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상고사의 쟁점
우리의 역사는 수많은 전쟁으로 불타고 빼앗기고 마지막으로 일본이 씨를 말렸기 때문에 우리는 상고역사를 모르고 자라났다. 근래에 규원사화나 한단고기 등이 나왔으나 학자들이 부정하고 배척하여 나라역사가 바로 세워지지 않고 있다. 교과서에 단군신화를 쓰고 위만조선이 정통계보인 것처럼 쓴 것은 다 엉터리다. 그러므로 지금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는 3류 소설 같은 잘못된 역사를 배우고 있고, 중국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변두리 야만민족이고 일본사람들이 만들은 지배만 받아온 민족이라는 식민주의가 온 국민들의 의식구조에 깔려있어서 강대국과 큰 나라를 사모하고 의지하는 사대주의가 민족의 의식구조에 깊고 넓게 뿌리 박혀 있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민족의 전통과 관습들이 가지고 있는 사상과 의식들은 중국인도 가지고 있지 않고 일본인도 가지고 있지 않다. 세계 인류역사상 7만년전의 인류의 조상인 아만과 나반 즉 견우와 직녀를 추모하는 7월7석을 민속절로 가지고 있는 한, 중, 일 중 종주국이며, 산과 들에서 밥을 먹을 때 반 숫갈 정도를 떠서 버리면서 “고시례” 하며 무려 6,000년 전의 농업장관인 고시례를 추모하는 민족도 우리밖에 없다. 하느님의 창조진리인 천지인 일체를 철학적, 신앙적 사상으로 가지고 하느님께 제사 드리는 제단을 무려 4,200년 전에 마리산에 건설하여 지금까지 실천하고 있는 나라도 세상에서 우리밖에 없다. 또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인돌 유적을 가지고 있는 나라도 우리밖에 없다. 어째서 상고역사가 없다고 하는 것인가? 그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의 역사는 요동 요서와 기자조선, 위만조선의 위치 이 두 가지만 알면 해결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상고사의 쟁점이다.
요동과 요서의 위치는 패수와 평양의 위치처럼 나라의 강약에 따라, 시대에 따라 앞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뒤로 밀려나기도 한 것이므로 일정하지 않다. 그러나 기자조선, 위만조선의 위치는 어느 한 지역 안에서 앞쪽이나 뒤쪽에 있는 것이지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것이 아니므로 이것을 우선 밝힘으로서 중심점을 삼고자 한다.
우리역사를 연구하려면 자료가 없으므로 우선은 중국의 역사기록을 더듬어서 그 대강을 간추려야 하는데 대단히 주의해야 한다.
①중국인들은 자기들이 오직 세상의 주인이고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은 모두 야만인이나 신하로 꾸미었다는 점.
②특별히 우리와의 관계에서는 우리나라 이름을 감추고 부족이름이나 족속이름만 사용함으로서 우리는 나라가 없었다는 것으로 했다는 점.
6,000년 동안의 역사에서 우리나라 이름이 등장하는 것은 주나라 무왕 때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는 기록이 있은 후에 약 900년이 지난 후에 진시황제가 천하통일을 한 이후에야 조선이란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③모든 이름과 표현이 중국식, 한문식으로서 순수한 우리말 식 표현을 잃어버리게 했다는 점.
④모든 전쟁은 자기들이 승리한 것으로 만들었고 우리가 침략하거나 정벌한 것은 모두 빼버려서 없었던 것으로 했다는 점.
⑤상고시대의 지명(地名)을 후대에 오면서 수 십리나 수 백리를 북쪽으로 밀어내어 이동시켰다는 점.
⑥유별난 것 중의 하나는 춘추전국시대의 전쟁기록이나 흉노와의 전쟁기록처럼 군사가 어디에 집결해서 어디를 거쳐서 어디에서 어떻게 싸웠다는 집결지, 경유지, 도착지가 없이 위만조선 멸망이 결과만 나타난다.
⑦중국사람이 이미 우리 땅에 와서 살고 있는데 중국이 제후나 벼슬을 봉했다고 하여 우리의 관경을 자기네 관경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주나라 시대의 기자가 그런 경우이다.
