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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스크랩] 제4절. 한중동일조선(韓中同一祖先).

제4절. 한중동일조선(韓中同一祖先).

 

1). 복희씨(伏犧氏)

"밝달국 5세 태우의 한웅(太虞儀韓雄)은 아들 열둘이 있었는데 맏이는 6세 다의발 한웅이고 막내를 태호(太皓)라 하니 또는 복희씨(伏犧氏)라 한다.---복희는 검불(神市)에서 태어나 우사의 자리를 세습하고 뒤에 청구와 낙랑을 거쳐 마침내 진(陣)에 옮겨 수인, 유소와 나란히 그 이름을 서방에 빛냈다. 후예는 갈리어 풍산에 살았으니 역시 풍(風)을 성씨로 가졌다. 뒤에는 갈라져 패(佩), 관(觀), 임(任), 기(己), 포(庖), 이(理), 사(似), 팽(彭)의 여덟가지 성이 되었다. 지금 산동성의 제수(濟水)에는 옛 희족의 거처가 있다. 임(任), 숙(宿), 수(須), 구(句), 수유(須臾)의 나라는 모두 여기에 모여있다. --- 복희의 능은 지금의 산동성 어대현 부산의 남쪽에 있다" (한국의 검불본기)

"태호 포희씨는 풍성(風姓)이고 수인씨를 대신하여 임금을 이었다. --- 몸은 뱀이고 머리는 사람이다. --- 진(하남성 陣)의 동쪽 태산에 도읍하고 즉위 111년만에 붕어했다. 그 후예가 춘추시대에 임, 숙, 수, 구, 전유의 나라가 있었는데 다 풍성의 후예다. 여와씨도 풍성이고 몸은 뱀이고 머리는 사람이다."(중국 삼황기)


2). 신농씨(神農氏)

"신농은 열산(列山)에서 일어났는데 열산은 열수가 흘러나온 곳이다. 신농은 소전(少典)의 아들이다. 소전은 소호(少皓)와 함께 고시씨(高矢氏)의 방계이다." 

(한국의 검불본기)

                          

"한웅의 자손중에 소전(少典)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안부련(8대한웅)의 말기에 소전은 명을 받고 강수(姜水: 양자강)에서 병사를 감독하게 되었다. 그 군주(소전)의 아들 신농은 수많은 약초들을 혀로 맛보아 약을 만들었다. 뒤에 열산으로 이사했다."(한국의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여와씨가 몰락하니 신농씨가 일어났다. --- 소전(少典)의 아들이고 몸은 사람이고 머리는 소이다. 강수(姜水)에서 자라서 강씨(姜氏)로 성을 삼았다."(중국 삼황기)  

"처음 도읍을 진(陣)에 세웠다가 후에 곡부로 옮겼다. 즉위 120년만에 붕어했다. 신농은 본래 열산에서 일어나서 열산씨(烈山氏)라고도 한다. 또 여산씨(勵山氏)라고도 한다."

       (중국 삼황기)

"염제(신농), 황제(헌원)는 다 소전(少典)의 아들이다."                              

      (중국 삼황기)

"신농씨는 강씨성이다."(중국 오제기)


3). 황제헌원(黃帝軒轅)

"소전의 별고에 공손(公孫)이라고 있었는데 짐승을 잘 기르지 못하여 헌구(軒丘)로 유배시켰다. 헌원(軒轅)의 무리는 모두 그 후손이다. 사와라한웅 초기의 일이다."                      (한국의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황제는 유웅국(有熊國) 임금이고 소전국(少典國)임금  

의 둘째 아들이라서 유웅씨를 호로 삼았다."

                            (중국 오제기)

"황제는 유웅국 임금 소전의 아들이다. 유웅(有熊)은 지금의 하남성 신정(新鄭)이다. 소전(少典)은 (한국의)제후국 이름이다."(중국 오제기 1)

"황제는 수구에서 낳고 희수(姬水)에서 자라서 희씨(姬氏: 周나라 성씨)를 성씨로 삼았고 헌원의 언덕에 서 살았기 때문에 이름으로 하였으며 본래의 성은 공손(公孫)이고 자라서 희수에서 살았기 때문에 희씨로 성을 삼았다."

                           (중국 오제기 2)


4). 치우한웅(蚩尤韓雄)

"자오지 한웅은 귀신같은 용맹이 뛰어났고 머리와 이마를 구리와 쇠로 감았다." (한국의 검불본기)

"옛날 여상(呂尙: 강태공)도 역시 치우씨의 후손이다. 때문에 역시 성은 강(姜)이다.

