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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야기

[스크랩] 유가의 예 사상과 규범적 질서의 문제/ 홍승표(계명대)

 

유가의 예 사상과 규범적 질서의 문제          발표자: 홍 승 표


Ⅰ. 서론


  급속한 문화의 서구화 과정의 결과로, 동아시아 사회에서 유교문화는 현저한 약화를 겪었지만, 여전히 유교사회의 특징인 예(禮)의 문화는 인간관계를 규제하는 틀로서 동아시아인들의 집단무의식 속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 원래 예의 출발은 고대 중국사회의 종교 의식과 관련한 것이었다. 그러나 공자(孔子) 시대에 이르러서, 예가 가졌던 원래의 종교적 색채는 차츰 퇴색하고, 예의 도덕적․윤리적 성격이 강화되었다. 예가 적용되는 범위는 마음가짐, 상호간의 호칭, 관계맺음의 방법, 행동방식, 복장, 관혼상제의 절차에서부터 국가의례에 이르기까지 실로 광범위하다. 이동인(1986: 57)은 그 지향하는 바에 따라서 예를 아래의 다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첫째, 초월적 존재와의 관계를 규정하는 예, 둘째,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고 감정을 조화로운 상태로 두기 위한 예, 셋째,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규정하는 예, 넷째, 정치․사회통제 등 치국지술(治國之術)에 응용하기 위한 예, 다섯째, 의미는 퇴색하고 형식만 남은 무의미한 절차로서의 예가 그것이다.

  예에는 예의 형식(文)과 정신(質)이라고 하는 두 가지 측면이 존재한다. 예의 형식이란,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것을 하지 말아야 하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구체적으로 이치에 맞게 그 형식과 절차를 정한 것이다(이문주, 1994: 10). 이런 의미에서, 예는 사회 규범의 일부이다. 예가 행해지는 상황이 변화하게 되면 예의 형식도 달라지게 된다. 예의 정신이란 예를 실천하는 자의 마음가짐을 의미한다. 이것은 예의 형식을 통해서 표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자연스럽고 진실한 마음이다(이문주, 1994: 17). 이 두 가지의 예, 즉 예의 정신과 형식이 조화를 이루었을 때, 비로소 예의 온전한 모습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공자는 이러한 인간의 모습을 문질빈빈(文質彬彬)이라고 표현하였다.

  유가(儒家), 도가(道家), 불가(佛家)로 대표되어지는 동아시아 사상들 중에서, 예 사상을 논의의 중심에 둔 학파는 유가였다. 왜 유가만이 유독 예를 강조한 것일까? 본고의 논의와 관련하여 두 가지 주된 이유를 제시할 수 있다. 도가(道家)와 불가(佛家)가 개인의 해탈이나 자연과의 합일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던 반면에 유가는 조화로운 사회적 삶과 인간관계의 문제에 치중하였다. 그러므로 사회질서의 문제는 처음부터 유가의 핵심적 관심사였고, 사회질서 형성의 주된 도구로써 예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두 번째 이유는 유가의 인간관과 관련한 것이다. 도가나 불가는 진아(眞我), 불성(佛性)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인간의 참된 본성을 전제하고, 이를 깨닫는 것을 삶의 궁극적 목적으로 간주하였다. 그래서 예를 진지(眞知)를 가리는 거추장스러운 형식절차 정도로 간주하고, 이에 대해서 비판적 자세를 견지하였다. 이에 반해서 유가는 인간의 참된 본성을 가정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인정하고 이를 인간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였으며, 또한 인간의 이성에 대해서도 긍정적 입장을 갖고 있었다. 즉, 유가 인간관은 인간의 모든 측면을 수용하는 총체적 인간관의 특징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인간의 욕망을 적절한 수준에서 조절하고, 자신의 본성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틀로서의 예를 중시하게 되었다.

  사회학이 제기해 온 근본적인 문제 중의 하나는 사회질서의 문제이다.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가 이기적으로 자신의 욕망 충족의 문제에만 혈안이 된 인간들로 구성된 사회에서, ‘사회질서는 어떻게 가능한가?’하는 문제를 제기한 이래로 이 문제는 늘 사회학의 중심과제의 하나였다. 유가의 예 사상은 사회질서 형성의 문제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사회학적 사상이라 할 수 있다. 애초에 예가 제정되었던 주요 목적의 하나가 바로 약육강식의 힘의 논리만이 통용되는 사회혼란을 종식시키고 사회에 윤리적 질서를 형성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예기(禮記)』,「경해(經解)」에서는 “예란 혼란을 막자는 데서 생겨난 것이다.”1)고 하였다.

  본고는 유가의 예 사상과 사회질서의 문제를 논의하고자 한다. 유가에서 말하는 예의 역할은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이는 인간 본성에 대한 가정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 인간을 욕망을 추구하는 존재로 인식하면, 예란 사회질서의 형성을 위해서 이러한 인간 본성을 억제하는 기제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이에 반해서, 인간이 도덕적 본성의 소지하고 있다고 가정하면, 예는 이러한 인간 본성을 깨우쳐 가는 과정이며, 이러한 본성 표현의 틀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예의 의미에 대한 이러한 견해의 상치가 가장 명료하게 나타나는 것이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한 맹자(孟子)와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한 순자(荀子)의 경우이다. 맹자는 예를 사단(四端)의 하나인 내적 도덕성으로 파악하여 형식보다는 내용을 문제삼는다. 이에 반해서 순자는 예를 타율적으로 욕망을 절제하는 수단으로 보고 형식적인 면과 정치적인 측면을 강조한다(이문주, 1994: 6).