우리와의 관계에서 숨기고 뺀 것이 너무나 많아서 중국의 기록을 그대로 믿으면 이조시대의 학자로 돌아가 사대식민주의자가 되어버린다. 상고시대에 동북아시아 전체를 지배해온 우리를 엎어버리고 중국을 천하제일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일이었을 것이나 이런 점들을 보면 과거의 중국인들은 우리민족에 대해서 엄청난 열등의식을 갖고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중국과 한국의 역사적 사실이 서로 정 반대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중국의 기록들을 읽은 고려와 이씨조선의 임금, 신하, 학자들은 모두 그 기록을 믿고 마치 성경처럼 금과옥조로서 절대적 권위로 여기게 되었다. 임금도 중국황제의 승인을 받아야 왕 노릇을 해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이조시대의 왕이나 신하는 물론 학자들까지 불가침의 기록으로 떠받들고 찬양하였으니 사대주의가 얼마나 극심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여기에 일본인들은 한술 더 떠서 우리는 지배만 받아온 열등민족이니 일등민족인 일본을 받드는 것이 당연하다는 열등의식을 심는데 주력했다. 이러한 일본의 교육을 받은 소위 지식인들이 해방 후 우리나라를 지배하여 왔으므로 일본의 식민사학을 그대로 가르쳐왔고 지금도 고칠 줄 모르는 학자들이 역사학계에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상한 것은 해방 된지 60여 년이나 되었는데 그러한 사람들이 튼튼하게 자리잡고 있는데도 정부, 교육부, 국회는 물론 심지어 대학의 재단까지 그들을 정리할 생각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자리를 튼튼하게 해주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서로 협력관계에 있는 것은 아닐까? 해방이후부터 일본의 비밀자금이 들어와 역사학계를 매수한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정치가들과 학자들이 매수되고 그들의 교육을 받은 후세들이 그러한 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궁금하다.
중국의 역사기록은 분량이 엄청나다. 나의 글을 읽고 선후배 여러분의 도움을 청하니 잘못된 곳을 바로잡아 주시고 좋은 자료도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래의 글은 요동 요서와 위만조선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하여 하북성과 그 주변에 관계되는 내용을 중국의 사기에서 발췌한 것이다.
우리의 역사는 수많은 전쟁으로 불타고 빼앗기고 마지막으로 일본이 씨를 말렸기 때문에 우리는 상고역사를 모르고 자라났다. 근래에 규원사화나 한단고기 등이 나왔으나 학자들이 부정하고 배척하여 나라역사가 바로 세워지지 않고 있다. 교과서에 단군신화를 쓰고 위만조선이 정통계보인 것처럼 쓴 것은 다 엉터리다. 그러므로 지금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는 3류 소설 같은 잘못된 역사를 배우고 있고, 중국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변두리 야만민족이고 일본사람들이 만들은 지배만 받아온 민족이라는 식민주의가 온 국민들의 의식구조에 깔려있어서 강대국과 큰 나라를 사모하고 의지하는 사대주의가 민족의 의식구조에 깊고 넓게 뿌리 박혀 있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민족의 전통과 관습들이 가지고 있는 사상과 의식들은 중국인도 가지고 있지 않고 일본인도 가지고 있지 않다. 세계 인류역사상 7만년전의 인류의 조상인 아만과 나반 즉 견우와 직녀를 추모하는 7월7석을 민속절로 가지고 있는 한, 중, 일 중 종주국이며, 산과 들에서 밥을 먹을 때 반 숫갈 정도를 떠서 버리면서 “고시례” 하며 무려 6,000년 전의 농업장관인 고시례를 추모하는 민족도 우리밖에 없다. 하느님의 창조진리인 천지인 일체를 철학적, 신앙적 사상으로 가지고 하느님께 제사 드리는 제단을 무려 4,200년 전에 마리산에 건설하여 지금까지 실천하고 있는 나라도 세상에서 우리밖에 없다. 또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인돌 유적을 가지고 있는 나라도 우리밖에 없다. 어째서 상고역사가 없다고 하는 것인가? 그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의 역사는 요동 요서와 기자조선, 위만조선의 위치 이 두 가지만 알면 해결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상고사의 쟁점이다.
