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상(華嚴思想)
마성/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1. 화엄사상이란 무엇인가?
인도에서 흥기한 대승불교가 중국에 들어와서는 종파불교로 발전하였습니다. 폴 윌리엄스(Paul Williams)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인도나 티베트 불교와 대조되는 동아시아 불교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특정 경전들에 대한 연구를 토대로 종파들이 발전했다는 점입니다. 각 종파는 자신들의 소의경전을 붓다의 가르침의 결정체이자 최고의 교설 혹은 마지막 교설로 인식했으며, 다른 종파의 경전은 그 지고한 교설에 이르기 위한 과정이라고 보았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중국적 불교철학이 탄생한 것은 화엄종(華嚴宗)이나 천태종(天台宗)과 같은 종파를 통해서였습니다. 경전에 대한 이러한 중국적 태도는 티베트와는 대조적입니다. [Paul Williams, Mahāyāna Buddhism: The doctrinal foundations, London and New York: Routledge, 1989), p.116; 폴 윌리엄스, 『서양학자가 본 대승불교』, 조환기 옮김(서울: 시공사, 2000), p.153. (이하 번역본에서 인용함)]
이를테면 중국의 종파들은 자신들의 철학 체계를 경전에서 찾아냈지만, 티베트에서는 인도 학파들의 철학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경전 자체를 이해하기 위한 해석학적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중국에서 경전과 그 주석을 강조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최초로 교조가 남긴 가르침과 그 의미에 대한 주석을 연구하는 전통적인 유교(儒敎) 연구법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폴 윌리엄스, 위의 책, p.153]
화엄사상은 『화엄경(華嚴經, Avataṃsaka Sūtra)』을 토대로 성립된 것입니다. 화엄경의 모태가 되었던 「십지경(十地經, Daśabhūmika Sūtra)」과 「입법계품(入法界品, Gaṇḍavyūha Sūtra)」은 인도에서 편찬된 독립적인 경전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하나의 『화엄경』으로 편찬되어 중국에 전해졌습니다. 중국인들은 이 『화엄경』을 바탕으로 화엄종이라는 종파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적 불교철학으로 체계화시켰습니다. 중국에서는 화엄종에 앞서 지론종(地論宗)이 먼저 성립되었습니다. 지론종은 『십지경』에 대한 와수반두(Vasubandhu, 世親)의 주석에 근거하여 설립된 종파였지만,[다카쿠스 준지로, 『불교철학의 정수』, 정승석 옮김(서울: 대원정사, 1989), p.148] 나중에는 화엄종에 흡수되어 버렸습니다.[지론종이 화엄종에 통합될 수밖에 없었던 전후 사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다카쿠스 준지로, 위의 책, pp.148-149 참조]
‘꽃의 장식’을 뜻하는 화엄(華嚴)은 화관이나 화환을 의미하는 산스끄리뜨어 아와땀사까(Avataṃsaka)를 번역한 말입니다. 그것은 대비로자나불(大毘盧遮那佛)의 신비적 교의를 세세하게 묘사한 경전의 명칭입니다. 붓다는 깨달음을 이룬 직후 이 경전을 설했는데, 듣는 사람들은 마치 귀머거리나 벙어리처럼 그 내용을 한 마디도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붓다는 쉬운 네 가지 아함(阿含, Āgama)과 다른 교의들을 새로 설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다카쿠스 준지로, 위의 책, p.146] 그러나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며, 『화엄경』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일 뿐입니다. 사실 이 경전은 독립적으로 유통되던 경전들을 모아 편찬한 이질적인 경전입니다. 따라서 어떤 부분들은 그 독립된 경전들 간에 보이는 명백한 차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이 경전을 편집하던 당시에 지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산스끄리뜨 본으로 현존하는 부분은 두 개의 품(品)인데, 이 둘은 의심할 여지없이 독립적인 경전이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깨달음을 얻기 위한 보살도를 10단계로 서술한 「십지경」이고, 다른 하나는 『화엄경』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입법계품」입니다. 3세기에 「십지경」혹은 「십지품」이 먼저 한역되었습니다. 불타발타라(佛馱跋陀羅, Buddhabhadra)가 418-20년에 『화엄경』을 처음 완역하였고, 실차난타(實叉難陀, Śikṣānanda)가 695-699년에 다시 한역했습니다. 실차난타의 한역은 불타발타라의 한역본보다 약 10분의 1 가량이 더 많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대승경전들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교정과 증광, 축약을 거듭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폴 윌리엄스, 앞의 책, p.158]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현존하는 방대한 분량의 『화엄경』으로 편찬되었던 것입니다.