  순자의 사회질서 형성의 전략은 교육(사회화)을 통해서 예(외재적 규범)를 개인에게 내면화시키는 것이다. 내면화된 예가 그 사람의 악한 욕망를 적절히 통제함으로써, 그는 규범동조적 행동을 하게 되며, 사회에는 질서가 형성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탈코트 파슨스(Talcott Parsons)나 에밀 뒤르케임(Emile Durkheim)과 같은 현대 사회학자들의 질서형성의 방안과 원리적으로 동일하다. 맹자의 사회질서 형성의 전략은 이와는 근본적으로 상이하다. 원래적으로 도덕적 본성이 내재하여 있는 인간은, 수신(修身)의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도덕적 본성을 자각하게 되며, 이것은 인간이 자발적으로 규범동조적 행위를 하는 바탕이 된다. 이에 따라 사회에는 질서가 성립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본고는 상기의 두 가지의 예, 즉 욕망 절제 수단으로서의 예와 본성 표현의 틀로서의 예가 어떠한 인간관적 바탕 위에서 성립하여 있는가를 밝히고, 각각의 예에 바탕한 사회질서가 어떻게 가능한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예에 바탕한 사회질서론이 어떤 사회학적 함의를 갖고 있는가를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논의하고자 한다. 단 본고의 목적은 유가의 예 사상을 구명하고, 이의 현대적 가치를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지, 역사적으로 구현되었던 예교 사회의 특성을 서술하고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혀둔다.


Ⅱ. 욕망 절제 수단으로서의 예와 사회질서의 형성


  본 장에서는 유가 사상가들 중에서 성악설을 주장했던 순자의 인간관과 예 사상을 중심으로 사회질서 형성의 문제를 고찰하고자 한다. 순자는 욕망추구자로서의 인간관의 바탕 위에서, 예에 바탕한 사회질서 형성의 방안을 제시하였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자연 본성을 갖고 있으며, 교육을 통해서 예를 내면화시킴으로써, 욕망이 적절한 수준에서 통제되어질 때, 인간의 규범적 행동이 가능하고, 사회질서가 수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


  1. 욕망 추구자로서의 인간 인식


  유가 사상가들은 감각적 즐거움이나 부귀와 명예를 추구하는 인간의 자연적 본성이 존재함을 인정하였다. 이러한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가 보다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순자의 인간관이다. 순자가 볼 때, 모든 인간은 감각적 만족을 추구한다. “무릇 인간은 눈으로는 아름다운 색을 보고자하고, 귀로는 아름다운 소리를 듣고자 하며, 입으로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자 하고, 코로는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자 하며, 마음은 안일하고자 한다. 이 다섯 가지의 욕망은 모든 인간이 지니고 있는 것으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2) 모든 인간은 선천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추구한다. “무릇 사람이란 공통점이 있다. 배가 고프면 먹고 싶고, 추우면 따뜻하게 입고 싶고, 고단하면 쉬고 싶고, 이익을 좋아하고 손해를 싫어하는 감정 등은 사람이 타고난 것으로 후천적으로 습득한 것이 아니다.”3) 이러한 인간의 욕심은 그칠 줄 모르는 것이다(荀子, 榮辱: 108). “무릇 이익을 좋아하여 그것을 얻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런 성정”4)이다. 인간의 선천적 본성은 악이며,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荀子, 性惡: 507). 그래서 “이러한 인간의 악한 성정이 방치되었을 때에는, 서로 다투고 빼앗는 격심한 사회혼란이 야기되어, 무법 사회가 되고 말 것이다.”5)라고 하였다. “사람이 타고난 성품은 말할 것도 없이 소인 그대로이다. 그러므로 스승과 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오직 눈앞에 있는 이익만을 보고 탐낼 것이다. 사람은 날 때부터 소인인데다 또한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서 어지러운 풍속을 몸에 익히니, 이것은 소인을 더욱 소인으로 만들고, 난세를 더욱 난세로 만드는 것이다.”6)

  이와 같이, 순자는 인간이란 본성을 방치하였을 경우, 자신의 이익이나 감각적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생각하였다. 순자의 인간 이해는 근대 서구 시민사회에서 형성된 분리․독립된 개체로서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추구하는 존재로서의 인간관과 상당히 유사하다. 양자간의 주된 차이는 이러한 인간적 특성에 대한 평가에 있다. 근대 서구의 사상가들은 대체로 인간의 욕망에 긍정적 가치를 부여하였다. 그래서 사회질서의 문제에 대해서도 각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가운데 전체로서의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저절로 질서가 형성된다는 아담 스미스(Adam Smith)류의 자유주의적 사회질서관을 형성하였다. 이에 반해서, 순자는 이러한 인간적 특성에 대해서 그가 성악(性惡)이라고 명명하였던 바와 같이 극히 부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다. 그러므로 사회질서의 문제에 대해서도 이러한 인간의 욕망을 적절히 규제함으로써만 사회질서가 수립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순자는 인간이란 자연방임의 상태에 두었을 때, 자신의 이익과 욕망만을 무한대로 추구하는 이기적인 존재라고 생각하였다. 그가 인간 본성을 이와 같이 성악이라고 인식하는데는 많은 상상력이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그의 사상이 형성되었던 시대적 배경은 전국시대 말엽이었으며, 이 시기는 서주 시대의 윤리적 사회질서가 붕괴되고, 약육강식의 냉혹한 힘의 질서만이 존재하였던 혼란의 시대였으며,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추구하면서, 자신을 보존하는데 급급하였을 것이다.