요동과 요서의 위치는 패수와 평양의 위치처럼 나라의 강약에 따라, 시대에 따라 앞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뒤로 밀려나기도 한 것이므로 일정하지 않다. 그러나 기자조선, 위만조선의 위치는 어느 한 지역 안에서 앞쪽이나 뒤쪽에 있는 것이지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것이 아니므로 이것을 우선 밝힘으로서 중심점을 삼고자 한다.
우리역사를 연구하려면 자료가 없으므로 우선은 중국의 역사기록을 더듬어서 그 대강을 간추려야 하는데 대단히 주의해야 한다.
①중국인들은 자기들이 오직 세상의 주인이고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은 모두 야만인이나 신하로 꾸미었다는 점.
②특별히 우리와의 관계에서는 우리나라 이름을 감추고 부족이름이나 족속이름만 사용함으로서 우리는 나라가 없었다는 것으로 했다는 점.
6,000년 동안의 역사에서 우리나라 이름이 등장하는 것은 주나라 무왕 때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는 기록이 있은 후에 약 900년이 지난 후에 진시황제가 천하통일을 한 이후에야 조선이란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③모든 이름과 표현이 중국식, 한문식으로서 순수한 우리말 식 표현을 잃어버리게 했다는 점.
④모든 전쟁은 자기들이 승리한 것으로 만들었고 우리가 침략하거나 정벌한 것은 모두 빼버려서 없었던 것으로 했다는 점.
⑤상고시대의 지명(地名)을 후대에 오면서 수 십리나 수 백리를 북쪽으로 밀어내어 이동시켰다는 점.
⑥유별난 것 중의 하나는 춘추전국시대의 전쟁기록이나 흉노와의 전쟁기록처럼 군사가 어디에 집결해서 어디를 거쳐서 어디에서 어떻게 싸웠다는 집결지, 경유지, 도착지가 없이 위만조선 멸망이 결과만 나타난다.
⑦중국사람이 이미 우리 땅에 와서 살고 있는데 중국이 제후나 벼슬을 봉했다고 하여 우리의 관경을 자기네 관경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주나라 시대의 기자가 그런 경우이다.
우리와의 관계에서 숨기고 뺀 것이 너무나 많아서 중국의 기록을 그대로 믿으면 이조시대의 학자로 돌아가 사대식민주의자가 되어버린다. 상고시대에 동북아시아 전체를 지배해온 우리를 엎어버리고 중국을 천하제일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일이었을 것이나 이런 점들을 보면 과거의 중국인들은 우리민족에 대해서 엄청난 열등의식을 갖고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중국과 한국의 역사적 사실이 서로 정 반대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중국의 기록들을 읽은 고려와 이씨조선의 임금, 신하, 학자들은 모두 그 기록을 믿고 마치 성경처럼 금과옥조로서 절대적 권위로 여기게 되었다. 임금도 중국황제의 승인을 받아야 왕 노릇을 해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이조시대의 왕이나 신하는 물론 학자들까지 불가침의 기록으로 떠받들고 찬양하였으니 사대주의가 얼마나 극심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여기에 일본인들은 한술 더 떠서 우리는 지배만 받아온 열등민족이니 일등민족인 일본을 받드는 것이 당연하다는 열등의식을 심는데 주력했다. 이러한 일본의 교육을 받은 소위 지식인들이 해방 후 우리나라를 지배하여 왔으므로 일본의 식민사학을 그대로 가르쳐왔고 지금도 고칠 줄 모르는 학자들이 역사학계에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상한 것은 해방 된지 60여 년이나 되었는데 그러한 사람들이 튼튼하게 자리잡고 있는데도 정부, 교육부, 국회는 물론 심지어 대학의 재단까지 그들을 정리할 생각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자리를 튼튼하게 해주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서로 협력관계에 있는 것은 아닐까? 해방이후부터 일본의 비밀자금이 들어와 역사학계를 매수한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정치가들과 학자들이 매수되고 그들의 교육을 받은 후세들이 그러한 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궁금하다.
중국의 역사기록은 분량이 엄청나다. 나의 글을 읽고 선후배 여러분의 도움을 청하니 잘못된 곳을 바로잡아 주시고 좋은 자료도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래의 글은 요동 요서와 위만조선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하여 하북성과 그 주변에 관계되는 내용을 중국의 사기에서 발췌한 것이다.
출처 : 한밝회 : 한국상고사연구회
글쓴이 : 유완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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