대저 치우는 강수에서 살았다.(어릴 때)"

             (한국의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황제가 섭정할 때 치우 81인이 짐승의 몸을 하고 사람의 말을 하였다. 동두철액(銅頭鐵額)을 하고 모래를 먹고 장(丈), 도극(刀戟), 대노(大弩)등 다섯 병기를 만들어 그 위세가 천하에 떨치고 만민을 주살하는 무도한 짓을 저지르니 황제가 인의(仁義)로서는 그치게 하기 어려워 천자를 대신하여 정벌하였다. --- 치우는 풍백, 우사를 거느리고 큰바람과 비를 일으켰다."  (중국 오제기 3)

                

5). 기타.

"치우씨(원래의 봉지는 하북성 북부), 고시씨(한반도와 만주 동남부지역), 신지씨(만주동북부)는 풍백, 우사, 운사의 삼한(三韓: 세 보좌왕)이며 세 족속의 후손은 나뉘어 9파로 갈라졌으니 후한서(後漢書) 동이전에 나오는 견이(堅夷), 우이(虞夷), 방이(方夷), 황이(黃夷), 백이(白夷), 적이(赤夷), 현이(玄夷), 풍이(風夷), 양이(暘夷)의 족속으로 퍼져서 지손(支孫)은 다르되 원래의 조상은 같다, 후세에 견이와 풍이가 서남에 나뉘어 옮긴 것이며 풍이란 곧 치우의 일족이다."   (한국의 규원사화 태시기)

"요임금은 황제의 5세손이다."(중국 오제기 1-11)

"순(舜)은 황제헌원의 8세손이다."(중국 오제기 1-21)

"(하나라 시조)우임금은 황제헌원의 현손이다."

                             (중국 하본기)

“(은나라 시조) 설은 제곡고신의 둘째부인이 낳았다."     

                           (중국 은본기)

"(주나라 시조) 후직은 제곡고신의 아들이고 희씨이다."

                            (중국 주본기)

이상과 같이 한국과 중국의 기록을 검토해보면 세가지 확실한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상고시대의 역사는 한중 공동역사(韓中 共同歷史)다.

상고시대에는 동북아시아 전체가 하나의 연방국으로서 존재했고 지금처럼 몽골, 중국, 한국이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가 점차 나뉘어지게 되었다.

BC.4500년경 지구변동으로 일본, 한반도, 만주, 중국동해안이 큰 해일에 휩쓸려 가고 부분적으로 물에 잠기자 인류는 몽골지역을 중심으로 한 고원지대에 모여 살게 되었다. 옛부터 소수가 서아시아, 인도, 북아메리카로 이동하여 왔으나 지구변동 후에 몽골지역에서 약 500년간 지내면서 인구가 불어나고 식량이 부족하여 인류는 동서남북으로 급격히 이동하였다. 이 때 한웅(韓雄)이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여  밝검(朴儉: 韓仁: 韓任)으로부터 왕권을 물려받고 동쪽으로 오던 중 반고(班固)의 요청으로 반고를 지금의 돈황(燉煌)지역에 봉한다.

반고는 공공(共工), 유소(有巢), 유묘(有苗), 유수(有燧)와 함께 돈황에 도읍하고 태행산맥 서쪽을 관할하는 한웅의 보좌왕인 한(韓, han, khan)이 되었다.

커밝한웅은 만주 한인(韓仁)지역에서 밝달나라(朴達: 白達: 配達: 檀國)를 세우고 치우씨(蚩尤氏), 고시씨(高矢氏), 신지씨(神智氏)를 삼한(三韓) 즉 세 보좌왕으로 삼고 봉지를 나누어주었는데 치우씨를 하북성지역에 봉하고, 고시씨를 한반도에 봉하고, 신지씨를 만주동북지역에 봉하여 관할하게 하였다.

후세에 태행산맥 서쪽을 관할했던 반고, 공공, 유소, 유묘,  유수의 자손들을 서이(西夷)라 하고 태행산맥 동쪽을 관할 했던 커밝한웅, 치우씨, 고시씨, 신지씨의 후손들을 동이(東夷)라고 불렀다.