  2. 욕망 절제 수단으로서의 예와 사회질서의 형성


  서주(西周)의 윤리적 질서가 붕괴하고, 약육강식의 밀림의 법칙만이 존재하였던 전국시대 말엽에는 ‘어떻게 사회질서를 회복할 것인가?’하는 문제야말로 그 시대가 해결해야할 핵심적 문제였다. 인간이란 본성적으로 자신의 이익이나 욕망만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전제하였을 때, 전국시대 학자들의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순자로 대표되는 예치 사상과 한비자로 대표되는 법치 사상이 바로 그것이다. 욕망 추구자로서의 인간에 대한 전제 위에서 나타날 수 있는 또 하나의 사회질서의 방안이라고 할 수 있을 자유주의적 사회질서의 주장은 이 시대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것은 그 시대에는 분리․독립된 개체로서의 인간 인식이 발달하지 않았음을 반증함과 동시에 사상이 그 시대가 공유하고 있는 세계관의 영향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실례이기도 하다.

  욕망 추구자로서의 인간관을 수용하고, 사회질서의 형성을 위해서는 인간의 욕망을 억제해야할 대상으로 전제하였을 때, 사회질서 형성의 주요 기제는 사회화와 사회통제가 된다. 이 중에서 순자의 선택은 예(사회화)를 통한 사회질서의 회복이었다. 순자는 예학대사(禮學大師)라고 칭해질 만큼, 예에 관하여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예에 대한 논의는 그의 사상의 중심에 있다. 사회에 규범적 질서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욕망을 적절한 수준에서 통제하여야 하며, 예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데 있어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한다고 순자는 생각하였다. “타고난 대로 두면 사람들은 예의가 없으며 예의를 모를 것이요, 예의가 없으면 혼란스러울 것이요, 예의를 모르면 어그러지게 된다.”7)

  예는 인간의 욕망을 억제함으로써, 분쟁을 방지하고, 그럼으로써 사회에 규범적 질서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순자는 이러한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예의 기원을 설명하고 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욕구를 갖게 되었다. 욕구가 생겨도 얻을 수가 없으면 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구하여도 용량에 한계가 나누어져 있지 않으므로 싸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싸우면 어지럽고, 어지러우면 궁핍하게 된다. 선왕께서는 그 어지러움을 미워하였으므로 예의를 제정하여 이를 나누어 놓았으며,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양육하여 사람들이 구하는 것을 주었다. 욕구로 하여금 반드시 물질에 궁하지 않도록 하고, 물질을 반드시 욕구에 다하지 않도록 하였다. 이 둘이 서로 갖고 있는 장점에서 예가 생겨나게 되었다.”8) “세력과 지위가 같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같으면, 그러한 요구하는 대상물이 충분하지 않으므로, 반드시 서로 싸우게 되고, 싸우면 반드시 어지러워져서, 어지러워지면 궁하게 되니, 선왕이 그러한 어지러움을 막기 위해서, 예의를 제정하여 분별하게 한 것이다.”9)

  순자의 인간관에 바탕하면, 예란 자신의 욕망을 적절히 억제한 가운데 마땅히 따라야 할 외재적인 행위의 규범이다. “나라에 예가 없으면 그 나라는 정상적이 아니다. 예가 그 나라를 바로잡는 것은 비유하면 저울이 가볍고 무거운 것을 바로 잡으며, 먹줄이 굽은 것과 바른 것을 바로 잡으며, 규구(規矩)가 원의 모양을 바로 잡는 것과도 같은 것으로, 일단 이것을 기준으로 한 이상은 어느 누구도 감히 속일 수가 없는 것이다.”10)

  순자는 예와 사회질서의 연관성을 명백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나라에 예가 없으면, 평화롭지 못하다.”11) 그는 인간이란 자연방임의 상태에서 ‘무한정으로 자신의 욕망만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인식한다. 그래서 사회에 규범적 질서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예에 대한 교육을 통해서 인간 본성을 순화시켜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교육은 예에 바탕한 사회질서를 형성하는데 있어서 순자가 채택한 중요한 전략이었다. 순자에게 있어서 교육의 요체의 예의 학습이다. 그는 “스승이란 예를 바르게 해주는 사람이다.”12)라고 언명함으로써 교육의 목적을 분명히 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순자의 예치와 한비자의 법치는 동일선상에 있다고 하겠다. 순자가 교육을 통한 예의 습득을 강조한 것이나 한비자가 상벌을 통해서 법의 준수를 주장한 것은, 비록 그 방법은 상이하지만, 이들이 모두 인간의 본성을 욕망 추구자로 인식하고, 인간의 욕망을 적절한 선에서 억제할 수 있는 장치로써 내재적 규율로서의 예와 외재적 규율로서의 법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러한 수단을 통해서 사회질서가 형성될 수 있다고 믿었다는 점에서, 순자의 예치와 한비자의 법치는 유사점이 있다.『예기(禮記)』,「악기(樂記)」에서, “예악형정의 네 가지는 그 목표를 동일하게 하는 것이며, 또 이 네 가지는 민심을 하나로 화합시켜 태평한 세상을 실현시키는 수단인 것이다.”13)라고 했을 때,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위의 논의와 같은 것이다.


Ⅲ. 본성 표현의 틀로서의 예와 사회질서의 형성


  본 장에서는, 인간 본성의 선함을 주장하였고, 그래서 도덕적 주체자로서 인간을 인식하였던 공자와 맹자(孟子)의 인간관과 예 사상을 바탕으로, 사회질서의 문제를 논의하고자 한다. 이들의 사회질서에 대한 관점은 도덕적 본성의 소지자로서의 인간관에 바탕해 있다. 이들은 모든 인간에게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선한 본성이 내재하여 있다고 가정한다. 이러한 본성의 자각과 실현이야말로 삶의 궁극적인 목표이며, 마음 닦음은 이를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수신의 노력을 통해서, 본성의 자각이 이루어지면, 사람들은 자연히 도덕적으로 행위하게 되며, 사회에는 규범적 질서가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1. 도덕적 본성의 소지자로서의 인간 인식