흔히 화엄사상은 대승불교의 꽃이라고 말합니다. 대승불교의 교학으로는 마지막 단계에서 배우는 심오한 사상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런데 화엄경의 중요성과 그 가치를 논함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교판(敎判) 입니다. 교판이란 교상판석(敎相判釋)의 준말입니다. 예로부터 오시(五時)의 교판은 화엄경의 특색을 이해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시란 붓다의 일대시교를 각 경전에서 말하는 시기에 따라서 배열한 것입니다. 즉 화엄경은 붓다의 성도 2․7일(제2주째)의 설법이라고 합니다. 이 교판에 따르면 베나레스 녹야원에서 행해진 초전법륜에서의 사성제와 팔정도의 교리를 주축으로 한 『아함경』보다 앞선 것이 됩니다. 그래서 성도 10년에 『방등경』, 16년에 『반야경』, 그리고 만년에 이르러 『법화경』을 설하고 최후의 입멸에 이르러 『열반경』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법화경』과 『열반경』은 제5시의 가르침으로서 천태종에서는 이것으로써 『법화경』의 특수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다카사키 지키도 외, 『화엄사상』(강좌 대승불교3), 정순일 옮김(서울: 경서원, 1988), p.16]
이러한 교상판석은 중국에서 대승불교가 종파불교로 발전하면서 자신들의 종파에서 신봉하는 경전이 더 수승하고 붓다의 진의, 즉 참뜻을 담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나온 불교 경전의 분류 방법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교상판석은 중국인들이 불교 경전의 우열을 가리기 위해 채택했던 연구 방법론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교상판석은 역사적 사실이 아님은 말할 나위없습니다. 다만 화엄종에서 오시교판을 강조하는 까닭은 화엄경이야말로 붓다의 자내증(自內證)의 세계, 즉 깨달음의 경지를 그대로 묘사한 경전임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요컨대 화엄사상이란 화엄경의 전역(傳譯)에서 비롯하여 화엄종의 성립과 발전에 이르기까지의 흐름과, 그것에 일관된 사고방식 및 교리체계를 말합니다. 종래의 ‘화엄교학’이란 말은 주로 화엄종의 교학을 말하는 것입니다.[다카사키 지키도 외, 위의 책, p.21] 따라서 화엄사상은 ‘화엄교학’과 구별되며, 『화엄경』을 중심으로 형성된 사상 전체를 의미합니다.[한국유학생인도학불교학연구회 편, 『일본의 인도철학 · 불교학 연구 - 그 역사와 현황』(서울: 아세아문화사, 1996), pp.611-612] 이를테면 중국에서 전통 화엄종 계보에는 속하지 않지만, 『화엄경』을 중심으로 연구한 이통현(李通玄, 635-730) 장자(長者)의 사상도 화엄사상에 포함됩니다.