오늘에 전하는 중국의 역사기록에는 서이에 대한 기록이 없다. 이들의 역사가 없었던 것이 아니고 중국지역에서 역사적 중심무대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소외되고 말았다. 동시에 한웅에 대한 기록도 없다. 그것은 한웅의 관할지역 중 만주와 한반도는 상고시대의 중국지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상고시대의 중국역사란 고작해야 하북성, 산동성, 강소성, 안휘성, 하남성, 산서성의 작은 지역에 국한된 역사다. 그런데 이 지역은 한웅의 보좌왕인 치우씨의 관할지역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실제로는 상고시대의 중국역사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과 중국으로 나라가 나뉘어 있고 상고시대의 대부분의 영토가 중국 땅이 되었으니 상고시대의 역사는 한중공동역사로 삼을 수밖에 없다. 중국만의 역사도 될 수 없고 한국만의 역사도 될 수 없다.


둘째; 중국인의 혈통은 모두 동이족이다.

BC.3897년경 커밝한웅이 밝달나라를 개국한 이후 치우씨, 고시씨, 신지씨는 삼한 즉 세 보좌왕으로서 18대 1565년간 서로 한웅의 제위(帝位)에 올랐는데 특히 치우씨와 고시씨가 주로 다투게 되었다. 이들의 혈통을 고찰해 보면;

치우씨는 5세 태우의 한웅(太虞義 韓雄)- 6세 다의발 한웅(多儀發 韓雄), 다의발 한웅의 동생 태호복희(太皓伏犧)- 복희씨의 4촌 동생 여와(女 )---치우한웅(慈烏支 韓雄)-치액특한웅(蚩額特 韓雄)---여상 강태공(呂尙 姜太公)으로 이어졌고, 고시씨는 한반도의 조상 고시례(高矢禮)의 아들이 중국본토에 이주하여 그 후손 중에 소전(少典)이 있었는데 소전의 후손들이 중국천하를 다스리게 되었다. 소전(少典)---신농(神農)- 황제헌원(黃帝軒轅)-전욱고양(전頊高  陽)-제곡고신(帝嚳高辛)-요(堯)- 순(舜)- (하나라)우(夏禹)-  (은나라조상)설(楔)- (주나라조상)후직(後稷)으로 이어졌다.

 

고시례는 한웅의 보좌왕으로서 농업을 주관한 농업신(農業神)이었다. 1970년대까지도 우리민족은 시골에서 들이나 산에서 도시락이나 밥을 먹을 때 반 숫갈 정도를 떠서 버리면서 "고시례" 하고 말했다. 이것은 6000년전의 한반도 조상이며 농업신인 고시례를 추모하는 제례의식의 관습이었다. 이 관습은 한국과 중국에만 있다. 이 고시례의 아들들이 중국으로 건너갔고 그 자손들이 중국천하의 주인이 되었다.

중국천하는 치우씨계와 고시씨계가 왕권의 쟁탈전을 벌인 각축장이다. 태호복희의 뒤를 이은 여와는 고시씨계인 신농에게 밀려났고 신농은 치우씨계인 치우한웅에게 밀려났는데 치우한웅과 고시씨계인 황제가 다투다가 양립(兩立)으로 평화를 누리다가 마침내 치우씨계는 고시씨계에게 밀려나게 되어 중국은 고시씨의 천하가 되었다. 이로서 고시씨는 한반도와 중국을 모두 차지하게 되었다.

복희족의 일파와 여와족의 일파는 수메르에 이동하여 이스라엘민족의 조상이 되었다. 이스라엘민족이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女昊 )라고 부르는 것은 한국인이 하느님의 이름을 한님= 하나님= 하느님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이 조상의 이름을 신의 이름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수메르의 최고 하늘신은 "안(AN)"인데 이것은 한국의 한(HAN, KHAN)의 발음이 변한 것이다. 이와 같이 여와란 이름도 여오와(YEAOWA)나 여호와(YEAHOWA)로 변할 수 있다. 또한 수메르의 문명은 점진적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갑자기 개화된 문명으로 나타났다. 오늘날 미국은 신생국가이면서 토착민족인 인디언의 점진적으로 발전된 문명이 아니라 유럽의 발전된 문명이 그대로 미국에 이동되었다. 이와 같이 수메르도 지금의 중국 산동성과 하남성 일대의 복희족, 여와족, 신농족, 소호족 등의 발전된 문명이 그대  로 메소포타미아에 옮겨진 것이다.