  인간 본성에 관해서, 맹자는 앞서 논의한 순자와 대립된 입장을 갖고 있었다. 그는 성선설을 주장하였으며, 그의 주장은 인간 본성에 관한 유가의 정통 학설이 되었다. 맹자를 포함한 유가 사상가들은 도덕적 본성을 가진 주체로 인간을 인식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인간이 갖고 있는 여타의 특징들을 배격하거나 부정한 것은 아니다. 공자와 맹자는 욕망을 인간 존재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인정하였으며, 욕망에 대한 적절한 절제를 주장하였을지언정, 무욕(無欲)이나 멸욕(滅欲)은 결코 말한 적이 없다(김수중, 1997: 179). 이들은 남녀가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나 인간의 자연스러운 정감의 발현을 부정하지 않았으며, 술과 음식, 음악을 즐기는 등의 감각적 향락을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로 간주하였다. 또한 부나 권력, 명예에 대한 희구와 같은 사회적 욕망에 대해서도 이를 수용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욕망의 추구와 달성이 삶의 궁극적 목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며, 인간의 궁극적 본성이라는 생각도 받아들이지 않았다(홍승표, 1998a: 550-551). 이들은 서주(西周)의 윤리적 질서가 붕괴된 혼란스러운 춘추전국시대를 살아간 사상가들이었던 만큼, 순자가 관찰했던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 인간의 모습에 매우 친숙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현상 속에서 관찰되는 지배적 인간 유형과 인간 본성을 개념적으로 구분함으로써,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인 것이 아님을 주장하였다.『맹자(孟子)』의 다음 구절은 이러한 이들의 관점을 명료하게 보여 준다. “제(齊)나라 우산(牛山)의 나무는 일찍이 아름다웠다. 그러나 대도회지의 교외에 위치하여 있어서 사람들이 도끼로 나무를 베어가니, 어찌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그 밤의 쉬는 힘과 이슬과 비의 적셔주는 힘에 의해서 어린 싹이 나지 않는 바는 아니었지만 소와 양이 또한 이를 짓뭉개 버리는 지라 저와 같이 풀 한 포기 없는 벌거숭이산이 되었다. 사람들이 그 황폐한 모습을 보고서, 저 산에는 처음부터 재목이 없었다고 하니, 이것이 어찌 산의 본성이겠는가?”14)

 『중용(中庸)』에서는 모든 인간에게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도덕적 본성이 내재하여 있다고 하였다.15) 이러한 인간에 내재한 본성을 성(性)이라 한다. 성이란 태어나면서부터 우리의 마음에 갖추어져 있는 본성으로, 지극히 순수하며 선한 것이다.  성은 인간이 도덕적 행위를 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인간은 여타 동물들이 갖고 있는 생리적 본능을 갖고 있어서, 짐승과 다른 점이 얼마 되지 않는다.16) 그러나 얼마 되지 않는 바로 그 차이점이 인간은 도덕적 본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고, 이것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되게 하는 핵심적 특징이라고 파악하였다. 맹자는 인간 내면에 도덕적 본성이 내재함을 확언하였다. 모든 사람의 내면에는 절대적으로 선한 본성이 선천적으로 갖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맹자는 “성인(聖人)과 나는 같은 유이다”17)라고 하였다. 각자가 자신의 본성을 지키고, 확충하려는 철저한 노력을 기울이기만 한다면 “모든 사람이 요순과 같은 성인이 될 수 있다”18)는 것이다.『대학(大學)』에서 말하는 명덕(明德), 공자나 맹자의 인(仁)은 모두 이러한 인간 본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명덕이란 인간에 내재한 밝은 도덕적 본성이다. 인이란 어진 마음, 너와 나를 포함하여 모든 존재를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막 우물에 빠지려고 하는 어린아이를 보면 누구나 깜짝 놀라서 아이를 구하려는 마음이 일어나는데, 이러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은 결코 자신의 이익을 꾀하거나 명예를 구해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어진 마음의 발로라는 것이다(孟子, 公孫丑 上).

  이와 같이 유가 사상가들은 도덕적 본성의 내재성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 본성이 아무런 노력없이 자동적으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도덕적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본성을 자각하고, 실현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여기에서, 자신의 마음을 닦아가는 수행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공자는 수행의 방법으로 충서(忠恕)를 말하였다. 충이란 자신의 진실된 마음을 다 기울이는 것이고, 서란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다른 사람에게 미쳐가는 것으로, 충서에 힘쓰면, 인한 본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論語, 里仁). 맹자는 본성 실현을 위한 방안으로 진심(盡心)과 존심양성(存心養性)을 말하였다. 진심이란 마음을 다 기울여서 주체의 도덕 의지를 확충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공자의 충과 뜻이 통한다. 존심양성이란 인간이 본래 가진 본심을 보존하는데 힘을 기울이고, 이를 통해서 본심을 키워 가는 것이다. 유가 사상가들이 강조하는 경(敬) 공부는 존심양성을 위한 대표적인 방법이다. 경 공부란 마음을 집중하여 고요하고 움직이지 않는 상태를 유지함을 통해서 또렷이 깨어있게 하는 공부이다. 이를 통해서 마음속의 사욕과 망념을 제거하고, 본래의 자기를 회복함을 목적으로 한다(신오현, 1996: 68).