2. 『화엄경』의 개요
『화엄경』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의 줄인 이름입니다. ‘대(大)’는 ‘절대적인 대, 상대가 끊어진 극대(極大)’로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초월한 절대의 대(大)’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방광(方廣)’이란 ‘공간적으로 넓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대방광(大方廣)’이란 크고 넓다는 뜻으로 붓다를 수식하는 형용사입니다. 결국 ‘대방광불(大方廣佛)’이란 한량없이 크고 넓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대적인 붓다를 말하며, 화엄경에서는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라고 합니다.[불교교재편찬위원회 편, 『불교사상의 이해』(서울: 불교시대사, 1997), p.215-216; 이철헌, 『대승불교의 가르침』(서울: 문중, 2008), p.229]
비로자나불이란 산스끄리뜨 와이로짜나(vairocana)를 소리에 따라 번역한 것으로 ‘광명이 두루 비춘다(光明遍照)’라는 뜻입니다. ‘화엄(華嚴)’이란 잡화엄식(雜華嚴飾)에서 나온 말로 ‘가지가지의 꽃을 가지고 장엄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대방광불화엄경』은 ‘광명을 두루 비추며 우주에 계시는 붓다의 덕성과 가지가지의 꽃으로 장엄된 진리의 세계를 설하고 있는 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불교교재편찬위원회 편, 위의 책, pp.216-217; 이철헌, 위의 책, pp.229-230]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경전으로 『법화경』과 『화엄경』을 들 수 있는데, 『법화경』이 법(法)을 설하는 경전이라면, 『화엄경』은 불(佛)을 설하는 경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佛)을 설한다는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첫째, 전지전능하며 무소부주(無所不住)한 붓다, 즉 비로자나불의 불가사의한 힘[不思議神力]과, 불가사의한 세계[不思議世界]와, 불가사의한 작용[不思議用]과, 불가사의한 공덕[不思議功德] 등을 설하는 경이라는 뜻입니다. 둘째, 불가사의한 신력과 세계와 작용과 공덕을 갖춘 비로자나불이 되는 길[道]에 대해 설한 경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무명에 덮여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중생이 한 걸음 한 걸음 닦아 나가 52단계를 거쳐 마침내 부처가 되는 과정, 즉 보살의 길[菩薩道]을 설명하는 경이라는 뜻입니다.[불교교재편찬위원회 편, 위의 책, pp.216-217]
현존하는 한역의 『화엄경』은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불타발타라(佛陀跋陀羅, 359-429)가 번역한 60권본입니다. 이것은 번역한 권수가 60권이기 때문에 『60화엄』이라 하고, 번역된 시기가 동진(東晋)이므로 『진경(晉經)』 혹은 『진역(晋譯)』이라 부릅니다. 둘째는 실차난타(實叉難陀, 652-710)가 번역한 80권본입니다. 이것은 번역한 권수가 80권이기 때문에 『80화엄』이라 하고, 당나라 때의 번역이기 때문에 『당경(唐經)』 혹은 『당역(唐譯)』이라고 부릅니다. 전자의 『60권본』이 먼저 번역되었기 때문에 구역(舊譯)이라 하고, 『80권본』은 나중에 번역되었기 때문에 신역(新譯)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두 판본에 대한 산스끄리뜨의 원전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셋째는 반야(般若)가 『입법계품(入法界品)』만 번역한 40권본입니다. 이것을 『40화엄』 혹은 『정원경(貞元經)』이라고 부릅니다. 40권본에 대한 원전을 『간다뷰하(Gaṇḍa-vyūha)』라고 합니다.[다카쿠스 준지로, 앞의 책, p.146] 중국 화엄종에서 소의로 삼는 것은 60권 화엄입니다.
