는 자는 다섯 가지 이익 혹은 공덕을 얻는다는 내용입니다. 다섯 가지 환란은 재산의 손실, 나쁜 소문, 주저함, 혼란스러운 죽음, 죽어서 나쁜 곳에 태어난다는 것이고, 반대로 다섯 가지 공덕은 재산의 획득, 좋은 평판, 떳떳함, 평온한 죽음, 죽어서 좋은 곳에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부처님께서 재가자의 삶에 있어서 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 법문입니다. 이 법문은 너무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평범한 이야기로 들립니다. 그러나 실제로 재가자들에게 이 보다 더 중요한 가르침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 법문은 빨리어『대반열반경』과『율장』「대품」및『우다나(Udāna, 自說經)』등 세 곳에 똑같은 내용이 설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한역『유행경(遊行經)』에서는 죽음을 맞이하는 상태에 관한 부분은 빠져 있습니다. 그 대신 첫째 부분을 둘로 구분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첫째,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재물을 구하나 뜻대로 되지 않지만, 반대로 계율을 지키면 모든 것을 뜻대로 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파계자는 비록 재산이 있더라고 점점 없어지지만, 지계자는 자신이 가진 재산이 더욱 불어 손해되는 일이 없습니다. 이 법문에 의하면, 이 세상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고, 내세에 좋은 곳에 태어나고자 한다면 반드시 계율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교의 모든 수행은 계․정․혜 삼학(三學)의 체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삼학은 윤리적 규범인 계(戒 sīla), 정신적 수행인 정(定 samādhi), 지혜의 연마인 혜(慧 paññā)를 말합니다. 이 세 가지 가운데 지계가 가장 중요합니다. 도덕적 규범은 보다 높은 정신적 성취를 위한 불가피한 기반으로 간주되고 있고, 도덕적 기초 없이는 어떠한 정신적 발전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재가자가 거창하게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계율을 지켜야 되겠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계를 지킨다는 것은 ‘도덕적 행위’를 실천한다는 말입니다. 지계를 다른 말로 ‘심신(心身)의 조절’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계율을 지킴으로써 건강한 신체와 건전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몸과 마음을 조절하는 것을 지계(持戒)라고 합니다.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체적으로는 건강하고, 정신적으로는 안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어떠한 일도 완전하게 수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온갖 비난과 지탄, 그리고 불행과 불화는 기본적인 오계를 준수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재가자로서 이 기본적인 오계만 잘 준수한다면 남으로부터 어떠한 비난도 받을 것이 없습니다.
계율은 자신을 얽어매는 속박이 아닙니다. 계율은 자신을 보호하는 호법신장입니다. 또한 계율은 자신의 모든 재앙을 소멸시키는 묘약입니다. 사찰에서는 기복적인 신앙을 조장할 것이 아니라 모든 불자들로 하여금 오계를 수지하도록 적극 권장할 일입니다. 오계만 잘 지키면 굳이 기복신앙에 매달릴 필요가 없어집니다. 부처님은 잘못을 저지르고 참회하기보다 처음부터 참회할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것을 최상으로 삼았습니다. 계율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지 결코 남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한마디로 “계율은 모든 재앙을 소멸시키는 묘약”입니다. 새해에는 불자님들의 가정에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 글은 2009년 12월 23일 대구불교방송에서 설법한 원고입니다. -
이 글을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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