 『중용(中庸)』에서는, 본성 회복을 위해서는 擇善固執해야 하며, 계신(戒愼)하고 공구(恐懼)할 것을 말한다. 인간 본성을 실현하려면 마음이 지극히 진실하여 거짓됨이 없어야 한다. 마음이 지성(至誠)의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사사로운 욕심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선을 택하여 그것을 굳게 지켜나가야 하며,19) 눈과 귀가 미치지 못하는 마음의 세계를 경계하여야 한다.20) 또한『중용(中庸)』과『대학(大學)』에서는 본성 회복의 방법으로 신독(愼獨)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신독이란 아직 동기가 밖으로 나타나지 않아 다른 사람은 모르나 자기만이 아는 마음(獨)을 삼가고 조심하며 경계하는 것(愼)을 이른다.『대학(大學)』에서 말하는 격물치지(格物致知)와 성의정심(誠意正心)도 모두 마음을 닦는 방법이다. 정심이란 마음을 단정히 하여, 분노․두려움․탐욕․근심이 마음에 깃들이지 못하도록 함을 뜻한다. 정심에 이르기 위해서는 마음에서 일으키는 뜻을 성실하게 하여 스스로 속임이 없어야 한다. 격물치지란 성의정심의 기초가 되는 활동으로, 사물의 가장 근원적인 도리를 깊이 탐구하여, 마음이 본래 가지고 있는 양지에 이르게 됨을 의미한다(蒙培元, 1996: 211-212).


  2. 본성 표현의 틀로서의 예와 사회질서의 형성


  도덕적 본성의 소지자로서의 인간관에 입각하면, 인과 예는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예란 인간 본성을 계발해나가는 도구요, 인간의 인(仁)한 본성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예는 인간의 성정(性情)을 억누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것이 조화롭게 발하는 것을 돕는 수단인 것이다(이동인, 1986: 60). 그리하여『예기(禮記)』,「곡례(曲禮)」에서 “도덕인의는 예를 통하지 않고는 실현될 수 없다.”21)고 하였고,『예기(禮記)』,「유행(儒行)」에서는 “예절이란 것은 인의 모습이다.”22)라고 말하였다. “예는 인간의 정에 근거하여 절문이 있게 한 것”23)이다.

  이러한 인간관에 입각하여 예론을 펼친 학자들은 예의 형식보다 예의 정신을 더욱 중시한다. 공자는 예를 행하는 자의 마음가짐을 중시하였다. 공자가 “사람이 인하지 못하면 예(禮)가 무슨 소용이 있으며, 사람이 인하지 못하면 악(樂)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24)라고 말한 것이 바로 이런 뜻이다. 인한 마음에 근거하지 않은 예는 무의미한 것이다.『효경(孝經)』,「광요도(廣要道)」에서 “예란 경일 뿐이다.”25)라고 말한 것도 같은 의미이다.『예기(禮記)』,「단궁(檀弓)」에서도 “상례는 애도함이 부족하고, 예가 남음이 있기보다는 예는 부족할지언정 애도함이 지극하니만 못하고, 제례는 공경함이 부족하고, 예가 남음이 있기보다는 예는 부족할지언정 공경함이 지극하니만 못하느니라.”26)고 하였다.

  그러나 예의 정신에 대한 이러한 강조가 형식에 대한 경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진실한 마음을 갖고 있더라도 바른 방법으로 행하지 않으면 역시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여기에서 형식과 절차로서 예가 요청되고 의미를 갖게 된다. 예를 행함에 있어서 인간의 도덕적 본성에서 말미암은 선한 의도가 강조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러한 선한 의도가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것은 형식과 절차를 통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자신의 욕망을 제거하고 본성을 회복하고 선한 의도를 가지도록 수양을 하는 방법 또한 예를 통하여 가능한 것이다.”(이문주, 1994: 11) 이렇게 해서, 예의 본질과 형식이 서로 어울려 조화를 이루었을 때, 참다운 예가 행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예기(禮記)』,「예기(禮器)」에서는 “선왕이 예를 제정함에 있어서, 근본이 있고, 형식이 있었다. 충신(忠信)은 예의 근본이고, 의리(義理)는 예의 형식이다. 근본이 없이는 예가 존립할 수 없고, 형식이 없이는 예를 실행할 수 없다.”27)고 하였다.

  욕망 추구자로서의 인간관을 전제하면, 예와 법은 방법은 다르지만 근본적으로 동일한 기능을 한다. 그러나 도덕적 본성의 소지자로서의 인간관에 바탕하면, 예에는 법과는 근본적으로 상이한 기능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인간의 참된 본성을 절도있게 표현하는 수단으로서의 기능이다. 전자의 예가 인간의 욕망을 억제하는 기능을 한다면, 후자의 예는 인간의 본성을 표현하는 기능을 한다. 후자의 예는 법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공자는 예를 인(仁)속에 내재화시킴으로써 예가 갖는 이러한 의미를 확립하였다(조준하, 1993: 37). 예와 예를 습득하는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양자간에는 차이가 난다. 전자의 예나 법은 인간의 외부에 존재하면서 나를 규제하며, 나는 이러한 예나 법의 객체로써 이들이 지시하는 내용을 수용한다. 후자의 예는 행위자가 주체가 되어서 예를 습득하고, 예를 통해 자신을 단련시켜가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참된 본성이 내재하여 있으며, 이러한 본성을 자각하고, 예에 맞게 이를 표현함으로써 모든 존재들간의 조화 즉 규범적 사회질서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각자가 인(仁)한 자신의 본성을 회복하고, 이를 통해서 인륜이 구현되는 사회를 만들어감으로써, 사회에 규범적 사회질서가 형성되는 것이야말로 공자와 그를 계승한 유가의 이상이었다.