3. 화엄교학의 역사
『화엄경』의 성립연대에 대하여 오늘날 학계에서는 그 대경(大經)의 성립이 4세기 중엽 이전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또한 「입법계품」과 「십지품」은 나가르주나(Nāgārjuna, 龍樹, 150-250)가 알고 있었다는 것이 확실하며 3세기 중엽 이전에 성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다카사키 지키도 외, 위의 책, p.30] 「입법계품」에 의하면 그 무대는 남인도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학자들은 중앙아시아의 코탄(Khotan, 于闐)에서 『화엄경』이 편찬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 추정의 근거는 ‘42자의 글’(알파벳) 중에 Ysa(醝, 闍, 也娑, 夷娑)라는 자모가 있는데 이것이 인도 고유의 범어 자모에는 없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중앙아시아의 코탄에서 기원한 음이 서기 1세기 말엽까지 서북인도에 전해졌다는 것입니다. [다카사키 지키도 외, 위의 책, p.31]
또 다른 근거는 화엄경의 최초 번역자가 꾸샤나(Kuṣāṇa, 貴霜, 중국에서는 大月氏로 알려져 있음) 왕조, 즉 월지국(月支國)의 지루가참(支婁迦讖)이며, 그 후에도 지겸(支謙)이나 『60화엄』을 중국으로 가져온 지법령(支法領)도 월지국 사람이며, 축법호(竺法護)도 또한 월지국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80화엄』의 역자 실차난타(實叉難陀)도 코탄 출신이었다는 것입니다.[다카사키 지키도 외, 위의 책, p.31] 화엄종의 대성자인 법장(法藏)도 『화엄경문의강목(華嚴經文義綱目)』에서 동진시대의 지법령이 코탄에서 『화엄경』을 중국으로 가지고 왔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현존하는 『화엄경』은 코탄에서 편찬되었으며, 그것이 중국으로 전해져 화엄종을 성립시키게 되었던 것입니다.
중국의 화엄종은 두순(杜順, 557-640)으로부터 시작하여 그 제자인 지엄(智儼, 602-688)을 거쳐 법장(法藏, 643-712)에 이르러 완성되었습니다.[다카사키 지키도 외, 위의 책, p.18] 고래로 화엄종의 조통설(祖統說)은 제1조를 두순, 제2조를 지엄, 제3조를 법장으로 하는 종밀(宗密)의 3조설[『注法界觀門』(T45, p.684c)]에서 시작된 후, 제4조에 징관(澄觀), 제5조에 종밀을 덧붙인 5조설[『佛祖統紀』권29(T49, p.292c)]과 그 외에 두순 앞에 인도의 마명(Aśvaghosa)과 용수(Nāgārjuna)를 놓는 7조설[『五敎章通略記』권1(T72 p.197a); 『八宗綱要』下(佛全 3, p.28) 참조]이 있습니다.[기무라 기요타카(木村淸孝), 「華嚴宗의 成立 ― 그 思想史的 考察」, 다카사키 지키도 외, 앞의 책, p.280] 일본의 불교학자 기무라 기요타카(木村淸孝)는 이 가운데 7조설에서 맨 앞의 2조는 오히려 신앙적 입장에서 종문(宗門)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그 권위를 높이기 위하여 세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다카사키 지키도 외, 위의 책, p.280]
일반적으로 인도에서의 화엄교가로 나가르주나(龍樹)와 와수반두(世親)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나가르주나는 붓다가 열반한지 600-700여 년 후에 활동한 사람으로서 화엄사상뿐만 아니라 대승불교사상의 전반에 걸쳐서 괄목할 만한 연구 업적으로 남겼기 때문에 후대에 팔종(八宗)의 조사로 존경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화엄과 관계되는 그의 저술로는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 1권이 있습니다.[불교교재편찬위원회 편, 앞의 책, p.224] 또한 와수반두는 『십지경론(十地經論)』을 지었는데, 이 책은 중국에 전래되어 지론종(地論宗)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십지경론』 이외에 『정토론(淨土論)』도 있습니다. 여기서 와수반두는 화엄의 연화장세계와 아미타불의 극락세계는 둘이 아니며, 화엄경의 비로자나불과 극락세계의 아미타불은 서로 다르지 않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불교교재편찬위원회 편, 위의 책, p.224]