신농족과 소호족(少皥族)은 다같이 고시씨계인데 치우에게 밀려나서 이들의 일파가 수메르에 가서 성읍국가를 세웠다. 문정창씨에 의하면 수메르 제1왕조를 건설한 엔릴영웅이 소호국 사람이라고 하였다. 수메르는 BC.3500년 전후에 분명히 나타나고 문자적 기호를 사용하였는데 신농에게 밀려난 복희- 여와족의 일파가 복희의 선기호문자(線記號文字)를 가지고 서쪽으로 이동한 시기(BC.3500년 전후시대)와 일치하고 복희의 선기호(線記號)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선기호가 바로 쐐기문자의 원형이다. 또 BC.2700년 전후에 키시 제1왕조가 건설되었고 BC.2600년 전후에 우르 제1왕조가 건설되었으며 뒤이어서 에렉이 건설되었다. 그런데 키시는 우르에게 패했고 우르는 에렉에게 패하였으며 에렉은 BC.2500년 전후에 건설된 아답왕 루갈 아넨문두에게 패하였다. 그런데 이때도 신농과 소호국 장수가 치우와 황제에게 밀려난 시기(BC.2700- BC.2600년)와 일치한다. 이들을 밀어낸 치우족은 또 고시씨에게 밀려 치우족의 일파가 티베트로 가서 왕권을 장악하여 오늘의 티베트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상고시대의 중국조상들은 모두 고시씨계가 장악하여 요순시대를 거쳐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까지 고시씨계의 역사이다.

중국사기의 기록대로 진시황의 친부(親父)가 여불위(呂不偉)라면 진시황도 동이족이고 한(漢)나라 고조 유방(劉邦)도 강소성 태생이니 분명히 동이족이다. 따라서 중국역사는 한반도의 조상인 고시씨의 혈통으로 이어졌고 나머지 혈통도 모두 동이족의 혈통이다. 어찌 중국의 역사가 따로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셋째; 인류역사상 갑옷의 창시자는 복희이다.

중국의 역사기록을 보면;

"복희는 뱀의 몸이고 사람의 머리다.(蛇身人首)"

"여와는 뱀의 몸이고 사람의 머리다.(蛇身人首)"

"신농은 사람의 몸이고 소의 머리다.(人身牛首)"

"치우는 짐승의 몸을 하고 사람의 말을 한다.(獸身人語)"

"치우는 머리는 구리이고 이마는 쇠이다.(銅頭鐵額)"이라고 되어있다.

인간의 머리와 몸이 짐승의 것과 이중구조로 태어날 수는 없다. 이것들은 겉모양을 처음 본 사람들이 "마치 그렇게 보인다."는 뜻으로 표현한 것이다.

갑옷을 매끄럽게 입은 복희와 여와의 모습이 "마치 뱀같은 모습이다."는 뜻이다. 소의 머리를 한 신농은 소머리모양의 뿔 달린 투구를 쓴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치우의 짐승같은 몸의 모습이나 머리는 구리이고 이마는 쇠라고 한 것은 갑옷과 투구를 쓴 모습을 처음 보는 사람들이 무엇인지를 몰라서 부정확하게 표현한 것이다.

이와 같이 보면 갑옷을 맨 처음에 복희와 여와가 입었고 그 후에 신농이 투구를 사용했으며 그 후대의 치우는 갑옷과 투구를 다함께 사용하였음이 나타난다. 따라서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갑옷을 만들어 입은 사람은 복희이다. 

 

수메르 신화에서 "바다로 온 사람이 문명을 전해주었는데 그 모습이 물고기와 같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은 여와족, 신농족, 소호족 등이 갑옷을 입고 배를 타고 수메르에 도착한 문명인 즉 상고시대의 한국사람에 대해서 표현한 것이다. 수메르의 조상들은 대부분이 상고시대의 한국인들이다. 따라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주인공들은 바로 한국인이다. 수메르문명은 유럽문명의 원조이다. 그러므로 한국문명은 세계문명의 원조이다.

우리는 아랍과 이스라엘간에 다툼이 그치기를 원한다. 오늘날 혼혈에 의해서 본래의 모습은 아니지만 서아시아 여러 민족들의 조상이 바로 상고시대의 한국인이다. 서아시아 여러 민족들은 미래에 우리와 함께 평화세계를 건설할 역군들이다.

한국은 서아시아지역에 점점 더 친밀해질 수 있는 정책을 펴나가야 하고 지금까지의 소강상태에서 적극적인 교류를 증진시켜야 할 것이다. 






출처 : 한밝회 : 한국상고사연구회
글쓴이 : 유완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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