  이러한 유가적 이상이 구현되는데 있어서 핵심적인 전제 조건은 각자의 마음 닦음이다. 수신과 예는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상호관계가 있다. 유가는 인간에 내재한 참된 본성을 가정하며, 이러한 본성을 깨우치기 위한 마음 닦음이야말로 유가적 의미에서 공부의 핵심이다. 마음 닦음이란 뜻을 진실되게 가져서(誠意), 마음을 바로 갖는 것(正心)을 뜻하며, 부연하자면 “모든 의지를 모아 마치 걸레로 더러운 때를 닦아내 듯 자기마음의 바르지 못한 부분, 의에 벗어난 욕심과 남을 해치는 이기심, 군림코자 하는 자만심과 자기 뽐냄의 교만심, 이 모든 마음의 오물들을 정성껏 닦아내는 과정”(송복, 1997: 30)이다. 이러한 마음 닦음의 결과로 자신의 원래 본성을 자각하고 실현하게 된다는 것이다. 규범적 사회질서의 형성은 사회구성원들 각자가 이러한 마음 닦음을 수행한 결과로 자연적으로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수신의 과정으로써 예를 익히는 것은 중요한 부분이며, 역으로 수신이 전제되었을 때 비로소 참다운 예를 행할 수 있는 것이다. 공자가 말한 극기복례(克己復禮)란 바로 이를 뜻하는 것이다(송복, 1997: 30).

  예를 익힘이란, 첫 번째로 예의 정신을 체득해나가는 것이고, 두 번째로 예의 형식을 학습하는 것이다. 예의 정신의 체득은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겸손한 마음가짐을 갖는 것으로, “자기 몸의 낮춤이다. 사회관계의 모든 당사자들에게 뽐냄 자만 거만함이 없이 자기를 낮춤으로서 상대와 화(和)를 이루는 것이다. 이 화 속에서 자아를 확립함이 겸손이며 자아의 정체성을 높이는 것이 겸손이다.”(송복, 1997: 46) 둘째, 공손한 마음가짐이다. 이는 “자기주장을 앞서 내세우지 않는 것이고, 자기주장의 관철을 위해서 맹렬성 저돌성을 내보이지 않는 것이며, 말을 하고 행동을 하는데 늘 삼가함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세와 태도가 항시 고분고분한 것이다.”(송복, 1997: 46) 셋째, 사양하는 마음이다. 이는 “선난후획(先難後獲)을 의미한다. 어려움은 내가 먼저 하고 얻는 바는 항시 뒤에 하는 양보의 사회적 행위가 그것이다. 남보다 수고로움을 먼저 하고 사의(私意) 사욕(私欲)을 극복하는 것, 그것이 극기며 예를 시행하고 예를 회복하는 길이다. 사양은 바로 예의 시행과 항시 예로 돌아가는 길, 그 자체이다.”(송복, 1997: 46)

  이러한 수신의 과정을 거쳐서, 각자가 본성 표현의 틀로서의 예를 실행할 수 있을 때, 통일체적 세계인식원리에 바탕한 사회질서가 출현하게 된다. 각 개인들이 자신과 세계의 통일성을 자각하여, 조화로운 삶을 영위함으로써, 규범적 사회질서가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질서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각자 자신의 본성을 깨달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수신의 노력이 필요하게 된다. 예를 통해서 자신의 본성을 절도 있게 표현함으로써,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조화로운 사회관계의 형성이 가능하게 된다. 공자는 “예를 배우지 않으면 서지 못한다.”28)고 하였는데, “서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말하고 행동을 하여야 하는가를 모르게 되고, 가정에서는 가족들이 서로 화목하지 못하고, 사회적으로는 서로가 더욱 많은 것을 가지려고 다투고 싸워서 질서가 혼란하여지고, 국가적으로는 권력투쟁과 영토전쟁으로 평화를 유지하지 못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이문주, 1994: 10) 요약하여 말하자면, 예를 모르면 다른 사람들과의 조화로운 삶의 영위가 곤란하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예는 사람들 간의 관계의 균형․조화․화합을 궁극적 목적으로 한다(이문주, 1994: 19).


Ⅳ. 논의: 예 사상의 현대적 의미


  위의 논의는 인간관에 따라서 두 가지 상이한 의미의 예가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순자와 같이 욕망 추구자로서의 인간을 전제하면, 예란 욕망을 적절한 수준에서 통제하는 수단이 된다. 맹자와 같이 도덕적 본성의 소지자로서의 인간을 전제하면, 예란 본성을 표현하는 틀이 된다. 이 두 가지 예는 각각 사회질서 형성의 상이한 토대를 제시한다. 전자의 예는 인간의 욕망을 억제시킴으로써, 행위자로 하여금 규범 동조적 행위를 실천하게 하며, 후자의 예는 본성을 예의 틀에 맞게 표현함으로써, 도덕적 행위의 실천을 낳는다. 이리하여 이 두 가지 예는 사회질서를 형성시키는 바탕이 된다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사회질서 형성의 원리와 형성된 사회질서의 성격 모두에 있어서 상이하다.

  위의 두 가지 인간관 중에서, 현대사회학의 사회질서 이론들은 욕망 추구자로서의 인간관의 바탕 위에서만 구축되어 있다. 현대사회학은 인간의 도덕적 본성에 대한 가정을 배제하고, 욕망 추구자로서의 인간만을 전제한 채, 사회질서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학은 사회질서가 형성될 수 있는 세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교환이론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자유주의적 사회질서를 상정하는 학자들은 시장상황에서 개인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가운데 자연적으로 질서가 출현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둘째, 갈등이론이나 제지이론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권력에 의한 통제를 강조하는 학자들은 개인들이 자신의 욕망을 무분별하게 방출하는 것을 강제의 방법을 통해서 규제함으로써 사회질서가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셋째, 구조기능주의이론이나 상징적 상호작용론에서와 같이, 사회화를 강조하는 학자들은 사회화 과정을 통해서 사회규범을 내면화시킴으로써 사회질서가 나타나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들 세 가지 사회질서 형성에 대한 이론들은 각기 사회질서 형성의 방법을 달리하지만, 사회질서에 대한 논의의 기초로서의 인간관은 동일하다. 즉, 이들은 모두 인간을 욕망 추구자로 간주한다. 그러나 욕망을 추구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견해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보편적 주장이 아니다. 이것은 단지 근대 서구사회라는 시간적, 공간적으로 한정된 역사적 사회에서 중세사회의 인간관에 대한 반발로 형성된 인간 본성에 대한 하나의 상대적인 견해일 따름이다. 단지, 현대사회학이 근대 서구사회에서 형성, 발전하였고, 사회학은 이러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근대 서구인들이 공유하고 있었던 세계관을 자신의 학문활동의 세계관적 토대로 삼았을 뿐인 것이다. 이것이 현대사회학이 욕망 추구자로서의 인간관의 바탕 위에서만 사회질서의 문제를 구명하려한 역사적 요인이다.