중국 화엄종의 개창자로 불리고 있는 두순은 학문적인 이론가나 저술가라기보다는 실천을 중요시한 두타행자(頭陀行者)나 보현행자(普賢行者)로 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저술은 『법계관문(法界觀門)』입니다. 두순의 제자인 지엄은 화엄경을 본격적으로 연구한 최초의 화엄교가였습니다. 그의 저술로는 『화엄경공목장(華嚴經孔目章)』 4권, 『오십요문답(五十要問答)』 2권, 『일승십현문(一乘十玄門)』 1권, 『육상장(六相章)』 1권, 『화엄경수현기(華嚴經搜玄記)』 9권 등이 있는데, 이 중에서 『수현기(搜玄記)』는 『60화엄경』에 대한 최초의 주석서라는 점에 큰 의의가 있습니다.[불교교재편찬위원회 편, 위의 책, p.225]
한편 지엄의 제자 중 의상(義相, 625-702)은 한국의 신라 출신으로서 668년에 귀국하자 한국의 화엄종을 최초로 설립하였습니다. 그러나 제3조인 법장(法藏, 643-712)이 화엄종의 실질적인 창시자였습니다. 이 학파의 철학을 최종적으로 체계화한 것은 그의 공로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활동은 저술에서 뿐만 아니라 번역과 강의에서도 두드러졌습니다.[다카쿠스 준지로, 앞의 책, p.149]
법장 문하에 있었던 신라의 심상(審詳)이 740년에 일본으로 건너가서 처음으로 화엄사상에 대해서 강의하였습니다. 또 다른 제자 징관(澄觀, 760-820)은 법장의 다른 제자인 혜원(慧苑)의 이론(異論)을 반박하는 데 전념하여 스승의 교의를 본래의 순수한 상태로 회복하였으므로, 화엄종의 제4조로 추앙되었습니다.[다카쿠스 준지로, 위의 책, p.150]
4. 화엄교학의 중심사상
『화엄경』에는 불신(佛身) · 보살(菩薩) · 유심(唯心) · 연기(緣起) · 정토(淨土) 등 여러 사상들이 설해져 있습니다. 그 중에서 특히 성기사상(性起思想)과 법계연기(法界緣起)는 화엄사상의 특징을 극명하게 드러낸 것입니다. 십현연기(十玄緣起)와 육상원융(六相圓融)은 법계연기의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법계연기는 네 가지 법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사법계(事法界)는 모든 현상적이고 차별적인 세계를 말합니다. 둘째, 이법계(理法界)는 사법계를 성립시키는 본체계이고 평등한 세계를 가리킵니다. 셋째,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는 이와 사, 즉 본체와 현상이 둘이 아닌 것임을 설명합니다. 마치 파도와 물의 관계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넷째, 사사무애(事事無碍)는 현상계가 그대로 절대적인 진리의 세계라는 것입니다.[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 편, 『불교의 이해와 신행』(서울: 조계종출판사, 2004), p.136]
즉 중중무진(重重無盡)한 연기의 세계는 현상적으로 보면 개개의 사물들이 서로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개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서로가 상관관계에 놓여 있다는 설명입니다. 마치 바다의 섬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서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다 밑으로 보면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과도 같다는 뜻입니다.[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 편, 위의 책, p.136] 이것을 인다라망(因陀羅網)에 비유하여 설명하기도 하는데, 이른바 일즉다 다즉일(一卽多多卽一)이라고 표현되는 사상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름 모를 풀 한 포기에서 우주 전체의 모습을 보고 그 풀잎에 맺혀있는 한 방울의 이슬에서 온 중생의 아픔을 느끼는 원리인 것입니다.[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 편, 위의 책, pp.136-137]
- <법회와 설법> 통권 제182호, 2010년 07월호, pp.10-12 -
'종교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유식사상(唯識思想)(1) (0) | 2013.10.16 |
|---|---|
| [스크랩] 유식사상(唯識思想)(2) (0) | 2013.10.16 |
| [스크랩] 천태사상(天台思想) (0) | 2013.10.16 |
| [스크랩] 지계의 중요성 (0) | 2013.10.16 |
| [스크랩] 출가의 목적과 공덕 (0) | 2013.10.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