  인간 본성에 대해서 사회학이 공유하고 있는 가정은 결과적으로 사회질서에 대한 논의를 한정짓는다. 상이한 인간 본성에 대한 전제 위에서의 사회질서에 대한 논의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도덕적 인간 본성을 전제하고서 이루어지는 예와 사회질서에 대한 논의는 사회질서의 문제에 대한 기존의 사회학 이론의 한계를 인식하고, 새로운 이론 구성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서,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사회질서란, 결국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하는 밀림의 질서이며, 이러한 유형의 질서는 자본주의 사회의 일반 원리이기도 하지만, 예에 바탕한 사회질서관에서 보자면 이것은 극심한 무질서이며, 윤리적 질서의 붕괴이다. 사회화와 사회통제를 통한 질서의 형성이란 견해도, 도덕적 인간 본성을 전제한 예와 사회질서에 대한 논의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사회질서 형성을 위한 보조적 장치는 될 수 있지만 주된 또는 바람직한 질서형성의 방법은 아니다. 더구나 사회질서 형성의 방법을 사회화와 사회통제에 한정하게 되면, 각자의 수신을 통한 도덕적 본성의 자각과 실현의 노력은 근원적으로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되게 된다.

  예와 사회질서의 논의는 상기한 이론적 함의 뿐만 아니라 현대 한국사회를 포함하여, 현대사회의 문화적 특징을 밝히고, 근원적 문제를 드러내며, 발전의 방향을 제시하는 등 실천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한 사회학적 함의를 갖고 있다. 동아시아의 예의 문화와 관련해서 자주 논의되는 문제의 한 가지는 현재 동아시아 사회에 잔존하고 있는 예의 문화가 인간과 사회 발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비판이다. 이러한 비판의 요점은 동아시아 사회가 서구와 같은 근대적 사회로 탈바꿈하는데 있어서 예의 문화가 장애물이 된다는 것으로 그 요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예는 상하귀천의 존비 등급을 규정하고, 이를 지킬 것을 요구함으로써, 기존의 지배질서를 유지, 강화하고, 사회변동을 억제한다는 것이다. 예는 제사, 제기, 상장, 복식 등에 있어서의 신분간의 차별을 분명히 정하고 있다(柳肅, 1994: 63-64). 그리하여 예는 “귀천․장유․원근․남녀․외내를 분별해서 감히 서로 분수에 넘치는 일이 없게 하였으니,”29)『예기(禮記)』,「악기(樂記)」에서는 “음악은 사람들(의 마음)을 화합시키고 예의는 사람들(의 신분)의 차별을 분명하게 한다.”30)고 하였다. 둘째, 예는 인간의 개성을 억압한다는 비판이다. 예는 틀에 박힌 행위양식을 강요함으로써, 개성의 표현이나 개성의 추구를 억제하였으며, “<개성이 강하다>라는 것을 개인의 결점으로 생각하고 수양이 부족한 표현이라고 간주했다”(柳肅, 1994: 265). 자신이 속한 가족이나 국가에 대한 헌신이 언제나 개인의 요구보다 우선시 되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개인의 진취적인 정신은 발전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셋째, 예는 사회변동을 억압하였다는 비판이다. 개인의 욕망의 무제한적인 추구는 악한 것으로 간주되었고, 예에 맞는 행동만이 요구됨으로써, 인간의 창조적 정신이 계발되지 않았다. 따라서, 과학․기술의 발달이나 생산력의 증대가 저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넷째, 예는 경쟁을 억압하였다는 비판이다. 유가 사상은 모든 형태의 분쟁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으며, 예는 모든 인간이나 집단간의 분쟁을 사전에 예방하며, 조절하는 기능이 있었다. 그 결과로 개인들은 강한 성취의식을 갖지 않았으며, 경쟁을 통한 사회발전도 이루어질 수 없었다는 것이다.

  예에 대한 이러한 비판들의 공통점은 동아시아 사회의 근대화 과정을 통해서 잔존하고 있는 예의 형식들이 개인과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유교문화 일반에 가해지고 있는 비판들과 맥락을 같이 한다. 예와 유교문화 일반에 대한 이와 같은 비판은 동아시아 사회가 겪은 현대기의 역사변동 과정과의 관련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20세기를 통해서 서구사회를 발전 모델로 하는 급격한 사회변동을 경험하였다. 이러한 변동의 과정에서 가치와 세계관과 같은 문화의 핵심적 요소들이 서구화되고, 전통문화 중에서 잔존하게 된 것은 사회관계나 행동문화의 영역이었다. 예의 문화도 동일한 변동과정을 거치면서, 예의 정신은 거의 소멸하고, 예의 형식과 절차만이 부분적으로 잔존하게 되었다. 예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정신이 빠진 잔존하는 형식이 개인과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창조적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현재 잔존하고 있는 예의 문화가 개인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한 논의가 예의 문화 자체에 대한 논의로 호도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비판이 안고 있는 두 번째 문제점은, 서구 중심적 관점에서 동아시아 문화를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평등, 자유, 민주주의와 같은 정치적 신념이나 개인의 개성, 진취적 정신, 경쟁적 사회관계나 경제 성장, 사회 진보 등을 이상적인 가치로 전제하고, 이를 잣대로 예의 문화를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는 사회학이 경계하는 문화를 인식하고 평가하는데 있어서 민족중심주의(ethnocentrism)에 쉽게 빠져들게 된다. 문화에 대한 이해와 평가는 그 문화 자체의 논리 속에서 이루어져야지 상이한 문화를 준거로 하여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그러나 현재 동아시아 사회가 급격한 서구화 과정을 통해서 대상을 인식하는 틀과 핵심적인 가치들마저 서구화되면서, 자문화를 이러한 서구적 잣대에 의해 폄하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동아시아 사회의 문화발전을 위해서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예의 문화는 오히려 현실의 사회를 창조적으로 비판하고, 새로운 사회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유력한 근거가 될 수 있다. 예와 사회질서의 논의는 현대 한국사회의 근원적 문제에 대한 인식을 가능하게 하고, 미래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현대 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의 하나는 예의 정신의 결여이다.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 부모와 자식의 관계, 선배와 후배의 관계를 포함한 많은 사회관계들이 관계의 혼란과 악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현재의 상황에서 예의 정신의 회복이야말로 한국 사회발전의 핵심적 의미가 된다.

  예의 정신의 정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의 바탕 위에서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것, 즉 겸손(謙遜)함이다. 󰡔예기(禮記)󰡕,「곡례 상(曲禮 上)」에서는 “무릇 예라는 것은 자신을 낮추고 다른 사람을 높이는 것이다.”31)라고 하였다. 주역의 지산(地山) 겸(謙)괘의 괘상은 이러한 예의 정신을 잘 보여준다. 높고 위대한 것(山)이 스스로 땅(地) 아래에 위치해 있다. 자신에 대한 열등감의 바탕 위에서 자기보다 강자에게 자신을 낮춤은 겸손이 아니며, 예가 아니다. 이것은 비굴함이며, 무력감에 바탕한 권위주의적 성격의 표현이다. 비굴함과 겸손함은 외관상 유사한 표현의 양태를 띠고 있지만 그러한 행위의 내적 바탕과 의미는 상반된 것이다. 비굴함은 자신보다 약한 자에게는 지배․군림하려고 하고,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는 복종․숭배하려고 하는 무력감에 기인하는 권위주의적 성격의 일부이다. 자신에 대한 자부심의 바탕 위에서 자신을 낮추는 것이 예의 정신이며, 이러한 행위 유형이 모든 사회구성원들에게 확대되었을 때, 예의 문화가 성립하게 된다. 조선시대 선비문화는 바로 이러한 예의 문화의 한 전형이며, 겸괘 구삼(九三)의 괘사인 ‘노겸군자유종길(勞謙君子有終吉)’은 공로가 있으면서도 뽐내지 않는 예의 문화에서 군자의 모습의 한 전형이다.

  예의 문화는 정신분석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건강하고 성숙한 인격을 사회화 과정을 통해서 길러내며, 또한 건강한 인격에 바탕을 두고 있는 건강하며, 높은 수준의 문화이다. 예의 문화는 ‘자신을 높임’을 강조하는 현대문화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대안적이며 발전적인 사회질서의 전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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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孝經󰡕. 阮元(校勘). ≪十三經注疏≫本.


  * 한글요약문


  동아시아의 禮사상은 현대 사회학의 사회질서론의 근원적 한계를 인식하고, 새로운 사회 질서론을 형성해 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 현대 사회학은 세 가지 유형의 사회 질서론을 발전시켜 왔다. 첫째, 교환이론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시장상황에서 개인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가운데 자연적으로 질서가 출현하게 된다고 생각하는 자유주의적 사회질서론, 둘째, 갈등이론이나 제지이론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개인들이 자신의 욕망을 무분별하게 방출하는 것을 강제의 방법을 통해서 규제함으로써 사회질서가 형성된다고 생각하는 강압적 사회질서론, 셋째, 구조기능주의이론이나 상징적 상호작용론에서와 같이, 사회화 과정을 통해서 사회규범을 내면화시킴으로써 사회질서가 나타나게 된다고 생각하는 사회 질서론이 그것이다. 이들 세 가지 사회질서 이론들은 각기 사회질서 형성의 방법에 대한 견해를 달리하지만, 사회질서에 대한 논의의 기초로서의 인간관은 동일하다. 즉, 이들은 모두 인간을 욕망 추구자로 간주한다. 이것은 서구 근대사회의 전형적 인간관으로, 사회학은 근대 서구사회에서 근대 서구인들의 세계관의 기초 위에서 발전하여 왔기 때문에 이러한 인간관의 바탕 위에서 사회 질서론을 발전시켜온 것이다.

  동아시아의 예 사상은 출발점에서부터 사회질서의 형성과 직접적인 관련을 갖고 있었다. 예에는 두 가지 의미가 존재하는데, 첫 번째 의미의 예는 인간의 욕망을 적절한 수준에서 조절하는 수단이고, 두 번째 의미의 예는 자신의 본성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틀이다. 두 번째 의미의 예는 현대 사회학과는 인간관의 전제를 달리한다. 즉, 인간의 도덕적 본성을 전제하고, 인간이 이러한 본성을 수신의 노력을 통해서 자각하고, 예의 틀을 통해서 표현하게 될 때, 사회질서가 발생하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예에 바탕한 사회질서에 대한 논의는 현대 사회학의 사회질서론의 인간관적 전제를 반성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 주며, 동시에 새로운 인간관의 바탕 위에서 새로운 사회학적 사회질서론을 구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준다.

출처 : 동양철학 나눔터 - 동인문화원 강의실
글쓴이 : 권경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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